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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특수학교 교사입니다. 지체장애가 있는 장애인이기도 하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아기를 씻길 때 허벅지에 아기를 올리고 머리를 감깁니다.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이지만 익숙해 지면 가장 안전한 엄마 품이 됩니다. 그런데 학교는 기다려 주질 않습니다. 업무를 받으면 저는 고민을 합니다. 일반적인 방법을 조금 비틀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학교는 바쁩니다. 정신없이 맞춰지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는 장애인의 특별한 상황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는 것을 선택하니까요. 특수학급·학교에는 교사 외 인력이 있습니다. 교사가 혼자 하기 어려운 모든 것을 보조해 주죠. 참 감사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제가 교사인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부족해 보이나 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매우 불만입니다. 장애 학생도 장애 교사도 한 박자 느리게 걸을 수 있지만 일부 교사와 보조인력들은 장애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더 많은 인력을 넣거나 제외시켜 해결합니다. 그들은 어느 날부터 학생의 보조가 아닌 교사의 시어머니가 됐습니다. 학생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시작으로 교사의 외모를 품평하고 비장애인인 자신의 우월감을 뽐내기도 합니다. 전 이럴 때마다 특수교사의 전문성을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어떤 사회복무요원에게 ‘그 수업을 꼭 하셔야 해요? 그냥 대충 보내죠’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문가란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조용하게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아이를 자리에 앉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학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고 위로해주는 동료가 필요하지 주종관계에 대해 논하는 의미 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나친 도움에 선을 그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저는 갑질 교사가 돼 있었습니다. 관리자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제 사과로 마무리 됐지만 상처는 아직 낫질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분합니다. 그저 자리나 채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를 장애인이 아닌 교사로 인정해 줄까요?(42세·여) 저는 비장애인 심리학자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은 참 많은 사람이지만, 장애인은 아닙니다. 이런 소개로 화두를 여는 것은 장애인으로서의 삶이 어떨지 당사자가 돼 본 적인 없으므로 선생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폭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독한 심리적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함몰돼 속이 문드러진(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심적 장애인들을 많이 경험했다는 사실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 중 누구의 삶이 더 힘들까요? 그렇다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 누가 더 힘들까요? 당연히 말도 안 되고, 의미도 없는 가름이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힘들 수도 있고, 반대로 모두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매우 긴밀한 연결성이 있습니다. 마음의 연약함과 신체의 연약함이 함께 가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마음의 단단함으로 신체적인 연약함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런 지혜의 선물을 소유할 수 있지요. ‘교사’는 그냥… 교사입니다 교사를 장애인 교사와 비장애인 교사로 나눌 수 있습니까? 그 누구도 그렇게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나누지도 않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장애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누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든, 또 다른 어떤 행위를 하든 그다음 절차에 따라 만나게 되는 사람이 보이기 마련이지요. ‘장애인이구나…’ 하는 편견에 갇혀 왜곡된 시선으로 대하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지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이름 붙임에 메이지 말고, 한 개인으로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개인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 선생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느 날 사회복무요원이 선생님께 ‘그 수업 꼭 하셔야 해요? 그냥 대충 보내죠’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선생님은 그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셨나요? 당시 사회복무요원에게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물어보고 답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도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따라 해석하고 추측해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의미는 그 말을 한 사회복무요원만이 알고 있겠지요. ‘몸도 힘든데 굳이 왜 이렇게까지…’라는 의중이었을 수도 있고, ‘아…귀찮다. 그냥 대충하지’였을 수도 있죠. 또 다른 속내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면의 한계가 있으므로 두 가지만 놓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장애인의 한계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한 말이거나 혹은 안타까운 마음에 나름대로 배려하고자 한 말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사회복무요원 자신이 쉽게 일하고 싶은 자기 욕구가 그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따져 봐도 선생님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에 대한 해석과 받아들임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복무요원의 시선이 아니라 선생님의 자기 시선입니다. 본질을 보면,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지금까지 기고한 제 글을 읽어보셨다면 다른 교사들도 학교 내 관계자들과의 갈등, 갑질 논란 등 유사한 고충들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해요? 그냥 대충 하시죠’와 같은 말들은 다른 교사들도 학부모나 학교 관계자들에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학교와 교사 집단을 떠나 평범한 회사원들도 다른 동료나 상사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고요. 즉, 장애 교사이기 때문에 듣는 말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방식을 수용하지 않고, 속도를 기다려 주지 않으며, 자기주장으로 밀어붙이거나, 무례하게 경계를 넘는 사람들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듣고, 겪었던 일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었다기보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아등바등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장애와 비장애의 문제를 떠나 대인관계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에게 비수를 꽂기도, 꽂히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모두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말과 행동의 표현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중 특히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은 더 도드라지기 마련이고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다름’일 뿐입니다. 그 ‘다름’이라는 것은 장애와 비장애로 단순히 묶일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성격, 외형, 강점, 약점, 인격, 성품, 지위, 직업, 살아온 배경 등이 모두 다른, 있는 그대로의 ‘다름’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들일 뿐입니다.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어떤 어려움이 닥치거나,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내가 장애인이라서…?’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침투하지는 않는지요. 원치 않는 특정 사건이 일어난 이유의 원인을 가장 먼저 ‘장애와 비장애’의 틀에서 해석한다면 선생님께서 먼저 습관적인 실수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의 교사입니까 누구에게 교사로 인정받고 싶으신가요? 동료 교사? 학교 관계자들? 아니면 학생들입니까? 선생님은 누구의 교사입니까. 학생들은 선생님을 어떤 교사로 바라볼까요.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적용하고 실천할 대상, 즉 교육의 주체는 학생과 선생님이지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을 교사로 인정해야 할 사람은 가장 먼저 선생님 자신이어야 하고, 그리고 학생들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충만하게 이뤄진다면 선생님의 절망, 갈망, 두려움도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사 외 인력이 교사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또 교사 외 인력들이 교사로 인정한다고 누구든 교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선생님 자신과 학생들의 하모니로 온전히 실현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선생님의 귀한 강점을 찾았습니다. ‘익숙한 것이 아닌, 조금 비틀어 볼 수 있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학교 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강점을 발휘해보셨으면 합니다. 보통의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선생님만의 특별한(unique) 역할들을 효능감 있게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교사로서 자신과 학생들에게 오롯이 집중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교육의 현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김민녀 임상심리전문가·교권침해 교사상담
「교육공무원 호봉획정 시 경력환산율표의 적용 등에 관한 예규」가 5월 15일 개정, 시행됐다. 이에 따라 전문상담교사도 임용 전 산업체 등 근무경력에 대해 9∼10할로 상향 인정되고, 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에 대해서도 정규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된다. 1. 임용 전 산업체 등 근무경력 상향인정 대상에 전문상담교사 신설 예규 [별표2] 1호 2) 세부 적용 기준의 합산대상교원에 ‘전문상담교사’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과정 이수에 상응하는 상담관련 국가기술자격증(전문상담교사,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취득 후 또는 대학(전문대학) 졸업 후 교원자격증 표시과목과 동일한 분야의 업무에 상근 상담사로 근무한 경우 9∼10할로 경력환산율이 상향됐다. 또한 실업(전문)계 교과 및 기술·가정, 기술, 가정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인정대상경력에 ‘고등교육과정 이수에 상응하는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후의 경력’을 인정하는 사항을 포함했다. 기존에는 대학(전문대학) 졸업 후의 경력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이는 실업(전문)계 교원의 임용 전 산업체 경력 상향 인정의 본래 취지를 고려할 때 대학(전문대학) 졸업 후의 경력만 인정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에 따른 것이다. 인정대상경력을 한정적으로 해석하도록 의미하는 내용도 삭제했다. 2. 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 학령 인정 학점은행제의 경우 학위취득을 위한 구체적인 수학연한이 존재하지 않고 개인별로 학위취득에 소요되는 기간이 상이하지만, 정규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토록 개정됐다. 고졸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소지자가 학점은행제 학사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는 학령을 4년,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는 해당 학위에 따라 2년 또는 3년으로 인정한다. 전문대학 졸업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소지자가 학점은행제 학사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는 법정 수학연한 4년의 범위 내에서 학령 1~2년을 추가 인정한다. 법정 수학연한 4년을 인정받은 사람이 학점은행제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는 학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3. 공무원보수규정 개정사항 예규에 반영 이미 공무원보수규정에서는 개정된 사항이 해당 예규에는 반영되지 않아 학교현장에서 혼란이 있던 부분을 이번에 정비했다. 특수교육지원센터에 근무하는 교원에 대한 가산연수를 명시(2017.1.6부터 적용)하고, 교원자격증과 근무한 학교급이 다른 기간제교원 및 강사의 경력인정비율을 8할(2015.1.6부터 적용)로 공무원보수규정과 동일하게 개정했다.
