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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최고의 교사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더그 레모브·TLAC팀 지음, 김은경 옮김, 해냄출판사 펴냄, 252쪽, 1만6800원) 코로나19 장기화로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저하되고, 교사들의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저자는 온·오프라인을 넘어 좋은 수업의 본질을 정의하고, 온라인 교실에서 학생들과 유대감을 쌓고 학생들의 집중력을 관리하는 온라인 수업의 핵심 비법 등을 담았다. 온라인 수업의 성패는 화려하고 다양한 도구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사의 교수법에 있음을 강조한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교육 구현과 미래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을 비전으로 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비전에 따른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디지털 전환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의 질 개선, 그리고 2025년부터 시행할 고교학점제인 듯싶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추진계획은 발표되었으나 총론이나 각론은 발표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 상황을 토대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바라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바른 인성의 토대 위에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다양한 지식을 창조·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교과교육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핵심역량을 함양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각 교과별로 교과역량을 정하고 이를 각론에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과역량은 실제 수업현장에서 얼마나,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연수가 2016학년도에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긴 하였으나 교과별 교육과정의 내용 변화(추가·삭제·이동 등)에 집중되다 보니 강사든 연수생이든 교과역량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았다. 강사 또한 교육부에서 연수받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으므로 교과역량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교과역량의 명칭을 안내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현장교사들의 교과역량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까지는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이 학교수업과 평가에 적절히 적용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교육부에서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과별 과정중심평가 연수를 통해 평가과제 설계 및 채점기준 작성 시 교과역량이 언급되면서 적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일부 이루어진 상태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역량함양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행 수업과 평가에 교과역량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취기준 재구조화는 어떻게? 교과역량과 더불어 수업현장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성취기준의 재구조화이다. 성취기준의 재구조화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실제 교수·학습 및 평가상황에 적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으로, 교사는 필요한 경우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성취기준을 보다 명료하게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마다 학생의 수준·환경 및 교사의 관점 등이 다르므로 교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20학년도부터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면서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높아졌으나 교사들은 성취기준 분석의 과정을 수행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과서의 내용 순서를 바꾸거나 수업 소재와 도구 등을 변경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교육과정이 등교수업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원격수업을 적용함에 있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성취기준에 대한 해설이 없다 보니 그 해석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또 교사마다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성취기준 재구조화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사연수 등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취기준과 함께 그에 따른 해설서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그 해설에 대한 교사연수를 병행하는 등 교육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해설서 및 연수자료에는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목적과 방안, 그에 따른 예시를 함께 제시하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등교수업뿐만 아니라 원격수업 등 다양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과속 … 준비 안 된 현장은 혼란 마지막으로 매번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중·고등학교에 도입된 2018학년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언급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은 일선 학교의 수업과 평가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 같지만 교육과정 개정으로 인한 학교현장의 혼란과 어려움은 소외돼 아쉽다. 교육과정이 아무리 좋은 목적과 의미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학교현장에서 이를 소화할 수 없거나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육과정 개정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혼란만 초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오히려 현장교사들의 의견은 더욱 축소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직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2020학년도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학년에 적용이 완료됐다. 때문에 현장교사들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현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논의를 거친 뒤 보완해야 할 점을 찾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7차 교육과정의 테두리 안에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현장에 요구되어지는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 서두르지 말고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 신중하게 개정되었으면 한다. 일정에 따르면 현재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총론 주요사항 및 각론 재구조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주요사항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책연구뿐만 아니라, 토론회·포럼·공청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얼마나 실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부에서는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간단한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티클리어에 관련 게시판을 만드는 등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와 의견 수렴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자인 교사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롤로그 _ 여행을 왜 하는가?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여행을 왜 하느냐고. 인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인도가 어떻더냐고 물어왔을 때와 비슷한 물음 같았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금 식상한 비유로 답을 했습니다. 여행을 해도 세월은 가고,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다만, 여행을 하며 보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에 비해, 계량화하여 말할 수 없는, 내면적인 어떤 채워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잉카문명이나 그 유명한 우유니사막 같은 것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혹은 아프리카처럼 안데스 남아메리카 그리고 티티카카란 이름들이,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 밖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런 낯선 세계에 대한 그리움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어쩌면 사랑과도 닮았네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끌리고 급기야는 그에게 온 마음을 사로잡히는 경우 같은 것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수직으로 땅굴을 파고 나가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남미 땅이야”라며 어릴 적에는 이 대륙에 대해 동화 같은 표현으로 말하곤 했지요. 지구상의 가장 먼 곳, 쉬이 다가설 수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람처럼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생이 끝나기 전에 만나고픈 존재, 결코 이를 수 없을 것만 같던 먼 바다였던 당신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2 _ 페루의 두 얼굴 남국의 온화하고 즐거운 햇빛입니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시원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엔 저마다 즐거운 미소가 흘러내립니다. 페루 리마에서 시작한 여행. 번화와 남루는 경극 배우의 뒤바뀌는 얼굴처럼 순식간에 드러나곤 합니다.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 언저리의 식민지풍 세련미 그리고 신시가지의 번화함과 산트로발 언덕길 황막한 산길과 빈민가 모습들의 대조…. 오래된 삶의 모습들이지요. 그리고 또 페루는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안데스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인 이 지역은 연중 비가 내리지 않는 가장 건조한 지역이랍니다. 그러나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로 관제 시설을 한 곳은 남국의 싱그러운 푸른빛을 자랑합니다. 반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은 모래 먼지 흩날리는 목마른 사막, 황무지의 풍경입니다. 사막과 농경지가 한 풍경 안에 드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구도입니다. 원경으로는 황폐한 사막 구릉이 펼쳐져 있고 근경으로 푸른빛 성성한 농경지라니…. 이런 비현실적 구도의 반복이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됩니다. 1년 평균 강수량이 25~5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불모의 땅이지만, 안데스의 축복으로 흘러내리는 빙하의 물줄기가 있어 푸른 목숨을 출렁이게 하는 것이로군요. 내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 와 있단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여기 페루에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생이 놀랍답니다. 다른 미사여구보다도 더 확실한 여행의 기적이지요. 따뜻한 남국, 강이 흐르는 낮은 곳에 접어들면 무성한 푸른빛이 출렁입니다. 1년에 사나흘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곳 날씨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지요. 내가 있고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 삶의 가장 놀라운 기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두 얼굴이 있습니다. 잉카의 토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로이 새겨진 제국주의 문명. 태양을 모시던 잉카의 제단은 제국주의의 침탈로 몸체를 잃고, 그 위에 아이러니한 제국주의 문명의 상징인 성당으로 트랜스포머가 됩니다. 서구풍으로 광장이 세워지고, 계획된 도시는 삶의 편리와 새로운 문명의 합리성으로 치장되어 칼과 총으로 강제되었던 사실마저 종국에는 아득히 잊게 만듭니다. 원주민들에게 노동을 착취하면서 그 대가로 기독교인이 되게 해 준다는 지독한 모순이 몇 세기 지속되어온 곳. 그 이중성이 모자이크된 이 땅의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쿠스코를 향해 버스가 안데스 산줄기를 넘습니다. 버스에 탄 몇 사람들은 고산증을 호소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저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네요. 그래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줄곧 달려 밤을 새우는 이 길이 안데스 고산을 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해발 4,000을 어떨 땐 5,000m를 넘었다고 고도계를 가진 분들이 말을 하곤 합니다. 버스가 하도 더디게 운행을 해서 차창 밖을 내다봤더니, 세상에나 눈이 내립니다. 적도 조금 아래인 이곳에, 그것도 한여름인 계절에 눈이 내린다면 얼마나 높은 곳에 놓인 길인지를 짐작할 것 같지요? 그런 높고 꾸불꾸불한 길을 17시간가량 짚어 나갑니다. 내게도 옅은 두통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나는 아득한 이 고산의 느낌이 딴 세상에 온 표징이라도 되는 듯 반갑고 즐겁습니다. 희뿌옇게 하늘이 열리고, 마음속 탄성과 함께 높은 안데스의 희끗한 산봉우리가 눈에 듭니다. 대서양을 넘어온 비구름들은 모두 이 산줄기에서 그만 발목을 잡혔나 봅니다. 리마나 나스까에서 찾아볼 수 없던 푸른 빛깔들이 온 산과 언덕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스코(해발 3,400m). 잉카인들이 세상의 배꼽이라 여겼다던, 잉카의 수도에 도착합니다. 고산 도시 특유의 으스스한 한기와 옅은 고소 기운이 먼저 마중 나와 온몸으로 안겨듭니다. 숙소에 짐을 푼 나는 주저함 없이 꼬리깐차로 향합니다. 잉카제국의 신전이었던 터를 깔고 앉은 산토도밍고 성당. 잉카인들은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는 믿음에 따라 쿠스코 도시 전체를 퓨마 모양으로 본떠서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 중심 허리부분에 설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라고 하지요. 철기조차도 없었다던 16세기 잉카문명의 거듭 놀라운 석조 기술. 