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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창 더운 여름이다. 이때는 누구나 갈증을 느낀다. 목이 마르다. 물을 찾기도 하고 음료수를 찾기도 한다. 특히 냉수가 그립다. 이 시간에는 목마름의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정치가는 권력을 향한 목마름이 있고 기업은 돈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운동선수는 힘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어떤 목마름이 있을까? 교육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여러 학생들의 펌프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우리 선생님들이 한다. 학생들의 펌프가 잘 작동하기 위해 선생님은 한 마중물의 역할을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교육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가 있다. 학생들에게는 수많은 물이 마음속에 있다. 그 물은 잠재력이다. 그 물은 능력이다. 재능이다. 자질이다. 학생들 깊은 곳에 있는 각종 능력들을 꺼낸다면 선생님의 갈증은 해소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누구에게나 잠자는 거인이 있다. 그 잠자는 거인을 깨우면 그 때부터 놀라울 정도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이가 바로 우리 선생님이다. 우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툭 치면 그 속에서 재능이 나온다. 이걸 기억하면서 한 바가지의 마중물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옛날 어릴 때 마당 한 쪽에 펌프가 있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없으면 물을 길러낼 수가 없다. 오래 되면 녹물이 나온다. 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향한 목마른 심정으로 마중물 역할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펌프 역할을 바르게 하면 그때부터 학생들은 학교의 생활이 재미가 있게 되고 자신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를 때까지 우리 선생님들은 교육의 힘을 보여주자. 목마른 심정으로, 교육에 불타는 심정으로 학생들의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보자. 그러면 선생님은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갈증에 냉수를 마시듯이 시원함을 얻게 되고 학생들을 향한 마중물 역할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한 바가지의 마중물도 자신 속에서 길러내어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많은 펌프와 같은 학생들에게 마중물 역할을 아주 잘하게 될 것이며 애들에게 만족감을 주게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옆에는 모 외국어고가 있다. 그리고 특목고를 다니는 학생들도 주변에 많다. 그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공부를 하는 양도 일반고에 비해 다르게 보이지만, 학사 운영 자체가 크게 다르다. 중학교에서 그래도 우수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한 학생들이기에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의 양도 차이가 있고, 그들이 교사의 수업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좋은 학생을 선발해서 우수하고 질 높은 인재를 교육으로 길러내는 것 그것 또한 얼마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그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외국어고등학교의 경우는 어학 수업이 일반고에 비해 월등이 많다. 외국어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외국어 공부를 통해 고등학교 단계에서 무엇을 창출해 내고 있으며 이들이 결국 나아가는 길이 어디냐는데 문제가 있다. 폭넓은 영어를 공부해서 이들이 통역관으로 아니면 학술지를 만들어 내어 영어권에서 국익을 창출해 가는 길로 토대가 이루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다. 특목고를 만든 취지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추첨제 방식으로 입시가 바뀌게 됨으로써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성적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함께 학습을 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한 반에서도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교사가 어디에다 수준을 맞추어 수업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고, 수준 높은 학생은 수업 시간에 억지춘향꼴로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이런 아우성을 잠재우기 위한 대안으로 출현한 것이 특목고였다. 특목고 출발점은 좋았다. 그런데 이런 학교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늘어나더니 이제는 일반계고에서는 성적이 지나친 하향 추세로 나타나 수업보다는 인성문제에 더 큰 문제를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인성도 좋고 성적도 우수한 학생들이 고루 있어야 인성이 좋지 않은 학생도 마중지봉처럼 좋은 인성으로 동화되어 갈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너무 성적이 하향추세로 치닫고 인성 또한 지도하는데 문제점까지 노출시키고 있다. 특목고가 일반고 수업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특목고가 과연 그렇게 많아야만 하느냐에 있다. 해마다 특목고에서 학생을 모집하는데 인문계통이 많은가 이과계통이 많은가? 대충 짐작하여도 알 수 있다. 서울에만도 외국어고등학교가 몇 개인가? 그리고 수도권 주변에 외국어고등학교는 또 몇 개가 있는가? 인문계통 학생들을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선발하고 나머지 학생들을 일반고에서 교육시킨다면 일반고의 교육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도 좋다. 그런데 일반계 중에서 우수 학생들이 이과 계통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 문과의 경우는 수업도 수업이지만 교과의 기초학력수준 미달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고 기초학력 미달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특별 지원금도 끝없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닌 현실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학을 오는 학생 대부분이 문과로 배정되어 일부 학교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뜩이나 수업이 제대로 안되고 사건사고가 많이 나는 인문계통의 학생들의 동향을 바로 잡아 나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런 아우성을 덜기 위해서라도 특목고를 폐지하여 학력의 균형감각을 유지해야만 할 상황이 도래했다.
충남 서령고 1학년 최근원 군이 7월 28일 서산시에서 공모한 서산시 원도심 문화공간 명칭 공모전에서 작품 명 ‘와唯’란 작품으로 당선됐다. ‘와唯(유)’의 唯(유)는 오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로, 오직 서산을 생각하고, 오직 서산을 위하고, 오직 서산 시민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한다. 또한 ‘와唯’는 서산 사투리로 정겨운 이미지를 내포하기 때문에 서산을 대표하고 서산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복합 홍보문화관으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고 한다.
올해 9월 1일부터 교원 등 공무원의 육아휴직수당이 첫 3개월간 2배로 인상될 예정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의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1일 입법예고했다. 개정 내용은 육아휴직 개시 후 3개월까지는 월 봉급액의 80%를 지급하되, 상한액은 월 150만원, 하한액은 월 70만으로 올리는 게 골자다. 나머지 기간은 종전 기준에 맞춰 지급된다. 현행 육아휴직수당은 1년간 월 봉급액의 40%(하한액 50만원~상한액 100만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개정안 시행 전에 육아휴직을 시작한 경우에는 남은 육아휴직기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예를 들어 8월1일부터 육아휴직을 했다면 9, 10월만 인상된 수당을 받게 된다. 이번 인상안은 민간의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령안과 동일하게 추진하는 내용이다. 인사혁신처 성과급여과 담당자는 “자녀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휴직 시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취지”라며 “관련 절차가 완료되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도 구름은 비를 머금고 간간이 내린다. 참 좋은 날이다. 비가 내리면 운동도 그치고 방학이라 치고 집에서 낮잠만 자는 이는 자신을 망치고 만다. 비가 와도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이 시간에는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인지 생각해 본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선생님이다. 방학 중 가장 깨지지 쉬운 것이 리듬이다. 리듬이 깨지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 식사시간도 규칙적이어야 하고 운동하는 것도 독서하는 것도 규칙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개학을 하게 되면 더 피곤하게 되고 더 적응하기가 힘들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무엇을 하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좋은 선생님은 사랑을 실천하는 선생님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 사랑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적어도 사랑은 받는 것만큼은 주는 것이 이치다. 더 나아가 사랑 받은 것 이상으로 사랑을 주는 이가 좋은 선생님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사랑하면 그 선생님은 존경을 받게 된다. 내가 받은 사랑보다 몇 배 몇 십배 존경을 받게 되고 인정을 받게 된다. 좋은 선생님은 관심을 가지는 선생님이다. 시간이 나면 문자로 전화로 자기 반의 애들의 안부를 묻는 게 좋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면 그 반 학생은 행복에 넘치게 된다. 나를 챙기는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선생님이 계시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방학 중 행동에도 거칠게 하지 않고 자신을 잘 관리하면서 여름 더위를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선생님은 지식이 넘치는 분이다. 자기가 가르치는 전공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게 가르치려고 하면 스스로 전공서적을 펼쳐놓고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선생님이다. 공부하지 않고 아는 지식으로 평생 학생을 가르치려고 하면 학생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책이 항상 머리맡에 있어야 하고 시시때때로 전공서적을 펼치는 것이 좋다. 좋은 선생님은 늘 연구하는 선생님이다. 내가 지식이 많아도 학생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수업기법에 대해서 꾸준히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단원마다 특성이 있기에 그에 맞는 수업기법을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지식이 강물처럼 넘친다 해도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선생님은 건강을 지키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자기 몸을 아낄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목이 좋지 않은 선생님도 계신다.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기능이 약해진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건강하지 못하면 학생들을 잘 교육할 수가 없다. 방학 중 건강관리에 특히 신경을 쓰면 참 좋을 것 같다.
수원의 서쪽에 위치한 일월공원. 공원 한 가운데 일월호수가 있다. 호수 한 바퀴를 돌려면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거리는 1.9km이다. 산책객들은 호수를 바라보며 한 바퀴 돌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킨다. 공원 북쪽에는 야외공연장이 있다. 동쪽에는 일월도서관과 일월물놀이장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공원 내에 수원식물원이 꾸며진다. 또 있다. 둑 아래에는 일월행복텃밭이 있다. 수원시에서 개인과 단체에게 무상으로 분양하였는데 1백 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이 텃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외부에서 찾아온 탐방객이 연 2천 여 명이 된다. 왜? 다른 텃밭과 차별화되었기 때문이다. 농작물과 함께 꽃이 자란다. 농약을 쓰지 않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꽃과 농작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텃밭에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다. 또한 이 일월공원은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일월초교에서는 수업시간에도 이용한다. 넓은 잔디밭과 공원텃밭은 교육의 장소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야외 학습의 장소로 활용한다. 그들에게 보이는 자연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중한 교육자료이기 때문이다. 일월공원은 가족 나들이의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얼마 전부터는 일월공원 내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포크레인이 움직이고 덤프트럭이 오가고 공사 기자재가 속속 도착한다. 이렇게 쾌적한 공간인데 무슨 공사일까? 일월공원 환경 개선 공사다. 이 세상에 100 퍼센트 완벽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미처 손을 대지 못한 것이다. 예산을 핑계로 대기도 하고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일월공원에서 이 지역 시 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공사장을 수시로 둘러본다. 필자를 공사장으로 안내하는데 신바람 나게 설명한다. 일월마루 앞에 화장실 1개소와 식수대 1개소가 들어선다. 화장실의 방향은 행인들이나 아파트에서 보이지 않게 남북으로 들어선다. 나무 조경 계획도 있다. 여자화장실 변기가 5개이고 남자 화장실 변기가 3개라고 친절히 알려 준다. 그뿐 아니다. 시멘트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투수블록으로 교체된다. 이 블록은 우천 시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 충격을 흡수하여 피로 또한 덜할 것이다. 자전거 도로도 435m 새로 생긴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쾌적한 일월공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원 인근에 있는 구운동, 화서동, 율천동 주민들 뿐 아니라 서수원 지역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곳에선 구운동 주민센터 각종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서수원 주민들의 휴식처 일월공원, 자세히 보면 작은 것이지만 개선할 것이 보인다. 공원 안내판을 보면 금지사항이 나타나 있다. 낚시금지, 쓰레기 투기금지, 야영 및 취사 금지, 이륜차 통행금지, 목줄 미착용 애완견 출입금지 등 10여 개가 넘는다. 안내판 내용 중 무엇이 문제인가? 이륜차 통행금지라고 써 있는데 주민들은 통행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공원 안전을 책임지는 수원시장, 수원소방서장, 수원중부경찰서장, 한국농어촌공사 수원지사장이 세운 안내판에는 이륜차 통행금지임을 밝히고 있다. 공원을 관리하는 수원녹지사업소장은 이륜차 통행 시 위반 과태료 금액 안내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현수막을 보면 이륜차 통행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전거 통행자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서행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 이번 공원 개선 공사가 마무리 되는 8월 하순이면 안내판도 정비되리라고 믿는다. 자전거 통행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쪽은 '이륜차 통행금지'라고 하고 한 쪽은 '자전거 서행'이라는 엇박자는 없어지리라고 본다. 담당하고 있는 관공서에서 내건 시민을 위한 안내판과 현수막이 서로 모순이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서수원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인 일월공원,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서수원 주민들은 그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고 있다.
