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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전병삼 | 중앙대 부속고 교사 학력 신장은 필연적 선택 교육의 본질과 핵심은 두 말할 필요 없이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다. 여기에서 학력이란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얻게 되는 지식, 기능, 태도, 가치관 등을 포괄하는 능력과 성향을 말한다. 학력은 학생들의 학습 결과이며 교육목표의 달성 정도로서,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교과 지식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이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사고력,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의 고등 정신능력과 더 나아가 학업의 성취 동기, 지적 호기심, 자기 관리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이러한 능력을 두루 제고하고 함양하는 데에 맞추어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광복 이후 60년간의 근·현대적인 교육 과정을 돌이켜 보건대, 과연 이러한 학력의 신장을 제대로 성취해 왔는지 교육 내외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농경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의 급변하는 추이 과정을 숨고를 겨를 없이 겪어 왔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의 교육은 그 본질마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교육 외적인 정치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만 이용돼 왔다. 또한 그럴듯한 서양의 교육이론이란 이론은 있는 대로 국적에 관계 없이 마구잡이로 들여오다 보니, 교육 관련 당국의 수장들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관련된 정책도 정신없이 바뀌었다. 7차에 걸친 교육과정의 수정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올바른 학력신장방안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였다. 15차례에 걸쳐서 대학입시 제도의 큰 틀을 바꾸어 보았어도 학생들의 균형 잡힌 학력 신장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이제 21세기는 지식·정보·통신이 생활의 발전과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바야흐로 지식기반의 무한경쟁 사회로 돌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의 선진국들마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교육개혁과 함께, 학력 신장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에 우리도 새로운 시대에 세계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창의적인 인재들을 양성해 냄으로써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함은 적절하고도 필연적인 선택이다. ‘학력 신장 방안’ 무엇을 추구하는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여 무한 경쟁의 지식 사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란, 기초적인 학력을 바탕으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고루 갖추고, 참신한 지식을 창출함으로써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들을 제대로 육성해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육이 추구하는 체육·덕육·지육이 온전히 수행되어야 한다. 체육이란 건강한 신체를 유지케 함으로써 덕육과 지육을 축적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요, 덕육이란 자기 자신을 바르게 수양하고 책임감을 바탕으로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인성을 배양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체육과 덕육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곧 지육인 바, 이를 구체화하면 곧 학력의 신장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라고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서 체육이나 덕육 활동에 비해 일선 학교의 교사나 학생들이 결코 소홀히 한 것이 아니건만, 금학년도에 들어서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 관련 부처에서 부쩍 학력 신장과 관련한 정책과 방침을 다양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들이 일선 중·고등학교에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추진 과제들을 개괄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가 수준별 이동 수업의 확대 실시다. 이는 중학교 의무 교육과 고등학교 평준화 교육으로 인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학습 욕구를 진작시켜 보고자 하는 궁여지책으로 이해가 된다. 우선은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과 영어 중심의 2단계 또는 3단계의 맞춤식 교수-학습을 전개하라는 것이다. 이의 효율적인 시행과 정착을 위해서 관 주도로 교재를 개발하여 보급하고, 교사들에 대한 직무 연수 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둘째가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시키기 위해서 서술형이나 논술형 수행평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우선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여,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를 중심으로 실시하되, 배점 비율은 30%에서 연차적으로 10%씩 증가시켜서 50%까지 확대하고, 2007학년도까지는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가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책임 지도이다. 앞으로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매 학년 초에 학습 부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진단 평가를 일괄적으로 실시하여 학습 부진 학생으로 평가된 학생들에 대한 별도의 기초학력 신장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교과 담임 교사의 책임 하에 수준별 자료를 활용한 맞춤식 지도를 실시하거나 사범대 학생들의 봉사 활동을 유치하여 그들을 지도토록 하고, 그들에게는 일정 학점을 인정받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한다. 넷째가 교과와 연계한 독서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단순히 교과서 중심의 나열식 지식 주입에 그침으로써 심도 있는 학력 신장에 한계가 있으므로, 앞으로는 국민공통기본 교과를 중심으로 독서 지도 매뉴얼을 개발·보급하고 학교 도서관 운영 지원을 확대하며, 교과별 독서 지도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토록 함으로써 다양하고 창의적인 독서 교육 활동을 전개한다고 한다. 그 밖에, 학생들의 학력 신장과 교실 수업의 개선을 위해서 교과 중심의 장학과 환경 조성 등의 제도적 지원을 강화한다고 한다. 교사들의 자기 장학과 동료 장학을 활성화하고, 교사들의 교과 교육 관련 연수를 주기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교사들에게 전문성 신장 기회를 더욱 확대토록 하겠다는 방침도 제시되고 있다. 또한 교사들이 행정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연구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근무 여건 개선과 함께,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학습환경 선진화와 쾌적한 교실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예산적인 뒷받침을 경주하겠다는 내용도 제시되고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 오랜 준비작업 필요 교육의 핵심인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 저해가 되는 그릇된 제도나 방법은 확인되는 즉시 수정하거나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획기적인 각성을 통해서 교육 관청 주도로 새삼스럽게 추진하려고 하는 학력신장방안들에서도 시행의 지속성과 기대 효과 면에서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점들이 발견된다. 첫째로 수준별 이동 수업의 효과 여부다. 기초반, 표준반, 심화반 등의 수준별 학급을 재편성하고 수업을 전개함에 있어서는 비록 시간표 작성이나 공간적 이동의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시행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시행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들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우선 수업을 전개하는 교사들의 위화감 조성의 우려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면 기초반 지도 교사는 실력 없는 교사, 표준반 지도 교사는 그저 그런 교사, 심화반 지도 교사는 실력이 막강한 교사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오인될 수 있다. 또한 교사들끼리도 어느 누가 가르치기 힘든 기초반을 맡으려 하겠는가? 심화반을 맡게 되는 교사가 오판적 자만감을 갖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이 우열 의식으로 인해 입게 되는 상처가 얼마나 크겠는가? 평가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공정한 내신성적을 산출해야 하는 관점에서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학습한 내용 중에서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다 보면 분반 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학습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의 시행에도 똑같은 문제가 수반된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없다면 수준별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꼭 실시해야 한다면, 먼저 즉시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최소한의 시간(과목당 주당 1시간)만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사별 평가 제도를 앞당겨서 시행해야 한다. 실제로 수업을 담당한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가르친 학생들을 평가함으로써 학생들의 성적을 산출토록 해야 한다. 둘째로 효율적인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시행하는 일이다. 이 또한 문제를 개발하고 출제하는 데에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평가를 함에 있어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공정성·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서술형이나 논술형 평가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100% 견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무리 채점 기준을 정해서 공동채점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오류는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로 인해서 교육 수요자들로부터의 불신을 면할 수 없다. 0.1점 차이로 내신 석차와 등급을 달리 매겨야 하고, 그로 인해서 대학의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는 시점에서 50%까지를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하라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버티기 힘든 교사들의 신용이나 권위 따위는 아예 포기하라는 것이다. 대학입시 전형 과정에서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논술·구술 평가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도 미세한 차등만을 산출하고 있는 중·고등학교의 논술형이나 서술형 수행평가에는 더 없이 예민한 것이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이러한 점들을 얼마 만큼 감내하고 그래도 기필코 이를 시행하겠다면, 현행 수준 정도를 유지토록 하거나 오히려 점수 비중을 20% 정도로 낮추고, 점수 격차를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초학력 부진 원인은 학습의욕 부진 셋째로 학습 부진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하는 문제다.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은 가정의 교육비 부담 경감이라는 긍정적인 면에 비하여, 어쩌면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모른다. 특히 고등학교 평준화를 시행하는 대도시의 경우,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해서 중학교 졸업생의 거의 대부분이 마음만 먹으면 모두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생 수보다 많은 대학 정원이고 보니, 대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진마저 우려되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려면 학제의 과감한 개편과 함께, 고등학교와 대학의 피라미드식 정원 감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면하고 있는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에 대한 학력 제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엔 상당한 한계점이 있다. 이미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방과 후 지도나 방학 중 지도를 시행해 보았지만, 학생들의 극히 부진한 참여도와 더불어 실질적인 교육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하게 말하면, 예산만 낭비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 교수법이나 상담법 등이 능숙하지 못한 대학생들에게 그들을 지도하게 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극단적이긴 하지만 과거 군국주의 시대에 있었던 낙제 제도를 도입하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에 이르기까지 2,3차례 정도 시행한다고 하면 학생들이 오히려 의욕을 갖고 학습에 정진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학습 결과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가 학생들의 학습 의욕 부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별 특수학급의 편성과 운영을 의무화하거나, 근래에 확산되고 있는 대안학교를 정책적으로 더 많이 설립하여 그들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지도·교육할 수도 있다. 