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8,209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창립 100주년 맞은 지난해 99% 지지 얻어 당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받는 교장회로 만들고파 일부 사학의 문제를 전체로 확대해 범죄자 매도 따가운 시선 속에서 움츠러든 사학인 적지 않아 ‘학교의 수준은 교장의 수준’이란 말에 공감… 교장의 자존감 회복·전문성 함양이 중요한 이유 사학의 공정성 문제, 교원 채용과정에서 비롯돼 사립학교 실정에 맞는 시스템 마련, 검증받을 것 겨울바람이었다. 몰아치는 찬 기운은 눈을 뜰 수 없게 했고, 단단히 여민 옷깃 사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온몸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만드는 매서움이었다. 우리나라 사학에 부는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난 5일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이하 교장회) 신임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현 정부는 사학을 적폐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교육부가 ‘사학 혁신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학 개혁 논란에 불을 지폈다. ▲회계 투명성 ▲법인 책무성 ▲운영 공공성 ▲교원 권리 보호 ▲자체 혁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족벌 경영으로 인한 각종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취지지만, 사학들은 일부 사학의 비리를 전체로 확대해 모든 사학을 범죄 집단으로 예단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정호영(경남 삼천포여중 교장) 회장은 인터뷰 내내 ‘회복’을 말했다. 사학의 교육 신뢰 회복,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의 자존감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 중심에 교장회가 있다고 했다. -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 ‘대한민국 사립학교 교장 선생님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교장회를 세우겠다고 했다. 이 문장 하나에 많은 뜻이 담긴 듯하다. “교장회가 창립 100년을 지나 새로운 100년을 출발하는 이번 회장 선거에서 99%의 지지로 회장이라는 막중하고도 과분한 기회를 얻었다. 이런 전폭적인 지지는 ‘힘 있고 신뢰받는 사학’으로 만들어달라는 교장 선생님들의 바람과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사학의 무능하고 부패한 부분은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교장회로 만들겠다. 이를 위해 교장 선생님의 권익과 사학의 신뢰성을 쌓는 정책을 소신껏 펼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하고 존경받는 교장회를 만들어 가고 싶다.” -최근 사학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내부에서 인식하는 사학의 현실은 어떤가. “사학이 우리나라 교육과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긍정적인 부분은 무시된 채 적폐와 비리의 대상으로 매도됐다. 일부 비리 사학의 문제를 모든 사학에 대입하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사학인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침체 된 분위기지만, 자정 능력과 새 출발을 위한 비전,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학의 역사는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광복 후 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공교육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지방 독지가들에게 사학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게 한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이 현재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사학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비리, 적폐의 대상으로 치부된 점은 안타깝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고, 사고와 제도가 고착돼 있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일부 사학의 부정과 비리로 인해 전체 사학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점은 안타깝다. 건전하고 훌륭하게 운영되는 사학이 다수 있는데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부 사학의 부정과 비리는 법적으로 충분히 규제,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빌미로 전체 사학을 대상으로 한 지나친 규제는 사립학교의 자존과 독립성, 자율성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사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정부가 모든 사립학교를 획일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발상이다.” -실제로 정부는 공공성·책무성 강화를 내세우며 사학 혁신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사학 혁신 추진방안’을 내놨다. “사학의 교육 신뢰 회복은 정부가 나서기 이전에 우리 교장회가 짊어져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교육부의 사학 혁신 추진방안은 비리 사학에 대한 개방 이사와 징계권, 임면권 등에 대한 조항을 담았다. 모든 사학을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는 범죄자로 예단한 것이다. 물론 사학운영에 있어 공공성과 책무성, 개방성, 투명성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방안이 나오기까지 사학경영자와 사학교장회의 대표가 참여했는지, 의견을 제안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책 대안에 사학이 참여해 방안을 도출했다면 사학을 경영하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학 가족들이 자괴감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의 공공성이 화두다. 특히 교육기관의 공공성 확보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다.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 교장 선생님들에게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교육 당국은 사립학교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학이 가진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면서 교육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이룰 수 있게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고교 개편 문제, 정시 확대 등 교육계 이슈도 여전히 논란이다. 현장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정부에 따라 교육정책이 바뀌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일부 자사고는 대학입시 중심의 편향된 운영으로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 점도 있지만, 자사고 폐지는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포기하는 정책이다. 정시 확대도 마찬가지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정착돼 가는 시점에서 정책의 급선회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온다.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 학생들의 꿈을 꺾는 동시에 다시 사교육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불러올 것이다.” -교장회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 같다. 특히 사학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사학의 공정성 문제는 교원 채용에서 비롯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교원 채용의 공정성을 담보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사학은 건학 이념에 맞는 교원을 채용하기 위해 검증 기간을 둔다. 이 과정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립 임용시험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교육부의 감독, 감시 아래 사립학교 현장에 맞게 출제 방향을 잡자는 거다. 공정한 채용 시스템으로 사립학교 교원을 선발하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에 4년 동안 교장회 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의 핵심이다.” -내부적으로도 분위기전환이 필요할 듯하다.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학에도 문제가 있지만,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우리 교장 선생님들에게 있다는 확신이다. ‘학교의 수준은 교장의 수준’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교장 선생님들의 철학과 헌신에 따라 학교와 교육의 명암이 나뉠 것으로 본다. 교장 선생님의 자존감 회복과 전문성 함양이 중요한 이유다. 학교법인과 협력해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 합리성을 기초로 제도를 보완하고, 이를 교장 선생님들이 학교 현장에 적용하고 실천하도록 도울 것이다.” -사학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소통과 변화, 준비를 꼽았다. “우리 교장회는 현장의 교장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반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소통의 통로가 되는 중앙위원회를 재정비하려고 한다. 교섭력도 끌어올려야 한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국회, 한국교총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 법적 지위 확보와 정책 역량의 다변화를 꾀할 생각이다. 또 취약점을 찾아내 변화시켜야 한다. 교장회의 수익사업을 재정비해 시도 교장회에 대한 지원 확대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사립교원 연수원 건립과 연수 확대를 통해 전문성도 강화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학 정책을 선제적으로 개발, 제안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어디에서나 능력 있고 존경받는 사립학교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임기가 끝난 후 어떤 회장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임기가 끝날 무렵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은 사학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 중심에 있었던 모든 교장 선생님들이 ‘나는 대한민국 사립학교 교장 선생님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쏟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회장 자리가 주는 무거운 책임감을 되새기며 노력하겠다.” 정호영 회장은 ▲현 삼천포여자중학교 교장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부회장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교육청 학교평가위원 ▲경남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 ▲사천시 인재육성장학재단 이사 ▲학교법인 백진학원·지혜학원 이사
