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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타임캡슐, 그 3000년의 신비!

- 서산시 둔당리 지석묘, 학생 현장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 -



공주의 석장리,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와 함께 선사유적지로 국사책 맨 앞에 그 이름이 등장하는 ‘서산 둔당리 지석묘(고인돌)’는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산 25-5번지 청구제네스 아파트 106동 후문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널찍한 평야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둔당리 지석묘는 1986년 11월 16일에 충청남도 지방지정문화재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석장리와 전곡리가 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반면, 둔당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흔히 고인돌이라 불린다. 역사학적으로는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여기에 대해선 일부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있음)

우리나라 고인돌은 네 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식탁 모양의 북방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다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이 있는데, 우리 서산의 것은 바로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한다.


직사각형의 덮개돌은 길이 350cm, 폭 290cm, 두께 60~90cm 정도의 화강암이며 가장자리에 정으로 다듬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덮개돌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늘어놓았으며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굄돌은 현재 기울어져 있다. 북쪽과 남쪽의 것이 길고 동쪽과 서쪽의 것은 짧다.

이곳 둔당리 야산에는 원래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도 일제강점기 때 도굴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정부에서 다시 정밀하게 발굴한 결과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칼, 세모꼴 모양의 돌화살촉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인근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마당바위, 굄돌, 또는 메주바위, 거북바위라고도 부른다.(고인돌은 길이 3.8m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짐)


고인돌 주변에 있는 청구아파트의 주민 김모 씨(남·43)는 “처음엔 국사책에도 나오는 둔당리 유적지가 이곳인 줄 몰랐다.”며 “원래는 2기가 있었는데 1기가 없어졌다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부부의 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말하며 신기해했다.

고인돌은 흔히 타임캡슐이라 불린다. 고인돌을 통해 당시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정신세계 및 묘제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문화유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작지 개간과 택지 조성 등으로 전체적인 원래 유적의 환경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역사학적으로 매우 비중이 높은 유적으로 판단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고인돌 옆에서 땅콩 밭을 매던 할머니 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 고인돌 위에 고추나 나물을 말리면 얼마나 잘 마르고 맛있는지 몰라.”


그랬다. 고인돌은 단순한 인류의 흔적이 아니라 할머니의 말씀처럼 이렇듯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서로 어울려 만나는 공동체의 장이자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충청남도 지방지정문화재 기념물 제63호(1986년 11월 16일 지정)
󰋯위치: 충남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산 25-5(서산 청구제네스 아파트 106동 후문 옆)
󰋯시대: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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