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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윤종배(서울 가락중 교사) 극화학습, 할 만한가요? 필자는 해마다 학년말에 설문조사를 한다. 그런데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은?’의 대답은 극화학습으로 했던 수업이다. 최근에 교사들의 자주적인 연구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에 발표된 수업사례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극화학습을 원용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극화학습이 학생이나 교사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는 뜻인데, 무엇이 가장 큰 매력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직접 내용을 구성하고 발표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실 수업이 강의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가끔 멀티미디어 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곁들여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상대적으로 극화학습의 체험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열린교육에서 7차 교육과정의 기본 정신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창의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추세와 맞물려 극화학습의 가능성과 현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극화학습의 가장 큰 교육적 효용성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각기 맡은 배역에 따른 연기를 통해 수업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극중의 역사적 인물과, 다른 학생들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 분노 및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또 학생들이 익숙한 주제이거나 호기심이 가는 상황을 설정하면 학습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한편으로 기초 사료가 학생들에게 주어져야 대본을 구성할 수 있으므로 사료 학습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며, 나름대로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고력(상상적 이해, 사실에 대한 추체험)이 가능하므로 수업내용의 가치와 의미를 내면화하게 된다. 나아가 대본 제작, 연습과정에서 민주적 토론을 거치면서 협동심을 높이는 파급효과를 지닌다. 극화학습, 엄두가 안나요! 극화학습이 결코 간단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스토리 구성을 할 수 있고, 적절한 대사를 쓸 수 있으며, 상황에 걸맞게 인물과 사건이 잘 어우러져야 명확하게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초 학습의 과정, 자체 논의의 과정, 실제 연습의 과정 등 3단계는 거쳐야 한다. 이처럼 덩치가 큰 극화학습을 매 시간 한다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극화학습의 종합적인 성격상 단원 마무리에 실시하면 가장 무난하다. 미리 연간계획을 세워서 언제쯤 극화학습을 실시할 것인지 시간을 확보해두고, 적어도 한 달 전에는 학생들에게 예고를 해주고 그에 따른 과제도 제시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적어도 3시간 정도는 진도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대략 한 달간 배운 학습 내용을 다시금 정리하는 시간, 그것을 가지고 극으로 구성하는 시간, 발표하는 시간 정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PAGE BREAK]이 가운데 연습 시간은 잡혀 있지 않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어있는 수업시간에 연습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대목에서 교사들은 힘들어서 망설이게 되는데, 방과후나 쉬는 시간에 따로 학생들을 불러 연습한 것을 점검해 주어야 한다.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 실연(實演)을 하면 수업이 엉망이 되기 일쑤이다. 자주 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몇 번 하는 것이니만큼 제대로 된 극화학습을 위해서 교사가 약간의 수고는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매끄러운 강의를 듣고 시험의 끝나면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약간 엉성하더라도 교사와 학생이 함께 씨름을 해서 뭔가 만들어 낸 것이 훨씬 오래 마음에 남을 터이다.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한두 번의 실패는 있겠지만, 금세 교사도 학생도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된다. 같은 학생이라도 1학기보다 2학기는 훨씬 준비가 수월하고 내용도 괜찮아지는 법이다. 극화학습, 어떻게 할까요? 극화학습에 관계된 논의를 적은 지면에 다 보여드릴 수 없어서 참고할 만한 형식과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온 극화학습 형식으로는 모의재판, 역사 뉴스, 모의선거유세, 모의 국회, 영상극, 노래극, 마당극 등이 있다. 그리고 극화의 소재가 되었던 단원은 역사적 갈등이 깊어지는 전환기, 왕조 교체기가 많았다. 삼국통일, 후삼국 시기, 나말여초, 양란, 세도정치 시기, 개항기, 무단통치기, 박정희 정부 시기 등이다. 모쪼록 극화학습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때로는 낄낄거리고, 때로는 뭉클한 느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경훈(강원 원주 대성고 교사) 재미있는 역사수업을 위한 글쓰기 수업 역사 선생님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과연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역사수업을 할 수 있을까?”이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수업이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수업에 재미가 없다면 교사가 아무리 교재연구를 열심히 해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와 닿지 못한다. 90년대 후반부터 교육은 다양하고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가는 추세이고 대부분의 교사들도 이런 변화에 공감을 하고 있다. 수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칠판과 분필을 넘어서서 다양한 수업방법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제기된 수업방법 중 하나가 역사 글쓰기 수업이었다. 글쓰기 수업은 주어진 자료나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글을 쓰는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며, 아이디어를 조직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직관, 창의력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수업을 하는데 유용한 수업방법이다. ‘글쓰기’라고 하면 아이들은 일단 따분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수업은 아이들을 그 시대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 그 시대의 인물이 되어 보게도 하고 스스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게 하는데 효과적인 수업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의 교육적 의미와 사례 역사 글쓰기 수업은 먼저 주어진 자료, 또는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현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감정이입)를 거두어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역사 글쓰기 수업은 첫째, 역사를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고, 둘째, 학생 스스로 역사적 행위를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의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셋째, 역사적 사실을 전달받는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넷째로는 강의식 수업이나 교사주도의 수업에서 소외되는 소극적인 학생들을 수업의 주체로 끌어들여 수업에 교실 구성원 모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역사 글쓰기 수업은 처음에는 교사가 제시한 자료와 학생의 과제수행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현재에 와서는 많은 기자재를 통해 자료를 제시하고 아이들과 함께 역사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업방법으로는 일기쓰기·자서전쓰기·편지쓰기와 같은 체험글쓰기, 