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03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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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여러 사람들에게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IT,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코딩교육, 빅데이터, 블록체인”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정작 중요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4차 산업혁명’은 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ICT와의 융합을 통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물론, 4차 산업혁명도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표현되는 3차 산업혁명의 부산물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2018년 12월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5년간 5,756억 원을 투입해 SW 핵심인재 1만 명을 양성하기로 했으며, 이 같은 내용의 ‘4차 산업혁명 선도인재 집중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인력이 3만여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른 계획이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열쇠는 뭐니해도 사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핵심인재 양성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스마트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들이 융·복합되고 있으며, 장차 로봇 등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SW교육, 코딩교육, 디지털교과서 도입 등으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일례로, 한국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SW 의무 교육시간이 초·중등 51시간(초 5·6년 17시간, 중등 34시간)에 불과하다. 일본은 125시간(중등 55시간, 고등 70시간)으로 한국의 2배를 휠씬 뛰어 넘는 수치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SW 교육을 전담할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2018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학교 가운데 SW 수업을 한 학교는 40% 수준으로 집계됐고, 2018년 12월 디지털 교육기업인 시공미디어가 초등교사 3,010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2019 코딩 정규교과 편성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교사의 70.1%가 ‘코딩 정규교과 도입을 위한 교사 연수가 미비하다’고 답했다. SW 교육을 전담할 교사도 부족하지만, 한국의 SW 의무 교육시간이 51시간에 불과하기에 수업시간만으로는 프로그래밍에 대해 이해도 버거운 형편이며, 학생들에 대한 교육시간을 대폭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에 대한 연수도 적극 추진돼야 한다. 일선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기술을 접목시키기 위해 교사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현장은 녹록치 못하다.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낡은 컴퓨터, 깔리지 않는 와이파이 등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장비가 가정마다 설치된 초고속 인터넷망을 따라갈 수 없는 실정이다. 다양한 교과에서 드론,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로봇, 디지털교과서 등의 도입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하드웨어적인 요소의 미비로 현장 교사들은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경기도 L고 P교사는 “아직도 일선학교 교사들은 카카오톡보다 성능이 떨어진 메신저를 사용하고, 업무시간에 외부 이메일 대신 공직자통합메일을 사용하며, SNS 등을 사용하지 못한다”며, “사용을 위해선 허가대장에 기재해야만 카톡 등을 사용할 수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온갖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책추진이 아쉬운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최근, 택시업계와 카카오 카풀 간의 갈등은 급속도로 파고드는 신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공유경제도 결국 사람의 삶을 살찌게 만들지만, 사람의 직업을 서서히 없애는 미운오리가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시대는 다양한 융·복합 기술로 사람의 삶의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앞으로 미래 핵심역량으로 양성하는 교육에 있어서는 사람이 우선시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복잡해지는 사회는 점점 차갑고 감정이 메마른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인공지능로봇을뛰어넘기 위해선따뜻한 감성으로 무장한 인성이 깃든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2018년 12월 31일부터 2019년 1월 11일까지 경북생활과학고에서 글로벌 직업기술교육교사(TVET: Technical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양성 연수를 실시한다. 글로벌 직업기술교육교사 양성 연수는 특성화고의 호주 기술 자격 과정을 지도하기 위한 조리, 용접, 축산 회계 분야 교사 2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특성화고 호주 기술 자격 과정은 특성화고 1학년을 선발하여 국내에서 국제통용 자격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3학년 2학기에는 3개월간의 글로벌 현장학습을 실시하여 국제통용 자격(CertificateⅢ, CertificateⅣ)을 취득한다. 자격 취득한 학생들은 해외 취업 후 디플로마 학위과정과 연계하여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경상북도교육청의 특성화고 호주 기술 자격 과정은 조리 분야에 3기, 용접 2기 학생까지 선발 하여 운영되고 있다. 글로벌 직업기술교육교사(TVET: Technical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양성 연수는 호주 멜버른 폴리텍대학의 교수들이 방한하여 호주 정부가 직업교육훈련 교직이수자격증과정을 국제화한 ITAC (International Training Assessment Courses)과정을 운영한다. 경북교육청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술ㆍ기능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사의 수업 역량과 선진 기술 습득을 위해 글로벌 직업기술교육교사 양성 연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8년 교수신문은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원을 선정했다. 임중도원은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실린 고사성어다. 이 사자성어는 넓게는 현 정부의 책임과 어려움을 말하고 있지만 좁게는 각계각층에서 목표를 찾아 숨 가쁘게 사는 우리 삶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추구권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행복은 명문대 졸업과 취업, 재력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래서 자녀를 둔 부모는 과도한 사교육비를 부담하며 경쟁의 뚫고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을 가져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길이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공통분모는 아니다. 그 여정은 수 없는 시행착오와 교육을 둘러싼 제반 환경의 변화에 휩쓸리며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신은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거울 하나를 던져 산산조각내고 그 흩어진 조각을 모으는 과정인 삶을 과제로 준다. 그리고 그 삶이 끝날 때 비로소 맞추어 완성된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현실에서 자신이 만족하는 행복을 실현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에 견주어 본 우리 시대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꿈의 실현과 행복을 명문대 졸업장과 부로 간주하는 경향이 진하다. 이를 위해 오로지 인 서울 명문대 진학을 부르짖으며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의 자녀들을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어둠으로 몰고 있다. 정부도 이런 폐해를 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해소를 위한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입시제도를 바꾸면 그에 파생된 사교육이 또 다른 형태로 등장하여 학부모 등골을 휘게 하고 끌려가고 있는 게 교육 현실이다. 이런 혼돈 속에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꿈의 실현과 행복의 의미를 제대로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일전에 첫돌을 맞은 아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 하나라서 그런지 거실 전체가 여느 보육 시설의 놀이방을 옮겨다 놓은 듯했다. 놀잇감에서도 감성을 키워줄 아날로그적 요소를 찾아보기 어려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 영유아를 둔 집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육아휴직 후 출근은 하지만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애로를 말하기도 하였다. 아이하고 더 있고 싶지만 호구지책이라는 현실이 개인과 가정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게 하고 있다. 그럼 행복은 과연 가진 자만의 소유물인가? 지난해 12월 행복교육지구 탐방 차 충남 홍성군을 찾았다. 그곳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더불어 귀촌 귀농한 지역민들이 면 단위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학교활동 연계한 다양한 자치 교육 활동이 이색적이었다. 특히 풀무학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민을 위한 삶의 배움터라는 교훈으로 빨리빨리 경쟁에 물든 지금 교육 현실과는 달리 느림과 평등과 생명존중의 사랑이 배어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는 서로 믿고 기다리며 모두의 가치를 위해 토론하여 방향을 모색한다. 이런 느림과 배려, 함께하는 교육 활동을 통하여 성장한 바른 인성의 아이들이 이 사회의 바탕을 이룰 때 삶의 부대낌은 더 온화한 어울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명문대 졸업장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선 하버드대 졸업장의 가치를 딱 4년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으며 어느 학교 나오고 뭘 이뤘는가보다 지금 뭘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와는 다른 사고관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지식이 필요 없는 사회 인공지능 사회다. 명문대를 위한 과도한 사교육 시장은 분명히 멀어질 것이다. 풀무학교가 추구하는 것처럼 작은 만족 속에 행복을 디자인하며 도회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곳에 정착하여 소박한 만족을 추구하는 모습이 바로 행복교육의 지향점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뭐든 빨리하는 민족이다. 하지만 교육은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에 대한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솟는 것은 아니다. 임중도원이란 말처럼 책임감을 갖고 기초부터 차분히 생각하며 앞날의 디딤돌 놓는 것이 행복교육의 첫걸음이다. 내 아이만 최고면 그만이라는 경쟁은 재고해야 할 시기이다. 이런 교육의 시류를 지자체나 교육청 차원에서도 알고 혁신학교, 행복학교, 행복교육지구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 이루려는 성과주의는 독이다. 성과에만 치중한 예산 투입과 보이기 위한 활동이 아닌 모두가 깊이 생각하고 꿈과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는 걸음이 교육에 있어 임중도원이 아닌가 한다.
