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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청소년들의 욕설 등 불건전 언어 사용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올해 초 교육과학기술부 등 5개 부처가 공개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에 따르면 매일 욕설을 사용하는 비율이 73.4%에 달하고 있다. 교총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교원의 66.1%가 ‘학생들 대화의 반 이상이 욕설 등 비속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욕설이 학교폭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욕설이 학교폭력 피해유형의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고, 언어폭력을 당한 학생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토로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의 언어사용 건전화 대책을 내놓기도 했으나, 실효성 있는 교육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생활규정을 강화하는 등 학생을 계도하는 하향식의 정책적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 스스로 참여하고 고민하는 장(場)을 마련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교총이 교육유관기관과 추진하고 있는 학생의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협력학교’와 ‘협력교실’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무적인 것은 당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전국의 수많은 학교, 선생님들의 신청과 격려가 쇄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 현장은 이미 학생들이 욕설로 인해 스스로 멍들어가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협력학교와 교실은 새 학기부터 2편의 교육다큐멘터리 동영상 시청과 상호 토론, 한글날 전국 동시 계기수업, 학생·교사 언어 표준화 자료 확산, 학생 대상 UCC 공모 행사, 자체적인 언어·인성·폭력 등 특화된 프로그램을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 또,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확산 운동도 전개하게 된다. 비록 20개의 학교와 100개의 교실이지만 동시에 교총, 교과부와 교육청, 그리고 함께 참여하고 있는 36개 청소년·교육단체를 통해 교육내용과 실천 사례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 보급된다. 중요한 것은, 그 성과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새로운 대책과 지원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강한 교육적 동기를 갖고 있는 협력학교와 교실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의 힘이 중요한 이유다.
교육의 대중화와 의무교육의 확대로 자녀교육에 대한 학교의 역할과 책임이 확대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핵가족화 과정을 급속하게 겪으면서 과거 대가족제도하의 가족과 가정의 의미와 영향력이 퇴색된 까닭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현장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공동체 의식이 낮고 학교폭력·규정 위반과 같은 일탈행위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며 자제심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학교가 이 모든 것을 교육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가정교육의 영역까지 커버하기는 벅찬 것이 현실이다. 가정교육은 전통적으로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며, 한 인간에게 기본 생활습관, 예절, 인성을 체득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므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정교육의 의미를 부활해 부모 등 보호자에게 자녀나 아동교육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부모 등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바른 인성을 가지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고 규정한 현행 교육기본법 13조를 ‘부모 등 보호자가 자녀 교육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개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례는 일본과 독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부모 기타의 보호자는 자녀교육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일본 교육기본법 제10조), ‘그 자녀의 부양과 교육은 부모의 자연적 권리이자 그들에게 부과된 일차적 의무(독일기본법 제6조 2)가 그것이다. 또한 자녀나 아동이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소양을 기르고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노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므로 이에 대해서도 교육기본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시대는 첨단으로 가고 있지만 거꾸로 전통적인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 당국은 시야를 넓혀 부모의 역할과 가정교육을 미래 대한민국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으로 보고 앞으로 학교현장과 함께 교육기본법 개정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내년 4월 11일 주민직선으로 치러지는 세종시교육감 선거를 세종시장과 ‘공동출마’ 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는 교육감 후보자가 정당 배경의 시장 진영에 줄대기를 하게 만들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5일 라마다플라자 청주 호텔에서 열린 세종시교육감 선출방안 토론회(교과부 개최, 충북대 한국지방교육연구소 주관)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교육감 후보와 시장 후보가 공동 등록과 공동 선거운동을 하는 동반출마형 직선제는 기존 교육감선거의 문제점을 해소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동반출마제는 수직적 상하관계인 러닝메이트와 달리 수평적 협력관계이며, 교육감 후보의 정당 배제를 유지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견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동반출마, 동반등록만 허용할 경우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단독등록도 허용하는 것도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한결같이 우려했다. 고전 제주대 교육대학 교수는 “동반등록을 약속할 경우, 이는 곧 정치권의 공천과 같은 의미로서 교육감이 시장에 종속될 수 있다”며 “단독 출마 허용하는 안도 정치가 개입된 선거에서 불리할 것이 뻔해 사실상 정당 선거 판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호 서울성일초 교사는 “결국 유권자들은 교육감의 공약이나 정책, 후보자의 전문성을 보지 않고 당을 보고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며 “정당 연계를 통해 선출된 교육감은 단지 형식적으로 정당에 입당만 안한 것이지 실상 정당 공천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기현석 명지대 법과대학 교수는 “과거 헌재는 지방교육자치는 교육자치라는 영역적 자치와 지방자치라는 지역적 자치가 결합한 형태로서 ‘이중적 자치’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이런 경향에 의하면 러닝메이트제는 물론이고 동반출마형도 위헌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자치행정실장은 “현실적으로는 대안에 따라 법을 향후 6, 7개월 안에 개정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세종시교육감은 내년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임기는 다음 동시지방선거일 전인 2014년 6월 30일까지다. 선관위에 따르면 세종시교육감 선거의 총 유권자수는 7만 4260명, 1인당 법정선거비용은 2억 7820만원으로 추산된다.