답사보고서·가상여행계획서와 같은 보고서 쓰기, 시무책 작성·역사재판 판결문·선거유세문과 같은 주장문 쓰기, 역사신문 만들기, 관광안내용 팜플렛 만들기 등이 있다. [PAGE BREAK]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 역사수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효율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의 흥미나 능력을 파악하고 이해도에 따라 수업활동의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수업은 위와 같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글쓰기 수업을 하려면 먼저 교사에게 평소보다 몇 배의 교재연구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은 유사한 조건을 갖추어도 여러 가지 행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평소의 관점이나 사상, 성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여 제시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잘 맞추어서 교사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자료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수업받는 학생의 수준을 넘어서거나 만족시키지 못하여 오히려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 전 사전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일기쓰기나 신문 편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전에 충분히 자료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양질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학생들의 참여도 또한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적은 수업 분량에 비해 수업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참고로 모둠수업을 할 때 성격이 소극적인 학생은 소외되기 십상이고,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둠 학습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교사는 모둠학습을 할 때 항상 주의깊게 학생을 관찰하고 학습의 진행상황을 체크해야 하며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 밖에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수업을 좀더 재미있고 발전적으로 하기 위해 몇 가지 점이 반드시 따라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학생들이 수업준비를 하기 위한 자료를 다양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사회의 도서관 확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편집해서 전시하고, 책자로 만들어 모아둔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해가 바뀌어도 글쓰기 수업의 경험을 발전시켜서 좀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학교의 지원(책자 편집을 위한 예산편성, 교과실 마련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교과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학생과의 연계는 수업을 충실하고, 밀도있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글쓰기 과정이나 발표장면을 캠코더나 사진기로 촬영하여 해마다 기록물로 남겨놓는다면 생생한 자료 구실을 할 수 있다. 즐거운 수업시간을 만들기 위해 역사 글쓰기 수업은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다 생생하고 의미있게 가르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다. 앞서 말했지만 글쓰기 수업은 교사의 성실한 교재연구와 자료준비가 필수적이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수업방법이다. 역사 글쓰기 수업은 역사적 사실을 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시대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현재와의 연관성도 생각하게 해준다. 또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안을 찾도록 도와주는 수업방법이라는 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수업방법이라고 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충분한 자료준비와 사례를 살펴보고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한두 가지 사례를 그대로 따라해 보면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수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조금씩 고쳐 나가면 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수업으로 1년을 꾸려갈 수도 없다. 욕심을 버리고 일년에 한두 번 한다고 생각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김재일(두레생태기행 회장) 모래땅이기에 식물 살아남기 어려워 신두리 해안은 황촌 양쟁이에서 방파제까지 4㎞ 남짓하다.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밭은 폭이 무려 500m에서 1㎞에 이른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어 어디까지가 바다이며 뭍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나마 사구에는 숲이 그득하여 어디까지가 사구이며 산인지도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다. 사구지역까지 포함하면 모래밭 면적은 60여만 평을 넘는다. 모래밭 뒤쪽으로는 해송 숲이 그득한 사구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모래밭과 모래언덕 사이를 비포장 바닷길이 운치 좋게 나있다. 사초 군락이 잔디처럼 깔린 모래벌에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사구에는 해안사구와 내륙사구 두 종류가 있다. 중동이나 몽골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륙사구이며 우리 나라 사구는 모두 해안에 위치해 있다. 태안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구를 지닌 지역이다. 그 중 신두리 사구가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사구들이 끝없이 이어진 사구열이 멋지다. 사구는 바닷가라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선 모래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것도 바람에 잘 날리는 미사(微砂)라야 한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모래를 실어 올리는 파도가 있어야 하고 그 모래를 다시 이동시킬 수 있는 강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모래는 강한 북서풍이 운반해준다. 태안 바닷가는 옛날부터 눈뜨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모래바람이 유명했다고 한다. 신두리 사구에서 볼 꺼리는 단연 샌드험목(Sand Hummock)이다. 샌드험목이란 사구 위에 풀이 자라고 그 위에 다시 모래가 덮이고 거기에 다시 풀이 자라 덮이고 하는 활동이 반복되어온 지형을 말한다. 샌드험목은 모래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멀리서는 사구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사구는 토양이 척박하고 수분을 머금지 못하는 모래땅이기 때문에 식물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수분이 없기 때문에 씨앗을 떨구어도 싹이 쉽게 트지 않고 어쩌다 용케 비를 만나 싹이 텄다 해도 계속 자라기가 어렵다. 그나마 모래바람에 시달리다가 모래에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이러한 악조건 때문에 일단 훼손되면 원상태로 복원되기가 무척 어렵다. 사구의 식물들은 서로 군락을 이루어야 살아남는다. 악조건에서도 견디는 식물들의 지혜 모래에 묻혀 죽은 것은 살아남은 종들의 거름이 되고 지하에서 수분을 저장해주는 역할도 한다. 샌드험목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내륙의 식물들보다 비교적 뿌리가 깊고 넓게 발달되어 있다. 그래야 바람에 쉽게 뽑히지 않고 건조하고 척박한 모래밭에서도 영양분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구의 식물들은 대체적으로 몸집이 작다. 갯메꽃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키다리 소리를 듣는 달맞이꽃도 키를 절반이나 낮추었다. 해당화도 몸을 반쯤이나 모래 속에 묻었다. 거센 모래바람과 척박한 지질 앞에 스스로 욕망을 비운 것이다. 식물만큼 지혜로운 것도 없다. 팔은 햇볕 많은 쪽으로 내밀고 발뿌리는 물기가 많은 쪽으로 뻗는다. 또 땅 속에서 바위를 만나면 그것을 타 넘어갈 줄 알고 추우면 잎을 떨굴 줄을 알고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우주의 질서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와 인내는 인간보다 더 하다. 