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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우리 역사에서 외면할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어린 새’의 파닥거림으로 좇아가는 글을 읽으며 자꾸만 아려왔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읽는 내내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작가는 그 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 다한 말을 접신하듯 쏟아 냅니다. 그 아이, 그 소년은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에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동그란 상고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평안이와 꿈이 같을 수 도 있고, 행정공무원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우등생 석현와 비슷한 성격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예은이처럼 친구를 좋아하고 성찬이처럼 형을 자랑스러워하며 건호처럼 동생을 잘 돌볼 수 있었겠지요. 또 재원이처럼 친구들이 믿음직하게 여기는 아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우리반 학생들과 같은 나이입니다. 그 아이는 지금쯤 시작하는 학기말고사 때문에 힘들어하고 시험이 끝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영화관도 가야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소년의 삶입니다. 그러나 오월의 광주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 그 무섭고 암울한 기억들 소환하여 이 소설은 소년의 눈으로 소년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저는 ‘부마 민주 항쟁’의 도시 마산에서 80년대 대학을 다녔습니다.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교정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무성하였고, 정문 앞은 군데군데 화염병이 터졌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학생회에서 몰래 붙여둔 광주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들은 몰래 소리죽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저와 다르게 누군가는 독재 타도를 외치며 데모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저는 신내림 같은 한강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몇 방울의 눈물이 흐릅니다. 다시 ‘소년’이라는 말은 제 가슴에 생채기를 냅니다. 천지에 흰 안개꽃이 피어 더 서러운 가을 아침입니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금당초 마카롱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생태감수성은 어떻게 생겨날까? 생태감수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태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의 보호자들은 주말이면 이름난 수목원이나 제철인 계곡으로, 갯벌로 체험을 간다. 잘 정돈된 식물들, 멋진 경치, 다양한 체험부스에 다녀오면 아이들의 생태감수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이다. 하지만 일회적인 체험의 축적으로 과연 아이들의 생태감수성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하루의 경험으로, 일회적 체험으로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어느 수목원의 이름난 나무보다 매일 보는 학교 안 나무가 아이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관계를 맺는 시간 속에서 생태 감수성이 자라날 수 있다. 여름날 버찌의 그 달콤시큰한 맛을 느끼고, 낙엽이 지는 나무 밑에서 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내년의 꽃눈과 잎눈을 관찰하고, 운동장에 눈을 맞는 나무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윽고 피어나는 벚꽃 한 송이를 보는 것은 수만 송이의 벚꽃이 피는 거리를 걷는 것 보다 의미 있다. 마카롱은 금당초등학교 학생 자율동아리의 이름이다. 막 하는 농사 동아리를 줄여 마카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내가 직접 먹거리를 지어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는 매력에 몇몇 아이들이 제안했고 6학년, 4학년 일부 아이들이 이 자율동아리에 합류했다. 관리가 잘된 밭이 있다면 편했겠지만, 아이들은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직 땅이 굳은 3월의 공터에서 아이들의 농사가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는 집의 아이도, 매일 논밭길을 등하교 하는 아이도 직접 농사를 짓기는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노동하는 모든 분들이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농사를 매개로 학내의 많은 어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제공되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테블릿PC는 아이들이 막힐 때 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교과서였다. 선생님 우리 콩쥐가 된 것 같아요. 땅의 돌을 골라내고 흙을 뒤엎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흙이 지저분하다며 만지기 꺼려하던 아이도 어느새 흙투성이가 되었다. “밭 보니까 어떤 기분이 드니?” “선생님 우리가 이렇게 밭을 가니까 콩쥐 같아요. 콩쥐가 어떤 기분인지 알겠어요.” “우리 최저시급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줄게. 감자 두 알.” “아뇨 그거 말구요. 배춧잎으로 주세요.” “그래. 옥수수 따고 나면 배추도 심자.” “에이~ 뭐에요.” 뒤쪽 고랑에 옥수수를 심고 앞 고랑에 감자를 심었다. 농사일을 하며 배움의 폭도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절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언제 비가 오나 기다리게 되었다. 달력의 의미와 식물의 발아조건을 알게 된 것은 덤이었다. 여주시장 장날에 맞춰 부모님 심부름을 하며 모은 500원 1000원으로 고추모종과 토마토모종을 사왔다. 교실에서 우유팩에 소중히 키운 목화씨앗도 옮겨 심을 만큼 자랐다. 날이 풀리자 주변 논에서 퍼온 흙으로 커다란 대야에 모내기도 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니 단오가 되었다. 올해 금당초에서는 단오 행사를 지냈다. 농사 동아리를 했던 아이들에게 단오가 어떤 의미인지, 우리 조상들이 왜 이 때 신나게 놀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함께 일하고 바쁜 일이 끝나면 쉬는 것. 고된(?) 농사일 후에 음식들을 해먹고 창포물에 머리감는 경험의 즐거움은 아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농사에서 배운 가치들 아이들이 하지를 기다리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금당초 마카롱 동아리 친구들은 하지를 손꼽아 기다렸다. 감자를 수확해도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심은 감자조각에서 손바닥보다 더 큰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감자 농사의 수확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왜 이렇게 수확량이 낮은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조량과 수확시기에서 단서를 찾았고 비료가 부족한 것, 감자밭에 동아리 구성원들이 신경을 덜 쓴 것 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한 번의 실패는 아이들을 탐구하게 만들고 모여서 의논하게 만들었다. 2015 초등 핵심역량인 의사소통 역량, 지식정보 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공동체 역량을 달성하기 위해 억지로 문제 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생활에서 문제를 찾아냈고 해결하는 탐구 과정을 거쳤다. 자기키보다 더 크게 자란 옥수수를 보며 아이들은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옥수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분들께 나눠 드려야 할까? 기나긴 토론 끝에 일부는 요리실습 때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옥수수 요리를 만들어 보고, 일부는 간단하게 쪄서 농사에 도움을 준 주변 분들과 동생들에게 나누어주기로 결정했다. 다행이 옥수수 농사는 잘 되어 배부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 2학기가 되자 자연스럽게 묵혀두었던 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 요즘 배추가 비싸다던데요?” “그럼 우리 배추 심어서 김장하고 수육 해먹으면 되겠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의 말에 다른 친구들의 눈이 반짝인다. 김장하기 위해 필요한 채소들이 무엇인지, 어떤 품종을 언제 심어야 하는지 교사가 제시하지 않아도 이제는 알아서 척척 찾아보고 결정한다. 자기 몫의 배추와 무를 심고 남는 공간에는 쪽파도 심었다. 1학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비료도 구입했다. 금당초등학교는 여주의 혁신학교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 활동을 위해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학교이다. 혁신학교 예산 중 학생 동아리 지원 비용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날 무렵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선생님, 배추에 벌레가 있어요.” “약 치면 되잖아.” “그래도 그럼 벌레가 너무 불쌍한데.” “그럼 벌레가 다 먹게 두냐?” “벌레 몫을 조금 남겨두는 건 어떨까?” 농사를 지으며 벌레들에게도 애정이 생긴 모양이다. 금당초 곤충장에서 장수풍뎅이를 키우면서, 누에 애벌레가 고치를 맺고 나방이 될 때 까지 키우면서, 어른 손가락만한 박각시나방 애벌레를 주어와 교실에서 키우면서 벌레들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되었고 많이 알게 되었다. 관심과 지식은 애정으로 이어지나보다. 하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입동을 기다리는 아이들, 하지만 시간이 더 늦어지면 김장하는 아이들의 손이 추워질까 하여 이른 배추수확과 김장을 하게 되었다. 이번 김장은 농사동아리 학생들뿐만 아니라 금당초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작은 축제처럼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다. 1년 동안 농사짓느라 고생한 아이들을 위해 김경순 교장선생님은 김치와 함께 먹을 고기도 구매해 주셨다. 배추를 따고 무를 다듬고 계량컵으로 재가며 배추를 절였다. 양념 속을 만들 때는 김장의 달인인 선생님들의 도움도 받았다. 적당히 넣으면 된다는 말이 아직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아이들이지만 김장만 하면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도, 땀 뻘뻘 흘리며 배추를 짜던 아빠의 모습도 이제는 모두 이해된다는 아이들이다. 평소 급식을 먹을 땐 항상 김치를 남기던 아이도 어쩐 일인지 꿀떡꿀떡 받아먹는다. 추수가 끝나고 이제는 조금 황량해 진 밭. 다음 해 동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 밀을 심어놓고 졸업하자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진다. “밭 보니까 어떤 기분이 드니?” 아이들 손바닥만 한 몇 개의 고랑은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남아, 다음 아이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 아이들이 심은 것 보다 몇 배의 의미들을 베풀 준비를 하며.
