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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겨울 추위가 매섭던 지난달 중순,최혜영 부산진중 보건교사(보건교사회 부산지회장)는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 날, 추위를 이겨보려고 등에 붙였던 핫팩 때문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봉사를 이어갔다. 검사 대상자 명단 확인, 검사 대기자 거리두기 안내, 유증상자 상담 후 의사에 인수인계 등 일손을 보탰다. 지난 1월 말부터 개학 전까지, 최 교사를 포함한 부산 지역 보건교사 20여 명이 선별 진료소에서 자원봉사 했다. 학사 일정과 가까운 선별 진료소의 상황, 참여 가능한 기간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최 교사는 일주일 동안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 그는 “봉사는 소리 없이 조용히 해야 한다”고 몸을 낮추면서도 “짧은 방학을 반납하고 자원봉사에 나서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최근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코로나19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근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았죠. 그 무렵, 간호사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의료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다면서요. 보건교사는 간호사 면허증을 가진 의료인입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힘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보건교사회 부산지회장이기도 한 그는 부산 지역 보건교사를 대상으로 자원봉사 희망자를 모집했다. 1차 모집에는 초·중·고 9개교에서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2차 모집에서도 학교 10여 곳에서 근무하는 보건교사들이 자원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방역수칙은 더욱 엄격하게 지켰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방호복을 갖춰 입고 활동했다. 최 교사는 “하루 네다섯 시간 동안 방호복을 입다가 벗었더니, 몸 곳곳에 자국이 많이 남았다”면서 “뉴스로만 접했던 의료진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했다. “의료용 마스크를 끼고 고글을 꼈더니 금세 습기가 찼습니다. 습기가 시야를 가려서 계속 닦아내야 했어요. 추운 겨울에는 그나마 낫겠다 싶었어요. 추우면 옷을 껴입고 핫팩이라도 붙이면 되지만, 더운 여름에는 어땠을까, 고생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는 선별 진료소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첫날에는 아버지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가족을 만났다. 울면서 차례를 기다리던 초등학생 자녀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최 교사는 “떨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교사더군요. 검사를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학생들만 눈에 들어왔어요. 잔뜩 긴장해서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괜찮다’고 말을 건넸어요. 사실 선별 진료소에서는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른, 아이를 구분해서 대할 수는 없어요. 검사만 진행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하고, 의료진들의 피로도도 높고요. 제가 봉사하는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선별 진료소에서 자원봉사 했던 보건교사들은 자가격리를 거친 후 학교로 돌아갔다. 지난 2일, 새 학기가 시작됐다. 최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두 학년이 등교했다.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학사 일정을 소화하느라 쉴 틈이 없지만, 최 교사는 “주인이 돌아오니까 이제야 학교가 살아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보건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했지만, 이런 팬데믹 상황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등교할 수 있는 지금을 교사들도 무척 소중하게 여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왔을 때 한 번 더 관심을 주고 한 사람, 한 사람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앞으로 감염병 예방 교육, 건강 관리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등 보건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겁니다. 보건교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매우 혼란스럽다. 이런 영향으로 불안, 우울, 분노, 무기력, 과도한 스트레스 등 심리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종결된다고 해도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낯선 환경과 고통을 수반한 역경이 다가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유명한 경제학자는 “오늘날 미래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술가나 긍정심리 회복력 전문가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자기 스스로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당신의 자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낯설고 고통스러운 환경과 상황을 맞았을 때, 내가 어떤 사고와 설명양식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이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설명양식(explanation style)’은 긍정심리학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펜실베니아 심리학 교수가 발견했다. 낙관성을 키워서 무기력을 극복하는 낙관성 학습 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설명양식을 ‘마음속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한다. 이는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학습된 사고의 습관에 의해 결정되며, 무기력 학습을 크게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아동기에 낙관성을 키워주면 성인기에 우울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50퍼센트까지 감소한다. 설명양식은 낙관적인 설명양식과 비관적인 설명양식 두 가지가 있다. 낙관적인 설명양식은 무기력을 없애고 비관적인 설명양식은 무기력을 키운다. 비관적인 설명양식과 무기력은 우울증을 유발하며, 극단적 선택의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설명양식에는 개인적 차원, 영속적 차원, 만연적 차원이 있다. 개인적 차원은 트라우마 등 역경을 겪었을 때 모든 것이 남 탓, 외부 탓이 아닌 내 탓이고, 내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영속적 차원은 이 사건이 항상, 영구적이라고 설명하는 것, 마지막으로 만연적 차원은 이 사건이 자신의 삶의 일부, 일부분이 아닌 삶 전부,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설명양식을 가졌는지 약식 검사를 해 보자. 다음의 척도 중 1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7은 완전히 일치한다는 뜻이다. 불행한 사건은--------------------- 1. 이 사건은 대체로 나 자신이나 내부적 요인 때문에 발생했다. 1…2…3…4…5…6…7… 또는 2. 이 사건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나 외부환경 때문에 발생했다. 1…2…3…4…5…6…7… 또는 3. 이 사건이나 이와 비슷한 사건은 항상 영구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1…2…3…4…5…6…7… 또는 4. 이 사건은 가끔 일시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1…2…3…4…5…6…7… 또는 5. 이 사건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망가질 것이다. 1…2…3…4…5…6…7… 또는 6. 이 사건은 내 인생의 한 일부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다. 1…2…3…4…5…6…7… 1, 3, 5항목의 합산 점수가 높으면(12점 이상) 비관적(퇴보, 실패, 역경)의 원인을 개인적이고(주로 자신이 원인임), 영구적이며(변하지 않음), 만연적(하나의 불행한 사건이 인생의 다른 전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2, 4, 6항목의 합산 점수가 높으면 불행한 사건의 원인을 타의적이고, 일시적이며, 부분적이라고(인생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는 뜻이다. 낙관적이라는 것이다.다음 회에 계속.
