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 大寒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황학저수지(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소재)를 보며 흐뭇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은 어상천 초등교(교장 김학선) 선암분교의 겨울운동회날.
날렵한 빙상복에 스케이트를 신고 일찍부터 빙판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운동장 대신 100미터 링크에서 선서를 하는 1학년 동규와 언니, 오빠들은 오늘 하루 운동화를 신지 않는다.
100·200·500미터 개인 경기부터 1000미터 계주까지 모든 경기가 은반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흘리게 1학년도 발놀림이 맨땅보다 자유로워 걱정은 없다. 아이들 대부분이 빙상부기 때문이다.
`하나∼둘, 하나∼둘' 은빛 스케이트 날을 뽐내며 힘차게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급한 마음에 서로 부딪치고 코너를 돌다 넘어져도 마냥 즐겁다.
"은반의 요정 같죠? 자동차처럼 빨리 달리면 얼마나 재밌다구요" 상으로 탄 공책을 자랑하는 수진(12)이의 얼굴이 환하다.
겨울운동회는 어상천면 잔칫날이기도 하다. `썰매타기 계주' `함지박 타고 뒤에서 밀기' `300미터 계주' 등 가족경기가 많아 모처럼 스케이트를 신은 어른들이 동심으로 돌아간다.
겨울운동회만큼 독특한 먹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떡과 잡채는 기본이다. 큼직한 가마솥에선 뼈다귀김칫국이 요란하게 끓고 연탄·장작불 위에서는 맘먹고 잡은 돼지가 맛좋게 구워진다. 유혹에 못 이긴 아이들은 경기 도중 둑 한편에 설치된 비닐 하우스에 숨어들어 서둘러 배를 채우다 쫓겨나기 일쑤다.
내내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른들의 얼굴이 붉어질 때쯤 운동회도 끝이 난다. 선암분교의 겨울운동회는 작년부터 시작됐다. 아이들 대부분이 빙상부여서 스케이트를 잘 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선암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는 `자신감'의 상징이다. 전교생 31명인 보잘 것 없는 농촌학교가 작년 충북 초등부 빙상경기에서 종합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아이들은 날 듯 기뻐했다. 도시학교 못지 않게 당당히 내세울 자랑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도 이런 아이들을 자신감을 계속 키워주기 위해 겨울운동회라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김길수 교사는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9시면 선암 아이들은 황학저수지로 모여든다. 겨우내 열리는 빙상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힘든 훈련임에도 빠짐 없이 참여하는 아이들이 조금은 극성스럽기까지 하다. 학부모들도 스케이트장에 식당 겸 휴게실용 비닐 하우스를 설치하고 당번을 정해 점심과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매일 링크를 쓸고 물을 뿌려 빙질을 관리하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도 씩씩한 아이들을 보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 유영예(42)씨는 "추운 날씨에도 움츠리지 않고 매일 스케이트를 타더니 이제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다"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