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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01 오래된 일이다. 회식 자리에 부하 직원들과 술잔을 나누던 나의 부장님은 약간 취기가 오르는 듯했다. 더러는 진지한 톤으로, 더러는 유머러스한 어조로 말을 했다. “다들 알잖아. 우리 부서는 단결이 잘 되는 부서야. 오늘 기분이 좋다. 나, 여러분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야, 박 선생, 너 내 마음 알지? 말 안 해도 알지 응? 좀 잘해 봐. 잘해 보자고!” 평소의 쫀쫀함을 버리고 부장님은 대화의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회식 자리의 대화처럼 대화의 현재성 즉, ‘지금 여기’의 현재성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대화 장면이 있을까. 현재성? 그게 무슨 말인가.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지금 내가 무언가 진행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이 더더욱 중요해지는 느낌, 그것이 바로 현재성의 실체이다. 현재이므로 느낄 수밖에 없는 각별함이야말로 현재성의 요체이다. 부장님은 부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계속했다. 우리는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불만 담긴 건의를 하기도 했다. 부장님은 해명성 답변 속에 자신의 불만도 피력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장님은 미안하지만 먼저 자리를 뜨겠다고 했다. 누군가 부장님을 택시 태워서 보내 드리고 들어왔다. 해방의 분위기가 되었다. 업무에 대한 불만도 이야기하고, 부장님의 지도력(leadership)을 비판도 했다. 회식 뒷자리가 원래 그런 자리 아닌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부장님이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먼저 일어섰던 그가 30분쯤 뒤 다시 부하들의 회식 자리로 돌아왔다. 왜 다시 오셨냐고 묻자, 그는 씩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자네들 말이야, 나 없으면 내 욕하려고 그랬지? 그럴 거 같아서 다시 왔지. 하하 농담이야.” 우리는 박장대소했지만, 속을 들킨 거 같아서 찜찜했다. 나는 여기서 부장님의 성격이 어떻다는 둥, 그의 본심은 무엇이라는 등, 그런 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대화의 현재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현재 대화 중인 대화’가 발휘하는 힘을 말하려는 것이다. ‘현재 대화 중인 대화’는 기묘한 힘을 가진다. 이 힘은 합리적 추론도 무너트린다. 친목회 회장 뽑을 때, 참석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뽑자고 제안하여, 그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현재 대화 중인 사람들만이 결정한 그 나름의 불합리한 합리성이다. 더러는 도덕적 판단도 잠시 밀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대화의 현재성’이 만드는 사랑의 언약이야말로 허술함을 타고난다. 그 맹세가 훗날 배신이 되는 것은 현재성이 지닌 취약함 탓이다.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당도 할 수 없는 약속 즉,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다고 한 것도 ‘대화의 현재성’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대화의 현재성은 ‘참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강화하기도 한다. 부장님이 회식 자리로 되돌아온 것도 ‘대화의 현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부장님은 회식 자리 대화를 벗어나는 순간 미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그의 마음은 ‘현재의 대화(조금 전까지 행했던 대화)’에 아직 머물러 있는데, 몸이 그 현재를 떠난다. 순간, 그는 자기 존재의 단절이라고나 할까, 정서의 허전함을 느낀다. 대화의 현재성이 가지는 강한 구심력에 끌려 이내 다시 회식 장소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02 그날 회식을 마치고 나는 합승 택시(가는 방향이 같은 승객을 여럿 태우던 택시)를 탔다. 차 안에는 세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다들 나처럼 모임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듯했다. 승객 중 누군가 내게 행선지를 물었다. 내가 가장 멀리 가는 승객인 줄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가 행선지를 묻고, 말문을 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택시 기사의 나이를 묻자, 금방 나이들이 오간다. 형뻘이 된다는 둥, 동생뻘이라는 둥 하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직업에 불만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는 일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사는 일의 고단함을 말하면, 공감의 맞장구가 이어진다. 한때 잘 나가다가 망한 이야기, 새로운 시도를 희망 섞어 말하는 이야기도 나눈다. 마치 오래된 친구들끼리 만나 우정이 살아나는 듯한 분위기이다. ‘대화의 현재성’ 때문일까. 나도 대화에 잘 끼어든다. 아주 짧지만, 역동적인 대화 공동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첫 번째 승객이 내렸다. 주말에 복권 사보는 재미로 지낸다고 했던 사람이다. 남은 승객 중 누군가가 그를 가볍게 비난한다. 그런 요행수나 바라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나. 뭐 그런 비판이다. 나머지 두 승객도 조심스레 그 비난에 동조한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저 사람 가족들 진짜 힘들겠다는 둥, 톤을 높여 그를 욕한다. 우리는 ‘대화의 현재성’에 깊숙이 참여한다. 대화의 주체임을 과시한다. 두 번째 승객이 내렸다. 누군가 그의 흉을 본다. “돈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너무 잘난 척한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사람은 정말 밥맛없다.” 기사가 슬쩍 동조하며 끼어든다.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냥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유식하다는 듯이 말한다. “과도하게 잘난 척하는 사람은 마음에 열등감이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대화의 현재성’ 안에서 의기투합(意氣投合)이다. 세 번째 승객이 내렸다. 택시 안은 기사와 나, 둘만 남았다. 기사가 나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한다. 잘난 척하기는 지금 내린 양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겠네요. ‘대화의 현재성’이 나를 대화에 가담하도록 부추긴다. 내가 말한다. “잘난 척하는 사람을 조금도 못 봐주는 마음, 그게 바로 더 잘난 척하는 마음인데, 참 고약한 거지요.” 이러는 나야말로 잘난 척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건 나중에 든 판단이다. ‘대화의 현재성’이 이런 판단을 밀려나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내렸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총총했다. 무언지 설명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쯤 택시 기사가 나를 흉보고 있을 것 같았다. ‘대화의 현재성’은 그 뒤에 오는 다른 대화의 현재성에 의해서 금방 대상화되어 밀려난다. 나는 택시 안 대화에서 무슨 말들을 지껄였던가. 무엇에 홀린 듯했다. 03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화’는 은연중에 사람을 빨려들게 한다. 마력이다. 그것은 물의 소용돌이와도 같다. 아예 참여를 안 하면 모르지만, 참여하게 되는 순간, 그 대화를 역동하게 하는 한 축으로서 구실을 아니 할 수 없다. 만나서 대화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동의해 주지 않았을 일인데, 어찌 이야기하다 보니, 반승낙을 해 주게 되는 경우를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헤어져 돌아오면서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이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하다. 현재의 대화 상황에서는 ‘지금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다. 상대방보다 더 중요한 사람도, 지금의 대화 장면에서는 나와 상대방에 의해서 대상화된다. 예컨대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와 내 부모님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었는지 생각해 보라. 누군지도 잘 모르는 상대에게(그러나 왠지 마음이 끌리는 상대에게),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약간은 흉보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부모님이 소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화 상황에서는 나와 상대방만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리 소중해도, ‘대화 주체인 우리’가 대화에서 다루는 대상에 불과하다. 현재는 언제나 절박하고,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래서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하고 옆에서 소곤거리면 귀가 그리로 쏠린다. 시공간적으로 가까우면 같은 편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현재성으로만 매몰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일을 함께 모의했다가, 다시 뒤에 누구를 만나, 그 모의를 번복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현재의 밖’을 보지 못한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 ‘대화의 현재성’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교육적으로 유용한 시사를 주기도 한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친화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선생님과 나, 둘이서 ‘우리’가 되는 경험을 갖는 것이다. 학부모와도 ‘대화의 현재성’을 최대한 살려 본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우리’가 되어, 칭찬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대상을 공유하여, ‘대화의 현재성’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친밀과 신뢰를 미리 벌어두면, 이보다 더한 소통의 지혜도 없다. 협상에 능한 사람은, ‘대회의 현재성’이 주는 효과를 잘 살리는 사람이다.
2018년 우리나라 초·중·고생 희망 직업 순위 10위권 내에 새로 등장한 직업이 있다. 바로 인터넷 방송 진행자(유튜버)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20위권 밖이었지만 1년 새 순위가 급등한 것이다. 이는 1인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등으로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자란 요즘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튜브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세대를 일컬어 ‘유튜브 네이티브(Youtube Native)’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이제 유튜브는 단순히 한 종류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넘어 우리 생활 속에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로서 깊숙이 파고들었다. 교사의 유튜버 활동은 겸직 금지 위반일까? 이러한 변화는 비단 학생들만의 모습이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알리고자 하는 교사들도 앞다퉈 유튜브 방송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4월 교육부에서 실시한 ‘교원 유튜브 활동 관련 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국 934명의 교사가 유튜브 계정 976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독자 수에 있어서는 1천 명 미만이 879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만 명 이상도 1명으로 집계되었다. 유튜브를 통한 광고 수익이 있는 교사는 24명으로 17명이 월 10만원 미만이고 월 100만원 이상인 경우도 1명이 있었다. 이와 같은 교사의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교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다’, ‘겸직 금지에 따른 공무원 복무에 위배된다’는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반대로 ‘유튜브 활동의 목적이 수익창출보다는 개인의 취미생활이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하거나 교육 콘텐츠 제작과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사들의 교육적 활동에 대해서는 장려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이와 관련한 복무지침을 마련 중에 있다. 교사 유투버의 목적은 수익창출이 아니다 ‘유튜브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세대를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유튜브라는 미디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직접 유튜버로서 활동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인 시대적 변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이 소프트웨어 교육 관련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시는데,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찾아보게 돼요. 선생님이 직접 올린 영상을 보며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 편리하고 좋아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교사가 참여하는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면 학생들에게 또는 그 외의 대상들에게까지 도움이 되는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대표적인 교사 유튜버의 채널이다. 