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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업체들의 진학상담 교사들에 대한 향응 및 금품제공 관행과 관련,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입시업체에 공문을 보내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ㆍ향응ㆍ금품을 제공하는 설명회를 열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29일 밝혔다. 교육부는 공문에서 "업체들이 판촉행위의 일환으로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나 향응을 제공하고 금품을 주는 것은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으로 처벌대상"이라며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이러한 행위들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교육부는 또 "앞으로 교사들을 초청해 식사나 향응, 금품을 제공할 경우 즉시 고발조치해 형사상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강정길 교원정책과장은 "관행적으로 거마비 조로 금품이 전달된 데다 액수도 적고 고의성이 없어 징계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수사결과가 나오는대로 해당 교사들에게 행정적인 경고조치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교직을 떠나서 보낸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되어 간다. 정년 퇴임이라는 매듭을 풀고 새로운 2모작을 준비해왔었지만, 어쩐지 일이 잘 풀리지만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다. 난 요즘 퇴직 할때 이미 자리를 확보한 녹원환경신문이라는 작은 신설신문의 편집국장이 되어서 3월 2일 부터 출근을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신문이 정상 괘도를 오르기엔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힘이 들지만, 그래도 나가는 곳이 있다는 것만도 즐거움으로 여기고 나간다. 또 어제부터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로 선발이 되어서 예비자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것도 희망자가 많아서 2.5 : 1 이라는 경쟁을 거쳐야 했었고, 나는 어린이박물관의 해설사 과정을 택해서 4일간 교육을 받고 바로 4월부터는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순수한 봉사활동이지만, 어린이들과 다시 만나게 되고, 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일이 즐거움이어서 택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무척이나 바쁘고 오히려 집안일은 처리할 시간이 거의 없는 지경이다. 내가 스스로 택한 일이긴 하지만, 바쁘고 그래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산다. 흔히 퇴직하면 등산으로 시간을 보낸다지만, 아직 산에 한 번 가본 적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은 교직생활이라는 전직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것인지,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을 스스로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야 교육까지 시켜 놓았지만, 아이들이 오면 상당히 위압적이고 아이들을 마구 호령하는 분들이 있어서 염려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교육이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교직을 떠나면서 내가 그 동안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묶었다. 책이라기 보다는 보고서 정도라고 할까 남 앞에 내 놓기 부끄러운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내용은 많은 학부모님들께 호소하고 참고가 될 내용들이라고 생각한 것들만 모았다. 난 이 책에서 [교육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머릿말을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교직 생활에 몸담은 기간 - 총 15,325일 - 동안의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교육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흔히 우리가 생활하는 중에 [만날 해도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만날은 무려 27년이 넘는 긴 시간이다. 그 만(萬) 날 하고도 절반을 넘긴 오랜 기간동안을 교육에 몸담았지만, 아직도 교육이란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음을 고백하는 고백서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은 모두의 가장 관심거리가 교육이고, 모두가 교육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이다. 그런 교육에 만 42년을 종사해온 초등학교 교장이 그 동안 교육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여서 신문 잡지나 사이버상에 올렸던 많은 글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뽑아서 매체별로 다시 정리하여 편집을 해보았다. 1964년3월15일 운명처럼 국민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2개도, 11개시군, 17개 학교에서 떠돌이처럼 살다가 2006년 2월28일 마지막 작별을 해야하는 정년을 맞게 되었다. 그 기간이 무려 15,325일. 그 동안에 나는 무엇을 얼마나 하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직접 담임을 하였던 27년 동안, 내가 맡아서 가르쳤던 제자만도 약 1,000명이 된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제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만드는 잘못을 저질렀을까? 나를 정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을 해주는 제자는 몇 명이나 될까? 사실 자신이 없다. 난 정말 이 나라의 교육의 한 귀퉁이를 맡아 왔지만,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기도 하였고, 상사들의 강압에 맞서지 못하고 순순히 따르기만 하였던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내 자신이 저지른 잘 못은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난 내가 이 나라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큼의 멋진 교육자도 아니었고, 또 그 만큼 큰 성과를 거둔 것도 없는 사람이다. 교사 시절엔 면소재지 정도의 시골구석만 헤매다니 다가 관리직으로 승진을 한 다음에도 큰 학교보다는 작은 학교에 근무한 것이 대부분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나는 교육에 관한 생각을 끊임없이 신문이나 잡지 등에 써 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던지 일간신문에서 연재를 부탁해오기도 하고 원고 청탁도 심심찮게 왔었다. 한겨레신문과 소년 한국은 정식으로 신문사의 요청에 의해 연재칼럼을 썼었다. 사이버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학교, 동아일보, 중앙일보 블로그, 서울신문명예논설위원으로 칼럼,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교육부 사이버자문위원과 청와대 등의 활동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사회의 관심거리나 문제점들에 대한 의견이나 현장의 사정을 알리는 글을 꾸준히 써왔었다. 이 많은 글들을 그냥 팽개쳐 버리기는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비중이 있는 것들을 골라서 독자들께서 볼 수 있도록 전해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15,325일 동안 썼던 글을 정리하여 펴내기로 하였다. 이 작은 글이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는 것을 기대할 뿐이다.] 이제 한달 동안의 시간이 흘러서 밖에서 본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돌아보면서 내가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함부로 떠들 일은 아니었는데.......
