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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위한 마음 챙김 철학] 쇼펜하우어 염세주의의 지혜

 

“인간관계는 고슴도치의 사랑과 같다”
고슴도치는 서로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입는다. 상대의 가시에 찔리는 탓이다. 다치지 않으려 상대방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면 이번에는 외로워진다. 그래서 또 다른 고슴도치에게 다가가고, 아픔을 겪기를 거듭한다.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어떨까? 별다르지 않다. 사이가 가까워지면 상대 때문에 힘들어지고, 멀어지면 쓸쓸해진다. 이렇게 사람들은 상처와 외로움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고통받는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r, 1788~1860)의 말이다. 


학교에서의 사람 사이도 비슷하다. 7월은 1학기 끝물에 접어드는 시기다. 첫 만남의 서걱거리고 어색한 분위기는 진즉 사라지고 없다. 아이들끼리도, 선생님과 학생 사이도, 선생님들끼리도 살갑고 친근한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가까워진 만큼 사이가 삐걱대는 상황도 점점 많아질 테다. 선 넘는 학생, 경우 없는 동료 탓에 마음고생하는 때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적절히 떨어져 있는 관계가 건강하다는 의미다. 그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비결로 ‘예의’를 강조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를 갖추어야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적겠다. 안타깝게도, 교사는 좋은 관계에 필요한 적당한 선을 계속 넘나드는 직업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싫은 말도 해야 하는 법이다. 이를 간섭으로 느끼며 맞서는 아이들도 적잖다.

 

그때마다 우리는 감정노동에 휩싸인다. 안 좋은 말을 하고,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일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동료 선생님과의 관계도 그렇다. 일이 존중과 배려만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 각자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 불편한 소리가 오가고 마음이 회색빛으로 물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사이는 고슴도치끼리의 사랑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픔을 겪지 않으면서도 정겹게 학교생활을 꾸릴 방법은 없을까? 이 물음에 쇼펜하우어는 돌직구를 날릴 듯싶다. “희망을 버리세요. 우리의 삶은 고통일 뿐이니까요.” 절망을 느껴야 마땅하겠지만, 오히려 그의 말은 선생님들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간다. 왜 그럴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희망을 버려라”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라고 불린다. 그는 희망을 품지 말라고 대놓고 주장한다. 세상은 아픔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여기서 벗어날 길이 없는 탓이다. 상대방을 더 좋고 낫게 바꾸겠다고? 절대 성공하지 못할 노력이다. 사람이 어디 바뀌던가. 인간 개조를 외치는 그대는 자신의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가. 자기도 자신을 못 바꾸는 주제에, 어떻게 자기가 남들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쇼펜하우어는 성격은 타고난다고 잘라 말한다. 이를 그는 ‘예지(叡智)적 성격’이라 부른다. 이는 경험 너머에 있는 마음의 본바탕을 일컫는다. 현대 과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DNA에 새겨진 성품’이라고 이해해도 될 듯싶다. 예컨대 소심한 마음이나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은 타고난다. 이를 억지로 고치려 해 봤자 상처받는 경험만 늘어날 터다. 


우리는 나와 상대방의 본래 성격을 알지 못한다. 여러 사건과 경험을 겪으며 알아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쇼펜하우어는 ‘경험적 성격’이라 한다. 7월쯤 되면, 서서히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경험적 성격이 쌓여간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라면 학교에서 부딪히는 여러 갈등선 앞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충고할 듯싶다. 어차피 사람은 안 바뀐다.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조금씩 ‘획득 성격’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시행착오와 체험을 통해 깨달은 한 사람의 본바탕이다.


나와 상대의 획득 성격을 제대로 헤아렸다면 관계는 부드러워진다. 예컨대 소심한 아이에게 활발하게 나서라고 다그치지 않으며, 밝고 활기찬 아이에게 과묵해지라고 내리누르지 않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고 있다. 그러니 자신들만의 결을 잘 읽어서 성품대로 지내도록 하라. 어찌 보면 상식적인 소리다. 

 

주변 사람은 고통의 동반자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은 보다 깊숙이 들어간다.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그의 외침에는 숱한 위로가 담겨 있다. 우리 삶은 ‘맹목적인 의지’가 지배한다. 의지는 헛헛한 욕망을 채우려 발버둥 친다.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의 순간은 짧고 결핍과 불행이 일상을 짓누른다.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도 생활이 신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지루함과 헛헛함이 찾아드는 탓이다. 