이와 같은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꿈선(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는 현직 교사들의 모임)’에서 운영하는 ‘초등 3분 과학’ 채널은 학생들에게 지역에 따른 교육인프라 불균형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픈 플랫폼인 유튜브를 선택하여 초등 과학 관련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여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한 수익창출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학생들을 생각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을 장려하기로 한 교육부의 결정과도 맞아떨어진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이 시대의 필연적 교육 그렇다면 학생들의 유튜브 활용, 또는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학생들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유튜브에는 사실 교사들이 올린 유익한 콘텐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건전하고 비교육적인 콘텐츠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학생들에게는 유튜브의 활용을 제한해야 할까? 또한 자극적인 영상으로 단순히 조회 수 올리기에 급급한 초보 유튜버들을 규제해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히 ‘YES or NO’ 의 문제는 아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Media Literacy Education)’에서 찾을 수 있다. 일찍이 해외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공교육에 반영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일례로 유네스코에서는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edia and Information Literacy: MIL)’의 개념을 정립하고 ‘선생님을 위한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육과정’ 문서를 발간한 바 있다. 또한 교사와 학생들에게 미디어/정보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 시행을 당부하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미디어 기기를 다루는 방법, 청중이란?, MIL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법, 광고, 미디어의 언어와 표현’ 등 실제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영국 BCS(British Computer Society, 영국컴퓨터협회)에서도 ‘컴퓨팅 기초 다지기’라는 교재 보급을 통해 코딩 교육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다루기, 저작권, 정보 검색, 미디어 정보의 제작 공유 평가 등을 학습하여 디지털 사회에서 미디어 정보에 대한 바람직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화하였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고력과 소양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유튜브로 대표되는 미디어 정보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적인 사고, 제작과 활용 등에 대한 교육은 제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필수가 될 소프트웨어 교육과 함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 또한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초등 실과나 중등의 정보교과 이외 모든 교과교육의 내용에서 포함돼야 하지만 보다 명확한 시수 확보를 통한 집중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유튜브 바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시 유튜브 이야기로 돌아오자. 과연 학생들의 유튜브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이제 대답은 명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니다!’ 열려 있는 유튜브 세상을 교육적 측면에서만 제한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보다 실제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보다 건전하고 유익한 콘텐츠를 활용하고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미래 직업으로 유튜버와 같은 미디어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희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의 필요성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의 중점 즉, 컴퓨팅 사고력의 중심도 단순한 코딩 능력이 아닌 무언가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나 피지컬 컴퓨팅 도구 등으로도 소프트웨어적 역량을 기를 수 있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도 넓은 의미에서 미래 사회 역량으로서 ‘소프트웨어 역량’을 기르는데 밑바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육현장에 부는 유튜브 바람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교사들의 유튜버 활동을 지원함과 동시에 앞으로 희망하는 교사들에 대하여 관련 교육 연수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주로 20∼30대 교사들이 활동하는 미디어 정보 콘텐츠 세상에서 교사라면 세대를 초월하여 활동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교사들에게 미디어 정보는 영상 친화력이 높은 우리의 초·중등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미디어 정보 콘텐츠 제작 및 공유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논의하여야 한다. 교사 유튜버의 경우 이미 교육청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여 올 하반기 적용하기로 한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미디어 정보 콘텐츠를 제작, 공유, 활동하는 학생에게 있어서도 적절한 정도의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것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보급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모든 교과 교육의 기반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함양할 수 있게 함은 물론 현재 실과와 정보교과에 편제된 시수 이외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실질적이고 집중적인 교육 시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옛말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생활 속 유튜브 바람도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므로 이를 즐길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 번째 만남 _ 당신의 교실에도 있는 아이 2016년은 특별한 만남이 있던 해였다. 국어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책을 돌아가며 읽을 때였다. 영주의 차례가 되자 힘겹게 한 글자씩 읽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중간 글자를 빼먹거나 이해되지 않는 소리로 읊을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영주를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영주와 나를 번갈아 살피며 내 반응을 기다렸다. 5학년이나 되었는데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아이가 당황스러웠다. 그만두게 해야 할지, 천천히라도 읽어보라고 격려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색한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니 5학년이 수행해야 할 모든 과제가 영주에겐 버거웠다. 또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영주를 아이들이 따돌리거나 무시하지 않을까 늘 경계했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이 오로지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열정만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쏟아부은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열정이 가파르게 소진되는 느낌을 받을 때는 나 스스로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 탓이 아니야’라는 쉬운 말로 넘겨버리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학교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항상 분주했다. 담임교사가 혼자 책임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사이 바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있던 아이는 6학년이 되었고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교실에 남겨져 있다. 비슷한 아이를 만날지 모르는데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피할 순 없었다. 두 번째 만남 _ 아이들은 왜 어려워할까? 필연적인 두 번째 만남이 찾아왔다.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격주로 모여 ‘아이들은 왜 읽기를 힘겨워할까?’부터 고민했다. 너무 당연해서 등한시했던 문제였다. 이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학습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향해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라는 화살을 쏠 게 분명했다. 아이들이 왜 배움의 고통을 겪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다. 기초학력부진의 이유는 매우 다양했다. 열악한 가정환경이나 평균보다 낮은 인지능력, 누적된 학습결손 등이다.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공부시간과 양이 적은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동안은 학습결과에 따라 기초학력부진학생을 가려냈다. 하지만 진짜 기초학력부진학생을 찾기 위해서는 학습결과에 드러나지 않는 학습과정에서의 맥락을 살펴야 했다. 단순 학습 소홀 학생에서부터 학습장애 학생까지 배움의 고통을 겪는 학생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기초학력부진학생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진단과 지원만으로는 기초학력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세 번째 만남 _ 희망적이면서 불편한 이유 현장에 있으면 많은 정책을 만난다. 만남의 깊이는 교사마다 다르다. 관련 업무를 하거나 기초학력정책에 관심이 있다면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학습부진 지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문이나 가이드북 하나 툭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기초학력정책의 효과를 입증하려는 듯 연말이면 관 주도의 각종 보고 행사와 사례 발표들이 잇달아 선보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검증된 방법이 아닌 개별 사례만을 다룰 뿐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부딪히는 기초학력부진학생은 원인이 다양하다. 난독증일 수도 있고 장애를 가진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 하나하나를 담임교사가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심지어 학교에 기초학력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없거나 그마저도 매해 업무담당자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정책을 창의적으로 집행할만한 전문성과 권한이 받쳐주지 않다 보니 예산의 많은 부분을 단순히 외부 강사를 고용하는 데 쓰이곤 한다.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안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사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빠지면 일이 풀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초학력정책에서도 사람이 중요하다. 두드림 학교, 학습도움센터, 책임지도제 등의 정책이 있지만 안전한 기초학력지원체제가 확보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기초학력을 지원하는 학습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1단계 안전망인 교사들을 위해 실습과 슈퍼비전을 동반한 연수를 개설하는 것이다. 연수의 목적은 기초학력부진학생의 특징과 기초학력지원을 위한 효과적인 진단·보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지원청 단위로 슈퍼비전을 포함한 직무연수를 개설하여 지역에 있는 기초학력부진학생 지도사례를 함께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예비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육대학은 다양한 학습자에 대한 이론과 해결을 실습이 아닌 강의만으로 제공하였다(특수아동의 이해, 아동발달과 학습, 생활지도와 상담 등 교육과정이 있지만 이론과 실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실습은 꼭 필요하다). 예비 교사들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동행프로젝트, 한국장학재단 다문화 멘토링 등을 통해 다양한 학습자를 만나 지도한다.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슈퍼비전을 결합하여 기초학력부진학생에 대한 사례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2단계 지원을 위해 학교당 1명 이상의 기초학력 전문교사(정규교사 중 활용)를 배치하는 것이다. 전문교사의 역할은 기초학력부진학생을 검증된 도구로 직접 진단하거나 교사들이 진단하도록 돕고, 발견된 기초학력부진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협의회를 주관하며, 직접 또는 강사 관리를 통해 학생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현장 교사들이 교육대학 혹은 시도별 학습클리닉센터 등에 파견되어 기초학력지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다(이미 경인교육대학교의 예가 있다). 이런 파견 제도를 활용하면 대학·외부 자원을 활용하여 현장 교사의 전문성을 집중적으로 높일 뿐만 아니라 추후 현장 중심의 기초학력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셋째, 3단계 지원을 위해 학습클리닉을 양적·질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상담·심리 등의 자격증 소지자가 주로 채용되고 있어 언어치료·학습치료 분야의 역량강화도 필요하다. 보통 기초학력부진학생의 경우 3가지의 지원 즉, 학습지원·학습전략지도·심리정서지원을 필요로 한다. 