오늘 나는 슬픈 마음을 안고 이 기사를 씁니다. 3월 28일은 생일을 맞는 날이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생일을 보낸 날이기도 했습니다. 교실 유리창이 맑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우리 반 19명을 독서를 시키며 청소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제동행 아침독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금방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때마침 눈발이 날려서 마량 앞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꽃샘바람에도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유리창의 절반을 닦았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나를 향해, "선생님, 조심하세요. 떨어지면 죽는데..." "선생님이 이상하다? "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피곤한 오후가 되면 일손이 안 가서 아침에 끝낼 요량으로 거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터였습니다. 말갛게 닦이는 유리창을 향해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던 것도 잠시, 나는 갑작스런 위경련을 참으며 작업을 진행하다 통증을 참지 못해 가족을 불렀고 그 사이에 교장 선생님의 신속한 판단으로 우리 학교 장주사님의 차를 타고 보건 지소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며 2시간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달려온 존경하는 오난옥 팀장님의 위로와 맛사지를 받으며 생일이면 가장 생각나는 친정어머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새 학교에 적응하며 처음이나 다름없는 1학년 19명의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20년 가까이 6학년을 즐겨 맡았던 관행을 뒤로 하고 복식학급에서 1, 2학년을 맡아본 경험으로 1학년을 선뜻 맡았던 것은 순전히 내 잘못임을! 출근하기 전, 거의 날마다 '오늘은 어떤 공부로 아이들과 잘 지내지? 어떻게 하면 제 맘대로 날뛰는 아이들을 낯선 학교 생활에 적응 하게 하지? 싸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고쳐주지? 먹기 싫다며 40분 씩 식판과 몸부림하는 아이들을 밥 먹게 하지? 글씨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빨리 깨우치게 하지? ' 등등의 고민으로 교단 생활에서 가장 긴 3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은 많아도 모범을 보이고 좋은 말로 충고하면 잘 따르고 공부도 잘 해 주었던 6학년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1학년 아이들. 한 명씩 대할 때는 말도 통하고 귀여운 꼬마인데 전체 속에 넣어 놓으면 제각각 자기 마음대로 개성을 발휘해서 단 몇 초를 집중하지 못하는 왕성한 운동력과 활발한 '분자 운동'에 번번히 뒤로 넘어진 내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나 봅니다. 좋은 말로 같은 말을 늘 반복하며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강화 수단으로 포인트를 주며 칭찬과 벌점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으지만 교문 앞에서 집으로 보내는 시간에 이르면 종아리는 이미 퉁퉁 부어버리는 일상. 그래도 이젠 제법 눈길을 맞추는 아이들이 늘어나서 안도하던 참이라 학교 환경심사를 생각하며 2층 유리창 청소를 시작했던 생일 아침의 변고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갑작스런 변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침울한 하루였습니다. 교실의 화분은 마침 내 생일을 축하하며 남편 회사 직원들이 보내준 예쁜 꽃들이 있어서 한결 나아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 아이들의 솜씨 자랑판을 바쁘신 주사님의 손을 빌어 새단장을 했으니 그 동안 아이들이 공들인 작품들은 얼른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안정을 취하자며 조퇴를 하면 좋겠다던 남편을 억지로 돌려보내고 교실로 오니 아이들은 자기들 알림장을 보여주며 포인트를 달라고 달려들었습니다. 알림장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소식지까지도 부모 도장이나 사인을 받아 오면 일일이 확인하여 자신의 칭찬 포인트에 올려주어 바람직한 습관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실내화를 빨아왔다고 자랑하는 민혁이는 실내화를 들어 보이며 자랑을 하여 별점을 주었지요. 편식을 지도하기 위해 점심 밥을 다 먹으면 별점을 주었더니 거의 모두 가 날마다 별점을 올리는 요즈음이지만 한 시간 가까이 식사 지도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릅니다. 먼저 먹는 아이들이 교실에 가서 장난하다 다칠까봐 걱정이고 운동장에 나가 놀게 하면 시간을 못 지키니 함께 하교 시키는데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아이들이라 집에 가면 친구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시니 친구 집에 가서 노느라 학교 차도 안 타려는 아이, 집에 오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서 아이들 집을 뒤지는 일도 있으니 퇴근해도 일이 끝난 게 아니랍니다. 힘든 일상이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혼자서 실실 웃음 짓게 하는 일은 1학년 아이들이 주는 기쁨입니다. 보건지소에서 돌아온 나에게 유림이는 생일을 축하한다며 스케치북에 생일케이크를 그려서 선물하기에 참 맛있겠다며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색종이에 생일축하 한다며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준 서경이에게 감동했고 말을 잘 들을 테니 아프지 말라며 곁에 와서 속삭이는 하늘이게는 볼에 가벼운 뽀뽀로 답하며 행복했습니다.늘 4시까지 학교를 헤집고 다니던 권영이는 작품 붙이는 내 곁에서 부지런히 핀을 집어주며 옹알였습니다. 내가 가장 미안해 하는 아이, 권영이! 제 곁에만 있어주면 훨씬 좋아질 아이인데 18명 아이들에게 몰린 내 눈이 그 아이를 품지 못하고 있어서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할 때는 '실형을 선고받은 현직교사'에 관한 기사로 인해 가라앉은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는데 예쁜 아이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특히 1학년 선생님, 그것도 나이 든 여선생님들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화분을 사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청소를 도와 달라고 학부모를 부르지도 않았지만 전체 학급(6개 반)에 진공청소기를 기증해 주신 학부모님(최강, 최희조 아빠 최훈님)을 둔 우리 마량초등학교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전진하렵니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그늘진 곳에서 제자를 사랑하고 말없이 직분에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지는 사연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거듭 나서 교단의 모든 선생님이 짊어지고 해결하며 자성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일부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 모두 함께 각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지요. 탑을 쌓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그거을 허무는 데는 극히 짧은 시간이 걸립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데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꺾어버리는 데는 순간임을!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그릇까지 깨서는 안 되겠지요? 자연치유력에 맡길 수 없을 만큼 중병인 경우에는 칼을 들이대어 피를 흘리는 과감한 수술로 모두 함께 상생하는 교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여 신새벽에 이 글을 올립니다. 학부모님! 날아오는 돌팔매를 피하지 않으며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호된 꾸지람 뒤에는 따스한 격려도 같이 주소서! 발전과 상생을 이루며 함께 성숙하는 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빕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늘 마음 깊은 곳에 감춰뒀던 뜨거운 열정을 꺼내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도 낯선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을 새내기들이라면. 수업도 들어가기 전에 ‘녀석들은 어떤 모습일까’ ‘행여나 말썽꾸러기들은 아닐까’ ‘공부에 대한 관심은 있는지’ 등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첫 수업이 다가왔다. 기대를 한껏 품고 교실에 들어서자 깨끗한 차림으로 반기는 서른다섯쌍의 보석 같은 눈동자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 굳게 다문 입술…. 