서령고는11월 4일(월) 오후 일곱 시 송파수련관 교직원식당에서 ‘학부모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30여 명의 학부모님들이 참석해 ‘소통과 공감’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다. 김영화 교장은 학교 경영 중점 사항으로 수업의 내실화, 학생의 기본생활 습관 정착(교복 입기, 등교시간 준수), 자존감 향상, 적극적인 신입생 유치, 변화하고 개혁하는 학교 추구를 강조했다. 또한 학교 개선 및 지향점으로는 학부모가 학교의 홍보대사가 되어줄 것과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학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아울러 최근 들어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교가 너무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교사와 담임 선생님들께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학교, 학생,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학교와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학교에 대한 건의사항으로는 정시확대로 인한 대비책 마련, 야간자율학습 후 교통 안전문제, 기숙사 시설 개선, 진로지도의 다양화 등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김영화 교장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학교 경영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는 우리 학생들의 미래 교육을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협력해가며 책임지고, 소통하기 위한 자리로, 본교는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회를 마련해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학습부진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 왔다. 필요한 보정자료를 만들어 보급하고, 담임교사 책임제라는 이름으로 지도를 강화하기도 했다. 2008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의 전수평가 전환으로 2009년부터는 더 적극적인 정책이 시행됐다. 학습부진학생을 지도·지원하는 단위학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인 ‘학력향상형 창의경영학교’가 운영되기 시작해 2014년까지 지속됐다.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실제 기초학력미달률의 감소와 교사들의 기초학력 지원에 대한 인식 변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학교로 찾아가는 서비스 다만, 예산과 맞물려 많은 프로그램이 양산되다보니 학생과 교사 모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고, 발표되는 기초학력미달률 감소에 비해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다음해 다시 기초학력 미달이 되는 리셋(reset) 현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담당교사의 업무 과중과 학생들이 다수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 인해 교육복지 등 학교 여타 사업과 중복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정서·행동 측면에서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교사들이 지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학습부진학생은 학습뿐 아니라 정서, 행동, 환경 등 비학습적 요인을 포함한 복합적 원인을 지닌 경우가 많다. 2012년부터는 학교의 역량만으로 지도·지원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한 학교 밖 지원체제로 ‘학습종합클리닉센터’가 만들어졌다. 센터는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산하 조직으로 구성돼 올해 12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센터에서는 학습상담사, 학습코칭단을 중심으로 학생의 심리·정서 지원 및 학습코칭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로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 형태를 제공하고 학교의 노력만으로 어려운 학생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다. 2014년부터 ‘학력향상형 창의경영학교’ 사업이 일몰되고 학교구성원이 팀을 구성해 소수의 집중해야 할 학생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두드림학교’ 사업이 시작됐다. 기존의 대단위, 프로그램 사업 중심에서 소수의 학생에 대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 구성원이 가능한 많이 참여한다는 점이 두드림학교의 특징다. 두드림학교는 약 4000여 개 초·중등학교에서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학생을 중심으로 한 소수 집중 지원은 개별 학생들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습보조 인턴교사 사업도 운영됐다. 학습보조 인턴교사는 방과 후 혹은 수업 중 학생을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사업이 일몰됐지만, 일부 시·도는 자체 예산으로 수업 중·후에 학습부진학생 지원을 위한 별도 인력을 채용하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방과후보다는 수업 중에 학생들 대부분은 방과후에 별도로 남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건상 대부분 학습, 비학습 프로그램이 방과후에 진행돼 학습부진학생의 참여는 저조하고, 교사들 역시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이런 방과 후 지도의 어려움과 효과성 문제로 인해 2018년부터는 수업 내 맞춤형 교육으로 ‘기초학력 보장 맞춤형 선도·시범학교’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규 수업시간에 협력 강사(보조교사) 배치를 통해 대상 학생을 옆에서 바로바로 지원하는 맞춤식 지원으로 주로 예방적 관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의 국어, 수학 교과지도에 보조교사를 많이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43개 학교에서 올해 74개 학교로 운영학교가 증가하는 추세다. 당초 수업공개의 부담, 대상 학생의 낙인 문제 등의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경험한 교사나 학교 중심으로 효과성을 공유하면서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학습부진학생 지원을 위한 기초학력 향상 지원 정책은 2013년 초등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폐지를 비롯해 교육내외적인 변화를 겪기도 했다. 앞으로는 학습부진의 수준과 원인 파악을 위한 선별과 진단, 학부모 동의, 기초학력의 개념 정립 등이 기초학력 향상 지원 정책의 방향 설정에 과제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배웠으면(學), 익혀야(習)한다. ‘습’의 소리는 무언가를 들이마실 때 나는 소리 ‘스읍’과 비슷하다. 배웠으면 들이마셔야 하는데, 배움이 느린 학생들은 안 그래도 만만치 않은 ‘학’을 ‘학학학’하느라 ‘습’은 시도도 못한다. ‘습’을 하지 못했으니, 오늘 분명 배웠으나 내일 새롭게 모른다. 배움의 환경은 친절해야 學에는 필요한 조건이 있다. 첫째, 궁금함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학습부진학생 대부분은 표면적으로는 딱히 궁금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깊게 이야기하다보면 호기심이 훼손당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대개는 부모건 교사건 궁금해 했던 순간에 주변에서 보여준 반응이 상처로 기억되면서 궁금함을 감추기 시작한다. 궁금함을 표현할 때 당연한 것을 묻는다고 면박을 받으면 궁금하다는 것이 창피해지고, 한번 숨기기 시작하니 다시 꺼내기가 영 어려워진다. 둘째, 그래서 배움의 환경은 극도로 친절해야 한다. 학습부진학생들에게는‘이렇게까지 하면서 가르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친절함이 필요하다. 초등 6학년생들에게 몇 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학년은 다양해도 이유는 모두 같다.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친절하셨어요." 감정적 기억은 인지적 기억보다 강해서 친절하게 배웠던 장면을 훨씬 잘 기억해낼 수 있다. 내용의 기억보다 감정의 기억이 훗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다시 한 번 배우고 싶어지게 하는 감정의 기억이 배움을 지속하는 막강한 원천이다. 셋째,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 볼 수 있는 멍석이 깔려야 한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학생에게 조금만 고민하면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다려주고, 들여다봐주며, "이미 알고 있었네, 멋지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인데,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그래도 혹시 학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장면을 곁눈질로 확인했다면 멍석 깔기는 멈출 수 없는 일이 돼버릴 것이다. 習의 대표적 신호는 "아~" 하는 간단명료한 탄성이나, 이 간단한 신호를 얻기 위해서도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표현은 習이 시작되는 첫 단추이다. 수업 중에 관찰되는 학습부진학생들은 학생들의 표현을 끌어내기 위한 과제가 제시되거나 발표 또는 전시의 기회가 제공될 때 숨는다.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봐야 좋은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판이 훤하게 보이니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니 이들의 표현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놓쳤는지,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개별로’ 물어야 한다. 가까이 다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용히 물으니 "한 번 더 설명해주시면 이해될 것 같아요.",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주세요."라고 한다.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다. 연습 통해 쌓은 습관의 힘 둘째, 반복되는 사소한 연습들이 누적될 때 習이 이루어진다. 학습부진의 원인 중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습관의 미형성이다. 학습부진학생들은 성취감의 경험이 부족했으며, 규칙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아침 혹은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무엇이 정해져 있고, 그 수준과 양이 과하지 않으며, 매일 지켜냈을 때의 만족스러운 내적 성취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학습을 위한 최소의 근육이 생길 때까지, 사소하지만 하면 할수록 쌓이는 것이 직접 체감되는 과제 제시와 이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은 학습부진학생들의 습관 형성을 지원한다. 학습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졸리거나 배고프지 않아야 하며,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없어야 하고, 소속감과 존중받고 있음도 느껴야 한다. 그 다음 순서가 學이고 그 다음이 習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습부진학생들은 學習 전 단계부터 치열했다. 그래서 또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친절한 배움이어야 하고, 충분히 씹고 음미하며 삼킬 수 있는 여유로운 익힘이어야 한다. 가르쳤으니 알아들어라? 설명했으니 다 이해했을 것이다? 성인에게도 힘든 일이다. 學과 習의 조건은 성인이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최소한의 교육환경이다.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대입 학생부종합전형, 논술전형, 정시를 앞둔 고교생들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한 책 ‘나만의 맞춤 가이드’ e-book 시리즈(정동완 김해 율하고 교사, 안혜숙 강원 삼척초 수석교사 검토)가 발간됐다. 대학 선택과 전형을 학생의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 학생 개인별 맞춤가이드를 제공하는 마이 베스트 시리즈로‘나만의 맞춤 가이드1 My Best 대학과 전형’과 ‘나만의 맞춤 가이드2 My Best 학생부’ 2권으로 구성돼 있다. ‘나만의 맞춤 가이드1 My Best 대학과 전형’은 자신의 성적(내신+모의고사)에 맞는 맞춤형 대학과 전형 추천을 빅데이터 기반으로 제시한다. 희망 지역 두 곳을 지정해 학생이 지원하고자 하는 두 지역의 대학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학생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고, 가이드는 각 항목별 정량 평가를 통해 학생이 보완할 점을 구체적인 총평으로 제시한다. 또 매 학기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 입력을 통해 학생의 지원 가능 대학을 알려줘 동기부여와 방향을 제공한다. ‘나만의 맞춤 가이드2 My Best 학생부’는 현재 학생부의 성적, 독서, 세특을 수치화한 그래프로 제시해 객관적인 학생부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학업역량, 인성, 발전가능성, 전공적합성을 한눈에 보이도록 도표로 제시해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도록 했다. 학생이 잘하고 있는 강점을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이를 보완할 활동을 제안했으며 나만의 학생부를 평가해 정성적 내용을 정량으로 계산, 학생부 영역별, 대학 평가영역별 개인 분석 프로파일을 제공한다. 가이드2는 학생부 항목별 기재요령과 상세 양식 및 작성 샘플을 제공하며워크북 활용, 명품 학생부 작성 준비를 돕는다. 계열별 핵심역량과 창체활동, 독서목록과 독서난이도 정보를 통해 지원하는 계열의 전공적합성에 최적화할 활동을 추천한다.