요즘 아이들은 ‘힘들다’, ‘귀찮다’, ‘짜증난다’,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며 ‘리셋(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조차도 거부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박자(대가리 박고 자살하자)송’을 흥얼거릴 정도로 삶의 만족도는 낮다. 도대체 배고픔도 없고, 사달라는 것 다 사주고, 하고 싶은 것 맘껏 누리며 살면서 뭔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어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돈이 없어서…’, ‘나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양보하고 포기하며 살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고생 없이 커서 어려움을 모른다고, 악바리 정신과 간절함이 없으니 정신력이 저렇게 약해 빠진 거라며 혀를 찬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무섭고, 불안해한다.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어른 세대가 경험했던 고단함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들만의 ‘힘듦’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중간고사 성적표’ ‘행복감’은 ‘배부름(물질적 풍요로움)’에만 있지 않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이 ‘중간고사 성적표’라며 마스크를 끼고 카페에 앉아, 전쟁 치르듯 공부하는 아이들에겐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정서적 결핍’ 즉, 심리적 배고픔이 존재한다. # ‘정서적 관계’에 배고픈 아이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유난스럽게 고단해한다. 이유가 뭘까? 너무 빨리 ‘경쟁’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작 평균 연령은 만 4세가 되기도 전인 평균 39.2개월이다.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영어조기교육이 시작되고,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를 ‘영재끼’를 발굴하기 위해 각종 예체능 학원을 다니며, 엄마가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인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져가기 위해 쉼 없이 공부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없음에 좌절하며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느라 밤낮없이 일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있는 힘껏 용기 내어 “힘들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정신머리가 약해빠져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 “너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보다 ‘성적’을, ‘내가 원하는 것’ 보다 ‘사회적 잣대’를, ‘힘들다는 고백’에 공감하기보다 ‘참고 버티라’는 질책과 독려를 쏟아내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렇게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 교사와의 정서적 관계는 단절된다. 자식에게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종거리며 일하고, 부족한 것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지만, 정서적으로는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 ‘꿈 고문’과 함께 무너지는 자신감 ‘자신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며 상담실에서 소리죽여 우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린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포기하려면 ‘빼어나게’ 잘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대부분의 아이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발견되지 않은 영재끼’는 아이들을 끝없이 무너뜨린다. 가뜩이나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은 ‘꿈이 뭐냐’고 자꾸 묻는다. 우물쭈물 거리면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아직까지 꿈도 없어서, 뭘 해 먹고 살 거냐?’고. 어른들의 ‘꿈 고문’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아직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본 적도 없으며, 다양한 경험을 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을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앉게 한다. 청소년 시기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이지, 완성된 자신을 발견하는 시기가 아니다. 어쩌면 아직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가 두렵고, 혼란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지도 않고 포기부터 한다’며 혼내면 아이들은 할 말이 없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다 큰 척하지만, 사실 아직 어리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충분한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힘이 필요하다. # 사라진 정서적 쉼터,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 과거에는 대부분 집에 엄마가 있었다.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묻고, 혼내고, 잔소리해댔다. 친구 같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아빠도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나의 안부’를 묻던 이웃집 아줌마와 동네 슈퍼 아저씨, 학교 앞 문방구와 분식집 등 일상생활 곳곳에 ‘의미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 관계맺음’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쉼터’였다.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전문매장이 들어찬 요즘, 아이들의 오프라인 세상은 한없이 작아졌다.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기껏해야 코인노래방과 PC방, 편의점뿐. 그나마도 정서적으로 기댈 공간은 아니다. 마음 둘 곳이 사라진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에 정서적 쉼터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을 업로드하자마자 달리는 댓글에 위로받고, ‘좋아요’ 숫자와 리트윗 횟수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다양한 SNS로 친구들과 소통하며 일상의 소소함을 즐긴다. 그러니 손에서 스마트폰을 뗄 수 없다.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는다는 것은 ‘세상 전부’를 빼앗는다는 것과 같다. 온라인 속 관계마저도 단절되면, 마음 붙일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서적 쉼터의 상실보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속 세상의 관계맺음이다.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 자신의 복제판일 수도 있는 ‘유유상종의 집단’ 속에서 아이들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인지구조가 형성된다. 사고체계는 점점 협소해지고, 편협해지며, 혐오감정으로 치닫는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배제한다. 친구의 상황을 공감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강요한다. 공감, 이해, 배려, 나눔… 등을 머리로는 아는데, 정서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감정을 제어해줄 어른다운 어른이 그 세계엔 없다. 심지어 ‘신조어’로 소통하는 그들의 언어조차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다.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상담실을 찾아왔다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간절함이 느껴진다. 아이의 고단함을 공감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순위였던 어른 세대는 마음을 챙기며 살지 못했다. 성과·성공·결과물이 중요할 뿐 개인의 감정이나 욕구, 의미 따위는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부족해 본 적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하고 예민하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정욕구’와 ‘동기부여’가 그 어느 세대보다 중요하다. 집도, 학교도 모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아이들의 고백을 그저 철없는 어리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 ”뭐가 힘드냐?”가 아니라 “지금도 잘하고 있다” 인정은 아이들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인정해주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와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힘들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네가 뭐가 힘드니?” 대신 “지금도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자. 무엇하나 확실한 것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불안해하는 지금,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어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최고의 위로이다. # “넌 틀리지 않았어. 노력도 때론 배신할 수 있단다” 열심히 했지만 성과가 없을 때 우리는 힘이 빠진다.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 시작하는 것조차 겁이나 쉽게 포기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삶을 뒤흔들 만큼의 큰 사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부정적 경험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마음속에 엉겨 붙어 ‘스몰 트라우마’로 남는다. 자신감은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며, 현재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한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결과에 실망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노력도 배신할 때가 있다”고 얘기해주자. 어른들보다 더 상심이 클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지금이 노력이 ‘다음’을 준비하는 밑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더불어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인정해주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면 아이들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그 어떤 행동도 의미 없는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빨리 알아채야 하는 직업임에도 가끔 벅찰 때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의 ‘힘듦’은 아이들 숫자만큼 많고, 고단하다. 우리학교 아이들을 만나면서 ‘딸내미’에게 한 말과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키다리 아줌마’가 되길 소망하지만, 여전히 ‘잔소리 대마왕 아줌마’인 듯싶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학교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징계는 퇴학이다. 퇴학은 의무교육과정인 초·중학교는 허용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만 허용된다. 하지만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학생의 신분관계를 소멸시키는 퇴학처분은 징계의 종류 중 가장 가혹한 처분으로서 학생의 학습권 및 직업선택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는 중대한 처분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학생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교육상 필요와 학내질서 유지라는 징계목적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인정될 수 있을 정도로 중한 징계 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행실을 고칠 가능성이 없어 다른 징계 수단으로는 징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대부분 취소를 한다. 이에 학교가 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징계는 현실적으로는 전학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17조 제1항 제8호,「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제18조 제1항 제6호에는 처분의 이름이 ‘전학’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학생이나 학부모는 징계로 받는 전학을 ‘강제 전학’, ‘강전’이라고 부른다. 징계 전학이 아닌 일반적인 전학은 거주지 이전을 할 때 학생 측이 관련서류(등본 등)를 제출하면서 신청하여 절차가 진행된다. 징계 전학이 도입되고 나서 초창기에는 징계 전학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학생이 등본을 제출하고 서류에 서명을 해야 배정이 되고 전학이 이루어졌다. 이러다 보니 징계 전학을 거부하는 학생 측에서는 등본을 제출하지 않거나 서명을 하지 않아 전학이 집행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징계로 인한 전학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등본 등 별도 서류를 받지 말고 자동으로 학적을 옮기라는 교육부 지침이 나왔고, 이것을 언론에서 ‘강제 전학’이라고 표현하면서 징계 전학은 통상적으로 ‘강제 전학’으로 불리게 됐다. 1. 징계 전학의 형식적 요건 징계 전학을 할 수 있는 형식적(법적인) 요건은 학교폭력은「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별표에 따른 누적 점수가 16점 이상이 되거나 심의위원회 과반수가 찬성하는 경우이다. 위 별표는 ①학교폭력의 심각성, ②학교폭력의 지속성, ③학교폭력의 고성의, ④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⑤화해 정도를 0점부터 4점까지 점수를 주게 되어 있다. 