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 3125! 교단에 선 첫날부터 제가 만난 아이들의 숫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날들입니다. 1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만난 첫 아이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 쪽부터 이상한 슬픔이 수묵처럼 번집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서 외로움이, 배고픔이, 상처가, 피곤함이 과거 아이들의 행복과 천진난만함, 호기심과 장난 보다 먼저 떠오르는 까닭입니다. 정말이지 처음의 아이들, 처음의 교실 풍경, 처음의 운동장과 지금은 사뭇 달라 보입니다. ‘아이’라고 해서 삶의 고통이 없지는 않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많이도 힘들어 보여 안쓰럽습니다. 가만 보면, 때리는 아이나 맞는 아이, 우는 아이나 웃는 아이, 노는 아이나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아이…. 모두 나름의 삶의 고난과 숨겨진 사연들이 있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들으면서, 느끼면서, 함께 겪으면서 감히 동화를 써보겠다는 꿈을 품은 지 3년. 교원문학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용기와 희망” 무지무지 감사드립니다.
2007-12-26 11:11
눈이 왔다. 집도, 배추밭도, 산도 온통 하얀 솜옷을 입었다. 나는 썰매를 타러 배추밭으로 갔다. 배추밭은 산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눈썰매 타기에 딱 좋았다. 몇 번 안 탄 것 같은데도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배추밭 위에 있는 잣나무 숲 안은 이미 어스름해져 푸른빛까지 감돌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타려고 배추밭 꼭대기로 올라갔다. 어디선가 ‘닥닥’ 긁는 소리가 들렸다. 멈칫 서서 보니 잣나무 숲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혹시 멧돼지? 와락 겁이 났다. 멧돼지라면 옴짝달싹도 못한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사납게 쫓아온다고 아빠가 말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숲 속을 자세히 살폈다. 무언가가 나무껍질을 떼어먹고 있었다. 덩치로 보아 멧돼지는 아닌 것 같았다. 갈색 털, 뾰족한 귀, 까만 눈, 까만 코…. 맞다, 고라니! 고라니가 나무껍질을 먹다 말고 문득 날 쳐다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른쪽 앞발을 들었다. 앗, 앞발에 까만 구두가 없다. 다리도 뭉툭하다. 혹시 봄에 만난 그 고라니?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지난봄이었다. “하이고 마, 지근지근 밟아 뭉개고 쏙쏙 뽑았다 카이.” 이른 아침부터 엄마가 큰소리를 냈다. 나는 자다가 깜짝 놀라 잠도 깨
2007-12-26 11:10
예년에 비하여 작품 응모 편수가 약간 줄었다. 그러나 작품 수가 문제가 아니다. 요는 그 안에 얼마나 빛나는 작품이 숨었느냐 하는 것이다. 해마다의 느낌이지만 상투적인 표현, 지나치게 생활적인 소재, 고답적인 발상, 타성적 감정유로와 감상주의적 자기 고백 등으로 신선미가 결여된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당선작과 가작을 건져낸 것은 역시 올해의 한 수확이라 할 것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밥숟가락에서 별이 뜨는 시간’(정순옥)은 단단하고 노련한 시다. 문장 구성력이 탄탄하면서도 표현이 산뜻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노랑제비꽃’(정영희)은 당선작과 막상막하로 겨룬 작품이다. 이 작가의 장점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다는 데에 있다. 호흡이 유려하다는 점도 한 점이다. 다 같이 정진하여 큰 시인으로 대성해 주기를 바란다.
2007-12-26 11:06
확 낚아챘는가 싶으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빈 소리만 윙윙거릴 때가 더 많다. 그렇게 그는 내게 결코 쉬 건너오는 법이 없다. 그런 걸 보면, 그 역시 지독한 소심증 환자이거나 주는 것에 인색한 구두쇠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난 그를 붙잡아 내 가난한 역사의 골목길을 그리고 싶어 한다. 크기를 알 수 없는 무한의 그 어깨에 기대어 시린 내 발등 호호 불어보겠다고 안간힘이니 말이다. 그래야만 내 너무 더디거나 조금은 잘못 짚은 발자국이 있어도 가만 받혀줘 내가 덜 기우뚱댈 것 같다. 또 그래야만 행여 어깨 시린 이웃들 있거들랑 가만가만 다독일 수 있는 맨살의 은유, 그 내포와 외연의 크기도 저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가난한 삶의 파편들로 더듬더듬 눈 밝혀가는 내 난파선에, 슬그머니 너른 어깨 내어주고 거기 기대어 다시 항해를 시작하라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더 좋은 시로 정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늘 'Blood in ink' 로 “피를 잉크 삼아 쓰고, 시 그 자체로 살라”고 채찍질해 주신 선생님과 문우들께 부끄러운 발돋움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무엇보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시면서,…
2007-12-26 11:05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반파자마바람 19층 할아버지 세 발로 터벅터벅 바닥에 빗금을 그으며 간다 낌새 없는 경비실 창문을 툭툭 건드리자 졸고 있던 경비 모자 꾸벅 일어서더니 굽은 뒷등에 대고 거푸거푸 하품을 날린다 화단 옆을 돌아서자 층층에서 내려온 시간의 뒷덜미들이 다발다발 묶여지고 있다 키 작은 경비아저씨의 쭈글쭈글 손아귀에서 신문지는 신문지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빈병이나 깨진 화분들 지들끼리 붙들고 매달리며 픽픽 쓰러지며 모로 눕는다 비닐끈과 푸대자루에 제 목을 내밀고 음식물 수거함과 쓰레기통 사이로 난 사잇길 저만치 나무의자 귀퉁이에 풀어지다 만 노을이 마취된 환자처럼 널려있다 의자에 엉덩이를 반만 걸친 채 생떼를 쓰는 손자 녀석 코앞에서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는 밥숟가락 그 위에서 할머니 머리칼보다 반짝이는 은스푼 저녁별이 뜨고 있다
2007-12-26 11:04
동시는 성인 시와도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의 생활상이라든지 동심이 충분히 담보되면서도 시로서 그 성공이 있어야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올해는 시 부문보다도 동시 부문의 작품이 더 우수했다. 수상권 외로 밀린 작품 가운데서도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 작품들이 있었다. 반가운 일이다. 당선작인 ‘웃음 고구마’(류광우)는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일언지하에 끊어 치는 칼날 같은 표현이 서슬 푸른 작품이다. 구체적 현실을 실감 있게 표현하면서도 정감을 충분히 살린 작품이다. ‘개미 따라 뱅뱅’(고운매)도 좋은 작품이었다. 유희성에 빠질 수 있는 소재인데도 그렇지 않은 점이 훌륭했다. 예년에 비하면 충분히 당선에 들 만한 작품인데 상대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정진하여 대성이 있기를 빈다.