보람과 긍지의 대명사였던 교직의 길이 점점 가시밭길로 변하고 있다. 학생들 앞에서 학부모에게 뺨을 맞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급기야는 미투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까지 생겨났다. 학교폭력 문제로 힘들어하는 교원이 늘어가고, 교권은 날로 추락하여 스승의 보람은커녕 하루빨리 교단을 떠나려는 교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17년 853명이던 명퇴자가 2018년 1162명으로 36.2% 늘어났고 내년에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교단이 날로 황폐화 되고, 제반 사회 여건이 교원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모작들을 심사하면서 자신의 도시락까지 나눠주던 옛 선생님이 떠올랐다. 오늘날 선생님의 존재는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올 한 해 작품들은 선생님들의 고해성사 같은 수기들이 많았다. 예전처럼 헌신적인 선생님의 모습보다 현실에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과의 삐걱댐,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기에 교사라는 사명감을 아직은 느끼고 있다는 사연들…. 읽는 내내, 심사하는 내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편이 넘는 글을 읽으면서 아직까지 교직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다시 얻게 되었다. 20~30년 전의 케케묵은 추억담이나 회상 이야기보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생생한 이야기가 더 감동을 자아낼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대상으로 선정된 ‘그 아이는 조금 특별한 아이였다’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 편의 잔잔한 고해성사를 듣는 기분이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내면 속 갈등의 진정성에 감동했고, 우리 교사들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상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입상한 분들께는 축하를 드리고, 입선하지 못한 분들은 내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2019년은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자랑스러운 역사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으로 지나 온 100년을 거울삼아 대한민국 미래 교육 100년의 초석을 놓는다는 자세로 함께 뛰어야 한다. 지난 과거를 밑거름 삼아 새해, 새 마음 새 각오로 새 출발하는 한국 교육이 다음과 같이 변화하고 혁신되기를 기대한다. 첫째, 교권 확립의 새로운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누가 뭐래도 교육의 주체는 교원(교사)이다. 교원들의 가르칠 수 있는 권리 보장이 좋은 교육의 출발점이다. 교원들이 법령과 교육과정 테두리 내에서 편안하게 긍지를 갖고 가르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급선무다. 물론 학생들의 인권, 학습권 보장도 중요하다. 부디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 악성 민원 등이 근절되고, 교단이 오롯이 신바람 나는 학교, 가르칠 맛 나는 교실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 교육부가 한국 교육의 컨트롤 타워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난 해 2022 대입제도 개편 과정처럼 응당 교육부가 중심을 잡고 매조지해야 할 일을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 등에 업무 위임을 하여 외주·하청 기관으로 전락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시종 당당하게 권한을 행사하고 떳떳하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교육부는 정책 추진 시에 특정 노조, 시민단체 등에 휘둘리지 말고 법령대로 시행해야 한다. 셋째, 교육 정책과 제도의 일관성·연속성 유지를 기대한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통틀어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이다. 교육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또 단기적 냄비식 접근이 아니라, 돌솥밥식 장기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작년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 방과후 학교, 오후 3시 하교, 빈 교실 돌봄교실 증설, 교장공모제 확대, 대입제도 개편 등이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일방적 추진돼 현장의 혼란이 극심했다. 정책은 장기적으로 의견 수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일관성·연속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역대 교육부장관 58명의 평균 임기가 1년 2개월 미만(428일)인 것도 교육 정책 일관성·연속성의 걸림돌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 함께 일궈가야 할 행복교육 넷째, 교육의 정치적·이념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보시대’다. 정부와 대부분의 교육감들이 진보 성향이다. 하지만 교육이 정치에 예속되거나 진보와 보수 등 이념으로 양분되면 안 된다. 교육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정치적·이념적 중립성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 민주시민학교 등도 특정 이념·성향에 편향돼서는 안 되고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 교육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끝으로, 교육의 국민적 신뢰 회복이 화급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국민적 불신이 팽배한 영역이 정치와 교육이라는 세간의 혹평이 있다. 국민들의 교육 불신은 교육 행정, 제도, 정책, 안전, 복지 등에 대한 탁상공론, 비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교육이 국민들의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기초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 전 국민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교총의 노력으로 작년 말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사혁신처에 8월 퇴직 교원의 성과상여금 지급을 권고했다. 또 교권 3법인 아동복지법(국회 본회의 통과), 교원지위법(교육위 통과), 학교폭력예방법 등 개정도 목전에 와 있다. 향후 경미한 학교폭력의 단위학교 자체 종결 확대, 학폭대책자치위원회 교육지원청 이관, 단위 학교와 학교장의 자율권 확대 등도 전향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2019년 한국 교육이 안정을 되찾아 한 단계 도약하고 교직원, 학생, 학부모, 교육당국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하는 행복 교육 오케스트라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
2019년 새해 첫날 타임머신을 타고 마지막 날로 가봤다. 2018년 연말 교육계 키워드와 마찬가지였다. 부정적인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교육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는커녕 따라가기조차 버거웠다. 총선이 다가오자 정치권은 교육을 정쟁의 수단이자 장(場)으로 삼아 교육의 뿌리마저 흔들고 있었다. 학교교육에 대한 과도한 환상 서둘러 새해 첫날로 돌아왔다. 악몽에서 깬 것처럼 섬뜩하다. 대통령과 청와대, 혹은 각 교육감들이 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교육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것은 교육계가 거대한 복잡계의 일부임을 깨닫고 시스템을 재설계 하는 것이다. 한국교육 여건의 강점을 염두에 두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구성원들은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기대 밖 행동은 시스템 설계의 오류이지 그들의 탓이 아닌 것이다. 먼저 학교교육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에 초점을 맞추자. 무한경쟁·승자독식의 실력주의사회에 둘러싸인 현실에서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비를 없앨 수는 없다. 학교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오늘 행복하게 살도록 돕고, 내일을 위해 갖춰야 할 지식과 역량, 인성과 체력을 재미있게 길러갈 수 있도록 도우며, 주체적 학습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또한 배움에 무관심하거나 자퇴하려는 학생들이 배움에 흥미를 갖도록 이끄는 것도 학교와 교사의 몫이다. 사회와 교육계가 교육의 핵심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사회차원에서 해결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할 때 학교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세계적인 수준의 우리 교사들이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전문적 책무성 확보 시스템을 갖추면서, 안주하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외적 책무성 확보 시스템도 함께 갖출 필요가 있다. 교사는 지쳐가고 있는데 왜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교육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 가는지, 왜 기초학력은 저하되고 학교폭력은 증가하는지 등 교육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문가들과 힘을 모아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해 교육행정기관에 법과 제도 개혁을 요구하자. 학교는 학부모 역할을 명시하고,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학부모에 대해서는 필요한 제재를 가할 권한 및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권한도 가져야 한다. 시스템 재설계에 힘을 모아야 학교장과 교육청 그리고 시민단체는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제대로 하도록 돕고, 중앙정부와 국회는 교육의 미래를 위한 중장기 비전 보완에 총력을 기울이며, 언론사는 사건사고를 다루는 사회부 시각이 아니라 교육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전문 대기자의 시각에서 바람직한 학교문화 형성에 앞장서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자. 이와 함께 국민교육대토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개인과 조직들이 깨어나도록 함께 힘을 모아가자. 시스템 재설계에 힘을 모으고, 서로를 격려하며 역할을 충실히 해간다면 올 연말 교육계 키워드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늘어날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우리가 만든 미래이고, 내일은 오늘의 우리가 만들 미래임을 기억하자.
지난해 말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한국교총과 교육부간 ‘2017년도 교섭·협의’에 대한 합의 조인식이 있었다. 양측 간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교섭 현안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양측은 동반자적 자세로 모든 현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다. 교총의 요구에 인권위 화답 합의서를 보면 교원복지 및 처우개선 사항에서 ‘8월말 퇴직교원에게 성과상여금을 지급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조인식이 있기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 퇴직교원의 성과급 지급 권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교총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해온 사항이었다. 인권위도 8월말 퇴직교원의 성과급 지급을 위해 교총이 기울여온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교원과 공무원에게 퇴직 시점을 이유로 성과 상여금을 지급하는 현행 제도는 시정·개선되어야 마땅하며, 지급 기준일 전에 퇴직하는 교원과 공무원에게도 성과 상여금을 지급할 것을 권고하였다. 일반 기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1년간의 근로 행위에 대한 평가에 근거해 그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지급받는다. 이 때 회사에 대한 기여도와 성과가 클 경우 통상 급여의 몇 배에 해당하는 성과 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 공무원과 교원들도 근무성적 평정에 근거한 성과급을 받고 있다. 성과급은 2개월 이상 근무한 교원이면 누구나 그 지급 대상이다. 여기에는 기간제 교사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보다 많은 6개월을 근무하고 8월말에 퇴직한 교원은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성과급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성과급의 취지와 형평성에 있어서 합당하지 않은 불합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2개월 이상 근무한 기간제 교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6개월을 근무한 교원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교원뿐만 아니라 일반 공무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하윤수 교총 회장이 8월 퇴직자들의 성과급 지급을 위해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노력해온 다각적인 활동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하 회장이 지난 2년 간 청와대와 국회, 정당, 정부, 인권위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여 이뤄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부처 후속조치 취해야 퇴직교원과 공무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공무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부합한다. 국가인권위의 시정 권고에 의거해 관련 부처는 속히 규정을 정비하여 시정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원도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퇴직 전 공로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퇴직 전 6개월에서 1년 간 공로 연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적게는 100만~300만원의 공로 연수비를 지원받는다. 이에 반해 교원은 근 40여년을 근무하고 퇴직하는 경우 연수비 지원은커녕 일정 기간의 공로 연수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루속히 이에 대한 시정과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육신문사가 주최한 2019 교단수기 공모 대상에 강인혜 경남 주약초 교사가 선정됐다. 강 교사는 작품 '그 아이는 조금 특별한 아이였다'를 통해 교사와 학생의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심사위원들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 편의 잔잔한 고해성사를 듣는 기분이었다"며 "담담하게 써내려간 내면 속 갈등의 진정성에 감동했고 교사들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했다. 금상은 김기수 충북 장연초 교사, 윤희성 충남 삼은초 교사, 조동욱 경북 점촌중앙초 교사가 받았다. 은상은 김광원 경북 포항흥해공업고 교사, 김효신 제주 한림초 교사, 민세원 경기 가림중 교사, 이순애 경기 성남미금초 교사, 임재일 경기 백봉초 교사, 홍란수 충북 음성동성초 교감이 수상했다. 시상식은 1월 30일 한국교총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눈을 기다리게 된다. 만지면 소스라치게 차갑지만 그 풍경만은 늘 벅차게 따뜻한. 12월은 늘 시리다. 일 년 동안 뭘 했냐는 다그침과 곧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마음이 추워지는 걸 잊어버리라고 이리도 바람은 매서운 걸까?5학년 겨울방학식이 시작되는 12월에 지혜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이 좋아요.’ 그 흔한 말에서 먹먹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쉽게 하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은 특별했다. 한 해의 일이 아주 먼 일처럼 스친다. 3월에 처음 만난 지혜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눈에는 늘 눈물이 고여 있는 듯 보였고,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행동이 느린 아이.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며 다른 책을 사물함 위에 올려놓기 일쑤였고, 제출해야 하는 과제나 안내장은 늘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 또래보다 상식이 풍부했지만 모둠 활동은 뜻대로 해야 하며 뾰족한 태도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이 종종 있기도 했다. 혼이 날 때면 허공에서 방황하던 그 아이의 눈빛과 어눌한 대답이 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 때쯤부터였을까? 지혜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은. 그런 연락이 점점 잦아지고, 반 아이들이 괴롭혀서 지혜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때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면 지혜가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가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혜와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엄마에게 좀 심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정도 사건을 학교폭력이나 왕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그러던 중, 모둠 활동에서 지혜가 아는 척을 하자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지혜를 무시하고 비꼬아서 기분 나쁜 말들을 쏟아 부었다. 그날 밤 지혜는 지혜 어머니에게 울면서 사건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지혜의 어머니에게 늦은밤 문자가 왔다. ‘지혜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고, 이번에는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니 남자 아이들의 잘못이 많았지만 지혜도 모둠활동을 독선적으로 이끌려고 한 부분이 있었다.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남자 아이들을 호되게 혼을 냈다. 