이는 학습 부진의 또 다른 이유가 학교생활에 대한 부적응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신뢰성 회복 전제돼야 넷째로 독서 교육의 활성화에 대해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정보화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의 사고는 완전히 디지털화 되었다. 그들의 두뇌는 거의 온라인화 되어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얻으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방법은 지나치게 간편성과 순간성의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복합성과 지속성을 필요로 하는 지식의 섭렵에는 지대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들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교사의 일방적이고 나열적인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여 탐구 중심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습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서 교과와 연계시킨 독서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일단 대단히 긍정적이다. 또한 시설이나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교사들이 확보할 수 없는 독서 매뉴얼을 개발하고 보급함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편, 이미 교육 당국들에서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교사들이 얼마 만큼 전문성을 갖고 효율적으로 독서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학생들의 다원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독서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새로이 도입하는 제도인 만큼 처음부터 너무 과욕을 부리지 말고 점차적으로 추진해 나갈 때에 자연스러운 독서 교육이 정착될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학력 신장 방안과 교수-학습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교육 당국에서는 다양한 지원과 장학을 실시하겠다는 의욕을 다각도로 밝히고 있다. 더불어서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학습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탐색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이 또한 그 동안의 전시적 효과를 의식하고 강조했던 애매모호한 교육활동을 반성하고 교육의 본연인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우선시하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진정한 실력과 인성을 두루 겸비한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일선 학교 교육이 공교육으로서의 제 자리를 찾고 신뢰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즉,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함에 있어서도 획일적인 정책이나 방법만을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는 교수-학습 활동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위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학교 나름대로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학력 신장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교사·학생 자발적 참여가 성공 관건 학생들의 학력을 올바르게 신장하려면 시대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부 차원에서나 교육 당국의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나 방법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실질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일선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신념과 의지이다. 교사들은 교육자로서의 본분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질 높은 수업과 전문성 함양을 위한 연찬에 진력해야 할 것이며,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학생들을 지도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로부터도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교사상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은 스스로의 행복과 삶의 질을 고양하기 위해서 학생 본연의 의무감을 망각하지 말고 교사들의 지도에 순응하면서도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도전하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신장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학교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획기적인 학력신장방안을 제시하여 추진하려고 해도 교사나 학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면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 뿐이다. 관 주도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교육 주체들의 반감과 저항을 초래하게 된다. 금학년도부터 교육의 본질에 입각해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려고 하는 학력 신장 방안들도 교사들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검토와 개선을 반복함으로써 점진적인 정착 과정을 통하여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연컨대, 교육과정의 편성·운영과 대학입시 전형제도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 신장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침을 지적코자 한다. 그러나 현행의 교육과정과 대학입시 전형 방법은 오히려 균형 있는 학력 신장의 저해적 요인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개정하여 운용할 교육과정은 이러한 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교육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2008학년도부터 새로이 적용하려는 내신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9등급제 위주의 전형 방법도 시행 이전에 충분히 보완할 것을 촉구한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광복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성공’보다 ‘좌절’이 압도한 국가라고 믿어야 한다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는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잘못 태어났고 성장에 극심한 장애를 겪고 있는 국가라고 배우고 있다. 배울 뿐만 아니라 시험도 치고 평가도 받는다. 과연 대한민국의 ‘역사’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역사쓰기’가 잘못된 것인가. 축구와 한류에서 자부심을, 기업 활동에서 생동감을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독 역사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자괴감을 가져야 하는가. 또 얼굴에는 태극무늬를 그리고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축구를 응원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의 역사 시간에는 대한민국을 채찍질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져야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른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상황을 강요하는 일일 것이다. 무릇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어떠한 나라의 역사에도 자랑스러운 부분과 부끄러운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 개인의 삶에 수많은 도전과 응전이 있고 따라서 성공의 이야기와 실패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도 자랑스러운 추억도 있고 그렇지 못한 슬픈 추억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부끄러운 역사를 압도할만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으며 또한 자부할만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압도할 만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이 있으며, 감동적인 ‘비사(秘事)’들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체험이 그러하고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렇게 평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손,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부끄러움 못지않은 자랑스러움과 감동이 넘쳐흐르는 조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역사관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고 평화적 민주화도 이룩했다. 인권, 민주화, 산업화, 복지제도 등 어떤 기준을 들이대어도 대한민국은 ‘미션 임파서블’을 이루어내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은 제3세계에서 성공한 국가의 대표적 사례가 된 것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꽃필 수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한 서구인들의 암울한 전망을 우리는 평화적 민주화에 의하여 보기 좋게 반증했다. 또 한국에서 고속도로는 불가능하고 제철공장도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한 비관적 전망을 우리는 행동과 실천으로 통쾌하게 반증했다. 압축성장이 그 비결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뭉쳤고 지금은 나름대로 부국화(富國化)를 향해 항해중이 아닌가. 이러한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공은 북한의 민주화의 부재나 산업화의 부재와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북한에 인권이 있는가, 북한에 정부를 비판할 자유는 있는가, 북한 주민의 삶은 어떤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국가’의 역사학도들이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를 등치시키면서 ‘성공한 국가’에 대한 성공의 평가에 극히 인색하고 오히려 모순과 상처를 들추어내는 반면, ‘실패한 국가’에 대해서 ‘사회주의 가꾸기’로 이해와 동정을 표시한다면, 그것은 ‘겸손한 사관’일까, 아니면 ‘자기비하의 사관’일까. 그것은 사실에도 충실하지 못한 왜곡된 사관이며, ‘매조키스트(masochist) 사관’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를 이룩하고 빈곤을 빈곤이 아닌 것으로 바꾸며 세계적인 한국 기업들이 부상한 것도 ‘사실’이고 ‘리얼리즘’일 터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대한민국이 성공한 국가이고 북한이 실패한 국가라는 것도 ‘사실’이고 ‘리얼리즘’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역사쓰기’가 자유로운 아카데미즘의 결실이라고 해도 ‘역사쓰기’에는 사실과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대한 엄숙함이 있어야 한다. ‘사실’이 왜곡되고 ‘리얼리즘’이 빠진 창백한 ‘역사쓰기’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닐까. 특히 중·교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라면 이 엄숙함은 더욱 강도높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는 언제까지 “죄많은 나라에 태어났다”는 원죄의식을 교실에서 스폰지처럼 빨아들여야 하는가. 