학기 시작 전 교과서 배분 업무를 처음 담당한 서울의 A고 교사는 약 3만권의 교과서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학생과 담임교사들에게 시달리며 교과서 배분은 마쳤지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 정산이 남아 있었던 것. 한 업체가 정산내역과 계산서를 보내주지 않아 정산 독촉에 시달렸다. 이 교사는 결국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같은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울 B중 교사는 “전출입학생을 위한 교과서 분배는 학기 내내 신경써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목선택형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5과목이 신청학생 부족으로 폐강돼 주문했던 책을 고스란히 반품해야만 했다. 교과서 배분 업무에 대한 현장교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총과 교과서담당협의회는 3일 교과부를 방문해 ‘교과서 분배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서’를 제출했다. 교총은 요구서에서 ▲한국검정교과서협회(이하 검정협회) 담당자가 교과서 공급·분류·분배 작업을 담당할 것 ▲인터넷을 통한 교과서 개별 구매제도 도입 등을 촉구했다. 현재 교과서 분배 업무를 교사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이는 법조항에도 없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교과서 분배와 관련된 학교의 업무는 학교장의 교과서 주문에 한정돼 있다. 그러나 교과서 주문, 분배, 정산 업무 등 업무에 교원이 매달려 학년초·학년말에는 수업결손이 발생하는 것이 다반사다. 검정협회는 공급소를 통해 교과서 총량을 학교에 전달하는게 전부다. 학년별·학급별·선택별 분류를 위해 교사들이 직접 포장을 뜯고,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4월 발생한 한국검정교과서협회 직원들의 리베이트 비리는 교사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이에 교총은 교과서 대금은 학부모가 직접 결재토록 하고, 교과서 배송을 물류·택배업체 등 민영업체에 위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방송통신고 등에서는 학생들이 지정서점 및 온라인을 통해 직접 구매하고 있으며 국내 배송물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배송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 온라인을 통한 교과서 분배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검정협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할 것과 교과부가 직접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필요한 비용을 산출할 것을 주문했다. 김무성 교총 정책추진국장은 “교과서 개별 구매 등 시스템을 구축해, 교원의 본질적 업무인 수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시교육청이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교단에 선 사람을 퇴출시키는 것은 물론 아예 교직경력도 없애버리기로 했다. 부산교육청은 시험 문제지 사전유출이나 점수조작을 통해 임용된 H학원 소속 중학교 교사 2명을 오는 17일까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합격·임용취소를 요구했다고 4일 밝혔다. H학원이 교사 2명 가운데 1명은 소명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임용취소하고, 학원 이사장의 아들인 나머지 1명은 의원면직하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비리교사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퇴출할 경우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복직할 우려가 있고, 의원면직되면 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부산교육청은 H학원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년부터 5년간 학급수를 감축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보냈다. 또 채용비리에 연루된 H학원 이모(90) 이사장의 임용취소를 요구했다. 부산교육청은 또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된 교사 14명을 내보내지 않는 배정학원에 대해 8월부터 인건비 지원을 중단했다. 교사 인건비로 대부분 사용되는 재정결함보조금을 비리교사들의 인건비만큼 삭감해버린 것으로 전국 첫 사례이다. 부산교육청은 이어 배정학원이 이번달까지 이들 비리교사에 대한 합격·임용 취소처분을 하지 않을 경우 해당 교사들의 차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아이디를 회수, 정상적인 업무를 볼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부산교육청은 이에 앞서 배정학원 산하 3개 중·고교 가운데 중학교 1곳에 대해 폐쇄결정을 내렸다. 부산교육청 신태용 감사담당관은 "비리를 통해 임용된 사람은 교사가 아닌 만큼 의원면직이 아니라 합격·임용을 취소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바탕 시끄럽게 한다. 잊혀질만하면 나타난다. 무슨 발 무좀이나 바퀴벌레도 아닌데도 말이다. 바로 일본 극우세력들의 독도 망언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며칠 전 일본 자민당 소속 신도 요시타카 의원,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중의원 의원,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참의원이란 자들이 울릉도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도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직접 듣고 싶어서 입국하였다고 한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그들의 처사에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과연 그들이 그러한 의도로만 울릉도를 가려 했을까?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알 수 있는 정치 쇼를 노린 그들의 코미디일 뿐이다. 그래도 그 일본 의원들은 이번 사건으로 확실하게 수확물은 챙긴 모양이다. 일본 내에서 그렇게 인지도도 높지 않고, 일본 국내언론에서 울릉도 방문에 대한 조명도 제대로 받지 않았음에도 한국 언론과 한국인들에 의해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사안은 조용한 외교를 표방한 한국 외교부의 뜻대로 조용하게 처리하기로 했었는데,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떠들어대자 문제가 커져서 외교부가 갈피를 제대로 못 잡은 형국으로 보인다. 제 아무리 언론과 일부 국민이 떠든다 해도 원칙을 세웠으면 그것을 꾸준히 실천해갔어야 했는데 그것이 부족했다고 본다. 또한 일본 의원과 그것을 막후 조정하고 방문 계획을 세운 시모조 마사오 교수는 프레임(frame) 싸움에서 한국에 이긴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즉, 실재하는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거나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창조하도록 해주는 심적 구조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지언어학과의 조지 레이코프(George P. Lakoff) 교수인데, 그가 쓴 '코끼리는 생각 하지 마'에 그 뜻이 잘 나와 있다. 미국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코끼리(공화당의 상징 캐릭터다)'를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순간 국민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떠올리며 공화당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사람들은 거기에 더욱더 무엇이 있는 듯이 생각하면서 더 집착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이번 일본의원들의 입국에 대해서 지나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이른바 김 빼기 전략을 구사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낭패는 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그들은 한국에 와서 난동을 부려서 언론에게 주목을 받아 독도를 분쟁 지역화 하는 것을 이번 거사(?)의 최종 목표로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 목표한 바를 아주 잘 이뤘다. 그것도 손쉽게 우리의 도움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 프레임 정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주장을 하는 사안에 대하여 가치관, 소망, 사명 등을 담은 프레임을 구성하되, 일본 극우세력에 대해서 섣부른 공격을 하지 않아야 한다. 공방이 있는 순간 맞은편 생각이 또 다른 공론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이 원하는 것으로서 독도를 분쟁 지역화해서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로 끌고 가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제법률은 우리가 생각하는 법처럼 냉철하지 않다. 국가의 국력에 비례한 결정이 내려질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격렬한 법정 공방은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의 실체를 더 견고하게 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간교한 일본 극우세력과 그들이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몰 역사성에 기인한 일부 일본인들은 독도를 지금도 자기네 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들은 더 냉철해야 한다. 일회성의 퍼포먼스식 일본 규탄은 당장의 응어리진 가슴은 씻어낼 수 있으나 뜨거운 머리의 열은 내릴 수 없다. 현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잘 가르치고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교육의 기능이다.
