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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지만, 내가 처음 다녔던 학교는 국민학교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학식을 하러 갔던 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나는 남학생 여학생 통틀어 우리 반에서 키가 가장 큰 아이였다. 학부모들은 운동장 뒤쪽에 와글와글 모여 있었고, 키 순서대로 맨 뒤에 서 있던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낙서를 하거나 옆에 있는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뒤를 돌아보면서 제 어머니를 찾아 울먹이는 아이들이 좀 모자라고 우습게 보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연년생인 바로 위 언니가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위로도 언니가 둘이나 더 있었다. 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이고, 선생님이란 어떤 존재이며, 학교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언니들이 선생님이 되고 나는 하나뿐인 학생이 되어야 하는 ‘학교 놀이’를 통해, 한글도 떼고 덧셈 뺄셈도 웬만큼 배웠다. 나에게 학교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곳이었다. 키 큰 미운 오리 새끼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교에 대한 나의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70년대 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그 무렵 봉제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급격하게 번창했다. 그 덕분에 나는 꽤 비싼 수업료를 내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처음 그 학교 교실로 쭈뼛거리며 들어갔을 때 문화적 충격을 잊지 못한다. 교실 바닥이 윤기 나는 돌로 된 현대식 건물과 반질반질한 책상들도 놀라웠지만, 아이들이 죄다 하얀 티셔츠에 짙은 감색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고동색 점퍼에 남색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있던 나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이었다. 금테 안경을 낀 무뚝뚝해 보이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전학생인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교복을 입을지 말지를 학생 스스로 결정하도록 교칙이 바뀌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홀로 교복을 입지 않은 내가 당황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나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식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를 바라며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전학을 보냈던 나의 어머니는, 굳이 입지 않아도 되는 교복까지 사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서너 달 동안 그 교실에서 교복을 입지 않은 거의 유일한 학생으로 지내야 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교복을 입지 않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나도 낯선 학교에 서서히 적응해 갔다. 반장 선거의 씁쓸한 기억 여름 방학이 끝난 뒤 2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고 나서 반장 선거를 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반장으로 적당한 사람을 후보로 추천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손을 들고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를 추천했다.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그 보답이라도 하듯, 자기를 추천한 사람을 다시 추천하는 일도 벌어졌다. 나도 손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여자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고 그래서 주의를 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다시 나를 추천했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설레고 기뻤다. 예닐곱 명의 후보 이름을 칠판에 적은 뒤, 선생님이 투표용지를 나눠 주었다. 하얗고 네모난 쪽지에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그 아이도 내 이름을 적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흐뭇했다. 개표가 시작되었다. 칠판에 쓰인 이름들 옆에 바를 정(正)자가 천천히 완성되고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쓰며 내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워낙 후보가 많아서 표가 많이 몰리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남자아이가 반장이 되었다. 내가 추천했던 여자애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내 이름 옆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나를 찍지 않았고 나를 추천한 그 아이도 나를 찍지 않았으므로 나는 0표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고, 천근만근 무거워진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조용하고도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아까 우리 반을 위해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지? 자기가 추천한 사람을 찍지 않을 거면 처음부터 추천하지 말았어야지. 반장을 뽑는 일은 장난이 아니고, 자기가 누구랑 친한지 자랑하고 보여주는 일도 아니란 말이다.”
충남 서령고(교장 한승택)는 2017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간 신학년도 교육계획 수립과 교직원 상호간의 친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동계 연수를 실시했다. 목적지는 군산으로 서천국립생태원, 근현대사박물관, 진포해양테마공원과 기타 군산 시내투어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일본의 만행을 되새겼다.
결성계기 전국에 있는 초중고 교사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자라나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결성됐다. 첫번째 목표는 나라사랑 선양과 국가 유공자의 정신을 이어받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진작시켜 청소년, 학부모, 교사들에게 호국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한 올바른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며 교육연수와 연구 활동을 통해 교원들의 자질 향상과 지도력을 배양하며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나라사랑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통해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의 정신을 드높이고 청소년과 학부모, 교원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것은 물론 일선학교에서 나라사랑 교육의 선봉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규모 경기지역 17개 지회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0개 지회에서 경기지역을 비롯한 경남·광주·울산 등 전국 11개 시·도에 근무 중인 교사 820여 명이 연구회에 소속돼 있다. 성격 나라사랑 교육연구회는 보훈교육연구원이 실시하고 있는 나라사랑 선양교육 특수직무연수에 참가한 교원들이 해외 연수 이후 연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발족 의지가 모아졌다. 