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와 대화할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아마도 상대가 이미 마음을 굳히고 온 경우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선생님이 제대로 보지 못하신 거예요"라며 단단히 벽을 세운 학부모 앞에서 교사는 난감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듣는 사람의 자세를 바꾸는 말의 기술입니다.
어떤 대화에서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입니다. 학부모가 하는 이야기를 일단 끊지 않고 끝까지 듣습니다. 이때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공감과 존중의 표현을 합니다. "어머님께서 정말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셨군요" 정도여도 충분합니다. 이 짧은 공감 표현이 상대에겐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는 학부모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지, "부모님 말씀이 맞습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해야 나중에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때 어려움이 없습니다.
상대의 의중 파악 먼저
경청 후에는 상대가 하려는 말의 핵심과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학부모가 길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님께서는 아이가 억울하게 오해받는 게 걱정이신 거죠?" 처럼 핵심을 짚어서 되물으면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학부모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었다고 느낍니다. 둘째, 교사는 핵심이 되는 요구가 수용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학부모가 "네, 맞아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라고 답한다면, 교사는 그 부분에 집중해서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처럼요.
여기서 행동심리학의 흥미로운 원리가 작동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쉽게 번복하지 못합니다. 이를 '일관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한번 입 밖으로 낸 말은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원리를 대화에 활용해보세요. 학부모가 "저도 사실 확인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게 되면, 이후에 교사가 객관적 사실을 제시할 때 학부모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자신이 먼저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학부모가 처음부터 끝까지 방어적인 자세를 유지하도록 내버려두면, 그 자세를 바꾸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이미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한 사람은 그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려 합니다.
방어에서 협력으로의 전환
그래서 대화 초반에 작은 동의 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전제를 먼저 확인합니다. "어머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저희 생각이 같죠?"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사람은 없습니다. "네, 그렇죠"라고 답하는 순간, 학부모는 교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대립하던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아이를 바라보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작은 동의가 이후 대화의 방향을 바꿔놓습니다.
이어서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겠네요"라고 말하면, 학부모도 자연스럽게 "네, 그래야죠"라고 동의하게 됩니다. 이제 학부모는 스스로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학부모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를 지키겠다"는 방어 자세였다면, 이제는 "함께 상황을 파악해보겠다"는 협력 자세로 바뀝니다. 교사가 억지로 설득한 것이 아니라, 학부모 스스로 자세를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자세가 바뀐 후에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미 스스로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고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이 방법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상대의 자세를 바꾸는 것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을 열도록 돕는 것입니다. 경청하고, 공감하고, 핵심을 파악하고, 작은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대신 스스로 우리 편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십시오.

김성효
전북 군산동초 교감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