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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경제법칙을 기계적으로 외우는 학습은 무의미하다. “상류층으로 넘어간 돈이 부디 빈민들에게도 낙수되기를 고대한다”는 윌 로저스의 말과 ‘레이거노믹스’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으며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하려면 초등학교때부터 경제활동 경험과 독서활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낙수효과(Trickle-doun effect)의 정의를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낙수효과가 의미하는 경제정책의 복잡한 이면의 터득은 경험과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 처럼 돈을 버는 일과 소비하는 문제, 빚과 저축의 문제를 직접 체득하고 ‘돈’에 대한 관념을 익히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작동하는 지 시장경제를 스스로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법칙의 산 교육이다. 경제학자의 이름과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할애했던 기존의 수업방식은 학생들의 미래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2004년에 읽은 네덜란드 생활수학 관련 논문에 의하면 사각형에 대한 수업을 수학·건축·경제·미술·국어 등으로 완벽하게 통합해 지도한다. 입지조건이 좋은 곳(사회,경제)에 사각형의(수학)에 대지를 선정해 집을 짓는(건축,미술) 과정을 보고서로 작성(국어)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청사진을 찍기도 하고 대지의 넓이를 측정하고 입지에 대한 경제적 조건을 토론하는 등,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병합교육을 하는 우리와 달랐고 시간계획도 달랐다. 열두살의 키라가 가는 은행의 담당 직원은 ‘학교에서 돈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경제와 금융에 대해 성인이 되고나서야 초보처럼 익히는 것은 너무 늦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돈을 알고, 수입이 통장이나 카드로 들어가고 나서야 금융에 대하여 익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학교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통합적 프로젝트 교육으로 진행하면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흥부는 무능력하나 착해서 많은 재물을 얻고, 도깨비방망이는 착하기만 한 인물에게 대가 없이 주어진다. 착한 것과 돈은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방해 도깨비방망이를 얻고자 하는 제2의 인물은 욕심많다고 벌을 내린다.임금이 내린 볶은 꽃씨가 꽃을 피우지 않자 어떻게든 꽃을 피운 국민들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꽃이 피지않는다고 대책없이 그냥 두기만 한 인물에게는 정직하다고 상을 준다. A기업에서 B음료를 만들어 대박이 나면 C기업은 비슷한 D음료를 만드는 것이 시장의 원리이고, 실패를 딛고 제2·제3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처절한 경쟁원리이다.권선징악이 학습목표라 할지라도 설화교육은 비현실적이다. 독서력이 높은 초등학생들은 설화의 이러한 불합리를 비웃는다. 돈은 속물성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주된 생활원이라는 것, 흥부와 놀부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정당성과 부당성을 토대로 분석하고 토론하는 방식의 수업, 도깨비방망이가 현실적으로 구현된(로또 등) 사례에 대해 조사·발표·토론하는 수업, 5000원을 벌기 위한 목적을 세우고 실천과정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발표하는 통합적인 수업은 초등학교에서 가능한 기본적인 경제수업이 될 것이다. 돈을 부당하게 취하거나 악의적으로 쓰일 때의 문제는 인성교육과 법교육, 도깨비방망이와 로또의 비교분석은 사회학과 심리학 문제로 접근하고, 일확천금의 재산관리는 수학과 금융으로 통합하면 된다.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경제적인 조사분석을 할 재미있는 소재가 되는데도 교과서는 권선징악에만 매달린다.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경제와 금융, 법률은 초등교육에서부터 진행되어야 하며 구태의연한 교과서의 창의적이지 못한 시스템은 변화가 필요하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흉내만 거듭한다. 학교는 개인의 미래에 대한 직접적인 도움을 줄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봄기운이 돈다. 희망을 주는 아침이다. 선생님들은 내일부터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교직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봄기운을 많이 받아 생기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3.1절이다. 이 날 아침에 3.1절이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3.1절은 희생정신을 가르쳐 준다. 희생이 없으면 3.1절 같은 날도 없다. 우리 선생님들에게도 교사로의 사명을 주었다. 사명을 다하려고 하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을 만큼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 없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희생 없는 교육은 큰 효과를 낼 수 없다. 유관순 열사와 같은 희생이 우리 선생님에게 필요하고 학생들에게도 희생정신을 길러줘야 나라가 어렵고 암흑의 길로 갈 때 그 길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너 죽고 나 살자,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나 죽고 너 살리자’는 정신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유관순 열사와 같은 애국자를 길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사즉생이라 죽으면 곧 살게 된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고 모두가 살게 된다. 3.1절은 희망을 주는 날이다. 삼일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독립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1절은 입춘과 같은 날이 아닌가 싶다. 입춘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 푸르고 푸른 봄의 계절이 반드시 온다. 더 심한 추위가 희망을 사라지게 하려 하지만 결국은 희망의 봄은 온다. 결국은 온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희망의 선생님이 되어야 하겠다. 희망이 없는 선생님이 많으면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심어줄 수가 있고 긍정적인 미래를 심어줄 수가 있다. 희망이 없으면 모두가 실패하게 되고 모두가 쇠퇴해지고 만다. 3.1절은 유관순 열사 같은 인재를 길러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자기 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남을 생각하고 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이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다. 유관순 열사는 우리 학생들의 나이 때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을 잘 길러내면 위기에 처할 때 나라를 잘 구해내고 이끌어갈 지도자가 배출되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게 된다. 3.1절은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을 가르쳐 준다. 모두가 생각이 똑같다. 일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 구석구석에서 태극기 들고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나라가 든든하게 서갈 수가 있다. 국민들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면 나라의 장래가 위태로워진다. 앞으로 우리는 평화통일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에서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평화통일의 길은 멀 수밖에 없다. 학급에서부터 하나 되기, 가정에서부터 하나 되기, 학교에서부터 하나 되기가 시작되어야 나라 전체가 하나 되고 나아가 저 북한 사람들과도 하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서 평화통일을 꿈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나가 되는 일에 힘을 써야 하겠고 삼일정신으로 무장해서 나라를 철통같이 지키는 일에 한 뜻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아이들과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고 희망찬 1년을 향해 나아갈 때다. 이 시기에는 교사가 자기 반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육관, 학급경영방침, 순조롭고 즐거운 학급 생활을 위한 규칙과 규율, 질서유지 방안 등을 수시로 설명해 각인시키는 것이 1년의 생활지도에 큰 도움이 된다. 학년 초에 아이들이 지켜야 하는 자유로움의 상한선을 수시로 설명해 주고, 해도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일일이 예를 들어 안내해 줌으로써 학교규칙을 지키는 평화로운 학급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폭력, 학생 간 싸움, 따돌림 등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긍정적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교사-학생, 학생-학생, 개인-또래집단, 또래집단-또래집단, 심지어는 교사-학부모 관계에서 모두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학급운영규칙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들, 지켜야 할 학교규칙, 상·벌점 관련 내용, 학급운영규칙 등의 문서를 교실에 도배하듯 써 붙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다른 문서에 가려 아이들에게 외면당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B4용지 등을 사용하거나, 색지 사용, 컬러화, 도표 삽입 등의 그래픽 작업을 통해 아이들의 눈에 많이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수시로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 연구에 의하면 아이들은 담임교사가 제시하는 규칙보다 직접 참여해 만들어낸 규칙을 더 잘 지키는 경향이 있다. 학급회의 시간을 통해 학교폭력예방 관련 내용이 포함된 학급운영규칙을 정해 보자. 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반복해서 강조하기 어찌 됐든 간에 학교폭력예방교육은 무엇보다 학교 당국의 엄정한 방침 안내와 담임교사의 세심한 훈육과 관심이 우선돼야 한다. 다른 생활지도 분야와 달리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할 때는 교육 당국 무관용 원칙과 학교 측의 철저한 조치 시행이 있게 됨을 수십 차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사들이 하게 되는 실수 아닌 실수가 있다. 본인은 이미 여러 차례 안내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이나 선도처벌의 준엄함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과 달리 규칙을 망각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또 전두엽의 미성숙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결여될 때가 어른보다 훨씬 많다. 어찌 보면 그네들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라고 체념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그래야 매일, 혹은 일주일에도 서너 번 이상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하는 자신에게 짜증나거나 신경질 나는 것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게 된다. 학생이 알아야 할 학교폭력 예방수칙 예시로 제시한 ‘학생이 알아야 할 학교폭력 예방수칙’은 필자가 교육부,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미국 학교폭력예방 포털, 스쿨폴리스, 학교폭력 예방 활동으로 유명한 송형호 서울 천호중 교사 등의 자료를 참고해 나름 정성을 기울여 제작한 문서다. 수백 명의 생활부장, 상담교사, 스쿨폴리스 등 학교폭력 전문가에게 검증을 마쳤으므로 비교적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실 게시판 등에 큰 복사용지를 사용하여 두세 군데 이상 게시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학기 초에는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인쇄해 나눠 주고 교사가 읽어가면서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효율적인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할 수 있겠다. 학교폭력 예방 카피 활용하기 “피해당한 친구와 같은 편이 되어주는 것이 학교폭력 예방의 시작입니다.” 학교폭력 전문가 이상인 경관이 만든 학교폭력 예방 카피다. 필자의 경험상 학교폭력의 의미와 예방을 모두 함축적으로 표현해 학교폭력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캠페인 문구라고 사료된다. 이 역시 교실 곳곳에 게시하거나 캠페인을 전개할 때 피켓 카피로 활용할 수 있고, 수시로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 줌으로써 아이들이 학교폭력의 본질을 파악하고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어울림 프로그램과 영상교재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대학연구소, 현장교사가 손잡고 개발한 학교폭력예방교육 프로그램인 ‘어울림’도 활용해 볼 만하다. 교육부 학교폭력 예방 누리집 ‘도란도란(http://www.dorandoran.go.kr)’에서 자료를 다운받아 예방교육에 활용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 도란도란 → 자료실 → 자료실 검색 탭에서 ‘어울림’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초등 저학년·초등 고학년·중학·고교 등 연령별로 구분돼 있고, 학생·교사·학부모 별로 학습지도안을 제공한다. 교육부, 한국방송공사, 현장교사가 함께 제작한 학교폭력 예방 영상교재도 있다. KBS드라마 ‘학교2013’을 활용해 만들었다. 도란도란 → 자료실 → ‘학교2013’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학생·교사·학부모 별로 영상과 학습지 등을 제공한다. 거의 매일매일 반복되는 예방교육과 담임교사의 관심, 철저한 선도 조치만이 우리 아이들이 괴롭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선결조건이다. 다소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똑같은 내용의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할지라도, 그것이 평화로운 학급운영의 초석이 됨을 명심하고 학교폭력예방교육에 힘을 쏟아야 하겠다. 아침자습 시간이나 평상시의 수업 운영 때, 아이들의 안색이 어둡거나 표정 변화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교사는 없을 것이다. 수업을 오가면서 자기 학급을 지나갈 때 시도해 볼 수 있는 ‘불쑥 방문’, ‘10초 방문’도 우리가 시행해 볼 수 있는 학교폭력 예방 비책이 될 수 있겠다.
3월 새 학기입니다. 학교와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는 이제 기나긴 겨울은 가고 새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교육자의 한사람 이기도 한 저에게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가장 기다려지기도 하고 막상 교단에 서면 긴장되기도 합니다. 바로 학생들과 첫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 겨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잘한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미진했던 것은 보충하는, 반성과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겨울도 비록 바깥은 영하의 찬바람이지만 전국의 선생님은 오히려 뜨거운 여름 한낮처럼 땀 흘리시며 연수에 열중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각고의 자기연찬이 있었기에 새 학기를 맞으신 선생님의 마음에는 더 큰 열정과 사랑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세 한 연 후 지 송 백 지 후 조 야 ‘추운 계절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만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옛말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50만 선생님을 지칭한 말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런 선생님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새교육도 3월호부터 지면 개편에 들어 갔습니다. 외형만 바꿔 새 옷을 입고 나온 것이 아니라 내용도 교육전문지 새교육의 정체성을 더 살릴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먼저 기획특집란을 통해 교육현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육정책과 환경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이것이 선생님에게 미치는 파장과 이에 대한 대응을 심도 있게 다룰 예정입니다. 또 그동안 선생님들의 교직생활 법령 등과 관련해 유용한 최신정보를 제공해온‘똑똑 교직 상식’지면도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증면했습니다. 차츰 현장성 높은 취재기사의 비중도 확대해 현장의 우수한 교육사례와 목소리를 더 생생하게 전해드릴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한 지식을 엄선된 집필진을 통해 소개해 나가겠습니다.그 외에도 선생님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폭넓게 게재해 학교현장의 수업과 업무로 바쁜 선생님들의 교직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참신한 필진을 대거 영입해 신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1948년 창간 이래 새교육은 늘 선생님과 함께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과 학교현장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전문지로서의 역할과 사명을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 나가겠습니다.