그리고 그 날 지혜가 자주 머리가 아프고 눈물이 나는 증상 때문에 서울 병원 진료를 가게 되어 반 아이들 전체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그러던 중 학교전담경찰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혜 학생 문제로 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학교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학교 전담경찰관이 이 사건으로 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교직 경력도 적지 않았고,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모님과 연락하며 노력해왔는데 내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셨다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았다. 학교 전담경찰관과 생활부장선생님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 아이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고, 지혜가 교사인 나에게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상담을 해서 그 날 해결하고 하교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에게만 밤에 이야기해서 엄마로 부터 사건을 듣게 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이런 대화를 나누는 그때 나를 멍하게 만드는 말을 생활부장선생님께 들었다. “왜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엄마에게 하는 걸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변명인 여러 말들이 입속에서만 빙빙 돌았다. 하지만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은 아이들과 지혜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지혜와 나와의 문제이구나. 지혜가 나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렇게 만든 상황 이구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지 못한 지혜의 마음을 생각했다. 아이들 간의 관계 회복 이전에 나와의 관계회복이 먼저였다.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가 좋아하는 친구와 붙여주거나 짝이 된 친구에게 지혜와 잘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런 노력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먼저 지혜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로 하였다. 그 때쯤 지혜는 갑상선 호르몬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자주 아프고 가끔은 어눌해 보이고, 눈물이 자주 나는 그 모습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전 해에 지혜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지혜가 아주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는데 많이 달라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지만 과거의 모습을 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지혜는 정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가을의 나뭇잎이 물들 듯이 지혜의 변화를 나도, 지혜의 부모님도, 지혜도 어렵게 적응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지혜는 약물치료를 받았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 증상은 조금 나아졌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는 당당하게 잘 말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 주위를 어슬렁 거리기도하고 친구와 놀기도 하였으며 점심시간에는 주로 교실에서 혼자 책을 보기도 하였고, 교실에 다른 친구가 있으면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혜와 내가 서로 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면 웃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된 점이다. 비 오는 날. 복도 창문 밖으로 지혜가 손을 내민다. 복도를 지나가던 나도 손을 함께 내밀어보았다. “선생님도 비를 참 좋아해.” 지혜는 나에게 따뜻하고 어색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나도 같이 미소 지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지혜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지혜는 어색하지만 주섬주섬 이야기를 꺼내놓곤 했다. 학년 말이 되어서도 지혜는 친구들과 완전히 섞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에서 가끔은 행복함을 읽었고, 웃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다. 처음 지혜는 특이한 아이였지만, 일 년을 마칠 때 쯤 나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갑각류가 자라는 시기는 허물을 벗어 속살만 드러나는 가장 약한 시기라고 한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그 시절, 나는 교사로서 조금 자라났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되 그 안의 아이이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과의 관계 맺기라는 것을. 그 사실은 앞으로 나의 교직생활에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하늘 좀 봐.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잣말을 한다. 누구라도 꼭 봐야 할 가을 구름이다. 구름을 본 순간 그 공간은 삭막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린다. 봄에 만남을 생각한다면 가을에는 헤어짐에 골몰하게 된다.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 ------------------------------------------------------------------------- 2019 교단수기 공모 대상 수상자당선 소감-따뜻한 선생님, 좋은 어른이 돼주고 싶다 겨울방학식이다. 아이들이 일찍 떠나고 난 교실은 괜히 마음이 시리다. 아이들에게 지난 일 년은 어땠을까? 나는 매순간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했을까?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큰 선물을 받았다. 잘 하고 있다고 이 상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말 감사하다. 교사라는 직업이 버거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란 이유로 상처 주지는 않았는지, 정작 성장이 필요한 건 교사인 내가 아닌지…. 내가 아직 성장 중인 교사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늘 안주하지 말라고 모범을 보여주는 선배, 후배 교사들에게 존경을 전한다. 어른이 되게 해준 소민, 지후와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지혜를 비롯해 나를 성장하게 해준 모든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만날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보다는 그냥 따뜻한 선생님,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이 책은 수학자나 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천재들이 쓴 책이 아니라 일선 현장에서 직접 초·중·고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치던 강사가 쓴 책이라 더욱 실감이 난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수학의 학습법에 대해 뜬구름 잡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막상 우리 학생들이 읽어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론과 현실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조안호의 ‘십대들이여, 수학에 올인하라’는 크게 1부, 수학 상식을 뒤집는 수학 이야기. 잘못된 수학 공부에 반대한다. 2부, 초등수학 사용설명서. 수학 공부의 진실 혹은 거짓을 말하다. 3부, 중학수학 사용설명서. 학원의 성공은 학생의 패배다. 4부, 고등수학 사용 설명서. 수학 공부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라.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수학’에 대해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학이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각 시기별로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하여 수학 공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했다. 흔히 명문대학 입학의 관건은 수학실력이라고 한다. 실제 고등학생들은 전체 공부 시간의 약 80%를 수학에 투자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수학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수학이 그만큼 점수 올리기가 어렵고 까다롭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수학은 그렇게 어려운 과목이 아니라 단지 귀찮은 과목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필자 또한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생각을 깊게 해야 하는 문제가 출제되면 평소 배운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데도 그러한 과정을 귀찮아하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의 재미는 문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풀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즐거움에 있으며, 기본 개념과 연산 능력이 함께 갖춰줘야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요즘 수학자들은 사고력과 창의력은 중시해도 계산능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계산능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계산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년이 승급될수록 계산능력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필자는 이 책에 믿음이 갔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로 진급하면서 계산능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안다면 절대 계산능력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중학교 2학년의 연립방정식에서는 다섯 개의 암산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학교 3학년의 이차방정식은 여섯 개의 암산을 요구하며, 고등학교 1학년에서는 열 개 이상의 암산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연산능력을 길러 놓아야 수학이라는 장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계산능력은 누구든 반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필자는 친구들보다는 그래도 수학을 좀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수학 문제를 푼다. 수학은 필자가 희망하는 진로와도 매우 관련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평소 수학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필자와는 다르게 수학을 몹시 싫어하는 학생들과 장차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와도 관련성이 없는 학생들이 왜 수학에 이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지에 의아해 한다.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이 속 시원히 풀릴 것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과목 중 왜 유독 수학이 중요한지, 왜 수학을 포기하면 안 되는지, 다른 과목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왜 수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책에서는 개념설명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문제를 풀기에 앞서 반드시 개념을 최대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저자의 이 말을 수학을 포기한 모든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기본적인 개념만 이해하고 암기하면 웬만한 문제들은 다 풀린다는 것을 필자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문제를 풀기에 앞서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암기해서 문제를 더 쉽고 빠르게 푸는 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을 어떤 방법과 방향으로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있었고, 수학에 흥미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을 수학을 포기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한국교총이 정년퇴직예정 교원의 공로연수제 도입을 정부에 건의했다. 교총은 “퇴직을 앞둔 대다수 일반직 공무원에게 부여하고 있는 공로연수제도를 교육공무원에게만 제외하고 있다”며 “퇴직준비휴가 부활 또는 공로연수 도입을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각각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원의 공로연수제(퇴직준비휴가제)는 2011년까지 ‘교원휴가업무처리요령’에 근거해 최대 3개월의 퇴직준비휴가가 퇴직 후 사회적응 등을 위해 허용돼왔다. 그러나 2012년 주5일제 수업제가 전명 시행되면서 2013년 7월 발표한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일부개정 및 국가공무원복무·징계관련예규 개정’에 따라 교원의 퇴직준비휴가는 폐지됐다. 이후 교원의 퇴직 후 사회적응 능력을 위한 관련 제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교육공무원 임용령’ 제7조의4(파견 등으로 인한 결원보충)항에는 퇴직공로연수제의 시행을 지원하는 내용이 없어 제도 신설 및 이에 따른 법령 개정이 절실하다. 반면 일반직공무원의 경우 1993년부터 ‘공무원 인사지침’과 ‘공무원 임용령’ 제42조 제2항,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27조의3 제1항 제2호에 근거해 지금까지 변함없이 시행되고 있다. 정년이 될 때까지 남은 기간이 1년 이내인 공무원이 퇴직 후의 사회적응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연수하게 된 경우 법 제43조 제2항에 따라 정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고 결원을 보충할 수 있다. 연수를 위한 파견의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인사혁신처장이 정한다. 이는 여타 특정직공무원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교원과 같은 특정직공무원인 외무·경찰공무원은 2012년부터 공로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군인의 경우에도 ‘전직지원교육’이라는 유사제도를 운영하며 3~12개월간의 교육을 통해 퇴직 후 사회적응 및 취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소방공무원 역시 상당수 퇴직자들이 적용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도 ‘교원공로연수법 제정의 필요성과 입법방향’을 언급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6년 발행한 ‘입법과 정책’에서 “일반공무원 연수대상자는 대부분 지방공무원인 것을 감안할 때 국가공무원인 교육공무원에 대해 교원공로연수법을 제정해 일반 공무원들과의 형평성을 유지하면서도 교사 자긍심 회복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퇴직을 앞둔 대다수 공무원에게 부여하고 있는 연수제도를 교육공무원만 제외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정”이라며 “정부는 이 같은 교육공무원의 고충을 해소하는 동시에 제도운영의 공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교총은 교육부에게도 제도 개선 동참을 촉구했다. 동 사안에 대해서는 지난 2009년부터 교총-교육부 상·하반기 교섭합의를 통해 공로연수 도입방안을 협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2016년 2월 25일 ‘퇴직준비 교원 연가 허가 관련 사항 통보’ 공문의 시행을 통해 교원 개개인의 연가를 학기 중 사용하는 임시조치만을 취했을 뿐 이후 관련 제도의 근본적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근거규정 미비로 혼선을 빚었던 유치원 원로교사 수당에 대한 지급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교총의 요구를 반영한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심의‧의결 되면서다.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매달 1일 현재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이하의 각급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원 중 30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고 55세 이상인 교사에게는 월 5만원의 수당이 주어진다. 그러나 유치원 원로교사 수당은 2004년 유아교육법이 제정되면서 행정입법의 부작위로 지급대상에서 누락돼 지금까지 지급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 의결된 개정안의 핵심은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별표 11 제2호 다목1을 수정한 것이다. 30년 이상 교육경력에 해당되는 교원에 대한 규정에 ‘유아교육법’ 제20조 제1항(유치원에는 교원으로 원장ㆍ원감ㆍ수석교사 및 교사를 두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유치원에는 원감을 두지 아니할 수 있다)을 포함시켜 유치원 원로교사도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급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교총은 그동안 누락됐던 원로교사 수당 지급을 위해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별표 11을 개정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행정입법 부작위로 원로교사 수당 지급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탓에 유치원 교원들만 받게 되는 불이익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에 교총은 2017년 9월 교육부에 건의서를 제출한 이후 올해 4월과 7월, 10월에도 교육부와 인사혁신처, 국회 등에 건의서와 민원서 등을 제출하며 개선을 촉구했고 결국 교육부로부터 답변을 받아냈다. 지난달 28일 타결된 교총-교육부 교섭‧협의 제40조에도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별표11 개정 추진에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식 개정령안은 8일 인사혁신처 홈페이지에 개제될 예정이다.