사구의 식물로는 통보리사초, 밀사초, 갯그령, 왕잔디, 모래지치, 갯완두, 갯방풍, 갯금불초, 갯쇠보리 등 주로 여러해살이풀이 많다. 목본류로는 순비기나무, 해당화, 해송 등이 자란다. 신두리 사구에는 통보리사초, 갯메꽃, 갯방풍, 갯지치, 갯장구채, 솔장다리, 더위지기, 갯쇠보리 등이 상대적으로 많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질경이, 망초, 환삼덩굴, 달맞이꽃, 갯쑥부쟁이, 자리공 등의 귀화식물도 이곳에서는 맥을 못 추고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다. 이곳 사람들은 통보리사초를 '삐비'라고 부른다. 같은 과의 보리사초는 주로 산지에 살고 통보리사초와 좀보리사초는 바닷가 모래밭에 군락을 이루며 산다. 단단한 목질의 뿌리는 땅속으로 넓게 뻗고 길게 휘어진 잎은 뿌리에서 난다. 잎의 가장자리는 톱날처럼 날카롭다. 열매는 마치 보리나 밀처럼 생겨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다. 통보리사초는 모래의 이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깊이 박는다. 어떤 것은 거의 1m까지 깊이 박혀있다. 샌드험목 주위로 해송 숲이 그득하다. 이 해송 숲은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썩 좋은 방풍방사림이다. 이 해송 숲이 있기에 사구 너머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PAGE BREAK]왕쇠똥구리는 꼭 만나고 가야할 곤충 식물의 종들이 단순한 만큼 이곳에 서식하는 곤충의 종들도 단순하다. 기껏해야 메뚜기과와 나비과에 속하는 몇 종에 불과하다. 그걸 노려서 도마뱀들이 이따금 샌드험목을 어슬렁거린다. 아직 겨울잠을 자기에는 이르고 해서 슬슬 기어나와 힘 빠진 곤충들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꼭 만나고 가야하는 곤충 친구가 있다. 바로 왕쇠똥구리다. 쇠똥구리라는 이름 그대로 쇠똥을 먹고산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경단처럼 뭉쳐 모으는 것은 집으로 운반해가기 쉽고 또한 갈무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쇠똥구리는 모래 속에다 깊이 20㎝ 가량의 구멍을 파놓고 그 안에서 생애의 절반을 산다. 그 안에서 짝을 짓고 알을 낳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온다. 쇠똥도 그 안에다 저장해놓고 먹는다. 왕쇠똥구리는 쇠똥구리와 달리 경단 같은 쇠똥 안에다 구멍을 파고 산란을 한다. 지열을 받아 부화된 새끼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쇠똥벽을 갉아먹으면서 자란다. 예전에 이 모래풀밭에는 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를 기르는 집이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해수욕장 유흥업소에서 소를 사구에 풀어 먹이지 못하도록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최근 들어 왕쇠똥구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왕쇠똥구리는 사람 똥은 먹지 않는다. 정말 더러워서(?) 먹질 않는다. 그 속에 온갖 방부제와 항생제와 오염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을 왕쇠똥구리도 알 것이다. 그 밖에도 모래 속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다. 길앞잡이 애벌레와 애명주잠자리 애벌레도 모래 속에서 반생을 지낸다. 개미귀신도 모래 속에다 함정을 만들어놓고 숨어 있다가 함정에 빠진 곤충들을 귀신처럼 잡아먹는다. 드넓은 초원 곳곳에 진주 같은 습지가 숨어있고 그 습지 가장자리로 백로들이 화려하게 날아들고 있다. 태안반도는 어딜 가나 새들이 많다. 신두리에도 사구와 인접한 숲에 박새, 까치, 직박구리, 굴뚝새, 딱따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같은 텃새들이 살고 있다. 여름이면 종달새, 청호반새, 동박새, 후투티, 제비, 귀제비, 휘파람새, 호랑지빠귀, 물총새, 유리새, 꼬마물떼새 등이 쉽사리 관찰된다. 개발바람 타고 풍전등화 운명에 놓여 새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총총 나 있다. 바닷가 모래밭을 주무대로 하는 중부리도요도 가끔 모래언덕으로 올라와 사냥을 한다. 신기한 것은 신두리 사구에 멧토끼와 족제비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구를 넘어 샌드험목지대와 습지를 잇는 발자국들이 바람이 만들어놓은 물결모양의 바람모래밭에 뚜렷이 남아있다. 그런가하면 똥도 여기저기 앙큼하게 싸놓았다. 산으로 이어진 곳에는 노루 발자국까지 나 있다. 누룩뱀과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신두리 사구에 기대어 사는 식솔들이다. 표범장지뱀은 모래 속에 은신해 있다가 곤충이 지나가면 잽싸게 공격해서 낚아챈다. 사구의 배후에 습지가 몇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가 잦은 여름철에만 물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늪지도 있지만 일년 내내 물이 고여 있는 늪지도 남아있다. 습지 주위로 갈대, 물억새, 갯버들과 같은 습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물속에는 물자라, 물장군, 왕잠자리 애벌레, 달팽이 등을 비롯하여 몇 종의 물고기들도 어울려 살고 있다. 이따금 백로, 황로, 왜가리, 농병아리, 흰뺨검둥오리도 날아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습지에 와서는 금개구리를 꼭 만나고 가야한다. 금개구리는 초록색 등짝에 두 줄의 굵은 황금색 줄이 있다. 금개구리는 환경부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희귀종이다. 암수 구별은 배의 색깔로 알아내는데 유난히 노란 녀석이 암컷이다. 맹꽁이는 이 습지에다 산란한 후 금개구리와는 달리 산이나 모래언덕 풀밭으로 사라진다. 그나저나 이 광활하고 신비한 사구도 개발 바람에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여 있다. 신두리 사구는 원래 마을 공동소유였으나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개인 소유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 있던 군사시설들이 다른 데로 옮겨가자 사구의 새 주인들은 온통 모래뿐인 언덕에다 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고 농림지와 준농림지로 바꾸었다. 이미 상당한 면적은 부동산에 눈 밝은 기업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환경단체들이 사구의 개발을 반대하고 나서자 일부에서는 생태계보전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임전무퇴를 외쳤다. 다행히 환경부가 보전지구로 지정하는 바람에 싸움은 수그러들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귀한 손님" 등·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교감 선생님이 있다. 서울 성원초등학교 홍진복(洪鎭福) 교감. 2000년 9월 성원초에 부임한 홍 교감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귀한 초대손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잘대며 웃는 모습으로 교문을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홍 교감은 "오랫동안 하다보니 이제는 36학급 아이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표정만 봐도 그들의 기분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얼굴이 밝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손을 잡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오늘 즐겁게 하루를 보내자'는 등의 격려로 금세 표정을 바꾸어 놓는다. 아이들을 초대손님으로 생각하는 홍 교감은 교문에서 인사하는 것 말고도 초대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홍 교감은 급식 시간이면 항상 아이들을 둘러본다.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하는지 살피고 식탁에 물기나 오물이 묻어 있으면 직접 닦아준다. 물론 '편식하면 균형적인 성장에 좋지 않으니 골고루 먹어야 한다' '음식을 입에 넣고 큰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등 기본적인 식사예절을 일러주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홍 교감은 또 매주 토요일 방송시간을 활용,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재미있고 사실적인 훈화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린다. 효, 양보, 질서 등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초등교육은 사랑으로, 중등교육은 훈화로, 대학교육은 지식으로 해야한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홍 교감은 "교감이라는 자리는 아이들의 수업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스스로 모범을 보여 교사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것이 그의 '교감관(觀)'이기도 하다. 초대손님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학교는 즐거워진다. 