한국교총이 단설유치원도 학교발전기금을 조성·운용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유아교육법의 개정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교총은 6일 이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교육부와 국회 교육위원들에게 보냈다. 교총이 이런 요구를 하게 된 것은 초·중·고교와 달리 유치원의 경우 학교발전기금을 운용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초·중·고교의 경우 ‘초·중등교육법’ 제33조에 따라 2017년 기준으로 전체 1만 1703개교 중 1만 1006개교(94%)가 학교발전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조성된 기금의 규모는 세입결산액 기준으로 2900억 원으로 학교시설, 교육활동과 학생복지 지원 등에 사용돼 교육력 제고에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 반면 국공립유치원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른 법령의 규정이 없으면 기부금품 접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행정 목적에 직집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시·도의 기부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수할 수 있을 뿐이어서 복잡한 절차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와의 통합 운영을 통해서 발전기금을 조성·운용할 수 있지만, 단설유치원 403곳은 동일한 기관임에도 발전기금 운용이 어려워 입법 불비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2018년 5월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로 유치원도 유치원발전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교총이 해당 법안의 조속한 심의와 통과를 요구한 것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 속속 발의 교총, 법 통과 총력 활동 전개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만18세 선거권 확대와 관련해 국회에서도 학교의 정치장화 방지를 위한 관련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학교정치장화 방지 3법’인 ‘공직선거법’, ‘정당법’, ‘교육기본법’ 일부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박 의원은 “만18세 학생에게 선거권·선거운동·정치활동·정당가입 등이 허용돼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대한 지지·반대 권한이 생겼다”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오히려 교원이 아닌 학생들에 의해 훼손되거나 여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먼저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담긴 주요 내용은 △학교 안 투표참여 권유활동 불가 △학교 안 예비후보자 명함배부 불가 △학교 안에서 선거운동 제한 △연설 가능 장소에서 학교 제외 △교육상 행위를 이용한 공무원(교원)의 선거운동 금지 등이다. 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학교 안에서 정당이 자당 정책 홍보나 당원 모집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 홍보 및 당원 모집 등의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고등학교 방문은 포함되지 않도록 명시한 것이다. 또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학생이 학교 안에서 특정 정당·정파 지지·반대를 통한 다른 학생의 학습권 방해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학생이 학교 안에서 무분별하게 선거운동을 해 교육활동과 학습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같은 당 곽상도 의원도 4일 초·중등학교의 정치장화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의 공직선거법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초중등학교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초중등학교에서 예비후보자 등의 명함을 이용한 선거운동, 선거 공약서 배부, 현수막 게시, 연설·대담·토론회 등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학교는 학습의 장으로만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교원이 학생을 교육할 때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규정하고 위반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또 학생의 보호자가 교원이 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해당 학교의 장에게 전학을 신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곽 의원은 “최근 일부 교원들이 수업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견해를 강요하거나 구호를 외치게 하는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는 사례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여기에 전학 신청 근거를 더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교총은 이와 관련해 이달 중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학교정치장화 방지 3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하는 건의문을 전달하는 등 활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유의사항 및 질의·응답 제공 중대 사안 법률 검토 지원 선관위·교육부와 협업 대응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만18세 선거권 확대·선거운동 허용으로 학교 현장의 혼란이 우려되는 가운데 교총이 ‘고3 선거권 보호센터’를 설립·운영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선거권을 보장하면서 학습권을 보호하고 정치 편향교육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교총은 최근 ‘고3 선거권 보호센터’(가칭) 운영 계획을 마련하고, 2월 말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된 운영목적은 △고3 선거운동·정당가입·정치활동 허용 후 선거법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받을 수 있는 피해로부터 학생 보호 △학교 내에서 발생해선 안 되는 정치 편향교육, 파당적·개인적 편견 주입 등에 대한 예방·방지 △학교에 대한 정치인·외부인사들의 부당하고 잘못된 정치적 압박·압력에 대한 감시 및 방지 대책 마련 등이다. 센터는 앞으로 고3 학생들의 선거운동·정치활동과 관련해 학생보호 및 학습권 보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각종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선거법 등 관련 법률을 확인해 고3 학생을 비롯해 교원과 학부모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및 여타 학생의 학습권 저해 행위에 대한 예방 및 대책 마련 활동에도 나선다. 이와 관련해 교내에서 해도 되는 사안이나 해서는 안 되는 사안 등 선거 정보와 선거운동 관련 각종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한다는 계획이다. 홈페이지 내에는 선거권 보장 및 선거법 위반 사항 등 다양한 내용의 문건 및 안내사항, 공지사항 등이 게재될 예정이며 질의응답 게시판을 통해 18세 선거운동과 관련된 교원·학생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도 제공한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법률적인 지원에도 나선다. 교총은 법적인 판단이 필요하거나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법률고문단을 통해 법률적인 검토와 답변을 제공하는 한편 필요시 선관위 자문은 물론 교육부, 교육청 등 관계기관과의 협력·협업을 통해 정확한 정보 및 대응방안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필요시 17개 시도교총과 공동으로 ‘올바른 학생 선거권 보호를 위한 캠페인’ 활동도 검토 중이다. 신현욱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학생 보호나 학습권 침해 방지 대책 없이 선거법이 개정돼 학교 현장의 우려가 큰 실정”이라면서 “고3 학생들이 선거법 위반 등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안내하고, 학교가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근대 이후의 법치국가는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제정한 법에 따라 운영된다. 학교 역시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운영되며, 학교의 법이 학교규칙(이하 ‘학칙’이라고 함)이다. 학교규칙의 기본적인 사항은「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조 제1항에 열거되어 있으며,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과 ‘학생생활에 관한 사항’으로 구성된다.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은 관계법령 및 별도 지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정하는데 제약이 따르지만, ‘학생생활에 관한 사항’은 학생·학부모·교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별로 법령의 범위에서 정할 수 있다. 특히 ‘학생 생활에 관한 사항’은 생활지도의 근거가 되며, 학교폭력·아동학대(체벌)·학교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사의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일차적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는 과거 학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상위법에 부합하지 않거나, 현재의 시대상과 맞지 않는 학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 학칙을 예시로 하여 문제가 될 수 있어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살펴보자. 1. 학급규칙 원활한 학급운영과 학생·교사의 소통, 민주적 교실을 위해서 학급규칙을 제정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2017년 5월 교육부 누리집에 게시된 우리 학급의 비밀병기 ‘교실 속 규칙’에는 학급규칙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 교사를 소개하고 있다. ○○중학교의 어느 학급은 다음과 같은 학급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의 학교규정집에는 학급규칙에 관한 근거가 전혀 없다. 위 학급규칙은 법적효력(구속력)이 없는 담임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며 학칙의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학급규칙의 효력에 관하여 법적 다툼을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므로 절차와 규정을 지켜서 나쁠 것은 없다. ○○중학교 학칙 제40조는 다음과 같다. ○○중학교 학칙 제40조 제4항에 ‘담임교사는 학생·보호자와 협의하여 학급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넣어둔다면 위 학급의 학급규칙은 학칙의 세부규정이 되어 학칙과 동등한 효력을 갖게 될 것이다. 2. 징계 전력과 학생회 임원 자격 제한 많은 학교가 징계를 받은 전력을 학생회 임원 선거의 피선거권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위 학교들은 모두 징계받은 전력 또는 벌점을 학생회 임원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ㅁ고등학교는 벌점·징계 이외에 성적을 학생회 임원 자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떤 학생이 임원으로 선출된 이후 징계를 받아 임원에서 해임되었거나, 임원을 하려는데 결격사유가 있어 출마를 못 한다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위 학교들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된다면 ㄱ고와 ㅎ고는 학교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 제한의 정도는 ㅁ고등학교가 가장 강력하고, ㅎ고와 비슷한데 왜 ㄱ고와 ㅎ고가 패소할 확률이 높을까? 답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다. 서울·경기·광주·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시행 중인데, 서울과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나 정당성은 별론으로 하고 학칙보다는 조례가 상위법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조례를 위반한 학칙은 무효이다. 이에 서울과 전라북도의 학교가 징계 전력을 학생회 임원의 제한 사유로 삼는다면 소송에서 패소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ㅁ고등학교가 있는 강원도는 학생인권조례는 없지만, 소송이 제기된다면 역시 패소할 확률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임원의 자격을 박탈하고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으며, 경미한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징계를 임원 자격 제한 사유로 삼으려면 경중에 차이를 두어야 타당성을 갖출 수 있다. 특히 징계와 별도로 성적을 자격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헌법 제11조에 반하므로 성적이 저조하다는 것을 학생회 임원의 자격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결코 인정될 수 없다. 