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할까 하다가 이내 편지를 쓰기로 작정해버렸다. 제자에게 편지쓰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그 기억조차 까마득하다만, 요즘 흔해빠진 문자(쉿,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나는 문자메시지는 보낼 줄 모른다.)나 전화통화로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야. 그래, 섬진강을 다녀온 기분이 어땠니, 소정의 시는 두 편 썼니? 사전 약속 때문 나서긴 했지만, 솔직히 대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지 못한 너의 한 일자(一字) 굳은 표정을 보며 운전하는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좋기는커녕 반짝이는 시상(詩想)을 위한 사제동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단다. 더구나 네 옆에 선아가 있어 선생님으로선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단다. 너를 달래고 위로하다보면 상 받은 선아 입장에서 ‘너만 이뻐하는’ 선생님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너 얼굴 펴지 않으면 진짜로 섬진강 안 간다!” 세 번쯤 경고했을 때인가. 너는 평소의 미소를 담기 시작했다. 마침내 섬진강 구담마을에 도착, 강가를 찾았다. 서녘 수줍은 햇빛이 물살을 갈라 은빛 찬란함을 뿜어냈지. 구담마을 옆구리에 끼고 웃음지으며 남쪽으로만 달음질치는 섬진강물이 시선을 어지럽히고…
2008-07-25 09:3821일 보충수업 첫날,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한 아이들 대부분이 출석하였다. 그리고 1차 수시모집에 지원한 아이들의 경우, 최종 경쟁률을 확인하고 난 뒤 보충수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내신 성적이 우수한 몇 명의 아이들은 높은 경쟁률과 관계없이 수시모집에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23일 수시모집 마감결과,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아 그 누구 하나 합격을 장담하기가 어려워졌다. 경쟁률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던 아이들까지도 다소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경쟁률이 높아 합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실제 경쟁률에 놀라운 눈치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합격을 했을 경우, 방학 보충 불참으로 생긴 수업결손을 어떻게 보충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짐작하건대 불합격으로 인한 후유증이 2차 수시모집이나 나아가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라 수시 모집에 지원한 아이들에게 방학 보충수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주문하였다. 최근 1차 수시 원서를 작성하는 며칠 동안, 왠지 모르게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예전보다 많
2008-07-25 09:36강마을 학교에는 긴 침묵이 붉은 칸나와 노오란 멕시코해바라기로 가득한 화단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따금 나나니벌 몇 마리와 검은 제비나비가 날아다니고, 매미 소리는 트럼펫처럼 쏴쏴 울려댑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니, 학교는 비어 버립니다. 꽃도 벌레도 나무도 그대로인데, 왜 그런지 무겁고 가라앉아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빈 학교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한비야의 세계여행기도 읽고, 공간에 대한 글과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가슴뛰는 메시지를 던지는 어느 유명 강사가 쓴 글도 읽었습니다. 몇 장의 엽서에 연꽃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들고 현관에서 멀리 융단처럼 펼쳐진 초록의 논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던 지난 학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 좋은 하루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더 뜨거운 지열 이따금 나뭇잎을 팔랑거리는 은사시나무의 훌쩍한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길고 길고 침묵이 감싼 학교에서 하루종일 수업도 없이 다른 업무도 없이 근무를 하면서 행복해합니다. 하얀 모시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앉아서 책을 읽은 참 좋은 좋은 여름날입니다. 치열했던 지
2008-07-24 17:57학교마다 신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고 산속 깊은 계곡이 그리워지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마음을 사로잡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올 여름은 유달리 바다가 그리워진다. 왜 그럴까? 바다가 보통 때도 많은 것을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건만 이번만큼 많은 깨우쳐 주는 때는 없는 것 같다. 바다는 넓이로, 높이로, 깊이로 가르칠 뿐 아니라 색깔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늦게나마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왜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바다는 예술가다, 미술작가임에 틀림없다. 온갖 색깔로 물감을 만들어가며 그림을 그린다. 무지개가 선보이는 무한한 색깔을 바다도 만들어낸다. 바다가 내는 색깔은 무한정이다. 어떤 때는 현미경으로 아주 가까이서 보아야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색깔도 선보이고 어떤 때는 망원경으로 아주 멀리서 보아야만 보이는 색깔도 선보인다. 오늘과 같이 맑고 깨끗한 날은 푸른 색을 낸다. 기분이 좋으면 더 좋은 청옥 같은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그것도 모자란다 싶으면 흰 색까지 섞어가면서 조화를 이룬다. 하늘이 푸르면 바다도 푸르게 화답하고 하늘이 회색으로 바뀌면 바다도 회색으로 마음을 같이 한다. 나무가 짙은 녹음으로…
2008-07-24 09:527월 초였다. 방학을 하면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시골 외가를 방문하기로 가족들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방학 중에는 아이들의 학원수강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일찌감치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방학 날(19일). 출근을 하자마자 먼저 교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들 각자에게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주지시키고 난 뒤 실장에게 대청소가 끝나는 대로 종례를 맡으러 교무실로 오라고 하였다. 방학인데도 보충수업과 대학상담 등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12시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러왔다. 아내는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며 퇴근 시간을 물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난 뒤,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귀가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실장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동료교사들은 방학 작별인사를 하며 하나둘씩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30분이 지나자 교무실은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하여 적막감마저 흘렸다. 그리고 교무실은 3학년 담임선생님 몇 명만이 아이들과 수시모집 상담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내가 아이들과 수시 상담을 미리 서두른 이유도 방학 날 퇴근을 빨
