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7,40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창의성 실종된 창의적 체험활동 어떤 것이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선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을 편성·운영하는 교사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영역과 내용을 기억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창의적 체험활동을 어떻게 편성·운영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다면 어떤 영역을 운영하더라도 그 본질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되어 미래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 중심의 교육활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서도 총론과 마찬가지로 6가지 핵심 역량을 길러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역량 함양에 대한 교사들의 깊은 인식 전환 없이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시행 때와 다를 바 없이 분절적인 내용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따라서 창의적 체험활동이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다하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도입 취지에 비추어 본질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관건이다. [PART VIEW] 첫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창의성’을 강조한다. 즉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창의성 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 안팎의 다양한 교육 활동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활동을 실시해야 한다. 둘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말 그대로 ‘체험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수행능력을 강조한다. 학교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실제 생활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수행능력을 갖추도록 운영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생들이 체험 중심의 실천 활동을 통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할 역량을 형성하도록 한다. 넷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 실정에 부합하는 특색 있는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융통성을 부여하였다. 다섯째,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교 교육 활동 중에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학습활동을 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의적 체험활동은 체험 중심의 실천 활동으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야 한다는 대 전제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체험 중심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창의성을 기르고, 일상생활에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는 것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부족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교사의 인식 전환 및 마인드 제고를 도모할 수 있는 형태의 연수 및 워크숍 등이 부재한 실정이다. 매년 학교 교육과정 담당 부장 대상의 연수는 물론 교육연수원 연수 협력학교에서 개설한 교육과정 편성 연수도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보다는 교육과정에 제시된 내용을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연수에 참석한 교육과정 담당 부장 및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많은 내용을 학습했으나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지 못한 채 연수를 마치게 된다. 교육과정 담당 부장의 입장에서는 학교 교육과정 편성에 있어 챙겨야 할 일이 수없이 많다. 경위야 어찌됐든 학사일정 및 학교행사 등을 챙기다 보면 창의적 체험활동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학년부장이나 담임교사 대부분은 창의적 체험활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 첫째, 창의적 체험활동 편성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창의성을 기르는 체험 중심 내용으로 편성하기보다는 범교과 학습 주제를 단편적, 나열식으로 편성하기 일쑤다. 또 창의적 체험활동 내용의 학년 간 연계 등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고, 학교 밖 체험활동에 대한 절차의 복잡성 및 학생 안전사고를 우려, 소극적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일부 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학생이 주체가 되는 자치활동 운영을 시도하고, 그 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으나 아직도 학생이 주체가 되는 창의적 체험활동 실시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은 미흡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보다는 일반 교과 수업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르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도록 인적·물적 자원을 폭넓게 활용해야 하지만 지역사회 시설·프로그램 여건이 창의적 체험활동을 위한 학교의 교육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족한 실정이다. 또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 지원을 희망하는 인적자원이 부족하여 학교에서는 학년·학급 단위의 현장체험학습이나 공문으로 안내되는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취사선택하여 활용하고 있다. 다양한 물적·인적 지원으로 창의 융합인재 육성해야 따라서 단위학교에서는 학습공동체를 운영하여 교원 간 활발한 토론으로 체험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이해 증진 및 인식개선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의 본질에 접근하는 운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의 본질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수 및 워크숍을 기획·운영하여 연수를 받은 교사들이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단위학교 차원에서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체험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이해 증진 및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또 교원 학습공동체 운영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창의적 체험활동의 실질적인 수행 의지를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교장의 교육과정 리터러시(literacy)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리더십이 발휘되도록 하며,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 체험 중심 운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전 학년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발함으로써 학년 군, 학년 간 연계로 학생들이 폭넓은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둘째, 창의적 체험활동 연간 운영 절차에 따라 계획 수립→실행→평가 및 환류→차년도 기획 등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도록 하여 학생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 방안을 강구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학습활동을 할 수 있는 영역임을 인식하고, 학생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 구성 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학생들에게 활동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하여 학생의 참여를 촉진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실시한다. 학생 참여를 촉진하는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방법으로는 교과와 연계하여 노작 학습, 자원 인사 등 전문강사를 활용한 체험수업, 지역사회 및 유관기관을 활용한 체험학습, 토의·토론?탐구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프로젝트 학습 등이 있다. 학생 주도의 창의적 체험활동을 위한 효과적인 수업방법은 학생들이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므로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 시 강의법이나 범 교과학습 주제의 해결을 위한 학습지 형태의 수업을 지양해야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에 환경교육 10시간 편성하였을 경우에 교사가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체험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학급의 경우 1차시에서 10차시까지 프로젝트 학습 형태로 운영한다. 1차시에는 학생들과 활동주제명을 정하고 어떻게 10차시를 운영해 갈지 함께 토의하고 결정하여 학생들이 주도하는 체험중심 활동으로 환경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창의적 체험활동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학급의 경우 ‘환이랑 경이랑’ 교재를 공부하거나 환경 동영상 시청 후 학습지를 푸는 형태로 10차시를 분절적으로 운영하는 잘못된 사례가 발생한다. 셋째, 지역사회와 연계해 인적·물적 자원 활용 방안을 강구한다. 지역사회 및 타 기관 시설을 조사하여 창의적 체험활동 시 활용할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확보하여 체험활동 학습의 장을 구축한다. 또한 창의?인성 교육넷의 창의체험자원지도(CRM) 등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며, 교육청에서는 MOU 체결을 맺은 유관기관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여 창의적 체험활동 시 적극 활용하게 하고, 학부모, 전문기관 인사 등 인적자원 인프라를 구축, 활용하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이와 같이 학생들이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체험활동을 함으로써 다양한 경험과 함께 전인적 성장을 하는 창의융합 인재로 자라게 될 것이다.
최근 웰빙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함께 개개인이 언제, 어디서, 누구나 안전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뉴스포츠가 활발하다. 학교 체육과 생활체육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뉴스포츠의 중요성은 이미 학교 체육 현장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뉴스포츠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저글링(Juggling)이다. 저글링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물체를 교대로 공중으로 던지고 잡으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궤적이나 몸동작을 만드는 행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즐겼던 콩주머니 놀이나 자치기, 공기놀이 등을 연상하면 쉽다. 서커스 공연 등에서 외발자전거 묘기를 보여주거나 곤봉 서너 개를 양손으로 돌리는 모습에서도 저글링을 접하게 된다. 저글링에는 주로 공, 클럽, 링 등이 사용되며, 이 밖에도 막대의 무게중심을 이용하는 데블 스틱(Devil stick), 줄의 탄성과 회전력을 이용하는 디아볼로(Diabolo), 시가 박스(Cigar box), 포이(Poi), 모자, 컵, 스태프 저글링(Staff juggling) 등이 있다. 집중력·도전정신 기르는 데 효과적 이런 저글링이 학생들의 두뇌발달과 순발력, 평형감각 등 신체 건강 증진 및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교육현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시내 초·중등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저글링 직무연수 현장에서 만난 오성균 교사(서울 방송고)는 “저글링은 한 개 이상의 사물을 던지거나 회전시켜 지속적으로 다양한 변화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집중력과 도전정신, 자신감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초·중등저글링교육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 교사는 “동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학생들 간 서로 주고받는 저글링을 통해 소통이 활발해지는 등 교육적으로도 유익하다”면서 “무엇보다 학생들의 도전정신과 성취감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우산이나 배드민턴 라켓, 냄비 뚜껑을 비롯하여 사과나 귤 같은 과일을 가지고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오 교사는 입시와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중압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처음 연수를 시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이번 겨울에도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PART VIEW] 연수에 참여한 박성진 교사(서울 연촌초)는 “학생들과 즐거운 수업을 해보고 싶어 연수를 신청했다”며 “오색 공을 이용한 공중묘기 기술을 익혀 새 학기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저글링 교육 3년 차인 성찬섭 교사(서초고)는 “학생들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동료 교사들에게도 적극 추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문 서초고, 전교생 저글링 교육 저글링을 아예 전교생에게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서울 강남의 신흥 명문으로 자리 잡은 서초고등학교. 