교복은행은 졸업생의 교복을 기증 받아 신입생이나 재학생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교복 물려주기' 사업이다. 4일 서울 송파구 관내 20개 학교의 중고 교복을 판매하는나눔교복 매장 모습.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개원 연기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한 서울시교육청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1·2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확정됐다. 지난달 중순 배재·세화고에게 위법하게 자율형사립(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는 1심 패소 판결에 이어 또 쓴잔을 받아든 시교육청이다. 시민들은 무리한 정책 추진의 결과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말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한유총이 서울교육청을 상대로 낸 ‘법인 설립허가 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승소 판결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2019년 한유총은 “정부·여당이 공정한 의견수렴 없이 ‘유치원 3법’을 밀어 붙인다”며 반대투쟁에 나섰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이 취소 지시를 내렸음에도 투쟁을 강행한 한유총은 서울교육청으로부터 법인 설립허가 취소처분을 받았다.당시 조희연 서울교육감은기자회견까지 열어 “개원 연기투쟁으로 유아의 학습권과 공공의 이익을 해쳤다”고밝힌 바 있다. 한유총은 이에 불복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1·2심 재판부로부터 승소를 이끌었다. 재판부는 “투쟁에 참여한 사립유치원은 전체의 6.2%에 불과하고, 그나마 개원 연기로 인한 자체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며 “투쟁은 시작 당일스스로 철회했고, 개원이 연기된 기간은 하루였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까지 승소한 한유총은 “현명한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힌 반면 서울교육청은 “아쉽지만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입장문을 냈다. 서울교육청은 지난달 중순 배재·세화고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은데 이어 일주일 만에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교육계는 “진보교육계의 ‘보여주기 막장 정치’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한 자극적 언행은 그렇다 쳐도 행정까지 법치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실 한유총 개원 연기투쟁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현행법상 입학일자 결정권은 유치원장의 운영권에 속한다.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과 진보교육감들은 ‘불법’ 운운하며 취소 명령을 내린데 이어, 법인 설립허가 취소까지 끌고 갔다. 1심에서 한유총 승소로 결정 났을 때 멈출 수 있었지만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항소를 제기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 도성훈 인천교육감은 항소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교사도 교수와 같이 그 직을 유지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나설 수 있도록 ‘출마휴직’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이 3일 초‧중등교원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된 경우 휴직할 수 있도록 한 '교육공무원법' 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초‧중등교원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때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둬야 한다. 반면 대학교원은 그러한 제한이 없다. 교육감은 교육 예‧결산, 초‧중‧고등학교의 설치‧이전‧폐지, 교육과정 운영 등의 직무를 수행하므로 초‧중등교원의 입후보도 대학교원에 걸맞은 수준으로 보장돼야 함에도 현직 초‧중등교원은 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강민정 의원은 "초‧중등교원도 대학교원과 마찬가지로 그 직을 유지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원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된 경우 휴직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육감 선거 출마를 위한 휴직 기간은 해당 선거일 전 5개월부터 선거일 후 2개월까지의 기간 이내이다.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와 같은 6월 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사의 휴직은 신학기 전에 가능하기에 학습권 침해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육공무원 일부개정법률안'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강민정 ‧ 강득구 ‧ 강병원 ‧ 김진애 ‧ 남인순 ‧ 심상정 ‧ 용혜인 ‧ 이상헌 ‧ 이성만 ‧ 정성호 ‧ 최강욱 총 11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인천교총(회장 이대형)이 인천시교육청(교육감 도성훈)의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 추진에 대해 교권추락 등을 이유로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조례안 내용 중 상당 수 문제점이 파악됐으며, 의견 수렴 없이 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올바른교육사랑실천운동본부(상임대표 가용섭)는 2일 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사진)을 열고 시교육청의 조례안에 반대입장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인천교총은 “입법 과정에서 지켜야 할 공청회 개최, 각계의 공정한 의견수렴 절차를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례 제정은 공청회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야 함에도 이를 외면한 채 강행 처리하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당한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 해당 조례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조례추진 반대 이유로 ▲이미 상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을 조례 범위에서 다루는 문제 ▲조례 대상 범위 무리한 확대 ▲인권보호관의 과도한 권한 및 역할 부여 ▲학교 안에서의 정치적 의견 개진과 공표 등을 들었다. 이대형 인천교총 회장은 “이번 조례안은 범위를 ‘학교구성원’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타 시·도의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인용한 것에 더해 무리하게 학부모, 교직원에 관한 부분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다른 법률과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2017년 1월 제정된 ‘인천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와 중복되는 부분이 다시 조례로 추진되면 충돌 지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학생 징계에서 ‘대리인 선임권의 보장’을 명문화하는 등 위임입법을 넘어서 위법성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시교육청은 조례안을 1월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에는 학교 구성원이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명시됐으며 신체적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개성을 실현할 권리, 표현과 집회의 자유,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등이 포함됐다. 특히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서울·경기·광주·전북 등 지역과 달리 범위를 교직원과 학부모까지로 그 대상을 넓혔다. 그러나 교권 추락 등을 우려하는 교직원과 학부모의 반발 여론은 거세다. 시교육청 시민청원 게시판에 ‘교사의 생활지도권 박탈 가능성’을 우려하는 반대 글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제정 시 학교 현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조례안은 전면 수정되거나 즉시 폐기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2021학년도 신학기 등교가 2일 전국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전북 무주군 소재 설천초와 설천초병설유치원은 특별한 시업식과 입학식을 선보였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전원 한복을 입고 등교해 시업식과 입학식에 참여했다. 학년별로 통일된 컬러가 눈에 띄었다. 이는 작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한 것이다. 3일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미 사용 예산을 뜻깊게 쓰고자 교직원 협의를 거친 끝에 시업식, 현장체험학습 등 학교행사에 우리 전통의 멋을 살리고 계승하는 의미에서 한복 무상지급이 결정됐다. 이들 행사에서 ‘한복 등교’를 하는 경우 분기당 1회 정도다. 한복을 지급받은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빈도수는 더 추가될 수 있다. 설천초 학생들은 한복과 더불어 방한용 조끼, 그리고 기초 학용품과 학습준비물도 무상으로 지급받고 있다. 백희철 교장은 “1회성으로 그칠 예산 사용보다 오랜 기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며 “물질적인 지원도 뿐 아니라,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이 끊임없는 고민으로 학생 저마다의 개성에 맞는 색다른 수업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천초와 설천초병설유치원 107명 학생 전원이 등교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날 전국적으로 전면 등교가 시행돼 도심지역의 대규모 학교 등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밀집도 원칙을 준수하며 등교와 원격 수업이 병행되지만, 소규모 유치원(60명 이하)과 소규모 학교(300명 이하, 혹은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하인 400명 이하)는 전면 등교할 수 있었다. 설천초는 유치원 2학급, 초등 6학급, 특수 1학급으로 구성됐으며, 교사 성비도 고른 편이다. 백 교장은 “도시권역에서 온라인수업으로 애로사항이 많지만, 시골의 소규모학교에서는 전원 등교 하에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교육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광주교총(회장 김덕진)은 지난달 27일 광주교총 회의실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윤영덕 의원과의 교육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광주교총에서 김덕진 회장,김남금·박희복·최규남 부회장,손영완 교섭위원장이 참석했다. 임미란 광주시의원도 윤 의원과 동석했다. 이 회장과 윤 의원은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감축, 수석교사 확충, 관리자(학교장) 경영권 존중, 교원의 퇴직 전 사회적응 기간 필요성, 초등 돌봄제도 개선 등 지역교육 현안에 대해 2시간 정도 논의했다. 특히 이들은 오랜 논의의 산물인 수석교사 확충 문제, 광주 기간제 교사가 전체의 30%를 넘는 학교의 운영 난맥상,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감축 등의 주제를 심도 있게 나눴다. 광주교총은 기타 건의사항으로 교원단체법 조속 심의 통과 요청, 학교현장의 실효성을 감안한 기초학력보장법안 재검토 등을 요청했다. 이에 윤 국회의원과 임 광주시의원은 충분한 검토를 거쳐 시의회나 국회에 잘 반영하기로 했다. 광주교총과 윤 의원 등은 8월경 다시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정례적으로 제도화하기로 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충북교총(회장 서강석)은 지난달 말 청주시 오창읍 소재 제이원 청주호텔(대표 유규하)과 호텔사용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 체결로 충북교총 7000여명의 회원 및 가족은 제이원 청주호텔 객실 이용 시 조식 포함하여 우대 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 서강석 충북교총 회장은 “앞으로 회원의 복지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업무협약 확대 및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의 힘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왕실의 화가를 지낸 벤저민 웨스트의 어릴 적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잠시 외출한 사이 누나의 그림물감을 꺼내 누나의 초상화를 그린다며 온 방에 색칠을 해놓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사방 벽은 물론 자기 옷까지 얼룩덜룩 색칠한 벤저민을 보고 크게 놀랐다. 잠시 아무 말도 않던 어머니는 벤저민을 끌어앉고 입을 맞췄다. " "우리 아들,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정말 대단하다." 크게 혼날 줄 알았던 벤저민은 어머니의 따듯한 말 한 마디에 그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붓다와 다시 시작하는 하루 213쪽에서 인용함. 