누적 점수는 최대 20점까지인데 16점 이상이면 전학 또는 퇴학처분이 가능하다. 또는 점수는 16점이 되지 않더라도 심의원회회가 선도 가능성 및 피해학생 보호를 고려하여 출석위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전학이 가능하다. 교육활동 침해행위(통상 ‘교권침해’라고 함)로 인한 징계 전학은 요건이 조금 복잡하다. 「교육활동 침해행위 고시」별표에 따른 누적 점수가 17점 이상이면 전학이 가능한데, 피해교원이 임신하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1단계 가중하여 전학을 할 수 있다. 또한 전학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출석정지 또는 학급교체 처분을 받은 학생이 재발하는 경우에만 가능한데, 예외적으로 상해와 폭행, 성폭력 범죄의 경우에는 최초 발생한 사안이라도 전학을 할 수 있다. 2. 징계 전학의 실질적 요건 징계 전학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요건 이외에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사유는 ①교육환경 변화 필요성, ② 피해학생(교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이다. 교육환경 변화 필요성은 학교가 해당 학생을 선도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나 학생이 개전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31조 제2항은 ‘학교의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징계를 할 때에는 학생의 인격이 존중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그 사유의 경중에 따라 징계의 종류를 단계별로 적용하여 학생에게 개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이는 학교가 처음부터 센 징계를 하지 말고 약한 징계를 하여 개전의 기회를 주라는 의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이나 「교육활동보호법」에는 징계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라는 위와 같은 명시적인 규정은 없으나 징계는 교육적인 목적 즉, 선도를 위하여 하는 것이므로 단계적 징계는 학생징계의 대원칙이다. 따라서 학교가 학생을 선도하고 지도하기 위하여 단계적 징계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학생 선도가 되지 않으면 그때는 징계 전학이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문제학생을 지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손쉽게 다른 학교로 보내려고 징계 전학을 한다면 이는 선도가 아닌 ‘폭탄 돌리기’이므로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취소될 수 있다. 두 번째 피해학생(교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는 학교폭력 또는 교육활동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하고, 서로 화해가 되지 않아 피해학생(피해교원)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가해학생의 전학이 불가피한 경우를 말한다. 이는 단순히 피해학생(피해교원)이 함께 있기 싫다거나, 화해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인정되기 어렵고,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해 누가 보더라도 가해자가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단순히 피해학생이나 피해교원이 원한다고 하여 경미한 수준의 학교폭력 또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인데 전학을 한다면 이 역시 소송이 제기됐을 때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취소될 수 있다. 3. 징계 전학 판례 가. 수원지방법원 2019구합69842 전학처분 등 취소 사실관계 ● 2019. 6. 10. 월요일 점심시간 13시경 원고와 피해학생이 학교 본관과 별관 사이 주차장에서 이야기하다가 원고가 피해학생에게 겁을 주면서 벽으로 밀쳤고 피해학생의 뺨을 때린 듯한 모습을 보임. ● 이를 보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달려와 둘을 말렸고 학교 3층 매점 쪽 창가에 있던 학생들과 본교 교사가 이를 목격하여 두 학생을 학생인권안전부로 가게 함. ● 피해학생의 얼굴 왼쪽 구레나룻 쪽에 0.5cm 정도 긁힌 상처와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군데군데 부어올라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사안 조사를 하였으나 서로 장난이었을 뿐 때리거나 맞지 않았다고 끝까지 진술함. ● 하지만 CCTV 영상 확인 결과 원고가 세 차례 정도 피해학생을 때리는 장면이 포착되었고, 관련 학생 모두 지속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남에 따라 학교폭력임이 인정되어 전학 조치를 내리게 됨. 판단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처분 중 전학처분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및 교육 등의 공익 목적에 비하여 원고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부분 전학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① 원고는 피해학생과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이 사건 당시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피해학생을 때린 측면이 커 보인다. 원고가 피해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계속적·반복적으로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을 가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학생 역시 그동안 원고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② 원고와 피해학생은 사건 발생 당일 서로 화해하였고, 피해학생과 그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원고에 대하여 악감정이 없음을 강조하며 원고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학생과 그 어머니의 의사는 진정한 것으로 보인다. ③ 세부기준 고시 [별표]에 따라 이 사건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고의성을 ‘높음’ 또는 ‘매우 높음’으로 판정하고, 전학처분 당시의 원고의 반성 정도 역시 ‘없음’ 또는 ‘낮음’으로 판정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학교폭력의 지속성이 인정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화해 역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위 [별표]에 따른 원고에 대한 판정 점수 합계가 전학처분의 기준이 되는 16점 이상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이 사건 자치위원회는 구체적인 판정 점수 부여 내역과 그 합산 점수를 밝히지는 않았다). 또한 원고가 평소 학교폭력이나 그 밖에 비행을 저지른 적이 있는 등 선도 가능성이 낮다고 볼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고, 원고와 피해학생이 이미 화해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위[별표]의 부가적 판단요소에 따라 선도 가능성 및 피해학생의 보호를 고려하여 원고에 대한 조치를 가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 서울행정법원 2017구합1803 전학처분취소 사실관계 ① A, B는 2016. 9. 20.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피해학생의 어깨 부위를 주먹으로 폭행하였고, 그중 A가 피해학생을 가격하는 장면을 C가 촬영하여 D, E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하였으며, D는 그 후 다른 곳에 있는 친구 2명에게 위 동영상을 전송함. ② 원고는 2016. 9. 22. 남산과학관 학급체험활동 중 점심시간에 피해학생의 머리에 라면을 뿌리고 폭언과 욕설을 동반하여 주먹과 발로 폭행하였고, 이 상황을 C가 중계하듯 촬영하여 E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함. ③ 위 학교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이유로 원고 등 5인에 대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원고는 전학처분을 받음 판단 이 사건 처분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및 교육 등 공익 목적에 비하여 원고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과도하여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 ① 교육전문가인 학교의 장이 교육목적과 내부질서 유지를 위하여 징계조치한 것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나, 징계사유와 징계조치 사이에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적절한 균형이 요구되므로 피고의 징계조치도 그 한도에서 재량권의 한계가 있다. 피고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를 지도 · 교육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피해학생을 보호하여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가해학생을 선도 · 교육하여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와 같은 가해학생에 대해서도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는 학생임을 감안하여 최대한 교육적인 방법으로 선도할 책무가 있다. ② 원고가 행한 학교폭력과 피해학생이 입은 신체적 · 정신적 피해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으나, 당시 원고가 아직 사리분별이 미숙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는바 원고가 교정이 불가능한 학생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가 적절한 방법으로 원고를 교육하고 선도해 나간다면 원고가 성숙한 인격을 갖춘 학생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③ 원고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고, 원고의 부모도 원고를 잘 지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피해학생의 부모도 원고가 피해학생과 친구로서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④ 이 사건 처분은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이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 규정하고 있는 9가지 조치 중 두 번째로 무거운 조치로서 의무교육과정에서는 가장 무거운 조치인데, 위 조항은 그보다 가벼운 조치로 제7호의 학급교체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조치를 하더라도 가해학생인 원고를 선도하고 교육하고자 하는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원고는 출석정지 5일의 조치를 받았고 그에 따라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3항 소정의 교육감이 정한 기관에서 특별교육 40시간도 이수하였다. 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에 의한 판단 점수에 관하여 원고는 18점, A는 17점, B는 19점이었는데, 원고와 위 점수가 비슷하거나 원고보다 위 점수가 더 높은 A, B는 최초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전학 조치를 받았다가 재심절차에서 학급교체 조치로 감경되었는바, A, B와의 조치상의 형평이 고려되어야 한다. 다.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6957 전학처분취소청구의 소 사실관계 ① 원고는 A, B와 함께 2015. 7. 4. 20:45경 ○○고등학교 2층 식당 앞 파라솔에 앉아 있었고, 피해학생은 그 옆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피해학생이 자신들 옆에서 줄넘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원고는 ‘줄넘기 잘한다’며 비꼬듯 말했고, 이에 피해학생은 원고에게 ‘왜 지랄이야.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하였다. 그 후 원고가 피해학생의 팔을 붙잡자 피해학생이 팔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서로 넘어졌고, 원고가 넘어진 피해학생의 몸 위로 올라가 주먹으로 피해학생의 얼굴을 폭행하여 피해학생에게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폐쇄성 비골 골절, 기타 머리 부분의 열린 상처 등을 가하였다. ② 주위에 있던 학생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였고, 원고와 피해학생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원고 측은 피해학생 측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자 피해학생을 모욕・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다. ③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2015. 9. 30. 피해학생이 ‘양손으로 원고를 밀어 바닥으로 넘어뜨려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좌측 슬관절부 타박상 및 열상 등을 가하였다’는 혐의사실에 대하여 증거불충분하여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왜 지랄이야, 돼지새끼”라고 욕설하여 원고를 공연히 모욕하였다는 피의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하였고, 원고가 피해학생에게 상해를 가하였다는 피의사실에 대하여 서울가정법원에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하였다. ④ 이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원고에게 전학처분이 내려졌다. 판단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처분이 원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①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려는 「학교폭력예방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할 때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정한 대처가 불가피하다. ② 이 사건 학교폭력은 줄넘기를 하고 있던 피해학생에게 원고가 시비를 건 것이 발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싸움에 그치지 않고 폭력으로 나아갔으며, 쓰러져 있는 피해학생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여 피해학생의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찢어져 흉터가 남게 되는 중한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원고와 원고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격학생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고 피해자를 고소하는 등 현명하지 못한 비교육적 · 감정적 대처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③ 더욱이 원고는 이 사건 학교폭력 직전에도 체육관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하였다가 선도위원회로부터 사회봉사 5일의 처분을 받아 그 처분이행이 예정된 상태였음에도 근신하지 않고 이 사건 학교폭력을 일으켰다. ④ 이 사건 학교폭력 이후에도 원고와 피해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는 상태이고, ○○고등학교의 건물구조 상 같은 학년의 교실이 한 층에 배치되어 있어 원고와 피해자를 격리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학 조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징계 전학은 문제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냄으로써 본교의 내부질서 유지, 면학분위기 조성, 엄격한 생활지도를 위한 손쉬운 수단이다. 