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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1] 극한직업, 초등교사로 산다는 것

 

#선생님, 선생님~ #1학년 담임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한 시간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모른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1학년 아이들과의 수업시간은 참 엉뚱한 일 천지이다. 그림 하나를 색칠해보자는데 질문은 학급 아이들의 수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선생님 색연필로 칠해도 되나요?” 
물론 나는 친절한 교사라 되뇌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이미 여러 차례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네,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색칠하면 됩니다.” 
“선생님 사인펜으로 해도 되나요?” “됩니다.” 
“선생님, 저 사인펜 뚜껑 없어졌어요.” “응, 어디 있을까? 다시 한번 책상 주변을 찾아보자.”
“선생님, 지윤이는 안 하고 있어요.” “지윤아, 부지런히 마무리하자.” 
“선생님, 승윤이가 제 빨강 색연필 빌려 갔는데 안 줘요.” “승윤아, 친구 것 썼으면 얼른 돌려줘야지.”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 처음 1학년 담임교사를 할 때의 당혹감이란 이런 것일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일 매시간 일어나지만, 이제는 별일 아닌 듯 자연스럽게 대꾸하는 나를 보며 헛웃음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늘 평화롭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종종 아이들이 다치기도 하고, 큰 싸움으로 번지는가 하면 이 문제로 학부모상담에 민원까지 이어질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한숨 돌리고 있으니 평소 시끌벅적했던 주인(가명)이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주인아,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그게 화장실에 너무 가고 싶어서요.” “선생님께 말하고 가면 되지?” “혼자 못가요.” “응?” 그동안 입학하고 화장실을 수백 번은 다녀왔을 것 같은데 못 간다니 이해가 안 됐지만, 사정이 있겠다 싶어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주인이는 내게 귓속말로 사실은 똥 마려운데 혼자서 못 닦는다고 한다. 아무리 아이(딸아이)를 키워 본 아줌마 선생님이지만 남자화장실에 가서 남자아이의 뒤처리를 해 줄 자신이 없어 내적갈등이 일어났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선생, 너는 학생이 아니겠는가? “주인아, 선생님이 닦아줄까?” “아니요, 창피해요.” 이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좋아. 그럼, 선생님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을게. 일단 똥을 다 누고 나면 말해. 그럼 선생님이 어떻게 닦는지 자세히 설명해줄게.”

 
아이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길어지고 슬슬 남아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걱정된다. 떠들고 뛰는 아이는 없을까? 싸우거나 다친 아이는 없을까? 이쯤 되니 불안감이 몰려와 어쩔 수 없다. “주인아, 아직 안 끝났어?” “끄응~ 네에.” “그럼, 선생님 교실에 다녀올 테니 맘 편히 볼일 보고 있어.” 이렇게 발바닥에 땀내며 몇 번을 오갔더니 이제야 끝났다고 한다.

 

그 후로 살짝 문을 열고 휴지를 건네주며 참으로 원초적이면서도 장황한 설명과 휴지 반통의 희생을 끝으로 주인이와의 화장실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등은 땀으로 다 젖었지만, 교실과 화장실을 오가는 사이 반 아이들이 안 싸우고 안 다쳤음에 감사하며 한 시간을 마무리했다. 

 

1학년 담임교사를 할 때 동료교사들끼리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것 같다’라고 우스갯소리를 종종 한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나를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 때문이라고. ‘우리 선생님이 제일 예쁘다, 제일 좋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랑 고백 때문이라고.  
아무튼 ‘오늘도 무사히’를 속으로 되뇌며 퇴근길에 오른다. 

 

#With 코로나 #2020년의 우리 학교는 
2020년 2월, 학년말 방학.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학교는 매우 분주했다. 학교 교육과정은 물론 학년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를 계획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은 새로운 전염병으로 시끄러웠지만, 설마 학교가 멈추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학교는 멈췄다. 적어도 밖에서 보는 모습은 그랬다. 그리고 갈 곳을 잃은 아이들과 대책 없이 아이들을 가정에 두어야 했던 부모들은 어쩌겠냐 싶으면서도 멈춰 선 학교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정말 정신없었다. 시시각각 변경되는 방역지침과 교육청 공문을 근거로, 그에 맞는 교육활동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아이들이 없는 학교와 빈 교실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교사들은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활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학교 간 정보를 공유했다.