7월 24일부터 30일까지 문경 국제정구장에서 열린 제55회 대통령기 전국정구대회에서 경북 문경공고(교장 김대영) 정구부가 단체전 우승(A팀)3학년 주축, 단체전 3위(B팀), 2학년 주축으로 출전해 위와 같은 성과를 거뒀다. 이로써 2015년, 2016년에 이어 3년 연속 대통령기 전국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정구명문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단체전에는 A팀, B팀이 준결승에서 맞붙는 조 편성으로 인해 우승과 3위를 차지하게 됐다. 이어 진행된 개인복식에서는 우리선수들이 승승장구해 결승에서는 우리 선수들끼리 승부를 겨루어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개인단식에서는 각 학교 6명씩 출전할 수 있는데 우리선수 4명이 8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해, 4강에는 충남 홍성 1명 우리선수 3명이 4강에 올라 우승, 준우승, 3위를 차지하였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6강팀 중 5팀이 참가해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다. 전국체전 전력노출에 대비해 3학년·1학년(A팀), 2학년·1학년(B팀)으로 구성해 출전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과시하며 A팀은 복병 강원도 횡성고을 2: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이번 대회에 올해 전국체전 우승 후보 팀들인 충남 홍성고, 대전 충남기계공고, 강원 횡성고, 경기 안성고등 등 충북 음성고를 제외한 강호들이 모두 출전하였으나 A팀은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문경공고 정구부가 이렇게 대통령기 전국정구대회 3연패 및 전 종목 우승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경상북도교육청의 전폭적인 훈련지원과 문경공고 교직원들의 성원, 모교 정구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문경장학회를 비롯한 문경공고 동문들의 뒷받침 덕분이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장수시대가 되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인생의 한계성을 시로 기록하였다. 인생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70대(70~79세)는 옛날에 고령으로 분류됐지만 요즘에는 '젊은 오빠'로 불릴 만큼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여든을 넘지 못하고 별세한 사람들이 상당수여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 인간의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도 총 사망자는 28만1000명이었으며 이 중 70대가 7만1100명으로 80대(80~89세) 8만79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다른 연령층 사망자는 90세 이상 3만1400명, 60대 3만8200명, 50대 2만8700명, 40대 1만3400명 등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를 성별로 보면 70대 남성이 4만4000명으로 80대 3만6800명, 60대 2만7400명, 50대 2만1000명, 40대 9300명, 90대 이상 8100명보다 월등히 높다. 이로 보면 70대 남성은 건강의 사각지대이다. 이같은 배경을 보면 최근 자기 부담 종합 정밀검진 수검자 6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령대별로 40대와 70대 검진 비율이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50·60대 수검자는 각각 29%와 22%로 전체 수검자의 절반을 차지해 비교적 건강검진에 적극적이었지만 40대, 70대는 각각 17%와 6%에 그쳤다.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이 100명이라면 단지 6명만이 70대라는 얘기다. 40대 대부분은 중·고교생 학부형이다 보니 자녀 교육과 대출금 상환 등으로 개인종합검진을 망설이고, 또, 각종 성인병은 물론 소화기계, 심·뇌혈관계, 근골격계 등 다양한 질환의 시초가 될 만한 증상들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그런가하면 70대는 건강관리를 아예 포기하거나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검진에 소극적이어 피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70대는 근골격계, 심·뇌혈관 질환은 물론 혈관성 치매, 수면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도 급격히 늘어난다. 암 발생률도 65세부터 급증하지만 70대에 특히 두드러진다. 이처럼 40대는 모든 질환이 시작되는 시기이고, 70대는 세 가지 이상 질환이 동반되는 다질환자가 급증하는 시기라서 정기 검진을 하지 않을 경우 몇 년 후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검진이며, 가능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올바른 식생활 습관이 건강의 기본이다. 하지만 혼자서 꾸준히 운동하기가 쉽지 않고 소통하고 싶어도 같이 동행하여 주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장수마을 곳곳을 취재한 미국의 댄 뷰트너 작가는 "치매나 질환 없이 건강하게 사는 장수인들은 심장병, 당뇨, 암과 같은 질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식사는 콩, 잡곡, 야채를 즐겨 먹고 평소 걷기, 가축 돌보기, 정원 관리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사교활동을 지속하고 낮잠 자기, 소식을 하고 야식 안 먹기 등 같은 공통점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노년을 멋지게 보내기란 쉽지가 않다. 삼락회 회원이라면 학교라는 직장 속에서 나름 우리 사회에서 존경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누린 사람들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퇴직하고 나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으며 사회통합에서 한 거리 떨어져 살아가는 모습을 한다. 과거의 삶이 보통사람과는 다른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날마다 다가오는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계급을 떼어낸 개개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순천삼락회는 많은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가까이 있는 순천만국가정원과 습지는 물론 아름다운 동천, 봉화산 둘레길 걷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일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고 소통을 위한 도구로 스마트폰 활용법을 익혀 친구, 이웃, 그리고 자신의 손자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각국의 대입시험 문제들만 직접 비교해 봐도 그 나라가 무슨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가 보인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고 객관식 정답 찾기 시험에만 전력질주하는 한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저출산, 실업률, 경제난, 인성 부재, 자살률 증가 등 많은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은 ‘교육’에 있다. 그간 교육개혁을 위한 노력이나 시도가 없지 않았다. 국가교육과정도 수도 없이 바뀌었고 대입제도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는 점점 악화될 뿐이다.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던 것은 바로 시험 즉, 평가 기준이다. 시험에서 어떤 능력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어떤 능력에 고득점을 부여하는지에 따라, 학생들의 공부법, 교사들의 교수법, 교육의 거버넌스, 사교육 시장까지 달라진다. 교육 관련 구성원들의 모든 행동 방향을 조종하는 시험, 그 시험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바꾸어도 대한민국 교육은 바뀌지 않는다. 2009년 국가교육과정의 첫 번째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창의적 인재 양성’이었다. 2015년의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이것이 ‘창의 · 융합형 인재 양성’으로 바뀌었다. 핀란드가 국가교육과정을 10년에 한번 바꿀 동안 우리는 18번 개정했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이 지경이다. 교육과정 목표들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교육과정 목표에 ‘창의적 인재 양성, 전인적 성장’ 등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 교육은 이런 목표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능력들을 길러왔다. 목표와 무관한 평가 기준으로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시기상조라고 주저한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 맞다면 지금보다 적기가 없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이미 현재의 교육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최악의 취업률로 드러났다. 누적된 저출산으로 학급당 학생 수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게 줄었고, 대학입시에서는 수시전형이 80%에 육박할 만큼 이미 정성적 평가가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는 이미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일본은 교육개혁을 선언하고 ‘생각하는 힘’을 평가하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전 교육과정 및 시험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 공교육에 도입하였다. 2018년까지 200개 공립학교에 도입하여 일본의 기존 교육에 파급효과를 높이고자 하고 있다. 2017년 3월 요코하마에서 있었던 IB 월드 컨퍼런스에서는 매우 드물게 왕실 인사가 참석하여 일본의 미래 인재 양성을 강조하는 축사를 했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에 맞설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이라는 점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미 왕실과 정부가 나서서 난공불락이던 그들의 공교육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균열을 기회로 일본은 2020년 국가대입시험인 센터시험을 전면 폐지하기로 선언했다. 일본의 교육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연일 교육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지만 아무도 교육내용의 방향은 말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미 들이닥치고 있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조선 말기에 이미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젊은이들을 뽑아 선진 문물을 배워오게 했고, 그렇게 시대를 읽는 눈으로 근대화를 우리보다 먼저 이룩했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늦게 읽어 나라를 빼앗겨야 했던 역사의 오욕을 반복할 것인가? 이제 우리 교육자들이 답을 할 차례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가 생각나는 정열의 계절 8월이다. 해운대 백사장에 펼쳐진 파라솔과 푸른 바다. 검게 그을린 구릿빛 청춘남녀의 어깨에서 태양의 종족을 실감한다. 8월의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피서로 보내는 이들도 있고 연수를 받는 교사, 보충수업을 하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여름방학은 기다리던 ‘바캉스’다. 어원인즉 그 무엇 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머물기 보다 직접적인 기쁨과 만족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휴식도 휴식이지만 어느 정도는 직무연수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연수라고 하면 지루해하고 시간을 때우는 식이 많은데, 자신에게 필요한 맞춤형 직무연수를 신청한다면 보람이 있다. 교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유·무료 원격연수기관은 다음과 같다. 한국교총종합교육연수원(www.kftaedu.or.kr), 한국교원연수원(www.hstudy.co.kr), 통일교육원(www.uniedu.go.kr), 각 시 ·도별교육연수원, 평생교육학습관(www.gglec.go.kr),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www.kyci.or.kr), 에듀니티행복한연수원(happy.eduniety.net), 중앙교육연수원(www.neti.go.kr), 각 교육대학교부설교육연수원(www.tcampus.or.kr),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www.tschool.net), 서울대학교사범대학교육연수원(cite.snu.ac.kr), 국립특수교육원부설원격교육연수원(iedu.knise.kr)이 추천할 만한 기관들이다. “교사여,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는 것도 피서의 한 방식이다. 특히 교육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해보는 것도 좋다. 그동안 수업을 하다가 무미건조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또는 ‘내가 선생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면 수업 코칭 전문가 조벽 교수의 저서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2010년 EBS에서 교육대기획으로 제작한 ‘학교란 무엇인가’의 5부작 편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서 선생님들의 수업장면들을 기억할 것이다. 혹시 ‘학교란 무엇인가’를 못 본 선생님이 있다면 유튜브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사실 교사라면 반드시 이 프로그램을 보아야 하고, 시간이 없어도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부분은 꼭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 부분 교사가 ‘나는 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자신의 부족함을 알더라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러한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참된 교사가 될 수 없다. 최근에 출간된 책 명강의 노하우 노와이가 있다. 이 책은 조벽 교수의 강의 노하우를 모아놓은 책인데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교수법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일선 교사들에게도 공감을 형성하는 책이다. 교수 중에는 거드름 피우거나, 강의는 대충 하고 딴 짓에만 신경 쓰는 교수가 많듯 교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아무리 대학 교수라도 교수법을 알아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벽 교수의 수업 컨설팅 또한 저자가 20년간 국내 ·외 교육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책으로, 전문가나 동료 교사가 수업을 관찰하고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컨설팅 기법 12가지를 제시한 훌륭한 책이다. 그리고 미국 교육계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소개하고 싶다. 이 저서는 하버드 대학에서 선정한 교육 분야 최고의 책이기도 하다. 15년 동안 100여 명의 교수들의 교수법을 연구한 역작으로 ‘버지니아 앤드 워렌 스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책은 분명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는다. 교사로서 존재감을 상실하고 교실에서 무기력해진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이 또 있다. 바로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교사로서 경계해야 할 것과 긍정적 생존전략이 제시되어 있는데, 저자는 오늘날의 교사에게 새 시대에 걸맞은 혁신을 요구한다. 이 외에도 그의 저서로는 희망 특강, 조벽 교수의 인재 혁명이 있다. 이 책들 역시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외국의 도서로서 추천할 만한 책은 미국의 교사 ‘조나단 버그만과 아론 샘즈(Jonathan Bergman Aaron Sams)’가 쓴 당신의 수업을 뒤집어라가 있다. 이 책은 최근 수학 교과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거꾸로 수업’에 대한 궁금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도널드 L. 핀켈 (Finkel, Donald L.)교수의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저자가 21년간의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시도한 모든 교수법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 영재교육과 수월성 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사라면 영재교육학 원론(박성익 외)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놀라운 미래의 세계를 미리 진단하고 준비하려는 교사라면 미래의 직업세계(교육인적자원부)나 매일경제신문사에서 간행된 미래직업 대예측(NEXT JOB)을 추천한다. 현재의 아이들이 성년이 되는 10년 후가 되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나기에 교사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학생들의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특목고를 준비하는 중학생이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비교과 영역에서의 봉사활동도 챙겨야 한다. 