어린이들이 학교 가는 일을 즐거워하면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고, 학부모들의 신뢰는 교사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난다. 홍 교감은 '행복한 학교'라는 노랫말도 지었다. "새들이 노래하고/ 고기 춤추는/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 아이들은 달리며/ 노래 부른다/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된다/ 우린 여기서/ 사랑을 배우는 거야/ 더 큰 삶을 찾아서/ 얘들아 함께 가는 거야/ 손 내밀어봐/ 내가 붙잡아줄게/ 엄마가 있잖아/ 용기를 내어봐/ 노래를 불러봐/ 반듯이 하늘은 내편이 되는 거야…" 홍 교감은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 곧 CD로 낼 생각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홍 교감은 올 입학식에서 삐에로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갓 입학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밤새 직접 울긋불긋한 천을 붙이고 바느질을 해 옷과 모자를 만들고 화장을 했다. 사탕목걸이도 만들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서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들었다. 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어하는 홍 교감은 요즘 마술(魔術)을 배우고 있다. 실력이 쌓이면 아이들 앞에서 공연도 해 볼 계획이다. 홍 교감은 "교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생활이 즐거웠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며 "귀한 손님에게 융숭한 접대를 하듯 모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대접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이낙진 기자 leenj@kfta.or.kr
김병하(대구대 특수교육학부 교수) “함께 살아도 될까요?” 이것은 세상의 모든 차별 철폐를 염원하는 2002년 질라라비 장애인 야간학교(대구)의 문화체험 캠페인 표제이다. 문화를 왜 체험해요? 영화 보고 싶을 때 영화보고, 운동장에 가고 싶을 때 운동장에 가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에 가고, 밥 먹고 싶을 때 음식점에 들어가면 되지.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이 극장에도, 운동장에도, 해변에도, 음식점에도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를 함께 살면서도 세상살이에 늘 주눅들거나 기죽어 있고, 삶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 우리네 장애인들 삶의 현실이다. 최근 서울 지하철 1∼8호선 전체 263개 역의 환승·승강 편의시설을 조사해 본 결과에 의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 71%인 186곳, 엘리베이터·리프트 모두가 없는 역도 무려 41%(109곳)로 밝혀졌다. 결국 지난 5월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 1번 출구에서 리프트에서 내리다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가 리프트 뒤쪽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62) 씨는 한 많은 삶을 그렇게 마감해야 했다. 이제 장애인들은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절규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들은 “월드컵 4강 대∼한민국 장애인의 인권은 없다”라고 적힌 피킷을 들고 국가인권위 사무실을 점거해 단식농성을 했다. ’88년 장애인 올림픽을 치르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네 현실이 이렇다. 교육부는 1995학년도부터 대학입학전형에 장애학생 특례입학제도를 도입한 이후, 현재 전국적으로 약 1천여 명 이상의 장애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대학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한 특혜받은(?) 선택된 장애학생들이랄 수 있다. 하지만 통합교육은 말로만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실현할 적절한 지원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서울지법 민사부는 서울의 S대학에 대해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며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지체장애 1급인 박모 씨에게 “학교는 25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승소금의 액수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준엄하다. 박씨가 재학하는 대학 관계자 가운데는 “돈 몇 푼 벌려고 학교명예를 떨어뜨리지 말라”고 면박했는가 하면, 동료학생들조차도 “장애를 팔아먹지 말라”는 인신공격까지 해댔다고 한다. 이처럼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지지 않는 한 ‘장애’에 의한 ‘소외’로서의 폭력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 땅의 장애인들이 기죽은 상태에서 “함께 살아도 될까요?” 라며 조심스레 발을 내밀 때,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집에나 있지 무엇 하러 나왔어요?”라는 눈초리로 지켜보는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접근권 보장이니 통합교육이니 하는 것은 기만이다. 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학교와 사회는 비장애인들 모두를 위해 품위있는 학교이자 사회이다. 따지고 보면, ‘장애’는 개인의 병리문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우리 사회가 구성해 낸 사회적 병리문제이다. 장애인이동권 연대대표로 앞장서 일하는 박경석 씨(노들장애인 야학교장)는 장애인의 이동권 쟁취를 위해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토설한다.[PAGE BREAK] (장애인에게) 교육, 노동,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차별로 나타난다. 이동권이 먼저다. 더 중요하다는게 아니라 이동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대중교통은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고 우리(장애인)도 누구나처럼 그래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저상버스(버스출입구 턱이 낮아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탈 수 있는 버스)에 타려면 5분 정도 걸린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몸이 비틀어져도 외계인처럼 보이지 않고, 친구나 이웃으로 보이게 된다(한겨레가 만난 사람, 2002. 8. 13). 박경석 대표가 애타게 갈구하는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은 우리 모두와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의 본래 모습이다. 또한, 그게 우리가 소망하는 교육이상세계(edutopia)의 본래 모습이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위한 과정적 노력이 좀더 구체적이고,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 장애학생과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를 기필코 구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이 바로 선다.
김대호(서울 미림여고 교사) 얼마 전 아름다운 경관으로 알려진 일본 북해도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은 아직도 마그마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태고의 모습이 잘 보존된 자연 경관도 볼만하였지만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식 주택 등을 통해 일본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사라진 북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생활양식과 풍속이 2세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시라오이(白老)'라는 마을에 만들어진 아이누족 민속촌에서 남녀노소가 어울려 옛 풍속을 재현하는 모습에서 고유 민속문화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흙 속의 진주처럼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고유 민속문화의 현실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민속문화는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어느 곳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터전이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등 다양하여 그 문화의 유형도 각양각색이며 또한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대륙문화와 해양문화를 절충하여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반도라는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24 절후(節侯)에 맞추어 행해지는 주기전승의 세시풍속, 별신 탈놀이나 놋다리밟기와 같은 집단 놀이로서의 민속 예능, 어느 곳에나 산재해 있는 신화·전설·설화 등 민족의 얼이 담긴 이야기들, 민중의 공명공감 의식에서 싹튼 풍부하고 다양한 민요, 예의 범절을 기반으로 성립된 관혼상제, 그리고 길흉화복이 하늘의 뜻이라고 인식하여 하늘을 섬기던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보고(寶庫)처럼 쌓여 있다. 