그 위에 기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또한 너무나도 화려한 정복자들의 문명. 분명 거듭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스페인 침략 전인 잉카제국 시절 꼬리깐차는 잉카제국이 숭배했던 태양(Inti)을 모시는 신전이었습니다. 침략 후 스페인 사람들은 이 꼬리깐차 신전의 본래 건물은 부수고 아주 견고했던 터와 외곽 벽을 기초로 그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짓고 수도원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 큰 지진에 성당은 무너져 다시 세웠지만, 지탱하고 있는 꼬리깐차 신전의 외벽과 기초는 견고하게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리마·쿠스코 등 주요 도시에 이를 때마다 이런 풍경은 계속됩니다. 어디 페루뿐이겠습니까. 남미 대륙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새였으니, 지난 제국주의의 위세를 온몸으로 다시 느끼게 되지요. 나무를 고사시키고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더욱 푸르게 하는 기생식물처럼 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식민지를 설계했나 봅니다. 해가 지지 않을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웅장한 성당들과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그리고 서구식 감성까지 더하여 만들어진 도심을 보며 느낀 생각입니다. 잉카의 토속 문명 그 토대 위에 파괴와 혼합의 배율이 혼재되어 있는 남미 곳곳의 풍경이 마치 우리의 식민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여행 내내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식투자가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문제는 코스피가 3,300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막상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투자능력을 믿거나 특정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맹신했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살아있는 동물입니다. 그중에서 주식은 더 경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경제를 예측하는 것도 어려운데 주가가 무조건 오를 것이라고 믿고 투자하는 것은 꽤 위험도가 높은 행위입니다. 그나마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자의 손실이 덜 하지만 만약 코스피가 하락기로 접어들면 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연평균 9% 수익을 내는 지수추종 ETF 그래서 가장 좋은 투자법은 자신의 투자실력을 과신하지 말고 평균을 추종하는 투자전략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코스피·SP500·나스닥 등 증시지수는 장기 관점에서 보면 항상 우상향합니다. 장기로 투자하면 돈을 잃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2001년 6월 코스피 지수는 595지만 20년이 지난 2021년 6월 기준 코스피 지수는 3,303으로 5배 넘게 상승했습니다. 연평균 9%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만약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는 ETF(Exchange Traded Fund)에 투자했다면 배당을 빼고도 연 9%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예금이자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주면서 지수가 계속 우상향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안전한 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식으로 가장 큰 부자가 된 워런 버핏조차도 자신이 사망하면 부인에게 SP500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돈을 맡기라고 말할 정도로 지수추종 투자전략은 장기로 투자할 경우 안정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략입니다. 장기 ETF 투자라면 IRP로 해서 13.2~16.5% 초과 수익을 얻자 노후자금을 목적으로 장기투자를 할 사람이라면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를 통해 ETF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유리합니다. 개인형 퇴직연금이라고 불리는 IRP는 교직원은 의무대상이 아니지만, 증권사를 통해 퇴직연금계좌(IRP)를 개설하면 연 700만 원 한도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IRP에 연 700만 원을 납부했다면 세액공제로 111만 5천 원을 연말정산 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납부만 했을 뿐인데 연 16.5%의 수익을 낸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돌려받은 111만 5천 원은 재투자해서 복리수익을 얻으면 노후자금을 더 빠르게 불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IRP로 ETF 투자가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돈을 납부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ETF 투자를 하면 훨씬 더 많은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ETF를 사서 배당을 받으면 배당소득세, 차익을 얻으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배당소득세만 해도 기본세율이 15.4%, 양도소득세의 경우 22%인데 IRP를 통해 ETF로 수익을 내면 이 세금들을 내지 않습니다. 대신 55세 이후 연금을 수령할 때 연금수령액에 대해 수령시기에 따라 3.3~5.5%의 세금을 내게 됩니다. 그럼 납입한 원금과 수익을 합쳐서 연금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봅시다. 이미 납입한 원금에서만 13.2~16.5%의 세액공제를 받았고, 배당수익·매매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감면받은 투자금은 다시 IRP에서 재투자가 되었으니 복리로 더 큰 수익을 내는 셈입니다. 그러니 연금소득세를 낸다고 아까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어떤 ETF를 투자할 수 있을까? IRP 내 ETF 투자는 제한이 있습니다. 우선 모든 ETF를 투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에 투자는 불가능합니다. 장기투자 목적이기 때문에 지수 ETF나 주식형 ETF에 투자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하지만 주식형 ETF는 매수시점 기준 최대 70% 비중으로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차후에 ETF 수익이 발생해 비중이 70%를 넘어간 것은 괜찮습니다. 그럼 나머지 30%는 현금으로 들고 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IRP는 위험자산 비중을 70%로 제한한 것이지 ETF 비중을 70%로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 70%는 주식형 ETF, 30%는 채권형 ETF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채권 ETF는 안전성을 가지면서도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30% 비중으로 가져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IRP도 단점이 있을까? IRP 계좌 수수료는 연 0.3% 수준이지만 최근 수수료 무료 선언을 한 증권사가 늘고 있어 수수료 부담을 덜었습니다. IRP는 은행에서도 가입할 수 있지만 ETF 투자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더 좋고, 은행에서 가입한 IRP도 증권사로 이전시킬 수 있습니다. IRP 수령 시 연금소득세가 발생하는데 늦게 수령할수록 세율이 낮아집니다. 가장 큰 단점은 중도해지를 할 경우 그동안 이득을 봤던 세액공제액과 감면세액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IRP는 퇴직연금입니다. 국민의 노후안정을 위해 세금혜택을 준 상품이기 때문에 중도에 해지하지 않아야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를 최대로 받고자 연 700만 원을 납부할 경우 나중에 결혼과 내 집 마련 시 목돈 부족으로 해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IRP에 너무 많은 돈을 넣기보다는 결혼이나 주택문제를 해결한 이후 잉여현금이 발생하는 시점에 IRP에 가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옥수수 심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옥수수를 볼 때마다 박완서 단편 카메라와 워커가 떠오른다. 옥수수가 이 소설의 주요 소재 중 하나로 쓰였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워커는 작가가 1975년 발표한, 다른 박완서 소설처럼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6·25 때 목숨을 잃은 오빠의 아들, 그러니까 작가의 조카를 키우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오빠가 전쟁 중 참혹하게 죽고 올케도 폭사해 어머니와 함께 어린 조카 훈이를 키웠다. 주인공이 결혼해 첫아기를 낳았을 때도 꼭 둘째아기를 낳은 기분이었다. 주인공 어머니 소원은 손자가 좋은 대학 나와 ‘결혼해서 일요일이면 처자식 데리고 카메라 메고 놀러 나가고 당신은 집을 봐주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훈이가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하자 억지로 이과로 전과시킨다. 오빠가 6·25때 까닭 없이 죽은 것이 문과 출신인 것과 상관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훈이는 성적이 형편없이 떨어져 삼류대 공대 토목과에 입학한다. 대학은 무사히 졸업했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다. 훈이가 해외취업을 하겠다고 하자, 주인공은 ‘꼭 이 땅에서, 내 눈앞에서 잘살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겪은 더럽고 잔인한 전쟁에 대해 통쾌한 복수’라고 생각해 만류한다. 훈이는 겨우 Y 건설의 영동고속도로 건설현장에 임시직 자리를 얻는다. 현장소장이 가르쳐준 준비물에는 워커도 있었다. 그런데 한여름이 되도록 연락이 없자 주인공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 공사현장으로 찾아간다. ‘참 옥수수도 많은 고장’이었다. ‘저만치 한여름의 옥수수밭이 짙푸르고, 마을의 집들은 온통 약속이나 한 듯이 주황 아니면 빨간 지붕을 이고 있었다.’ 훈이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숙방은 좁고 더러웠고 워커에서는 악취가 심했다. 봉급도 형편없었지만, 임시직 신세라 하소연할 수조차 없었다. 공사현장은 벌써 서울물이 들었는지 인심이 박했다. 조카는 “이 옥수수 고장에서 여태껏 옥수수 한 자루를 못 얻어먹어 봤다”고 했고, 주인공은 그 얘기를 듣고 부아가 부글부글 치솟는 걸 느꼈다. 주인공은 조카에게 서울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조카는 더 비참해지고 싶다며, 그래서 “고모와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이 나라로부터 순조롭게 놓여나고 싶다”며 거절했다. 드디어 버스가 오고 나는 그것을 혼자서 탔다. 나는 훈이에게 몇 번이나 돌아가라고 손짓했으나 훈이는 시골 버스가 떠나기까지의 그 지루한 시간을 워커에 뿌리라도 내린 듯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는 그게 보기 싫어 먼 데를 바라보았다. 논의 벼는 비단 폭처럼 선연하게 푸르고, 옥수수밭은 비로드처럼 부드럽게 푸르고, 먼 오대산 연봉의 기상은 웅장하고,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도처에서 내와 개울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땅 어디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주인공은 돌아오는 길에 조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가장 쉬운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것이 빗나간 것을 자인하며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혼란을 느낀다. 소설은 ‘카메라’와 ‘워커’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데다, 감동적이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참 좋았다. 제목 ‘카메라와 워커’는 주말 여가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중산층의 삶과 한군데 뿌리내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삶을 각각 상징하는 것 같다. 고(故) 김윤식 서울대 교수는 책 내가 읽은 박완서에서 “카메라 쪽으로 키우려다 워커 쪽이 되고 만 사실에 직면해 스스로 ‘혼란’을 느끼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감동의 원천”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2012년 박완서의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문학동네)에 박완서 단편 중 단 한 편을 추천할 때도 카메라와 워커를 추천했다. 옥수수는 이 소설에서 주변 풍경 스케치에 쓰인 소품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위에서 인용한 대로 옥수수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어디서나 잘 적응해 뿌리내리기 쉬운 대표적인 작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옥수수처럼 조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가장 쉬운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고자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확인한 고모의 안타까움을 다루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찾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는 야생화 애호가들에겐 낯익은 곳이다. 우선 한국자생식물원이 있어서 필자도 여러 번 찾은 곳이다. 또 늦봄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에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산철쭉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그곳 어딘가 숲속에서 여왕처럼 도도하게 핀 백작약을 보기도 했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미륵암 가는 길엔 순백에 가까운 흰금강초롱꽃이 있어서 꽃쟁이들이 때맞추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옥수수는 열대 아메리카 원산으로,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다. 쌀·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 작물 중 하나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옥수수를 스페인으로 가져가 유럽 전역에 퍼트렸다. 이것이 16세기 들어 중국과 인도,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 옥수수는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 있다. 수꽃은 줄기의 맨 윗부분에 삼각형으로 늘어지듯 달리고 암꽃은 아래쪽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옥수수 같은 풍매화 식물에게 중요한 것은 자가수정을 피하는 문제다. 옥수수가 쓰는 방법은 시간차 성숙이다. 수꽃이 먼저 피어 꽃가루를 날린 다음 약 이틀쯤 후 암꽃이 성숙해 남의 꽃가루를 받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부분이 바로 암꽃차례다. 이 암꽃차례는 아래쪽 잎겨드랑이에 포에 겹겹이 싸여 있다. 길게 나와 있는 수염이 암술대다. 수염을 따라가면 옥수수 알곡 하나하나로 이어져 있다. 암꽃들이 주머니 속에 싸여 있으니 꽃가루받이를 하려면 이렇게 길게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책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옥수수는 꽃이 피기 전 쓰러지더라도 혼자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뿌리가 있던 곳에서 세 마디쯤 위쪽에서 줄기를 뺑 둘러서 굵은 뿌리가 나오는데, 기울어져 있는 부분의 뿌리가 굵고 길게 나와 뻗으면서 줄기를 받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다.