첫 대면의 느낌은 무난했으나 이제부터 저들끼리 펼칠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특히 내신성적이 상대평가로 바뀌고부터는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성적에 있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평가기준과 원칙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 같은 반 수업이 돌아왔다. 수업에 앞서 어제 내준 과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목하는 순서대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다 한 아이가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을 했다. 이미 첫 시간에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한 만큼 감점 항목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수첩에 체크했다. 아이도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수업이 배고픈 하마처럼 줄줄이 입을 벌리고 있던 터라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금세 잊고 말았다.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창밖으로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귀가를 서둘렀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낮에 미뤄둔 업무를 마무리짓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버릇처럼 편지함을 살펴보자, 낯선 편지 한 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2교시에 지적받았던 전보배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당시 상황에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신 것처럼 저는 발표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주제에서 빗나갔을 따름입니다. 점수가 깎이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행여나 선생님이 저를 불성실한 학생으로 오해하실까 걱정됩니다. 선생님, 저는 절대 그런 학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선생님의 수업을 더 잘 듣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보배 같은 제자가 되고픈 보배 올림-” 바로 오전에 엉뚱한 답변으로 감점을 당했던 보배의 편지였다. 상심이 컸던 모양이다. 답장을 미룰 필요가 없었다. “그랬구나! 보배의 얘기를 듣고보니 선생님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네. 보배가 이해하기 쉽도록 좀더 세심하게 설명해줬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보배 같은 제자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듣고 선생님은 세상의 보배를 다 얻은 것 같구나. 오늘 지적받아서 감점받은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 마음 편히 먹고 행복한 꿈꾸길 -보배 같은 제자를 얻은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교실로 가는 복도에서 보배를 만났다. 이심전심으로 오가는 눈짓속에 녀석의 예쁜 미소가 햇살에 닿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막 고교생활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한 새내기 보배.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습에서 그의 보배 같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벌써 퇴근 시간이 지났습니다. 교감은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퇴근하려 합니다. 아니, 그런데 교실 곳곳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아하! 환경심사를 앞두고 막바지 정리에 바쁘구나!' 1학년 9반 교실에 들어가니 올해 신규로 발령을 받은 김 선생님(44)이 학생 두 명과 함께 교실 뒤에 붙을 판넬 구성을 하고 있네요. 선생님은 자료를 칼로 자르면서 다듬고 학생들은 풀칠을 하고···. 판넬 제목을 보니 '생각의 샘'이군요. 김 선생님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얼마 전 장인상을 당했는데도 출근하였길래 그 이유를 물으니 "새로 전입해 온 학생을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주어진 특별휴가도 다 쓰지 않고 오늘 출근했네요. '학급 환경 구성' 때문이랍니다. 교감으로서 너무나 안스럽고 교사로서의 '그 사명감'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환경 구성을 하는 것을 보니 학생과 힘을 합쳐서 하는데 여유가 보입니다. 그 반 학생이 교감에게 묻습니다. "아저씨, 누구세요?" "지난번 조회 때 교감선생님께서 대표로 인사 말씀하셨잖아? 교감 선생님이셔. 인사드려야지?" 대답까지 대신 해 줍니다. 김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교육, 희망이 보입니다. 40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여러 직업을 거치신 분이 신규교사로서 교단에 열정을 발휘합니다. 학생들과 호흡을 맞춥니다. 사제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40대 신규교사 김 선생님의 환경 구성을 보며 선생님의 힘찬 교직 출발을 축하함과 동시에 교직적 성장을 기원하여 봅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수학여행일 것이다. 각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예전과 달리 수학여행 코스를 제주도나 해외로 정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해 보건대 그 만큼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 졌다는 단면을 엿볼 수가 있다. 학교 일정에 의해 4월에 계획된 2학년 제주도 수학여행에 따른 희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년에 비해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불참 사유로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이유로 어려운 가정형편을 들었다. 우리 학급의 경우, 1명의 학생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그 아이와 상담을 해보았다. 그 아이는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현재 사정을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였지만 그 아이의 눈빛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가계가 어려워져 수업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있어 수학여행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만 더 안겨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며 그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뒤돌아서 교무실을 빠져나가는 그 아이의 양어깨가 축 처져 보였다. 귀가 후, 그 아이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수학여행비가 아니었다. 이런 일로 자칫 잘못하여 그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우리 학급의 실장이었다.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감지되었다. 아직까지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지도 않은 시간인데 전화를 건 것으로 보아 학급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선생님,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니?" "OO를 수학여행에 데려갈 수 있는 방법 말입니다." "그래? 무슨 방법인데?" "저희들이 돈을 걷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OO를 꼭 수학여행에 데리고 갈 거예요. 선생님께서도 꼭 동참해 주실 거죠?" "……" 한참을 말없이 실장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었다. 사실은 그랬다.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실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야간자율학습시간을 할애하여 그 친구 몰래 임시학급회의를 열었다고 하였다. 회의결과, 아이들끼리 성심 성의껏 돈을 모아 친구의 수학 여행비를 대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친구들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수학여행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였다. 실장과 전화를 하고 난 뒤, 왠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아마도 그건 수학여행비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를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되어 흐르는 미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그 아이에게 있어 이번 수학여행은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이 있기에 학창시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되리라 본다.