일회적이고 단순한 봉사보다는 지속적이고 유의미하게 자신의 진로와 연관된 곳에서 봉사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방학 중에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공인된 기관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이트로 1365 자원봉사센터(www.1365.go.kr),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www.vms.or.kr), 청소년자원봉사시스템(dovol.youth.go.kr)이 있는데 이곳에서 검색과 신청이 가능하다. 고등학생의 경우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한다면 올해 마지막 기회인 ‘추계청소년문학상’과 ‘전태일 청소년문학상’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둘 다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각각 8월 14일과 10일이 접수 마감이다. 이어 학생이나 교사들에게 유익한 역사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다. 국립 중앙박물관의 행사인데 먼저 아라비아의 길을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4천 년 즈음에 제작된 사람 모양의 석상부터 메카의 카바 신전을 장식했던 거대한 문 등 466점의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는데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크다. 그리고 단추로 풀어본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로서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가 8월 15일까지 같은 곳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단추를 중심으로 의복, 회화, 사진, 공예, 서적 등 1,800여 점의 전시품이 ‘단추’라는 소재를 통해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여름방학도 끝난다. 초등학교의 경우 빠른 곳이 17일, 늦는 경우 25일에 개학을 한다. 중 ·고등학교는 10일에 개학하는 학교가 있으며 늦어도 16일이면 개학을 한다. 아직 무더위가 남은 8월 중순, 휴가는 짧게 끝날지라도 교사는 또다시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개학 전 빈 교실을 청소하면 얼마나 좋으랴.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수업시간에 따른 단위(unit)제를 채택하고 있어 일정량의 수업시간을 채우면 졸업을 하게 된다. 반면 학점(credit)제 하에서는 낙제(F)가 존재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면 낙제점 부여 기준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고교학점제는 이러한 의미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학생 개인별 이수과목 선택제’즉, 학생 개개인에게 이수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정책을 의미한다. 즉, 낙제점 부여는 장기적 과제일 뿐, 현재의 고교학점제는 사실상 ‘개인별 수강신청제’를 의미한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학생 개인에게 이수과목 선택권을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심지어 중학교 시절부터 일정한 과목 선택이 이뤄지고, 고등학교에 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편의상 직업계열을 제외하고 논의해 보면,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대륙 국가들의 경우 문·이과 대신 4~6개의 보다 자세한 계열을 선택하고, 그 계열 안에서 이수과목을 선택한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아예 계열을 구분하지 않고 폭넓게 이수과목을 선택하도록 한다. 한국의 고교학점제는 유럽 대륙보다는 영미 계열의 제도에 가깝다. 우리나라 초·중등교육법 48조 2항은 ‘고등학교의 교과 및 교육과정은 학생이 개인적 필요 ·적성 및 능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한다’라고 규정했지만 오랫동안 획일적인 문·이과 구분을 유지해 왔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고교 기준 2018학년도 시작)을 통해 문·이과 구분을 없애겠다고 표방했고 그 방법으로 공통교과(국·영·수+통합사회+통합과학) 이외에는 학생 개개인에게 폭넓은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했다. 과거 7차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선택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는 문·이과 분리 편성을 고수했고 수능 또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분리해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교육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보고서를 내놓는다. 여기에 빠짐없이 실리는 설문이 바로 고교평준화에 대한 찬반 설문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항상 찬성이 반대를 압도했고, 최근에는 그 차이가 3~4배에 이른다(2016년 일반인 찬반 비율 64.7:20.9, 학부모 찬반 비율 73.0:17.3).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교 다양화에 대한 찬반을 물어보면 역시 찬성이 반대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는 점이다(2016년 일반인 찬반 비율 60.0:24.9, 학부모 찬반 비율 55.1:30.5).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평준화도 찬성하고 다양화도 찬성한다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러한 모순은 이른바 ‘평준화’에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는 데에서 유래한다. 평준화의 첫 번째 의미는 ‘성적과 무관한 고교 배정’이다. 우리 국민이 지지하는 평준화는 바로 이런 의미이다. 즉, 일부 학교가 학생 선발권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독점해서는 안 되고, 근거리 또는 추첨을 통해 배정하라는 것이다. 평준화의 두 번째 의미는 ‘획일적 교육과정’이다. 우리 국민들은 두 번째 의미의 평준화는 반대하고 있다. 즉, ‘붕어빵 찍는’ 획일적 교육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다양화'를 찬성하는 것이다. 결국 ‘고교 배정’은 평준화 방식을 지지하되, ‘교육과정’은 평준화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입 선발에서 비교과 부담 축소 마지막으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수과목의 조합이 다양해지면 이것이 대학의 학생 선발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수능이든 내신이든 국·영·수 중심으로 선발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학생의 이수과목 선택권이 보편적으로 보장되면 대학은 모집단위별로 적격자 선발을 위해 학생 개개인의 교과 이수 이력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학생에게 물리Ⅱ를 이수할 기회가 보편적으로 제공된다면, 대학의 공과계열 학과들은 물리Ⅱ 이수 학생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물리Ⅱ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수도 있고, 비공식적으로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평가할 때 고려할 수도 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지금까지는 교과 이수이력을 개인별로 특성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본인의 적성과 지향을 ‘비교과’를 통해 입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입학사정관제 원조 국가인 미국보다 비교과로 인한 부담이 오히려 더 큰 실정이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가 보편화되면 본인의 적성과 재능을 비교과영역이 아닌 교과영역을 통해 상당부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행전문가가 꿈인 학생이 지리·문화·역사 관련과목과 제2·제3외국어를 많이 이수하고 자기소개서를 통해 이를 어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고교학점제는 비교과영역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고교학점제, 이미 초기 시행 … “크게 우려할 것 없어” 고교학점제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현장의 혼란’이나 ‘시기상조’ 등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잘 준비한다면 새 교육과정이 처음 시행되는 2019학년도부터 시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판단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미 학생 개개인에게 이수과목 선택권을 부여하는 학교들이 적지 않다. 언론에 많이 보도된 서울의 도봉고, 인천의 신현고 외에도 용인의 흥덕고, 서울의 한가람고, 충남 삼성고 등 여러 학교들이 수강신청제를 실시하고 있다. 수강신청제가 실시되면 이전에 비해 ‘시간표 짜기’가 훨씬 어려워지는데, 일부학교에서는 시간표 짜기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하우들은 고교학점제를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학교의 공간 및 교원에 대한 여유가 필요한데 이것이 저절로 확보된다. 2000년생(현재 고2)이 63만 명인데 비해 2005년생(현재 초6)은 43만 명으로, 출산 절벽 구간이 고등학교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저절로 공간과 교원 확보에 여력이 생기게 되고, 고교학점제를 시행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확보된다. 셋째, 학생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는 과목을 국·영·수·사·과 주요 과목들로 한정하면 충분히 ‘보편적’ 시행이 가능하다. 일각에서 ‘전면적 시행’에 우려를 표하면서 ‘단계적 시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예를 들어 물리Ⅱ나 경제 과목을 매 학기 개설하여 원하는 고2, 고3 학생은 누구나 수강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고교생 급감 추세를 고려할 때 2019~2020년부터 충분히 보편적 시행이 가능하다. 물론 교사부족으로 인해 일부 과목 개설에 제한이 생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대비하여 순회교사·순회강사, 거점학교,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온라인 학점이수제 등을 기능적으로 겹겹이 배치하여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고교 내신,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을 고교학점제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고교 교육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성취평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물리Ⅱ나 경제, 세계사 등이 ‘찬밥 신세’였던 것은 왜일까? ‘공부 잘하는 학생’이 선호하는 과목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이들과 경쟁하여 낮은 평가 등급이 나올 것을 우려한 학생들이 기피했기 때문이다. 즉, 상대평가 하에서는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이 기피 대상이 되는 역설이 벌어진다. 서구 선진국의 고교 평가나 대학입시에 상대평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상대평가가 이처럼 ‘다양한 교육’을 방해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는 상대평가가 유지되면서 고교학점제가 ‘단계적 도입’이라는 미명아래 일부 시범학교에만 도입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시범학교 학생들은 대학 진학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왜 그럴까? 학점제가 실시되면, 시쳇말로 수학에서 내신 성적을 ‘깔아주던’ 하위권 학생들이 사라진다. 이들이 수학 공통교과(필수 이수단위)만을 이수하고 그 이상 단계의 수학 수업은 기피하고 다른 과목을 수강신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범학교에서 공통교과 이후의 수학 수업을 이수하는 학생들은 상대평가 하에서 타 학교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내신 성적(석차등급)을 받게 된다. 고교학점제 시범학교 학생들이 대입 내신 성적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알려지면 시범학교 지정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설령 시범학교가 지정되어 운영된다 할지라도 시범학교로 배정된 학생들이 전학을 가거나 자퇴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수강신청제를 실시하는 학교들의 경우, 상대평가 하에서 하위권을 ‘깔아주던’ 학생들이 감소함으로 인해 대입 내신에서 불리함을 겪고 있다. 서울 A고의 경우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2016년에 수강신청제를 폐지하고 원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즉, 고교학점제가 성공하려면 고교 절대평가(성취평가)가 시행되어야 하고, 절대평가의 전면 도입이 어렵다면 적어도 공통교과를 제외한 선택교과에라도 절대평가제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업·평가 혁신은 별도의 과제 끝으로 고교학점제와 수업·평가 혁신은 별개의 문제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고교학점제 논의에 수업·평가 방법의 개선이 뒤섞여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엄밀히 별개 차원의 문제이다. 고교학점제의 목표는 ‘이수과목 조합의 다양화’이며, ‘수업·평가 방법의 개선’은 고교학점제의 목표가 아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핵심인 반면, 수업·평가 혁신은 교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업·평가 혁신을 위한 정책과제로는 ▲‘학년별 평가’를 ‘교사별 평가’로 전환하여 교사 개인에게 평가권을 부여하는 것 ▲교사가 담당할 학년과 과목을 서구 선진국처럼 학년 시작 2~3개월 전에 예고하여 충분한 수업 기획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교과서에 대한 교사 개개인의 선택권 또는 집필권을 부여하는 것(교과서 자유발행제로의 전환) 등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고교학점제와는 별도 차원의 과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뒤섞기 시작하면 고교학점제가 지나치게 부담스럽고 무거운 변화로 느껴질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고교학점제에 대한 불필요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부문 공약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고교학점제 도입이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2018년부터 도입·확산하겠다고 함으로써 교육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공약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학교 현장에서는 고교학점제가 무엇인지, 그 시행에 대해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답답한 것 투성이다. 알다시피 고교학점제는 대학의 수업방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양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고 수업을 받는 것이다. 첫 번째 부딪히는 과제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엄연히 속성이 다름에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학점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생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해서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수강한 과목의 성적이 저조할 경우 낙제를 한다는 점이다. 학점제와 낙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고교학점제 시행과 함께 고등학교에서 낙제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교육현장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은 불 보듯 하다. 우선 낙제 기준에 대한 교사들 간의 의견 차이가 클 것이다. 또 학생이나 학부모가 그 결과를 쉽사리 수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낙제를 받은 학생이 평가의 타당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고교학점제로 ‘낙제’ 등장 가능성… 학생들 반발 땐 혼란 낙제를 한 학생이 재이수를 요구했을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거리다. 일단 낙제가 되면 어떤 학생은 한 과목의 낙제로 고등학교 졸업을 1년간 미뤄야 하거나, 추가 수업 등을 통해서 그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재이수가 이뤄졌을 경우 성적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수많은 내용을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고교학점제 운용에 대한 구체적 윤곽이 없다 보니 일선 교사들로서는 ‘깜깜이 학점제’나 다름없다. 둘째로,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한다는 측면을 살펴보자.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한다는 것은 자신의 진로나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이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다. 