부산 금명초등학교 송지영(사진) 교사가 ‘제65회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부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교수·학습방법 개선과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해 전국의 교원을 대상으로 열린다. ‘변화하는 사회, 선도하는 현장교육, 꿈을 이루는 미래학생’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송 교사는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L-STAR 역량 기르기’를 출품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이란 블렌디드러닝을 기반으로 한 소통·행복·성장 교육활동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공감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데 목적을 뒀다. L-STAR 역량은 2015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의사소통역량(story), 공동체역량(together), 자기관리역량(auto), 지식정보처리역량(report), 창의·융합리더역량(leader)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첫 글자를 따 만든 용어다. 송 교사는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온택트 활동으로 학생들의 핵심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2학기에도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병행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연구물로 보인다. 한창 뛰어놀며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모니터 앞에서만 선생님을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들 마음속에 꽁꽁 담겨있는 이야기를 꺼내 함께 나누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보이는 거리두기는 지켜야겠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히는, 그래서 같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큰 상을 받고 보니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 아직 얼떨떨하다. 소통과 행복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 학습이 길어지면서 기초학력부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학력부진은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과 무기력감, 우울감 등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교사인 나도 당혹스러웠는데 학생들은 오죽했겠는가.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사는 데서 오는 행복과 꾸준히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려 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소통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작년에 맡은 반이 3학년이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을 만나고 보니 모두가 낯설고 어색했다. 이대로는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서로 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급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좌우명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즐기는 취미생활 등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게 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수영하는 모습들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교실에서는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관계를 형성해 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부터는 토론을 통해 학급규칙을 만들고 특정 주제를 정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신호등 토론이나 피라미드 토론, 악마와 천사 토론 등의 기법을 사용했다. 소심했던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고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소행성 프로그램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했다. 나부터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해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구나, 그럼 나도 자신 있게 말해야지’ 하는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교사가 망가지니까 모두들 좋아하고 활기찬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 또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들어주려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의식과 또 언제 어디서든 학교는 너희들의 성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인공지능교육을 한다는 게 무리가 아닐까?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주로 5·6학년 실과시간에 다루는 내용이어서 솔직히 부담이 컸다. 학생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했고 어떻게 하면 흥미 있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튜링 테스트나 안전 챗봇 놀이를 진행했다. 또 언플러그드 보드게임을 통해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컴퓨터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했다. 연구논문에는 영역별로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소통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행복은 개그맨 유재석, 성장에는 김연아 등 이들을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소행성’이 추구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연구논문이 단순히 연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전파되고 스며들기 위해서는 일반화 가능한 요소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화두에 맞는 인물을 선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유재석 씨를 가장 좋아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누구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재석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 교사들이 이를 활용할 때 도움이 될만한 팁을 준다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딪혔던 문제들과 풀어가는 과정, 학생들 반응까지 연구논문에 자세하게 실었다. 스스로 반성했던 부분도 언급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좀 더 잘하려고, 좀 더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아이들도 조금은 힘들어했다.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더라. 현장연구대회를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1년 반 정도 준비했다. 스스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였다. 처음엔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마치고 보니 내가 변하는 계기가 됐다. 도움 주러 같다가 도움 받고 온 기분이다. 현장연구대회 두 번의 도전 만에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앞으로 또 다른 목표가 있나? 미래역량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변화하는 교사, 연구하는 교사, ‘라떼’에 머무르지 않는 교사이고 싶다.
“2022 교육과정 개정에 맞춰 초등 정보교육을 3~4학년군부터 시작하고 초·중등교육에서 SW 코딩에 기반한 AI 융합교육을 하루속히 확대 실시해야 합니다.” 이재호 한국정보교육학회 회장(사진·경인교대 교수)는 “미래세대인 초·중등학생에게 ‘SW 코딩 기반의 컴퓨팅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보교육을 공교육체제에서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고 국가적 책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해 정보교육 시기를 앞당기고, 상급학년과 연계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SW/AI 디바이드’가 발생, 새로운 교육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996년 설립된 한국정보교육학회는 초등분야 정보교육에 특화된 학회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 존재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교육정보화 분야를 개척하며 대한민국 미래교육을 선도해 온 학회는 초등교사부터 대학교수, 전문가 등에 이르기까지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는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를 나타내는 임팩트 팩터에서 최상위 등급을 차지,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초등 정보교과 수업시수 연 17시간 불과 학회는 지난 8월 13일 ‘초등학교 정보교과 교육과정 구성 방안을 주제’로 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초등학교 정보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행사에 앞서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에 무슨 정보교육이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는 데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강력한 미래 경쟁력은 SW와 AI 분야에서 얼마나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현행 2015 교육과정에서는 학교 SW교육을 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 교육과정이란 호적에는 올라 있지만 대접은 형편없다. AI 등장으로 SW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과 반비례, 교육현장에선 되레 역주행이다. 우선 교육 시기가 너무 늦다. 대부분 초등학교가 6학년 2학기에 SW교육을 실시한다. 졸업을 앞둔 분주한 시기, 내실 있는 교육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초등 3학년부터 SW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3~4학년 시기에 SW교육을 받아야 5~6학년 때 본격적으로 각 교과에서 시행하는 AI 융합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으며, 교육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초등 SW교육 수업시수도 문제로 들었다. 초등학교에서는 SW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수업시수는 1~6학년 과정을 통틀어 17시간. 초등학교의 총 교육시간을 5,892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비율은 0.289%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학원에서 SW교육을 받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교육이 교육수요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셈이다. 실제 이 같은 사교육 격차는 학생들 간 ‘SW 및 AI 디바이드’ 발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생 시기에 형성된 ‘SW 및 AI 디바이드’는 상급 학교로 진급하면서 그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성인이 된 후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정의 소득 격차가 학생 간 디지털 역량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미래사회 역량을 좌우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법은 없을까? 이 회장은 우선 SW교육 수업시수를 34시간을 늘려 최소 일주일에 한 시간은 수업할 수 있게 해야 기본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생 간 ‘SW/AI 디바이드’ ... 교육불평등 초래 할 것 SW교육의 기반이 되는 초등 정보교과 독립도 학회의 숙원사업 중 하나. AI와 SW를 학생들의 필수 역량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실과교과의 일부 단원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교과로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의 정보교과 신설만이 ‘SW 및 AI 인재 강국’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이를 통해 포스트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사고력 즉,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명제는 SW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수한 교사의 배출이 학교 SW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정부는 역주행이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초·중등 교원양성체제개편 방안을 통해 교대 교육과정 기본이수과목에서 초등컴퓨터 과목을 과학/실과 교과군에 흡수 통합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쉬어가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 상황에서 학교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사들의 우수한 컴퓨터 활용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기초가 된 것이 교육대학 교육과정이었고요. 그런데 초등컴퓨터 교과를 폐지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이 회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들어 AI교육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교사연수 등 역량개발에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종전에는 교사들에게 각종 연수기회가 많이 주어졌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소수 정예 양성을 명분으로 AI융합대학원에서 연수를 실시하는 바람에 규모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AI융합대학원이 심도 있는 연수로 질적 수준을 높인 것은 바람직하지만, 소수로 운영되다 보니 양적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정보교육학회와 함께 앞으로 초등 정보교육 활성화에 모든 것을 바칠 각오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기 대권후보들에게 정보교육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주길 호소할 생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교육정보화사업을 주도했던 것처럼 차기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보교육 활성화에 적극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성공 신화는 고도의 경제성장 덕분 청년 중 실업자가 절반인 지금은 ‘전원일기’ 같은 옛 향수일 뿐 딜레마에 빠진 한국 교육 파괴적 혁신 절실 … 지금이 변신 적기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학은 곧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생 변수’가 되곤 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학 졸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성장을 교육이 이끌었다는 ‘한국판 드라마’의 신화가 세계적으로 회자 되었다. 한국 교육이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학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경제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학교 문을 나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쳤다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대한민국에 대한 교육 찬사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이제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추억일 뿐이다.