이 학교는 전교생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저글링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균형적인 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매주 한 시간씩 정규수업시간에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는 저글링 교육 이후 학생들의 자아정체성이 확립되고, 정서적 안정감을 찾으면서 대학 진학 등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의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 것도 성과로 꼽힌다. 저글링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로부터 절대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경로당 등을 방문하여 어른신들에게 저글링를 가르치면서 가정에서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저글링 배구 등 생활체육 활성화 기대 저글링 하면 흔히 서커스 공연에서 둥둥거리는 북장단에 맞춰 곤봉을 돌리는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연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고구려·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 시대에 최치원이 당시 경주 인근에서 행해지던 가면 무희를 내용으로 지은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 금환(金丸) 편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몸을 돌리고 팔 휘두르며 금환을 희롱하니, 달이 구르고 별이 흐르는 듯 눈에 가득 신기롭다. 좋은 동료 있다 한들 이보다 더 좋으리, 넓은 세상 태평한 줄 이제사 알겠구나(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당시 제천 행사의 하나로 금환이란 의식이 행해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저글링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담은 수산리 벽화에서도 공을 던지며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 교사는 “유구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저글링이 사람들에게 서커스와 같은 ‘쇼’로 인식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그동안 연구된 지식과 기술을 재능기부 등을 통해 교육현장과 지역사회의 건강한 여가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생각”이라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 올해는 특히 저글링을 통한 시민 문화 교육과 저글링 배구를 학교 현장에 정착시켜 명실공히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서울초·중등저글링교육연구회에는 올해 현재 약 50여 명의 전·현직 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학부모 민원의 대부분은 자신의 자녀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여기는 경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민원 당사자로부터 충분한 사과나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 불친절과 인격적 무시를 당했다고 여길 경우에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학부모의 민원이 많은 분야는 학교의 성적 처리 관련 민원과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처벌 수위에 대한 불복으로 인한 행정심판 및 소송의 민원이 많은 편이다. 이 밖에도 학기 중 담임교체 요구, 교사 중심의 주입식 수업에 대한 불만 민원, 급식 관련 민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에 대한 불만 민원, 교사의 편애에 대한 불만, 교사가 수업시간에 교과 내용과 관련 없는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는 민원, 학교폭력 가해학생 부모와 피해 학생 부모의 갈등으로 인한 민원 등 학교의 여건과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민감한 성적 민원... 산정 기준 명확해야 2016년 12월 초에 전국적으로 독감(법정 전염병)이 유행하는 바람에 기말고사(2차 지필평가)에 결시한 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업성적관리규정관리 지침에 따라 1차 지필평가(중간고사) 결과를 100%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정에 따라 입력하면 NEIS에서 성적 산출이 자동으로 계산되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난이도 차이가 크면 중간고사 때 점수보다 산출 결과가 낮게 나올 수 있다. 가령, A 학생이 중간고사에서 수학을 90점 받았고 기말고사 기간에 독감에 걸려서 수학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중간고사에서 비교적 쉽게 출제되어 수학의 학급 평균이 70점이었고, 기말고사 때는 어렵게 출제되어 수학의 학급 평균이 50점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는 중간고사에서 수학을 90점 받았으니까, 당연히 기말고사에서도 100% 인정되면 90점인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난이도 차이가 20점이므로 NEIS에서 자동 계산한 성적은 기말고사 85점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 학부모가 학교에 강력히 항의하고, 상급기관이 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PART VIEW] 이런 민원은 학교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난이도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비슷하게 맞춰서 출제하였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항 출제를 공동으로 하고, 교과협의회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쳐 출제가 되어야할 뿐 아니라 교직원 연수, 전문적 학습공동체 협의, 학업성적관리위원회 등을 거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사전 교육 및 연수,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 충분히 이런 내용을 숙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성폭력 민원, 재발 방지 약속 분명해야 C 고교의 2학년 학생 중에 남녀가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었던 한 쌍이 있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어서 학급이 갈라지고 소원해졌고, 남학생은 새로운 학급의 여학생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자 헤어진 여자 친구가 이 남학생을 성추행 혐의로 학교폭력 담당 경찰관에게 신고를 하였다. 평소에 이 남학생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의 욕설 등도 문제 삼아 다른 여자 친구들의 진술도 함께 첨부했다. 결국, 남학생은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전학 조치 되었다. 이때, D 교장은 여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이러한 성추행, 성희롱 사안이 학교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달라는 집단 민원을 받았다. 이에 학교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곧바로 학부모회를 소집하여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였다. 남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거친 욕설을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였다. 학교 배정 불만 민원엔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대응을 2000년대 초반, 고교평준화 지역인 A 시의 변방에 신설 C 고교가 설립되었다. A 시에 속한 신도시 거주 학생들이 대거 통학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한 C 고교에 배정되었다. 처음부터 민원 발생이 예고된 학교였다. 배정 발표 직후부터 C 고교에 배정받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도교육청 정문 앞을 점거하고 밤낮으로 농성을 계속하였다. 배정 발표가 있는 날, 신설학교 설립을 주관했던 D 고교 체육관에서는 화난 학부모들이 교육청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당시, 시설 최고 책임자인 E 국장의 이야기를 듣고 학부모들은 오히려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겸손하지 못한 답변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시설 책임자인 그는 “3월 4일 입학식 때는 시설이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 돼 공부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든 공사가 완료됩니다. 안심하십시오!”라고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을 하였다가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운동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공사자재,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습니까?”라는 고함이 터져나왔고 그때부터 학부모들이 대표를 뽑고 조직적으로 대응하였다. 결국 도교육청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대부분의 민원을 수용하는데서 마무리가 되었다. ‘배정학교에 일단 입학 한 후, 원하는 학생들은 곧바로 전학 조치하겠다’는 결정을 통해 마침내 민원이 종료되었다. 신설학교 배정 불만의 학부모 민원은 집단성을 띠며, 자칫 자제력을 잃고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대처와 겸손한 태도로 민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담임교사 교체 민원... 3자 개입보다 결자해지 우선을 N 교장은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집단 민원을 받았다. 불만의 핵심 내용은 수업을 소홀히 한다는 것과 학생을 차별 대우하고 폭언 등 언어폭력과 담임교사의 불성실한 근무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학생과 학부모의 누적된 불만 내용들이 한꺼번에 표출된 사안으로 판단한 학교장은 고심 끝에 이렇게 학부모들과 약속하였다. 첫째,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본인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되, 끝까지 고수할 경우에는 학교에서 취할 상황을 제시하고 선택하도록 하였다. 둘째, 학교장은 학부모(민원인)들과 집단 또는 개별적인 면담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장의 의지와 앞으로 실천 계획을 진솔하게 약속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셋째, 교감을 중심으로 사태 수습팀을 구성하여 학부모들의 민원 내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학교가 적극적인 자세로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넷째, 학교장이 핵심 인물(학생)을 중심으로 해당 학급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학급 상황을 피드백 하였다. 다섯째,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안이 재발되지 않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수립하고, 바람직한 교사상 정립에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학부모들과 수시로 만나서 소통하였다. 학부모들도 학교 측의 입장과 N 교장의 진솔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 뒤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교육계 인사 일수록 민원 까다롭고 위압적 학교에서 겪는 다양한 민원 중에서 민원인이 교육가족(교사, 교육행정직 등)인 학부모의 민원이 가장 까다롭고 학교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P 고교에서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문학 수행평가를 마친 상태에서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했다. 다시 수행평가를 실시해야 할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때는 기말고사 시험을 2일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 문학 수행평가를 다시 실시한다고 하니까, 학생들의 불만이 꽤 많았다. 그중에 한 명의 학생이 집에 가서 불평을 하였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 사실을 알고, 학부모가 직접 교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당장, 수행평가를 중단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교장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리고 수행평가를 연기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하였다. 무례한 태도의 전화에 교장은 기분이 상하고 불쾌했지만, 최대한 상대를 존중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담당 교사들과 협의해서 수행평가 계획을 연기하였다. 나중에 교장이 알아보니까, 그렇게 전화를 걸었던 학부모가 바로 교육공무원이었다. 