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필리핀 ‘바기오’로 떠나오면서 제일 마음에 걸린 것은 고국 누님 집에 두고 온 어머니였다. 그래서 일까? 이곳에 도착하여 지금까지 어머니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함께 갈 것을 종용하였으나 어머니는 고국이 좋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일 년 뒤에 꼭 돌아오겠다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영원히 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떠나는 자식인 내 손을 놓지 않으시며 계속해서 눈시울만 붉히셨다. 어머니의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 또한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한편으로 자식으로서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신다. “애비야, 언제 올 거여? 안 올거여?”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접할 때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희(古稀)가 훨씬 넘은 어머니에게는 하루가 삼 년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6시(한국시간 7시).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한국에서 누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순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2007-01-30 11:23연수원에 발령이 났을 때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소 문제였다. 그 때 당시 자녀교육 문제로 세 식구는 마산에서 살고 있었고 나만 혼자서 옛 교육청 뒤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놓고 있었다. 여기에서 출퇴근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가야 하고, 방이 쉽게 나가지도 않을 것 같고, 연수원 안에 숙소가 있어 고민 끝에 방을 그대로 둔 채 연수원에서 숙소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씩 시내 볼 일이 있으면 나가서 거기에서 자고 오곤 했었다. 내가 얻은 방이 얼마나 오래된 집이었던지 집에서 수돗물을 틀면 녹물이 나올 정도였다. 3년이나 그 집에서 녹물을 먹고 살았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참고 살아왔다. 그 녹물로 인해 건강상태가 더 좋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련하기 그지없도록 그 집을 떠날 생각도 안 했고 떠날 줄도 몰랐다. 온 식구들이 울산으로 이사올 때까지 좋든 싫든 그 집에서만 살았다.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면서 가장 염려한 것이 환경오염 문제였다. 공기도 좋지 않고 물도 좋지 않고 살 곳이 못 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언제나 적응하는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다 집에서 먹는 물까지 낡은 수도관으로 인해 고통 속에 생활했으니 정말 지옥 같은 생활
2007-01-29 08:46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왔으니 이젠 내 평생의 직업이 교육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초등학교 내내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읍내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 가서 ‘돼지 기르기’에 관련된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장차 양돈이나 양계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문학서적, 철학서적을 읽고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꿈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자, 슈바이처 같은 박애주의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 덴마크의 달가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개척자의 삶을 동경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고르, 바이런, 하이네와 같은 시인, 간디와 톨스토이 같은 사상가, 드골과 링컨 같은 정치가, 성 프란체스코 같은 종교적 인물을 모델로 설정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의 꿈은 사상적인 것, 문학적인 것, 철학적인 것이었으며 자아완성이라는 철학적 명제가 지상과제였다. 돈을…
2007-01-29 08:44연수원에서 근무할 때 학생 수련활동이 내 업무가 아니고 교원연수가 내 업무였지만 연수원에서 숙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련활동을 하는 연구사님들과 함께 사감활동에 참여했다. 사감은 너무 힘들다. 일숙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학여행 때의 지도하시는 선생님보다 더 힘들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학생들을 관리해야 한다. 주변이 산과 바다라 한 학생이라도 이탈하여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수련활동이 끝나고 인원 점검을 마친 후 숙소에 들어가 잠자는 시간이 되어도 곳곳에서는 자지 않고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불을 끄게 하고 자게 해야 한다. 말을 듣지 않는 숙소에 속한 수련생을 불러내어 벌을 주기도 한다. 30분 이상 씨름을 해야만 조용해진다. 그렇게 해서 아침 6시까지 자면 다행이지만 다시 조용하다 싶으면 잠을 자지 않고 떠드는 소리, 장난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돌아다니며 지도를 한다. 사감은 애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문단속을 철저히 한다. 수시로 점검한다. 이렇게 사감은 정신이 없다. 너무 긴장된다. 너무 바쁘다. 하루는 내가 사감이라 아침 6시15분 전에 동편, 서편, 중앙현관의 문을 연 후 6시 시작되는 안내방송
2007-01-28 10:00'대학교수도 철밥통이 깨지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각 대학이 승진요건을 강화하면서 대학교수들도 일정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승진이 되지 않음은 물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부대학에서는 직급정년제를 도입하고 있다. 예전에는 명성만 가지고 정년까지 가는 교수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명성만 가지고는 어림없다는 이야기다. 연구실적이 뚜렷하고 강의평가도 잘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까지 밀려들고 있다. 대학교수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학교수도 평가를 받는데, 교사들이 왜 평가를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교사들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도 하는데 너희는 왜 안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어디 대학과 초,중,고등학교가 같은 상황인가. 아니 어디 비슷하기라도 한가. 같은것은 오로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뿐이다. 대학교수는 매주 자기가 맡은 강의만 하면 된다. 강의시간도 초,중,고에 비해 월등히 적다. 강의만 잘 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실적 쌓고 강의평가 잘 받을 수 있다. 일부교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하는 경우가 있다. '저런 사람