‘3월’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많다. 교정에서는 겨우내 준비하고 있다가 여기저기에서 푸릇푸릇 새싹과 새순이 싹터 올라오고, 조용하고 썰렁했던 학교가 초롱초롱 눈망울과 활기찬 움직임으로 부산스러워진다. 3월은 교사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달이면서 정신이 없는 달이다. 시업식, 입학식, 교육과정 설명회 등 행사에다 학생의 실태 파악하고 관계 맺기, 교육과정 수립·운영,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 계획, 각종 업무추진계획, 교실의 교육환경 구성 등 정신 없이 바쁜 달이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내용들이다.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에 1년 동안 행복하게 삶을 가꾸는 관계의 초석을 다지는 달이다. 교육의 기초는 신뢰 학교는 구성원과 신뢰 관계를 통해 긍정적인 자아를 빚는 곳이자 가치 있고 행복한 현재의 삶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존엄성, 소질, 꿈을 존중해야 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삶의 역량을 기르는 학생중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미리 학교비전을 명확히 세우고 교직원은 물론 학부모와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적 의사결정, 존중과 배려, 공유와 협력의 전문성 함양, 역량 강화를 위한 창의적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 학교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원해야 한다. 교실을 행복한 미래의 삶의 터전으로 가꾸는 데는 교사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선수범하는 자세, 언행일치의 자세로 신뢰받는 교사가 돼야 한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평범한 교사는 그냥 말한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해 보인다. 그리고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고 했다. 2017학년도에도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교사들이 가득하리라 믿는다. 언어학자인 정도상 박사의 핀란드 유학시절 일화를 들어보자. 정 박사는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교사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아이가 핀란드어를 몰라 다른 아이들과의의 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교사인 자신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돌보기가 힘들다는 말에 가급적 빨리 집에서 핀란드어를 가르치라고 재촉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는 자기가 한국어를 배워 아이를 돌볼 테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제안을 했다. 교사가 아이의 눈으로 돌아가 아이와의 관계를 맺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이 우리 교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관계를 맺는첫 날을 위한 팁 1년 동안 가꿔갈 관계의 첫 만남은 시업식과 입학식이다.시업식 날엔 새로운 친구, 새로운 담임교사와 관계를 갖는 날이다. 학생과 만나는 첫 날 서로가 믿음과 사랑으로 1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서로 간의 인사와 함께 첫 날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 1년 동안 함께 할 우리의 약속 정하기, 서로에게 바라는 내용 이야기하기, 담임교사의 1년간 학급 운영 계획 안내 등 1년간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관계를 시작하는 기회로 삼는 게 좋겠다. 유치원의 보살핌을 받던 시기에서 스스로의 자립을 시작하는 입학식 날도 마찬가지다. 아마 신입생들은 설렘, 호기심, 기대 등으로 벅차오르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이를 고려해 상급생과 담임교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입학식을 진행해야겠다. 입학식장도 신입생들의 호기심을 이끌 수 있게 꾸미고, 신입생과 재학생이 함께 하는 입학식으로 형제 관계와 같은 우애가 시작됨을 알려줘야 한다. 입학식장에 손잡고 입장하기, 형들의 축하 공연, 형제 맺기 언약, 기념사진 촬영 및 인화하여 남기기 등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관계의 바탕을 만들어줘야 한다. 3월 중순 쯤에는 교육과정 설명회가 있다. 교직원과 학부모의 관계가 맺어지는 시간이다. 학교의 비전 공유, 교육과정의 충분한 이해를 위한 준비, 학년말 학부모의 토의를 통해 정한 학부모의 약속 알리기,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위한 각종 연수 등 첫 단추를 바르게 꿰는 관계의 시작이 돼야 한다. 아울러 설명회가 끝난 후 갖는 담임과의 대화에서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도 신뢰로 맺어야겠다. 담임교사의 교육 철학과 교육방향을 정확히 제시하고 학부모의 의견도 듣는 가운데 신뢰의 관계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3월은 사랑의 관계를 시작하기 충분한 시간 필자가 근무하는 기흥초에서는 지난 12월 중순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 하는 대토론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기흥초를 한마디로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기흥초는 사랑입니다”라고 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학년 초 협의를 통해 ‘사랑합니다’를 인사말로 사용하기로 하고도 1학기 내내 어색해서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하던 친구들이 이제 밝고 사랑스런 표정으로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사랑’의 효험을 느끼고 있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말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삶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생각과 말이 중요하고 지속적인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학년 초부터의 이를 생활화하기 위한 존중과 배려의 교실문화가 필요하다.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실린 한 구절이 생각난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1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 그렇지요.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는 데 하루면 되는데 3월 한 달은 우리 학생들에게 얼마나 긴 시간인가.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3월에 가져야 할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길고 추운 방학도 끝나고 어느덧 3월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신입생 입학식을 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배부하며, 학생과 교실, 교무실 좌석 배치까지 끝내고 신학기 업무에 바쁜 시즌이다. 늘 그렇듯 한 해의 시작은 설렘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일거리로 정신이 없다. 그런 가운데 학생 못지않게 학부모는 신학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어떤 교사가 아이의 담임이 됐는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담임교사에 대해 묻는다. 물음은 뻔하다.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윽박지르는지, 그것도 아니면 방관하는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입소문을 듣는다. 요즘 아이들은 영민해서 5분이면 교사가 자신들을 정말 아끼고 존중하는지 말과 태도, 옷차림에서 알아챈다고 한다. 학급운영의 틀을 잡자 이는 평소 교사의 교육철학과 관련 깊다. 초반에 엄하게 지도해서 기선을 잡아 지도하려는 스타일이 있고, 부모처럼 온화하게 다가가는 온정형도 있고, 투명인간처럼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한 타입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청소년 문제가 빈발하는 시대에 처음부터 유순하게 다가가는 것도 조심스럽고 매섭게 길들이려는 것도 섣부를 수 있다. 그러니 담임은 연극배우와 같이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개별적인 것은 자애롭게 할 수밖에 없다. 학교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요즘은 담임도 안 맡으려 하고 힘든 업무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담임이야말로 인간의 인격을 빚어내는 고귀한 역할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인격체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운명적인 임무에 기반을 둔다. 이를 위해 담임은 학급운영에 대한 연간계획의 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계획성 있는 학급관리 그리고 수업준비 및 업무처리 등을 미리 점검한다면 여유로울 것이다. 그렇지 못한 채 학급을 운영하다보면 아이들조차 우왕좌왕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또 수업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업무처리에 민첩하지 못하면 학생들의 불만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동료의 빈축까지 사게된다. 아이들의 이름도 최대한 빨리 기억해야 한다. 교무실에 찾아온 아이의 이름을 몰라서 쩔쩔맨다거나 교실에서 아이를 호명할 때 “야, 너!”라고 한다면 학생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름을 불러줘야만 존재감 이상의 ‘존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학급 아이의 사진을 ‘모아보기’로 출력하거나 컴퓨터 화면 보호기에 ‘슬라이드 쇼’를 이용해 사진을 보며 아이의 이름을 외워도 좋겠다. 미소 띤 얼굴로 이름을 불러준다면 아이의 심장에서 쿵쾅쿵쾅 교사의 사랑이 자랄 것 아니겠는가. 진심어린 사랑이 통해야 진정한 존경도 우러나고 잊지 못할 교사가 되는 것이다. 학급의 환경을 어떻게 꾸밀까도 고민해야 한다. 게시판 꾸미기, 비품 확인, 책걸상 실명제, 화분 관리, 실내청소, 주간청소담당 배정까지 포함된다. 낡은 교실도 책상이나 벽의 지저분한 것은 하루 날짜를 잡아 학생과 함께 대청소를 해도 좋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학생 몇몇과 함께 낙서도 지우고 쓰레기도 치우면 사제 간의 정이 풀풀 날 것이다. 끝난 후에 자장면이라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랴.아울러 커튼 고리가 빠진 데가 없는지, 형광등은 조도가 적당한지, 책걸상은 삐걱거리지 않은지 일일이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으로 벽에 부착할 것을 갖춰놔야 한다. 교실 앞쪽에는 학급부서 조직표, 학급규정, 주간청소담당 조직, 교실 옆면에는 학사달력과 명언, 뒷면 게시판엔 소식과 알림, 진로의 세계 또는 이달의 역사나 국내외 이슈 등 을 게시하면 좋다. 덧붙여 아이들의 좌우명이나 꿈을 부착해도 좋다. 예쁜 화분 몇 개와 우량도서 몇 권을 비치하면 얼마나 예쁜 금상첨화이랴. 급훈은 교사가, 자치규약은 학생이 급훈 역시 담임교사가 고민할 내용이다. 어떤 교사는 자유분방하게 또는 익살스럽게 정하지만 급훈은 담임교사의 철학과 경영의지가 담겨야 한다. 아이들이 학급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건 아니다. 아버지가 가훈을 정하듯 전적으로 담임이 결정할 일이다. 급훈을 걸고 난 뒤에도 취지를 구성원에게 설명해 그 참된 가치를 알도록 하면 좋다. 반장과 임원, 청소담당을 정할 때에도 공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더러 인기에 영합해 부적절한 아이가 선출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조언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반장선거에서 차순위의 아이를 부반장으로 시켜서는 안 된다. 부반장 역시 별도의 투표과정을 거쳐야 자긍심을 가진다. 아울러 소수의 득표로 반장이 되는 일이 없게끔 과반수 득표가 나올 때까지 후보자를 압축하는 절차와 규칙을 정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반장이 돼야 구성원과 함께 책임을 질 수 있다. 요즘은 ‘주번’, ‘당번’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고 아예 주번이 없는 학급도 많은데, 아쉬운 일이다. 주번이란 말은 없어도 청소와 도우미 역할을 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낱말이 마땅치 않으면 ‘주 청소담당’이라든가 ‘환경도우미’라고 해서라도 자기 학급은 스스로 쾌적하게 책임 지우는 것이 교육이다. 더러 청소담당을 지각한 아이에게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비교육적이다. 청소는 징벌적 개념이 아니라 봉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보다 먼저 나와 교실 환기도 하고 쓰레기도 치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 자주 교실에 들러 아이들의 평소 모습을 살펴야 한다. 이것이 부모 같은 교사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급자치규약을 만들어야 한다. 규약은 학급회의를 통해 만들어도 되고 임원들에게 맡겨도 좋다. 예를 들어 ‘욕설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복장을 단정히 한다’, ‘교실에서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등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규약을 어긴 학생은 주별 단위로 담임이 상담을 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선생님께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 여기에 더해 학생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만들도록 한다. 가족에 대한 소개, 친구 소개, 성장과정과 건강상태, 장래 희망을 비롯해 ‘선생님께만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적게 하면 도움이 크다. 이것을 바탕으로 학생과 면담을 하는 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상담 공간의 선택인데 공개된 교무실에서는 면담이 불가능하다. 내면까지 이야기를 나누겠다면 별도의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날이 덜 춥다면 황혼 무렵 교정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알콩달콩하다.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맡은 담임으로서 인사말과 함께 자신의 교직관과 원칙, 열정을 펼치고 휴대폰 번호를 남겨 놓는다면 학부모는 그 편지 한 통으로 봄의 향훈을 만끽할 것이다. 3월, 청춘을 불사르기에 얼마나 좋은 계절인가!
