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正體性)의 사전적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이다. 18세기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난 연암 박지원은 권력의 핵심에 가까울 수 있는 위치였으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뼈아픈 통찰을 통해 스스로 권력의 변방으로 나아간 몹시 독특한 인물이다. 그가 쓴 양반전을 읽어보면 그의 청년기 조선 선비로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성찰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양반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선군에 어질고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양반이 살았다. 그 고을에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반드시 그의 집에 찾아가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양반은 몹시 가난하여 해마다 관청의 환곡을 빌려 먹은 것이 천석(千石)이나 되었다. 관찰사가 그 고을을 순시하다가 환곡의 출납을 살펴보고는 그 양반을 가두게 했다. 한편 양반은 밤낮 울기만 할 뿐 무슨 뾰족한 방책을 내지 못하였다. 이때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그 고을의 서민부자(庶民富者)가 양반을 찾아가서 환곡을 대신 갚아 주기로 하고 양반을 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수 자신이 매매 증서를 작성했다. 첫 번째 문서는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수많은 행동지침을 열거하고 만약 이를 어기
2021-05-10 23:00
교원문학회(회장 김계식)는 최근 수필가 이제길 전 정읍여중 교장, 시인 최상섭 남일초ㆍ중ㆍ고 교사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제길수필가는 최근 3년 동안 ‘마음밭에서 해밀을 만나다’(2018)ㆍ‘물비늘’(2019)ㆍ‘오례(五禮)의 실제(實際)’(2020)ㆍ‘눈으로 말하니 만상이 보이네’(2021) 4권을 펴냈다. 그중 2권은 수필집이고 나머지는 시집과 편저다. 1년에 1권씩 저서를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감안할 때 교원문학상 수상자로 딱이라는 게 교원문학회측 선정 이유다. 1994년 ‘수필과비평’(수필), 1996년 ‘공간시대문학’(시)으로 각각 등단한 이제길수필가ㆍ시인은 지금까지 수필집 4권, 시집 2권, 편저 1권의 책을 펴냈다. 2009년 정읍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했고, 전북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교원문학회원이면서 전주문인협회 이사ㆍ전북수필문학회 운영위원이며, ‘선비문화와 가사문학’ 강의 및 그 내용을 집필중이다. 최상섭시인은 최근 3년 동안 시집 ‘봄날의 풍경화’(2019)와 수필집 ‘청동화로’(2020)ㆍ‘풀꽃과 이방인’(2021) 3권을 펴냈다. 공적(公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매년 1권씩 펴낸 필력이 장하다
2021-04-27 10:41
제가 사는 마산은 날씨가 따뜻하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결핵을 치료하는 병원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술인들이 요양하고 치료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카프 중앙위원회 서기장이고 좌파 진영의 대표적 문학 이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임화입니다. 임화는 치료를 찾아온 마산에서 아름다운 여인 지하련을 만나 곧 사랑에 빠집니다. 폐결핵 환자였던 임화를 위해 지하련은 온갖 정성으로 간병했다고 합니다. 둘은 곧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됩니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지하련도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작품을 남깁니다. 이렇게 우리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임화와 지하련의 자취가 남은 주택이 아직 창원야구장 뒤쪽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지고 낡은 모습으로 방치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1947년 가을 임화와 지하련은 월북했습니다. 임화은 남로당 관련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받았으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지하련은 평안북도 희천 근처의 교화소에 수용되었다가 1960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 임화를 기억하며 그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그는 “시인이란 시대정신의 훌륭한 대변자
2021-04-26 13:10
수원의 명소로 부각된 일월호수공원. 사람들 주목을 끄는 것은 호수 위 물새들. 흰뺨검둥오리가 새끼들을 거느리고 유영하는 모습, 뿔논병아리 어미가 잠수하여 물고기를 물고 올라와 새끼에게 전해주는 모습은 장관이다. 또 있다. 둑 아래 10개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꽃의 향연이다. 이 정원 누가 가꿀까? 해와달 행복을 짓는 사람들(약칭 행짓사. 대표 송순옥)이다. 이 정원에 오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 꺼내들기. 왜? 꽃이 아름다워 그대로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분들, 그 꽃 혼자 즐기지 않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해줄 것이 분명하다. 행짓사 회원들의 마음가짐이 이미 전달되었다. 행복을 짓는 사람들은 행복을 퍼나른다.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까지 함께 하는 행복을 꿈꾼다. e리포터는 행짓사 정회원이다. 4월 23일 금요일 오전, 정원 출근을 서두른다. 올해 첫모임에 출석하기 위해서다. 정자엔 부지런한 회원들이 벌써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올핸 신규 회원 포함해 22명이다. 도시인의 로망이 정원가꾸기이기에 그런가 보다. 꽃가꾸기에 관심있고 배우려는 시민정원사가 늘어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일월정원엔 10개의 정원이
2021-04-26 08:40
봄비가 내립니다. 비는 초록 잎사귀와 분홍 꽃잎 사이로 보드랍게 흘러듭니다. 꽃잎들이 아스팔트에 무수히 하얀 점을 만들어냅니다. 그 점들은 서로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꽃잎들이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저 꽃잎을 따라가면 형산의 연화봉 아래 아름다운 팔선녀와 성진을 만나 꿈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춘삼월 백화는 만발하고 운무는 자욱한데, 봄 새 소리에 춘흥이 무르익고 물색이 발길을 멈추게 하니 팔선녀들로 자연 마음이 들뜨는지라, 돌다리에 걸터앉아 시냇물을 굽어보니...” 이런 풍경 속에서 선남선녀가 만났으니 어찌 춘심이 동하지 않았을지 읽으며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다리에 버티고 서서 길값을 받아내고자 하는 진상 손님과 복사꽃 한 가지를 꺾어 찬란히 빛나는 明珠(명주)로 변하게 하는 재주를 피우는 육관대사의 수제자 성진은 첫 만남부터가 달콤살벌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조선판 로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가 쓴 소설로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사상이 융합된 상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적 작품 주제가…
2021-04-08 14:44