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월이 데려간 일들이라 치부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날 순미가 불쑥 교무실로 찾아와 순미인줄 전혀 모르는 나에게 미움이나 원망의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반가운 표정과 목소리로, 수소문 끝에 여기 계신 줄 알아내서 찾아왔다고 담담히 말할 때까지 순미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저 순미예요.” “저 서른이 넘어서 이제 철들어서 고입 검정 시험 치려고요. 중3 때, 몇 반 몇 번이였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행정실에서 필요한 서류를 떼려는데 전산화 이전의 자료여서 입학연도와 학반, 번호 등이 필요하대요. 담임 선생님은 기억하실 것 같아 이렇게 불쑥 찾아왔어요.” 그랬다.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어 1987년에 이르면, 그 때 순미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유난히 희고 예쁜 얼굴의 순미는 조용한 성격으로 늘 교실 구석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거나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이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학생이었지만 소위 말하는 ‘껌 좀 씹는 학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런 인상 때문에 내가 방심했는지도 모른다. 4월의 교정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봄 햇살은 화답하여 느릿느릿 교정에 내려앉은 어느 날, 그런 봄날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금정경찰서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 부딪히는 봄 햇살을 차면서 출근한 월요일 아침의 바로 그 시간이었다. “혹시 이순미 학생의 담임되시나요?” 친절을 가장했지만 위압감이 잘 스며든 목소리였다. “그런데요. 제가 순미 담임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이순미 학생이 어제 밤에 남학생들과 함께 혼숙을 하고 있어 저희 경찰에게 단속돼 지금 금정경찰서에 있으니 학생을 인수해 가시기 바랍니다.” 놀란 가슴으로 급히 경찰서에 가보니 상황은 이랬다. 지난 일요일 친구와 함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더 오래 놀고 싶어 여관에 들어가 4명이 놀다가 검문 나온 경찰의 단속에 걸린 것이었다. 집에 귀가 하지 않은 남학생 부모님의 신고로 인근 지역의 여관에 대한 검색이 이루어졌고, 혼숙에 음주를 곁들인 불량 학생으로 경찰서에 잡혀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보호자에게 인계된 사건이었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무서워 내게 전화가 왔는지, 핸드폰이란 단어도 없었던 시절에 부모님과 통화가 안 되어서 내게 연락이 왔는지, 경찰의 업무 처리 지침에 학교에 먼저 통보하는 것이 매뉴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난생 처음 어린 학생을 인수하여 경찰관에게 약간의 훈시를 듣고 괜히 죄스러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최대한 겸손한 표정으로 순미를 데리고 나왔다. 폭력을 경멸하고 천박한 욕설에 진저리치는 나는 군대에서도 졸병들에게 욕설 한번 한 기억이 없고 폭력을 행사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난생 처음 빗자루로 순미를 때렸다. 교회당의 청소를 비롯한 허드렛일을 하시는 홀어머니와 함께 교회당 구석방에서 기거하는 순미를 생각하니 까닭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고난과 불우한 환경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나는 너무나 고지식한 사고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나 형설지공(螢雪之功) 같은 장미 빛 인생의 교훈만 머리에 각인된 철부지 교사였다. 성장하면서 느끼게 되는 박탈감, 소외감, 궁핍한 환경이 가져다주는 모멸감 등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은 나라도 개인도 가난하여 선생님들의 월급은 학생들의 공납금에 많이 의존했다. 따라서 공납금 독촉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고 선생님들에게도 고통이었다. 가난은 어린 순미에게 독촉의 대상이 되게 하고, 가슴 속에 작은 울분들을 키워갔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회비도 안내면서 학교는 왜 왔냐?’고 하셨습니다. 그 때, 내 안에 악마가 깃들었습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난이 인간을 이렇게 황폐화 시킬 수도 있는데, 순미도 무너진 동심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좋지 않은 환경을 헤쳐 나가는 좋은 학생이 되지 못하고, 고생하는 엄마 가슴에 못을 박는 순미가 미워서 분풀이하듯 때리고 전혀 가슴에 울리지 않는 훈화를 하고 난 뒤 학생부로 넘겼다. 나 혼자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으나 전화 올 때부터 이미 교무실에 퍼진 사건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 일로 순미는 근신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순미 어머니의 읍소와 나의 재발 방지 약속에 힘 입은 바가 컸다. 사람들은 흔히 학교는 똑같은 날의 연속이고 공부 내용도 똑같아서 매너리즘에 빠질 거라고 단정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라는 아이들은 외적으로나 내면적으로 마치 여름날의 나무같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신체적 성장은 세월이 가져다주지만 내면의 성장은 갈등을 거름으로 자라는 것 같다. 선생님과의 갈등, 친구들끼리의 갈등, 학업에서 오는 갈등 등을 겪고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그런 갈등들이 탄성한계를 벗어나면 성장 통이 아닌 주홍글씨로 남아 한 인생을 험한 길로 이끌기도 한다. 그 날의 순미가 그랬다. 내가 경찰서에서 순미를 데리고 나온 뒤 두 달쯤 지난 여름의 초입에 순미는 성장기 일탈의 한계를 넘어선 커다란 사고를 저질렀다. 불량기 가득한 친구 두 명과 함께 학교 뒤편의 공원에서 산책하는 후배 5명을 붙잡아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 후배들의 금품을 빼앗고 폭행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경찰서에 잡혀갔다면 ‘특수강도’로 기록될 사건 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사건 다음 날 무서워서 학교 못 간다는 2학년 학생의 부모님의 엄중한 항의가 이어졌고 순미를 포함한 세 명의 학생이 모두 잡혀와 학생주임의 분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순미의 구명은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왕따나 학교폭력 등의 관리가 정립되지 않은 시절이라 이런 일은 가끔 발생해도 사회적으로 어린 학생들의 일이라 치부하고 관대한 처벌이 보편적이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주임과 교감선생님, 선도위원 선생님들까지 강경하게 최고 수준의 처벌을 요구하셨다. 폭력을 동반한 금품갈취는 학생으로서 도저히 용서 되지 않는 죄라는 것과 2학년 때부터 교칙을 위반하여 징계 받은 횟수가 과다하고, 특히 순미는 얼마 전에 처벌받았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나는 무척 힘들었다. 교직에 몸담은 지 3년차 새내기 교사였지만 내가 보호하는 우리 반 학생의 퇴학은 무엇보다 막고 싶었다. 지금이야 퇴학 처분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기도 하고 또 얼마간 쉬다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으면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을 전향적으로 열어놓은 시대지만 그 때는 달랐다. 퇴학은 곧 인생의 괘도에서 벗어난 탈선한 기차처럼 다시는 가던 길로 돌아 갈 수 없던 시절이었다. 순미를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는 순미 엄마의 방문이 이어졌고, 나도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도 징계를 받겠다는 억지도 부리면서 퇴학만은 막으려 했지만 결과는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며칠 뒤 순미를 데리고 넓은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시던 순미 어머니의 뒷모습은 오래토록 잊히지 않았다. 엄마 뒤에 풀죽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뒤따라가던 순미의 뒷모습과 함께……. 그렇게 학교를 떠난 순미가 다시 찾아온 그 날은 2002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때였다. 나는 선생님 몇 분과 함께 언제 우리 생애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겠냐며 브라질과 터키의 경기를 관람하기로 한 날이었다. 어느 팀을 응원할까 잠시 고민하다 이구동성으로 터키를 응원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제작한 현수막을 펼쳐놓고 스스로 흐뭇해하던 그 때 순미가 교무실로 들어왔던 것이다. 이 또한 15년의 세월이 지났으며, 순미가 다녀간 후 15년의 세월은 아주 가끔씩 한숨을 쉴 때도 있었다. “ 그 때 나의 폭력이 순미를 더 빗나가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 그 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퇴학을 막았어야 했는데…….” “ 그 때 교장실에서 순미의 가정환경을 더 설명 드렸어야 했는데…….” 이런 회한으로 마음 한구석이 아린 사연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또 다른 순미를 만들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천운인지 몰라도 담임을 하면서 순미 이후로 단 한명의 퇴학생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최종 결재권자가 된 지금은 가끔‘자퇴’‘퇴학’등의 결재 문서를 만난다. 선생님들께 최선을 다해 학업중단 사태는 막아달라고 당부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들은 나의 뜻대로만 되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아픈 마음의 끝에는 언제나 그 옛날 우리 반의 순미가 거기에 있다. 30년 전에 담임이 지켜주지 못한 순미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간절히 빈다. ------------------------------------------------------------- [2018 교단수기 공모 은상 수상작-수상 소감]나의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길… 새해 벽두에 기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교단수기 공모에 뜻밖의 ‘은상’ 수상이라 기쁨도 뜻밖으로 컸습니다.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지만, 지금의 학생들과 사용하는 언어와 가치로운 것들에 대한 생각의 공통 분모가 점점 적어진 까닭에 요즘 들어 더욱 어렵고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가끔은 소신있게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과 함께 의구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선생님들과 과거 나의 실수나, 그때는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은 나쁜 일이 된 많은 것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나의 우울한 경험들이 출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생님들께 반면 교사가 되기를 기대하며…. 새해에는 교육의 중심이 균형을 잃어 그림자조차 희미해질 위기에 처한 우리 선생님들도 행복한 가르침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멋진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새해 앞에서 겸손해 지는 것은 인간의 미덕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가족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인사를 하고 축복을 보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많은 이가 메시지를 보내왔고 저 역시 그들에게 답장을 하였습니다. 덕담은 넘칠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요. 해넘이에 앞서서 저는 연하엽서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해를 기원하며 좋은 시 한 구절과 덕담을 엮어 말려둔 꽃과 나뭇잎을 붙여서 친지와 벗에게 보내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오랜 버릇입니다.^^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을 여는 소리를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간이 기적이구나. / 기적(일부) / 마종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기적 같은 한 해를 맞이하십시오. 