그런데 학생들의 진로희망 사항은 실로 다양하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도 있고, 대학 진학을 희망하더라도 대학의 학과가 수백여 개에 이르고 있어 이수해야 할 과목이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은 진로를 희망하더라도 각 해당 과목을 가르칠 선생님이 없을 수도 있고, 관련 시설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다양한 교육적 수요를 학교가 다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교육부나 일부 교육청에서 대안으로 검토되는 것이 지역 간 연합고교 방식이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원하는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을 경우 이웃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거점형, 연합형 프로그램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학교들이 인접해 있어 어느 정도의 투자가 이뤄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어촌지역의 경우 학교 간 거리가 멀어 이 같은 연합학교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온라인 수업 등 새로운 지원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양한 학생들 요구 학교 현장서 수용할 수 있을까? 범위를 좁혀서 일반적인 과목만 고교학점제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령 한 학교의 학생이 1개 학년에 300명씩이라면 3개 학년이면 900명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1학년이 공통과목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2개 학년이면 600명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면 이 다양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고, 각각의 학생별로 시간표가 나와야 한다. 대학들도 수강신청 시기가 되면 일대 혼란을 겪는다. 만약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고 한다면 국가에서 각 학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수강 신청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반영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생의 수강 신청, 개인 시간표 작성, 수업 교실별 출석부, 시험 시간 운영 등 일련의 학사 과정이 매끄럽게 운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평가 방식의 개선도 과제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상대평가인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교과 수업은 다수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개설되고, 학생들도 좋은 등급을 얻기 위해서는 수강인원이 많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어떤 과목은 그 과목을 정말 좋아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신청하였기 때문에 높은 성취 수준을 보였다 할지라도 상대평가인 탓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상대평가를 그대로 두면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교사 확충, 교실 구조 개편, 생활지도 등 난제 수두룩 교사의 인적 구성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받은 결과 어떤 과목은 신청자가 많아 교사가 부족할 수 있고 어떤 과목은 학생들이 신청하지 않아 교사가 남아돌 수 있다.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목의 교사와 강사를 유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순회교사제도는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며, 특히 학교가 원하는 강사를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강사 인력풀을 구성하는 등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학교 시설 측면에서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아직도 대부분 학교에서 학생들은 자기가 속한 학급에서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학생들은 자기 학급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과목의 교실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현재의 선진형 교과교실제가 모든 학교에서 실시돼야 하는 것이다. 개별 학교마다 홈베이스를 만들고, 사물함을 교체하는 등 학교 시설에 대한 상당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학생 생활지도와 담임의 역할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현재는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생활지도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면 자기 학급이라는 개념이 약해지기 때문에 담임교사의 역할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또한 일부 학생들은 수강 신청 과정에서 공강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어떤 학생들은 학교에 원하는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인근의 다른 학교나 시설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안전이나 생활지도와 관련된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통적인 통제 중심의 학생 생활지도 관점에서 벗어나 학교안전에 대한 책임 범위도 새롭게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을 도와줄 전문적인 상담 인력의 확보이다. 학생들은 미성년자이고, 자신들의 진로에 필요한 과목이나 역량이 무엇인지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과목 선택에 앞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에 따라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 상담하고 안내할 수 있는 교사가 꼭 필요하다.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과목을 선택을 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진로 준비와 학습 안내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의 교육과정 상담 역량을 강화하는 연수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학생에게 진로 선택과 과목 이수 등에 대한 상담과 코칭이 가능하도록 진로진학상담교사 외에 교육과정 코디네이터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사의 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수업 시수 경감 등의 지원이 이어져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제도이기는 하지만, 그 실행을 위해서는 수많은 학교 관련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며, 학교에 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확충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공과 대학 지원자 중, 고등학교에서 물리Ⅱ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을 선발 할 것인가? 만약 학교의 사정으로 물리Ⅱ가 개설되지 않았다면, 이수하지 못한 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대학 전공 관련 교과에 많은 시간을 투입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평가를 다르게 할 것인가? 단지 전공 관련 교과를 더 많이 이수했다고 해서 더 우수한 학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이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대입전형에서의 고민들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흥미나 적성, 대학에서 수학할 전공에 따라 교과목을 신청해서 듣는 제도다. 교과 선택권을 보장해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고교학점제 도입은 대입전형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대학에서 해당 전공을 수학하는 데 필요한 기초 역량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학생이 이수한 과목의 조합을 통해 학생의 다양성을 살피는 측면이 있다. 즉, 학생이 이수해야 할 필수 이수과목을 대학이 지정하는 방법과 학생의 선택과목을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학생의 필수 이수과목을 지정하는 대학으로는 서울대가 있다. 서울대는 지난 6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021학년도 대입에서 공통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이수 기준을 발표했다. ‘탐구영역은 사회(역사/도덕 포함) 교과 중 4과목+과학 교과 중 3과목 이수 또는 사회(역사/도덕 포함) 교과 중 3과목+과학 교과 중 4과목 이수, 생활·교양영역 중 제2외국어 또는 한문 중 1과목 이수, 또는 진로희망에 따라 과학Ⅱ과목 이수를 권장한다’고 대학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두 번째, 학생의 선택과목을 서류평가에 반영하는 대학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하는 모든 대학이 해당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대학은 학생의 선택과목을 지원자의 전공 관련 관심과 노력, 적성과 소질 등 전공적합성이나 자기주도성 등 의 관점으로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전공과목과 일치한 교과 선택 입시에 유리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도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 서류평가 시 전공관련 이수과목을 중요한 평가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경희대 입학전형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 전국 대학 입학사정관 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평가요소로 ‘학생부 지원학과 관련 교과성적(5.40)’이 꼽혔다. 이어 ▲면접(5.39) ▲학생부 교과활동(5.16) ▲학생부 비교과활동(5.08) ▲학생부 전 교과성적(4.85) ▲자기소개서 내용(4.73) ▲교사 추천서 내용(4.12) ▲고교프로파일(4.02) ▲수능성적(3.52)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2016년 경희대 네오르네상스전형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부 교과성적을 분석한 것과도 일치한다. 이에 따르면 입학사정관들은 지원학과 관련 과목 이수를 평가에서 가장 비중 있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영어와 국어’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영어학부, 경영학과, 관광학부, 정치외교학과 등으로 나타났으며 ‘수학과 사회’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회계세무학과가 있었다. ‘수학과 과학’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화학과, 전자공학과, 물리학과, 원자력공학과 등이며 ‘영어와 과학’ 교과가 우수한 학생이 합격한 모집단위는 의예과, 간호학과, 건축학과 등으로 각각 조사됐다. 실제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전공 관련 교과 우수자를 선발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다. 앞으로 치러지는 대입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서류평가에서 고교학점제가 가장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성적은 학생의 교과 선택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국어, 수학, 영어, 사회/과학 등 교과 단위로 특성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학생의 진로 및 적성과 관련한 교과별 세부 과목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과학Ⅱ과목, 국제경제, 생명과학실험, 경제수학 등 선택과목의 이수 여부를 세밀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분야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대학에서 수학할 전공 관련 과목을 많이 이수했다는 점은 학생의 흥미와 관심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심화·고급 과목 이수는 열정, 열의, 동기 등을 평가할 수 있지만 과목의 수준과 내용, 난이도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대입에서 내신은 ‘공식에 의한 처리’가 아니라 ‘개별적 검토’가 될 것이다. 학생부 교과성적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학생 개인별 다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개별적 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은 기존의 학생부 교과 산출 공식을 반영하는 정량평가가 아니라 학생이 이수한 교과 수준의 난이도와 내용 등 정성평가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교과과목의 이수 여부뿐만 아니라 과목의 수준과 질을 평가요소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고교 교육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학생이 이수한 교과목의 수준, 이수과목의 경향성, 다양한 교과교육의 경험 등을 학생을 선발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학생의 다양한 교과 선택을 제대로 반영해 줄 대입전형이 필요하다. 아울러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에 따른 전문성을 갖춘 입학사정관의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입학사정관이 많을수록 학생의 교과 선택 경향을 통해 전공적합성, 학업 기초 수학 능력 등의 질적 평가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대입에 필요한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릴 것이다. 주요 교과목 외의 수업은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 학습결과가 대학진학과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심화선택 과정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수능을 더 잘 보는 공부를 시키는 쪽으로 변질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현행 수능 위주의 입시제도에 기반한 시각으로 보인다. 만약 현 정부의 공약대로 수능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선호하는 주요 대학들은 1등급 인원이 많아 수능만으로는 학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대학은 변별력이 약한 수능전형을 줄이고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수능을 대체하는 대안이 바로 학생부가 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울대처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전체 모집인원의 70%를 선발하는 대학이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대학 가는 길, 숫자에서 문자 중심으로 바뀐다 이런 대입 환경에서는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학생이 수혜자가 된다. 수업시간에 모둠활동을 통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생, 수행평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고 실험이나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학생, 자신의 진로나 관심 분야에 관련한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다양한 활동과 경험한 학생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또 대학 가는 길이 수능에서 학교생활로, 숫자 중심에서 문자 중심으로 평가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부가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수능 전형으로 대입전형을 간소화할 경우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경쟁률도 많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입에서 보험 차원의 ‘묻지 마 지원’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에 맞는 ‘안정 지원’이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이며,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통해 학생의 다양한 교과활동을 세밀히 살피게 될 것이다. 최근 고려대가 전임입학사정관을 35명까지 늘린 것은 이런 의미의 사전 조치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학교의 사정으로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대입에서 학생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고등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을 상세하게 기록한 고교 프로파일이 축적되어야 하고, 입학사정관 역시 고교 프로파일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필수적이다. 또 고교와 대학 간에 고교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상호 공개해야 한다. 고등학교는 다양한 선택과목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에 참여하도록 지도하고, 교육과정의 수준이나 난이도 등을 구체적으로 고교 프로파일에 기술할 필요가 있다. 또 대학은 대학의 전공단위별로 요구되는 적절한 정보를 고교에 제공하고 이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는 연계가 필요하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고, 대학은 학생부를 공식에 따라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목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학생마다 다르게 학생부를 해석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변별도구인 고교학점제에 기대를 걸어 본다.
