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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원단의 태양이 떠올랐다. 어제와 똑같은 그 태양이다. 하지만 오늘의 저 태양은 내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거울이기에 더욱 빛난다.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교단이 새해를 맞았다. 희망찬 한해, 보람찬 새 해를 넘어 2002년은 교총에서 정했듯 `자존심 회복의 해'여야 한다. 물론 회복해야 할 그 자존심은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원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긍지이며 교직을 수행할 교원의 생명이다. 이제 우리 앞에 다가선 2002년을 진정 `자존심 회복의 해'로 우뚝 세우기 위해 함께 풀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교원 정년 환원이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교원 정년 연장이 아니고, 교원정년의 65세 환원이다. 정치권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노력해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지난해 교단은 1년 때문에 자존심을 구겨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의지가 마치 `1년을 더 해먹기 위한 집단이기주의'로, 즉 우리들의 밥그릇 찾기로 비쳐진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분명 1년이 아니었는데, 정치권에 휘말려 1년으로 비추어졌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정년 65세 환원이다. 나아가서는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는 것이다. 다음으로 7차 교육과정의 개선이다. 처음부터 준비가 잘 안된 상태에서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중학교는 1학년이 이미 적용 받고 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는 모든 학년, 중학교는 2학년까지, 고등학교도 1학년에 도입된다. 교육과정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 교육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개선해야 한다. 지속적인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면 분명 책임은 교사나 학생, 학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예측이 가능한 만큼 그 동안 파행적으로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교실에 컴퓨터만 갖다놓고 교사에게 컴퓨터만 지원한다고 해서 7차 교육과정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은 여건을 충분히 갖추어 주어야 한다. 반드시 7차 교육과정을 개선 해야 한다. 교원성과급 제도도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틀을 깨뜨릴 수 없다면 기본을 유지하면서 합리적으 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말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가지고 받아들이느니, 못 받아들이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우리 스스로 좋은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며, 그 방안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모든 학교의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공교육을 못 믿어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공교육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물론,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학교를 버리고 학원으로 몰리는 학생들, 외국 유학 길에 오르는 학생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동안의 교육방법이나 교육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사교육을 이길 수 있는, 즉 공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우리들 스스로 찾아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을 탓하면서 거기에 편승하여 학생 지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교통사고 내놓고 잘잘못만 가리고 사고처리는 하지 않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자존심 회복의 해'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어디 이 것뿐 이겠는가. 더 중요하고 급한 과제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소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사들의 첫 번째 사명은 우리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어떤 경우에도 어른들의 잘못된 제도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막아야 한다. 만약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는 정책을 탓하기에 앞서 그 피해를 최소화한 후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동일계 대입 정원외 선발 확대, 실업계 수능 신설, 실험실습기자재비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실업교육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그 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건의해 온 실업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본다. 특히 실업고 교원과 직업교육전문가, 시도교육청 관계자가 참여해 각계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물론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도 듣고 있지만 이번 방안으로 실업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 그 예로 2002학년도 실업계고 입시 전형에서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다소 높아진 것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실업교육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은 제시된 방안을 보완을 거쳐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겠지만, 실업교육이 단지 몇 가지 제도를 보완하거나 경제적인 지원을 다소 확대해서 될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문계 고교생은 1. 5%가 중도탈락한 반면, 실업계 고교생은 인문계 고교생의 세 배가 넘는 5%가 중도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실습 중인 상당수의 학생조차도 특별한 소신이나 준비 없이 무작정 대학에 진학하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실업계 지원 당시의 꿈과 희망에 도달해 있다면 과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실업고교의 설립 취지는 직업인으로서 기본적 교양을 함양하고 관련 직업 분야의 기초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실업계고 졸업생들이 이런 설립 취지에 부합할 정도로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노동에 대한 애착과 열정, 해박한 지식과 기술을 함양하고 있는 지 자문할 일이다. 실업교육 육성 방안의 본질은 실업고를 졸업해도 해당 직능 분양에서 우대 받는 유능한 직업인, 자긍심 갖는 장인(匠人)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두어야 한다. 실업고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국가경쟁력의 근간을 세운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속에 교육에 전념하도록 힘을 실어주는데 두어야 한다. 또 실업계고에 진학시킨 학부모의 어깨가 신명나게 하는 데 두어야 한다. 부디 실업교육이 제자리를 찾도록 정책 담당자와 관계 당국, 교사, 학부모님의 지혜와 노력이 모아지기를 촉구해본다.
주말을 지낸 후 어제는 다래를 포함해 결석한 원아들이 많아 전화를 여러 통 걸었다. 하지만 다래에게만 연락을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밤낚시 갔다가 다래를 두고 영영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아빠 때문에 다래 네는 전화요금도 미납된 처지였다. 아빠의 자리가 비어서일까. 유독 날 잘 따르던 다래. 언젠가 급식실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난다. 줄을 서서 배식을 받은 아이들은 차례로 안쪽부터 앉기 위해 식판을 들고 걷고 있었다. 그 때, 다래가 식판을 든 채 "여기 앉 아 먹을래요"하며 어른 수저가 놓인 자리 옆에 서 있었다. 난 좀 망설이다가 "그래? 그럼 오늘 만이다"하며 다짐을 받았다. 그런데 뒤에 서 있던 성호가 다래에게 오더니 "임다래! 너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며 큰소리를 쳤다. 난 "성호야, 오늘만 앉으라고 하자"고 말했지만 성호는 "안 돼요. 먼저 받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잖아요"라며 다래를 쏘아봤다. 다래는 난처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며 편을 들어주길 바랐지만 성호의 당당한 질서의식 앞에 난 주눅들고 말았다. "다래야, 오늘 말고 내일은 꼭 선생님 옆에 앉게 해줄게"라며 다독이자 다래는 할 수 없이 식판을 들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선생님, 다래가 밥 안 먹고 울어요"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 가보았더니 다래의 얼굴에는 이술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래는 자기를 안 예뻐한다고 생각했는지 보통 실망하게 아닌 눈치다.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 했지만 친구들이 밥을 다 먹고 가버린 식탁에는 다래와 가까운 미정이만 남았다. "다래야, 선생님은 다래가 제일 좋단다. 슬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이제 그만 밥 먹자. 응?" 토라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지, 다래는 한참 후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래를 사랑해"하는 소리를 반찬으로 먹으면서…. 다래는 밥을 다 먹고 복도를 걸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얼굴은 언제 비가 내렸다 싶게 환한 표정이다. 어제처럼 다래가 결석했을 때, 내 마음이 유난히 초조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다래는 예쁘고 상큼한 모습으로 살포시 미소지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다래야 선생님은 다래를 무척 사랑한단다." 다래를 껴안으며 마음으로 던진 말이 내 몸에서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농촌지역 3학급 학교로 폐교 위기에 몰린 경북 남선초(교장 송영길)가 교직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학생수를 두 배로 늘려 화제다.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에 위치한 남선초는 20년 전만 해도 10학급(372명) 규모의 학교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전학으로 99년에는 전교생 36명(3학급)의 소규모 학교가 돼 폐교 위기에 몰렸다. 교사 3명에 전학년 복식수업으로 교육환경도 크게 악화됐다. 이에 교직원들은 눈물겨운 학생수 늘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취학을 앞둔 자녀의 가정과 학구위반 가정에 매월 남선 통신문을 보내고 매일 전화상담과 가정방문을 통해 소규모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홍보했다. 한 집을 20번 이상 방문하고 밤늦게 맞벌이 가정을 찾아 12시가 넘어 귀가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우선 여교사 3명 모두 자녀를 남선초로 전학시켰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용마아파트 237세대 주민 자녀를 위해 승합차를 마련, 운행하고 있으며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위해 전 문강사를 초빙해 피아노, 컴퓨터, 영어부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또 컴퓨터실·피아노실 설치, 급식소 정비 등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수준별 개별화 학습지도, 개인별 인성·특기적성 교육과 생활지도를 펼치며 소인수 학급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남선초는 2001학년도에 전교생이 63명으로 늘고 교직원 수도 6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났다. 학급 수도 6학급으로 늘어 복식수업이 완전히 해소됐다. 대부분 위장 퇴거 후 자녀를 안동 시내 학교로 입학시키던 용마아파트 주민들이 2001학년도에는 취학 대상 자녀 9명중 7명을 남선초에 입학시켰다. 한 명도 입학시키지 않은 2000학년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또 안동시내 학교에 다니던 이 지역 학생 14명이 오히려 남선초로 전입해 오는 등 폐교 위기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교'로 완전히 탈바꿈에 성공했다. 송영길 교장은 "내년에는 15명의 학생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모두가 교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 행복한 골짜기에서, 흡족한 마음으로 죽는 용기를 발견하리라. - Camus ... 때때로 나는 변신에 능한 배우를 꿈꾸었다. 변신에 능한 배우들은 언제나 눈물을 미소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카프카의 한 마리 징그러운 벌레를 연상시켰다. 나는 종종 두 벌의 옷으로 세상을 그렸다. 내가 가진 한 벌의 옷은 완전한 권위를 향한 동경으로서 그것은 마음속에 자리한 일상의 안정적인 갈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벌의 옷은 크고 완전한 권위에 대한 반발로서 이는 필연적으로 미미한 존재로 향하는 헤아릴 수 없는 연민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두 개의 날개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이질적인 다른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하는 국면에 처해지고는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선택은 이성을 앞서 번번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하였다... 1. 