강대진 교수의 책 『비극의 비밀』은 눈에 익었지만 읽기에 부담스러운 희랍(희랍이라 불리는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헬라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의 고전을 조근조근 잘 설명해주는 멋진 책입니다. 다 읽고 나니 떡국 한 그릇을 잘 먹은 듯 흐뭇하고 뿌듯하였습니다. 강대진 교수는 그리스 비극 전공자로 인터넷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연 또한 매력적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아가멤논' '자비로운 여신들', '엘렉트라' '메데이아' 등의 작품들을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읽어야 할 책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십니다.^^)을 바탕으로 해 희랍 비극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나 희랍 비극을 읽고 뭔가 미진한 점이 있었던 독자의 경우 이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새해엔 그 동안 미루어왔던 희랍 비극을 저자의 안내로 천천히 읽어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배했던 것들도 평생 당신을 따르지는 않았으니까요/소포글레스 「오디푸스왕」 합창단은 오이디푸스왕의 옛 행복과 현재의 재앙을 비교하면서, 삶이 끝나기까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행복하다 여기지 말자고 노래한다. 형식적으로는 이것이 이 작품의 결론이다.(중략)비극이 그런 인간들을 애도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불행 속에서 더욱 빛나는 내면의 힘, 그 재앙 속에서 더욱 빛나는 내면의 힘, 그 재앙 속에서 인물들이 도달하는 어떤 높이를 보여주는 것ㅇ, 이것이 비극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불완전한 존재에게나 열린 가능성이다.처음부터 완벽한 존재, 영원한 행복 속에 사는 신에는 그 가능성이 닫혀있다. PP.209~210 저는 삶이 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잘 믿지 않습니다.(?) 늘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젖어서 그 행복을 모르는 것이 맞으니까요. 물이 풍요한 곳에 사는 사람이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지만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한 방울의 물은 생명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평범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선물처럼 찾아온 작은 행복들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불행 속에서 굴하지 않고 굳세게 일어나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기적 같은 한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비극의 비밀』, 강대진 지음, 문학동네, 2013
‘너는 내 운명’만큼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 제목도 없는 것 같다. 한국 영화 ‘너는 내 운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36세 순진한 시골 총각(황정민 분)이, 어느 날 스쿠터를 타고 나타난 아가씨(전도연 분)에게, 마음이 끝 간 데 없이 빠져들어, 그 지독한 사랑으로 인하여, 시리고 아픈 인생을 짊어지는 이야기이다. 아프고 아려서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했었다. 배우 황정민은이 영화로 2005년도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스쿠터 아가씨는 서울서 내려온 다방아가씨이다. 차 배달도 나가고 다른 남자들과 술도 마신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총각은 순정무한(純情無限)이다. 그녀를 위해 장미꽃도 선물하고 자신의 목장에서 갓 짜낸 우유도 선물한다. 사람들은 총각을 만류하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다. 이 남자의 진심이 관객을 울리고, 무심한 듯, 냉랭하던 그녀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렇게 해서 사랑을 얻은 듯했는데, 삶은 모순의 연속이라던가. 그녀의 괴로운 과거가 돌출한다. 그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그녀를 구한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하다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진다. 망연해하는 그에게 더욱 아픈 사실이 알려진다. 그녀가 에이즈(AIDS)에 걸렸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들은 그녀를 포기하라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녀를 지키리라 마음먹는다. 그래서 ‘너는 내 운명’이다. 그런데 ‘너는 내 운명’은 영화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이로부터 3년 뒤 ‘너는 내 운명’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KBS의 드라마이다. 물론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2008년 5월부터 7개월간 방영되었다. 시청률이 높았다. 이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30.7%, 최고 시청률은 43.6%이다. 대단했다. ‘너는 내 운명’이야말로 시청자들에게는 내 운명이라도 되는 듯하다. 방송사 소개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친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고아 처녀를 양딸로 삼게 되는 소시민 가족의 일상다반사를 그림으로써 나누면 기쁨이 확장되는 장기기증에 대한 문제를 밝고 건강하게 다룬 일일 연속극이다. 겹사돈과 관련한 갈등, 시어머니의 결혼 방해,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의 비상식적인 횡포 등의 내용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타자를 가족으로 포용하면서 ‘너는 내 운명’의 정서를 시청자에게 공감시키기 위한 설정으로 봐야 할까? 요컨대 가족 공동체로서의 공동 운명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너는 내 운명’은 2018년에 와서 다시 맹위를 떨친다. 이번에는 SBS의 예능 프로그램에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이 등장한다. 물론 옛날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방송사 측의 편성 의도에 따르면, 다양한 분야의 커플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남자’와 ‘여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운명의 반쪽을 만나서 부부로 함께 사는 인생의 가치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이라 한다. 연예인, 스포츠맨 부부들이 등장한다. 정치인도 등장한다. 인기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너는 내 운명’에는 사랑의 진정성이 넘쳐난다. 사람들의 감성을 오묘하게 건드린다. 진정성으로 물든 사랑이 감성을 자극할수록 우리는 마치 그들과 공동 운명이라도 되는 듯 몰입한다. 너와 내가 한 운명이라는 의식 속에는 사랑과 헌신의 간절함이번져 나온다. 어쨌든 ‘너는 내 운명’은 그렇듯 감성으로 이해되기만 한다. 나는 근래 ‘너는 내 운명’을 감성적 감동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절감할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018)을 읽으면서 얻어낸 일종의 각성이었다. 나는 그가 내공을 쌓은 ‘융합적 앎’이 부러웠다. 앎이 지혜로 변전되는 구체적 장면들을 나는 이 책에서 확인하곤 했다. 나로서는 잘 보지 못하는 미래 가치들과 관련하여, 이슈들이 끊임없이 생각의 마당에 올려진다. 먼저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실체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압박해 오는 ‘지구촌의 윤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너는 내 운명’이, 감성의 콘텐츠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그 자체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윤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날것에 가까워서, ‘생존의 전략’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너는 내 운명)은 감성과는 거리가 먼, 차가운 이성 또는 철저히 합리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지구촌 전체의 글로벌 이슈와 문제들을 지역과 지역,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상관적 총체로 제기하면서, 여기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갈 것을 주장한다. 이제 지구촌은 어떤 나라도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공동의 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최선의 촉매제이다. 기후변화 같은 문제가 대표적인 공동의 적이다. 이런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도 인류가 특정의 민족주의적(nationalism) 충성을 앞세운다면, 그 결과는 두 번의 세계대전 이상으로 참혹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이 책 193면) 유발 하라리는 계속해서 말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개별국가 혼자서는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가 온실가스 배출을 0까지 줄일 수 있다 해도,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중국과 일본 같은 힘있는 나라조차 생태학적으로는 주권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상하이나 도쿄를 기후의 재앙에서 보호하려면 러시아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지구온난화에 애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는 서로에게 각기 ‘너는 내 운명’임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의 공식이 깨어지는 경우도 설명한다. 예컨대 러시아는 지구온난화로 극지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져도 모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러시아는 북극 최북단에서 얼음이 녹으면 러시아가 지배하는 북극 항로는 세계 교역의 동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기온이 상승하면 시베리아가 곡창지대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는 잠정적인 이익에 그칠 것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만약 러시아가 ‘너는 네 운명, 나는 내 운명’의 내셔널리즘에 선다면 러시아는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을까. 다른 지역을 위기로 몰아넣고 그 운명을 불구경하듯 하는 나라가 글로벌 가치를 선도하는 강국이 될 수 있을까. 글로벌 마인드는 멋이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어떻게 같은 생존의 프레임에 들어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에 부응하는 윤리를 실천하는 데에 있다. 지구촌에 새롭게 형성되는 윤리적 책무를 저버린다면, 아마도 러시아는 지구촌에서 소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만 잘 피해서 나만 이익을 누리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글로벌 생태가 복잡해지면 질수록 ‘너는 내 운명’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은 글로벌 생태를 바르게 살아가라는 합리성의 명령이다. 이를 실천 명제로 나타낸다면, “나는 양보한다. 고로 생존한다.”라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는 비단 국가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생태주의 철학의 자리에 선다면 이 세상 모든 주체 간에 작동하는 생존 법칙이 기도 하다. 개인과 개인 간의 지혜로운 관계도 ‘너는 내 운명’의 생태 구조에서 생겨남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의 극단 이익을 위해 교사를 모욕하고 폭행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더 많다고 한다. 학년초에 교실에서 그렇게 망가진 교사는 한해 내내 훼손된 자아와 상처 난 자존감으로 아이들을 대할 것이다. 무슨 의욕으로 가르치겠는가. 무슨 동력으로 선생님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로 인한 엄청난 손해는 한 해 내내 그 교실에 있는 내 자식들이 입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피해의 심각성을 모를 뿐이다. 지혜로운 학부모라면 선생님을 ‘너는 내 운명’의 울타리로 모셔와야 한다. 선생님을 향하여 ‘너는 내 운명’을 외치는 학부모들이 연대해선생님 지키기에 나설 때이다.