역사는 바로 세울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역사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관은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 경우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자라나는 세대의 정체성이 올곧게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제갈 정 |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흔히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고 허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18세 이상 성인의 80%, 대학생의 96.2%가 지난 1년간 음주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인간관계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음주문화가 청소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청소년 중 74.4%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술을 마신 경험이 있으며, 31%가 지난 한 달간 술을 마신 경험이 있고, 48.4%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음주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이며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44.8%가 술을 직접 구입해 본 적이 있고, 35.4%는 술집에 출입해 본 경험이 있으며, 술을 구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이 73.1%에 이르는 것을 보면 어른들의 무관심 내지 방치 수준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소 학생들에게 청소년의 음주는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교사는 34.6%에 불과하며, 42.4%는 어른들과 함께라면 혹은 어쩌다 한두 번쯤은 괜찮다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청소년 음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거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청소년 음주는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음주 후 또 다른 약물이나 청소년 비행으로 가는 ‘통로약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청소년 비행의 대부분이 음주 후에 이루어지고, 특히 폭력행위의 대부분이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알코올이 자제력을 약화시키고 공격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청소년 음주문제 예방을 위해서는 청소년의 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알코올 정책과 예방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매금지 정책과 TV, 라디오 등에서의 주류 광고 제한과 같은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만으로는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반드시 예방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음주문제 해결을 위한 예방교육은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크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유치원에서 고등학생까지 연령별 발달단계에 따른 다양하고 체계적인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음주예방교육 프로그램이나 프로그램을 실시할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등의 흔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예방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청소년들을 위한 음주예방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학교의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공연히 아이들에게 술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호기심만 불러일으킨다는 오해이다. 청소년에게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술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오해를 갖게 하기보다는, 술을 마실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오는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부딪치는 문제가 음주예방교육은 음주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 학교에는 술 마시는 아이들이 없다거나, 어쩌다 한두 잔 마시는 정도이지 문제를 가진 아이들은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각 가정마다 장식장에 양주 한 두병 정도는 자리를 차지하고, 술에 취한 어른들을 보는 것이 다반사인 우리나라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음주문화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예방교육은 문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2차, 3차 예방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1차 예방, 보편적 예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음주예방교육의 적기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생들은 호기심이나 또래의 압력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고등학생처럼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음주로 발전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중학생 시기가 음주예방교육의 적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문화적·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 음주예방교육은 시작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음주예방교육의 효과가 단시간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교육, 그리고 청소년 음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내어 그 요인들을 해소할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1회성이며 일방통행식인 강연이나 비디오 시청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의사결정능력, 의사소통기술 훈련, 대처기술 훈련 등의 사회기술 훈련과 리더십 증진을 통해 술을 마실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은 학교와 지역사회, 교사, 부모 모두의 합의와 노력이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청소년들을 통해서 바꾸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식과 태도, 행동이 바뀌어야 가능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미숙 | 미 콜럼비아대 교원연구소·교육철학박사 들어가는 말 ‘천치’ ‘바보’라는 의미의 ‘idiot’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보면 민주주의의 근원지인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의 생활에 있어 공무(public affairs)에 관심을 두지 않는 개인을 의미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교육을 ‘천치의 훈련 (training of idiots)’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국민의 대표적인 의무이자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국민투표에 특히 젊은 계층의 저조한 참여율은 현재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다. 무식의 소산인가 아니면 무관심인가 하는 논쟁은 시민적 지식 전수의 의무가 학교교육에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 학교에서의 시민 교육이 정치에 대해 부실한 정보를 제공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로부터 젊은 계층을 유리시킨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민성에 대한 지식, 기술, 태도에 대한 국제평가연구(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valuation of Educational Achievement Civic Education Study, 1999; 2001)’가 미국과 홍콩을 포함한 27개 유럽 국가의 14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폴란드, 그리스, 홍콩, 미국,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등이 국제 평균보다 높았으며, 시민 기술 영역에서는 미국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 지식 영역에서는 미국보다 체코가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의 민주주의 체제 및 구조에 대한 관심에 있어 전 공산체제 시민과 일반 서구 민주주의 시민 간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 법과 교육에서의 형평성, 민주주의 구성 및 장치에 대한 지식이 전 공산체제의 동유럽뿐만 아니라 대부분 미국 및 서유럽의 시민성 교육에서 다양한 형태로 간과되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시민교육 전문가들은 동유럽의 공산체제 붕괴 이후의 시민성 교육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특히 체코의 시민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노력은 미국 및 서유럽의 시민교육뿐만 아니라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실현에 초석이 될 한국의 통일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배경 체코는 수세기 동안 국영화 체제였으며 시민적 사회화에 있어서도 교회나 유대기독교적 가치의 영향이 가장 약해서, 현재에도 유럽에서 가장 세속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최근 ‘유럽의 가치체제에 대한 연구(European Value System Study)’에 따르면, 체코 전체 인구의 72%가 그들의 삶에 있어 종교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일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에 법, 경제, 공공 체제 등이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로 도입된 민주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는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체코의 교육은 공산정권 하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철저한 중앙집권적 국가 교육과정과 교과서 체제에서 매우 세분화된 내용과 지정된 개념의 암기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켜 왔다. 체코의 국민은 오직 당과 정부만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생활을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난 40년 동안 강요당했었지만, 공산체제의 붕괴로 민주주의적 의식 전환뿐만 아니라 하룻밤 사이에 시민교육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만 했다. 공산정권 붕괴 당시 사범대학 졸업생들은 학교 현장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들 스스로가 교사로서 새로운 민주주의 원칙과 시민사회에서의 정부의 역할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교사들 자신이 변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의 잘못된 해석을 알려야 했다. 당시 교사들은 나름의 정직한 노력을 시도했지만, ‘시민의 자유’ ‘인권’ ‘서구와 동구의 경제적 차이’ 등과 같은 민감한 주제는 피하고 있었다. 한편 많은 교사들은 자신들이 공산정권 하에서 배웠던 이념적 개념과 설명의 허위성을 인식조차 못하기도 했다. 1990년에 국가 교육과정은 전 학년의 교과에 시민성 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켰으며, 공무, 기관 및 제도, 사회 정치적 체제 및 장치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력을 제공하는 시민교육을 시도했다. 교사들은 사회 정치적 행동을 위한 독립적인 사고력을 강조하면서 학생의 가치체계를 개발하는 교육에 주력했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4%의 학생들만 학교에서의 시민교육이 시민적 정치 활동의 참여를 권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67%의 학생이 시민교육을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자료에 근거한 강의로 이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선거와 국민투표의 중요성에 대해 학교에서 부실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코의 시민교육 전문가들은 ‘시민성 국제평가 연구’에서 체코 학생이 국제 평균 이상의 점수와 특히 시민 지식에 있어서는 높은 성적을 보인 것을 민주주의 원리와 원칙에 대한 사실적 지식을 강조하고 있는 학교교육의 결과로 보고 있다. 시민 지식에 대한 암기가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준비시키는 충분한 교육은 아닌 것이다. 학생들의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은 권리로서의 개인의 견해가 공공생활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시민교육에 대한 학습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시민적 활동에도 대부분의 학생이 여전히 소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와 쟁점 시민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도의 성공은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의 전문성 개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자율적 재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체코의 시민교육 전문가들은 새로운 내용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실 문화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교수-학습 과정의 분위기 전환이 시민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자료뿐만 아니라 국가교육과정 틀에 근거하되 현장 교사들의 융통적인 운영에 주안점을 두는 비정부기관에 의해 개발된 대안적인 교육과정이 허용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민주주의 제도나 역사적인 자료만을 열거하기보다는 주제별 그룹 읽기와 토론을 강조하는 수업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인성과 태도의 발달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가족교육’과 같은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사회적 훈련 방식을 적용한다. 대안적인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실질적인 시민 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교사들이 보다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기가 있고 많은 학교들이 채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6년 이후에는 20%의 학교만이 이 교육과정을 활용하고 있었고, 현재까지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국가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시민교육으로 되돌아가고 있는데, 그 주원인은 사실적 지식에 근거한 전통적인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대안적인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시민 활동과 기술을 대학입시에서 측정하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에서도 교사들의 전직교육에 새로운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지만, 계속 지적되는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단순히 책과 강의를 통해서 습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들은 직접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민교육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대학에서는 민주주의적 행동을 예시화하여 미래의 교사들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구안에 노력하고 있다. 