‘학부모에 돈 받은 초등교사 첫 실형’이라는 뉴스를 접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울분이 터진다. 내용인즉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부산 사하구 모 초등학교 교사 A(46.여)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59만2천원을 추징했다는 것이다. 매스컴에 보도된 대로라면 A씨가 했다는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렇게 유치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고개가 숙여진다. A씨는 학부모에게 ‘저랑 할 말 있지요’, ‘입학만 시켜놓고 지은 죄가 없느냐’, ‘감기 걸린 상태에서 소풍을 다녀왔는데 인사도 없느냐’는 등의 말로 학교 방문을 유도했다. 또 ‘아이가 학교생활 잘하는지 여부는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는 취지의 말을 해 학부모로부터 20만원을 받는 등 같은 해 6월까지 16차례에 걸쳐 현금과 상품권, 화장품, 양주 등 179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교사에게 전적으로 자식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 같은 촌지요구에 응한 학부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교사직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듯 이런 사람들은 빨리 교육계를 떠나야 한다. 법원이나 학부형들만 A씨의 교사직 박탈을 마땅한 처벌이라고 환영해야 할까?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교사들이 먼저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정화운동에 나서야 한다. 같은 교사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동료로 인정해야 하는가? 아직도 A씨와 같이 유치한 방법으로 학부모나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사가 있다면 빨리 교직을 떠나야 한다. 이제 엉뚱한 사람들까지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그런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게 하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가 아니다. 또, 교직단체 등에서 이런 교사들까지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면 학부모나 일반 사회에서 용서할리도 없다. 우리 스스로 정화운동을 해서라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아야 한다. 교직은 신성한 직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수이더라도 그렇게 값싼 일에 목매는 교사가 있는 한 일반인들은 신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동료교사들을 위해서라도 제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은 하지 말자.
요즘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우리말 겨루기'란 것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이 '맞춤법' 과정을 넘지 못하고 그만 우리말 겨루기에서 탈락하는 것을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국어학자들도 이 프로그램에 나가 완벽하게 다 맞춘다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말의 맞춤법은 어렵고도 복잡하다. 따라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완벽하게 맞춤법에 맞게 쓰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떻게'와 '어떡해'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 독자들도 알아두면 유용할 것이다. 우선 이 말들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리포터가 몇 년 전에 어느 아는 분의 자서전 집필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원고가 나온 뒤 세 번째 교정에서 이 단어의 오류를 발견했다. 화보에 나온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는 문장이었는데, 문제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선생님, 그냥 드시면 어떻해요."였다. 분명 문장의 끝 부분에 '어떡해'가 왔는데 '어떻게'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리포터인 필자가 즉시 빨간 볼펜으로 돼지꼬리부호를 친 뒤 '어떡해'로 수정해 놓았다. 드디어 세 번째 마지막 교정을 끝내고 인쇄에 들어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완성된 책을 펼쳐보니 어라, 이게 웬일인가. 리포터인 필자가 교정해 놓은 '어떡해'가 예전 그대로인 '어떻게'로 인쇄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거 뭔가 좀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리포터가 출판사 교정 담당자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담당자 왈, 내가 분명 틀렸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혔다. 16년 동안 일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만을 가르친 리포터인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분께서 한다는 말이 '어떻게'가 분명히 맞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국립국어연구원에 전화를 걸어 시시비비를 가려 리포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 적이 있다. 리포터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처럼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 잘못 쓰는 말이니 일반인들은 더 많이 틀릴 것이므로 더욱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는 '어떻다'의 부사형으로 동사, 형용사 등 다른 말 앞에 놓여 그것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며, 그 차제로는 서술어로 쓰일 수 없는 단어다. "요즘 어떻게 지내셔요?" "저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씀인가요?"처럼 어떻게 뒤에는 반드시 서술어가 따라와야 한다 . 자, 그럼 위와 같은 문법적 설명을 하자면 아주 골치가 아프니까 거두절미하고 '어떻게'는 문장의 처음과 중간에 올 때 '어떡해'는 문장의 맨 끝에 올 때는 쓰면 맞는다. 예를 들어 '어떡해'가 문장의 끝에 온 경우 "형이 돼 가지고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해" "네가 가면 난 어떡해" "학생, 거기에 앉으면 어떡해" '어떻게'가 문장의 중간에 온 경우 "네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니?"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 "성범죄자들이 일반인들과 어떻게 다른 심리적 특성을 지녔는지 살펴보자." '어떻게'가 문장의 처음과 끝에 온 경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런 간단한 방법을 두고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교사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실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최윤성 부장판사)는 28일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부산 사하구 모 초등학교 교사 A(46.여)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59만2천원을 추징했다. 지난 99년 학부모로부터 촌지 15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기소된 대구 모초등학교 교사 전모(당시 52.