이러한 민족 문화유산이 실제 생활에서 활발히 전개되다가 일제의 핍박을 받으면서 그 명맥이 단절되기도 하였으나 이 분야에 관심을 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굴·수집·정리되어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독자성을 지닌 민속문화가 일반화되지 못한 채 관심 있는 일부 계층의 연구와 학문의 대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속이란 민중의 생활로 민중이 속해 있는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가운데 신앙과 지혜로 엮어낸 생활풍속을 말한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가 민중은 물론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도 외면 당한 채 사장되고 만다면 그 안타까움의 정도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민족의 정통성과 고유성과는 무관한 외래문화 섭취와 동화에 익숙한 오늘의 청소년을 보며 어떻게 민족의 주체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에게 민족혼의 뿌리가 서려 있는 다양한 민속문화를 접하게 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게 한다면 교육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추된 여러 여건들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민속자료 발굴과 수집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을 학급 단위로 축소하여 일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교사의 지도 아래 민속 대상자료를 직접 수집·정리하는 기회를 준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각 가정은 가정마다 조상 전래의 습속이 있듯이 마을은 마을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전래·전승·보존되고 있는 민속들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민속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경험은 우리 민속문화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고 민족혼의 뿌리를 터득하게 함과 동시에 한국의 기층문화 이해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믿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민속학과나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속을 놀이문화로서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민속문화의 내용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문화로서의 민속과 놀이문화로서의 민속을 구분하고 체계화하여 초등학교에서부터 고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필요한 문헌을 편찬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교과과정의 신설도 고려했으면 한다. 이것은 대학의 민속학과나 인류학과에 연계된 학습으로 이어지며 나아가서는 정신문화 계승 차원에서 한국 민족의 정신과 민족혼을 환기하고 전통문화 수립이라는 큰 목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지구촌이라 부르는 이 시대에 모든 문화는 점점 그 특성을 잃고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민족의 고유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려되는 것은 경제·문화의 강국이라 일컫는 민족의 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를 흡수할 소지가 있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소위 약소 민족의 문화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체험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우리 민족문화의 총체적 모습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며 실추되어 가는 도덕문화를 회복할 수도 있고 내 문화를 알고 남의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문화수용의 지혜도 터득될 것으로 확신한다. 민속문화의 체계적인 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제부터라도 학교에서 민속문화에 대한 교육이 시작돼야 한다.
박춘길 /경기 의정부 신곡중 교장 내 고종사촌 누나 하나가 성북동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다. 전문적이고 고급스런 그런 의복 가게가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잡다하게 여기 저기 걸려 있는 그런 가게였다. 누나라고 하지만 두 살 위의 같은 또래로써 함께 장난치며 자랐기 때문에, 심심해서 잡담이나 늘어놓고 싶을 땐 그 가게에 놀러가곤 했다. 나는 일단 그 누나와 함께 있기만 하면 내 친 누나보다도 더 포근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친누나는 이러 저런 잔소리를 하며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만 취급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약간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이 누나만큼은 나의 진한 농담도 흉금 없이 잘 받아 넘겼으므로 마음이 가벼워 좋았다. 그런데 그 가게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누나의 쾌활한 성품에 알맞게 운영되는 그 옷가게에 가면 우선 돈을 안 들이고서도 이런저런 의상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한 옷에 따라 사람들의 개성이 묘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선 옷가지들만 살펴보아도 모두 특색이 있었다. 색채는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 또한 가지각색이어서 옷 자체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재능 또한 갖가지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런 옷은 누가 입을까? 저런 옷을 찾는 사람도 있을까? 저 옷은 색채에 비해 너무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나? 저 옷은 질감에 비해 너무 단순해서 보 잘 것이 없는데…"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옷이 아무리 다양해도 다 임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었다. 옷을 사기 위해 옷가게에 들른 사람들은 우선 자기의 독특한 취향에 따라 굳은 표정으로 의복 고르기에 심취되고 자신만이 내릴 수 있는 최적의 평가로 제 몸과 개성에 어울리는 의복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가 낙점이 될 만한 옷이 있으면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고 또는 거울에 비춰보고 의복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는 것에 흥미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겉모습만큼이나 개성 또한 가지각색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걸려 있는 옷들 중에는 아무리 봐도 희한한 옷이 한 벌 있었다. 그 옷은 색상 자체가 요란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 또한 여느 옷과는 매우 다른 면모가 있었다. 사실 옷이란 디자인이 좀 다르더라도 기본적으로 호주머니나 깃, 단추 등은 각자 정해진 위치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 옷은 우선 그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부터 거부하고 있었다. 어쩌면 있어야 할 곳을 일부러 피했다고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선 앞부분에 있는 깃이 뒤에도 똑같이 붙어 있어서 옷을 보면 어디가 앞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또 양팔에 호주머니가 붙어 있는가 하면 양어깨의 견장은 짝짝이로 붙어 있었다. 더구나 옷의 색채 또한 부분마다 달라서 혼란스럽다 못해 그 옷을 보면 마음이 뒤틀려 안정이 되지 않았다. 상점에 들른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또한 진열된 옷을 따라 한바퀴 휙 둘러보다가도 그 옷 앞에 이르렀을 때는 신기한 듯 한참동안이나 그 옷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때였다. 