2007-12-26 11:03
오랜 느티나무, 몇 안 남은 나뭇잎 사이로 가만 내려앉은 다사로운 햇살을 보며 웃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이 땅에 더 많은 자애로움이 쏟아지길 바라며 귓가를 스치는 매서운 바람에 종종걸음 칩니다. 가방 메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도통 아이들 웃음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늘 개나리 빛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웃음이 불씨가 되어 이 거리를 훈훈히 덥히고 사람마다의 가슴에 크낙한 꿈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심을 가꾸는 글을 적어가겠다는 부끄러운 다짐을 다시 해 봅니다. 어쩌면 그것은 두고두고 저 자신을 향해 던지는 아이들의 사나운 호령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마음은 작은 불씨 하나 소중히 간직하라는 타이름으로 알고, 기쁘게 감사히 담겠습니다. 작은 마을 작은 창으로 아침을 준비하는 불빛이 새어 나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하는 아내와 키 큰 사다리를 성큼 올라가 버린 것 같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불 속에서 몰래 전하고 싶은.
2007-12-26 11:02
지난 봄 장날 고르고 또 골라 사서 심은 고구마 줄기가 텃밭을 온통 덩굴로 엮어버렸습니다. 첫 서리가 내리고 고추밭 고추가 과수원 사과보다 더 빨게 질 즈음, 올해는 추위가 빨리 올 거라며 어머니는 고구마 캐기를 서둘렀습니다. 내가 덩굴을 몰아 가생이로 넘기고 어머니와 누나는 호미로 조심조심 둔덕을 헤치면, 땅속 빠알간 고구마가 얼굴 내밀며 웃었습니다. 자루에 담으며 나도 누나도 웃었습니다. 고랑 저만큼 앞서 나가다 호미 들고 땀 씻는 어머니. 어미니 입가에도 웃음꽃이 핍니다. 바람이 뱅시레 지나갑니다.
2007-12-26 11:01
표현과 내용이 일정한 수준을 넘은 글들이 많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다음 두 가지 점이 아쉬웠다. 우선 짜임새가 탄탄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논리든 이미지나 분위기든 간에, 연쇄 혹은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어떤 중심과 줄기가 있어야 수필은 통일성을 얻는다. 규범적 형식이 없는 게 수필이라고 하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짜임새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다음으로, 제재를 선택하고 바라보는 데 있어 균형 감각이 아쉬운 작품이 많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여럿이 읽을 것이므로 느낌과 생각,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규범 등에 대한 관점이 균형을 유지하거나 합리성을 지니고 있어야 설득력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각 응모자가 낸 글 전체를 대상으로 역량을 보면서 작품을 골랐는데, 마지막에 개성이 다른 셋이 남았다. ‘나침반’은 짜임새가 있고 문장이 견실하다. 제재가 새롭지 못하며 관점도 다소 경직된 게 흠이다. ‘내 마음의 집’은 묘사가 섬세하고 치밀한데다 내용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아주 잘 읽힌다. 그런데 장점이 약점이 되어 다소 감각 위주로 흐른 감이 있다. ‘백령일기’는 일기투를 빈 수필이다.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로 삶의 기
2007-12-26 11:00
떠올리면 그리워도 다시 살아보라면 머리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는, 너무 외로웠던 섬 백령도. 섬에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그리움의 본질이었다. 그리움의 본질은 외로움이었다. 섬과 그리움과 외로움은 동류항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책도 읽고 글도 썼다. 그만큼 쓰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 살아났고, 자기 성찰의 시간도 늘어났다.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그리워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 왜 섬에 가? 꼭 가야 돼. 안가면 안 돼?” 여고 1년생이 되는 딸애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안타깝게 물어오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점수 따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허리를 잡은 딸애의 가는 팔을 어루만지며 변명처럼 말해주었다. “미안하다. 내 인생의 반전 같은 거라고나 할까. 총각시절 첫 부임지 작은 학교에서의 열정과, 사랑, 낭만, 그런 것들이 그립기도 하고…” 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간절하게 ‘그래도 안가면 안 돼’ 라는 말만 되풀이했었다. 딸의 여고시절 3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 이 글을 빌려 나 없이도 잘 살아준 아내와 아들,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01년 단편소설 가작, 올해 수필 부문 당선
2007-12-26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