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학교교육은 별반 바뀌지 않고 고학력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전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부푼 꿈을 설계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절반은 실업자 신세가 된다. 4년제 대졸자가 좋은 직장은커녕 전문대 졸업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고졸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교육의 배신이자 교육의 실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경제인구 활동조사-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879만 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만 6,000명(-1.5%) 줄어들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49%, 고용률은 44.4%에 불과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졸자 통계다. 대졸자 휴학 경험 비율은 48.1%였고, 졸업(중퇴) 후 첫 취업 소요기간은 10.1개월로 나타났다.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2개월, 첫 일자리 임금은 150만~200만 원 미만이 37%, 200만~300만 원 미만이 23.2%, 100만~150만 원 미만이 20%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나. 필자는 ‘대한민국 교육의 딜레마’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은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오르기로 상징되는 교육 출세론에 부모주의(parentocracy)가 결합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칠판 하나만 놓고 가르쳐도 학생들이 넘쳐났고, 졸업장을 받은 청년들은 쉽게 취업하는 황금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이 확 바뀌었다. 대졸자의 절반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외국 대학 유학파까지 응시하니 이거야말로 교육의 실패이자 딜레마가 아닌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입학자원이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 환경변화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커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하는 격변기를 맞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인데 우리 교육이 딱 그런 꼴이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왜 그럴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번 가까이 칭송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은 우리가 못 살고 학교 교육환경이 엉망이었을 때는 ‘인기 드라마’를 방영했지만, 외국 대학도 부러워할 정도의 쾌적한 호텔 같은 인프라를 갖춘 대학이 수두룩한 현재는 ‘실패의 드라마’를 억지로 내보내고 있다. 2021년도 전체 대학의 충원율은 91.4%로 미충원 인원이 4만 586명이었다. 특히 거점 국립대의 경우도 미달 사태가 속출했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1학년도 입학정원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정원 미달 인원이 2022년부터 매년 증가해 2024년에는 10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4년에 지방대학 10개교 중에서 1개교는 신입생 충원율이 ‘50% 미만’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으로 고착화했고, 객관식 위주의 교육은 여전하고, 커리큘럼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라서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3학기 보낸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등교육 구조조정, 국립대부터 실시해야 효과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학 문턱이 낮아진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다. 대학 수십 개가 문을 닫아도 소위 ‘SKY 대학’ 입시 경쟁률은 별로 완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게 필자의 우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 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 출세론에 대한 ‘희망 고문’ 또한 여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등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고3 담임들은 계속 상위권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압박에 시달릴 게 자명하다. 유능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의 평가 잣대가 SKY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가 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업적주의(meritocracy)의 악령이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정원 조정 개입→자율→방기→개입을 되풀이하는 사이 대학은 자강 능력을 잃고 ‘눈치 대학’으로 변질됐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교육시장원리에 따른 수요 공급과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자생적 질(교육·연구·사회기여도)이 높아지는 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평가나 나눠주기 지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교육기관 수를 장기적으로 최소 100개 이상 줄여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추격형 교육을 선도형 교육으로 바꾸는 파괴적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에 대학구조개혁은 답보 상태다. 정치인들은 개별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경제적 비중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이 문 닫으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한다’는 레토릭만 반복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과 대학의 성적표인 ‘교육수요자 원칙’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신호탄을 국립대가 쏴야 한다. 국립대에 웬 안경광학과인가 … 국립대부터 구조조정 해야 고등교육 재편은 곧 중·고교의 커리큘럼 변화와 교수법 변화와 맞물린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수술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와 국·공립대 개혁을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대는 단계적으로 줄여 지역별로 통합해 광역화하는 게 당연하다. 궁극적으론 ‘1도(道) 1국립대’로 개편이 절실하다. 교육부가 대학을 인위적으로 손본다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가 더 적합하다. 국립대 개혁의 필요성은 전공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국립대가 전문대 전공을 카피하는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에 의뢰에 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중 114개 대학(원) 520개 학과(학부 307, 대학원 213)에서 전문대가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하고 있었다. 전문대가 처음 개설한 전공을 일반대학(대학원)이 따라 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경광학·치위생·치기공·철도·물리치료·작업치료·방사선·뷰티/미용·응급구조·외식·조리·카지노·소믈리에·바리스타·반려동물·제과제빵 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국립대의 전문대 카피 사례는 다음 표와 같다. 물론 국립대가 전문대의 전공을 더 심화해 학문적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 장관은 20대 국회의원 시절 정책자료집(전문대학 10년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 전문대학 정책 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 관련학과 신설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확대되기 쉽다. 정부는 산업계에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있듯이, 대학교육에서도 전문대학만이 유지할 수 있는 학과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해 전문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이 된 후에도 고등교육 체질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고등교육의 실패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더 이상 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전공과 기업 수요의 미스매치(mismatch)는 고사하고 절대 일자리 수가 부족해서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신화는 앞으론 허망한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육의 딜레마가 계속된다. 이제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교육공무원도,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의식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학자와 전국의 선생님,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이 적기(適期)다.
‘메타버스(metaverse)’를 향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어떤 이는 또 한 번 교육계에 불어 닥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곧 지나갈 유행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메타버스가 전 세계 경제시장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빠르게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듀이(Dewey)는 생활 경험적 관점에서 교육이란 생활이며, 성장이고, 사회적 과정이자 계속적인 경험의 재구성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교육이란 끝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이며, 경험을 사회적·실용적으로 넓히고 깊게 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 역시 최신 기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교육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주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적 시도와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말이다. ‘메타버스’ 너는 누구? 그렇다면 메타버스가 대체 무엇이고,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메타버스란 가상·초월의 의미인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온라인 속 가상공간에서 아바타 모습으로 구현한 개인이 돈을 벌거나 소비하고, 놀면서 일하는 상호소통과 현실 활동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초월적 가상공간에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콘텐츠가 모이게 되고, 그 안에서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즉,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AR·VR로 대변되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은 이전에도 있었고, 더 이전의 싸이월드처럼 도토리를 모으며 온라인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세상도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메타버스가 요즘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은 무엇이며, 우리 교육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면서 모든 기술의 원격지원이라는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 나갈 수밖에 없는, ‘디지털 지구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영상회의·원격수업·재택근무 등 대부분의 일상 활동에 비대면 방식이 빠르게 침투하였고, 대중 집합이 지속적으로 금지되고 제한되면서 교육·의료·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단순 일방 중계를 넘어 메타버스와 같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교육현장을 떠올려보자. 처음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원격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원격수업만으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보다 효과적인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그렇게 커졌던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는 이제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수업도 듣고, 학교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있는 새로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 옮겨가고 있다. 줌이나 구글 미트와 같은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 플랫폼이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라 수업을 듣고 발표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시 현실세계로 나왔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가상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라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의 수업은 이와 사뭇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수업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이미 메타버스 세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다 등교시간이 되면 학교로 이동하여 친구들과 만나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과 동아리활동도 자유롭게 해나갈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실시간 쌍방향수업을 받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자유롭게 메타버스 교실 속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친구들과 여전히 상호작용하며 현실세계에서 해왔던 것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또다른 자아실현을 둘째,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해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과 목표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환경에 노출됐기에 가상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냅챗·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하루에도 수차례 사용하며, 비디오 스트리밍을 하는 시간이 1주일에 23시간 이상 된다고 한다. 또한 사회적 이슈,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도 상당히 적극적이며, 하나의 게시물·트윗 또는 상태 업데이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게임·유통·광고업계 등이 주 소비층으로 성장하고 있는 Z세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개발이 활기를 띄고, 메타버스를 핫 키워드로 만들고 있다. 이는 교육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직업세계를 메타버스 속에서는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선두주자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가 되어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게임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등교를 못 하게 된 미국 초등학생들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55%가 가입했고, 하루 평균 접속자만 4,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 인기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다른 이용자와 함께 테마파크를 건설하고 운영한다. 애완동물을 입양하여 키울 수 있고, 레스토랑을 지어서 경영해 볼 수 있으며 스쿠버다이버가 되어 전 세계 곳곳을 헤엄칠 수 있다. 