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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신문 조성철 기자] 교총이 헌법에 교권을 명시하고, 의무교육의 무상 범위·내용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교육분야 개헌과제를 발표했다. 청와대와 국회, 각 당에 개헌과제를 전달하고 전방위 반영활동에도 즉각 돌입했다. 교총은 현행 헌법 중 교육과 관련이 있는 제31조 일부 조항을 수정해 교권을 강화하고 무상교육을 명료화 하는 교육분야 개헌과제를 7일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교육 현장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제시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가동된 교총 교육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12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전국 교원 설문 등 현장 여론 수렴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개헌과제를 도출, 성안했다. 이번 개헌과제에서 교총은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6항에 ‘교권’을 추가로 명시하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강조했다.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를 ‘…교원의 지위와 교권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으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교총은 “단순히 교원의 권익만을 지키려는 뜻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권이 바로 서야 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교총이 올해 1월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67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헌법에 추가돼야 할 교육관련 내용’을 묻는 문항에 75%의 교원이 ‘교권’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교육의 무상을 규정한 제31조 제3항의 개정도 제안했다. 교총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현행 조항을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하고, 무상의 범위와 내용은 법률로 정한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교총은 “무상의 범위와 내용은 교육기회의 균등을 실현할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법률로 정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적 이슈화를 최대한 방지해 교육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이유를 제시했다. 이밖에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지닌다’(제31조 제2항)에서 ‘적어도 초등교육과’를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하고 있는 상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제36조 제1항(양성평등)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설문조사 결과 ‘양성 평등’을 ‘성적 평등’으로 개정하는 것에 대해 응답 교원의 60%가 반대할 만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교총은 7일 청와대, 교육부, 국회 헌법개정특위, 교문위, 각 당에 교육분야 개헌과제를 전달하며 대정부, 대국회 반영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날 낸 입장을 통해 교총은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만큼 개헌에 반드시 반영되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만 이제는 봄을 재촉하는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목련나무를 보니 꽃 몽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희망의 봄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아침이다. 좋은 선생님? 심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농작의 법칙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심어야 거둔다는 것이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다. 꿈을 심지 않으면 꿈을 거둘 수가 없다. 비전을 품지 않으면 비전을 이룰 수가 없다. 미래를 창조하는 길은 씨앗을 심는 것이다. 심지 않아도 자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잡초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농부의 아들이라 볍씨를 뿌려 놓은 논에 '피'라는 잡초를 뽑은 적이 있다. 예사로 보면 구분도 잘 안 된다. 우리 학생들의 마음속에 좋은 씨를 심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좋은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땀을 흘려야 잡초를 제거할 수가 있고 고운 씨가 자랄 수가 있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습관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이 싫어하면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합리화한다. 비둘기와 올빼미의 이야기가 있다. 비둘기가 말했다. 아장동사라, 너는 왜 동쪽으로 이사하려고 하느냐? 물으니 내 울음소리를 싫어하므로 이사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사 간 곳에서 환영을 받을 수가 없다. 학생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해서 고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세월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지나간다. 젊음은 빨리 지나가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세월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신학기를 힘차게 출발할 수 있도록 지도함이 바람직하다. 세월을 아끼면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되고 후회하지 않게 된다. 세월을 아끼면 잠에서 깨어나게 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세월을 아껴야 심은 것을 잘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어서와~ 금당초등학교는 처음이지? 경기도 여주시 금당초(교장 김경순)는‘세종의 얼을 이어받아 내 마음의 행복 나침반을 그려가는 생생지락 교육’비전아래 2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힘차게 출발하였다. 김경순 교장은 "처음 들어오는 입학생들만의 날이 아니라 새 학년 올라가는 친구들도 설레임을 갖고 올 한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도전하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학식은 재학생들이 “어서와, 금당초는 처음이지? 축하합니다.”라는 힘찬 박수로 시작하였다. 먼저 신입생을 호명하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오면 담임교사가 안아주면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가정에서의 보살핌이, 학교 부모님인 담임 선생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의미로 부모의 마음으로 뜨뜻하게 품어주고 사랑해준다는 의미를 부모의 손을 떠나 학교 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금당초는 신입생에게 멋진 개량한복을 선물하였다. 개량한복은 작년부터 신입생들에게 선물한 것으로 생활지도, 현장체험학습에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멋지고 예뻐 재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입학식이 끝난 후 금당초 전통에 따라 6학년들이 신입생의 손을 잡고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소영(6학년)은 내가 입학할 때 6학년들이 손을 잡고 학교를 소개했는데 이젠 내가 소개하게 되었다며 학교에 또 다른 동생이 생겼다고 기뻐하였다. 처음 입학하는 신입생들. 비록 인원수는 적지만 개량한복을 입고 마음껏 뛰어놀고 공부하며 친구들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1학년들이 밟는 발자국마다 행복의 샘솟는 금당(황금연못)이 되길 희망한다.
우리가 모르는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은 기미년 그해 목놓아 외쳤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국의 총으로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윤형숙 열사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로 8권에서 인용- 100여년 전 역사의 길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주독립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나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3.1절이다. 내년이면 3.1절 100주년이 된다.'독립운동을 한 여성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아직도 유관순 뿐이다. 이처럼 여성독립운동가는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안타까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알리고 업적을 기리는 데 한우물을 파면서 힘써 온 이윤옥(60)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문학박사)은 20년째 학생들에게 '아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누군가?를 답하기 위하여 묵묵히 여성 독립운동가를 밝혀내고 있다. 2011년부터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삶을 시로표현한 서간도에 들꽃피다책 시리즈를 지금까지8권째(도서출판 얼레빗)냈다. 한 권에 20명씩, 총 160 여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소개해온 것이다. 이같은 출발은 전공이 일본어로 2000년에 일본 와세다대학에 객원 연구원으로 가 있을때 김마리아, 황에스더같이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들의 자료를 보게됐다. 그때부터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관심이 생겼는데, 정작 유관순 열사에만 초점을뒀을 뿐,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발로 뛰면서 자료를 찾아 썼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그는 출판사를 직접 만들고, 자비를 써서 책을 내고 있다. 인기가 없을 것 같아서인지 책을 내주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8권을 냈는데 한 권당 500만 원씩 든 것 같다.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거나 후손을 만나러 만주나 하와이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시간과 돈을 많이 쓰며 10년 이상 매달리고 있어서 힘들 때도 많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내가 해야한다"는 마음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안 해놓으면 나중에는 자료가 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이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자'며 내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이들이 후원을 해서 운영하는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강의를 했는데 170명이 모였다. 여성 독립운동가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는 것에 일본인들이 많은 충격을 받더라. 