학습클리닉이 지원하는 20~25회기 이내의 상담 중 심리정서지원과 학습지원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학습 측면의 지원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마저도 기수혜자나 타 상담기관 수혜자는 지원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정서와 학습의 어려움을 동시에 겪는 학생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 연구와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다. 더 나은 만남을 위해 위에서 3단계의 안전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초학력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권한이 있는 교사를 거쳐야만 한다. 교사의 관심은 대부분 정책 자체이기보다는 아이들을 돕는 실제적인 방법에 있다. 정책은 이를 더 쉽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기초학력정책은 로빈슨(Robinson)의 말처럼 교실에서 교사와 아이가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그 장면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합의된 기초학력의 개념을 만나야 한다. 현장에서는 아직도 기초학력의 개념이 모호하다. 기초학력 부진의 이유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교육구성원 간의 기초학력의 개념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핵심 과제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현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발견하지 못해 중재 효과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음으로는 학생을 개별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검증된 진단도구를 만나야 한다. 현재 사용되는 진단·보정시스템이 학교 안의 학생들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지 객관적인 관점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 진단·보정시스템은 해가 지나면 누적된 정보가 초기화된다. 학급 담임과 업무 담당자가 매년 바뀌는 가운데 정교하지 않은 진단 도구로 인해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검증된 지도방법을 만나야 한다. 한 아이도 놓치지 않으려면 마지막 한 아이를 반응하게 하는 지도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저학년 한글교육을 예시로 들면, 찬찬한글이 있다. 모음과 자음을 입 모양과 음가로 가르쳐서 음운 인식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도 지도할 수 있다. 위의 세 가지가 기초학력부진학생을 만나기 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만남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 기초학력부진학생은 저학년부터 시작되어 학교에 다니는 전 기간에 걸쳐 배움의 고통을 겪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기초학력부진학생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지원이 강화된다면 각급 학교의 수고도 줄어들 것이다. 매년 더 나은 만남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현장 중심의 정책과 지원체제가 절실하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학교폭력예방법은 교육현실에 맞게 개정돼야 합니다. 학교 밖에서 발생한 폭력은 경찰이 담당해야죠. 수사권도 없는 학교에 모든 책임을 지우면 어떡합니까. 학폭법도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을 적용,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지난 4월 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에 선출된 한상윤 교장(서울봉은초)은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학폭법 개정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학폭법이 중등 실정에 맞게 만들어지다 보니 초등학교 현실과는 맞지 않는 대목이 많다”며 초등 저학년은 학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초협 운영과 관련해서는 정책 중심 교장회,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교장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주요 교육정책들이 현장과 괴리돼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는 교장회가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비판할 것은 따끔하게 충고하는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한 회장과 일문일답. 한국초등교장협의회 신임회장으로서 소감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의 협의체인 한국초등교장협의회(한초협)이 설립된 것은 1956년이다. 지난 63년 동안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경제발전을 통해 선진국에 들어서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것은 교육의 힘이었다. 거기에는 교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하지만 지금 교장선생님들의 위상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한국교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교육이 바로 서야하고 교육이 바로 서려면 교장선생님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어진 임기동안 교원이 존중받는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어깨가 무겁다.” 책임이 막중해 보인다. 한초협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회장 선거 때 내건 슬로건이 ‘품격있는 한초협’이다. 정부의 교육정책 중 잘한 것은 품어주고 잘못한 게 있으면 격조 있는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미에서 한글자씩 따왔다. 그러기 위해 정책 중심의 교장회를 만들고 교사들이 가르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장회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또 교장들이 교육정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생각이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신뢰받는(Trust)교장회, 함께하는(Together) 교장회, 투명한(Transparent) 교장회 즉, 3T 운영을 통해 스스로의 역량도 강화해 나가겠다.” 정책 중심 교장회를 표방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상당수는 현장 적용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출한 것들이 많다. 방향이나 내용은 좋을지 몰라도 교육현장과 괴리가 크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전체 교장의 의사를 묻는 긴급설문조사 등을 실시,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생각이다. 또 1년에 두 차례 학술포럼을 열어 한국교육이 나갈 방향성도 제시해 보려 한다. 우선 오는 7월 학교통합지원센터의 진로를 탐색해보는 포럼을 예정해 놓고 있다. 하반기에는 교장의 소진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학교장을 힘들게 하는 원인은 무엇이고 실태와 대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학교통합지원센터는 당초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들려온다. “학교의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준다길래 기대가 컸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현장의 요구와 거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학폭위를 통합지원센터로 이관한다고 하는데 어느 수준까지 할지가 명확치 않다. 궂은 일은 교사들이 다 하고 센터는 관리·감독만 하는 시스템이라면 의미가 없다. 또 호봉재획정도 교사의 자격변동만 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휴직 후 복직한 사람들 것까지 다 할 것인지 합의가 안 된 상태다. 형식논리보다 내용이 중요한데 그런 디테일이 아쉽다.” 교사들이 가르치는데 전념할 수 지원하는 교장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이다. 학폭법 때문에 현장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한다. 방향은 우선 두 가지다. 하나는 초등 저학년은 학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1학년 학생이 장난삼아 한 행위도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폭대위를 열어야 한다. 사소한 다툼까지 폭대위를 열어 처벌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게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선도위원회에서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학폭법이 중등에 맞춰 만들어지다 보니 초등학교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학폭법 적용 범위다. 방과후에 학원이나 개인적으로 떠난 해외캠프에서 발생한 사건까지 학교가 떠맡고 있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발생한 학생 간 폭력은 경찰이나 유관기관에서 맡아야 한다. 학교에 무슨 수사권이 있다고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학교폭력 개념에 속지주의를 적용, 학교 내에서 발생한 사건만 학교가 책임지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자체해결제 즉, 학교장종결제 역시 학폭법 개정의 주요 쟁점인데. “일부에서 학교자체해결제가 도입되면 은폐나 축소를 우려하는 모양인데 학교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선도위원회 등을 통해 자체해결제 적용 대상을 결정하게 하면 공정성 논란은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 임기 중 학폭법 하나는 꼭 개정하고 싶다.” 그동안 주요 현안에 교장회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앞으로 달라지는가. “어떤 정책이든 현장 적합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을 제일 잘 아는 교장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국가교육회의나 출범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에 초등교장 대표가 참여해 정책 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할 생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째를 맞는다. 그간의 교육정책을 평가한다면.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정책다운 정책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만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를 허용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역은 학교가 아니면 학생들이 영어에 노출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국민들 걱정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초학력은 교육의 핵심이다. 창의교육이니 인성교육이니 하지만 그런 교육도 기초학력이란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기초학력 부진의 원인은 워낙 다양해서 딱 꼬집어 말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학교의 역할을 묻는 질문이라면 교사들이 교육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 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일이 너무 많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교사 정원을 늘려 초등 저학년에서는 1수업 2교사제와 같은 방안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기초학력부진은 초기에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교권침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학부모들 민원에 힘들어하는 교사들이 많은데 학부모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옛말에 훌륭한 부모는 자신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고 했다. 자녀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성장한다. 부모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자식은 그 교사로부터 지식이든 지혜든 인성이든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배우기 힘들다. 학부모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 교사는 헌신적으로 희생한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 교사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선 선배 교원의 한사람으로서 좋은 근무여건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교장회가 얼마나 많이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자신하기 어렵지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임기 2년간 최선을 다하겠다. 아울러 선생님들도 교사로 출발할 때 마음먹었던 것 처럼 본연의 직분에 매진해 주길 기대한다. 초심을 잃지 말고 헌신해 달라.”