충남 서산 서령고(교장 김영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 수학여행 중 직은 기념될만한 사진들을 주제별로 선정해 전시회를 열었다. 재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송파수련관 입구에 마련된 사진들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수학여행을 갈 후배들에게 미리 제주도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여행 경험담을 전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평이다. 더불어 베스트 사진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해서는 푸짐한 상품도 선물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때때로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세한도(歲寒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의 작품이다. 국보 180호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추사의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때 그의 제자였던 우선 이상적이 당시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글과 함께 그림을 그린 선비의 문인화다. 세한도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성인의 ‘불멸의 정신’이 있다. 추위와 고통은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하게 만든다. 올해의 달력도 이제 한 장만 더 남은 시점에서 추사가 담고자 한 ‘세한의 정신’을 살펴보자. 소나무와 잣나무 각 두 그루 그리고 작은 집의 그림만이 아니라 추사의 발문(跋文) 속에는 인생의 혹한기에도 살아 있는 인문의 정신이 있다. 우선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한 공자와 태사공 사마천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고 찬시를 적어주었던 청나라의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網) 등 16명 학자들의 정신이 있다. 또한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의 안목과 의지, 태평양전쟁 때 공습으로 소실될 직전에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잘 보존만 해달라”며 소전에게 작품을 대가 없이 건네준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의 정신도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개인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부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결코 알리지 않았던 손세기의 아들 손창근 옹(翁)의 정신…. 이런 정신이 작품 외적으로도 오늘날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세한(歲寒)’이란 날이 추워진 때를 뜻하며 인생의 혹한기를 의미한다. 우리가 작품을 볼 때 채색이나 기법 혹은 구성 등의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세한도다. 최고의 벼슬자리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 추사. 그에게 세상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자 이상적이 머나먼 길을 걸어 책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이때 추사가 떠올린 생각이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歲寒然後)’의 소나무와 잣나무였다. 공자의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 초록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런데 모든 나무가 초록으로 무성한 여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을에 낙엽수들이 시들고 겨울에 잎이 모두 떨어졌을 때, 즉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비로소 초록임을 잘 알게 된다. 이런 공자의 말을 《사기(史記)》의 저자 태사공은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추사는 발문에서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는 태사공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추사는 썼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묻는 물음이지만 이 물음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추운 겨울, 세한의 계절을 앞둔 우리의 시대에 희망으로 다가올 봄의 기약은 저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을 기다린다. 인문의 정신은 세한의 계절에 더욱 빛을 발한다. 추사는 단지 글씨만 잘 쓰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 듯 정신이 깃든 문자의 ‘향(香)’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 이상적은 글씨를 잘 썼던 제자는 아니었지만 문자의 향을 몸소 지녔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대에 교육하는 우리는 먹을 갈 때부터 ‘문자의 향’을 머금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01 영화 ‘톨킨(Tolkien)’을 보았다. 단조로운 듯했지만 나는 이 영화의 은은한 톤(tone)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톨킨(J.R.R.Tolkien, 1892~1973)의 청소년기 성장의 시간을 진지하고도 차분하게 카메라의 눈으로 연출한다. 톨킨이 누구인가. 유명한 반지의 제왕을 쓴 영국의 작가 아닌가.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로서의 재미가 압도한다. 그 재미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이별의 슬픔에 대한 공감에 들고, 믿음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구하려는 주제에 다가간다.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은 상징과 창의성이 넘친다. 작품 안에 다양한 신화를 녹여 냄으로써 얻는 효과이다. 언어학자인 톨킨은 여러 민족의 고대 언어들을 연구하며, 신화를 연구한다. 작가로서의 언어 문화적 내공이 단단함을 보여 준다. 그는 신화가 지닌 ‘문화적 상징’의 원형(archetype)을 소설 안에서 풀어내어, 마침내 인류적 성찰을 주제로 일깨운다. 그의 판타지작품은 그 어떤 현실주의(realism) 문학보다도 세계의 총체성을 잘 보여 준다. 그 어떤 본격문학보다도 인간의 욕망과 내면을 잘 비추어 준다. 2001년 피터 잭슨이 감독·각본·제작을 맡아서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크게 성공하였다. 반지의 제왕의 문화적 힘과 가치는 이제 세계인의 공유물이 되었다. 나는 영화 ‘톨킨’에서 나만의 감명을 받는다. 그것은 오묘한 정신적 경험의 지경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내가 경험한 나의 성장과 내 청춘의 시간을 영화 ‘톨킨’ 안에서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경험했다기보다는,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성장기 정신의 풍경이 거기에 있는 듯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경험한 것’과 ‘경험하고 싶은 것’이 같이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늘 ‘이상적 지향’으로 꿈꾸었던 나의 청춘과 성장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이상적 지향’이라고 해서 꽃길뿐인 인생 경로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톨킨은 겪는다. 어려서 부모를 잃는 결핍과 외로움, 기쁘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경험, 권위주의 억압과 저항, 자유를 향한 방황과 좌절, 미숙한 지성의 부끄러움, 경쟁과 희생과 고뇌로 뒤덮인 우정의 뒤안길, 전쟁과 처절한 실존, 비극적 운명과 대결하는 슬픈 자아 등등, 그런 행로에서 느껴지는 인생론적 의미가 아름답고 소중해 보였다. 저런 장면의 정서들이 나의 생애에는 어디에 있었던가. 이런 생각이 고일 틈도 없이 영화의 화면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게 아쉬웠다. 02 영화에서 나는 톨킨의 성장과 생애적 격동을 보았다. 그로 인한 톨킨의 환희와 고통을 나의 성장 실제에서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껏 나의 청춘에서 별 의미 없이 겪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도 아름답고 소중했던 성장의 자질들이 고스란히 비치어 있음을 보았다. 영화가 그런 촉매작용을 했다. 물론 톨킨의 성장과 학창 경험 그 자체에 비하면 내 것은 옹색하고 구차스럽다. 그러나 경험 그 내면을 흐르는 청춘의 열망이나 비전, 그것에 부여하는 가치 등은 톨킨의 것과 나의 것이 다를 바가 없으리라. 영화는 그런 각성을 나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다른 감상자들의 평을 인터넷에서 둘러보니, 내 느낌과 같지만은 않았다. 인상적인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은 다수가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대했던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이 영화를 반지의 제왕 후속편처럼 생각하고 판타지 수준의 재미를 기대 지평으로 두고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아닐까. 그런 기대 맥락을 가진다면 영화 ‘톨킨’은 좀 심심하고 지루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언뜻 밋밋하고 지루해 보이는 인생사(人生事) 같지만, 그 밑으로 흘러가는 ‘인간의 시간’과 ‘운명의 공간’을 깊숙이 읽을 수 있는, 그런 재미를 일깨운다. 거기까지 가려면 약간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것이리라. 03 톨킨에게서 사랑의 이야기를 주목해 본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톨킨 형제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헌신적이고 자애로웠던 어머니는 톨킨이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고아로 남겨진 톨킨은 후견인 프랜시스 신부의 도움으로 어떤 귀족의 집으로 간다. 거기서 같은 고아의 처지로 와 있던 ‘이디스 브랫’이라는 소녀를 만난다. 사춘기 소년 톨킨은 그녀에게 이성애(異性愛)의 감정을 품지만, 그럴듯한 연애가 되기에는 난관이 많다. 버밍엄 고교 시절 3살 연상이었던 이디스 브랫과 사귀지만, ‘개신교 여인과 부도덕한 연애를 한다’는 프랜시스 신부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디스의 총명함과 아름다운 자존감도 톨킨을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을까. 둘은 학교에서 연극 동아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인 듯 사랑 아닌 듯 지낸다. 친구들이 두 사람의 연애 감정을 놀리기라도 하면, 톨킨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우긴다. 그러다가도 톨킨은 다른 친구가 그녀에게 접근하면 감출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을 보이기도 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이어진다. 청년이 된 톨킨은 그녀와의 결혼을 생각하지만, 강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마침내 다른 남자와 약혼하고 톨킨을 떠나간다. 톨킨은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전선으로 가기 위해 승선하는 부두에서 극적으로 그녀를 만나서 사랑을 고백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이별일 듯 다시 만나며 맺어지는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요약하면 이렇다. 톨킨은 전투에서 부상하여 후송되고, 이디스는 약혼을 깨고, 부상한 톨킨에게로 돌아와 그를 지성으로 돌본다. 전쟁에서 친구들은 죽고 흩어진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해로한다. 1973년 톨킨이 죽는다. 그보다 2년 앞서 이디스가 세상을 떠난다. 영화 ‘톨킨’을 보면서 200년 앞서 살았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671~1741)를 떠올린다. 그가 쓴 고백록에 나오는 루소의 첫사랑 이야기가 생각난다. 톨킨과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이다. 아니, 다른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주제인지 모르겠다. 이 대목을 읽으며 충격을 느끼던 나의 젊은 시절도 겹쳐서 떠오른다. 루소도 불우했다.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은 톨킨만큼 불우했다. 루소는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었다. 가난한 시계수리공이었던 루소의 아버지는 먼 친척뻘이 되는 어느 백작의 집에 루소를 맡긴다. 마침 그 집에는 루소와 똑같은 처지로 와 있던 고아 소녀가 있었다. 남의 집에 맡기어져 있기는 했지만, 소녀는 반듯한 기품과 매력을 지닌 듯했다. 루소는 고아 소녀에게 이성애를 품고 다가간다. 그러나 그녀는 루소에게 좀체 곁을 내어 주지 않는다. 쌀쌀맞고 냉정하다. 그 점이 루소를 더 끌어당겼을까.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자라났을까. 그 애틋함을 전할 방법이 없다. 엄격하고 통제된 집안 공간이다. 둘은 달리 소통의 기회나 공간을 가지지 못한다. 소녀의 진심 또한 알아볼 도리가 없다. 어느 날 루소는 백작의 방에 들어갔다가 백작이 아끼는 귀중품을 충동적으로 훔친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귀중품이 없어진 걸 알게 된 백작은 격노하며 범인을 찾는다. 백작의 총애를 받던 루소는 백작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안다고 말한다. 루소는 그 소녀가 훔치는 걸 보았다고 말한다. 루소도 자신의 무의식을 비난한다. 고백록은 적고 있다. 불쌍한 소녀가 추궁 받는 동안,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갈등하지만, 그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백작은 소녀를 죄인으로 낙인찍어서 내쫓는다. 루소의 첫사랑은 이렇게 비극적 단절로 끝이 난다. 동시에 윤리적 파탄을 향하여 추락한다. 톨킨과 루소는 대조적 사랑의 경로를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한 가지 요인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톨킨의 첫사랑이, 꺼질 듯 사라질 듯, 파탄에 이르지 않고,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근대 학교’의 역할이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톨킨과 이디스는 사랑인 듯 아닌 듯 함께 배우고 활동했다. 연극 동아리도 하고, 독서도 함께하고, 축제도 함께했다. 근대적 합리성 위에 구축된 버밍엄 고등학교의 교정은 로맨틱하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소에게는 ‘근대 학교’의 공간이 없었다. 합리적으로 공식적으로 소녀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학교가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근대란 무엇이었던가? 학교란 무엇인가? 두 개의 화두를 챙겨 본다.