‘깜짝 놀라다’를 줄인 말이 ‘깜놀’이다. 요즘의 줄임말은 유행어 성격도 지닌다. 이런 줄임말은 예전의 정통 줄임말과는 좀 다르다. 예전 줄임말이 언어 논리에 맞게 말의 형태를 합리적으로 줄이는 것이었다면, 요즘의 줄임말은 재미있어 보이기만 하면 아무것이나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줄임말을 다소 억지로 만든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줄임말 자체가 마치 신조어인 듯한 느낌도 준다. 이런 줄임말 현상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흔하다. 이런 유행어 풍의 줄임말이 방송 미디어에서 더 기세를 올리는 것까지 우리와 같다. 왜 이런 줄임말을 억지로 만들기까지 하는가. 어떤 이들은 말조차도 줄여서 해야 할 정도로, 그만큼 바쁜 세상을 살고있음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한다. 딱 부러지는 설명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대개는 미디어에 기반을 둔 대중사회의 소통생태가 변화된 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런 줄임말들도 대중들이 언어를 즐기고 소통하고 누리는 취향의 한 면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줄임말들도 마치 유행어처럼 생겨난다. ‘깜놀’처럼 과도하게 말을 줄여 쓰는 현상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 혼란스럽고, 우리말의 질서를 흩트린다는 이유에서 그러할 것이다. 굳이 선택적으로 입장을 말하라면 나도 그런 축에 든다. 그러나 조금은 더 넓게 포용해서 보면, 줄임말은 젊은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언어습관이다. 더러 생동감도 있고, 변화감도 있고, 무언가 새로운 감수성이 스며있기도 하다. 더구나 젊은 세대를 늘 대해야 하는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아이들의 감수성을 눈높이에 맞게 공유하려면 아이들의 줄임말에 대한 센스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원래 전통적인 줄임말은 그 자체로 안정되고 불변하는 위상을 지녔다. 가령 ‘금시에’의 줄임말이 ‘금세’인 것은 줄임말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은 예이다. ‘주책이 없다’가 ‘주책이다’로 줄여진 것도 줄임말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반면 요즘 유행어나 신조어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줄임말은 그런 합리성이 없다. 줄여서 그 발음이나 의미가 재미있으면 줄인다. 그러다 보니 유행으로 스쳐 가는 말일 때가 많다. 한때 유행어였던 ‘라보때’가 ‘(점심 끼니 등을) 라면 보통으로 때우다’의 줄임말로 쓰였던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못생긴 사람을 두고 ‘옥떨메’라고 놀리던 때도 있었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를 줄여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런 줄임말들은 잠시 유행하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깜놀’은 장차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 말은 감각적 묘미가 있다. ‘깜놀’이란 말은 듣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란 듯한’ 청각적 자극을 전해 받는 것 같다. ‘깜놀’을 문자부호로 읽을 때도 그렇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무언가 ‘깜짝 놀란 듯한’ 시각적 느낌이 딸려 나오는 것 같다. 깜짝 놀랄 일이 별로 없는 일상의 현대인들에게는 은근히 매력을 주는 말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깜놀’은 대중의 감수성에 와닿는다. ‘깜짝’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갑작스레 놀라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눈을 매우 살짝 한 번 감았다 뜨는 모습’이다. 이때의 ‘살짝’이라는 것은 ‘가볍게’의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빠르게’에 가깝다. 내 생각에는 ‘갑작스레 놀라는 꼴’이나 ‘눈을 빠르게 감았다 뜨는 꼴’ 이 두가지는 서로 유사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깜짝’에 이미 ‘놀라다’는 뜻이 들어 와 있다. 그래서 ‘깜짝이야’라는 말은 오로지 놀람만을 나타내는 품사(감탄사)로 독립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깜짝 놀라다’는 놀람이 반복적으로 표현된 말이다. ‘놀라다’는 ‘뜻밖의 일을 당하여 순간의 긴장과 흥분을 일으키고 가슴이 설레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놀라다’와 ‘깜짝’이라는 말에 공통으로 숨어 있는 것이 또 있다. ‘갑자기’나 ‘순간적으로’ 등의 뜻이 공통으로 담겨 있다. 그렇다. ‘깜놀’은 그냥 서서히 놀라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놀라고, 한순간에 놀라는 것이다. ‘깜놀’이라는 말은 제법 세력을 얻고 있다. 잠시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깜놀’이 도처에 등장한다 . ‘깜놀 의류’도 있고, ‘깜놀 분식’이나 ‘깜놀 바비큐’ 같은 상호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튜브에 ‘깜놀 유치원 ’ 이 올라와 있다 . 들어가 보니 ,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이다. 도저히 유치원 어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능청스럽고 영악스럽고 어른 뺨치는 말투와 행동의 유아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실제라도‘깜놀’이고, 연기라 하더라도 ‘깜놀’이다. 조회 수도 많다. ‘깜놀’은 자신이 표상해야 하는 대상을 폭넓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왜 ‘깜놀’이 먹혀드는가. 대중문화가 ‘깜놀’ 현상을 부추기지만, 부추긴다고 다 먹혀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이 감동 없이 각박하다 보니,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기 때문일까? 현대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개인은 더욱 왜소해져서, 변화 없는 일상에 갇히기 때문일까? 더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이 없는지를 찾기 때문일까? 하기야 고전적인 연애를 지루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지 않는가. ‘깜놀 ’ 이란 말이 쓰이는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냥 ‘깜짝 놀라다’는 뜻으로 쓰기보다는 ‘깜짝 놀라게 해 주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이때 놀라게 해 주는 것은 ‘공포’나 ‘무서움’ 따위가 아니다. ‘깜놀’은 대체로 상대를 선의로 놀라게 해줄 때 쓰인다. 실제로 인터넷이나 매체에 등장한 수많은 ‘깜놀’의 발화 사례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 연인들 사이에 상대가 예상치 못한 애정 표현의 이벤트를 해줄 때, ‘깜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대중 연예인들이 깜짝쇼로 등장하거나 깜짝 재능을 보일 때도 ‘깜놀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깜놀’은 연인들 사이의 이벤트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연인을 깜짝 놀라게 해 주는 일이 이벤트이다. 사귄 지 한 달이 되었다고, 백일이 되었다고 이벤트를 한다. 이렇게 해서 무슨 계기마다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그 선의를 무어라 탓할 수는 없겠지만, 이벤트 없이는 사귀는 재미도 없다는 데에 이르면, 이벤트 중독이다. 다시 말해서 ‘깜놀중독’인 것이다. 사랑은 비껴나고 이벤트 걱정이 자리 잡는다. 얼마나 상대를 더 깜짝 놀라게 해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귐을 위한 이벤트인지, 이벤트를 위한 사귐인지 헛갈린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는 ‘깜놀’의 원형(archetype)이 있다. ‘깜놀’에는 불가피하게 일종의 속임이 들어 있다. 그것이 ‘깜놀'의 원형이다. 선의의 속임이라 하더라도 속임은 속임이다. 속임은 잠시 주목을 끌지만 반복되면 기피를 당한다. 늑대 소년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물론 ‘깜놀’에는 참신함이 있다. 그러나 모든 참신함은 원래 일시적인 것이다. 오래도록 영원히 참신하다는 것은 모순어법이다. 그래서 ‘깜짝 놀라게 해 주겠다는 것’은 참신함을 내세운 일시적 감각적 호소이다. 책략가들은 ‘깜놀’의 유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깜놀’에 빠지면 안 된다. ‘깜놀’은 포퓰리즘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수업도 그러하다. 수업시간마다 ‘깜놀'에 기댈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유익하지도 않다. 아니 그런 수업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노벨상 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려 본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을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지루한 기다림에서 인생의 숨은 의미와 삶의 실재를 찾으려 했던 작품이다. 나는 공연으로 두 번 보았다. 이야기 어느 대목에도 ‘깜놀’은 없었다. 지난주 텔레비전에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를 다시 보았다. 여주인공 카렌의 고단하고 힘든 인생 여정이 펼쳐진다. 시련 속의 그녀가 단단한 내면의 쓸쓸한 인내로 지탱해 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결코 달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종의 로맨스도 스며있다. 그러나 ‘깜놀’은 없었다. 그녀에게는 ‘깜놀’에 대한 기대조차도 없었다. 대신 그녀의 이런 대사가 ‘깜놀’을 압도한다.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지면…, 일을 더 악화 시켜 보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면…, 그러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어요.”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는 교과서에도 나오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나기’에 마타리꽃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년과 소녀가 산 너머로 놀러 간 날, 소년이 소녀에게 꺾어 준 꽃 중에서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마타리다.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마타리꽃은 여름에 피는 대표적인 꽃 중 하나다. 늦여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언덕 여기저기에서 황금색 물결로 흔들리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마타리 무리다. 꽃은 물론 꽃대도 황금색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시선을 끄는 데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마타리는 1미터 넘게 자라 다른 풀 위에서 하늘거린다. 그래서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거리는 모습이 애절하기까지 하다. 마타리를 양산처럼 들고 소년을 향해 살포시 웃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애절한 느낌을 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왜 마타리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가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오간 이중간첩 ‘마타하리(Mata Hari)’를 연상시켜 외래어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우리말이다. 줄기가 길어 말(馬)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타리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하도 냄새가 지독해 맛에 탈이 나게 하는 식물이라 ‘맛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배가 아프면 배탈인 것처럼, 맛이 탈 나게 해서 맛탈이(마타리)라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에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있다. 황순원 선생의 고향은 북한인 평남 대동군이고 2000년 타계하기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문학관은 주로 작가의 고향이나 생가에 위치하는데, 왜 양평에 황순원 문학촌이 있을까. 그 이유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딱 한 줄 때문이다. 바로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이다. 이 한 줄을 근거로 황순원이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한 경희대와 양평군이 양평에 소나기마을 건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양평에서 가장 소나기다운 마을인 서종면 수능리를 찾아냈다. 소나기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광장의 수숫단들이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기 위해 작은 움막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수숫단이다. 3층짜리 황순원 문학관도 이 수숫단 모양을 본떠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마타리꽃 사랑방’도 있다. 이 ‘마타리꽃 사랑방’ 입구 벽에는 문학관 주변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의 정체를 알려주는 작은 안내문이 있었다. 마타리꽃이 필 즈음 특이한 냄새가 나니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도서관 학생들과 함께 탐방을 가보니 마타리 군락도 없고 안내문도 사라지고 없었다. “왜 마타리가 없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다들 얼버무렸다. 아마 냄새 때문에 없앤 것 같았다. ‘마타리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 냄새는 간장 냄새 같기도 하고 똥 냄새 같기도 하고 축사 냄새 같기도 한데, 시골 노인들은 이 냄새 때문에 마타리를 ‘똥 꽃’이라고 불렀다. 한방에서는 간장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마타리를 ‘패장(敗醬)’이라고 부른다. 소년의 첫사랑 같은 마타리, 하지만 냄새는… 가을 산행 철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에는 “지리산 곳곳에서 사람들이 볼일을 봐서 그런지 분뇨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내용의 항의 전화가 적지 않게 온다. 그러나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는 “냄새의 주범은 사람의 분뇨가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바위틈에 주로 사는 ‘금마타리’라는 식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을철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금마타리는 사람의 분뇨 냄새와 비슷한 야릇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는 “지리산을 오르다 이상한 냄새가 나면 주위에 금마타리가 노랗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라”며 “금마타리의 독특한 냄새를 자연의 향기로 생각하면 더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타리는 사람이나 짐승이 가까이 가거나 뿌리를 캐려 하면 더욱 심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컹크가 위험할 때 냄새를 뿌리듯이 마타리도 냄새를 자기방어 물질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타리는 인분 냄새가 나지만 노루오줌 등은 오줌 냄새가 나 이름에도 ‘오줌’이 붙었다. 마타리가 냄새는 좋지 않지만 예쁜 꽃이듯이, 노루오줌도 이름과 달리 연분홍색 꽃이 아주 근사하다. 마타리는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서식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의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다. 마타리는 줄기 끝에 꽃들이 모여 피는데, 아래쪽일수록 꽃송이가 길고 위쪽일수록 짧아 꽃들이 거의 평면으로 피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이런 꽃차례 형태를‘산방꽃차례’라고 부른다. 그래서 꽃 모양이 우산 중에서도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 모양이다. 마타리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다. 필자의 두 번째 책 ‘문학이 사랑 한 꽃들’ 표지 그림으로 쓴 꽃이기도 하다. 마타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뚜깔’이 있다. 마타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이 흰 색인 점이 다르다. 뚜깔은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마타리 얘기하면서 금마타리, 돌마타리를 빼놓을 수 없다. 금마타리는 마타리보다 크기가 작고 잎도 넓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주로 높은 산 바위틈에서 자란다. 마타리는 1~1.5m 정도까지 자라지만, 금마타리는 30cm밖에 자라지 않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돌마타리도 역시 산에서 자라는데 마타리와 금마타리의 중간 크기(20~60㎝)이고 잎이 길쭉한 편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마타리 외에도 갈꽃(갈대꽃), 메밀꽃, 칡덩굴, 등꽃, 억새풀, 떡갈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나기’는 여러 가지로 참 예쁜 소설이다. 마치 스토리가 있는 한 편의 시(詩) 같다.
