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영 |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 본인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축구선수이면서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맡에 놓고 잠들거나 지단에게 가서 공에 사인을 받고는 즐거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였어도 나에게는 한번 붙어 보고 싶은 경쟁자일 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성공’에 모든 것을 두었다. 그러나 두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행복과 즐거움’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2006년 6월 차범근 감독이 자기 아들과 함께 월드컵 해설을 하면서 느낀 바를 담백하게 적은 칼럼이다. 그는 이 글에서 아들과 자신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명확히 지적한다. 차범근과 차두리는 같은 축구를 하지만 그 둘에게 축구의 의미는 달랐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나라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는 같은 단어를 말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이것은 모두 새로운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그 속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회화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시공간의 제약을 적게 받는, 저렴하고 즉각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2006-10-01 09:00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사건은 상하이시의 한 지역에 설립된 ‘맹모당(孟母堂)’이라는 사설교육시설에서 발단이 되었다. ‘맹모당’은 의무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가의 의무교육이 아닌 사설교육을 실시하는 전일제 사설교육시설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고전인 공자와 맹자의 경서 암송을 위주로 하는 과거의 전통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되어 현재 12명의 학생을 상대로 학부모를 포함한 4명이 교사가 운영하는 이 교육시설이 문제가 된 것은 최근 맹모당의 독특한 교육방법이 언론에 보도되고, 상하이시 교육위원회의 감사가 시작되고 난 후부터이다. 언론에 맹모당의 특별한 교육방법이 보도된 후 상하이 교육위원회는 즉각적인 감사를 실시하여 맹모당의 교육방법은 일반적인 부모가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가정교육의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에 순수한 가정교육(Home Education)도 아니고, 중국의 의무교육법의 규정을 위배하였으며, 학교설립과 관련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불법임을 지적하고, 맹모당을 즉각 폐쇄할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상하이시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맹모당의 설립자 및 학부모들은 강력히
2006-10-01 09:00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우리 가족은 엄마 둘, 그리고 나와 동생 이렇게 네 명입니다.’ ‘우리 집에는 엄마는 없지만 아빠는 두 명입니다.’ 호주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재나 동화책 가운데는 이처럼 알쏭달쏭한 표현이나 문구가 이따금 등장한다. 이른바 ‘동성애 부모’를 가진 아동들의 가족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란 말 그대로 ‘어머니’와 ‘아버지’ 양친을 일컫지만 호주에서는 반드시 그런 개념만도 아니다. 즉, 부모란 양성을 가진 두 사람일 수도 있고, 어머니 두 분을 나타내거나 혹 아버지 두 분을 뜻하는 단어도 될 수 있다. 동성애 부부 사이에서 양육되는 자녀의 처지에서는 부모의 정의가 일반 가정의 자녀와는 분명히 구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주의 가족법은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의 자녀 양육권 또한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동성애 커플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둘 만의 관계에 만족하는 단계를 넘어 자녀를 갖기 원하는 경우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어쩌면 동성애 커플일수록 입양, 혹은 정자 기증이나 대리임신 등을 통해 둘 사이에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을
2006-10-01 09:00
플라나리아 실험이란 걸 아세요? 2cm도 안 되는 뇌도 없을 것 같은 원시적 동물인 플라나리아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실험은 이런 겁니다. 그 녀석을 용기에 넣고 들어있던 물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곳에만 물을 붓고 그곳에 불빛을 비춥니다. 그러면 녀석은 물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거죠. 이 실험을 반복하면 플라나리아는 불빛이 비치는 장소로 물이 없어도 이동을 합니다. 학습을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실험을 반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느 순간 녀석은 불빛이 아무리 비쳐도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물을 못 만나 죽고 만다는 게 실험의 요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플라나리아는 왜 꼼짝도 하지 않았을까요? 반복에 싫증이 난 건 아닐까요? 용기 내부의 재질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면 녀석이 다시 학습을 시작한다는 걸 보면 이 원시적 동물도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지겨워한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카고타로의 책 ‘러시 라이프(Lush Lif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몇십 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사는 인간은, 원시
2006-10-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