저요? ‘공정(公正)’이라고 합니다. ‘공정’에도 형제자매가 많습니다. 요즘 어디에나 필요하고 핫한 화두이니까요. 최근 ‘기회의 공정’을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교육 부문에서의 대표적인 ‘기회의 공정’은 ‘대입제도’라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저를 ‘교육의 공정’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공정은 완벽한 제도 아닌 사회구성원의 합의 요즘 저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네요. 수능시험에다 수시니 정시니, ‘학생부종합’이니 ‘학생부교과’니 해서 오만가지 대입제도를 만들어 놓고 ‘공정하다’고 자랑하더니 웬일인가요. 분명 누가 사고 쳤지요? 예전에도 그럴 때만 저를 찾았으니깐. 이번에는 저도 꼭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가출 청소년처럼 거리를 배회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생활에도 지쳤습니다. 우선 저를 데려가려면 세 가지를 약속해 달라고 정중히 요구합니다. 첫째, 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편 가르기를 하지 말 것, 셋째, 일단 데려왔으면 딴소리하지 말 것. 저의 필요성을 인정하라는 것은 저의 존재가치에 관한 확인입니다. 위대한 사람이라고 모두를 위대하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 자체로 위대한 것 아닌가요. 고귀한 가치는 모두에게 직접적인 이득을 갖다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고귀한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런 반열로 대접해 줘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손톱의 때만큼도 존중하지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실력 발휘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누구 편이냐는 질문도 이제 신물이 납니다. 저를 대할 때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자기에게만 유리한 대답을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편을 가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갈라진 편을 통합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용도를 오해하면 저는 괴롭습니다. 한번 데려왔으면 딴소리 말라는 것은 신뢰에 관한 얘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일단 공론으로 저를 채택했다면 ‘합리적인 차선’으로 믿고 적극 지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를 다시 거리로 내쫓는다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세 가지 요구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의 다른 표현입니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도 그 자체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불완전한 제도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은 그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의 규제를 받는 인간입니다. 즉, 공정은 완벽한 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합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교육은 토막 내서 갈아 끼우는 부품 아냐 그렇지만 저는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영원히 신뢰받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한국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두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육평론가이고, 하나는 정치분석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나라에서 예전부터 그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똑똑하고, 너무나 도도한 국민을 만족시켜야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 또 하나의 ‘악재’가 생겼습니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할 저를 정치가 자꾸 자기 품속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아니, 유혹이 아니라 강압입니다. 정치의 강압은 더욱 노골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겉은 그럴 듯한데 속은 추한, 소위 진영논리 때문입니다. 제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교육을 지금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는 공감하시지요? 그리고 제가 부탁한 세 가지 약속도 지켜주실 거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을 믿고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저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여러분과 미래 세대, 그리고 국익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우선 저를 만들고, 기르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국민을 상대로 설득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특정 방안을 사회구성원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도록 함으로써 저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달라는 것입니다. ‘공정’은 남이 만든 기성품을 사다가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 구성원이 만들고, 기르고,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국민 스스로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교육문제를 객관화·상대화함으로써 저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과정이자, 저를 비난하려면 본인도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 문제는 가능하면 공개적으로 다뤄 줄 것도 요청합니다. 저는 ‘제도’라는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와 좀 더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왜 태어났는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태어나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알려주신다면 제가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미움을 덜 받지 않을까요. 국가에 ‘정책’이 있다면 국민에게는 ‘대책’이 있다 저의 존재가치를 ‘대입제도’로만 좁혀서 왜소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입제도만 공정하게 설계하면(‘공정’의 의미는 만인만색이어서 공정한 설계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엄청난 착각입니다. 교육은 어느 분야보다 시계열적 연계성이 강합니다. 특정 단계만을, 예를 들어 대입제도만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해서, 교육 전체가 잘 굴러갈 수 있을까요. 고교졸업 때까지의 ‘과거의 선택’과 대학 졸업 이후의 ‘미래의 선택’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교육은 토막 내서 부품을 갈아 끼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도 대입제도만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그렇게 평가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덧붙여 저는 현재 제 이름을 빙자해 논의하고 있는 대입제도의 개혁, 정시와 수시의 배분, 학생부의 개선 등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부분을 마치 전체인양 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저는 언젠가 또다시 좌절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제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 전반에 관해 진지하게 재검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그렇다고 이 정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진단은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정권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입시제도를 만들 때의 큰 원칙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사악한 사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를 해서는 안 된다’ ‘××는 기재하지 마라’는 등의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이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교육현장과는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국가에 ‘정책’이 있다면 국민에게는 ‘대책’이 있다고 합니다. 사악한 의도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소수의 악인을 막는 네가티브 방법보다는 선의를 가진 다수의 선택을 넓혀주는 포지티브한 방향으로 제도를 대폭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특권 대물림’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사용하는 것을 ‘경쟁탈출(escape-competition)’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부는 ‘경쟁탈출’을 넘어 부모의 재력·권력·정보력을 활용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경쟁무시’ 전략을 쓸 것이라는 걱정이 많습니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국 사태’는 백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누르고 막고 깎는 ‘하향평준화’는 반대합니다. ‘조국 사태’는 봉쇄하되,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경쟁력과 경제력이 떨어진 지역·계층·학생·학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주는 ‘상향평준화’를 지지합니다. ‘교육의 공정’ 갈망한다면, ‘당신’부터 행동하라 마지막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저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도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특히 그렇습니다. 소위 ‘기회의 공정’, 그것도 ‘교육의 공정’을 구현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의 설계, 제도의 적용과 수정, 중간 및 사후 평가 등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매우 논쟁적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리더십의 교체를 경험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저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아니, 인내가 필요합니다. 정말 마지막 말을 남겨두고 있네요. 여러분, 혹시 ‘교육의 공정’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남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말고, 바로 당신부터 저의 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행동하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저의 그림자도 만나기 힘들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제가 이 사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저를 버린 것입니다.