하지만 해당 학생을 받는 학교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다시 전학이 반복되는 폐단을 낳는다. 징계 전학은 결국 학교 전체로 볼 때는 제로섬 게임이며 대증적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선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1, 징계 전학은 최후의 수단으로 불기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징계 전학이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학교에 돌아갈 것이다.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같아 보이지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고, 부자와 빈자의 삶은 디킨스의 표현처럼 믿을 수 없이 다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윤리적 정초에도 흑인과 백인의 갈등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COVID-19 시대를 맞아 21세기 경제의 패러다임으로 간주되었던 아웃소싱, 공유경제, 경제블록 등의 사회체제 대신 각자도생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처럼 보인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 단절되는 것처럼 보이고, 서로를 이해하기에 물리적 공간 자체가 부족해지는 인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서로를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 없이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이 정보전달 수준을 넘어서 진정한 교육이 되려면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사랑’을 표현한 여류시인, 사포 공감(sympathein)은 같은 것을 겪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서로가 온전히 같은 것을 겪을 수는 없다.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라는 종의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상이하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온전히 여자를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여자가 남자보다 더 사내다움을 헤아릴 수 있다. 사포(Sappho)는 여류 시인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제한되어 있던 시대에 여성의 작품이 남아있는 것은 당대부터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사포는 사랑을 주제로 많은 시를 남겼다. 사랑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언제 어느 때나 그의 시를 읽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산속 떡갈나무를 휘몰아치는 / 폭풍처럼 사랑은 / 내 마음을 흔들어 놓네. - 사포, 사랑의 폭풍 사포의 감정에 가슴이 울리는 경험을 부정하는 것은 어색하다. 남자라고 해서 여자의 시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여자라 해서 남자의 노래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은 남자의 내면에는 여성성이 있고 여자의 내면에는 남성성이 있다.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남자가 적극적이고 여자가 소극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생물학적 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나는 아름다운 처녀를 보며 말했지. 네가 늙으면 / 우리 젊어 함께 지낸 그 화려했던 많은 날들을 / 기억할 수 있을까? (중략) - 사포, 이별 사포는 레스보스(Lesbos)섬에서 살았고, 동성 여인들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성에 따라 달라질 것처럼 느껴지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음을 사포는 보여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겪어봐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통찰력과 지혜가 드러나기도 하고, 아이들의 무심함이 어른들의 복잡한 생각을 넘어서기도 한다. (중략) 키프리스여, / 고통의 늪에 빠진 저를 보시고 구해줄 수 있다면 / 제게 말하십시오. 망설이지 말고. 제가 사랑을 위해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 사포, 아프로디테의 송가 사포는 서정의 방식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보여준다. 그것은 철학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칼카스나 테이레시아스와 같은 예언자의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사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전한다. 사포의 시는 단순히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치부될 것은 아니다. 시인의 재주는 읽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감정을 끄집어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플라톤이 사포를 10번째 뮤즈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촌철살인의 한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낸 아르킬로코스 사포가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면, 아르킬로코스는 촌철살인의 한방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낸다. 평범한 군인이자 시인이었던 아르킬로코스는 귀족들의 세계관을 조롱하고, 자신에게 파혼의 모욕을 줬던 귀족 리캄베스를 시를 써서 복수한다. 아르킬로코스에게는 호메로스 헤시오도스가 보여줬던 영웅 중심의 세계관도 보이지 않는다. (중략) 잘 가져가라 해. / 다시 더 좋은 것을 구하면 되지 뭐. - 아르킬로코스, 방패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투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전투를 떠나는 아들들에게 ‘차라리 방패에 누워서 돌아오라’고 말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르킬로코스는 고대인들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의 모습이 근대인들과 의외로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죽고 나면, 어떤 사람도 / 주변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얻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는 동안 /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과 호의를 주고받을 뿐이다. 죽은 자는 가장 나쁜 것을 받을 뿐이다. - 아르킬로코스, 죽음 이후 명예는 기본적으로 평판(doxa)이다. 그 평판은 평판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전승해서 내려주어야 하는 것이니, 실제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 이 평판은 사람들이 공통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전승해야 유지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평판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삶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내 마음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일 뿐이다. 오, 가슴이여, 나의 가슴이여, 감당할 수 없는 불행으로 심하게 상처 입었구나. 어서 일어나 너의 적들을 똑바로 보고 싸워라. 꿋꿋하게 서서 너를 둘러싼 그들을 맹렬하게 쫓아 보내라. 승리한다 해도 너무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말고 패배한다 해도 집안에 틀어박혀 비탄에 빠지지 마라. 행운에서 얻는 기쁨, 고통에서 얻는 슬픔에 중용을 지켜라. - 아르킬로코스, 중용 인간의 삶에서 과연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부와 명예는 대표적인 기준이 되지만, 그것 또한 삶에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아르킬로코스는 생존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를 봐서는 또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는가.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을 가장 훌륭한 교육으로 삼아야 하는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 아르킬로코스, 시선 금이 넘치는 기게스 왕의 인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네. 신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 왕이 가진 위대함을 열망하지도 않네. 그 모든 것들은 나의 시야 바깥 멀리 있네. - 아르킬로코스, 나의 관심 부와 명예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부와 명예에 연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외적조건이 내 삶과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다. 외적조건은 분명 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외적조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 아르킬로코스의 호기로움은 돈이나 명예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 그리고 애정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서 온라인에 의존하는 교육환경의 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면수업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교사들과는 달리 학생들은 훨씬 더 빠르게 온라인에 의존하고, 오프라인의 변화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여러 이유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접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정적 감성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거리두기를 극복하고 같은 길을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온라인 매체가 교육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다면, 서정시는 교육공간의 심리적 거리를 회복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노아의 스마트폰 (디나 알렉산더 지음, 신수진 옮김, 나무야 펴냄, 80쪽, 1만3000원)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인터넷에서의 ‘나’와 실생활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 생일선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 한 아이의 일상과 어느 날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디지털 시민’이 된다는 것의 참뜻을 전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놀고 창조하고 상상할 권리가 있어요! (알랭 세레 지음, 오렐리아 프롱티 그림, 이경혜 옮김, 고래이야기 펴냄, 44쪽, 1만3000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아이로서 누릴 권리를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책.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가입한 UN아동권리협약의 주요 내용을 담았으며, 그 권리들 하나하나가 아이들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감동 깊게 전달한다.
카페, 공장 (이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16쪽, 1만3000원)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우연히 버려진 공장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된 네 소녀가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이상과 한계를 오가면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려낸 장편 소설.
십 대를 위한 쓰담쓰담 마음 카페 (김은재 지음, 사계절 펴냄, 296쪽, 1만4800원) 현직 교사로 청소년의 ‘진로, 공부, 독서, 관계, 연애, 자존감’을 주제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십 대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따뜻한 힐링과 시원한 코칭을 담았다.
지금까지 이런 수학은 없었다 (이성진 지음, 해나무 펴냄, 276쪽, 1만5000원) 한때 ‘수포자’였던 현직 수학교사가 10년에 걸쳐 발견한 중학 수학의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한 책.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풀이를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국제 바칼로레아 IB가 답이다 (김나윤 · 강유경 지음, 라온북 펴냄, 267쪽, 1만5000원) 최근 국내에 관심을 끌고 있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의 장점은 무엇일까? 해외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IB 교육과정의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송은주 지음, 김영사 펴냄, 332쪽, 1만5000원) 10년 차 초등교사인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과 후배교사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등 앞으로 30년 이상을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 꼭 생각해보아야 할 고민이 담겨 있다.