요즘 미국 대중문화, 특히 영화계를 보면 내적으로 융성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들 안에 담겨 있는 세계관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영화판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영화의 ‘원작’역할을 하는 소설 작가들의 세계관도 점점 넓어지는 모습이다. 기성세대들이 ‘설계’해 놓은 판 안에서 젊은 세대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묘사한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러너’ 등은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훌륭한 은유가 된다. 뭘 한 번 해보려 해도 가진게 없어 쉽지 않은 청년세대의 딜레마가 바다 건너에서도 똑같이 유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성세대에 갇힌 청년의 고단한 삶 2008년 5월 ‘아이언맨’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승승장구 중인 ‘마블 시리즈’에도 드디어 ‘청년 캐릭터’가 등장했다. 어느 날 거미에 물려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 10대 소년 피터 파커, 이른바 스파이더맨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10년간 수 십 편의 영화를 쏟아내는 동안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못한 데에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픽처스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계약관계 때문에 청년이 등장하지 못했다니 그것마저도 은유적이지만,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한 어른들은 ‘청년 노동자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작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야심차게 등장시켰다.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가 선사하는 짜릿함을 맛본 10대 소년의 흥분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운영하는 회사의 ‘인턴십'으로 참가하게 된 피터 파커는 오로지 ‘어벤저스’로 데뷔할 그날만을 기다리며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한다. 토니 스타크가 제공한 스파이더맨 슈트에 내장된 각종 최첨단 기능은 당장에라도 그를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혈혈단신의 10대 소년이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 히어로의 DNA를 타고 난 피터 파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악당 ‘벌처’의 계획에 근접해 나간다. 영화의 갈등은 피터 파커의 의욕이 넘치면서 극대화된다. 청년 스파이더맨이 결국 일을 망쳐버림으로써 토니 스타크로부터 슈트를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만 것이다. 피터는 ‘인턴십’에서 해고를 당하고 만다. “저 슈트 없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터 파커) “그렇다면 더더욱 슈트를 가져선 안돼.” (토니 스타크) 결국 ‘자체 제작’한,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피터 파커. 기성세대가 제공한 자본과 기술 없이 뭔가를 해내기란 참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그 누추함을 이겨내고 인간승리를 이뤄낸다는 데에 이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매력이 있다. 볼거리만으로도 워낙 훌륭한 작품이지만 한 청년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와 부자 관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토니 스타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낸 피터 파커에게 “자네를 잘못 판단했었다”며 사과를 한다. 이는 상당히 참신한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구호가 유행하긴 했었지만,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보여준 사과라는 건 사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공허하게 내뱉는 ‘이미지 관리용 멘트’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라도 의미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말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 진짜 청년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성세대는 ‘회사 안’에 있다. “우리 땐 말이지…”라며 청년들의 경험과 지혜를 일단 무시부터 하고 들어가는 수 많은 ‘인생 선배’들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청년들의 자존감과 자의식을 갉아먹는 ‘진짜 위협’이며 누군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 주체는 바로 이들이 돼야 한다. 토니 스타크의 사과는 그가 피터 파커의 ‘고용주’였다는 점에서 더욱 빛나며, 또 힘이 있다. 나아가 그는 말로만 사과한 게 아니라 피터 파커를 ‘정직원’인 어벤져스로 가입시켜 주고, 이전보다 더 좋은 슈트를 제공하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른바 ‘물심양면’의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마블 시리즈는 너무나도 중요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공식 일원에 포함됐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빌딩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는 데에 있다. 이는 문명의 금자탑인 도시 풍경 사이를 날아다니며 재능을 뽐내고 싶은 세상 모든 청년의 꿈이기도 하다. 의욕이 앞서다 보면 실수하기도 한다. 아직 모든 게 서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들도 실수하긴 마찬가지고, 그게 후배들을 짓누르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똑같이 실수해도 후배들이 선배에게 줄 수 있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타격은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토니 스타크의 사과 한마디는 바로 이런 저간의 사정 속에서 더욱 빛났다. 최저 임금과 노동조건 같은 딱딱한 이슈가 여지없이 뉴스를 뒤덮고 있지만,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묘안 역시 어쩌면 ‘사과 한마디’ 같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닐까?
마트에 가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늘 먹던 것, 늘 쓰던 것만 고집하는 반면 다른 한 부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매번 신제품을 찾아 집어 든다. 남편과 난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보다는 처음 보는 것, 알 수 없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설렘에 더 크게 반응한다. 세계 여행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새 가이드북에만 의존한 채 앞서간 여행자들의 길을 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앞에 선 어린아이의 설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계획에 없던, 아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베나길(benagil)’로 향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반원형의 해식동굴 안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동굴 천장의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나 있는 커다란 구멍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눈부셨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 ‘히든 비치’라는 이름 그대로 어느 바다 위에 숨겨진 신비로운 동굴 속 해변 사진이었다. 우리는 사진 속 그곳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해 한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온갖 방법으로 검색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구글을 통해 조그마한 단서를 하나 얻었고, 그다음은 단 한 장의 사진에만 의존한 채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어렵사리 베나길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히든비치의 신비로운 동굴 속으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르투갈의 작고 작은 해변가 마을이었다.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그냥 작은 해변가, 그곳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미지의 세상으로 가는 입구였다. 드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기암절벽, 저 안쪽에 자리 잡은 진짜 목적지로 가기 위해 우리는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하얀 모터보트는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와 혼연일체가 돼 거대한 바다로 나아갔고, 우린 한 마리 돌고래가 된 듯이 붉은 해안 절벽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유영했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굳이 거창하게 베나길을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느꼈던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감정을 써 내려갈 뿐. 거친 파도와 싸우며 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설마 실제로 있는 곳이겠어? 약간의 포토샵 작업을 거쳤겠지”라는 의심이 살짝 있었는데, 사진 속 모습 그대로 실존하는 동굴이라는 게 증명되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동굴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동굴 안을 밝고 화사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베나길을 지상에서 천국으로 오르는 문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쏟아지는 빛줄기 때문이다. 힘껏 점프하여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저 공간 너머가 진짜 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가 타고 들어온 보트가 되돌아간 후 아무도 없는 공간 속에서 얻은 건 완전한 휴식과 자유. 끊이지 않는 파도 소리는 온몸의 세포를 이완시켜 주었고, 동굴 안의 따스한 공기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비록 보트 주인이 다시 돌아오기로 한 30분 동안이었지만 말이다. 빈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구멍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약속했던 30분 후 돌아온 보트를 타고 나온 우리는 동굴 투어를 마치고, 보트 주인이 알려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탁 트인 세상이 펼쳐졌다. 보트를 타고 절벽을 올려다볼 땐 내가 돌고래가 된 듯했다면, 벼랑 끝에서 내려다보니 드넓은 바다를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된 듯했다. 포르투갈의 숨은 여행지인 베나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태초의 자연’이다. 그랬다. 누구도 밟지 않은 길, 그 이유만으로도 그곳을 걸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포르투갈 1. 파두(Fado) 이베리아반도의 대표적인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스페인에 플라멩코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파두가 있다. 플라멩코가 슬픔을 춤과 함께 강렬하게 표현한 음악이라면, 파두는 슬픔을 품에 안고 읊조리듯이 절제된 음률 내에서 표현한 음악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한’이라는 정서와 흡사하다. 파두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15세기 대항해 시대 때 해외로부터 들어온 음악과 리스본의 전통음악, 그리고 항구 도시인들의 정서가 뒤섞여 시작된 음악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늦은 저녁, 리스본의 선술집 어딘가에서 뱃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음악이 들려온다면 그 음악이 바로 파두다. 2. 에그타르트(Egg tart)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에 담긴 노란 커스터드 크림의 부드러움이 만들어 낸 극상의 조화가 디저트를 좋아하는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에그타르트이다. 이 에그타르트의 원조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기원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제로니모스 수녀원이다. 수녀원에서는 수녀복을 빳빳하게 하려고 달걀흰자만을 사용한 후 항상 남은 달걀 노른자가 처치 곤란이었다. 이후 이 노른자를 해결하기 위해 에그타르트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리스본에서 원조 에그타르트의 맛을 이어받은 곳은 18 73년에 문을 연 ‘파스테이스 드 벨렘' 베이커리다. 현재 단 세 명의 요리사만이 전통 레시피를 알고 있다 하니 단맛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 맛을 보자. 3. 가는 길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남쪽으로 2시간 30분,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서쪽으로 2시간 30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대중교통보다 렌터카 이용을 권장하며, 베나길로 들어가는 해변에 탈의실이 없으 므로 미리 수영복을 입고 가는 것이 좋다. 베나길로 들어가는 보트 매표소 주소 : Av. 25 de Abril, Edif, Crisfer-Apto. 203 / 8500 Portimao.