새침한 표정으로 상큼하게 들어온 아가씨 하나가 다른 사람들처럼 옷을 따라 죽 돌다가 그 옷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 여느 사람들처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옷을 만지작만지작하더니 아무 말 없이 휭 나가버렸다. 그 때였다. 그 아가씨의 모습을 대변이라도 하듯 고종사촌 누나는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분명히 저 옷은 누군가에게 제일 좋은 옷으로 팔릴 거야…. 그런데 저 아가씨가 마음에 두는 것 같구먼" 그 때 나는 누이를 빠끔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그 아가씨가 옷에 대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 "옷 장사를 하다보면 잡히는 '감'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 내가 묻는 말에 누나는 자신의 감이 틀림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감이고 나발이고 그 상큼한 아가씨가 그 옷을 살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옷에 대한 생각은 내 머리 속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고 우리들의 화재 또한 잡담으로 이어져 그 날 저녁은 그렇게 보냈다. 그러던 중 며칠이 지나가고 어느 비오는 날 저녁이었다. 나는 출출한 참에 소주 한잔이 생각이 났다. 술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TV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본다거나 비오는 날이 되면 한 잔 하고픈 충동이 가끔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너무 청승맞아 싫었다. 그래서 내 머리 속은 이미 덤불에서 바늘이라도 찾듯 이 사람 저 사람 술친구가 될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사람은 만나려면 시간이 너무 늦었고 이 사람은 간단한 소주를 마시기에는 너무 벅차고 이 사람은 집에 없을 게고…" 그러다 보니 또 다시 고종사촌 누나에게 생각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가게문도 닫을 시간이고 또 한 잔 하면서 그 동안의 동향도 들을 겸 이 시간에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고종사촌 누나말고 누가 있으랴! 당장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주 한 잔 얘기에 누나의 낭랑한 목소리는 이미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나는 단 숨에 누나 옷가게로 향했다. 내가 옷가게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나는 밖에 걸어두었던 옷가지들을 이미 안으로 들여놓은 상태였다. 누나는 장사가 잘 되었을 때면 으레 흥얼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웬 일이야. 술타령을 다 하게"[PAGE BREAK] 그렇게 말은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누나가 더 빨리 가고픈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나의 손놀림을 보고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누나가 마지막으로 돈 괘를 정리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확 열리더니 어떤 아가씨가 쑥 들어왔다. 그 아가씨는 걸려 있는 다른 옷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 괴상한 옷 앞에 가서 우뚝 섰다. 그리고는 한 숨을 푹 내쉬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어이구 이 옷 팔릴까 봐 마음 고생 꽤 했네" 그 상큼한 아가씨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이었다. "아줌마 이 옷 얼마지요?" 그 아가씨는 옷값만 말하면 돈이야 얼마든지 주려는 듯 너무 급하게 묻는 바람에 오히려 주인 쪽에서 금액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누나는 야릇한 감정을 교차시키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십오만 오천원이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 아가씨는 비싸다 싸다 말도 하지 않은 채 걸려 있던 옷을 자기 몸에 척 걸치고 거울을 향해 이리 저리 몸을 재보고 있었다. 그리고 홱 돌아섰다. 아가씨의 얼굴에는 장미꽃이 이슬을 머금은 듯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 아가씨는 낯이 많이 익어 있었다. "저 아가씨를 어디서 만났지…. 어디서 본 듯한 아가씬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순간 섬광처럼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 전 저녁 때 이 가게에 들려 그 옷을 관심 있게 보고 갔던 그 아가씨임에 틀림없었다. 그 때 새침한 아가씨의 모습과 지금의 활짝 핀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아가씨의 지갑은 이미 열려져 있었고 불려진 옷값이 일시에 튀어나왔다. 동시에 아가씨의 비죽거린 입술이 떨렸다. "자기는 양복이 몇 벌인데 내가 옷 한 벌 산다면 쌍 눈을 켜고 노려봐. 내 참 기가 막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허공에 대고 하는 여인의 불평이었다. 드디어 그 아가씨가 신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갔을 때였다. 나는 신비스런 생각에 젖었다. "야참! 그 괴상한 옷을 정말 사가는 사람이 있네. 옷이 날개라더니 그런 날개를 다는 사람도 있구먼. 의복은 바로 그 사람 자체야" 모를 일 이였다. 여하튼 그 일로 인하여 술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 때 나는 고조된 감정을 누르며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은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어이구 남자들은 다 이렇게 무뎌. 자기 남편이지 누구긴 누기여?" "아니 그럼 그 여자가 결혼을 한 아줌마야?" "그럼, 요즘엔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얼마나 많은데?" "남편 있는 사람이 그런 옷을 어떻게 입지?" 내 말에 누나는 매우 답답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것이 모두 개성이야 개성,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눈이 이상할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아닌게 아니라 그 옷은 개성이 뚜렷한 옷이었다. 얼마 후 우리는 소주방에 도착했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누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술값은 내가 낼께" "아니 무슨 소리야 누나 술 취했나봐. 내가 산다고 분명 말했잖아" "사실은 아까 그 옷은 십만원만 받으면 돼. 하지만 그 여자의 자존심을 좀 살려주고 싶어서 십오만 오천원을 부른 거야. 그래서 생각지 않은 오만오천원이 생겼지" 나는 장사에 찌들은 누나의 양심을 뻔히 내다보며 엉뚱하다는 듯 물었다. "쥐뿔이나 자존심은 무슨 자존심?" "여자들 심리를 모르면 말을 하지마. 그런 여자들일수록 값이 비싸야지 싸면 사지도 않아. 그리고 그 옷을 입으면서 계속 자존심을 부릴 수 있거든? 그래서 그 여자의 자존심을 좀 살려 주고 싶었단 말야" "하긴 역시 그것도 개성은 개성이구먼…" 그 말을 들은 나는 너털웃음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최은희(미 루이지애나주 토마스 제퍼슨 초등학교 교사) 꽃 한 송이 선물하는 ‘스승의 날’ 필자가 한국에서 근무하던 1999년 5월 14일에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교실에서 있는 모든 스승의 날 행사를 전면 금지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행사를 자제해 줄 것과 선물을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전달한 후 장난삼아 경보 시스템을 가르키며, 교장선생님께서 카메라로 우리 교실을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스승의 날 행사를 하면 안된다고 알렸다. 하지만 다음날, 5월 15일 아침에 교실로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풍선을 달아 놓고 선물을 가득 안겨주며 어김없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짓이냐’며 호통을 치는 나에게 반장은 과자며 음료수며 파티할 준비를 다 해 놓고선 아주 자랑스러운 듯 교실문 위에 달린 경보 시스템을 가리키며 교장선생님 모르게 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가려 놓았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위를 바라보니 하얀색 천으로 경보 시스템을 가려놓고선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데, 정말이지 ‘난 참 행복한 교사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진한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나 부작용이 많았던 한국의 스승의 날을 생각하면서 가슴아팠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의 스승의 의미와 중요성은 미국인들에게도 같은 모양새인 것 같다. 