2007-01-27 17:51반장이 되나 안 되나 가슴이 조마조마 했던 초등학교 시절 반장선거 때의 정경이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50대다. 사무치는 연정에 편지를 띄워놓고 날이면 날마다 답장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여리고 순진하던 나의 사춘기, 주체할 길 없는 그리움에 무작정 봄 길을 걸으면, 연두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 듯 멀리 파릇한 풍경을 만들며 봄을 알려오던 동구 밖 버드나무, 이 모두가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을 나는 모두 손금을 보듯 드려다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렇게 들여다보인다. 대학 새내기 시절, 명동의 지하 학사주점에서 호기를 부리며 낭만을 구가하던 일도, 그 시절의 데모 행렬도 어제 일 같고, 군에 입대해 이십팔 주 고된 훈련 받던 모습이며, 훈련이 끝나고 군모에 빛나는 하사관 계급장이 달려지던 일도 손에 잡힐 듯 어제의 일만 같다. 군복무를 마치고 만학을 하느라 삼십 가까운 무렵까지 대학 캠퍼스를 오가고 졸업을 한 후엔 곧장 고등학교 교단으로 가 십대의 젊은이와 함께 생활해 왔으니, 나의 마음은 어쩌면 지금도 세상 물정 모르고 새파랗게 젊기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이 먹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시
2007-01-27 17:50급발진 사고에 대해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메스컴에서 연실 떠들썩하다.놀랍다.나도 운전을 하고 있으며 학교운동장에 서슴없이 드나들고 있으니까 예사로 봐지지를 않는다.내차도 급발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막연한 불안이 엄습해 온다. 진짜로 급발진 사고였다면 어느 누구의 차라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연료와 산소(공기)가 차단되어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다는데, 그렇다면 대개 급발진이라는 것은 운전자의 착각에 의한 과실로 밖에 볼 수 밖에 없는 것임에도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를 딛고 급발진을 인정한 판례를 내놓았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죽기까지 했음에도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여하튼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니 좀 섬뜩해지기까지 하다.. 로봇의 반란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로봇은 순종의 산물이 아니고 언젠가는 분노의 산물로 변하여 인간을 향해 대적한다는 SF소설과 영화가 수도없이제작되었다.자동차의 공장도 알고 보면 거대한 자동화라인 로봇이다. 그의 자식인 자동차도 물론 로봇일 수 밖에 없고 마구잡이로 몰아대는 자동차로봇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금…
2007-01-27 09:02울산교육연수원은 나하고 인연이 많은 곳이다. 77년에 교직에 발을 들어놓은 이후 연수를 처음 받은 곳이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그 때 당시 ‘새마을연수’를 이곳 연수원에서 2박 3일간 받은 적이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때이다. 고속도로는 생기기 전이었고 국도도 비포장도로였다. 그 때 창녕군 계성면 계성중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창녕에서 울산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고 험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로 오게 되면 빠르면 1시간 30분 내지 2시간이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창녕에서 비포장도로로 완행버스를 타고 영산까지 와서 거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로 마산까지 와서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는 버스를 탔는데 지금처럼 고속도로로 온 것 아니라 부산 동래를 거쳐 국도로 울산까지 왔다. 시간도 거의 하루를 소비해야 했다. 울산에 와서도 방어진이라는 곳에까지 가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곳도 한창 개발 중이었고 길도 제대로 확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 때 연수원에서 접한 거대하고 웅장한 바다는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그 때 처음으로 바다다운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연수를 받았던 2층 강당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음악교사가 아니면서도 평소에 닦은 실력으
2007-01-27 09:02감나무에 홍시가 열려 있었다. 그 홍시는 보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엄청 영양가도 있다고 소문도 나 있는 지라 서로들 따먹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불행하게도 홍시는 상당히 높은 꼭대기에 열서너 개만 달려 있었다. 그러니 감나무는 몸살을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긴 장대를 만들어서 홍시를 따려고 애를 썼다. 천신만고 끝에 홍시를 거머쥐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간발의 차로 미치지를 못했다. 어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낭창낭창한 가지를 붙들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장애물을 들고서 천신만고 끝에 홍시를 거머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간발의 차로 실패를 거듭하다가 땅으로 떨어져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목말을 타고 막연히 손을 뻗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림 반 푼도 없었고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촌극부류도 있었고 그 꼴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볼썽사납다며 혀를 차기도 하는 사람,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도 만나서 인사를 하다가도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그 홍시 따먹는 일이 주된 화재거리였다. 어떻게 하면 홍시를 따먹을 수 있느냐, 야, 친구야 너도
2007-01-27 09:01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80년대라고 해도 좋다. 학부모님이 교실에 오면 여자어린이에게 아래와 같은 칭찬말을 푸짐하게 전해주기도 했다. “정아(가명)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보름달처럼 예쁘게 생겼네요.” “아유, 선생님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실제로 학부모에게 전해주는 칭찬말이었고 학부모님도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닌데 요새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말했다가는 뺨맞기 십상이다. 아닌게아니라 그때는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살집도 있고 후하게 생겼으면 상당히 미적인 호감을 가졌다. 반대로 요새 인기짱이라는 조막만한 얼굴은 고민대상이었다. 당시에는 키가 큰 어린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선망은커녕 멀대처럼 키가 크다고 놀림을 받곤 했었다. 너무 키가 커서 작게 보이려고 구부리고 다니는 어른도 봤다. 또 어떤 키큰 청년들은 키 크지 말라고 궁여지책으로 역기를 들기도 했다. 키 큰 것이 전혀 달갑지 않은 세월이 불과 코앞의 옛날이었는데, 요새는 180도 달라졌으니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다녔을 적에는 대머리와 배나온 남자들이 존경의
2007-01-27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