시민교육학과에서는 역사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행하고 있는 체코 역사의 재조명이나 재발견 내용을 반영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교사 전직교육 프로그램을 재구조화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교육 관련 전문 교수 인력의 부족에 대한 해결책으로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체코 인력을 채용하거나, 현지 학자를 초빙하고, 대학원생의 외국 교환 프로그램 참여를 권장하면서 우수한 인력 공급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는 전직교육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비영리 단체들과 제휴하여 1989년 이전 졸업생인 현직 교사를 위한 연수교육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저조한 지원과 무관심으로 제한된 숫자의 현직 교사들만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교육부의 자체 조사 발표에 따르면,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부족해서 더 많은 예산의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자비를 들여서라도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은 정부에서 제공되는 예산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의 관리자들도 교사들의 연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시민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용한 덕분에 뜻있는 교사 주도의 단체들을 중심으로 시민교육 프로젝트가 개발되고 있다. ‘시민교육과 민주주의 연합(Association for Civic Education and Democracy)’은 이들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로, 일반 대중에게 학교 교육에서의 시민교육의 필수성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어려운 자금적인 상황이 이들 단체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프라하 주재 서구 대사관이나 국제 재단들의 도움은 이들의 활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자금지원과 더불어, ‘국제독서연합(International Reading Association)’과 같은 기관에서는 ‘비판적 사고를 위한 읽기 쓰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학습에 대한 공평한 기회와 민주주의적인 행위를 권장하는 ‘구성주의’ 교수법을 교사들에게 훈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민주시민의 역량으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상호 존경과 나누는 삶, 협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체코 사회의 시민성을 향상하기 위한 교사교육 프로그램이 독립기관들에 의해 제공되기도 하는데, ‘Dokazu to! (내가 관리 할거야!)’ 라는 프로그램은 그 중 하나이다. 이 프로그램은 심리학자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사회 치료’ 모형을 근간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정직하고 형평적인 관계 형성을 도모하고 있다. 교사를 대상으로 자긍심 향상, 자아와 타인에 대한 존중, 적극적인 의사소통 등을 향상시키는 활동으로 시작해서, 전체 학교가 한 팀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맺음말 현재 체코의 시민교육에 대한 새로운 노력은 체코 사회의 민주주의 현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산정권 하에서 교육받은 학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시민교육 교사들도 필연적으로 전체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았다. 전체주의자들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체코는 영적으로 성숙하기도 했지만, 반세기 동안 책임 회피와 피상적인 해결책으로 조종당해 온 이들에게 있어 서구의 민주주의적 산물이 여전히 낯선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현재까지도 많은 시민들은 공공 생활과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해 회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산실인 서구의 시민교육을 수용하지 않고는 체코의 시민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시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원칙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라고 해서 서구의 모델을 그대로 단순히 적용하는 것이 체코의 시민교육에 대한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시민교육의 경우에도, 미국 우월주의나 국수주의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접근을 지양하고, 다양한 사회 문화적 계층의 필요에 근거한 다문화적 접근으로서의 민주 시민적 가치와 세계평화의 개념을 통합한 시민중심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체코는 공산 독재의 억압 속에서도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던 것처럼, 민주 시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할 서구 시민교육의 토착화가 필요할 것이다.
강미숙 | 북제주 신창초 교사 지난 2월 22일은 걸스카우트 세계우애일이었다. 세계우애일은 스카우트 운동의 창시자인 B-P경과 그의 부인이자 걸스카우트 세계단장인 올러브 베이든 포엘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다. 이 날은 전 세계의 모든 걸스카우트가 세계적인 운동체인 걸스카우트 세계연맹의 일원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면서 걸스카우트를 위해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활동할 기회를 갖는 걸스카우트 축일이다. B-P경은 1928년 헝가리 파라드에서 처음 걸스카우트세계연맹이 결성되었을 때 “나의 소망은 가장 가까운 장래에 세계에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선(Good)을 위해 걸스카우트 운동체가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 여러분 앞에는 향후 세계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요한 발걸음을 시작할 책임과 기회가 놓여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B-P경의 소망은 이루어져 걸스카우트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조직체로 성장하였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활동하는 대표적인 운동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걸스카우트와 함께한 시간도 어언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교단에 선 시간과 같다. 처음 교직에 발을 내디디면서 아이들과 함께 들에서, 산에서 자연을 벗 삼아 호연지기를 키우며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 나갈 꿈나무들과의 만남을 허락한 시간들이었다. 선서와 규율을 생활하며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일일일선(一日一善) 표방이 너무 매력적인 요소로 끌려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기본 지도자 훈련 과정을 마치고 성인 대원으로서 첫 선서할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미래의 세계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다고. 그리고 젊은이들을 인도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주마등처럼 아련한 추억들이 잔잔하다. 처음 유녀대를 맡아 한라산에서 야영을 할 때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표고밭에서 온밤을 지새웠던 일은 제일 힘든 야영으로 기억된다. 요즘은 시설에서 갖추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전문 지도자가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은 제주 연맹 자체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기도 함). 혼자 40여 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깊은 산속에서 야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아직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어디서 그런 열정과 배짱이 나왔을까? 그런데 이렇게 좋은 추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 학교에 있을 때이다. 뒷뜰 연합야영이 끝나고 주변 정리도 거의 마무리될 쯤, 쓰레기 소각장에서 야외용 부탄가스버너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근처에 서있던 걸스카우트 대원 한 명이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물론 옆에 있던 동료 교사도 얼굴과 목 등에 심한 화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 수송하여 장기간 치료를 받은 사고였다. 보험처리로 치료비는 해결되었지만 향후 얼굴에 생기는 흉터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학부모 요구 앞에 정말 몇 달간은 학교 출근하기가 두려웠었다. 다행히 지역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로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그때 당시는 왜 내가 이런 단체 활동을 맡아 고생을 사서 하는지 무척 후회가 되었고 다음에는 맡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걸스카우트의 상징인 ‘초록의 물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미련이 있는지…. 지금은 연맹소속의 훈련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다양한 노하우로 이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두려움 없이 개척해 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생겼다. 미래는 도전하고 개척하는 자의 몫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여명 속에 서서히 빛나는 새벽안개 풀잎에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세어보지 않고, 타오르는 화톳불 속으로 여름밤의 열기를 사르며 밤하늘의 별을 헤어보지 않은 자는 야영의 참 묘미를 모른다.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와의 신비한 속삭임으로 내 영혼을 씻을 수 있었다. 나는 특별히 운동을 한다거나 몸에 좋다는 음식을 일부러 가려 먹는 생활은 하지 않는다. 나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한 삶의 비결은 바로 대자연에서의 호연지기를 가꾸며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음에 가능하였다. 답답한 일상들을 정리하고 다시 새롭게 미래를 계획하며 진정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들을 만끽하였다고나 할까. 이제는 더욱 고귀한 시상(詩想)을 얻는 매개체가 되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나의 행복이니 이런 나의 걸스카우트 ‘초록 사랑’은 교단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계우애일을 맞이하여 규율초와 단원 선서초가 타오르는 촛불 행렬을 보며 행복감에 젖었던 순간을 회상해 본다. 우애일 주제가 ‘음식’인 만큼 기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날 하루 기아체험에 도전해 보았다. 이는 바로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음식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듯이 걸스카우트의 활동도 음식체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한국걸스카우트 조선형 총재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제2의 비상을 준비하는 대원이자 지도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Happy World Thinking Day!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본격적인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자 지구마을에는 대충 네 개의 큰 강을 중심으로 최초의 문명이 일어났다. 즉 지혜의 산물이 문명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신석기인들이 이렇게 논과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면서 촌락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일구며 대략 5000년 전부터 문자기록을 남기기 시작함으로써 역사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청동기 발견은 수확량 증대 최고(最古)의 문명을 이룬 곳은 하나같이 하천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기후가 온난하다는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류가 이루어낸 최초의 산업, 즉 농경문화에 있어서 절대적이다. 여기에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치수사업과 신소재인 청동의 발견이 바로 그것이며 신석기인들은 땅 위에서 나는 소출에 만족하지 않고 땅을 파헤치고 자연을 이용하려는 최초의 시도를 하였는데, 당시 그 작업은 노동집약적이어서 씨족에서 부족, 그리고 부족국가로의 사회구조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신석기인들이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 돌을 가져다 작업을 하는데 돌이 갈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석기를 망쳐놓는 것이었다. 