또한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연구회란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학생·학부모·동료 교사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는 교과목별·학년별·계층별 학습 자료를 공유하고,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 2016년 1월 22일 88명이 참석한 발기인대회에서 36명의 창립준비 위원을 선정했고, 2월 22일 수원에 위치한 보훈교육연구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016년 6월 25일 6. 25를 맞이해 제1차 워크숍이 수원 보훈교육연구원에서 열렸다. 전국에 있는 총 600여명의 초중고 교사가 가입신청을 했고, 1차 워크숍에 400명이 참석해 나라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다. 2차 워크숍은 7월 2일부터 3일까지 열렸으며 전국에서 200여명의 교사가 참석했다. 2016년 8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법인 허가를 받았고 단위학교 또는 지역별로 나라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는 교사들이 지역별 워크숍과 단위학교 별 나라사랑 수업 등을 전개하고 있으며 2016년 12월 3일(토)에는 3차 워크숍이 있었다. 향후 활동 계획 애국정신과 안보의식 함양을 위한 연수 및 국가관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개발, 교사의 국내외 교류와 수련 활동 등을 전개하고 나라사랑 교육과 관련된 워크숍,직무연수와 사적지 탐방을 진행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교사 선발, 학과성적만이 만능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최근에 대학입시 추세를 들여다 보았다. 어느 과에 지망하는 학생이 많은지, 어느 학과가 높은 점수를 유지하는지, 여학생이라면 여러 교육 계통과 간호학과를 들 수 있고, 남학생이면 의예과와 전자공학과를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학과는 연극영화학과가 아닌지. 좀 더 구체적으로 평가내용을 살펴보면 사범대와 교육대에서도 여느 다른 대학의 학과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거나 교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별한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된다든가 하는 절대 조건도 없다. 아주 높은 점수에, 최상위에 가까운 등급을 획득해 면접을 통과하면 합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범대나 교육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재원들이 학교 현장에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부모로부터 존경받고 학생으로부터 사랑받는 엘리트 졸업생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가? 선생님은 우수한데 학생들이 따르지 못하기에 학교 현장은 언론에 단골 메뉴처럼 보도 대상이 되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요인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오늘의 교사들이 핍박받는 신세가 됐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아우성치면서 사교육 기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사교육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의사를 찾아 곪아터진 부분을 잘라내도록 의뢰라도 해야만 할까? 정말 저 맑고 푸른 겨울 하늘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 문제는 나라가 할 일이라고. 현장의 교사는 그냥 따라만 가면 된다고. 답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에서 나온 말이라 추리할 수도 있다. 우수한 교사가 현장에 투입되어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데 왜 오장풍 교사가 나와야 하고, 지성인으로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청소년과 성문제로 교단을 들끓게 하는 것일까? 교사의 인성 부족이라고 매도해야 하나? 아니면 우수한 교사가 자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에 대한 몸부림일까? 인터넷이 보편화된 오늘날 학생들은 수시로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우수한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구책을 누가 마련해 주어야 하나? 1차적으로는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다. 교사는 학생과 소통에 고통스럽지만 인내심으로 이끌어 가야 하고, 교사들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관리자는 지시와 개입이 아닌 지원을 통해서 현실에 맞는 참다운 교육을 이끌어 가는 마인드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교육대학 학생 선발엔 사범대와 달릴 특별한 요구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학과에 최우수 학생이 지원하고, 중고생을 가르치는 사범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우수 학생이라면 무언가 아이러니하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데 그렇게 최우수 교사가 필요할까? 이들이 졸업 후 현장에서 겪는 만족감은 극에 달할까? 더 많은 정성, 더 많은 잔일, 만족하지 못하는 보수 등등이 이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티 없이 맑은 아이들, 생각 없이 마구 뛰는 아이들,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재활원에 있는 아이를 돌보듯 자신을 희생하는 정성과 스스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으로 가득한 교사를 선발해야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성과 리더십 그리고 책임감으로 차가운 겨울을 동여맬 수 있는 그런 교사가 초등학교엔 필요하다. 성적만능으로 뽑는 교육대학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제 명실공히 새해가 되었다. 음력의 새해도 열렸다. 새해 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야겠다. 연휴의 휴유증도 날려보내고 속히 안정을 찾아야겠다. 설날의 연휴가 주는 유익이 많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배워야 하겠다. 자식 위해 온갖 좋은 음식 직접 장만하신다. 자식에게 주는 것 하나도 아깝지 않다. 부모님 사랑을 자녀에게 흘러가게 해야겠다. 교육은 사랑이다. 부모님 사랑처럼 해보자. 부모님의 기다림을 배워야겠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오기 전부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달력에 표시를 해가며 기다렸을 것이다. 교육은 기다림이다. 제자들이 참사람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선생님. 부모님과 같다. 부모님의 준비를 배워야 하겠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해 얼마를 준비하는지 모른다. 하루이틀이 아니다. 오직 자녀를 위해 준비한다. 교육은 준비다. 준비하는 선생님 하루하루가 즐겁다. 부모님의 다 주시는 넉넉함을 배워야 하겠다. 자식이 돌아갈 때면 차가 넘치도록 가득 채워준다. 선생님의 무한한 지식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는 부모님 같은 선생님 되어보자.
전주는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다. 정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전주를 찾았다. 열차를 타고 가는 길목에는 눈 쌓인 모습들이 겨울 정취를 더했다. 도착하면 한옥 양식의전주역사가 맨 처음 방문객을 맞아준다. 전주 한옥마을은 한국의 전통 건축인 한옥이 집단을 이뤄 선의 아름다움을 선사하여 준다. 설날을 맞이하여 한복차림의 가족 단위 관광객도 눈에 띈다. 한복 체험을 담기 위해 한복 대여점도 눈에 띈다. 부근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기전을 둘러 볼 수 있다. 경기전 정전과 전주사고 하마비, 그리고 예종대왕 태실 및 비가 있으며, 2010년에는 어진박물관을 개관했다. 한옥마을 가까이 전동성당이 자리잡고 있어 천주교의 박해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선운사, 고창읍성 등 역사문화탐방 코스가 있어 언제든 여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여행 10선' 중 한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하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윤지충과 권상현이 처형당한 순교지이다.