글쓰기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글재주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교육과 생활 태도를 가꾸고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유도하는 일이다. 즉, 학생들은 글쓰기를 통하여 논리적 및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으로써 바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글쓰기 교육은 과거에는 일기쓰기, 독후감 쓰기, 작문 등을 통하여 생활지도 과정에서 지도해 왔으나 요즘은 사실상 국어교과 지도 외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에 대학입시에서 논술고사가 시행되면서부터 그 관심이 커져 초등학교에서도 논술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평가하기 힘든다. 그 이유는좋은 글은 글쓰기 기법이 아니라 글의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배경지식인 독서의 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명문대에 우리나라 고교생들의 입학이 부쩍 늘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이 영어 때문이 아니라 ‘에세이’ 때문에 중도 탈락한다는 보도를 들었다. 미국의 글쓰기 교육은 초·중등교육에서 뿐 아니라 대학, 대학원에서까지도 글쓰기를 따로 교육할 정도로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학교교육과정 중에 많은 고전을 읽어야 하고,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통한 토론 중심의 교육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의 글쓰기 교육이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의 중요한 소통방식은 언어와 문자로 나눌 수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달리 중요한 의사전달은 언어가 아니라 문자표현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직장 내에서의 공식적인 중요 의사전달이나 소통은 말보다는 글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논리적인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교육과는 달리 우리교육은 타율만 무성한 학교와 학원, 사교육의 프로그램 안에서 자기 발언보다 기존의 관습에 길들어지는 한 우리 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펼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나마 명문대 유학생 중 50% 정도나마 적응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뿐이다. 다음 글은 인터넷에서 소개된 글이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쓴 작문을 읽고 난 뒤 이들에게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명확히 알게 됐다. 학생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머리도 좋은 ‘범생이’들이었지만 이들의 작문은 문장과 문장 간 연관성이 부족할 뿐더러 이야기 전개방식 역시 논리적이거나 창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이토록 훌륭한 학생들의 작문실력이 엉망인걸까. 모든 문법과 단어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으면서 왜 창조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작문이 나오지 않는 걸까. 나는 우연히 한국 학생들이 작문에 쓰이는 예문조차 평소에 암기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학생들이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경우 별로 환영받지 않는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학생들이 주입식의 ‘창조적인’ 사례만을 외우고 자신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기대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이처럼 우리나라 학생들의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학교교육과정에서부터, 교사의 교수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난제지만 더 큰 문제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독서량의 부족이라고 하겠다. 초·중등학교 각 학년마다 필수도서가 수백 권에 이르는 외국학생과의 비교했을 때 배경 지식뿐 아니라 그에 따른 비판의식이나 논리성의 부족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글쓰기 교육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독서교육과 독후감 쓰기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서는 다양한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독서의 내용을 통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이러한 독서의몰입태도는 학생들의 학습력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독후감 쓰기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독서의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만 좋아할 뿐그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 활동은싫어하기 때문이다. 깊은 생각은 논리성과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후감은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읽은 책의 주인공의 기분 변화나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식으로 구체적 쓰도록 지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좋은 양서를 많이 읽고, 토론·토의학습이 이루어질 때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를 읽을 수 있어야 세계가 보인다' '20세기, 21세기는 경제전쟁 시대이다'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세상의 모든 정치·경제, 사회·문화가 경제라는 테두리안에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상당 부분 정치, 사회가 따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 맥락을 잇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경제를 읽게되면 세계 큰 흐름이 손바닥 위에 올라올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라는 것은 옛날 고대서부터 지금까지 경제활동의 총 집합체이다. 이 지구는 지금 거대한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필요를 달리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사고 팔고 하는 경제 활동을 하는데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또 열심히 먹으려고 애를 쓰는 모든 활동들이 결국은 경제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를 읽어야 나름대로 한국도 보이고 자기 위치도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 특히 오늘날 세계는 국가간 장벽이 엷어져 사람과 물자는 물론 정보가 거대한 홍수를 이루며 흘러다니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선택의 홍수 속에서 어려서부터 자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습득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부자가 되는 길은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이 부자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부자가 되는 비결을 밝혔다. "나는 저축을 통해서 억만장자가 됐다. (중략) 백만장자의 표시가 뭔지 아는가? 바로 수입이 항상 지출을 초과한다는 것이다. 백만장자들은 일찍부터 저축을 시작한다. 돈을 벌기 시작할 무렵부터 말이다." 앤드류 카네기의 말에 부자의 공식이 숨어있다. ‘수입-지출=재산’이라는 것이다. 수입이 항상 지출을 초과하면 되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조급하게 이를 이루려고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3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수입을 늘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수입을 늘려 부자가 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수성가형 부자가 그러듯이 노력을 하는 것, 유산상속형 부자가 그렇듯이 지출을 넘는 수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산을 상속받는 것. 마지막으로 일확천금형 부자처럼 복권 당첨과 같은 행운을 맞는 것이다. 이 중에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노력’을 하는 것밖에 없다. 때문에 부자들은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버는 것의 중요성을 애써 가르쳤다. 둘째, 지출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 부자들이 헤어진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절약의 습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늘려 재산을 모으더라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재산은 쉽게 사라져버린다. 셋째, 재산관리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라. 세계 부자들은 자녀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일찍부터 ‘돈의 가치’를 심어주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의식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늘려 재산을 모으더라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재산은 쉽게 사라져 버린다. 부자는 하늘이 정해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조차 이 세가지를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가난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예년보다 긴 장마 속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하나 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한 학기의 활동 결과인 통지표를 나누어주는 시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제일 긴장되는 순간인데 통지표를 받아들고 옆 친구와 비교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얼른 감추어 버리는 녀석도 있다. 요즈음 통지표는 서술식으로 점수나 평어로 표시되지 않아 누가 잘하고 못하고 비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 안은 소란스러워진다. 통지표를 기록하면서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아이들의 행동발달 및 특기사항을 기록하는 란이다. 평소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얼굴만 보아도 아이들의 특성은 잘 알 수 있지만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했을 때와는 사뭇 변화된 행동의 차이점을 보게된다. 세상을 향기나게 만들고 바르게 살아가는 일은 그 구성원들이 갖는 인성이 중요시된다. 그런데 산업화 고속화 정보화로 제 빛을 잃어버리자 심각성을 깨닫고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고 학력은 높아 졌지만 상식은 부족해 졌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성급하고 베풀 줄 모르며 참을성이 적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지금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큰 문제 거리지만 한 번쯤 되짚어 보고 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희망의 씨앗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한다. 며칠 전 도덕시간이었다. 친절과 양보에 대하여 수업을 하다가 문득 아이들에게 친구가 모르는 게 있어서 가르쳐 달라고 하면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 하니 대여섯 명 정도 손을 든다. 이유인즉 내가 애써 공부하여 온 것을 가르쳐 주면 손해고 시간 낭비라고 한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시발점이 어디인지 분명 잘못 되었다는 현실을 알게 되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잠깐 지난날 부모님들의 자람을 돌아본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라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늦은 때는 자연과 마을의 또래 친구들을 통해 노는 방법과 양보도 알고 손해도 보며 베풀 줄 아는 심성을 갖고 자랐다. 간혹 잘못된 행동들은 모두 제 자식인양 관심을 쏟아주는 주위 어른들의 한 마디가 좋은 가르침으로 작용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승인 샘이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떤가? 나날이 세분화되고 핵가족화 되고 출산율 저하가 인구감소를 가져와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아이들도 한 집에 둘 아니면 하나로 모두 귀한 자식들이다. 귀하다 보니 잘못해도 꾸중보다는 지나치기가 다반사고, 주위에서 버릇없다는 말을 하면 무슨 상관이냐고 되려 고개를 치켜드니 주변이 스승인 시대는 이미 세월의 뒷전에 서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본다. 놀이 문화는 그 시대와 사회상을 대변한다. 요즘 아이들의 놀이의 주요 수단은 컴퓨터 게임이다. 친구가 없어도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신종 놀이문화다. 결국 이것은 어울림을 귀찮아하고 협동심과 양보심이 결여된 개인주의 성격으로 형성되어지고 있다. 설령 그런 병폐를 알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라고 떠밀다시피 하여 보내도 얼마 안 있어 다시 들어온다. 모두가 학원이다 공부방이다 하여 놀 친구가 없고 어울려 노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취급받으며 노는 것도 의도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 사람의 성격 형성은 선천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생활경험에 의하여 터득되어진 것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대가 지날수록 더 개인위주로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는 사회를 살아가는 수단이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빛나게 하는 것은 개개인의 올바른 인성인 것이다. 이것은 점진적인 감화감동으로 변화를 필요로 하며 하루아침에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생명을 가진 것은 영속하는 법이 없다. 세대와 세대가 이어진다. 고사리 같은 미래의 꿈나무들이 방학을 계기로 가족 친지 친구들과 어울림을 체험하고 양보하고 베풀 줄 아는 좋은 마음의 자람을 갖는 기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어루만져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빛을 발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학식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우산 행렬들을 보며 개학 때는 더 여물어 오기를 바래본다.
