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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방앗간 발동기

“푸~시 푸시 푸~, 푸시 푸시 푸~!” 기관수가 꺾쇠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온몸을 움츠렸다 펴기를 반복하여 돌리면 어른 키보다 큰 발동기의 양쪽 쇠바퀴는 돌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회전수를 얻었다 싶으면 보조역할을 하는 방앗간 주인이 발동기의 코에 해당하는 배기 밸브를 닫는다. 그러면 “터엉, 텅! 텅!”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며 발동기는 진동을 시작한다. 그 육중한 쇳덩어리가 토해내는 실린더의 폭발음은 대포 소리를 방불케 한다. 이제는 반대쪽 쇠바퀴에 달린 작은 바퀴에 피대를 걸 차례다. 발동기 회전수를 줄여 적당하다고 생각될 때 기관수는 무릎을 꿇고 피대를 작은 바퀴에 밀어 연결한다. 순간, 방앗간은 적막의 먼지투성이 속에서 일제히 일어나 혼돈의 용틀임을 시작한다. 천장에 달린 긴 쇠막대에 연결된 바퀴가 돌면 그 막대에 달린 작은 여러 바퀴의 피대에 연결된 방앗간 기계들은 일제히 발돋움하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때부터 방앗간 발동기는 규칙적인 파열음과 함께 양철 지붕 바깥까지 뻗어난 배기관을 통해 시커먼 연기를 내 품으며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발동기의 생명을 불어 넣은 기관수는 마치 마법사 같았다.

방앗간 모습을 그려본다. 발동기 한쪽에는 냉각수가 있는 물통과 호스가 있고 왼쪽으로 난 방앗간 문 앞에는 도정을 기다리는 보리와 볏 가마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달구지를 걸친 소들은 연신 워낭 소리를 내고 긴 꼬리와 콧바람으로 쇠파리를 쫓고 간혹 차가 지나갈 때면 신작로에는 매캐한 먼지가 일었다.

보리 방아를 찧을 순서가 되었다. 발동기 시동을 건 기관수는 구릿빛 굵은 팔뚝으로 보리 가마니를 거꾸로 들고 바닥에 붙는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도와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삽으로 섞고 바닥의 구멍으로 들여보낸다. 이제 적당한 습도를 머금은 보리는 기다란 통으로 타고 올라가 사각 깔때기 모양의 저장고에 남겨져 도정 되기 시작한다. 몇 번의 도정 과정을 거쳐 껍질이 벗겨진 보리쌀은 고소한 보리 냄새와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채 따끈한 온기를 품고 가마니에 담긴다. 어릴 적 방앗간에서 보리 방아를 찧던 모습이다.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 방앗간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다. 그때 방앗간은 양조장과 더불어 부의 상징이었다. 다른 소리는 안 들려도 방앗간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는 먼 곳에서도 매일 들을 수 있었고 매일 쌀밥을 먹을 것 같아 부럽기도 하였다.

방앗간에는 밀을 빻는 방아 기계, 벼를 찧어 쌀을 만들어 내는 방아 기계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을 끄는 것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물이 있는 떡 방앗간이었다. 방앗간 한쪽에 자리한 떡방아 기계가 있는 곳은 명절이 다가오면 참기름 냄새, 쌀 찌는 냄새, 콩고물 냄새, 동네 아주머니들의 웃음과 이야기꽃으로 붐비는 곳이었다.

떡을 만들기 위해서도 역시 발동기를 돌려야 했다. 발동기의 힘으로 천정의 쇠막대의 달린 바퀴에서 피대를 타고 내려온 동력은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드는 기계를 돌리고 찐 쌀가루를 짓이기는 기계를 돌려 두 줄기의 가래떡과 납작한 절편을 뽑아낸다. 그리고 뽑힌 떡들은 가위로 적당한 길이로 잘린 후 찬물 함지박에 담긴다. 이에 늦을세라 다른 사람은 빨리 물에서 건져내어 참기름으로 온몸을 칠한 후 떡 다라에 담는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기계에서 빠져나오는 가래떡과 절편을 보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가? 그러다 우연히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절편이나 가래떡을 한 입 얻어먹는 날은 횡재한 날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다. 이제 농촌 인구의 감소와 농사 외에 다른 소득이 생기면서 쌀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원인인지 마을마다 하나씩 있던 방앗간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는 공터로 세월의 더께만 쓴 채 남아있다.

삼월 하고도 봄이 기다려지는 날 추억을 간직한 방앗간을 지나친다. 사십 년 전 힘찬 방앗간 발동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부의 상징이고 마을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던 방앗간도 이제는 작게만 보인다. 철 괴물 같은 시커먼 발동기가 있던 곳은 스위치만 올리면 운전이 가능한 전기모터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떡 방앗간도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따라 읍내의 떡집에 내주고 그나마 있는 기계들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골동품으로 보일 지경이다. 일 년에 몇 번이나 가동될까?

우리 주변에는 사라져 가는 것들이 참 많다. 나무로 만든 통통배 엔진 소리, 물뿌리개로 머리를 감겨주는 이발소, 엿장수의 가위 소리 등 세월에 기대어 잊히는 것들이 봄날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의 아쉬움으로 다가선다.

방앗간 발동기! 이제는 농협의 대형 미곡처리장이나 가정용 정미기에 자리를 내어 준 지 오래지만, 시골 방앗간의 기억은 언제나 따끈따끈 하게 김이 나는 가래떡이요 절편이다. 무쇠 덩어리에서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는 대포를 쏘는 듯한 발동기 소리. “치 컹, 푸시 푸, 텅, 텅” 아직도 귀에 들릴 것 같은 방앗간 발동기 소리가 아련한 기억 속 저편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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