율곡 이이의 뒤에는 신사임당이 있었고, 책을 읽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에디슨을 사랑으로 가르친 것도 어머니였다. 위대한 수녀 마더 테레사의 뒤에도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아름다운 삶, 위대한 삶을 남긴 사람 뒤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있다. 마더 테레사 뒤에는 역경을 이겨낸 어머니가 있었다 120 여개 국에 자신의 영혼이 깃든 '사랑의 선교회'를 남기고 떠난 마더 테레사. 그녀는 평생 낮은 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갔을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막내딸의 수녀 서원과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지지해 주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는 테레사 수녀를 지탱해준 힘은 바로 어머니라는큰 나무였다. 나처럼 어머니와의 인연이 짧은 사람에게는 부러운 이야기이다. 내게도 신사임당이나 에디슨의 어머니까지는 못 되어도 그저 곁에만 있어준 어머니가 있었다면 내 삶이 조금 더 따스하지 않았을까.유년이 빛나지 않았을까. 원하는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는 슬픈 눈물을 거두지 못한 채 사모곡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눈물을 쏟곤 한다. 원망이 되었다가 그리움으로 한으로 남았다가 이제는 정물이 되어 버린 명사, '어머니'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가정, 어머니의 부재는 나로 하여금자생력을 기르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 구르는 돌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을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고 누구도 믿지못한 채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달리게 만들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핍동기 덕분에아직도 나는 더채우고 더 태울것이 남아 있어 삶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시계는 느려지건만. 독서와 글쓰기를 평생의 신념으로 가르치다 내 아픔과 좌절을닮은 제자들의 아픔이 더 잘 보였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보듬고 격려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깊이 생각하며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그 아픔과 상처가 옹이가 되어 인생을 더 탄탄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려 했다. 동정보다는 격려를, 다독임보다는 일어설 방법을 제공하려고 힘썼다.아픔을 아픔으로 끝내지 않고 승화시키며 사는 삶을 몸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선생으로 살고 싶었다.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미래를 설계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글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눈물 흘리며 쓴 일기가 스스로를 보듬으며 한 걸음 내딛는 힘이 되게 노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힘을 낼 수 있었던 나를 보여주며 상처와 고난은 이겨내는 자에겐 결코 상처로 남지 않음을나의 제자들과 나누었다. 교직 38년 동안 독서와 일기 쓰기를 평생의 신념으로 가르쳤다. 그것은 내가 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대로 가르쳤다. 선생은 먼저 간 길을 보여주는 자일 뿐이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 하지 않은 일을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칭찬하고 싶은 아이에겐 책을 선물했고 제자들과 중요한 순간이나 헤어질 때는 손편지에 마음을 담았다. 먼 후일 힘든 날이 오면 다시 읽어 보라고. 나의 언행과 가르침은 잊어도 좋으니 부디책을 가까이 하고 진심이 담긴 한 문장이라도 일기를 꼭 쓰라고 애원했다. 아직도 줄 것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아픈 유년의 슬픔으로 인해 훌륭한 어머니는 못 되어도 나쁜 어미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살아낸 인생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진행형이다.내가 받지 못한 모정을 딸과 아들, 외손녀에게 쏟고 있으니. 정년퇴직을 하고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며 도서관 생쥐로 살고 싶었다. 마음껏 책을 읽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던 꿈은 다시 미뤄졌다. 겨우 1년 쯤 쉬고 있을 때 터진 코로나 19로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딸아이의 안타까운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긴급 상황이었다. 2년 가까이 돌보던 육아도우미가 아프면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사람이 드나드는 것에 예민해졌다. 특히 남의 손에 맡기느니 공직을 그만두겠다는 딸의 하소연엔 나의 모성 보호본능이 작동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직장인데, 고생해서 공부한 젊은 날이 아깝고 아이는 곧 자랄 테니 자신의 일이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어미가 도울 테니 걱정 말고 직장을 놓지 말라고. 자식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당당한 인생을 사는 건 더 중요하다고. 지난 해 6월 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식사까지 봐 주며 거의 12시간 가까이 육아와 살림을 도왔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요즈음은 아침 일찍 가서 도와주고 집에 왔다가 오후에 다시 가서 살림과 육아를 거들어 주는 중이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아직도 내가도움을 줄 수 있다는사실이 감사했다. 가족이 있어도 기대기는커녕 그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내 젊은 날이 준 깨달음은 힘이 남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아와 살림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지만 표가 나지 않는다. 독박육아를 하는 젊은 엄마들이 육아우울증에 걸리는 게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하루 종일 아파트에 갇혀서 말도 통하지 않는 꼬맹이와 씨름하고 반복적인 집안 일을 휴일도 없이 하다 보니 지치는 날이 많았다.귀엽고 사랑스런외손녀이지만 떼 쓰고 울어댈 때는 신경이 곤두서고 급기야는 체력이 방전되기도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딸이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에 아이에게 야단이라도 치고 나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니 자존감이 바닥을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곁에서 도와주고 다독일어른 노릇까지 내 몫이다. 그러니 미안해 할까 봐 피곤함을 내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눈도 어두운데 이 나이에 쉬지도 못하고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지지만 반대로 생각하며 기꺼이 잘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자식이 절실한 순간에 손을 내밀었을 때 도울 수 있는 부모 노릇도 축복이라고, 힘든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육아도우미에게 주는 월급을 모아서 어서 빨리 가정경제를 탄탄히 세우라고. 엄마는 연금만으로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워킹맘이라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던 딸아이에게 진 빚을 외손녀에게 갚아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외손녀를 재울 때마다 딸아이를 재우는 상상을 하곤 한다. 딸을 껴안고 마음 편히 낮잠을 잔 기억이 없으니 얼마나 미안한 엄마였던가! 아직도 줄 게 남아 있는 내 겨울나무의 수액이 마르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영혼을 돌보는 중이다.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책도 읽고 놔 버렸던 글쓰기도 시도하는 중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답답하고 우울함도 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피곤하지만 행복하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중이다. 해맑은 웃음을 주는 외손녀에게서 행복을 느끼지만 순간순간 육체적으로 고단할때는 정신까지 메말라가는 것 같아 폭삭 늙어가는 듯해서 금방이라도 번아웃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는데 자판 앞에 앉기 시작하면서 밝아진 내 모습이 좋다. 세상의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 국가로부터 존중 받기를!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자 하늘이다. 그 어머니에게 사랑스런 돌봄을 받으며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귀한 생명들을 해치고 유기하는 못된 소식들이 지면을 어지럽힌다. 그러니 누구나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무나 부모가 될 수는 있으나 좋은 부모가 될 자격은 인내하고 노력해야 가능한 명제이다. 세상에는 말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넘친다. 정치가, 사상가, 언론인, 교육자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사람은 부모이다. 아버지도 중요하지만 모태를 내어준 어머니가 가진 본능적인 보호본능에서 나오는 힘은 아무래도 아버지를 능가하지 않을까. 힘들고 지친 남편을 위로하고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는 지혜로운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세상의 모든 엄마를 응원한다. 내 자식을 기를 때보다 더 힘든 요즈음, 아기를 기르는 엄마들이 더 위대해 보인다. 시간을 되돌려 내게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갖고 싶다. 아내를 잃은 아픔으로 나를 제대로 책임져 주지 않은 아버지보다는 나쁜 엄마일지라도 그 따스한 품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은 잊어도 그 느낌만은 오래도록남는다.아직도 나는 세상을,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서툰 미숙아로 사는 느낌인 것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받아야 할 안정감과 기본신뢰감이 낮은 탓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피아제의 교육심리학 이론은 매우 타당하다. 어쩌면 세상이 아픈 이유는 최고의 스승인 어머니들이 바르게 살지 못한 탓은 아닐까 하는 비약까지 하게 된다. 비혼과 낮은 출산율로 아이들을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렵게 결혼을 하고 힘들게 낳은 자식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유기하고 방치하여 생명을 해치는 무서운 세상이다. 친자식을 성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인면수심을 가진 아버지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세상에 인간의 도리라는 게 있는지!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사람이 보여주는 민낯은 거꾸로 가는 것만 같아 두려운 세상이다. 온 인류가 코로나 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어두울수록 빛의 소중함과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가족을 돌보고 서로 돕는 작은 씨앗들이 모여서 세상을 밝게 하리라 믿는다. 내 자식의 부르짖음을, 내 부모의 절실한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따스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있음에도 외롭고 구석진 방에서 눈물을 삼키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기원한다. 이 글은 토요일 오후 외손녀 육아를 마치고 퇴근하고 숙제처럼 남기는 글이다.공교육의 현장에서는떠났지만 가르치고 기르는 교육은 외손녀에게 이어지고 있으니 교단일기를 쓰는 셈이다. 아직 말이 서툰 외손녀가 제 엄마를 툭툭 치다가 때리는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보고 정보를 검색하는 중이다. 내 생각엔 제 마음을 알아달라는 신호로 보이니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라고, 눈을 맞추고 자주 말을 걸고 안아주라고조언해 주었다. 38년 교직경험으로도 외할머니 노릇은 결코 녹록치 않으니 다시 교육심리나육아 심리공부로 힘을 길러야 할 모양이다. 맛있는 밥을 해주고 많이 놀아주며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채울 내공이 필요하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는 딸과 사위의 식단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드는 게 일상이 되어 뇌가 젊어질 것 같다. 나는 지금 진정한 어른 노릇을 수행 중이다. 육아일기를 쓰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다시 글을 쓰기시작했다. 시간이 많다고 책을 더 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짬을 내어 쓰는 기쁨에 돋보기 너머로 한껏 키운 글자들이 웃고 있다.글을 쓰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일흔이 더 가까운 외할머니가 쓰는 사는 이야기가먼 후일 외손녀에게 줄 유산으로도 훌륭한 선물이 되리라.