학년 초가 되면 교사는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하는 반가움과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 그도 잠시 ‘이 아이들을 어떻게 잘 지도할까’로 다시 걱정과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학년 초 첫날 학생을 대면하면서 교사로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곤 한다. 이 땅의 모든 교사의 과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잘 지도할 것인가’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하는 학생지도지만 갈수록 어렵고 힘든 것이 교육이다. 교사의 기본은 수업이며, 동시에 좋은 수업을 통해 교사 성장한다. ‘가르치는 일은 더 성실한 배움의 시작’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르치며 배우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일이며 이를 통해 교사의 교수역량이 성장하게 된다. 그러기에 교사는 수업으로 말하고 수업으로 행동하고 수업으로 마무리 한다고 할 정도로 좋은 수업이 모든 교사의 꿈이고 생명이다. 그런데 이런 수업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어려운 것은 왜일까. 그것은 교사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수업 대상인 학생과 교수·학습을 이루고 있는 교육환경이 함께 잘 조화를 이룰 때에만 좋은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교육여건은 이런 점에서 매우 취약하다. 교사들은 오직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무업무 경감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무행정지원사나 실무사의 도입으로 교사의 업무가 줄었다고 하지만, 도입초기 목표였던 ‘교사의 행정업무 제로화’와는 크게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다시 방과후 학교, 초등돌봄교실 등 새로운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바뀌고 교육감이 취임 때마다 행정혁신이니 행정업무 경감이니 전시성 대책을 내놓지만 실상은 새 정부와 교육감이 새로운 업무를 하나 둘씩 더 부과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수업 결손의 가장 큰 이유로 공문서 작성과 잦은 출장을 꼽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 전문가로서 좋은 수업을 위해 연구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교사 학습공동체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교사들은 학습공동체 활성화 저해의 1순위 학교 여건으로 ‘담당 업무 과다’를 꼽았다. 현행 교육과정만 해도 그렇다. 교육과정이 수시 개정되면서 매 학기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도 급급하다. 이러다보니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교육, 토론과 토의수업, 4차 산업혁명 대비 교육은 엄두도 못 낼 판이다. 여기에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교육정책과 관련 교재 등은 학교교육과정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정책 변화에 따른 각종 계획과 연수가 넘쳐나고, 심지어 수업내용과 방식, 평가방법 등 교사의 고유한 자율권까지 침해받고 있다. 교육감의 무분별하고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의 과다 생산으로 학교현장은 4년을 주기로 혼란과 혼동 속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두고 교육혁신과 교육개혁의 치적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말로는 현장중심 교육이라 하지만 일선 교사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또 국회나 시·도의원의 긴급한 요구 자료도 만만하지 않다. 교육예산지원과 관련된 공문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교육과정도 수시 개정으로 이 모양인데 상시국감 얘기가 나오고 있다. 소위 ‘갑들의 잡무 폭탄’이다. 물론 과거보다 많은 자료들을 전담 교무행정지원사나 실무사가 작성하지만, 그 기본 데이터는 어차피 담당교사나 부장교사가 제공해야 한다. 이런 잡무 성격의 공문 처리로 인해 교사의 주 업무가 수업이 아닌 교무행정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교직사회에서 말하는 교사의 ‘잡무’란 교과지도, 생활지도, 특별활동지도를 포함한 교육과정 운영과 학년·학급 경영 참여, 연찬 활동, 그리고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육활동을 크게 벗어난 업무를 말한다. 교사가 잡무에 시달린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당국의 무책임함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천적 해결 없이 교사들에게만 계속해 뭔가 요구하고, 어떻게 공교육을 살리겠단 말인가. 정부나 시·도교육청은 공문서 없는 날, 공문서 감축목표제를 시행하지만 대부분 공문서가 메신저 메시지로 대체되는 등 실질적으로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교무행정지원사나 실무사 배치에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제 교사들이 겪은 잡무 경감의 정도는 미미할 뿐인데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교육당국은 벌써부터 확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래놓고 새로운 업무는 급속도로 늘려주고 있다. 잡무 경감의 목적은 업무를 편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과 학생생활지도에 필요한 시간을 쓰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원활한 학교행정업무도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분명히 교수·학습지도의 걸림돌의 하나다. 교사의 교무업무는 학교의 규모나 구성원의 업무능력에 따라 다르다. 특히 소규모 학교일수록 이에 대한 부담은 더 늘어나, 이 이유 때문에도 교사들이 소규모학교 가기를 기피할 정도다. 이 같이 행정과 관련된 업무로 인해 교육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모두 학생교육의 피해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교육예산 부족과 비정규직과의 갈등으로 오히려 교무행정지원사나 실무사를 줄이는 등 거꾸로 가는 교육정책을 내놓기도 해 답답하기만 하다. 사실, 공교육의 질적 저하의 주요 요인도 바로 잡무에 있다. 사교육 강사들의 주 업무는 공교육의 교사와 달리 수업과 학생 지도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강사들은 오직 학생수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집중해 더 좋은 수업연구로 수업의 달인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사교육은 공교육과 경쟁할 수 있게 되고 학생 개개인 입맛에 맞는 개별화와 맞춤형 수업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유인하고 있다. 교육 선진국들이 앞을 다퉈 교사의 교무업무 경감을 추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교사로 하여금 수업에만 전념케 하겠다는 국가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도 공교육을 활성화하고 사교육비 경감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업무의 족쇄를 당장 풀어야 한다. 공교육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가 교사의 교무업무였다면, 이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하루바삐 세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좋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푸른 꿈을 꾸게 하고, 교육열정을 갖고 잘 가르치는 교사다. 이런 교사를 만들기 위해 잡무를 과감히 줄이고, 교사가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일이 우리 교육을 다시 살리는 첫걸음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의 고도화된 지능정보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이 교육에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새로운 사회 변화에의 적응, 즉 사회 수요에 적합한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의 문제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지능정보기술의 교육적 가능성 검토다. 특히 지능정보기술의 교육적 적용은 학습자의 관심과 흥미, 수준을 고려하지 못하는 현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그 가능성은 현실이 되고 관련 서비스가 개발, 적용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교육적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확산되고 있는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자 맞춤서비스 도입 사례 분석을 통해 우리 교육이 추진해야 할 혁신 과제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특히 학습 역량 및 수준을 고려한 모바일 기반의 학습콘텐츠 제공, 학습 활동 데이터 분석 및 개선을 지원하는 학습분석(Learning Analytics)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각 서비스의 특징과 시사점을 살펴보자. 지능정보기술 적용 맞춤학습 서비스 사례 칸 아카데미 - 맞춤형 무료 온라인 교육서비스칸 아카데미(Khan Academy, https://www.khanacademy.org)는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일종으로 살만 칸이 2008년 설립한 맞춤형 무료 온라인 교육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유치원부터 대학기초 수준까지 수학, 생물, 화학, 물리, 경제, 금융, 역사, 문법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학습자의 수준에 맞게 선택해 활용할 수 있다. 현재 36개국 이상의 언어로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월 38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서비스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어 서비스(https://ko.khanacademy.org)도 게시했다. 칸 아카데미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동영상 학습 콘텐츠를 무료로 제시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각 과정마다 과제와 테스트가 제공되고, 그 결과를 분석해 학생의 학습 수준 측정 및 맞춤형 코칭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은 ‘자기주도 학습관리 시스템(Self-Motivated 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통해 자신의 현재 학습내용 및 진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의 학습 동기를 유발, 유지시키기 위해 학습 포인트나 배지 제도를 통해 지속적인 학습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개인 수준이 아니라 교사를 중심으로 한 학급 단위의 학습 참여도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교사는 학급 단위의 개인별 학습 진도 파악을 통해 학습 코칭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어 학생의 개인학습뿐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에 접목도 가능하다. 애리조나 주립대 - 기초학력 수행 지원 학습분석 서비스애리조나주립대에서는 학생의 기초 수학 능력이 약화되고, 관련 전공 심화과목 이수에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하반기부터 ‘대학 기초 수학’ 강좌를 클라우드 기반의 ‘학습분석’ 서비스인 ‘마이매스(MyMath)’ 온라인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에서는 기초 수학 강좌에 대한 학생의 학습행동(점수, 속도, 정확성, 기록, 지체되는 부분, 점수를 잃는 부분 등)을 분석해 학생의 해당 항목별 이해 정도, 좋은 학습 방법 등을 파악하고, 분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별로 수준에 맞는 속도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교수는 학생 개인의 성적 현황, 이해 정도 및 그룹별 이해 정도와 추세 등을 분석한 리포트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 보충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서비스는 상용화된 사례 중에서 가장 진보한 적응형 학습분석(adaptive learning) 사례로 꼽힌다. 서비스 도입 이후 애리조나주립대는 기초 수학 과정 통과 학생 비율이 64%에서 75%로 증가하고, 중도 포기 학생 비율이 16%에서 7%로 감소했고 조기 수료 학생 비율이 한 명도 없었던 0%에서 45%로 증가했다는 성과를 공개했다. 미네르바 스쿨 - 온라인 실시간 강의와 학습관리 서비스 접목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은 첨단 기술이 도입됐을 때 불필요한 시설과 조직 운영으로 인한 비효율성, 과도한 등록금, 사회 수요와 미스매칭 등의 문제를 가진 전통적인 대학 체제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혁신 사례다. 미네르바 스쿨은 물리적인 강의실이 없다. 교수와 학생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기존 온라인 강의와는 다르게 실시간 영상 강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업 정원은 20명 내외로 제한되고, 토론 및 과제 중심의 강의가 이뤄진다.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 이뤄지지만 학생들은 7개국을 돌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동체 경험을 하는 점이 이채롭다. 미네르바 스쿨의 강의 방식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전통적 온라인 강의와 달리 교수가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화면에는 학생의 수업 참여도가 의견 개진 회수 등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색깔로 표시(빨간색은 참여도가 높음, 초록은 참여도가 낮음)돼 학생 스스로 또는 교수가 학생의 수업 참여를 유도하는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다. 수업 중 발표되는 모든 정보는 녹화돼 객관적인 학생 평가와 상담에 활용되며, 학생 의견을 포함한 모든 데이터는 학생 그룹을 구성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미네르바 스쿨은 온라인 수업 활동에서 발생되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수업 개선 및 촉진에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강의실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적인 수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능형 맞춤학습 서비스 체제 구축해야 앞서 살펴본 세 가지의 서비스의 추진 배경에는 현재 교육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와 성찰이 있다. 양질의 학습 콘텐츠를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칸 아카데미는 교육 기회의 확대이며, 애리조나주립대의 ‘마이매스’ 서비스는 기본적인 학습 능력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미네르바 스쿨은 보다 혁신적인 모습으로 전통적 학교의 모습인 정해진 교실, 정해진 공간에서의 학습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린 사례다. 이런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술의 발달이다. 정보의 접근성을 보장해 주는 모바일 서비스의 확산과 무엇보다 학생의 학습활동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해 학습 개선이나 촉진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교육 분야의 빅데이터 분석 기술인 학습분석 발달이 기반이 됐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으나, 인간의 사고 능력을 기계가 가지게 되면 기계가 능숙하고 뛰어난 개인교사(Tutoring)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기술의 발달을 교사의 역할을 대체한다거나 인간의 정체성 해체 등의 부정적 단면으로만 인식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 교류는 여전히 교사와 학교의 변하지 않는 역할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다인수 학급에서 개인별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을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해결하고, 공동체적 경험을 확대하는 학교의 역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학습분석을 통해 제공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교사의 교수 활동에 활용하는 교사 역할 강화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교육의 주요한 과제는 이런 인식의 전환을 기반으로 교육과정의 연계성과 체계성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디지털학습자원의 구축,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혼합학습(blended learning) 기반의 교수·학습 실천, 학습분석 결과에 기초한 학습 개선과 촉진 등을 독려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능형 맞춤학습 서비스 체제 구축일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발표했다. 올해 개발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단계별로 학교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초등 3~6학년 사회·과학·영어, 중학 사회·과학·영어, 고교 영어 교과에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비판도 거셌다. ‘좋은교사운동’은 효과는 애매한데 예산은 많이 차지한다며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했다. 8월 28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현장 교사 중 일부도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했다고 한다. 세계는 이미 디지털교과서 사용 중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디지털 교과서를 속속 도입하는 국가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13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발표한 이래 많은 주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2017년까지 공립학교의 모든 교과서를 디지털화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뉴욕 주는 IT기업 아마존과 340억 원 규모의 디지털 교과서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도 전체의 42.8%가, 프랑스는 전체의 40% 정도가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 중이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에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수준별 학습을 돕는다.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한다. 마지막으로 학습 효과를 높인다. 모두 좋은 말이지만 왜 디지털 교과서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디지털 교과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든,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이든 책이 디지털화되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그저 책에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추가한 책 느낌으로 이해하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책이 전자화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형식에 맞춰 모든 게 달라진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처음에는 기존 기술을 닮게 된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TV의 예를 들어 보자. 처음에 TV는 영화를 틀었다. 영상 매체라면 영화밖에 몰랐던 시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TV 프로그램은 영화와 달라졌다. TV라는 형식에 최적화됐다. 지금은 TV 드라마와 영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모두 이해한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자책은 그저 화면으로 보는 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단 어떤 문서가 전자화되면 그 형식에 맞춰 모든 게 달라진다.