여)씨에 대해 법원이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적은 있지만 실형을 선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사에게 전적으로 자식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 같은 촌지요구에 응한 학부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교사직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씨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금고이상의 형이 최종 확정되면 교사직을 잃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오랫동안 교사로 재직해오면서 표창장 등을 여러차례 수상한 데다 수뢰액이 비교적 적고 해당 학부모들도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 해 3월 초 학부모들에게 '아이가 학교생활 잘하는 지 여부는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는 취지의 말을 해 학부모 최모씨로부터 20만원을 받는 등 같은 해 6월까지 16차례에 걸쳐 현금과 상품권, 화장품, 양주 등 179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학부모에게 '저랑 할말 있지요','입학만시켜놓고 지은 죄가 없느냐','감기 걸린 상태에서 소풍을 다녀왔는데 인사도 없느냐'는 등의 말로 학부모의 방문을 유도한 뒤 금품을 받았으며 참다못한 학부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A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해 9월 타 학교로 전보조치됐으며 이후 징계위원회를 통해 2개월간 정직처분을 받았다.
최근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임시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입법을 추진한다는데, 개정안은 체벌 및 각종 차별금지, 두발규제 등 학생인권침해금지, 학생위원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보장, 0교시수업 및 강제적 자율보충수업금지 등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시대착오적(체벌 및 두발규제금지)이기도 하고 매우 혁신 내지 진보적(학생위원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보장)이기도 하다. 또 법대로만 되면 입시지옥이 해소될 만큼 획기적(0교시수업 및 강제적 자율보충수업금지)이기도 하다. 우선 획기적이라 할 0교시수업 및 강제적 자율보충수업금지 법제화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강제적 보충수업은 극소수 학생들의 세칭 일류대 진학을 위한 들러리이거나 ‘학습분위기 맞추기용’ 내지 ‘교사들 부수입의 제공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무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칭 일류대 진학자를 뺀 나머지 대다수 학생들은 원서만 내도 어렵지 않게 합격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실정이다. 그런 대학입시를 위해 전체 학생들이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까지 ‘공부하는 기계’ 로 고교시절을 보내야 하는 건 엄청난 국가적 낭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체벌이나 두발규제 금지 법제화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십분 양보해도 시기상조다. 지금은 많이 완화됐지만 몇 년 전 학교가 붕괴된 원인중 하나는 김대중정부가 섣불리 발표한 체벌금지 조치였다. 경제적 수준향상과 함께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과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자유보다 방종이다. 체벌금지는 그런 사정을 간과한 실패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초등학생마저 선생님에게 잣대로 손바닥 몇 대 맞은 걸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두발규제금지 법제화도 마찬가지다. 크게는 학생들 인권보호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이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선진국가들의 고교처럼 학생들이 머리를 기르고 교내에서 키스정도는 ‘가볍게’ 할 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되어 있지 않다. 솔직히 교수·학습이외 그런 생활지도로 많은 시간할애와 함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 교사입장에서도 그렇게 되면 편해지니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이거나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그럴 만한 자정능력이 아직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학생의 인권도 소중하다.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수능시험 부정사건이후 전국 각급 학교로 확산된 교내시험때의 2인 감독 제도부터 없애야 한다. 극히 일부 학생때문 전국의 대다수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학생인권 모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성숙되지 못한 여건이나 후유증 면에서 체벌 및 두발규제 금지 법제화보다는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이미 시행중인 ‘체벌 3수칙’ 같은 지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지,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 가위로 머리를 자르는 따위 금지된 규정의 위배 여부를 가려 학교장과 해당 교사에 대한 일벌백계의 징계가 병행된다면 법제화로 일어날 평지풍파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인하대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부모와 함께 공부한 고졸검정고시 출신 학생을 내년부터 ‘홈 스쿨링(Home Schooling)’ 전형방식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대학 측은 “개성과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에 따라 홈 스쿨링 학생을 대상으로 대학수능시험 점수는 반영하지 않고 검정고시 성적(70%)과 면접(30%)만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통계치가 일정치는 않지만 현재 1,000여 가구가 '홈 스쿨링'(이하 '재택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해마다 3만∼5만 명의 초중고교생이 학교를 그만둬 해외유학과 더불어 '재택교육'이 더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교사로써 만감이 교차한다. 과연 대학에서 말하는 '개성과 잠재력을 가진 인재'란 어떤 사람일까. '재택교육'은 일정한 교육과정과 꽉 짜인 하루 일과 속에서 다인수 학생을 대상으로 개인을 우선하지 않는 주입식 교육,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다수 극복할 수 있고 부모가 교육전문가이거나 교육철학이 뚜렷하여 자유롭고 독창적인 교육내용으로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잘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일정량의 공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지식교육을 통한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공동체 의식과 예절을 배우는 중요한 장임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욕구는 변화하는 사회적 욕구와 항상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교육을 통해 서로 타협하고 조정할 기회를 얻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개인 욕구의 조절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교육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다양한 가치관을 서로 공유하고 타협하며 보편적인 역사관을 배움으로써 민주시민의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재택교육' 아이들은 지적인 편식과 사회성이 원만하게 발달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부적응을 낳아 성인이 되었을 경우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클 우려가 있다. 