목사는 꼽추였다. 빨간 지붕이 뾰족한 언덕 위의 교회에서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오후의 햇살이 찬찬히 스러지고 난 어느 더운 여름밤이었다. 세월의 파란이 그저 무관히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 목사의 구부러진 등은 노회한 성직자의 한 현신처럼 보였다. 말씀을 전하는 도중 간간이 땀을 닦기 위해 등을 구부려 손수건을 꺼낼 때면 작고 구부러진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천정 아래 사방 벽면에 그려진 예수의 얼굴은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소짓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날의 분위기는 고요하다못해 어디인지 모르게 괴괴함마저 풍기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묘한 적막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 날 나는 종일 예배당을 찾아 헤매이다가, 마침내 예배를 드릴 만한 성소에는 모두 불이 꺼져버리고 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언덕 위의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언덕 위에 우뚝 서서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예쁜 뾰족 지붕의 건물 하나가 비현실적인 불빛을 반짝이며 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내가 차를 타고 몇 번이나 지나친 적이 있는 낯익은 거리의 한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에 단 한 번도 눈에 띈 적이 없었다는 새삼스러운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알 수 없는 흡인력에 이끌려서 거짓말처럼 나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 낮에 내가 들었던 신의 음성은 오랜 방황이 만들어낸 내 생의 더없이 가난해진 마음 밭에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상 위에서 신의 얼굴이란 어쩌면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내 오래된 절망을 마감하고 이제 속히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신의 계시처럼 불쑥 나타나 나를 흔들어놓았다. 그러니까 이미 몇 번의 휴학과 복학 끝에 어렵게 야간 신학대학원을 수료한 지 햇수로 삼년여나 지난 아직까지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내 신학논문과, 그로 인해 영원히 수료로서만 남아있는 내 절름발이 신학의 이력처럼 주일이 되면 그저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예배당을 기웃거리던 나는 차라리 무교회주의자로 불려야 마땅하리라. 딴에는 개신교도들이 내보이는 적극적인 구원의 집착에 대해 진작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간단히 안주의 터를 결심한 것이 무반응에 가까운 신도들의 과묵함이라든가 아무런 욕심 없이 예배당을 떠다니던 무심한 공기들 때문이었다면 그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또 한 사람- 어둠 속에서 바라본 꼽추 목사의 눈빛은 생의 숱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은 자의 단단한 위엄으로 나를 붙들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는 완벽한 나머지 교활함과 닮아 있는 어떤 종류의 카리스마를 보았다. 만일 꼽추목사에 대한 나의 이러한 견해가 정상적인 신체를 지니지 못한 장애인이라는 데에서 나온 동정심의 발로라거나 불구의 몸으로 신의 제단을 돌보는 일의 거룩함에 대한 그릇된 신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의 믿음은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건함에 사로잡혀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신뢰를 느끼고 있었다. 과연 그것이 신 앞에서 정당한 신앙의 뿌리에 기초한 것이었는가. 그 날 이후 나의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2. 교회는 케이크로 만든 아담하고 예쁜 굴뚝 집을 닮았다. 백여 명이 채 못되는 교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착실한 모습으로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종교음악을 전공한 나는 작은 교회가 으레 그렇듯 간단한 오디션조차 없이 곧바로 지휘자로 취임하였다. 음악에는 사람의 영혼을 열어주는 힘이 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무장도구들을 해제 한다. 그것이 내가 별 다른 망설임 없이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성가대는 초보적인 중창단 규모였으며 재정상의 이유로 인해 조직이 몹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첫 연습이 끝나고서 유아실에 모인 교인들이 작은 케이크에 불을 붙여 나의 지휘자 취임을 축하 해 주었을 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세상은 평온했고 순조로웠으며 그런 대로 아름다웠다. 나는 세상의 짐을 한쪽으로 부려놓고 모처럼 안주의 평화를 맛보고 싶었다. 만일 그간의 나의 삶이 오랜 방황으로 거듭된 것이었다면 이제야 비로소 봉사와 헌신을 통해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녁 예배를 마치고 목회실에 들어갔을 때 목사는 기도 중이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목사의 등위로 흉물스러운 짐승의 조형물처럼 불쑥 튀어나온 반구가 그대로 불거져 보였다. 저녁 햇살이 스러지는 적막한 목회실에 홀로 엎드린 목사의 뒷모습은 차분한 실내의 다른 성물들과 어울려 경건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하듯 엎드린 목사 옆으로 다가가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목사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자네가 보다시피 우리의 공동체는 주님의 몸이라 자부하기에는 몹시 비루한 형편이네. 허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네. 자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겠네 만 이곳은 비록 보잘 것없는 성소이지만 자네의 모두를 바쳐야 할걸세. 잊지 말게. 자네의 전부를 걸고 성소를 지켜주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구원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닌가. 모든 것을 바쳐 성소를 섬길 것을 거듭 당부하는 목사의 음성은 안에서 웅얼거리는 작은 속삭임처럼 미미하게 들렸지만 그 순간 지상 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명령처럼 크고 강건하게 성전을 울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 구원의 희망을 두어야한다는 꼽추목사의 말을 되새기는 순간 머리 속을 재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의 불충한 제자 도마와, 허술하고 미진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 청년기의 어느 그림이었다. 성서에서 예수는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의 옆구리를 직접 만져 못 자국의 상처를 확인하는 의심 많은 제자 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눈으로 보고서야 믿느냐. 이제부터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한 부분으로 태어났으면서 물질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모순의 하나일 터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현상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깨닫는다. 이를테면 검은 비구름이 걷히고 난 후 그 속에 감추어진 눈부신 햇살을 마주하게 될 때 내밀히 감추어진 희망을 붙들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듯. 그러나 나에게도 마치 도마와 같이 어리석게 증거를 보여달라고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린 적이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졸라대다가 막상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나면 얼른 실감이 나지 않아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은 예기지 않게 어느 날 나의 경험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 청년회 시절 수련회의 어느 날 밤, 사방이 모래벌판으로 가득하고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빛들이 선명하게 박힌 모든 것이 알맞게 평온하고 간절한 여름밤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 꼬박 밤을 밝혀 기도하던 그 날 나의 기도제목이 하필 '방언기사(奇事)' 였던 것은 아마도 그 무렵 오랜 신앙의 친우인 허(許)가 방언은사를 받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혼자서 다리가 저리도록 되풀이되는 기도에 지쳐있을 무렵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에 깡마른 체구를 지닌 허가 내게 다가왔다. 작은 얼굴에 쌍꺼풀진 두 눈이 오히려 더욱 크고 시원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녀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 씩씩하게 보였 다. 허는 내게 다가와 자신이 기도 중에 큰 은혜를 받았노라며 함께 기도해보자고 권유했다. - 저길 봐라. 사방에 검은 옷을 입은 마귀 떼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저들은 지금 우리 기도를 방해하려고 온 거야. 그만큼 지금 우리의 영적인 힘이 충만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 - ... ... 나는 허가 자신만만하게 가리키는 손가락 끝의 어둠을 돌아보았다. 내 눈 속에는 칠흑의 어둠속에서 무릎을 꿇은 성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나 허의 두 손을 잡는 순간 놀라운 흡인력이 그의 두 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뜨거워진 손을 붙잡았을 때 나는 더할 수 없이 간절히 방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미지의 기이한 언어가 내 입 속에서 튀어나온다면 그때야말로 분명히 신의 존재를 시인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 아닌 신념이 마주잡은 두 손을 더욱 단단히 그러쥐게 했다. 허와 함께 기도한지 십여 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입술에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어라 정의 내리기 힘든 신비한 언어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들은 입 속에서 나온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크고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워진 나머지 일상의 언어로 소리내 기도하려고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알아듣기 힘든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들이 중언부언 되풀이될 뿐이었다. 허는 감격에 겨운 듯 큰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주변에 있던 몇몇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다가와 나란히 감사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신의 존재와 만난 최초의 기억이었다. 3. 성가대의 교육지휘자로 부임한지 이주일 만에, 나는 교회의 오랜 자매학교인 맹인학교의 개교 십주년 기념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었다. 교회에서 불과 삼십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맹인학교 교정의 길목에는 키 작은 정원수가 낮게 엎드려 있었다. 정원수들의 한 쪽 귀퉁이에는 '쥐똥나무'라는 낯익은 현판하나가 매달려 있다. 세상의 모든 거창한 이름을 버려 두고 쥐똥에 비유되는 옹색한 이름만큼이나 자잘하고 흔한 나무가 공해에 잘 견디는 질긴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쥐똥나무는 교정의 먼지를 머리에 잔뜩 이고서 낮게 엎드려 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바삐 걸었다.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학수(學洙)는 맹인학교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꾸벅 인사하는 멀쑥하게 키가 큰 열여섯살 소년은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리알처럼 투명한 그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부모 모두 맹인인 선천성 맹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원봉사자를 위한 정기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학수는 음악 페스티발의 총지휘를 맡은 대표급 학생이었다. 개교 십주년을 기념하는 음악 페스티발은 맹인학교의 첫 교외행사이자 학교의 위상을 외부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로서, 지역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큰 행사였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소년을 만나 음악 페스티발 행사를 돕는 것 이외에도 점자화되지 않은 일반 음악전공서적을 지도해주는 등의 개인 레슨까지를 포함한 자원봉사의 임무가 맡겨졌다. 저녁나절의 교사는 어두컴컴하다. - 학교가 몹시 어둡구나. 불을 켜면 좋을 텐데. - ... ... 나는 무심코 소년의 눈빛과 마주친다. 초점이 없는 소년의 고정된 시선이 투명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너무 깊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하게 하는 그런 눈빛.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은 실수를 깨닫는다. 맹인에게 불빛이라니.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나는 좀 당황한다. 내가 실수를 미처 인정하기도 전에 소년이 불쑥 말을 꺼낸다. - 생각보다 키가 크시군요. 나는 앞을 볼 수 없는 소년이 지닌 통찰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 어떻게 알았지....? - 목소리의 울림이 위쪽에서부터 시작되잖아요. 목소리의 위치와 발걸음의 울림을 들으면 상대 의 키를 짐작할 수 있지요. - ... ... 선천성 맹인인 소년은 빛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빛의 경험이란 그에게는 처음부터 미지의 것이었다. 