이곳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쓴 나의 시에 그림을 넣은 '시화'를 두 달간 전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10명 정도의 일본인은 한국까지 찾아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내 강의를 듣고,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일도 있었다." 고 전해주었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모르고, 일본인들이 더 많이 배운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현실을 극복하는 날이 와야 우리는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바로 배우고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상태를 간결하게 그러나 충분히 묘사한다’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이야기처럼 교육에 있어서 운동을 통한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남 보성 용정중(교장 정안)은 인격형성과 가치관이 본격적으로 정립되는 중요한 시기인 중학교시기에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체성장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 일반교과 시간으로는 스포츠 클럽시간을 포함한 4시간, 그리고 특성화교과시간으로 별도의 4시간의 국선도 시간을 편성하여 주당 8시간의 교과 체육활동을 하면서 기초체력증진과 함께 균형 잡힌 신체성장을 하고 있다. 그밖에도 방과후 체육활동과 주말 체육활동 등 매우 많은 시간을 용정중 학생들은 즐겁게 체육활동을 하면서 건강한 신체를 가꾸어 가고 있다. 특히 매월 1회씩 전교생이 모여 소 체육대회를 개최해 왔는데 금년의 경우 새로 입학한 신입생 44명과 함께 전교생 친교주간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오늘은 학급별 대항으로 몸풀기 운동인 뽕망치 게임을 시작으로 꼬리잡기, 피구, 그리고 닭싸움으로 진행되었고 전교생들로 하여금 흥겹고 단합의 한 마당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용정중의 이러한 활발한 신체활동은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의 생성을 자극하는 효과를 발휘하여 뇌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한 경험으로 모험심, 도전정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는 회복탄력성 등의 비인지능력도 함양시켜 주고 있다. 오늘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취를 맛본 사람들의 경우 인지능력보다는 비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용정중은 이러한 체육활동 외에도 전교생 악기연주 등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바, 이러한 질 높은 예술 체육활동은 자신감과 협동심, 그리고 집중력을 길러주면서 올바른 인격과 가치관을 정립으로 이어져 진정한 의미의 인성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람다움을 키우는 기본교육의 토대위에 학습 플래너(주간생활계획)와 학교제작노트의 지속적인 활용 등을 통해 철정한 자기주도 학습능력 함양까지 하고 있어 타 학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순천시는살기좋은 1등 도시, 주민의 손으로 정원 가꾸기 봉사활동 순천은 정원의 도시이다. 이 도시를 주민들이 구성한 한국정원식물관리협동조합(이사장 이용섭) 나눔봉사단 회원들이 앞장서 도로 주변의 정원 봉사활동을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6일 오후 2시 30분부터 이경수 회원을 비롯하여 사무실 직원15명이 참여하였다. 도시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다.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순천은 살기좋은 1등 도시의 명맥을 계속하여 유지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를 양성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30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토마스 프레이(미래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새로운 교육을 추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공부법을 터득해야 살아 남는 기로에 서 있다. 말 그대로 학교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러한 시대에 대처하는 힘을 보여준 분이 세종대욍이다. 요즘 뜨고 있는 하브루타 공부법을 일찍 실천하신 분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고 탐구 정신이 강했던 충녕은 유학의 경전인 사서삼경을 비롯해 농업,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고루 읽었다. 질문이 많아 스승을 귀찮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임금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왕위 수업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임금에 올랐기 때문에 늘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궁금한 것은 찾아보고 물어보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종의 공부법’을 요약하면 ‘질문하고 토론하라’이다. 1만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세종실록’에서 임금의 표현 중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는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라고 한다.. 질문을 던져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는 방식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도, 집현전 학사들과 격의 없는 논쟁을 벌일 때도 세종은 가장 먼저 신하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일상이었다.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세종의 의사결정은 회의를 통한 것이 63%, 명령이 29%였다. 반면 그의 아들인 세조는 명령이 75.3%, 회의가 20.9%였죠. 박 소장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군주였지만 모든 결정을 신하들과 의논해 내렸다”고 설명한다. 세종은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으로 나눈 토지조세 제도를 실행하기에 앞서 무려 17년 동안 일반 백성 16만 명의 의견을 조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며 경청하는 스타일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같은 세종의 공부법은 과거 뿐 아니라 미래 사회에도 더욱 절실히 필요한 공부법이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혁명 시대에는 공부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교는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위대한 임금의 공부법, 세종의 공부법이 있다. 책을 취미 삼아읽게 하는 일, 학생들을 생각하게 하는 교육, 선생님 생각대로가 아닌, 학생들과 함께 하는 질문과 토론이 일상이된다면 4차 혁명 시대의 파고를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확신한다. 먼저 길을 내신 세종 임금의 공부법을 실천하면 된다. 오늘부터 1학년 아이들에게 하는 질문은, "오늘은 무슨 책을 읽었니?" "네 생각은 무엇이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친구 생각을 잘 들어보고 좋은 생각을 찾아볼까?" "깨달은 것을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까?"
전라북도의 ‘지역문화예술 육성지원사업’ 접수가 마감된 가운데 최근 각 지자체의 문화예술진흥기금지원사업 내용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가령 ‘2018다이나믹 익산아티스트지원’이라든가 ‘2018년도 군산시문화예술진흥기금지원’을 들 수 있다. 전주문화재단과 완주문화재단도 2018년 사업목표 내지 세부사업을 확정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했다. 그런데 지자체의 문화예술진흥기금지원사업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익산이나 군산은 문인 개인의 창작집 지원사업이 있는데 반해 전주와 완주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절로 전주시와 완주군엔 문인이 없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보통 문화예술을 말할 때 첫 손에 꼽히는 문학이 유독 전주시와 완주군에는 없다는 말인가? 완주문화재단의 경우 이미 2년여 전 문인 개인의 창작집 지원사업이 없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도 여전히 그 모양이다. 또한 전주시는 도내 기초 지자체에서 가장 많은 회원 수를 보유한 전주문인협회가 무색할 정도로 문인들의 시집⋅수필집⋅소설집⋅평론집 등 저서 발간을 지원하는 사업이 빠진 문화예술진흥기금지원사업임을 알 수 있다. 되돌아보면 전주시는 2000년부터 문화예술창작 활동지원사업을 한 바 있다. 문학의 경우 저서를 구입, 공공도서관과 기관단체 등에 배포했다. 문인 개인의 기발간 작품집을 구입해줌으로써 열악한 현실의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게 한 사업이었다. 작가들이 크게 반가워하고, 창작의욕을 불태우는 등 크게 고무되었음은 물론이다. 4년 정도 계속되던 전주시의 문예창작활동지원사업이 중단된 것은 과별 풀예산제 도입 때문으로 알려졌었다. 예산편성시 우선순위 밖으로 밀리면서 문예창작활동지원사업이 자연스레 퇴출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전주시의 문화예술지원은 전주문화재단을 통한 ‘전주문화예술마케팅지원사업’뿐이었다. 그나마 전주를 주제로 한 내용이라야 선정될 수 있었다. 그런 경직된 기준과 편협한 지원이 또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은 그것마저도 지금은 아예 없어져버렸다. 전주문화재단이 여러 문화예술진흥사업을 하고 있지만, 문인에게 실질적 혜택이 주어지는 개인창작집 지원이나 저서구매 사업과는 거리가 먼 것들 일색이다. 아예 작정하고 문학을 블랙리스트 삼은 듯한 홀대요 배척이다. 매년 수억 원에서 10억 넘는 돈을 쏟아붓는 전주국제영화제 등 전주시의 영화 지원과 비교해보면 문인에 대한 엄청난 차별임도 알 수 있다. 1966년부터 5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인 셈이지만, 아예 전주를 떠나 익산이나 군산으로 가서 살까 하는 유혹이 생길 만큼이다. 유독 문학 홀대하는 전주시에서 35년 가까이 평론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을 정도다. 새삼스럽지만, 시나 수필을 써서 한 권의 책을 펴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찌어찌 일반대중의 입맛에 맞는 기획출판의 저자가 되어도 고작 인세 몇 푼만 손에 쥘 뿐이다. 대부분은 자비출판 하는 것이 지역문인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자체의 문인 지원이 단비 같은 존재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창작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최근 열린 전주문인협회 정기총회에서 뜻밖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 전주문인협회가 추진하는 가칭 ‘전주시민문학제’ 예산 3,000만 원을 전주시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전주문인협회의 의욕과 전주시의 문화예술, 특히 문학에 대한 열려 있는 사고(思考)와 관심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적극 환영하고 높게 평가한다. 전주시는 ‘문인창작집 지원사업’에도 적극 나서기 바란다. 매년 전주문인협회 소속 문인 1인당 200만 원씩 10~20명 정도로 저서 발간비 지원을 한다면 지자체 예산 대비 그야말로 ‘껌값’ 수준의 적은 돈으로도 문화융성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완주군 등 ‘문인창작집 지원사업’을 하지 않는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장들의 깊은 관심과 신속한 결단을 기대한다.