“일제 36년의 고통은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이지만, 일본인들은 박제된 역사로 인식하고 있어요. 이미 지나간 과거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양국 간 교육교류도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재일동포들의 민족정체성 확립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재일 한국교육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꼬일 대로 꼬여버린 과거사 문제는 복잡한 일본의 속내와 맞물리면서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 이원렬 일본 센다이 한국교육원장(사진)은 “극우 성향의 인사들은 여전히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제국주의 사고에 빠져있고, 일반 시민들은 한국에 무관심하며, 10대 청소년들에게 한국은 그저 K-POP과 맛있는 음식의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침략과 수탈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상당수 일본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을 알고 있어 ‘사죄와 화해’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일무역갈등으로 일본에서 반한 또는 혐한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곳 분위기는 어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다. 한때 대부분 지상파 방송들이 한국을 다뤘다. 일부 정치인들이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한국정세에 관심이 많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당수 일본인은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후쿠시마 방사능 안전문제 제기 등에 피로감이 누적되어 간다고 한국에 불만을 터뜨린다. 또 센다이 한국교육원 주위를 돌며 확성기로 해이트 스피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본 지식인 중에는 한국인의 아픔에 대해 이해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에 대한 정서는 무역갈등 이전이나 이후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일무역갈등 이후 한국교육원 활동에도 타격이 있는가. “어느 정도 영향은 받고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최근 사태 이후 한일 간 교육교류 행사들이 한국 측의 일방적 취소로 무산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다만 일본 측도 ‘안타깝지만, 한국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분위기여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재일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족정체성 교육활동과 현지인 대상의 한국어 교육 및 한국문화 보급 등 한국교육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 관광객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 여고생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곳 동포나 유학생들은 안전한가.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30명 이상의 국비유학생이 생활하고 있는 여기 센다이의 경우 학생들의 생활에 어떤 불이익이나 피해, 혹은 불안한 분위기 조성 등의 변화는 아직 감지된 바 없다.” 한국은 아직도 상당히 화가 나 있는데 일본은 생각보다 무덤덤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일본을 대하듯이 그렇게 큰 비중을 두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정보를 찾아가며 맹렬하게 반응하는 성향도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비교적 자세하게 학습되어있는 반면 일반 일본인들은 잘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우리에게 일제 36년의 상처는 아직도 뜨거운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 유적이나 박제된 역사로 여기고 있다. 이 같은 시각차를 어떻게 극복하고 그들의 잘못을 돌아보게 할 것인가, 선뜻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역사 왜곡에 대한 시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역사 인식의 차이로 봐야 하나? “솔직히 이곳 일본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한일 간 역사를 보는 관점이 우리와 달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이들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 한일관계를 부분적으로 넣고 이해하려 드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로 이야기하자고 할 때, 이들은 세계사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접근한다. 일종의 ‘대동아공영론’이 깔려있는 역사관이다. 불쾌하고 염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라면 한일관계에서 역사문제는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될 것처럼 여겨지는데. “아픈 시대를 살아갔던 세대는 양국에서 사라져가고, 전후 세대는 전혀 다른 교육을 받고 있으니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문제를 푸는 방법도 분쟁을 해결의 기본적인 프로세스 즉, ①양자 간의 사실 확인 ②그것을 근거로 한 가해와 피해 규정 ③그에 따른 사과와 보상 ④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과 기억이라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한일 양국 간에는 1단계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단계까지 가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어쩌면 일본은 4단계를 미리 염두에 두고 1단계 조차 시작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교육원은 일본 청소년들과도 자주 접촉할 텐데 그곳 10대들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일본의 10대들은 그저 선량한 눈빛으로 K-pop에 매료돼 한국노래를 듣고 댄스를 연습하고, 한국음식을 찾아다니며 맛에 감동하고, 한국어로 몇 마디 이야기하는 것에 즐거워한다. ‘한국이 왜 일본에 분노하는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한국은 활기차고 재미있고 맛있는 것과 멋진 스타들이 많은 가보고 싶은 나라이지 과거사 때문에 신경 쓰이는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지난 10월 5일 주센다이 대한민국총영사관과 공동으로 일본 동북지역 한국어변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때 발표자로 나선 한 일본 학생이 ‘한국과 일본의 친선을 위해 과거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어려운 회의는 쉬고, 과거의 일은 서랍에 넣고, 편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하더라. 과거사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는 우리의 무거운 입장과는 달리 너무 단순 명랑했다. ‘이런 아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마저 나왔다.” 일본에서는 혐한과 반한, 한국은 극일과 반일이 평행이론을 이룬다. 해법은 없을까. “학창시절에 일본의 장점이나 본받을 점에 대해 들은 바가 거의 없다. 일본에 의한 아픔의 역사와 그것을 극복한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과 업적을 배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미운 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따지는 훈련만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일본을 상대할 때 냉철한 균형감각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란 껄끄러운 이웃을 곁에 두었고, 아예 이사 갈 수도 없는 형편이라면 어떻게든 상대를 잘 유인해서 상호 친선관계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감정적인 반일보다는 의연하게 우리의 지혜를 모아 피하지 못할 대책으로 상대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스스로를 위해 좀 영리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했으면 싶다.”
“고명이 달라졌다.” 한때 공부 안 하고 말썽꾸러기 많은 학교로 낙인찍히다시피 했던 학교. 강북 지역 대표적 기피 대상으로 알려졌던 학교. 선생님들이 원서도 안 써준다는 학교. 그곳이 달라졌다. 최고의 교사, 최고의 시설, 최고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곳.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명외식고등학교다. 지금까지는 고명경영고등학교로 불렸지만, 내년부터는 교명이 고명외식고등학교로 바뀐다. 외식·디저트·카페경영 및 국제관광과 신설 학교 문패만 바꾼 게 아니다. 기존 외식경영과를 제외한 3개과를 폐지, 그 자리에 새로운 과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고명외식고는 내년부터 ▲외식경영과, ▲디저트제과경영과, ▲카페경영과, ▲국제관광과 등 4개과에서 18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외식경영과는 말 그대로 한식·일식·중식·양식요리 및 제과·제빵 등 외식조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저트제과경영과는 다양한 디저트 제과 분야 전문가를 양성, 제과·제빵사는 물론 바리스타·케이크디자이너·쇼콜라티에·푸드코디네이터 등을 배출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카페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카페경영과를 두드리면 된다. 카페창업에 필요한 이론과 실무를 다양하게 익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준비된 인재를 양성한다. 스튜어디스·호텔리어·여행안내원 등으로 진출하는 국제관광과에서는 관광 및 레저 전문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취업 맞춤형 학과 개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성화고로서 나무랄 데 없는 외관이다. 그렇다면 실속은 얼마나 채워져 있을까. 지난 2018년 출범한 외식경영과 사례를 통해 이 학교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선 ‘명장수업’이란 게 있다. 