꿈을 꿀 때조차도 소년은 소리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런 만큼 소리란 그에게는 독특하고 경이로운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맹인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 겠지만 소년은 소리의 해석에 특히 뛰어났으며 피아노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씩 공부가 지루해질 때면 음악실에서 그가 연주해 주곤 하던 월광소나타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 정상인인 나 스스로를 향해 알 수 없는 자괴감 마저 느끼게 할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소년은 음악을 전공해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음악적 재능은 그가 세상을 향하는 희망의 통로와도 같은 것이었다. 점자로 된 음악서적하나 변변히 구할 수 없는 빈약한 현실 속에서도 맹인 소년의 꿈은 찬란하고 견고해 보였다. 나는 내 곁에 잠시 머물러 쉬고 있는 어린 천사의 날갯짓을 보고 있었다.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는 그의 눈빛 속에서 엉뚱하게도 나는 생의 온갖 불행과 고뇌를 먼지처럼 머리에 이고 꿋꿋하게 서 있는 쥐똥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고는 했다. 연습이 끝난 어느 날 소년과 나는 버스정류장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집 쪽으로 가는 버스 한 대가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년이 큰 소리로 물었다. - 선생님, 소경 바디메오는 믿음으로 눈을 떴다지요? - ... ...? 복잡한 행인들의 움직임과 시끄러운 버스의 소음에 묻혀 나는 소년의 질문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 세상이 존재하는 건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 라지요. 그렇다면 제가 영원히 눈을 뜰 수 없는 것도 하느님의 뜻일까요? - ... .... 나는 소년의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년의 질문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긍정하며 좀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내색하지 않았던 소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내 마음을 더욱 짓누르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소년은 이내 인파 속에 묻혀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 던져졌던 나의 짧은 맹인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원봉사자로 파견된 지 열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두 눈에 검은 안대를 하고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자원봉사자 사무실에서 맹인학교까지 걸어가야 했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 기획한 맹인봉사자를 위한 프로그램에서였다. 물론 내 곁에는 보조 도우미가 붙어 있어 주었지만, 생전 처음 겪는 맹인도 정상인도 아닌 어정쩡함 사이에서 앞을 가로막는 어둠이란 바로 옆 사람의 도움조차 낯설게 하는 힘겨운 막막함일 따름이었다. 만일 처음 맹인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맹인들의 표정이 유난히 어둡다는 데에 놀라게 될 것이다. 이는 얼핏 대등한 장애처럼 여겨지는 농아인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농아인들이 손짓과 표정만으로 수화를 나누면서도 표정이 밝은 것과 대조적으로 맹인들이 음산할 만큼 어두운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이란 천형에 비유될 만큼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허나 소년의 얼굴 위에서 나는 한번도 그런 종류의 어둠을 본 적이 없다. 소년은 차라리 너무 맑고 천진해 보이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소년의 투명한 눈빛 속에서 천사를 보았노라고 믿고 있었으면서도 소년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던 스스로의 무심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니, 그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소년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리라는 스스로의 무능함일 것이다. 나는 소년에게 쉽사리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한동안 나는 소년의 단정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4. 맹인학교의 페스티발 행사가 성탄전야로 미루어진 것은 성탄절을 두달 여 앞둔 즈음의 일이었다. 수요예배가 끝난 후 목사는 나를 목회 실로 불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맹인학교 내부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페스티발 행사의 날짜가 연기되었노라고 전언하였다. 이미 맹인학교 측에서는 성탄전야라는 시간상 내가 더 이상 페스티발 지도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관례적으로 교회에서는 매년 성탄전야에 크리스마스 칸타타라는 큰 행사를 가져왔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교회의 성가대는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며 칸타타 공연은 성가대의 일년 행사 중 가장 큰 숙제이기도 했다. 목사는 내게 크리스마스 전야 칸타타 때에 교회 성가대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들어보는 것이 자신의 가장 오래된 소원이라고 말했다. 흔히 교회의 역량과 성가대의 수준이란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성탄 전야의 칸타타를 기점으로 교회는 지역노회의 연합성가대에 합류함으로써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로 삼고 싶어했다. 적어도 칸타타인가, 페스티발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의 사이에서 망설임의 여지는 없었다. 나에게는 교육지휘자라는 본분에 알맞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교회의 성가대 조직에 몰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예정보다 앞당겨서 맹인학교의 페스티발 총리허설이 열렸다. 리허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연극과 음악을 맡은 배우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객석 앞쪽에서는 외부에서 초빙해온 스텝들이 분주히 찬란한 조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 개의 붉은 조명이 사라지고 화려한 보랏빛으로 바뀌자 율동을 맡은 일군의 산뜻한 복장을 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섰다. 무대 왼편으로 작은 조명이 만들어 낸 원 안에서 소년과 피아노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선명한 빛깔의 조명등이 명멸할 때마다 무대는 흐느끼는 암흑이었다가 순식간에 빛나는 유토피아로 바뀌곤 했다. 빛깔들의 움직임을 따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여린 어깨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율동조의 움직임이 대사가 없는 무언극으로 바뀌자 무대 위의 조명이 뿌옇게 흩어졌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무대 위의 피아노 연주가 끊어졌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모든 움직임들이 일시에 정지된 화면처럼 멈추어 버렸다. 나는 준비실에서 나와 무대 왼편의 피아노 앞쪽으로 다가갔다. 학수는 고개를 꺾고 악보 위에 머리를 기대고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본 소년은 무대 위의 작은 원 안에 갇힌 새처럼 보인다. 하얗게 질린 소년의 얼굴이 파리하게 빛나보인다. 목에서 흰 셔츠 아래로 이어지는 붉은 피가 선명한 줄무늬를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다. 계속되는 수업 후의 늦은 연습이 힘에 겨웠던 걸까. 단순히 코피라고 하기에는 뭉클하게 쏟아지는 선혈들이 가슴을 철렁하게 훑고 지나간다. 나는 한 손으로 소년의 뒷머리를 받치고 오른 손 엄지와 검지로 콧등을 세게 누른다. 소년은 선량한 아이처럼 잠자코 응급처치를 견딘다. 코피를 수습하고 나서 나는 소년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너무 무리한 것 같구나. 흐린 조명 아래에서 군데군데 얼룩이 진 흰 교복 위로 소년의 여린 목덜미가 가늘게 떨린다. - 선생님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시겠지요...? - .... ... 소년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나는 처음 코피를 발견했을 때처럼 가슴이 멍해진다. 나는 대답을 쉽게 찾지 못한다. 소년은 진지한 말을 할 때의 습관처럼 허공을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가 스치듯 떠나갔어요. 모두들 눈 먼 자에게 빛이 되겠다고 말했 지만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아요. - ... ... - 난 살아서는 영원히 혼자서 날아오를 수 없을 거예요.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어쩌면 이번 음악 페스티발이 내게는 마지막 비상(飛翔)이 될 거예요. 리허설은 중단되었다. 무대 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소년과 나만이 남아있다. 그순간 나는 어쩌면 소년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하리라는 어떤 예감에 휩싸였다. 그것은 쉽사리 거스를 수 없는 견고한 운명처럼 단단히 발목을 붙들고 놓지 않는 이상한 간구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 위에서 나는 맹인 소년을 보았다. 나는 소년을 알아보았지만 소년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와 마주친 소년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었다. 소년의 눈동자는 오래 전에 퇴화된 더듬이처럼 허공 위에 망연히 던져져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듯 오로지 한 곳을 향해 몰두하며 걷고 있었다. 소년은 이미 기나긴 시간 동안 반복된 온 몸의 감각으로 보도블록의 불규칙한 요철 따위에 적절히 리듬을 맞추어 가며 익숙하게 걷고 있었지만 도보에서의 급작스러운 사고의 출현에 예비하느라 몹시 신중해 보였다. 어느새 삶을 다 살아버린 노인처럼 가볍게 걷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은 내가 손을 내밀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저 혼자 찾아가는 순례자 같았다. 소년 앞에서 나는 타인처럼 고독했다. 5. 오랜 신앙의 교우였던 허를 우연히 다시 만난 곳은 맹인 자원봉사자 세미나가 있는 지역성당의 휴게실에서였다. 여전히 가무잡잡한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그녀는 그러나 열성적인 자원봉사 활동 때문인지 다소 지쳐 보였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와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집을 이사 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다. 허는 예의 반가운 안부인사를 묻고 나서 심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교회는 좀 어때? - 늘 그렇지 뭘. - 맹인 학교 일은 이제 정리된 거야? - 아니, 아직.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아마도 허는 그것이 공허한 한숨이라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란 때때로 스스로 원치 않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은 신의 뜻일까, 혹은 인간의 뜻일까. 성당의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텅 빈 실내의 허공을 망연히 바라다보던 허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불을 붙이자, 불이 붙은 파란 연기가 머리를 풀고 자유롭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허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진 것은 아마도 본래 개혁을 의미하는 언어임이 분명한 프로테스탄트가 어찌하다가 고작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 따위를 일탈의 한 상징물로 여길 만큼 금욕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투의 싱거운 이야기가 오고 간 끝이었을 것이다. - 그래도 자기는 행복한 편이야. 유능한 지휘자로서 희망이 있잖아...? 허는 담담해진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 난 나뭇가지에 홀로 앉은 외로운 새가 된 느낌이야.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성지순례를 하는 신혼여행기간 열흘 내내 그는 한 번도 내 곁에 오지 않았지. 그러다가 한 달에 한번, 석 달에 한번... 나는 그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낮에는 그토록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한 그가 밤이 되면 차가운 타인으로 변한다면..., 믿을 수 있겠어? -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잖아? - 만약 내용도 형편없다면? 이렇게 말하면서 허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 나는 푸른 연기 사이에서 웃는 그녀의 시린 눈동자가 물기로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 다행이랄지. 우린 아직 법적으로는 부부로 남아 있는 상태야.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는 머나먼 타인이나 마찬가지야. 그는 내게 낯선 이방으로 함께 떠나 목회를 해보자고 권유했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어. 그를 따라서 영원히 고통을 함께 나눌 자신이 없었던 거지. 아마 지금도 그는 어디에선가 열심히 목회활동을 하고 있을 거야.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해. 사람 사이의 사랑이라는 게 그토록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것인가, 육신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고 말이야. 난 정말 나쁜 여자일까?