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들어 교육 당국은 ‘학업성적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던 학업성적 관련 비리와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한 경종의 의미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학업성적관리 문제로 비상이 걸려 있다. 특히 대학입시에서 내신 비중이 커지는 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예년에 없던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업성적관리 규정을 정비하고 교과별 협의를 통해 평가계획을 세우며, 학교 실정에 맞는 공정한 고사 진행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밖에도 출제의 난이도 문제, 수행평가 개선 방안, 서술형·논술형 문제 출제 여부 등 평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번 학업성적관리 종합대책의 핵심은 첫째, 학교생활기록부 평가결과 기록 방식을 변경하였다는 점이다. 1996년 이후 고등학교에서는 절대평가(성취도)와 상대평가(과목별 석차)를 병행 실시해왔다. 그 결과 일부 지역과 학교에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평가의 정당성을 훼손시켰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보완하기 위해 ‘성취도’(평어)를 ‘평균’, ‘표준편차’와 병기(倂記)하는 ‘원점수표기제’로 바꿔 ‘성적 부풀리기’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또 ‘과목별 석차’를 ‘과목별 석차 등급제(9등급)’로 전환하여 과열 석차 경쟁을 방지하고 동석차수를 줄인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방식도 등급 경계에 있는 동점자의 등급 산출 문제나 제7차 교육과정의 다양한 선택에 따라 소수 인원 학급에 대한 등급 부여 문제 등 논란의 여지가 많다. 또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5단계의 성취도 평가를 9단계로 세분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둘째, 서술형·논술형 평가 확대 시행에 대한 문제이다. 학기당 3단위 이상 되는 과목(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은 총 배점의 30% 이상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실시하고 연차적으로 확대·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원래 1학기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여건을 감안하여 경과 기간을 거쳐 2학기부터 전면 시행토록 되어 있다. 이것은 선택형 지필평가(객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들의 고등정신능력을 배양하며 나아가서는 교사들의 수업방법을 개선하자는 데에도 목적이 있다.
그러나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확대 시행하는 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사실 기존 수행평가 속에는 서술형·논술형 평가가 한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지침을 보면 기존 수행평가와는 별도로 배점을 정하여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 현장에서 서술형·논술형 평가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채점 결과를 수용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정서가 성숙되어 있지 않다.
유사정답이나 부분정답 등 엄격한 채점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학생의 생각이나 의견을 직접 서술하는 서술형·논술형 평가는 지필고사와 함께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교과별 특성에 맞게 기존 수행평가의 범위 안에서 연구과제나 보고서 등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로 과목별 평균 점수가 70~75점, 과목별 성취도 ‘수’의 비율을 15% 이내로 준수하도록 한 기준(예체능교과 제외) 문제이다. 이는 주로 2~3학년에 적용되는 기준이지만 시험에서 일정한 수치를 일률적으로 정해 놓고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정기고사 후 ‘평균’ ‘성취도 분포’ ‘표준편차’ 등 평가 결과를 교육청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성적관리가 부실한 학교는 행·재정적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학생에게 학습권이 있다면 교사에게는 평가권이 있다. 그 만큼 평가는 교사의 ‘권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수능시험 부정사태 이후 일부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교사의 성적관련 비리는 교육자의 엄숙한 사명을 망각한 행위였다. 그런 아픔을 딛고 올해는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문화가 정착되고 신뢰를 회복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