화가 난 어느 석기인은 그 돌멩이를 불구덩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불구덩이에서 뭔가 붉은 물이 흘러나오더니 땅 위에서 굳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아무 쓸모 없다며 불구덩이에 던져버린 돌에서 뭔가 흘러나와 굳더니, 돌보다도 훨씬 단단하며 경우에 따라 그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는 이상한 물질이 생겼다. 바로, 인간이 청동을 발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맞는 직업의 분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서 대장장이라는 인류 최초의 엔지니어 집단이 탄생하였다. 그들은 청동을 다루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이용하여 나중에는 철은 물론 여러 가지 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첫 계단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간단한 제품이라도 정교한 석기를 만드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힘이 많이 들었으므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도구나 무기를 처음부터 청동으로 만들 수 없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 가운데 청동제 도구보다 간석기가 많이 발견된 것도 석기가 계속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의 석기는 신석기 시대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욱 정교해지고 종류도 다양해짐으로써 농경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땅을 더욱 깊게, 그리고 넓게 팔 수 있었으므로 자연히 농경지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작업도구의 발달은 수확량의 증대로 이어졌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출현 이와 같이 농경이 발달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안정된 정착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복잡해졌다. 즉 인간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농업혁명으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자 곡물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사유재산 개념이 생기고 계층이 분화되자 힘 있는 자가 곡물을 사유화하고 그것을 자기의 곳간에 쌓아두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여나갔지만,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단순한 지도자가 권력을 가진 지배자로 바뀌게 되었으며, 4대 강 유역의 통치자들은 주민들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일 필요가 있는 데다가 마구잡이로 노동력을 착취할 대상이 절실해졌다. 힘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기였던 만큼 힘 있는 부족이 약한 부족을 무력으로 흡수통합하면서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서 다수의 피지배층, 즉 노예들을 양산하게 되어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이라는 극단화된 사회계급은 나중에 계급투쟁의 불씨를 일으켰으며 피를 먹고 사는 민주주의 쟁취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 불평등’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단순논리가 아닌 사회구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두고두고 대물림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4대 문명권에서 지배계층에 속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다수의 민중들을 쥐어 짤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병 주고 약주는 식’으로 치수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번 공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니 불평하지 말고 노역에 나와라!” 당시로서는 치수 관개사업 등이 최대의 현안문제여서 얼마 만큼의 소출을 거둘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말로 해서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공사장에 나서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최고 지배층은 대규모의 공사에 지도 감독자를 내세우는 한편,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을 관리하는 중간 지배계층을 세워 놓았다. 다시 말해서 ‘규모가 큰 사업을 지휘하고,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제권력과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관료구조가 필수적’이었으며 4대 강 유역의 고대사회에는 전제권력과 신권정치가 공통적이었다. 교역 발전으로 성문법 탄생 서양사의 모태가 되는 지중해 동남쪽에 지금으로부터 약 9000년 전(기원전 7000년~5000년 경) 인류 최고의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났다. 그곳은 일찌감치 신석기시대를 졸업하고 금속기를 사용하였으며 같은 오리엔트 문명권이지만 이집트와는 달리, 여러 민족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줄기를 따라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한 것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특징이라면 ‘바빌론’은 그들이 건설한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오리엔트 세계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리적 특성이 개방적이었으므로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일 이외에도 다른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서 국제무역을 중개하였으므로 그들의 도시는 자연히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물물교환의 교역형태가 아닌 화폐경제 시대를 다른 문명권에 비해 일찍부터 맞이하였다. 도시간의 교역은 활발한 인적교류를 가져왔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자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걸핏하면 이해관계로 다투기 일쑤였다. 특히 다변화된 주변 여러 지역과의 교역은 관련법 제정을 서두르게 함으로써 법제가 발달하여 최초의 성문법이 나왔고 종교적으로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다신교적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더불어 오리엔트의 한 축으로서 그리스 문명을 꽃피우게 한 이집트 문명은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상형문자를 발명하였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피라미드를 세우고 그들의 영화를 파피루스에 기록하였으며 생명의 불멸을 믿어 미라를 만들었다. 같은 오리엔트 문명권이지만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여러 면에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4대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이는 기원 전 3100년 경부터 기원 전 331년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연속성이 이어졌기 때문이며 메소포타미아의 흥망사와 인더스 문명의 분열사, 그리고 중국의 왕조교체 등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일강의 지리적 특성이 외부의 범접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일강의 혜택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구약성서에 있다. 즉 셈어계 유목민에 속하는 헤브라이 인들이 전 오리엔트 지역을 강타한 대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들어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잘 정비된 계획도시로 유명한 인더스 문명은 서북방에서 들어온 아리아인에게 파괴되고 말았다. 아직도 해독되지 못한 문자를 남기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선주민이 과연 누구였는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지만 새롭게 인더스의 주인이 된 아리아인은 계속해서 인도에 고대 문명을 전개해 나가면서 힌두교의 뿌리인 브라만교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 갔다. 인더스 문명이 다른 문명권에 비해서 특이한 점은 까마득한 고대의 사회제도와 종교가 오늘날까지 인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앞에서 이야기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유물과 유적으로만 존재할 뿐, 종교나 사회제도는 모두 이슬람화가 되고 말았으며 중국의 황하 문명도 고대와 현대의 연결선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인도 대륙은 여전히 브라만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힌두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로 자리잡고 있으며 아리아인들이 선주민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만든 신분과 계층분화가 지금도 인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카스트 제도로 남아 있다. 인도의 국토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구 소련을 제외한 전 유럽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며 그 곳에는 유럽 인구의 거의 두 배인 9억 수천만 명이 살고 있다. 더욱이 인종적으로는 네 가지 계통이며 언어는 수백 가지나 된다. 다시 말해서 인도는 유럽과 같은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유럽이 크리스트교 문화권을 형성하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이슬람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는 오늘날에도 인더스 문명과 브라만교, 그리고 카스트 제도라는 힌두 문화권을 이루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뿌리 깊은 힌두 문화권이 싫어 영국에서 인도가 독립할 때 이슬람 교도들이 파키스탄으로 따로 독립하여 나왔지만 말이다. 동북아시아에도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경부터 중국 최초의 농경문명이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일어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신화로 시작되는 중국의 역사가 이때부터 열리게 되었으며 치수사업은 역대 중국 왕조의 현안 사업이었다. 중국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그들의 조상으로 받들고 있는 황제(黃帝) 이전에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 또는 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수인씨(燧人氏)라는 삼황(三皇)이 있었는데, 이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적인 존재였고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중국의 문명적 기반을 닦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그들의 조상으로 황제(黃帝)를 받들고 있다. 황제는 동이족(東夷族)과 싸워 중원(황하의 중류)의 비옥한 평원을 정복하여 중국 최초의 농경사회를 열었으며 문자와 역법, 화폐와 수레 등을 발명·보급한 당대의 영웅이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느 개인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지배집단 전체가 황제라는 특정인물로 묘사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렇게 당시의 중국인들은 소수 지배집단의 지도로 황하강을 수리(水利)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문명을 일구어 나갔다. 아무튼 황제(黃帝)의 뒤를 이어 소호→전욱→ 제곡→요→ 순으로 이어지는 다섯 명의 임금이 중국을 다스렸으며 이를 오제(五帝)라 한다. 사기(史記)에서는 소호를 빼고 그 자리에 황제(黃帝)를 넣기도 하지만 학자들은 삼황을 신화로 보는 데에 일치하면서도 오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즉 오제를 실존인물로 보는 사람과 단지 신화적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유교적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공자가 ‘요·순’으로 대표되는 선양의 미덕을 높이 평가했지만 요(堯) 임금이 혈통에 상관 없이 덕망이 높았던 순(舜) 임금을 발탁하여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순 임금 역시 우(禹) 임금에게 왕위를 넘겼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세습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왕권이 약했다는 점 이외에 그들 모두 치수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 제조업은 200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18.9%가 종사하고 국내총생산(GDP)의 33.8%를 만들어내며 총수출의 84%를 차지하는 핵심 수출 산업이다. 국내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연구개발 투자를 주도하고 경제의 공급 역량과 경쟁력을 키우는 근간이기도 하다. 제조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62년 14.4%를 기록한 이래 상승세를 지속해 1988년 31.9%로 정점을 쳤다.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고도성장이 제조업 확대의 원천이었다. 1989년 이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하락세로 돌아서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GDP의 30% 선을 밑돌았지만 2000년에 31.3%로 오른 뒤에는 3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제조업이 산업과 수출의 중심 역할을 하기는 다른 나라도 대개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전체 산업 중 제조업 비중이 선진국보다도 크다. 