조리와 제빵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최고의 ‘고수’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정부가 공인하는 제도다. 현재 대한민국 12대 요리명장인 조우현 명장과 10대 제과명장으로 선정된 송영광 명장이 정규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명장수업은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기술을 빠른 시간에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이뿐 아니다. 틈틈이 국내 유명 쉐프들의 특강도 열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스타급 쉐프들이다. 이 같은 현장 전문가 중심교육은 고명외식고가 추구하는 실무중심 교육과 맞아떨어진다. 박차환 대외협력부장은 “1학년 때부터 주당 17시간씩 실무중심의 실습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며 “기술을 배우고 싶어 들어온 학생들에게 딱딱한 이론수업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열정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술보다 인성... 성실한 인재 기른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다.” 고명외식고의 모토다. 외식분야의 경우 바른 심성과 성실한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학교 측은 인성교육에 많은 공을 들인다. 예컨대 학생들은 학교 인근 불우시설이나 장애인 복지관, 노인보호시설 등으로 자주 봉사활동을 나간다. 자신들이 만든 과자와 빵을 제공하는 급식봉사는 물론 일손돕기 등에도 기꺼이 참여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지역사회가 학생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고명’ 하면 고개를 젓던 주민들이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한다. “우리 고명이 달라졌네요.” 졸업인증제라는 것도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전교생이 졸업 때까지 관련 분야 자격증 5개는 갖자는 프로젝트다. 취재 도중 만난 우유선 학생(2학년)은 벌써 자격증만 4개다. 학교 방과후수업을 열심히 들었더니 어느덧 4개를 채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선생님들이 정말 열심히 가르쳐 주셨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은 학원에서 비싼 수강료 내고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우리는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죠.” 그도 그럴 것이 고명외식고의 실습시설은 명실공히 최고다. 호텔이나 유명제과회사 조리시설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프랑스 요리 실습장은 정통방식인 목재로 만들었다. 그래야 음식 맛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초콜릿 공예 실습실은 조리대와 바닥을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호텔급이다. 중식 요리실 화구는 실제 조리현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구비했다. 학교에서 배울 때와 산업현장에서 일할 때 조리기구에 차이가 있으면 손에 익질 않아 사고 위험도 있고 힘들기 때문이다. 글로벌 특성화고 선언... 일본 등 해외진출 개척 학생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국내외 각종 요리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학생들은 국내외 7개 대회에 출전, 대상과 금상, 교육부장관상 등 11개를 수상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유럽공식승인(WACS) 대한민국 챌린지컵에서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대한민국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에서 대상과 최우수상·금상을 휩쓸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조리 외식분야 고등학교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성과를 올릴 것이다. 국내 유명호텔 쉐프 출신인 이 학교 박경주 교사는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특히 선후배 간 우애가 좋아 서로 배운 것을 가르쳐주다보니 해가 갈수록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명외식고의 또 다른 전략은 세계화다. 일찌감치 외식 선진국인 일본과 현장실습 및 학생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내년에 일본 외식기업에 학생들을 파견, 90일간 현장실습을 실시할 계획이다. 학생들에게는 영어와 일본어를 반드시 마스터 하도록 집중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일반 쉐프가 되고 싶으면 다른 학교를 가라. 하지만 오너쉐프가 되고 싶으면 고명을 선택하라.” 이 학교 교사들은 외식교육에 관한 한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실력으로 자신 있다면서 높은 기술을 자랑하는 고명이 머지않아 국내 최고의 특성화고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혜승 교장은 “교육도 경쟁이다. 남들 하는 것 따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명이 1등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혜승 교장의 가을 편지 한혜승 교장은 오늘 편지를 썼다. 고명 학생들을 길러준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은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동안 이 학교에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학생으로 길러낼지 감사와 다짐을 곱게 담았다. 한 교장은 매년 이맘때면 은사의 밤이란 조촐한 행사를 갖는다. 학생들이 꼭 한번 모시고 싶다는 중학교 선생님들을 학교로 초청, 제자들이 만든 음식도 대접하고 못다 한 사제간의 정도 나누는 행사다. 가을날, 꼭꼭 눌러쓴 교장선생님의 손편지는 은사의 밤 초청장인 셈이다. 지난해 이맘때 열린 은사의 밤 행사장은 눈물바다였다. 하루가 멀다고 속을 끓였던 녀석이 고등학생이 돼 직접 만든 음식을 내놓을 때 선생님들은 목이 메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교장도 고명의 선생님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한 교장은 “예전엔 고명만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처럼 달라진 아이들을 보니 앞으로는 고명의 홍보대사가 돼야겠다”는 선생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중학교 선생님들을 감동시킨 고명의 저력은 무엇일까. 한 교장은 ‘간절함’과 ‘손오공’이라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머리털 한 줌으로 수많은 손오공을 만들어냈던 분신술처럼 40여 명의 교직원이 하나가 돼 ‘학교 한번 새롭게 바꿔보자’는 일념으로 일궈낸 치열한 혁신의 성과라고 했다. “우리 학교만의 1등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3년 안에 서울 시내 최고의 특성화고등학교로 키워낼 겁니다.” 한 교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필자가 활동하는 야생화 모임의 2년 전 가을 정모(정기모임) 장소는 경남 산청군 황매산이었다. 그날 정모는 구절초·물매화·자주쓴풀 등이 주타깃이었지만, 필자에겐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보리수나무 열매였다. 등산로 주차장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 곳곳에 팥알만 한 보리수나무 열매가 다닥다닥 열려 있었다. 붉은 열매에 은빛 점이 주근깨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것도 귀여웠다. 어릴 때 ‘포리똥’이라 부르며 따먹은 추억의 열매였다. 약간 떫은 듯한 단맛이 나는 열매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아내와 나는 일행에서 뒤처지는 줄도 모르고 한동안 보리수나무 열매 따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6월에도 비슷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사람들은 보리수 열매라고 부른다. 봄에 익는 열매는 가을에 익는 열매보다 좀 더 크고 타원형인데, 이것은 뜰보리수 열매다. 보리수나무는 야생이라 주로 산에서 볼 수 있고, 뜰보리수는 일본 원산으로 화단 등 민가 주변에 많이 심어놓았다. 보리수나무와 뜰보리수 구분하는 것도 헷갈리는데, 우리 주변에는 흔히 ‘보리수’라고 부르는 나무들이 더 있다. 부처님이 그 아래에서 성불했다는 보리수, 독일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가 그것이다. 제주도와 남쪽 섬에서 볼 수 있는 상록수 보리밥나무 등은 일단 논외로 쳐도 그렇다. 첫 사랑 ‘그 남자’를 떠올리게 한 보리수나무 박완서가 첫사랑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도 주인공은 이 세 가지 나무 이름을 헷갈리고 있다. 이 소설은 2004년, 그러니까 작가가 74세였을 때, 5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어 쓴 소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은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 이어 이른바 작가의 ‘자전소설 3부작’의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시대적 배경은 아직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다. 주인공은 같은 동네로 이사 온 먼 친척인 남자 현보와 ‘닮은 불운을 관통하는 운명의 울림 같은 걸 감지’하고 매일이다시피 만나 어울린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데이트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백수였고 주인공은 다섯 식구의 밥줄이었다. 결국 주인공은 일하러 다닌 미군부대에서 만난 은행원과 결혼을 결심하고 현보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소설은 주인공이 50여 년 전 찬란한 한 때를 보낸 그 남자네 집을 찾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남자네 집을 찾은 결정적인 물증은 ‘보리수’였다. 돈암동 후배네 집에 놀러 갔던 주인공은 돈암동 안감천변에 살던 첫사랑 그 남자를 떠올린다. 그 남자네 집은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곳에 홍예문이 달린 단아한 집이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가 있었고, 그 중 ‘보리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주인공이 보리수로 알고 있는 나무와는 달랐다. 주인공은 힌두 문화권을 여행했을 때 부처님이 그 나무 아래에서 성불했다고 들은 보리수, ‘뮐러가 노래한 린덴바움’으로 그 나무 아래에서 단꿈을 꿀 수 있는 나무 등 두 개의 상이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네 집 나무는 둘 중 어떤 것하고도 닮지 않았다. 