2019년도는 교권이 회복되는 원년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필자는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교권이 하루 빨리 회복되어야 하겠다고 항상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급함을, 지난 한 해를 힘들지만 의미 있게 보내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일은 넉 달 내내 전국각지를 돌며 거의 모든 초·중·고 교장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어울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교육부 연수에 참여하는 일이었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울림이 사회·정서적 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는 학교폭력 예방만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과 인성교육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교장선생님들께서 좋아하셨습니다. 특히 교권회복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할 때에 반응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교권회복이 가장 시급한 이슈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교권은 어떻게 확보되는 것일까요? 아쉽게도 교권과 학생인권을 상대적이고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생인권이 강화되면 마치 교권이 위협 받는 것처럼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권은 학생인권과 맞싸워 쟁취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맞싸울수록 교권은 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교권이 학생인권과 제로섬 게임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이 동시에 확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반드시 둘 다 강화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해주고 모두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각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교권회복을 위해서 세 가지를 고려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교육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합니다. 교육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가 교사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를 고민하는 사이에 진작 교사는 잊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교육문제를 도저히 차근차근 풀 수 없는 뒤엉킨 실타래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로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 같은 위인이 나타나서 교육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인이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설상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교육문제는 실타래가 아니라 거미줄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문제는 실타래가 아니라 거미줄 우리가 교육문제를 꼬이고 엉킨 실타래로 인식하는 바람에 교육 중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겉표면만 뜯어 고치거나 새롭게 겉포장만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실타래가 아니라 교과과정, 학생평가, 대학입시와 더불어 생활지도, 학생인권, 교복, 급식, 교원양성시스템과 교권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요소들이 서로 세밀하게 연결된 거미줄 같습니다. 각 요소들이 사방팔방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거미줄은 어느 부분 하나도 잘라 내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거미줄 한 부분을 건드리면 연결된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교육의 어느 한 부분에 손대면 예기치 못한 결과나 엉뚱한 곳에서 부작용이 불거져 나오게되어 있습니다. 그 바람에 해결책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거미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바람에 시달려도 잘 버텨냅니다. 거미줄에 중심이 매우 잘 잡혀 있으며, 밖으로 땅기는 원심력을 잘 지탱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미줄 중심은 굵은 줄로 촘촘하고 강하게 매듭 지어져 있지 않습니다. 거미줄 중심이 거대하거나 주변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완전히 반대입니다. 중심은 오히려 텅 비어 있으며 그저 모두를 연결시켜주고 조율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육에도 중심이 잡혀야 하겠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교육자가 있으며, 교권이 있어야 중심을 지켜낼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교권이 묵직하거나 고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학생들과 연결되어 서로 통하고 조율하면서 교육의 중심에 존재하면 됩니다. 둘째, 교권이 확보된 미래를 상상해야 합니다. 보완하는 그 이전 상태로 회귀하자는 게 아닙니다. 교사가 다시 ‘사랑의 매’를 들고 학생들이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게 아니지요. 생각의 시간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먼저 상상하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교권이 강화되면 과연 어떤 학생과 교사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저는 학생들 입을 주목합니다. 학생들이 교사를 “쌤”이라고 부르지 않고 “스승님”이라 할 때 비로소 교권이 회복되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쌤”이 아니라 “스승”으로 불리는 날 ‘스승’이라는 단어는 묘한 단어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나는 스승이다”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오로지 학생들 입으로만 불립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밝은 미래를 주는 교육을 할 때에 비로소 학생들 입에서 스승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본래 학생의 미래를 희망차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밝고 힘차고 긍정적 에너지의 원천이었습니다. 교사는 어렵고 어두운 교육 현실에 악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밝고 선한 영향을주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존재성을 회복하는 게 교권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그럼 교사가 다시 스승이라고 불리기 위해서 오늘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는 ‘쌤’이고 지혜를 전달하는 교사가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며, 모든 지식을 통할하고,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감각’이라고 한 사전적 정의를 선호합니다. 즉, ‘지혜전달’ 교육은 학생과 교사의 심장이 뛰는 수업이며 생기가 도는 교육을 뜻합니다. 학생들이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선생님이 중심이 된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이미 실시간으로 아무 때나 어디서라도 접할 수 있습니다. 2018년 6월에는 이미 지식을 전달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교사를 대신해 교단에 섰습니다. 이제 지식 전달은 굳이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학생이 필요한 교사는 몸과 마음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몸소 실천해보여주고, 모두가 서로 잘 어울리는 소통과 갈등관리 기술을 보여주고,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기여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가치관을 깨닫게 해주는 어른입니다. 이러한 사회, 정서적 역량이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이 전해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앞서 살아가는 선생(先生)이 뒤따라오는 후생(後生)에게 전해주어야 할 지혜입니다. 교사가 다시 희망의 원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시스템은 교권회복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2019년도에는 우리가 스승이라는 말을 되찾아오는 원년이 되길 바랍니다.
교육계의 오랜 숙원인 「아동복지법」이 2018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벌금 5만 원 만 받아도 10년간 학교를 떠나야 했던 족쇄가 풀렸다. 법 개정 이전 취업제한 판결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구제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과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학교폭력예방법과 교원지위법은 ▲심각한 교권침해에 대한 교육감 고발조치 의무 부과 ▲교권침해 학생의 학급 교체·전학 조치 마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 등이 핵심이다. 교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한국교총은 그동안 하윤수 회장을 중심으로 교권 3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교육을 정상화하고 무너진 교원들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려는 50만 교원의 열정은 제주에서 서울까지 뜨겁게 이어졌다. 하윤수 회장, “학교가 죽어간다” 교권 3법 개정 호소 겨울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유난히 거셌던 2018년 11월 8일, 하 회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손에 쥔 피켓에는 “전국 50만 교원들은 학생교육에 전념하고 싶다! 국회는 교권 3법 즉각 통과시켜라!”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이 자리에서 하 회장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침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등 소관 상임위에 조속한 통과를 거듭 요청하고자 한다”며 “50만교원이 학생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회 앞 1인 시위는 제주교총 회장을 비롯한 시·도교총 회장단과 사무국 간부들이 이어받아 계속됐다. 이번 릴레이 시위는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폭력 업무 처리에 대한 불만을 품고 1년 여간 100건이 넘는 각종 민원과 형사고소, 행정 소송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사실상 학교 운영을 마비시킨 제주 A 초등학교 사건이 계기가 됐다. 충격적인 사실이 한국교육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교육계는 들끓었다. 하 회장 및 시·도교총 회장단이 앞장서 제주도교육청을 항의 방문하고 교육당국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어 교권보호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교권 3법’에 대한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조속한 법률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취지에서 이찬열 교육위원장을 방문, 법 개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역설했다. “교권보호 우리 손으로”...국민청원 열기 후끈 한국교총 회장단의 강력한 대응과 함께 교권 3법 개정을 촉구하는 교원들의 서명 운동도 불꽃처럼 전개됐다. 2018년 11월 17일 열린 제109회 정기대의원회에서 한국교총은 교권 3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청원운동 돌입을 선언하고 교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하 회장은 정기대의원회에서 “수업과 학생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을 국민과 정부, 정치권은 모르고 있다”며 “무너지는 학교 교육을 살리는 길은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보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교권 3법은 교원들이 당당하게 교육할 수 있게 하는 법안, 아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법안임을 강조했다. 이어 청원운동 동참 호소문을 통해 ‘최근 발생한 심각한 교권침해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건수는 10년 전보다 2.5배나 증가했고 교권침해는 이제 교원 개인이나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교원지위법-학폭법 개정이 관건... 50만 교원 지혜 모아야 일선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교권침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하다. 교육당국의 안일한 현실 인식과 학생․ 학부모의 무차별적 교권침해는 교사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사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강력한 법적 보호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교사도, 학교도, 교육도 모두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심각한 교권침해에 대한 교육감 고발조치를 의무화하고, 교권침해 학생의 학급교체·전학 조치를 마련토록 한 교원지위법 개정은 절실하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 등 학폭법 개정도 시급하다. 가르칠 권리가 법으로 보호되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50만 교원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반드시 뉴질랜드(New Zealand)여야만 하는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몇가지 조건이 맞았을 뿐이다. 여행 시기가 12월 마지막 주부터 1월 첫째 주여서, 우리나라보다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시차가 4시간 이내여서 시차 적응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지도 위 우리나라에서 경선(經線)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남반구의 오세아니아 대륙이 나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일대는 아내가 여행을 가 봤다고 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뉴질랜드가 눈에 띄었다. 