35년 전 때린 제자에게 30여년 전. 가는 학교마다 6학년 담임을 내리맡았다. 학생수는 늘 40명에 가까웠고 학사 일정은 빡빡하기만 했다. 마치 시험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매달 치러지는 학력평가로 인해 학생도 선생님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요즈음처럼 체험학습이 있거나 수학여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야영캠프가 있는 것도, 즐거운 야외 학습도 없던 시절이었다. 큰 행사라고는 가을이면 치러지는 대운동회가 전부였다. 그것도 보여주는 운동회라서 거의 한 달 가까이 무용 연습을 하거나 단체 게임 연습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은 구릿빛이 되곤 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제자들과 즐거운 추억이 별로 없다. 그 시절에는 담임이 가르친 내용으로 시험을 보던 시절이 아니었다. 문제지를 사다가 보던 시절이었다. 도덕부터 체육까지 지필평가 성적으로 다달이 학력우수상을 주던 시절, 학년이 다른 반과 학급 평균을 비교 당하는 어이 없는 일이 해마다 벌어졌다. 초등학생이었던 내 제자들은 그야말로 공부기계, 시험보는 기계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교가 그러했다. 중학교 입학마저 시험을 치러서 반을 배정하던 시절이었고 1등으로 입학한 학생은 학교의 자랑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반 친구들의 점수가 모두 공개되던 시절, 선생님의 교권이나 학생의 인권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같은 단어도 없었다. 선생님들에 의해 벌어지는 학교폭력이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도 일상이었지만 누구도 제재하는 사람이 없던 슬픈 시절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절 나의 제자들은 무슨 재미로 학교를 다녔을까? 선생님들 또한 교사로서 보람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내 반 학생들이 좋은 성적으로 학력우수상을 많이 타는 반 선생님은 1등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험 성적 올리기에 올인하느라 모든 교육활동의 중심은 학력 향상이 화두였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 부터 문제집을 풀었고 사설 시험 제작소의 시험지가 곧 교육과정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 시험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무엇이 나올지 쪽집게처럼 잘 찾아내서 가르치는 선생님이 대접 받았다. 과학 수업을 실험실에서 제대로 하거나 체육 실기 수업을 충실히 하는 반의 성적은 늘 하위였다. 요즘 말로 하면 참교육을 하는 선생님 반은 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지필평가로 학력을 재던 시기였으니 운동을 잘 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웠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학생들에게 공정한 평가를 한답시고 평가계를 맡은 선생님은 시험 때마다 전교생이 교실을 바꾸거나 채점 감독 교사를 바꿔서 시험을 치렀고 1등 부터 꼴등 까지 모든 성적이 공개되었다. 성적이 나쁘거나 학습 부진아가 많은 반 선생님은 늘 기를 펴지 못했다. 고학년을 맡은 선생님은 연임이 기본이었고 연세가 들었거나 시험 성적이 부진한 담임 선생님에겐 고학년을 맡기지도 않았다. 타고 난 얼굴 모습이 다르듯 모든 학생은 재주가 다르다. 그럼에도 지필평가라는 한 가지 잣대로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워 서로를 짓밟게 하고 성적이 낮은 친구에게 갑질을 일삼게 했던 학교 시스템의 부작용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직 시험 성적으로 상위 집단, 엘리트 집단에 합류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갑질의 행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엘리트 집단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기업인이 되어 노동을 착취하거나 부당하게 해고하거나 생명까지 잃게 하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돈에 눈이 어두운 그들에게 노동자는 부품에 불과하니 언제든 새로운 부품을 끼우듯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갈아치우는 일은 다반사다. 심지어 교육이 이루어지는 기관에서조차 갑질이 횡행하는 현실이다. 관리자들이 선생님들에게, 대학교수가 제자들에게, 학교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선배 선수가 후배들에게 저지른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성추행, 학교폭력 등, 하루도 거르지 않고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직에 몸을 담았던 나 역시 잘못된 시스템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는 학력평가를, 학교장의 명에 따라 실시했을 뿐이니 잘못이 없다고 항변할 수는 없다. 지필 성적으로 한 줄을 세우고 비교, 평가하는 대열에 반기를 들지 못했으니 잘 가르친 선생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을 소중히 하지 않은 교육의 결과는 사회 곳곳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자신이 없다. 세상이 힘든 것은 모든 잘못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 남 탓을 하는 손가락질 문화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요즈음 나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깊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섰는지,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지. 혹시 내가 가르친 제자는 아닌지. 교직에 있을 때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곰곰이 따져 보곤 한다. 학교폭력 기사가 나오면 그 잘못이 우리 선생님들에게 있음을 먼저 아프게 반성한다. 나는 결코 학생들을 때리며 가르친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숙제를 반복적으로 하지 않거나 친구를 고의로 괴롭히고도 사과를 하지 않을 때, 부모님께 불효하고 불손하며 공부를 태만히 할 때 등등 말로 타일러도 반항을 하거나 대드는 학생을 끝까지 좋은 말로만 훈육했다고 볼 수 없으니. 마음 같아선 나도 학생들을 때린 적이 있다고 커밍아웃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만 같은 요즈음이다. 그러니 세상의 선생님들은 학교폭력 기사에 남의 일처럼 말하며 삿대질을 안 했으면 싶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공범이 아닌가! 제자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매를 들었을 뿐이라고 강변할 것인가? 모든 게 남탓인 것처럼, 사회나 정치 탓인 것처럼, 숭고한 선생님인 것처럼 세상 탓을 하는 일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사태에서 자유로운 선생님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언어폭력까지 더해지면 살아남을 선생님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요즈음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지 않으리라 반성하는 중이다. 세상 어디에선가 혹시 나에게 받은 언어폭력으로, 사랑의 매라는 학교폭력을 잊지 못하는 제자가 있다면 언제든지 만나서 용서를 구할 것이다. 수년 전 6학년 때 가르친 제자가 부모님께 함부로 행동해서 매를 들어 훈육한 일을 기사로 써서 공개적으로 반성한 적이 있었다. 말로 타일러도 꿈쩍하지 않아 감정이 폭발해서 저지른 젊은 날의 오점이었다. 그때 때리고나서 너무 많이 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공개 사과 기사를 보고 그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 잘못 때문이었고 다 잊었으니 선생님도 잊고 마음 편히 사시라고. 몇 번 문자 메일이 오갔지만 아직도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내 몫이니 어쩌랴! 그날 이후 나는 교실에 매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30센티미터 플라스틱 자는 종종 사용한 적이 있으니 그것도 매는 분명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랑의 매조차 들지 말아야 진정한 선생님이다. 그걸 깨닫고 노력했던 것은 불과 몇 해 전이니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옆반에서 과도한 매를 때리는 선생님을 말리지 못했고, 내 반 아이가 선배 선생님에게 뺨을 맞고 들어와도 달려가 항의하지 못한 비겁한 선생이었음을 기억해내고 부끄럽다. 30년 전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심부름을 보낸 선배 선생님 반 아이에게 쉬는 시간에 오라고 했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 선생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때 사과 받지 못한 억울함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분명하다. 사람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은 결코 잊지 않지만 자신이 행한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당한 사람은 잊지 못하는데 행한 사람은 기억조차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러니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는 순간, 변명보다 진정한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덮을수록 과오는 더 커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나에게도 학력제일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성공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최고의 대학에 다니거나 해외 유학을 갔거나 이름 있는 집단의 일원이 된 제자들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부추기고 일등이 되라고 몰아부친 선생이기도 하다. 성공한 뒤 좋은 영향을 주는 리더가 되라는 말도 잊지 않았지만 그것까지 지키며 사는 제자가 많기를 기원하고 싶다. 나에게 과도한 매를 맞은 張군! 몇 년 전의 공개 사과에도 아직도 나는 마음이 아프네. 그대는 잊었다고 했지만 나는 결코 잊지 않았네. 혹시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용서를 받고 싶네. 함께 늙어가고 있을 나의 제자 얼굴을 마주 보고 깊은 용서를 구할 참이네. 부디 건강하시게! 그날이 오기를 빌며. 못난 선생의 마음을 글로 먼저 보내네.