초등학교 교단의 여초 현상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초등학교 교사의 여성 비율은 2011년 85.7%에서 지난해 87.42%로 5년 새 1.72% 포인트 더 늘었다. 여성 교사 비율은 2012년 86.08%, 2013년 86.17%, 2014년 86.94%에서 2015년 87.03%로 오르는 등 꾸준한 증가세다. 여교사의 증가 추세는 단지 요즘 일만은 아니다. 교사는 타 직업에 비해 남녀 차별이 적고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의 인기가 치솥는 상황에서 교사의 인기는 이미 교대나 사대의 입학부터가 어렵고 졸업 후의 임용시험 또한 고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여초 문제는 교대나 사대의 입학부터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남학생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군면제의 유인책도 없고, 교대에 입학할 정도의 수준이면 다른 좋은 대학도 넘쳐난다. 또한 신규 교사를 뽑는 교사 임용 시험에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근거해 성비 제한을 두지 않고 있고, 군생활 등으로 인해 여성보다 공부할 시간적 여유도 적어 합격에 불리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지금으로서는 남교사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초등 교사 10명 중 8.7명이 여성인 상황에서 초등학교 재학 6년 내내 여성 담임교사만 만나는 일도 비일비재해 학부모 민원도 쏟아진다. 그래서 한 학교 최소 한 남교사 이상 배치를 원칙으로 하지만 때론 남교사 부족으로 이 원칙을 못 지킬 때도 일어나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선생님을 보면서 성 역할을 배우는 경우가 많고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 같아 한 번쯤은 남교사를 경험해봤으면 한다. 특히 농산어촌보다 대도시의 여초 현상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교사의 성별 쏠림 현상은 건강한 학생교육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당장 그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인위적으로 성비를 맞추려면 새로운 문제점이 다시 도출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남교사의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이해 지인들이 카톡으로 인사를 보낸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연하장 형식을 띠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 힘이 솟는 닭 그림, 한껏 멋 부리고 쓴 글씨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탐나는 사진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반갑지 않다. 왜 유독 ‘복’자만 한자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글로 써도 되는 ‘복’자를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복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나. 나로서는 마음이 상한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모습도 돌이켜봐야 할 것이 많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둘러놓은 병풍을 보면 한문뿐이다. 후손들이 병풍의 글 내용을 알고 있을까. 지방도 그렇다. ‘顯祖考(현조고), 顯祖妣(현조비)’로 시작해,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쓰고 있다. 이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과거의 문화다.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물론 공무원을 했다면, 이 자리에 퇴직 때의 직급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부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쓴다. 이를 보고 어린 학생들은 할아버지가 자기들과 같은 ‘학생’인 줄 안다. 지방에 쓰인 한자를 모르다보니, 결국 받드는 제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절을 한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글 지방을 쓰는 집안도 많다.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 제사 모시는 분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쉽게 안다. 이렇게 한글로 적어놓고 절을 하다 보니 후손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시면 부고를 하는 인습은 이제 없다. 그런데도 제법 돈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집안은 신문 광고란에 부고를 낸다. 이때도 가관이다. ‘대인(大人), 대부인(大夫人)’으로 시작해서 온통 알 수 없는 한자로 채운다.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조차 한자로 표기해 숫자로 옮겨 써봐야 알 수 있다. 부고는 돌아가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로 써 놓으면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냥 한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기다가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다. 문화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새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노화돼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전통문화란 무턱대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세월에 따라 변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면 고리타분한 인습으로 남는다. 문화는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고 지킬 때 생명력을 얻는다. 공자님도 예를 마음이라고 했다. 형식으로 하는 예보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중요하다. 제사 지낼 때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면 마음이 따뜻하게 만들어진다. 부고도 결국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 쉽게 써야 한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말과 글이 일치되는 생활을 하게 됐다. 한때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한글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 하여 ‘한글’이라 이름을 붙이고,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에도 한글은 핍박을 이겨내고 빛났다. 광복과 함께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빠른 기간 내에 극복한 것도 배우기 쉬운 한글 때문이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은 교육 효과가 높았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우리가 큰 나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문자라는 것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한글의 과학성을 극찬했다. 이런 한글을 저버리고 한자를 쓰는 습관은 외국인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만날 수 있게 됐고,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이런 마당에 뜻도 모르는 한자를 쓰는 문화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과 여기에 딱 들어맞는 우수한 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물론 학문을 하거나 기타 특별한 상황에서 한자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한자를 버려야 한다. 한글을 살려 쓰면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지고 나라도 튼튼해진다. 한글의 올바른 사용, 한글이 빛나고, 우리 민족도 빛나는 일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몇 해 더냐/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이 노래는 우리의 선배들이 불렀던 ‘꿈에 본 내 고향’이란 가요의 가사다. 나의 고향은 수원인지라 또 지금 수원에 살고 있어 이 가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노래는 결혼하고 나서 장인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다. 고향이 황해도인 장인은 술 한 잔 하시거나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부를 때면 으레 이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1948년 스무 살 때 혈혈단신 사선을 넘어 남으로 오셨다. 남한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셨다. 자식으로 4남4녀를 두셨다. 첫째 딸은 대사관 직원, 둘째 딸은 통일부 공무원, 셋째와 넷째 딸은 교육공무원이다. 첫째 아들은 의사, 둘째 아들은 축산업, 셋째 아들은 운수업, 넷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이다. 장인께서는 작년 1월, 8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이번 설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산소에 모였다. 선영은 경기도 파주의 동화경모공원이다. 여기에 세워진 비석에 태어나신 곳이 명시되어 있다.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은파리 191번지’다. 비석에는 자식 이름은 물론 며느리와 사위, 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공원의 특징은 실향민들이 묻혀 있다는 것. 그러니까 고향이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이거나 지금은 북한 땅이어서 갈 수 없는 경기도, 강원도 실향민들이 생을 마치고 이곳에서 영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죽어서까지 고향 가까이에 가고자 했겠는가? 실향민의 아픔과 고통은 아마도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수원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자가용으로 두 시간 거리다. 아내는 제사에 올릴 음식 장만으로 바쁘게 지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들과 딸들이 음식을 분담했다. 아내는 동태전, 호박전, 나물, 과일을 맡았다. 떡국을 맡은 딸도 있고 각종 떡을 맡은 아들도 있다. 내가 볼 때 심성이 착하고 효심이 남달라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있어 공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실향민 가족이 얼마나 많은지 성묘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조화를 파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성묘객들은 산소 앞에 꽂아 두는 두 개의 꽃병에 정성을 담아 새로운 꽃을 꽂아 놓는다. 꽃을 파는 상인들은 그야말로 명절이 한 때다. 이곳 이 맘 때 자주 들렀던 사람은 임시로 세울 텐트를 준비한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차가우니 잠시 머물 곳을 마련하는 것이다. 묘소를 살펴보니 크기가 크지 않다. 2.2평, 2.7평, 3.0평 규모다. 부부가 합장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북5도민들에게는 회원권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권은 1000만 원이 넘는다. 실향민들은 본인이 살아 있을 때 미리 준비한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생활력이 강하다고 한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찾는 후손들은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가족 단위로 성묘하는 인원 수가 대부대다. 오늘 우리가 찾은 장인 성묘 인원수만하여도 20명이 넘는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이 변치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가 자식들 손을 잡고 성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단순한 묘원이 아니다. 단순히 성묘를 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이북도민들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망향의 한을 위로하는 곳이다. 후손들은 이곳을 방문하면서 조상들의 인고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발자취와 정신적 유산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세대들이 할 일이다.