쇼펜하우어는 늘 이렇게 세상을 어둡게 바라본다. 그렇기에 되레 그의 철학은 일상을 견딜만하게 만들어 준다. 세상은 밝고 행복한 곳이라고, 내 학교생활도 장밋빛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믿을 때, 일상은 오히려 더 괴로워진다. 높은 기대치 탓에 소소한 답답함과 괴로움도 버겁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반면 세상은 어둡고 슬픈 곳이며, 내 학교생활에도 볕 들 날이 없다고 여길 때는 어떤가? 낮은 기대치 덕분에 적은 즐거움과 작은 성과도 큰 기쁨으로 다가오곤 한다. 일상을 대하는 마음의 각오 역시 훨씬 단단해질 테다. 


나아가, 그의 주장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 상태에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우리는 고통에 주의를 기울일 뿐, 행복은 당연하게 넘겨버리지 않던가. 예를 들어 맛있는 급식과 쾌적한 에어컨에 우리는 좀처럼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 점심이 나오지 않을 때, 고장 후 수리했을 때만 잠깐 그런 마음을 품을 뿐이다.

 

반면 아이가 안 가져온 결석계,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몇몇 아이의 표정은 온종일 정신을 뒤흔든다. 우리는 은연중에 일상은 어떤 고민도, 문제도 없이 해맑아야 한다고 믿기에, 이런 ‘소소한(!)’ 사안들 탓에 괴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상태에 있는 셈이다. 큰 고통에 휘둘리고 있다면 이런 자잘한 문제에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리라. 그러니 충분히 행복한 우리는 눈높이를 낮추어 마음을 내려놓고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주변 사람은 ‘고통의 동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꼴사납고 이해 못 할 학생이나 동료 탓에 힘든가? 인생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고통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방도 나름의 아픔과 힘듦을 겪느라 삐딱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도 나만큼 힘들고 괴로운 상태에 있다. 그러니 연민의 마음을 품고 상대를 바라보라.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면 괴롭지 않다”


물론 이렇게 상대를 대하기란 도사가 되어야 가능할 듯싶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시선을 또 한 번 바꾸어 준다. ‘관조(觀照)하는 눈으로 보라. 그러면 괴롭지 않다.’ 사는 곳 근처에서 폭발하는 화산은 엄청난 재앙이다. 그러나 내 삶과 관련 없을 때는 대자연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일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떨어져서 세상을 대하라고 가르친다. 인생은 고통이다. 고통은 욕망 탓에 생긴다. 비극은 아프지만 아름답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물러서,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인 듯 바라보라. 고통을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더 높은 수준으로 거듭나게 될 터다.
 
“파테이 마토스, 고통에서 배워라”
쇼펜하우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도, 여전히 학교에서의 문제와 마음고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같이 거듭되는 감정노동은 여전히 힘들다. 그래도 쇼펜하우어는 여전히 위안을 준다. 인생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고통은 우리를 더 고귀하고 수준 높은 깨달음으로 이끈다.

 

멀리, 빠르게 화살을 날리기 위해서는 활대를 힘주어 당겨야 한다. 고통으로 가득한 일상도 그렇다. 깨달음과 성장은 고통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경받는 원로 선생님의 부드럽고 선한 눈빛을 떠올려 보라. 그 분에게서 뿜어 나오는 담담한 지혜에는 긴 세월 동안 겪은 분노와 좌절 그리고 슬픔이 담겨 있다.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는 ‘고통을 통해 배우다’라는 뜻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마음 내려놓음’도 그렇다. 인생은 고통이다. 아픔과 어려움은 인생이 마땅히 치러야 할 숙제와도 같다. 깨달음과 편안함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열린다. 지혜는 겪어야 할 것을 다 겪고, 느껴야 할 것을 다 겪으며 영근다.

 

7월은 학년도의 절반을 마무리할 때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격한 교직생활에서 한 발 떨어져 숨을 고르게 하는 ‘작전 타임’과도 같다.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며 학년도의 나머지를 성장으로 가득 채우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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