학교의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무엇이 학교의 약점인가를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민원을 교장실로 직접 제기한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학부모 민원 예방 안내 학부모 민원, 예방이 우선이다 학생의 교권침해 행위(폭언, 폭행, 성희롱 등)에 대한 징계 절차의 준수 1) 가해 학생의 반성 및 이성적 행동 유도, 학칙 및 학교생활인권규정에 따라 처리 2) 학생 및 학부모 반발 시, 교무회의 및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를 통한 해결 방안 모색 3) 미해결 시 상급기관 지원 요청 및 심각한 피해 발생의 경우 보상 요구 4) 민원 제기에 대해서는 근거자료에 입각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당당하게 임함 안전사고 발생 시 최적의 대응으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한 조치 1) 사고에 대하여 경험 있는 자(전문가, 학교안전공제회 등)와 협의하여 처리 2) 사고 발생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증인 확보 및 관련 기록 확보(사고 현장 사진, 주위에 함께 있던 학생 등) 3) 사고 진행 과정을 발생부터 종결 시까지 자세히 기록 4) 피해자로 하여금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모든 조치 강구(학교관리자, 사건 관계자 등의 병원 방문, 성의 있는 언행, 감동을 주는 조치 등) 5) 가급적 피해자의 입장에서(성적, 출석처리 등) 문제를 생각하고 처리 6) 사고처리 과정에서 학교 측의 창구를 단일화하여 대처(사고 담당자 지정) 7) 잘못된 사실 관계가 언론 등에 공표되지 않도록 보안 유지 8) 학교안전사고가 소송으로 비화 시 고문 변호사 및 법률 지원 요청 학업성적관리의 공정성, 신뢰성, 객관성, 타당성 확보를 통한 학부모 신뢰 구축 1) 평가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철저하게 공동출제 및 문항 검토 철저 2) 교과협의회 및 학업성적관리위원회 활성화를 통한 학업성적관리의 신뢰성 확보 3) 규정 준수 및 매뉴얼에 의한 과정과 절차 준수, 원칙에 입각하여 성적관리 4) 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수행평가 확대 등 과정 중심 평가 체제로 전환 5) 난이도 조절, 수행평가 비중 확대, 서술형·논술형 평가의 신뢰성 확보 노력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예방 활동 강화 1)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한 학생들의 자존감 높이기 적극 추진 2) 또래 멘토링 활동 활성화(친구 맺기, 학년별 선후배 모임 활성화) 3)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한 교과 내 인성교육, 진로교육의 내면화 실천 4) 자존감 회복 및 상담활동 강화 프로그램 적극 도입·운영 5) 학생자치회 활동 활성화 및 학생자치능력의 신장 노력 민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학교의 대책 가. 열린 경영, 바른 경영으로 신뢰받는 학교 운영을 통해 학교가 제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신뢰의 구축 나. 학교 구성원(교원, 학생, 학부모)의 학교 경영에 참여 기회를 확대하여 모든 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도록 노력 다. 교육활동,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사항이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 노력 라. 학교에서 수시로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학부모들이 알 수 있도록 SNS 문자 보내기, 가정통신문,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홍보 마. 인화를 중시하고 사랑이 넘치는 학교 경영, 학부모 공개 수업, 학부모회 총회 등을 통하여 학부모와 소통 확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기는 생후 첫 18개월 이후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이다. 발달상의 변화로 오는 신체적·정서적인 혼돈 속에서 학교에서의 생활 패턴이 달라진다. 학업 난이도가 상승하고, 학습량이 증가하며, 새로운 환경(교과별로 달라지는 교사·교과별로 이루어지는 수행평가·지필평가·교과교실제·자유학기제 등)에 대한 적응을 위해 에너지의 소모가 많아진다. 이 시기의 학생들을 만나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랑 관계가 좋았는데 지금은 좀 먼 거 같아요.” “공부가 걱정 돼요.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어요.” “수학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수학에) 영어는 없었잖아요. 올라오니 a, b, x, z, y와 같이 용어가 많아서 헷갈려요. 수학에 왜 영어가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보통 이러한 고민은 중학생이라면 모두가 겪고 지나가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취급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도움을 받지 못해서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이 시기가 향후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습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라면 문제는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작되는 전환기 실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학생들을 따라가면서 시기별로 특성 변화를 분석해 보았다. 그림 1과 같이 학교급이 전환되는 시점에서 수학과 영어 교과에 대한 태도(교과에 대한 흥미·과제 가치감·학습의지) 및 학교행복감(교사관계와 학습활동에 대한 즐거움)이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첫째, 한번 낮아진 교과태도와 학교행복감은 이후에도 크게 반등하지 않는다는 점과 둘째, 실제 중학교 생활을 접하기 이전(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직후)부터 전환기 학생들의 특성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학교에서의 첫 시험으로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자), ‘영포자?(영어를 포기하는 자)가 결정된다고 해요”라고 했던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터뷰 내용과 맥락을 같이 했으며, “중학교 가면 어렵다며? 시험도 본다며? 그걸 점수로 준다며? 발표를 한다며? 성적표가 온다며? 너 중학교 가면 어려워져. 이렇게 해선 안 돼”라는 이야기를 가족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다는 학생들의 하소연을 떠올리게 했다. 전환기 학생들은 이렇듯 실제 중학생이 되기 이전부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이 시기를 사교육 시장의 대목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학습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사교육을 시작하게 되면 향후 6년간의 고객이 된다는 것이다. 사교육 시장 통해 도움 받는 학생과 학부모 중학교 1학년을 막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이 중학교 생활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첫 번째는 ‘시간 관리법’이었으며, 두 번째는 ‘교과목별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헐떡이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직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공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이 시기의 학생들을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선 초·중학교 학생들은 전환기를 겪지만, 초·중학교 교사에게는 전환기가 없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87.2%, 중학교 교사들의 82.9%가 상대방 학교급 교사와 교류할 기회가 전혀 없다고 응답하였다. 분수의 사칙연산은 초·중학교 수학 시간에 모두 다룸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분수의 사칙연산이 쉽지 않다. 초·중학교 교실 수업을 비교해 보니, ‘중학교에서도 또 배우게 되니까…’가 되고, 중학교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다 배우고 왔지?’가 된다. 또한 교육과정은 연계되어 있지만,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초·중학교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두 번째는 초·중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 자체가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발달상의 차이를 전제로 학습의 단계에 대해 배우는 교대와 교과별 전문성이 강조되는 사대는 엄연히 다른 교사를 양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문제를 크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어쩌면 모든 교육 시스템을 뒤흔들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천에서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리 가 보는 중학교’라는 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 6학년 한 학급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인근 중학교를 방문했다. 수업시간에도 들어가 보고,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도 해보았다. 반대로 ‘중학교 수업 맛보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중학교 선생님들을 초등학교에 모셔 와서 수업해달라고 부탁했다. 초등학생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실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때 우리 학교에 오셨던 선생님을 보니 너무 반가웠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그때 초등학교에서 만났던 손 잘 들고 대답 잘했던 학생들을 다시 보니 기대가 크다”고 화답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낯선 곳에 도착하여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숙소 주변의 식당 정보와 구경거리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자료, 그리고 언제든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숙소 주인의 배려와 친절함이다. 전환기의 학생들이 원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낯선 장소에 첫발을 들인 학생들은 대부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곁눈질하고, 자신의 행동이 너무 튀지는 않을지, 친구들은 많이 사귈 수 있을지, 매시간 바뀌는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벌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벌점을 피할 수 있을지, 과목별로 수행평가가 많다는데 수행평가를 잘 받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전환기 학생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생님이 질문할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해도 좀처럼 손을 들어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중학교 학생들과 인터뷰를 할 때의 일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 중간 수준의 학생, 못하는 학생 모두가 “영어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영어 선생님은 끝까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다. 무슨 의미일까? “끝까지 가르쳐 주는 게 뭔데?”라고 묻자, 학생이 답했다. “음…. 그러니까 제가 대충 알겠다고 해도 선생님은 ‘너, 사실 모르지? 이리로 와 봐. 다시 설명해 줄게’ 이러시거든요.” 전환기 학생 위한 자료, ‘중학교 생활’을 부탁해! 2년간 수행했던 연구 기간에 비해 초·중학교 전환기 학생들이 원하는 도움이 무엇인지 쉽게 찾아졌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긍정적인 경험’, ‘겁주지 않기’, ‘친절하게 안내해주기’, ‘끝까지 가르쳐주기’였다. 그래서 학생들의 원하는 자료를 개발한 것이 ‘중학교 생활’을 부탁해!이다. 이 자료는 초·중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을 조사하고, 현직 초·중학교 교사들과의 협동 작업을 통해 전환기 학생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주요 내용은 표 1과 같다. 이 밖에도 중학교 생활을 부탁해!에는 수학과 영어 학습 지원 자료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표 2 참조). 2016년 현재 세계 196개국이 지키기로 약속한 유엔아동권리협약*(1989년 11월 20일)에는 아동의 권리로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을 제시하고 있다. 초·중학교 전환기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특히 이 학생들의 발달권 즉, 성장함에 있어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신체적·정신적·도덕적·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또한 참여권 즉,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어른들의 민감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적 학교 교육 제도와 역사를 같이 하는 교원전보는 현재 시·도교육청별 여건과 상황에 따라 교육감이나 교육감의 위임을 받은 교육장이 시행하고 있다. 임용권자는 지리적 요건과 문화시설 보급 등을 고려하여 매년 전보 발령 6개월 전에 새로운 전보기준을 만들어 공개하고 그에 따라 전보를 시행해야 한다. 「교육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 인사관리규정」에 따르면, 교원전보제도의 취지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교원전보는 학교 교육력을 제고하자는 취지이다. 학교 교육력을 제고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교육주체인 교원들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를 통한 교원의 질 관리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교원전보를 통해 교원들이 교육활동 시 장기 근무로 인한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학교 간 교류로 학교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새로운 학교 환경과 교직원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교원들의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고, 학교는 체제를 일신하며 새 출발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원전보는 교원들에게 안정적인 근무여건을 제공하자는 취지이다. 