지난 해 11월 19일 배우 유아인과 이준이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1주 전 이미 100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한 촛불시위는 이후 규모가 계속 커졌다. 190만, 232만 명이 되더니 마침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루어냈다. 대통령 직무정지를 불러온 최순실 정국이 온나라를 요동치게 하던 그 무렵, 그러니까 2016년 11월 21일 MBC월화특별기획 ‘불야성’이 방송을 시작했다. 수상한 시절인지라 정경유착이니 비선실세가 등장하고, 돈을 탐하는 욕망이 두 여배우 이요원(서이경 역)과 유이(이세진 역)의 워맨스로 펼쳐질 ‘불야성’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웬걸 첫 회 6.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시청률은 2회에서 7.2%로 반짝 상승했을 뿐 20부작 내내 4%대에 머물렀다. 새해 들어서는 3%대로 하락하더니 1월 24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4.3%를 기록했다. 오히려 조기 종영되지 않고 20회까지 완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의 저조한 시청률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 워맨스는 시기상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맨스는 우먼(women)과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다. 매우 애틋한 감정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여자끼리의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레즈비언과 다른 것은 성적(性的)인 관계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영화처럼 이른바 ‘여여케미’는 TV에서도 먹히지 않는게 확인된 ‘불야성’인 셈이다. 내가 보기에 ‘불야성’의 실패는 워맨스보다 잘못 잡은 방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경은 88서울올림픽을 함께 성공시킨 세 사람 중 두 명으로부터 배신당한 서봉수(최일화)의 딸이다. 일본에 살던 이경이 한국으로 돌아와 박무일(정한용)과 장태준(정동환)을 무너뜨리는게 이야기 얼개인데, 세진은 그걸 멈추라며 말리려 한다. 그들이 대기업 회장이고 전직 대통령인지라 새파랗게 젊은 이경으로선 벅찬 상대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딴 나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래도 복수와 함께 정상까지 오르려는 욕망이 긴박감있게 펼쳐졌다면 볼만은 했을 것이다. 이경과 세진이 악녀로서 다른 악을 까발리고 응징하는 그런 구도말이다. 처음엔 이경의 아바타가 되겠다던 세진은, 그러나 갈수록 뜯어말리기만 하는 캐릭터로 일관한다. 자연 맥풀어지는 전개가 되고, 도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하는 회의마저 들게 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니 진실 등 인간의 도리를 말하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이 느끼고 깨달을 몫이지 세진이 이경을 가르치는 것이어선 안 된다. ‘불야성’이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인 이유는 또 있다. 극중 장태준 같은 전직 대통령은 최순실 정국뿐 아니라 그 이전을 통틀어도 연상되는 그 누구나 무엇이 없다. 비현실적 캐릭터일망정 전직 대통령을 갖고 놀 정도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과 뭔가 좀 겹쳐오는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야성’엔 그게 없다. 또 하나 의아스러운 건 이경과 박건우(진구)의 관계다. 한때 좋은 감정을 지녔던 두 사람이 무슨 원수 척지며 헤어진게 아닌데도 너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이경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처절하거나 절실한 당위성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반엔 일본에서의 옛 추억과 현재 화면이 혼재돼 자연스런 얘기가 좀 끊기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흙수저를 표방, 월세조차 걱정하던 세진이 어느새 그깟 돈 따위엔 초연한 모습이 된 건 또 다른 아쉬움이다. “완전 깨끄치 입었어”(‘깨긋이’의 올바른 발음은 ‘깨끄시’다. 2016.11.21. 1회)라든가 “세진씨도 그것 때문에 밤나스로(‘밤낮으로’는 ‘밤나즈로’가 맞음. 2016.12. 3. 14회) 따위 오류도 그렇다. 이래저래 ‘불야성’은 대박드라마 ‘선덕여왕’(2009년)의 이요원, ‘태양의 후예’(2016년)의 진구 캐스팅이 무색한 별 볼 일 없는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월화드라마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텐데, 도대체 방송사가 내세운 ‘특별기획’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하다. 그나마 건진 건 "내가 지은 죄는 고대로 짊어지고 갈 기다"(1월 24일 20회)라는 박무일 대사다. 재벌 총수로서 옥살이를 자처하는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모르쇠 타령에 일정량 시사점을 주고 있어서다. 그 외 건진 것도 참신한 대사의 함축성이다. “눈에 보이는 신 그게 돈이야”, “감정도 돈이야, 아껴 써” 등이 그것이다.
