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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뇌물수수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김영세 충북도교육감이 사퇴했다. 도교육청은 1일 오전 김 교육감이 가족들을 통해 '건강과 재판으로 인해 더 이상 직책 수행이 어려워 사퇴한다'는 내용의 사퇴서를 도 교육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교육감은 성명서를 통해 '건강상 문제로 사임의사를 직접 표명치 못하고 서면으로 대신한다'며 '건강을 비롯한 스스로의 한계를 느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 교육감은 '진퇴문제가 여론화 될 때 사퇴하려했으나 누가 교육감이 되더라도 각종 음해 등에 흔들리지 않고 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올바른 교육문화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 재판을 통해 일련의 의혹을 깨끗이 씻어내 실추된 충북 교육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년여동안 충북 교육이 파행운영돼 온 것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표명이 없이 일관되게 `음해'라고 주장한 데다 당초 약속했던 `3월 중 사퇴'마저도 지키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김 교육감이 이날 사퇴서를 제출함에 따라 앞으로 도 교육청은 유선규 부 교육감의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며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다. 한편 김 교육감은 지난 95년과 99년 각각 9, 10대 교육감으로 당선됐으며 지난해 2월15일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 추징금 2300만원을 선고받은 뒤 지난 2월 20일 항소심에서 재판부로부터 사퇴권고를 받았다.
전제상(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선임연구원) 들어가는 말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은 교육활동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통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교육활동에서 교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교원정책이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핵심 사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교원의 동기 유발을 촉진하고 교육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교원평가와 교원보수 연계정책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2001년 1월에 부시 정권도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성과중심교원평가체제(Merit-Based Teacher Performance Systems)를 도입하여, 높은 성취를 거둔 교사에게 차등 보너스 지급 추진, 교원평가시스템을 발전시킨 주(州)에게 전체 기금 중 1%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교원평가와 교원보수의 연계정책은 정책입안자나 국민, 지역사회로 하여금 학교의 책무성을 증진하고 교원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근래에 국민과 학부모들이 교원의 자질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교원평가체제 강화가 주요 사회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처럼 교육의 질 향상을 가로막는 자질 부족교사에 대한 사회적 압력 요구의 증대는 학생의 학습권 보호 차원에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부터 숱한 논란 속에 도입된 교원성과급은 교원평가와 맞물리면서 교직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우리의 경우는 교원성과급제가 작년부터 도입·운영되고 있지만 현장교원들이 학교 현실과 교직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심한 반발에 부딪쳐 성과상여금의 본질이 흐려지고 말았다. 교원평가와 성과급 간의 관계는 개인과 조직간의 효율성 및 효과성 증진의 문제로 접근하는 만큼 조직의 목표에 개인의 욕구를 접근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론적으로는 조직과 개인 간의 관심을 완벽하게 연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조직과 개인 간의 차이를 조정하는 방법을 발견하고자 부단히 애써왔으며, 이의 대표적인 방법이 평가를 통한 보수와의 연계이다. 이러한 관점에 비춰볼 때, 이 글에서는 외국의 교원성과급제 운영실태를 살펴보고, 이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외국의 교원성과급제 운영실태 미국 미국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교원보수체계는 먼저 교사로서 경력을 처음 시작하는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자에게 지급되는 기본급(basic salary)을 규정하고, 여기에 더 많은 교육훈련을 받거나 혹은 더 경력을 쌓아감에 따라 봉급을 증가시키는 형태인 호봉급제이다. 이때 초임교사의 기본급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 아울러 교육·훈련과 경력에 따라 어느 정도의 봉급을 증액할 것인지를 각 학교자치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미국의 교원성과급제도 개인단위성과급제와 학교단위성과급제로 구분되는 등 주와 교육구마다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개인단위성과급제로는 80년대 중반에 주로 적용되었던 실적급이 대표적인 유형이다. 실적급은 호봉급제의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지역에 따라 실적급의 기준이 매우 낮아 거의 모든 교원이 받을 수 있는 상여금(bonus)의 형태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극히 소수의 선택된 교원에게만 실적급을 지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PAGE BREAK]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실적급제(Teacher Incentive Program)는 각 교육구의 교원들로 구성된 실적급제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한 기준주)에 충족하는 교원을 대상으로 2000불 혹은 3000불의 상여금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펜실베니아 교외 지역의 한 교육구인 몽고메리 카운티는 상위 10~20 퍼센트 교사에게 2800달러까지의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자신들을 경쟁의 함정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의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표준화 학력검사 결과를 가지고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제도는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학교단위성과급제(School-Based Performance Award)는 켄터키와 매릴랜드, 그리고 남·북 캐롤라이나 등 10여개 주 수준에서, 사롯테-캑클런버그와 달라스, 더글라스 지역에서는 교육구 수준에서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특히 더글라스 교육구는 교원노조와 교육구 교육위원회의 협동 노력으로 이 제도를 탄생시킨 곳으로, 최근에 시카고 교육구에서도 교원노조와 학교위원회 간의 1년간의 협상 끝에 성과급을 지급하도록 합의하기도 하였다. 켄터키 주의 경우, 1990년 ‘켄터키교육개혁법(Kentucky Education Reform Act)’을 제정하여 주의 교육체제를 재구조화하였는데, 법 제정 당시에 학생들 학업성취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 교육개혁법의 핵심 중의 하나는 교원평가 및 책무성체제의 개발이다. 즉, 4학년, 8학년, 11학년 학생들의 수학, 과학, 쓰기, 영어, 사회 교과목에 대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가 성과급 지급 및 책무성 체제의 기초가 된다. 학교성과 개선을 위한 책무성 체제 지표는 6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들 중 5가지는 읽기, 수학, 사회, 과학, 쓰기 과목의 성취도 평가로 하고, 평가결과는 초보, 보통, 능숙, 우수의 4단계로 구분된다. 나머지 여섯 번째 요소는 학교출석률, 중도탈락률, 성인(직장) 생활로의 연계 등에 의해 평가된다. 개별 학교의 개선 목표는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출발연도와 목표연도 사이에서 매년 1/10씩 개선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성과급이 2년마다 한 번씩 주어지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는 20년 계획으로 설계되어 있다. 매 2년마다 성과 개선 목표를 달성한 학교는 성과급을 지원받으며, 성과금은 전문성 계발을 위한 개인별 상여금 또는 학교 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 1994~1995년의 경우에 성과급을 받은 학교에서 교사 1인당 액수는 약 2000불 수준이다. 그 당시 켄터키주 학교들 중 480여 개 학교가 성과급을 받았다. 