광업까지 합한 제조업, 즉 광공업이 국내총생산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비중은 2000년 현재 34.6%로 미국(19.5%), 일본(24.5%), 독일(23.6%) 등 선진국보다 크게 높다. 제조업뿐 아니라 건설업(2000년 GDP의 8.2%)과 농림어업의 비중(4.6%)도 높다. 반면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산업의 생산구조는 서비스업 비중이 낮은 게 특징이다. 제조업 주력 업종 10년 주기로 바뀌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열쇠를 쥔 제조업은 대략 10년 주기로 주력 업종을 바꿔왔다. 지난 1960년대에 본격 경제개발이 시작될 때는 경공업을 위주로 출발했다가 1970년대에는 철강·기계 등 중화학공업으로, 1980∼1990년대 초반까지는 가전·자동차 등 조립가공 산업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IT 산업으로 중심축을 옮겨왔다. 1960년대에 주력 산업이었던 섬유, 의류는 생산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1970년대 이후 하락세다. 1970년대 주력 산업 중에서는 철강 산업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생산·수출 비중이 하락세로 들어섰다. 하지만 기계 산업은 생산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지금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1980년대 주력 산업 중에서도 가전 산업은 1990년대 들어 생산·수출 비중이 모두 하락했다. 하지만 자동차는 수출 비중이, 조선은 생산·수출 비중이 여전히 상승세다. 1990년대에 주력 산업으로 떠오른 반도체와 휴대폰을 주력으로 하는 통신기기, 컴퓨터 등 IT 산업은 이제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이 됐다. IT 산업은 90년대 전반에는 반도체가, 후반에는 통신기기와 컴퓨터의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2000년대 들어서도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IT 관련 제품의 생산 비중은 1990년 8.4%에서 2000년에는 18.3%로, 수출 비중은 18.0%에서 34.1%로 급격히 높아졌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산업의 주력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컬러 티브이를 주력으로 하는 가전, 휴대폰, 개인용 컴퓨터(PC : Personal Computer)를 주력으로 하는 컴퓨터, 철강, 석유화학, 섬유 등을 들 수 있다. 수출액 기준으로 자동차, 전기전자, 철강, 섬유 등은 최근 꾸준히 세계 5위권 안팎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IT 관련 품목 중에서는 DRAM 반도체와 조선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다. 그동안 주력 산업을 바꿔가며 열심히 수출한 결과 1970년에 고작 8억 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수출은 1995년에는 25년 만에 100배가 넘는 1000억 달러 규모를 달성했다. 이어 2000년에는 다시 200배인 1723억 달러를 기록해 수출액 규모로 세계 12위가 됐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는 수출이 마침내 20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1000억 달러 고지를 점령한 지 9년 만이다. 질 좋은 노동력 강점, 청년 실업 큰 문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강점은 무엇보다 질 좋은 노동력에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노동력의 질이 외국에 비해 좋은 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경제활동인구 중에서도 15~54세의 청장년층이 많아 노동력이 젊다. 경제활동인구 중 청장년층의 비중이 74.1%(2001년 기준)로 미국(71.0%), 일본(65.3%)을 크게 웃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청년층 실업이 많아서 우수한 청년 노동력을 사장시킴으로써 경제성장 잠재력에 손실을 보고 있다. 2002년 10월 현재 국내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는 2224만 2000명. 일자리를 원하나 얻지 못한 실업자가 60만 5000명이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중, 곧 실업률은 2.6%를 차지하고 있다. 실업률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청년 실업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20대 청년 실업률은 1997년 5.4%에서 1999년 10%를 넘었고 2002년 3/4분기에는 5.7%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02년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가운데 실업자가 24만 2000명, 학교를 다니는 등 교육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무직 상태(비통학, 비경제활동인구)로 있는 사람들이 108만 7000명으로 전체 청년층 유휴인력은 학교 졸업·중퇴자의 25.4%인 132만 9000명에 이른다. 학교를 마친 청년 4명 중 1명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자가 96만 명으로 남자 36만 9000명에 비해 2배 더 많다.(한국노동연구원, 청년층 노동시장의 구조변화, 2002. 12. 18.) 이대로 청년 실업이 계속된다면, 전통적으로 질 좋은 노동력을 활용해 성장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산업의 강점이 퇴색하게 될 것이다. 앞 선 정보화 기반, 중국 인접성 강점 우리나라 산업의 또 한 가지 강점은 21세기 디지털경제 시대를 이끄는 통신·인터넷 같은 정보화 기반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인터넷이나 이동전화 보급률도 미국, 일본을 앞선다. 21세기 세계의 주도 산업으로 떠오른 IT 산업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명목국내총생산에서 IT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8.1%로 미국(8.3%)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불변가격 기준으로는 우리나라가 15.6%로 미국(1998년 9.1%), 일본(1999년 11.4%)보다 훨씬 높다. 중국이라는 거대 잠재시장에 근접해 무역을 쉽사리, 많이 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도 강점이다. 중국은 명목국내총생산이 2000년 현재 아직 일본의 22%, 미국의 11% 규모지만 무려 1조 달러를 넘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도 아직 낮지만, 고소득층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6000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내수기반을 갖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지난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이래 2000년까지 연평균 9.5%, 2001년부터 2003년 사이에도 전년 대비 평균 8% 전후의 고성장을 지속했다. 앞으로도 중국은 7∼8%대 성장을 지속해 2010년대에는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 사이 그리고 장기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 제품의 주요 수요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산업의 최대 취약점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핵심 기술이 없고 연구개발 투자가 크게 부족한 데 있다. 연구개발 투자가 미흡한 결과 국내 주력 산업의 외형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지만 기술경쟁력은 취약하다. 생산기술만 선진국 대비 90% 이상의 기술력을 갖고 있을 뿐 기술개발, 표준화, 정보화 능력은 대부분의 산업에서 선진국의 60∼80%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매년 기술도입액이 기술수출액을 초과한다. 2000년 기술수출액은 기술도입액의 6.5%에 불과해, 미국(275%), 일본(239%)은 물론 다른 선진국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그 결과 기술 수출액과 기술 도입액의 차이, 곧 기술수지도 큰 적자를 내고 있다. 기술수지 적자폭은 지난 1990년에는 11억 달러였으나 2000년에는 29억 달러를 기록, 매년 적자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기술 경쟁력이 약한 까닭에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은 후발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의 추격에 날로 취약해지고 있다. 기술력·임금경쟁력·서비스업 약점 우리나라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데는 임금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싼 것도 한몫한다. 우리나라는 한때 저임금 제조업을 산업 경쟁력의 근간으로 삼았다. 지금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임금 수준이 낮다. 하지만 개도국 등 주요 수출경쟁 상대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상당한 고임금 국가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임금 수준은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 개도국은 물론 대만, 홍콩 같은 경쟁국보다도 높다. 그만큼 수출할 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국내 제조업의 평균임금은 월 1415달러(2000년 기준)로 싱가포르보다는 낮지만 대만, 홍콩보다는 높다.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등에 비하면 4∼25배나 높다. 그래서 국내 산업은 상대적 저임금을 우위로 삼은 저가형 제품 부문에서 중국과 ASEAN 각국의 추격을 당하는 처지이다. 저가형 제품 시장에서 개도국의 추격을 받아 경쟁하기 버겁다면 고가품 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고가품 시장에서는 기술력을 요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기술력이 취약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서비스 산업 발전시켜 경쟁력 강화해야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 역시 현재 우리나라 산업이 안고 있는 큰 약점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먼저 외부경제 창출 효과(어떤 경제 활동이 다른 경제 주체·부문에 공짜로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는 효과)가 큰 물류 산업, 통신 산업, 금융·보험업 같은 공공재 성격의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경제 균형을 이뤄 발전시키는 효과도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서비스 산업이 국내총생산(명목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기준으로 52.6%로 5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GDP의 65∼75%대인 선진국에 비하면 크게 낮다. 서비스 교역이 상품 수출입을 포함한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9%로, 세계 전체 평균(18.1%)에 못 미친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비중도 낮고, 업계 생산성도 낮다. 서비스 산업의 1인당 부가가치도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과 영국은 제조업의 약 75%이고 미국은 제조업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같은 서비스 산업 부진은 장차 우리나라 제조업의 발목을 잡고 국민경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신동호 | 월간 편집장 dongho@donga.com 사회는 인간의 본성이 빚어낸 조각품 대체로 후진국에서는 좌, 우의 극단주의자가 득세해 사회를 갈등의 낭떠러지로 몰고 간다. 한국 전쟁은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선진국이 될수록 극단론자들은 설자리를 잃고 온건한 좌파와 온건한 우파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대화가 가능한 온건한 좌와 우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 사회적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고, 발전된 사회 제도가 도입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과거 냉전 시대에 극단론자들이 만들어 낸 낡은 이데올로기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볼 단계에 이르렀다. 사회를 계급 갈등의 관점에서만 보는 데서 벗어나 경쟁과 협동의 관점에서 사회와 정치·경제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파는 공정한 경쟁을, 좌파는 진정한 협동을 만들어 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쟁과 협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행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인간의 본성과는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시각이다. 사회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만든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빚어낸 조각품이라고 하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사회 환경이 바뀌면 인간의 본성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혁명을 하고 세뇌 교육을 해도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인민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이것이 공산주의 몰락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구소련 사람들은 공동 소유인 집단농장에서는 대충 일을 했지만, 자기 집 앞마당에 심은 야채와 과일은 애지중지 가꾸었다. 그러니 사회가 유지될 리 만무하다. 지구 위의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도 토지의 사적인 사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공산주의자의 결정적 착오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진화론은 협동보다는 경쟁을 강조해 왔다. 진화론하면 누구나 ‘적자생존’, 즉 경쟁과 도태를 연상시킨다. 19세기 중반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을 때 당시 산업 자본가들은 자유 경쟁과 도태를 진화의 원리로 설명한 다윈을 구세주처럼 생각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1850년대에 스펜서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지 다윈이 만든 말이 아니다. 