다양한 세상과 직업군을 경험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경험하지 못할 세계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 메타버스 세상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의 세계는 가상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상세상에서의 음악활동이 현실세상의 음악활동으로도 이어지고, 가상세상에서의 가게운영이 실제 현실세계의 수익과도 이어지는 구조를 생각한다면 미래 우리 학생들의 직업·진로체험이나 금융·경제교육과도 연계해볼 수 있는 시사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우리나라 메타버스 선두주자인 모 기업의 경우 나만의 아이템을 직접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어 이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현실세계에서 못했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셋째, 실감형 콘텐츠를 가능하게 하는 5G·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AR·VR을 포함한 XR(확장현실)이 점차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메타버스 시장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는 교육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잠시 디지털 교과서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성 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서책형 교과서에서 디지털 교과서로의 전환은 단순히 종이에 담던 내용을 모니터로 옮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의 전환은 교수·학습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디지털화된 교육의 내용은 초연결세상에 접근이 가능하므로 새로운 지식으로의 전환과 연결이 매우 용이해진다. 또한 수정이 용이하고 데이터화된 모든 학습행동이 저장되면서 이를 분석한 결과를 새로운 교수·학습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실감형 콘텐츠 교육효과 클 것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교육 역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실감형 콘텐츠가 주는 역동성과 현실감은 교육의 효과성에 큰 진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디지털 교과서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빠른 기술적 발전은 이전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실감형 교육 콘텐츠 개발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문제해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고 융합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지식의 폭을 상상 이상으로 확장시켜 줄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교육데이터들은 더 나은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교육활동을 위한 데이터로서 다시 또 활용되는 선순환적 디지털 교육생태계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이상으로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과 우리 교육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메타버스 산업이 이제 막 부흥하고 있고 교육에의 접목 역시 아직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교육에 적용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갈 때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사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큰 성장을 위한 준비를 가능하게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세상에 대한 경험적 시도를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그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 교사가 해야 할 당연한 숙제는 아닐까. 메타버스와 교육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교실과 복도로 만들어진 학교의 모습은 1차 산업혁명 시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학교공간의 구조가 당시 첨단생산체계인 컨베이어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이고 유지·관리·통제가 편하도록 고안된 장치인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의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통해 표준화된 생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테일러주의에 충실한 성과중심의 대량생산 공장체계다. 이러한 공장 모델이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학교에 적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많은 학생을 표준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단위화된 시·공간으로 나누어 균일하게 교육해야 하는 당시 학교의 목적과 맞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관리·통제·규율·표준화·성과중심주의 등의 가치관이 그대로 교육공간인 물리적 구조를 통해 학생들의 행태와 생활방식을 형성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학교와 더불어 근대를 대표하는 병원과 교도소 그리고 군대 막사 등의 건물들도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결국 학교를 포함해 이 시설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정한 인원으로 나누어 수용하고, 규율과 권위로 통제하며, 동시에 관리하기 좋은 공간구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설들은 표준화된 도면으로 규격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데다 대체로 공간구조가 비슷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방법과 자재 내역이 같아 시설 유지관리에도 수월하니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규격화된 학교 … 성과와 관리의 산물 근대는 ‘기획의 세대’였다. 생산방법의 표준화로 일정 수준의 상품 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기획을 통해 일정한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을 세웠으며, 이를 통제 진행하는 일정관리와 생산관리가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근대기획의 성과추진방식이다. 근대학교의 보급은 앞서 말한 표준화된 공간구조뿐 아니라 이를 보급하고 시설을 확대하는 방법도 근대기획의 방식을 따랐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200년 전 생산체계 모델이 전혀 다른 생산과 평등한 사회구조를 지닌 지금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환경을 설계하고 짓고 있는 것처럼 미래를 지향하는 학교도 새로운 교육환경의 학교건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또 하나의 문제는 근대적 성과달성방식의 고착이다. ‘기획-실행-성과평가’로 구성된 근대기획의 실행 방법은 효율적인 추진체계로 성과를 거둔 성공한 경험이 되어 변화된 사회와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에서조차 성과중심 관리자와의 갈등이 비극을 부르는 경우처럼 생산방식은 바뀌어도 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근대적 사업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비전과 내용이 바뀌어도 학교건물은 바뀌지 않았듯 사업의 내용이 바뀌어도 이를 집행하는 방식을 답습, 오히려 형식이 내용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기획가로 참여한 필자는 사용자 참여 설계방법을 중심에 두고, 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 ‘열린교실사업’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리 선진적 형태의 공간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경험과 준비 없이는 실패한다는 교훈을 반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는 사업방법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적 상상을 공간적인 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데 협력할 ‘학교공간 촉진자’라고 이름한 공간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사용자 참여과정을 학교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도록 구상했다. 학교가 교육지원청 시설담당이나 건축사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바람직한 학교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전문가 거버넌스 방식’으로 바꾸어 진행한 것이다. 사업과정이 시설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학교를 상상하고 만드는 것을 경험하고, 교사들은 더 적극적인 교육방법의 새로운 시도에 집중하며,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학교가 가능한 물리적 환경으로 협의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교육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라는 학교시설 관련 사업을 새로이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실시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40년 이상 된 노후학교’의 시설개축이 시급함을 반영하여 1,400여 학교를 대상으로 미래 지향적인 학교공간으로 개축 리모델링하는 확대(?)된 학교 단위 시설사업이다. 그런데 벌써 사업의 대상이며 주인인 학교공동체와의 참여 설계과정이 사라지고 기존의 시설사업으로 되돌아가는 등 사업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최근 몇몇 지역교육청에서 사업기간에 쫓겨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기획 용역을 7~8개 학교, 또는 지역 전체를 한꺼번에 묶어서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미래학교구상의 핵심인 참여 설계과정과 학교-공간 마스터플랜을 사업집행의 속도와 편의에 따라 기존 시설사업 진행의 틀에 욱여넣어 ‘사전기획’이라는 대략 3개월 정도의 단기간 연구용역형식으로 축소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학교의 미래를 덤핑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참여설계과정을 15일에 마치라는 협의가 있었다니 참여설계를 통한 우리 학교의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학교구성원들의 진지한 노력을 무시한 사업 진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 안에 있는 ‘사전기획’ 내용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학교의 참여설계과정을 단지 시설공사를 위한 기획설계의 일부로만 보는 기존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공간을 다루는 일은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학교 학습공간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교의 마스터플랜과정이며, 학생들의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공간혁신사업’이 나름의 호응을 얻고 확대된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학교시설사업과 달리 학교구성원의 참여와 이를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신중한 방법적 접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축소해 형식적인 과정으로 시설사업 틀 안에 다시 가두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학교공간은 바뀌지 않았는가 교육부는 ‘미래’라는 의미를 사업의 수식어로 이해하고, 기획된 사업의 기간 내 완수라는 성과만을 바라보는 오래된 사업관리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마치 설거지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제한하는 격이니 왜 그토록 학교공간이 바뀌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래학교를 위한 공간·시설사업은 기간과 진행과정까지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계약(newdeal)이 필요한데 교육부 사업이 학교구성원의 바람보다 완고한 예산집행과 감사 등 옛 계약에 눈치를 더 보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러므로 법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새로운 사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미래형 학교전환을 돕는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 관리 등에 대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오히려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래학교를 위한 개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과거의 시설사업과정은 그대로 두고 그나마 의미 없는 참여과정으로 축소시킨 ‘사전기획’을 법제화하면서 이를 특정 기관에 위탁하여 적정성 검토 및 감독을 위임하는 독점권한을 주려고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공간사업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이를 학교교육의 미래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기에 기존의 시설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지와 관리라는 시설의 관점에 충실한 기관이자 규제와 책임, 대응과 통제라는 틀을 유지하려는 기관이 사전기획의 질을 제고하고 미래를 견인한다는 건 난센스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그릴 학교공간을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지역이 참여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진정한 사업과정이 되도록 사업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미래를 함께 구상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과정을 존중하는 새로운 제도적인 틀이 필요하다. 미래학교는 공간적 실천을 통해 지금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붙인다. 교육 수요자가 만들어 가는 학교공간 첫째, 학교공간을 기존 시설사업의 진행방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기간과 예산의 감독이 아니라 현장에 같이 힘을 보탤 유연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리고 감독할 또 다른 기관이 아니라 현장과 함께하는 지원기관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의 기본 구상단계부터 시설사업에 맞추어 짜인 사업구조를 시급히 재검토하여야 한다. 특히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학교공간 변화의 힘든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학교공간 촉진자의 역할과 전문가 거버넌스 과정을 무시하고 과거 시설관련 용역의 일부인 소위 ‘사전기획’ 과정을 만들어 단기간(올해는 사업기간의 역산으로 산출된 3개월 남짓)안에 학교의 교육-공간 마스터플랜과 참여설계 그리고 미래학교의 밑그림까지를 그리라는 무리한 사업구조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모든 가치가 박제화되거나 형식화되는 결과를 만들 뿐이다. 셋째, 각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공간에 대한 역량과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공간을 구상하고, 경험을 확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영역 단위사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학교 전체에 대한 갑작스러운 개축 리모델링 사업은 그 규모나 사업 진행 등의 복잡성으로 경험이 없는 학교공동체가 참여를 꺼리게 된다. 학교공동체를 예전의 수동적인 사용자로 머물게 하려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 단계적인 사업을 같이 포함시켜야 한다. 작은 규모와 경험이 주체적인 공간사용자들의 역량을 증진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이 쌓여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선 올해는 많은 사업을 미래학교라는 잣대로 무리하게 끌고 가기보다 시설의 노후도 및 보수 시급성과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역량을 고려하여 ‘노후시설 개축 중점사업’과 ‘미래학교 공간혁신중심사업’으로 구분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에 대한 의지와 공동체의 역량에 적합한 미래학교 공간을 위한 지원을 집중할 수 있고 바람직한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면 그 건물을 짓는 목적 자체를 잃게 되는 그런 과정이라는 점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옛 사업구조에 고착되어 진행한다면 새로운 학교사업의 목적을 잃게 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주인됨을 빼앗아 과거 학교를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다시 강요하는 우를 범하게 될까 걱정된다.
