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촌지는 `아주 작은 마음의 선물'이라고 했다. 원래의 뜻은 접어둔 채 부정적으로만 쓰이고 받아들여지는 이 말을 문득 떠올릴 때면 못내 아쉽다. 정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촌지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40여 년의 학교생활에서 2만여 명의 제자를 가르치면서 난 지금도 잊지 못할 인상적인 촌지를 두 가지 기억한다. 한 가지는 10여 년 전 어느 학부모께서 선생님을 면담하러 오면서 들고 온 참깨 한 되다. 지금은 촌지라고 하면 돈이나 상품권 등을 생각하겠지만 예전에는 허름한 보자기나 그릇에 담긴 그 고장 농수산물이 많았다. 특히 시골에서는 말이다.
그 학부모는 꼭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는 마음의 표시라며 직접 재배한 참깨를 자랑스레 꺼내 놓았다. 농약도 치지 않은 무공해 작물이라고 강조하면서 거듭 손에 쥐어주는 그 성의에 거절할 길이 없었다. 참깨는 한 되였지만 실상 `마음의 선물'이 아닌 천만금의 촌지와 비교할 수 없는 무게와 가치가 느껴졌었다.
또 한 가지의 촌지는 낙도 벽지에 근무했을 때 경험했다. 태풍이 부는 싸늘한 가을 어느 날, 한 학생이 집에서 재배한 고구마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고생 많은 선생님께 건강식품조로 보냅니다'라는 편지 내용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10여 명의 선생님이 먹어 본 고구마의 맛은 여느 것과는 달리 꿀맛보다 더 달콤한 사랑의 맛이었다. 샛노란 고구마의 속살을 씹으며 자녀를 사랑하는 순수한 부모의 정을 느끼지 않은 교사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그 맛은 잊혀지지 않는 교직생활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동료교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니 말이다.
요즘 스승 노릇하기도 힘들지만 스승 대접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어쩌다 세태가 이렇게 됐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달걀 한 꾸러미를 보내도 존경의 마음을 담고 그 소박한 촌지에 감동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