교원들이 가능하면 근거리 학교와 선호하는 학교에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특성상 가정형편이나 거주지 이전 등의 새로운 전보 요인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와 농·산·어촌이 혼재된 시·도교육청의 경우 전보제도를 통한 순환근무제로 개별 교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생활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학교 교육력 제고’와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이라는 두 가지 전보제도의 취지는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은 사기진작과 생활 안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개별 교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평안함을 주어 학교 교육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교원전보의 두 가지 취지는 양극단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뢰와 공정, 인사원칙은 지켜지고 있는가? ‘학교 교육력 제고’와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이라는 두 가지 전보 취지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긴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교육제도의 존재 이유라는 측면에서 ‘학교 교육력 제고’가 좀 더 본질적인 취지라고 볼 수 있겠으나, 전보에 대한 대다수 교원의 반응 패턴은 ‘학교 교육력 제고’보다는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을 우선시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이렇듯 ‘학교 교육력 제고’와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에 대한 우선순위 다툼은 여전히 교원전보 관련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학교 현장의 교육구성원과 전문가들에게 제기되는 교원전보제도의 논쟁점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PART VIEW] 첫째, 적시·적재·적소라는 인사의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지키는 전보인가의 문제이다.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이상적인 전보는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교원을 필요한 학교에 발령하는 것이다. 근래 교원전보는 출퇴근 편의를 고려한 근거리 배정 원칙이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인식되고 있고, 대부분의 교원도 이에 찬성하고 있다. 여건이 어려운 학교의 교육력 제고를 위하여 그 분야에 능력 있는 교원을 우선 배치하여 그 학교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적재·적소의 인사이다. 교원전보에서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능력 중심의 인사기준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주장이 있다. 전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이유로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도입한 전산 전보가 적재·적소라는 인사의 기본원칙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둘째,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고려한 전보인가의 문제이다. 단위학교의 자율책임경영제를 지원하는 전보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 경영상 필요한 초빙교원과 전입요청을 인위적으로 제한하여 단위학교가 책무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는데 애로점이 많다는 의견이 있다. 소규모 학교나 여건이 열악한 비선호 지역의 학교가 학교 발전을 위해 능력 있는 교원을 초빙 혹은 전입 요청하려고 해도 제한 규정 때문에 우수한 교원을 충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순환근무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초빙교원과 전입요청의 비율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전보기준이 공정성과 타당성을 확보한 전보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언급한 공정성과 타당성은 교원, 학교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교원 측면에서는 거주지·근무성적평정·교육경력·가산점 등이 공정하고 타당한지가 문제가 될 것이고, 학교 측면에서는 구역(급지) 구분, 교원 초빙이나 전입요청 등의 규정이 학교 간에 공정하고 타당한지가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서울시교육청* 초등 전보기준에는 본인의 희망·거주지 및 거주 기간·보직교사 경력·서울시 근무 경력 등이 있으나, 전산전보 배정에서는 ‘거주지 및 거주기간’이 전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달리 경기도교육청* 등 시·도교육청은 전보기준을 학교급지(특·갑·을·병)에 따라 점수화한 후 ‘희망지별 전보 순위 명부’에 따라 전보하며, 특구역 만기 근무자 전보는 근무성적평정점 순으로 희망지별 전보 순위 명부를 작성하여 전보하고 있다. 충청북도교육청**도 교사전보 시 최근 2년간의 근무성적평정점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다수 시·도교육청은 개별 교사의 근무상황을 점수화하여 학교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기본적으로 경쟁적 전보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학부모와 학생 측면에서는 수요자의 요구 반영이 공정하고 타당한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의 전보기준은 교원과 학교의 입장은 고려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넷째, 학생 교육을 담당한 모든 교원에게 동등하게 개방된 전보인가의 문제이다. 학교는 설립 주체에 따라 국립·공립·사립의 3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초등은 대부분이 국·공립학교이나, 중등의 경우 중학교는 20%가, 일반고등학교는 42%가 사립법인*이다. 공립과 똑같이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사립법인 소속 중등교원은 한 학교에서만 근무하고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교류가 제한되어 있고, 사립학교 간 전보는 불가능하다. 임용권자가 다른 공립과 사립의 교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막혀 있다. 또한 다른 사립법인 소속의 사립학교 간 전보도 불가능하여, 법인이 소유한 학교가 한 곳뿐인 단설 중·고교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과목까지 가르쳐야 하는 상치 교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사립법인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교원전보제도로 인하여 오랜 기간 학교를 떠나지 않은 일부 교사들이 타성에 젖어 자기계발에 소홀한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학교 교육력 우선하는 전보제도 마련을 현행 전보제도는 사회적·교육적 환경 변화를 상당 부분 반영하여 만들었고, ‘학교 교육력 제고’를 주목적으로 교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감안한 전보 원칙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보와 관련하여 개선의 목소리가 많다. 전보제도의 취지에 맞는 변화와 개선의 방향을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무엇보다도 학교의 교육력을 제고하는 전보가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다양한 교원전보 변인과 요구가 있지만, 시·도교육청이 전보 계획을 수립할 때는 반드시 전보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교원전보에서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과 함께 ‘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능력 중심의 적재·적소 인사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근래 정상적인 학사운영과 교원 거주지 이전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매년 2월 초 이전에 전보를 실시하려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노력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서울 초등 전보와 같이 교원 수의 증가에 따른 편의성 차원의 전산전보는 학교 교육력을 제고하는 기본에 충실한 전보라고 인정받기 어렵다. 개별 교원의 거주지 및 거주기간, 경력 등 단순한 몇 가지 변인으로 그야말로 ‘우연적인’ 전보를 시행하는 것은 학교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불가피하게 전산 전보를 활용하더라도 각 학교 및 교원의 여건을 고려하여 적재·적소 배치의 원칙을 위한 수작업 전보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각 학교의 교육 여건에 적합한 능력 있는 교원이 원하는 학교에 가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전보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단위학교의 교원전보 관련 권한 및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의 다양화·분권화·자율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지금까지 학교교육활동과 관련하여 대다수 교원의 기대와 소망은 ‘최소한의 정부와 최대한의 학교’이다. 정부와 교육청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학교교육의 자양분을 마르게 하고, 결국 학교 교육력을 저하시킨다. 학교 교육의 질 개선과 신뢰 형성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의 보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원전보도 시·도교육청의 인위적 규제보다는 단위학교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어려운 학교뿐 아니라 일반 학교에서도 학교 운영상 필요한 경우, 학교 구성원과 협의하여 초빙과 전입요청을 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초빙과 전입요청으로 충원되는 교원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교감의 전보도 학교 구성원의 요청과 필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는 전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원전보가 공정하고 타당하게 이루어지려면, 교육공동체인 교원·학부모·학생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전보가 시행되어야 한다. 교원들만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는 전보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교원이 교육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학생들을 잘 지도할 때, 학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대한 안정감과 학교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진다. 학생지도를 잘하는 교사가 전보 제도로 근무 학교를 옮기게 된다면, 학부모는 그 상실감과 아쉬움이 매우 클 수 있다. 이때 학부모나 학생이 원하면 우수한 교원은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후 전보유예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이런 교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모교장은 그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최소한 교장·교감·일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요자 요구 전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넷째, 국·공립과 사립 간 전보와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교류를 통해 새로운 교원들을 중심으로 학교의 구태의연한 분위기를 일소하고, 새 바람을 일으켜 긍정적인 학교문화 조성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립학교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국·공립학교와 사학 간 교류를 활성화한다면 공교육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학법인도 교원 임용을 교육청에 위탁하여 선발하거나 사학법인 간 임용시험 공동관리 등을 통해 교원 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명백하게 확보해 주기 바란다. 또한 사학법인의 교원 교류가 이뤄지면 상치 교사 해소, 지방 소규모 학교 과원 교사 해소, 교원들의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한 의도적인 다양한 경험 제공 등의 순기능이 있으므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교류를 위해 관련자의 의견수렴, 법적인 문제점 검토 등을 거쳐 부작용 예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교원 교류 확대로 사립교원 공립 근무 허용해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한다. 학교조직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원 인사가 학교교육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다수 교원의 인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전보는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학교 조직의 정상적인 운영과 학교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 교원전보제도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보완·개선해 나가야 한다. 어렵지만 교원전보의 두 축인 ‘학교 교육력 제고’와 ‘교원에 대한 안정적 근무여건 제공’이라는 취지에 모두 부합하는 최선의 전보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교원전보에서 교육공동체이자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전보 대상자인 교원만큼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교육수요자의 교원전보에 대한 참여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이고, 이는 학교 교육력 제고라는 전보 취지와도 부합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교사의 전보제도를 운용함에 있어 학교 안팎의 요구와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교원의 역량을 학교 교육에 마음껏 쏟아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교육 수요자의 만족도와 학교 교육력을 제고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타당한 전보제도를 운용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충남 서령고(교장 한승택)는 2017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간 신학년도 교육계획 수립과 교직원 상호간의 친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동계 연수를 실시했다. 목적지는 군산으로 서천국립생태원, 근현대사박물관, 진포해양테마공원과 기타 군산 시내투어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일본의 만행을 되새겼다.