새 봄을 맞으면서 전국의 학교는 지금 신분 변화가 한창이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그리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진입하고 있다. 각 시기에는 나름의 특징과 함께 어렵고 힘든 과정이 뒤따른다. 지금은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당연히 그 속에는 누구에게나 특별히 힘든 과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누구나 예외 없이 어렵고 힘든 공통된 시기가 있다. 바로 중⋅고등학생 시절이 그렇다. 어쩌면 이것이 험난한 인생 백세 시대의 시작점(starting point)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시기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시절을 잘 버텨내고 극복한 사람은 그에 대한 보상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또 실제로 그런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부모와 온 가족, 친척들이 나서 지원을 하며 전력투구를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듯이 이 보상의 뒷면에는 심술궂은 방해꾼인 심리적 부담감이 막중한 스트레스가 되어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그들은 ‘아프고 나면 성숙해진다.’고 하듯이 몸과 마음은 한층 성장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보다 넓은 세상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정신을 소유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단지 좋은 측면에서의 결과론적인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전술(前述)한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이 고통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고등학생 모두는 이 과정 중에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거나 비관적으로 삶을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OECD의 상위권이지 않은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의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초대 교회 교부(敎父: 교회 지도자)중 한 사람이다. 그의 신학적인 사상은 교파에 관계없이 많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과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 실존철학의 거장인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에게도 두루두루 영향을 미쳤다. 그가 자신의 저서 『고백록』에서 한 말을 소개해 본다. “어떻든 소년기에는 글을 좋아하지 않았고 저에게 글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어른들이 미웠습니다. 닦달을 받았던 것은 오히려 저한테 잘된 일이었지만, 어쨌든 저로서는 잘하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배우지 않았을 저였습니다. 하는 일이 비록 좋아도 억지로 하면 잘 안 하는 법입니다. (…) 저에게 배움을 강요한 그들도 제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꿰뚫어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충분한 빈곤, 욕된 영광을 두고 채우지 못할 욕심을 채우려는 것 말고는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공부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종종 착각을 한다.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무엇인가, 즉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좀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할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큰 착각이다. 그런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아니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왔다고 해도 이미 필요가 없거나 늦었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공부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피투(被投)되어 내던져진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인간은 처음부터 갈등과 긴장과 불안의 연속에서 일상을 추구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그런 삶 속에서 누구나 끊임없이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결국 고통이 있다는 것은 한 생명의 인간이 살아 있다는 표징이다. 산 사람,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끼는데 이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순으로 가득 찬 소망이다. 인간으로 존재하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공부는 신성한 노동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는 특히 청소년에게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작은 세상인 학교에 등교하는 청소년도 공부하는 노동자이다. 공부하는 노동자에게는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책상에 앉아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habit)이 생긴다. 결국 매일 습관으로 축적한 공부만이 그 사람의 미래를 보장한다. 그런 습관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생활패턴과 성향을 잘 분석해야 한다. 처음부터 실패할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의기소침해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어느 시간에 더 집중을 잘하고 어느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지 또 어떨 때 감정적으로 쉽게 무너지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잠은 적어도 얼마만큼은 자야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와 같은 사소한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지금 많이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고 말한다. 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들은 “아무리 공부해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는 말과 유사하다. 그런 가운데 공부를 통해서 누구나 성숙해지는 것이 바로 공부의 매력이다. 그것은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소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도 하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고백을 했다. 학생은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공부는 노동이지만 자기 자신을 성숙시키고 멋있게 성장해 나가는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혹자는 시험은 공부를 즐기는 축제라 부르기도 하였다. 바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최초인 로마의 로타 로마나 대법원의 변호사인 한동일 교수가 그렇다. 그는 역사상 700년 동안에 930번째의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주인공이다. 누구나 삶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중에서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 즉 학생(學生)이 우리 인간의 고유한 신분이다. 그러기에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야흐로 평생교육 시대다. 누구나 공부에의 입문(入門)을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견뎌내는 인내와 용기는 분명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여기엔 마음을 잘 다스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교사는 우수한 학업적 능력이 단지 젊어서의 순간에 그치는 공부가 아닌 즐거운 노동으로 평생 습관화되고 정착되어야 한다. 왜냐면 교사는 학생에게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솔선수범해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설레는 마음, 측은한 마음, 그리고 도전하는 마음을 가진 공부하는 노동자로서 진정한 학생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경북 영천시 신녕초등학교병설유치원(원장 박종욱)은 3월 2일 오전 10시 본교 2층 소강당에서 1학년 입학생들과 함께 유치원 입학식을 시행하였다. 유치원 유아 4명과 1학년 3명의 신입생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게 된 입학식에서는 입학허가를 시작으로 선물 증정 및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기원하는 사탕 목걸이 걸어주기에 이어 담임 교사 소개, 원장선생님 환영사와 축하인사말로 입학식을 마무리 하였다. 입학식 후에는 입학을 기념하기 위해 원장선생님, 원감선생님, 담임선생님, 입학생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박종욱 원장선생님은 “신녕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 입학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즐겁고 행복한 유치원 생활과 함께 씩씩하고 튼튼한 어린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2021학년도의 새출발을 알렸다.