성과급의 활용방법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교 교직원들에게 지급하였고, 학생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학생활동의 지원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영국의 경우, 교원들의 보수 및 근무조건은 ‘교원의보수및근무조건법(School Teachers’ Pay and Conditions Act 1991)’에 의거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구성된 교원평가기구(School Teachers’ Review Body)는 교원의 보수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영국 교육고용부 장관이 1998년 2월에 국회에 제출한 개혁녹서(Green Paper)에서 교원보수체계를 개편하여 교원성과에 따라 차등 급여를 책정하고 교원의 경력을 향상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즉, 신임 교사의 직무수행 능력과 성과가 높은 교사에 대한 차등 급여 정책이 그것이다. 새 급여체계의 특징은 ①당해 목표 달성도 평가를 통한 급여 책정, ②성과급제, ③교사의 능력, 성과, 헌신의 수준에 다른 차등 급여, ④뛰어난 성과를 기록한 교사에 대한 높은 급여 지급 및 전문성 기대 등을 들고 있다. 이후, 영국은 이처럼 기존의 연공서열식 봉급제를 폐지하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이른바 우수교사제도를 도입하고 우수한 젊은 인력 유치를 위해 다른 교사보다 빨리 승진하고 월급도 더 받는 ‘신속승급제도(Threshold Assesment System)’를 도입하였다. 우수교사제도는 교직경력 8년 이상의 교원이 교장 또는 외부전문가에 의한 교육능력 및 전문지식, 학생의 학습향상 들을 전국 수준과 비교평가한 후 뛰어난 교육성과를 거둔 교사에게 월급 이외에 연간 최고 2000파운드 (약 400만 원)의 능력수당을 누적해서 지불한다. 우수교사가 되면 근무연수에 따라 4만파운드~7만파운드까지 받을 수 있어 유럽 최고 수준이 된다. [PAGE BREAK] 현재 영국 초·중등 교사의 평균 초임이 1만5000파운드이고 상한액이 3만7000파운드임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수학교시상제도(School Performance Award Scheme)’를 도입하여 매년 성과지표에 의거하여 선정된 우수 학교에 보상을 해준다. 또한 보조 교사는 물론 교직원까지 포함하여 집단 혹은 개인별로 보상을 해주는 집단성과보상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새로운 체제 운영을 위해 교장과 교사, 교직원들을 위한 연수 기회를 제공하며, 보다 향상된 교육 서비스와 교사 및 학교재단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사 연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뉴질랜드·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그 밖에 교원성과급을 도입·운영하는 나라는 뉴질랜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있다. 뉴질랜드의 교원성과급은 직무수행관리체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을 도입하여 교사 개개인이 매년 전문성 기준을 충족시키는지의 여부를 평가받고, 그 결과에 따라 급여를 상향 조정하는 형태이다. 성취도 기준은 ‘교원공인위원회’가 개발한 기준으로 교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준과 교육부가 개발한 기준으로 능력을 검증받고 급여 인상을 받기 위해 필요로 하는 2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1971년부터 초·중등교사에 대한 성과급제가 운영되고 있다. 평가기준 및 항목은 매년 교과목교육, 생활태도교육, 복무태도, 성품 및 행정처리 등 항목을 평가한다. 지급액은 최우수 교원의 경우 기본급을 1등급 상향조정하고 기본급을 상여금으로 지급하며, 우수 교원의 경우 기본급을 1등급 상향 조정하며 기본급의 50%를 상여금으로 지급한다. 싱가포르는 초·중등 교원에게 성과상여금(Performance Bonus)을 지급하고 있는데, 평가방법은 개인의 성과를 교장, 교감 등 관리자가 평가하며, 평가등급은 5개 등급으로 구분되며 연봉을 기준으로 지급액이 차등 지급된다. 말레이시아는 전년도 업무성과에 따라 개인별 연봉을 차등 지급하는 형태이다. 지급액은 상위 10%는 기준인상율의 2배, 차상위 10∼20%는 기준인상율의 1.3∼1.5배, 21∼50%는 기준인상율 적용을 적용하고, 51% 이하는 기준인상율 0%를 적용받는다. 나가며 교원의 평가가 최근 각 국가의 교육정책에 있어서 주요한 사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교원의 평가 결과를 교원의 자격·승진·보수 등에 연계하는 교원정책 전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원의 승진 및 자격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교원의 보수에 연계되기 때문에, 결국 교원평가에 있어서 핵심 문제의 하나는 이를 교원 보수와 어떻게 연계하느냐 하는 것이다. 교원성과급제는 교원평가를 전제로 크게 개인단위와 학교단위로 지급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 둘러싼 쟁점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여 살펴본 후에 우리 나라에 주는 시사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개인단위와 학교단위 지급간의 쟁점 교원성과급이 개인단위로 지급될 경우에 제기되는 쟁점은 첫째, 교원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동료 교원을 희생시키는 기회주의적 행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성과는 교원간의 상호의존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교원성과급제가 교원들로 하여금 협력과 협동을 기피하고 경쟁만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성과급의 핵심은 교원성과에 대한 평가인데 이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즉, 동료 교원은 성과급을 받는데 왜 나는 못 받는가, 그리고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교원평가를 위한 평가기준이 객관성을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다. [PAGE BREAK] 셋째, 현실적으로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주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이것이 전부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의 학업성적은 매우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교육의 효과성이 교육구성원들간의 합의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교육의 목표는 설정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학교단위로 지급되는 교원성과급은 개인단위로 지급되는 일부 문제점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이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학교단위성과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여러 주 및 학교구들에 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성과급을 받는 학교의 교원들은 시민들의 인정, 경제적인 보상, 목표달성에 대한 만족감, 학생들의 성취도 향상 등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짐과 동시에 성과급을 받지 못한 학교의 교원들은 시민들의 비판, 전문적인 자존심의 상실, 교직의 자율성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 등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성과급은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성과보상은 학업성취도가 전체 교원들의 공동 노력의 총화로 나타난다는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학교구성원모두가 학생학업성취도 개선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도록 독려한다. 학교단위성과급제는 학업 성과에 대한 개별적인 인센티브 제도가 갖는 문제를 피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집단성과급에서는 예컨대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사전에 정해진 성취 기준을 넘어설 경우, 학교구성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또한 학교단위성과급은 개별적인 성과가 아닌 집단적 성과에 기초해야만 한다. 