 
내가 있는 학교는 20학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고, 조손·다문화·한부모가정 등이 많은 학교였다. 일단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확인해보자는 뜻으로 아침마다 모든 가정에 전화를 걸어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EBS 방송과 e학습터라는 플랫폼을 활용한 원격수업을 병행했다.

 

올해 맡은 2학년은 EBS 방송을 주로 활용하기에 미리 방송을 시청하며 교육내용에 맞는 학습자료를 제작하고, 차시별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학생 개개인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준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다는 애틋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담아 선물꾸러미도 만들고, 학교에서 준비한 작은 화분도 함께 선물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무턱대고 학교로 나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학년별로 방문시간을 정해 운동장에서 잠깐 인사를 나누며, 준비한 학습꾸러미와 선물을 나누어줬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아이들을 만나니 이제야 봄기운이 몰려오는 듯했고 학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조금은 들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을 마주하지 않는 교육은 수업으로써 너무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을 때, 실시간 원격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사실 두려웠다.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실제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건 어불성설이니 말이다. 실시간 원격수업을 처음 경험한 교사들은 서로 열심히 배워 나갔다. 몇 되지 않는 학년 선생님들과 서로 호스트가 되어 회의도 진행해보고, 수업 시연도 하면서 수업에 활용할 만한 여러 기능도 함께 익혀보았다. 학교에서는 태블릿PC가 없는 가정에 기기를 지원했고, 가정에서 돌봄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긴급돌봄도 마련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실시간 원격수업이 시작된 날,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20여 명의 학생 중 절반 정도밖에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가정통신문으로, 전화로만 안내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많은 가정에서는 태블릿PC를 다루는 것과 줌(zoom) 설치부터 입장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 순간 접속이 많아진 시스템은 불안정하여 수시로 수업에서 강제 퇴장되어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어느 때는 수업 중 교사만 따로 튕겨 나와 아이들이 망연자실, 화면에서 없어진 선생님을 찾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줌 수업을 열어놓고 아직 참여하지 못하는 각 가정에 전화해 문제를 해결해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오후에 따로 학교 방문을 권하곤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머쓱해하며 할머니 또는 엄마의 손을 잡고 교실을 방문하여 따로 배워가곤 했다.

 

원격수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자 이제 다시 대면수업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막상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온다니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챙길 게 너무 많았다. 학습활동과 자료도 모두 개별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고, 아이들의 등교 동선부터 교실에서의 자리 배치, 화장실 이용 동선, 급식실 이용까지 세세한 준비로 학교는 또 분주했다. 

 

코로나와 함께 한 3년은 참 버라이어티했다. 안 해본 형태의 수업이 없는 것 같다. 콘텐츠를 제작·활용한 수업으로, 전체 대상 실시간 원격수업으로, 일부는 대면수업, 나머지는 실시간 수업으로, 전체 대면수업으로, 때로는 학교에 못 오는 일부 학생들을 위해 학교 수업현장을 실시간 송출하는 방식까지…. 처음 해보는 업무가 너무나 많았다.

 

그사이 생활습관이 무너진 아이들을 잠에서 깨우는 일도 담임교사의 역할이 되기도 했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체온 체크부터 매시간 수업 후 소독, 복잡해진 출결 서류까지(실제 반별로 책 한 권이 나올 만큼의 서류가 많았다) 말이다.

 

매 순간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혼자 힘이 아닌 함께 하는 멋진 동료교사들이 있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장기화한 코로나로 인해 학습결손·학교부적응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에도 학교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고, 더 치열하게 교육하고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 #잘못과 용서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이름부터 부담스러운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맡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나처럼 대부분 학급 담임도 함께 맡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급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는데 교실 전화가 울리고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된다.