마침 지리 교사인 나로서는 세계 지리 과목에서 자주 다루는 국가인 뉴질랜드를 실제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2016년의 연말과 2017년의 연시 2주 동안의 신혼여행지가 뉴질랜드로 결정됐다. 퀸스타운, 그리고 뉴질랜드의 상징 키위 인천 공항을 떠나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Auckland)를 거쳐, 남섬(South Island)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도시는 퀸스타운(Queenstown)이었다. 퀸스타운은 서던알프스(Southern Alps)와 와카티푸(Wakatipu)호에 기대어 있는 아름다운 관광 도시이다. 인구 1만 5천여 명 정도의 소도시이지만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해 남섬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꼽힌다. 산과 호수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루지·트레킹·번지점프·스키 등 사계절 다양한 액티비티(activity)를 즐길 수 있다. 스카이라인 곤돌라를 타고 도시 뒤편 언덕에 오르면 퀸스타운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언덕 위 전망대에 서면, 이 도시의 입지를 말할 때 서던알프스와 와카티푸호를 언급한 이유를 알게 된다. 와카티푸호의 푸르른 물빛과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지고, 멀리로는 장엄한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몇 만년 전 빙하의 작용에 의해 급경사의 산지와 골짜기, 호수가 형성됐다는 점을 알고 보면 더 풍경이 아름다워 보인다. 겨울이면 산이 눈으로 뒤덮이고 그곳에서 스키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곤돌라 승강장 바로 옆에는 얼핏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퀸스타운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인 키위 생태 공원(kiwi birdlife park)이 있다. 키위는 날지 않는 모습으로 진화한, 뉴질랜드 생물의 대표적 상징이다. 하지만 키위는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에, 낮에 동물원에 찾아갔을 때는 보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이곳은 몇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키위와 인증샷 한 장도 찍지 못하는, ‘싱거운’ 동물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쥐, 고양이, 족제비 등의 유입 이후 멸종 위기에 내몰린 야생 키위를 보존하고, 고유 생태계 보존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하루에 4~5회 정도 키위 먹이를 주는 시간이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미리 알아보고 그 시간에 맞춰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키위 외에도 뉴질랜드 토종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데, 뚱뚱한 뉴질랜드 비둘기 케레루(kereru)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자연 지형과 울창한 숲이 그대로 살아있는 공원 내부의 오솔길을 따라 여러 토종 동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마치 사람이 자연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밀퍼드사운드, 그리고 서던알프스의 케아남섬의 남서부 일대는 몇만 년 전 빙하가 만들어낸 급경사의 산지와 깊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차 형성된 피오르(fjord) 해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남섬에서 피오르 해안의 장관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밀퍼드사운드(Milford Sound)이다. 여기서 ‘사운드’는 ‘소리’가 아니라, ‘좁은 바다’를 일컫는 말이다. 밀퍼드사운드는 개인 차량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퀸스타운, 테아나우(Te Anau)에서 출발하는 당일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버스를 타고 서던알프스의 험준한 고갯길을 넘은 뒤 크루즈 선을 타고 피오르를 감상하게 된다. 퀸스타운보다 좀 더 밀퍼드사운드에 가까운 테아나우에서 투어 버스에 탑승했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으면서 기착지에서 라벤더 밭도 보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맑은 호수도 구경했다. 밀퍼드사운드에 도착해서 탑승한 크루즈 선은 협만(峽灣) 내부를 유유히 항해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처럼 좁고 길쭉한 바닷길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곳이 바다임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물개들도 보였다. 절벽에는 폭포 여러 개가 흘러내렸고, 크루즈 선이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바로 아래까지 들어갔다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없는 자연의 조각가 빙하의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니 감격적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갯길 가운데 기착지에서 ‘케아(kea)’를 만났다. 케아는 뉴질랜드 고유의 앵무새인데, 보통의 앵무새와 다르게 산악 지대에만 서식한다. 신생대 이래로 조산운동에 의해 서던알프스가 형성됐고, 이로 인해 평지에 사는 앵무새에서 갈라져 나와 산악 지대에 적응한 앵무새가 바로 케아다. 그래서 다른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앵무새를 연상하면 안된다. 활동적이고 용감하게 서던알프스를 날아다니며,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어도 꼼짝도 안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물끄러미 관찰하는 케아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한때 방목지에 들어와 양을 공격하는 등의 행동으로 해조(害鳥)로 규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특이한 생태와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케아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 표지판을 보면서, 토종 야생 조류를 보호하고자 하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크라이스트처치, 정원과 지진의 도시 캔터베리(Canterbury) 주의 주도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는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가장 크다고 해도 인구가 30만 명 대로 우리 기준으로는 소도시에 불과하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정원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도시 내에 공원과 녹지가 곳곳에 있다. 도심을 가로질러 에이번(Avon)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고, 강둑에는 푸르른 잔디밭과 나무, 그리고 오리들이 있다. 답답한 도시 풍경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도심에 맞닿아 있는 노스 해글리 공원(North Hagley Park)은 서울의 올림픽 공원보다도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새소리가 지저귀는 공원에서 산책, 운동,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공원 안에서는 캔터베리 주의 자연 지리와 인문 지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캔터베리 박물관과, 그리고 잘 가꾸어진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을 함께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에이번 강둑 공원의 한켠에는 영국연방 국가답게 엘리자베스 여왕, 쿡 선장 등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한 동상은 기단부만있고 위에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100여 년 전 영국인으로서 남극점에 도달하고자 탐험을 했던 로버트 스콧(Robert Falcon Scott)이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영국의 남극 탐험 전진 기지였고, 로버트 스콧의 탐험(비록 2번째로 남극을 발견했을지라도 용감한 영국인의 상징)을 기념해서 이곳에 동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으로 인해 동상이 파손되고, 지진 박물관인 퀘이크시티(Quake City)에 동상을 옮겼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지난 2010년, 2011년 각각 규모 7.1, 6.3의 대지진을 연속적으로 겪어 큰 인명 및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도심 광장에 위치해 랜드마크 기능을 하고 있는 건물인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아직까지도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반쯤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판과 태평양 판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자연 지리는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포항, 경주 지진을 겪고도 아직도 안전 지괴(地塊)에 산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너진 동상과 건물을 보면 지진의 무서움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곤 한다. 대지진을 겪은 도시 경관의 참상,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모습을 지진박물관인 퀘이크 시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로비에는 부서진 스콧 동상이 가로 놓여 있어서 지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지진의 규모, 피해 양상 등에 대한 정보, 지진 피해를 입은 도시의 참상을 여러 전시물을 통해 볼 수 있다. 한편 도심에는 지진으로 삶터를 잃은 상인들의 시름을 달래고 재도약하고자 만든 임시 상가인 리스타트 몰(RE:START mall)이란 곳도 있다. 이름부터 ‘새롭게 시작하고자’ 만들었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지진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원색으로 칠한 컨테이너 임시 건물이 모인 상가이다. 다행히도 스콧 동상을 비롯한 크라이스트 처치의 많은 건물들이 다시 복원됐다. 임시 건물이었던 리스타트 몰은 현재 폐업 상태다. 아마 이곳의 상점들이 새 건물로 이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2년 전 여행의 기억이 사라진 것 같아서 잠시 아쉬운 감정이 들었지만, 주민들이 지진의 참상을 극복하고 일상에 복귀한 것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에필로그 뉴질랜드는 크게 2개의 섬인 남섬과 북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정된 시공간 내에서 여행지를 선택하다 보니 남섬에서 대부분의 여행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2주일 동안의 여행 경험도 지면 관계상 모두 쓰지 못한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짧은 여행, 그리고 더 짧은 글에서 미처 보고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 다양한 문화 경관 및 경험할 것들이 뉴질랜드에 있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여행 정보를 찾고 일정을 구성한다면 누구나 만족스러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프레네는 동시대 신교육 이론가들이 자신들의 꿈을 현실로 옮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들이 지닌 실천상의 결함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이론이 실천의 측면에서 강점이 있음을 내세웠다. 먼저 공간과 시설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학교 환경을 구축하는 일은 그의 실천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프레네는 일종의 건설 현장이자 마을 공동체를 닮은 학교 환경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아이들이 관심사에 따라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교실은 작업장의 형태로 설계됐다. 무엇보다 마을의 공공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실을 건물 중앙에 계획하는 것이 중요했다. 거실 공간에서 학생들은 작업장의 형태를 띤 여러 교실들, 자료 조사 활동을 하는 교실과 실험하기를 하는 교실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작업장을 나서면 그들은 거실 공간을 오가며 계속 만날 수 있게 된다. 거실 공간은 전체 회의나 자유 연구 발표회, 전시 등 다목적 용도로 활용된다. 또한, 외부 활동 구역으로 건물 뒤쪽에는 새끼 염소와 비둘기, 토끼 등 지역의 동물들을 기르는 현대식 축사를 조성하고, 학교 건물의 사방으로는 개인별로 책임을 맡거나 공동으로 책임을 맡는 작은 정원들을 조성했다. 이 외 가능하다면 도랑을 조성하거나 물고기가 있는 분수, 모래 더미 등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교 환경은 프레네가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 교사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이를 변형해가며 최적의 학교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프레네 실천교육학의 독창성과 강점은 교실을 분주히 일하는 곳으로 변형시키는 도구와 기술을 창조하고 실험하고 확산시켰다는 데에 있다. 프레네의 의도는 자신의 학급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그들의 교육 실천을 용이하게 도울 수 있는 검증된 일(학습활동)의 도구와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가 전통 학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했던 4가지 질문과 연관해서 그 도구와 기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첫째, 학생들은 학습의 과정에서 어떻게 능동적일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 프레네는 자유 표현과 소통의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일의 도구와 기술을 고안하고 실천했다. 아이들의 기본 욕구 중 하나는 소통의 욕구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표현의 기회, 교류와 소통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일은 중요하다. 프레네는 우선, 언어와 기호의 소통 수단, 시공간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하는 소통 수단을 고안했다. 자유 글쓰기에서 인쇄 출판 작업, 학급 신문, 학교 간 통신 교류로 이어지는 일련의 순환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예술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유로운 예술 표현의 기술을 활용했다. 이러한 실천은 오늘날에도 그의 교육을 따르는 많은 교사들에 의해 교실에서 행해지고 있다. 자유 글쓰기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아이들이 자신에게 감명을 준 주제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짧은 글쓰기이다. 