정유년 설날을 맞았다. 이번 설에도 일종의 귀소본능처럼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면서 고속도로를 달려 고향을 찾았다. 한마디로 민족의 대이동이다. 이는 고향에 그리움이 있고 설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사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반응이리라! 귀성길은 대설주의보 속에 벌써 정체가 되고 있다는 뉴스보도가 TV에서 나오고있다. 그러나 이 기간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행복한 길이 되기 위해서다.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서 아직도 상당수는 자동차를 이용하다. 이런 풍속도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운전이다. 차간 거리유지가 필요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는 운전중에도 서로간 배려가 필요하다. 내 앞을 지나는 자동차가 운전이 서툴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여 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개구리가 올챙이 서절을 잊듯이 자신은 처음부터 운전박사였던 것 처럼 행동하기에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이제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선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출 필요가 있다. 조금이라도 다른 차선이 빠른 것 같으면 금방 그 길을 따라간다. 그러나 그 길은 곧 같아지고 만다는 사실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신년들어 운전에 관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기억해 두면 좋을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운전면허시험이 강화됐다. 이같은 조치는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다. 그 배경은 2011년 6월 면허시험 간소화 이후 교통사고 위험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미 그때도 문제점을 제기하였지만 이같은 정책을 밀어부쳐 추진한 것이다. 이처럼 안전에 관한 정책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이 졸속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물면허’라 불리는 운전면허시험 제도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다시 이를 강화하여 운전면허시험은 필기시험, 기능시험, 도로주행시험으로 나눠 치러진다. 개선된 운전면허시험은 학과시험의 경우 문제은행 문항 수가 730개에서 1000개로 확대되고 40문항이 출제된다고 한다. 보복운전과 같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항들과 이에 대한 법령을 반영한 문제들이 추가된다. 장내시험의 개선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2개 평가 항목에 운전 활용도가 높고 주행능력을 향상시키는 ①경사로 ② 좌·우회전 ③ 전진(가속) ④ 신호교차로 ⑤ 직각 주차를 추가해 7개 평가항목으로 확대했다. 전체 주행거리도 기존의 50m에서 300m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점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적응하는 연수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왜냐하면 시험은 규격화 된 코스이지만 실제 도로에서는 폭 넓게 보는 시야와 운동 감각이 요구된다. 필자는 한국 면허증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현지 적응을 위하여 도로 주행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이때 느낀 소감은 아주 비싼 수업료는 물론이거니와 철저하게 확인하는 학원 강사의 지도는 엄격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동차는 단순한 자신만의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잘못하면 남을 헤치는 무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은 사람의 생존과 생활, 인간의 모든 것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설 귀성객들의 운전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피로도는 가중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방심하지 말고 다소 긴장감을 가지고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기 쉽다. 모처럼의 고향을 오고가는 길이 화내는 길이 아닌 행복한 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안전운전을 습관화하고 운전관련 법규를 잘 지키는 것만이 최상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블로그를 하고 있다. 국어 교육 관련 글을 올린다. 교육 관련해서도 사회 현상 관련해서도 칼럼을 쓰면 이곳에 올린다. 그리고 블로그 글은 페이스북에 연동되도록 했다. 블로그 글이 페이스북에도 노출되도록 한 것은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블로그에 접근 하지 못하는 사람도 페이스북에서 읽는다. 특히 페이스북은 휴대 전화로 접속이 가능해서 언제 어디서나 글을 읽을 수 있다. 자연히 독자가 많아지고 내 블로그 방문자 수도 는다. 이 시스템을 두고 동료가 인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하는 것은 결국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내 글을 자주 읽는다며 한 말이다. 아니 인정 욕구라고 젊잖게 말했을 뿐이지, 말의 의도를 세밀히 살피면 내가 자랑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평가가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블로그에 강의 다녀온 이야기나, 한 해 동안 업적(?)을 기록해 놓은 것을 언급할 때 말끝에 가시가 묻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인정 욕구가 있다는 평에는 크게 탓잡고 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경험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블로그를 통해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인정 욕구하고 상관이 없다. 강의를 다녀오고, 기타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는 일을 한 것을 소소히 올려 두는 것 역시 자랑과 거리가 멀다.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컴퓨터가 병에 걸린 적이 있다. 그때 모아놓은 글을 모두 잃었다. 관리를 잘못해서 보물 창고를 몽땅 날린 느낌이었다. 돈을 잃었다면 다시 벌면 되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 찾을 수 없었던 것이어서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 저장 창고를 만드는 꼴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이유는 간단하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강의 다녀온 느낌을 기록하고, 각종 글쓰기 심사 경험, 교육 관련 단체에서 자문 위원 역할 등을 올리는 것도 자랑이라고 단정 지으면 억울하다. 그것은 내 삶에 의미 있는 단상들을 영원히 기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제법 나이를 먹다보니 지나간 시간이 기억에서 멀어진다. 내 딴에 힘겹게 삶을 이겨내 왔는데 막연하게 과거의 우물에 희미하게 남는다.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계획을 하고 실천했는지 떠올리고 싶지만, 기록 한 줄도 없는 기억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비록 화려하지도 않지만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다. 블로그에 ‘내가 걸어온 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기록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한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내가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실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어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 느낌과 감정을 잘 보관하고 싶다. 그것을 회고하면서 내면에 힘을 얻고 창조적인 내일을 계획한다.자주 이야기했지만 글쓰기는 영혼의 갈증을 푸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외로운 영혼을 만난다. 영혼의 산책길을 걸으면서 삶을 성찰한다. 홀로 걸으면서 불안과 쓸데없는 것을 비운다. 나는 생각하고, 사색의 힘으로 나만의 관점과 시선을 다시 채운다. 나이 먹어가면서도 퇴화되지 않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깨어나게 하는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이 힘에서 나온다.칼럼을 쓰는 일도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내용은 없고 형식만 정형화된다. 내 감성과 지성이 없다면 삶의 그물은 자극적인 형식에 금세 엉키고 만다. 글을 쓰면서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 세상을 깊게 보면서 질문을 하고, 의미를 찾는다. 질문을 통해, 의미를 찾을 때 삶과 세계에서 친밀함을 갖는다.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자신의 몸 관리에 신경을 쓴다. 내가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삶의 단상을 정리하는 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몸 관리를 하면서 좋은 몸매를 유지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이라는 선물이 오고, 창조적인 기쁨이 만들어진다. 블로그에 남기는 일상이 그 출발이다. 내가 인정받고 혹은 자랑하고 싶은 것이 굳이 있다면 이것이 될 수 있다. 일상의 힘으로 기쁨과 행복을 얻고, 그로 인해 내가 꽃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작금의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도 학부모들에게 공통점은 있다. 자녀의 대학 진학이 최우선이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아니 관심사 이전에 숙원이기도 하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어떻게 어느 곳으로 보내느냐가 중년 학부모들의 미래의 삶이기도 하다. 원하는 만큼 달성이 안되면 삶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점심을 굶어도 학원비는 낸다는 학부들의 이야기는 모든 학부모들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대학의 기준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대학,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 남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소위 '와~'라는 감탄사를 받을 정도의 대학이 어쩌면 이 기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대학보다 취업이 잘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의 학생들만 진학이 가능한 대학이기 때문에 대학의 질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준들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이냐고 물어보면 학부모라면 몇 개 대학 정도는 손까락으로 쉽게 꼽는다. 