박완서 단편 거저나 마찬가지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한 번에 다 읽을 수밖에 없다. 가난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운동권 출신 이야기가 충격적인 데다, 이용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책을 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인공 ‘영숙’은 대학을 중퇴하고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한창 운동권이 위장취업을 할 무렵이었다. 주인공은 동료 직원이자 고교 선배인 ‘미스 서’ 언니의 부탁으로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글을 써주다 해고를 당한다. 그런데 ‘미스 서’ 언니는 운동권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겉으로는 민중을 위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주인공에게 원고 윤문을 시키고 쥐꼬리만 한 대가밖에 주지 않았다. 언니는 시골의 허름한 농가를 500만원 전세금만 내고 쓰라고 내준다. 500만원이면 ‘거저나 마찬가지’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이 언니의 농가에서 텃밭을 일구며 주변을 잘 꾸미며 살자 주변 땅값이 크게 오른다. 시대가 바뀌어 언니와 남편은 각각 시민단체와 공직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언니는 주말에 친구들을 몰고 와 자기 별장이나 주말농장처럼 사용하고 영숙을 파출부 취급한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언니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숙은 밀린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지만 남친은 자식까지 고생시키기 싫다며 거부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더 이상 ‘거저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지 않겠다고 외친다. 그 집 근처 숲에는 ‘꽃이 하얗게 만개해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때죽나무가 있었다. 그 대목을 읽어보자. ‘꽃이 만개한 때죽나무 아래는 순결한 짐승이나 언어가 생기기 전, 태초의 남녀의 사랑의 보금자리처럼 향기롭고 은밀하고 폭신했다. …(중략)… 나는 그가 머뭇거리지 못하게 얼른 그의 손에서 길 잃은 피임기구를 빼앗아 내 등 뒤에 깔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내 눈높이로 기남이의 얼굴이 떠오르든 때죽나무 꽃 가장귀가 떠오르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때죽나무 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래에서 보는 것이 최고다. 드러누워도 좋다. 때죽나무 아래에서 보면 꽃송이들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하얀 꽃이 일제히 핀 모습이 장관이다. 영숙이 눈을 떴을 때 무엇이 보였을까. 박완서는 이 글을 통해, ‘운동’을 내걸며 서민들을 이용해 먹고 나중에 권력과 부를 차지하면 ‘서민의 삶’ 따위는 나몰라라 하는 인간의 위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박완서는 꽃을 주인공에 이입(移入)시키는 능력이 탁월한데, 이 소설에서는 때죽나무꽃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꽃을 그리 길지 않게 묘사하고 지나가면서도 단숨에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 박완서 스타일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때죽나무는 산에서는 물론 공원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마취시키는 성분을 갖고 있어서 잎과 열매를 찧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떠오른다. 그래서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고 때죽나무라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또 가을에 주렁주렁 달린 때죽나무 열매를 보면 꼭 머리를 깎은 스님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떼중’이 변해 때죽나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꽃이 작은 종처럼 생겨 영어로는 ‘Snowbell’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졌다. 아래서 봐야 더 예쁜 때죽나무 이승우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에도 때죽나무가 비중 있게 나온다. 주인공 형제와 순미라는 여자의 삼각관계가 소설의 뼈대인데, 형은 집 근처 왕릉 산책길에 있는, 소나무를 감싸고 있는 때죽나무를 보면서 이를 자신과 순미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다. 동생이 이 두 나무를 처음 목격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 나무, 때죽나무가 있었다. 보는 순간, 그때까지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 때죽나무구나, 하고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중략)… 정말로 옷을 벗은 여자의 매끈하고 날씬한 팔이 남자의 몸을 끌어안듯 그렇게 소나무를 휘감고 있는 관능적으로 생긴 나무가 있었다. 흙을 파보면 모르긴 해도 뿌리들이 지상의 줄기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소나무를 휘감고 있을 것 같은, 그곳에 그런 나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승우는 작가 후기에서 “(집 앞의 왕릉에서) 굵은 소나무의 줄기를 끌어안고 있는, 매끄럽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여체를 연상시키는 때죽나무를 보았다”고 했고, 다른 글에서는 이 나무들을 본 것이 ‘식물들의 사생활’을 착상한 계기였다고 밝혔다. 나는 이 나무와 소나무를 보고 싶었다. 취재해보니 이 왕릉은 고종과 순종이 잠든 남양주 홍유릉이었다. 처음 홍유릉에 가서 이 나무들을 찾는데 실패했지만, 소설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2주 후에 갔을 때 이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홍릉과 유릉 사이 오솔길로 들어섰을 때 정말 소나무를 두 팔로 감싸 안은 듯한 나무가 있었다. 뿌리에서 두 줄기가 올라와 한 줄기는 오른쪽으로 퍼지고, 다른 한 줄기는 소나무 쪽으로 자라 두 팔을 벌린듯 소나무를 감싸 안고 있었다. 같이 간 아내는 “두 나무는 전생에 인연이 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랑을 나누듯 안고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때죽나무와 아주 비슷한 나무로 쪽동백나무가 있다. 쪽동백나무는 등산하다 보면 산 중턱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두 나무는 꽃과 열매, 나무껍질이 모두 비슷하지만, 잎과 꽃이 달리는 형태가 다르다. 때죽나무는 잎이 작고 긴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한 반면 쪽동백나무는 잎이 손바닥만큼 크고 원형에 가깝다. 꽃이 달리는 형태도 때죽나무는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차례에 꽃이 2~6개씩 달리지만, 쪽동백나무 꽃들은 20송이 정도가 모여 포도송이 같은 꽃차례를 이룬다. 쪽동백이라는 이름은 기름을 짜는 나무의 대명사인 ‘동백’에다 쪽배에서처럼 ‘작다’는 의미의 접두사 ‘쪽’을 붙인 것이다. 서울 인왕산 생태탐방길을 걷다 보면 때죽나무숲이 있다. 애들이 어릴 때, 까까머리 동자승들이 모여있는 듯한 때죽나무 열매들을 만지며 그 길을 자주 걸었다. 때죽나무 꽃이 진한 향기를 뿜어낼 무렵,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영숙이 눈을 떴을 때 무엇이 보였을지, 소나무를 감싼 때죽나무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K팝이란 말은 없었다. 그냥 가요, 혹은 한국대중음악이었다. 작곡가 주영훈이 제작한 댄스그룹 이름이 ‘K팝’이었을 정도다. 그땐 아무도 가요가 ‘외국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고정관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깨뜨린 사람은 보아다. 이전에도 2인조 그룹 클론이 대만 등에서 한류(韓流)를 일으킨 사례가 있었지만, 보아는 새로운 성공사례를 개척했다. 통상 해외진출이란 건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난 뒤 그걸 기반으로 한다는 게 통념이었다. 보아는 국내에서 데뷔(2000년)를 하긴 했지만, 일본에서 먼저 인기를 얻었다. 2002년 무렵 보아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역수출’ 됐다. 이것은 한국에서 준비한 가수가 해외시장, 그것도 일본처럼 커다란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비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비는 보아와 함께 한국 가수의 ‘기준’을 올려놓은 인물이다. 비는 ‘한국인은 격렬한 춤과 라이브를 동시에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깼다. 비 이후부터 소위 ‘아이돌’ 가수도 춤과 노래를 동시에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는 기준을 요구받았다. 스스로 진화해온 K팝 다음은 동방신기다. 2004년 데뷔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이듬해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한 번 ‘신인가수’로 데뷔했다. 가수 자체의 역량이 워낙 뛰어난 데다 일본시장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면서 동방신기부터는 한국 가수가 오리콘 차트 정도를 점령하는 건 더 이상 ‘사건’이 아니게 됐다. 문제는 이들이 선배 가수인 H.O.T가 해체하는 원인이 됐던 ‘소속사와의 분쟁’을 답습했다는 점이다. 5인조 동방신기는 2010년 무렵 두 개의 팀(동방신기, JYJ)으로 분할됐다. 이 무렵부터 ‘7년 징크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통상 가수와 소속사의 계약기간이 7년으로 설정되는데, 이 7년을 넘기는 인기가수를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빅뱅은 이 징크스를 깨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2006년 데뷔한 빅뱅은 2011년 기존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와 멤버 전원이 재계약했다. 빅뱅의 사례는 어떤 인기가수가 하나의 소속사와 오래 일할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재계약 이후의 빅뱅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횟수의 공연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한국 대중들은 국내 기획사에서 ‘상품’으로 기획된 5인조 팀이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현시점 가장 진화된 형태의 K팝 가수는 물론 방탄소년단(BTS)이다. 뛰어난 춤과 노래, 자작곡 능력, 소속사와의 끈끈한 관계 등 지금까지의 성공사례가 모두 담겨 있다. 그 결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가수가 한국어로 부른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빌보드 1위’를 기록해도 천지가 개벽하지 않고 세상은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롭고도 어려운 문제 K팝은 이렇게 스스로의 문제를 그때그때 고쳐가면서 천천히 진화해왔다. 문제점이 도출되면 그걸 보완한 팀이 다음으로 나타나는 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새롭고도 어려운 문제가 놓여 있다. 최근 마약 사태로 연예계를 은퇴한 박유천(동방신기/JYJ), 성 접대 논란으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승리(빅뱅)는 모두 ‘성공한 K팝 스타’ 출신이다. 연예인을 꿈꾸는 모두가 그들처럼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고, 흘리고 있다.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그들을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박유천과 승리 사태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을 사랑해준 대중을 상대로 수많은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유천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기자회견까지 자처하며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 웅변했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 스스로 퇴로를 막았다. 이들의 영혼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는 아직도 전부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고 큰 성공을 거둔 가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인격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K팝 시장 전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인성’이야말로 연예인의 새로운 자질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건 마치 대한민국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비슷하다.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하며 그 밖의 다른 문제는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는 과거의 사고방식은 21세기의 가치관과 격한 충돌을 빚고 있다. 이와 똑같은 문제가 문화산업에서도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승리가 연예계를 은퇴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노래 ‘셋 셀 테니’의 가사를 보면 ‘어차피 동물이란 생각을 해’라는 구절이 있다. 이 가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묻는다. 이대로 좋은가?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대부분 사람의 생각 속에는 선비들 하면 으레 올곧은 삶의 표본으로 각인되어 있어, 선비들의 공부 자세 또한 대단히 모범적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문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비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선비는 기본적으로 과거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수험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비들이 어떻게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는가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史實)들이 비로소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다 그 중 먼저 언급할 것은 임기적(臨機的) 학습이다. 이는 시험 때에 닥쳐서 학습한다는 것으로서, 평소에는 학습에 치중하지 않고 있다가 과거시험 때가 다가오면 그때 가서 급하게 공부를 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비들이 어떻게 벼락치기 공부를 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가을에 초시를 실시하고 봄에 이르러 복시를 실시하기 때문에, 유생들이 겨울 3달 동안에 기억하고 외우면 요행으로 과거에 뽑힐 수 있다고 여겨 모두 제술에 전념하고 경전 학습에 힘쓰지 않습니다. - 성종실록 18년 12월 정축 지금까지 사람을 뽑는 법은, 그해 가을에 초시를 뽑고 이듬해 봄, 회시 때 강경시험을 실시하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올가을에 초시에 합격하면 8월부터 내년 3월 때까지 모두 8개월이니, 이때에 글 읽기에 힘을 써도 강경시험을 볼 수 있겠다”하여, 이 때문에 학습을 폐기하고 글을 읽지 않고서 놀러 다니며 이야기나 하면서 날을 보내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이런 풍조입니다. - 성종실록 19년 9월 갑자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대과의 경우 1차 시험인 초시는 가을에 제술시험(일종의 논술시험)을, 2차 시험인 회시(복시)는 그 이듬해 봄에 강경시험(일종의 구술시험)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흔히 당시 선비들은 초시와 회시에 대한 모든 공부를 마친 다음 과거에 응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먼저 초시만을 준비해서 만일 여기에 합격하게 되면, 바로 이때부터 회시 준비를 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초시와 회시 사이에 8개월이라는 공백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8개월 내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겨울 동안인 3개월만 학습하려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경시험 과목인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응시 전에 대체로 학습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개월 동안, 심지어 3개월 동안에 경서 공부를 마치려 했다는 것은 무모한 행태였다고 할 수 있다. 