이는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해당되는 목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단위성과급에서는 평가기준 (학업성취도, 학생과 교원의 출석상황, 학부모 만족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며, 아울러 성과에 기초한 보상 프로그램은 업무환경에 대해 교원들이 통제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교사들이 학생의 성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들은 조직을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시사점 이상의 외국의 교원성과급 운영실태 및 논의를 통해 우리 교직사회의 보수체계 및 평가체제 개선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원성과급제에 대해 무조건으로 비난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명확하고도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교원성과급을 개인별로 지급함에 따라 나타나는 병폐, 즉 서열화를 조장하는 것에 가장 큰 불만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인별 대상으로 실시되는 성과급제는 교원들간 경쟁을 조장하고 성과급 지급 대상자 선정의 문제 등으로 인한 교원간 갈등과 혼란 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지급 방법을 개선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둘째, 교원성과급제 도입·운영에 따라 제기된 핵심 쟁점은 과연 학교교육의 효과성·생산성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교직계의 합의가 절실함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의 성과는 주어진 교과목을 연간 계획에 의거 가르치는 과정에만 국한되었을 뿐 결과에 대한 논의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교교육 효과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논의하는 담론과정이 있은 후에, 교원보수에 영향을 주고받는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한 중요한 원칙이 개발되어야 한다. [PAGE BREAK] 셋째, 교원 보수정책은 당사자인 교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대한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정부, 교원과 교원단체 및 학부모 대표자 등 교육 주체들간의 협의를 통해서 수립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도 교원보수를 비롯한 교원정책의 수립과정에서 교육부 또는 교육청의 정책담당자, 교원단체, 학부모 대표 등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보다 실천성이 높은 합리적인 정책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과급제도를 수립할 때 교원 대표자들과의 협의는 필수적이다. 교원들이 이 성과급제에 대한 이해, 제도 실시에 대한 교원들의 걱정과 우려, 제도 도입의 목표를 수용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위해서는 교원들의 참여와 협의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 현행 교원성과급제 합리적 운영을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내에 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넷째, 교원성과급의 도입으로 교육의 질 향상을 도모하려는 이 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원을 독립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성과급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재원이 부족하거나 재원조달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보수체계 개혁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제도 변경에 따른 이행기금(transition funds)은 종종 낡은 구조로부터 새로운 구조로의 이행과정에서 필요하며 성과급 역시 안정적인 기금을 필요로 한다. 다섯째, 교원성과급제는 학교교육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인만큼 평가방식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단위학교의 1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만큼 절대평가가 되어야 한다. 정해진 비율의 학교가 아닌, 성과개선목표를 달성한 모든 학교들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우수한 조직 여부는 성과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보상에 달려 있다. 아울러 교원이 직무수행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 인프라 투자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교원성과급의 지급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원동기 유발 차원에서 필요로 하지만 교원보수체계의 검토 위에서 종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교원보수체계는 현행 연공서열식 보수체계에서 장차 교원의 능력과 실적을 반영하여 교원의 전문성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장·단기 교원보수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원성과급이 새로운 보수체계 운영을 위해 도입하고 있으므로 이 프로그램이 완전하게 정착될 때까지 ‘지속성’을 견지하는 것은 성공의 관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교육개혁방안들도 대부분 도입 초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기 마련이고 이는 몇몇 당사자들에 의해 회의적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제도 도입에 따른 문제 발견시 계획을 수정하거나 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종이는 문자, 인쇄의 발명과 함께 인류정신문화에 있어서 3대 발명이라 일컫는다. 생각을 남기고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표현 욕구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종이의 사용이 확산되면서 인류의 지식과 문명의 전파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종이의 발명은 인류 문명사의 시작과 같은 것이다. 현대에는 종이 외에도 많은 지식의 기록과 전달 매체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종이는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한 표현 수단인 동시에 자연과 문명의 연결 고리인 셈이다. 종이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깊게 관여하고 있는 종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마디로 종이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팬아시아 종이박물관(구 한솔종이박물관)’이 그곳. 한지(韓紙)의 고장인 전북 전주시의 공단 내에 위치해 있는 이 박물관은 500평 규모로 상설전시관 두 곳, 기획전시실, 한지재현관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97년 개관한 이래 매년 13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전문박물관이다. 상설전시관의 제1실의 주제는 종이의 과거. 중국의 갑골문자와 죽간, 이집트의 파피루스, 지중해의 양피지, 메소포타미아의 패트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종이의 실물은 물론 디오라마, 멀티슬라이드 영상 등 다양한 전시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또 2천여 년 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세계 각 지역으로 전파된 과정과 원료 및 제지기술의 발달사를 보여주고, 종이그릇 등 우리 사회의 예술, 생활 등과 관련된 종이유물도 전시해 놓았다. ‘종이의 오늘과 내일’을 다루는 상설전시관 제2실은 현대에 들어 점점 다양해지는 종이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코너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축광지 등을 통해 종이가 정보의 기록과 저장, 전달이라는 고전적 기능을 뛰어넘어 첨단산업소재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안네 프랑크의 일기, 이중섭의 그림 등 종이에 남긴 여러 작품을 통해 컴퓨터와 인터넷이 상징하는 ‘종이 없는 지구촌사회’가 되어도 종이는 여전히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실 한켠에는 종이접기 코너를 마련해 영상으로 보면서 직접 종이접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한지뜨기 체험’이 인기 이곳의 특징은 한지재현관에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나라 한지의 종류와 발달사 등 한지의 모든 것을 2층 한지 소개 코너에서 알아본 뒤,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면 한지 재현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여느 곳과는 달리 이곳은 참여형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이 단순히 유물만 관람하는게 아니고 전통한지를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종이의 제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김중태 학예연구실장의 말처럼, 1층에 마련된 한지재현관에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한지 뜨기에 여념이 없다. 기획전시실에는 시의적절한 주제로 종이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개관기념으로 이루어졌던 김영희의 ‘닥종이 인형전’과 올 겨울에 있었던 ‘우리 나라의 연’은 구름같은 관람객을 몰고 오기도 했다. 지난해 전주문화축제의 주요 테마의 하나인 종이축제 때는 이곳 박물관에서 어필(御筆 : 조선시대 왕들의 글씨)을 전시해 호응을 얻었다. 올해 종이축제는 4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장장 4개월에 걸쳐 이루어진다. 전주에서 열리는 월드컵 행사와 연계해 외국인들에게 한지의 미(美)와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보여주기 위해 종이공예품을 전시할 예정이며, 한지제작 체험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종이접기 체험으로는 축구공 만들기를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 세대들이라면 누가나 한 장의 종이에 꿈을 담아 날려보낸 종이비행기를 한 번쯤 접어본 기억은 있을 것이고, 요즘 신세대 학생들에게 종이학 접기는 기본일 듯. 예나 지금이나 종이는 우리의 소중한 기록과 사랑을 담아왔다. 체험으로 알아보는 종이의 모든 것을 팬아시아 종이박물관에서 가져봄이 어떨까.