결성계기 전국에 있는 초중고 교사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자라나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게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결성됐다. 첫번째 목표는 나라사랑 선양과 국가 유공자의 정신을 이어받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진작시켜 청소년, 학부모, 교사들에게 호국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한 올바른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며 교육연수와 연구 활동을 통해 교원들의 자질 향상과 지도력을 배양하며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나라사랑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통해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의 정신을 드높이고 청소년과 학부모, 교원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것은 물론 일선학교에서 나라사랑 교육의 선봉자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규모 경기지역 17개 지회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0개 지회에서 경기지역을 비롯한 경남·광주·울산 등 전국 11개 시·도에 근무 중인 교사 820여 명이 연구회에 소속돼 있다. 성격 나라사랑 교육연구회는 보훈교육연구원이 실시하고 있는 나라사랑 선양교육 특수직무연수에 참가한 교원들이 해외 연수 이후 연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발족 의지가 모아졌다. 또한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연구회란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학생·학부모·동료 교사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는 교과목별·학년별·계층별 학습 자료를 공유하고,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 2016년 1월 22일 88명이 참석한 발기인대회에서 36명의 창립준비 위원을 선정했고, 2월 22일 수원에 위치한 보훈교육연구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016년 6월 25일 6. 25를 맞이해 제1차 워크숍이 수원 보훈교육연구원에서 열렸다. 전국에 있는 총 600여명의 초중고 교사가 가입신청을 했고, 1차 워크숍에 400명이 참석해 나라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다. 2차 워크숍은 7월 2일부터 3일까지 열렸으며 전국에서 200여명의 교사가 참석했다. 2016년 8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법인 허가를 받았고 단위학교 또는 지역별로 나라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는 교사들이 지역별 워크숍과 단위학교 별 나라사랑 수업 등을 전개하고 있으며 2016년 12월 3일(토)에는 3차 워크숍이 있었다. 향후 활동 계획 애국정신과 안보의식 함양을 위한 연수 및 국가관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개발, 교사의 국내외 교류와 수련 활동 등을 전개하고 나라사랑 교육과 관련된 워크숍,직무연수와 사적지 탐방을 진행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교사 선발, 학과성적만이 만능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최근에 대학입시 추세를 들여다 보았다. 어느 과에 지망하는 학생이 많은지, 어느 학과가 높은 점수를 유지하는지, 여학생이라면 여러 교육 계통과 간호학과를 들 수 있고, 남학생이면 의예과와 전자공학과를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학과는 연극영화학과가 아닌지. 좀 더 구체적으로 평가내용을 살펴보면 사범대와 교육대에서도 여느 다른 대학의 학과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거나 교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별한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된다든가 하는 절대 조건도 없다. 아주 높은 점수에, 최상위에 가까운 등급을 획득해 면접을 통과하면 합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범대나 교육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재원들이 학교 현장에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부모로부터 존경받고 학생으로부터 사랑받는 엘리트 졸업생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가? 선생님은 우수한데 학생들이 따르지 못하기에 학교 현장은 언론에 단골 메뉴처럼 보도 대상이 되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요인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오늘의 교사들이 핍박받는 신세가 됐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아우성치면서 사교육 기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사교육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의사를 찾아 곪아터진 부분을 잘라내도록 의뢰라도 해야만 할까? 정말 저 맑고 푸른 겨울 하늘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 문제는 나라가 할 일이라고. 현장의 교사는 그냥 따라만 가면 된다고. 답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에서 나온 말이라 추리할 수도 있다. 우수한 교사가 현장에 투입되어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데 왜 오장풍 교사가 나와야 하고, 지성인으로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청소년과 성문제로 교단을 들끓게 하는 것일까? 교사의 인성 부족이라고 매도해야 하나? 아니면 우수한 교사가 자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에 대한 몸부림일까? 인터넷이 보편화된 오늘날 학생들은 수시로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우수한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구책을 누가 마련해 주어야 하나? 1차적으로는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다. 교사는 학생과 소통에 고통스럽지만 인내심으로 이끌어 가야 하고, 교사들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관리자는 지시와 개입이 아닌 지원을 통해서 현실에 맞는 참다운 교육을 이끌어 가는 마인드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교육대학 학생 선발엔 사범대와 달릴 특별한 요구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학과에 최우수 학생이 지원하고, 중고생을 가르치는 사범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우수 학생이라면 무언가 아이러니하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데 그렇게 최우수 교사가 필요할까? 이들이 졸업 후 현장에서 겪는 만족감은 극에 달할까? 더 많은 정성, 더 많은 잔일, 만족하지 못하는 보수 등등이 이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티 없이 맑은 아이들, 생각 없이 마구 뛰는 아이들,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재활원에 있는 아이를 돌보듯 자신을 희생하는 정성과 스스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으로 가득한 교사를 선발해야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성과 리더십 그리고 책임감으로 차가운 겨울을 동여맬 수 있는 그런 교사가 초등학교엔 필요하다. 성적만능으로 뽑는 교육대학 이제는 바꿔야 한다.
초등학교 교단의 여초 현상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초등학교 교사의 여성 비율은 2011년 85.7%에서 지난해 87.42%로 5년 새 1.72% 포인트 더 늘었다. 여성 교사 비율은 2012년 86.08%, 2013년 86.17%, 2014년 86.94%에서 2015년 87.03%로 오르는 등 꾸준한 증가세다. 여교사의 증가 추세는 단지 요즘 일만은 아니다. 교사는 타 직업에 비해 남녀 차별이 적고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의 인기가 치솥는 상황에서 교사의 인기는 이미 교대나 사대의 입학부터가 어렵고 졸업 후의 임용시험 또한 고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여초 문제는 교대나 사대의 입학부터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남학생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군면제의 유인책도 없고, 교대에 입학할 정도의 수준이면 다른 좋은 대학도 넘쳐난다. 또한 신규 교사를 뽑는 교사 임용 시험에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근거해 성비 제한을 두지 않고 있고, 군생활 등으로 인해 여성보다 공부할 시간적 여유도 적어 합격에 불리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지금으로서는 남교사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초등 교사 10명 중 8.7명이 여성인 상황에서 초등학교 재학 6년 내내 여성 담임교사만 만나는 일도 비일비재해 학부모 민원도 쏟아진다. 그래서 한 학교 최소 한 남교사 이상 배치를 원칙으로 하지만 때론 남교사 부족으로 이 원칙을 못 지킬 때도 일어나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선생님을 보면서 성 역할을 배우는 경우가 많고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 같아 한 번쯤은 남교사를 경험해봤으면 한다. 특히 농산어촌보다 대도시의 여초 현상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교사의 성별 쏠림 현상은 건강한 학생교육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당장 그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인위적으로 성비를 맞추려면 새로운 문제점이 다시 도출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남교사의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이해 지인들이 카톡으로 인사를 보낸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연하장 형식을 띠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 힘이 솟는 닭 그림, 한껏 멋 부리고 쓴 글씨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탐나는 사진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반갑지 않다. 왜 유독 ‘복’자만 한자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글로 써도 되는 ‘복’자를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복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나. 나로서는 마음이 상한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모습도 돌이켜봐야 할 것이 많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둘러놓은 병풍을 보면 한문뿐이다. 후손들이 병풍의 글 내용을 알고 있을까. 지방도 그렇다. ‘顯祖考(현조고), 顯祖妣(현조비)’로 시작해,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쓰고 있다. 이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과거의 문화다.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물론 공무원을 했다면, 이 자리에 퇴직 때의 직급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부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쓴다. 이를 보고 어린 학생들은 할아버지가 자기들과 같은 ‘학생’인 줄 안다. 지방에 쓰인 한자를 모르다보니, 결국 받드는 제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절을 한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글 지방을 쓰는 집안도 많다.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 제사 모시는 분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쉽게 안다. 이렇게 한글로 적어놓고 절을 하다 보니 후손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시면 부고를 하는 인습은 이제 없다. 그런데도 제법 돈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집안은 신문 광고란에 부고를 낸다. 이때도 가관이다. ‘대인(大人), 대부인(大夫人)’으로 시작해서 온통 알 수 없는 한자로 채운다.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조차 한자로 표기해 숫자로 옮겨 써봐야 알 수 있다. 부고는 돌아가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로 써 놓으면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냥 한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기다가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다. 문화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새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노화돼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전통문화란 무턱대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세월에 따라 변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면 고리타분한 인습으로 남는다. 문화는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고 지킬 때 생명력을 얻는다. 공자님도 예를 마음이라고 했다. 형식으로 하는 예보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중요하다. 제사 지낼 때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면 마음이 따뜻하게 만들어진다. 부고도 결국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 쉽게 써야 한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말과 글이 일치되는 생활을 하게 됐다. 한때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한글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 하여 ‘한글’이라 이름을 붙이고,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에도 한글은 핍박을 이겨내고 빛났다. 광복과 함께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빠른 기간 내에 극복한 것도 배우기 쉬운 한글 때문이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은 교육 효과가 높았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우리가 큰 나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문자라는 것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한글의 과학성을 극찬했다. 이런 한글을 저버리고 한자를 쓰는 습관은 외국인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만날 수 있게 됐고,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이런 마당에 뜻도 모르는 한자를 쓰는 문화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과 여기에 딱 들어맞는 우수한 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물론 학문을 하거나 기타 특별한 상황에서 한자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한자를 버려야 한다. 한글을 살려 쓰면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지고 나라도 튼튼해진다. 한글의 올바른 사용, 한글이 빛나고, 우리 민족도 빛나는 일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몇 해 더냐/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이 노래는 우리의 선배들이 불렀던 ‘꿈에 본 내 고향’이란 가요의 가사다. 나의 고향은 수원인지라 또 지금 수원에 살고 있어 이 가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노래는 결혼하고 나서 장인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다. 고향이 황해도인 장인은 술 한 잔 하시거나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부를 때면 으레 이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1948년 스무 살 때 혈혈단신 사선을 넘어 남으로 오셨다. 남한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셨다. 자식으로 4남4녀를 두셨다. 첫째 딸은 대사관 직원, 둘째 딸은 통일부 공무원, 셋째와 넷째 딸은 교육공무원이다. 첫째 아들은 의사, 둘째 아들은 축산업, 셋째 아들은 운수업, 넷째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이다. 장인께서는 작년 1월, 8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이번 설을 맞이하여 자식들이 산소에 모였다. 선영은 경기도 파주의 동화경모공원이다. 여기에 세워진 비석에 태어나신 곳이 명시되어 있다.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은파리 191번지’다. 비석에는 자식 이름은 물론 며느리와 사위, 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공원의 특징은 실향민들이 묻혀 있다는 것. 그러니까 고향이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이거나 지금은 북한 땅이어서 갈 수 없는 경기도, 강원도 실향민들이 생을 마치고 이곳에서 영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죽어서까지 고향 가까이에 가고자 했겠는가? 실향민의 아픔과 고통은 아마도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수원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자가용으로 두 시간 거리다. 아내는 제사에 올릴 음식 장만으로 바쁘게 지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들과 딸들이 음식을 분담했다. 아내는 동태전, 호박전, 나물, 과일을 맡았다. 떡국을 맡은 딸도 있고 각종 떡을 맡은 아들도 있다. 내가 볼 때 심성이 착하고 효심이 남달라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있어 공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실향민 가족이 얼마나 많은지 성묘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조화를 파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성묘객들은 산소 앞에 꽂아 두는 두 개의 꽃병에 정성을 담아 새로운 꽃을 꽂아 놓는다. 꽃을 파는 상인들은 그야말로 명절이 한 때다. 이곳 이 맘 때 자주 들렀던 사람은 임시로 세울 텐트를 준비한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차가우니 잠시 머물 곳을 마련하는 것이다. 묘소를 살펴보니 크기가 크지 않다. 2.2평, 2.7평, 3.0평 규모다. 부부가 합장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북5도민들에게는 회원권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권은 1000만 원이 넘는다. 실향민들은 본인이 살아 있을 때 미리 준비한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생활력이 강하다고 한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찾는 후손들은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가족 단위로 성묘하는 인원 수가 대부대다. 오늘 우리가 찾은 장인 성묘 인원수만하여도 20명이 넘는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이 변치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가 자식들 손을 잡고 성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단순한 묘원이 아니다. 단순히 성묘를 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이북도민들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망향의 한을 위로하는 곳이다. 후손들은 이곳을 방문하면서 조상들의 인고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발자취와 정신적 유산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세대들이 할 일이다.