2008-07-23 08:47이 무더운 여름철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거나 장학사님들로부터학교 소식을 들을 때 좋은 소식보다 좋지 못한 소식이 들리면 답답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시원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후 5시 반쯤이었다. 울산 강북교육청 관내 한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방학을 했다는 것과 언제 출장을 가서 언제 돌아온다는 것과 60시간 직무연수를 받는다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저보다 연세도 많으신데도 전혀 보고할 이유도없는데도 학교의 구체적인 행사일정이나 출장 등의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방학을 했는데 서운할 것 같아서 위로도 할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줄 겸 전화를 주셨다니 감동 만점이 아닐 수 없다. 교장선생님과 같은 분을 또 어디서 만나볼 수 있으랴! 정말 보기 드문 좋은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울산지방방송 중 어떤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시면서 꼭 시청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셨고 아침 5시 반에 하는 프로그램이라 시청을 하지 못하면 그 방송국에 들어가서 다시보기를 눌러 보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오늘 방
2008-07-23 08:47지난 주 18일(금), 19일(토)에 열린 전문직 연찬회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날에 있었던 평택대학교 상담대학원장이신 차명호 교수님의 특강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주 건강해 보이셨고 생김생김도 이목구비가 뚜렷할 정도로 잘 생긴 미남 교수였다. 그 날의 특강은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강의를 듣는 모든 이로 하여금 강의에 집중하도록 끌어넣는 힘이 뛰어난 것 같았다. 한 사람도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도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이끌어갔다. 생각대로 잘 이끌어지지 않으면 수시로 예화를 들어가면서 던지는 질문과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는 기술도 탁월하였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수업모델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하였고 교수-학습 기법에 대한 강의는 전혀 없었지만 교수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강의 그 자체가 수업 기술의 본보기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막히지 않는 언변술이 가미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완전히 녹아내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재미를 주는 강의였다. 웃음을 주는 강의였다. 지루하지 않게 하는 강의였다. 두 시간의 연강이
2008-07-22 08:55서해상의 작은 섬이지만 그래도 관광지로 꽤 이름난 곳의작은 분교. 그 곳에서근무했을 때 일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중의 한 날..그날은 유난히도 새벽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새벽 5시인가? 그렇게이른 시각이 결코 아니었지만 전 날 시골 밭에 열무씨를 뿌리고 고향친구들과 막걸리를 했다. 숙명처럼 고향을 떠나지못하며 노모가 계시는 시골집을맴도는 생활 속에서의 일이었다. 시골 밭일을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와 푹 잔다곤 했는데 피곤은 여전했었다. 오늘 학교가 있는 섬으로 들어가는물길은 아침 7시 12분까지는 통행가능..조수표를 확인하고 도시락을 조수석에 저고리와 함께 놓고는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48km. 5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새벽 비를 가르며 달려서 학교까지는 12km 남았을 때로 기억된다. 보통때면 수 많은 차와 스쳐가며 차 번호로 라이트 껌벅이며 인사를 했던 장소인데도 왠일인지 통행하는 차가 별로 없었다. 비가와서 섬사람들이 육지로 나가는 일이없나보다라고 단순히 생각하며 막 섬으로 들어가는바닷길을 접어들 무렵 더 세차게 내리는 빗물과 바람.. 바닷길 군인들의 통제소 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때는 바닷길을 군이들이…
2008-07-21 16:50학년 초에 생활지도 담당선생님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선생님들과 결연을 맺어주었는데 명단만 받았던 터라 상담할 기회가 없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학교의 전반적인 일을 챙기다 보면 잊고 넘어가기 쉽다. 각종행사나 회의로 출장도 많았고 교내에 다섯 가지 공사가 진행되어 까마득하게 잊었는데 담임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현우의 생활이 흐트러지고 무더위와 함께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아차, 이러다가 1학기를 그냥 넘길 것 같아 시간을 내어 교장실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아이들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꽉 짜인 일과에 방과 후 교실 그리고, 행사가 이어질 때는 나의 일정과 빗나가 조용히 만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6교시를 마치고 현우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 내방으로 들어선다. 우선 마음의 안정을 갖도록 웃으며 “현우 아주 튼튼하네!” 하며 의자에 앉으라고 하였다. 다소 안심은 하는 듯 했으나 그래도 좌불안석이다. “현우와 교장선생님과 결연이 맺어졌는데 한 번도 만나서 이야기를 못 나눠 미안 하구나 !” “현우 집은 어디야?” “리버타운 앞에 살아요.” “가족은 ?” “할머니하고 둘이 살아요.” 아빠는 서울에서 원룸을 얻어 돈벌이를 하는데 어떤…
2008-07-21 08:33지난 18일 오후부터 1박 2일 동안 울산교육 희망의 상징이기도 한 울산교육수련원에서 교육전문직 연찬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울산교육수련원에서 연수를 한다고 하면 편안함보다 부담감이 앞섰다. 왜냐하면 몇 년 전만 해도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위험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와야만 울산교육수련원에 도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한 번 오려면 진땀을 빼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밤 운전은 더하였다. 그만큼 위험한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편안하게 올 수가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바른 길로 바뀌었고 낮고 높은 길이 평탄하게 다듬어졌으며 막혔던 산은 환하게 터널이 뚫려 시원스럽게 달릴 수가 있도록 있으니 기쁨을 더해 준다. 진땀 빼며 힘들게 오가던 길이 부담 없이 시원하게 자연 구경하면서 달릴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울산교육수련원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교과부에서 지원한 지원금으로 새롭게 단장된 곳이다. 바닷가에 있는 일반 콘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좋은 시설이다. 선생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것을 배워가고 휴식을 취할 수있도록 만든 곳이니 울산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
2008-07-21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