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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김영덕 | 강원사대부고 교장 요즘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모든 분야에서 산만하고 다양한 불협화음이 쏟아져 나온다. 규율과 질서의 상징인 군에서 성추행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있었고 현직 교육감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구속되었다. 이름 있는 기업인이 투신자살하였고 동맹국의 훈련 중인 장갑차를 점거하여 국기를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 사회 도처에 부도덕과 무책임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목적만 훌륭하면 수단은 어떠해도 좋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무시해도 떳떳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왜 이렇게 원칙을 중시하는 가치체계가 손상을 입었는가? 교육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모든 것이 교육의 탓인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 동안 교육이념에 대해 뚜렷한 합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교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으며 학생을 수단시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이끌어 주고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면도 있으며, 교수-학습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평가요소와 기준을 너무 온정적으로 설정하고 처리하여 평가의 목적 달성에 실패한 측면도 있다. 우리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적인 인간 육성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원칙중심의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교육하는 일은 등한히 한 경향이 있다. 특히 법과 원칙, 도덕성 우선의 삶을 최선의 가치로 삼고 합리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교육을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오로지 학교 교육과정을 개인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창한 교육목표를 세워두고도 단지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제대로 된 것인 양 착각해 왔다. 학생들은 소위 일류대학에 합격만 하면 칭송과 부러움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졸업했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은 그 점을 소리 높여 개탄하면서도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높지 못하다. 교육여건이 호전되고 교사의 자질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교육과 관련하여 해외로 유실되는 현상은 점점 심해지는 실정이다. 선진국 못지 않은 교육 인프라가 구축됐지만 여전히 사회는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를 부조리의 온상인 듯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고 사교육에 비해 공교육이 무능하다며 마구잡이로 질타하는 사람도 많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음에도 모든 잘못이 교육을 담당한 집단에게만 있는양 책임을 호도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정치·경제·사회 등 교육 외적 상황은 교육의 내적 발전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는 국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교육 현장의 갈등을 해소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다. 교육사회 구성원에 대한 오해와 질타도 참고 견디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원칙중심의 올바른 교육환경을 조성하는데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으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회의 주역이 되는 당당한 사람을 길러내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주의를 조장하며 신자유주의와 분배주의가 갈등을 뛰어넘어 조화롭게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학교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도록 교육이념을 정립하고 사회통합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21세기를 살아갈 역량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사회도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원칙 중심의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는 진정으로 당당한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 당당한 사람이다. 원칙 중심의 바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준법정신이 투철하며 타인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당당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원칙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인격을 신뢰한다. 원칙 중심의 삶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 우리가 가진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도 해 준다. 당당한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남을 배려한다. 또 당당한 사람은 헝클어진 질서를 바로 세우고 사회와 조직의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도 모범적이다. 당당한 사람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은혜를 잊어버리는 병든 사회를 합리적이고 명랑한 사회로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원칙을 지키는 당당한 사람을 기르는데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삼호 | 전남 광양 골약초 교감 고향!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 우리들 그리움의 깊은 밑바닥.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후 아버지 앞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고향은 언제나 저 만치서 아련한 추억으로만 서 있다. 어느 땐가는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 못 이루는 밤을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했으리라. 고향을 생각할 때 어머니 품속같이 따스하리라는 것은 혼자의 바램뿐이고 너무나 오랜만의 방문이라 어색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몇 명 있는 고향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고 더구나 승진이 늦어 행여 내 직위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 고향 사람들을 슬슬 피하고 다니는 처지였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인지라 가끔 꿈자리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고향의 꿈을 꾸는 날은 고향의 그리움으로 내 마음이 산산 조각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럴 때는 아내를 달래어, 아니 아내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고향을 찾는다. 풀 죽은 모습으로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묻어 있는 동구 밖의 쉼터, 내 어릴 때의 깔깔 웃음이 남아 있는 뒷동산, 그리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슴속이 이내 차분해지면서 울적하기까지 하다. 