구전 민담과 설화들이 채록되고 묶여 지금의 동화가 되었다면 신화는 조금 다르다. 오래도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졌다는 전승의 역사는 조금 비슷할 수 있지만, 굳이 동화와 신화로 구분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목적성이다. 누구에게 읽히는가?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이 목적성에 의해 동화와 신화는 매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능하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물론 이야기의 시작도 다르다. 보통 애써서 역사적 연원을 밝히려는 것이 신화라면 동화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갖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아주 오랜 옛날에 어느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맺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동화를 듣고 읽는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심리적 불안과 고통,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착각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동화 내용을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심리적 역동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진짜 자신이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어느 마을, 어느 아이의 문제라면 성장 과정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자기화’하는 곤란을 겪을 수 있게 된다. 즉,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더 깊게 한다(동화를 다루는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아동소설’과 ‘창작동화’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호에서 살펴본 남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동화들은 아이들이 보다 ‘안전한 장치’인 옛이야기 속에서 자기의 문제를 ‘비밀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소재들이라 하겠다. 그럼 이번에는 여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한번 살펴보자.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아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들도 비슷한 방식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전(前) 오이디푸스 단계(소녀는 소년이다) 이때의 여자아이들은 성별에 대한 구분이 분명치 않다. 그래서 막연히 자신을 남자아이로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심리적 흐름의 과정을 거친다. 나는 네살이고 클리토리스의 흥분을 느낀다. → 나는 이것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며 또 그것의 전지전능한 힘을 느낀다. → 남자아이들처럼 나는 어머니를 소유하고 싶다. ● 고독의 단계(혼자이며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여아) 완전히 벗은 작은 남자아이를 보고 난 뒤 나는 내게 페니스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것의 박탈로 인해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 나는 엄마도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나는 엄마가 나를 이렇게 낳아준 것에 대해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우리가 예전에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구나 엄마는 그것을 속였다. → 나는 화가 나서 엄마를 떠난다. → 지금 나는 혼자이고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지며 내 자존감은 상처를 입었다. → 나는 남자아이들을 질투한다. ● 오이디푸스 단계(아빠를 욕망하는 소녀) 나는 이제 그 강하고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무엇’을 굳건히 간직하고 있는 내 아버지로 향한다. → 여전한 질투와 부러움을 안고 나는 아버지에게 내게도 그것을 줄 수 없냐고 묻는다. → 아버지는 내게 주는 것을 거절한다. → 나는 내가 결코 그것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 나는 아버지에게 나를 위로해 달라고 부탁한다. → (그것을 갖고 싶은) 나의 부러움은 욕망으로 바뀐다(욕망이 돼 버린다). → 나는 더 이상 내 아버지의 ‘그 강한 무엇’을 갖기를 원치 않고 ‘그것’이 되기를 소망한다. → 그때, 나는 여성성의 모델로서 어머니의 정체감을 형성한다. → 나는 내 어머니에게 소속되기를 소망한다. ● 오이디푸스의 해법(남성을 갈망하는 여인) 나의 아버지는 거절한다. → 나는 아버지를(아버지라는 존재를) 나로부터 ‘탈성화’하며, ‘인간’으로서 그를 내 속에 받아들인다. → 점차로 나는 여성이 돼가며,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 → 나는 더 이상 상상 속의 ‘그 무엇’과 ‘내 것’, ‘내 자궁’, 내 파트너의 아이를 희망하는 욕구를 인내하거나 괜한 ‘성별에 대한 싸움’을 계속하지 않는다. 이 부분 역시 다시 한 번 풀어보자. 이제 막 네 살이 된 여자아이가 있다. 아이는 목욕을 할 때였는지, ‘쉬~’를 할 때였는지 모르나 우연히 자신의 클리토리스에 가해지는 묘한 느낌을 경험한다. 이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무언가 큰 기쁨을 주는 이것이 페니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또 남자아이처럼 그것의 전지전능한 힘을 느낀다 . 이 시기에 아이는 남자아이들처럼 자신도 어머니를 소유하고 싶다는 판타즘(phantasm)을 경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자기 또래 남자아이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기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그 남자아이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아이는 ‘그 놀라운 것’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에 대해 깊은 박탈감과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이어 아이는 자기의 어머니에게도 그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요?”라고 어머니를 원망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원래는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여자아이는 자신을 속인 어머니에게 너무도 화가 나 결국 그 어머니를 떠난다. 이 순간 아이는 너무도 깊은 외로움에 빠지며 부끄러움과 깊은 자존감의 손상을 경험한다 . 결국 아이는 반대편에 있는, ‘그것’을 ‘당당히’가지고 있는 ‘저 아이들’ 곧, 남자아이들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누구보다 강하게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말한다. “아버지 내게도 그것을 주세요.” 이때 아버지의 1차 거절이 있게 된다. 결국 아이는 그것을 갖고 싶은 부러움을 욕망으로 바꾸고 이번에는 아버지의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2차 거절. 결국 그것을 가질 수도, 그것을 가진 아버지를 내 것으로 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는 서서히 이름하여 부모를 향한 ‘탈성화’를 경험해 나간다. 또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랑을 다른 남성에게로 옮겨 간다. 이제 여인이 된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또 한 명의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아 중심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여아에 대한 구체적 심리 변화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살펴본 대로 여아들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역동적인 심리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처음엔 남아와 똑같이 ‘어머니로 향하는’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아라서 무조건 시작부터 아버지에게로 성적 역동의 경험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동화 속에서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렇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이 기간에 여자아이들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 불안, 설렘, 기대 등을 다루는 데는 충분하다. 그 대표적 작품은 역시 백설공주이다. 백설공주는 특히 프로이트가 명명한 ‘가족 로맨스’라는 단어에 딱 맞는 어머니-아버지-딸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어머니의 두 얼굴, ‘친모-계모’의 모습을 통해 성장하는 딸과 그 딸을 바라보고 때로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어머니의 심리를 잘 다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어머니(계모-왕비)의 질투 어린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부지불식간 자기 속에 품고 있는 진짜 어머니에 대한 막연한 원망과 두려움을 ‘새엄마니까’라는 위안으로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백설공주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인 ‘사냥꾼’이다. 사냥꾼은 소포클래스의 작품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를 버리지 않고 구해주는 목동과 같은 위치를 갖는 인물로 아이를 죽일 수도 구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설공주를 죽이고 그 심장을 가져오라는 왕비의 명령을 어기고 사냥꾼은 백설공주를 그냥 숲속에 ‘버려둔다’. 그러고는 다른 동물의 심장을 왕비에게 가져간다. 여기서 ‘버려둔다'는 의미가 바로 오이디푸스적인 가족 로맨스 상황에서 수동적인 아버지(또는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아버지)를 뜻하며 상대적으로 더 강하고 큰 영향력을 가진 왕비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실제로 아이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구체적 생활에서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온다). 백설공주에서는 또 ‘빨간색’이 매우 중요한 모티브를 형성하는데 처음 ‘눈처럼 하얗고 피처럼 붉은’ 아이를 꿈꾸는 백설공주의 친모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자라는 공주, 이후 계모에 의해 전달되는 빨간 사과 등이 그것이다. 이 ‘빨간색’은 매우 강한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보통은 여자아이가 겪게 되는 성장과 초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빨간색’ 외에도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레이스띠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느 날 장사치로 분한 왕비는 백설공주를 찾아와 레이스띠를 보여주는데 백설공주는 한눈에 반한다(‘레이스’라는 소재가 담고 있는 여성성, 이제 막 여성에 눈뜨는 백설공주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왕비의 백설공주 허리 조르기. 동화는 백설공주의 허리를 레이스띠로 졸라매 죽이려는 계모(왕비)의 모습을 통해 오이디푸스적인 갈등 속에 있는 어머니와 딸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성적으로 성숙하려는 딸의 모습을 거세시키는 어머니, 성장을 방해하는 어머니 등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여아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다루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미녀와 야수’가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구전된 동화는 아니지만 비교적 분명하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아버지-딸-야수의 삼자 관계를 통해콤 플렉스를 극복하고 한 명의 온전한 ‘여인’으로 탈바꿈하는 주인공을 보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아버지를 떠나야만 비로소 ‘아버지 외의 남성’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한 그는 여전히 ‘야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렵고 무서운 이 ‘야수’나 괴물은 많은 동화들 속에서 등장하는데, 아직 성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남성을 의미하며 그가 주인공의 ‘진짜 남자’로 받아들여질 때 드디어 한 명의 온전한 사람(남자)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 ‘미녀와 야수’에서는 아버지와의 밀착된 관계, 그 관계의 벗어남 등이 어떤 동화보다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의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 때 사상계를 보면 재밌는 게 있습니다. 보통 유학하면 공맹(孔孟)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공맹지도(孔孟之道)라고 하지요. 공자와 맹자의 학문이고 사상이 라는 것이죠. 공자 그리고 맹자로 적통이 이어지고 나중에 주희가 그 적통을 계승 한다. 보통 이런 인식이 많은데 한나라 때를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외려 순자(荀子)야말로 공자 사상의 적자라는 인식이 강했고, 한때 사상계에서 활약했던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보면 순자의 색채가 강하죠. 그런 경향은 후한 말(末)까지도 계속됩니다. 후한 말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삼국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글줄 꽤나 읽었다는 학자들도 보면 순자 냄새가 나는데 특히 제갈량이 그러하지요. 순욱과 순유, 공융이라는 대학자도 순자적 색채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인데, 어쨌거나 한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순자적 유학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수당(隋唐)시대가 되고 북송시대 사대부들의 시대가 오면서 맹자의 유학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공자 사상의 적통이 순자가 아니라 맹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지요. 맹자가 대세가 되면서 순자에 대한 공격, 특히 학자라면 해서는 안 되는 저열한 인신공격까지 틈틈이 볼 수 있는데, 실로 순자로선 억울한 일이었을 겁니다. 논어 첫 시작이 학이(學而)편이고 끝이 요왈(堯曰)편인데 순자 텍스트 첫 편이 권학(勸學)이고 맨 마지막이 요문(堯問)이죠. 학이는 권학과 요왈은 요문과 매치되는데 제자들이 다 공자를 염두에 두고 스승의 텍스트를 편집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후 송나라 시대가 되면서 맹자와 순자는 사상계에서 위상이 완전히 역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순자를 높이 평가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자신부터가 사상적 이단아였던 중국 명나라 때 사상가인 이탁오(李卓吾)입니다. 