전인교육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교육 내용을 접하게 해야 하는데 부모가 모든 내용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택교육'을 결단할 수 있는 부모의 특성상 대부분의 일반 가정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일 소지가 많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가정이 학교보다 더 권위적이고 닫힌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학생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와 괴리감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택교육' 아이들 중에는 아침이면 등교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여 늦잠을 자거나 밖에 나가는 것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거나 검정고시를 봐서 상급학교에 가려던 아이들이 마음을 바꿔 도망쳤던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개의 '재택교육' 가정이 고소득이고 고학력을 가진 부모가 대부분이며 이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1주일에 3-4시간 정도 학교에 수학, 읽기, 과학 등과 함께 전통적 교과들을 공부한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교육이든 재택교육이든 결국은 우리사회의, 그리고 특히 부모들의 의식과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가정이든 학교든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 환경에서 자율성을 살리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고, 또 이렇게 될 때 우리 공교육도 선진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국회의 청문회 등 인준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를 ‘배출’시킨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일을 한 셈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를 염두에 둔 듯 한 일은 그뿐이 아니다. 여당의 제왕적 총재로서의 절대권력을 포기했고, 국정원이나 검찰같은 힘있는 기관을 권력기반의 수단으로 삼던 과거의 행태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3월 7일 이집트 순방길에서 “사회변화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 분들이 학교 선생님들인게 사실”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선생님들 외에도 2~3개 집단이 있지만 마음이 안 상하도록 말은 안하려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002년 12월 26일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국민의 승리 대한민국의 승리’라는 칼럼을 쓰며 1표를 그에게 기꺼이 준 유권자로서 한껏 기뻐했던 나로선 유감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3월 27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야3당의 압도적 찬성에 의해 가결되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교훈’이라는 칼럼을 쓰며 안타까워했던 나로선 진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토론과 비판이야 자유지만, 대통령이 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외국 순방길의 동포간담회에서 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나 들을 수 없으니 언론에 보도된 발언만을 볼 때 그렇다. 우선 40만 교원 전부를 싸잡아 표현한 학교선생님 지칭이 그렇다. 무얼 두고 학교 선생님들이 ‘사회 변화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 분들’이라고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교육개방을 염두에 두고 특정단체의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지적한 것이라면 당연히 ‘일부’라고 했어야 맞다. “2~3개 집단이 있지만 마음이 안 상하도록 말을 안하려 한다”는 말은 교원들을 더욱 분노케 한다. 그렇다면 학교 선생님들은 마음이 상해도 좋다는 뜻인가? 불현듯 과거 체벌금지 발표로 학교가 와르르 무너져내린 일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친김에 하는 말이지만 참여정부 들어 교원을 위해 해준 일이 뭐가 있는지 묻고 싶다. 국민의 정부때 정년을 3년씩이나 단축하며 사탕 발림한 신규교사 2~3명 채용은커녕 오히려 갈수록 법정정원이 줄어들고 있다. 늘어만가는 상치교사에 툭하면 비정규직인 기간제교사로 땜방하는 그런 사회변화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게 학교 선생님들이란 말인가? 개방, 개방하는데 교육의 경우 그리되면 다 죽게 되어 있다. 세계의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대한민국처럼 획일적·주입식수업을 하고 있는가. 토론과 비판없이 교사의 일방적 지식주입(그것도 오로지 대입을 위한)에 그치고 있는 교육현실부터 확 바꿔놓는 것이 우선 할 일이다. 개방을 통한 경쟁은 그 다음이다. 과거처럼 대통령 말 한마디의 위력이 큰 시절은 아니라하더라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 교원의 사기를 꺾어놓고 교육개혁이니 공교육 활성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국민의 정부 시절 그런 경험을 해온 터이다. 대학교수들 같지 않게 교사들을 만만히 보고 한 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28일 당정이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대학 특별전형을 확대하고 2010년부터 실업계고 재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전액 지원키로 결정한데 대해 성명을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그러나 "실업계고 특별전형 비율 확대나 장학금 지급 확대가 실효성을 담보하는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선거를 위해 교육정책을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또 "실업계고 학생의 대학 특별전형 비율의 정원외 5% 확대는 대학에 강제하거나 강요할 사항은 아니지만 대학이 이를 자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총은 "대학은 다양한 인재의 발굴과 육성, 실업고 활성화를 위해 정원외 5% 확대 정책이 충분히 구현될 수 있는 노력을 자율적으로 해야 하고 정부는 행ㆍ재정적 인센티브를 부여, 대학이 실업계고 학생의 정원외 5%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00야, 안녕? 아침밥은 먹고 왔니?" "00야, 할머니는 잘 계시니?"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아침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시며 깊은 인사까지 나누는 분은 우리 학교 최수성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이 낯선 풍경, 흔하지 않은 모습은 첫 출근하던 날 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장면이랍니다. 몇 년 전 아들이 사레지오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앞에서 수사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으며 3년 동안 학부모로서 아들의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도 믿고 보낼 확신이 들게 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의 주인이니 마음을 다해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가르치겠노라는 마음의 표현이니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도 인간 관계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할 때, 이성보다는 감성의 힘이 더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학부모님들과 불편한 관계의 출발도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나 오해에서 비롯됨을 생각하면 가르침보다 앞서야 할 전제 조건이 원만한 인간 관계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 어쩌다 한 번 하는 일회성 인사치레가 아니라 연중 행사이니 추운 날씨에 빨개진 코로 눈웃음을 보내며 아이들을 맞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따스합니다. 문제는 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차량으로 출근하는 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시는데 차를 모는 상태에서 인사를 받는 황송함 때문에 교장 선생님보다 얼른 출근해서 그 민망함을 덜고 싶은데 번번히 그러지를 못하는 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일찍 출근하라는 말씀은 없지만 은근한 압력(?)이 되어 출근 시간을 8시로 작정하여 노력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일이니 그 따스함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져서 우리 학교 아이들은 활달하고 밝습니다. 