또래상담은 연령이 비슷하고 유사한 가치관을 지닌 청소년들간에 이루어지는 상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피상담자가 자신과 비슷한 생활경험을 하고 일정한 훈련을 받은 상담자로부터 상담을 받기 때문에 그 효과도 의외로 커 학교현장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또 또래상담의 활성화를 위해 프로그램 개발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교사들도 많다. 강원도 인제군 원통고등학교의 김영국 교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김 교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또래상담전문가다. “청소년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만큼 친구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간에 이루어지는 상담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교사는 최근 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또래상담반을 지도하여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 그 결과를 발표해 지역의 관련 단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김교사는 지난 2000년 3월부터 26명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또래상담교육을 시켰다. 이 교육을 위해 자신의 학교에 맞는 단계별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심성프로그램에다가 한문화인성프로그램, 일탈행위 프로그램, 성격선호도 프로그램, 심리극, 진로문제, 성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재구화한 프로그램이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친구간의 이해심이 돈독해졌으며, 인간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특히 담임교사, 생활지도교사, 진로상담교사와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이루어져 학교상담이 활성화되었다. 지난해 말에는 강원도 청소년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하는 동아리육성사업에 응모하여 최우수동아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래상담은 친구와의 갈등 상황을 조정해주어 왕따 문제 해소에도 도움을 줍니다. 또 자기 이해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학교교육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국어과를 담당하고 있는 김 교사가 또래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7년 한 광산촌 학교에 발령받으면서부터다. 당시 광산촌은 석탄 경기의 침체와 함께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손가정이 늘어났다. 자연히 일탈행위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김 교사는 상담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민하는 학생들과 대화하게 되면서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연수가 필요하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전문적인 상담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1992년부터 본격적인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상담심리수련과정을 시작으로 하여 MBTI 과정, 심성수련과정, 성교육 및 성상담전문가 과정, 또래상담지도자 양성과정, 상담심리사과정 등 1180시간의 다양한 상담관련 연수를 받았다. 대학원에서는 교육심리를 전공했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강원도내 상담관련 교사들과 함께 ‘또래상담연구회’를 결성해 또래상담 프로그램 개발과 상담 교사들의 자기 연찬에 힘쓰고 있다. 김 교사가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모임의 총회원수는 150여 명으로 도내 초·중등 교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상담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아울러 상담의 전문화를 위한 정책적인 배려가 아쉽습니다.”그는 또래상담의 질적 발전과 프로그램 개발에 자신의 교직생활 상당 부분을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계획이다.
교육감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교사부터 시작하여 교장, 교육장 등을 역임하셔서 현장감과 행정력을 잘 겸비한 교육감이라는 것이 지역 교육계의 평가입니다. 당선 소감과 앞으로의 청사진(강원교육 경영의 방향)을 간단하게 밝혀주십시오. 먼저 미력한 저에게 중책을 맡겨주신 주신 지역 인사들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남과 다른 사람’이면서 ‘남과 함께 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다시 말해 인성이 바른 창의적인 인간을 기르는 교육에 온 힘을 쏟겠습니다. 둘째, 농어촌 소규모 학교가 많은 우리 도의 현실을 감안하여 농어촌 소규모학교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소규모학교 종합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겠습니다. 셋째, 교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일에 진력하겠습니다. 넷째, 민주적인 교육풍토가 조성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학교교육이 흔들리고 있다고 모두들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과 대책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일부에서 공교육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고, 또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무리한 정년 단축, 잦은 교육정책의 변화, 학생의 욕구충족 기회 부족,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인성교육 부재, 학생과 교원의 교감(交感) 부족(세대차이) 등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무리한 정년 단축으로 야기된 초등교원 부족현상은 공교육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원천적인 교원 부족 문제와 함께 도내 지원자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감께서 생각하시는 초등교원수급문제 해법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아울러 도내 교원 유인을 위해서는 어떤 방안을 생각중입니까? 현재 초등교원은 국·공·사립 합쳐 5,622명입니다. 2002학년도 부족교원수는 정년퇴직(33), 명퇴(101), 의원면직(50), 휴직(30), 기간제교사(243), 시·도 일방 전출 등 382명이 부족한데, 수급대책으로는 신규채용 춘천교대 졸업생 105명(졸업생의 약 21%)을 포함하여 183명, 초등 특수교사 16명, 군 제대자 10명, 복직 20명, 정원감이 49명으로 278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104명 정도 부족 인원은 기간제 충원이 불가피합니다. 2003학년도는 수정된 계획에 의한 학급 증설 인원을 감안하면 105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대책으로는 단기적으로는 기간제 충원과 학급 증설 재조정 방안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춘천교대 신·편입생 정원 증원 노력, 현재 51명인 춘천교대 교육감 특별전형 인원 확대, 영동지역 대학에 초등교육과 신설 등의 방안을 들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근무여건을 개선하여 강원도 근무를 희망하게 하는 일이 최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PAGE BREAK]교원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는 교직 안정과 교육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시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인사는 실시하고 나면 다소의 불만은 있을 수 있습니다. 100% 만족하는 인사를 실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원의 전보·승진 인사는 인사권자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전보 순위, 승진서열 순위가 나와 있고,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거의 원칙에 의해 실시되고 있습니다. 공정을 기하고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준과 원칙이 명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능력이 우선되는 인사정책을 추진하여 일부 지역에 편향되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으며 인사규정이 자주 바뀌지 않고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육감 선거시 ‘교사들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생각하시는 교원 사기 앙양책은? 업무경감방안으로 현재 정원의 90%선인 교원을 100% 확보토록 하고, 소규모학교부터 사무보조원을 배치하며, 학교 종합관리 시스템제를 운영하고 공문서 일몰제를 추진하겠습니다. 