순천연향중 신입생, 올바른 학습자세로 새학기 출발 다짐! 전남 순천연향중(교장 김경섭)은 신학기를 맞이하여 5~6일 1박 2일 일정으로 순천시청소년수련원(원장 윤동화)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교 적응 체험학습을 실시하였다. 이같은 준비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여러 학교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마친 학생들이 중학교에 들어와 친구들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으며,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에 중학교 생활에 대하여 빨리 적응함으로 학습에 대한 정착을 쉽게 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학교생활에서 기본질서의 중요함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친구들과 잘 사귀며, 학습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는데 있다. 중학교 과정의 공통점은 일반적으로 교사와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산만한 모습이 전개되고 있다. 일상적인 학교 수업은 학생과 교사가 주어진 시간에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묻고 답하면서 질문의 주고받기를 계속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교사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지시에도 주목하지 않고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지도를 하여도 이를 거부하거나 대드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 수업을 이끌어 가는 선생님들의 고통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이에 필자는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의 주도권을 갖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학교수업에 적응하여 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하여오후 7시부터 3개 그룹으로 나눠 '올바른 학습 과정 4단계'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다수의 학생들이 자력으로 학습에 임하도록 하기 위하여는 이같은 학습습관이 체득될 수 있도록 일정기간 학습 훈련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현실에도 이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는 거의 소수이다.이 과정이 길어질 때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며, 교사도 감당하기 어려워 교직의 어려움을 호소하다.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왜 학교에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장학담당자들은 분석하여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사계절과 참 많이 닮았다. 지금껏 30년 가까이 교단에서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또는 담임을 하며 만났지만, 아직도 가르침과 배움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하지는 못한다. 지금도 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새로운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여름이 되면서 긴장과 두려움으로 경직되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단풍으로 황홀한 가을이기도 하다. 더러는 한겨울의 나목처럼 우두커니 외롭게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은 늘 설레고 행복하고 따뜻한 봄인가 싶다가도 이내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처럼 힘들고, 그렇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나면 가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차가운 겨울이 우리 곁을 지나고 있음을 보기도 한다. 우리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맞이하는 사계절은 순서대로 오면 그때그때 마음의 준비라도 단단히 하겠지만 이 계절은 결코 순리대로 오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시간 위를 걷다보면 긴장과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 시간이 행복했다. 아이들도 성장하고 성숙해 온전한 한 마리 새가 돼 그들이 살아갈 세상으로 힘차게 날개를 치며 날아가는 그 뒷모습을 어미 새의 마음으로 바라본 세월이었다. 아마도 모든 선생님들이 보낸 시간이, 세월이 대부분 그러하지 않을까. 끝으로 국어교사로서 글쓰기에 충실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장준성 교장선생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리고, 학교 글쓰기 드림팀과 문미회 선생님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 내 실존을 일깨워주고 나와 살아내느라 항상 애쓰는 아내, 특히 이번에 부족한 글을 뽑아 세상에 드러내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어느새 지나가고 있는 가을이다. 불과 얼마 전, 주례를 한 졸업생 K는 긴 여름 끝에 온 가을처럼 불쑥 찾아왔다. 그래서 놀랐고 안부 인사 차 모교를 방문한 줄 알았는데, 별안간 결혼주례를 부탁하는 말을 하는 바람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항상 정겹고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러준 유일한 선생님이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습관적으로 말을 심하게 많이 더듬어 친구들이 다들 저를 놀림감으로 삼았는데……, 그 흔한 학교폭력의 대상이었지요. 고2 때 선생님을 만나고 시와 소설을 재미나게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수업시간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친구들 앞에서 시도 낭송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선생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내가 우리 반 뿐만 아니라 수업하는 반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열심히 불러준 것은 분명 맞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나름 아이들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기 위해 수업하는 모든 반의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나름 애를 썼던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특히 반에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수업 시간에 잠자고 소외되는 아이들 이름을 일부러 더 외워 발표도 시키고 질문도 많이 했다. 아마 이 친구도 그들 중의 한명일 터다. 결코 이 친구가 예뻐서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 이 친구는 당시 문학을 가르치면서 담임이었던 내게 그때의 고마움과 감사함의 표시로 졸업 후 다시 찾아와 결혼주례를 부탁한 것이다. 그날 처음 만나자마자 반가움의 표시로 손이 아플 만큼 너무나 세게 꽉 잡았던 K. 지금도 손에 그 힘이 전해온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K에게 더 많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K와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새삼 다시 내 눈앞을 스쳐간다. 올해로 교직 30년, 십오 년 전의 그해 담임은 2학년 문과 인문과정 반을 맡았다. 이른바 순둥이 들이 모인 이과 반에 비하면 그만큼 문과 반은 참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물건 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단지 경찰서에 드나들지 않고 그해를 마치는 것만으로도 문과 반 담임들은 학년말에 모여 행운과 축복의 한 해라고 자축했다. 그런데 그해는 개학 첫날부터 일이 터졌다. 교실 흡연자가 적발되었다는 생활지도부 담당 선생님 연락이었다. 그전에도 학교 화장실 등 교내 흡연자는 더러 적발되었지만 교실 흡연자는 그 당시로서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교실 흡연은 장소가 장소인 만큼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날부터 나와 K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고등학교 2학년, 지금껏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대화와 감정의 담을 쌓고 살았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아무리 봐도 도무지 내편은 없다. 내가 손에 잡고 있는 이 펜 속에 하고픈 말들이 숨어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글로 쓰지 못한,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가슴 속의 말들이 숨은 채 내 방의 어둠 속에서 이 방안을 빙글빙글 맴돌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올해 담임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때 K가 썼던 좀 특별하고 이상한 자기소개서 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비록 긴 글의 거창한 자기소개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써서 낸 K가 고마웠다. 그래서 희망이 있었다. 교실에서 흡연한 자신 때문에 교장실로, 생활지도부로 동분서주하는 담임을 보면서 무언가 느꼈는지 마지막에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은 간절했던 내게는 희망고문이 됐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일들이,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고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 나는 K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사랑과 관심만이 K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중에서 그 흔한 문제아들은 적어도 내 관심과 정성에 달라지고 대부분 착한 아이로 돌아온 경험을 자랑처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K는 아니었다. 아예 달랐다. 너무나 달랐다. 내 앞에서는 당장 달라질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3월부터 4월까지 지속적으로 돌아서고 나면 일이 터졌다. 옆 반 학생과의 싸움으로 코뼈와 치아를 부러뜨린 일, 수업시간 지도하는 교과 선생님께 거친 욕설을 하며 대든 일, 학교 인근 아파트 앞에 세워둔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관할 지구대에 잡혀 가는 등 그간의 교직생활 동안 겪을 일을 한 번에 모두 겪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선생님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이런 말이 있다. '문제 학생의 뒤에는 반드시 그 문제의 근원이 되는 원인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적어도 학교에 몸담고 있는 일정 교육경력이 있는 교사라면 어느 정도 수긍하는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친 학생, 상처 받은 학생 뒤에는 그 상처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누군가 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우선 K의 부모였다. 도무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크는 아이들이 뭐 그럴 수도 있다는 무관심과 방관이었다. 이런 경우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도 아닌, 그 아이의 또 다른 제2의 부모인 바로 선생님들이다. 어느 날이었다. 그간 K가 지각은 밥 먹듯 자주 하지만 결석은 없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그날은 아프다는 이유로 결석을 했다. 사실 매일매일 긴장의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그날 하루는 적어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왜? K가 결석을 했으니까. 그날도 올해 더위처럼 마치 여름이 이미 시작된 듯 오월말의 하오(下午)이지만 무더운 날씨였다. 계절로 보면 늦봄인데도 여름처럼 무더위가 매우 일찍 찾아왔었다. 강한 햇빛이 본관 3층 2학년 교실 창가에 축 늘어진 마로니에 나뭇잎을 따갑게 핥고 있었다. 누구나 수업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저 K엄마예요. 선생님, 빨리 좀 도와주세요." K네 집에서 대소동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나는 교감선생님께 상황 보고도 하지 못한 채 가까운 K의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다만 빨리 좀 도와주세요 라는 그 말만이 내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내가 K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119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다. 