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된 교사들이 교직을 그만 두려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모습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분들에게 있어 굳이 두둑한 퇴직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이기에 곡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이 든 선생님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장은 학교를 관리하는 자로서 교장실이 있어 위엄을 갖추고 자신을 과시하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라도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교감은 선생님들을 통솔하는 자로서 교무실을 장악하고 지시하는 권위와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원로교사들은 과다한 수업으로 하여 교무실 책상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위아래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며칠전 교감선생님 앞 탁자 위에 수박을 썰어놓고 젊은 교사 몇분이 담소하며 이른 수박을 들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수박을 핥고 있던 젊은 교사들 중 누구 한사람 나이 든 교사들에게 수박 한 조각 드시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17년간 교직에 머물며 흰머리가 조금씩 빛을 발하려 하고 있는 교사로서 그런 매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듯 초라해 지겠지 하는 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교무실은 젊은 교사들의 천국이다. 휴게실에서 해야할 잡담도 교무실에서 두서없이 해대고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 나이 든 교사들은 이제 나무랄 기력도 없이 서서히 주눅이 들어 뒷전으로 밀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 때문에 20여년을 하루같이 헌신해온 교사들이 이제 앞다투어 교직을 떠나려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행여 퇴직금 때문이라고 떠나가는 분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오래 묵은 포도주를 소중히 여기듯 떠날 분들이 떠나고 난 뒤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단을 지키는 원로교사들이 당당하게 교직에 머물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신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