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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칼럼] 병뚜껑과 마음의 문

가르침의 출발, 마음의 문 열기  
교수법 강연 중에 한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열심히 가르쳤는데 중간고사에서 절반 가까이가 빵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유로 답을 대신했다. “물 한 통을 물병에 부었는데, 붓고 보니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뭘 잘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병뚜껑이 닫혀 있었을 수도, 물을 붓는 위치가 잘못되었을 수도, 혹은 병이 깨져 있어서 물이 샜을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병뚜껑을 열어야 물이 들어간다. 가르침이 배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학생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유사한 우화가 있다. 한 나무꾼이 무딘 도끼로 큰 나무를 자르려 애쓰는 우화가 있다. 지나던 행인이 도끼날을 갈아보라고 권했지만, 나무꾼은 곧 날이 저무는데 도끼날 갈 시간이 어디 있냐며 쏘아붙였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쓰지 못한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수업 중에 다룰 내용이 너무 많다고 학생들과 눈 맞추며 이름 부르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것은 병뚜껑 여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과 같다. 


병뚜껑과 달리 마음의 문은 억지로 열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라고 했다. 학생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서 배우고자 할 때에만 가르침은 배움으로 이어진다. 첫 수업에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마음 문을 열고 나오도록 돕기 위함이다.

 

매 수업 시작점에서 수업주제에 적합한 동기유발 활동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함이다. 첫 수업에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하는 이유, 수업마다 동기유발 활동을 실시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학습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생성 AI가 등장함에 따라 수업 특성에 맞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이나 수업 주제에 적합한 동기유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졌다. 

 

학생들의 바람
다음으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학생들의 바람이다. 병 입구에 정조준하여 물을 부어야 하듯이,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꼭 배워야 할 것,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할 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생 각자의 내적동기를 이해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듀이(John Dewey)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강연에서 청중의 기대와 무관하게 준비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것은 병 입구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곳에 물을 쏟는 것과 같다. 청중의 배경 특성, 강연 요청자의 기대를 사전에 파악할 뿐만 아니라 연수생의 반응을 보아가며 강연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한 내용이더라도 불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히 생략하고, 반응에 맞춰 강의 내용 순서를 바꾸며, 필요한 내용은 즉각 추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즉문즉설형의 수업을 하면 병 입구에 정조준하여 물을 부을 때처럼 물병을 쉽게 채울 수 있다. 이는 학습자 중심 수업설계, 비구조화된 과제, 개인화된 경험 제공 등을 강조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 이론에 부합한다. 


깨어진 병과 학습 토대
정조준해서 병에 물을 붓는 데도 차지 않는다면, 깨진 곳은 없는지 찾아 때워야 한다. 학습이 이뤄지려면 학습의 기본 토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학습토대 형성에 대한 예로는 아들러의 ‘삶의 틀’과 원동연의 ‘수용성 틀’을 들 수 있다. 


아들러는 삶의 틀(life style)을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한다. 첫째는 자기개념, 즉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상으로 세상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 이상이다. 내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어떤 모습이 그것이다. 


학생 교육과 ‘삶의 틀’ 관계는 곡식 기르기와 논밭 지력(地力)의 관계와 같다. 곡식을 심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밭의 지력을 튼실하게 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골라 심고 최고의 농법으로 기른다고 하더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농부들은 곡식을 심기 전에 논밭에 퇴비를 주고, 쟁기질하는 등의 노력을 먼저 기울인다.

 

학생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맞춤형 교수법을 동원해 학생들을 가르치더라도 삶의 틀이 깨져 있는 학생들에게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맞춤형교육의 기대효과로 거론되는 사회·정서적 발달은 학습 기본 토대 형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위한 맞춤형교육을 설계하고 추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정서적 발달이다. 


아들러가 삶의 틀을 강조하는 것처럼 원동연은 다섯 가지 수용성 요소(틀)를 강조한다. 그가 밝힌 인간의 능력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수용성 요소는 지력·심력·체력·자기관리능력·인간관계능력이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의 본질적 요소들을 골고루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수용성 틀’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카이스트, 2015: 210-211). 수용성 틀이란 학습과 성장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틀(요소)을 의미한다.

 

뇌과학으로 본 마음의 문 열기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생존정보 → 감정정보 → 학습정보 순서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한다(이찬승, 2019). 수면·식욕 등의 생존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 불안·걱정 등이 뇌를 지배하는 상태에서는 학습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교사는 학습자가 학습이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여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생존정보와 부정적인 감정정보가 학습정보처리를 방해하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는 학생 마음 문의 빗장을 풀게 하는 것과 같다. 


다음 단계는 제공하는 학습정보에 감정이라는 당의정을 입히는 것이다. 교사의 경험, 학습주제와 관련된 최근의 사건,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예시 등으로 버무려진 학습정보에 학생들은 더 잘 반응한다. 이러한 노력은 학생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학습의 장으로 나오게 한다. 마지막 단계는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계속 열고 있게 하는 것이다. 10~15분 단위로 설명형, 학생 참여형, 학생 주도형 등으로 수업 모드를 전환하고, 마무리 단계에서 배운 내용을 꺼내는 인출작업 등이 그 예이다. 

 

최고의 스승은 영원한 학생이다. 오래 가르치면 더 배울 필요가 없는 최고의 교수가 될 줄 알았더니 가르칠수록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난다.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면 하산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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