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그중 4개만 소개해 보겠다. 첫째, 연결된다. 인터넷을 상징하는 형식은 ‘하이퍼링크’다. 어떤 링크를 클릭하면 다른 문서로 넘어간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서가 이어진다. 교과서가 이렇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수많은 연결 가능성이 생긴다. 요즘 유행하는 융합 교육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키워드에 따라 서로 다른 과목과 학년이 촘촘히 이어지게 된다. 전자화 되면 최종적으로 모든 문서가 하나의 문서가 된다. 마치 인터넷이 하나의 문서인 것처럼. 하이퍼링크를 활용해 책이 전혀 다르게 바뀐 경우가 있다. 바로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이 전자화, 하이퍼링크를 만나 전혀 다른 문서가 된 좋은 예시다. 마찬가지로 일단 전자화되면 책은 모든 문서가 연결된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된다. 둘째,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책은 한번 찍으면 수정할 수 없다. 종이책은 오랜 기간 보존 가능하다. 그 영속성이 바로 책의 매력이다. 전자책은 전혀 다르다.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 종이책은 몇 년에 한 번씩 바꿀 수 있지만, 전자책은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 끊임없이 수정돼야만 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끊임없이 바꿀 수 있다면 교육과정 설계의 모든 부분이 바뀌게 된다. 교과서는 마치 인터넷처럼 새로운 사실과 지식이 생길 때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셋째, 분석된다. 전자화되면 모든 행동이 저장된다. 데이터화된다. 행동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진다. 전자책은 종이책과는 달리 재미있는 데이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아마존 전자책 부분에서 ‘가장 많이 사놓고 안 읽은 책’으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선정됐다. 유저가 어느 부분까지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는 덕분에 나온 데이터다. 학생이 교과서를 읽는 모든 행위가 데이터화된다면 어떨까? 교수·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읽고 넘기는지를 알고 이를 시험 성적과 비교해 진도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넷째, 화면으로 보게 된다. 전자책은 스크린으로 본다. 사소해 보이지만 종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우선 의학적인 문제가 생긴다. 시력이 안 좋아진다거나, 수면을 방해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문제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의학적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면으로 보는 경험(screening)은 읽는 경험(reading)과는 전혀 다르다. 화면으로 보면 더 역동적이다. 더 집중해야 한다. 더 빠르게 읽어야 한다. 고무적인 점은 대부분 학생이 읽기보다 화면 보기에 더 익숙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독서율은 매우 낮지만, 모바일 인터넷 사용률은 매우 높다. 학생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면 더 교육 효과가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맞는 수업을 형식은 내용보다 중요하다. 디지털 교과서와 종이 교과서는 같은 내용을 담아도,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발전할수록 디지털 교과서는 ‘전자’교과서라기보다 기존 교과서의 내용과 개념을 완전히 파괴하는 새로운 교수·학습 도구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수업 방식과 학습 방식마저 바꾸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어쩌면 그만큼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크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여전히 제자리다. 학교를 처음 만들었던 산업화 시대에 학교는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곳이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요즘 세대에게 학교는 더 이상 가장 재미있는 곳도 아니고, 가장 많은 정보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들을 교육하려면 그들에게 맞는 미디어가 필요하다. 디지털 콘텐츠다. 다만 현재의 발달이 덜 된 전자책, 영상 콘텐츠가 교육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확실하다. 언젠가는 다른 모든 것이 그랬듯, IT가 교육, 특히 교과서마저 디지털화시킬 것이다. 음악이 그랬고, 카메라가 그랬고, 회사 업무가 그랬듯이. 그때가 되면 교과서는 우리가 알던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수업도 전혀 다르게 바뀔 것이다. 바뀌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언젠가는 대세가 될 디지털 교과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요즘 교육현장에서 이 말을 빼고는 교육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지능정보화 사회로 전환된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교육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기술과 디지털 환경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빅데이터, 드론, 3D 프린터,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신기술은 앞으로 우리의 생활에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능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을 받고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소프트웨어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부족 많은 사람들은 지능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아이들 스스로 유연하고 효과적인 사고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역량과 실천력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의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는 것에는 대개 동의할 것이다. 이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이하 CT)다. CT는 단순히 컴퓨터처럼 사고하는 것을 넘어 변화하는 상황과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알고리즘을 뜻한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듯 CT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해 우리나라도 오는 2018~2019년부터 초·중등 소프트웨어교육을 의무화한다. 결국, 지능정보화 시대의 교육에 주어진 과제의 핵심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역량과 소양을 생애주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량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다양한 문제해결 경험을 통해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교육의 성공적 도입과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한 준비가 교육의 최전선인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현장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나 코딩교육이 교육과정에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이것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ICT교육에서부터 현재의 소프트웨어교육까지 우리나라 교육현장에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정보화 교육이 폭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학생을 20세기의 교사들이 19세기의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아직도 만연해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은 이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아직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세상을 이해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 학교 현장에서 소프트웨어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을 모두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앱 개발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소프트웨어교육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영어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 때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까지 대한민국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며 영어를 배우고 있다. 이렇게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권 국가에서 살기 위해서나 원어민처럼 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어를 통해 의사전달이 가능해지면 글로벌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데 보다 더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말과 다른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기초가 된다. 물론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크게 문제는 없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 소프트웨어교육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을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직업을 가진 아이들로 만드는 것은 당연히 목표가 아니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방식의 언어를 익히고 디지털 세상을 이해하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언어는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 결국, 소프트웨어교육, 코딩교육, 스마트교육 등은 디지털 미디어나 새로운 기술, 컴퓨터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기술과 의사소통해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 아닐까? 이제는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대에서 인간은 인간을 넘어 디지털 기술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초·중등 교육과정 안에 포함된 소프트웨어교육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기술을 익히고 알고리즘적 사고를 체험하고 CT를 함양한다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데 훨씬 유리할 것이다. 디지털 문명과 소통 준비시켜야 이런 지능정보화 시대의 교육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폭넓은 협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접근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속도보다는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누가 더 잘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 생태계에서 아이들 스스로 디지털 문명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바람직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기계 문명 속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준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교육의 목적은 교과를 총체적으로 배우고 그를 통해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교육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지능정보화 시대의 인간다운 삶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될 것이며 삶의 모든 순간에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나 인터넷 서비스가 인공지능 기술을 만나 우리는 경험해 본 적 없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도 기술의 유혹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할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디지털 문명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며 기술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01 속담이 바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속담의 변이(變異)가 아주 역동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이것이 원래의 속담인데, 요즘은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로 변이돼서 쓰인다. 원래의 속담 표현을 비틀어서, 그 의미까지도 풍자적으로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원 속담이 지닌 품격 있고 교양 넘치는 의미를 저렇게 비틀어 버린단 말인가. 삭막하고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바뀐 속담이 보여주는 현실 풍자는 가히 기가 막히다. 생활 현장의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가 이걸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할 수만 있겠는가.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생겨, 차를 세우고 대로에서 상대방과 시시비비를 벌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바뀐 속담의 뛰어난 현실적 호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위층을 찾아가 항의할 때도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는 속담이 정말 적실하다고 믿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뀐 속담의 뜻풀이는 ‘부드럽고 좋게 말해선 되는 일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뭐 이쯤 되는 것이 아닐까. 속담(俗談)이란 원래 고상하기보다는 속된 분위기가 묻어 있는 언어 표현이다. 그래서 이름이 ‘속담’ 아니겠는가. 그러나 비록 그 표현이 속되기는 해도, 경계하고자 하는 뜻은 자못 바르게 사는 지혜를 품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개방적 네트워킹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포스트모던(post modern)하게 패러디 되어서 변이를 보이는 속담들은 표현도 속되고, 드러내는 뜻 자체도 고상한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속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전통적인 속담에 “꼴값 한다”가 있다. 이때의 ‘꼴’이란 ‘얼굴’을 뜻한다. 얼굴 중에서도 ‘잘 생긴 얼굴’을 뜻하는 말이다. 잘 생긴 사람이, 그 잘 생긴 얼굴을 과시하느라, 터무니없이 건방지거나, 잘 난 척하거나, 교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두고 ‘꼴값 한다’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원래의 속담이 지닌 의미이다. 그런데 이 속담에도 요즘 묘한 변이형이 생겼다. “잘생긴 놈은 얼굴값 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이런 뜻인 것 같다. 꼴값은 이전에는 잘생긴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 꼴값이 오로지 못생긴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꼬집는 말이 됐다. 그뿐 아니다. 이 변이형 속담의 문맥을 잘 짚어 보면 뜻이 자못 고약하다. 못생긴 사람의 행동은 그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것이 모두 다 ‘꼴값’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인터넷과 온갖 디지털 매체들이 융합되면서 숱한 시각 영상들이 현대인이 사는 생태 환경이 된 셈이다. 대부분의 소통이 시각적 소통이므로 서로가 시시때때로 보여 주는 얼굴의 외관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대중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형을 몇 번씩 하는 것을 불사하는 일은 이제 연예인들만의 욕망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인들에게도 보편의 욕구가 됐다. 뜯어 고쳐서라도 잘 생긴 얼굴을 만들어야 출세한다는 생각은 이 시대 세태 인심이 됐다. 용모지상주의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잘생긴 놈은 얼굴값 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 한다.” 이 변이형 속담에서 느끼는 가치의 왜곡은 걱정스럽다. 잘생기면 그 자체가 미덕이고, 못 생기면 그 자체가 악덕이라는, 고약한 이분법적 편견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변이형 속담에서 ‘얼굴’ 대신에 ‘돈’을 대입해 보면 이 사고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눈치 챌 수 있다. 잘생긴 얼굴을 ‘돈 있음’에, 못생긴 얼굴을 ‘돈 없음’에 대입해 보면, 이 말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와 거의 같은 뜻의 말임을 알 수 있다. 속담의 변이 속에 세태의 인심을 읽을 수 있는 코드가 이처럼 많다. 02격언이나 명언에도 세태를 담아내는 변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대응 지혜를 요모조모 수용하면서 재치 있게 변화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격언 하나를 상기해 보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시작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동기와 의욕이 중요한 것이지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리고,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교훈적 격언이 아니던가. 이 격언이 이렇게 변이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딱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변이된 격언에서는, 어떤 왜곡된 비뚤어진 심사를 드러낸다기보다는, 그 나름의 교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에서 예를 든 “꼴값 한다” 또는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등의 변이 속담들이 다소 비딱한 저항 심리를 드러냈던 것과는 구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동기나 의욕이 있어도 때(timing)를 놓치면 실패한다는 그 나름의 시의성 있는 교훈을 드러낸다. 하나 더 보자. 예전에는 선생님이 나를 야단치면서 내 부모를 곁들여 함께 욕하면, 비록 내 과오가 있을지언정 이렇게 항변했다. “저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제 부모님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꾸중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른바 천륜(天倫)의 근본인 ‘효도’의 가치는 잘 내면화돼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의 효심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야단을 치는 선생님이 녀석의 벌을 감해 주는 모습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 자체가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인터넷에는 이 말을 기묘하게 전복시킨 다음과 같은 말이 기세등등하단다. “부모 욕하는 건 참아도 내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가족이든 학교든 그 어떤 공동체에 연대된 자아보다는 그냥 자유롭게 단독자로만 존재하는 ‘나’의 중요성을 더 앞세우는 이기적 세태라고나 할까. 발칙해 보이지만, 세상 변화와 사람 변화를 까칠하게 들이대는 격언의 변이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부류, 같은 구조로 된 격언의 변이를 하나만 더 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 가급적 빨리 긍정의 마인드로 다가가라는, 자기계발서 따위에 자주 등장하는 격언이다. 