이에 모든 징계와 벌점, 성적을 학생회 임원의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지나친 제한으로 볼 수 있어서 소송이 제기된다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울 ㅅ중학교 학칙이 매우 합리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학칙 개정 시 참고할만하다. 3.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및 교권보호위원회 운영 규정 지난 2019년「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개정되었다. 법률 개정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폐지되고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되며,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교육활동침해행위(교권침해)에 대하여 (기간 제한이 없는)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법률 개정과 함께 학칙도 개정되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폭력에 관해서는 학칙에 별도로 규정을 두지 말고 생활규정에 ‘학교폭력에 관한 사항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 관련 지침에 따른다’고만 규정하라고 안내하였는데, 아직도 많은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운영규정’과 같은 학칙을 가지고 있다. 학교폭력에 관련된 세부 규정이 있는 학교들은 이를 개정하거나 폐지하여 학칙이 개정된 법률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종전까지는 교육활동침해행위는 선도위원회(생활교육위원회)에서 심의하여 징계하는데 개정된 교원지위법은 학생징계를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학교는 생활규정을 개정하여, ①모든 교육활동침해행위를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사항으로 규정하여 일반징계 사항과 교육활동침해 사항의 징계절차를 이원화를 하던가, ②종전과 같이 선도위원회가 심의하고 (기간 제한이 없는)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도위원회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로 이송할 수 있다. 2020학년도에는 학칙을 꼼꼼히 개정하여, 상위법에 어긋나거나 구시대적인 조항은 폐지하고, 우리 학교만의 특색있는 학칙을 제정해 보자.
“앞으로 인공지능은 교육현장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인공지능을 모든 교과와 활동에서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경험·학습할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4차 산업혁명과 미래교육포럼’ 주도로 열린 ‘2019 인공지능(AI) 융합교육 컨퍼런스’에서 AI 융합교육의 시작을 알리는 공동선언문의 한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인재육성을 목적으로 출범한 이 포럼의 공동대표는 손기서 서울화원중학교 교장. 손 교장은 지난 20여 년간 발명교육에 일생을 바쳐온 인물로 유명하다. 교직에 입문한 뒤 그는 학교 교육의 핵심가치를 창의력에 뒀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를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만난 것이 발명교육. 이후 한국학교발명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창의력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알파고가 인공지능시대 개막을 알리자 손 교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 AI 교육을 통해 한국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AI 시대…창의성으로 승부해야 손 교장은 인공지능시대가 될수록 인간의 창의성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계에 인간이 예속되지 않으려면 창의성을 계발하고 AI 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손 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AI는 사회·경제·교육 분야를 비롯한 국가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AI 시대를 살아나갈 세대를 위한 교육방향과 학교현장 정착방안을 구체화해 미래교육의 길을 명확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을 친구처럼 여기는 인재를 만들 수 있는 교육체제를 구축, 학생들의 손에 인공지능을 쥐여줘야 한다”며 “자신이 진출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졸업해야 한다”고 했다. 차가운 인공지능과 상대해야 하는 인간의 현실을 고민하는 손 교장. 하지만 그의 학교 경영은 ‘꿈·보람·감동’이란 3대 키워드가 말해주듯 따뜻하다.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꿈을 지닌 학생, 가르치는 보람에 신바람 난 선생님, 학교와 더불어 감동을 안고 나아가는 학부모 등 희망이 영그는 화원교육공동체 구현에 힘을 쏟는다. 손 교장은 학생과 교사들에게 즐거운 등굣길과 출근길을 선물해 즐거움과 존경이 공존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꿈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은 큰 차이가 있는 만큼 학생들이 자신만의 비전과 자존감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학교장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미래교육 3대 실천 운동’을 통해 꿈과 보람이 넘치는 학교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정한 3대 실천 운동 덕목은 ▲먼저 인사 잘하기, ▲친구 간에 경어 사용하기, ▲수업에 잘 참여하기 등이다. 사제동행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면학분위기 조성 및 학교폭력예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학교 측의 귀띔이다. 학생에겐 꿈을, 교사에겐 보람을…사제동행으로 행복한 학교 학생들에게 꿈이 있다면 교사들에게는 보람이 자양분이다. 손 교장은 우선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에 따라 교사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지고 보람은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수업분위기가 좋다 보니 교사들도 스스로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화원중에 유독 수업공개를 위한 교사들 모임이 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과도 많았다. 지난해에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우수학교 공모에 도전, 수업나눔 우수학교로 뽑혀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학교는 교장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조직의 장이 어떤 리더십을 보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 손 교장의 리더십은 어떨까. 이 학교 교사들은 ‘임파워먼트’란 단어로 그를 설명했다. 손 교장은 모든 권한을 과감하게 교직원들에게 위임한다. 학사는 교감이, 행정은 행정실장이, 수업 등 교육활동 관련은 교사가 자율권을 행사한다. 교장은 궂은일,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맡아서 한다. 임파워먼트 리더십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화원중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종합감사에서 단 한 건의 지적사항도 받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복잡하고 민원 많은 학교행정에도 불구,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종합감사에서 지적사항 하나 받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교장 임용 1년 만에 거둔 실적이다. 이뿐 아니다. 화원중은 지난해 진로교육 우수학교, 수업혁신나눔 우수학교, 교육홍보기관 우수학교, 학교회계 집행실적 우수학교 등의 표창을 휩쓸어 부러움을 샀다. 학생의 꿈과 교사들의 보람이 넘치는 학교에 학부모들이 감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한 학부모들은 이제 누구보다 강력한 화원중의 든든한 우군이 돼 있다. 교육청 종합감사서 무결점 평가…학생 안전 대표적 모범학교 학부모들이 학교를 전폭적으로 신뢰한 데에는 지난해 발생한 강원도 산불사고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화원중 3학년 학생들이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것은 지난해 4월. 목적지인 속초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산불이 발생했다. 수학여행 인솔교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위기의 순간, 손 교장은 교사들과 긴급협의를 가진 뒤, 즉시 복귀 결정을 내렸다. 현지 숙소는 물론 여행사와의 계약 등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학생 안전보다 우선일 수는 없었다. 학부모들에게는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렸다. 관할 강서경찰서의 협조를 의뢰, 학생 수송버스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순찰차들이 에스코트를 했다. 학생들이 탄 버스가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경.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학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학부모들이 미처 마중 나오지 못한 학생들은 교사들이 한 명 한 명 일일이 집까지 데려다주는 등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도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으로 학생 전원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 화원중이 보여준 위기대처능력은 훗날 대표적 모범사례로 꼽혀 유은혜 교육부총리와 조희연 서울교육감으로부터 칭찬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손 교장의 올해 목표는 소박하다. 선생님들의 업무를 경감시켜 보다 나은 교육환경에서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학생들과 함께 아침이 설레는 학교를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작년보다 조금 더 나은 감동을 교육구성원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손 교장. 신뢰하고 격려하는 학교문화를 통해 행복한 동행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레트로(Retro)’가 유행이다. 디지털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있다. 다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작은 동네서점들이 인기를 끈다. 아마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은 탓일지 모르겠다. 이번 호부터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인문학 발전을 위해 힘쓴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가 교사들이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학교상황 속에서 인문학적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 소설로 풀어냈다.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교사를 위한 인문학 소설을 만나보자.편집자 여름방학이 끝났다. 새 학기 개학을 한 주일 앞두고 있는 수요일이었다. 이인문 교감에게 현제명 교장이 전화를 했다. “이인문 교감선생님, 해외 문화체험 보고는 받으셨습니까?” 교감은 잠시 어리뻥해져 뜨악하니 서 있었다. 학교에서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걸로 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적절한 여행지를 선택해서 다녀오라는 제안이었다. 보고 같은 것을 미리 조건으로 내건 게 아니었다. 교장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웠다. 대답을 않고 멈칫거리고 있었다. “교사를 위한 인문학, 그 책 나왔으니, 2학기에는 그 책을 가지고 교직원 연수를 하면 어떻겠어요?” 대답하기 난감한 제안이었다. 교사들이 연수는 고사하고 회식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교감이 낸 책을 가지고 연수를 한다면 달가워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했다. 이인문 교감은 교장이 어디서 전화를 하는지부터 물었다. 교장이 학교에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학교로 차를 몰고 갔다. 머릿속에서는 교감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책임이 크지 않으니만큼 역할 또한 제한적이었다. 말하자면 ‘부록’과 같은 자리였다. 부록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글이었다. 