행복한 교사가 세상을 바꾼다 (틱낫한 · 캐서린 위어 지음, 정윤희 옮김, 해냄 펴냄, 436쪽, 2만2800원) ‘마음다함(mindfulness)’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이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실 속 명상 안내서를 소개한다. 교사가 자기조절을 통해 교실 속에서 학생들이 보다 행복하게 몰입하며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남평문씨 삼우당 문익점 선생을 찾아 경남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도천서원을 찾았다. 1351년 왕위에 오른 제31대 고려 공민왕은 고려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개혁정치를 실시했다. 원나라 앞잡이로 고려 왕실을 괴롭히던 신하들을 내치고, 고려 땅의 쌍성총관부도 폐지했다. 그러자 원나라는 공민왕을 폐하고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왕으로 임명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외교사절단을 보내 자신의 개혁정치를 설명하며, 고려왕으로 복위를 꾀했다. 문익점이 가져온 ‘밭에 피어난 백설 같은 꽃’ 문익점 선생은 35살(1363)에 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원나라에 갔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 외교사절단에게 덕흥군의 명령을 따르고, 충성할 것을 명령했다. 그해 덕흥군은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였으나, 크게 패하여 원나라로 쫓겨 갔다. 고려에 돌아온 문익점 선생은 이런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조선 성종 때 남효온이 쓴 목면기에는 ‘원나라 사신으로 간 문익점은 덕흥군의 미움을 받아 중국의 남쪽 걸남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3년이나 떠돌 때, 밭에서 백설 같은 꽃을 발견했다. 이것이 옷감을 만드는 면화임을 알고 붓두껍 속에 씨앗 세 개를 지니고 왔다’고 기록했다. 조선 태조실록에는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면화를 보고 씨앗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문익점은 이듬해 고향인 산청으로 돌아와 장인 정천익에게 면화 씨앗 5개를 주어 기르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네 그루가 죽고 한 그루만 살아 열매를 맺었다. 이듬해 다시 심는 등 3년간의 노력 끝에 면화재배에 성공했다. 그러나 면화에서 씨를 빼고, 실 뽑는 방법을 몰라서 궁리할 때 원나라 스님 홍원의 도움으로 씨를 빼는 씨아와 실을 뽑는 물레 만드는 법을 배워 옷감을 짤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전국에서 면화를 재배하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세종대왕은 ‘문익점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면화 종자와 목면업 보급으로 모든 백성이 솜 넣은 옷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면화재배 기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는 조선 백성들의 의생활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였다. 솜을 넣은 옷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 일은 이전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로 의복문화의 일대 혁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급격한 생산량 증가로 조선은 그 무렵부터 일본에 면화제품을 계속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문익점을 칭송했다. 첫 면화재배에 성공한 ‘산청목면시배유지’ 문익점 선생은 고향 산청에 정자를 짓고, 삼우당 현판을 걸었다. 나라의 힘이 부족함과 성리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음과 자신의 학문이 부족함 등 세 가지를 걱정한다는 뜻이다. 문익점 선생이 처음 면화재배에 성공한 단성면 사월리 산청목면시배유지(山淸木棉始培遺址)에서는 지금도 매년 면화를 재배하고 있다. 산청목면시배유지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東溟開國幾千秋 衣被生民自有田 (동명개국기천추 의피생민자유전) 可惜文公襄底物 飜成泉貨長繆悠 (가석문공양저물 번성천화장무유) 忠臣孝子果何耶 不見先生只觀花 (충신효자과하야 불견선생지관화) 衣是木棉綿不絶 朝鮮億載富民家 (의시목면면부절 조선억재부민가) 충신과 효자가 어찌 아니 나올까? 선생을 뵙지 못했으나 마치 꽃 보는 것 같네. 옷을 짜는 면화는 면면히 끊어짐이 없어 조선의 긴 세월 내내 큰 부자가 될 것이라네. 면화를 처음 심은 것과 관련하여 문익점 선생의 남평문씨 문중과 장인 정천익의 진주정씨 문중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 남평문씨 문중에서는 옛날 해설판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 문화재청과 지루한 행정소송을 거듭하였고, 현재의 해설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진주정씨 문중과 생긴 갈등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의 옛 해설판과 현재의 해설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문화재청의 옛 해설판 : ‘고려 말 공민왕 때 문익점이 면화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35살(1363) 때, 원나라에 가는 사신의 일원으로 갔다가 원나라 관리의 눈을 피해 붓대에 면화씨를 넣어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 뒤 이곳에서 처음 면화를 재배하여 국민 생활과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 현재의 해설판 :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35살(1363) 때,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왔다. 그 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했다. 면화로부터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존경하는 마음을 보인다’는 의미의 시경당 문익점 선생을 모시는 도천서원(道川書院)에 들어서면 존경하는 마음을 보인다는 시경당(示敬堂)과 마주한다. 시경당에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배우는 집이라는 취정당(就正堂), 공부하는 곳이라는 학이재(學而齋), 문익점 선생을 사모한다는 앙지헌(仰止軒) 등의 현판과 함께 특이하게도 각기 다른 서체의 주련을 걸었다. 詆斥異湍 倡明正學(저척이단 창명정학) 大節蘇卿似 偉功后稷同(대절소경사 위공후직동) 注蘭佩於釰南扶持宗社(주난패어걸남부지종사) 播綿種於海外衣被生靈(파면종어해외의피생령) 見逐南荒艱苦三秋(견축남황간고삼추) 節義巍聳不願偩軀(절의외용불원부구) 紫陽徴眞學 又得断誦中(자양징진학 우득단송중) 정통에서 어긋나는 것을 꾸짖고 성리학을 분명하게 나타내는구나. 굳고 곧음은 한나라 소무 같고 공적은 후직 같네. 걸남에 귀양 가서도 고려를 근심하여 종묘사직을 지켰고 우리나라에 면화씨를 퍼뜨려서 백성에게 옷을 입혔구나. 황량한 남녘으로 쫓겨가서 삼 년을 고생하였고 절개와 의리는 높이 솟았으나 자랑하지 않는구나. 성리학은 참 학문이라 하며 끊임없이 글을 외우는구나. 시경당 주련에 나오는 ‘소무’는 소무목양(蘇武牧羊)에서 나온 것으로 ‘소무가 양을 기른다’는 뜻이다. 소무는 한나라 사람으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혔다. 큰 움 속에 갇혀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나라의 신하로서 굳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흉노의 추장이 숫양 댓 마리를 주면서 말하였다. “이 양들이 새끼를 낳으면 너희 나라로 보내주마.” “어찌 숫양이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서 현재 몽골의 북쪽에 있는 얼음의 땅 바이칼 호수 근처로 귀양을 보냈다. 소무는 먹을 것이 없어 땅속을 파헤쳐 들쥐들이 모은 풀과 열매를 먹으며 19년을 살다 한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소무는 충직한 신하의 상징이 되었다. ‘후직’은 땅의 성질에 따라 알맞은 작물을 심어 수확량을 증대시킨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로 ‘농업의 신’으로 받들고 있다. ‘자양’은 성리학 체계를 완성한 송나라 주희를 이른다. ‘신안을 늘 생각한다’는 신안사재 시경당 뒤에 선생의 호를 딴 삼우사(三憂祠)가 있고, 선생의 고향인 이곳 신안을 늘 생각한다는 신안사재(新安思齋)가 자리하고 있다. 신안사재는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잠자리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있다. 臣事恭愍不貳其貞 焚書諫院言動天潢 (신사공민불이기정 분서간원언동천황) 正學倡明素復剛確 波頹見柱歲寒知栢 (정학창명소복강확 파퇴견주세한지백) 豊功難酬表以鐵券 嘉種始來解吾民慍 (풍공난수표이철권 가종시래해오민온) 고려 공민왕의 신하로서 충정을 바쳐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고 사간원 좌정언으로 책을 불사르고 임금의 옳고 그름을 깨우쳤네. 성리학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굳은 의지로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세상이 물결처럼 무너짐 보았으니 날씨가 추워야 잣나무 푸르름을 알겠네. 드높은 공적은 갚기 어려우나 공신록에 기록되었고 면화 씨앗을 처음으로 들여오니 우리 백성들의 근심을 풀어주었네. 동재와 서재에 걸린 주련 학생들의 기숙사인 서재와 글을 읽던 동재에도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는 주련이 걸려있다. 서재의 주련에 나오는 ‘화폐’는 무명이 우리나라에서 돈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 一介前朝諫大夫 衣民功與泰山高 (일개전조간대부 의민공여태산고) 歸來日飮杯三百 醉臥乾坤氣象豪 (귀래일음배삼백 취와건곤기상호) 고려 왕조 때 간의대부 벼슬을 하였고 백성에게 옷 입힌 공은 태산처럼 높구나. 이곳에 돌아와 날마다 삼백 잔의 술을 마시고 술 취해 자연 속에 누우니 그 모습 활달하구나. - 동재의 주련, 정여창 東溟開國幾千秋 衣被生民自有田 (동명개국기천추 의피생민자유전) 可惜文公囊底物 飜成泉貨長繆悠 (가석문공낭저물 번성천화장무유) 고려가 나라를 세운 지 얼마나 되었던가? 백성들이 옷과 이불을 자기 밭에서 생산한다네. 안타깝게도 문익점이 주머니 속에 넣어 온 면화 도리어 화폐로 사용하다니 늘 허망하구나. - 서재의 주련, 음애집
우크라이나 말로 11월이 ‘낙엽(Листопад ; 리스토빠드)’이란 걸 알았을 때, 너무 예쁜 말이라고 연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11월, ‘잎 떨어지는 달’에 우크라이나를 여행하고 있었고, 실제로 가는 곳마다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언어를 만든 사람은 시인이거나 감성을 지닌 국문학자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른 아침 커튼 사이로 우중충한 날씨가 들어왔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저녁에 떠나게 될 도시를 둘러봐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숙소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빛 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 이름은 우크라이나 위인 ‘쉐브첸코’의 이름을 붙였다. 노랗게 물든 쉐브첸코 공원을 거닐었다. 평일 오전이라 공원은 아주 한적했다. 이른 아침 공원에는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과 온종일 시간이 남아도는 어르신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주 빠른 걸음을 걸으며 공원을 촬영하기 바빴다. ‘이런 공원에도 유튜버가 존재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원 끄트머리를 향했다. 절벽 아래로 널찍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유럽에서 4번째로 긴 강으로 도시 이름과 같은 드니프로 강이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는 백수거나 근처 대학교에서 수업을 땡땡이치고 나와 공원을 담고 있는 유튜버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전화기는 매우 허술해 보이고, 가을 색이 바랜 공원은 조금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유튜브에 올려도 조회 수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걷다가 다시 청년을 만난 곳은 서커스 단원들이 연습 중인 곳이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 공원이다 보니 뭔가 눈요깃거리가 있으면 발길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세 번째 그를 만난 자리에서 말문을 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찍어요?” “처음 이 도시를 왔는데 다 신기하네요. 다 담아서 어머니 보여드리려고요. 제가 사는 곳은 좀 삭막하거든요.” “어디에서 왔어요?” “크리보이 록(Krivoy Rog)이라고 산업 도시예요” “삐뚤어진 뿔? 도시 이름이 참 희한하네요.” “왜 이름이 그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드니프로에 일하러 왔나요?” “아니요. 저는 어제 하리코프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에 여행 왔어요.” 