그만큼 익숙한 말이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부여하는 일의 어려움에 당면하여 머뭇거릴 때, 새 각오로 성실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돼 주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도 가벼운 조롱조의 변이가 생겨난다. “즐길 수 없다면 무조건 피하라.” 전복적 발상이 압권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 비공식적인 대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란다. 엄숙한 연대적 책무감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런 무거움을 넘어서려는 사고나 소통의 발랄함을 엿볼 수 있다. 03진화란 생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과 결과이다. 진화의 구체적 과정은 무수한 ‘변이’를 통해 이뤄진다. 비단 생물뿐이겠는가. 말도 부단히 변화한다. 말도 생태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다. 속담이나 격언을 우리가 수사적(修辭的)으로는 ‘불후(不朽)의 명언’이라 일컫는다. 불후(不朽)란 썩지 않는다는 뜻이니,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세상에 변해 가지 않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화하지 않으면 아예 없어지기 때문이다. 속담의 진화가 경박한 세태만 반영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불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통 속담의 훼손 측면만 보지 말고, 속담이나 격언의 전체적인 변화 현상을 의미 있게 읽어내려는 쪽으로 교육의 안목을 넓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불편한 진실’을 체득하는 삶의 공부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언어 변화 현상에 숨어 있는 인간과 사회의 의미를 교육이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야말로 속담 교육의 진화를 불러오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그간 교육이 속담이나 격언을 다뤄 온 전통은 다분히 규범적이고 경직된 면이 없지 않았다. 속담이나 격언이 어떤 변이 작용을 하는지 배우는 데서 언어와 인간에 대한 보다 역동적인 체험을 구성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변이 속담들을 소통시키는 맥락에서, 비뚤어진 세태와 각박한 인심을 개탄하는 비판의식이 함께 생겨나게 하는 것이 속담의 속성이기도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봄 무렵이다. 당시 예닐곱 살 먹은 큰딸은 호기심이 많아 아파트 공터에서 흔히 피어나는 꽃을 가리키며 “아빠, 이게 무슨 꽃이야”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그것이 무슨 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얼버무리며 “나중에 알려주마” 하고 넘어갔지만 딸은 나중에도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야생화에 대한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꽃은 씀바귀였다. 그렇게 시작한 꽃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가 붙었다. 주변에서 흔히 봤는데 이름을 몰랐던 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이건 벌써 14년 전 일이다. 지금 내가 다시 꽃 공부를 시작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으로 꽃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만 두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꽃검색과 모야모 앱이 그것이다. 인공지능 딥러닝을 활용한 다음 꽃검색 카카오는 지난해 5월 “앱에서 꽃 이름을 알려주는 꽃검색 서비스를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을 활용해 이용자가 촬영한 꽃의 특징을 자체 꽃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꽃 이름을 찾는 방식이라고 했다. 꽃검색은 국내에서 주로 피는 약 400여 가지 꽃을 대상으로 하며, 대상 꽃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다음 통합검색창 초기 화면을 보면 우측에 마이크 모양 아이콘이 있다. 이 아이콘을 누르면 음성, 음악, 코드 검색 아이콘과 함께 꽃검색 아이콘이 뜬다. 꽃검색 아이콘을 누르면 ‘꽃의 정면을 크게 촬영해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방식과 갖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 둘 다 가능하다. 카카오는 현재 꽃검색 기술의 정확도는 90% 정도라고 밝혔다. 직접 한번 해봤다. 꽃검색을 켠 다음 필자의 스마트폰에 있는 꽃 사진 하나를 클릭했다. 흰색 꽃 모양 테두리가 몇 번 깜박거리는가 싶더니 3~4초 만에 “이 꽃은 ‘자주쓴풀’일 확률이 98%입니다”라는 답이 떴다. 참 신기했다. 자주쓴풀을 알아보면 꽃 공부 하는 사람 중에서 중급 이상일 것이다. 이번엔 투구꽃 사진을 클릭하고 잠시 기다리자 “이 꽃은 ‘투구꽃’일 확률이 99%입니다”라고 했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이 정도면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좀 어려운 꽃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하늘나리 사진을 클릭한 다음 잠시 기다리자 “이 꽃은 ‘하늘말나리’일 확률이 99%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하늘나리와 하늘말나리는 돌려나는 잎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야 구분 가능하다. 꽃만으로는 정확히 확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99% 자신감으로 답을 한 것이다. 카카오는 꽃검색 서비스 고도화를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는 “딥러닝은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데, 생각보다 꽃 종류가 많다”며 “앞으로 검색 가능한 꽃 종류를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식물은 환경·영양 상태 등에 따라 변이가 심한데다 질문자가 분류 키포인트를 알고 촬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음 꽃검색이 가능한 영역은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전문가 집단지성의 결정체 모야모 다음은 모야모 앱. 다음 꽃검색이 자동 인식 방식이라면 모야모는 수동 방식이다. 꽃 사진을 올리면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방식이라니 사물 인식 시대에 오히려 역행하는 방식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만만하게 볼 앱이 아니다. 상당히 빠르게 답을 해주고 무엇보다 정확도가 높다. 모야모라는 이름은 ‘뭐야 뭐?’를 변형한 것이다. 2014년말 이 앱이 처음 나왔을 때 필자는 사실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이미 꽃 이름을 알려준다는 앱이 여러 개 있었고 모야모도 그중 하나려니 생각했다. 다른 앱들을 다운받아 써보고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험 삼아 모야모를 써보니 의외로 답이 빨리 떴다. 몇 초 만에 답이 뜨기도 하고 좀 까다로운 것도 몇 분 내에 답이 올라왔다. ‘이거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앱스토어 등에서 앱을 다운받은 다음 간단한 등록을 하고 궁금한 꽃이나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누군가 답을 달아준다. 전문가만이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도 아는 식물이면 이름을 달 수 있다. 누군가 틀린 답을 올리는 경우도 많지만, 곧 다른 사람들이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낯선 식물도 하나씩 의견을 모아 답을 찾아가는, 전형적인 집단지성 방식이다. 이 앱은 나온 지 2년여 만에 30만 명 가까이 다운받았다. 모야모 박승천 콘텐츠담당이사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는 것은 앱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그것은 답을 달아줄 수 있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자리를 잡아 하루 평균 2000건의 질문이 올라오지만 1000여 명이 답을 달아서 답하는 속도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꽃이 아닌 것(예를 들어 고양이)을 올리면 다음 꽃검색은 단호하게 ‘일치하는 꽃이 없다’고 하지만, 모야모에서는 애교 섞인 답을 받을 수 있다. 요즘엔 초등학교 야외 식물 수업에 모야모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가 “내일은 부모님 스마트폰을 빌려오라”고 해서 모르는 식물이 나오면 모야모에 올려 답을 찾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앱의 한계도 분명하다. 너무 어려운 꽃을 질문하면 조회 수가 늘어나도 묵묵부답이다. 여뀌나 사초 종류, 산형과 식물일 경우 답을 구하지 못하거나 틀린 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도 그동안 20여건을 올려 보았는데, 그중 2~3개는 답이 없었고, 2개는 계속 분명히 틀린 답이 올라와 포기한 적이 있다. 다음 꽃검색과 모야모를 좀 써보면 어느 것이 자신에게 맞을지 금방 감이 올 것이다. 주변에 흔한 꽃은 다음 꽃검색으로도 충분할 것 같고, 드물거나 복잡한 꽃은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모야모가 단연 강세를 보일 것 같다. 두 가지 앱을 기억해두면 아이가 물어보거나 급하게 꽃 이름을 알고 싶을 때 유용할 것이다. 이렇게 편리해진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아무래도 금방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찾아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밖에 없다. 쉽게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에 먼저 도감이나 인터넷을 찾아본 다음 검색 앱 도움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6년 SBS 연예대상은 신동엽에게 돌아갔다. 그는 SBS에서 데뷔해 최고의 스타가 됐지만 SBS에서 대상을 받는 건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기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지난여름부터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다. 단연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미운 우리 새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김건모, 박수홍, 토니안, 허지웅과 같은 (노)총각 아들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그 아들들의 나이는 생후 000개월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그들을 낳은 어머니의 시선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머니들은 스튜디오에서 신동엽, 서장훈, 한혜진 등의 진행자들과 함께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방송이라 과장된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때때로 상상도 하지 못한 비밀들이 드러나 어머니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수 김건모는 소주병 약 300개를 집안에 모으는 모습이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그의 어머니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겠지만 김건모의 어머니는 “전부 다 건모가 마신 술은 아닐 것”이라며 아들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은 ‘생후 몇 개월’이십니까 스튜디오에는 어머니들만 등장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엄마가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만 조명된다. 아무래도 자식보다는 부모(엄마)의 심리가 우선시 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제목도 ‘미운 우리 새끼’인 거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연예대상으로까지 연결된 정황은 전혀 놀랍지 않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 방영 이후 필자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이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커졌다기보다 디테일해졌다고 해야 하나. 생전 궁금해 한 적이 없으시던 ‘혼자 있을 때 뭐 하냐’, ‘친구들이랑 만나면 무슨 얘기 하냐’ 같은 주제로 질문을 던지시곤 했다. 그녀에겐 나 역시도 생후 406개월짜리 아들일 뿐일 터다. TV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크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재미라면, 시청자들이 ‘우리 아들의 경우는 어떨까’를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묘미다. 2040 나이대의 ‘싱글남’만큼 ‘엄마’에게 연연하면서도 그들과 거리가 먼 존재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친구들끼리는 이미 ‘상식’인 이야기들 - 어떤 연애를 해왔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어떠한지 등 - 을 엄마에겐 한 번도 얘기해본 적이 없다. 아들에게 엄마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편하고 좋은 대화상대’이기는 힘들다. 회피의 세월이 5년, 10년 쌓이다 보면 어느새 소년(少年)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진 내 모습을 고백하기란 더 어려워진다. 말마따나 몰래카메라라도 달아놓고 알아서 깨달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 나도 짐짓 모르는 척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전부 쏟아낼 텐데. ‘미운 우리 새끼’ 출연자 중 하나인 개그맨 박수홍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결혼불가론’을 주장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상당한 울림이 있었다. 40대 중반의 아들이 현재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내용의,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선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방송’이라는 매개로 마음껏 토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상을 지켜본 박수홍의 모친은 “우리 아들이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른다”고 코멘트 했지만, 사실 그녀야말로 아들의 마음을 몰랐던 게 아닐까? 결혼은 아들이 하는 거지 엄마가 하는 게 아닌데 왜 아들이 결혼에 대한 철학을 수립함에 있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런 부분들이 우리 시대 아들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지점인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자식혁명’인지도 90세 아버지가 외출하는 70세 아들에게 “길 조심, 차 조심 하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그런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부모들만 자식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자식 된 입장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춤을 추는 걸그룹·보이그룹 멤버들에게 ‘소원’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엄마아빠’ 얘기를 한다. 부모님에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그 수많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고 싶은 이유인 것이다.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배고픔을 모르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 풍요의 비밀이 부모들의 고생에 있었음을 잘 알고 있을 만큼 양심적이다. 그 결과 수많은 효자 효녀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효심이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부모들이 선물해 준 인생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중소기업엔 일자리가 넘치는데도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청년들은 ‘부모님이 납득할 만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박은 취업 뿐 아니라 결혼이나 육아와 같은 일생일대의 문제들에도 전부 적용된다.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너무 좋다 보니 자식들이 한 명의 어른으로 자립을 해야 할 타이밍에도 여전히 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연인이나 부부관계가 성립되는 데에도 많은 애로가 따르게 된다. 연극 ‘레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라고!” 이는 문자 그대로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 행위를 저지르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세대를 넘어서야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자식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부모님이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안다. 그 무한의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의 그림자에서 뒤늦도록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운신의 폭이 제한될 때 인생의 진폭과 변동성도 줄어든다. 그 결과가 바로 침체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인 건 아닐까. 새해만 되면 곳곳에서 혁신이며 쇄신의 구호들이 들려오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그렇게 거창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적 변혁을 말하기 전에 가정에서의 ‘자식혁명’부터가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닭의 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운 우리 새끼’가 돼야 할 타이밍이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신화, 전설, 민담, 구전 동화 등에는 인간 심리의 기저를 밝힐 수 있는 비밀과 집단 무의식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야기가 흘러올 수 있는 상당한 이유와 배경이 들어 있다.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에서는 그 비밀들을 한 꺼풀 벗겨볼 것이다.왜 동화 속에는 새엄마와 친엄마의 대립구조가 들어 있는지,여자 아이들의 성공담에는 어째서 간난신고의 고생길이 마치 하나의 ‘과업’처럼 열거되고,남자 아이들이 영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집을 떠나는 과정이 들어 있는지 등우리 주변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야기의 비밀들을 열어봄으로써 인간 사회가 면면히 쌓아오고 있는집단 무의식은 무엇이고 어느 부분에서 그것들이 발견되는지,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의사고와 심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볼 것이다. 재투성이 소녀, 고양이 신데렐라, 상드리용(프랑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동화 신데렐라는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판본이 존재할 만큼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이야기’다. 특히 신발 모티브로 인해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뒷이야기부터 한국의 콩쥐팥쥐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구조와 서사를 가진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나라에서 구전과 가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왜일까? 왜 세상의 사람들은 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렇게 읽고 또 읽고, 말하고 또 말할까? 물론 대표적 판본이라 할 수 있는 그림동화의 이야기에는 이 신데렐라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림동화는 빨간 망토 이야기부터 장화신은 고양이, 백설공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지금의 형태로 전해주고 있다. 다만 신데렐라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만 해도 그렇다. 친엄마를 잃고 재혼을 한 아버지, 새엄마와 의붓딸, 우리의 주인공인 박해받는 신데렐라, 콩쥐가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서사 구조도 매우 비슷하다. 