욕심을 부려 시간을 운용한다면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는 자리였다. 교사를 위한 인문학도 그런 자리를 활용해서 만든 책이었다. 주차장에는 교장의 승용차 ‘포텐샤’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인문 교감은 그게 라틴어에서 온 상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능력있는, 포텐셜에서 L자 하나를 뗀 로고로 본다. 그러나 이인문 교감에게는 ‘가능태’를 뜻하는 포텐시아로 읽히는 것이었다. 교육자의 발상이었다. “이십년 넘은 차를 그대로 타세요, 교장선생님?” “저게 아직 쌩쌩하니 잘 굴러가요. 누구 차 팔아줄 일 있습니까?” 하기는 얼마 전에 ‘아우디’로 차를 바꾼 게 께름한 구석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알량한 애국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분수에 넘친다는 자기단속 때문이었다. “일을 시켰으면 결과를 확인하는 게 행정적으로 정당한 절차라고 봅니다만….” 교장은 말을 매듭짓지 않은 채 교감을 쳐다봤다. “방법이 문제겠지요. 우리 편에서 먼저 다가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만….” “봅니다만…? 어떻게 하자는 말씀인지 궁금합니다만…?” 교감이 먼저 껄껄 웃었고, 교장도 따라 웃었다. “우리가 저녁 사는 걸로 하고, 해당하는 선생님들을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만….” “우리가 꼭 맹고불 대감의 공당문답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하지요.” 교감이 해당 교사들에게 연락을 했고, 다음날 승언리에 새로 생긴 ‘솔숲독서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독서공간과 분리된 룸에서는 간단한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손님 취향 따라 널널하게 하자고 해서 맥주와 와인도 마실 수 있었다. 외지에서 오는 손님은 물론 관내 선생님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교장·교감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다. 실내에는 다른 손님들이 없었다. 카페지기 정숙현이 ‘하바넬라’를 틀어놓고 듣고 있었다. 선정적인 여가수의 앞가슴이 박덩이처럼 돋아올라 보였다. 둘이 들어오는 눈치를 챈 정숙현이 화면을 지웠다. “좋기만 하구먼 왜 그래? 다시 켜보시우.” “어머어, 교장선생님도 이런 거 좋아하시나봐요.” “좋아하긴 합니다만….”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것인지, 젖가슴 풍만한 여자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음악을 전공한 분이니까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즐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감은 자동차 이야기를 했다. “교장선생님 차 참 잘 선택하셨습니다. 포텐샤가 능력자라는 뜻도 있지만, 어떤 현상의 가능태라는 뜻이잖습니까. 사실 교육은 학생들이 지닌 가능태를 현동화하는 거고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교감선생님 타는 아우디는 뭡니까? 교감은 말을 잘 들어야지요.” 교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교감을 쳐다봤다. “본래 그게 라틴어 동사 아우디오의 명령형인데, 듣다, 경청하다 그런 뜻의 명령형이 아이우딘데, 잘 들어라 그런 겁니다.” “말하자면 자동차 상표 인문학을 하는 셈이군요.” 그렇게 눙치면서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초청 받은 교사들이 들어왔다. 유럽에 갔다온 팀은 임이랑 선생과 동행한 이유리, 구민정 그렇게 셋이었다. 남자 팀은 남미에 다녀온 신천강 그리고 동행 윤재걸, 전형대, 마찬가지로 셋이었다. 교감의 권유로 정숙현 실장도 마실 것 준비가 끝나고 교장과 교감 사이에 앉았다. “임이랑 선생은 임이 없어서 어떻게 했어?” 교장선생이 말을 걸어보았다. “떨어져 있어야 더 보고 싶지요.” 임이랑이 교장을 약간 흘겨보았다. “그래, 우리 임이랑 선생님이 진실을 말하는군.” 임이랑은 피이- 하면서, 교감의 잔에다가 자기 잔을 부딛쳤다. “교장·교감선생님 드릴 선물 있어요. 각각 하나씩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유리 선생이 구민정 선생에게 눈짓을 했다. “벨베데레 미술관에 갔다가… 하나 샀는데, 아무래도 교장선생님에게 맞을 거 같아요.” 구민정 선생이 큼직한 액자를 들어 교장선생 앞에 내밀었다. 교장은 풀어 보아도 되는가 묻고는 포장을 풀었다. 30호 쯤은 되는 액자에 클림트의 ‘키스’ 가 우아한 빛을 뿜어냈다. 같이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내하고 입맞춰본 게 언제던가 기억이 아득하네. 이거 걸어놓고 자주 해야겠네.” “그림이 야하지 않아요?” 교장선생님처럼 점잖은 분에게… 그런 주를 달면서 정숙현이 교감선생을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교감선생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신천강이 끼어들었다. “다른 친구들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인간의 순수한 접촉이 키스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지 않아요? 오빠, 아까 나랑 키스할 때 딴 생각했지… 여자 고등학생의 대사 치고는 진실이 짱짱하잖아요?” 동료들은 어쭈 제법이네, 그런 표정으로 신천강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대?” 구민정이 신천강을 쳐다보다가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교사를 위한 인문학 첫 장이, 몸의 철학이었거든….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야.” 신천강이 교감선생을 쳐다보는 사이 교장선생이 정숙현 실장에게 키스가 나오는 노래를 틀어 보라고 부추겼다. 오디오를 어떻게 작동했는지, 카르멘의 ‘하바네라’가 흘러나왔다. “저 노래에도 그래요. 어떤 사람은 아무 말을 안 해도 자기를 즐겁게 해준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게 뭐겠어 키스를 해준다는 거 아니겠어? 들판의 새 같고, 집시 소녀 같은 사랑을 잡아놓는 것은 입맞춤 아니겠나?” 베토벤의 키스(der Kuss)를 거쳐, 엘리스 플레슬리의 ‘키스미 퀵’ 그리고 다음에는 ‘베사메 무초’ 그런 노래들이 나오는 동안, 다른 이야기들 없이 커피를 마시고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어정어정 시간이 흘렀다. “내 책을 읽었다니 이야기합니다만…. 인간의 본질은 접촉에 있어요. 용어로 말하자면 호모 콘탁투스인 셈이지요.” 교감이 말을 멈춘 사이 신천강이 백지에다가 homo contactus 라고 써서 교감선생 앞에 내밀었다. “맞아, 인간은 접촉함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네.” “고독한 존재, 그게 인간의 본질 아니요?” 교장선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그건 고독과 접촉하는 거라 하겠지요? 우리가 차를 마시는 것은 물질과 인간의 접촉이고, 선생님들이 선물을 사다주는 것도 선물이란 상징을 매개로 한 접촉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접촉 개념을 너무 확장한 거 아닌가요?” “안 그렇습니다. 인간의 탄생이 접촉으로 이루어지지요? 부모의 성적 접촉으로 탄생하는 게 인간이지요. 그 다음에는 엄마와 접촉하죠. 젖을 빨고 엄마의 가슴을 더듬고 엄마의 살냄새를 맡고…, 좀 크면 친구들과 접촉하고, 뽀뽀도 하고, 나중에는 운우지정인가 그런 형식의 접촉도 하고, 거기서 다시 아이들이 나와 존재를 확장하고…, 인간사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두 접촉입니다.” “과도한 일반화 아닌가요?” 신천강이 임이랑을 쳐다보면서, 교감선생에게 물었다. “서양에서는 단독자로 인간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지요. 예컨대 자기를 뜻하는 ‘에고’라는 라틴어는 인식된 주체로서 자기라는 것인데, 인간 즉, ‘호모’가 개별화된 것이 아닐까?” “그럼 미투, 그런 거는 왜 생기지요?” “접촉에는 본능적인 게 있고, 또 상징적인 게 있다네. 내가 너무 독점하는 것 같네만….” “아주 귀한 접촉의 기회인데, 얘기하시지요.” 신천강이 나서서 이야기를 권했다. 교감선생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접촉의 본능이 구심적이라면 접촉의 상징은 원심적이라네. 원형적인 접촉은 접촉 그 자체의 정당성을 위해서 다른 접촉을 배제하게 되지. 젊은 아내와의 접촉이 열도가 높다면 늙으면 그런 열도가 가라앉지. 박재삼 시인이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렇게 노래한 것은 시간이 끼어들어 접촉을 마모한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천지인…. 한 인간의 내면에 시간과 공간이 통합된 그런 완전성은 접촉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지. 휘돌아가는 천지인의 삼태극…. “고통과 환희에 한꺼번에 접촉할 수도 있을 건데요. 맥주 마시면서 설사기운을 느낀다든지 그런 경우 말이지요.” “맞네, 인간은 다중복합 존재란 뜻인데, 멜티플렉스 오르간이랄까. 어느 정도는 그런 다중복합 접촉을 수용할 수 있는데 접촉의 코드가 너무 많고 복잡해지면 정상을 벗어난다네.” “예를 들면요?” 윤재걸이 전형대를 바라보면서, 교감선생에게 물었다. “너무 일상화되어서 잘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알아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바야흐로 접촉 과잉의 시대가 된 게 현실이지.” “지금 몇 시나 되었나?” 교장이 하품을 하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교감선생님 얘기 다 들었는데, 철학사에서 그런 주장을 한 학자는 누가 있습니까?” “제가 살면서 깨달은 겁니다. 술 취했다가 깨면서 내가 너무 마셨지? 그러는 순간이 그게 자기와 자아가가 접촉하는 순간이겠지요. 정신이 든다는 건 내가 나와 접촉했다는 뜻입니다.” “그럴 법합니다. 여러분과 접촉한 오늘 비용은 내가 냅니다.” 모인 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런데 내 선물은 없소?” 신천강 선생 팀원들이 꽤 큼직한 상자를 교감선생에게 건네주었다. 교감선생이 상자를 풀었을 때, 반짝이는 별이 달린 베레모가 나왔다. 팀원들이 쿠바에서 산 거라 했다. 다음호에 계속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좌에 올라 부와 명예를 누리던 오이디푸스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용서받지 못할 패륜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 누구도 신들의 진노를 받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완전히 고립되었고, 도와주는 사람은 혈육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두 딸뿐이었다. 운명은 오이디푸스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염물의 운명은 어디서도 편안할 수 없는 법이다. 테바이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과 그의 처남 크레온이 지배권을 반분했고, 이들은 용도 폐기된 지배자를 추방했다.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기도 한 크레온은 교활하고 냉혹하며 무자비하다.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반쪽짜리 권력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이지만, 아버지를 내팽개친 것은 같았다. 오이디푸스는 딸이 아들이 되었다며 두 아들을 혹독하게 비난한다. 기약 없는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휴식을 취하던 곳이 아테네 외곽 콜로노스임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곳이 자신의 종착지라며 더 이상 꼼짝하지 않는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성역을 침범한 이방인이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라는 것을 알고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삼거리에서 노인을 죽이게 된 상황을 담담히 회고한다. 자신을 몰아내려는 아테네인들에게, 고의로 라이오스를 죽인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키며 관용을 호소한다. 부당한 모욕과 비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게 한 오이디푸스의 모습 아테네의 지도자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르게 되는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오이디푸스의 탄원에 괴물 미노타우루스와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고 귀환하던 도중 실수로 검은 깃발을 바꾸지 않아 천추의 한을 남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사 귀환하면 백기를, 죽어 돌아오면 흑기를 돛대에 달고 돌아오기로 한 아버지와의 약속을 깜빡 잊었지만, 이미 아에게우스는 에게해에 몸을 던진 후였다. 