하늘 빛 고운 가을날. 학교 아이들과 과천에 있는 `정보나라'에 견학을 갔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점심시간이 되자 인솔교사 일곱 명은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우동 몇 그릇을 사 가지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정 선생님이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김밥 두 개가 펼쳐져 있었다.
"웬 김밥?" "응, 우리 반 애들이 챙겨왔네." "와! 담임 능력 있다." "애들을 얼마나 들들 볶는 거야."
우리는 정 선생님을 부러워하며 김밥을 나눠 먹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난 초등학교 때의 그 김밥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은 김밥을 먹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들뜬 날이었다. 단무지에 소시지 정도 겨우 들어간 김밥, 사이다와 삶은 달걀 두어 개가 고작인 소풍 가방이었지만 그걸 메고 가는 발걸음은 정말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머니는 일회용 나무 도시락에 담은 김밥을 항상 두 개씩 싸 주셨다. 하나는 꼭 선생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엄마, 반장이 싸올 거야." "그래도 갖다 드려라. 뭘 먹을 땐 어른 먼저 드리고 먹는 거란다."
반장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부잣집 아들은 더더욱 아닌 나는 소풍 때면 언제나 선생님 김밥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김밥을 가방에 넣어주실 때마다 "이게 선생님 것이야. 별 표시해 놓은 것 보이지? 이거 꼭 선생님 드려야 한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확인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행동은 어린 꼬마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한 일이다.
선생님 김밥은 분명 내 것과는 다른 것 같다. 뭐가 다를까? 단무지가 더 들어간 걸까, 아니면 계란이 듬뿍 들어간 걸까. 궁금한 일이었다. 마침내 선생님 것을 몰래 열어보기로 했다. 3학년이나 4학년 때쯤 되었을 것이다. 김밥 두 개를 풀어놓고 비교해 보니, 아! 분명 차이가 있었다. 내 것은 그냥 김밥뿐인데 선생님 김밥 위에는 고소한 깨가 골고루 뿌려져 있었다. 1970년대 어느 날의 일이다.
얼마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시골 초등교에서 한 학년 두 학급이 공동 체험활동을 나갔다. 점심이 되자 두 담임 교사는 식사를 시작했다. 조금 후 한 아이가 오더니 "선생님, 이거 드세요"하며 과자 한 봉지와 음료수를 내밀었다.
"너나 먹지 뭘"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옆에 있던 다른 반 선생님이 "고 녀석 착하네, 우리 반 녀석들은 사탕 한 알 없어"하며 웃었다. 그때 사탕 한 알 없다던 선생님네 반 아이가 과자 봉지 하나를 들고 씩씩하게 뛰어왔다. 대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와서 제 담임 선생님께 하는 말, "선생님, 이것 좀 까주세요." 2000년 어느 날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