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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함양으로 떠난 '시울림' 문학기행

여행이 취미생활이 된지 오래지만 특별한 여행은 따로 있다. 지난 10월 30일, 매주 청주시립도서관에서 시구(詩句)에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시울림 회원 14명이 증재록 선생님을 모시고 예로부터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던 선비의 고장 함양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함양은 선비마을답게 군내에 정자와 누각 100여 채가 보존되고 있어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중 화림동계곡은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유명하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서상면과 서하면으로 흘러내려 남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화림동계곡이다. 이곳은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덕유산의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다. 화림동(花林洞)이라는 이름 그대로 화사한 꽃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기암괴석과 넓은 암반, 반석위로 흐르는 맑은 물과 아기자기한 정자, 냇가 주변의 멋진 소나무가 무릉도원을 만든다.

1년에 두 번인 문학기행인데 일찍 떠나면 좋으련만 생업이 바쁜 회원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9시에 출발했다. 수류 시인은 오늘도 네잎클로버로 모두에게 행운을 전달한다. 관광버스가 통영대전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르자 관광안내소에서 함양 홍보인쇄물부터 챙겼다. 서상IC를 빠져나와 26번 국도를 타고 계곡을 붉게 물들인 자연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보면 거연정(경남유형문화재 제433호)이 위치한 봉정마을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려 화림제(花林齊) 전공(全公)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하였다는 화림제전공유적비의 내용을 읽어보고 물가의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자연경관이 정자를 품고 있다. 거연정은 풍류를 만끽할 수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건물로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내부에 뒷벽을 판재로 구성한 방을 1칸 두고 있다.

거연정(居然亭)이라는 이름처럼 사람과 자연이 한 몸이 되는 곳으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던 옛 선비들의 마음이 나타나있다. 정자 아래편에 있는 봉전교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맑은 물이 흐르는 소와 기암괴석의 암반이 정자를 돋보이게 한다. 대부분의 계곡이 가뭄으로 바짝 말랐지만 거연정을 휘감아 도는 남천은 제법 수량이 풍부하다. "와!" 감탄사 한마디에 멋진 풍경에 반한 회원들의 행복한 모습이 다 들어있다.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거연정에서 안의면 월림리 농월정 국민관광지까지 6.2㎞ 구간에 선비문화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선비문화탐방로는 선비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오색단풍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곱게 물든 풍경이 멋지다.

탐방로가 시작되는 봉전교의 30여m 아래 계곡에서 군자정과 영귀정이 마주하고 있다. 군자정은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한 정자이다. 정여창은 처가가 서하면 봉전마을이어서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큰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정자가 군자가 올라 쉬었던 곳이라는 이름처럼 작지만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 주춧돌이 없는 기둥들이 책상다리 자세로 정자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군자정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면 큰 바위들이 많은데 건너편의 반석에 영귀대라는 붉은 글씨가 써있고 뒤편으로 팔각정자가 보인다. 영귀정(詠歸亭)을 만나려면 다시 봉전교를 건넌 후 왼쪽으로 나무그늘이 시원한 데크길을 걸어야 한다. 노래하면서 돌아온다는 안빈낙도의 영귀정은 최근에 개축한 듯 고색의 흔적이 없고 새로 건축한 개인 소유의 정자가 물가에서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선비문화탐방로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둘레길 못지않게 풍경이 수려하다. 또한 정비가 잘되어 걷기에도 편하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수시로 바뀌고 같은 길도 누구랑 걷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길가의 과수원에서 자연을 품은 붉은 사과를 구경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에게 가슴속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놓느라 회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난다. 선비들처럼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누려야 하는데 산행에 길들여진 몸이 자꾸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선비문화탐방로에서 물가로 내려서면 차일암과 동호정이 만든 멋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차일암과 동호정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동호정(東湖亭)은 화림동계곡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정자로 동호 장만리를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장만리는 조선의 성리학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까지 피란한 충신이다. 정자의 기둥은 아래편 바위의 모양새에 맞추느라 길이가 제각각이고 통나무는 선도 고르지 않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도 다듬지 않아 거칠고 투박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움에서 멋을 찾으며 자연과 동화되고자 했던 선비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동호정이라는 이름이 동쪽에 있는 호수의 정자를 뜻하듯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물길이 제법 넓은데 냇물의 가운데에 차일암의 넓은 암반이 바위섬처럼 펼쳐져있다. 차일암(遮日巖)은 해를 가릴 만큼 크고 수십 명이 편히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평평한 너럭바위다. 곳곳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옛 사람들이 이곳에서 악기를 연주하고(금적암), 노래를 부르고(영가대), 술을 마시며(차일암) 풍류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차일암에서 옛 선비들의 숨결을 느끼며 맛있는 점심도 먹고, 술 한 잔에 풍월을 읊던 선비들처럼 소주를 마시며 정도 나눴다.