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표정으로 허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메마른 얼굴 위로 검은 기미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세상에 드러내 놓을 수 없는 번민을 끌어 앉고 고뇌하는 그녀는 낮고 작은 미물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그 순간 나의 머리 위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고통받는 예수의 선연한 얼굴이 떠오른 것은. 육신을 빌었으되 육신을 초월해야 했던 예수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육신으로 태어나 육신의 사랑을 갈망하는 모든 이의 비애를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웅크린 허의 어깨 위로 허공에 뜬 갈망이 부유하듯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6. 맹인학교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원수의 제 쓰임을 다하기 위해 삼 미터나 되는 큰 키를 잘린 한 무리의 쥐똥나무들이 낮게 엎드려 무심히 빗방울을 맞고 있었다. 나는 교정의 풍경을 외면하듯 맹인학교의 현관 쪽을 향해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인사를 마치고 맹인학교 교장실에서 나왔을 때, 현관에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오랫동안 그러고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빨리 이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는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나 소년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소년이 눈앞에 있는 내 존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눈앞 에 서 있는 맹인 소년이 처음부터 나를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나는 간단히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소년은 등뒤에 홀로 남는다. 정문을 지났을 때 빗줄기가 추적추적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물에 퉁퉁 부은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두렵다. 택시승강장에는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다.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는다. 그때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날이 어둡고 비마저 내려 행인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길을 건너가 소년을 택시승강장으로 데리고 온다. 비에 젖은 소년은 유순한 짐승처럼 순순히 따라온다. 몇 대의 택시들이 비에 젖은 맹인 소년과 나를 지나쳐 버리고 거리를 질주해간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이제 물에 흠뻑 젖은 모습 때문에 차들은 더더욱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쳐버린 소년과 나는 아예 승강장 난간에 기대 주저앉아 버린다. 그때 거짓말처럼 노란 택시 하나가 소년과 내 앞에 미끄러져 선다. 나는 재빨리 뒷문을 열어 소년을 먼저 태우고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달라붙은 폴리에스테르 스커트에서 바닥으로 물이 줄줄 떨어져 내린다. 무심코 바라본 왼편 발등 위로 철 지난 여름 샌들의 끈 한 짝이 떨어져 나가 덜렁거리고 있다. 무리하게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다닐 때 떨어져 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것을 신고서 어떻게 차를 탈 수 있었는지. 새삼스레 한숨이 튀어나온다. 샌들을 벗어들자 물에 젖어 가지런히 누워 있는 발가락들 끄트머리에 여린 새끼발가락 하나가 가냘프게 매달려 있다. 부실한 샌들 안에서 오랫동안 답답해진 탓일까. 좁은 공간 안에서 질긴 어둠을 참아내며 무던히 숨쉬고 있었을 새끼발가락은 작고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인간에게 새끼발가락이란 퇴화된 구조물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발가락들과 달리 두 개의 뼈마디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을 열자 빗방울이 섞인 바람이 두서 없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가방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비 오는 거리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연기 내음이 비릿하게 퍼진다. 앞자리의 택시 기사가 뭐라고 욕설을 해댄다. 기껏해야 비 맞은 사람을 태워주었더니 재수 없이 젊은 여자가 담 배를 피운다는 투의 상투적인 내용일 것이다. - 그러지 마세요. 이 분은 참 좋은 분이에요. 갑자기 맹인 소년이 발갛게 상기되어 진지하게 나를 위해 변호한다. 소년의 돌연한 행동에 기사와 나는 동시에 당황한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속을 찌르듯 남는다. 세상의 모든 진화들에 가리워져 퇴화된 관절처럼 세월은 크고 웅장한 역사만을 기록하겠지만 그런 진지함으로 존재를 기억해 줄만한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 소년이 차에서 내리며 빠르게 덧붙인다. - 페스티발 마지막 무대에서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고 싶어요. 연습실에서 기다릴게요. 기ㆍ다ㆍ 릴ㆍ 게ㆍ 요 소년의 마지막 말이 사라질 때까지도 빗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빗물 속에서 소년을 떠나 보낸 택시가 어둠을 향해 쏜살 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7. 꼽추목사의 집은 전원주택단지 안에 위치한 흰색 목조 건물이다. 나무 계단을 올라 현관에 다다랐을 때 거실 한가운데로 밝고 따스한 햇살이 비춰 왔다. 목사는 현관 입구에 서 있었다. 청결해 보이는 가르마 아래로 목사의 은테 안경이 햇살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거실마루 앞 쪽 위로 나 있는 커다란 창으로 허공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목사는 내게 서재의 책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로 오르는 2층 계단의 삐걱이는 소리는 들으며 나는 통로에 가득한 방대한 종교서적의 분량에 이미 압도당하고 있었다. 2층의 다락방은 벽면이 천정 끝까지 책들로 가득했다. 서가의 한쪽 끝에는 몸이 불편한 목사가 언제라도 필요한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목사는 몸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게 종교음악편람이라고 씌여진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엉금엉금 사다리를 오르는 그의 굽은 등이 갑각류의 껍데기처럼 마르고 딱딱해 보였다. 성탄전야 행사를 눈앞에 둔 그 날 아침에 나는 교역자 회의에 나와달라는 목사의 부름을 받았다. 회의 주제는 성가대의 조직 강화에 관한 것이었다. 칸타타에 거는 교인들의 기대는 엄중한 것이었다. 각 장로들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참석한 교역자 회의에서 노장로는 남은 한 달 동안 칸타타 조직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짧은 주문으로 회의를 마쳤다. 회의가 끝난 후 목사는 나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사는 반기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아닌 몸짓으로 나를 접대했다. 서재에서 집을 나올 때까지 목사는 내게 칸타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침내 문 앞에서 배웅을 나오던 목사가 입을 열었다. - 자네에게 충고하겠네만, 아무래도 자네는 교회의 영적 활동에 좀더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바램일세. 자네의 음악적 재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일세. 자네를 믿네.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 주게나.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장애인은 장애인만이 알아볼 수 있다네. 보다시피 나 역시 불구의 몸이라 불구자의 심리를 잘 아는 편이지. 그들은 대개 어린아이와 같이 타인에 대해 의존심리가 높고 고집이 센 편이지. 그런 곳에 관여하고 있다보면 견문이 좁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 전원주택단지 부근은 청결한 도로의 구획 위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멀리서 바라 본 목사의 집은 흠집이 없는 권위의 상징처럼 깔끔하고 정결한 순백색을 띠고 있었다. 전원주택단지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 나오면 빨간 지붕이 뾰족한 교회 건물이 나온다. 소년의 마지막 인사말들이 도보 위에 부딪혀 가볍게 흩어지고 있었다. 바람처럼 목사의 말들이 귓가에 흩어졌다 이내 사라졌다. 어쩌면 꼽추목사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교회 옆 공터의 너른 주차장 위에 낯익은 검정 승용차가 보였다. 대예배가 아닌 자잘한 행사들이 있을 때나, 새벽기도 때 교우들을 실어 나르던 목사의 검정색 자가용차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나는 검정 승용차를 몰던 사내를 기억했다. 교우들을 실어 내리고 난 후 검정 승용차를 운전하던 사내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맨 마지막으로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 이따금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검정 승용차에 매달려 유리문을 닦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매끄러운 검정 승용차의 표면 위로 사내의 왜소한 몸집이 과장되게 부풀어져 보였다. 사내는 뾰족한 빨간 지붕 위에 올라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사무실을 수리했으며 주일이 되면 차량을 운행하여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별은 예기치 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사내와 그의 어린 딸은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나던 날 사내는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인사했다. 누군가가 떠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자고 제안했다. 박수가 흐르자 잠시 사내가 얼굴을 돌려 말없이 화답했다. 검은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사내의 어린 딸은 교회식탁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소녀의 눈동자가 물기 먹은 머루처럼 검게 커졌다. 사내가 세운 빨간 지붕 위의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도 그들이 함께 식사를 했던 식탁에도 이별이 보였다. 이별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그런데도 애틋한 이별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이별에 익숙해졌다. 꼽추목사는 그들의 빈자리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내가 떠나고 난 검정승용차는 커다란 껍데기로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승용차 앞 유리문 쪽으로 다가가 주먹을 대고 질끈 쳐본다.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먹의 떨림은 다만 얼얼함으로 기억될 뿐이다. 어림도 없다. 그것은 완벽하게 크고 웅장해서 좀처럼 미세한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몸이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 태초에 생명이 있었나니,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빛의 낭송이 울려 퍼지자 성탄전야의 별 빛 속에서 무대가 열린다. 경쾌하고 생기 있는 선율속에서 연극의 독백이 부드럽게 무대 위로 흐른다. 성극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칸타타가 시작될 것이다. 무대 안쪽의 연습 실에서 숨을 고르는 성가대들의 맑은 얼굴은 긴장으로 단단해 보인다. 무대 위로 꿈결 같은 세상이 열리자, 흰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 속에서 구세주의 탄신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그 순간 나팔 소리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빠르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음성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낮은 음성은 얼핏 악마의 목소리와도 흡사해 보인다. 나는 음성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분간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내 깊이 모를 무대의 열기 속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허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리허설이 있던 아침나절의 일이었다. 무대 위의 울림에 묻혀 수화기 너머에서 아득하게 들리는 허의 목소리는 기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 난 오늘 그를 따라 낯선 이방으로 떠날거야. 아무래도 그는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 같아. 남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무거운 그런 십자가 말이야... 내 말 듣고 있어?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잠시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 전에 잊혀진 내 안의 숨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이상한 전율이 온 몸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연습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문 밖의 찬 공기가 한달음에 온 몸으로 다가든다. 얇은 주홍빛 지휘복을 입은 채로 망연히 바라다 본 성탄 전야의 세계는 여전히 강건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 나는 문을 닫고 연습실 안 쪽으로 들어가려다가 그대로 몸을 되돌려 거리 건너편의 횡단보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 위에서 파란 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하게 점멸하고 있다. 마치 그 푸른빛을 놓치고 나면 세상이 영영 끝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짧은 순간 머리 위로 맹인학교 강당의 큰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나의 모습이 아득히 떠오른다. 