환경부(장관 한정애)와 한국환경교육협회(회장 이진종)에서 진행하는 ‘푸름이 이동환경교실‘이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하여 온라인 비대면 교육도 함께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수도권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및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운영되며, 직접 학교나 기관으로 방문하는 방문교육과, 온라인을 이용한 비대면 교육으로 진행된다. 방문교육은 교실과 이동교육차량에서 진행되며, 6가지 주제(생태계, 미세먼지, 환경안전, 기후변화, 수질오염, 지속가능한 소비)로 다양한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도 함께 진행된다. 푸름이 이동환경교육차량은 코로나19를 대비하여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체온 측정 및 개인 소독 실시 이동교육차량 내 인원을 줄여 사회적 거리를 유지함으로 안전하게 프로그램을 실시중이다. 비대면 교육은 온라인을 이용한 영상 및 자료를 통해 학생들이 집에서 AR을 활용한 미세먼지 교육나 기후변화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도권역 푸름이이동환경교실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청소년들이 환경상식 배양과 활력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년의 벗을 찾아 옛 사람들은 책을 ‘천고상우 千古尙友’ 라 했다. 천년을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한 생애 동안 단 한 명의 벗을 갖기도 쉽지 않은데 천년을 사귄 벗이라니! 나의 좁은 인식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짐직조차 못할 비유다. 내게 그런 벗이 있는가. 자문하면 참 서글퍼진다. 마음이 통하는 벗이야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음만으로 그냥 위안을 삼는 정도이니.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 곧 그 사람이다.” 러시아의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 존재의 가치와 평가에 대해 한 말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평가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은 자는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니 참으로 엄혹한 평가다.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인간으로서 최하등급에 속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읽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좁은 탓이다. 글을 쓰기 좋아하지만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니 더욱 그렇다.다만 책을 읽거나 서툰 글쓰기에 희망의 등불을 걸고 애쓰는 이유는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도서관 반납코너에서 고른 대어였다. 책의 제목은 사람의 얼굴에 해당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얼굴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왜소한 체구를 가졌다면 일단 첫 인상부터 호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그렇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을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지지 못해 평생의 친구를 수십 년 후에야 발견했으니 인생의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읽어 보지 않고도 첫눈에 들어오는 책은 대부분 제목이 잘 생긴 경우였다. 외모가 번듯한 사람에게 끌리듯. 도서관의 책을 샅샅이 훑으며 책을 읽는 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얼른 집어든 책이다. 그분의 문제점은 책마다 연필로 밑줄을 긋는 나쁜 습관이 문제이긴 하지만.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굵기로 반듯하게 선을 그은 모습이 일정한 패턴을 지녔다. 자신의 책도 아니면서 그런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에의가 없음을 한탄하지만 고칠 방법이 없으니 난감하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59 쪽 한 번뿐인 인생에 ‘그때 만약 ~했더라면, 내게도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과 같은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둠 속에 있을 때마다 짧고 깊은 울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나쁜 운명이었지만 그 나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좋은 시간을, 잘 여물어가는 노년의 언덕을 걷고 있으니 인생은 새옹지마가 분명하다. 그러니 좋은 환경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나쁜 환경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최고의 바이얼린을 만드는 재목은 가장 험난한 환경을 이겨낸 나무로 만든다고 하니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그 세월 이겨낸 피눈물 나는 노력이 만들어낸 사리를 품었으니. 사람도 나무도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는 그가 선택한 순간의 의지에 달렸다. 매장과 파종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충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이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97쪽 이제와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암흑기라고 여겼던 절망 밖에 보이지 않던 시기는 잘 견디고 나면 반드시 어떤 열매를 안겨주곤 했다. 삶의 여정에서 돌부리에 넘어져 다치고 울 때마다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운 책이 있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 준 것은 책이라는 도반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결코 배신하지 않는 믿어도 좋은 최상의 벗이었다. 매장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파종되었다고 믿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게 한 빛은 책이었다. 인생의 겨울나무로 서 있는 지금, 인간관계의 가지치기를 단행하는 중이다. 겨울나무는 그래야 한다고 말없이 가르쳐주었으니. 노년을 향해 가는 내 나무는 이제 더 깊게 뿌리 내릴 여력이 없음을 몸은 알고 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없게 된 눈. 정년 뒤에 찾아온 외손녀를 돌보는 일로 몸은 더 무거워졌으니.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책을 읽는 일이고 몇 문장이라도 글을 쓰는 일이다. 무엇보다 1년 가까이 쉬어 버린 글쓰기는 자존감마저 끌어내려서 다시 자판 앞에 앉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혼자만 읽고 써도 되는 일을 굳이 지면에 드러내는 것이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탁월한 글솜씨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을 써야 좀더 매끄럽게 문맥을 다듬게 되고 더 긴장하게 된다. 더 생각하여 여러 번 퇴고를 하다보면 더 좋은 문장이 튀어나오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것은 자판이 주는 선물이다. 어깨가 아프고 등이 당기는 고통의 댓가라서 수고한 만큼 얻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책에서 얻은열매를누군가와 나누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니 그 또한 행복한 나눔이 아닐까. 임어당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기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일정한 틀에 박혀 있는 그가 일상에서 접촉하는 것은 소수의 知己일뿐이므로 보고 듣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요즈음처럼 코로나 19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책마저 읽지 않는다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 되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으리라.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던 지난 해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여전히 책은 내 인생의 도반이자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언제든 기대어도 좋은 최상의 벗이다.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노년일까 생각하면 두렵다. 내게 죽음은 바로 책을 읽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진심을 담은 한 문장을 쓸 수 없는 날을 생각하면 두렵다. 외손녀를 돌본다는 것도 변명일 뿐이다. 하루 단 10분이라도 짬을 내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면 되는 것을. 오늘, 그대의 진실한 한 문장은 무엇인가 진실한 한 문장 글이 써지지 않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헤밍웨이는 옥탑방 창가에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걱정하지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봐.” 222쪽 누군가의 책을 읽는 것은 내 삶을 긍정의 힘으로 무장하기 위함이다. 나는 찾아내지 못한 책의 산맥을 오르내리며 작가가 수확한 알곡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진실한 한 문장’이 그랬다. 그것은 1년 가까이 책을 놓고 글도 쉬어버린 나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중단하고 있던 기사를 계속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나이도 있고 현직에서 떠났으며 외손녀를 돌보느라 지쳐 있었기에 글쓰기는 포기 상태였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무료했던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육신의 고단함을 핑계로 나는 정신적으로 늙어가고 있었으니. 작가 류시화는 헤밍웨이의 '진실한 한 문장' 이 행운의 부적이라고 썼다. 나 또한 이 책에서 수확한 최고의 열매다. 이제는 잠 자기 전에 오늘의 진실한 한 문장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잠드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진실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면을 쓰고 거짓으로 하루를 살고서 어떻게 진실한 문장이 나오겠는가!글이 곧 그 사람이 되는 마법의 한 문장 덕분에 새벽 잠에서 깨어나 행복한 글쓰기 중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진실한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1995년 어느 봄날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의 담임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이“인환아 너는 대학진학을 무슨 과로 하고 싶으니?” “저는 사회복지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왜 사회복지 쪽을 고민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선생님이 생각했을 때 문과 쪽에서 국어나 영어 쪽도 좋을 것 같고, 운동도 잘하고 하니 경찰행정이나 기타 다른 과들도 많은데 사회복지 쪽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거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비록 저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능력도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저보다 힘겹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 사회복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웃으시면서 “너의 마음과 생각이 그러하다면 내가 너에게 알맞은 과를 소개해 줄게 그것은 특수교육이라고 하는 분야인데 내가 3년간 인환이를 봐온 봐를 종합해보면 매사에 능동적인 생각과 행동을 추구해온 너는 네가 가지고 있는 긍정에너지를 장애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함으로써 물질적인 보상을 넘어선 더욱 값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애” “선생님이 내일 관련 자료를 보여줄 테니 잘 생각해봐”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특수교육에 관련한 자료를 받은 나는 순간 머릿속에 “바로 이거야!”