현관과 거실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보였다. 나는 자책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고 세심하게 K를 보살폈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자살을 시도한 학생이 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다. 참으로 아픈 순간이었다. 순간 나도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또 그 순간 좌절과 절망도 내겐 과분한 사치였다. 모든 걸 떠나서 자칫하면 큰일이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문제는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그동 일어났던 일들과 함께 K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 어려웠다. 소문이 나면 전교생의 시선이 K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지금 생각하면 그 엄청난 일을 부득이 비밀로 했다. 학급에는 K가 급성맹장염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당시 다친 손의 치료를 겸해 K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매일 찾아갔다. 처음엔 나 자신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그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내 수업 시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외는 일절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K가 퇴원하기 전에 부모님부터 설득했다. 그러고 난 뒤 K에게 지금 집에 가면 부모님 뵙기도 그렇고 하니 얼마간 선생님 집에서 다니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돌리고 들은 체 만 체 외면했다. 그래도 그간의 내 마음이 전달됐는지 K도 며칠 후 비로소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우리 집에서 열흘을 함께 지냈다. 같이 등교하고 운동하고 대중탕도 같이 갔다. 함께 밥을 먹으며 부모님이 원하는 법학과나 경영학과 대신 국문학과를 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기어이 가출까지 감행한 일, 입시를 코앞에 두고 소설을 쓰다가 들킨 일 등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인 내 고등학교 학창시절 이야기도 들려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단순한 관심이 아닌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중학교 때 요즘으로 말하면 학교 폭력으로 일 년을 쉬어 또래들보다 나이도 한 살 많았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나이가 많다 보니 자존심에 그러질 못했다. K의 어머니는 강남의 여느 부모들처럼 과외 시키고 고액학원 보내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으로 바빠 아들과 단 5분의 시간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춘기가 찾아와 감수성이 예민할 때로 예민했지만 작은 고민 하나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고통스런 감정의 억제는 K의 사고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왔다. 또 억제된 마음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과 방황의 원인이 됐던 것이다. K를 알고 나니 단순히 그저 문제아 정도로만 생각했던 내 자신이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교사 초년병 시절에 정년퇴직을 앞둔 선배 교사가 내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교직 생활 중에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제자가 가장 큰 기쁨이 돼 찾아올 때 비로소 교사임을 느낀다고…. 그래서 아이들만 생각하고, 바라보고 가라고…….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도 그들에게 배워나가는 사람이다. 그들을 통해 인생을, 삶을 배운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때는 단순하게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이제 적지 않은 교직경력이 점차 쌓이면서 아이들의 침묵과 반항은 상대가 알아주길 원하며, 받아줬을 때 마음의 치유가 이뤄지고 가능해짐도 배웠다. K는 이후 교직이 힘들 때마다 지금까지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아이들은 풀꽃이다. 이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오늘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칩은 벌레인데 잠다던 벌레가 천둥소리에 놀라(경) 깨어나는 날이다. 우리도 깨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좋은 선생님? 비전이 있는 선생님이다. 비전이 있는 학생이 되도록 지도함이 바람직하다. 꿈과 비전을 가져야 성취 의욕이 생기고 남다른 노력을 하게 된다. 비전 성취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작은 꽃 한 송이를 만드는데도 오랜 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대가를 치르기 싫어 꿈과 비전을 가지기 원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새 출발을 하면 어떨까 싶다. 꿈과 비전을 위해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농부는 한 해의 농사를 위해 준비하고 꾸준히 노력한다. 끊임없이 노력한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좋은 선생님이 된다. 땀을 흘리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꿈의 성취는 얼마나 땀을 흘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 땀에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향기가 있다. 우리는 종종 구슬땀을 흘리는 어부를 보게 된다. 이들에게 땀의 대가만큼 풍부한 어획량을 얻게 된다. 땀 흘리기 싫어하면 그만큼 손해다. 그러면 게으르게 된다. 만사 의욕을 잃게 되고 만다. 땀방울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인정받는 선생님이 된다. 땀방울은 흘릴수록 좋다. 건강에도 좋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도 좋다.
“얘,얘, 너 말야. 이제 앞으로는 경재하고 놀지 마라라.” “그건 왜 ?” “넌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 “뭔데 ? 난 몰라.” “그런 것 같아서 일러주는 거야.” “그게 뭔데 ?” “사실은 말야. 경재가.....” “왜 ?” “마침 저기 경재가 오고 있잖아. 이따가 얘기하자.” “그래. 그게 뭘까 ?” 공부도 잘하지만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기로 소문이 난 명숙의 말을 들으며 승희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승희는 공부도 잘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결코 누구를 푸대접하거나 차별해서 따돌리는 일 같은 짓을 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학급의 대표를 선출할 때는 당연히 승희를 따라 잡을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9월 2학기 반장 선거에서 “저는 지금까지 반장을 많이 하였고, 다른 친구들이 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다른 아이들을 반장으로 뽑아 주십시오.” 하고, 반장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투표의 결과는 2등을 한 명숙이보다 배나 많은 표를 얻어서 다시 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숙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버릇 때문에 아이들이 싫어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아이들이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따돌리기를 예사로 합니다. 승희는 이런 명숙의 버릇을 잘 알기 때문에 ‘흥, 또 시작 하는 구나 !’ 하고 생각을 하고 그냥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또 명숙이가 승희에게 다가와서는 경재가 안보나 두리번거려 살펴본 뒤에 가만히 말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하시는 말을 들었는데, 경재네가 가까이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왜 ?” “글쎄, 경재네 아빠엄마가 나쁜 병에 걸렸었데.” “사람이 나쁜 병을 앓을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다고 가까이 하면 안 되는 건 뭔데 ?” “그게 아니니깐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에게 옮을 수도 있는 병이란 말이니 ?” “그래, 아주 나쁜 병이니까 그런 것 아니니.” “아주 나쁜 병이라니 ?” “글쎄, 경재네는 나병이라는 나쁜 병을 앓았다는 거야.” “나병이라면 ? 문둥병이라는 거 아냐 ?” “그래, 넌 잘 알고 있구나.” “그럼, 난 옛날에 아버지하고 소록도에 가서 직접보기도 했는걸.” “그러니 ? 넌 정말 안가 본 곳이 없구나.” “거기에 가서 아주 심한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아서 농사를 짓고 닭을 기르는 걸 보았단다.” “그럼 그 사람들은 이젠 괜찮은 거래 ?” “거기에서 설명하시는 아저씨의 말씀을 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만 병으로 손가락이 없어지기도 하고, 발가락이 통 채로 없어진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그럼, 너도 그런 사람들을 보았니?” “아니 아주 심한 사람들은 보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한두 개가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 “그럼 그런 사람들은 병이 다 나앗다는 말이야 ?” “응, 겉으로 보기에 아주 흉하고 무섭게 보였지만 이 사람들은 조금도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래. 아주 병이 나아서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식구들에게도 조금도 옮길 염려가 없는 사람들이라서 밖에 나가서 살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했어.” “그래도 난 무서워. 그렇게 무서운 병이 언제 우리에게 옮을는지 모르지 않아. 그래서 동네에서도 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사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는구나.” “그래서 경재하고 놀지 말라고 하는 거야 ?” “그럼 넌 같이 놀거니 ?” “그럼 어떠니? 난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걱정이 안 되는데.....” “얘, 난 그래도 싫어 !” “그렇게 싫으면 너만 알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경재가 이제 전학을 와서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혼자 외로워 하는 것 같은데 너까지 그러면 되겠니?” “그래도 난 싫어. 경재하고 같이 놀던 아이들과도 놀고 싶지 않은데 ?” “그러지 말아라. 나라에서도 그런 병이 퍼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 아니니 ? 그런데 이렇게 나와서 살라고 하는 것은 그럴 염려가 없다는 것이 아니겠어?” “물론 네 말은 맞아. 그래도 싫은 걸 어떡하니 ?” “그럼 다른 아이들이 그냥 저절로 알도록 까지 네가 나서서 그런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너무 불쌍하지 않니 ?” “아무튼 난 너에게 알려 주었다.난 경재랑 노는 아이들하고는 같이 놀기 싫 어 !” 명숙이는 아주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한마디로 잘라 말하고 횅하니 돌아섰습니다. 이런 명숙이의 모습을 보면서 승희는 ‘제는 공연히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고 그래 ?’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명숙이와 승희는 공부도 1,2등을 다투고 있지만 항상 반장이나 회장 선거에서 맞붙어서 경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은 항상 비교적 친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명숙이가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괴롭히려고 해도 승희는 항상 이렇게 오히려 명숙이를 달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승희의 말을 들은 명숙이는 승희의 앞에서는 그런척하고 말지만 돌아서면 언제나 ‘흥, 제가 뭐 나를 가르치려고 해 ?’ 하고 꼬인 생각을 하곤하였습니다. 오늘도 명숙이는 승희의 말을 듣고선 ‘제가 무슨 천사라도 되나 ? 누군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나 그런 나쁜 병에 걸릴까봐 우리가 조심을 하자는 거지 뭐.’ 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승희에게 지는 것이 억울하고 기분 나쁜데, 제까짓 게 얼마나 잘났다고 날 가르치려고 해 ?’ 하면서 명숙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모두 해줘서 경재하고 노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게 만들고 말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항상 승희에게 지기만 한 앙갚음이 되기도 할 것만 같았습니다. ‘흥, 두고 보라지. 