때로는 선생님들과 너무 친하거나 격의가 없이 지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래도 그 마음의 발로는 지극히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생의 이름을 불러주는 교장 선생님! 외국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제일 먼저 출근하셔서 학교 문을 열어주고 담임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교실에는 아이들을 들여 보내지 않고 교장 선생님이 챙긴다고 합니다. 퇴청할 때에도 마지막으로 학교를 관리하는 분이 교장 선생님이어서 '키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그렇게 매사에 고생이 많으셔서 봉급도 많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학교를 관리하는 '사장' 의 임무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우리 학교에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지만 몇 달쯤 산 것 같은 친숙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 관리자가 보여주는 따스함과 배려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 학교의 풍토와 분위기에 '길들여짐'에 이르기까지는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심한 학년 초. 자잘한 안전사고와 불협화음이 가장 많이 들리는 시기도 3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 관리자인 교장 선생님이 열린 사고와 행동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을 가족처럼 따뜻이 맞아주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합니다. 옛부터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진정한 인사란 바로 마음이 전달되는 따스함임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학교의 모습도 아이들 위에 군림하거나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몸을 낮추어 아이들 속으로 내려가 아이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작지만 큰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집에서 꾸지람을 듣고 학교에 온 아이도 웃으며 맞아주시는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의 훈훈함을 대하면 우울한 기분을 날리게 되어 밝은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학년 초에 아이들을 잡지 않으면 일년 내내 아이들에게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 위험성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봄꽃들이 훈풍에 피어나고 헤어지고 난 뒤에 남는 것도 결국은 인간관계 뿐이라고 생각할 때, 할수만 있다면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4월의 훈풍처럼 따스한 교육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학교의 아침 풍경을 사랑합니다. 다산의 목민 정신이 숨쉬는 강진 땅, 영랑의 시심이 솔솔 풍기는 인정의 땅 강진, 고려 청자의 맥을 잇는 이 고장의 자손들이 너른 대양의 기운을 받아 비상하는 그날을 꿈꿉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많이 잡듯, 부지런한 관리자를 만나 그 보폭을 따라 가려고 몸부림하는 우리 선생님들의 열정이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통하리라 확신합니다. 아이들이 주인인 학교, 아이들을 소중히 하는 학교,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육이야말로 고객 감동, 고객 만족을 지향하는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최근 정부 여당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교육양극화'와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발신인이 청와대 국정홍보실로 되어 있는 E-Mail을 받았다. '교육양극화 그리고 게임의 법칙'이라는 제목이었다. 글의 말미에는 [특별기획팀]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의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을 비교해 놓았고 결론적으로 중산층의 거주지역과 그렇지 않은 층의 거주지역에서 이들 대학의 입학률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또한 학부모의 직업에 따른 진학률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현재 서울의 비강남지역은 물론, 전국의 농어촌 지역에서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염려 스럽다. 이들 청소년은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하여 조금의 변화에도 흔들리기 쉽다. 그럼에도 이로 인해 그들의 희망이 도리어 절망으로 치닫지는 않을까 염려 스러운 것이다. 또한 언론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교육 양극화'의 문제 제기가 단순히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되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교육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산층과 비중산층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경제발전에 따라 소득의 양극화가 진행되었다고 볼 때, 경제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경제성장이 불평등한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본다면 경제성장도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기 위해 이루었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이로인해 잘사는 사람들(이른바 중산층)에 의해 교육양극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교육양극화 문제가 정부 여당과 청와대에서 지적되면서 그동안 자립형 사립고 확대를 시사했던 교육부총리 역시 이의 확대가 곤란하다는 의도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역시 최근의 교육양극화 문제의 지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는 않나 싶다. 이렇게 교육양극화 문제와 연결된 여러가지 정황들이 결국은 '교육양극화'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 여러나라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에 적극적인 투자와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교육양극화 문제를 다른 곳도 아닌 정부여당과 청와대에서 제기한다는 것은 교육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학을 세계에 내놓으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서울대학이 겨우 세계에서 100위권 정도에 든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양극화'를 문제삼아 평등만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옳은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교육양극화 문제를 제기하여 많은 청소년들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에서 '교육양극화'문제를 자꾸 제기하기보다 경쟁력있는 대학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더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희망의 나래를 펼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 하겠다.