여행이라는 말에 어이없어하는 청년의 표정을 보니 어제 새벽 기차를 타고 드니프로에 온 나 스스로가 좀 안쓰럽기도 했다. “음, 이 도시에 볼거리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당신도 나도 드니프로가 초면인데 나를 따라서 드니프로 탐험을 다녀볼래요?” “마침 잘됐네요. 내일까지 이 도시에서 뭘 할지 고민했거든요.” “내 이름은 콴(Quan)이라고 해요.” “저는 보그단입니다. 콴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보그단은 어쩌다 이 도시를 처음 왔어요?” “크리보이 록에서 공부하다가 취업과 군대 중 선택을 해야 했는데 운 좋게 취업이 됐어요. 군대 면제받을 길이 있어서 정밀 진단받으러 드니프로 국립병원에 왔어요.” 그가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현대, 기아, 쌍용뿐이었다. 보그단은 자동차 정비를 공부했고 첫 직업 또한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회사에 다니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진로를 잘 잡은 듯했다. 보행 중에 지나치는 자동차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자동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마구 쏟아냈다. 보그단을 위해 준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오전 목적지가 드니프로 자동차 박물관이었다. 평소에 교통시설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의 지식에 맞장구치며 꽤 먼 거리를 걸어갔다. 그에게는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다. 점점 박물관이 가까워지고 바깥에 주차된 오래된 자동차들이하나둘 보이기 시작하자 그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콴, 내가 자동차를 정말 좋아해요. 아주 고마워요!” 심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보그단이란 젊은 친구가 나타나서 나 또한 즐거웠고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다. 내가 다 뿌듯해서 한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문 6형제 집안에서 보그단은 차남이다. 쉬고 있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있음에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스무 살 답지 않은 청년이었다. 길에서 어르신을 돕고 엄마와 동갑인 나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참 바른 청년이란 것을 느꼈다.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점심은 한식당으로 정했다. 젓가락을 처음 잡아 본다는 그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르라는 건 큰 숙제 같아서 외국인이 잘 먹는 김밥과 잡채 그리고 비빔밥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연신 누군가와 메신저를 주고받길래 ‘혹시 엄마?’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엄마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섯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고 스무 살인 아들을 아직도 어린애처럼 대하신다고 한다. 집에서 드니프로까지 3시간 걸리는데 그의 엄마는 그 거리를 아들과 함께 와서 병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된다. 보그단은 군 면제를 받게 되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동안 뒷바라지해준 엄마와 누나에게 보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누나가 있는데 첫 월급을 받아서 무슨 선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누나에게 선물을 하지 않았나 보다. 일상 같았던 드니프로를 떠나야 할 시간. 보그단이 기차역까지 배웅해줬다. 기차에 오르기 전,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했다. 첫째는 군 면제를 받게 되길 바란다는 인사. 하지만 내심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는 1명의 군인이라도 절실한 게 아닐까 싶은 안타까움도 들었다. 두 번째는 다음 여행에서 그가 사는 크리보이 록을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 비록 공장 가득한 도시지만 분명 그 도시만이 가진 매력이 있을 것이다. 하루 여정이었지만 다분히 심심할 것 같았던 도시에서 인연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여행을 또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왔습니다. 4인 가구 100만 원입니다. 액수는 시도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특이한 것은 기부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정부의 예산 곳간)도 채우고, 또 ‘코로나19’라는 드라마 같은 상황에서 공동체의식 발현도 기대해봅니다. 기부의 경제학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격차’의 문제를 불러옵니다. ‘샤넬 클래식 미디엄 백’은 715만 원이었습니다. 며칠 전 846만 원이 됐습니다. 120만 원이 올랐습니다. 이 핸드백을 알뜰하게(?) 사려는 줄이 매장마다 길게 이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최악의 불경기라지만, 우리 주변에 715만 원짜리 핸드백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살짝 드러난 순간입니다. ‘기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기부를 ‘시장경제의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했습니다. 빌 게이츠 부부는 지금까지 30조 원이 넘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개발에도 큰 관심과 함께 수천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 빈손으로 떠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부자들에게 기부는 당연한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는 UN 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부한 겁니다. 이렇게 기부된 돈은 시장을 돌고 돌아 소비를 일으킵니다. 돈은 많이 유통될수록 모두를 부자로 만듭니다(중요!). 돈은 유통되면서 스스로를 증식합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마이클의 부인 세라는 시어머니 제시카에게 10만 원권 백화점상품권을 선물했다. 어머니 제시카는 그것을 큰며느리 앤에게 다시 줬다. 앤은 자신의 남편 빌에게 넥타이를 사라며 그 상품권을 선물했는데, 한 달 뒤 그 상품권은 동생 마이클의 지갑에서 발견됐다. 형 빌이 동생 마이클에게 선물한 것이다. 발행된 상품권은 10만 원권 1장인데, 3번 유통되면서 제시카의 가족들은 모두 40만 원의 효용을 체감했다. 만약 상품권이 화폐라면 본원통화는 10만 원이지만 시중 통화량은 이제 40만 원이 됐다. 시장에 풀린 돈은 이렇게 ‘거래’를 통해 부를 만들어냅니다. 정부가 시장에 재정을 공급하는 이유도 물론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시민 용팔 씨가 재난지원금을 받아 저축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은행에 잠깁니다. 제가 어릴 적 학교에서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때는 1)시중에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2)국민들이 돈을 벌어 은행에 저축을 하면 3)기업이 그 돈을 대출받아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경제가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넘칩니다. 10여 년 전까지 우리 기업들은 투자(I)한 돈이 저축(S)한 돈보다 많았습니다. 이제는 저축(S)이 투자(I)한 돈보다 많습니다. 그러니 용팔 씨가 저축을 더 한들 이 돈이 모두 기업으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은행창고에 잠겨버립니다. 저축보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기부보다 과세? 유럽은 기부보다 ‘과세’로 격차문제를 해결합니다. 개인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는 ‘기부’보다 시스템으로 부를 나누는 ‘과세’를 더 믿습니다. 유럽의 소득세율이 더 높은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작용합니다. 공통점은 과세에 우리만큼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금은 ‘비정한 세상을 넘어서는 위대하고 간단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2016년 3월 뉴욕에 사는 재벌 3~4세들이 쿠오모주지사(코로나19로 유명해진 바로 그!)에게 청원문을 보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욕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으며, 뉴욕주의 부실한 인프라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문제를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뉴욕의 일부 지역에서 아동의 빈곤율이 50%를 넘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오늘도 8만 명이 넘는 노숙 가족들이 뉴욕주 전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지금은 우리 뉴욕의 친구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할 때입니다.” 뉴욕주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지난 2009년에 공정과세(Tax Fairness)를 도입했습니다. 기본 소득세와 별도로 상위 0.1% 정도 되는 부자들에게 최고 8.8%의 세금을 추가로 걷는 일종의 백만장자세입니다(대신 그만큼 저소득층의 세금을 인하해주도록 설계됐다). 이 과세제도는 201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됐는데, 정작 그 세금을 내는 백만장자들이 이 과세제도를 연장해달라고 청원을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부자들의 품격’입니다. 그 청원문은 ‘우리는 세금을 더 내야하고, 더 낼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과세와 기부를 모두 실행해온 부자들도 많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 85%를 기부한다고 약속(the Giving Pledge)했고, 지금까지 28조 원 이상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2011년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직원들이 내는 소득세율이 최고 36%나 되는데, 자신처럼 자본투자(주가나 주식배당금 이익을 위한 투자)로 번 소득은 평균 17%만 과세가 된다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인상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격차문제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어집니다. 과세제도의 개선과 함께, 시장 참여자의 선한 의지 역시 중요합니다.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에 ‘기부’형식이 도입된 것도 같은 취지일 것입니다. 그 작은 움직임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공동체의식의 척도입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 빌 게이츠 등 전 세계 부자들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궁핍으로부터 벗어날(freedom from poverty)수록 소비가 늘어납니다.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회장이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내가 돈을 번다’며 재난지원금을 찬성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시대. 인류는 ‘과세와 기부’라는 신이 주신 발명품으로 이 위기를 또 극복해나갈 것입니다.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성석제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 열 번 이상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은 이 같은 문장들로 인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서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 이야기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렸다. 10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오빠가 찾아와 “개명천지에 이 무슨 썩어빠진 양반 놀음이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누이를 데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50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자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은 ‘여자는 자기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라고 표현했다. 