도시민의 로망, 작은 텃밭가꾸기, 우리는 지금 하나씩 실천하고 있어요. 저는 수원 구운동 코오롱하늘채 아파트 동대표입니다. 올해 우리 아파트는 작은 꿈에 부풀어 있답니다. 바로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2021 아파트 힐링텃밭교육’ 대상 아파트로구두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파트 22㎥의 작은 땅이지만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농작물을 가꾸며 도시농부의 꿈을 실현해 갈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 겨?’ 저는 이것을 다른 곳에 적용해 봅니다. ‘혼자서 슬기로운 농촌생활하면 무슨 재민 겨?’ 우리는 도심 아파트에서 이웃 주민들과 슬기로운 농촌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텃밭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즐거움을 이웃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수원시농촌기술센터에서 해마다 운영하는 아파트 힐링텃밭교육이 있다는 것을 몇 달 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아파트에 어떻게 도입할까요? 작년도 공고문을 동대표 카톡방에 올리고 우리 아파트에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죠. 적당한 텃밭을 찾느라 아파트를 빙빙 돌며 적지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동대표 회의에서 반응을 들어보았습니다. 별 반응이 없더군
2021-03-25 12:39
정말 봄이 왔습니다. 경남의 소도시에는 거리마다 벚꽃나무의 분홍 물결이 눈부십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채색으로 보이던 도시에 환한 꽃들이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 눈물이 날 듯 반갑고 고맙고 장합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지나가자 꽃잎 하나가 팔랑하고 제 옆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읽는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 속 장면을 기억하였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아카리와 그녀를 좋아하는 소년 타카키의 모습이 환한 꽃 속에서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카리의 전학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아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다카키는 먼 가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카리를 만나러 가지만 폭설로 인한 전철이 4시간 늦어집니다. 아카리는 보온병에 담긴 차와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늦은 밤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첫사랑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타카키는 전학 간 가고시마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고교생 카나에에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어른이 타카키는 우울하고 외로운 도쿄에서 직장에서도 연인에게도 정착하지…
2021-03-25 12:39
한국의 현대문학은 청춘의 문학이었다. 그것은 본받아야 할 전통의 미약함에도 기인하지만, 안정감과 거리가 먼 한국 현대문학의 기본 동력이었다. 청춘의 감각에 이끌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젊었던 작가들이 세월과 함께 황혼에 접어들고, 그들의 최근 작품들에 치매, 죽음 등의 노년의 테마가 다루어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노년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노년이 가까운 나의 글도 청춘의 뜨거운 이야기가 아닌 원숙한 정신세계, 중후한 감수성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지혜를 지닌 작품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노년을 인생에 대한 원숙한 통찰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말년성’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제시한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나타나는 형식을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며 ‘화해 불가능성’ 즉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내적 대립의 특성을 발견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성에 관한 논문을 읽으며 여기에 맞닿아 있는 노년 소설들을 읽었다. 그중 황석영(1943~) 작가의 『해질 무렵』은 60대 중반에 접어든 주인공 박민우는 내적 균열과 모순, 그리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며, 출세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살았으며 수많은 인간 삶
2021-03-09 10:47
교직 40년 정년 퇴직후 고향인 논산에서 왕대추농장 농부로 변신한 최상림 교장. 그는 현대화된 연동비닐 하우스 4동 500평에서 대추나무 500그루를 기르는 농장주다. 작년엔 왕대추 수확 판매로 75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올해 판매 목표는 1,200만 원. 귀농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 다함왕대추농장(충남 논산시 채운면 소재)에서 최 교장을 만났다. 1. 귀농 이유와 귀농의 구체적 목적은? 처음 귀농한 이유는 큰아들의 건강과 일자리를 위해서 함께 왔다. 지금 큰아들은 결혼하여 수원에서 정착하고 우리 부부가 남아 노후 적당한 소일거리를 즐기고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귀농에 만족하고 있다. 2. 귀농생활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은? 좋은 점은 매일 매일 할 일이 있고 맑은 공기 속에 햇볕을 충분히 쬘 수 있다는 것, 이웃이 멀리 떨어져 있어 좋아하는 음악활동을 해도 민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편한 점은자녀와 손주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것, 어려운 점은 이웃과 화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3. 귀농준비 내용과 초기 투자비용 내역은? 논산시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50시간, 공무원연금공단 퇴직자 귀농교육 30시간, 평택햇살들 귀농합숙교육 4주,…
2021-03-08 12:04
천년의 벗을 찾아 옛 사람들은 책을 ‘천고상우 千古尙友’ 라 했다. 천년을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한 생애 동안 단 한 명의 벗을 갖기도 쉽지 않은데 천년을 사귄 벗이라니! 나의 좁은 인식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짐직조차 못할 비유다. 내게 그런 벗이 있는가. 자문하면 참 서글퍼진다. 마음이 통하는 벗이야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음만으로 그냥 위안을 삼는 정도이니.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 곧 그 사람이다.” 러시아의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 존재의 가치와 평가에 대해 한 말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평가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은 자는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니 참으로 엄혹한 평가다.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인간으로서 최하등급에 속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읽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좁은 탓이다. 글을 쓰기 좋아하지만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니 더욱 그렇다.다만 책을 읽거나 서툰 글쓰기에 희망의 등불을 걸고 애쓰는 이유는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도서관 반
2021-03-04 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