귀신 이야기에 끼어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귀신은 사람과는 무관한 존재인 듯싶지만, 알고 보면 사람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인간을 존재론 차원에서 이해하려 할 때, 귀신의 존재는 불가피하게 끼어든다. ‘귀신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주제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에 언제나 따라붙는다. 그만큼 귀신 논쟁에 끼어들어 보지 않은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대개 이런 귀신 논쟁은 공식적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인 논제로 우리 일상에 끼어든다. 대학 시절 나는 고향 독지가 한 분이 지은 장학 기숙사에서 지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선후배들 30여 명이 서울로 와서 함께 지내던 기숙사이다. 서로 허물없이 생활하는 기숙사였다. 그때 우리는 밤에 심심풀이 삼아 비공식적인 토론을 벌였는데, 그 주제 중의 하나가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본격 토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시작한 것이 제법 열띤 토론의 양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각기 전공이 다른 대학생들이라, 그럴듯한 근거와 가능성이 찬반 양편으로부터 동원되기도 했지만, 결말은 늘 우기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찬성편에서는 궁지에 몰리면 “내가 귀신을 직접 보았다”라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서, “네가 직접 본 것을 너 외에 누가 객관적으로 증언해 줄 수 있느냐”고 되물으면, “내가 보았다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는 거냐. 나를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냐.”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귀신 없다는 쪽에서도 “나는 귀신이 없는 것을 직접 보았다”라고 우긴다. “없는 것을 어떻게 직접 보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 하고 되물으면, 찬성편의 말투를 빌려와서 그대로 되돌려 준다. “여기 있는 내가 직접 보지 못했다는데,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나를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냐. 섭섭하다.” 어찌 보면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무 말이나, 말 안 되는 대로 해서, 웃기는 장면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물론 이렇게 되는 데에는 이것이 본격 토론대회도 아니고, 친구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던 대화라는 점에 있다. 굳이 공식적인 무게를 갖는 토론은 아니니까, 저런 우기기가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면 공식적이 아닌 토론 장면에서는 우기는 걸 인정해도 된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아무리 비공식 상황이라도 개그 행위가 아닌, 토론의 행위라면 ‘우기다’의 방식은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우기는 식으로 흘러가는 과정에도 두 가지 양상을 주목할 수 있었다. 하나는, 찬반 입지가 분명했던 만큼, 서로 질 수는 없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했다. 강박은 처음에는 약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졌다.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우기다’가 등장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비교적 합리적 근거와 사례들이 동원되었다. 상대가 제시하는 근거와 사례들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으려 하면서부터, 우기고 보자는 심리가 점점 커졌다. ‘우기다’는 ‘억지를 부린다’는 뜻이 핵심이다. 억지를 부려 제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행동이 ‘우기다’이다(표준국어대사전). 억지는 아차 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 우기다 보면, 상대에게 모욕이 가게 된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도대체 한국말도 못 알아먹습니까?” 우기기가 강해질수록 이런 언어폭력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우긴다는 것을 모른다. 즉, 잘못은 상대에게 있고, 자신은 옳으니, 당연히 우길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이제는 신조어가 되다시피 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도, 그 행위의 바탕에 ‘우기다’가 작동하고 있다. 나(내 편)는 절대적으로 선하고, 너(상대편)는 악하니, 나는 너에 대해서 무조건 옳다. 이렇게 믿고, 행동하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우기는 모습이 ‘내로남불’이다. 이미 나의 잘못과 억지스러움이 세상에 드러났는데도, 본인은 모른다. 실제로는 우기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우긴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우기는 동안에는 반성이나 부끄러움은 생겨날 수가 없다. 그래서 ‘내로남불’은 아이러니(irony)의 모습을 띤다. ‘우기다’는 윤리적으로도 함정이 많다. 내가 나를 속이는 자기기만(自己欺瞞)이 들어 있다. 자신이 틀린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를 부려 자기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우긴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남도 속이고 나도 속이고, 거짓이 이중으로 쌓인다. 그렇다면 자신이 틀린 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를 부려, 제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것도 ‘우기다’인가. 전자와 후자를 같은 ‘우기다’로 다루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 국립국어원은, 자신이 틀린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를 부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우기다’라는 어휘를 쓸 수 있다고 했다(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왜 우기게 되는가. 이유야 많겠지만, 토론상황에서 보면, 주어진 문제(주제)에 대한 지적 준비도가 낮기 때문이다. 상대의 반론에 대해서 재반론을 하면서 새로운 근거나 이유를 대지 못하면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상대의 집요한 공격에 대해서 새로운 프레임으로 탈출구를 만들지 못하면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우기다’의 전조 현상이 되는 것이다. 지적 준비도가 높은 사람은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에 눈을 뜬다.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언성을 높여 우겨야 할 필요가 없다. 엘리자베스 크럼레이 멘쿠소(Elizabeth Krumrei-Mancuso) 미국 페퍼다인대학 교수가 국제학술지 긍정심리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지적 겸손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참과 거짓을 잘 구분하고, 자기가 맞다고 우기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적다. 반대로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은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도 못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맞다고 우기는 일이 많다(박진영의 사회심리학에서 재인용, 동아사이언스 2019.4.6.). 정답은 오직 하나라고 교육받은 사람도 위험하다. 그도 역시 우기는 스타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대안이 없는 사람은 줄기차게 정답 하나만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정답 하나만을 고수하는 것, 그것이 곧 우기는 행동 방식을 만든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한 가지 방식으로 굳어지는 것, 그것이 곧 우기는 행동 방식을 만든다. 파주 신도시 신설 학교로 신규 발령을 받아 간 L 선생님은 5학년 담임을 맡아, 학급 급훈을 ‘그럴 수도 있지 뭐!’로 정했단다. 그렇다. ‘우기는 인간’을 키울 수는 없다. ‘우기는 사람’을 위한 변명은 없을까.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대체로 말할 내용을 두고 우기는 경우보다는, 말할 상대를 두고 우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즉, 그는 나로 인해서,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와 열패를 입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로 인해서 ‘의문의 일패(一敗’)를 여러 번 당했던 사람이다. 더구나 여러 사람 앞에서 당하였다면, 그는 내가 미웠을 것이다. 나에게 우겨서라도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우기는 캐릭터’가 개성 있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세태이다. 하지만 우기면 이기는 세상은 삼류 세상이다. 공정과 합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우기는 이들은 잘못이 드러나도 부끄러움이 없다. 선거를 앞둔 후보자 캠프들은 우겨서라도 상대를 이겨야 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우기는 강경파’가 득세한다. 강경파에도 클래스가 있다. 메시지 내용이 강경한 것은, 오류가 아닌 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메시지 내용을 계속 우기며 강변하는 강경파는 안쓰럽다. ‘우기다’는 정책을 위험하게 한다. 우기는 정책은 저절로 무너진다. 우기기 시작하는 순간 정책의 유연성과 합리성이 졸지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겨서 이기는 것은 그저 잠깐이다. 일시적 착시현상일 뿐, 지는 길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어려움에 몰릴수록 우겨서라도 이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우기는 것만큼 중독성이 강한 것도 없다. 세상에는 ‘이겨서 우기는 일’도 많다. 이긴 것에 올라타서 온갖 갑질을 하며, 그 갑질을 정당화하는 데에 ‘우기기’를 부단히 사용하는 것이다. 이겼으므로 우길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믿는 것일까. ‘권력에 취했다’는 그럴 때 쓰는 표현이다. 취한 권력이 어찌 일어설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 보니, ‘우기다’와 ‘이기다’는 같이 갈 수 없는 운명이구나. 그렇구나. ‘이기다’의 반대말은 ‘우기다’가 되는구나!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우기면 지는 거다.