새엄마의 구박이 시작되고 이것을 거드는 못된 언니 그리고, 마을 또는 궁궐의 잔치 또는 파티. 이 파티에 가기 위해 콩쥐나 신데렐라는 섞인 콩을 고르고 동물들의 도움을 받고 화룡점정으로 요정이나 마술 할멈의 마술 덕분에 변신을 하고. 이것뿐인가. 콩쥐나 세계의 모든 신데렐라는 파티에서 멋진 왕이나 왕자를 만나 그들의 ‘한눈에 뿅!’ 점지를 받고 순간 사랑에 빠지지만 이내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때 그녀들은 반드시 자신의 흔적 하나를 남긴다. 신발. 그것이 콩쥐의 꽃신이 되었든, 유리구두가 되었든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어쨌든 ‘예쁜 신발 한 짝’을 남기고 도망치듯 자리를 나오게 된다. 이어 신발의 주인공을 찾는 왕, 왕자, 고을의 원님 등 이들 남성들은 주인공 콩쥐나 신데렐라의 신발 한 짝을 들고 온 마을을 다 뒤져 지치고 포기할 무렵 드디어 신발의 주인공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잘 먹고 잘 살았다’가 이야기의 끝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 나라, 마을, 판본의 차이에 따라 그림 같이 예쁜 동화를 벗어나는 잔혹동화의 면면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림동화의 신데렐라도 신발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의붓 언니들의 결말이 좀 잔혹한 면이 있기는 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는 신데렐라는 프랑스의 페로가 만든 이름 하여 ‘페로본’이 전해지는 것이다. 프랑스 궁정에서 이야기나 시를 낭송하던 역할을 맡았던 페로는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으고 정리해 자기의 입으로 구술하면서 기존의 이야기들을 상당부분 각색하고 정리했다. 특히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들을 일부러 빼고 자신의 임의대로 바꾼 이야기들이 제법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신데렐라다. 덕분에 아이들은 ‘공포스럽지 않게’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아이들 세상의 ‘만고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오랜 세월 신데렐라가 숨기고 있던 진짜 세상의 이야기, 집단의 무의식, 숨겨진 비유를 찾는 묘미를 일부 잃게 되기는 했다. 반면에 19세기 그림형제는 동화 ‘신데렐라’의 잔혹함을 그대로 드러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발에 발을 구겨 넣는 장면이다. 언니들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버려진 한 짝 신발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과 발꿈치를 자르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엄마의 요구였다는 것이다. 첫째 딸의 발이 신발에 맞지 않자 엄마는 딸의 다섯 발가락을 자르게 한다. 그렇게 신발을 신고 떠났던 큰언니는 그러나 신발 밖으로 흐르는 피로 인해 발각이 되고 곧 내침을 당한다. 둘째 딸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엄마는 발뒤꿈치를 잘라 신발 속에 발을 넣게 하고 궁으로 떠나게 하지만 역시 중간에 이르러 새들의 노래 소리로 왕자(왕)는 곧 이 가짜를 알아챈다. 당시 새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 아가씨가 신고 있는 신발을 봐요. 피투성이네요. 아가씨의 발에 그 신발은 너무 작아요. 그 아가씨는 무도회에서 만난 아가씨가 아니랍니다.” 이후 버려진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모두 새에 의해 두 눈이 쪼이고 결국 눈이 먼다. 물론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는 얘기다.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이런 잔인한 장면들이 제법 있다. 특히 이야기의 끝에 왕비가 돼 궁에 들어간 콩쥐를 찾은 팥쥐가 동생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후, 연꽃으로 변한 콩쥐가 다시 팥쥐를 죽이게 되는 과정이 거의 괴기스러울 만큼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어찌 어찌 꽃과 수정으로 모습을 바꾼 콩쥐는 결국 복수에 성공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에 언니를 젓갈로 담아 새엄마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도 여러 판본에 따라 젓갈 속 시신을 그대로 보게 했다는 이야기부터 담근 젓갈을 심지어 새엄마가 먹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결코 신데렐라에 ‘뒤지지 않는’ 잔혹함을 선사한다. 물론 이 무섭고 끔찍한 부분들은 이후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는 상당부분 윤색되고 ‘정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 신데렐라‘류’의 이야기들에서 우리가 짚어볼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른 데 있다. 그 첫 번째가 새엄마와 새언니들이다. 아이들의 동화에는 유독 이런 새엄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들 신데렐라 이야기에도 마찬가지다.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친엄마 그리고 등장하는 새엄마. 이때 새엄마들은 꼭 새언니나 다른 의붓딸을 데리고 들어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간난신고의 고생길과 구박, 눈물. 아이들은 이 동화책들을 읽으며 새엄마의 구박을 ‘마음껏’ 성토하고 미워하며 자신의 감정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결국 새엄마는 마지막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새엄마가 친엄마라면? 동화나 민담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도 여기에 닿아 있다. 실제로 이 새엄마는 친엄마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던 아가였던 시절, 울기만 하면 엄마의 따뜻한 젖과 품을 마음껏 취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곧 유아를 벗어나 어린이로 성장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낯선 엄마를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엄마,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제공해주던 엄마, 한결같이 자애로웠던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고, 야단을 치고, 혼자 힘으로 하라고 ‘과업’을 제시하고 때로는 버린다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때 아이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엄마가 낯설다. 그리고 이내 생각한다. ‘아, 저 사람은 우리 친엄마가 아닐 거야. 우리 엄마는 어디 갔지? 나쁜 요정이 엄마를 데려가고 얼굴만 똑같은 모습으로 데려다 놓은 거야. 아…, 엄마 (훌쩍)’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은 ‘음험하고 때로는 잔혹한’ 상상을 이어간다. ‘저 새엄마는 죽어야 돼. 누군가 몰래 입을 꿰매거나 불에 태워 죽이면 좋겠어. 그러면 아무 말도 못하게 될 것이고 우리 친엄마도 다시 살아올 수 있어. 아…, 저 새엄마를 누가 죽여주면 좋겠다. 친엄마는 어디 있지? 아…, 엄마 (훌쩍)’ 아이들의 마음속에선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 간다. 그리고 이내 옆에 있던 동화책을 잡아드니 세상에! 정말로 새엄마들은 이렇게 나쁜 사람이란 것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뿐인가.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결국 주인공은 멋진 사람으로 변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안도한다. ‘아, 내가 옳았어. 거봐, 새엄마들은 모두 나빠. 모두 죽게 될 거야.’ 실제로 이 시기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두 명의 엄마가 살고 있다. 나에게 전적으로 ‘착한’ 친엄마와 온전히 ‘나쁜 새엄마’. 이렇게 두 명의 엄마로 분리하지 않고는 아이들이 해당 시기 엄마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렇다. 만약 나를 좋아해주는 ‘착한’ 엄마와 저렇게 무섭게 야단을 치고 때로 매도 드는 저 엄마가 같은 사람이라면? (물론 같은 사람이지만, 아이들 무의식 깊은 곳에서) 엄마의 그 정체감을 하나로 통합해 내기가 ‘아직은’ 버거운 것이 이 시기의 아이들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매우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분리’한다. 착한 친엄마와 나쁜 새엄마로. 실제로 누구나 자라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자기의 엄마를 ‘진짜 우리 엄마일까? 새엄마가 아닐까?’ 하고 궁금해 하거나 의심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이 같은 ‘엄마 분리’를 제때 해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엄마 죽어버려’ 라고 속으로 말한 사실이 현실로 이루어질까봐 전전긍긍하고 때로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새엄마가 등장하는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게 되는 것이다. ‘아, 내가 미워하는 것은 새엄마지 친엄마가 아니야. 그리고 저 새엄마는 저렇게 나쁜 사람이니까 나는 더 맘껏 미워해도 돼.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야. 봐봐! 신데렐라에도 그렇게 나오잖아’ 그렇게 성장하며 아이들은 엄마의 결핍, 엄마의 소외, 다시 말해, ‘엄마도 역시 한 사람의 약한 인간이구나…’를 부지불식간 느끼고 알게 되며 드디어 성인으로 자라는 것이다. 이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또 하나 짚어 볼 부분은 ‘새언니들’이다. 콩쥐에게도 팥쥐라는 새언니가 있었듯이 신데렐라에도 새언니는 여지없이 등장한다. 만약 새엄마가 친엄마의 또 하나의 얼굴이라면 이 새언니들은 누구일까? 맞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나 오빠, 형, 누나가 될 것이다. 엄마에게 느끼는 분리적 감정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자신의 동기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특히 이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기간 갈등과 혼란을 다룬 이야기로 더 유명할 만큼 동기간의 문제가 극명히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예쁜 옷을 혼자만 차지하는 언니,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언니, 나는 이렇게 힘든데 혼자만 웃고 있는 언니 등등. 아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손위 동기에 대한 미움과 반감 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사실 신데렐라이기도 하다. 그 외도 신데렐라나 콩쥐 이야기에는 생각해 볼 매우 중요한 모티프 하나가 등장한다. ‘신발’. 이 신발은 무엇을 의미할까? 요것은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살펴보자.
어느 해 봄 결혼식을 치렀고, 그 해 가을 필자는 집과 예단, 혼수 대신 남편과 414일 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여자에서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여자가 됐다. 떠나기 위해 집과 자동차를 정리했고, 쓰던 가구와 물건을 모두 팔아 치웠다. 한국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배낭 두 개 달랑 메고. 한국을 떠난 지 132일 째, 우유니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또는 ‘지상 위의 천국’이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때는 3월 말, 우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기에 운이 좋아야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물 찬 우유니를 보지 못하게 될까 불안 초조해 하는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는 느릿느릿 속 터지게 더디기만 했다. 버스로 10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던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 가는 구간은 울퉁불퉁하고 질척한 비포장 도로 위를 가다 서다 반복하더니 14시간 만에야 끝이 났다. 게다가 히터 하나 없는 고물 버스 속에서의 긴긴 14시간이 어찌나 춥고 배가 고프던지…….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도착한 우유니 마을에 대한 첫 인상은? 세계 최고의 여행지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난하고 휑하여 쥐뿔도 없어 보였다. 이 조용하고 한적한 우유니 마을에서 가장 시끄럽고 북적대는 곳이 바로 중앙 거리의 여행사 앞이다. 우유니의 소금 사막은 현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 차오른 울퉁불퉁한 소금 결정체 위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커다란 바퀴의 지프차를 타야 하기도 하고, 지표 하나 없는 새하얀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는 소문, 혹은 아예 행방불명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한두 평 남짓한 허름한 여행사 몇 개가 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우리도 그 중 한 곳에서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를 태운 지프가 호기롭게 소금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달렸다. 아! 드디어 천국의 풍경, 그 미지의 공간으로 향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별칭은 ‘천국’이라 했다. ‘하늘과 소금’, ‘비온 후 갬’, ‘바람은 필요 없음’. 이것이 바로 천국의 조건이다. 최근에 내린 비가 발목 언저리에 찰랑거릴 정도로 차 있어야 하고, 그 물에 비친 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바람이 불지 않아야 했다. 별것 아닌 이 몇 가지 조합이 딱 맞아떨어져야만 비로소 우유니 사막의 천국이 드러난다. 10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버스가 14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이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근에 내린 비 때문이었다는 건 후에 안 사실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인 곳.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모든 것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려내는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빛과 소금이 만들어내는 신의 마술, 신의 예술. 온통 새하얀 마른 소금에 공간감도 시간감도 사라질 때쯤, 꿈에 그리던 천국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천국에 도착했다는 환호의 표식으로 우리를 태운 지프는 신나게 원을 그리며 천국의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당신의 상상 속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눈부신 햇살? 하얀 뭉게구름?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행복한 미소? 앞, 뒤, 옆을 보고 발아래까지 둘러봐도 온통 천국의 풍경이다. 눈이 부시다. ‘정녕 지구상에 존재하는 곳인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다. 우유니 소금 사막은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의 천국을 보여준다. 우유니의 시공간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지평선, 아니 수평선인가? 원근감이 없어 동서남북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흐르는 시간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우유니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처럼 ‘초현실’, ‘비현실’이 바로 우유니를 대변하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해가 진 후에도 진한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쉬이 가시지 않는 흥분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고, 그 즈음 지난밤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 줬던 가이드가 다시 돌아왔다. 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출발해야 한단다.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있다고? 새벽 3시에? 그는 어둠 속에서 지프를 몰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소금 사막에서 물 찬 우유니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한낮의 재주도 신기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딱 잡고 차를 모는 건 더욱 신기한 재주였다. 어떻게 길을 찾느냐는 물음에 낮에는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먼 산을 지표로 삼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따라 간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방법, 별을 따라 가다니! 그 밤, 그 새벽은 낮의 우유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넘쳤다. 낮에 본 우유니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면, 밤의 우유니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아름다움’이었다. 물 맑은 호수 위에 떠 있는 은하수는 평상시 상상할 수 있는 개수의 별을 넘어서 있었다. 어느 누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발아래까지 반짝이는 별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까만 눈동자 속을 흘러가는 은하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태어나서 그 전날까지 본 별을 합친 것보다 그 때 그 순간 떠 있었던 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느덧 인생의 삼분의 일을 훌쩍 넘겼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웬만한 일에는 무심하고 무뎌졌으며 살면서 부딪쳤던 크고 작은 시련에 다쳐볼 만큼 다치고, 구를 만큼 굴러 세상과 맞짱 정도는 뜰 수 있을 만큼 크고 단단한 동그라미가 된 줄 알았다.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다. 어느 날, 덜컥 만난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그저 아직 ‘작은 점 하나’도 되지 않았음을 알기 전까지. 세 단어로 알아보는 볼리비아 1. 소금 사막 포토시 주에 위치한 우유니 소금 사막은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바다의 소금과 주변 산지에서 흘러내린 염류가 합쳐져 생성된 분지 지형이다. 면적은 약 1만 2000㎢ 정도로 경상남도보다 약간 넓은 규모. 소금 매장량은 약 100억 톤 이상으로 추정한다. 값비싼 광물인 리튬이 매장되어 있는데, 그 양이 세계 총 매장량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리튬 개발권을 얻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중이다. 2. 내륙 국가의 해군 볼리비아는 바다와 접한 면이 없는 내륙 국가지만 현재 해군 5000여 명, 군함 17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1879년 당시 볼리비아는 바다와 접해 있는 아타카마 사막을 영토로 보유하고 있었으나 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눈독을 들인 칠레가 볼리비아를 침략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났고 1883년, 결국 이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했다. 이후 볼리비아는 바다를 빼앗겼지만 여전히 해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해군은 현재 티티카카 호수와 볼리비아 영토 내 하천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3. 가는 길 볼리비아 여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볼리비아만 방문한다면 국내 영사관에서도 발급이 가능하지만 다른 나라를 거쳐서 들어갈 경우 해당국의 볼리비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준비 서류는 여권, 여권 사진 1장,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 신용카드 사본, 볼리비아 내 숙소 확인 증명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볼리비아로 가는 직항 노선은 없기 때문에 주로 캐나다나 미국 항공사를 이용해 페루의 리마나 칠레의 산티아고를 거쳐 라파스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는 버스로 10시간, 항공으로 50분이 소요된다.