왜 그 대학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대학이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대학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쳤기 때문이기 보다는 기본적인 인적자원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도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이들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교육을 시켰더니 그 대학은 항상 우수하고 좋은 대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근본적으로 그 대학은 우수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다가 훌륭한 교육을 시켜 더 우수한 학생을 배출하는 대학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원래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다가 현상만 유지해도 그 대학은 우수대학인 것이다. 기본이 잘 갖추어진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지도가 쉬울 뿐 아니라 발전시키기도 쉽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학생들 데려다가 교육해서 원래 우수한 만큼으로만 배출해도 그 대학이 우수한 대학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 대학이 우수대학인지 살펴볼 때는 이름만이 아니고 어떤 학생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변화를 시켜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원래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와서 교육시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조금만 지도를 해도 훨씬 더 성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우수한 학생들 만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학도 입학생에 대한 졸업후의 결과를 따져 보아야 한다. 수능점수 등급이나 내신등급을 비교하여 입학때보다 더 많은 발전을 시킨 학교들이 우대받아야 하는 것이다. 부진학생들을 지도하여 해당학생의 성적을 많이 끌어올렸다면 그 지도는 제대로 된 지도라는 이야기이다. 입학성적은 떨어지더라도 입학후 교육을 통해서 졸업성적을 높이는 학교들이 실제로 좋은 대학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노력이 대세인 현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대학의 입학과 졸업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다면 충분히 교육을 잘 시킨 대학을 쉽게 찾아낼수도 있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충분히 가능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보다 미래의 비젼을 잘 갖추고 있는 대학을 찾아내어 집중적인 육성을 할 수 있는 육성책을 찾아야 한다. 원래부터 잘하는 학생들은 계속 잘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입학시기부터 결과가 정해지는 현재의 대학교육구조 보다는 어떤 대학에서 실질적인 노력을 더 했는지 따져보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방법론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현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4차 혁명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정보기술을 비롯해 로봇공학 및 바이오공학 등의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의 파고는 이미 주위에 시작됐다.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가 쓴'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에 따르면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한 약국에서는 로봇 약사가 홀로 일하며 지금까지 200만 건 이상의 처방전을 실수 없이 조제했다. 영국 기업의 세무신고를 처리하는 딜로이트(Deloitte)사의 세무시스템은 250명이 넘는 세무 전문가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정제해, 혼자 일하는 개인 세무 전문가보다 우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왓슨은 전략 문서를 탐색하고, 회의에서 나눈 대화를 듣고 요약하며, 경영조언을 하며 ‘최고위 임원 조언자’ 역할을 한다. 또한 왓슨은 의료 부문에서는 암 진단을 돕고 치료계획을 제시하며, 21초마다 출간되는 의학 논문의 흐름을 읽고 의학계 최신 동향을 따라잡는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변화다. 인간이 하던 업무를 수 백 배 수 천 배의 빠르고 정확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생각과 능력을 초월할 정도인 신의 경지까지 이른 변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변화할까? 많은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50%가 없어지고 30년 이내 인간의 노동력은 80%이상 기계로 대체될 것이란 예견이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해 온다. 당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직종 중에서도 '전문직'이라고 일컫는 직종 중에서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 기자, 건축가 등 소위 엘리트 전문직이 가장 큰 타격의 대상이다. 소위 전문지식과 특별한 훈련 및 일정한 자격을 바탕으로, 그 어느 직종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와 독점권을 누려왔던 전성기가 끝난 것이다. 바로 온라인 기반으로 지식의 빅데이터화로 대중화되고, 첨단기술이 인간의 기교와 기술을 대체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 교육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교육은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준비하는 교육을 해야 미래를 능동적으로 통제하면 살아갈 수 있지 않는가. 인간의 기술은 노동력 거래 방식이나 시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서비스도 글로벌 거래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상품화 구조를 낳는다. 물론 아직은 크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글로벌화로 지금보다 직구로 물건을 사고 팔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전문직의 활용도 저렴한 비용으로 활용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활용은 우리 산업 전반의 변화를 예고하며 동시에 큰 충격일 수 있다. 이에 대한 준비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가 ‘교사’로 조사되었지만 교사 역시 알파고가 대신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미 구글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감성교육이나 개별화 교육부분까지도 연구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일반직종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직에게도 평생직장이 극히 드물어질 것이며, 직업 안정성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빠르게 배우고 발전하며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실용적 전문성은 대부분 기계와 온라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시스템까지 직접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 다산 정약용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와 근면과 고요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롭지 못하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 없으며, 고요하지 않으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다. 이 책의 저자 채사장은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정도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 널려 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알 가장 가치 있는 지식만을 선별해서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고 지식 가게를 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오래 전 인류의 수명에 비해 몇 배나 더 오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적으로는 같은 장소에살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집약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정보를 얻는 방법은 극히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 살면서 내가 얻은 지식이 인스턴트 음식처럼 영양가는 적고 비만과 질병에 이르게 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마치 어머니가 해주시던 집밥을 먹는 느낌 같은! 그러면서도 귀한 손님으로 초대돼 품격 있는 정통 요리를 대접 받는 듯한 친절함과 세심함을 담은 지식 가게 주인의 정성에 놀라게 된다.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갈무리하고 간단한 그림으로 친절하게 짚어주며 인문학의 초보자를 배려해 준다. 작가의 접시 위에 오색으로 깔끔하게 진열된 지식이라는 음식을 먹으려면상당한 예의가 필요한 책이다. 최고의 손님은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하나도 남김없이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잘 먹고 정중한 감사를 잊지 않아야 품격있는 손님이 될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오색 반찬 가게(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이 지식 가게에 찾아온 필자는 강의실을 찾은 학생처럼적을 준비를 하고, 내 생각을 군데군데 적어 놓으며 작가와 무언의 대화를 준비했다. 이 책은 세상에 널려 있는 인문학 책 속에서 품격을 드러낸 책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바쳐서 일구어낸 작가의 노고를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마구 읽어 나갈 수 없는 책의 품격에 감동했고 감사했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라는 인문학의 기둥은 인체의 뼈대처럼 삶의 영양소이면서도 재미있게 읽기 어려운 주제였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매우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야 할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세상의 때가 많이 낀 내 두뇌의 한계와 지식의 넓이에 실망하면서도 다시 채우는 기쁨이 컸다. 아니, 시간의 더께만큼 이해하기 쉬워진 것에 놀라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하라."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평생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절대적 진리관에 따라 종교를 향한 믿음으로 내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편으로 삼았다. 초월적인 존재,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살던 시간들은 행복했다. 