다윈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 못지않게 동물 사회의 협동과 공생 같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의 발전도 진화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은 먹이와 번식 상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늘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동맹 관계를 맺고 서로 돕고 사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종류가 다른 박테리아들은 상대편 박테리아가 버린 노폐물을 먹으면서 청소부로 함께 산다. 작은 물고기들은 한꺼번에 떼를 이루어 다녀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포식자에게 덜 잡아먹힌다. 벌이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과 곤충의 공생 관계, 뿌리혹박테리아가 식물의 뿌리에 살면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쉽게 해주는 공생 관계도 협동이 행동의 기본 원리다. 동식물 세계에도 협동과 공생 존재 동물 사회 집단 내부의 협동 행동도 호혜적 이타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가축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박쥐도 굶주린 동료에게 피를 나누어 준다. 제인 구달은 탄자니아에서 고아가 된 아기 침팬지를 떠맡아 기르는 침팬지 집단을 자주 목격했다. 내가 죽어 우리 아이가 고아가 됐을 때 다른 챔팬지들이 나의 아이를 키워 줄 것이라는 기대가 침팬지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1964년 뉴욕에서 세계무역박람회가 열렸을 때 개미가 전시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코너에는 “2000만 년 동안 개미 집단이 진화를 못한 것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라는 자유무역주의자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고도로 분업화된 개미 사회의 협동 체계에 대한 지식 없이 개미를 맹목적으로 일만 하는 존재로 착각한 데서 나온 발상이다. 이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많은 협동 사례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다윈주의와 진화론을 우파의 나팔수처럼 혐오해 왔다. 미국의 좌파는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에 대해 생물 세계의 자연도태 원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한 자본주의의 앞잡이라고 공격했고 윌슨 교수에게 계란을 던져 강의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자들이 경쟁만을 강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윌슨도 자신의 인생 후반기에는 협동과 희생이 동물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또한 사회생물학의 토대 위에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한 진화심리학은 영장류 등 고등한 생명체일수록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하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 산다는 것을 밝혀냈다. 1980년대에 등장한 ‘사회적 지능 가설’은 복잡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계산 능력 때문에 영장류와 인간의 두뇌가 진화했다고 본다. 실제로 영장류는 집단생활을 하면서 호혜적 이타 행동에 기반한 동맹 관계를 자주 형성한다. 호혜적 이타 행동이 가능하려면 내가 베풀었을 때 자신도 보답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개체들과의 상호 관계를 기억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교환 가치를 계산하고, 상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가 발달해야 한다. 인간은 두뇌가 커지면서 언어가 생겨났고 정교한 분업, 협업, 동맹처럼 호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지능이 발달했다. 인간의 협동은 초기에는 사냥한 고기를 나눠 먹고, 상대방의 털을 골라 벼룩을 잡아 주는 것 같은 행동을 통해 진화했다. 큰 짐승을 잡아 혼자 먹겠다고 해보았자 다 먹지도 못할 뿐더러 나중에 다른 사람이 먹거리를 들고 왔을 때 얻어먹지도 못한다. 일단 베풀고 나중에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게 서로 이익이다. 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과 미시간 대학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액설로드는 베푸는 자와 배반자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컴퓨터 토너먼트 게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실험에서도 베푸는 것이 배반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이라는 게 증명됐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에서는 잘 베풀면 돌아오는 것도 많은 것일까? 물론 배신자도 있다. 베풀어도 상대가 배신을 하면 어떻게 할까? 이를 ‘무임 승차자 문제’라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물은 결속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어서 살 수 없다. 복잡한 서열과 동맹 관계를 가진 사회 집단을 이루는 영장류는 무임 승차자 문제를 처벌과 보상을 통해 해결했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존재는 린치를 당하는 등 처벌을 받는다. 인간은 상대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상대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다는 경험을 잘 기억한다. 우리의 뇌가 무려 34년 동안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네가 나를 도우면 나도 너를 돕겠다는 상호주의에 기반을 둔 일종의 ‘은인 기억 메커니즘’이다. 사람의 뇌는 건물이나 풍경을 기억하는 데는 둔하지만 얼굴을 기억하고 구분하는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돼 있다. 인간이 고도로 분업화된 복잡한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베푼 것보다 상대가 계속해서 적게 베풀 경우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무임 승차자를 응징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켜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임 승차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이 600만 년 전 침팬지처럼 50명 정도의 집단을 이루어 살 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15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는 약 150명 정도의 집단을 지어 살았고 집단이 커지면서 집단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더욱 복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정교한 사회적 지능이 발달해 요즘에는 수억 명이 집단을 이뤄 사는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상대의 마음과 행동을 읽은 심리학적 기술, 상대가 하는 얘기가 거짓말인지 판단하는 기술을 진화시켰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연역적 추론 능력을 갖게 된 것도 상대의 속임수 찾아내기를 통해 발달했다고 보고 있다. 상대의 얘기와 행동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가설을 세우고, 상대의 행동과 과거의 경험을 분석해 가설이 틀린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연역적 사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베푸는 사람은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한다 이기적인 이익 추구, 사회적 계급, 성적 질투심이 어떤 사회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듯이 인간의 본성에는 상대를 도움으로써 협동 관계를 구축하고 상호 의무를 다 하는 본성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물론 개인적 이익 추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익 추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협동만 하고 개인의 이익 추구를 무시한다면 무임 승차자가 많이 생겨 사회가 유지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손익 계산을 따져 이익이 된다고 생각될 때만 남을 돕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타 행동이 단지 계산된 행동이 아닌 본능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 그레고리 번스 박사는 사람이 서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우면 뇌가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란 것을 실험을 통해 2002년에 밝혀냈다. 실험자를 상대로 협력 또는 배신을 하도록 하는 상황 실험에 참가하게 한 후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장치로 촬영했다. 그 결과 서로 협력할 때 사람의 뇌에서는 즐거움을 느끼는 부위가 최고조로 활성화됐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때나 귀여운 얼굴을 보았을 때 또는 돈을 보거나, 흥분제 따위를 복용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협력을 할 때에도 활성화됐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협동심을 키워 왔던 것은 과거 인류의 조상이 사냥 몰이를 하거나 농작물을 경작할 때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에 불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은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이 사회적 필요성의 산물이라고 주장해 왔다. 법이나 약속을 어기면 처벌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처벌이 두렵거나 보상을 받으려고 이타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즐겁고 쾌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베푸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미시건 대학 스테파니 브라운 교수팀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장수한다는 조사 결과를 2003년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1987년부터 디트로이트 근교에 사는 노인 423쌍의 사망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돕지 않은 노인은 친구, 친척, 이웃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나 배우자를 정성껏 돌본 노인보다 사망률이 2배가 높았다. 반면 많은 사회적 지원을 받은 노인은 지원을 받지 못한 노인과 사망률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게 밝혀진 것이다. 흔히 우리는 도움을 받으면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다. 선행을 하면 뇌가 즐거우니 오래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경쟁과 협동이 발전의 원동력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남에게 베풀기만 한다면 발전이 없다. 결국 인간의 의욕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꿈과 욕망을 채우려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능사는 아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사원들 간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사업본부, 인센티브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그 폐단도 많다. 다른 부서가 잘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부서 간 장벽을 뛰어넘는 매트릭스 체제가 도입되고 있다. 또한 숱한 정책 실패를 가져온 고질적인 부처 이기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내에는 위원회가 만들어져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늘 경쟁하면서 협동 관계를 만들어 낸다. 분명한 것은 개인이 경쟁과 협력 어느 것을 택하든 사회 전체로 볼 때 손해보다 이익이 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 어떻게 하면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인지, 협력을 할 경우 이를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지 고민하는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 세력이 있을 때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좌우의 날개가 아닌 경쟁과 협동의 날개로 난다.