주인공은 수목도감을 찾아본 다음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이파리 사이로 삐죽삐죽한 잔 가장귀엔 서너 개씩 빨간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보리수나무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얼마나 있어야 그 밑에서 단꿈을 꿀만큼 자랄까. 한 오십 년쯤. 나는 보리수나무가 세월을 거꾸로 먹어 오십 년 전엔 그 무성한 그늘에서 관옥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단꿈을 꾼 것 같은 착란에 빠졌다. 작가가 세 나무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몽환적으로 처리한 느낌도 없지 않다. 어떻든 빨간 열매가 달리는 보리수, 부처가 성불했다는 보리수, 슈베르트 가곡에 나오는 보리수는 각각 다른 나무다. 토종보리수·뜰보리수·인도보리수·슈베르트 보리수… 황매산에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엔 토종 ‘보리수나무’가 있다.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은 씨의 모양이 보리 같다고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처님이 그 아래에서 성불한 보리수는 뽕나무과의 상록활엽수로, ‘인도보리수’라고 부른다. 고무나무같이 잎이 두껍고 넓으며 인도처럼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열대성 나무로, 30~40m까지 자라는 큰 상록수다. 중국을 거쳐 불교가 들어올 때 ‘깨달음의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를 음역해 보리수라고 부르면서 보리수나무와 혼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월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립수목원·서울수목원 같은 몇 군데 온실에서나 볼 수 있다. 절에서는 이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보리자나무 또는 찰피나무를 인도보리수 대용으로 심었다. 절에 가면 꽃자루에 긴 프로펠러 같은 포(잎이 모양을 바꾼 기관)가 달린 이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혼란스러운데,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린덴바움(Linenbaum)’이 보리자나무·찰피나무와 비슷하다고 누군가가 ‘보리수’라고 번역해 버렸다. 학창시절 배운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유럽피나무’라고 하는 종이다. 베를린에 갔을 때 이 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 린덴바움 아래)’ 거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나마 빨간 열매가 열리는 것은 각각 보리수나무와 뜰보리수로, 부처의 보리수는 인도보리수로 나누어 불러 혼란을 줄이고 있다. 그렇다면 슈베르트 보리수는 뭐라 불러야 할까. 계속 보리수로 불러야 할까, 유럽피나무라고 해야 할까, 글자수를 맞추기 위해 그냥 피나무라고 해야 좋을까. 같은 나무를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많지만 여러 나무를 한 이름으로, 그것도 수십 년 동안 고쳐지지 않고 부르는 일은 드문 일이다. 잘못 붙인 이름 하나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올바른 이름 붙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박완서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첫사랑의 설렘과 열정을 매혹적인 문장으로 그려내었다. 그 남자네 집이 인기를 끌었을 때 박완서 작가는 TV에 출연해 “소설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선생은 웃으면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주시고,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 달라. 재미있게만 읽어 달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만큼, 사람의 분별력을 어지럽히는 일은 없다” - 찰스 킨들버그 ELS(주가연계증권)나 가입해 볼까? 한마디로 유행입니다. 6월 기준 국내 증권사의 ELS·DLS 잔액이 116조 원이나 됩니다(금융위원회). 누가 ELS로 쉽게 4~5% 수익을 냈다고 하면 괜히 적금이나 들고 있는 내가 한심해집니다. “이러니 부자가 못되지….” 우리는 남의 투자를 따라 합니다. 대표적인 게 아파트입니다. 대학 동기 아무개가 산 아파트는 벌써 3억 원이 올랐다고, 외사촌 형님은 아파트 입주도 하기 전에 분양권을 팔아서 그냥 1억 원을 벌었답니다. 달러 빚을 내서라도 나도 뭐든 하나 사야 하나 싶습니다. “이제라도 저 열차를 타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런데 동서고금 값이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없습니다. 많이 올랐다 싶으면 떨어지거나 폭락합니다. 이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자꾸 오르는 자산투자에 올라타고 싶을까요. 왜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우리의 합리적 판단은 맥을 못 추는 걸까요? 런던 시민들은 왜 남해주식회사 주식을 샀을까? 네덜란드 튤립투기 열풍 이후 90년이 흐르고, 1700년대 초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으로 막대한 빚을 지게 된 영국 왕실은 ‘South See Company(남해주식회사)’라는 민관 합자회사를 만듭니다. 왕실은 국채를 발행해 현금을 조달합니다.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채권을 인수한 시민은 그 채권으로 ‘South See Company’의 주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돈만 잘 벌면 투자자도 좋고, 영국 정부도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아메리카에 노예공급을 허용해주고, 막대한 무역도 중개할 것으로 알려진 ‘South See Company’는 막상 한 푼도 돈을 벌지 못합니다. 1718년, 영국 정부는 다시 천문학적인 국채를 발행하고, 회사는 전환사채를 발행해 국채 전부를 인수합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국채는 언젠가 원금을 받을 것이고, 그러니 이 안전한(?) 투자에 런던 시민들의 줄이 이어집니다. 1720년 어느 날(우리나라는 숙종 45년), 런던 시내는 ‘South See Company’가 새롭게 발행하는 주식(증자)을 인수하려는 마차행렬로 도시가 마비됩니다. 1720년 1월 128파운드이던 주가는, 8월 초 1천 파운드를 돌파합니다(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주가가 700파운드를 돌파하자 뒤늦게 이 회사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하지만 8월 24일 이 거품은 결국 꺼지고 ‘South See Company’ 주식은 휴지조각이 됩니다. 뒤늦게 뛰어든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봤습니다(이 무렵 유럽 대중들은 ‘윌리엄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 열광했는데, 학자들은 이런 시대 흐름이 런던의 투기열풍에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윌리엄 디포’도 이 투자로 막대한 돈을 잃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줄에 함께 선다 인류가 투기열풍에 휩싸인 사례는 지난 10여 년간 수도 없이 많습니다. 100여 년 전, 최후의 대부자 FED(미 연방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시민들은 은행은 더 이상 망하지 않고(내 돈은 더 이상 떼이지 않고), 시장경제가 완성됐다고 믿었습니다. 산업생산은 급증하고, 주가는 계속 올랐습니다. 몇 해 지나지 않은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옵니다. 다우지수는 2년 만에 300에서 41로 추락했습니다. 가깝게는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가 있습니다. 당시 모두 빚내서 집을 사는 시대가 온 것으로 믿었습니다. 다들 하니까 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누구나 도장 몇 번만 찍으면 주택을 선물처럼 받았습니다. 거품은 2006년 말 급격히 꺼졌고, 이 무렵 미국인 340만 가구가 집을 압류 당했습니다(서울 전체가 330만 가구다). 지금도 수많은 투기가 우리 주변에서 이어집니다. 거시경제나 유동성 흐름, 특히 금리 움직임은 관심 없습니다. 남들이 줄을 서면 우리는 그 줄에 함께 서고 싶어 합니다. 경기도 용인 성복에서 다시 아파트전매가 성행합니다. 10여 년 전 수많은 건설사가 미분양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은 곳입니다. 파주와 김포 심지어 영종도에서도 불티나게 아파트가 분양됩니다(영종도는 10여 년 전 입주한 아파트 가격 폭락에 항의해 입주자대표가 분신한 곳이다). 투자는 맛있는 식당에 줄 서 있는 손님들을 따라 들어가는 것과 다릅니다. 가격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산에 사람이 몰리면(수요가 높아지면) 그만큼 가격이 오릅니다. 가격이 더 오르면 대중은 더 관심을 갖고, 가격은 더 급등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품은 궁극적으로 가치에 맞는 가격’을 갖습니다. 사겠다는 사람(수요)이 높아져 오른 가격은 언젠가는 가치에 맞게 내려갑니다. 시장은 불확실하고, 예측은 정확하지 않다 가격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특히 그동안 올랐다는 이유로 오르는 자산은 없습니다. 우리 예측은 번번이 빗나갑니다. 타워팰리스가 반포 한강변 아파트의 절반 값이 될지, 광주 봉선동 아파트 값이 13억 원을 넘어갈지 우리는 몰랐습니다. 분당과 일산의 집값 차이가 두 배가 될지, 우리가 이렇게 불현듯 대형 평형을 외면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은 불확실하고, 우리 예측은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을 따라 투자하면 안 됩니다. 투자 행렬을 따라가면 돈을 잃기 쉽습니다. ‘지금 이러니까 내일도 그렇겠지’ 믿고 간다면, 거대하고 선제적인 투자자들에게 당하기 쉽습니다. 당신의 손실은 ‘내일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의 수익에 보탬이 될 뿐입니다. 1) 좋은 투자는 특정 자산의 미래 수익을 정교하게 예측한 투자입니다. 2) 나쁜 투자는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변화를 예측해 하는 투자입니다(흔히 투기라고 한다). 3) 최악의 투자는 그냥 남들이 사서 올랐으니까 나도 따라하는 투자입니다. 돈을 잃기 가장 쉬운 유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자주하는 투자 유형입니다. ‘공포를 사고 탐욕을 팔아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모두 공포에 잠겼을 때 투자하고, 모두 탐욕에 잠겼을 때 팔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투자하고 있습니까? 혹시 남들이 다 하길래 나도 하려는 건 아닌지요? 300년 전 런던 시민들처럼요.