미국에서도 스승의 날이 있는데 한국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스승 감사의 주(Teacher Appreciation Week)’라고 해서 5월 둘째 주를 스승에게 감사하는 주로 정하고 있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 직접 정해 준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유인물이라고 교무실에서 전해 왔는데, 그곳에 매 요일마다 무엇무엇을 가져오라고 쓰여 있어서 ‘참 재미있는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주일동안 각 요일별로 가져와야 할 것이 적혀 있는데, 월요일은 과일을 종류별로 가져오고, 화요일은 꽃을, 수요일은 감사의 마음이 담긴 카드와 학교에서 교사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게 했 다. 목요일은 향기가 좋은 것을 하나씩 가져오게 하는데 예도 상세히 적혀 있다. 향기가 좋은 것들의 예로는 로션, 향수, 비누, 보디워셔, 양초, 사탕이나 초콜릿, 포프리, 감동깊은 책들이 적혀 있었다.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자신이 임의로 선택한 선물을 가져오게 했다. 스승의 날 선물 안 받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학부모에게 꼭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선물을 잊지 않도록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도 스승 감사의 주에는 특별히 교사들을 위해서 아침과 점심을 따로 준비해서 마련해 놓았다. 일주일 내내 학생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도대체 얼마나 받을까 마음속으로 계산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미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는 스승의 날에 받은 십만 원 단위의 상품권이나 화장품 세트 등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 하면 학부모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돌려 보낼까가 고민이었고, 또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하루 전에는 ‘저는 스승의 날 편지를 받지 않습니다’ 라는 가정통신문을 써서 보내야만 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수준에서 선물을 준비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처럼 고가의 선물을 구입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이들이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는 의미보다는, 학부모들이 선물을 준다는 의미가 맞겠지만 미국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줄 선물은 아이들이 살 수 있는 몇 달러 안에서 준비하기 때문에 정말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PAGE BREAK]예를 들어 월요일에 과일을 종류별로 가져오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과일 박스 안에 가득 과일을 채워서 보내오겠지만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바나나 하나, 사과 하나, 오렌지 하나가 든 종이가방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대부분 과일 하나를 들고 온다. 화요일에는 꽃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마도 몇 만 원을 들인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보내오겠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장미 한 송이, 자신의 집 정원에서 꺾은 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온다. 아이들과 함께 교사의 선물을 사러 갈 때도 학부모가 직접 선물을 고르기보다 아이들에게 직접 고르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그마한 장식품이나 곰 인형들을 받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탕을 모아서 선물로 가져오기도 하고 10센트짜리 몇 개를 모아서 선물로 주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교사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을 그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선물들이어서 오히려 한국에서 받은 상품권이나 화장품 세트보다도 더 가슴 따뜻한 선물이었다. 스승의 날의 의미는 아이들에게 스승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아이들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도록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의 미국 아이들의 선물은 참 가슴 따뜻한 것들이었다. 시험! 시험! 미국도 시험천국 한국에서 미국 조기유학을 고려하는 부모들 대부분의 고민은 아이들을 시험에서 해방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은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시험에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 학교는 한국 학교보다 더 시험을 강조한다. 각 학교에서는 매년 성적 달성목표를 정해놓고 매 교사 모임 때마다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새내기 교사 오리엔테이션의 첫 프리젠테이션도 시험성적이 올해 얼마나 올랐고 다음해의 목표는 얼마인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며, 매주 한 번씩 교사들끼리모임을 가지면서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목표와 실천 사항을 작성해서 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며 작년 시험성적을 함께 모여 분석한다. 3주마다 A, B ,C , D, F가 선명히 박힌 성적표를 부모가 받아보며, 아이가 한 번이라도 F를 맞을 경우에는 여름방학 동안에 학교에 다시 나와 자비를 들여 보충수업을 들어야 한다.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다시 시험을 치뤄 일정 점수를 넘어야만 하며, 여름보충학습에서도 F를 맞으면 다음 학년으로 진학하지 못한다. 만약 3개 이상의 F를 맞게 되면 아예 여름학기를 들을 수도 없을뿐더러 당연히 그 학년을 다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혹 F를 맞게 되면 학부모들은 비상에 걸린다. 교사를 찾아와 F를 만회할 수 있는 다른 숙제를 내 줄 수는 없는지 묻는가 하면 아이를 과외를 시켜야 하는지 문의하기도 한다. 거의 매주 시험을 보는데 그래서 시험보기 전날은 학부모들이 함께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 를 흔히 볼 수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인 1999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만 시험을 치르고 통신표에 수, 우, 미, 양, 가로 평가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미국 아이들은 시험에 치여 산다. 일년에 한 번 있는 표준학력검사에서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해도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같은 학년에서 일년 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들의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하지만, 교사들 또한 일년에 한 번 있는 테스트만으로 교사 자신의 능력도 함께 평가받는다는 것에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PAGE BREAK]실제 방학식을 거행할 때면 가장 많은 성적 향상을 가져온 교사는 직접 교육청에서 표창을 받기도 한다. 부시 행정부가 올 1월에 통과시킨 초중등교육법안(No Child Left Behind Act)에 의하면 2006년까지 목표로 정해진 시험 성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학교들은 재정보조에 대한 제재를 받거나, 다른 곳에서 전문가를 고용해야 하며, 교사들을 바꿔야 한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 전체가 표준학력검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려고 온 심혈을 기울인다. 심지어는 성적이 낮은 아이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유하는 형식으로 아이들을 평가받는 그룹에서 제외시켜, 학교의 평균점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님들도 있으니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험 스트레스가 없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는 생각은 한국 학부모들의 오해인 것 같다. 