교육청과 학교평가는 실적 위주의 평가가 아닌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평가로 전환시키며, 관리직 여교원 임용확대 및 현재 15.8%인 전문직 임용비율을 30%로 조속히 실시하는 등 교원이 가르치고, 연구하고,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재정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낮습니다. 재정확보를 위해 생각하시고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도는 타의에 의한 현안 사업 추진 등으로 부채가 너무 많으며(명퇴금만 약1,570억 원), 지방자치 단체의 재정자립도(전국 59.6%, 강원도 40% 미만)도 낮아 재정확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교육재정의 투자에서 낭비적인 요소와 비효율적인 지출을 과감히 줄이는 대신 교실수업개선을 위한 여건 개선에 집중 투자해야 하며,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재정 수요를 확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역특성상 소규모 학교가 많은 강원도의 경우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 문제는 도민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사안입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 주십시오. 우리 도의 실태를 감안할 때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통·폐합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간 통·폐합된 학교는 ’82년부터 2001년까지 학교 폐지 346교, 분교장 격하 217교, 통합운영 4교 등 567개교로 현재 운영되는 학교수와 거의 비슷한 학교가 통·폐합되었습니다. 통·폐합을 주장하는 당위성으로 교육 재정의 효율성, 복식수업 해소, 학생들의 사회성 신장 등을 들고 있으나, 산간벽지, 농·어촌, 광산지역이 많은 우리 도에서 일률적인 기준에 의한 통·폐합이 이뤄질 때 통학불편으로 인한 심적 고통, 시간낭비에 따른 학습지도, 인성지도의 문제점은 물론 지역 문화의 구심점 및 공동체의식의 상실로 지역의 낙후성을 면키 어렵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여 일률적인 통·폐합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 도의 실정에 맞는 자체 기준을 만들어 실시하되, 어떤 지역의 경우는 통·폐합을 희망하는 지역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동창회, 지역인사 등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 대부분 찬성할 때에만 통·폐합을 추진하겠습니다. 우리 도는 농·어촌 학교가 많으며, 농·어촌 학교의 대부분이 소규모학교이기 때문에 농·어촌 학교의 발전 없이는 강원교육의 발전도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농·어촌 학교의 특성을 살리는 소규모학교 종합발전계획을 즉시 수립하여 추진하겠습니다.[PAGE BREAK]고교평준화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전문가는 물론 학부모간에도 의견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으신가요? 그리고 보충·자율학습은 허용하실 건가요? 우리 도의 경우 '80년부터 춘천·원주시가 고교평준화제도를 실시하다가 공청회 및 설문조사 실시 후 '92년부터 선발고사제로 바뀌었습니다. 그 후 2000년부터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제도로 변경 시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23개 지역이 고교평준화 시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평준화와 비평준화 시책은 각각의 장·단점 등이 있으며, 찬·반 양론으로 주장들이 상이한 것으로 압니다. 그간 평준화·비평준화 정책을 다 해봤고, 평준화 해제정책 10여 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민감한 정책이라 가칭 ‘고교교육제도개선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한 후 깊이 연구하고,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겠습니다. 평준화 정책으로 바뀌는 경우에도 학교의 하향평준화를 막고 특기·적성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우선 마련하고 시행하겠습니다. 이는 올해부터 미국의 부시 행정부나 일본이 학력 저하 현상을 막기 위해 갖가지 시책들을 내놓고 있는 사례들을 볼 때, 우리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충·자율학습 실시 결정은 시·도 교육감에게 위임된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학부모, 교사를 포함한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도의 특성상 학교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경우 학습장소를 충분히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제도를 보완하여 희망자에 한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도·농간의 학력 격차가100점 만점 기준으로 중3의 경우 국어 3.3, 영어 8.3, 수학 9.6점의 차이가 나며, 고2의 경우는 국어 14.1, 영어 17.2, 수학 18.9점의 큰 차이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과외가 허용되고, 고액과외 가 일부 부유층 자녀들에게 만연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충·자율학습을 무조건 막는 것은 우리 도의 실정상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특히 농·어촌 자녀, 서민층 자녀들을 위해서는 더욱 어렵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교육감 선거방식에 대해 느끼신 점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현행 교육감 선거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모든 제도가 항상 실시해 보면서 개선 보완되게 마련입니다만 이번에 실시된 강원도교육감 선거도 몇 가지 문제점과 함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후보자를 알릴 수 있는 선거 기간이 너무 짧고, 방법도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기간을 늘리고 방법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로 지켜지기 매우 어려운 규제 조항들은 오히려 선거 범법자를 만들게 되므로 현실에 맞게 완화시켜야 합니다. 셋째로 여러 가지 부작용(후보자들 연대, 담합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종다제(1차 투표로 종료)를 실시해야 합니다. 앞으로 교육감으로서 교원단체간의 관계 정립도에 많은 신경을 쓰셔야 할텐데요? 한국교총과 전교조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같다고 봅니다. 결국은 학생들을 교육목적이 추구하는 대로 잘 가르치고 교육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교직 단체와의 협약을 통해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분명하게 결정하겠으며, 단체 협약으로 확정된 사항은 철저히 이행되도록 하겠습니다. 학교관리자로서의 경험도 많으신데, 학교경영 책임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할텐데요? 뭐니 뭐니 해도 교육에 대한 사랑과 의욕, 사명감이 있어야 하며,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확고한 자신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양이 끄는 사자 떼보다 사자가 끄는 양떼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는 영국 속담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교원들에게 특별하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아울러 학부모와 교육계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요즈음은 교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많이 얘기하는데 교권은 교원 스스로 찾아야 하며 스스로 찾는 교권의 전제 조건은 학생을 위한 사랑과 봉사가 뒤따라야 합니다. 아울러 이를 위해 학부모들께서도 더욱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울타리도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홍도는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115킬로미터 떨어진 섬이다. 홍도는 강릉-군산-목포-홍도를 비스듬히 잇고 있는 옥천지질대에 속해 있다. 옥천지질대는 4억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홍도는 다른 다도해 섬들에 비해 1억년이나 앞서 형성된 섬이다. 옥천지질대는 제4빙하기까지 내륙과 이어져 있다가 해수의 상승으로 지질대 일부가 잠수되면서 섬이 된 것이다. 홍도에 가까워지면서 섬들은 조금씩 홍조를 띠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바위들이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안은 거의가 해식애(바다절벽)로 되어 있다. 홍도 선착장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으로는 양산봉(231m) 기슭이 내려와 있고, 왼쪽으로는 깃대봉(367m)이 내려와 있다. 두 기슭이 만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홍조 띤 절벽에 난 향기 그윽한 홍도 선착장이 닿는 죽항은 빠돌해변에 조성된 작은 포구이다. 