대부분 초중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이 되면 교원들은 각종 연수를 받거나 학위과정을 밟느라 여념이 없지만 다소 여유를 갖고 휴식과 휴가를 즐기기도 한다. 1967년 7월 24일자 새한신문(한국교육신문 전신)에는 ‘삼복더위속의 납량작전’이란 기사를 통해 교원들의 휴가계획을 소개했다. “아무리 좋은 휴가계획을 세워도 최종결정은 휴가비가 내릴 것 같다. 절에 들어가 불경에 심취하겠다. 이번 휴가는 꼭 가족과 함께 가겠다. 맘에 드는 몇몇 동료와 설악산에 올라 바닷바람을 맞겠다. 취미가 되어버린 학습표본 수집을 하겠다.” 서울보광초 S교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여름방학에는 바다로 갈 결심이다. 부부 교사인 우리에겐 방학이 보너스다. 가정에서도 학교일을 생각게 되곤 하는데 이번 방학은 교사부부가 아니라 그냥 부부로서의 가정생활을 해볼까 궁리중이다”라고 해 부부교사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중앙고 L교사는 “간단한 여행구를 갖추고 해수욕장 기차에 오르는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어진다. 태양이 내려 쪼이는 해변에서 그녀와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게을러지겠다. 신혼의 이 여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노을을 벗긴 창가에 그녀를 세워두겠다”고 해 부부애를 과시했다. 그럼 2000년대의 교원의 휴가는 어떨까. 2003년 7월 16일자에 방학 중 교원들의 휴가계획을 실었는데, 60년대보다 다양한 여가활동과 자기 연찬활동을 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여행하겠다. 어린이들이 간직하고 싶은 동시집을 완성하겠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건강검진을 받겠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우리 학교에서는 1인 1연수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6년간 박사학위과정을 마치겠다. NEIS 문제로 너무 지쳐 무조건 쉬어야겠다.” 충북 연풍중 L교사는 “교원이 10여명인 소규모라 방학 중 근무일이 많고 학교공동연수, 공문처리를 위해 출근하는 가운데서 직무연수, 자기개발연수, 국내외 여행 등 각자 방학 중 분주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서울 봉천초 K교감은 “36일간의 방학계획을 세우고 학교근무 및 10일간의 리더십 직무연수, 초등 특별활동 연구회 주관 1학점 연수운영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잡고 있다”고 했다. 한편 1974년 7월 25일자에는 “무더운 여름철에 냉방장치도 되어 있지 않은 장소에 수백명의 교원을 앉혀놓고 강의를 듣도록 하는 것은 얼마만큼 연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재평가해야 볼 일이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역효과마저 내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방학기간 중에 지나치게 직무연수나 학교업무에 몰입하는 것보다 충분한 여유와 휴식을 취하면서 2학기를 준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의 개발업체인 삼성SDS가 나이스의 성적 처리 기능에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보다 이틀 먼저 인지하고도 소홀히 대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SDS는 지난달 11일 일선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콜센터를 통해 나이스 프로그램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민원을 접수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나이스를 관리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오류 사례를 처음 파악한 지난달 13일보다 이틀 앞서 삼성SDS가 나이스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삼성SDS가 민원을 접수한 즉시 정부에 보고하고 즉각적인 대처에 나섰더라면 일선 학교의 혼선을 줄이고 사태를 더욱 신속히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지난달 11일 민원을 접수해 내부적으로 조치를 취했다"면서 "처음엔 통상적인 프로그램 오류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파악해 윗선과 정부에 신속히 보고하지 않았다는 실수를 범한 것은 인정하지만, 일부러 은폐하려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올해 3월 도입된 차세대 나이스는 지난달 중·고교생의 학기말 내신 성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가 나타나 전국 학생 2만명 이상의 성적을 정정해야 하는 등 초유의 혼란을 일으켰다.
일본 후쿠오카한국교육원 성인반 일본인 학생 22명과 인솔교사 3명은 7월 29일 광양여중을 방문해“김 선생님,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연발하였다. 이들은 6년전필자가 재외동포 교육기관인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함으로 새로운 인연을 맺은 학생들로, 한국문화, 역사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잊지 않고 귀국한 지 2년 반이 지난 이날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다. 방문한 일본인들은전엔 한국에 대하여 무관심하였으나 필자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거의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할 줄 아는 야마우라 아케미(56세 약사) 씨는 “전에는 한국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였지만, 선생님께서 한국어에 대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가르쳐 준 덕분에 지금은 거의 자막을 보지 않고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무토(62세) 씨는 “한국어를 공부한 후 한국의 역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매년 갖게 되어 이번에도 7월 29일부터 개최되는 장흥의 물축제와 강진 청자축제를 둘러볼 계획”이라며 3박 4일의 남도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카와하라(61세)씨는 “지금 일본에서는 매일 한국 드라마가 여러 방송국을 통하여 방영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케이 팝 가수 카라, 동방신기, 소녀시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기는 대단하다. 우리도 한류 팬이 되었다. 앞으로 한일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확신한다”고 피력하면서, “김 선생님은 해박한 역사지식은 물론, 한국어 지도법은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에 큐슈지역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모아 교육하는 등 활동이 뛰어나 교육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유명인사가 되었다”며,필자를 칭찬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이들은 국제도시로서의 민간교류 촉진을 위해 광양지역에 새롭게 탄생한 광양시국제교류회(회장 강석태) 회원들과 함께 식사 교류회와 광양시에 대한 소개를 받고, 광양여중에서는 최근 외국어로 관광지를 소개하는 일본어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3학년 이우경 학생이 유창한 일본어로 광양을 소개함으로 방문한 일본인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필자는“오래전 제자들이 찾아와 기쁘다, 민간교류 활성화가 필요하다. 지금 독도 문제로 외교적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해와 소통을 통하여한일간의 갈등이 해결되어 지구촌 시민으로 공동의 발전을 이루어가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하였다.
