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천 년 된 은행나무, 그 신비를 찾아서


▲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천년된 은행나무(위쪽)와 표지석

충남 서산시 ‘남원’이란 마을에 수령이 무려 1000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 남원은 행정구역상 서산시 석남동에 속하는 마을이며 예전 사람들은 ‘남안’이라 부르기도 했다. 남원이란 옛날 원(院)제도에서 연유된 명칭으로 고려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었던 관원(官員)들을 위한 국영여관이 있던 곳을 말한다. 실제로 남원마을은 이 지방의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이러한 남원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쯤 된 것으로 나무 높이는 30미터를 훨씬 넘으며 그 둘레만도 약 8미터나 되는 거목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서산 정씨(瑞山 鄭氏)의 시조인 원외랑 정신보가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에 귀화하여 이곳에 살 때 심은 것이라 한다. 서산의 위인으로 잘 알려진 양렬공 정인경 장군은 그의 아들인데 이곳에서 각종 무술을 익혀 고종 말엽에 침입한 몽고군을 크게 물리치는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높이 사서 고려 명종 때 민란으로 인해 폐군시켰던 부성현(富城懸)을 서산군(瑞山郡)으로 개칭하여 복군시켜주기도 했다.

지금도 은행나무 밑 너럭바위에는 말발굽자국이 선명한데, 정인경 장군이 말을 타고 훈련하던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예부터 이 바위나 은행나무를 훼손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마을사람들은 매년 칠월칠석에 경건하게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과 각자의 소원성취를 빌고 있다.

한편 남원마을 뒷산에는 원외랑 정신보가 산에 올라 멀리 고국인 송나라를 바라보며 그리워했다는 망운대(望雲臺)가 토성으로 축조되어 있고 건너편에는 그의 외손이며 호산록(湖山錄-서산읍지)의 저자인 한여현의 조부 한영희의 묘소도 있다.

남원마을 앞에는 ‘남안들’이라 불리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겨울이 되면 북쪽에서 수백 마리의 두루미가 무리를 이루어 날아왔으므로 ‘학도래지’라는 천연기념물 지정 표지석이 세워져있었으나 지금은 학이 찾아오지 않아 표석마저 없어져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쓸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 천년수 은행나무 옆에는 채 1년도 살지 못하는 한해살이 풀인 벌개미취가 한여름을 재촉하는 바람에 가녀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찾아가는 방법
서산세무서 건물 앞마당에서 바라보면 바로 맞은쪽으로 천년된 은행나무가 웅장하게 서 있다. <리포터 김동수>
배너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