스승이 없는 삶은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습니다. 좋은 스승 밑에서 음으로 양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는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지요. 그런데 동양철학자 중에는 위대한 스승이자 교육자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양철학자인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교육자로서 가진 모습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들을 이야기하고 소개해 올리려 합니다. 총 12회에 걸쳐 연재할 것인데 기존에 교육과 동양철학자들을 관계 지어 이야기했던 논문, 저서에서는 하지 못했던 참신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보고자 합니다. 學爲人師 行爲世範 학 위 인 사 행 위 세 범 “배움은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베이징 사범대학의 교훈입니다. 진정한 배움이란 것은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이것이 배움의 길인데 또한 스승의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자들을 단순히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자, 배운 것을 삶에서 구체화시키고 실천의 장에서 녹여내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려 제자들을 이끄는 자, 그런 사람이 바로 스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승의 모습은 누가 만들어냈을까요. 바로 공자입니다. 늘 호학하는 삶을 살면서 모범을 보였고 제자들에게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고 격려한 사람. 공자 삶의 모습이 저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 그래도 저 말은 공자의 수제자 안연의 삶을 중국 남송 시대 황제가 평한 말이지요. 공자가 제일 사랑했던 제자 안연을요. 네, 공자는 스승입니다. 선생님이고. 공자하면 유학, 유교의 종사. 동양철학의 큰 어른이기 전에 스승이고 교육자죠. 안 그래도 많은 이들이 교육자로서 공자를 말해왔지요. 자로가 여쭈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 계시는데 어찌 듣는 대로 바로 행한단 말이냐?” 염유가 여쭈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답했다. “듣는 대로 그대로 행하여라.” 공서화가 묻기를, “자로가 묻기를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부형이 살아 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염유가 똑같이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듣는 즉시 행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감히 여쭤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너무 나서는 까닭에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논어 선진편 21장입니다. 유명한 장이지요. 교육자로서 공자를 말해주는 장입니다. 제자 자로와 염유가 같은 질문을 했는데 스승이 각기 다른 답을 하네요. 그러자 옆에서 보던 공서화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옳은 말을 들으면 그대로 행해야 하냐는 같은 질문을 했는데 왜 자로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하라고 했고 염유에게는 들은 즉시 행하라고 하는지. 그러자 공자가 답했지요. 자로는 성격이 급해 신중하라고 한 것이고 반대로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분발을 촉구한 것이라고요. 정말 유명한 장인데 스승 공자의 탁월함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장이지요. 교육자로서 제자들에 맞춤형 교육을 했다는 대목에 많이 언급됩니다. 정말 공자하면 철학자고 사상가고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교육자였습니다. 제자들을 키우고 만든 사람이지요. 그래서 교육학 쪽에 공자 관련한 논문이 많습니다. 학위논문들도 적지 않은데요. 제자별 맞춤 교육을 했다, 배움의 문을 열어두어 누구든 제자로 받아주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며 교학상장(敎學相長)과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지향했다는 등 논문들에서 그러는데 우리가 교육자 공자를 말할 때 잊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제관계라는 모델을 공자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子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자 왈 논어를 보면 많은 절반 정도가 ‘자왈(子曰)’로 시작하지요. ‘자(子)’는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이라는 말이지요. 논어 이전의 경전 서경처럼 당대의 권력자의 말이 아니라 정치적 지위와 권력이 없는 어느 선생이 말하고 제자들이 듣습니다. 그렇게 ‘자왈’로 논어 텍스트는 이루어졌는데 그걸 보고 ‘공자가 말하니 제자들이 듣는구나’ 하고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최초로 자왈이라는 형식이 등장한 경전이 바로 논어, 처음으로 스승과 제자. 이 사제관계란 모델을 공자가 만들어냈다는 것까지 생각을 해야지요. 네, 그게 중요합니다. 공자가 처음으로 사제(師弟)라는 인간관계의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것. 기존에는 혈연 집단 내의 관계 아니면 정치의 장에서 군신관계 이렇게 친친(親親)과 존현(尊賢)이라는 말로만 설명되는 인간관계 밖에 없었는데 공자가 최초로 사제관계라는 모델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아주 무거운 의미를 가집니다.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중반기까지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는 씨족이었습니다. 혈연밴드 사회였지요. 그러다가 춘추시대 말 철기가 등장하면서 씨족집단이 급속도로 해체되었습니다. 5인에서 6인 규모의 소규모 가정이 만들어져 이들이 사회구성의 기본단위가 되었지요. 씨족질서가 무너지자 사회구성의 기본단위가 사라지고 인간관계란 게 사실상 진공상태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때 딱 어떤 사람이 등장해서 새로운 대안적 인간관계 모형의 틀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가 바로 공자입니다. 철기문명의 시작 씨족공동체의 해체 서구의 분과학문적 프리즘을 가지고 동양철학을 연구하다 보니 문제가 많습니다. 문사철(文史哲)이 따로 노는 형편이고 그게 학문을 하는 방법에도 굳어버린 틀이 되었는데요. 많은 동양 고전은 단순히 철학텍스트가 아니라 역사서이기도 하고 문학서이기도 한데 그저 철학적 방법론으로만 접근하는 실정이니 정말 아쉬운 게 역사적 맥락의 접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파고들고 저술과 강의에서 역사적 배경, 환경을 충실히 보여주며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문제가 많지요. 사상가 각자의 문제의식과 당대에 해냈던 역할, 기능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지요. 공자 사상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특히 철기 문명의 도입과 연관 지어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자가 산 시대에는 씨족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두드러지는 시대적 특징이었지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공자가 등장해 대안을 모색한 것인데 본래 춘추시대에는 동일한 조상을 모시고 사는 후손들끼리 읍(邑)이라는 마을에 같이 살았습니다.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같이 노동을 해서 생산의 결과물을 나누고 살았지요. 생산력이 턱없던 시절이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공동으로 노동을 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춘추시대 말부터 씨족공동체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파괴되었을까요? 단적으로 말해 철기 때문입니다. 철기가 등장해 철제 농기구가 사용되고 우경이 시작되면서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씨족공동체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생산이 씨족공동체라는 대가족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철기문명이 시작되면서 대여섯 명 단위의 소가족 단위로 생산단위도 변했습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하던 일을 몇 명이서도 해낼 수 있게 되자 공동으로 경작하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기존에는 생존을 위해 그들의 힘이 필요했지만 이제 밥만 축내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씨족공동체는 해체가 되었습니다. 동일한 조상을 모시는 대단위 가족 하에서 혈연관계와 군신관계만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는데 절반 이상의 축이 무너져 버렸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공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을 밑에 두고 교육하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공자는 스승이 되었고 공자를 따르던 사람들은 제자가 되어 공자를 섬겼습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자식처럼 아끼며 가르치는 공자, 역시나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공자를 진심으로 따르며 부모처럼 섬기는 제자들. 교육이란 게 가문 내에서 비전(祕傳)의 형태로만 전수되고 혈연관계와 군신관계만이 지배하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 가르치고 사제관계라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이고 역사의 물꼬였지요. 생존과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학문을 매개로 한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기존에는 볼 수 없는 인간관계의 틀과 모범이 만들어졌고 스승의 상이란 게 처음으로 정립되고 스승과 제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란 게 만들어졌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삶을 같이하고 군신관계가 아닌데도 공동체의 내일을 이야기하며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살아갔고 세상을 구할 것을 다짐하며 모두가 구세의 주인공으로서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끌면서 나아갔지요. 스승과 제자 간에는 교학상장하고 제자들 간에 서로 열심히 격려하고 권면하면서요. 공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 그리고 교육자로서 공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사실이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교육자 공자, 스승 공자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처음으로 사제관계란 인간관계와 그 틀을 만들어냈다는 것을요. 기존의 인간관계가 진공상태가 된 시점에 등장해 새로운 인간관계의 모형으로 사제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그때부터 사실상 동아시아 역사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사제관계란 인간관계의 틀이 만들어지고 정착되고, 그때 문(文)의 세계가 열리고 문의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역사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기본적인 것, 아니면 당연한 사실은 이상하게 기본적으로 또 당연하게 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핵심을 비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고요. 아시는 것처럼 공자는 교육자이고 스승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고 그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공자의 위대함, 선구자적인 면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고 교육자로서 공자가 온전히 보입니다.
“The Eagle has landed(이글호 착륙했다).” 인간이 달에 위대한 첫 발을 딛는 순간 닐 암스트롱이 했던 첫마디다. 1969년 7월 16일에 발사됐던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함장과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4일 후인 7월 20일에 드디어 달에 발을 딛는 모습을 대한민국 국민도 흑백텔레비전으로 세계인과 함께 시청했다. 미국인의 세기적 성취는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달 착륙, 우리나라는 국민교육헌장 1960년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흙수저’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하버드 대학을 나와 정치에 입문한 후 39세에 미국 최연소 부통령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의 존 F. 케네디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나오고 20대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인물이었지만 앵글로 색슨계가 아닌 아일랜드계였고, 미국의 주류 종교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을 믿는 구교도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 최초로 TV토론이 생중계된 이 선거에서 연설의 천재 리처드 닉슨을 0.1%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미지 정치에 강했던 케네디였다. 케네디가 대통령 임기 첫 해를 시작한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유리 가가린이라는 최초의 우주인을 태운 유인 인공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한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4년만이었다. 냉전에서의 잇단 패배로 실망한 미국 국민들을 향해 케네디는 1961년 5월 25일 상하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는 이 나라가 1960년대가 지나가기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 뒤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을 믿는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교육을 변화시켰다. 즉, 미국 교육의 상징이었던 진보주의 교육을 약화시키고 기초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변화한 교육의 성과 위에서 케네디가 선언한 목표는 달성됐다. 공교롭게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의 대통령은 8년 전 케네디에게 패했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은 이후 재선에 성공했지만 탄핵에 직면해 1974년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그러나 달세기가 열리는 과정을 통해 정권과 무관하게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국가의 비전이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회적 동력을 총동원하는 모습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달 착륙을 미국의 목표로 선언하던 바로 그해에 우리나라는 5.16 군사정변을 맞았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즈음에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추상적 교육선언의 실천에 모든 교육적 역량을 쏟아 붓고 있었다. 모든 교육내용이나 방법의 설정 기준도, 교육성과의 평가 기준도 국민교육헌장이었다. 그것은 법 이상이었다. 포스트 아폴로 시대 교육 비전 요구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소식은 새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폴로 달 착륙 후 처음 간행된 1969년 9월호의 권두언 제목은 ‘달세기의 개원과 한국교육’이었다. 이 글은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그러한 과학 기술의 모체인 인간의 창조적 정신을 개발하고 신장케 한 교육”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이 한국 교육에 주는 교훈은 “한국의 교육도 이제 포스트 아폴로(Post-Apollo)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원대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하여 우선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정치가를 비롯한 모든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새로운 달세기에 대비한 비전의 확립이 아쉽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권두언에 이어 9월호는 특별기획으로 ‘아폴로 시대의 우주과학’을 게재했다. 발사에서 귀환까지의 과정을 다룬 위상규 서울대 공대 항공공학과 교수의 글 ‘신대륙 달을 정복하다’, 달의 지질학적 특성을 다룬 김봉균 서울대 문리대 교수의 ‘달 정복과 우주개발의 가능성-지질학적으로 본 달세계를 중심으로-’, 아폴로 11호 이후 우주개발의 방향을 논한 현정준 서울대 문리대 교수의 글 ‘아폴로 11호의 성공과 전망’,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가져온 배경을 설명한 이남규 조선일보 기자의 ‘달 탐험을 가능케 한 미국의 과학정책’ 등이 실렸다. 미래교육 비전보다는 안보에 치중 여기까지였다. 불과 몇 개월 후 1970년대의 문을 여는 신년호도, 몇 개월 후 맞이한 광복 25주년을 기념하는 1970년 8월호도 온통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구현을 향한 목소리만 난무할 뿐 이른바 ‘달세기’에 대비하는 그 어떤 교육적 이상이나 방법도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교육의 비전 마련을 위한 새로운 노력도 없었고, 우주과학 시대에 대비한 과학정책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았다. “교육은 70년대의 국운을 좌우한다”는 박정희대통령의 담화는 교사들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광복 25주년 기념호인 1970년 8월호의 내용 구성은 당시의 시대상과 교육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의 제목을 보면 ‘국가안보와 교육의 역할’ ‘북괴간첩 식별법과 신고요령’ ‘국가사회발전과 사회교육의 역할’ ‘학원소요에 있어서의 교수의 역할’ ‘경부고속도로의 완공’ ‘해군방송선의 납북’ ‘국립묘지에 침투한 공비’ ‘캄보디아 내 미국철수’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전문 잡지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20년 전 창간 초기와 마찬가지로 교육자들이 긍지와 자부를 지켜줄 것, 우리 민족에게 부과된 추상적인 교훈을 교육자들이 솔선해 실천할 것을 억지스럽게 당부하고 있었을 뿐(솔선과 실천, 김형남) 국민들이 공감하는 교육적 목표를 창출하거나 제시하고자 하는 지도자들의 노력이나 고민은 찾을 수 없었다. ‘달세기’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해방 25주년을 기념하면서도 아직도 “우선 해방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그리고 반공교육이 “형식에 흐르고, 유야무야의 존재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가치 판단과 올바른 실천으로 학교 교육의 기본 골격을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계에 있어서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하였고… 거북선이란 철갑선을 만들어 낸 우수한 문화민족” 타령을 하고 있었다. 교육의 양적 성장 이뤘으나 과학교육 외면 아폴로 11호의 성공 속에 아주 잠시 흥분하던 한국의 교육계는 다시 국민교육헌장 중심의 반공교육, 도덕교육, 민족주체성 교육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폴로 11호 발사 이듬해인 1970년에 간행된 열두 번의 새교육 수천 페이지에서 단 한 번도 과학교육이 특집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우주과학 관련 주제를 다룬 글조차도 단 한 편만이 실렸다. 현직 교사 박상인이 쓴 ‘인공위성과 우주여행’이란 글이 1970년 11월호에 실렸을 뿐이다. 1970년을 마무리하는 12월호에도 국민교육헌장 2주년을 기념하며 그 교육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글들은 넘쳐났지만 과학교육을 향한 어떤 대책이나 의지를 보여주는 글은 없었다. 12월호에 게재된 포토뉴스에서는 제18회 학생의 날을 맞아 서울시내 1만 6000명의 고교생들이 효창운동장에서 승공을 다짐하는 합동 교련 훈련을 하고 있는 장면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같은 호의 권두언에서 수학여행 기차사고로 경서중학교와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희생당한 가슴 아픈 사고 소식을 전하면서는 기계문명의 횡포를 경계했을 뿐 과학발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인구의 1/4이 학생이었다. 그 비율은 교육선진국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국가의 노력보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룬 양적 성장이었다. 