라고 하는 외침과 함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부모님께 이러한 나의 결정을 말씀드리고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시길 부탁드렸다. 오랜 설득 끝에 나의 결정대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 후 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현재의 태연학교에 발령을 받아 그토록 원했던 특수교사로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이론과 틈틈이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얻은 실습의 경험을 토대로 특수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대학 시절 배웠던 특수교육의 이론과 실제, 그리고 다양한 방법의 적용을 통한 긍정적 결과 도출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학생들의 장애 정도에 따른 너무나 다양한 상황 발생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과연 특수교육의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며 언제쯤이면 내가 하고자 했던 특수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정도 학생들의 다양한 행동 변화에 대해 적응할 무렵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다양한 행동의 원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교 오기 전 가정에서의 변인에 따른 감정의 변화 등 다양한 행동들에 대한 원인 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교실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특수교사의 길이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막막함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자립 문제였다. 대학 시절 특수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자립’이라고 수백, 수천 번 말하고 쓰고 했던 단어였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먼 꿈같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장애 정도에 따라 졸업 후 맞이하는 환경이 모두 달랐으며 특히 졸업식 날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는 부모님들을 볼 때면 과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나?’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학교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몸으로 마음으로 가르치고 생활하면서 익혔던 것들이 사회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다시 집으로, 혹은 복지관 등의 시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으며 한편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내린 끝에 특수학교에서 직접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다음날 선배님(부장 교사)들을 찾아가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에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저의 느낌을 말씀드리고 함께 고민해서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냐고 여쭈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과연 그런 생각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괜히 그런 일 만들면 욕만 들어먹는 나”,“김샘 네가 안 해도 나라에서 다 해준다 걱정하지 마라”라는 정말 힘이 빠지는 대답만 돌아왔다. 해보지도 않고 결과를 예상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시간만을 흘려보내려고 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실망을 하였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약간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좀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함께 뜻을 같이할 동료 교사들을 모아서 2018년 ‘중증지적장애인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사회적협동조합 ‘찬솔’(속이 알찬 소나무)이라고 하는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 2018년 첫해 발달장애인 근로자 2명을 채용하여 사업을 시작하였으며‘찬솔’은 대표이사 및 모든 임원들은 일체의 보수 없이 모든 수익금은 전액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창출로만 사용한다는 사회적 가치 실현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우수사회적기업으로도 여러 번 선정되기도 하였다. 발달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겪고 있는 특수교사들이 힘을 합쳐 사업체를 운영하고 그에 따른 이익금을 다시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곳에 사용한다는 내용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듬해 2019년에 추가로 2명의 발달장애인 근로자를 채용하였으며 2020년 현재 총 7명의 발달장애인 근로자가 찬솔의 가족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제조업 한 분야로 시작한 사업 영역이 지금은 물티슈와 점보롤 화장지, 친환경 농산물, 카페테리아 사업 등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퇴근길에 인근 식당에 들러 찬솔이 생산하는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영업활동을 하고 주말에 공장에 나와 제품을 만들고 직접 배송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거래처가 하나씩 늘어가고 사업 영역이 하나, 둘 늘어감에 따라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가 늘어가는 것을 볼 때 그동안의 어려움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특히 함께 일하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물리적 성장이 아닌 정신적 성장을 보여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크게 다가온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발달장애 학생들이 취업 및 직업실습을 하지 못해 어려워할 때 찬솔은 추가채용은 물론 직업실습을 제공하고 지원함으로서 많은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직업실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어제도 출장길에 얼마 전 개관한 울산학생교육문화회관 內의 찬솔에서 운영하고 있는‘소소한 카페’에 들려 열심히 일을 하는 발달장애 바리스타에게 격려도 하고 주먹 하이파이브도 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월급은 고사하고 출장비도 안 나오는 사업을 왜 합니까?”라고… 나의 대답은“아이들과 함께 할 때 너무나 행복하기에 그리고 그 친구들이 오히려 저에게 측정할 수 없는 연봉과 보너스를 주고 있기에 이일을 지속할 겁니다.”라고… 수년째 방학을 반납하고 달려온 시간을 잠시나마 되돌아보면 아직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욱 남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교사가 아닌 옆에서 함께 발맞추어 한걸음, 한 걸음 내디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더 강하게 든다. 작년부터 찬솔이 알려지면서 태연학교에 있는 찬솔을 보기 위해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 특수학교 관계자뿐만 아니라 타지역 학부모님들도 오셔서 찬솔의 모델을 보시고 응원해주시고 있다. 다음 주에 방문할 양산의 특수학교 관계자분들과 학부모님들에게도 찬솔이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전달해드리고 더욱더 많은 곳에서 제2, 3, 4의 찬솔이 만들어져서 모든 발달장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함께 행복한 웃음만이 가득한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내일도 달릴 것이다. ------------------------------------------------------------------------------------------------------------------------------------- 2021 교단수기 공모 - 금상 수상 소감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 더욱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함으로서 발달장애 학생들이 졸업후 겪을 현실의 힘겨움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힘겨움을 조금이나마 도움이 주기 위해 뛰어다녔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상은 제 개인의 상이 아니라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을 함께 설립하고 지금까지 운영함에 있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시는 박춘남 선생님, 신삼근 선생님, 신수경 선생님, 김환규 선생님 그리고 찬솔의 운영에 지대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박다효 전 이사장님과 함께 이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또한 찬솔을 설립하고 운영할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 이동성 상임이사님과 직원분들,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학생들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시는 태연학교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학생들의 맑은 눈과 부모님들의 뜨거운 마음을 가슴속이 깊이 간직하고 한번이라도 더 웃을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이런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노력하여 웃음소리가 가득한 학교와 사회적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시는 3월 개학을 맞아 19일까지 어린이 보호구역 및 통학로 안전관리 등을 위해 집중단속을 실시 하고 있다. 3일 오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등굣길을 순찰 하고 있는 모습. 서울시내 어린이 보호구역 1,750개소에서 실시하는 집중단속에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서울지방경찰청 합동으로 진행하며 등교 및 하교시간에 집중 이루어진다.
2021 학년도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2일 오전 서울옥정초등학교(교장 이근실) 1학년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과 교실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2일 서울옥정초등학교 학생들이 이근실 교장 선생님과 교문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옥정초등학교 1학년 5반담임 선생님이 학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실에 입장하기에 앞서 이름표를 목에 걸어주고 있다.