빠돌이란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닳고 닳아서 둥글어진 돌을 말한다. 보길도의 ‘깨돌’과는 달리 돌의 크기가 사람 머리통보다 더 크다. 선착장에서 올라가면 홍도관리사무소 앞에 열댓평 규모의 난 전시실이 있다. 대엽풍란, 풍란, 석곡, 새우난, 맥문동 등등 5백여 종의 홍도 자생란을 전시하고 있다. 홍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엽풍란은 ‘나도풍란’이라고도 하는데, 나무나 바위곁에 붙어서 자라는 상록성 여러해살이 난이다. 홍도의 자생난들은 한때 방목된 염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대로 잘 보전되고 있다. 마을에서 언덕길 끝에 당숲이 있다. 주변에 상록난대림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당숲은 신이 지켜주는 숲이다. 당숲 위로 올라가면 절벽 끝으로 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죽항 앞 바다에 떠 있는 남문바위도 손에 잡힐 듯하다. 당숲이 있는 양산봉 기슭과 골짝에는 남쪽 섬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흰 동백을 비롯하여 감탕나무, 광나무, 구실잣밤나무, 굴거리나무, 멀구슬나무, 모밀잣밤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 섬회양목, 육박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식나무, 사철나무, 다정큼나무 등등의 난대수종이 있다. 숲바닥에는 백량금, 장딸기, 겨울딸기, 석 곡, 석위, 풀고사리, 발풀고사리, 풍란, 나도풍란 등도 발견된다. 특히 원추리 군락은 초여름부터 몇 달간 경사진 풀밭을 물감 칠한 듯 뒤덮는다.[PAGE BREAK]상록난대림의 보고, 그리고 기기묘묘한 바위들… 선착장에 도착하면 등대로 오르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등산로를 타고 갔다가 언덕길로 내려오는 것이 이곳의 자연을 돌아보는 데 무난하다. 등산로에는 동백과 예덕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난대수종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예덕나무도 남쪽 바닷가에서 더 잘 자라는 나무이지만, 내륙으로는 내장산까지 올라가 자라고 있는 나무다. 숲터널 아래로 마삭덩굴, 콩짜개난, 백화등, 송악, 자금우, 갯머위, 맥문아재비, 맥문동, 보춘화 등등 늘푸른 난대식물이 눈에 띈다. 때맞춰 유채꽃도 만발해 있다. 음습진 바위틈에는 여러해살이 상록식물인 도깨비고비가 싱싱하다. 잎이 유난히 반들거리는데 이것은 강열한 햇볕을 반사하기 위함이다. 등대 주변의 소나무들은 거의가 해송 아닌 육송이다. 이것은 이 섬이 원래 육지의 일부분이었음을 말해 준다. 소나무의 생김새는 중부 내륙에서 흔히 관찰되는 우산솔을 많이 닮아있다. 줄기가 위로 곧장 자라지 않고 지상 3∼5미터 쯤에서 가지들이 마치 우산살처럼 펴진 소나무이다. 수령은 많지만, 키가 작은 것은 거센 바닷바람 때문일 것이다. 석촌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2시간 남짓이면 홍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홍도 본섬을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바위섬과 기암절벽들이 병졸처럼 둘러싸고 있다. 남문바위, 석화굴, 탑섬, 칼바위, 부부탑,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홍도 해안에는 크고 작은 3백여 개의 해식동굴과 해식단층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 십자동굴이 가장 크고 형태도 다양하다. 흑진주처럼 남성적 힘이 느껴지는 흑산도 흑산도는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89개로 이루어진 섬들의 공화국이다. 지질이 ‘흑진주’처럼 검게 빛난다고 해서 흑산도라고 이름 붙였다. 서쪽에 깃대봉(378m)이 있고, 북쪽에 상라산(227m), 남쪽에 선유봉(300m)이 있다. 그래서 홍도에 비해 듬직하니 남성적이다. 흑산도에는 2개의 큰 마을이 있다. 진리는 선착장이 있는 면소재지이며, 예리는 어업과 관광업을 주로 한다. 흑산도에도 논이 없다. 고구마, 보리, 콩 등을 심는 약간의 밭들이 바닷가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진리 부둣가에 배를 기다리는 관광객 몇몇이 바다에 낚시를 담그고 있다. 장난처럼 담근 낚시에 난류성 어류인 벤자리가 줄줄이 올라온다. 흑산도 해역은 국내 최대의 벤자리 서식처이다. 흑산도는 1990년대초에 섬 일주도로가 완공되었다. 먼저 찾아본 진리 바닷가에 유명한 초령목(招靈木)이 서 있다. 초령목은 이름 그대로 영혼을 불러온다는 수령 300 년의 노거수(老巨樹)이다. 천연기념물 369호로 지정된 초령목은 목련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아열대식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울릉도와 흑산도에만 각 1그루씩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창 무성했을 때는 높이가 20미터, 줄기 둘레가 3미터를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몇 해 전에 고사해서 말라 죽었다.[PAGE BREAK]초령목 아래 개울물에 도요새 몇 마리도 함께 먹이를 찾고 있다. 도요새과의 새들은 거의가 열대지방이나 남반구에서 올라오는 여름새들이다. 종류가 많아서 한국에만도 40여 종이 찾아온다. 쇠물닭 가족들도 개울의 갈대숲을 들락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다. 그동안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홍도와 흑산도 지역의 조류는 총 77 종이 조사되었다. 개체수로는 직박구리, 동박새, 괭이갈매기, 노랑눈썹솔새, 쑥새, 촉새, 박새, 휘파람새, 제비 순이다. 그 밖에 황로, 칼새, 가마우지, 흑로, 흑비둘기, 힝둥새, 바다직박구리 등은 초심자들에게도 쉽게 관찰된다. 길을 따라가면 처녀신을 모시는 처녀당 숲을 만난다. 풍랑을 만난 옹기배가 처녀신의 청을 받아들여 총각을 몰래 섬에 내려놓고 뭍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의 당숲에는 붉은 동백, 후박나무, 나도밤나무 등의 난대수들과 원추리, 갯머위, 청미래 덩굴, 찔레, 산딸기 등이 숲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처녀당 아래는 모래밭 해변이다. 모래의 입자가 먼지처럼 작고 부드럽다. 바위에는 눈알고둥, 비틀이고둥, 말미잘 등이 총총 붙어있다. 모래 바닥에 쏙과 게들의 구멍집이 나 있다. ‘바갈밭’에는 파래들이 마치 이끼처럼 파랗게 군락을 이루며 붙어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좋은 자연학습장이다. 모래톱에는 밀물 따라 들어왔다가 길을 잃은 어린 감성돔이 바닷새들에게 안쓰럽게 뜯기고 있다. 흑산도 하면 홍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홍어는 등짝 가운데 작은 가시비늘이 돋아나 있어서 가오리와 쉽게 구분되는데, 늦가을이면 북쪽에서 흑산도 해안으로 내려와 다음해 봄까지 머문다. 대하와 전어가 살이 올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으러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도시 아이들에겐 최고의 자연학습장 사리마을에는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유배를 살다간 적소가 있다. 송악과 담쟁이가 한데 어우러져 돌담장을 덮고 있다. 정약전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복성재에 머물며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한편 섬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우리 바다에서 살고 있는 각종 어류와 해조류에 관한 학술지로 평가받는 를 지었다. ‘자산’은 흑산도의 옛 이름이다. 책 내용 가운데는 뱀에 물린 데는 홍어껍질을 벗겨서 상처를 덮으면 낫는다, 소에게 산낙지를 먹이면 힘을 잘 쓴다는 등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함께 싣고 있어서 그의 실학적 애민사상을 엿보게 한다. 천촌리 마을 도로변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허비가 서 있다. 흑산도 지역의 숲은 윤기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눈에 많이 띈다. 후박, 동백, 송악, 까마귀쪽나무, 다정큼나무, 굴거리나무, 참식나무, 감탕나무, 돈나무…등등. 이름도 희귀한 까마귀쪽나무는 나무 높이 5미터 남짓한 상록활엽수 소교목으로 암수 딴 나무로 가을에 연노랑 꽃이 피고 열매는 이듬해 가을에 보랏빛으로 익는다. 나뭇잎이 반들거리는 것 말고는 까마귀의 이미지와는 별로 관계가 없어서 이름과 나무가 잘 연상되지 않는다. 흑산도에 오면 미국의 식물자원 수탈만행이 떠오른다. 지난 1985년 미국 농무성 산하 국립수목원채취단이 흑산도로 들어와 한국산 식물을 대량으로 반출해갔다. 당국의 허가 아래 우리 학자들의 안내를 받아 가면서 훔쳐(?)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진미석(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정보센터 소장) 최근 고등학생들이 자연계열을 기피하고 대학의 이공계열 진학률도 떨어지고 있어 정책당국자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여느 교육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따라서 한두 가지 성급한 단기정책방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기대나 처방을 경계하면서 이 현상의 본질을 분석하여 개선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공계열 기피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하나는 이공계열 인력의 양적 감소의 문제이다. 