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선사인들이 던진 수수께끼 지난 호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울산 지역의 암각화 두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반구대암각화는 각종 동물상을 중심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고, 천전리암각화는 추상적인 기하하적문양이 돋보인다고 말씀드렸지요.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암각화의 대세랄 수 있는 방형기하문 암각화를 찾아갑니다. ‘방형기하문’이란 네모모양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말합니다. 그 형태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상하는 직선, 좌우는 안쪽으로 휘어진 곡선형이며 전반적으로 사다리꼴 형태입니다. 내부에는 가로 혹은 세로로 선이 몇 줄 그어지고 둥근 구멍을 파 놓기도 합니다. 이 바위구멍은 성혈(性穴)이라 하여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며 풍요, 다산, 재생의 의미를 지닙니다. 외곽선에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가는 선을 짧게 나타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이 기하문을 일컬어 무복(巫服)을 입은 샤먼을 형상화하였다 하여 패형(牌形)암각화, 시베리아계열 암각화에서 보이는 신면(특히 태양신)으로 보는 신상(神像)암각화, 방패와 같은 모양에서 방패형암각화, 석검의 손잡이 부분에서 유래하였다는 검파(劍把)형암각화 등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이 글에서는 생김새만 따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방형기하문이라 기술합니다. 이 독특한 기하문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우리로서는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신앙관, 예술의식 등을 단지 추측만 할 뿐 비밀을 풀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우주여행을 하는 이 시대에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하겠습니다.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던 돌에 새겨진 이 수수께끼는 ‘우매한 현대인들아, 내가 남긴 문제 좀 풀어봐라, 모르겠지? 메롱!’ 하며 우리들을 놀리듯 합니다. 방형기하문의 본고장 고령 일대 암각화 우리나라 방형기하문의 시작은 고령 양전리암각화에서 시작합니다. 1970년에 발견되었지만 반구대와 천전리암각화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하다 199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암각화들이 발견되면서 그 위상을 인정받습니다. 현재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알터암각화’는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이 낮고 왼쪽이 높게 생긴 미끈한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양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방형의 아랫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에 머리카락과 같은 짧은 선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고 윗부분에는 ‘U’자 형으로 바위를 파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문양은 점차 머리카락을 모양의 짧은 선 부분이 간략화 되고 생략되어 가는 양상으로 새긴 것으로 보아 이곳의 것은 시대가 앞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곳의 동심원은 함안 도항리나 천전리암각화와 같이 태양신을 묘사했다고 봅니다. 이곳과 가까운 안림천변 안화리에도 암각화가 있습니다. 양전리 것에 비해 소규모로 태양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하문 또한 양전리 것과 유사합니다. 울산과 고령의 암각화에서 보았듯 우리나라 암각화가 위치한 곳은 하천과 밀접합니다.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암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100여 미터 떨어진 하천가에 있었는데 거북을 빼닮은 길한 형상이라 마을 입구에 모셔둔 것입니다. 거북 등에 해당하는 부위에 기하 문을 새기고 가로줄을 그어 위아래에 각각 두 개의 성혈을 조성했습니다. 선사시대에도 거북모양의 물상은 길한 것이었나 봅니다. 거북을 닮은 반구대에 암각화를 새겼고 이곳 거북을 닮은 바위에도 역시 암각화를 남겼으니까요. 태양신을 맞는 포항 일대 암각화 포항이란 도시는 세계적인 제철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공장은 기계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그런가요, 포항에는 ‘기계’라는 행정구역이 있습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지요. 물론 한자가 다르니 그 의미도 다르겠지만 이렇듯 재미있는 지명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특히, 전라남도 쪽에 가면 대구면, 마산면, 부산면 등의 지명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기계면 인비리에는 보기 드물게 석검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논 한가운데 모인 세 기의 바위 중 제일 키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방형기하문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바위들은 생김새로 보아 고인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원래는 석검의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고 하는데 논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바위가 옆으로 누웠다고 합니다. 석검이 두 점, 맨 아래에 석촉 형태의 암각이 한 점 새겨져 있습니다. 맨 윗부분에 새겨진 석검의 경우는 이중선으로 나타나 아마도 칼집을 나타낸 듯합니다. 여수 오림동에서 발견된 암각화와 함께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습니다. 석검 형태의 암각화는 방형기하문 형태를 검파형암각화라고 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석검의 칼자루 부분이 방형기하문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방형기하문이 검파형암각화라고 학계에서 의견일치를 본다면 이곳 암각화는 검파형암각화의 시원이라고 봐도 무난하겠죠? 흥해읍 칠포리암각화는 곤륜산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암각화가 분포해 있습니다. 이곳이 위치한 영일만 일대는 해(태양신)를 맞는다는 뜻이니 태양숭배사상이 지배했던 선사시대에 이곳은 특히 신성한 곳이었나 봅니다. 또한 곤륜산은 전설의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곳이고 마시면 불사신이 된다는 강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지상의 낙원이 아니던가요. 칠포해수욕장으로 흐르는 곡강천 인근에 규모면에서 으뜸가는 성혈바위가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칠성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정상부뿐만 아니라 곳곳에 성혈을 파두고 정상부에서 아래로 바위 전체를 죽죽 파내어 온통 골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바위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이 일대가 성혈과 암각화 천지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일대 암각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소위 곤륜산 ‘가’지구로 서북쪽 기슭 3부 능선의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모인 암면 네 곳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하문의 크기도 대규모로 위 길이가 96센티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길쭉하게 생겨 흙에 덮여있는 바위 면에는 여근암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곤륜산 ‘나’지구는 칠포2리 인근 바닷가에 위치한 범선 레스토랑 옆 계곡 일대입니다. 아쉽게도 곤륜산 일대에 대규모 산불이 난 후 나무더미를 계곡으로 모아 방치해 두어 접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불 덕분에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암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별자리에서 따왔을 거라는 윷판형 암각화의 흔적도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불태우는 엄청난 재앙 속에서 몸서리쳤겠지만 돌이라서, 바위라서 화마를 뿌리치고 살아남았습니다. 돌은 선사와 현대를 잇는 힘입니다. 선사도시 경주의 암각화 경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도시입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암각화도 볼 수 있는 선사도시이기도 합니다. 금장대암각화는 형산강 수면위에서 약 15미터 높이에 있는 암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시대 금장대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암각화로 가기 전 만나는 산소에 초석자리가 남아 있지요.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면 앞으로는 제의공간으로 여겨지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서 경주시내를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일품인데 옛사람들은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 하여 경주팔괴의 하나로 일렀습니다. 이 암각화에는 방형기하문은 물론이고 동물의 발자국, 꽃처럼 묘사한 원형다공문, 여근, 인면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특히, 미완성 형태의 방형기하문이 한 점 보이고 있는데 그 형태가 두 눈(성혈)을 말똥말똥 뜨고 바위 면에 붙어있는 매미와 같습니다. 현재 육안으로 잘 보이는 암각화는 ‘V’자로 꺾인 주암면의 왼쪽 암면 좌측 끝에 모여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역‘V’자형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 여러 점과 여근형상 한 점, 동물 발자국 두 점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바위 면은 지의류(地衣類)가 퍼지면서 백화현상마냥 탈색해가고 있고 균열조짐까지 보여 안타깝습니다. 그런 바위 면에 안타까운 눈짓을 주고 시원하게 펼쳐진 형산강 너머 경주분지를 내다보다 잠시 눈을 감습니다. 이제부터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새벽부터 금장산 아래 강가는 분주했다. 며칠 전 제사장이 하늘신을 모실 제의 장소로 이곳으로 결정했고 드디어 오늘 신을 부르는 바위그림을 새기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부족에서 제일 솜씨가 좋은 청년들 몇이 제사장으로부터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른 후 바위를 타고 올라와 바위 앞에 서 있다. 긴장했을까. 그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다. 동경을 만지작거리는 제사장은 태양신이 왕림하길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벌판을 비추자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경 빛이 눈부시다. 부족원들은 강 아래서 엄숙한 침묵으로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윽고 그림 한 점이 새겨지고 제사장은 신에 대한 의례에 여념 없다. 방패처럼 든든하게 태양신이 이 마을을 지켜주십사 하는 기원이었다. 이번에는 바위를 쪼아내 동물의 발자국을 새겼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한 기원이었다. 이어서 종족 번영을 위한 성혈을 새겨 넣었다. 얼마 전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피해가 극심했던지라 이들의 제의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다." 안심리암각화는 경주 내남면 안심리 광석마을에 있습니다. ‘광석(廣石)’이란 이 일대에 고인돌 덮개돌과 같은 넓은 돌이 많아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암각화가 새겨진 2미터 넘는 길이의 바위를 고인돌의 덮개돌로 보기도 합니다. 현재 바위의 정상부에 성혈이 뚜렷이 확인될 뿐, 바위 동쪽 윗부분에 집중된 방형기하문은 육안으로는 극히 일부만 확인됩니다. 이곳에도 지의류의 횡포가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훼손된 부분도 보입니다. 마을 이름은 ‘안심(安心)’인데 문화재 관리는 정 반대로 불안(不安)하기 그지없습니다. 암각화와 부처님의 만남-영주 가흥동암각화 시루떡을 옆으로 뉜 듯한 길쭉한 암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암각화는 마치 새끼 게들이 영주시내를 흐르는 서천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암각화에 비해 많이 도식화되어서 암각화 중에서 후대에 속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로선만 나타나고 내부에 성혈이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위치에 암각화가 세 점 나란히 자리하고 보니 세로선과 세로선이 만나 원을 만들어 게의 몸체를 이룬 듯하고 두 줄로 그어진 내부의 가로줄이 게의 다리를 나타낸 듯합니다. 특히 이 암각화가 있는 암벽에는 보물 제221호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고, 지난 2003년에는 6월 집중호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마애여래좌상이 함께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애삼존불이나 마애여래좌상이나 불상의 눈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파져있습니다. 돌부처의 눈이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중들의 그릇된 믿음의 결과라 아쉽기도 하지만 눈과 코마저도 민중들에게 과감히 내던져준 부처의 자비가 돋보인다 할 것입니다. 다른 암각화에서는 성혈이 흔히 보이는 데 반해 이곳의 성혈은 기하문 위쪽 한 곳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들을 바라는 민중들이 불상의 눈에 성혈을 새긴 모양입니다. 그들의 기자신앙은 곧 생산과 번식을 의미하는 성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Out of Altai, Out of Korea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에서 찾는 소위 ‘out of Africa’ 가설에 의하면 한국, 일본, 티베트, 몽골, 에스키모, 인디언들은 유전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일하답니다. 이 북부아시아인들은 바이칼호 근처에서 살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이곳이 거대한 호수로 변하자 남으로 이동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바이칼호 일대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도 이곳을 한민족의 시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암각화가 알타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걸작이건, 이 지역 토착세력의 걸작이건 관계 없이 방형기하문양만큼은 ‘한국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장방형의 기하문양은 우리 땅에서만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방형기하문 암각화는 ‘out of Altai’가 아니라 ‘out of Korea’가 아닐까요? 우리 암각화의 정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지금도 흔한 바위 한 곳에서 ‘나야 나, 내가 암각화야’하며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매일 보는 아이들에게서도 숨어있는 재능과 장점을 발견해내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