지난 해 11월 19일 배우 유아인과 이준이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1주 전 이미 100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한 촛불시위는 이후 규모가 계속 커졌다. 190만, 232만 명이 되더니 마침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루어냈다. 대통령 직무정지를 불러온 최순실 정국이 온나라를 요동치게 하던 그 무렵, 그러니까 2016년 11월 21일 MBC월화특별기획 ‘불야성’이 방송을 시작했다. 수상한 시절인지라 정경유착이니 비선실세가 등장하고, 돈을 탐하는 욕망이 두 여배우 이요원(서이경 역)과 유이(이세진 역)의 워맨스로 펼쳐질 ‘불야성’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웬걸 첫 회 6.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시청률은 2회에서 7.2%로 반짝 상승했을 뿐 20부작 내내 4%대에 머물렀다. 새해 들어서는 3%대로 하락하더니 1월 24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4.3%를 기록했다. 오히려 조기 종영되지 않고 20회까지 완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의 저조한 시청률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 워맨스는 시기상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맨스는 우먼(women)과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다. 매우 애틋한 감정으로 친밀하게 지내는 여자끼리의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레즈비언과 다른 것은 성적(性的)인 관계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영화처럼 이른바 ‘여여케미’는 TV에서도 먹히지 않는게 확인된 ‘불야성’인 셈이다. 내가 보기에 ‘불야성’의 실패는 워맨스보다 잘못 잡은 방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경은 88서울올림픽을 함께 성공시킨 세 사람 중 두 명으로부터 배신당한 서봉수(최일화)의 딸이다. 일본에 살던 이경이 한국으로 돌아와 박무일(정한용)과 장태준(정동환)을 무너뜨리는게 이야기 얼개인데, 세진은 그걸 멈추라며 말리려 한다. 그들이 대기업 회장이고 전직 대통령인지라 새파랗게 젊은 이경으로선 벅찬 상대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딴 나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래도 복수와 함께 정상까지 오르려는 욕망이 긴박감있게 펼쳐졌다면 볼만은 했을 것이다. 이경과 세진이 악녀로서 다른 악을 까발리고 응징하는 그런 구도말이다. 처음엔 이경의 아바타가 되겠다던 세진은, 그러나 갈수록 뜯어말리기만 하는 캐릭터로 일관한다. 자연 맥풀어지는 전개가 되고, 도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하는 회의마저 들게 한다. 그것이 사회 정의니 진실 등 인간의 도리를 말하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이 느끼고 깨달을 몫이지 세진이 이경을 가르치는 것이어선 안 된다. ‘불야성’이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인 이유는 또 있다. 극중 장태준 같은 전직 대통령은 최순실 정국뿐 아니라 그 이전을 통틀어도 연상되는 그 누구나 무엇이 없다. 비현실적 캐릭터일망정 전직 대통령을 갖고 놀 정도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과 뭔가 좀 겹쳐오는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불야성’엔 그게 없다. 또 하나 의아스러운 건 이경과 박건우(진구)의 관계다. 한때 좋은 감정을 지녔던 두 사람이 무슨 원수 척지며 헤어진게 아닌데도 너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이경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처절하거나 절실한 당위성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반엔 일본에서의 옛 추억과 현재 화면이 혼재돼 자연스런 얘기가 좀 끊기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흙수저를 표방, 월세조차 걱정하던 세진이 어느새 그깟 돈 따위엔 초연한 모습이 된 건 또 다른 아쉬움이다. “완전 깨끄치 입었어”(‘깨긋이’의 올바른 발음은 ‘깨끄시’다. 2016.11.21. 1회)라든가 “세진씨도 그것 때문에 밤나스로(‘밤낮으로’는 ‘밤나즈로’가 맞음. 2016.12. 3. 14회) 따위 오류도 그렇다. 이래저래 ‘불야성’은 대박드라마 ‘선덕여왕’(2009년)의 이요원, ‘태양의 후예’(2016년)의 진구 캐스팅이 무색한 별 볼 일 없는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월화드라마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텐데, 도대체 방송사가 내세운 ‘특별기획’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하다. 그나마 건진 건 "내가 지은 죄는 고대로 짊어지고 갈 기다"(1월 24일 20회)라는 박무일 대사다. 재벌 총수로서 옥살이를 자처하는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모르쇠 타령에 일정량 시사점을 주고 있어서다. 그 외 건진 것도 참신한 대사의 함축성이다. “눈에 보이는 신 그게 돈이야”, “감정도 돈이야, 아껴 써” 등이 그것이다.
블로그를 하고 있다. 국어 교육 관련 글을 올린다. 교육 관련해서도 사회 현상 관련해서도 칼럼을 쓰면 이곳에 올린다. 그리고 블로그 글은 페이스북에 연동되도록 했다. 블로그 글이 페이스북에도 노출되도록 한 것은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블로그에 접근 하지 못하는 사람도 페이스북에서 읽는다. 특히 페이스북은 휴대 전화로 접속이 가능해서 언제 어디서나 글을 읽을 수 있다. 자연히 독자가 많아지고 내 블로그 방문자 수도 는다. 이 시스템을 두고 동료가 인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하는 것은 결국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내 글을 자주 읽는다며 한 말이다. 아니 인정 욕구라고 젊잖게 말했을 뿐이지, 말의 의도를 세밀히 살피면 내가 자랑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평가가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블로그에 강의 다녀온 이야기나, 한 해 동안 업적(?)을 기록해 놓은 것을 언급할 때 말끝에 가시가 묻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인정 욕구가 있다는 평에는 크게 탓잡고 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경험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블로그를 통해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인정 욕구하고 상관이 없다. 강의를 다녀오고, 기타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는 일을 한 것을 소소히 올려 두는 것 역시 자랑과 거리가 멀다.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컴퓨터가 병에 걸린 적이 있다. 그때 모아놓은 글을 모두 잃었다. 관리를 잘못해서 보물 창고를 몽땅 날린 느낌이었다. 돈을 잃었다면 다시 벌면 되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 찾을 수 없었던 것이어서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 저장 창고를 만드는 꼴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이유는 간단하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강의 다녀온 느낌을 기록하고, 각종 글쓰기 심사 경험, 교육 관련 단체에서 자문 위원 역할 등을 올리는 것도 자랑이라고 단정 지으면 억울하다. 그것은 내 삶에 의미 있는 단상들을 영원히 기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제법 나이를 먹다보니 지나간 시간이 기억에서 멀어진다. 내 딴에 힘겹게 삶을 이겨내 왔는데 막연하게 과거의 우물에 희미하게 남는다.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계획을 하고 실천했는지 떠올리고 싶지만, 기록 한 줄도 없는 기억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비록 화려하지도 않지만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다. 블로그에 ‘내가 걸어온 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기록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한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내가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실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어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 느낌과 감정을 잘 보관하고 싶다. 그것을 회고하면서 내면에 힘을 얻고 창조적인 내일을 계획한다.자주 이야기했지만 글쓰기는 영혼의 갈증을 푸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외로운 영혼을 만난다. 영혼의 산책길을 걸으면서 삶을 성찰한다. 홀로 걸으면서 불안과 쓸데없는 것을 비운다. 나는 생각하고, 사색의 힘으로 나만의 관점과 시선을 다시 채운다. 나이 먹어가면서도 퇴화되지 않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깨어나게 하는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이 힘에서 나온다.칼럼을 쓰는 일도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내용은 없고 형식만 정형화된다. 내 감성과 지성이 없다면 삶의 그물은 자극적인 형식에 금세 엉키고 만다. 글을 쓰면서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 세상을 깊게 보면서 질문을 하고, 의미를 찾는다. 질문을 통해, 의미를 찾을 때 삶과 세계에서 친밀함을 갖는다.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자신의 몸 관리에 신경을 쓴다. 내가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삶의 단상을 정리하는 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몸 관리를 하면서 좋은 몸매를 유지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이라는 선물이 오고, 창조적인 기쁨이 만들어진다. 블로그에 남기는 일상이 그 출발이다. 내가 인정받고 혹은 자랑하고 싶은 것이 굳이 있다면 이것이 될 수 있다. 일상의 힘으로 기쁨과 행복을 얻고, 그로 인해 내가 꽃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작금의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도 학부모들에게 공통점은 있다. 자녀의 대학 진학이 최우선이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아니 관심사 이전에 숙원이기도 하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어떻게 어느 곳으로 보내느냐가 중년 학부모들의 미래의 삶이기도 하다. 원하는 만큼 달성이 안되면 삶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점심을 굶어도 학원비는 낸다는 학부들의 이야기는 모든 학부모들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대학의 기준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대학,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 남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소위 '와~'라는 감탄사를 받을 정도의 대학이 어쩌면 이 기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대학보다 취업이 잘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의 학생들만 진학이 가능한 대학이기 때문에 대학의 질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준들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이냐고 물어보면 학부모라면 몇 개 대학 정도는 손까락으로 쉽게 꼽는다. 왜 그 대학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대학이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대학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쳤기 때문이기 보다는 기본적인 인적자원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도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이들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교육을 시켰더니 그 대학은 항상 우수하고 좋은 대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근본적으로 그 대학은 우수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다가 훌륭한 교육을 시켜 더 우수한 학생을 배출하는 대학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원래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다가 현상만 유지해도 그 대학은 우수대학인 것이다. 기본이 잘 갖추어진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지도가 쉬울 뿐 아니라 발전시키기도 쉽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학생들 데려다가 교육해서 원래 우수한 만큼으로만 배출해도 그 대학이 우수한 대학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 대학이 우수대학인지 살펴볼 때는 이름만이 아니고 어떤 학생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변화를 시켜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원래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와서 교육시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조금만 지도를 해도 훨씬 더 성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우수한 학생들 만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학도 입학생에 대한 졸업후의 결과를 따져 보아야 한다. 수능점수 등급이나 내신등급을 비교하여 입학때보다 더 많은 발전을 시킨 학교들이 우대받아야 하는 것이다. 부진학생들을 지도하여 해당학생의 성적을 많이 끌어올렸다면 그 지도는 제대로 된 지도라는 이야기이다. 