내가 기어이 경재를 외톨이로 만들어서 승희가 혼자가 되게 만들고 말아야지.’ 하고 다시 다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서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기어코 일을 터지고 말았습니다. “네가 뭔데 남을 그렇게 못살게 구니 ?” “뭐 ? 네가 널 못살게 했다고 ? 네가 뭐 잘 못한 거 있니 ? 없는 일을 있다고 했니, 아니면 널 욕을 했니 ? 난 동네에서 들은 대로 너네식구들이 나병을 앓았다고 했다 왜 ? 뭐 잘 못했니?” “그래 잘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외치고 다녀라 ! 그렇찮아도 동네 사람들이 우릴 못 살게 내쫓으려고 해서 죽을 지경이란다. 너도 나서서 해보렴.” 경재는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한 성격이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니, 의외로 야무지게 덤벼들었습니다. 우리 학금에서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명숙이에게 대드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어찌나 아이들을 꽉 잡고 있는지 명숙이에게 잘못 보였다간 그만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리 명숙이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함부로 대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학을 온지도 며칠이 되지 않은 경재가 아주 명숙이를 잡아 죽일 듯이 대드는 것이었습니다. 명숙이는 기가 막히다 는 듯이 경재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이러다간 자기가 경재에게 진 것이 될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명숙이는 “뭐라고 ? 날더러 온 동네에 외치고 다니라고 ? 참 더러워서 내가 너 같은 게 뭐가 무서워서 네까짓 것의 말을 들어 ?” “지금까지 동네 강아지 마냥 외치고 다니지 않았니?” “이 계집애가 무서운 게 없어 ! 뭐 동네 강아지라고?” 명숙이가 사정없이 덤벼들어서 경재의 머릿카락을 움켜쥐었습니다. “네까짓 게 덤비면 어쩔 테야 !” 경재가 한마디를 하면서 명숙이의 목덜미를 감싸 쥐고서 사정없이 들어 매치기를 해버렸습니다. 명숙이의 손에 잡힌 경재의 머릿카락이 뽑히기도 했지만, 조금도 아파하지도 않고 덤빌 테면 덤비라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이렇게 떠들썩하고 소란한 교실에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대충 짐작하시겠다는 표정으로 “명숙이 무슨 일이야 !” 선생님은 엄숙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명숙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이런 아이들이 몇 명이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가르쳐 오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 반에는 이번에 경재가 처음으로 들어 왔기 때문에 이제야 이런 소동이 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시는 선생님은 벌써 명숙이가 경재의 그런 것을 들추어내어서 싸움이 벌어졌을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더구나, 명숙이는 우리 반에서 아이들을 움켜쥐고서 제멋대로 휘두르는 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다음에 두 사람을 남겨 두시고서 오늘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선 명숙이에게 “명숙이 네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 어서! 넌 다른 아이들을 다루듯이 경재에게 함부로 해선 안돼. 그렇찮아도 동네 사람들과 싸움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데 너희들이 학급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용서 못해 알았지 !” 하시고 명숙이에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나 어느 누구의 편을 드는 법이 없이 공평하게 아이들을 지도해 주셨는데, 오늘은 명숙이에게 만 꾸중을 하시는 것입니다. 명숙이는 불만스러울 뿐만 아니라 지금 채면이 말이 아닙니다. 이 학급에선 감히 대들 사람이 없는데 글쎄 새로 전학을 온 경재에게 들어 매치기를 당했으니 이런 창피가 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꾸중을 하시는 것도 명숙이에게 만 하고 있으니, 명숙이로선 불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 조심하겠습니다.” 말로는 그렇게 하였지만 여간 기분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경재에게 잘못했다는 사과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명숙이는 머뭇거리다가 선생님께 다시 한번 호통을 듣고서야 “미안해 !” 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렇찮아도 자존심이 상해서 부아가 끓어오르는데 자신을 매치기한 경재에게 사과까지 하려니까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경재 더러 “야 ! 경재, 나하고 같이 가자. 학급의 아이들이 잘 못한 것을 선생님이 가서 사죄를 드리도록 하겠다.” 하시면서, 경재를 앞세우고 경재네 마을을 향하여 가셨습니다. 명숙이는 속으로 ‘그 마을에 가면 손이 오그라들고, 눈썹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어쩌려고 거길 가시는 것일까 ?’ 하고 생각을 하니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서 선생님이 가기 싫은 마을에 억지로 가시게 되었다는 것이 상당히 죄송스럽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해서 선생님이 그 마을에 가시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화나고 분했던 마음보다는 선생님에 대한 마안함으로 명숙이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재차 사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경재를 앞세우고 영생농원 이라는 표지가 붙은 흔히 말하는 음성나환자 마을을 들어서고 계셨습니다. 이 마을에는 이미 병을 치료하여 균이 음성으로 변한, 다시 말해서 균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옮기거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와서 마을을 이루는 것을 어느 지역에서나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국가에서 어느 지역을 지정하여서 한 곳에 20-30 집씩을 한곳에 집단으로 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을 보호하여 주기 위하여서 나라에서는 세금을 면제하여주고 양돈이나 양계를 하도록 모든 시설을 지원해줄 뿐 아니라,닭, 돼지의 새끼, 사료 등을 거의 원가로 공급하여서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제법 돈들을 모아서 다른 곳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는 선생님을 보고 마을에서는 이장에게 알리고 마을의 좀 출입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이 마을에는 병을 앓는 동안에 몸이 많이 상한 사람도 있고, 정상적인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깨끗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손님이 오면 어느 집에 오는 손님이든지 만나볼 사람을 정해두고 비교적 건강하게 보이는 사람이 마을의 대표가 되어서 손님들을 접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마을의 나쁜 인상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인 것입니다. “선생님 웬 일이십니까 ? 선생님이 직접 이렇게 우리 마을을 찾아주시다니 대단히 감사 합니다.” 하고, 이장님은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이 마을의 아이들을 따돌리는 그런 일이 벌어져서 싸움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장님은 “아이고 선생님 ! 그런 일로 여기까지 오시다니, 어쨌든 가시죠. 여기까지 오셨으니 술이라도 한잔 하시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술은 잘 못하지만 이 마을에 와서 안 마시고 갈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그냥 간다면 이 마을에 안 온 것만도 못한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그렇게 저희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좀 채로 그렇게 해주시기 어려웁던데요 ?” “어쨌든 술이나 한 잔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이장님 댁에 들어가서 그 마을의 몇몇 대표들과 마주 앉아서 그들의 어려움과 이웃마을 주민들과의 다툼 등을 귀 기울여 들어 주면서,그들이 주는 술잔을 받아서 거침없이 쭈욱 들이키고선 선뜻 술잔을 권하고서 그들이 선생님께는 다른 잔을 권하는 것을 한사코 “그러지 마십시오. 난 그렇게 선입감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그 잔으로 한 잔을 마시고 싶습니다.” 하고서 이장의 술잔을 빼앗다시피 받아서 술을 마시자 마을 사람들은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이젠 터놓고 마을의 불편한 점들을 털어 놓았습니다.이들은 지금까지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은 우릴 환자로 보고 멀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든가 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 대었던 술잔을 거침없이 받아드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가슴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당해온 일들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 두 번이 아니고 자꾸 그렇게 무시당하고 또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들의 속이 상하는 것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들을 가까이 하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멀리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답니다.” 하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몹시 마음이 무거운 것 같았습니다. 이때 선생님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모자라서 가끔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약간은 그런 일이 있어서 자주 이야기를 하지만, 어디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가요. 선생님들도 아직 이해가 모자란 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를 해주세요. 이제 학교에 돌아가서 모두에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아이들과 선생님들께도 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사정을 이야기 하자,마을 사람들은 모두 기쁜 얼굴로 “선생님, 우리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하며 좋아들 하였습니다. 선생님도 자신이 이렇게 찾아와서 동네 분들을 만나보기를 잘헀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튿날에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지금까지 경재네 마을의 아이들이 무척이나 무서운 병을 옮기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을 한 것이다. 난 어제 경재네 마을에 가서 그곳에서 함께 술도 마시고 음식도 같이 먹었다. 이건 절대로 안심해도 괜찮은 것이란다. 앞으로 너희들이 경재하고 함께 생활을 해도 아무염려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둔다. 앞으로 경재를 따돌리고 놀리고 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서로 더욱 협조하는 사이가 되도록 부탁한다. 알겠지 ?” 이렇게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고, 선생님들께도 영생농원 에 갔던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부턴 아이들은 경재를 싫어해서 멀리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한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 아이들은 이제 거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재가 명숙이를 매친 일로 해서 명숙이가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을 마음대로 이끌고 휘두르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오히려 명숙이보다는 경재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경재야, 이리와. 우리 공깃돌 놀이 하자.” 승희가 부르자 아이들은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경재와 함께 모여 앉아서 놀이를 하였습니다. 경재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난을 하고 놀이를 하는데 끼지 않으려고 하던 버릇이 없어 졌습니다.