나의 이성보다는 우월한 존재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보낸 시간들이참으로 길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위한 손길을 예비해 두고 있다는 믿음은 나를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젊은 날의 나는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에 안주하고 신에 의지해 편안했다. 지금은 상대주의를 지나 회의주의에 가까워서 니체를 존경하고 그의 책들을 곁에 두고 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삶의 주인은 오직 '나'라는 자각으로 생각하는 삶,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며 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탁하거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최고의 오색 반찬으로 등장하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는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라는 멋진 접시에 따로따로 담긴 것 같지만 결국은 한 테이블에 올라온 '인간의 삶'에 관한 화두다. 다루는 방법과 접근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제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겨울방학을 닫고 교실에 들어갈 심호흡에 도움이 되어준 책이다. 채사장 지음/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16,000원/한빛비즈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설날 아침이다. 삼국시대 때 처음 설맞이를 행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설은 여전히 한민족의 대표 명절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설에 그동안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정남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어둠은 태워버리고 빛을 발하는 생기를 받아가시길 기원해 봅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스한 곳 우리나라 남부에 위치한 도시 순천이다. 포근하게 눈 내린 시골 풍경은 아늑하기 그지없다. 시끄러운 소리와 사각의 딱딱함을 다 빨아드려서찾아보기 어렵다. 순천시 외곽에 위치한낙안 읍성은 전국 민속마을 중 유일하게 초가마을로 이뤄져 있다. 이 민속마을에서는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설맞이 민속체험장’이 열린다. 낙안읍성에서는 낙안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낙안군악’을 비롯한 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낙안군악은 전라도 굿에 속하는 평사리 농악으로, 지신을 밟는 매귀를 통해 모든 잡귀와 잡신을 몰아낸다는 의미에서 ‘매굿’ 또는 ‘매구’라고 불린다. 조선시대 낙안부의 군수를 지낸 임경업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고 성을 방어하기 위해 농악으로 굿을 한 것에서 유래한 낙안지역의 향토 음악이다. 전통공연뿐 아니라 민속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아이들이 즐기고 있다. 윷놀이, 단체 줄넘기, 투호놀이, 굴렁쇠 굴리기 같은 전통놀이와 조선시대 민가에서 사용하던 서민들의 생활도구 체험, 전통복식 체험 및 짚물공예를 체험할 수 있다. 설 연휴 동안 한복을 입은 관람객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여, 사라져가는 한복차림의 관광객도 보인다. 특히 "설 당일에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담당자(낙안읍성사무소061-749-8843)가 밝혔다. 한복이 평상시에는 번거롭더라도 이날만큼은 한복차림을 하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 하면서 설날의 추억을 만드는 좋은 경험이 되기를기대해 본다.
설날 즈음 빈 교무실에서 지난 해 저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너무 바쁜 해였습니다. 공부와 글쓰기를 겸한 3학년 담임교사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만족한 수업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신만만하게 멋진 담임이 되리라는 저의 어리석은 자만심이 미안했습니다. 책읽기를 즐겁게 만들겠다고 기세 좋게 시작한 독서프로그램은 그다지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학 중 학교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책꽂이 반쯤 읽고 꽂아 둔 책이 보입니다. 일본의 핀란드 교육전문가인 후쿠타 세이지 교수의 핀란드 교육 리포트 '핀란드 교실 혁명'입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핀란드의 교육은 소박하지만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시험도 없고, 경쟁도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시험 스트레스와 입시 지옥에서 학교를 다니고, 학교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아니라 핀란드의 학생들은 공부가 재미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핀란드의 경우 철저하게 학생의 개개인의 발달을 보고 단 한 사람의 낙제생을 만들지 않는 것이 교육 관계자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핀란드의 교실을 들여다 보면서 과연 진짜 공부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한국교육은 소수만을 위한 교육이다. 소수만의 경쟁이라면 한국이 핀란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수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차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한국은 우열을 가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핀란드에서는 우열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인차를 존중하고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Learning by doing- 행동으로 배운다’ 라는 학교 교육방침에 대해 설명하는 소규모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말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학교이고 경제적 논리가 아닌 교육을 위해 다가서는 교육정책도 멋집니다. 현재 시골의 작은 학교를 경제적 논리로만 다루는 우리의 교육정책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어떻게 교육을 이익이 나는 돈의 원리로 다루는 몰상식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한국의 교육부 정책을 구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가끔 궁금했습니다. 그들에게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그 험악한 현실 앞에서도 학교를 세워 공부를 했고, 포탄이 쏟아지는 한국동란의 어려움 속에서도 천막을 치고 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런 민족이기에 공부가 가장 중요하고 공부만 살 길이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데 이 문제가 변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대의 오직 공부가 지금은 ‘내 새끼만 잘 되면 된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와 같이 오염되고 부패했습니다. 핀란드의 교실에서 새로운 교육의 정신을 다시 이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사는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과목을 배우는 하이들을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은 매우 매력적이면서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p207 핀란드 교육의 모토는 ‘시험이 나리라 자신을 위해 배우자.’이다. /231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수학교사이다.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경쟁과 학력의 문제만 전면에 내세우면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커플인 두 학생이 서로의 몸을 만지면 수업을 하는 상상도 못한 상황이 연출되는 교실에서 핀란드의 교사는 말합니다. “남학생은 학교라도 나온다. 여학생은 어째든 수업에 참여한다.”이렇게 특별지도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강제하지 않습니다. 놀라움과 틀에 박힌 생각만을 하던 저에게 부끄러운 자기반성이 됐습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우선되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학교에 오고 공부할 것같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며 교무실 문을 나섭니다. 먼 강가에 은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은 차가울 것입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폴란드 교실 혁명』, 후쿠타 세이지 지음(박재원, 윤지원 옮김). 비아북, 2009
정치권의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안’을 두고 교육계의 찬반이 팽팽하다. 찬성 측은 청소년들의 시민의식이 충분히 성숙해 정치적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은 교육현장이 정치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거 때만 되면 선심성 표심잡기로 인해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행정제도를 모두 뜯어고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어온 국가제도는 원칙과 기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오직 당선에만 혈안이 되어 정작 정치인들이 해야 할 중대한 일은 놓치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국가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 바르고 혁신된 교육이아니라 누더기 교육으로 변하고 있다. 밥 먹는 것도 교육이라는 무상교육이 그 대표적이다. 교육의 본질마저 왜곡한 채 정치인들이 교육 속에 파고들어 교육이 정치장화 된 것 또한 우리 교육을 위기에 내몰고 있다. 이번 선거연령 18세는 교육의 중립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중립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정당가입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교사들의 정치 참여 제한을 ‘미성숙한 학생교육’이라는 점도 이젠 설득력이 더 이상 없다. 학생들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을 마려야 할 시·도교육감들이 오히려 이를 공식화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교육수장이 우리 교육을 정치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의 성숙된 민주시민을 기르는 중요한 일이기에 무엇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들까지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총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해야 할 교육감들이 선거권 만 18세 하향 촉구 성명을 낸 것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며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의 선거연령 하향 촉구는 교육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의견을 정치권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운 것이다.