[박광일 여행작가·(주)여행이야기]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 시대 어보(御寶)의 제작기법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어보는 왕과 왕비의 도장으로, 이번에 분석한 어보의 수는 322점이다. 이 가운데 금보가 155점이고 옥보 167점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어보가 모두 331점이니 상당수를 분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분석 과정에서 금보의 경우 구리, 아연의 비율이나 금으로 도금하는 기법(아말감기법: 금을 수은에 녹여서 도금한 뒤 수은을 증발시키는 방법) 등이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했다. 참고로 어보는 어책(御冊)과 더불어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 그리고 왕비의 수에 비해 어보의 수가 크게 많다. 또 어보와 국새(國璽), 또는 옥새(玉璽)라고 부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 국새 먼저 국새를 살펴보자. 새(璽)는 천자, 왕의 도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국새는 말 그대로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어떤 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그리고 정부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문서에 이 도장, 국새를 찍는다. 나라 사이의 외교 문서가 대표적이다. 국내 문서에도 국새를 찍는 경우가 있다. 국새 역시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국새 중 대외 문서에 찍는 국새가 13종류, 대내 문서에 찍는 행정용 국새가 26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국내 행정용 국새 일부만 남아있다. 국새에는 조금 아쉬운 역사가 담겨있다. 고려 말, 고려는 명으로부터 ‘고려국왕지인’이란 국새를 받았다. 이 국새가 ‘사대외교’의 관점에서 여러 국새 가운데 대표가 되며 ‘대보(大寶)’란 이름을 갖게 된다. 하지만 명이 줬다는 점, 그리고 맨 끝에 인(새나 보란 글자보다 격이 낮다)이란 글자가 있다는 점은 고려와 명이 사대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이 건국하고 나서 역시 태종 때 ‘조선국왕지인’이란 국새를 받아서 ‘대보’로 쓰게 된다. 이런 상황은 명에서 청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외교 관계의 변화 속에 국새의 내용도 달라진다. 근대에 이르러 조선은 새로운 외교 질서에 눈을 뜬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서양 열강이 적어도 외교의 형식에 관해 나라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청은 오히려 형식적인 사대관계를 넘어 실질적인 내정 간섭을 하고자 하며 조선의 많은 사람이 반발했다. 그런 가운데 조선은 이전과 다른 국새를 만들어 쓰게 된다. 2020년 미국에서 환수된 국새는 1882년부터 쓰던 것인데 ‘대군주보(大君主寶)’를 쓴 이후 1894년 이후부터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와 ‘대조선대군주지보(大朝鮮大君主之寶)’를 제작해 썼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전과 달라진 조선과 중국 사이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에는 ‘대한국새(大韓國璽)’·‘황제지새’·‘황제지보’·‘칙명지보(勅命之寶)’ 등 황제의 지위에 맞는 국새를 만들어 쓰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거북 모양의 손잡이도 용 모양으로 바뀐다. 이처럼 국새가 나라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수가 일정하다. 그러나 어보는 왕 개인에게 부여되는 도장인데, 특정한 의식을 치를 때마다 제작한다는 점에서 그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어보는 원칙적으로 왕의 시호나 묘호가 정해지면 제작한다. 왕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세자나 세자빈에게도 책봉될 경우 어보(보통 어보로 부르지만 실제 도장의 이름은 ‘왕세자지인’이 된다)를 갖게 되니 기본적으로 왕이나 왕비의 어보는 그 숫자가 여러 개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존호를 받을 때에도 어보를 제작한다. 신하들이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을 올리는데 이를 존호라고 한다. 존호는 왕비의 경우 살아서 받는 경우가 빈번한 편인데 그 이유는 아들이나 손자가 왕이 됐을 때 살아계신 왕실의 어른에 대한 효의 뜻을 담아 존호를 올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철종의 왕비, 철인 왕후는 1863년 고종 즉위 직전 명순(明純)의 존호를 받고 이듬해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됐으며, 1866년(고종 3) 휘성(徽聖)에 이어 정원(正元), 1873년에는 다시 수령(粹寧)의 존호를 받아 명순휘성정원수령대비가 됐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철인왕후는 죽은 뒤 붙는 시호다. 이처럼 여러 번의 존호와 시호를 받은 철인왕후의 이름을 모두 적으면 ‘명순휘성정원수령경헌장목철인왕후’가 된다. 그러니 이 내용을 모두 어보에 적어야 하니 어보는 국새와 달리 글자 수가 많아지게 된다. 가장 많은 글자가 적힌 문조의 어보 왕도 존호를 받는데 왕비가 한 번에 2글자의 존호를 받는 것과 달리 8글자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존호가 길어지게 된다. 조선의 어보 가운데 가장 글자가 많은 것은 문조로 추존된 효명세자다. 고종의 족보상 아버지가 되는데, 그래서인지 무려 12번이나 존호를 올렸다. 실제로 문조(효명세자) 어보에 116글자가 적혀 있다. 왕비의 어보 가운데 가장 많은 글자가 새겨진 것도 역시 효명세자의 부인이며 당시 고종을 왕으로 즉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정왕후로 62자에 이른다. 도장을 새기는 일도, 도장을 찍은 내용을 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처럼 국새와 어보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국새는 평소 쓰기 때문에 왕이 자주 보는 편이었을 것이다. 보관도 도승지의 책임 아래 상서원(도장을 책임지는 관청)에서 제작하거나 관리했다. 그런데 어보는 일종의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평소에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고 이들은 모두 왕의 죽음과 함께 종묘에 보관한다. 종묘 정전의 19개의 각 신실을 보면 가운데 신주장을 두어 왕과 왕비의 위패를 보관하는데, 그 왼쪽에 보장을 둬 거기에 어보를 보관한다. 오른쪽에 있는 책장에는 어보를 제작하게 된 경위를 대나무나 옥에 새긴 죽책이나 옥책을 보관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보와 죽책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나라와 왕을 상징하던 국새와 어보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모두 일본의 관리로 넘어가게 됐다. 다행스러운 건, 일본의 패망으로 미 군정청이 이를 모두 환수해서 다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 국새와 어보가 한국전쟁을 겪으며 일부가 사라지게 됐다. 미군이 기념품으로 가져간 것도 있으며 도난된 것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에 어보 환수 소식이 종종 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문화재와 달리 국새, 어보는 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재라는 점에서 도난이나 약탈 여부와 관계없이 환수돼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혹시 외국에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불법이 되는 셈이다. 일제 잔재인 도장 문화 ‘인감’ 국새, 어보와 관련해서 요즘 우리 시대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감이 아닐까. 국가나 개인의 증명을 도장으로 한 셈이니 민간에서도 도장 문화로 인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감은 일제의 잔재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도입한 제도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인감 제도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 외 일본, 대만에만 있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감 제도는 광범위하게 각종 증명에 쓰이고 있다. 인감증명서는 한 해 평균 4000만여 통이 발급되고 있고, 이에 따라 인감증명서의 발급 비용만 약 3000억여 원에 이르며 여기에 전담 공무원만 전국적으로 4000명이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감제도를 대신할, 효율성이 높은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10여 년 전에 도입한 ‘본인사실확인제도’가 인감 제도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감 도장 대신 서명을 활용하는 증명서다. 인감증명서와 달리 본인만 직접 확인서를 뗄 수 있다. 그렇다고 도장과 도장 문화를 아예 없애자고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예전 선비들은 도장을 새겨 문서나 그림에 장식으로 찍기도 했다. 그런 사례를 참고해 공예품처럼 도장을 만들어 자신을 기념하는 것으로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행정제도가 아닌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어보와 국새를 만날 수 있는 곳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문화와 관련 된 유물을 보존‧연구하고 전시하는 조선왕실 전문 박물관입니다. 현재 경복궁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경복궁과 함께 관람하기 좋습니다. - 관람시간: 오전10시-오후6시(연중무휴, 설추명절당일만 휴무) - 관람요금: 무료 - 유의사항: 코로나19 방역조치 시행에 따라 사전관람예약제를 실시 - 예약하기: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www.gogung.go.kr/main.do
[김홍겸 경기 안산광덕고·정동완 경남 김해고 교사] 지난해 1월 시작된 코로나 위기는 사회에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며 많은 상점은 문을 닫았다. 정부에서는 사회적인 거리 두기를 강조하며 많은 부분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생활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교육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는 예정된 개학을 미루고 4월 중순이 돼서야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코로나로 촉발된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활해왔던 학교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다.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수업이 온라인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것,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전국 학교에서 4월 중순부터 온라인 수업이 시행됐다. 이후 많은 교사들이 온라인에서 학생들을 지도했고 학생들 역시 온라인 수업을 통해 여러 학교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교사들은 대세에 뒤처지지 않게 여러 연수를 통해서 자기개발을 하고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수업이라는 과제를 놓고 고군분투했다. 온라인 수업 외에 학교라는 공간의 개념, 학교에서 하는 수업 활동에 대한 고민들도 함께 시작됐다. 달리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학교에 대해서 고민했던 여러 가지 사항들이 코로나19라는 촉매제를 통해 한꺼번에 발현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곳에서 교육을 돌아보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러한 담론은 현재 코로나19 상황을 ‘버티는’ 것에서 벗어나 이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 ‘발전하고자’ 하는 쪽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이에 대한 고민과 국소적인 담론은 ‘과연 현재 우리의 학교는 어떠한 모습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현재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업과 활동, 그리고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은 어떠한 모습인가? 학생들이 생활하기에 좋은 공간인가?’,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갈 사회는 과연 바람직한 모습일까?’와 같은 세부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학교는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다’였다. 수업에서 조금 더 좋은 방법으로 함께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조금 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학교의 공간을 학생들이, 그리고 선생님들이 생각하기에 조금 더 편리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기획 ‘이상한(strange) 학교, 이상한(ideal) 학교’에서는 현재 학교에서 느끼고 있는 불편한 점, 아쉬운 점을 바탕으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가 지향하는 학교의 모습을 실천하고 있는 ‘선구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생각을 담아 이상한 학교를 제안한다. ‘이상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교사와 학생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Ideal)’ 학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일상적인 학교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한(Strange) 학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의미가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보기에는 이상한 학교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상적인 지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학교의 수업, 평가, 공간, 구성원, 교육과정 등이 잘 어우러진 학교를 생각해보며 이상적으로 꿈꾸는 학교가 아닌 우리의 현실 속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