이공계열의 잠재인력이라 할 수 있는 수능고사의 자연계열 응시인원이나 고등학교 이과반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고등학생 연령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서 이공계열 진학률의 저하는 이공계열인력의 양적 규모의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곧 과학기술관련 산업분야의 인력난과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의 취업난이라는 인력수급 불균형의 심화를 가져온다. 두 번째는 이공계열 인력의 질적 저하 문제이다. 2002년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자연계열 학생들이 의과대학 등 실용학문으로 집중되고 있고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로 진학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의 우수한 인적 자원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서 OECD 각국에서 이 분야 우수인력의 양성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우수인력의 이공계열 기피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면 학생들의 이공계열 기피 현상의 기저에는 어떤 이유가 깔려 있을까?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회피하고자 하는 교육 내적 요인과 이공계열 전공자들의 장래 비전이 불투명하다는 교육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이 현상의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 내적·외적 방안이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참으면서 해야 한다’는 사회 규범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황에서, ‘왜 꼭 해야 하는지’ 하는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 자연계열을 기피한다. 수학과 과학 기피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수학과 과학의 의미와 재미를 알 수 있도록, 교수 방법과 내용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책당국자들이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을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공계열 출신들의 향후 진로와 관련된 문제는 정보의 부재로부터 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불안정한 진로라는 실제적인 측면이 병존하고 있다. [PAGE BREAK]IMF 직후 대졸자들의 취업률이 급감하면서 이공계열 역시 취업률이 상당히 저하되었고, 비교적 취업이 잘 되던 이공계열이었으므로 그 충격이 더욱 컸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공계열 기피현상에는 이와 같은 졸업 직후의 취업 문제보다는 장기적인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의·약학 분야는 장기적인 진로가 비교적 명확하게 보인다. 또한 인문사회계열 분야의 직업은 변화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지식과 기술의 발전 속도도 이공계열 만큼 급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공계열의 장래 직업비전을 더 불안하게 느끼도록 한다. 이공계열 전공자들의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기피현상은 이공계 출신들의 장래 진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안내를 통하여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고용환경에서는 어떤 직업이든 생애 내내 그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극히 어렵고 여러 번의 직업전환을 하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다른 전공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공계열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중년기에 다양하게 진로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학생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종합적인 직업연구를 통해 다양한 직업 경로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학교는 체계적인 진로지도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 한편, 이공계열 가운데, 특히 기초과학분야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임에도 방치해 둠으로써 취업난과 낮은 경제적인 대우라는 실제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기초과학에 관심이 있던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 물리나 생물을 전공하기보다 의과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좋은 연구환경과 높은 경제적 대우를 제공하는 국책연구소를 설치하고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각 대학이나 직업능력개발 관련기관들은 실제로 과학기술인력들이 장기적인 경력개발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교육이나 연수프로그램을 적극 제공하여야 한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개설한 공학과 MBA 전공과의 복합 과정이나, 미국 대학원들의 공학분야 전문직업인들에 대한 다양한 직무연수과정 운영 등은 좋은 참조 사례가 될 수 있다.
강인수(수원대 교육대학원장) 1. 머리말 교육활동의 행사로 소풍과 수학여행을 가게 될 때 학생의 안전사고나 학생간의 싸움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교외에서의 교육활동에는 교실내나 학교에서보다 학생지도나 보호·감독이 더 힘들게 된다. 그런데 교외에서의 교육활동 중이거나 휴식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교사의 보호·감독 의무를 인정해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그리고 교내에서라도 정규학습시간 시작 전의 자율학습 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교사가 보호·감독의무를 가지고,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들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졸업여행중 학생간 폭력사고에 대해 교사는 책임이 있는가 가. 문제와 사건 교육활동의 한 행사로 소풍과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 이 때 교사들은 교통안전과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에 많은 주의를 하고 고생을 하게 된다. 목적지까지 가고 오는 도중의 교통안전과 안전사고 방지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 단체로 고적답사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에도 평소보다 더 많은 주의를 하게 된다. 학생들은 일상의 학교를 벗어나 낯선 곳의 분위기에 기분이 들뜨기도 한다. 단체로 문화재, 공연, 자연경관 등을 즐기는 시간에는 물론 교사들이 지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단체로 하는 교육활동 외에 학생들의 개인 시간이나 휴식시간이 있다. 이 때에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이 아니고 한 학급만 해도 40여명이 넘으니 개인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이들을 모두 지켜보고 보호·지도하기란 어렵다. 특히 수학여행 중 숙소에서 휴식시간은 학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쉬거나 놀이를 할 수도 있고 숙소 주위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담임교사가 여러 방에 나누어진 학생들의 방을 모두 지킬 수 없는 시간이다. 이 때 숙소의 방에서 학생들끼리 싸우는 일이 있을 경우 다른 방에 있는 교사들은 연락을 받기 전에는 모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교사의 보호·감독 의무를 인정해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러한 사례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보기로 한다. 고등학교에서 고적답사를 겸한 졸업여행 중 숙소 내에서 휴식시간에 학생들 간에 폭력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한 학생이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교사의 보호·감독 의무를 인정할 것인지, 그렇다면 교사는 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인데 이러한 사건에서 교사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기로 한다. [PAGE BREAK]나. 법원의 판결 (1) 교사의 학생 보호·감독 의무의 범위 지방자치단체가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교사는 학생들을 보호·감독할 의무를 지는 것이지만 이러한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의무는 학교 내에서의 학생의 모든 생활관계에 미치는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그 의무범위 내의 생활관계라 하더라도 교육활동의 때, 장소, 가해자의 분별능력, 가해자의 성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기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예측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교사가 보호·감독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였다. (2) 이 사건의 판결 고적답사를 겸한 졸업여행 중 숙소 내에서 휴식시간에 학생들 사이의 폭력사고로 말미암아 한쪽 눈을 실명한 사안에서, 학교측의 안전교육이나 사전지시에 따르지 않고 돌발적으로 벌어진 사고로서 예측가능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1999.9.17. 