대학시절 어느 대학교수 이야기다. 그분은 대학을 국내에서 나오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왔다. 국제경영 분야를 연구했는데 학위 취득 후 국내 대기업의 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한다고 한다. 그 후에 대학의 조교수로 들어와서 후학을 양성했는데, 지금 말하려는 일화는 3학년 때인가로 기억한다. 그때는 1997년 IMF 구제 금융으로 인하여 단군 이래 가장 큰 일들이 전개될 숨 가쁜 때였다. 수업시간에 교수는 97년 IMF 구제금융 건이 터질 것으로 예견했었다고 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 경제연구소에서 여러 가지 고급 정보를 얻어 분석하고 연구했으니 그것을 예견했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교수님에 대한 혜안이랄까, 아니면 선견지명과 학식에 대한 경탄이 나와야 정상이었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렇게 정확하게 예측했었더라면 왜 그때 대외에 천명해서 환란 쓰나미를 대처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고개가 갸우뚱한 것은 그 교수가 근무했던 대기업 경제연구소의 모기업 부도사태가 IMF 사태와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회장의 무리한 회사 경영과 천문학적인 정치자금 제공 등으로 인구에 자주 회자된 인물이다. 이렇게 대학시절 얘기를 꺼낸 것은 그 기업의 부도와 IMF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여러 가지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지 한 연구원의 잘못으로 발생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상물림 한 연구원 출신 교수의 행태를 비난하고자 함도 더더욱 아니다. 일화를 든 것은 얼마 전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천재(天災)다', '인재(人災)다' 해서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관할 자치구에서도 재해가 발생하면 담당 직원들에게 통보하도록 되어있는 연락처를 5년 전 것으로 해놓고 바꾸지 않았다가 문제가 생기자 거짓 해명을 하고, 산림청에서 산사태 위험지역을 알렸느니 안 알렸느니 해서 잘못에 대해 핑계를 대느라 가뜩이나 덥고 습기 찬 여름철을 더 짜증나게 하는 듯하다. 그런데 어제 뉴스를 보다보니 앞의 IMF 예견 뒷북 사례가 또 나온다. 그것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서울과 춘천의 산사태 예견을 충분히 했었다는 것이다. 강수량이 어느 정도였을 경우 산사태가 예상된다는 것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예견이 되었다면 빨리 사전에 전파해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그랬느냐는 것이다. 때늦은 후회일 뿐이고 공허한 자랑일 뿐이다. 두 가지 사례에서 이러한 것을 느낀다.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이든 이론체계든 간에 예측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저했을 것이다. 수학처럼 정해진 공식대로 대입했을 경우 정해진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발표를 주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한 이론으로서 존재할지라도 나름 과학적인 체계와 방법으로 만들었다면 당당히 세상에 내놓고서 의견을 말했어야 했다. 왜냐면 사고라는 것은 99%의 확률로 나는 것이 아니라 1%의 적은 확률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소 불필요하고 시끄러울 것 같아서 주저해서 발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많은 재산상 손해를 보아야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시스템만 만들었을 뿐이고 사용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좋은 뜻을 가지고 만들었으면 세상에 내놓아서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게 하는 것도 지식인들의 의무다. 프랑스의 지성인이자 사회철학자인 시몬느 베유는 '관심이야 말로 가장 순수하고 값진 관대함의 표출'이라고 했고,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간섭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즉, 자신의 이해와는 무관한 일에 관심을 갖고 간섭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사회의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위험함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필요한 때이다.
-찰스 밴 도렌의 ‘지식의 역사(갈라파고스, 박중서 옮김)’를 읽고 무더운 여름에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책을 손에 드는 것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더욱 ‘지식의 역사’와 같이 두꺼운 책은 부피에 눌려 참기 어려운 게으름이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도 이번 여름에 ‘지식의 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마무리 지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보기 시작한 것이 꽤 오래되었다는 고백이다. 봄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한참 동안 손에 들고 있었다. 책을 이렇게 오래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책의 성격 때문이다. 이 책은 한 번에 읽지 않아도 될 백과사전이다. 읽다가 지치면 쉬고 또 읽다가 지치면 다른 일을 하다가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지식을 찾아’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인간이 만들고 경험하고 이룩한 지식의 역사를 탐구한다. 저자는 지식을 가진 원시인의 삶부터 시작해 지식이 어떻게 진보해 왔는가를 정리하고 있다. 제1장 ‘고대인의 지혜’에서 시작해 제15장 ‘다음 100년’까지 지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되어왔는지 말하고 있다. 저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자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다.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시간의 흐름을 한 권의 책으로 명료하고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인류의 역사에 깊게 선을 그은 사상과 이론을 흥미롭게 풀어간다. 제1장 고대인의 지혜 이집트, 인도, 중국, 메소포타미아, 아스테카와 잉카에 이르는 여러 고대 제국의 사람들이 공유한 보편적 지식들을 살펴본다. 읽기 쓰기를 아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앞당겼는데, 당시에도 읽고 쓰기를 아는 것은 부와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문자사용 능력도 출세를 위한 결정적 요인으로 남아 있다는 진술은 공감이 간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인신공양과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까지 고대인의 종교를 살펴보고 있다. 제2장 고대 그리스의 지식 폭발 인류 역사상 ‘지식 폭발’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두 번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B.C. 6세기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폭발은 긴 생명을 지녔다. 이 장에서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대표되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수학에서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으며, 물질과 혁명적인 이론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세계 전체를 뒤흔들게 된다. 제3장 로마인이 알았던 것 로마인이 법률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품으며 생활했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들은 그리스인과는 달리 실용적인 사고를 했다. 길을 닦고 수로를 개척하는 등 생활에 밀접한 지식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제4장 암흑시대의 빛 로마의 몰락에서 시작한다. 로마인은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허영심이 강했다. 한 마디로 로마인은 오늘날 우리와 상당히 닮았다고 한다. 제5장 중세 시대 : 거대한 실험 로마 제국 이후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몰락한 로마 제국의 생존자이자 후손인 유럽인은 중세 시대 초기의 몇 세기 동안 거의 모두 무척이나 힘든 삶을 살았다. 적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은 필수적 과정이다. 결국 그들은 하느님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일찍이 서양의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하느님 중심적인 삶이었다. 제9장 혁명의 시대 산업혁명이 소개된다. 18세기에 가장 중요한 기계적 발명품은 바로 공장이었다. 거대한 기계는 인간과 기계의 요소를 조합하여 이전까지는 전혀 꿈꾸지도 못했던 막대한 양의 상품을 생산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76년의 미국독립혁명,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돌아본다. 이 시기 혁명은 가장 비인간적이었지만, 보편적인 인간 평등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임은 분명했다. 제11장 1914년의 세계 1914년에 이르러 유럽은 인류 역사상 정점이 된 문명을 낳았다. 이 문명은 지구 곳곳에서 모방되었으며 세계의 전반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시기 유렵은 대전이 일어났다. 흔히 말하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아울러 ‘전쟁이 왜 벌어졌을까’를 파헤치고 있다. 전쟁은 비록 극도로 위험하기도 하지만 차마 저항이 불가능한 유혹이라고 말한다. 제13장 20세기의 과학과 기술 20세기 인간의 삶에 압도적인 변화를 가져온 과학 분야의 핵심적 지식들에 관해 논한다. 뉴턴 이후 어떤 과학자보다 더 우주의 구조를 인류에게 잘 이해시킨 아인슈타인이 등장했다. 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결국은 1945년 히로시마를 잿더미로 만든 폭탄이 투하된 것도 다루고 있다. 