매년 출판시장에 등록되는 어린이 책은 5천여 종 이상이다. 이 수많은 어린이 책 중에서 우리 학교도서관에서는 교과연계도서와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을 고려한 다양한 주제의 책 1천여 종을 구입하고 있다.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책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많은 책 중에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너무 많은 정보는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책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필자의 교육목표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을 소개할 때, 도서관은 보물창고라고 알려준다. 재미있는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도서관이 보물창고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학생들은 책은 보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에는 3만여 권의 책이 있는데, 이 중에서 내가 보물처럼 좋아할 만한 책이 단 한 권도 없을까?” 하고 물으면 “책이 그렇게 많다면 그중에 한두 권쯤은 있겠죠”라고 대답한다. 사서교사와 함께하는 독서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단 열권을 읽더라도 스스로 보물 같은 책 한두 권은 꼭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보물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파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어느 때나 읽어도 유익한 책은 없다. 나에게 맞는 책이란 읽으면서 내가 즐거워지는 책이고, 내가 처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권장도서 목록의 책 또는 누군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을 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재미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의 고민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을 때, 숙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책을 만났을 때 등 자신과 잘 맞는 책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진다.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 책을 고를 수 있어야 즐거운 독서생활을 할 수 있다. 수업의 전개 나에게 필요한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책을 읽은 경험이나 내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4차시 온라인 수업을 구성하였다. 마침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첫 단원이 ‘읽을 책을 정하고 내용 예상하기’이므로 통합수업을 준비해도 좋다. 1·2차시에서는 목적에 맞게 책을 체계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고, 3·4차시에는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장르에 대해 배우고 나의 성격에 맞는 책을 찾는 재미있는 시간으로 구성하였다.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는 생각이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매년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매년 실시하고 있다. [PART VIEW] ● 1차시 ● 2차시 ● 3차시 ● 4차시 기대 학습효과 초등학교 때 형성된 책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평생 독자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재미없고 누군가 시켜서 읽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면 학생들의 책 읽기 동기가 높아지고 자기주도학습의 기초가 될 것이다. 책 읽기 전 단계인 책 고르기 단계에서부터 책을 비판적으로 찾는 학생들은 읽기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고 정보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은아 공연칼럼니스트]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작품을 위해 새로 작곡된 곡이 아닌 기존에 발표된 대중음악을 넘버로 엮어 제작한 뮤지컬을 말한다. 아바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만든 뮤지컬 맘마 미아!, 비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엮은 토요일 밤의 열기 올 슉 업 등이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최근에는 한국 뮤지션들의 곡을 중심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이번 달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편곡을 만나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세계로 떠나보자. 뮤지컬 미인: 아름다운 이곳에 뮤지컬 미인은 ‘한국 대중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신중현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삼천만의 히트곡’으로 불리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미인’을 비롯해 ‘님아’, ‘봄비’, ‘빗속의 여인’, ‘아름다운 강산’ 등 주옥같은 명곡을 엮어냈다. 신중현은 1950년대 한국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살아있는 전설’ ‘영원한 청춘’으로 불린다. 그의 음악은 특유의 에너지와 비트로 듣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미인이 가슴 끓는 청춘들의 이야기인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유랑극단을 쫓아다니며 노래하기 좋아하는 굴다리패 막내 강호, 그가 한눈에 반한 시인 병연, 강호의 인텔리 형 강산까지 세 명의 청춘이 등장한다. 강산과 병연이 독립운동을 준비하다 위험에 빠지자 강호는 형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실 미인은 3년 전 초연으로 관객을 만난 적 있지만 이번 공연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다. 스케일과 구성에서 많은 변화를 꾀했기 때문. 우선 대극장 무대를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와 함께 드라마 또한 좀 더 섬세하고 밀도 높은 구성으로 재탄생시켰다. 억압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캐릭터들의 관계와 심리에 좀 더 집중했으며, 이를 위해 등장인물 또한 주요 인물 4인과 멀티 앙상블 2인으로 재구성했다. ‘아름다운 이곳에’라는 부제를 새롭게 붙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창작진이다. 작가 이희준, 연출가 정태영, 음악감독 김성수, 안무가 서병구 등 뮤지컬계의 내로라하는 스태프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댔다. 새롭게 탄생한 미인을 위한 탄탄한 드라마와 풍성한 편곡, 감각적인 안무가 작품의 울림을 더한다. 뮤지컬 사랑했어요 서른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샀던 故김현식. 그러나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리메이크되고 활발하게 불려지며 우리 곁에 살아있다. 뮤지컬 사랑했어요는 그의 음악에 다시 한번 숨을 불어넣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김현식은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렸던 가수. 작품에서도 서정적인 로맨스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은 서로 사랑하지만 다른 공간 속에서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연인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그린다. 공연 속에서는 ‘내 사랑 내 곁에’를 비롯해 ‘비처럼 음악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추억 만들기’, ‘변덕쟁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의 명곡이 흘러 관객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이번 공연은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기대를 더한다. 주인공인 ‘준혁’ 역에 캐스팅된 가수 조장혁, 팝페라가수 정세훈, 뮤지컬배우 성기윤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폭넓은 음역대, 표현력을 갖춰 김현식의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후문. 준혁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과거 준혁’ 역은 영화·드라마·공연을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홍경인, 락발라드 보컬 고유진, ‘불후의 명곡’의 가수 김용진이 캐스팅됐다. 김은아 공연칼럼니스트 *공연정보 뮤지컬 미인: 아름다운 이곳에 2021년 9월 15일~12월 5일 YES24스테이지 1관 1577-3363 뮤지컬 사랑했어요 8월 14일~10월 31일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유명 넘버로 한국에 ‘지킬’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 2004년 초연 이래 관람 관객 150만 명을 동원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프랭크 와일드혼의 아름다운 넘버로 풀어낸다. 류정한, 홍광호, 신성록이 타이틀롤을 맡는다. 2021.10.19~2022. 5.8 |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쇠락해가는 광산 도시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엘튼 존(작곡), 리 홀(극본), 스테판 달드리(연출) 등 세계적인 창작진이 참여한 작품은 전 세계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공연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 빌리 역에 캐스팅된 12~13살 배우 4명은 1년 6개월 간의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거쳤다. 2021.8.31~2022.2.2 |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전시 DNA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전시는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이 질문에 답한다. 성(聖), 아(雅), 속(俗), 화(和)를 주제로 중심으로 토기, 도자, 불상, 한국화, 유화, 사진, 공예, 서예, 조각, 미디어, 문화재 35점 및 근현대 작품 130여 점, 자료 8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7.8~10.10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연극 리어왕 데뷔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의 연기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 작품은 인간 존재와 인생의 근본적인 성찰을 담아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인 왕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을 맡는다. 10.30~11.21 |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불법 특별채용 혐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에 기소를 요구했다. 공수처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조 교육감 등에 대한 공소 제기를 검찰에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2018년 해직교사 5명을 사전에 내정하고 불법적으로 특채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수처는 조 교육감과 A 전 비서실장이 채용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조 교육감이 임용에 부당한 영향을 끼쳐 '시험 또는 임용에 관해 고의로 방해하거나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공수처는 권리행사방해에 의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검증 과정에서 수사팀과 레드팀의 공방이 있었고 공소심의위 의견도 경청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해 직권남용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채용 실무자들이 업무 권한이 없는 A씨에게 지시 받아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고, 특별채용과 인사위원회 참석을 거부하던 B씨를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도록 한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팀과 레드팀 모두 부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조 교육감 측 변호인은 입장문을 통해 "조 교육감은 관계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특별채용을 실시했다"며 "미리 특별채용대상자를 내정한 적도 없고, 직권을 남용하여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비서실장 개입 혐의도 부인했다. 이어 "공수처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전혀 특정하지 못했고, 담당공무원의 어떠한 권리를 방해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으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무엇인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며 공수처의 판단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고위 경찰관 등에 대한 기소권만 갖고 있어 최종 판단은 서울중앙지검에서 하게 된다.
현행 공무원보수규정과 교육공무원 호봉획정시 경력환산율표의 적용 등에 관한 예규(교육부 예규 제54호)에근거해 일부 교육청의 호봉정정으로 차액 환수에 내몰린 교원들의 불만이 급증하는 가운데 8월말 교육부가 동 사안에 대해 관련 부처 논의가 필요하다고밝혔다. 교육부의 ‘교육공무원 호봉획정 관련(학력과 경력의 중복) 확인 요청’에 따라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각 단위학교에 학력과 군경력 중복 현황조사를 실시하고, ‘재학기간 중 군입대를 학기 중에 한 경우 규정상 중복된 기간만큼 호봉인상을 정정 처분한다’고 안내해 왔다. 한국교총은 지난 7월 28일 현행 규정은 학력과 경력이 중복되는 경우 그 중 하나만 산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군 경력을 일반 기관에서 근무경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군 복무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 한다고 지적하며 '교원 호봉획정시 군경력 중복 인정을 1차 건의했다. 이에교육부가“해당 내용은 상위법인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것으로 부처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에 2일 교총은 동 사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2차 건의를 통해 인사혁신처에 ‘학력 및 경력 중복’ 처리 기준에서 군복무 경력을 모두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보수규정’ 보완을 요청했다. 교육부에는 현황 조사 및 호봉정정 조치 중단과 교원들이 군경력이라는 특수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보수규정’ 또는 교육부 관련 예규 개정을 관련부처와 적극 협의할 것을 촉구했다.