수많은 괴물을 처치하며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테세우스는 죽음을 목전에 둔 오이디푸스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분노를 완전히 삭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모욕하고 두 딸을 납치하려 했던 크레온, 이용가치로만 아버지를 재단하며 내팽개 쳤다가 상황이 바뀌자 모셔가려는 아들에게는 끔찍한 저주를 퍼붓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극도의 고통에 빠진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나약함에 타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를 확인하려 한다. 안티고네에게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음에도 자신을 혼자 두지 말 것을 강조하고, 테세우스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모습은 오이디푸스가 정신적으로 심약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모습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할 줄 아는 오이디푸스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조롱하고 자신이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자신만만했던 오이디푸스 대신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면서 신들의 용서를 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능력으로 정의를 추구하려는 모습은 진정한 지혜를 통해 얻게 된 소중한 변화였다. 실수한 타인에 대한 조언과 충고는 ‘나 자신을 위한 충고’ 크레온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범죄와 무관했음을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증인이다. 이오카스테의 형제이자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처남)으로서 오이디푸스에게 왕위를 허락한 것도 크레온이었다. 크레온 자신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존재인 것을,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과오(hamartia)를 저지를 수 있으니 타자의 실수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나친 것이다. 나 또한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을, 실수한 타인에 대한 조언과 충고는 사실 나 자신을 위한 충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하지 않으니 실수하기 마련이다. 실수는 그 자신에게도 큰 손해이기 때문에 아무도 실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의 무지·탐욕·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실수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신에 버금가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보여주는 반성과 성찰의 능력 덕분이다. 과거 행위를 되돌아보고 곱씹어볼 수 있는 예지는 인간이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깨달음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가능성의 대전제는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부모·좋은 교사·좋은 사람을 갈망하지만 ‘좋음=무결점의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좋음은 완벽(perfect)하게 상대방의 요구를 100% 이행하는 기계 같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숙한 인격으로 내가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남의 티끌에 집착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자기 수양과 타자 배려에 도달하려는 마음의 습관을 지닌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테바이의 전제군주 오이디푸스가 완벽했지만, 좋은 군주는 아니었다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완벽하지 않지만 정의로운 영웅이었다. 과거 실수는 용인되고, 갱생 기회는 다시 온다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는 오이디푸스와 다르다. 오이디푸스의 행위가 실수였다면 이들의 행위는 의도된 것이다. 실수는 선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이유로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진 상황을 말한다. 반면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는 이익에 따라 오이디푸스를 모욕하고 다시 그를 구속하려 한다. 이들은 과거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자신의 거짓 환대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거짓 환대에 오이디푸스는 격분하고 단호히 거부한다. 오이디푸스의 장례를 치러준 폴리스에 신들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크레온은 내다 버린 오이디푸스를 다시 찾아다니다 콜로노스에 나타났다. 폴리네이케스는 오이디푸스의 책봉(冊封)을 받으면 왕위를 얻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아버지를 모시러 온다. 이들은 달콤한 말로 오이디푸스의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무력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는 등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 테바이의 안정과 왕위경쟁의 승리라는 두 사람의 목표는 노골적임에도 끝까지 자신들을 포장하며 거짓으로 일관한다. 선의지를 가진 자에게는 과거의 실수가 용인되고 갱생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본전제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겸허한 자기 인식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지속이 병행되어야 한다. 강인함과 나약함은 하나이면서 둘인 셈이다. 안티고네와 테세우스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오이디푸스는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 사이에서는 단호하다. 뻔뻔하게 오이디푸스를 기만하다 작전이 먹히지 않자 안티고네를 납치해 뜻을 이루려는 크레온은 실수와 악행의 차이를 보여준다. 신들의 진짜 분노를 사게 된 그의 삶은 안티고네에서 파국을 맞는다. 오이디푸스의 반성과 회심이 오이디푸스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의 변화를 단언하지는 않는다. 반성하던 사람 역시 얼마든지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지만, 그것에 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라이오스와 삼거리에서 대면했을 때 드러나듯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화를 억누르는 사람은 못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에 대한 분노와 격정은 오이디푸스의 본성(physis)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지혜롭고 정의로운 안티고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오이디푸스는 넘치는 분노에도 폭주하지 않았고, 신들의 뜻을 다시 거스르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두 눈을 잃고 나서야 오이디푸스가 얻게 된 마음의 눈이었다. 인간의 변화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음을, 하지만 그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완전무결함’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 탐욕과 분노, 무지는 개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소포클레스가 콜로노스 오이디푸스를 쓰던 기원전 406년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 직전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나라에 저질렀던 악행의 앙갚음을 우려하며 패닉 상태에 놓여있었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민주 정치였으나, 실상은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군국주의 아테네의 종말이 머지않았던 시기였다. 소포클레스는 아테네의 시조 테세우스를 등장시키며 아테네는 신들의 보호를 받는 공간임을 환기한다. 하지만 아테네는 테세우스가 그랬듯 자신들의 힘은 정의를 위해 사용해야 했다. 위험에 놓은 오이디푸스의 탄원을 받아들이고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를 정죄했던 정의(dikē)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테바이가 그랬듯 아테네도 신들이 버린 도시가 될 운명이었다. 델로스 동맹의 기금을 전용해 자국의 도시 재개발에 전용하고, 자국의 이익을 따르지 않는 도시를 무력으로 멸망시켰던 아테네는 오이디푸스의 시대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오이디푸스의 출발을 재촉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마지막까지 회피하고 싶다. 하지만 행복하게 삶의 목적지에 도달한 오이디푸스의 삶은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Oedipus Colonus, 1720). 비록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운명과 비난에 고통받았지만, 마지막에 신들의 용서와 인정을 받았던 인생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도 어찌 되었건 좋은 삶을 위해 노력했고 그의 삶은 보상을 받게 되었다.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오늘날의 교육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향점일 것이다. 교사들은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조그마한 실수들은 침소봉대되어 거대한 부조리와 비리로 둔갑하곤 한다. 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완벽함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에 오만과 독선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때로는 우리 또한 학생들에게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박학다식을 과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 자신과 타자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고개 들어 (서준호 지음, 이올림 그림, 테크빌교육 펴냄, 252쪽, 1만3800원) 사람은 누구나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다. 더구나 늘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직업인 교사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현직 초등교사로서 심리 관련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그간 경험한 여러 사례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가벼운 문체와 삽화가 수필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우리 반 아이들은 크리에이터 (박오종 지음, 에듀니티 펴냄, 172쪽, 1만5000원) 1인 미디어의 열풍이 뜨겁다. 작은 섬마을 교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교사가 한 해 동안 겪었던 영상 제작 프로젝트 수업이야기를 담고 있다. 콘티 제작부터 각종 영상기법과 기자재 등 수업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소개한다.
신나는 책 쓰기 수업 (김점선·임지현 지음, 에듀니티 펴냄, 248쪽, 1만5000원) 교실수업과 연계해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책을 만들어 볼 있도록 이끌어주는 방법을 담았다. 책을 좋아하는 학생뿐 아니라 그 반대인 학생들까지도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놀이처럼 느끼고 참여하게 하는 있는 여러 방법을 안내한다. ISBN을 등록하고 책을 인쇄하는 것까지의 전 과정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2 : 중·고등 편 (전보라·김담희·박민주·김다정·유병윤·심은화·박예진·문다정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펴냄, 292쪽, 1만7000원) 사서교사와 교과교사의 협력 수업사례를 엮었다. 중·고등학교의 수학·음악·미술·영어·가정 등 여러 교과와 연계한 실제 수업사례가 들어있다. 또 1~2차시 안에 가볍게 해볼 수 있는 것부터 4차시 이상의 프로젝트 수업까지 여러 형태의 수업방법을 담았다.
원소 쫌 아는 10대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풀빛 펴냄, 192쪽, 1만3000원) 화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과거에는 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외우기부터 했던 주기율표를 만들어진 과정부터 설명해주니 과학에 전혀 관심 없는 문과생도 이야기책처럼 읽을 만하다.