제14장 20세기의 예술과 미디어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매클루언의 명제로 시작한다. 미디어는 폭발적인 힘에 의해 현대인의 삶의 형태를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때문에’ 과연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설령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혹시 하찮은 지식의 증가가 아닐까? 설령 하찮은 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미디어 때문에’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뭔가를 아는 것일까? 모든 독자는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려 노력해보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 몇 개가 있다. 한 마디로 그 당시에는 어디에서나, 가령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사이에서나, 또는 지배자와 그 신민 사이에서도 전쟁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투키디데스가 쓴 것처럼 어디서나 강한 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고, 약한 자는 자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유일한 심판관은 바로 힘뿐이었고, 정의와 공정이란 것이 있긴 했지만, 이는 그저 더 강한 자의 이익을 약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pp. 40~41) 인류의 출발은 힘이었다. 힘은 동물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류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당했다. 아니 이 힘은 아직도 우리의 생활 전반에 정의의 가면을 쓰고 존재하는 지배 논리다. 21세기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는 힘의 논리에 의해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식은 인간에게 삶 이상의 매력이 있다. 지식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경험의 축적으로만 살기는 어렵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발판이 되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경험은 애매하고 유동적이다. 반면, 지식은 명확하고 확정적이다. 지식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 동력을 제공한다. 지식을 통해 도덕도 배우고, 지혜도 얻는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해답도 결국은 지식을 통해 얻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하는 도덕적 양심도 책으로부터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되면서 이룩할 수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신앙을 구별하기도 하지만, 둘은 서로 뒤얽혀서 성립되어 있다. 즉, 지식과 신앙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서양의 종교 역사는 곧 지식의 역사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지식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은 인간이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인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지식을 초월한 세계 인식이 필요하다. 실제로 저자는 1950년대 출연진과의 고의 조작으로 퀴즈왕이 된 ‘퀴즈쇼 스캔들’로 명예를 잃은 적이 있다. 이는 오늘날 지식의 획득보다 사용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다. 즉, 지식을 인간답게 이용하는 따뜻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다. 저자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평생에 걸친 독서와 사고와 대화의 산물이다. 약 50년에 걸쳐 이룩한 방대한 작업이다. 1991년에 완성된 책으로 인터넷과 디지털 정보가 없었던 시기에 그 창작의 고통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여기도 서양 중심적 시각이 드러난다. 자료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인류의 지식 발전에 동양이나 이슬람이 남긴 거대한 지식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찰스 밴 도렌의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가 극복해야 과제이기도 하다.
하점초등학교(교장 남광렬)는 2011학년도 인천광역시교육청 다문화교육 중심학교로 선정되어 지난 5월 24일 징검다리(문화나눔)반 개강식 이후 5월 31일 첫 수업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2시 30분부터 4시까지 한국어교실을 진행 참가 학생 및 학부모들로 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하점초 한국어교실은 이미 한국에서 8년 이상 한국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일상생활과 관련된 한국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녀의 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학교생활 및 교육과정과 관련된 어휘와 표현·자녀지도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다른 한국어교실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학습내용도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엄마 나라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갖도록 엄마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활동, 가족 호칭과 높임말, 속담과 사자성어 알기, 여러 가지 말놀이 등의 활동을 비롯, 학생들의 참여가 적거나 없을 땐 학부모를 위해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의 표현 익히기, 전래동화를 읽으며 한국문화 알기, 컴퓨터를 이용한 네이스 학부모 인증서 발급 또는 건강검진 문진표 읽기 등의 활동을 융통성있게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교실을 담당하고 있는 김선희 교사는 “주변 환경상 농촌이라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농사일이나 파트 타임으로 일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고 교통편이 불편해도 참석하시는 학부모님들에게 한국어 교실이 한국생활에 대한 불편함이나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한국어나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편안한 의사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며 9월 말까지 총 30차시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바뀌고, 이 세상이 급속하게 달라지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일본은 매년마다 독도의 영토에 대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번에는 일본의 의원들이 독도를 목표로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하니 그 일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는 심히 불편하기 짝이 그지없다. 명백한 우리 땅인 독도인데도 이렇게 일본이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부터 해야 한다. 우선 역사학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독도는 근대시대를 중심으로 이전에는 신라 지증왕 시절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을 시점으로 우리 역사의 일부분에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 숙종 시절에는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일본인을 몰아내고 일본에 직접 가서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 받았다. 시간이 흘러서 1884년 ‘울릉도 개척령’으로 육지주민을 이주시키고 관리를 파견하면서 독도의 수호를 위해 노력을 했다. 뿐만 아니라 1900년,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을 시기며 독도를 간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조금씩 기울어지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은 불법으로 독도를 일본영토(시마네현)에 강제 편입을 시키면서 독도를 자국의 땅으로 가져가 버렸다. 하지만 1945년 광복이후에는 다시 독도가 대한민국의 하나의 영토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독도 문제는 끝이 날 것이라고 보였지만, 일본은 독도의 여러 가지 이점(조경수역으로 인한 어류 풍부, 지하자원 풍부 등)으로 자꾸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결국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제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에는 일본출신은 있지만 한국출신은 없으므로 극히 불리한 재판이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판결에 불과할 뿐 강제력은 작용하지 않으므로, 이에 우리는 ‘조용한 외교’로 상황을 대처하고 있다. 이처럼 독도 문제는 엄연히도 우리땅이다. 일본의 주장은 정말 3류 만화에서나마 나올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말 큰일인 것은 자라나는 꿈나무인 어린이와 학생들 대다수가 독도가 우리영토인줄은 알지만 왜 독도가 우리영토인지 이유를 재대로 알지를 못한다. 상대국인 일본은 역사를 조작하여 몇몇 교과서도 거짓으로 날조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하니 정말 큰일이다. 그렇기에 역사교육의 강화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들어났다. 이번에 역사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선정한 정부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10%정도의 학생도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는 과목이라는 문제점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우리 역사교육의 발전을 더욱 기대해 본다.