인생의 길잡이 책 여행길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365일 동안 금언처럼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이다. 붓다의 어록을 바탕으로 깔고 있지만 현대적이고 시사적인 문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는, 매우 세련된 책이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날, 마음이 불안한 날, 삶이 서글픈 날,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싫어지는 날에는 친구를 찾듯 이 책 속으로 숨곤 한다. 이젠 책장이 닳아서 너덜거리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이 가는 책이다. 누군가 나에게 딱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젊은 날 나는 성경을 달고 살았다. 힘든 서울 생활 속에서 주경야독의 시간을 견뎌낼 때, 내 곁에서 스승의 역할을 해준 건 성경의 잠언과 시편이었다. 나에겐 여러 권의 성경이 있다. 내 신앙생활의 길이만큼, 깊이만큼 책장 곳곳에 자리한 성경책. 그러나 목회자에 데인 상처로 성경마저 내 곁에서 밀어낸지 10년이 다 된다. 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보여준 다양한 형태의 눈속임에 질려서 교회를 뛰쳐나오고 말았지만 후회는 없다. 종교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어찌 완벽하랴! 그럼에도 내 인생을 지켜낸 일등공신은 성경이다. 이런 나에게 흔히들 말한다. 사람을 보고종교를 갖지말라고. 그럼에도 말씀을 전하는 최전선의 선지자인 목회자의 부패상을 보고도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는 없어도 그 마음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은 알 수 있다. 그 진정성이 의심 받게 되면 신뢰 관계가 깨진다. 그것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이용하는 종교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붓다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부처를 따라오면 구원을 받는다거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설화와 삶의 자세, 세상에 대한 애정, 개미 한 마리에게도 자비심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말씀들은 허전한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렇다고 절에 다니거나 불경을 외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사는 이 행성은 마법상자일지도 모른다. 이 우주, 은하계에서 아직은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이니. 이 순간에도 내가 사는 지구는 수십만 킬로미터로 자전과 공전을 한다. 태양은 또 엄청난 속도로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을 데리고 우리 은하를 공전하는 중이다.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라는 비행기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며 살고 있는내 존재도 기적이 분명하다. 내 안의 붓다를 찾아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곳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소식이 넘치는 세상이 무섭다. 죄 없는 어린 아기까지 희생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소식 앞에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세상에 놀란다. 그러기에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간수하라는 붓다의 말씀은 인생의 금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365개의 금언 중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가르침을 소개한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덕분이다. 세상의 바다 속에서 온전히 살아 남으려면 소금 같은 금언을 날마다 곱씹어야 한다. 붓다의 말씀은 썩지 않을 인생의 소금이다. 1월 1일 -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 자귀의 법귀의 (自歸依 法歸依)-다시 돌아가 자기를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라. 인생에 과연 행, 불행이 있는가? 이것은 행복한 삶, 저것은 불행한 삶이라고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붓다는 "나만 믿고 의지하라"고 답하지 않고, 단지 "너 자신과 진리에 의지하라"고 대답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종노릇을 하지 말고 주인노릇을 하며 살라는 말이다. -14쪽 7월 2일 -고통을 부르는 세 가지 독 득실시비 일시방각 (得失是非 一時放却) -득과 실, 시와 비를 일시에 놓아버려라.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세 가지 독이 있다. 탐 貪, 진 瞋, 치 痴가 바로 그것이다. 탐은 자신이 즐기려는 대상을 찾아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고, 진은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 화를 내며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치는 어리석어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해 분별없는 행동을 한다. 이 세 가지 독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243쪽 2500년 전 인류는 위대한 성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먼저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을 마음으로 설득하여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붓다가 존재하니 깨닫는 순간 날마다 내면의 붓다를 만날 수 있다고 희망을 안겨주었다. 몸으로 보여주며 제자들을 깨달음의 언덕으로 이끈 붓다는 진정한 스승이 분명하다. 인간의 삶에서 마음의 행복을 잃어버린 성공은 아무 의미가 없다. 충돌보다는 타협, 독선보다는 합의, 독점보다는 상생의 통찰력으로 인간 각자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긴 위대한 스승의 다독임에 위로를 받고 싶은 분에게 권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꼭 같았다. 겉모습은 투박하고 엉뚱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사랑스러움과 매력을 봤다. 그래서 ‘들꽃’이라고 부른단다. 들꽃처럼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들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예뻐요. 긴 겨울을 보내고 나서 꼭 그 자리에 다시 피죠. 우리 아이들이 들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존재만으로도 향기롭지만, 자신의 존재를 펼쳐내 아름다운 삶으로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물어요. ‘선생님, 우리가 왜 들꽃이에요?’ 그러면 설명하죠. 응, 너희들이 들꽃처럼 예쁘니까.” 주효림 전북 함열초 교사는 특수학급을 맡고 있다. 열정만 앞섰던 초임 시절을 거쳐 장애 아동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까지, 특수교사로서 7년간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조용한 날이 없어도 늘 웃게 해주는 아이들의 예쁜 모습, 더디지만, 자신들만의 속도로 자라는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블로그(blog.naver.com/apua0724)에 기록하기 시작한 특수교사와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특수교사의 교단 에세이 ‘이토록 명랑한 교실’로 재탄생했다. 주 교사는 “우리 아이들의 매력을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바랐다”면서 “이렇게 발랄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어디 있겠냐”고 했다. 그는 특수교육에 대해 ‘장애가 있거나 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높아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들의 학습 요구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장애가 있다’, ‘장애를 경험하다’는 말을 함께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덧붙인다. ‘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는 말은 현재 장애는 없지만, 적절한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장애를 겪을 상황을 말한다.’ 주 교사는 “장애는 이상하거나 불편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장애 자체를 성격이나 혈액형처럼 개인 특성의 하나로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졌어요. 장애 있는 친구를 무시하고 놀리고 괴롭히는 비겁한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가 특수교사가 되고 장애인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잘못들이 부끄럽지만, 장애가 뭔지 몰라서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가졌던 사람도 변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특수교사가 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기다림’이었다. 직접 하면 10초 만에 끝날 일이 아이들 손에서는 10분, 20분이 걸렸다. 초임 시절에는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신발도 신겨주고 옷도 입혀줬다. 그게 돕는 거라고 여겼다. 한 해, 두 해 보내고 나서야 기다림이 존중의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교사가 대신하는 건 아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뺏는 일이었다. 주 교사는 “장애를 대할 때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것, 수동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통합학급에서 도우미 친구 활동을 많이 도입해요. 가령, 수업 시간마다 도우미 친구가 특수학급 친구의 교과서를 대신 가져다주는 식이죠. 학생들이 장애는 도와줘야 하는 것이라고 오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도와주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요. 도와줘야 한다는 말에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 인식이 포함돼 있어요. 장애가 있어서 돕는 게 아니라, 우리는 원래 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는 점을 가르쳤으면 합니다. 장애보다 개인의 존재를 먼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수교사는 혼자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학생의 보호자와 통합학급의 학생, 담임교사와 협력해야 한다. 지역 사회의 유관기관, 사회의 시선, 제도까지 살피면서 일한다. 주 교사는 “아이들의 행복,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서로 존중하는 마음, 믿어주는 마음, 우리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어떤 걸까, 고민했어요. ‘존재로 충분한 세상’이 떠오르더군요. 장애가 장애 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나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자식 일이 부모 뜻대로 되지 않으며, 자식이 부모의 뜻과 반하는 결정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부모가 결국 수용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가정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녀에게 맞추려고 애쓰는 부모도 분명히 있다. 사춘기 이후 바뀌는 부모의 태도 자식 앞에서 권위적이고 엄격했던 부모도 자녀의 사춘기 이후에는 조금씩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리 야단쳐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아이가 더욱 반항하거나 어긋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는 자식에 대해 취했던 강경 노선을 조금씩 완화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 사춘기 이후 자식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을이 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자식에게 을인 부모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자식이 부모를 걱정시키고 속을 썩여도 부모는 자식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항상 져주고 받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춘기 자녀에 대해 단호하고 강경한 입장에 서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맞춰주려고 쩔쩔매는 부모들을 보고, 이러한 양육 태도가 자식을 응석받이로 기르거나 버릇을 나쁘게 만든다, 혹은 자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저해한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엄격한 부모는 심성이 곱고 순종적이었다가 사춘기 때 돌변한 자녀를 어떻게든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꾸중과 훈계를 계속하지만, 갈등만 심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춘기 자녀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부정적인 말은 삼가고 최대한 맞춰주는 부모는 위기의 자식에게 어느 정도의 탈출구 또는 스트레스 해소처가 되어 준 것일 수도 있다. 공부도 하기 싫은데 학교에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는 따분한 생활, 친구들과의 살벌한 경쟁을 벌이면서 느끼는 피로감, 교우 관계나 학업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 사춘기 우리 자녀들은 각종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이렇게 안팎에서 상처 입고 예민한 사춘기 자녀에게 우리 부모가 좀 져주고 알면서도 넘어가 주고 짜증도 받아 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자녀의 사춘기 이후부터는 부모의 이러한 너그러운 수용의 태도가 과잉보호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부모가 사춘기 자녀의 이런 짜증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까? 그렇다고 밖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집에서 너그럽게 받아 주는 엄마와 아빠에게 짜증을 내게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너그럽게 수용하는 자세 필요 사춘기 자녀를 엄격하게 대하고 잘잘못을 가려서 강단 있게 훈육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부에 싫증을 내고 부모와 교사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게 불만과 회의를 느끼는 사춘기 자녀에게 사사건건 야무지게 따지면서 이겨 먹는 부모가 되는 것보다, 알면서도 속아주고 져주는 부모가 돼야 한다. 부모로서 품위는 지키되, 권위 의식은 내려놓고 자식의 짜증을 받아 주고 아낌없이 지지해 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어떨까? ‘매를 아끼면 자식의 버릇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과도기에 있는 사춘기 자녀들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고 너그럽게 대해 줘야 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러닝머신(Running Machine) 위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가. 다른 이름으로 트레드밀(Tread Mill)이라고도 하는데, 그 유래가 특이하다. ‘tread (디디다, 밟다)’와 ‘mill (방앗간, 제분소)’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그 뜻을 유추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죄수의 처벌 도구로 고안됐다고 한다. 곡식을 빻기 위해 물레방아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 놓고는 죄수를 그 위에 올려 쉼 없이 고문 바퀴를 돌리게 한 것이다. 극한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트레드밀은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특한 발명품이었다. 이후 재질과 형태를 바꾸며 변신을 거듭하더니 죄수를 위한 고문 도구는 전 세계 헬스장을 빠짐없이 채운 운동기구로 자리매김했다. 처벌 도구였던 러닝머신 흥미로운 탄생 비화를 가진 러닝머신은 현재 가장 사랑받는 운동기구 중 하나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하려면 눈치를 봐가며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러닝머신이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첫째, 러닝머신 위에서의 '움직임'은 능동적인 형태의 운동이 아니다. 회전하는 쳇바퀴 모양의 궤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수동적으로 '걸어내야 만'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벅지의 앞쪽, 대퇴사두근이 주로 발달해 근육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몸이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바람의 저항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니 운동의 부하가 낮아지고 시간 대비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러닝머신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궤도가 마모돼 떨어져나오는 미세플라스틱과 먼지는 코와 입을 통해 신체 내부로 흡입될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가정에 러닝머신을 들이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옷걸이로 전락해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장난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안전사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걷기 좋은 계절 그러니 깨끗한 공기가 있고 새소리며 풀벌레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자연을 향해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탁 트인 공원이나 드넓은 학교 운동장은 위드 코로나(with covid)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부합하는 안전한 장소다. 굳이 러닝머신의 유래를 떠올리며 죄수가 된 듯 고문 기계 위에 서기보다는 자유의지로 걷든 뛰든 야외로 나가보자. 때마침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이다. 걷기 좋은 때다. 독서지절(讀書之節)이라 한정 짓기에는 아까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