교원양성기관 평가(2015~2017년) 2차년도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주관하는 교원양성기관 평가는 교원양성 교육의 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기관의 자기발전 노력을 유도해 우수교원 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1998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이번에 2차년도 평가 결과가 공표된 것이다. 이번 2차년도 평가 결과 대학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 등 교원양성기관의 정원이 올해 말부터 2509명 줄어든다.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 16곳은 아예 폐지된다. 양성과 임용의 불균형을 다소나마 해소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특히 날로 치열해지는 교원 임용시험의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해 1차 교원양성기관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하위 등급 기관은 정원을 줄이거나 폐지하기로 했다. 전년도(2015년)에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을 대상으로 평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사범대가 없는 107개 대학의 교육과·교직과정·교육대학원이 평가 대상이었다. 평가 결과에 따라 각 기관에 A~E등급을 부여했으며 C등급은 정원의 30%, D등급은 50%를 줄이고 E등급은 아예 양성 기능을 회수하고 기관 자체를 폐지하도록 했다. 이번 평가는 사범대가 없는 일반대 교육과와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등 107개교 285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결과에 따라 A~E등급을 부여했다. 이번 비사범대 중심의 일반대 교육과 97개 기관 중에서는 24개 기관이 A등급, 50개 기관이 B등급, 20개 기관이 C등급 3개 기관이 D등급을 받았다. 교직과정 설치대학의 95개 기관 중에서는 3개 기관이 A등급, 11개 기관이 B등급, 32개 기관이 C등급, 35개 기관이 D등급, 14개 기관이 E등급이었다. 또 교육대학원 32곳 중에서는 3곳이 A등급, 7곳이 B등급, 13곳이 C등급, 7곳이 D등급, 2곳이 E등급을 받았다. 평가 결과 C등급은 정원의 30%를, D등급은 50% 감축하고 최하위인 E등급은 해당 기관‧과정을 폐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반대 교육과 263명, 교직과정 1488명, 교육대학원 758명으로 총 2509명의 교원양성이 줄어들게 된다. 또 E등급을 받아 폐지되는 기관은 16개 대학이다. 특히 이번 비사범대 양성기관 평가에서 부실 교육대학원, 교직과정이 된서리를 맞았다.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대상이 됐다. 이들 기관은 사범대생이 아니더라도 정해진 과정을 이수하면 교원 자격을 부여한다. 이번 평가 결과 교직과정은 전체 정원 3831명의 39%인 1488명이 줄어든다. 14대학의 교직과정은 E등급을 받아 아예 폐지된다. 교육대학원 정원은 3427명에서 758명(22%)이 줄고 2개 교육대학원은 폐지된다. 또 일반대학 교육과(교육학과·유아교육과 등)에서 줄어드는 263명을 합하면 모두 2509명이 감축된다. 매년 4년제 대학의 중등 교원 양성 정원(1만582명)의 24%가 감소하는 셈이다. 이번 교육부의 감축으로 일반대 교육과 2943명, 일반대학 교직과정 2343명, 교육대학원 2669명, 사범대 118명 등 8073명이 양성 정원으로 조정된다. 이미 교육부는 앞서 2015년 평가에선 사범대와 교직과정 등 정원 3220명을 감축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신규 교사 채용은 감소했는데 예비 교사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2017학년도 중등 교사 임용시험은 4066명 선발에 4만6530명이 응시해 11.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곧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중등교사 양성기관 질 관리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부실 양성기관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임 교수 한 명도 없이 외래 교수, 시간 강사 등으로 교육과,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등을 운영해 온 곳도 없지 않았다. 교육과정과 프로그램도 부실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교원양성을 영리 수단으로 치부한 대학 운영자들도 없지 않았다. 이와 같이 부실한 교원양성기관에서 우수 예비교사를 양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질의 교원양성기관에서 훌륭한 예비교사가 양성되고, 이들 예비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 선순환과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부의 이번 교원양성기관 폐지와 교원 양성 정원 감축은 만시지탄이다. 이번 교육부의 조치가 우리나라 교원양성기관 질 개혁과 질 관리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교육부 등 타의가 아니라 교원양성기관, 대학이 스스로 육영의 관점에서 질 개혁, 질 관리를 하여 훌륭한 예비교사 양성의 소임과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범계 대학(과정)에서의 교원양성 기능은 대학의 그 어느 역할보다 중요한 미션이라는 점도 유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