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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의 교육 철학은 큰언니의 등에서 출발했다

큰언니의 등에는 마른 날이 없었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한 분 더 있었다. 큰언니였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큰언니는 맏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었을 텐데, 큰언니의 등에는 늘 어린 동생 하나가 업혀 있었다.

 

큰언니 등에는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늘 누군가가 언니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언니는 그 시절 이야기를 이제는 동생들과 웃으며 나누는 추억의 소재로 꺼내곤 한다.

 

어느 여름날, 멱을 감으러 강가에 갔을 때였다. 포대기에 기대어 강가에 앉혀 두었던 어린 내가 어느새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고, 놀란 큰언니가 황급히 나를 건져냈다고 했다. 그 일은 내가 클 때까지 엄마에게는 비밀이었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친구들을 따라 동네를 뛰어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가볍게 뛰어갈 때 큰언니의 등에는 늘 동생의 무게가 있었다. 아이가 울면 달래야 했고, 잠이 들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을 업고 돌보아야 했던 큰언니. 자신의 어린 시절 한쪽을 동생들에게 내어주면서.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를 업고 있는 언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큰언니도 엄마가 되었다. 자기 아이 셋을 낳아 키웠다. 이제는 조금 편하게 살아도 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자식들을 키워놓았으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언니에게는 또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가 누워 지내게 되면서 큰언니의 또 다른 긴 돌봄이 시작되었다.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었다. 큰언니는 집에서 엄마를 돌보았다. 누워 있는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밥 한 끼 챙기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몸을 살피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부자리를 살피고, 밤에도 마음 한쪽을 늘 열어두어야 한다.

 

큰언니는 엄마가 누운 자리를 살피고 또 살폈다. 젖은 자리는 갈아드리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며 엄마가 언제나 마른자리에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해드렸다. 어린 시절에는 동생 때문에 자신의 등이 마를 날이 없었던 언니가, 세월이 흘러서는 엄마의 자리를 마르게 해드리며 살았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먹먹하다. 큰언니의 인생에는 늘 누군가가 있었다. 등에는 동생이 있었고, 품에는 자신의 아이들이 있었고, 마지막 긴 세월에는 엄마가 있었다. 정작 언니 자신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이제야 그 질문을 해본다.

 

사랑이라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한다. 하지만 큰언니의 사랑에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했고, 힘들다고 모두 내려놓을 수도 있었을 순간에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스물다섯 해라는 세월은 말로 하면 짧다. 하지만 하루하루로 헤아리면 얼마나 많은 아침과 밤이었을까. 봄이 스물다섯 번 지나고, 여름이 스물다섯 번 지나고, 가을과 겨울이 그렇게 스물다섯 번 지나갔다. 금년 1월에 95세로 큰언니의 돌봄 자리에서 세상을 달리하셨다.

 

‘우리 엄마가 태어나 할머니 밑에서 산 세월보다 할머니가 침상생활로 엄마랑 살아온 날이 더 많았어요.’ 엄마를 보내던 날 언니의 딸이 본인 엄마를 헤아렸다. 그랬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큰언니는 엄마 곁을 지켰다.

 

나는 나이가 이만큼 들어 큰언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큰언니'였고, 언니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고 세월을 살아보니 이제는 안다. 한 사람을 오래 돌본다는 것은 사랑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큰언니를 생각하면 한 가지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큰언니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날개가 있어서 천사가 아니다. 누군가 힘들 때 등을 내어주고, 누군가 누워 있을 때 마른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떼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켜준 사람이 천사라면, 내게는 큰언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 동생이었던 나는 언니의 등에 업혀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은 언니의 삶을 바라보며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 큰언니의 등에는 마른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 따뜻한 등 덕분에 우리 형제들의 어린 날은 따뜻했고,엄마의 마지막 긴 세월에는 마른자리가 있었다. 이제야 말한다. 언니, 참 고마웠어. 그리고 정말 많이 애썼어.

 

내 인생에 큰언니가 있었다는 것. 무엇을 결정짓고자 할 때 꺼내는 나침판이 있었다. 교직생활 중 기획을 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가 많았다. 행정보다 사람이 우선이었고 교육의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 그중에 학생이 우선이 되었고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 편에서 교육정책을 펼치던 대안교실 '디딤돌'(학교부적응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인가를 지표삼아 결정을 내던 나의 교육철학도 큰언니의 등에서 출발했으리라.

 

유전인자로 본 어머니의 여생을 잣대로 보면 나의 여생도 3등분 중 뒤쪽 부분이다. 나의 나머지 삶의 철학을 정돈하는 데는 미사여구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의 등을 내어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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