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9 (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국제

실업고 위기, 한치 앞도 못보는 정부 정책이 원죄

낡은 교육과정·시설로 단순공 양성
과원교사 質 문제 학부모 비판 우려

실업고의 위기는 무엇보다 정부정책의 무모성 탓이 크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는 `산업기능인력 태부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실업고 비율을 50%까지 늘리는 양적 팽창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정식학교로 인가되지 않은 수준 미달의 전수학교를 무조건 상고로 전환해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고 확대정책은 제조업 중심의 `굴뚝산업' 경제구조가 90년대 중반부터 자동화-정보화 산업구조로 급격히 전이됨에 따라 한계에 부딪쳤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는 실업고를 재정비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투자는 없이 오히려 직업교육의 축을 전문대로 옮겨 재정지원을 끊었고 이제 다시 통합고를 논의하는 등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일산정보산업고 전종호 교사는 "실업계 교사가 아닌 사람은 이름도 생소한 특성화 공고 정책, 2+1체제, 고교 교육체제 개혁안, 국민 공통교육 과정안 등 실고 정책은 별 고민없이 자주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며 실업고의 지원상태를 보고 나서 인문고의 정원을 결정한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교사들은 "실업계 지원을 안 하면 무조건 인문고로 진학할 수 있는데 누가 실업고에 오겠냐"고 반문한다.

기능인력 수요가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한 예측도 없이 그때그때 실고의 학과개편과 특성화만을 요구한 교육부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시설투자에 필요한 재정지원은 97년부터 오히려 삭감해 실고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치 못하는 5년마다의 교육과정 개편, 산업체 현장 연수를 비롯한 교사 재교육 부족, 실고와 산업체, 전문대를 연계하는 교육청 단위의 지원부서 전무, 구시대적인 자격제도 운영 등이 맞물려 `실고는 있되 실업교육은 없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기업체의 실고생 기피는 당연한 결과다.

일례로 현재 금융기관에서는 정보화에 발맞춰 전산회계 자격증을 갖춘 상고생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시설은 이것을 해낼 도리가 없다. 인천 J정보고의 한 교사는 "학교에서 전산회계를 가르쳐 아이들이 자격증을 따도록 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전산실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상업부기를 배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고생을 위한 공동실습소도 턱없이 부족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서울시내에 공고생을 위한 공동실습소는 단 2개소뿐이다. 그것도 전기, 전자, 건설, 통신과 학생들은 입소기회조차 없고 기계과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과 학생만 수용하더라도 1학급당 고작 9일간의 교육시간만이 배정된 형편이다. 전문기술 습득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셈이다.

최근 `멀티미디어과' `상업디자인과' `사무자동화과'등 화려한 타이틀로 학과개편을 단행한 학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과 이름만 바뀌었지 교육내용은 1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경기 K상고의 한 교사는 "80∼90%의 교육과정은 예전처럼 부기 주산 영어 국어로 돼 있고 10∼20% 정도가 관련 내용일 뿐"이라며 "그나마 교사 재교육이나 교재 개발도 미흡해 허울뿐인 학과개편"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실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은 졸업 후 전공과 관계없이 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며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고 이것이 실고를 기피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전체 중학생 성적의 70∼80% 이하에 해당될 만큼 수학능력이 낮은 학생들만 입학하는 것도 실업고 교육의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 직능원 조사에 따르면 실고생 57%의 수학 성적이 전공교과를 이수할 최저 수준에도 미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다수의 학생들은 전문교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이유에 대해 `교과서가 어려워서'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는 실고의 교과목 수가 너무 많고 인문고생과 똑같은 수준의 교과서로 공부하는 현실이 한 몫 한다. 인문고 전환과 학과 개편, 대량 미달사태로 빚어진 과원교사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3년간의 미달현황<표2>에 따르면 최소한 매년 250∼300학급이 미달돼 500∼800명의 과원교사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경우도 현재 150∼200명의 과원교사가 발생한 것으로 예측되고 2001년에도 54학급이 감축돼 140여 명의 과원교사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과목별 교사 감원을 더하면 구조조정 대상 교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립고 교사의 신분불안은 자칫 정부 당국과의 대립과 충돌로 이어져 교단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당할 소지가 있다. 서울 Y여정보산업고 교감은 "정부가 장기적인 교원 수급대책 없이 과원교사에 대한 속성(2달) 부전공 연수만을 실시할 경우 수업 능력에 대한 학부모, 학생의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