“스포츠 체험교실 겨울방학 때 또 참여하고 싶어요!” 광양여중(교장 김광섭)은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7월 18일부터 23일까지 스포츠 체험교실을 운영하였다. 종목으로는 스케이트와 볼링으로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선정함으로, 학생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아 90여명의 학생이 신청하였으나 예산 문제로 40명을 선발하여 운영하였다. “운동을 할 경우에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훨씬 좋아진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7월 26일 MBC뉴스 보도에 의하면 국내 연구진이 운동한 생쥐와 안 한 생쥐의 뇌를 비교 분석한 결과 기억과 학습능력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에서 뚜렷한 차이가 확인됐다. 이처럼 운동의 중요성이 각종 매스컴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이제는 두되 발달에도 운동이 매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이에 본교에서는 교육과학부기술부 요청 도지정 체육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건강체력을 증진시키고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한 3학년 공유정 학생은 “더운 여름 시원한 스케이트장에서 더위도 식히고 스케이트도 배워 너무 좋았으며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하였으며 1학년 조연재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경험해 본 볼링은 기대 그 이상이었으며 앞으로 방학 때 마다 이런 스포츠 체험 교실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또한 2학년 강예론 학생은 “평소 시간이 없어서 못했는데 방학을 이용해 오전에 운동을 하고 오후에 공부를 하니 공부하는데 집중력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아 좋았다“고 답하였다. 이번에 참가한 학생들은 새로운 스포츠도 체험하고 운동으로 건강체력도 향상되고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면서 방학 때 마다 이런 프로그램을 2주 이상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주었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은 25일부터 29일까지 특수교육지원센터 가정생활지원실에서 초·중학생 25명을 대상으로 요리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남부특수교육지원센터는 방학을 이용하여 흥미와 경험중심의 수업을 확대하고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통해 장애학생의 사회적응능력과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실시하고 있다. 요리치료는 다양한 조리방법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는 기회를 가질 뿐 아니라 조리과정에서 문제해결 능력이 촉진되고 자아성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학생의 자발적인 동기 유발과 적극적인 참여로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요리를 만들어 가면서 눈과 손의 협응력, 손의 조절력을 높이고 창의성과 더불어 무의식의 상징화, 삶의 동기와 욕구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한편 남부교육지원청 정영수 창의인성교육지원과장은 "요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요리치료를 통해 우리 학생들은 다양한 정서적 체험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타인과도 교감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폭넓은 정서적 풍요를 경험하고 질 높은 삶을 지향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대처에 고심해 온 정부가 외부인이 초등학교에 출입할 때 방문증을 발급하는 제도를 올해 안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학교방문에 출입증을 발급하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검토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특성상 학부모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여러가지 번거로운 점이 있을 수 있어 본격적인 논의와 시행이 보류되어 왔었다. 그러나 초등학교내에서 외부인의 출입으로 성폭력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학교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이번의 조치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시행에 들어갔으면 한다. 그러나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은 학교출입을 할 때 방문증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발급하느냐의 문제이다. 적지않은 학교에서 담장을 허물어 놓은 상태다. 학교 공원화 사업으로 인근주민에게 학교 자체가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업중에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담장이 없는 학교이기에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방문증의 발급은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학교 정문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문에서 근무할 인력과 장소가 필요하다. 수위실이라고 이름지어진 곳이 학교에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많은 학교에서 수위실이 없다. 교문에서 출입증을 발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과 함께 근무할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학교상황으로 교문에서 출입증을 발급할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방문증 발급업무는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항시 대기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학교인력을 활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학교에 방문증을 발급할 인력을 새로 확보해야 할 것인데 예산문제등 여러가지 여건이 성숙되지 않고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학교당 1명의 인력을 충원해야 방문증 발급이 가능하다. 여기에 방문증을 발급할 장소문제도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또한학교방문 통제와 관련하여 아직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이 부분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법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법제화 없이 시행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고, 이와 관련된 민원이 제기되면 쉽게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제화야말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이 아닌가 싶다. 일단은 초등학교에서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중·고교에서도 이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특히 야간 방과후학교 수업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루빨리 전체 학교급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여러가지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하겠다. 끝으로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예약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즉, 학교방문이 예정되었을 경우 학교에 사전에 연락하여 대략적인 방문시간과 방문목적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과정이 있어야 학교에서도 그에맞는 효율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학교방문증 발급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해 본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김천과 구미 사이의 경부선변 시골의 아포초등학교다. 우리 학교 인근에 ‘대신초등학교’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아침 조례 때마다 ‘하루 한 가지 착한 일 하기(一日一善)’를 강조하셨다. 우리가 말썽을 부리거나 노력이 모자랄 때는 우리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근 대신학교 아이들은 일일일선을 잘 해요. 대신학교의 행사에 참석해서 보았는데, 그 학교 아이들은 정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더라. 너희들도 그렇게 좀 해라.” 우리가 잊을 만하면 교장선생님은 대신학교 아이들을 거론해 칭찬하시며 우리의 분발을 촉구하셨다. 