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초·중·고 학교 현장이 겪고 있는 진통과 수난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아프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교육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수많은 선생님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들려오는 현실의 소식들은 때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최근 한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중생 제자 20여 차례 성폭행-추행한 40대 교사 구속기소'라는 기사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분노를 자아내며 차마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에 앞서 근래 사회를 분노케 했던 초등학생 대상의 소속 학교 M씨라는 사람의 참혹한 살인 사건 역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은 단순한 사건·사고의 차원을 넘어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언론이 피의자를 부르는 ‘호칭’의 문제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여전히 ‘교사’라는 직함과 칭호를 붙여 보도하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가?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교육의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대다수 50만 교사에게, 이러한 호칭은 단지 거북함을 넘어 깊은 실망과 모욕감으로 다가온다. 직업적 윤리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마저 버린 피의자에게 ‘교사’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교직이라는 직업이 가진 숭고한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학교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에게 잔인한 것이다.
물론 언론 입장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사건의 사회적 파장을 위해 피의자의 신분이나 직업을 명시하는 것이 관행일 수 있다. 그 역시 사회적 경각심을 깨우기 위한 언론의 임무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학교 현장이 맞닥뜨린 특수한 상황과 교단이 겪고 있는 깊은 상처를 고려하고, 교육을 살려야 국가를 살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언론의 보다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절실하다.
지금의 학교는 악성 민원과 교권 추락이라는 유례없는 폭풍 속에서 언제 쓰러질지 모른 채 겨우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드라인에 대대적으로 자극적인 직함을 노출하는 보도 방식은, 자칫 대중으로 하여금 “요즘 교사들이 왜 저러는가?”라는 심각한 왜곡을 심어줄 수 있다. 단 한 명(또는 극소수)의 범죄자로 인해 헌신적인 대다수의 선량한 교사 전체가 부정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인가?
피의자에게 ‘교사 A씨’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보다, ‘범죄 피의자 A씨’ 혹은 ‘40대 A씨’로 표기하더라도 사건의 본질을 전달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주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범죄의 추악함은 있는 그대로 단죄하되, 그 범죄가 교직 사회 전체의 문제로 오인되지 않도록 호칭을 엄격히 구분하는 보도적 절제와 나아가 우리 교육에 대한 깊은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이는 결코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교육의 마지막 보루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읍소이자 대다수 국민의 교육에 대한 애정이라 할 것이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는 여전히 아이들의 작은 상처 하나에 같이 울어주고, 밤을 새워 수업을 준비하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는 참된 선생님들이 많다. 이들은 명예나 대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스승이라는 직분의 무거움을 알기에 오늘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 탈선과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교단이라는 숭고한 울타리에 잠시 섞여 들어왔던 ‘범죄자’일 뿐, 결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사’가 아니다.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자 여론을 형성하는 길잡이다. 거울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되 진실의 맥락을 곡해하지 않아야 하듯, 언론의 단어 하나, 헤드라인 한 줄에도 현장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일말의 측은지심이 담겨야 한다. 범죄자에겐 어떠한 직업적 후광이나 명예도 허용하지 않는 엄정한 보도 기준을 확립하면서, 동시에 묵묵히 제자 사랑을 실천하는 진짜 교사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오늘날 무너진 학교 현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묵묵히 제복 없는 영웅으로 교단에 서는 이 땅의 선생님들에게, 사회와 언론이 따뜻한 보호막이 되어주기를 간곡히 요청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