그는 맹자에 대해서는 “고정된 사견에 사로잡혀 죽은 말 (死語)로 사람을 살리려 했다”며 현실적이지 못함을 들어 맹자를 비판한 것이지요. 반면 순자를 평할 때에는 유연한 모습과 현실성을 극찬하면서 “그 재능은 아름다웠고 그 문장은 웅거하였도다”라고 말했 습니다. ‘문장이 웅거했다.’ 여기에 주목해 주십시오. 순자의 글, 순자의 문장이 빼어 났다고 평한 것인데 사실 순자를 저평가 하는 사람들도 순자 문장의 뛰어남과 수려함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했고, 암묵적 이나마 대문장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 다. 그는 대문장가이며 문학가였지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순자 텍스트를 차근차근 읽다 보면 사상적 엄밀성과 설득력 이전에 문장의 아름다움과 미학적 재능에 감탄하게 됩니다. 문장의 차분함과 담백함, 잘 정제되어 있는 글의 리듬, 보석과 같은 압운과 기가 막힌 비유. 사실 순자(荀子)에 보이는 문장의 힘과 아름다움은 실로 대단하지요. 순자 텍스트는 문학서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시절 선진(先秦) 시대 모든 문헌이 역사서 다, 문학서다, 철학서다, 딱히 구분해놓고볼 필요는 없지만 순자의 텍스트를 보면 문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문장이 수려하고 개성과 힘이 있습 니다. 철학자고 사상가 이전에 문장가, 문학가이고 예술가, 미학자라고 해도 될 정도죠. 글과 문장을 떠나 예술에서 중요한 것을 뭐라고 합니까? 힘을 빼는 것이지요. 그래야 정제된 맛이 보이고 감상하는 이들이 공감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순자 문장을 보면 감정의 과잉 없이 힘을 빼고 쓴 문장과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장점 이외에도 미학적인 순자만의 장점과 장치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대칭성입니다. 짝을 이루고 대칭이 되고 그런 문장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시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참 많습니다. 시처럼 써야겠다고 의식하지 않았지만 시처럼 보이고 읽히는 문장들이 많은 것은 대칭성이 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칭성의 순자 1 不登高山(부등고산), 不知天之高也(부지천지고야) 不臨深谿(불림심계), 不知地之厚也(부지지지후야)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깊은 계곡에 가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모릅니다. 2 積土成山(적토성산), 風雨興焉(풍우흥언) 積水成淵(적수성연), 蛟龍生焉(교룡생언) 흙이 쌓여 산이 이룩되면 바람과 비가 일고 물이 모여 못이 이룩되면 교룡과 용이 일지요. 3 不積?步(불적규보), 無以致千里(무이치천리) 不積小流(불적소류), 無以成江海(무이성강해) 반걸음이 쌓이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고 개울물이 쌓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수 없습니다. 이상 권학편 4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한다. 5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以美其身(이미 기신)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以爲 禽犢(이위 금독)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기 위해서이다. 이상 수신편 순자의 문장들을 보면 이렇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대칭을 이루는 문장과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데 사실 저는 단순히 문학적, 미학적 재능과 열정이 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순자의 유려한 문장들을 보면 그가 가진 교육자로서의 자의식, 정체성과 연관된다는 것이죠. 위에 수신 편에서 든 문장들이 좋은 예입니다. 옛날의 학자( 古)와 지금의 학자( 今) 즉, 古 vs 今 옛날의 학자는 나를 위해 공부했다( 爲己)와 지금의 학자는 남을 위해 공부한다 ( 爲人) 즉, 爲己와 爲人 또는 爲己 vs 爲人 이렇게 정리가 되지요. 또 수신 편에서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군자의 학문과 소인의 학문, 군자지학 대 소인지학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또한 미신(美身)과 금독(禽犢) 즉,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대 ‘남에게 내어놓기’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순자의 주장과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참편합니다. 이 분이 스승으로서 정말 듣는 사람들을 배려하는구나, 어떻게든 수업 성취도를 높이고 학습능률을 올리기 위해 고민을 했고 노력을 했구나, 그래서 그의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사상과 철학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강하게 들어오게 됩니다. 정말 순자는 천생 교육 자라는 인상이 남게 되지요. 天行有常(천행유상) 不爲堯存 不爲桀亡(불위요존 불위걸망) 應之以治則吉 應之以亂則凶(응지이치즉길 응지이난즉흉) 彊本而節用 則天不能貧(강본이절용 즉천불능빈)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양비이동시 즉천불능병) 修道而不貳 則天不能禍(수도이불이 즉천불능화) 하늘엔 항상 된 도가 있습니다. 아무런 의지 없이 일정한 원리를 따라 움직일 따름입니다. 그것은 요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 임금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거기에 다스림으로 응하면 길하고 어지 러움으로 응하면 흉할 뿐입니다. 농사에 힘쓰고 쓰는 것을 절약하면 하늘은 인간을 가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잘 보양하고 제때 몸을 쓰면 하늘은 인간을 병들게 할 수 없고 올바른 도를 닦아 그 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하늘은 인간에게 재난을 내릴 수 없습니다. 천론편 순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천론(天論)편에 나온 말입니다. 하늘에는 어떤 항상 된 즉, 늘 언제나 지켜지는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2행을 보면 요(堯)와 걸(桀), 존(存)과 망(亡)으로 요약이 되고 3행을 보면 치(治)와 난(亂), 길 (吉)과 흉(凶)으로 압축이 됩니다. 5·6·7행을 보면 행마다 강본(彊本)과 절용(節 用), 양비(養備)와 동시(動時) , 수도(修道) 와 불이(不貳)라는 2개의 과제가 제기되며 끝에 불능-빈(貧), 불능-병(病), 불능-화(禍), 이렇게 끝이 나는데 절로 정리가 되고 또 쉽게 암송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지요. 기억과 암기가 쉽게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학가로서의 재능 이전에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와 노력이라고 생각하고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진 성실함과 노력, 순자는 그런 사람입니다. 노래와 시의 창작자 문장뿐만이 아니라 글의 전개 방식과 전체 사상적 구도와 개념도 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통제, 보장/ 결핍, 채움/ 인지, 입지/ 스승, 제자/ 개인, 사회/ 자극, 반응/ 이상, 현실/ 패도, 왕도/ 선왕, 후왕/ 교화, 형벌/ 독려, 격려/ 군자, 소인 등이죠. 이런 대칭성은 공부하는 사람이 순자 사상을 쉽고 빠르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지요. 대칭성, 이것만으로도 순자는 극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보여지는데 그만큼 정말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노력한 순자,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부지런히 발휘해서 많은 시와 노래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성상(成相)과 부(賦)라고 해서 만들어냈는데 성상(成相)편과 부(賦)편이 순자 텍스트 32편 중에 따로 있습니다. 그 성상과 부는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유가적 사상들을 운율에 맞게 평이하게 담아낸 노래들입니 다. 사람들이 노래를 재밌게 따라 부르고 단체로 흥겹게 부르면서 쉽게 유가 사상을 이해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을 담아낸 것들이죠. 하지만 역시나 전 교육자로서 자의식과 열정, 노력이 더 컸다고 보는데 노래만큼 좋은 교육, 학습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그의 문학적 재능과 열정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성실함과 배려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자는 역시 교육자 입니다.
1982년은 야간통행금지의 해제로 시작되었다. 1955년에 제정된 경범죄처벌법으로 인해 무려 36년 4개월,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기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시민들은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외출이 금지되었다. 밤 12시에 사이렌이 울린 이후에 통행하는 사람은 경찰서에서 잡혀 있다가 새벽 4시에 풀려났다. 국제선 비행기도 기상 여건 악화 등으로 12시를 넘기는 경우에는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일본이나 홍콩, 심지어는 알래스카나 하와이 등으로 회항해야 했다. 부처님오신날과 크리스마스만 예외였다. 이날만큼은 야간 통행이 허용되었다. 자유가 그리운 청소년들에게 일시적 통금 해제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이런 야간통행금지 조치는 1982년 1월 5일에 해제되었다. 야간통행금지 해제에 이어 1982년 1월 15일,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삼미슈퍼스타즈, 롯데자이언츠 등 프로야구팀들이 줄줄이 창단되었다. 본격적인 프로스포츠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두웠던 밤이 밝아지고, 심심했던 일상이 깨어나는 시절이었다. 이 시절 유행하기 시작하였던 완구 중 하나가 ‘스카이콩콩’이었다. 스프링의 탄력에의해 자연스럽게 튀어 오르는 완구이며 운동 도구였다. 시인 윤지용은 새교육에서 ‘스카이콩콩’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에 콩콩 땅에 콩콩 연둣빛 바람 사이로 내어민 앞니 두 개 … 논두렁 밭두렁 꼭 이스라엘 축구선수같이 바람결에 나풀나풀 하늘에 콩콩 땅에 콩콩. (새교육 1982년 5월호) 왜 이스라엘 축구선수에 빗대었는지는 모르지만, 스카이콩콩 위에서 어린이들은 휘날리는 긴 머리를 뽐냈었다. 그런데 긴 머리를 뽐내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마지막이 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남학생은 삭발이, 그리고 여학생은 단발이 강제되었다.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 동안 그 누구도 규정을 넘어 머리를 기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학생이 똑같은 모양의 교복을 입어야 했다.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오직 학교의 상징으로 모자 앞에 달린 교표와 왼쪽 가슴 위 명찰뿐이었다. 한 세대 동안 식민지 교육의 청산을 외쳐왔지만 두발규제와 교복강제는 그대로였다. 야간 통금 해제와 두발 자율화 중학생과 고등학생에 대한 두발규제와 교복강제가 폐지된 것은 야간통행금지조치가 해제되기 하루 전인 1982년 1월 4일이었다. 문교부는 전국 시·도 교육위원회에 중· 고생 교복과 두발 자율화 조치를 시달했다. 당연히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한 지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새교육 1982년 3월호는 이를 ‘머리·옷의 혁명, 굴레 벗은 중·고생’ 이라고 표현했다. 이 조치에 따라 두발은 1982년 9월부터, 그리고 교복은 1983년 신입생부터 자율화되었다. 이렇게 사라졌던 중·고생의 교복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1986 년 2학기부터였다.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교복 착용을 허용하는 문교부의 후속 조치에 따라 교복을 다시 착용하는 학교가 많이 늘어났다. 서울의 경우 1986년 2학기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8개교였던 것이 1987년 신학기에 이르자 47개교로 증가했다. 1990학 년도 2학기 즈음에는 전국 4,157개 중·고등학교 중에서 교복을 입는 학교가 1,809개교 (43.5%)에 이르게 되었다(손인수, 한국교육운동사 5, p.73~78). 비록 두발 자율화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었고, 교복이 다시 부활하기는 했지만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된 두발과 교복 자율화는 이 시대 교육계의 희망과 한계를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학원 자율화 조치로 ‘대학의 봄’ 기지개 자율화 물결은 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사회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83년 12월 21일 모든 신문은 정부의 ‘학원 자율화’ 조치를 대서특필했다. 동아일보의 1면 헤드라 인은 ‘학원사태 제적생 복교허용, 5·17 이후 1,363명 대상’이었고, 경향신문 또한 ‘제 적학생 전원 복교허용, 80년 5·17 이후의 1,363명’이라는 제목으로 이날의 학원 자율화 조치를 보도했다. 이 조치에 따라 1984년 1학기부터 제적 학생의 복교가 이루어지고, 대학 내에 공식·비공식으로 주둔하고 있는 일체의 공권력이 철수했 으며, 정치적 차원에서 해직된 시국 관련 교수는 전원 복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규율 중심의 학교문화를 감옥에 비유했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사망한 1984년 한 해 동안 한국의 교육은 탈규율과 자율화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자율화 물결을 지켜보면서 연세대학교 교수 김동길은 1985년 새교육 신년 호에 ‘우리 교육의 반성’이란 글을 게재하여 ‘자유가 무질서의 원인인가?’라는 근원적이며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8·15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6·25 동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승만 정권의 독재 하에서도 교육만큼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원칙 만은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민주교육이 암초에 부딪히게 된 것은 5·16 쿠데타로 인해서였다. 그날부터는 민주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비정 상적인 사회로 진입했다. 10·26 이후 잠시 희생했던 민주주의 교육의 꿈이 다시 억압을 당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규정했다. 교복과 두발 자율화를 청소년 범죄와 연결시키며 이는 반드시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육자들이 여전히 많았던 시대였다. 제적됐던 대학생들의 복교, 해직 교수들의 복직 이후 격해지고 있던 데모를 지켜보며 대학의 혼란이 결국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염려하는 교육자들이 여전히 넘치던 시대였다. 이들의 시각에서 무질서의 원인은 자유였고, 질서로 가는 길은 규제와 탄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