그러나 하얀 백지처럼 더 이상 아무런 그림도 떠오르지 않는다. 등줄기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산 중턱에 한 그루 옹이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주변 경관과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못생기고 나무에는 옹이 투성이였습니다. 허리 아픈 아낙네가 산행을 할 때 한 번씩 짚어가고, 산 위 약수터에 물 길러 가는 아저씨들이 한번씩 쳐다보며 이 나 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옹이나무는 왜 하필 이곳에 뿌 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곳 산중턱에는 자기와 닮은 옹이 나무는 한 그루도 볼 수 없었고 왜 자기가 옹이나무라 불리는 지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자신의 가지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바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님, 저 산위에는 어떤 나무가 있나요? 나처럼 옹이나무라 불리는 나무들이 많이 있나 요? 혹시 우리 엄마 나무는 보지 못했나요?" "옹이나무님, 나는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았답니다. 구름 낀 계 곡에도 갔었고, 높고 높은 산에도 여러 번 다녔고, 어떤 때에는 끝도 없는 바다를 며칠동안 돌아다녔답니다. 하지만 옹이나무님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는 본적이 없답니다." 지나가는 바람에게서조차 자기와 똑 같은 옹이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얘기에 슬픔이 복바 친 옹이나무의 몸에는 또 하나의 옹이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옹이나무에게는 슬픈 감정이 생길 때마다 작은 옹이가 하나씩 생겨나서 온 몸이 옹이투성이였습니다. 어떤 옹이는 너무 커서 작은 골처럼 움푹 패였고, 작은 옹이 하나 하나가 모여 커다란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 습니다. "야, 옹이나무야, 넌 어쩜 그렇게 못생겼니? 온 몸이 곰보딱지잖아? 넌 나무라고 할 수도 없어. 저리 썩 가버려!" 주변의 친구나무들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은 그대로 옹이가 되어 옹이나무에게 더해졌습니 다. 이젠 옹이나무의 몸은 옹이와 온갖 상처로 인해 정말 볼품이 없어졌습니다. 나무라기 보 다 흉측한 몰골을 한 낡은 비석 같은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눈먼 새도 둥지를 틀지 않고, 힘에 겨운 구름조차 옹이나무에게 내려와 쉬기를 꺼려했습니다. 개미들만 부지런히 드나들 며 아픈 몸에 생채기를 만들기가 일쑤였고, 지나가던 바람이 잠시 들러 가끔씩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바람님,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무도 아니랍니다. 내 몸이 너무 못생겨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그 어떤 누구도 없답니다. 가끔 바람님께서 전해 주시는 세상 얘기가 제게는 모두입니다. 여기를 지나가는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번만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고 어루만져 주기를 얼 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이제는 산행을 하다가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기대는 힘없는 아주머니조차 없답니다.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뿌리를 지탱 할 힘이 없답니다." "옹이나무님, 세상에 생명 있는 것 중에 의미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나를 보세요.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옹이나무님처럼 상처투성이 뿐의 몸 같은 것이라도 없답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옹이나무로 태어나 이 곳에 뿌리내린 이유를 꼭 찾게 될 것입니다. 나처럼 어떤 곳에 머물지 못하고 언제나 떠돌아 다녀야 하는 바람의 일생도 그리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바람과 이야기를 나무면서 잠깐씩이라도 아픈 상처를 달래 보던 옹이나무는 비록 상처뿐인 가지일 망정 바람이 잠시라도 지친 몸을 쉴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 다. 바람이 지나간 후 옹이나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 아무도 날 봐 주는 이 없는 옹이와 상처로 뒤덮인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존 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오는 거지? 그 동안에 내 뿌리가 썩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걱정과 기다림과 원망스런 마음을 안고 몇 번의 눈을 맞았는지, 또 꽃은 몇 번이나 피고지고 했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옹이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산 중턱도 그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커다란 전동 톱으로 주변의 나무 를 한 그루 씩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선 트럭에 잘라낸 나무들을 싣고 어디론가 떠 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베어지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지? 왜 나무를 베어내는 거야?' 주 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옹이나무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이는 없었지만 일하는 사람 들의 주고받는 얘기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어이, 김씨. 여기에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 운동시설을 설치한다면서” "그렇다나봐. 마을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대.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산책로와 배드민턴시설 등을 설치 해 달랬다나 봐. 장소 물색에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여기에 산행하 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해서 이곳의 나무를 좀 잘라내고 터를 닦아서 운동시설을 갖추기로 했대. 우리야 뭐 일이나 하고 돈이나 받으면 되지." "어여 일이나 하세." "그러세." 그러기를 며칠 후 굴러가기에도 힘겨운 커다란 바퀴가 달린 기계차가 오더니 땅을 평평하 게 한답시고 이리저리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산행을 즐기던 사람들도 공 사현장을 구경하느라 가던 걸음을 멈추고 현장 감독처럼 휘휘 둘러보며 인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여기 좀 보세요. 입구가 이쪽인데 여기 흉칙하게 생긴 옹이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요. 이 나무는 왜 안 베어냈어요?" "너무 재수 없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냥 놔 둔 모양인데, 막걸리로 목이 나 축이고 그 나무는 마지막에 베어 낼께요." 옹이나무는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나무로 태어나 가장 싫은 순간 인 베어냄을 당하는 순간에서도 마지막이라니 정말 나무로 태어나 이 곳에 뿌리박은 자신이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옹이나무의 몸에는 더 이상 상처 아닌 곳이 한군데 도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나무로 뿌리내림을 하면서 한 번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생겨났 던 옹이가 더 이상 생겨 날 곳이 없어지자 움푹 패인 곳에 또 옹이가 생겨나고 딱지가 앉아 서 벼락맞아 제 형상을 잃어버린 나무 보다 더 흉칙했습니다. "박씨, 저쪽 입구 쪽에 옹이 투성이 흉칙한 나무 한 그루 보이죠? 저 나무 베어버리세요." 멀리서 일하던 박씨는 구부린 허리를 펴면서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두어 시 간이 지났나 싶더니 박씨라고 불리던 남자가 옹이나무 옆으로 왔습니다. 손에는 전동 톱을 들고 허리에는 무섭게 생긴 연장들이 커다란 주머니 속에서 키재기라도 하려는 듯 빠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박씨라고 불린 사람은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움푹 패인 이마의 주름은 그 동안의 삶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말 해주는 듯 했고, 투박한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습니다. 푹 눌러 쓴 모자 밑으로 작 은 눈이 인자하게 옹이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놈 참 못생겼구나, 어디 보자." 박씨라고 불린 이 사람은 옹이나무를 쓱쓱 쓰다듬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습니 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옹이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 후에 톱을 옹이나무의 몸에다 갖다대 었습니다. 그러자 온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아찔해지는 가 싶더니 온 몸이 쪼개지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옹이나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트럭 뒷 칸 한 구석에 처박혀진 자신을 발견한 옹이나무 는 한 줄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뿌리깊은 나무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도 사라 졌습니다. 보기 흉한 모습일 망정 가지와 잎이 있었던 자신의 몸이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겨 진 것이었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몸을 가리고 싶어도 이제는 가리울 나뭇잎 한 장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눈물샘 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트럭 뒷 칸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옹이나 무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걸 보 면 살아 있기는 한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한 번의 고통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망각 의 강에 그대로 빠져들었다면 더 이상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트럭이 갑자기 서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는 더 이상 사물을 분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두 개의 손이 옹이나무를 끌어내리고 또 다른 작 은 손이 밀어내는 느낌이 들어 자세히 바라보니 낮에 자기를 베어 낸 박씨라고 불린 그 사 람이 옹이나무를 어딘 가로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가 뿌리내리고 살던 숲과는 다르 지만 주변에 나무들이 보여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마당이 있고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보아하니 여기가 사람들이 산다는 집이란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바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박씨라고 불린 그 사람은 옹이나무를 담벼락 안쪽에 비 스듬히 세워놓고는 불빛 가득한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남은 옹이나무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두운 마당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물건들이 잔뜩 널려져 있었습니다. 깨진 항아리도 있고, 녹슨 도끼, 세수 대야며 물호스, 쪼 개진 나무토막이 보이고 저 멀리에 커다란 솥이 담 아래 걸려 있었습니다. 조그만 꽃밭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저기 쌓여 있는 장작들처럼 나도 저렇게 온 몸이 쪼개어 지는 것일까? 너무나 답답하구나. 바람 님은 어디에 계신걸까?'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에 차 가워진 몸을 움츠린 옹이나무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람이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쉬러 이 곳에 들른 것이었습니다. "바람님, 저에요. 옹이나무에요. 이렇게 잘려 버린 몸이라 알아보기 어려우시죠? 이런 지경 에까지 되어 버린 저에게 더 바랄게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이랍니다." "옹이나무님,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답니다. 지치긴 했지만 아직 우리는 살아있잖아요. 그리 고 옹이나무님을 나무공장으로 보내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다른 뜻이 있을거에요. 살아 있는 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순 없어요." 바람은 절망에 지친 옹이나무 어깨에 앉아서 옹이나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는 옹이나무 가 편히 잠들 때까지 옹이나무를 지켜보았습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바람은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산스런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쪼개진 나무토막들이 타닥타 닥 소리를 내며 시뻘건 불길을 토해 놓고 있었고 담벼락에 걸려 있던 커다란 무쇠 솥이 그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 무쇠 솥과 뚜껑 사이로 허연 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작은 손을 가진 예쁜 여자아이가 헝겊으로 만들어진 작은 인형을 안고 펄펄 끓고 있는 무쇠 솥 곁에 쪼그리고 앉아 이었습니다. "아가야, 이쪽으로 와야지." 나즈막한 목소리로 소녀를 부른 사람은 박씨라고 불리던 사람 이었습니다. 아가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박씨의 투박한 손에 이끌려 무쇠 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아까처럼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나무 있는 데로 오 더니 옹이나무 위에 턱 하니 걸터앉는 것이었습니다. 