편법으로 시험을 연기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정상적 행태는 다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당시 과거 응시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여러 가지 편법을 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우선 이와 관련된 사료를 보기로 한다. 이번에 한성시에 합격한 유생들이 병이 들었다는 증명서를 받은 자가 상당히 많은데, 그 무리가 어찌 다 참으로 병들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요행으로 한성시에 합격하고서 강경시험 보기를 꺼리는 자일 것입니다. …(중략)… 이런 경우는 다음 과거시험(회시)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 성종실록 21년 9월 기사 당시에는 초시에 합격하면 바로 그다음 단계인 회시에 응시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3년 후에 실시하는 차기 과거시험의 회시에 응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수험생 본인이 응시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시험 연기가 허용되었다. 그런데 당시 유생들은 초시(한성시)에 합격하더라도 회시에 응시하지 않고 병을 핑계로 연기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허위로 병을 칭탁하면서까지 시험을 미루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다음의 기록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초시에서 합격한 자가 글을 더 읽고 강경시험에 응시하려는 속셈으로 병을 핑계 대고 글을 충분히 읽은 다음에 와서 시험 보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가시험에 있어서 공평하지 못한 일이니,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병이 아니면 허락해서는 안 된다. - 중종실록 27년 9월 기사 그 이유는 한마디로 유생들이 초시 합격 후에 곧바로 회시에 응시하는 것보다는 회시를 연기하여 더 많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면 그만큼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이 기록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시험 연기 이유가 그들이 회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유추할 수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앞서 초시에 합격하고 벼락치기로 회시에 응시하려 했으나 결국 그러한 계획이 실패로 끝났던 유생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의 기록 내용을 보면 당시에는 상당수 유생이 허위 증명서를 제출하고 시험 연기를 허락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허위 증명서를 제출하여 연기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명백한 범법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연기를 통해 3년이라는 시험 준비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초시 후에 곧바로 회시에 응시하는 유생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편법이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그렇다면 당시 선비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먼저 평상시에는 학업에 태만하다가 과거시험이 코앞에 닥쳐야 학습에 매진했던 경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임기적 학습 행태는 단순히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을 강조했던 당시의 시선에서 그러한 행태는 불성실함의 증거였기 때문에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임기적 학습 행태는 다음과 같이 규범적 차원이 아닌 수험 전략의 차원에서 이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은 나름대로 효과적인 시험 준비 방법을 추구하게 되는데, 평소에 지속적으로 학습에 매진하기보다는 시험 때가 임박해서 집중적으로 학습을 하는 것이 실제 시험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흔히 망각의 곡선으로 알려진 인간 기억능력의 실상 즉, 기억은 일관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만 효과가 크고 그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학습에 매진한다는 것은 학습의 효율성 즉, 투입한 시간 대비 학습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험 때가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단지 학습의 성실성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당시에는 불성실한 태도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학습 전략적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편법적 시험연기 행태도 이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과거시험 공부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행의 과정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에 걸쳐 응시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종일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마땅히 그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당시 과거시험은 많은 응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승부를 건다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모든 시험 단계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선비들은 우선 초시만을 준비하여 합격하게 되면, 시간을 갖고 다음 단계 시험인 회시를 준비하기 위해 편법을 써서라도 연기하려 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덧씌워진 ‘성실인’이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단지 ‘수험생’이었다는 관점에서만 들여다본다면, 앞서 살펴본 모습들은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였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 중에 편법적인 행태마저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만일 오늘날의 수험생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그들 역시 똑같은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험이 수험생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그들보다는 그 주범인 시험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거리도 멀고, 그렇다고 안전을 보장받지도 못하는 그곳. 여행 조금 다녀봤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두는 그 선택지. 바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간직한 동화 같은 대륙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여행을 결정하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인터넷을 수소문해 봐도 서점에 가서 책을 읽어봐도 내가 원하는 정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한다면,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부분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여행이 아닌 도전으로 생각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방법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방법은 모든 여행이 그렇듯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모든 것이 각본처럼 짜여 있는 패키지로 가느냐, 스스로 각본을 만들어내는 자유여행으로 가느냐.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의 특징 중 하나는 ‘일정이 정해져 있고 투어를 이끄는 투어리더도 있지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드라이버도 있고, 세계 곳곳에서 참여하는 여행객들과 밤새도록 다양한 의제로 비공식적인 정상회담까지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이 독특한 방법은 바로 ‘트럭킹’이다. 트럭킹은 25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만능 여행기지’이다. 트럭 짐칸을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공간과 수하물 보관용 락커로 개조했고, 그 밑으로 텐트·각종 취사도구·식재료 등을 모두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트럭 안에 여기저기에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이야기하며 여행을 한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낭만의 결정판’이었다. 매일 아침 투어가이드는 우리 모두를 불러놓고 오늘 일정을 브리핑 한 다음,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해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 사람 같았으면 ‘좋습니다!’라고 끝내겠지만,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기 의견을 마구마구 분출해냈다. 차라리 저렇게 내 뜻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이 ‘세상을 더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쨌든 이동부터 투어까지 모든 과정은 민주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선 어느 누구도 불평불만을 하진 않았다. 여행 기간 동안 우리의 숙박 장소는 정해져 있었지만, 식사 장소만큼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이 될 때 쯤, 밥 먹기 좋은 곳을 발견하면 ‘오늘 점심은 여기서!’라고 소리 지르면 차가 멈춘다. 그러면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트럭에서 취사도구와 의자를 꺼내 식사 준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은 화려한 조명과 유려한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닌, 대자연 속 어딘가 상상도 못 했던 곳에서 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먹는 밥이 단돈 천 원짜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프리카의 트럭킹 업체는 크게 세 군데이다. 업체별로 특징과 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캠핑을 통한 여행도 중요하지만, 옵션으로 쾌적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자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투어 일정은 짧게는 4일, 길게는 70일 가까이 진행되기 때문에 트럭킹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여행의 방법, 여행의 기술을 체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대자연의 장엄함 ‘사막 속으로’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과거 독일의 식민 지배를 받아 지금도 독일인들의 생활양식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하지만 그들이 간직해온 유구한 역사의 뿌리가 깊게 박혀있어 아프리카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나미비아 여행의 시작점인 수도 빈트후크는 수많은 배낭여행객들이 ‘도전’을 시작하는 곳이다. 나미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막이다. 아열대고압대의 영향이 아닌 한류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나미브 사막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빈트후크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스와코프문드이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 하지만 등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막. 물과 사막의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그곳을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디 시각만이겠는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눈을 감고 있으면 저 멀리 모래바람이 부는 소리까지 들리니 청각을 자극하고, 짜디짠 바다내음과 함께 건조한 모래의 냄새까지 맡고 있자니 후각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그곳! 독일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이 휴양지에서 이색적인 사막을 뒤로하고 태양처럼 붉은 사막의 심장으로 점점 들어간다. 이곳에서 시작한 트럭킹은 아르헨티나,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했다.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 책을 펴놓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모래바람을 그대로 맞이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여행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문학이 아닐까하는 사념에 빠져보기도 했다. DUNE45. 사막에 있는 모래 언덕에 숫자를 붙인,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마흔다섯 번째 모래사막이다. 그 높이가 엄청나 정상까지 오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려올 때 능선이 아닌 가파른 경사로 달려 내려오니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붉은 모래로 만들어진 높은 언덕 그리고 저 멀리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누가 더 붉게 타오르는지 내기라도 하듯 빛과 색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사막의 일출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는 용기까지 불어 넣을 만큼 장엄했다. 