십 대를 위한 경제 사전 (김철환 지음 다림 펴냄, 216쪽, 1만3800원) 우리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다 경제와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경제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경제를 ‘대충’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한 크기의 이 책은 흔히 접하는 경제용어를 명료하게 풀어냈다. 책 구성도 한글 자음 순으로 경제학부터 환율까지 차례대로 이어져 마치 작은 경제 사전처럼 느껴진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아! (유수민 지음, 유수민 그림, 담푸스 펴냄, 36쪽, 1만3000원)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로 풀어냈다. 이 책은 학교폭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아! (유수민 지음, 유수민 그림, 담푸스 펴냄, 36쪽, 1만3000원)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로 풀어냈다. 이 책은 학교폭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옐로우 큐의 살아있는 경제 박물관 (양시명·나일등기행단 콘텐츠 지음, 이경석 그림, 안녕로빈 펴냄, 224쪽, 1만3000원) 경제 이야기를 모험 동화 속에 담아냈다. 주인공들이 유령에게 잡혀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이웃과 함께 잘사는 사업을 계획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산업의 발전과 소외된 이웃, 돈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권위 지키되 권위주의는 NO. 시무식서 빛난 서번트 리더쉽 경자년(庚子年) 새해, 임채성 서울교대 총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책상엔 인공지능 관련 서적과 지난 연말 열린 AI 콘퍼런스 자료가 펼쳐있었다. 집무실 한편에 큼지막한 망원경이 창가를 향해 있고, 소파 옆 탁자엔 현미경이 놓여있다. 임 총장은 새교육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교육은 멀리 보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며 망원경과 현미경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이제는 AI를 활용해 교과내용을 어떻게 잘 가르치고, AI 시대를 맞아 아이들이 AI를 활용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AI 전문교사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 총장은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나와 부산교대에 이어 서울교대에서 줄곧 과학교육을 가르쳤다. 천생 자연과학도인 그는 지난해 11월 제 17대 서울교대 총장에 오른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 서울교대가 교육을 바꾼다’라는 신념으로 훌륭한 초등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싶다.”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공감·내실·미래를 3대 키워드로 삼아 민주적이고 투명한 행정으로 소통과 지성, 창조의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변화는 예상보다 빨랐다. 새해 첫날, 서울교대 시무식은 예전과 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식장에 들어서려던 교직원과 학생들은 낯선 광경에 놀랐다.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이 미리 나와 입구에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맞은 것이다. 학생 대표단이 시무식에 참석한 것도 70여 년 역사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총장으로서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필요 없다. 학교구성원들을 받들고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에 옮겼다. 기대와 열정이 그를 감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원정원 감축 카드를 들고 나왔다. 교사 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대 다수 표층교육 → 1대 소수 심층교육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정부가 신규교사를 줄이고 교·사대 정원을 감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양성기관으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는데. “학생수가 줄어드니까 교사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낡은 패러다임에 기초한 계산법이다. 한 사람의 교사가 얕은 깊이로 많은 학생을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한 세심하고 깊이 있는 지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1대 다수-표층교육’에서 ‘1대 소수-심층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최근 들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져 심리적 위험 상태에 빠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사의 지도력이 더욱 중요하다. ‘1대 소수-심층교육’으로 전환하면 최소한 교사수는 지금 수준의 규모가 유지돼야 한다. 또 서울지역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아직 과밀학급들이 많다. 학급당 학생수를 적정화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지 경제 논리를 앞세워 교사를 무작정 줄이려 해서는 안 된다.” 양보다 질이다. 이제는 교사가 몇 명이냐 보다 얼마나 좋은 교사들이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는 거 아닌가. “현재와 같은 임용제도는 미래인재양성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교사를 선별하기 어렵다. 지필고사 위주의 임용제도는 객관성을 이유로 교육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극히 일부만 평가함으로써 중요한 요소를 놓치는 폐단이 있다. 공정을 내세워 과도한 객관성 추구에 집착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시험준비에만 매달릴 뿐 공동체활동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생회 임원이나 과대표도 서로 안 하려고 한다.” 교원 임용제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까. “시험점수가 아니라 교육자로서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해 교사로 임용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교대 추천전형이다. 시·도별로 신규 채용인원 중 10~15%는 해당 지역 교육대학에서 추천한 학생을 교사로 임용하는 방식이다. 교대 교수들이 4년간 학생의 인성과 적성을 평가한 것이라면 비록 개개인은 주관적 평가라 하더라도 전체의 합은 그 무엇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 교대 추천은 임용시험 심층면접보다 더 정확할 것으로 자신한다. 학생의 교직역량이나 적성을 평가해 우수학생을 추천, 임용하게 되면 점수제 폐단도 줄이고 교대 양성과정도 시대 변화에 맞게 달라질 것이다.” 교사는 점수보다 인성… 교대 추천 무시험 임용 도입해야 그러려면 교직 특수성을 반영한 전형 등 신입생 선발부터 달라야 할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정시·수시·학교장추천 등 다양한 전형방식이 있지만, 종단연구 결과 등을 살펴보면 학교장추천이나 사향인재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매우 성실하고 학업성취도가 높다. 반면 정시 입학생 중에는 상대적으로 교직 부적합 판정을 받은 학생들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서울교대에 공동체활동 등 비정규 교육과정이 많은 것도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것인가. “우리 학교 교훈이 ‘내 힘으로, 한마음으로’이다. 한때는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보면 볼수록 와 닿는 게 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인지 자기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서울교대 교훈(校訓)은 이런 세태를 꿰뚫어 보는 교훈(敎訓)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공동체활동을 실시하고, 각계 전문가 초청 등 특강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해서 학점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대신 SNUE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어 마일리지가 높은 학생에게는 장학금이나 해외연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총장선거에서 ‘양깔때기 이론’으로 표심을 파고들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 좀 해 달라. “(웃으며) 학회 등에 정식으로 발표하거나 등록된 이론은 아니고, 제가 미국 연구년 시절 서울교대가 지향해야 할 교육모형을 잠정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그림을 보면 왼쪽의 작은 깔때기는 서울교대에 입학하는 상황을 의미하고 중간의 적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진 박스는 서울교대 교육과정, 그리고 오른쪽 큰 깔때기는 서울교대를 졸업한 교사나 교육전문가를 의미한다. 서울교대 교육과정의 전반부가 ‘적색’인 것은 생태계의 소비자를 의미하고 학생들이 교사로서 필요하지만 자신에게는 아직은 없는 교육 관련 정신·기능·지식을 ‘소화·흡수’하는 시기이고, 후반부가 ‘녹색’인 것은 생태계의 생산자를 의미하여 전반부에서 습득한 교육정신·기능·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교육지혜를 ‘생산·창출’하는 시기를 거쳐 교사 또는 교육전문가로 사회에 진출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4년간 교대 교육과정이 단순한 스펙을 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량과 스펙트럼을 갖춘 교육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교대 교육모형에서 왼쪽 깔때기보다 오른쪽 깔때기가 훨씬 더 큰 것은 앞으로 교사는 자기가 살아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아이들, 훨씬 더 다양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작은 걸 배워도 크게 가르치는 교사, 적게 배워도 많이 가르치는 교사가 됐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교단은 좁다’ …법조·언론·행정으로 진출하는 초등전문가 양성을 단순히 교사양성에만 매달리는 서울교대가 되지 않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인가. “당연히 교육대학은 교사양성이 목적이다. 그러나 저는 우리 대학의 성격을 초등교사 양성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규정하기보다 초등교육전문가 양성으로 범위를 넓혀 학생들의 진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초등교육을 전공한 법률가·언론인·행정공무원·출판전문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할 초등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사실 교대 들어온 학생 중 일부는 교사가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고, 다른 분야에 관심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꿈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길을 터주고 싶다.” 수습교사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어려운 임용시험을 뚫고 교단에 섰다 하더라도 학교폭력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많다. 현장실습이 있다곤 하지만 실질적인 경험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따라서 교사임용 후 1~2년 정도 인턴기간을 두고 학교현장에 적응할 시간을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해 들어 교육계 화두는 AI다. 서울교대도 올 2학기부터 AI 교사양성을 위한 대학원을 운영하는 데 준비는 잘되고 있나. “교육에서 AI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학교에서 AI를 활용해 교과내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가르칠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잘살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다시 말해 AI를 활용해 인간의 자연지능을 더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교육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것을 AINI(Artificial Intelligence for Natural Intelligence) 교육이라고 부른다. 