2일 경북 산북초(교장 서정원)는 1학년(8명) 새내기들과 원아들(10명)의 입학식 및 입원식이 열렸다. 학교를 찾은 어린 신입생들의 얼굴표정은 너나할 것 없이 어리둥절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하는 입학생의 모습을 재학생 언니, 오빠들이 큰 박수로 환영해주자 학부모님들의 얼굴도 더욱 더 활짝 피었다. 입학을 축하하기 위하여 선배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축하 노래도 불러주었고, 신입생들을 위하여 산북면 개발자문위원회에서 10만원의 입학 장학금을 지원하며 축하해 주었다.학교에서도 1학년 신입생들에게 학용품과 축하 선물을 주어 입학을 축하하였으며 꿈과 능력을 갖춘 품격높은 산북 어린이가 될 것을 당부하였다. 본교는 앞으로 입학생들에게 안전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희망찬 학교생활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요즘 지인과의 만남, 현직보다 은퇴자가 많다. 학교나 교육청에서 불러 주지 않는 한 현직을 만날 일은 별로 없다. 또 은퇴 후 2년이 지났건만 교육계 소식은 밝은 소식보다 어두운 소식이 더 많다. 2월 퇴직자 소리를 들으니 교육계에서 나가는 것이 ‘매우 시원’하다고 한다. 과거엔 ‘시원 섭섭’했었는데…. 지금은 ‘섭섭’은 0%이고 ‘시원’이 100%라고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렇게 세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마다 퇴직자 모임이 몇 개 있다. 나 역시 5인회. 등산모임. 초석회, 삼락회 등 관여하는 모임이 있다. 5인회란 글자 그대로 5명 모임이다. 2001년 중등 교감 자격연수 동기 모임이다. 구성원을 보니 우연치 않게 모두 교육대학 출신이다. 그러니까 초등교사에서 중등으로 전직한 사람이 모인 것이다. 모두 중등 교장을 역임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맞는가 보다. 이 친목모임은 2007년 결성되었다. 정기모임이 연 2회인데 승진이나 영전을 하면 작은 선물을 준비해 찾아가 축하한다. 방문객을 맞은 교장은 답례로 식사를 대접한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이용한 회식 모임에서는 그 동안 못 다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 화제이고 인생 이야기도 펼쳐진다. 정겨운 대화 속에서 녹아 있는 인생 교훈을 듣기도 한다. 얼마 전 모임에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5명 중 현직 한 명은 일이 있어 4명이 동행했다. 모임 여행을 떠나며 현직 때와 비교를 해 본다. 4명의 여행 떠나는 과정을 살펴본다. 약 한 달 전부터 단체 키톡방을 통해 장소를 추천 받는다. 전라남도 섬 여행 1박2일이 추천 들어 왔으나 댓글이 잠잠하다. 침묵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가까운 곳에 당일로 가자는 뜻. 날짜는 어떻게 정할까? 3개 정도로 날을 정해 택일할 수 있도록 한다. 그 전에 가능한 요일을 총무에게 얄려준다. 그러면 여행일을 쉽게 정할 수 있다.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빠지는 회원은 어쩔 수 없으나 다수가 갈 수 있도록 조정한다. 현직 때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날을 고집하고 여행지를 강력 추천하지만 퇴직 후에는 타인을 배려한다.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경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인가? 결국엔 날짜만 정하고 총무에게 일정을 일임한다. 총무가 정하는 여행 장소, 스케줄에 따르겠다는 것. 그것도 아무 군소리 없이. 그 대신 총무는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등은 물론 인터넷 검색을 하여 여행 후기를 꼼꼼이 읽어 여행지를 심사숙고해 정한다. 자가용 여행이 아니라 대중교통 여행이다. 운전하는 사람의 피곤함을 생각한 것이다. 왕복 차비는 개인 신용카드로 각자 끊는다. 점심이나 택시비는 회비에서 지출한다. 얼마 전 평일을 이용해 원주의 소금산(343m)을 다녀왔다. 세 명은 수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승차하고 한 명은 안양에서 출발 원주터미널에서 합류했다. 소금산 출렁다리에 대한 한국관광공사 인터넷 정보는 카톡을 통해 이미 공유했다. 국내에서 최고(最高) 100m 높이, 길이 역시 최장(最長) 200m 산악보도교다. 지난 1월 11일 11시에 개장했다. 입장료는 무료. 이 출렁다리 개장 이후 주말에는 인파로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평일을 정한 것이다. 총무는 원주시청에 신청, 관광 안내자료 7종을 우편으로 미리 받아 보았다. 원주여행 가이드 북, 원주 여행이다, 출렁다리와 함께하는 그뤠잇! 원주투어, 원주 투어버스, 미로 MAP,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원주맛집 등이다. 이 쟈료는 여행 코스 선정에 좋은 참고가 된다. 버스에서 자료를 나누어 보며 여행 정보를 공유한다. 다행이 총무는 지금 방송대 관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누군가 말했다. 여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행복이라고. 원주 터미널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이다. 시내버스 도착시간과 등산시간, 예정된 점심시간을 고려하니 택시 이동이 효율적이다. 갈현유원지에 도착하니 벌써 관광버스 여러 대가 도착해 있고 등산객이 줄지어 이동한다. 마침 하루 전날 눈이 내려 설경이 아름답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등산로 입구 계단에 도착하니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붐빈다. 줄지어 오르고 줄지어 내려온다. 평일인데도 입소문이 벌써 퍼져 인파가 많다. 드디어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 출렁다리 도착! 고공 체험 전망대에서는 사진 촬영을 위해 10명 정도가 줄 서 있다. 출렁다리는 건너가는 사람 건너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마다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기록을 남긴다. 출렁다리 스릴을 느끼어 온 것이 아니라 다녀왔다는 기록 남기기에 바쁘다. 나는 내 사진보다 출렁다리와 인파 촬영하기에 바쁘다. 리포터 활동을 오래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간식 시간, 각자 가져온 것을 꺼내고 동료에게 나누어 준다. 나는 찐고구마, 사과, 단감 등을 준비했다. 한 명은 사모님이 챙겨 주었다고 하는데 작은 비닐봉투에 과자, 사탕, 껌 등 등산하면서 꼭 필요한 간식이 담겨져 있다. 교원출신 사모님 정성이 가득 담겼다. 다른 분도 천혜향, 귤 등을 가져와 나누어 준다. 자기 먹을 것 이외에 동료 것도 챙겨온 것이다. ‘아, 이것이 젊은 현직 때와는 다르구나!’ 헉, 그런데 이게 웬 일? 출렁다리를 지나니 그 많던 등산객이 어디에 가고 보이지 않는다. 앞서가는 등산객이 가끔씩 보이는 정도다. 이제야 알았다. 소금산을 찾은 등산객 대부분은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출렁다리 체험과 사진 기록 남기기가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소금산 정상을 지나 정해진 코스를 일주하였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설경이라 그런지 우리가 작은 금강산속 속을 가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하산길 급경사에 놓인 404개의 칠계단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집. 원주중앙시장의 소고기 골목을 찾았다. 시장 좁은 미로에 수 십 개의 소고기 음식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미리 검색한 손님이 많은 집을 찾았다. 소고기 모둠구이 180g에 25,000원이다. 3인분을 주문해 숯불에 구워먹으니 고기가 부드러워 그런지 금방 바닥이 난다. 추가로 1인분을 주문한다. 2층 미로는 청년사업가들이 창업한 70여 개의 점포가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만이 아니라 맛과 멋, 아름다움, 재미가 있는 놀러가는 시장으로 만들어 전통시장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은퇴 후의 여행. 우선 여유가 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힘들면 쉬어간다. 오늘 귀가하지 못하면 1박하고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때론 여행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남을 배려한다. 이 여행,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움직인다. 여행으로 내가 행복해야 하지만 동료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다수 의견에 따른다.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여행 정보를 미리 공부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한다. 우리는 4월 봄꽃맞이 여행에 의기투합했다.
