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를 냉방에 방치해 죽게 만든 패륜아에 대한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재산문제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 때문에 부모를 학대했고 더구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도 세 아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아들 4명과 딸 1명을 두고 한때는 회사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사람도 말년에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으며 비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재산문제로 인한 갈등이 사람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누구나 나이 먹으면 늙는다. 늙으면 힘만 없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노인들의 소원대로 곱게 늙기도 어렵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고 사람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사실 깊이 생각하거나 따질 것도 없을 만큼 단순한 일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돈 앞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게 현대인들이다. 그런데 그걸 실천한다는 게 말같이 쉽지 않다. 더구나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살고 생각까지 다른 게 핵가족시대의 사회적인 현상이고, 효도보다 불효에 관한 얘기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상이다. 결국 별수 없는 돈이 천륜인 부모
2006-08-24 16:47선생님, 방학 이틀째와 다름없는 오늘 아침을 잘 열어가고 있습니까? 저는 딸이 살고 있는 서울에 와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온 것 같네요. 딸이 거하는 곳이라 그런지 마음 편안하게 하룻밤을 잘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울산과는 많이 다르군요. 울산에서는 새벽에 조용한 가운데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열 수 있었지만 여기는 풀벌레소리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집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조용한 시간에 딸이 가지고 있는 ‘비전’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 글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가꾼다.’‘비전이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절제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정원사처럼 살아간다’ 등입니다. 저 자신은 물론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모두 비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비전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전 있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과연 자신을 잘 가꾸고 있나? 모든 일에 절제하고 있나? 정원사처럼 살아가나?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자신 있게
2006-08-24 08:58학교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 놀이터를 보았다. 울타리, 바닥, 놀이기구 모두 다 인공적, 인위적이다. 자연친화적인 것은 찾아 보기 힘들다. 저 곳에는 노는 어린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안전 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정서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울타리와 바닥만이라도 자연적인 것으로 할 수 없을까? '놀이터 한 가운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떡 버티고 있어 어린이에게 그늘을 안겨주고 꿈을 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어린이들은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는 실내에 머물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날씨가 선선해지면 놀이터로 나올텐데…. 삭막하고 비좁은 놀이터가 안타깝다. 자연이 그리워진다. 교육을 하는 사람은 작은 것 하나라도 여러가지를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안전도 고려하고 정서도 생각하고…. 여하튼 그 생각의 근원은 순수한 교육에 두어야 한다.
2006-08-23 20:48‘놓을 방’에 ‘배울 학’자를 쓰는 ‘방학(放學)’은 말 그대로 ‘잠시 배움을 놓는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도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나 추위가 심한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이라고 풀이돼 있다. 하지만 잠시 배움을 놓는다고 해서 무조건 노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허약해진 체력을 보완하고 모처럼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 기회로 삼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처럼 학교 밖 교육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방학이 인문계 고등학교만큼은 예외인 듯싶어 아쉬움이 크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방학을 그리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무늬만 방학’이지 학기 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방학이란 말에서 묻어나오는 느낌 때문에 심리적 박탈감이 더 큰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학 때만 되면 평상시 말을 잘 듣던 녀석들도 괜히 말썽을 부리곤 한다. 7월 중순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고3 학생들은 곧바로 다음날부터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등교했다. 어차피 고3은 입시에 저당잡힌 몸인지라 개인적인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 문제라도…
2006-08-23 09:25방학이 끝나간다. 긴 것만 같던 방학이 벌써 끝나간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긴 방학이 얼마나 좋았는가! 그런데 개학날이 가까워진다. 늦잠을 잘 수 있어 좋고, 마음 놓고 놀 수 있어 좋고, 도시 또는 시골에 있는 친척집을 갈 수 있어 좋다. 녹음 짙은 푸른 숲속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매미 울음소리가 경쾌하고, 눈에 띠는 이름 모를 곤충들이 신기하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시냇물에 발 담그고 물장구친다. 물에 풍덩 뛰어들어 잠수도 해본다. 잠수라고는 하지만 겨우 허리 굽혀 얼굴만 담근다. 깨끗한 물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피라미새끼가 보이고 돌멩이에 붙어 있는 다슬기가 보인다. 방학 때는 보통 외갓집에 많이 간다. 물론 큰집의 할머니 댁에도 간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반겨주는 사람이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이다. ‘내 새끼’ 왔다고 ‘내 강아지’ 왔다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머릴 쓰다듬어 주시고 맛있는 것 모두 먹이려고 온갖 정성 다 해주신다. 옥수수를 먹고 고구마를 먹고 참외와 복숭아와 수박을 먹는다. 닭백숙에 삼겹살에 시원한 주스를 먹는다. 수백 살 느티나무의 짙고 깊고 넓은 그늘 아래에서 모기와 더위를 쫓아주는 할머니의 부채바람이 선풍기 바람보다 시원하다.