연장주머니에서 커다란 칼을 꺼내더니 옹이나무의 살갗을 마구 도려내었습니다. 삐죽 나와 있던 잔가지 조각도 다 잘려 나가고 나 서 옹이나무는 이제 모든 것을 잊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은 옹이나무는 아픔보다 오히려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자기 처럼 다른 사람에게 미움만 받으며 살아온 옹이나무를 그래도 어딘 가로 데려와 주고 쓰다 듬어 주었으니 이까짓 살갗 벗기는 정도의 아픔은 참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만치서 예쁘 게 생긴 작은 여자아이가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습니다. 어느 누가 그렇게 자기를 바라 본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 바 라 봐 주는 것만으로, 흉칙하게 생겼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바라만 봐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 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갗을 벗겨내더니 박씨라고 불린 사람은 옹이나무를 이쪽에서 한 번 내려다보고 툭툭 몸통 살을 찍어내고 저쪽에서 한 번 내려다보더니 툭툭 몸통 살을 찍어내는 것이었습 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옹이나무의 몸통은 펄펄 끓고 있는 무쇠 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펄펄 끓는 물 속에 몸이 잠기는 순간 자신의 몸에 그런 기운이 있었는지 조 차 몰랐던 알 수 없는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옹이나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늘한 기운이 옹이나무를 감싸는 순간 정신을 되찾은 옹이나무는 눈을 떴습니다. 모든 인내심과 내일에 대한 희망, 그 동안 자신을 지탱해 왔던 삶에 대한 애 착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늘 진 담벼락 밑에 비스듬히 세워진 옹이나무는 자기가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 았습니다. 뜨거운 물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면서 더 이 상 삶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넓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봐 주던 작은 여자아이 모습만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그걸로 충 분했습니다. 그 기억마저도 분에 넘치는 사치라면 그것 마저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이제 옹이나무를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쩌다 한 번 씩 오 다가다 옹이나무 곁에 서서는 이리 저리 훑어보곤 했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옹이나무를 찾 지 않았습니다. 가끔 작은 여자아이가 마당에서 놀다가 한번씩 옹이나무 곁에 와서 그 작은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는 납작한 코를 발름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여 자아이의 방문은 세상에 대한 원망,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송두리째 잊게 해 주었습니 다. 옹이나무 속에 있는 모든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을 찾아주는 작은 여자아이의 방문을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웃음이 나왔습니다. 햇빛을 못 본지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살갗이 모두 벗겨진 옹이나무는 바람이 찾아 왔을 때 더 이상 여행에 지친 바람을 편히 쉬게 해 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바람님, 바람님이 잠시 머물다 갈 가지도, 바람님을 덮어 줄 나뭇잎 하나 없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도 세상에 대한 원망도 모두 버 렸습니다. 가끔 이 집에 사는 작은 여자아이가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밉게 생긴 제 모습에 는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한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바람님, 뿌리도 없이 이렇게 내 팽개쳐 진 모습이지만 그 작은 여자아이 때문에 행복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답니다." "옹이나무님, 편안한 모습의 옹이나무님을 보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느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운명이랍니다. 운명의 힘에 떠밀려 또 어디론 가로 가야만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내 몸은 어느새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져 있습니다. 옹이나무님, 운명이 허락하면 또 만나게 되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차가운 기운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뜬 옹이나 무는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작은 여자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나 말 한마디 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소녀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자기만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늘 갖고 다니던 인형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이 연장주머니를 어깨 에 늘어지게 메고서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옹이나무 곁에 오더니 연장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작은 여자아이를 덥썩 안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야,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 우리 아가는 아빠가 일하는 것 여기에서 보고 있을 래?"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그 작은 여자아이를 햇볕이 조용히 드는 곳에 납작하게 놓여있 는 돌 의자 위에 조심스럽게 앉혔습니다. 여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연장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끌 칼과 창 등을 꺼내더니 옹이나무의 몸 이곳 저곳을 마구 깎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톱으로 자르기도 하고, 주머니칼로 다듬 기도 하고, 까실까실한 종이 같은 걸로 온 몸을 마구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의 몸 조각들이 찍혀 나가고 몸의 가루가 햇살 속에서 춤추듯 날아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어둠이 찾아오고 옹이나무를 마구 깎고, 구멍도 뚫고, 몸 이곳 저것을 갈아대 던 손을 멈추고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온갖 연장들을 한 자리에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그리고선 박씨라고 불리던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 작은 여자아이를 덥썩 안더니 불빛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옹이나무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자기는 영원히 잊혀진 존재라 생각하고 삶에 대한 모든 희망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다 버리고 오로지 가끔씩 찾아와서 따뜻한 미소로 자 신을 바라봐 주는 소녀에게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뿌리 에서 몸통이 잘리고 뜨거운 물 속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옹이나무에게 작은 여자아이의 미소 는 마지막 위로라고 생가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 나무를 하루 종일 깎고 다듬고, 만지고, 이리 저리 견주어 보는 것으로 보아 옹이나무를 다 른 용도로 쓸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 는 일이었습니다. 옹이나무는 다시금 삶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 습니다. 그런 것이 옹이나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해도, 옹이나무에겐 지나친 욕심이라 해도 무언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 치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 습니다. 이 날의 흥분으로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던 옹이나무는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과 작은 여자아이가 곁에 오자 온 몸을 가볍게 떨었습니다. 투박한 그 손으로 어서 자기를 다듬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해 주라고 애원하고 싶었습니 다. "아가야, 여기 앉자. 아빠 일할게." 아가라고 불린 작은 여자아이는 어제처럼 작은 돌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박씨라 고 불리던 투박한 손을 가진 이 사람은 어제처럼 다시 옹이나무를 이리 깎고 저리 깎고, 날 카로운 날로 밀고 당겨서 옹이나무의 살갗을 보드랍게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나무 조 각이 박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꼴딱 넘어가서야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 고 불리던 이 사람은 누런 빛깔의 칠을 옹이나무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끔거리는 느낌 과 향긋한 냄새는 숲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가야, 황색 옻을 입히니까 훨씬 예쁘지? 이제 마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단다." "아빠..." "우리 아가, 지금 뭐라고 했니? 아빠라고 했니? 다시 한 번 아빠라고 불러봐." "아빠......" "수지야!"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작은 여자아이를 와락 품에 안았습니다. 말 이 별로 없던 이 사나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작년에 네 엄마 잃고 말문을 닫더니 이제야...... 이제서야...... 고맙다. 우리 아가 수지야." 박씨라 불리던 이 사람은 작은 여자아이를 안고 불빛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옹이나무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몸을 둘러보니 자 신의 몸이 커다란 상자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몸은 두 개로 나누어져 위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옹이나무의 속은 파내어지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옹이 자국이 심했던 곳에 독수리 모양과 꽃잎이 아로새겨 졌습니다. 상처가 가장 심했던 윗 부분은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이 아로새겨진 손잡이 로 변했습니다. 옹이나무는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옹이나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 습니다. 가재도구라고는 장롱과 서랍장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무척 깨끗했습니다. 방안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가 옹이나무를 보자 벌떡 일어섰습니다. 투박한 손을 가진 박씨라고 불리던 그 사람은 그 큰 옹이나무 상자를 작은 여자아이 곁에 놓았습니다. 작은 여자아이는 두 손으로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빠, 여기는 엄마 머리카락 넣어두고, 이 작은 서랍에는 엄마 사진도 넣어 두고, 조개 목 걸이는 여기에, 또 여기는 우리 가족 사진을 넣어 둘 거에요. 아빠는 우리를 지켜주는 제일 큰 사람이니까 여기 큰방을 쓰세요." 작은 여자아이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띄우며 자기의 보물을 옹이나무 상자 속 작은 방 들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 것이었습니다. 옹이나무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흉하게 생긴 모습 때문에 모두가 미워했던 자신을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가족 곁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도 예쁘고 작은 여자아이의 가장 귀한 보물을 간수하는 창고가 된 것 입니다. 옹이나무는 언젠가 바람이 말해주었던 생명 있는 것은 모두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렇게 고운 여자아이가 꼭 필요로 했던 보물 상자가 되다니 드디 어 옹이나무로 태어난 자신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세상의 절망! '사랑'으로 품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상처 한 다발, 눈물 한 종지 가슴에 품고 사는 이가 적지 않을텐데 왜 이렇게 늘 나만 힘든 것처럼 가슴 시려 했는지 내일 모레면 불혹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부 끄럽습니다. 세상 밖의 시간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건만 나 스스로가 만든 올무를 발에 차고 철창 속에 가만히 앉아서 어디선가 불어 올 따뜻한 바람만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랬습 니다. 이제는 제 두 발로 벌떡 일어나 세상의 언덕에 맨발로 달려가서 아름다운 향기는 모 두다 품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앉지도 먹지도 못하는 아이의 말없는 미소와,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세상과 교통하려는 아이의 처절한 절규, 관계 속에서 느꼈던 절망감 이 모 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품고 싶습니다. 작은 아픔들로 너덜너널 다 헤진 가슴을 세상 을 향한 그리움으로 기워서 또 다른 상처 입은 나의 이웃에게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아픔들 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말해주렵니다.