이를 위해 올해 AI 교육을 주제로 학술대회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교육부에는 AI 교사양성을 위한 ‘인공지능(AI)교육대학원’ 설치를 건의할 생각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우리 대학에 AI 교육연구개발센터를 꼭 만들고 싶다.” 막 오른 AI 교육시대, 인공지능교육대학원 설립 나선다 정부가 AI 교육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준비 없이 슬로건만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실체가 불분명해 AI 스트레스라는 말도 나온다. “솔직히 AI 교육전문가를 찾는 거부터가 쉽지 않다. AI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고민이다. 이제부터라도 열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대학 교수들에게 AI 관련 서적을 구입해 나눠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교직에 입문한 지 25년이다. 총장의 교육철학이 궁금하다. “그간의 교육경험으로 볼 때, 학생은 ‘첫째, 하라는 것도 못 하는 학생, 하라는 것도 안 하는 학생과 둘째, 하라는 것만 하는 학생, 하라는 대로만 하는 학생, 하라는 만큼만 하는 학생, 셋째, 하라는 것 이상을 하는 학생’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이는 비단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첫 번째 유형은 가장 먼저 도태될 것이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두 번째 유형에 큰 비중을 두고 거기에서 성과를 올린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유형의 일은 AI가 훨씬 더 잘하기 때문에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는 세 번째 유형인 하라는 것 이상을 알아서 하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대학에서는 스스로 하라는 것 이상을 하고 그런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전문가를 양성할 것이다.” 올해 개교 74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100년을 향해 전진하는 서울교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앞으로 우리 대학은 전달식 교육이나 기존 기술 습득방식에서 벗어나 고품격 교육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연구에 기반을 둔 교육, 이론과 실제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대학,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대학, 효율적이고 열성적인 지원행정이 이뤄지는 대학을 만들어나가겠다. 저 또한 ‘하라는 것 이상을 실천한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딜레마 「공직선거법」개정으로 올해 4월 15일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고3 학생 중 일부가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회가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제15조를 개정하여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하한 연령을 기존의 만 19세에서 한 살 더 낮추어 만 18세까지 한 살 낮추었기 때문이다.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만 18세의 전체 유권자는 약 53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중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3 학생은 약 1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경남일보, 2020.1.12.). 단순히 투표 연령만 한 살 낮춰진 것이 아니라 18세 고3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등 선거운동·정치활동이 가능해졌다(한국교총 보도자료, 2020.1.3.). 그런데 문제는 현행 법령상 선거권만 단지 확대했을 뿐, 이로 인하여 새롭게 선거권을 행사할 학생들을 위한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학교가 법제적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표방해왔는데, 이것이「공직선거법」개정으로 일거에 혼란을 겪을 상황에 처했다.「교육기본법」제6조는 ‘교육의 중립성’ 제목하에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제14조(교원)의 제4항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거권도 학생의 중요한 인권이며, 이것을 이제「공직선거법」에서 보장한 이상 학교가 이를 유념하고 존중하여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요컨대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복 입은 유권자’의 권리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 사이에서 학교가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4월 총선까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이것을 위한 법적·현실적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서울신문, 2019.12.31.). 딜레마 해소를 위한 네 가지 대책 이번 선거권 부여와 관련하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차원에서 학교 교육이 준비해야 할 대책은 적어도 네 가지이다. 첫째, 교사들의 정치적 편향 교육예방 및 사후 감독 당파적 의식을 가진 교사들의 정치적 편향교육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최근 서울 인헌고에서는 일부 교사들이 반일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조국 관련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해 정치편향 교육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조선닷컴. 2019.12.2.). 서울시교육청이 인헌고 교사의 문제를 불문에 붙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교권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책임도 수반한다. 반면에 지난해 10월 부산시교육청은 조국 가족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을 비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인용해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한 A고 교사와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B 교사를 동시에 징계했다(동아닷컴, 2020.1.7.). 좌 또는 우의 정치적 편향교육으로 중립성을 훼손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 전언에 의하면 부산시교육청의 교사 징계 근거는「공교육 정상화 및 선행학습금지법」과「교육기본법」이다. 전자의 법은 지필평가·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교육기본법」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교육을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교육계에 경종을 울려주는 사례다. 하지만 그보다는 교사의 편향성이 학생의 후보자 선택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후징계보다는 사전예방이 더 중요하다(동아닷컴, 2020.1.7.). 둘째,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학내 선거운동에 대한 학교와 학생의 대책 확보 입후보한 후보자들의 학내 선거운동에 학교와 학생이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점에 관한 사전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외부 지역 의원들이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상을 주거나 축사를 하겠다고 학교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교육청 주최로 후보자 토론회를 여는 등 교육당국이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데 공감한다(서울신문, 2019.12.31.). 중앙선관위는 ‘교실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교내 선거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 “교사나 학교 관계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을 것”이라며 “교내 의정보고회·명함 배부·현수막 게시 등을 막기 위한 입법도 선거 전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세계일보, 2020.1.9.). 셋째, 학생 상호 간에 예상되는 정치적 선동과 충돌 예방 학생 상호 간에 예상되는 정치적 선동과 충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는 해당 학교뿐 아니라 상당수의 고교에서 학생이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하거나 학생회 회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학칙을 통해 금지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으로 이 같은 고교 학칙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만 18세가 돼 선거권을 부여받은 일부 고3 학생들이 투표와 선거운동·정당 가입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서울신문, 2019.12.31.). 이로 인하여 “학생들이 선거법을 어기는 등 위법을 저지르거나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조선닷컴, 2019.12.2.). 교실 내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을 못 하도록 지침을 점검하고 법도 손을 봐야 한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자가 선거운동 할 수 없는 장소’에 학교는 들어가지 않는다. 교실 방문도 명시적으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후보들이 교실을 찾아 명함 돌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조선일보 2020.1.6.). 넷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극적 중립의 유권자 교육의 시행 학생들이 합리적 비판의식의 소유자로 유권자로서 한 표를 어떻게 정의롭게 행사하도록 도울지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협의하여 학교에 ‘학생용 선거법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조선일보, 2020.1.1.).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학생의 선거권 획득은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선거법과 관련해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에 대한 대응방법과 선거교육을 내실 있게 운영하는 방안 등을 선거관리위원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서울신문, 2019.12.31.). 교육부가 2월 말까지 교수·학습자료를 개발해 선거교육을 하겠다고 했지만 급조된 만큼 부실할 가능성도 크다(중앙선데이, 2020.1.11.). 선거교육은 단순히 올바른 투표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정치교육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지금까지 학교에선 정치가 금기어처럼 사용되면서 오히려 사상적으로 편향된 사이비 정치교육이 판을 쳤다. 보도에 의하면 선거권이 만 18세로 확대된 만큼 학교현장에서의 정치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립 입장을 견지하되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교실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치적 중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극적 중립이다. 이것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염려해서 아예 정치적 문제를 교실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중립이다. 예컨대 시사문제를 교실로 끌어들이되, 결론은 학생들 스스로 내리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른바 쟁점중심수업(Issues-centered learnig)은 특히 현실적 이슈를 다루는데 적합한 수업방법이다. 