다양한 학교기금 마련 행사 미국에서 교육행정학 강의를 대학에서 듣거나 교육행정가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학교기금마련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행정가들이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부딪히는 문제이고 기금이 얼마나 모아지느냐에 따라서 학교의 행사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더 잘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교장 인턴십을 할 때 학교 재정출납부를 살펴볼 일이 있었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고 수입 항목에 사탕판매대금, 티셔츠 판매대금 등 그 때 당시에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항목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교육청에서 학교로 지원되는 돈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무일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학교를 운영해 가느냐는 질문에 교장 또한 내 질문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미 교사들에게 일년동안 쓸 400달러의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따로 학교로 자료비나 기타 비용들이 지불되지 않는다. 지불된 돈은 철저히 교사 개인이 알아서 쓰기 때문에 교장의 손을 이미 떠난 돈이다. 그래서 10년 넘게 교직에 계신 선생님 교실에 가 보면 자료실을 방불케 한다. 매년 필요한 학습자료를 사다 모으니 10년 동안 쌓인 것들이 한국에 있는 한 학교의 자료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가난하다. 그래서 행정가들은 학교기금마련을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기금마련이 얼마나 잘 되는가에 따라서 어느 정도 행정가의 능력이 평가되기도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사탕, 연필, 피클, 학교 티 셔츠 등을 고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치어리더 들이나 농구부, 축구부 등 특별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초콜릿이나 양초 등을 가족들이나 주위의 친지들에게 판매해서 운동복을 산다던지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거나 파티에 가면 아이들이 초콜릿을 들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혹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시킬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문화를 이해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다. 미국은 기부(donation)의 천국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어떤 단체에서 자금이 필요하면 기부를 받는다. 수퍼나 백화점에서 ‘이런 기관이 있는데 기부하지 않으시겠어요?’ 라고 불쑥불쑥 내미는 손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1달러 정도의 작은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1~2달러 정도의 작은 돈을 그냥 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품을 걸고 기금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서 작년 9·11 뉴욕 사태가 났을 때 미국에 있는 월마트에서 사용한 기금 마련 방법은 1달러를 내고 한 달 뒤에 한 명을 추첨해서 TV를 주는 것이다. 물론 모아진 돈은 전부 뉴욕으로 보내졌다. 이런 식의 기금마련 방법 또한 학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1달러씩 주고 번호를 받으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몇 명을 당첨하여 큰 상품을 주는 방법이다. 기금 마련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면서도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장으로 이용될 수 있는 기금마련 행사를 두 가지 소개하겠다.[PAGE BREAK]한 가지는 아이들의 놀이 한마당이다. 어린이 대공원이나 놀이동산을 가게 되면 아이들이 티켓을 끊어서 각자 즐기고 싶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보통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10월 31일)처럼 아이들이 들떠 있는 미국명절 때 놀이 한마당을 진행하게 되는데, 아이들은 미리 티켓을 사게 된다. 그리고 교사들이 총동원되어서 여러 가지 놀이들을 진행하는데, 콩주머니 통에 집어넣기 게임이나, 농구 슛 하기, 댄스 파티, 얼굴에 판박이나 예쁜 그림 붙이기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를 체육관에서 진행한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놀이를 하는데 인기가 많은 게임일수록 티켓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음료수나 간식도 함께 판매하는데 교무실에 가서 티켓을 산 후에 티켓으로만 간식을살 수 있다. 이 날은 학부모들도 함께 참여하는데 학부모와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함께 웃고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춤추면서 즐길 수 있으니 학부모도 마음을 열고 교사를 대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 할로윈데이 때 콩주머니 집어넣기 게임을 맡았는데, 4시간 동안 콩주머니 주어 나르는 일을 하느라 얼마나 허리가 아팠던지…. 하지만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들, 교장선생님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하루를 지내서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행사는 킹·퀸 선발대회(Coronation)인데 주로 흑인들이 많이 있는 학교에서 행해진다. 킹·퀸 선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평균 학점이 4.0 만점 기준에 3.0이 되어야만 한다. 모든 과목 평균이 B 이상이 되어야만 출전할 수 있다. 출전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받아야 한다. 한 마디로 킹·퀸 선발대회에 나가는 아이를 후원해 주는 것인데 이미 협동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주변 이웃들은 당연하게 기부에 참여한다. 그리고 마감 일자가 되면 기부받은 돈과 명단을 주최측에 제출하게 되는데, 기부받은 금액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를 받았는지, 그리고 학생의 학점과 과외활동, 행동발달 상황, 수상경력 등을 고려한 후에 투표를 통해서 킹·퀸이 선발된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킹·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행사당일은 교장이 왕관과 가운을 수여하는 순서를 갖게 된다. 이 행사는 지역사회의 축제이다. 행사 당일날 참가자들은 옷을 차려 입고 오는데 여자아이들은 동화 속의 신데렐라처럼 드레스를 입으며, 남자들은 턱시도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온다. 3∼5 학년 꼬마들이 그렇게 차려 입고 오면 숲 속의 요정 같다. 물론 가족들도 드레스를 입고 오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필자는 사전 지식 없이 드레스가 아닌 바지에 니트를 입고 갔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가족들의 환호 속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진다. 그러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에스코트 해서 입장하여 체육관을 한 바퀴 돌고 자리에 앉게 되는데, 체육관을 도는 동안 사회자는 평균학점, 담임선생님, 특별활동상황, 수상경력, 좋아하는 음식, 취미 등등 그 아이에 관련된 모든 것을 나열해 준다. 그러는 사이에 학부모들로 구성된 관중들은 수상경력이 있거나 학점이 좋은 경우에는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주는데, 아이들이 본인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킹·퀸이 왕관과 가운을 받고 나면, Royal Court 라고 불리우는 이 아이들은 체육관에 나와 왈츠를 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축제인 셈이다. 아무리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들도 이날만은 왕자가 된다. 이 행사들을 통해서 기금 마련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라는 의미보다는 축제 속에서 조금은 상기된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훨씬 의미 있어 보이는 하루였다. 이 외에도 각 학교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 기금을 마련하는데, 중·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지역사회의 큰 기업들이 학교를 후원해 주기도 한다. 축구부들이 입는 유니폼 하나도 여러 사람이 기부한 돈으로 마련된 것이고 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본인 또한 기부를 위해서 뛰었던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책임감과 자신감이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