1월 말에서 2월 중순은 미국과 캐나다 서부지역을 여행하기에 좋다. 북미여행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북미 서부 주요 도시와 랜드마크 스르륵 보기’를 주제로 잡았다. 그리고 함께 간 2명의 영어교사와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다. 잠은 편하게 자자’라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 01 _ 다이나믹한 천사의 도시 LA LA 공항 도착 후, SUV 한 대를 렌트해서 ‘산타모니카 해변(Santa Monica Beach)’으로 향했다. 미국 서부해안은 항상 편서풍이 불고, 낮 동안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여기에 힘을 더한다. 그 때문에 바닷바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이곳 선창가의 ‘서드 스트리트 프롬나드(Third Street Promenade)’에는 다양한 의류·잡화 상점이 있다. 특히 미국 서부와 오대호를 잇는 기념비적 도로인 ‘66번 국도(US Route 66)’에 관련된 기념품점이 눈에 띈다. 아울러 1994년에 히트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인기를 타고 1996년에 만들어진 ‘버바 검프(Bubba Gump Shrimp Company)’라는 해산물 레스토랑 체인점도 있다. 베벌리힐즈(Beverly Hills)는 한국 드라마 ‘상속자들’에 등장하는 부유층만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로데오 드라이브(Rodeo Drive Walk Of Style)’에서는 명품 브랜드들의 최신 트렌드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이곳을 베낀 사례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가령 이곳의 ‘Bijan’이라는 의류점은 노란색 롤스로이스를 홍보용으로 매장 옆에 주차해 두었다. 우리가 노란색 롤스로이스에 정신이 팔렸을 때, 원피스를 입은 세련미 넘치는 여성 오너분이 잠깐 나왔다. 그분은 “실례합니다. 요금을 내두어야 해서요” 하면서 롤스로이스 옆 노란 주차미터에 동전을 넣고 들어갔다. 미국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만이 이런 동네에서 살고 있나 싶었다. 거리 곳곳의, 궁전을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의 주택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할리우드(Hollywood) 명예의 거리 ‘중국 극장(TCL Chinese Theatre)’ 앞에서 우리나라 배우 이병헌과 안성기의 손자국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근처 대형 매장에서는 SF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상품들을 팔고 있었고, ‘가장 멋진 딸’, ‘최고의 아내’ 등을 인쇄한 모형 아카데미 트로피도 구할 수 있었다. 조심할 것 중 하나는, 거리에서 음반을 공짜로 준다는 흑인 스트리트 랩퍼들이다. 공짜라고 덥석 받으면 바로 자신의 사인을 해서 5달러를 요구한다. 함께 갔던 동료 선생님들도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미국에서는 공짜란 없으니 주의하자. 북미 대륙에서의 첫날밤에 우리는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에서 LA의 도심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마천루와 항구를 가득 수놓은 불빛들은 정말이지 ‘breathtaking scenery(숨 막히는 장관)’ 이었다. # 02 _ 겜블러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15번 국도를 타고 4~500km를 이동해야 한다. 사막 위로 펼쳐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가다 보니 기름이 떨어진다. 우리는 기름을 넣기 위해 ‘Barstow’라는 ‘휴게소 마을’에 들렀다. 이런 곳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커뮤니티 개념으로 운영된다. 주유과정도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우선 카운터에 가서 주유기 번호를 말하고 돈을 지불하면, 금액만큼의 휘발유를 주유기에 세팅해 준다. 영수증을 받고 다시 주유기로 와서 셀프 주유하면 된다. 이곳은 외계인으로 유명한 로즈웰과 가깝기 때문에 외계인 핫소스, 외계인 물통 등을 판매하는 상점도 있었다. 상점 건물 역시 UFO 비행선처럼 생겼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서는 해지기 전까지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어야 그 휘황찬란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네온사인이 본격적으로 켜지는 20시에 라스베이거스 메인 스트리트로 나간 우리는 우선 미국 최대의 중식 레스토랑, ‘판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에서 배를 채웠다. 그다음 우리가 묵었던 ‘뉴욕-뉴욕호텔(New York-New York Hotel)’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들을 카피한 형태의 호텔들을 구경했다. 호텔도 특이하다. 베네치아의 느낌을 담은 ‘베니션 호텔(The Venetian Las Vegas)’,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지은 ‘룩소 호텔(Luxor Las Vegas)’ 등은 잘 알려져 있다. 각각의 호텔을 들여다보면 마치 주제로 삼은 도시의 VR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21시부터는 호텔들이 다양한 쇼를 보여준다.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Fountains at Bellagio)’, 그 옆의 ‘미라지 호텔 화산쇼(mirage hotel volcano show)’가 대표적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볼 수도 있지만, 호텔 담장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산쇼가 더 흥미진진했다. 쇼를 보고 숙소로 와서는 1층의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려봤다. 그냥 조금 맛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10달러가 날아갔다. 돈을 따겠다는 생각보다는 문화를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덜 아쉽다. # 03 _ 스탠퍼드대학과 금문교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1,000km 넘게 운전해 가야 한다.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선생님들과 번갈아 운전하다 보니 모하비 사막을 만났다. 근처의 ‘알타윈드 에너지센터(Alta Wind Energy Center)’에는 어마무시하게 많은 풍력발전기들을 볼 수 있다. 대관령 안반데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이다. 또한 사막의 건조한 기후를 이용하여 비행기와 비행기 부품을 보관하는 비행기 무덤도 볼 수 있었다. 태양광·풍력 발전에 매우 유리한 자연환경까지 갖춘 미국의 역량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는 드라마 촬영지 같았던 ‘1758 Crane Ridge Ct’란 곳에서 1박을 한 후, 본격적으로 시내를 돌아다녔다. 우리는 먼저 ‘스탠퍼드대학(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을 방문했다. 일요일이라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캠퍼스 안에는 ‘후버 타워’, ‘스탠코드 대학교회’, ‘토템폴’, 로뎅의 작품 ‘칼레의 시민’ 등 다양한 문화요소들이 있었다. 또한 여기는 잘 알려진 ‘스탠퍼드 감옥체험’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금문교를 지나면서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앵글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금문교를 통과할 때 실수로 미납한 통행료는 저녁때 온라인으로 결재했다. 미국은 벌금(fine)이 상당히 센 국가라서 외국인이 이런 비용을 미납할 경우, 추후 입국을 금지당할 수도 있다. 미국 경험이 많은 동료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금문교를 지나 세계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이라는 ‘롬바르드 스트리트의 경사로’를 운전해서 통과한 다음 해안가에 있는 ‘Pier 39’라는 곳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Pier 39’에서는 감옥섬 ‘앨커트레즈(Alcatraz)’를 볼 수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숀 코너리 주연의 ‘더 록(The Rock)’ 이란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 04 _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커피 때문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는 미국 국내선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반납한 다음, 우리는 ‘델타 항공’ 소속의 비행기를 타고 미국 서부해안선을 내려다보면서 이동했다. 미국 국내선은 저공비행을 하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진다. 시애틀에 도착해서는 다시 승용차를 렌트해서 시내로 이동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스페이스니들(Space Niddle)’ 이란 시애틀의 랜드마크를 본 다음, 거기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파이크 플레이스(Pike Place)’로 이동했다. 이곳은 어시장(fish market)이 유명하다. 어부 겸 소매상들이 수시로 노래를 부르며 물고기를 주고받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보디빌더 팔뚝만 한 생선을 럭비공 패스하듯 던지고 받는다. 또한 ‘스타벅스 1호점(The 1st Starbucks)’도 있다. 벼르고 있었던 텀블러와 머그잔은 샀지만, 커피 한잔할만한 공간은 찾지 못했다. ‘스타벅스 1호점 방문’이란 의미를 찾는 엄청난 인파 때문이었다. 이게 브랜드의 힘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명품 브랜드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 05 _ 밴쿠버에서 점프샷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이동하며 국경을 넘었다. 캐나다 땅을 밟는 순간 ‘마일(mile), 갤런(gallon)’이 ‘킬로미터(kilometer), 리터(liter)’로 ‘미국 달러(USD)’가 ‘캐나다 달러(CAD)’로 바뀐다. 우리는 우선 밴쿠버의 다운타운으로 가서 ‘가스타운 증기 시계(gastown steam clock)’를 찾았다. 19세기 말, 캐나다 벌목공들을 위한 주점을 만들고 유쾌한 대화를 즐겼던 ‘데이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Gassy Jack(수다쟁이)’였는데 여기서 ‘Gas Town(가스타운)’이 유래했다. 시계가 증기를 뿜으며 타종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기념촬영을 한 다음 바로 캐나다 플레이스로 향했다. ‘캐나다 플레이스(Canada place)’는 피오르 해안의 항구에 있는 거대한 복합공간이다. 수심이 깊은 해안 덕에 크루즈선과 대형 화물선들이 오갈 수 있다. 이곳은 캐나다인들이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곳이라 한다. 우리는 캐나다 플레이스를 옆의 공원을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다가,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그린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를 찾았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선유도 공원처럼 도시 재생을 통해 재탄생한 곳이다. 섬 안에는 공방과 기념품점 등 볼거리들이 많다. 이곳의 백미는,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프레이져 강의 하구에 있는 ‘버라드 브리지(Burrard Bridge)’에서 일몰을 즐기는 것이다. 다리 아래를 통과하는 통통배에 몸을 싣고 해안을 관람하는 이들도 꽤 된다. 마침 우리는 석양을 촬영하는 여류 사진작가 한 분에게 기념촬영을 부탁드렸고, 흔쾌히 승낙해 주신 덕에 ‘버라드 브릿지’를 배경으로 멋진 점프샷을 남길 수 있었다.
실패 없는 아이 (C.M. CHARLES 지음, 김대석·박우식 옮김, 박영스토리 펴냄, 334쪽, 1만9000원) 2014년에 출간된 ‘Building Classroom Discipline’을 번역한 책이다. 행동주의 ‘학급훈육’ 방법을 넘어 배려·책임감·내적 변화·자기규율 등을 통한 학생의 가치관 변화를 강조한다. 문제행동을 예방하고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는 자기규율 향상에 주목한다.
1-2-3 매직 : 청소년 편 (토머스 W. 펠런 지음, 박종근·이은미 옮김, 홍윤이 그림, 에듀니티 펴냄, 256쪽, 1만6000원) 청소년이 되면 몸과 마음에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가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혹스럽지만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아이들. 이런 변화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상황별 해법을 제시한다.
어찌 상스러운 글을 쓰려 하십니까 (정재흠 지음, 말모이 펴냄, 296쪽, 1만8000원) 훈민정음 창제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초기까지의 교과서 변화를 짚어가는 교양 에세이다. 일제 치하에서 한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지켜나갔던 선조의 피땀 어린 노력도 담았다. 여러 시대의 교과서 속 이미지를 풍부하게 실었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서적들도 소개한다.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나동혁 지음, 지상의책 펴냄, 280쪽, 1만4800원) 수학을 애써 외면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고단한 입시의 후유증으로 간단한 산수조차도 거부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이 책은 수학이 골치 아픈 문제해결 도구가 아닌 사고를 발전시키는 강력한 틀임을 강조한다. 수학적 사고를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읽는 책 (권혁진 지음, 다연 펴냄, 272쪽, 1만5000원) 세상에는 지루함을 절대 못 참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한곳에 오래 앉아 공부하는 게 곤욕일 수밖에 없다. 아마 대다수 사람이 이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이 책은 인내를 강요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벗어나 성격 유형에 맞는 독특한 공부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