수업 중 토론의 기회를 갖도록 하되, 그 취지에 맞게 최종 결론은 학생들이 스스로 내리도록 교사들은 중립을 지킨다. 이것이 이른바 「헌법」제31조 4항이 표방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편이다. 현실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적극적이지만, 교사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유보한다는 점에서 중립이다. 끝으로 공정한 선거교육을 위해서는 외부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선거교육을 전 교육감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위탁했다. 보도에 의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 교육감은 얼마 전 특별사면으로 총선 출마 가능성이 열렸다고 한다. 시교육청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면 선거교육에 편향된 인사의 참여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중앙선데이, 2020.1.11.). 국회 홍일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공직선거법」개정안은 그런 점에서 같이 검토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 생각한다. 즉, 초·중·고등학교에서 선거교육을 실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해당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선거교육 전문 공무원을 통해서 교육하도록 하며, 선거교육 담당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벌칙규정을 선거법에 명시하고자 하는 것이다(안 제85조의1). 외국 사례와 시사점 올바른 정치교육을 위해 선진국의 다양한 성공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시민교육이란 이름으로, 독일에선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별도 교육과정을 마련해 민주주의의 원리와 시민의 덕성 등을 가르친다(중앙선데이, 2020.01.11.). 특히 ‘편견 없는 사람’을 목표로 삼고 다양성과 관용의 역량을 몸에 배도록 해왔다. 특정 이념과 주장을 주입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이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란 1976년 동·서독 분단 시기에 서독의 진보·보수 학자와 정치인이 합의한 정치교육 지침이다. 교사가 자신의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토론하며 학생들의 정치 행위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경향신문, 2019.12.9.). 이상의 세 가지 원칙은 4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일 시민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인정받고 있다.
01 소년기의 체험 중에 뒤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나의 전인(全人)을 발달시켜 준 것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8㎞ 떨어진 구미 장에 염소를 팔러 갔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 무렵은 나라도 몹시 가난하여 선생님 봉급을 곡식으로 주었다. 집에서 새끼로 낳아 기르던 염소가 자라자, 돈을 마련하려고 염소 두 마리를 팔러 갔다. 한 마리는 아버지가, 다른 한 마리는 내가 끌고서, 이십리 들판을 걸어서 갔다.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염소 중에 고분고분한 염소는 없다. 얼마나 뻗쳐대며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가져가는지, 한 걸음도 순하게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염소의 본성을 온몸으로 배웠다. 첫째, 둘째, 셋째… 하며, 책에 정리된 지식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었다. 몸으로 배운 것이다. 염소 본성이 무엇이더냐? 누가 물으면 정리된 언어로 말하기는 어려워도, 나는 안다. 내 몸이 이미 염소의 성질을 알아버렸다. 그날 4학년짜리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염소 팔러 장에 간 아버지께서 시장바닥 장사꾼들의 농간에 속수무책 어리숙한 모습으로 당하신 것이었다. 학교에서 인자함과 위엄을 보이시고, 특히 마을에서는 주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으셨던 아버지 아닌가(1960년대 농촌 학교와 마을은 대개 그러했다). 그러나 여기 구미 장터는 완전 타지이다. 행정 구역상 군(郡)이 다르다. 아버지를 선생님인 줄 아는 사람도 없다. 닳고 닳은 장사꾼들과 거간들은 생전 처음 염소 두 마리 팔아보려고 장에 온 아버지를 으름장으로 가격을 후려치거나, 거칠게 놀려대는 언사로 건드렸다. 아버지는 시종 공손한 언어로 대응했는데, 그게 더 그들의 심술을 키우는 듯했다. 어린 내 눈에도 아버지의 곤경이 보였다. 나의 충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버지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사회화(socialization) 학습을 한순간에 하도록 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장사꾼 어른들의 벌거벗은 욕망과 거친 언어에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온실에서 자란, 세상 체험의 면역이 전혀 없는 소년, 어리숙한 시골 선생의 아들이었으므로 충격이 컸다. 나는 그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세상의 매운맛을 혹독하게 보았다. 내 안에 만들어진 윤리적 갈등은, 그 자체가 학습이었다. 어른 공경하라고 배웠는데, 아 저런 어른들을 어찌 내가 공경해야 한단 말인가. 뒷날 시장의 기능과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 그리고 상행위(商行爲)의 윤리 등을 배울 때, 나는 이미 아는 것이 많았다. 체험의 은덕이라고나 할까. 그때 그 체험을 감당했던 몸이 나를 일깨워 학습으로 인도하였다. 그날 아버지와 나는 늦도록 염소를 팔지 못해 고생했다. 시장바닥 장사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간신히 팔았다. 아니 그들에게 싼 가격으로 넘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두워지는 들판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분하고 억울하고 우울한 체험이었다. 나는 이 체험에서, 내가 학습한 것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의식 아래로 잠긴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뭘 학습했는지 나 자신도 그 전부를 모른다. 그러나 그 학습은 두고두고 나를 다른 학습의 영토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장터에서 나의 의식은 초롱초롱 살아있었다. 나는 강한 주체로서 현장에 있었다. 체험이란 그러하다. 6학년이 되어서는 더 극적이고 격렬한 체험이 있었다. 우리 학급에서 기르던 100근 정도의 돼지를 학교 안 돼지우리에서 도난당했다. 아침에 당번 학생이 먹이를 주러 돼지우리에 갔는데, 문이 부서져 있고, 돼지는 없었다. 밤새 비가 온 탓인지 숙직 선생님도 눈치를 채지 못했단다. 누군가 훔쳐 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수업을 제대로 못 했다. 남자아이들 20여 명은 학교에서 12㎞ 떨어진 ‘해평’이란 곳으로 갔다. 나도 갔었다. 그날 해평에서는 5일장이 섰다. 도둑이 해평 장터에 돼지를 팔려고 올 것이다. 집단 지성이랄까. 나름의 중지를 모아서 간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해평 장터에서 우리의 돼지를 찾았다. 도둑은 돼지를 버리고 사라졌다. 찾은 돼지와 함께 우리는 비가 부슬거리는 길을 걸어 학교로 돌아왔다. 왕복 60리를 걸었지만, 지친 기색도 없었다. 우리는 개선장군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엄청난 체험을 했다. 지식 체험은 물론, 정서·사회성·도덕성·인성 등이 동시 학습의 기제로 나의 체험 안에서 발효되었으리라. 체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체험에서 내가 학습한 것은 무엇일까. 이걸 제대로 분석해 볼 수 있을까. 분석으로 쉽게 파악될 성질의 학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분석의 방법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상당한 양과 질의 학습이 이루어졌으리라. 지금도 울림과 떨림이 있는 체험으로 남아 있다. 그 학습은 이후 나의 배움에 어떤 동력으로 작용했을까. 02 근대 ‘이성의 시대’에 지식은, 논리화되고 개념화된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지식’이어야 했다. 학교는 바로 그 지식을 가르치는 데에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언어적으로 정제된 기술(記述) 방식을 가지고 학문의 체계에 녹아들었다. 지식 능력이 언어 능력과 비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지식 토양 위에서 학교 교육은 근대의 ‘합리성’을 강화하였다. ‘합리성’이란 이성에 부합하는 정신과 지식을 표상하는 개념 아니겠는가. 학문의 체계를 갖춘 ‘분과 학문(분과 지식)’이 ‘학교 교육의 내용(curriculum content)’으로 굳건한 자리를 점해 왔다. 근대를 보내고 탈근대의 담론이 무성하지만, 학교 교육을 둘러싼 지식 문화의 유전자는 이런 분과 지식을 표준형으로 한다. 그 문화 유전자는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극단의 경우, ‘언어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잘 모르는 앎’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입지에서는 일상의 경험이나 체험이 이들 지식과 맞먹는 위상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체험 자체를 전통의 지식과 맞먹는 자격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와서이다. 더구나 앎의 선험성(先驗性) 즉,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또는 이전에 들은 기억으로 앎이 생성된다는 관점과 마주칠 때, 체험은 더욱 왜소해지고 위축된다. 지식에도 문화가 있다. 무엇을 지식으로 볼 것인가. 어떤 지식은 가치 있는 지식이고, 어떤 지식은 가치가 부족한가. 지식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한 국가나 사회가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나 태도가 ‘지식 문화’이다. 예컨대 체험에서 얻은 앎은 정제된 지식으로 개념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이는 곧 그 나라의 지식 문화에 해당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체험에서 얻은 앎도 충분히 논리화·개념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한 사회가 널리 공유하고 있다면, 이 또한 일종의 지식 문화에 해당한다. 우리의 지식 전통은 어떠한가. 지식이 진리를 표상하는 역할을 하고, 이치의 이상을 담을 때, 높은 수준의 지식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가. 몸으로 하는 것은 선비들의 일이 아니고, 아랫것들에게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런 지식관의 전형이다. 그래서 지식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체험’을 지식으로 보지 않고, 지식을 구성하는 하위의 재료 정도로 보려 했다. 조선 후기에 성리학에 대한 대척의 위상에 있던 실학이 구박받는 학문으로 있었던 것도, 경험 실체를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당시의 지식 문화 때문이었다. 우리가 세계사의 흐름에서 제대로 근대를 각성하기도 전에, 조금 앞서 근대를 섭렵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은 ‘경험의 과학’을 우리의 지식 전통이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융합과 창의를 강조하는 시대이다. 목표의 융합, 학습의 융합, 사고의 융합, 교과의 융합 등이 시대의 구호처럼 들려온다. 지금의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역량’이란 개념도 학생의 융합된 능력이 그가 실제로 발휘하는 능력임을 강조한 것 아닌가. 융합의 프로세스가 가장 강한 ‘배움의 방법(학습법)’은 무엇인가. 나는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체험에 관여하는 모든 지각 작용과 인지적·정의적 전략과 반응들은 분절하여 늘어놓을 수가 없다. 해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고도의 융합적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그 융합의 프로세스를 언어적 기술(記述)로 완전 복기(復棋)하기도 어렵다. 체험학습은 무성한데, 체험 연구는 없다. 체험이 어떤 학습 프로세스를 동반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선 ‘지식으로서의 체험’을 깊이 구명하고, ‘체험의 지식 상관성’을 폭넓게 연구해야 한다. 교육은 ‘체험’을 일반상식의 레벨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전문성 담론으로 탐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