가까운 거리지만 일정 때문에 차로 이동한다. 호성마을에서 농월정 방향의 선비문화탐방로에 있는 경모정과 람천정을 지나쳐 농월정국민관광지로 갔다. 농월정(弄月亭)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지족당 박명부가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세웠다. 한때 화림동계곡을 대표했던 정자로 ‘달을 희롱한다’는 정자의 이름처럼 옛날 선비들이 고요한 밤 냇물에 비친 달빛을 한 잔 술로 희롱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지금의 정자는 2003년 방화로 소실된 것을 최근 새로 건축한 정자다.

농월정을 만나려면 상가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 왼쪽의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농월정에서 바라보면 정자 앞 천여 평 되는 반석 달바위, 반석 사이를 쉴 새 없이 흐르는 맑은 물, 냇가 옆 소나무 숲이 선경을 만들었다. 바라만 봐도 가슴이 확 트이는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춘기 소녀처럼 다양한 자세로 추억남기기를 하는 회원들의 모습에 행복이 가득하다. 농월정교 위에서 바라본 아래편의 풍경도 볼만하다.


농월정에서 나와 차로 30여분 거리의 상림공원으로 갔다. 함양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함양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이다. 함양 사람들이 옛 친구보다 더 그리워하는 상림은 함양읍 서쪽 위천의 물가에 있는 숲으로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였던 최치원이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라는 역사적 가치와 우리 선조들이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한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 의미가 크다.

사철 풍경이 아름답고 숲 속에 오솔길이 조성되어 가볍게 산책하며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다.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화수정, 최치원 신도비, 만세기념비, 척화비, 이은리 석불, 다볕당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상림공원에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생겼다. 청춘남녀가 한 번 건너면 천년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어린이공원을 이용하는 가족들이 건너면 천년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아치형다리 천년교다.


함양에서 대자연의 어머니라 불리는 지리산으로 가장 빨리 가려면 2004년 개통한 오도재를 넘어야 한다. 이곳의 뱀같이 구불구불한 고갯길 지안치(지안재), 오도재 정상의 지리산제1문,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리산조망공원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지안치는 자동차도 힘겹게 오를 만큼 구불구불한 고갯길(S자)로 지그재그로 타원형을 만든 고갯길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곳으로 사진작가들이 야간에 자동차 불빛의 궤적을 촬영하러 많이 찾는다. 지안치 아래편에 위치한 조동마을 앞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든 가을철의 모습이 제일 예쁘다.


오도재는 전국을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한 곳으로 변강쇠전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곳이다. 제1문 오르기 전 만나는 주막에 변강쇠와 옹녀에 관한 조형물들이 많다. 오도재 정상에 2006년 준공한 지리산제1문이 있다. 광장이 제법 널찍한데 주변에는 돌에 시구를 새긴 조형물이 많다. 제1문 위에서 바라보면 북쪽의 대봉산 산줄기와 남쪽의 지리산 산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제1관문 옆 삼봉산 가는 등산로의 들머리에 산신각이 있다. 이 산신각에 선량한 백성을 위해 신라에게 나라를 넘겨준 가락국 제10대 구형왕과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던 왕후 계화부인에 관한 얘기가 전해온다.가져다 놓은 지 며칠 되지 않은 제물이 여러 개 있는 것으로 봐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오도재를 넘어 1.3km 정도 내려가면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가 나타난다. 지리산을 상징하는 곰 조형물, 천왕성모의 또 다른 이름인 마고할미상, 면암 최익현의 천왕봉 시비가 맞이하는 이곳의 팔각정에 올라 남쪽방향을 바라보면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너무 많이 보면 지친다. 정자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연바람으로 피로를 풀고 4시 40분 청주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리는 차안에서 미이 시인이 협찬한 상품을 골고루 나눠주는 난센스 퀴즈와 문학기행에 빠질 수 없는 시낭송 시간도 가졌다. 특별한 행사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앞에서 수고한 임원진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며 다음을 기약하는데 창밖 세상도 어둠속에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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