이제 휴대전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휴대 전화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점도 있으나 이로 인해 악영향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자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학생들의 '휴대전화 문제'이다. 요즘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휴대전화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 또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조사결과 우리 학급의 경우 2명의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한 걸로 파악되었다. 가끔 수업 시간 중에도 휴대 전화가 울려 수업이 방해되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으며 하물며 선생님의 눈을 피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휴대 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탓인지 아예 목에 걸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또한 일부학교에서는 애국 조회시 교장선생님의 훈화도중 한 학생의 휴대 전화가 울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컴퓨터에 중독 된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했던 부모들이 이제는 휴대 전화에 중독이 된 자녀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모든 것은 인터넷 상으로 이루어졌던 모든 기능들이 휴대 전화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휴대 전화는 단순히 전화를 받고 거는 것 외에도 동영상, MP3, 영화, 오락, 디지털카메라 등의 다양한 기능을 맘껏 즐길 수가 있다. 현실적으로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부모들은 자녀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휴대 전화를 사주는데 급급할 뿐 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무분별한 휴대 전화의 사용으로 매월 그 사용료가 과다하여 가계 부담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도에 의하면 백 만원이상이 넘는 휴대 전화 요금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우리 학급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액제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몇 명의 학생들은 월 휴대 전화의 사용료가 5만원 이상이 넘어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유인 즉은 동영상 다운이나 게임 등의 이용으로 인한 정보이용료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뚜렷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특별한 관심이 따라야 한다. 가정에서는 매월 통보되는 사용료를 점검해 보고 그 사용료가 과다할 때에는 통신사를 통해 휴대 전화의 통화내역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쉬는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 만큼 아이들의 휴대전화 문화가 학교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어쩌면 그 무관심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병들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학교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휴대전화 안 가져오기’ 날로 정한다든지 수업시간에 ‘휴대전화 켜놓지 않기’ 운동 등을 전개하여 휴대전화로 인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가 경각심을 느끼기 위한 방법으로 휴대전화에 대한 ‘표어’, ‘포스터’ , '글짓기' 공모를 하는 행사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휴대전화가 없으면 ‘미개인(未開人)’이라는 소리를 듣는 요즘 진정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은 휴대전화 에티켓을 모르는 ‘미개인(未開人)’이라는 소리만큼은 듣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인해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농촌의 한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남매 결연을 하는 등 가족처럼 생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의 문백초등학교(교장 이월희)는 지난해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명씩을 남매로 맺어주는 '문백 6남매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남매로 맺어진 학생들은 친형제처럼 학교생활의 어려운 점을 상의하고 도와줄뿐아니라 선배들은 후배들의 어려운 과목 공부도 도와주고 있다. 이들은 1년에 한번 이상은 6남매 중 한 학생의 가정을 방문,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며 형제애를 나눈다. 또 '남매'를 초청한 가정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밥상머리' 교육까지해 준다. 이 학교는 매년 6월에는 전교생과 학부모, 교사 등이 함께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꿈의 캠프'도 운영,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인성교육프로그램은 2004년 부임한 이 교장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그 결과, 이 학교에는 '왕따'나 학교폭력 등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전교생들이 친형제처럼 우애를 나누고 있다. 이 교장은 "학생들을 남매로 맺어주자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내고 있다"며 "학부모들도 남매로 맺어진 학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해 학교가 가족처럼 화목하다"고 말했다.
지난 30여년간 미국 학생들의 마약 복용이나 임신, 범죄행위 등은 줄었지만 학업 성적은 별로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어린이개발재단(FCD)이 18세 이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2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낙제학생방지법' 제정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9세, 13세, 17세 학생들의 학업성적은 1975년 이후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낙제학생방지법은 어린이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특히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 어린이에 대한 지원책을 담고 있다. 수학과 독해력 부문의 경우 9세 학생들은 다소 실력이 향상됐지만 13세 학생들은 변화가 없었고, 17세 학생들의 경우는 오히려 다소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케네스 랜드 듀크대 사회학 교수는 "1975년부터 2005년 사이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는 미국의 교육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켰으며 청소년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10대 출산율과 음주, 마약 복용은 감소하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 및 행동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린이 사망률이 감소했음에도 청소년 비만이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건강상태는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미국수면재단(NSF)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의 20%만이 권장 수면시간인 9시간을 지키는 등 수면부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이 지난해 11월 성인 1천602명과 이들이 돌보는 11-17세 자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의 5분의 1은 수업중 졸았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학년의 경우 학기중 평균 8.4시간 수면을 취하지만 우리나라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의 수면시간은 6.9시간에 불과했다. 늦잠을 자다가 지각하는 경우도 많았고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수면센터 부소장은 "수면부족 상태로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침을 굶기고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담당하고 계신 부장선생님께서 1학년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용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논술과 구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가에 진열된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미래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부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