나는 대신학교 아이들에 대해서 조금씩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 후 김천시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대신초등학교 출신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그들도 특별히 잘난 것이 없기는 나랑 비슷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믿음이 무너져갔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촌놈 티를 벗으려 애를 썼다. 김천은 그래도 시가가 번듯한 도시였고, 나는 농촌 면단위 학교를 다닌 티를 여기저기 내고 다녔다. 그런데 음악선생님은 내 촌티를 여지없이 확인시켜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분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울의 중학생들은 둘이 모이면 소프라노, 앨토 나누어서 자연스럽게 이중창을 부르고, 네 사람이 만나면 화음을 잘 살려 4중창을 부른다. 서울의 중학생들은 악보를 보는 순간 계명창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너희처럼 촌구석에서 자란 녀석들은 기본 멜로디조차도 잘 못 익히니 참 한심하다.” 이후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서울로 왔다. 대학시절 방송국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서울 친구들과도 어울렸다. 내가 만난 서울 친구들 중에서 악보를 보고 음계명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친구는 드물고 드물었다. 넷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4중창을 하는 경우는 대학 4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옛날 선생님들은 무슨 고약한 심사로 우리들 기를 죽이려고 그렇게 했겠는가. 무언가 자극을 주어 우리에게 긍정적 강화를 부여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난하고 헐벗던 시절, 우리를 위로 끌어올려야 할 자극들이 많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우리들 못난 구석을 아프게 헤집어내던 유럽의 언론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 말을 얼마나 많이 인용하며 스스로 주눅에서 헤어나지 못했던가. 그래서 그 서구의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는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완벽해 보이는 체제를 마음 안에서 얼마나 선망했던가. 선망의 기준을 이야기하자니 ‘엄친아’라는 말이 표제어로 떠오른다. ‘엄친아’라는 말은 지금 이 시점에서의 사회문화적 함의를 띠고 있다. ‘엄·친·아’! ‘엄마 친구의 아들’! ‘엄마 친구의 딸’을 나타내는 ‘엄·친·딸’이라는 말도 있다. 발상이나 기능에서 ‘엄친아’와 같은 말이다. ‘엄마의 친구 아들’은 엄마가 자녀에게 너희도 이렇게 좀 하라고, 표준 모델로 제시하고 싶은 거의 결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것을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엄마의 친구 아들이므로)로 제시하고, 또 엄마가 그 집에서 직접 확인까지 하고 온, 부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증거 인물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꼼짝 못하고 주눅이 든다. 엄마 쪽에서 보면 그렇다. 엄마 친구 아들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것 보고, 그걸 내 자녀들 앞에서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내 아이들이 ‘아! 우리도 엄마를 위해서 정말 잘해야 하겠구나’ 하고, 발전적인 변화를 보이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별 효과가 없고 자칫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 더구나 이런 모습을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부모에 대해서 자녀들은 저항과 짜증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순진하게 긴장하며 엄마 이야기를 듣지만, 나이가 좀 들면 대부분 짜증을 낸다. “엄마가 말 하려는 걔? 나도 다 알아. 걔처럼 좀 하라는 거지, 또 그 이야기 아냐?” 엄마의 엄친아 이야기란 결국 아무개처럼 공부 잘하라는 엄마의 습관성 주문(呪文)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엄친아 이야기를 계속할라치면 아마도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찌푸린 짜증을 듣게 된다. “아!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방법보다는 나은 것이 있다. 내 아이가 공부에도 관심 없고 말도 잘 안 듣는다면, 그래서 그런 행동을 고치도록 변화를 주고 싶다면, ‘잘난 엄친아’를 동원하지 말고 오히려 그 반대를 동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제성 있는 엄친아’를 동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엄마 친구, 봉천동 사는 아줌마 있지. 그 집에 그제 다녀왔는데, 아휴! 그 집 아들 참 걱정이겠더라. 공부는 관심 없고, 대학 갈 생각 없다면서,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포부도 없다는 거야. 빈둥빈둥 놀러 다니는 데만 빠져 있고, 부모랑 뜻이 맞지 않아서 불만이 많고, 엄마 친구들이 왔는데도 본체만체 인사할 줄도 모르더구나. 걔네 엄마가 걱정이 한 무더기야. 나는 우리 아들 생각하니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모르겠더라.” 내 아이가 부족하고 실망스럽더라도 꾹 참고 이렇게 말하고 아들의 기색을 살펴 볼 일이다. 내 아이의 잘못을 직접 지적하거나, 무어라고 불만을 바로 토로하지 않았으니 아이로서야 기분 나쁠 일이 없다. 약간의 피암시성(被暗示性, suggestibility, 암시를 받아들인 결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를 변경하는 것)이 작동하는 아들이라면, 일정한 공감을 표해 올 수도 있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해도 성공적이다. ‘엄친아’라는 말은 약간의 조롱기를 머금고 있다. ‘엄친아’의 수준과 요건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협소하고도 이기적인 기대욕망으로부터 생겨난 것 아닐까. 우리 사회의 퇴로 없는 경쟁 세태와 출세 욕망으로만 내몰리는 속물심리가 하나의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기묘하게 반영하는 말이 ‘엄친아’이다. 또한 청소년 세대가 부모세대와 무언가 심리적으로 뒤틀리게 교섭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 바로 ‘엄친아’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엄친아가 진정으로 있단 말인가. 엄마들은 말할 것이다. 내가 없는 사실을 지어내어서 말한다는 거냐.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이렇듯 본인이 확고하게 다짐하는 말은 이미 스스로 강하게 믿기로 최면을 걸어 둔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선 생각해 보자. 엄마 친구의 아들은 그렇게 모범적이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아들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그런 아들은 애초부터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내 아들에게 그런 완벽한 지적 · 정의적 자질을 갖추게 하여 키우고 싶은 엄마의 욕구가 ‘엄친아’의 가상 완벽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들 자랑을 한 엄마의 친구에게도 문제는 있다. 원래 자식 자랑이란 하다보면 인플레가 되는 법이다. 듣는 쪽에서 깎아서 들어야 한다. 그런 자랑의 말을 선망의 감정에 푹 빠져 듣게 되면, 공연히 내 아들만 부족한 것 같아서 불안감이 증폭된다. 엄친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어떤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단다. 엄마와 엄마가 말하는 그 엄친아가 딱 일주일만 가식을 벗고 살아보라고 했단다. 그 ‘엄친아’에게도 얼마나 많은 결함이 있는지를 알 것이라고. 나에 대해서 엄마가 엄마 친구들에게 조금만 긍정적으로 말해 주면 엄마 친구 누군가의 집에서는 나도 괜찮은 ‘엄친아’가 이미 되어 있었을 거라고.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어느 날 딸아이에게 우리 대학의 제자 학생들은 얼마나 온유하고 예절바르고 반듯한지 모르겠다. 나는 네가 그런 딸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냉큼 이렇게 말한다. “아빠! 아빠 제자들도 다 자기 집에 가면 저처럼 다 그래요. 신경질 내고 짜증내고, 할 이야기 성질대로 다하고. 그런다니까요. 저도 대학에서 교수님 뵐 때는 아빠 제자들처럼 그런다니깐요.” 다음날 딸아이의 말을 우리 학생들에게 했더니 학생들이 무릎을 치며 웃는다. 정말로 그렇다는 것이다. 절대 공감이라고 한다. 그렇다. 엄친아는 일종의 신기루이다. 이기적 경쟁에 집착하여 자녀를 내 욕심대로 몰아가려고 할 때, 숨어 있는 욕심의 시선에 무언가가 잘못 굴절되어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상의 인물이 ‘엄친아’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엄친아’는 없다!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그런 ‘엄친아’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이 좁은 비교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엄친아’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