2006-08-23 09:24명색이 2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항상 영어 시험만 치면 문자와 의미가 따로 노는 그런 지경에 이르고 만다. 개인적인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긴 세월 동안 영어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영어의 거센 물결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밀려들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영어가 없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우리 삶 깊숙이 영어라는 존재가 침투하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다른 나라 언어 하나 정도 잘 하면 되지라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영어에 대한 노력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 삶과는 철저하게 겉도는 언어 생활에 있다. 며칠 전 대학원 영어 시험이 있었다.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현직에 근무하는 30, 40대 선생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명색이 박사과정의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거의가 영어라면 질색들을 했다. 물론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런 대로 공부라면 일가견을 가지신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험이 있기 며칠 전 그 중에서 나이 드신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하는 말이 "서 선생, 나 우짜노? 박사과정 포기해 버릴까?"하시는 거였다
2006-08-23 09:21정말 아끼는 아이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려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간혹 어긋난 행동이 있을 시 칭찬을 겸한 꾸중으로 그 아이의 마음을 잡아갔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방학하기 두 달 전,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단짝처럼 어울리던 두 아이가 가출을 했고, 이에 녀석도 동요되고 있었다. 이에 점차 그 아이의 행동은 지뢰밭 길을 걷는 모습처럼 위태해 보였다. 말없이 수업 중간에 가방을 메고 학교 밖으로 나간다든가, 종례를 받지 않고 가버리는 행동이 자주 나타났다. 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아이들의 전언을 들은 후엔 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를 믿었기에 질책보다는 열심히 해보자는 말로 다독였었다. 그렇게 잡아가던 아이는 기말 고사 첫날 첫 시간만 시험을 치룬 채 교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다. 여러 방법으로 그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지만 소문만 있을 뿐 알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하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다른 전화를 통해 어쩌다 받으면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에 ‘선생님 잘 계시죠? 저…
2006-08-22 20:35옛날이라고 경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식 정보화 시대이다 보니 지력은 말할 것도 없고 체력, 문화력이 골고루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제 막을 내린 일본 제88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최종일 경기는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일본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야구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13일에 실시한 15회 연장전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아 재시합을 하였기 때문에 이 기사를 15일자 모든 신문들이 톱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장래를 기대하는 것 같아 저는 내심으로 부럽기가 그지없었답니다. 일본에서는 야구가 거의 국기화 되어 고교시절에 고시엔 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결승에 오른 고마다이고등학교는 3년 연패를 노리고 있는 실력있는 학교로 1915년 대회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학교만이 3연패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우승한 와세다실고는 일본의 유명한 오 감독이 졸업한 학교로, 27번 출전 끝에 우승의 영광을 안았으니 그 감격을 참다 못하여 투수는 마지막 마운드에서 눈물을 머금지 않을
2006-08-22 17:40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J 교육장의 친필 편지다. 그의 글씨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 전, 하계 교감연수회에서 있었던 그의 말이 떠 오른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를 악필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니 악필은 아니고 개성이 있다. 자세히 보니 정감이 가는 글씨체다. 그는 특강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때 하도 글씨를 못 써 담임 선생님께서 겨울 방학 숙제로 글씨 쓰기를 내어 주셨다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악필을 고쳐 정성껏 과제를 해 갔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그는 악필 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네가 쓴 것 아니지? 네가 이렇게 잘 쓸 수 없어! 누가 대신 써 주었니? 솔직하게 말해 봐!” 만약, 담임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 정말 잘 썼구나! 그래 너도 잘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네가 글씨를 잘 쓰는 줄 선생님은 미처 몰랐단다. 앞으로 계속 잘 할 거지?”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있어 악필과 명필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자가 그에게 좌절과 포기, “맞아,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실망감을 준 데 반하여 후자
2006-08-22 17:40요즘 같은 권위 상실의 시대에 일선 학교 교감 자리가 무슨 큰 힘이 있을까. 하지만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무와 권한의 범위 안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는 구태와 비교육적 요소들을 조금씩이라도 바로잡음으로써, 죽어 가는 우리 교육을 다시 살리는 일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부임한 지 어느 새 2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잘해보겠다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처음에는 몸이 지치는가 싶더니 생각이 다른 사람들, 그 다양한 이해의 틈바구니를 헤쳐 오다 보니 이젠 마음까지 지치고 말았다. “내가 무슨 ‘통뼈’라고, 혼자서 이 나라 교육의 십자가란 십자가 다 메고 가는 듯, 속 타며 애간장을 태울 필요가 뭐 있는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나머지 교육자로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책임과 의욕의 끈마저 다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학교에서 관리자가 나름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학생과 학교 발전을 위해 무엇을 좀 해보고자 할 때, 선생님들 모두가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일이 잘되는 쪽으로 도와주면 얼마나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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