너무 교훈성 드러난 작품 많아 공통적 문제점은 너무 교훈성이 드러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학교, 문제아를 소재로 잡는 비율 이 높아 수기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았다. 의인화나 환상 동화보다는 소년 소설이나 생활 동 화가 주류였다. 이지현의 '옹이나무'는 소재와 주제도 좋았고, 동화의 성격과 특성에 잘 부합되었다. 일찌감치 대 상으로 결정을 하고도 멈칫거린 것은 길이가 다른 작품에 비해 좀 길다는 것이었다. '보글이'(조정태), '돼지 불고기'(김찬영), '삼돌이와 끼룩이의 장독대'(김혜영), 이 세 작품은 다 크 기가 비슷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심사위원들을 고민스럽게 만들었다. 가작에서 밀린 몇몇 작품 들과 난형난제라 선뜻 뽑아 올릴 수가 없었다. '보글이'는 의인화에는 무리가 없으나 스토리가 좀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고, '돼지 불고기'는 어려운 축산 농가의 실상을 고발하는 동화이나 소재가 새롭지 못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삽돌이와 끼룩이의 장독대'는 의인화 과정과 행동에 무리가 있었다. /이영호·이동렬(동화작가)
인터넷 대부분 게임·오락에 이용 통계청 사회지표 조사 우리나라 청소년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33.5권으로 전체인구의 독서량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터넷 이용의 대부분은 게 임이나 오락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구랍 26일 발표한 사회지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93.2%가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며 81.8%는 인터넷 이용이 가능했 다. 컴퓨터 사용가능한 청소년의 평소 1주일간 컴퓨터 사용시간은 평균 11.2시간이었다. 컴퓨터 사용부문은 14세 이하에서는 '게임·오락'을, 15∼18세에 서는 'PC통신 및 인터넷' 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 터넷 이용자(6∼18세)의 1주일간 인터넷 평균이용은 8.5시간이나 15∼18세 연령층은 9.8시간이었다. 인터넷 이용부문은 '게임·오 락'(80.7%)비중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전자 우편'(56.4%), '정보검 색'(40.0%) 순이었다. 청소년의 평균독서권수(1년간)는 33.5권으로 전체인구의 독서량인 13.2권에 비해 20.3권이 많았다. 11∼20권을 읽은 청소년 비율이 가장 많고(16.2%) 다음으로 61권 이상으로 13.5%였다. 성별로 보 면 남자가 39.6권, 여자가 26.8권으로 남자가 1년 간 12.8권을 더 독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읽은 서적별로는 66.0%가 교양서적이며 다음으로 잡지(44.3%), 기타서적(44.3%)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자는 만화 등 기타서적을, 여자는 교양서적, 잡지를 많이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 다. 청소년은 TV프로그램 중 오락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해 시청자 중 76.3%가 이를 즐겨보았으며 다음으로 연속극(58.7%), 영화 (54.9%) 순이었다. 반면 선호도가 낮은 프로그램으로는 홈쇼핑프 로그램(0.7%), 교육, 교양(9.9%), 뉴스(25.3%) 등이었다. 청소년이 주말이나 휴일 등 여가활용방법의 첫번째가 TV시청으로 66.3%였 으며 다음이 PC관련(47.3%), 사교관련(43.8%)순이었다. 청소년(15∼18세)의 주요 생활관심사는 학업·진학이 65.3%로 가장 많고 경제(돈) 13.4%, 건강 11.7%순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고민상담대상은 친구 57.3%, 부모15.2%, 스스로 해결이 14.9% 나 됐으며 교사(수)와의 상담은 1.2%에 그쳤다.
"야생식물통해 세상을 배우죠" 의정부지역 1200여종 자료 수집 시와 연계해 매년 식물도감 발간 그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지만 그의 목적지는 정상이 아니다. 줄을 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떠나 홀로 숲을 헤메고 다 닌다. 그의 관심은 온통 식물뿐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들꽃. 이 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다보면 한나절이 다 가버린다. 의정부여고 이명호교사(사진). 생물을 담당하는 평범한 교사에 머물지 않고 늘 우리 식물에 관심을 갖자고 주장하는 이 지역 야 생식물의 전문가다. 그가 야생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추적 한지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전공인 식물생태학에 관한 석사 논문 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그 들풀들에 이름을 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자연을 느끼고 싶었다. 제대로된 자료를 만들어보기 위해 사진기술도 따 로 배웠다. 그동안 경기북부 지역을 비롯해 의정부 지역의 산야를 돌아다니 며 야생식물의 생태를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구축하기 시작 한 지 6년째.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의정부교육청과 함께 식물도감 을 제작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의정부 지역 분포 야생식물이 약 1200여종 정도에 이르며 초본이 약 800종, 목본이 약 400종 정도 다. 이 자료들을 중심으로 99년부터는 의정부시와 연계해 매년 한 권씩 `의정부지역 분포 야생식물도감'도 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이버 상에 그 자료들을 구축한 사이버야생식 물도감(http://www.ui4u.net/nature)을 펴냈다. 의정부 지역은 북부 지방의 식물상과 남부지방의 식물상이 합류돼 매우 다양한 종의 특성을 보여준다. 사이트에는 야생화를 중심으로 촬영한 사진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덧붙여놓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의정부여고 교정엔 식물 표찰이 예쁘게 붙어 있 다. 모두 그가 정성들여 만든 것들이다. 130여개를 만들었는데 학 생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이기도 하다. 수업시간 에 자신이 만든 도감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입시관 련 과목이 아니다보니 폭넓은 소개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교사는 "힘들게 모은 자료들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생생한 교 재가 된다"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 10년후 쯤에 제대로 된 도감하나 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형준 limhj1@kfta.or.kr
성장과정 점검·키 크는 법 소개 키는 어린이들의 최대 관심사항 중의 하나. 내 키가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내가 얼마나 더 클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는 어린이 가 많다. 이런 고민을 가진 어린이와 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LGCI 생명과학사업본부가 운영하는 `키클리닉 (www.keyclinic.com)'은 키에 관련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 이트. 무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사이트는 어린이들의 성장차트 를 통해 자신의 성장과정을 점검하고 키 크는 시기와 생활 속의 키 크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열려라 롱다리' 코너에서는 키가 크는 데 좋은 운동과 영양섭 취 방법도 알려준다. 수영과 태권도, 농구, 배구, 줄넘기, 달리기 등은 성장에 좋은 운동이지만 헬스와 레슬링, 씨름 등은 좋지 않 다. 이 사이트는 또 군것질은 조금만 하고 반찬을 골고루 먹는 식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키가 크는 데 좋은 식품으로는 살코기와 생선류, 콩, 우유, 버섯류, 과일류, 곡류 등을 들고 있다. 성장에 좋지 않은 식품은 콜라, 초콜릿, 사탕, 라면 등이다. `물어 보세요' 코너에서는 어린이 성장과 관련한 질문을 전문가들로부터 1 대 1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자주 묻는 질문만을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국민카드(www.kmcard.co.kr)는 사회봉사단체인 IQ포럼과 함께 어린이·청소년 무료 상담사이트인 패스포럼 (www.passforum.co.kr)을 연다. 이 사이트에서는 부적응 어린이 나 문제어린이 등 어린이 관련 상담과 성상담, 소아정신과 진단 이나 한방진단 등 의료 상담, 아동학대 상담 등을 할 수 있다. 상 담전문가들이 온라인상담과 전화상담을 해준다. 국민카드 홈페이 지에서 사이버 회원에 가입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 영 권 벨이 울리면 의자가 나를 밀친다. 출석부가 나를 집어들고 교실이 나에게로 온다. 책이 나를 펴면 나는 삼류급 모노드라마 배우가 된다. 무대에 서면 나는 페스탈로치가 되고 히틀러가 되고 하얀 얼굴의 드라 큘라가 된다. 계백이 되고 연산군이 되고 가증스런 일본순사가 되 고......... 演技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백묵이 나를 들고 칠판이 필기한다. 책상이 아이 코를 쳐 박는다. 간 밤 컴퓨터게임에서 쌍 코피가 났나보다. 핸드폰이 또 아이 하나를 끌 어당긴다. 그 아이가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아이들은 결국 나를 체벌 하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아이들이 나에게 잔소리하면 수업이 나 를 망친다. 뻔한 스토리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N세대'의 'N'이 의심스 럽다. 시계가 팔을 늘어뜨리고 아이들을 본다 나를 본다. 보기에 아이 들이 애처로운가보다 내가 너무 느린가 보다 지루한가보다. 희망 없는 시간, 벨이 울릴 때까지 모노드라마는 계속되어야 한다. 요즈음은 이렇게 아이들이 나를 가르친다. 나는 배울 자세가 되어있고 아이들은 가르칠 자세가 되어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책이 나를 덮고 출석부가 나를 들고 문이 나를 열어 교실이 나를 밀어낸다. 이것은 참 엽기적이다.