입학성적은 떨어지더라도 입학후 교육을 통해서 졸업성적을 높이는 학교들이 실제로 좋은 대학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노력이 대세인 현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대학의 입학과 졸업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다면 충분히 교육을 잘 시킨 대학을 쉽게 찾아낼수도 있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충분히 가능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보다 미래의 비젼을 잘 갖추고 있는 대학을 찾아내어 집중적인 육성을 할 수 있는 육성책을 찾아야 한다. 원래부터 잘하는 학생들은 계속 잘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입학시기부터 결과가 정해지는 현재의 대학교육구조 보다는 어떤 대학에서 실질적인 노력을 더 했는지 따져보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방법론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현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4차 혁명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정보기술을 비롯해 로봇공학 및 바이오공학 등의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의 파고는 이미 주위에 시작됐다.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가 쓴'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에 따르면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한 약국에서는 로봇 약사가 홀로 일하며 지금까지 200만 건 이상의 처방전을 실수 없이 조제했다. 영국 기업의 세무신고를 처리하는 딜로이트(Deloitte)사의 세무시스템은 250명이 넘는 세무 전문가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정제해, 혼자 일하는 개인 세무 전문가보다 우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왓슨은 전략 문서를 탐색하고, 회의에서 나눈 대화를 듣고 요약하며, 경영조언을 하며 ‘최고위 임원 조언자’ 역할을 한다. 또한 왓슨은 의료 부문에서는 암 진단을 돕고 치료계획을 제시하며, 21초마다 출간되는 의학 논문의 흐름을 읽고 의학계 최신 동향을 따라잡는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변화다. 인간이 하던 업무를 수 백 배 수 천 배의 빠르고 정확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생각과 능력을 초월할 정도인 신의 경지까지 이른 변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변화할까? 많은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향후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50%가 없어지고 30년 이내 인간의 노동력은 80%이상 기계로 대체될 것이란 예견이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해 온다. 당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직종 중에서도 '전문직'이라고 일컫는 직종 중에서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 기자, 건축가 등 소위 엘리트 전문직이 가장 큰 타격의 대상이다. 소위 전문지식과 특별한 훈련 및 일정한 자격을 바탕으로, 그 어느 직종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와 독점권을 누려왔던 전성기가 끝난 것이다. 바로 온라인 기반으로 지식의 빅데이터화로 대중화되고, 첨단기술이 인간의 기교와 기술을 대체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 교육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교육은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준비하는 교육을 해야 미래를 능동적으로 통제하면 살아갈 수 있지 않는가. 인간의 기술은 노동력 거래 방식이나 시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서비스도 글로벌 거래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상품화 구조를 낳는다. 물론 아직은 크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글로벌화로 지금보다 직구로 물건을 사고 팔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전문직의 활용도 저렴한 비용으로 활용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활용은 우리 산업 전반의 변화를 예고하며 동시에 큰 충격일 수 있다. 이에 대한 준비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가 ‘교사’로 조사되었지만 교사 역시 알파고가 대신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미 구글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감성교육이나 개별화 교육부분까지도 연구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일반직종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직에게도 평생직장이 극히 드물어질 것이며, 직업 안정성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빠르게 배우고 발전하며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실용적 전문성은 대부분 기계와 온라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시스템까지 직접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 다산 정약용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와 근면과 고요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롭지 못하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 없으며, 고요하지 않으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다. 이 책의 저자 채사장은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정도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 널려 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알 가장 가치 있는 지식만을 선별해서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고 지식 가게를 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오래 전 인류의 수명에 비해 몇 배나 더 오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적으로는 같은 장소에살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집약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정보를 얻는 방법은 극히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 살면서 내가 얻은 지식이 인스턴트 음식처럼 영양가는 적고 비만과 질병에 이르게 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마치 어머니가 해주시던 집밥을 먹는 느낌 같은! 그러면서도 귀한 손님으로 초대돼 품격 있는 정통 요리를 대접 받는 듯한 친절함과 세심함을 담은 지식 가게 주인의 정성에 놀라게 된다.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갈무리하고 간단한 그림으로 친절하게 짚어주며 인문학의 초보자를 배려해 준다. 작가의 접시 위에 오색으로 깔끔하게 진열된 지식이라는 음식을 먹으려면상당한 예의가 필요한 책이다. 최고의 손님은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하나도 남김없이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잘 먹고 정중한 감사를 잊지 않아야 품격있는 손님이 될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오색 반찬 가게(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이 지식 가게에 찾아온 필자는 강의실을 찾은 학생처럼적을 준비를 하고, 내 생각을 군데군데 적어 놓으며 작가와 무언의 대화를 준비했다. 이 책은 세상에 널려 있는 인문학 책 속에서 품격을 드러낸 책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바쳐서 일구어낸 작가의 노고를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마구 읽어 나갈 수 없는 책의 품격에 감동했고 감사했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라는 인문학의 기둥은 인체의 뼈대처럼 삶의 영양소이면서도 재미있게 읽기 어려운 주제였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매우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야 할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세상의 때가 많이 낀 내 두뇌의 한계와 지식의 넓이에 실망하면서도 다시 채우는 기쁨이 컸다. 아니, 시간의 더께만큼 이해하기 쉬워진 것에 놀라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하라."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평생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절대적 진리관에 따라 종교를 향한 믿음으로 내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편으로 삼았다. 초월적인 존재,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살던 시간들은 행복했다. 나의 이성보다는 우월한 존재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보낸 시간들이참으로 길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위한 손길을 예비해 두고 있다는 믿음은 나를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젊은 날의 나는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에 안주하고 신에 의지해 편안했다. 지금은 상대주의를 지나 회의주의에 가까워서 니체를 존경하고 그의 책들을 곁에 두고 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삶의 주인은 오직 '나'라는 자각으로 생각하는 삶,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며 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탁하거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최고의 오색 반찬으로 등장하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는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라는 멋진 접시에 따로따로 담긴 것 같지만 결국은 한 테이블에 올라온 '인간의 삶'에 관한 화두다. 다루는 방법과 접근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제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겨울방학을 닫고 교실에 들어갈 심호흡에 도움이 되어준 책이다. 채사장 지음/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16,000원/한빛비즈
설날 즈음 빈 교무실에서 지난 해 저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너무 바쁜 해였습니다. 공부와 글쓰기를 겸한 3학년 담임교사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만족한 수업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신만만하게 멋진 담임이 되리라는 저의 어리석은 자만심이 미안했습니다. 책읽기를 즐겁게 만들겠다고 기세 좋게 시작한 독서프로그램은 그다지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학 중 학교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책꽂이 반쯤 읽고 꽂아 둔 책이 보입니다. 일본의 핀란드 교육전문가인 후쿠타 세이지 교수의 핀란드 교육 리포트 '핀란드 교실 혁명'입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핀란드의 교육은 소박하지만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시험도 없고, 경쟁도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시험 스트레스와 입시 지옥에서 학교를 다니고, 학교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아니라 핀란드의 학생들은 공부가 재미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핀란드의 경우 철저하게 학생의 개개인의 발달을 보고 단 한 사람의 낙제생을 만들지 않는 것이 교육 관계자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핀란드의 교실을 들여다 보면서 과연 진짜 공부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한국교육은 소수만을 위한 교육이다. 소수만의 경쟁이라면 한국이 핀란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수업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차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한국은 우열을 가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핀란드에서는 우열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인차를 존중하고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Learning by doing- 행동으로 배운다’ 라는 학교 교육방침에 대해 설명하는 소규모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말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학교이고 경제적 논리가 아닌 교육을 위해 다가서는 교육정책도 멋집니다. 현재 시골의 작은 학교를 경제적 논리로만 다루는 우리의 교육정책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어떻게 교육을 이익이 나는 돈의 원리로 다루는 몰상식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한국의 교육부 정책을 구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가끔 궁금했습니다. 그들에게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그 험악한 현실 앞에서도 학교를 세워 공부를 했고, 포탄이 쏟아지는 한국동란의 어려움 속에서도 천막을 치고 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런 민족이기에 공부가 가장 중요하고 공부만 살 길이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데 이 문제가 변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대의 오직 공부가 지금은 ‘내 새끼만 잘 되면 된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와 같이 오염되고 부패했습니다. 핀란드의 교실에서 새로운 교육의 정신을 다시 이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사는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과목을 배우는 하이들을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은 매우 매력적이면서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p207 핀란드 교육의 모토는 ‘시험이 나리라 자신을 위해 배우자.’이다. /231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수학교사이다.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경쟁과 학력의 문제만 전면에 내세우면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커플인 두 학생이 서로의 몸을 만지면 수업을 하는 상상도 못한 상황이 연출되는 교실에서 핀란드의 교사는 말합니다. “남학생은 학교라도 나온다. 여학생은 어째든 수업에 참여한다.”이렇게 특별지도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강제하지 않습니다. 놀라움과 틀에 박힌 생각만을 하던 저에게 부끄러운 자기반성이 됐습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우선되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학교에 오고 공부할 것같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며 교무실 문을 나섭니다. 먼 강가에 은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은 차가울 것입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폴란드 교실 혁명』, 후쿠타 세이지 지음(박재원, 윤지원 옮김). 비아북, 2009