그것은 자유 글쓰기의 첫 번째 원리가 말해주듯 말 그대로 형식도 글감도 주어지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말한다. 프네레는 글쓰기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인쇄 출판 작업을 도입했다. 인쇄 출판 작업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기 부여의 장치로 프레네 실천 교육에서 생략할 수 없는 핵심 기술이었다. 공개적이고 멋들어진 영속적인 문서를 자신들의 손으로 창조하는 데서 아이들이 어떤 흥분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또한 공개 출판은 문법 자체를 위해 문법을 강조할 때와 달리 아이들이 교정하고 편집하고 다시 고쳐쓰게 하는 주된 동기원이 되었다. 교육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세번째 원리에 따라 자유 글쓰기는 하나의 완결된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후속 활동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학급 신문으로 만들어지거나, 글쓰기 한 것을 칠판에 적고 단어 찾기를 하기나 이어쓰기 하기, 완성된 글쓰기, 작품의 문법을 살피고 연습하기, 글쓰기 주제에 따라 마을에서의 조사 연구나 자유 연구 발표 하기 등으로 최대한 활용된다. 이와 같은 유의미한 결과물을 창조하는 일(학습활동)에 아이들이 참여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역량과 독립성을 지각하게 됨으로써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평가된다. 자신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하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경험이 자기효능감이나 자기존중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삶과 교육과정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 프레네는 ‘쿠와 드 네프(뭐 새로운 것 없니?)’, 지역의 작업장, 공장, 농장, 자연과 교류하게 하는 나들이(산책 수업), 주변 환경에 대한 설문 조사, 과학연구, 경제 현상 연구 같은 기술을 고안했다. 이 중 ‘쿠와 드 네프’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 전이나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는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경험을 수업의 출발점으로 삼거나 수업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특히 현장 견학이나 산책 수업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나들이는 지역의 작업장, 공장, 농장, 자연을 이해하고 그와 교류하게 하는 그의 대표 기술 중 하나였다. 나들이를 통해 교실은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학교 밖 세계와 상호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로 확장되었다. 삶과 연결된 교육의 또 하나의 기술은 지역 사회 구성원들을 학교 안으로 자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역 공동체의 삶의 구성원들과 교류하고 연대하고 교제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삶과 연결된 교육은 일상생활에서 나오는지적 욕구와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교과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셋째, 모든 학생들이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리듬에 따라 학습할 수 있을까? 프레네는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똑같은 학습활동에 몰두해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러한 일제식 방식이 권위주의에 기댄 개념이자 아이들 본성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스스로 선택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학습을 기획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교사와의 협의 하에 자신의 리듬에 따라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학급용 학습 카드, 학습활동 총서, 자가수정카드, 주간 학습활동 계획 등의 기술로 구체화 됐다. 이것들 모두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운용하면서 학습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한다. 이 중 주간 학습활동 계획은 고정된 시간표 대신 월요일 아침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의 학습활동을 계획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리듬에 따라 학습을 계획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었다. 교사가 수립하는 연간 학습활동 계획이나 월간 학습활동 계획과 달리 그것은 교사와 학생 각자가 함께 협의해 수립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다음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리듬에 따라 학습활동을 해나가려면 그에 필요한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프레네는 자가수정카드와 학습활동 총서를 고안했다. 자가수정카드는 자신의 진전 상태와 개별적인 요구에 따라 아이들이 기초적인 내용을 스스로 습득할 수 있게 돕는 도구이다. 학습활동 총서는 아이들이 열중해서 새로운 참고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하고, 분류하며 풍부하게 만든 학급용 학습 카드를 발전시킨 것이다. 일종의 완성된 형태의 백과 사전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학습을 기획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기술의 의미도 그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율성을 허용하는 것이 아이들의 자기 결정의 욕구를 충족시켜 그들을 동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어떻게 하면 학교를 권위주의적 통치의 공간이나 규율 훈련 장치로서 기능하게 하지 않고 민주적인 공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프레네는 학교를 하나의 공동체이자 공동생활의 장으로 여겼다. 그는 학교 조직과 운영에 아이들이 참여(또는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을 어른으로서 우리 교사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사회적 책임의 몫을 아이들이 나눠 갖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준비하게 할 책임이 있다. 협동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학교 운영을 위해 그는 벽신문과 전체 회의를 대표 기술로 실천했다. 벽신문은 매주 월요일마다 60㎝ x 40㎝ 크기의 종이를 벽에 붙여놓고, 아이들이 ‘나는 비판한다,’ ‘나는 칭찬한다,’ ‘나는 소망한다,’ ‘나는 성취했다’라는 제목의 칸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적게 하는 도구였다. 벽신문에 적힌 내용은 매주 토요일 마지막 시간에 열리는 전체 회의 때 발표되고 논의되었다. 전체 회의는 의장이 진행하고 서기가 있는 공식 절차를 따르는 회의체이다. 거기서 학교 공동체 생활의 문제들이 논의되고 필요한 규칙이 제정된다. 교실에서의 금지 사항을 줄이면서 아이들에게 민주적인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이 자유의 광대함과 절실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그 의미를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의 참여가 자기 확신으로 이어져 다양한 차원에서 그들이 스스로 진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네 실천교육학이 갖는 오늘날의 의미는 우선 시민 교육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프레네 실천교육학은 개인과 공동의 책임에 기초한 학교생활을 조직하고, 개별적이고 협력적인 탐구를 진행하고, 학교와 주변 공동체를 연결시키려 한다. 이는 협력(협동)과 상호간의 도움에 토대를 둔 시민 교육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프레네 실천교육학은 미래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자율과 책임, 협력, 우애와 연대성을 기를 수 있게 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일(학습활동)의 도구와 기술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프레네 실천교육학이 공동체와 협력의 틀 속에서 아이들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점도 시민성의 발달에 기여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프레네 학교는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창출하는 하나의 제도이자 그들의 집합적 소유물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열정과 전념을 기울이며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어왔다. 끝으로 프레네 실천교육학의 가장 큰 의미는 그것이 연구자들이 주가 된 교육 운동이 아니라 현장의 교사들과 교실 현장으로부터 추동된 교사들의 교육 운동이라는 점이다. 프레네는 자신의 실천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기술(테크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왔다. 이는 자신의 실천 교육이 고정되고 정형화된 방법이 아니라 교사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 가능한 것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에 기존 교육에 대한 프레네의 문제의식과 그의 혁신적 실천 교육에 공감한다면 프레네의 아이디어와 실천을 그대로 따라하는 대신 교사들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것들을 적절하게 각색하며 실천해보는 것이 그의 길을 뒤따라가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한기가 안개처럼 온몸을 감싸던 날, 경기 용인시 남사중학교(송장섭 교장) 3학년 2반. 강은이 교사가 담임을 맡은 교실에 들어서자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둠마다 손놀림이 분주하다. 솜털이 유난히 보슬거리는 알록달록 털실로 뜨개질을 하는가 하면 쓰다 버린 철사 옷걸이를 구부리고 조인다. 창가 쪽 모둠은 조그만 컵에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쌤, 이렇게 하면 꼬마 친구들이 좋아할까요.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자꾸만 실이 풀어져요.” 한 학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소아암 환자들에게 줄 모자를 뜨고 있는데 실이 요리조리 풀어지는 모양이다. “아유, 예쁘다. 이 모자 쓰면 금방 낫겠네.” 강 교사가 토닥토닥해주니 금방 얼굴이 풀어진다. 예쁜 털모자 쓰고 병마와 싸워 이겼으면 오늘은 사회수업, 국민경제와 경제생활 단원에 나오는 사회참여 및 기부활동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직접 도움을 줄 대상을 정하고 그들에게 필요란 물건을 만들어 전달하거나 판매를 통해 모은 수익금을 전달하는 일종이 사회참여 봉사활동이다.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자 뜨기, 중동에 사는 친구들에게 보낼 휴대용 선풍기 만들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선물 등 다양하다. 직접 만든 물품은 오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소아암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 걸리기 쉽다고 들었어요. 처음 하는 뜨개질이라 쉽지만은 않았지만 내가 만든 담요로 따뜻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절로 행복해 졌어요.” 졸업을 앞둔 지원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을 컵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린 뒤 사탕을 담아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판매할거라던 효림이는 “결국 선생님 책상에 제 컵이 놓일 것 같다”며 깔깔거렸다. “제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좋은 사람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심장이 따뜻한 사람, 그게 저였으면 좋겠어요.” 살구색 털모자를 뜨던 하윤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굴었다.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봉사활동 수업. 이제는 남사중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는 통과의례가 됐다. 무엇을 만들지, 누구에게 어떻게 기부할지 등은 모두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강 교사는 옆에서 지켜보고 필요한 것을 거들 뿐 개입하지 않는다. 사회봉사나 기부는 결국 각자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원래는 1학기 단원이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뭔가 뜻깊은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뒤에 시작한 것이죠.” “너무 이쁜 우리 아이들”...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컸으면 사실 강 교사가 이런 수업을 시작한 데에는 몇 년 전 우연히 시청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소아암 환자들의 사연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머리카락임을 알았다. 그는 즉시 방송사에 머리카락을 기증하고 싶다고 했지만, 염색한 머리카락이라 거절당했었다. 며칠 뒤 자신이 가르치는 반 학생들에게 머리카락 기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무심코 툭 뱉은 말이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자신들도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다며 직접 자른 머리카락을 학생들이 들고 온 것이다. 강 교사도 염색을 쫙 뺀 뒤 학생들과 함께 머리카락을 가발회사에 보냈다. “우리 학교는 시골학교예요. 도시 아이들이 학업의 무게로 힘들어할 때 우리 아이들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죠. 사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학생들이 많은데도 오히려 선행을 베푸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체능이나 공부에는 재능이 필요하지만 따듯한 마음이나 감정을 가지는 데에는 따로 재능이 필요하지 않죠. 저는 교육을 통해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었어요. 사회 교과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활동과 참여를 배우는 과목입니다.” 강 교사는 6년 전부터 사회참여 수업을 통해 노인정 재능기부, 소아암 환자 돕기 머리카락 기부, 독도 홍보를 위한 기념품 제작 수업을 시도했고 현재는 아날로그 감성수업 퍼실리테이션(경기도 교사 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다양한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웃음 가득한 남사중학교.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순간 강 교사가 학생들을 보듬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