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니까 말인데, 그 얘기 들었어?” 둘만 모여도 뒷담화(gossip)가 시작된다. 출근길에 만난 지하철 민폐 승객과 SNS에 새롭게 올라온 화제의 인물부터,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 잡은 부장님과 사사건건 마음에 안 드는 동료·후배까지 뒷담화 대상은 차고 넘친다. 매일매일 빠르게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뒷담화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뒷담화는 말 그대로 뒤에서,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 가십거리로 오고 가는 이야기들이다. 긍정적인 이야기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내용이다. 우리 주변엔 입만 열면 뒷담화인 사람도 있고, 그 자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즐기며, 어떤 사람은 대충 호응하면서 마지못해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한다.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그들은 뒷담화를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의 뒷담화 이론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뒷담화)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중략…)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중략…) 뒷담화 이론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무수히 많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얘기다. 이메일이든 신문칼럼이든 마찬가지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중략…)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 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 p.46~p.48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은 뒷담화를 통해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누가 위험한지 파악했다. 사회적 정보의 공유가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수다는 생존의 도구였다. 실제로 인간은 신체적으로 약한 존재였지만, 언어를 통해 협동하고 조직화하며,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공동체와 국가를 형성해 왔다. 결국 뒷담화는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소속 욕구와 ‘우리 편’ 만들기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지?”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우리는 위안을 느낀다. ‘우리’의 생각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관계는 단단해진다.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관계를 빠르게 접착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생존 욕구와 안전 욕구 다음으로 ‘소속 욕구’를 꼽았다. 뒷담화는 집단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접근방식이다. 뒷담화를 통해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결속력과 유대감이 강화된다. 특히 친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뒷담화가 친구 관계를 맺는 주요 전략이 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친구끼리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도 다반사다. 상담을 하다 보면 친구 사귀기에 서툰 아이들일수록 뒷담화로 관계를 시작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 아이들에게 뒷담화는 일종의 ‘사회적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뒷담화를 즐길까? 물론 아니다. 어떤 사람은 뒷담화는 귀소본능이 있어서 결국 돌고 돌아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올 위험을 알고 거리를 둔다. 반면, 뒷담화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왜 뒷담화를 멈추지 못하는 걸까? 뒷담화의 유혹에 더 쉽게 빠지는 사람이 있는 걸까?
어떤 사람이 뒷담화에 더 빠질까?
뒷담화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시기와 질투, 사회적 비교, 불안감, 관계에 대한 통제욕 등은 뒷담화를 부추기는 감정적 토양이다.
●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았겠지!’ _ 시기와 질투심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폄하하고, 부정하려는 심리를 우리는 시기·질투라고 한다. ‘시기·질투’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란 ‘타인이 지닌 것을 내가 갖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란 ‘내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타인이 가졌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투는 ‘나 자신’에게, 시기는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질투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시기는 내가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남을 깎아내리거나 스스로 못난 사람으로 몰아가게 된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보다 잘 되면 ‘왜 나는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좌절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가졌다는 시기심이 들 때, ‘운이 좋았겠지! 사실은 별것도 아니야’라며 상대방의 성과를 깎아내리며 심리적 균형을 맞추려 한다.
●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아’ _ 사회적 비교와 자기 확신
우리는 집단 내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알고 싶어한다.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사회적 비교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며 동기를 얻거나 좌절을 경험하는 상향 비교, 또 다른 하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위안을 얻거나 자신감을 키우는 하향 비교이다’라고 설명했다.
뒷담화는 이런 ‘사회적 비교 욕구’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승진한 ○○씨 소식에 ‘그거 라인 잘 타서, 아부를 잘 떨어서 된 것뿐이지, 사실 능력이야 별거 없잖아’라며 상대의 성공을 능력이 아닌 ‘아부’로 깎아내리면서, 좌절감에 대한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또한 ‘아부가 아니라 실력이었다면 ○○씨의 승진 어림없지. 난 라인을 타고, 아부나 하면서 승진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라는 자기확신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은 승진에서는 누락되었지만, ‘적어도 ○○보다 더 뒤처지지 않음’을 확인받음으로써 불안과 자존감을 안정시키고 싶어 한다. 자존감을 지키는 방어기제로 뒷담화를 택하는 것이다.
● ‘그럴 줄 알았어!’ _ 불안감
사람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예측할 수 없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불안감이 올라온다.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카더라’ 통신은 마음의 공포를 잠재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정보의 진위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알고 있다’라는 안도감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고, 뒷담화는 이 공백을 채워주는 임시방편이 된다.
‘이번 인사의 중점사항은 지난 프로젝트 내용이었다던데?’, ‘지난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못 낸 B팀은 해체될 수도 있다던데’ 등의 정보에 마음이 홀린다. ‘그럴 줄 알았어!’, ‘어째, 좀 돌아가는 상황이 싸하더라고’, ‘그래서 ○○씨가 그렇게 행동한 거구나’라며 유발 하라리가 말한 ‘사회적 정보의 공백을 차곡차곡 채운다.
불안감이 높을수록 타인의 말에 흔들린다. 불안감이 높을수록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뒷담화는 불안감을 등에 업고 집단 내에서 더욱 가속화된다.
● ‘그 얘기 들었어?’ _ 통제욕구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우리는 뒷담화를 하거나 당하며, 적자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후손이다. 즉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해 상대가 사기꾼인지, 친구인지 알아낸 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혹은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며 자신이 속한 조직의 가치와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인 셈이다. 그래서 뒷담화에 참여하는 우리는 입을 모아 특정 대상을 뒷담화하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를 얻는다.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뒷담화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면서 사회를 통제할 수 있었던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에겐 종종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나에게 정보를 얻으려면 잘 보여야 한다’라는 심리가 숨어 있다. 정보는 힘이다. 특히 뒷담화를 먼저 퍼뜨리는 사람은 관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그 얘기 들었어?”로 시작되는 수다는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일종의 전략이며, 집단 내 주도권을 쥐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 스트레스를 날려줄 행복 호르몬 4총사
뒷담화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지 나쁜 습관 때문만은 아니다. 뒷담화의 심리적 보상은 강력하다. 특히 직장 상사 혹은 평소 눈엣가시 같았던 동료에게 쌓였던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좀 살 것 같다. “말도 마, 나는 이런 적도 있었어.” 그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너도? 너도?” 결속력을 다지며, 마치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한참을 떠들다 보면 뇌에서는 도파민·옥시토신·세로토닌·엔도르핀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해소다.
뒷담화하는 동안 다량 분비되는 호르몬은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이다. 친밀감·편안함·안도감을 느끼도록 하여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뒷담화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든 결정적 이유이다. 하지만 옥시토신에겐 부작용이 있다. 편애와 편견이다. 즉 자기가 속한 집단에는 친밀감이 높아지지만, 자기가 싫어하는 집단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해지며, 높아진 친밀감은 오히려 대인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상대방이 더 이상 나의 뒷담화를 듣고 싶어 하지 않거나, 관심이 줄어들었을 때 심리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뒷담화의 귀소본능,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뒷담화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라지만, 그렇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뒷담화로 맺어진 관계는 위험하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뒷담화는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소속을 위한 도구였던 수다가, 나를 고립시키는 칼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속감을 원한다. 하지만 그 욕구를 해로운 방식으로 충족할 필요는 없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고, 상대방이 성취과정에서 노력한 것에 손뼉 쳐주며, 상대방의 성공을 쿨하게 인정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화한 인간,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일 것이다.
진심 어린 공감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굳이 뒷담화라는 우회로를 택할 이유는 없다. 진화한 인간은 단지 말을 많이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의 힘’을 바르게 쓰는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