시작! 그 가슴 벅참으로... 그 늦은 가을날은 마치 봄날처럼 햇살이 따스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상큼하게 들려오는 저편 여자의 목소리. 공책 속에서 기약 없이 잠만 자던 활자들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서는 듯. 내 교단에서의 삶의 푸념을 섞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는구나했다. 순간, 부끄럽고, 두렵고, 또 가슴이 벅찼다. 보잘것없음에 부끄럽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 날까 두렵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아이들이 저만치 보였다. 어쩌면 그들이 어른들을 길들이며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들만의 본능은 협곡을 흐르는 물이다. 그렇게 바다로 가고 있나보다. 사랑스런 아이들, 사랑해야할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 함께 어울려야할 아이들, 나이가 들수 록 멀어져 가는 것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 사랑한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 까. 할 수 있다면 무엇이 그리 어려울까. 졸작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또 이런 기회를 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 무 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서울 성수공고 교사
속도감, 역설적 풍자 뛰어나 우선 예년에 비해 작품의 편수가 월등하게 늘어났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뿐더러 작품의 질도 상당부분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교원문학상 제도가 일선 교직 자들로부터 열렬하게 환영받고 있으며 점점 그 뿌리가 실하게 내리고 있는 증거로 보여져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고 또 현장교원들의 문학에의 열도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점 에서 역시 고맙고 기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올해도 작품을 봄에 있어서 문학성의 빼어남에다 교단생활의 특수성을 합하여 심사의 잣대로 삼았다. 지난해에 이어 교단현실에 대한 격앙된 분위기가 보다 많이 사그라들고 있 었음을 작품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허지만 교육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반짝이는 작 품들이 수없이 많았고 시적 표현이나 형상화에 있어서도 완벽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았다. 이래저래 심사위원 두 사람은 즐거운 고민을 거듭 할 수밖에 없었다. 최우수 '교실이 나에게로 온다'(이영권)는 전도된 교육현장을 속도감 있게 포착하여 역설적 으로 표현해낸 풍자적인 기량을 높이 사서 낙점이 되었다. 가작으로 뽑힌 '강'(김선옥)은 시 적인 형상화가, '깻잎을 먹는 아이'(최정복)는 교육을 보는 진지한 시선이, '곤충'(장인수)은 교단생활의 에피소드를 실감 있게 묘사하는 능력이 출중하여 선(選)에 오르게 되었다. 당선 된 분들에게 축하를 드리는 만큼 최종심에서 밀린 분들에게 위로를 드린다. 낙심하지 마시 고 분발 있으시기 바란다. /이가림(인하대 교수) 나태주(공주 상서초 교장)
내년 2월 지급 예정인 교원 성과급의 경우 일정액은 균등 지급하고 일정액은 초과수업수당 형식으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14일 제6차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최희선 차관)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개선 방안에서 △일정액(50%정도)은 기본 성과수당 형태로 전 교원에게 균등 지급하고 △나머지는 수업시수에 따라 초과수업 형태로 차등 지급하되 지급 금액의 상한만 지침으로 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교장, 교감, 교육전문직 등 관리직에게는 타 직종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현행 성과상여금 제도를 유지하되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해 평가기준을 일부 변경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인별 지급기준액 중 전체 기본 성과수당 지급 비율은 시·도교육청, 교원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별도로 정하고 지역·학교별 또는 담당과목, 보직여부 등에 따라 수업시수가 차이가 있으므로 학교별로 기준수업시수를 자체적으로 마련토록 할 계획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와 관련 중앙인사위 김동극 급여정책과장은 "교원단체는 연구·연수 수당으로 일괄 지급을 원하고 있으나 이는 성과급의 취지와 배치되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교원을 제외한 공무원 여론조사 결과 일정액은 차등 지급하고 일정액은 균등 배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라며 교육부의 성과급 개선 기본 방향을 지지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차등 지급 기준이 수업 시수 하나 일 때 과목 및 보직에 따른 형평성 등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우형식 교원정책심의관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교사 직무평가 기준이 개발되고 정착될 때까지는 교사의 다양한 직무 중 가장 기본적이고도 객관적인 수업시수를 기준으로 성과상여금 차등 지급을 위한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교총 우재구 교권정책국장은 "연구·연수수당으로 하되 지급 기준은 개인 호봉별 동일지급율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제도개선위원회는 교육부·중앙인사위 간부와 교원 3단체 대표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위원회는 교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다음 회의에서 재론키로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14일 교총 이군현 회장 등 교원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원정년을 환원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소신과 신념은 변화가 없다"면서 "교총과 한나라당이 국민을 좀 더 설득하면서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 총재는 "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고 노력하면 가능하다"면서 "국회 교육위와 법사위까지 통과된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유보한 것에 대해 섭섭하고 화가났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 설득이 덜된 상태에서 강행처리는 도저히 할 수 없었으며 교육계 내부도 설득이 안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호봉 정년환원비상대책위원장이 "총재 말씀대로 라면 여론을 바꿔 달라는 것인데 교원정년 문제는 여론의 잣대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근본적으로 국민들은 교원정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어 국민설득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비관적 전망을 밝히자 이총재는 "교원정년 환원을 표를 의식했다면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국민 설득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며 거듭 국민 설득 노력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군현 교총회장은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만 총재께서 정년관련 법안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월1회'부터 단계적으로 정부가 주5일 근무제를 내년 7월부터 공무원과 금융보험업·대 기업에 우선 도입키로 결정함에 따라 주5일 수업제도 이어서 도 입될 전망이다. 현재 검토중인 주5일 수업제 도입방안에 따르면 2003년 3월부 터 매달 한차례, 2004년 3월부터 매달 두차례 토요 휴무를 실시 한 뒤 중소기업의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는 시점에서 주5일 수업 제를 전면 실시한다는 것.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 이달중 입 법예고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야당, 기업체간 이견이 첨 예해 국회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관련 19일, "先 주5일 근무, 後 주5일 수 업제 도입이란 기본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도입을 위한 준 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우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교장 책임하 에 시·도교육청별 연구학교 운영을 30개교에서 1백여개교로 늘 려 내년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주5일 수업제 연구학교 운영은 ▲지역별 특성에 따른 다양한 학교별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제공 가능한 학교 프로그램 개 발 및 적용 ▲활용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 확인 및 확충방안 모색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인식전환을 위한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 다. 교육부는 이 같은 운영계획을 21일, 부산시교육청에서 열린 시·도교육청 교육국장회의에서 시달했다. 교육부는 이와함께 관련법령 개정 등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현행 6, 7차 교육과정은 `주6일 수업, 법정 수업일 연간 220일'을 기준으로 편성돼 있어 이를 주5일 수업제에 맞추기 위해서는 방 학기간 단축, 평일수업 끼워넣기 등이 불가피하며 체험학습, 놀이 학습, 문화시설 등 사회의 교육인프라 구축과 함께 토요일의 지 도공백이나 사교육비 증가 등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 박남화 news2@kfta.or.kr
정부예산 심의 막바지 내년도 교육예산안이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현재 국회 예결위에 상정된 내년도 교육예산안(세출예산 기준) 은 올 보다 7422억(3.4%) 늘어난 22조 3250억원으로 당초예산과 비교할 때 11.5%에 해당하는 2조 3062억이 증가한 규모다. 이 안은 국회 교육위 심의과정에서 당초 정부예산안보다 35개 사업에서 1772억이 증액된 것. 또한 예결위 종합 정책질의시에 도 교육위의 35개 증액사업에 추가로 353억 증액 외에 실고 내실 화 등 6개 사업에 325억의 증액이 거론된 바 있다. 한완상 부총리는 지난 11일 열린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에 참석 해 증액사업 중 3개 사업은 특별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부총리가 강조한 3개 사업은 ▲유·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 금 473억 ▲5·18 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수 보상액 83억 ▲보직 교사수당 및 보건활동수당 57억 등이다. 유·초등교원 보전수당 가산금의 경우 현재 중등교원과 비교할 때, 월 2만2000원에서 4만7000원까지 적게 지급되고 있어 14만 5973명의 유·초등교원에게 월 평균 2만7000원을 인상해 차액을 보전하자는 것. 5·18 민주화 해직교수 보상은 80년 당시 해직된 76명의 교수 에게 해직기간 동안의 보수를 보상하자는 것. 보직교사수당 및 보건활동수당의 경우 담임수당은 올 대비 월 2만원 인상될 예정 이나 3만 2888명의 보직교사 수당은 월 1만원 인상분만 반영돼 형평성 차원에서 동일한 인상액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5138명의 보건교사 활동수당은 주당 6시간의 보건교육을 담 당하는 외에 업무증가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국회 예결위는 계수조정소위 활동 등을 거쳐 임시국회 회기내 에 2002년 정부예산안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박남화
행정부분 치중, 교육내용 평가 한계 "교육청 '실적부풀리기' 부작용 커" 지난 96년부터 도입 시행돼 다섯 번째로 실시된 올 시·도교육 청 평가가 당초 취지와 달리 평가방법, 평가기준, 결과공개 및 활 용 등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평가를 교육의 지방분권화와 자율권 확대에 맞춘 책무성 확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교육부가 최근 올 시·도교육청 평가위원회(위원장 이종재 서 울대교수)와 참관위원 설문조사 결과 등을 수합해 작성한 `시· 도교육청 평가 향후 발전과제'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비상 설 평가기구를 상설 평가기구로 전환하고 전문성을 갖춘 평가위 원들을 확보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평가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평가지표나 평가준거 및 척도의 계속적 보완이 이뤄져야 하 며 평가방식 역시 정량적·계량적 기준에 치중하고 있는 현행 방 식을 보완해 교육의 특수성에 적합한 정성적, 질적 지표와 평가 기준을 개발,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올 처음 도입된 자율·특색사업 평가는 지역별 자율성과 특수 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 측면이 크다고 보고 평가방식 의 개선이나 평가영역의 설정 등에서 이를 적극 확대 반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 시·도교육청 등 관련기관은 평가결과를 자 기 진단과 반성자료로 피드백시키고 우수사례발표회를 개최해 전 국적으로 일반화시키는 노력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종재 교수는 시·도평가가 ▲지역 여건차를 충분히 고 려하지 못하고 있고 ▲행정노력에 평가기준이 치중돼 교육수준에 대한 질적·양적 발전정도를 가름하기 어려우며 ▲교육청의 `실 적부풀리기'나 `전시행정' 등의 낭비요인이 크다고 비판했다. ●올 시·도평가 어떻게 실시됐나=96년 시·도평가가 시작된 후 다섯 번째 시행됐다. 시·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격년제로 시행한 첫해이며 자율·특색사업분야를 신설하고 배점을 대폭 높 였다. 지난해 11월 평가영역과 기준을 제시했으며 이에 근거해 각 시·도가 제출한 자체평가서에 대한 1차 서면평가가 5월중 실시 됐다. 이어서 6∼7월 사이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 가 시·도교육청을 방문, 분야별 평가를 실시했다. 시권역과 도권역으로 나눠 10개 분야별로 500점 만점제로 평가 가 이뤄져 광주와 부산, 강원·충북·전북이 각각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평가에 따라 1000억의 예산이 차등 배정되었다. /박남화 news2@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