협죽도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상록 관목이기 때문이다. ‘가시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실제로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 여자의 친정인 몽탄(전남 무안에 있는 면)에서 ‘백 리 길을 걸어’ 가시리에 도착했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 실재하는 마을이 아닌, 상징적인 장소인 것 같다.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은 새색시 같은 꽃, 협죽도 협죽도(夾竹桃)는 대나무잎 같이 생긴 잎, 복사꽃 같은 붉은 꽃을 가졌다고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잎 같다고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주로 붉은색으로 피고, 녹색 잎은 3개씩 돌려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이처럼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는 것일까. 협죽도는 비교적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편이고 공해에도 매우 강하다. 꽃도 오래가기 때문에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는 가로수로 쓸 만한 나무다.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협죽도를 분에 기르는 경우를 보았다. 어쩌다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협죽도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난을 당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000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는 2013년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200여 그루 등 협죽도 1,000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협죽도의 맹독성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제주도에 수학여행 온 학생이 협죽도 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썼다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다’는 내용이다. 2012년 KBS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협죽도를 독성이 강한 식물 1위로 소개하면서 협죽도는 제거해야 할 식물이라는 인식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협죽도에 유독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베어내야 할 정도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협죽도 가지를 젓가락으로 사용하다 사망했다는 것도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신문 등을 검색해보았으나 원문을 찾을 수 없었다. 전부 그런 보도가 있더라는 전언이었다. 상당수 식물학자는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치명적 맹독 성분 함유 …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 유독성 식물하면 떠오르는 것이 협죽도 다음으로 투구꽃이다. 꽃 모양이 로마 병정 투구를 닮은 투구꽃은 뿌리에 아코니틴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소량의 아코티닌은 진정 효과가 있지만, 과잉 섭취하면 입술 마비와 구토,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한 여성 무속인이 사망 보험금 28억 원을 타내려고 지인에게 협죽도와 투구꽃을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게 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무속인은 인터넷을 통해 협죽도와 투구꽃의 독성을 파악하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투구꽃과 함께 진짜 사약의 원료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천남성(天南星)이다. 천남성에는 옥살산 칼슘 성분이 들어 있어서 얼굴과 기도, 복부에 부종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호흡장애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은 마치 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독특하게 생긴 불염포 안에 있다. 생김새가 독특해서 한 번 보면 쉽게 잊기 어렵다. 가을에는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천남성은 상황에 따라 성(性)전환을 하는 식물이다. 꽃을 피울 무렵 뿌리에 남아있는 양분이 충분하면 암꽃, 그렇지 않으면 수꽃으로 피는 것이다. 팥꽃나무와 디기탈리스도 독성이 강한 식물이다. 팥꽃나무는 주로 남쪽과 서쪽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가지를 덮을 정도로 많은 꽃이 달린다. 팥과 비슷한 색깔의, 연한 보라색 꽃이 피는 데 향기도 좋다. 그러나 꽃에 호흡 억제와 경련을 일으키고 낙태를 유발하는 유독 성분이 들어 있다. 옛날에 임신한 여성들이 팥꽃나무꽃으로 낙태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서 나라에서 이 나무를 베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슬픈 사연을 가진 나무이기도 하다. 여름에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종 디기탈리스는 꽃 모양이 손가락(라틴어로 digitus) 같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식물도 과다 복용하면 중추신경 마비로 사망할 수 있는 유독 식물이다. 이밖에 흰독말풀, 미치광이풀, 은방울꽃, 동의나물 등도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식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독성 식물들도 소량을 적절하게 쓰면 약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인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 1번지 강남에 위치한 대청중학교는 학업성취도가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교육열이 높은 만큼 학부모 민원도 끊이지 않고, 학원과 비교당하기 일쑤다.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높을 법도 한데, 시대 흐름에 따른 교육변화에 물러섬이 없다. 최근엔 기존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을 탈피해, 학생의 창의성을 높이는 과정중심평가로의 연착륙에도 성공했다. 청출어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학생 뒤엔 더 우수한 교사가 있었다. 대청중학교의 새로운 도전 이야기를 들어본다. “답이 틀려도 과정이 올바르다면 옳은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평가다.” “노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서울대청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다. 1987년 개교한 대청중학교는 함께 성장하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실력 또한 출중해 명문 중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교다. 특히 2018년 백미원 교장이 부임한 이후, 학생·교사·학부모 3주체가 학교 교육활동에 대해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또한 교사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맞춤형 연수를 적극적으로 운영해 과정중심평가 도입과 창의적인 수업혁신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청중은 지난해 자유학기제 교육부 장관상과 진로교육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다. 아울러 과정중심평가 도입 등의 교육활동은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백 교장은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기쁨이 중요한 곳”이라며 “학생은 창의적 역량을 길러 세계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교사는 전문성 향상을 통해 수업혁신을 이뤄내며, 학부모는 신뢰를 통해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 77%가 만족한 온라인 수업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통해 개학을 맞이한 가운데, 대청중은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성공적인 온라인 수업을 이뤄냈다. 가장 먼저 매년 2월 진행하는 신학년 연수주제를 ‘구글 클래스룸’으로 정했다. 교사들에게 각 플랫폼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으며, 대부분 구글 클래스룸이 중장기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운영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전부터 영상편집 등 미래교육을 위한 연수에 적극적이었던 대청중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영상을 직접 제작했다. 토크쇼 형식으로 학생들이 흥미 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각 과목별 특성에 맞는 영상을 구성했다. 수업 중간에는 랜덤으로 퀴즈를 제시해 수업내용을 수시로 확인하도록 했다. 온라인 수업 전에는 ‘온라인 수업 이렇게 합니다’라는 OT를 진행해, 과제 제출 방법과 수업 듣는 방법 등을 영상으로 안내했다.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한 의견수렴도 빼놓지 않았다.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들은 자녀의 얼굴이 비치는 쌍방향 수업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수업은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보는 일방향으로, 출결과 수업내용 확인은 과제와 댓글을 통해 진행했다. 온라인 수업 후 일주일 뒤, 중간평가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를 분석하여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한 점도 차별성으로 손꼽힌다. 평가 결과, 학생 77%가 원격수업에 대체로 만족했다. 구글 클래스룸 접속도 원활했다고 평가했다. 수업 난이도 역시 보통 수준, 학습량도 절반 이상의 학생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학부모 만족도 역시 높았다. 한 학부모는 “자녀의 학습 정도를 알 수 있고, 언제든지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민주적 학교문화를 통한 수업혁신 백 교장이 학교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수업혁신’이었다. 창의적 민주시민으로 학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수업혁신이 가장 필요했다. 그는 부임 이후부터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수업컨설팅을 진행했다. 과목별로 수석교사를 초빙해 연수는 물론 토론을 통해 교수·학습방법과 평가방법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2월 신학년 집중준비연수와 수업공개를 통해 단계적으로 교사들이 수업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교사 수업나눔방 ‘on수방’을 운영해, 온라인상에서도 수업내용을 공유토록 했다. 교장과 교감은 교사들이 공개수업을 하면 항상 참관해, 수업자료에 대해 학생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화면 구성·내용·글씨색까지 세세하게 평가해 해당 교사에게 전달했다. 피드백을 들은 한 교사는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며 “한발 앞서서 좋은 연수를 듣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고 말했다. 백 교장은 “교사는 수업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민원이 줄고, 학생들도 따라올 것”이라며 “학교장은 전문성 지원을 위한 연수, 수업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정중심평가 도입으로 줄어든 사교육 대청중이 수업혁신을 통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은 물론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했으며, 교사들 역시 이에 동의했다. 물론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중간·기말고사 대신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방법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학교발전협의회를 5차에 걸쳐 진행했다. 구성원과의 협의를 통해 1학년 수학과 기술·가정, 2학년 영어와 한문, 3학년 기술·가정 등 5개 과목에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했다. 교사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교과별로 2~3명의 멘토단을 구성해 수시로 컨설팅을 받도록 했으며, 관련 예산을 편성해 원활한 운영을 지원했다. 