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교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학생이 떠난 뒤에도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존재가 바로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교과, 교사, 평가 방식에 집중할 뿐, 정작 그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를 함께 성장시키는 조용한 교육자다.
공간도 하나의 교육자로 인식
환경심리학과 교육을 위한 공간 연구는 공간이 학습자의 인지, 정서,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협업형 테이블로 교실 배치를 바꾼 미국의 한 사례에서는 학생 간 상호작용이 37% 증가했으며,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조명과 소음 환경을 조정한 후 수업 집중도가 24% 향상됐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효과를 본 경우가 나타났다. 복도 폭을 넓힌 학교는 학생 간 마찰이 줄었고, 개방형 교무실을 도입한 학교는 교사 간 협업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공간은 교육의 물리적 조건을 넘어서 문화와 철학을 구현하는 구조로 작용한다.
대전광역시교육청은 학교 공간을 하나의 교육자로 인식하고, 교육과정과 철학이 공간 속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자율성과 시민성을 기르는 공간, 교사 간 협업이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조성된 학생자치회실은 민주적 참여와 의사결정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동아리실은 자율 탐구와 프로젝트 학습을 지원하는 창의적 실습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복합 활동이 가능한 예드림홀은 교과 간 경계를 넘나들며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역량을 확장하는 장이 되고 있다.
실제 사례에서도 공간 변화는 곧 교육 변화로 이어졌다. 기존 도서관을 협업 중심의 활동 공간으로 전환하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하며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만으로 학생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물리적 조건에 문화·철학 구현
공간은 교육행정과도 밀접하다. 수업을 위한 스마트보드 설치에 전기 배선이 미비하면 수업은 시작조차 어려워지고, 채광이 부족한 복도는 갈등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
교육은 철학이지만, 철학은 구조가 있어야 실현된다. 공간은 교육정책이 구체화되는 물리적 도면이며,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본 조건이다. 우리는 교육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간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교사와 교재를 넘어, 교육을 가장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드는 것은 공간이다. 공간이 교육의 실천자이자 철학의 구조화된 언어가 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교육다운 학교’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