지난 3일 오후 3시, 희망교육사랑 카페가 주관하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 워크숍이 용인 상현고 시청각실에서 있었다. 등록부, 음료와 간식 코너, 현수막은 어느 워크숍 모습과 같았다. 이색적으로 참가자 경품 코너가 눈에 띄었다. 워크숍 참가자를 위한 자진 찬조가 있었던 것. 인터넷상 카페가 주관하는 이런 교육워크숍 시도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 참가비 없이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특강을 갖는 행사다. 더욱이 전국 단위 모임인데 ‘과연 몇 명이 모일까?‘가 초미의 관심사. 행사 홍보를 하고 사전 희망을 받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과는 조금 미흡하지만 첫 행사로서는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자체평가이다. 카페지기로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한 반광득 전 교장을 만났다. 커다란 행사 준비하고 치르느라 과로로 몸살까지 찾아왔다고 한다고 한다. 지금은 100여 권이나 되는 워크숍 교재 발송에 바쁘기만 하다. ▲3일 있었던 워크숍을 소개한다면? 희망교육사랑 카페 개설 12주년을 맞아 회원을 위해 뜻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운영진 의견을 모은 결과 회원 역량 강화를 위해 관리자를 위한 워크숍을 시도해보자고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2015 개정교육과정 운영과 창의적인 학교경영“이란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하게 되었다. ▲개최 동기는? 온라인에서만 만나는 카페회원들이 직접 모임을 가져봄으로써 회원 간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회원 구성이전국교육가족 3만6천여 명이 넘는 파워 집단으로 되어 실제 만나서 얼굴을 직접 보고 연수를 가짐으로써 역량을 강화하고 교육에 대해 논의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과연 얼마만큼의 회원이 워크숍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느냐다. 특히 3일은 전날 개학을 하여 학교마다 업무에 바쁜 때이고 오후 시간이지만 휴일에 참석한다는 게 부담이 되는 여건이었다. 참석희망 사전 신청 결과 최종 55명. 교재 인쇄 이후에도 희망자가 있어 60여명 되리라 예측했는데 47명이 참석하였다. 신청하고도 불참한 회원에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워크숍에서 주목받은 것은? 우선 연수교재이다.우편 발송 요청자가 100여명이 되었다. 지금도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프로그램으로는 ‘촣은 수업과 교사전문 학습공동체’ 주제로 청주교대 이혁규 교수의 특강, ‘창의적인 학교교육과정 운영사례’ 강의와 협력토론의 상현고 송수현 교장 특강이다. 특히 한국 제2의 스티브잡스로 불리는 럭스로보 오상훈 대표의 ‘4차 산업 인재를 위한 이 시대의 교육’은 회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시간이었다고 본다. ▲워크숍 프로그램 양념이 있었다는데? 수원시평생학습관 뭐라도학교 동아리 포즐사(포크댄스 즐기는 사람들 약칭) 회원들의 포크댄스 시연은 회원들에게 포크댄스 지도 과정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포크댄스는 각급학교 교직원 친목 연수로도 적당하다고 보았다. 임종표(광주중 부장교사) 회원의 오카리나 연주는 앵콜을 받을 정도로 회원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 ▲회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희망교육사랑 카페는 카페지기, 운영자만의 것이 아니다. 회원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성 있는 카페로 발전했으면 한다. 지금은 회원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전국에 회원이 퍼졌으면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카페를 운영하지만 적절한 시기에후임자에게 위임하고 운영자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 이번 워크숍을 모니터링 받아분석하여 매년 행사를 지속시킬 계획이다. *워크숍교재 주문 반광득 전 교장 : wang2465@hanmail.net
[한국교육신문 윤문영 기자]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경미한 다툼은 학교장 종결로 처리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은 5일 이같은 사항을 골자로 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단위 학교별로 설치하는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교육지원청은 변호사나 관계 전문가가 포함된 전담부서를 설치해 운영토록 했다. 또 가해 학생이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경우, 피해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경미한 다툼인 경우에는 학교장이 전담기구의 확인을 거쳐 사안을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폭위 개최 요구가 증가하면서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있고 처벌 위주의 학폭위로 인해 오히려 교육적 해결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았다. 또 학폭위원의 과반수가 학부모 대표로 위촉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실제로 최근 학폭위 심의건수는 지난 2013학년도 1만 7749건에서 2016학년도 2만 367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학폭위 심의 결과에 대한 불만도 늘어 재심 청구도 같은 기간 702건에서 1149건으로 증가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은 일선 학교의 학교 폭력 업무 부담을 완화하고 위원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장병호 교장,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직 생활 마감 장병호 교장(전남 순천왕운중)은 교직을 마무리 할 즈음, 수필집 '등대지기의 꿈'을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를 쓰면서 교직생활을 되돌아 보고 감사를 잊지 않았으며, 인생 2막을 조망하는 글을 실었다. '문예운동'(문학평론)과 '문학춘추'(수필)로 등단하였고, 순천팔마문학회장과 순천문협회장을 엮임하였다. 현재도 다수의 문학지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전남문학상(2012)과 순천예총예술상(2015)을 받았다. 교직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성실함의 표본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장 교장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 긴 교직여정을 되돌아보면서 -1981년대학졸업과동시에고등학교(조성고)국어교사로교직에첫발을내딛었다.도중에대학원파견제도가생겨한국교원대학교에서석사과정을이수하였고,연달아박사과정을밟아교육학박사학위를취득하기도했다. 1999년전문직공채를통해전남교육연수원을 시작으로전남도교육청에서장학사로근무했다. 순천 남산중, 순천팔마중교감을거쳐안좌중과 중마고에서 교장을 역임하고오늘에이르렀다.교장재임 중장학관으로전직하여2년간도교육청에서혁신학교업무를맡기도했다. ▲ 가장인상에남는근무지는? -초임지가아닌가싶다.학생에서교사로신분이바뀌어좌충우돌하면서교사의자세와길을익힌기간이었다. ▲ 교사에서 교장에 이르기까지 힘들고행복했던교직경험을 소개한다면? -먼저힘들었던일이떠오른다.교사때밤10시까지학생야간자습지도,정규수업외의보충수업까지주당30시간의수업이상당한부담이었다.교육청장학사시절낮에는출장을다니고밤에는업무처리하느라거의매일야근을하기도 했다.젊은열정과 혈기가 있어서버텼던것같다. 행복했던일은시시사철풍광이수려한전남교육연수원에서지내던때와섬학교에서근무할때이다.섬학교에서는직원들간에화합이잘되고교육적소신을쉽게펼수있어서좋았다. ▲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위하여후배들에게들려주고싶은이야기가 있다면? -미래핵심역량교육에역점을두어야한다고본다.그러기위해서는지식전달위주의구태의연한수업방식에서탈피하여학생스스로탐구하고찾아내고,만들어낼수있는수업으로바뀌어야한다.호기심을유발하고창의성을키우는수업이미래사회의인재양성을위해서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가장 보람이있었던 것을 소개한다면? -그동안특별히내세울만한일을한것은없지만주어진일에충실하려고힘썼다는데에위안을삼는다.지금껏나를기억해주는제자들을둔것이다. 또,큰허물없이교직을마무리한것을다행으로생각한다.교직생활동안틈틈이글을써서몇권의책을낸것도보람으로생각한다. ▲ 교직을 떠나면서 아쉬움이있다면? -오늘날교권이너무약화되어있다.학생들의인권은크게강조되는반면교권은실종되어있다.학생들이 지도에불응해도말로타이르는것외에는달리지도할방도가없다.자칫잘못했다가는아동학대로처벌을받기때문에교사들의생활지도기피현상이나타나고있다.이래가지고무슨교육이되겠는가.교사가당당히학생을지도할수있는제도적인뒷받침이꼭 필요하다고본다. ▲ 인생제2막의계획을 소개한다면? -평생교육관에서그림과악기,제2외국어등을배우려고한다.아울러틈틈이텃밭도가꾸는 등 전원생활도 꿈꾸고 있다. 일본 후지산과 킬리만자로 산도 오르는 등,여행도하면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읽고글쓰는일에좀더많은시간을할애하고싶다.