차로 2시간 거리를 더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Deadvlei(데드블레이)이다. 완벽한 화각과 적당한 보정이 합쳐지면 이곳이 지구인지 아니면 또 다른 행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신비로웠다. 붉음으로 경쟁하던 Dune45와는 달리 바닥은 석회암질의 회백색, 이를 둘러쌓고 있는 모래는 붉은색을 나타내니 시각이 혼란스러워 감각의 마비증상까지 느낄 정도였다. 호기심 가득안고 도착한 아프리카에서 색깔의 향연에 심취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건조하다 못해 모든 것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이곳에서 색깔을 통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가 주는 특별함 중에 하나였다. 화려함과 초라함, 동전의 양면과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한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직 깨끗하게 청산되지 않은 아픈 역사가 곳곳에 스며있어, ‘여행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나미비아 스와코프문트에서 시작된 트럭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도착해서야 완전히 끝이 났다. 그간 매일 열띤 토론과 뜨거운 파티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우린 차를 렌트해 우리만의 투어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국제면허증 소지자가 나밖에 없어 운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지만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기름 값으로 그럴듯한 역할을 나누어서 그런지 어느 하나 불공평해 보이진 않았다. 화려함과 세련된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사막생활이 문명과 단절된 상태였던지라 케이프타운에서의 여행은 작은 움직임마저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드넓은 사파리,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비현실적인 절벽 아래에 펼쳐진 화려한 도시까지 케이프타운은 무지개와 같이 다양한 색깔을 가진, 한시도 지겨울 틈이 없는 곳이었다. 케이프타운을 상징하는 테이블마운틴은 말 그대로 넓은 탁자처럼 정상부가 평평하게 만들어진 산이다.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체력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직접 등산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등 뒤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화려한 도시의 조화를 각도를 높여가며 마주하다보면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케이프타운 도심을 보고 있으면 탁자 같은 이 산이 케이프타운의 모든 아픔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든다. 넬슨 만델라가 27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섬 로벤 아일랜드는 해변가에 있는 워터프론트의 작은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약 20~30분가량 배를 타고가면 섬에 도착하는데, 그 느낌이 마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사뭇 비슷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섬에 누군가 억울하게 갇혀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밀려오더니 이 섬을 떠나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게 했다. 넬슨 만델라가 갇혀있던 감옥의 손바닥만 한 창문에 서있노라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케이프타운이 보였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을 감싸고 있는 테이블마운틴도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아름답지만 우울한 그 도시에 대한 깊은 고찰에 빠져들었다. 케이프타운 중심에서 출발해 약 40분가량을 차로 달리다 보면 희망봉에 도착한다.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곳은 인도로 가는 항로로 개척되면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개칭되었다. 무엇보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향해 끝없이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으면 마치 대륙을 정복한 탐험가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한 나라의 땅 끝을 밟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한 대륙의 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가히 정복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이러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산과 바다의 경계에 있는 도심은 서구의 화려함과 아프리카의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여행지였다. 음악만 흘러나오면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다 못해 온몸을 내던지고 있으니 여행에 대한 권태가 느껴질 때쯤 과감하게 도전해봄직한 장소로 추천한다. 에필로그 25톤 안의 작은 세계. 세계를 떠도는 것은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25톤 안의 일주일은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의 표정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고, 하루의 시작은 인생의 시작, 하루의 끝은 인생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만약 내게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 일주일의 트럭킹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난 차라리 일주일의 트럭킹을 선택하리라. 내가 나를 먼저 아는 것이 우선이지, 자신을 모른 채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 주변사람과 어울리는 것, 내 생각을 또렷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이 과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던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 일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내 모습 그대로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다 함께 놀자 그림놀이터 (참쌤스쿨 그림놀이터 지음, 에듀니티 펴냄, 240쪽, 1만7000) 현직 교사들이 실제 교실에서 실천해본 그림놀이 50가지를 소개한다. 경쟁·창의·추리·친교·협동 등 5개 사회적 역량별로 학년과 교과에 따라 해보면 좋은 놀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각 놀이마다 준비물부터 참여 인원, 소요시간, 방법과 규칙이 상세히 소개돼 있어 쉽게 보고 따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박일준·김묘은 지음, 북스토리 펴냄, 378쪽, 2만 원) 디지털 기술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동시에 디지털 기술이 우리 미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짚어준다. 간단한 애니메이션이나 신문·음악 등을 무료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여러 사이트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알려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책이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김영사 펴냄, 284쪽, 1만3800원) 6살 때부터 시작하는 프랑스식 철학 교육법을 다뤘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행복·사랑·친구·죽음 등 삶과 연결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이끄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명상방법과 철학교실 운영을 위한 기본 규칙, 20가지 주요 철학 개념 등을 제시한다.
초등 온작품 읽기 (로고독서교육연구소 지음 | 맘에드림 펴냄, 368쪽, 1만5500원) 두루 넓게 배우며,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명백하게 분별하고, 성실히 실천하며 책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 정약용의 ‘일권오행’ 독서법을 실제 학교 수업에 적용한 교사들의 경험을 담았다. 작품 선정부터 연극 등 종합 활동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내 말 사용 설명서 (변택주 지음, 차상미 그림, 원더박스 펴냄, 216쪽, 1만3500원) 아직 소통에 서툰 십대들이 알아두면 좋을 대화습관을 열다섯 살 소녀와 도서관 할아버지의 대화로 풀었다. 제 뜻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받을까 하는 안타까움, 엄한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 등 십대 소년소녀라면 한 번쯤 가져봤음직한 고민을 할아버지의 다정한 말투로 해소해준다.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 (김보영·박상준 지음, 이지용 감수, 지상의책, 252쪽, 1만4800원) 쓸데없고 엉뚱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논쟁거리가 우리 주변에 제법 많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같은 질문이 몇 년 새 SF적 상상에서 직면한 현실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네 인물의 SF적 토론과 대화를 통해 상상력을 한껏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프를 만든 괴짜 (헬레인 베커 지음, 정주혜 옮김, 마리 에브 트랑블레 그림, 담푸스 펴냄, 44쪽, 1만800원) 그래프를 만든 사람은 누굴까? 이 책은 직관적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기억도 오래 가게 해주는 인포그래픽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윌리엄 플레이페어의 삶을 조명한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숫자를 쉽게 풀어낸 그래프조차 어려워한다.
코딱지 대장 버티 ① 지렁이편 (데이비드 로버츠 기획·그림, 앨런 맥도널드 글, 고정아 옮김, 아이들판 펴냄, 100쪽, 1만2000원) 사람들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만 용케 골라서 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개구쟁이 버티. 좋지 않은 습관의 총 집합체 같은 어린 소년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안한 모습에 어른들의 핀잔이 이어지지만, 이에 주눅 들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이 흥미롭다.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 듯 되었고, 성역은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교육기관으로 존중받았던 학교는 이제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샌드백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국교육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전통적인 가치는 설 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가치관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과연 그에 따른 삶의 모습이 타당한 것인지 새로운 가치 규범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등장하는 젊은 청년이 떠오른다. 부친의 강권으로 소피스트에게 궤변술을 배운 청년은 “아이보다 어리석은 어른은 맞아도 싸다”며 부모를 때리고도 당당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교직과목 교육철학 및 교육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교육사상가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아쉽게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너무나 위대한 철학자였던 탓에, 우리는 그들이 어떤 배경과 문제의식에서 자신들의 철학사상을 생성하게 되었는지 탐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회적 일탈과 혼란에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우리가 배워온 것보다 훨씬 잔인했고, 비이성적·비민주적이었으며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과 이익에 따라 움직였을 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 선동가들은 탐욕스러웠지만, 지혜를 갖추지 못했고, 민중들은 선동가들의 탐욕을 알아챌 만큼의 식견이 없었다. 아테네인들의 일탈과 만행에 대한 반성은 고스란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몫이었다. 선동가와 민중은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Apologia, 24a)’며 소크라테스를 기소했지만 실제 아테네를 타락시킨 것은 이들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이 다루어지는 변론에서 그는 변명 대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역설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정해놓은 악법도 법이라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것이 아니다. 탐욕과 오만이라는 육체적 쾌락에 집착했던 아테네인들에게 정신적 가치를 강조했고, 당연한 진리로 인정되었던 것들에 이의 제기를 했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기소되었지만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법(nomos)과 정의(to dikaion)의 편에 서서 법률과 법률 제정자인 국가 신을 믿는다. 그런 면에서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는 신들의 음성(daimonion)은 사실 양심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소리가 들려 행동을 바로잡도록 도와줬다는 음성은 소크라테스의 사형 선고 때는 다행스럽게도(?) 침묵한다. 