푸르게 우거져 있어야 할 대나무 숲은 죽공예품의 사양화를 증명이나 하듯 ‘돈 버짐’ 앓는 머리처럼 마구 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배나무를 파 해치고 텃밭을 일구어 놓아 청죽에 대한 자부심과 부촌이라는 인상은 없어지고 꾀죄죄한 느낌만 들뿐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우거진 수풀이었다. 내 어린 시절엔 사람의 키를 넘는 나무가 흔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나무는 땔감으로 모두 베어 썼으며 나무 뿌리까지도 팽이로 파서 땔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어려서 자란 집으로 가보았다. 언제나 나에게 푸른 꿈을 선사했던 아름드리 미루나무는 베어지고 그 자리에는 엉성한 나무 등걸만 썩어가고 있었다. 중학시절 십여리 떨어진 읍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읍내에 사는 아이들의 텃새가 몹시 심했던 시절이었다. 하교 길에 조심조심 읍을 빠져 나와 아담한 ‘더터리 고개’를 넘으면 어머니 품속같이 정답고 포근한 우리 마을이 들판 저편에 그림같이 펼쳐 있었다. 마을의 형상이 황소가 드러누운 모양이라 해서 ‘와우터’라고 이름하며 또한 ‘솟쿠리터’라고도 이름한 1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꿈속같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 마을이 보이면서부터 긴장은 풀어진다. 저기는 형덕이 집, 이쪽에는 석순이 집, 그리고 대밭 가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미루나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다. 그 미루나무는 언제나 나의 자랑거리였다. 내 어린 시절 나의 꿈을 키워주던 우뚝 솟은 미루나무! 마음이 우울할 땐 청운의 큰 뜻을 당당히 펼친 듯한 그 나무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고 가을이 되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에 잘랑잘랑 내는 그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그래서 멀리서도 가장 잘 보였고 까치가 귀했던 시절 언제나 까치가 집을 지었던 그 나무. 내 꿈이 머물렀던 그 미루나무가 없어진 것이 못내 서운하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대밭 가 팽나무를 쳐다보니 이게 웬 기쁨인가! 거기에는 까치집이 두 개나 걸려있지 않는가! 내 어릴 때 미루나무에 집을 지었던 그 가치의 손자, 혹은 그 손자의 손자, 그 몇 대의 후손 까치가 지금 저 팽나무에 둥지를 틀지는 않았는지? 그때의 소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나이로 몇 대 후손의 까치가 지은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빠른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까치집! 내 어릴 땐 행운과 평화와 기쁜 소식의 상징인 까치가 날아오면 우리들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카약! 카약! 카약!’ 힘차고 투명한 그 까치 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고 미래의 꿈을 키웠던 것이다. 흐뭇한 마음을 안고 마을을 가로질러 ‘여싯머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황폐했던 땅, 밤이면 여우가 찾아와 기분 나쁜 울음을 울고 새로 만든 묘지에 구멍을 파면서 시체를 염탐하던 곳, 6.25 전란 중에 죽은 사람들을 많이 묻어 두었던 곳, 그래서 한 낮이라 해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던 곳이다. 그러했던 ‘여싯머리’에도 소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등이 울울창창하여 마치 하나의 조용한 공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계속 초라해 지고 있지만 이 동산은 숲으로 우거지고 있다. 쓸쓸한 마음에 그나마 위안이 찾아온다. 숲 속에 자리한 아내와 나는 고향의 냄새에 취해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고향의 품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찌르레기 떼가 몰려왔다. 해맑은 목소리로 제법 쩌렁쩌렁한 소리로 사방을 어수선하게 날아다녔다. 벌레를 쪼으려고 그 뒤를 곡선을 그으며 나르는 놈, 암수가 한데 헝클어져 수풀 속으로 숨는 놈, 괜스레 상대방을 쪼으려는 듯 장난을 거는 놈, 그야말로 옛 시절 흥청대던 시골 장터 같았다. 기껏해야 무릎 정도의 가냘픈 나무 몇 그루였던 이 동산이 이제는 반 아름드리 나무로 뒤덮였고 이렇게 많은 새떼들이 찾아와 우짖으니 이곳이 정녕 내 고향 ‘여싯머리’가 맞는지 아니면 꿈속에서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인지…. 새소리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에 취해 넋을 잃고 있으려니 저절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무더위 속에서 풀베기 작업에 찌들고 있을 여름의 끝 무렵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빨간 고추잠자리가 마당 가득히 날아다니던 아름다웠던 그 풍경. 지금 내 머리 위에서 삶의 전율을 느끼게 하며 날아다니는 찌르레기들은 지난날 고추잠자리의 영혼들이 아닐까? 저만큼 떨어진 밭에서 김을 매던 중년의 여인은 새소리에 놀라 ‘훠이! 훠이!’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안타깝다. 새들의 지저귐 속에, 새들의 희롱하는 장난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짧은 인생에 몇 번이나 찾아올 것인가? 새들이 날아다니는 동안 모든 게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딱딱하던 밭의 흙은 부드러워졌으며 치렁치렁 늘어뜨린 사과나무 가지는 고염 같은 작은 열매를 흔들며 상큼한 냄새를 뿜어내 새들의 놀이를 축복해 주었고 하얗게 핀 밤꽃은 향 짙은 밤꿀을 뿌려주었으며, 엉거주춤 서있는 소나무들은 새로 돋아난 잎들을 움직여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새와 나무와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초여름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을 때 하늘은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도심의 쇠창살 같은 딱딱한 생활에서 벗어나 미풍을 마시며 젊음을 만끽하는 한 쌍의 범나비가 되어 5월의 푸른 동산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름다울 진저! 새와 나무와 인간이 같은 느낌으로 호흡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 시간, 세파에 떠밀리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자연과 동화되어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생애에 얼마나 될까? 자연은 진실로 위대한가보다. 아니, 고향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인가 보다. 내 어릴 때 그렇게 황폐했던 ‘여싯머리’ 동산이 이렇게 푸르게 뒤덮여졌고 그 많은 찌르레기들이 해맑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음을 터뜨리며 쫓고 쫓기고 부비고 노래하고 상큼한 미풍이 이는 꿈의 동산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고향이 좋다. 아니, 나무가 좋다. 풀이 좋다. 새들이 좋다. 그리고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는 저녁 노을은 너무나 좋다. 이 계절, 이 시간쯤이면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몇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광폭한 치한도, 남의 돈을 몽땅 긁어먹고 이 나라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어느 시커먼 배불뚝이 사장도 쇠창살 틈으로 멀리 보이는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엄숙한 마음으로 고개 숙인 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직장 동료나 친구와 다투었던 사람들도 스스로 얼굴을 붉히면서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아집에 빠져서, 자기 욕심에 빠져서 오직 나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고향은 가르친다. 멀리 보고 살라고, 긴 안목으로 살라고, 그리고 고향을 찾으며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