또한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과목 교사들이 업무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수업시수를 감축하고, 전보시기에 해당 교과교사를 보충하기도 했다. 2019년 과정중심평가를 도입한 후 1학기 중간평가를 진행한 결과, 2학년 학생 64.7%가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돋보이는 평가결과는 사교육이 줄었다는 점이다. 학생 61.2%, 학부모 50% 정도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학원가에서도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토대로 익히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는 좋은 문제”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학부모의 높은 교육 신뢰도 대청중이 수업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배경에는 학부모 소통도 한몫했다.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부모들의 다양한 교육 민원을 교장이 나서서 해결한 것이다. 백 교장은 학년별, 보안관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4회에 걸쳐 수업공개와 학부모 간담회를 진행해, 학교 경영 방안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학교의 다양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전담 변호사를 채용하기도 하는 등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표출했으며, 학부모들에게 교육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백 교장은 “소통을 통해 학교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통해 민원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학년말 학교평가에서 학부모들은 창의적 경영, 민주적 학교경영, 학생참여, 의사소통, 학부모교육 참여 등에서 좋았다며 긍정적 평가를 남겼다. 또한 등·하교, 점심시간 교통안전지도 등을 담당하는 대청보안관, 시험감독 명예교사, 급식검수단, 급식모니터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백 교장은 지난해 교내에 마련된 메이커스페이스인 ‘강남 아올(our all)학교’를 더욱 활성화시켜, 학생들이 로봇·드론 등을 체험하며 혁신적인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한 노후화된 학교 인프라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선해 학생과 교사들의 수업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학생과 교사가 교육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줄 수 있도록 판단하고 지원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늘 공부하는 교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딴다 딴다 딴딴다~ 이렇게 전주가 네 번 나오면 다섯 번째 마디에서 들어가자.” “알았어, 박자가 헷갈리니까 하영이가 시작 큐를 줘.” “그럼 이때 컵을 내려놓고 손을 올리면 되는 거지?” “맞아, 근데 그냥 올리면 밋밋하니까 웨이브를 넣어볼까.” “오, 좋은데, 다시 시작하자. 하나, 둘, 셋, 넷~.” 해거름녘 찾은 서울선사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 초등교사 유튜버 ‘301room’의 정예멤버가 모였다. 오늘은 이들의 최대 히트작 ‘컵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촬영하는 날. 요즘 인기 있는 가수 비의 깡(GGANG)이 흘러나온다. 힙합 분위기를 내려는 듯 검정색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쓴 4명이 컵을 탁자에 딱딱거리며 손뼉으로 리듬을 탄다. 벌써 두 시간 째, 창밖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연습과 촬영이 반복된다. 한 주일의 피로가 몰려오는 금요일 저녁, 지칠 법도 한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자, 이제 녹화 들어간다”란 말이 떨어지자 4명이 호흡을 척척 맞춘다. 딴다 딴다 딴딴다~, 빠른 비트를 타고 경쾌하게 움직이던 컵들이 어느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와~ 성공이다.” 까르르 웃음보가 또 터졌다. 서울교대 14학번 동기 ... '학교극장' 등 유튜브 화제 최근 ‘컵타’를 비롯 ‘학교극장’, ‘정글에서 살아남기’, ‘부모님께 칭찬을 드려보았다’ 등 잇달아 히트작을 내면서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 ‘301room’. 서울교대 14학번 동기들로 교직 1~2년 차 새내기 교사들이 만들었다. 박지언(서울가주초), 김효진(서울선사초), 정윤지(서울용동초), 김하영 교사 등 모두 4명이 주인공. ‘301’은 대학시절 함께 생활했던 기숙사 방 번호. 그만큼 우정은 각별하다. “교대 다닐 때 가졌던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뭔가 더 즐거운 수업, 재미있는 교육,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리더를 맡고 있는 박지언 교사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에 유튜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갓 시작한 교직생활, 배울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301 멤버’들은 의기투합했다. 각본, 연기, 편집에 연출까지 1인 4~5역을 담당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주말도 잊었고, 밤샘작업도 일쑤였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없었다. 십시일반 갹출했지만, 장비구입조차 못할 형편.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무료제작 서비스를 전전했다. 그러다 달콤한 제안에 속아 돈을 떼일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갔다. 2월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제작한 유튜브 편수만 70여 건. 6월 현재 조회수는 2백만 건을 넘었고 구독자만 2,050명에 이른다. 화제작 ‘학교극장’은 코로나19로 교문이 닫힌 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의 일상을 날카롭고 재치있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교사의 하루를 다양한 에피소드에 담았다. 카메라가 들어간 곳은 긴급돌봄교실, 아이들과 음악에 맞춰 관광버스에서 본듯한 막춤을 신나게 춘다. 마스크를 쓴 탓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지만, 반응이 좋자 헉헉 대면서도 “또 출까?” 호기를 부려본다. 또 다른 교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뒤편 사물함을 옮기려 하지만 꿈쩍 않는다. ‘아빠를 불러야 하나, 선배교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끙끙대며 혼자 해낸다. 방역이 교사들의 주된 업무가 된지 이미 오래. 학생들 책상을 소독제가 담긴 스프레이로 하나하나 열심히 닦는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한 듯 “난 허리디스크 있는데…” 하더니 카메라렌즈에 스프레이를 촤악 뿌려버린다. 마스크 쓰기 교육하는 장면에선 ‘교사들이 왜 잔소리가 많은 줄 아시겠죠’라는 자막이 깔리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엔 온라인 음악 수업시간. 혼자 노래를 부르다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머쓱한 듯 큭큭 거린다. 코로나19에 교문은 닫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 교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교육당국이 던지는 수많은 말의 성찬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의 동영상이다. 어버이날 특집 ‘부모님께 칭찬…’ 편 뭉클 ‘정글에서 살아남기’도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았다. 코로나19로 야외체육활동이 금지되자 실내에서 손쉽게 하는 운동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한 작품. 뱃살로 고민하던 주인공이 동화 백설공주 속 마녀의 꼬임에 정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구리와 호랑이 등 동물 포즈를 따라하며 자연스레 운동하는 내용을 코믹하게 그렸다.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깜찍한 연기, 묘하게 빠져드는 내레이션, 초등생 눈높이에 딱 맞는 개구진 동작들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어버이날을 기념해 제작한 ‘부모님께 칭찬하기’는 철부지로만 여겼던 딸아이의 깊은 속내에 가슴 뭉클해진다. 주인공은 김효진 교사. 저녁밥상이 차려지자 맛있다며 엄마를 치켜세운다. 낯선 반응에 “평소에도 잘 먹으면서…”라는 말로 툭 받아넘기지만 싫지 않은 모습. 이때 지나가던 남동생이 팩폭(팩트폭격)을 던진다. “누나, 왜 그래.” 이후 화면은 모녀간 야간산책으로 이어지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엔딩 크래딧. ‘자, 이제는 영상을 본 여러분의 차례입니다’라는 자막에 잠시 먹먹해진다. 세계적 거장들의 명화를 코믹하게 재연한 ‘방구석 미술관’. 20대 교사들의 발칙한 재기가 넘쳐난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파이프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문 장면이,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는 토시를 본뜬 분홍 고무장갑이 압권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조지 로슨와 웨인 슬립’ 패러디에 출연한 정윤지 교사는 옷핀으로 치마를 말아 올려 바지를 묘사했다. 황당한 장면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를 기획한 정윤지 교사는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직접 미술작품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다. ‘기발하다’, ‘미술시간에 아이들과 해봤더니 너무 재미있어하더라’, ‘디테일한 묘사가 놀랍다’,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싶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선배교사들 도움 큰 힘 ...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초임교사 중 일부는 임용 직후 일종의 번 아웃 현상을 겪는다. 임용시험 통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탓에 급격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하지만 ‘301room’ 교사들에겐 먼 이야기. 이들은 왜 치열한 도전을 시작했고 멈추지 않는 것일까? 김하영 교사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교사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죠. 그래서 배움을 즐기는 교사, 그 즐거움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찾아오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유튜브는 그에게 즐거움의 원천인 셈이다. 선배교사들에게 동영상 수업자료 연수까지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효진 교사. 그는 “처음 해보는 영상편집에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지금은 질적인 수준을 걱정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모방하고 답습하기보다 스스로 창조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지언 교사는 “코로나19 이후 교육현장에 요구되는 새로운 변화를 미리 체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의 활동을 믿고 격려해준 교장선생님을 비롯 선배교사들께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내기 교사들의 분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그분들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4명의 교사. 오늘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살아간다. 남들이 보기에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삶이지만, 들여다보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들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득 오늘 만남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고, 솔직하고, 기발한, 그러면서도 교사다운 품격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 믿고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다. 기특한 마음에 물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뭐에요?” 속사포처럼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유튜브 구독 많이 눌러 주세요.” “코로나 빨리 끝나 아이들과 맘껏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가수 비랑 콜라보 하고 싶어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