청소년들과 함께, 상생의 교육 실천 대지 위에 봄 바람이 불어오는 3월 첫 주말이다. 3일 오후 5시, 전남 광양시 광양읍 부르나호텔에서 한국학원총연합회전라남도지회(사단법인) 제 14-15대 회장 이ㆍ취임식이 열렸다. 이임하는 김성현 회장은 "생각의 차이로 오해와 편견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흔들림 없이 지지해 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면서 책임감을 통감하고 거듭 사과한다면서 봄의 싱그러움이 연합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면서 이임사를 마감하였다. 신임 이재학 회장은 취임사에서 "전임 회장님을 비롯한 역대 회장님과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지금 제 가슴은 학원인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소통협력하고 봉사하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학교교육의 보완기능과 가정교육의 보완기능, 돌봄기능을 발휘하여 위기의 청소년들과 함께 하겠다"면서 상생의 교육 실천을 다짐하였다. 이 행사에는 정인화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정현복 시장, 도의원과 시의원, 그리고 교육청관계자 및 다수의 내외빈이 참석하여 한국학원총연합회전라남도지회 이재학 회장 취임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시골집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주변 공터에 나무를 심으셨다. 나무를 심되 부잣집 정원에 있는 비싸고 화려한 나무가 아니라 그저 야산에 아무렇게나 자생하는 이름 없는 그런 나무들이었다. 울타리에는 가시가 날카로운 노간주나무를 심으셨고, 앞마당엔 자귀나무와 수국을 캐다 심으셨다. 나는 자귀나무의 꽃이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진한 보라색 꽃이 자귀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압도할 무렵이면 어린 나이에도 까닭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어머니는 자귀나무꽃 외에도 도라지꽃도 좋아하셨다. 보랏빛 도라지꽃이 뒤란 텃밭에 지천으로 피어나면 어머니는 일손을 놓으신 채 한참이나 정신 없이 그 꽃을 바라보시곤 했다. 도라지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화하는 꽃으로 나팔꽃(메꽃)이 있었는데 색깔이 꼭 도라지처럼 진한 보라색을 띠었다. 그 작은 나팔모양이 어린 내 눈에도 참 예쁘게 보였었다. 나팔꽃은 꼭 누군가가 덩굴손을 잡아주어야만 꽃을 피우는 습성이 있다. 유월 초쯤이면 가늘고 여린 덩굴손이 주변에 있는 의지가지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끝내 의지할 가지를 만나지 못한 덩굴손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꼭 짬을 내시어 가는 새끼줄로 얼기설기 하늘 사다리를 만들어 옆에 서 있는 감나무와 연결시켜주시곤 하셨다. 그러면 덩굴손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새끼줄을 사다리 삼아 감나무로 옮겨 뻗기 시작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드디어 나팔꽃이 튼튼한 부목을 잡고 감나무 위에서 동화 같은 하늘나라로의 여행을 시작할 무렵이면, 자줏빛이 선명한 나팔꽃이 흐드러지게 감나무를 감싸곤 했다. 나팔꽃의 덩굴손을 잡아주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마음에도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또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나무와 화초들의 공통점은 모두 보라색 꽃을 피운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께서 왜 유독 보라색 꽃에 그토록 집착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나이를 먹고 정신적 성장을 이룬 뒤에야 비로소 보라색 꽃에는 어머니의 한(恨)과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연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어머니께서는 시각장애인이시다. 어머니는 처녀시절 가난 때문에 가마니를 짜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하루는 어머니의 일하시는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큰외삼촌이 바디자루로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쳐 시신경이 크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때 바로 치료를 받았으면 시력을 잃지 않아도 됐는데 그만 그놈의 웬수 같은 가난과 무지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아 시신경의 상당부분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시력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물만 식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수준으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이런 일을 겪은 후 세상에 대한 도피의 수단으로 나무와 화초에 집착하셨던 것 같다. 사물을 분간할 수도 없고 내일을 기대할 수도 없는 절망과 고통.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나무와 자연을 찾게 하셨을 것이다. 이양하의 ‘나무’란 수필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탓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어머니께서 이양하의 ‘나무’란 수필처럼 나무의 덕성을 논리적으로 깨우치셨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량한 지식보다는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나무의 생리를 터득하셨을 것이다. 나무는 당신 자신처럼 고독한 존재이고 운명적인 존재란 사실을 말이다. 또 한 가지 어머니께서는 물질에 욕심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유독 나무에는 욕심이 많으셨다. 봄이면 온갖 꽃과 나무들이 초라한 시골집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한 단감을 비롯해 대추와 호두, 모과, 석류 등이 집 주변에서 탐스럽게 영글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나무와 꽃들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의인화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머니께 이렇게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물질에는 욕심이 없으시면서 왜 꽃과 나무에는 그렇게 욕심을 내세요?”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무에 대한 욕심은 아무리 부려도 탈이 없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은 반드시 탈을 부른단다. 소금물을 보거라. 마실 때는 잠시잠깐 갈증이 해소되지만 마시고 나면 곧 더한 갈증이 생겨 또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배가 터져 죽게 된단다.” 그랬다. 어머니는 자연을 통해, 말없는 나무를 통해 평생 동안 공부만 한 아들도 깨우치지 못한 인생의 진리를 체험으로 깨우치신 것이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가꾸어놓은 시골집의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지 못하신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던 이 막내아들도 이제는 보지 못하신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가꾸어놓으신 자귀나무와 도라지 밭에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보랏빛 꽃이 만발하고 시골집 울타리에는 밤송이가 알알이 영글어 갈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며 나는 옛 시인이 읊었다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시구가 생각나 다시 한 번 인생무상을 느낀다. 끝으로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께서 쓰신 동화(童話)와 같다는 말처럼,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쓰신 동화처럼 모두 곱고 좋은 추억만 자리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