죽음이 인간에게 최선인지 최악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Apologia, 29b)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장 훌륭해지도록 하는 것(Apologia, 29d)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민중들의 불편한 진실을 헤집어놓았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불편한 마음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민중들은 소크라테스가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처자식을 데려와 눈물로 호소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민중들의 비뚤어진 오만에 대해 ‘가르치고 설득할 것’을 선언한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유인답지 못한 행위를 거부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시도하는 모습은 결국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임을 상기시킨다. ‘가장 쉽고 훌륭한 삶의 방식은 바른말 하는 남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최대한 훌륭해지는 데에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희극작품이 가장 훌륭했는지 결정하는 것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이성적인 판단’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은 혼란스러웠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였을 것이다. 지도자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조한 플라톤 플라톤의 교육론이 오늘날에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은 그 주장의 실현 가능성 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귀족들의 정치참여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를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는 것(Epistolai, 326e)’이다. 가장 지혜롭고 공평무사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민주파와 귀족파로 나뉘어 목숨을 걸고 정쟁을 벌였던 아테네 사회가 혼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돈만 밝히는 부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어 사회갈등이 폭발하게 되고, 민중의 지지로 집권하게 된 선동가는 독재자가 되어 민중들을 노예로 만들 것’이라는 통찰은 그가 왜 서양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지를 보여준다. 계급론자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는, ‘민주사회의 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플라톤의 주장은 사실 그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히려 플라톤이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의 전문성과 공공성에 있다. 교사를 포함해 모든 공직자와 지도자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 전문성은 그가 지녀야 하는 재능(physis)이 최대 상태로 발휘된 것이라면, 공공성은 그가 공익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공평무사함의 완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성은 오늘날 일부에서 제기되는 전문가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과는 구분된다. 더 높은 지위일수록 더 큰 책임이 부여되고 전문성과 공공성의 기준도 까다롭게 적용된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 수십 년의 교육과 경험을 요구하고서는 어떠한 부귀영화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사유재산과 처자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현실 속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다. 하지만 ‘이데아(IDEA)는 모범의 기능을 한다’는 플라톤의 말을 곱씹어보면,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습관의 변화 없이는 철학자의 완성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루 두 끼씩 배불리 먹고, 여자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에서 철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은 철학자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보통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며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수도자의 모습임을 확인하게 한다. 자유보다 자율을 강조 비트겐슈타인과의 논쟁으로도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적들에서 플라톤의 주장에 전체주의적 획일화와 인종주의, 우생학의 공포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대체로 포퍼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국가에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금·은·동의 구분방식,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생산자 집단에 대한 무관심 등은 플라톤이 대다수의 시민을 마치 노예처럼 취급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제기는 플라톤이 보기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에게 정의는 ‘각자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정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저작이었고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상국가의 모형과 그 국가의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공공성을 지닌 수호자와 지도자의 양성을 추구했다. 국가에서 생산자 교육이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과거 농사일이 그렇듯 대를 이어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정의와 직접 관련 없는 주제에 대해 서술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농사비법을 다루었던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을 기억하면 그만이었다. 플라톤의 교육을 엘리트 교육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시민교육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시민들이 철학자의 말을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철학자는 현명한 시민들 속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에게 시민교육은 철학자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자유 대신 자율(autonomia/autokratia)을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자유는 책임지지 않아도 될 권리를 낳게 되고 그것은 모든 사회적 권위의 붕괴와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저자 레나타 살레츨의 지적처럼 오히려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 장애에 빠지거나, ‘아무거나’ 선택하거나 선택권을 넘기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선택과 책임을 지는 자세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소크라테스를 현자로 알아볼 수준의 지혜가 시민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플라톤은 시민들의 충분한 교양을 위해 다양한 방향에서의 교육을 제안하고 지혜를 갖춘 원로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획한다. 머뭇거리는 원로들에게 술을 먹여서라도 젊은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모범을 보일 것을 제안하는 법률의 한 구절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플라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다도해 푸른 바다, 하얀 등대가 어우러진 조그만 섬. 포말처럼 하얀 바위가 햇살에 유난히 눈부신 곳. 뱃길을 따라 오가던 사람들은 그곳을 백야도라고 불렀다. 교실 창문을 열면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여수안일초등학교 백야분교장. 오래되고 낡은 섬마을 학교가 아이들의 꿈을 담은 아름다운 벽화로 채색되면서 재탄생했다. 바다를 닮은 아이들 1932년 세워진 백야분교장. 한때는 여수시 화정면의 중심지로 바닷가 아이들의 재잘댐이 가득했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이촌현상으로 지금은 전교생이 8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분교장이다. “학교가 많이 낡았어요. 지어진 지 오래되고 거센 바닷바람을 견디다 보니 별수 없었죠.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보금자리인데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 선생님들과 아이디어를 모으다 벽화를 생각해 냈습니다.” 이 학교 이경애 교장은 헐벗은 외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아이들의 예술적 소양과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벽화 그리기를 시작했다. 바다를 닮은 아이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이 교장은 그래서 벽화 주제를 ‘등대와 바다와 배’로 정했다. 학교가 위치한 백야도는 하얀 바위와 등대로 유명한 곳. 섬 주위에 파도가 거세 등대는 어부들에게 생명의 불꽃같은 존재였다. 다도해 수많은 섬들이 있지만 여행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난히 아름다운 이곳을 첫손에 꼽는다. 벽화 작업에는 분교장 전교생 8명과 4명의 교사와 강사가 참여했다. 지난 4월 15일 드디어 한 달간의 작업 과정을 거쳐 한 폭의 벽화가 완성됐다. 바람이 불때마다 파르르 떨던 외벽은 말끔히 사라지고 파란 하늘, 넘실대는 파도와 하얀 종이배, 그곳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과 어우러진 아이들이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뿐 아니다. 바닷길을 따라 오르던 교실 앞 계단은 무지개로 변신했다. 빨주노초파남보, 곱게 칠해진 무지개 계단. 일곱색깔 줄기 따라 꽃과 별이 수 놓였다. 계단을 건너면 꿈과 상상이 금방이라도 현실로 나타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교장은 백지 상태로 비어있는 다른 쪽 외벽도 이번 학기 중 벽화로 꾸밀 계획이다. 바다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그들에게 ‘백야’에서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고 싶어서다. 작은 학교 큰 교육 사실 백야분교장은 한때 폐교 위기에 몰릴 정도로 학생수가 줄었었다. 하지만 여수시와 연결된 연륙교가 생겨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여기에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교육이 돋보이는 알찬 학교라는 입소문이 퍼지자 학생들이 찾아왔다. 지난 2017년 부임한 이 교장은 ‘작은 학교 큰 교육’이란 슬로건으로 학교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당당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기회복능력을 길러주고 싶어요.” 농어촌지역 소인수 학교다 보니 아이들이 협동학습에 취약하고 자존감이 다소 낮은 경향을 보였다. 한없이 순박하지만 어딘가 움츠려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던 이 교장은 스스로 도전하고 꿈을 향해 매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을 했다. 먼저 자기주도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학예회와 같은 학교행사나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게 했다. 매년 한 차례씩 갖는 시낭송 대회도 학생들이 주관하고 교사들은 에스코트 역할만 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교실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어났다.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아이들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해진 것이다. 이 교장은 아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여럿이 함께하는 학습 활동에선 구조적인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감 365’로 이름 붙여진 예술감성교육을 통해 사물놀이·바이올린·피아노와 같은 하모니를 중시한 예술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번처럼 학생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제작한 벽화도 협동교육의 일환이었다. 지역사회의 지원도 끌어들였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처럼 지역사회기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 지역특성을 살린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해양수산연구소의 도움으로 실시한 ‘바다생태프로그램’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역이 살려면 학교가 살아나야 한다 학생들의 학력은 어떨까? 최근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의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지만 백야분교장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오히려 1대1 맞춤학습이 내실 있게 운영되고 하브루타 학습, 거꾸로수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학생들 간 서로 묻고 답하면서 발표력도 좋아지고, 흔히 3R로 설명되는 말하기·읽기·쓰기 중심의 학력도 쑥쑥 올라갔다. 이 교장은 학교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말처럼 지역이 살려면 학교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귀촌과 귀어가 젊은 부부들 사이에 인기지만,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교육이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믿고 맡길만한 학교가 있어야 하는 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 교장은 그래서 농어촌 지역일수록 학교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역설했다. 학교 교육여건이 개선되고, 믿을 만 하다는 신뢰가 주어지면 젊은 층이 몰려 인구 감소 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려면 양질의 소프트웨어와 함께 교육시설과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백야분교장의 경우 학생수가 적다 보니 체육관 등 다양한 교육시설이 부족하다. 