교육의 질적 발전은 성취해야 할 무거운 과제로 예나 지금이나 교육자들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지도자들은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정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2항에 따라 ‘학교배상책임공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6년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모두 가입돼 교원의 교육활동 과정에서 제3자가 입은 인적·물적 피해와, 어린이놀이시설 하자로 인한 피해, 학교급식 사고 관련 과태료, 교사가 학생의 휴대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실 피해 등에 대해 보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학교안전공제중앙회에서 보장하고 있는 보장내용과 한도, 보상의 제한과 함께 지난 호에서 소개해 드린 각 시·도별 학교안전공제회의 ‘학교안전공제’와의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교배상책임공제 내용 보장내용•교육활동과 관련하여 급격하고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로 인하여 제3자에게 입힌 생명 또는 신체에 입힌 피해(대인손해)나 재산상의 손해(대물손해)에 대해 교직원 및 학생의 법률상 손해배상책임(당해 학교의 학생, 교직원, 교육활동참여자는 제외)• 어린이 놀이시설의 하자에 의한 사고로 인하여 어린이의 생명 또는 신체에 입힌 피해(대인손해) 또는 재산상의 손해(대물손해)에 대한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장이 부담하는 법률상 손해배상책임• 급식사고와 관련해 학교장에게 부과된 과태료(급식과태료)• 학교관리 하의 학생 휴대폰 등(휴대폰, 태블릿PC, MP3)에 대한 분실 피해• 학교배상책임사고에 대한 상담 및 경호• 법률소송(합의·절충·중재 포함)의 협조 또는 대행보장한도• 대인손해 : 1사고당 20억, 1인당 사망, 부상, 부상후 신체장해별 학교배상책임공제 약관에 기재된 한도내에서 보상 - 사망의 경우 2천만 원~1억 원 - 부상의 경우 부상급수에 따라 60만 원(3일 이하 입원 등)~~1500만 원(분쇄성 골절 등) - 신체장해가 생긴 경우 장해급수에 따라 625만 원(손바닥 크기의 흉터 등)~1억 원(실명 등)• 대물손해 : 1사고 당 1억 원 한도 내에서 보상• 급식과태료 : 500만 원 한도 내에서 학교장에게 부과된 과태료 보상• 학생 휴대폰 등 : 학교당 연간 2000만 원 한도 내에서 감각상각 금액 보상• 학교배상책임사고에 대한 경호 비용 : 500만 원 한도 내에서 지급(자기부담금 20만 원 공제)보상의 제한•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보상을 받았거나 받을 수 있는 경우•교육시설재난공제회로부터 보상을 받았거나 받을 수 있는 경우•고의 또는 자해, 자살, 자살미수,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질병(정신질환 포함)•요양기관의 치료를 방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그로 인하여 늘어난 손해•천재지변 및 자동차·선박·항공기 사고•대물상 간접손해 및 대인상 휴업손해 아래 QA는 학교안전공제중앙회의 ‘안전공제가입안내 매뉴얼’의 사례를 기초로 안내해 드립니다. Q체육시간에 학생이 찬 축구공이 학교 밖으로 나가 지나가던 행인이 공에 맞아 상해를 입히고, 차량에 부딪혀 차가 파손된 경우도 보상받을 수 있나요?A 보상받으실 수 있습니다. 학교배상책임공제에서는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급격하고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로 인해 제3자에게 입힌 생명 또는 신체에 입힌 피해(대인손해)나 재산상의 손해(대물손해)에 대해 교직원 및 학생의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행인의 상해피해와 차량파손피해 모두가 보상대상에 속합니다. Q급식시간에 학생이 밀고 가던 급식 카트에 학교 방문객의 발이 끼이면서 골절이 된 사고도 보상이 되나요?A네, 학교배상책임공제에서 보상받으실 수 있습니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는 급식시간에 발생한 사고는 학교 내 교육활동과 관련해 발생한 사고로 다뤄 제3자인 학교방문객의 대인손해를 학교배상책임공제의 약관에서 정한 범위에 따라 보상하고 있습니다. Q교육활동 이외의 시간에 학교 내 놀이시설을 이용하던 학생 및 일반인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다친 경우에도 보상이 되나요?A 교육활동 이외의 시간에 학교 내 놀이시설을 이용하던 학생 및 일반인이 자신의 부주의로 다친 경우(놀이시설 하자가 아닐 때)에는 학교안전공제와 학교배상책임공제 모두에서 보상대상이 아닙니다. Q교육활동 시간 중에 학교 내 놀이시설을 이용하던 학생이 놀이시설물의 하자(그넷줄이 끊어짐)로 인해 다친 경우에 보상이 되나요?A보상대상입니다.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제2조 제2호에서 규정한 ‘어린이놀이시설’의 하자에 의한 사고로 인해 어린이의 생명 또는 신체에 피해(대인손해)를 입히거나 또는 재산상의 손해(대물손해)를 발생하게 해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장이 부담하는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에 대해서는 학교배상책임공제의 약관에 따라 학교안전공제중앙회에서 보상하게 돼 있습니다. Q학교배상책임공제에서 보상대상으로 정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처리방법은 어떻게 되나요?A학교배상책임공제의 보상대상인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공제가입자인 학교장은 중앙회 홈페이지(www.ssif.or.kr)에 접속해 사고통지를 해야 합니다. 사고발생 통지의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고발생통지서 작성 → 사고발생통지서 내부 결재 → 공제증권에 기재된 회원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중앙회 홈페이지(www.ssif.or.kr) 로그인 → 사고발생통지서 전자파일 중앙회 송부
기존의 수업이 교사의 질문과 교사의 설명을 위주로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수업이라면 ‘QE(큐앤이)’ 학습은 아이들의 질문과 설명을 위주로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꾸려가는 수업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학습할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아이들은 학습할 내용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으로 서로 질문하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궁금한 점, 이해 안 되는 점, 더 알고 싶은 점에 대해 다른 아이들과 교사에게 질문하고 학습한 내용을 스스로 구조화해서 정리해 내면화하는 수업이다. QE학습의 QE는 ‘Question(질문하다) and Explain(설명하다)’의 약자로 교사가 주도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참여하는 학습을 의미한다. 질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메타인지(Meta Cognition) 능력이 향상되고 자기성찰적 학습 역량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습하지 않고 질문을 만들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질문하기와 설명하기를 통해 융합적인 사고로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력을 기르고 사고를 확장시키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바른 인성을 갖게 하는 학생중심 학습이다. QE학습은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유대인 학습법인 ‘하브루타’ 학습과 과제를 집에서 해결하고 학교에서 모둠별로 토론하고 학생이 설명하게 하는 거꾸로 학습, 사회적 관계에 중점을 두고 모둠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서 적어보고 발표하는 협동학습 등의 장점을 모아 우리 교실 현실과 교육적 상황에 맞게 최적화시킨 학습법이다. QE학습 수업의 원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간다. 1. 기록하기(Record) : 학생의 질문과 설명을 기록하게 하자.기록하기는 학생이 학습하는 내용과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학생의 질문, 학습 내용, 학습 주제에 대한 설명 등이 잘 기록돼야 한다.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학생의 사고 과정이나 이전 학습 내용, 출발점, 학생 개개인의 학습 결손과 학습 저항, 잘못 인식하고 있는 개념, 학생이 궁금해 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더 알고 싶은 것을 깨닫고 알고 있도록 해 좋은 수업을 가능케 한다. [PART VIEW]2. 말하기(Remark) : 학생이 생각한 것 느낀 것을 말하게 하자.말하기는 조용히 듣고 있는 학습을 지양하고, 매 시간 달라지는 학습 내용과 주제에 대해 교사의 생각이 아닌 자기의 생각과 느낌이나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말하도록 하는 절차다. 창의력과 자기표현 능력을 길러주자는 것이다. 3. 평가하기(Evaluate) :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하게 하자.평가하기는 메타인지 관점에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를 평가하고 능력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 성취하고자 하는 것,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학습할 수 있는 마음의 터를 다지게 된다. QE 과학 수업의 실제 아빠를 졸라 변신 로봇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가 장난감이 어떻게 변하지 궁금해 하나하나 분해해 보고 이해 안 되는 것, 궁금한 것을 가족들에게 물어서 이해하고 변신 원리를 알게 된 후에 다시 장난감을 조립하고 아빠에게 변신 로봇이 어떻게 변신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아이는 이제 친구들에게도 변신 로봇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된다. QE(큐앤이)학습의 원리는 아이가 변신 로봇 장난감을 이해해가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과학 수업도 아이가 변신 로봇을 배워가는 과정과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학 수업은 실험을 하면서 생기는 궁금한 점, 이해 안 되는 점, 더 알고 싶은 점을 질문하고 교사와 아이들이 같이 생각해보는 실험 과정을 반복해 보고 결과를 분류하고 구조화해 노트에 정리하고 이를 친구와 교사에게 설명하는 체험을 하게 한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수업 QE 과학 수업은 기존의 과학 수업에서 소홀했던 질문하기와 설명하기의 과정이 있다. 계획한 실험을 한 후에 실험 과정에서 생기는 궁금한 점,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하고, 이를 통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생각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매 시간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어 학생은 교사 주도적인 수업에서는 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면서 학생의 개인적인 사소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 학생은 무엇이 이해 안 되는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등 수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고 학습에 참여하게 된다. 실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점을 해소하고 본시 주제에 관해 평소에 갖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 질문하고 설명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이 실험을 왜 하는지, 실험의 결과가 어떤 이유로 예상과 달리 나왔는지, 조건 통제는 잘 됐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등 실험 과정 전반을 성찰하고 본시 학습의 결과를 스스로 평가해서 메타인지(Meta Cognition)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학생의 학습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실험 과정이나 결과를 교사가 알려주거나 정리해 주지 않고 학생 스스로 본시 주제나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노트에 구조화해서 정리하고 구두로 친구에게 설명하는 체험을 통해 학습 내용의 내면화도 이뤄진다. 학습내용 노트 정리 예시
최근 국내 체류 외국인이 17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외국인 254만 명이 돼 우리나라도 OECD 기준으로 다문화국가로 분류될 전망이다. 이렇게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진입함에 따라 2015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다문화 교육이 반영됐고 미술 과목에도 다문화교육을 도입하게 됐다. 문화적 가치와 신념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예술작품의 특성상 미술은 다문화교육의 이상과 목적을 실현하는 데 적절한 교과 중 하나다. 다문화미술 감상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 계층, 인종, 민족 등의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다문화미술 감상 수업의 실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미술 수업에서 미술 작품의 제작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감상 영역이다. 감상활동은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탐색으로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 표현에 대해 재창조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미적 감수성이 형성되는 초등학교에서 감상 수업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미래사회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향유하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질 높은 삶을 사는 데 일조할 것이다. 미술 감상 수업은 다음과 같은 시너지 효과도 가져 온다. 첫째, 우리의 시지각(視知覺)을 향상시키고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다. 미술 감상은 일차적으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감상을 통해 살펴보게 되는 주제, 표현 방법, 재료 등은 아동의 표현 욕구를 증가시키는 훌륭한 자극제 역할을 하고 나아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둘째, 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이해하고 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현대 미술의 다양한 장르(추상, 미니멀아트, 개념미술 , 환경미술, 해프닝 등)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바람직한 감상 교육을 통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보는 눈을 길러준다. 다양한 작품을 비교 감상하다 보면 내게 맞는 작품, 내가 좋아하는 작품, 남들이 봐도 좋은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셋째, 다양한 미술품의 가치를 알고 다문화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준다. 인지적 접근을 통해 미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비평적인 언어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토대로 미술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 준다. 교수·학습 과정안 ▶ 주제 : 샤걀의 ‘나와 마을’ 감상하기 ▶ 학습 목표 ▶ 작품 선정 이유[PART VIEW]감상 주제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나와 마을’ 작품 감상하기다. 선정 이유는 미술작품 감상을 통해 타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비평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목적에 부합되고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 샤갈의 ‘나와 마을’이다. 샤갈은 초현실주의 작품의 대표적 작가다. 이 작품은 현실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작품으로, 학생들의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생각이 나올 수 있고, 미술작품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나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타자의 다양한 관점과 존중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 교수·학습 개요수업의 단계는 생각열기, 생각나누기, 정착 단계로 구성된다. 생각열기에서는 그동안 경험했던 작품과 문화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을 말해 보게 한다. 생각나누기 단계에서는 중점적으로 학습해야 할 다문화 미술교육 요소들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질문이 포함돼야 한다. 정착 단계에서는 배운 내용을 성찰하고 실제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의지를 다진다. 전체적인 교수·학습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 수업에서 감상할 샤갈의 작품은 개인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며, 학생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감소시키는 데 유용하다. 미술작품 감상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미술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작품을 보는 관점을 토의하면서 자기가 가진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관해 토론학습을 할 때 자유롭고 허용적인 학습 분위기를 조성해 각자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한다. 토론 과정은 작품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이다. 작품에 대해 서로 좋고 싫음, 혹은 감동적인지 등에 관해서 그룹별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한다. 이때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강조했듯이 모둠 토의나 대화를 통해 교사와 학생 간, 학생과 학생 간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허용적인 교실 분위기를 만든다. 메타 감상은 지금까지의 감상 과정을 되돌아보고 다시 감상해 봄으로써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 등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예술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되고, 유용한 반성적 사고과정을 기를 수 있다. 메타 감상은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타인의 삶의 방식과 나와 다른 관점을 인정하는 등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작품에 대해 재판단하는 과정이다. 메타 감상에서는 자신의 감상을 다시 되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자기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 학생들은 토론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향상시킨 감상 안목을 갖고 자기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 자기보고서 작성을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보는 관점을 달리하니 작품을 처음 봤을 때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써 보게 한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보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게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메타 감상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수업을 통해서 느낀 점과 알게 된 점 등을 자신만의 수업노트에 작성해 봄으로써 학습을 통해 배운 것이 생활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하는 단계다. 정착 단계에서 자신만의 감상을 정리하는 활동은 미술작품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문화에 대한 수용과 편견 감소로 이어지게 돼 생활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할 것이다. ▶ 참고 자료 및 사이트 이 수업을 위해 초현실주의 작품이나 명화 작품집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작품은 원작품의 색채와 가장 가깝게 인쇄된 것으로 하고, 가능하면 크기가 큰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샤갈의 ‘나와 마을’ 작품은 원판에 가까운 화질로 인쇄된 것으로 골라야 한다. 참고 자료와 사이트는 초현실주의 작품,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작품, 명화집, 미술 교과서, ‘미술 감상과 미술 비평 교육(박휘락 저)’, 인터넷 미술관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주요 인터넷 미술관 사이트 목록 국립현대미술관 http://www.mmca.go.kr/ 일본교토국립박물관 http://www.kyohaku.go.jp/ 루브르박물관 http://www.louvre.fr/ 뉴욕현대미술관 http://www.moma.org 퐁파두센터 http://www.centrepompidou.fr/ 메트로폴리탄박물관 http://www.metmuseum.org/ 대영박물관 http://www.britishmuseum.org/ 중국역사박물관 http://www.chnmuseum.cn/ 트레티야코프미술관 http://www.tretyakovgallery.ru/ 네덜란드왕립미술관 http://www.mauritshuis.nl/ ▶ 수행평가지아래의 샤갈 작품 나와 마을을 보고 제시된 감상 관점에 따라 수행평가지를 완성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