 

피해학생이 교실에서 친구에게 책으로 머리를 맞아 속상하고 두려워 학교 가기 싫어한다며, 수업 후 피해학생의 부모가 학교로 방문한다고 한다. 일단은 수업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알았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종일 마음이 불편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잔뜩 무거운 마음을 안고 교무실로 내려가니, 아이까지 데리고 온 학부모는 이미 온몸으로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 이번 사안 어렵겠는데.’ 마음의 소리를 뒤로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우리 아이가 지금 어떤지 아느냐, 아이가 얼마나 학교가 무서우면 학교에 가기 싫어하냐”며 소리를 지른다.

 

“얼마나 속상하셨냐? 아이가 다친 데는 없냐? 제가 문제해결을 위해 도와드리겠다” 위로하며 잠시만 진정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내게 당장 상대방 부모와 아이를 데려다 무릎 꿇고 빌게 하란다. “일단 어머니 이야기 들어보고 제가 상대 학생 부모님과 통화 후 사실관계 확인부터 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의 어머니는 내게 삿대질하며 교무실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른다.

 

“지금 가해학생 편드는 거냐, 그럼 가해학생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인 거냐, 당장 CCTV를 봐야겠으니 내놓아라, 가해학생 학부모의 전화번호를 내놓아라, 경찰에 신고하겠다” 등 자기 요구만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보다 못한 교무부장님이 잠시 다른 공간으로 학부모님을 분리했다. 폭풍처럼 몰려온 일에 나는 정신을 가다듬기도 힘들다. 이쯤 되면 멘탈은 반쯤 털리고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실수해서 꼬투리가 잡혀 민원이 들어오거나 소송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스스로 매뉴얼을 보고 또 보며 자기 검열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억울한 일도, 속상한 일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머무르는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때마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대응한다면 아이는 바로 클 수 있고, 교사는 바로 교육할 수 있을까? 사실 학부모 앞에서 죄인이라도 된 양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들의 분노에 찬 감정을 받아내고 있는 내 마음도 이미 병들고 있었다.

 

또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도 이미 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이게 끝이면 좋으련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사안 접수 보고서를 교육지원청으로 보내고, 해당 학생과 학부모, 관련 학생들의 진술서를 받는다. 학생의 수업권은 소중하기에 수업 후 틈틈이 아이들의 일정을 조율해 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하는 유명무실한(?) 전담기구회의를 한다. 이 사안을 학교장 자체 종결로 마무리할 건지, 교육청 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할 건지를 정하는 것인데 사실 아무 의미 없다. 학교는 피해학생의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안 조사보고서와 엄청난 양의 각종 서류를 갖춰 교육지원청에 제출하고 나면 교육청의 조치를 마냥 기다린다.

 

경험상 교육청에 사안이 산적되어 보통은 한 달 후나 되어야 조치 결과가 나온다. 그동안 학교는 무엇을 할까? 해당 학생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사실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아직 가해가 확실한지, 조치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담임교사나 책임교사가 개입했다가는 누군가의 편을 들었다는 오해를 사거나 학부모들한테 민원을 받는 일이 수두룩하고, 심하면 소송까지 휘말리기 때문이다. 

 

한 달여가 지나 조치 결과 ‘서면사과’가 나왔다. 결국 가해학생은 사과편지를 써서 피해학생에게 전해주며 끝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사안이라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보통 두세 달은 계속 이 사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종종 심각한 사안이 있어 학급교체나 전학 등의 조치가 있기도하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지극히 드문 경우다. 결과적으로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교폭력 절차를 밟느라 아이들은 교육적 조치를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서로 불편한 관계로 몇 달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고 있는 중에도 나는 또 다른 아이들의 담임교사로 수업을 하고, 학급에 발생한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불행하게도 또 다른 사안이 발생해서 좀 전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한다. 아니 누구나 그렇다. 실수와 잘못을 경험하며 다치지 않고 안전한 울타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학교이다. 아이의 실수를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혹은 조금의 생채기도 나지 않길 바라는 어른들의 무지함과 왜곡된 우리 사회가 아이를 겁쟁이로 만들고, 올바로 성장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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