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자식을 잃고 난 후의 그리움과 고통을 표현한 정지용의 `유리창'이란 시의 일부분이다. 두툼한 여행배낭을 메고 밝은 웃음과 들뜬 표정으로 현관에서 떠나 보냈을 소중한 자식을 검게 타버린 시신으로 맞이한 부모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아침신문에서 보면서 내 가슴속에 눈물처럼 떠올려진 시이다.
꿈을 펴지도 못한 채 떠나간 18명의 어린 생명들. 그리고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과 한을 평생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는 부모들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고는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과 학창시절의 추억을 함께 하던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겪을 마음의 상처를 누가 치유해줄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잘못된 관행과 도덕적 불감증에 희생되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침 통학 길에 성수대교붕괴로 꽃다운 나이로 숨진 한 여고생의 책상에 놓였던 친구들의 편지와 국화꽃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씨랜드 참사로 사랑하는 자식의 혼을 한국에 덧없이 뿌리고는 국적마저 버리고 먼 이국 땅으로 가버린 부모의 뒷모습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데, 우리는 아직도 두려움 없이 어린 생명들을 산새처럼 날려보내고만 있다.
수학여행이 안고 있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도 학생들을 데리고 여러 번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 학생들을 가득 태운 수학여행 버스는 당연히 조심스럽게 운행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운전기사의 성향에 따라 급정거와 난폭 운전이 빈번히 일어난다. 담임교사와 학생들은 그저 요행으로 좋은 운전기사를 만나기를 바라면서 버스에 올라야 할 형편이다.
수학여행 철이면 경주와 설악산 등지에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엉켜있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철에만 국한되어 거의 모든 학교가 동시에 떠나는 수학여행에 숙련된 운전기사의 수가 태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가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마음 졸이는 수학여행. 그래서 1학년 담임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한해가 다 갔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에 팽배해있는 집단편의주의도 문제다. 현 수학여행은 항상 학년 전체가 움직인다. 500여명에서 많게는 800여명까지 항상 단체로 몰려다니다 보니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교육부는 소규모별 수학여행을 권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행정적 편의와 책임소재에 대한 회피로 집단 관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둘러보기 식의 여행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유서 깊은 곳의 문화를 체험하고 느끼는 심도 깊은 수학여행이 아닌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시간이 더 많은 수학여행은 그만큼 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학교에서 나도는 여행사나 숙박업소와의 유착관계에 관한 소문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훨씬 비도덕적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문제점만 들먹거릴 것인가. 어쩌면 이 사고 이후에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수학여행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으레 작년도 수학여행철을 꺼내 연도만 바꾸어 결재하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모두 기쁘게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는 수학여행이 되도록 학교는 발로 뛰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선 수학여행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그 제시된 모델은 올해 학교와 학부모와 지역사회인사가 모여 새롭게 시작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검증 받는 것도 좋은 방안의 하나일 것이다.
허무하게 희생된 14명의 어린 영혼들에게 삼가 명복을 빌며 이제 어른들은 그들의 희생이 말하는 의미를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