정치권의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안’을 두고 교육계의 찬반이 팽팽하다. 찬성 측은 청소년들의 시민의식이 충분히 성숙해 정치적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은 교육현장이 정치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거 때만 되면 선심성 표심잡기로 인해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행정제도를 모두 뜯어고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어온 국가제도는 원칙과 기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오직 당선에만 혈안이 되어 정작 정치인들이 해야 할 중대한 일은 놓치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국가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 바르고 혁신된 교육이아니라 누더기 교육으로 변하고 있다. 밥 먹는 것도 교육이라는 무상교육이 그 대표적이다. 교육의 본질마저 왜곡한 채 정치인들이 교육 속에 파고들어 교육이 정치장화 된 것 또한 우리 교육을 위기에 내몰고 있다. 이번 선거연령 18세는 교육의 중립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중립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정당가입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교사들의 정치 참여 제한을 ‘미성숙한 학생교육’이라는 점도 이젠 설득력이 더 이상 없다. 학생들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을 마려야 할 시·도교육감들이 오히려 이를 공식화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교육수장이 우리 교육을 정치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의 성숙된 민주시민을 기르는 중요한 일이기에 무엇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들까지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총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해야 할 교육감들이 선거권 만 18세 하향 촉구 성명을 낸 것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며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의 선거연령 하향 촉구는 교육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의견을 정치권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운 것이다.
교원양성기관 평가(2015~2017년) 2차년도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주관하는 교원양성기관 평가는 교원양성 교육의 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기관의 자기발전 노력을 유도해 우수교원 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1998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이번에 2차년도 평가 결과가 공표된 것이다. 이번 2차년도 평가 결과 대학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 등 교원양성기관의 정원이 올해 말부터 2509명 줄어든다.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 16곳은 아예 폐지된다. 양성과 임용의 불균형을 다소나마 해소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특히 날로 치열해지는 교원 임용시험의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해 1차 교원양성기관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하위 등급 기관은 정원을 줄이거나 폐지하기로 했다. 전년도(2015년)에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을 대상으로 평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사범대가 없는 107개 대학의 교육과·교직과정·교육대학원이 평가 대상이었다. 평가 결과에 따라 각 기관에 A~E등급을 부여했으며 C등급은 정원의 30%, D등급은 50%를 줄이고 E등급은 아예 양성 기능을 회수하고 기관 자체를 폐지하도록 했다. 이번 평가는 사범대가 없는 일반대 교육과와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등 107개교 285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결과에 따라 A~E등급을 부여했다. 이번 비사범대 중심의 일반대 교육과 97개 기관 중에서는 24개 기관이 A등급, 50개 기관이 B등급, 20개 기관이 C등급 3개 기관이 D등급을 받았다. 교직과정 설치대학의 95개 기관 중에서는 3개 기관이 A등급, 11개 기관이 B등급, 32개 기관이 C등급, 35개 기관이 D등급, 14개 기관이 E등급이었다. 또 교육대학원 32곳 중에서는 3곳이 A등급, 7곳이 B등급, 13곳이 C등급, 7곳이 D등급, 2곳이 E등급을 받았다. 평가 결과 C등급은 정원의 30%를, D등급은 50% 감축하고 최하위인 E등급은 해당 기관‧과정을 폐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반대 교육과 263명, 교직과정 1488명, 교육대학원 758명으로 총 2509명의 교원양성이 줄어들게 된다. 또 E등급을 받아 폐지되는 기관은 16개 대학이다. 특히 이번 비사범대 양성기관 평가에서 부실 교육대학원, 교직과정이 된서리를 맞았다. 교직과정과 교육대학원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대상이 됐다. 이들 기관은 사범대생이 아니더라도 정해진 과정을 이수하면 교원 자격을 부여한다. 이번 평가 결과 교직과정은 전체 정원 3831명의 39%인 1488명이 줄어든다. 14대학의 교직과정은 E등급을 받아 아예 폐지된다. 교육대학원 정원은 3427명에서 758명(22%)이 줄고 2개 교육대학원은 폐지된다. 또 일반대학 교육과(교육학과·유아교육과 등)에서 줄어드는 263명을 합하면 모두 2509명이 감축된다. 매년 4년제 대학의 중등 교원 양성 정원(1만582명)의 24%가 감소하는 셈이다. 이번 교육부의 감축으로 일반대 교육과 2943명, 일반대학 교직과정 2343명, 교육대학원 2669명, 사범대 118명 등 8073명이 양성 정원으로 조정된다. 이미 교육부는 앞서 2015년 평가에선 사범대와 교직과정 등 정원 3220명을 감축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신규 교사 채용은 감소했는데 예비 교사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2017학년도 중등 교사 임용시험은 4066명 선발에 4만6530명이 응시해 11.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곧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중등교사 양성기관 질 관리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부실 양성기관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임 교수 한 명도 없이 외래 교수, 시간 강사 등으로 교육과,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등을 운영해 온 곳도 없지 않았다. 교육과정과 프로그램도 부실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교원양성을 영리 수단으로 치부한 대학 운영자들도 없지 않았다. 이와 같이 부실한 교원양성기관에서 우수 예비교사를 양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질의 교원양성기관에서 훌륭한 예비교사가 양성되고, 이들 예비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 선순환과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부의 이번 교원양성기관 폐지와 교원 양성 정원 감축은 만시지탄이다. 이번 교육부의 조치가 우리나라 교원양성기관 질 개혁과 질 관리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교육부 등 타의가 아니라 교원양성기관, 대학이 스스로 육영의 관점에서 질 개혁, 질 관리를 하여 훌륭한 예비교사 양성의 소임과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범계 대학(과정)에서의 교원양성 기능은 대학의 그 어느 역할보다 중요한 미션이라는 점도 유념하길 바란다.
어느 거부의 유언장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럴드는 하나뿐인 자식이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아내를 잃었다. 상심이 컸던 그는 아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았지만, 애석하게도 아들마저 병을 앓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았다. 홀로 된 피츠제럴드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수집하며 슬픔을 잊으려 노력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도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세상을 뜨기 전 그는 유언장에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를 밝혀 두었다.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경매로 팔기로 했다.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장품들을 사기 위하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예술품들은 경매 전에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림 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지방의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제목의 보잘것없는 그림이었다. 제일 먼저 경매에 붙여진 것이 바로 그 그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찰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더니 조용히 말했다.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그는 피츠제럴드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늙은 하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림을 샀다. 그런데 그 순간 변호사는 경매를 중지시킨 다음 큰 소리로 피츠제럴드의 유언장을 읽었다. "누구든지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모든 소장품을 가질 것입니다. 이 그림을 선택한다면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느 책에서 위의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메모해 두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진심을 담고 있기에 영혼을 울리는 것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어쩌면 위의 글에 덧붙이는 제 글이 사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은 결코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생각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생각이 많으니 괴롭고, 괴로우니 편한 잠도 이루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편안한 것도 미안한 세상입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넘쳐나서 위로조차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덕의 가장 첫 단계이자 기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해하는 단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소통까지 말합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난해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답답합니다. 어두움이 물러가기는커녕 더 짙고 무거운 침묵으로 장막을 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희망의 등불을 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최상의 방법이 교육에 있음을 믿고 싶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둡고 아프고 슬픈 소식이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맑은 샘물이 흐르고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그 희망의 노래와 맑은 샘물이 교육에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 부정과 불의를 걷어내는 힘은 진실한 가르침과 희망을 품고 제자들의 어깨를 다독이는 선생님의 따스한 위로에서 비롯됨을 믿습니다. 진심은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진리이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