체험학습과 같은 놀면서 배움을 즐길만한 공간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는 학교장으로서 미안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의 통학 불편을 덜어줄 ‘에듀버스’와 같은 지원 시스템도 하루속히 시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여건이 녹록지 않지만 1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이곳은 행복한 요람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교사들이 있고 그들은 그림자놀이 하듯 졸졸 따르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방과후 텅빈 교정에 5월의 남풍이 살며시 불었다. 햇살을 받은 잔물결이 인어의 비늘처럼 사르르 일렁였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은 가해학생 조치로 제1호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부터 제9호 퇴학까지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6년 8월 31일까지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임의적으로 가해학생 조치를 결정하였다. 이에 가해학생 조치가 학교마다 고무줄이라는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19조는 ‘세부적인 기준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교육부가 조치 기준을 고시하지 않는 것이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었다. 이에 2016.9.1. 교육부는「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이하 ‘세부기준 고시’라고 함)를 제정하였다. 다음에서 세부기준 고시의 내용과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살펴보자. 기본 판단 요소 세부기준 고시에 따르면 자치위원회는 가해학생의 조치를 결정할 때 먼저 다섯 가지 기본 판단 요소(학교폭력의 심각성, 학교폭력의 지속성, 학교폭력의 고의성,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화해정도)의 정도를 심의하여 판정점수를 산정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위원들에게 점수표를 주고 각자 요소에 점수를 기입하게 한 뒤 이를 산술 평균하여 각 요소의 최종 점수를 산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치위원회는 판단 요소를 개별적으로 심의를 하여 기본 판단 요소의 점수를 결정해야 한다. 판단 요소의 특정 부분에서 위원들의 의견이 나뉠 때는 투표로 점수를 산정할 수 있으나, 단순히 위원들이 생각하는 점수를 적게 하여 기계적으로 최종 점수를 산정하는 것은 올바른 심의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자치위원회가 기본 판단 요소의 다섯 가지 요소의 경중을 나눠 점수를 산정하여 합산하고, 각 점수에 부합하는 가해학생 조치를 다음 표에 따라 잠정적으로 결정한다. 기본 판단 요소의 점수 합계가 10점이라면 6호 출석정지로, 5점이라면 3호 학교에서의 봉사가 될 것이다. ‘잠정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단순히 기본 판단 요소에서 산정된 점수로 가해학생 조치가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다시 경감할 수 있는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가적 판단 요소 기본 판단 요소에서 점수를 산정하여 잠정적으로 가해학생 조치를 결정한 후 부가적 판단 요소인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을 심의하여 조치를 가중하거나 경감할 수 있으며 피해학생이 장애학생에 해당하면 조치를 가중할 수 있다.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을 심의하여 조치를 가중하거나 경감할 때는 출석위원 과반수가 동의하여야 한다. 조치를 가중하거나 경감할 때 반드시 1단계만 가중하거나 경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가중 또는 경감할 수 있다. 기본 판단 요소는 정량적인 심의를 하여 잠정적으로 조치를 결정하고 부가적 판단 요소 중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 단계에서 정성적인 심의를 하여 자치위원회에게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을 고려하여 조치를 가중하거나 경감할 수 있도록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해준 것이다. 세부기준 고시의 구체적 판단지표 1) 학교폭력의 심각성 학교폭력의 심각성의 판단지표는 ①가해행위의 죄질(폭행보다는 상해가 죄질이 나쁘다고 볼 수 있으며, 일반적인 학교폭력보다 성폭력이 죄질이 나쁘다고 볼 수 있다), ②학교폭력을 행사한 방법(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였는지,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였는지), ③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 ④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연령(상급생이 하급생에게 폭력을 행사했거나, 하급생이 상급생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같은 신체적 폭력이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간에 발생한 폭력은 고학년에 비해서는 심각성의 정도를 낮다고 판단할 수 있다)이다. 2) 학교폭력의 지속성 학교폭력의 지속성은 가해학생이 학교폭력을 행사한 기간과 횟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지표는 명확하나 가해학생의 행위가 학교폭력의 지속성에서 ‘없음, 낮음, 보통, 높음, 매우 높음’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즉, 어디까지가 지속성이 낮은 것이고 높은 것인지는 매우 불명확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학교폭력 유형에 따른 특성상 상해는 대부분 1회성 행동으로도 학교폭력 신고가 되어 자치위원회가 개최되는데 반해, 따돌림은 정의에 지속성과 반복성이 내포되어 있어서 지속적인 행위가 누적되어야 자치위원회가 개최되므로 학교폭력의 유형에 따라 지속성은 다른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폭력 지속성의 판단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평소 가해학생이 다른 학교폭력을 자주 행사하여 가해학생으로 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다거나, 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조치를 받은 적은 없으나 교사로부터 주의를 받은 사실이 있으면 지속성의 판단범위에 포함하여 지속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가 불명확하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학교폭력의 지속성을 판단하는 범위는 자치위원회가 개최된 안건 즉, 문제가 된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행사한 학교폭력 행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심의 안건으로 회부된 학교폭력 이전에 다른 학교폭력을 행사하여 조치를 받았다거나, 교사로부터 주의를 받은 사실은 기본 판단 요소인 학교폭력의 지속성에서는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가해학생이 이전에 학교폭력을 행사하여 가해학생 조치를 받은 사실은 부가적 판단 요소인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에서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 조치를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학교폭력의 고의성 학교폭력의 고의성 판단 지표는 ①우발적 행위인지 계획적인 행위인지, ② 피해학생이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였는지, ③교사의 지도가 있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 4)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는 ①사안조사를 할 때 가해학생이 잘못을 인정하는지 여부, ②책임을 피해학생이나 다른 가해학생에게 전가하는지, ③사건 이후에 자치위원회가 열리기까지의 학교생활 태도 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 5) 화해 정도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에 서로 원만하게 화해가 되었다면 화해 정도 점수를 0점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원만하게 화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가해학생 측이 전혀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화해의 정도는 4점을 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가해학생 측은 화해를 위해 진지하고 충분한 노력을 하였는데 피해학생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였거나, 화해를 전혀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였다면 가해학생의 노력을 고려하여 1~3점의 점수를 줄 수 있다. 6)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 부가적 판단 요소인 해당 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은 ①이 사건 이전에 가해학생 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는지, ②가해학생의 학교생활 태도, ③가해학생이 장애학생인지 여부, ④자치위원회가 개최되는 시기 등을 고려하여 조치를 가중하거나 감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 판단 요소에서 13점의 점수가 나왔다면 학급교체를 하여야 하는데 자치위원회를 개최한 시기가 학년말이라면 학급교체는 불필요하고 오히려 학교의 부담만을 가중할 뿐이다. 이때 선도 가능성에서 학년말을 고려하여 출석정지나 특별교육이수로 조치를 감경할 수 있는 것이다. 7) 법원 판결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2017년 집단으로 학교폭력을 행사하여 자치위원회가 가해학생 별로 세부기준 고시에 따라 심의하여 조치를 결정하지 않고 가담 정도에 따라 그룹별로 나누어 조치 내용을 결정한 경우 가해학생 처분이 고시에 따른 기준과 방법을 준수하여 적절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해학생 조치를 취소하였다. 따라서 자치위원회가 가해학생 조치를 결정할 때 과거처럼 임의적으로 조치를 결정하면 안 되고 세부기준 고시에 따라 심의를 하고 이를 회의록에 기재하여 근거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비슷한 학교폭력이라도 학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조치가 나올 수 있다. 단순히 다른 학교에 비하여 조치가 과하다는 이유로 그 조치가 위법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자치위원회의 결정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자치위원회가 세부기준 고시를 준수하여 심의하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당 조치를 결정하였는지가 회의록에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회의록을 열람한 후 해당 조치를 수긍할 수 있으며, 설령 학부모가 수긍하지 못하여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법원이 자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례를 소개해 볼까 한다. ‘공모사업 학교자율운영제’, ‘목적사업 일괄안내제’, ‘학교기타운영비 교부 계획 조기 통보’이다. 공모사업 학교자율운영제 우선 ‘공모사업 학교자율운영제’는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을 기존 교육청이 주관하고 선정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교육청에서는 예산만 지원하고, 학교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사업의 수와 주제, 예산 집행 계획 등의 방법을 자율 결정하는 방식이다. 예산은 많지 않다. 초·중학교는 1,400만 원, 고등학교는 500만 원이다. 영역별 사업과제 예시 자료도 함께 제공한다. 학교에서는 아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예산을 자율 편성하면 된다. 학교자율 교육활동 영역은 학교의 여건과 미래 교육환경의 변화를 고려한 역량중심, 학생참여중심 교육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업을 말한다. 교원공동체 역량강화 영역은 학생과 교사의 성장을 위한 교사들의 자발적·협력적·지속적인 교원학습공동체 운영을 말한다. 학생 및 학부모공동체 역량강화 영역은 학생자치 활성화를 위한 학생회 운영비, 학부모 학교 교육 참여 활성화를 위한 학부모회 운영비 등을 말한다. 예산편성은 교육운영비, 일반수용비, 여비 등 사업 성격에 맞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인건비, 시설비, 자산취득비성 경비는 편성하면 안 된다. 교원학습공동체와 학생자치 및 학부모공동체 영역은 예산액의 50% 이내에서 업무추진비 편성도 가능하다. 목적사업 일괄안내제 다음은 ‘목적사업 일괄안내제’이다. 교육청에서 학교로 내려가는 목적사업비는 교육청 자체 예산인 교육비특별회계, 교육부 특별교부금, 시·도 전입금, 국고지원금 등 여러 유형이 있다. 서울의 경우 2019년도에 약 312개 사업에 1조 2000억 원 정도 된다. 기존에는 목적사업비를 사업부서의 판단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학교로 내려보냈다. 학교에서는 다음연도 본예산 편성 때 어떤 사업이 목적사업비로 내려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사업비로 내려오는 예산을 본예산에 중복해 편성하는 경우도 있다. 학기 초에 편성하는 학교교육계획과도 연계가 되지 않고 따로 노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전년도 12월에 다음연도 목적사업비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학교에 일괄 안내해 준다. 전체형·지정형·기타형·공모형이다. 전체형은 심의나 신청 없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지정형은 대상학교가 이미 지정된 사업이다. 기타형은 사업의 특수성 때문에 별도 시기에 선정하는 사업이다. 공모형은 신청하는 학교에 한해 심의 후 선정하는 사업이다. 공모형은 12월에 공모하고, 특수한 경우 4월에 한 번 더 공모한다. 공모방법은 사업 부서별로 운영하던 공모를 한 부서에서 일괄 수합·목록화하여 안내한다. 학교에서는 일괄 안내 목록을 보고 관심사업을 업무관리시스템 게시판을 통해 신청한다. 교육청에서는 학교 간 편중 방지를 위해 조정위원회 운영 등의 방법을 통해 대상 학교를 최종 선정한 후 학교에 일괄 알려준다. 12월에 다음연도에 교부할 목적사업비를 학교에 미리 알려주면 학교에서는 본예산 편성 때 중복되지 않게 편성하고, 학교교육계획서에도 반영하여 안정적인 교육활동을 도와준다. ‘학교기타운영비 교부 계획 조기 통보’ 마지막으로 ‘학교기타운영비 교부 계획 조기 통보’이다. 학교기타운영비는 특정한 사업 수요가 있는 학교에 지원하는 경비이다. 서울시교육청에는 30개 사업이 있다. 이 중 1월에 지원 대상학교와 금액을 알 수 있는 사업은 17개이다. 3월에 얼마의 예산을 교부해 주겠다는 계획을 미리 1월에 통보해 준다. 학교 본예산을 1월에 편성하기 때문에 시기를 맞춘 것이다. 예전에는 각 사업부서별로 학교 본예산 편성 이후에 교부해 주기 때문에 본예산에 편성할 수 없었다. 3월 이후에 예산이 교부되면 추경에 반영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학기초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