선고, 99다23895 판결 ‘손해배상(기)’) 3. 자율학습 시간에 급우를 다치게 한 경우 교사의 책임 있나 가. 문제와 사건 정규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라도 교사는 출근 이후 교실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보호·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 학습시작 전에 반드시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을 보호·감독해야할 의무가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그 시간에 학생간의 사고나 시설물에 의한 안전사고가 발생하였다면 교사의 보호·감독 의무를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 및 손해배상범위가 문제가 된다. 이 사건은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한 학생이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에 교실에서 주인을 찾아주려는 마음에서 실과수업 교재인 아크릴판을 던지다가 잘못되어 다른 학생의 눈을 다치게 하였다. 이 사건에서 자율학습시간에 교사의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 인정 여부 그리고 6학년학생의 발달정도에 따른 판단능력 인정 여부 또한 손해배상 범위 등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보기로 한다. 나. 법원의 판결 (1) 사고 발생의 예측 가능성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의 교장이나 교사는 학생을 보호·감독할 의무를 지는 것이나 이러한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의무는 학교 내에서의 학생의 모든 생활관계에 미치는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에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한다. 그리고 그 의무의 범위 내의 생활관계라고 하더라도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또는 예측가능성(사고발생의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교장이나 교사는 보호·감독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할 것이다. 그 예측가능성에 대하여는 교육활동의 때, 장소, 가해자의 분별능력, 가해자의 성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기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PAGE BREAK](2) 이 사건의 판결 가해자와 피해자가 초등학교 6학년생들로서 비록 책임을 변식할 지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라면 대체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여 상당한 정도의 자율능력, 분별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가해자의 성격도 친구들과 잘 사귀고 책임감이 강한 학생이었으며 피해자와도 원만한 사이였고 이전에는 교실에서 학생들 사이에 아크릴판을 던지는 등의 장난 등은 없었던 경우,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이 장난 등 돌발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여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에 교실에서 주인을 찾아주려는 마음에서 실과수업교재인 아크릴판을 던지는 등으로 인하여 잘못되면, 신체에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는 위험한 행위를 하리라는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다거나 담임교사 등이 이를 예측하였거나 예측 가능하였다고 보여지지는 아니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돌발적이거나 우연한 사고에 대해서까지 교사 등에게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다(대법원 1997.6.27. 선고, 97다15258 판결 ‘손해배상(기)’ [공1997하, 2363]). 4. 맺는 말 위의 사건에서 고등학생의 졸업여행 중의 사건에서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의 사건에서 예측가능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초등학교의 교장이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는 학교 내에서의 학생의 모든 생활관계에 미치는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에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그 의무의 범위 내의 생활관계라고 하더라도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또는 예측가능성(사고발생의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교장이나 교사는 보호·감독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할 것이다. 그 예측가능성에 대하여는 교육활동의 때, 장소, 가해자의 분별·능력, 가해자의 성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기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은 그 연령수준에 맞는 분별,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교사의 예측 가능성을 판단하였다. 근래의 학교안전사고의 판결경향은 과거에 비해 교사의 예측가능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판결하여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에 상당한 배려가 되고 있다.
이의영(한국사립초등학교장회장, 서울경희초 교장) 사립초등학교는 건학이념과 특색 있는 교육으로 자율 학교로서의 자율적 발전을 해야 한다’ 교육부의 사립초에 거는 기대와 자율학교로서의 책무성에 대한 견해이다. IMF 이후 어려워진 학교재정의 일부라도 지원 받아 극복해 보려고 요청을 했을 때도, 또한 의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초에도 최소한 1인당 지원되는 학생 교육비의 지급을 요청했을 때도 재정지원이 불가하다면서 내린 교육행정 최고기관의 사립초에 대한 시각이다. 지원은 없고 규제만 심해 평준화 교육이 세계화 지식기반 사회인 21세기 인적자원 육성에 한계가 있다고 보아 자립형 사립고 육성에 길을 트고 있는 것도,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 책임하에 차별화·특성화 교육으로 다양한 인재양성을 기대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상당수 사립고가 자립형으로의 신청을 하였으나 엄격한 심사와 아직도 평준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태와 여론에 밀려 극히 소수만이 인가된 상태이다. 자립형이다 하면 신입생 선발권부터, 행·재정, 인사, 교육과정운영, 학사운영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지원과 간섭 없이 학교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지고 차별화된 교육을 인정함으로써 다양한 인재양성을 학교의 교육력으로 이룰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선진국 사립학교 육성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을 일부 조심스럽게 푼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자립형 학교에 대해서는 온갖 학교운영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국고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재정자립을 통하여 학교경영을 하여 경쟁력으로 학교발전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혜택(?)이 이미 사립초에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교육행정 최고위 부서의 견해다. 교육은 미래세대에게 ‘바르고 행복하게 살 힘’을 육성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의 가치관은 사람에 따라 가풍에 따라 다룰 수 있겠으며 목표지향도 수천 수만 가지일 것이다. 선진국의 사립초는 그 학부모들이 막대한 교육비를 납부하면서 자녀의 미래를 전문직, 관리직, 예술직 등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려는 것이 기대목표이다. 따라서 사립초의 건학이념 특수성, 교육비, 차별화된 교육내용 등에 세심한 검토와 검증을 거친 뒤 보내고 있으며 학교도 이러한 수요자의 욕구와 전통에 따라 학교수준의 교육과정으로 소신껏 학교경영에 전력을 기울이고 신뢰도와 특성화를 높인다. 정부에서도 가능한 지원을 할지언정 간섭과 규제는 거의 하지 않으며 다양한 인재육성을 위하여 힘쓰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전형권, 행·재정, 인사권, 교육과정, 학교의 특색교육, 영재교육, 월반제, 학사관리 등에 대한 권한은 기정사실화하고 학교의 발전여부도 경쟁력에 맡긴다. 우리 나라처럼 국고지원은 없으면서 규제만 하는 나라가 있을까? 말레이시아나 동남아시아에도 사립초에 대해 규제만 하는 나라는 없다. [PAGE BREAK] 학생 선발권 학교에 줘야 신입생 전형에서 추첨에 의한 방법은 어린 새싹들에게 사행심과 운수를 체험시킨다(교육법, 사립학교법, 시행법, 예규 어디에도 없는 1964년 군사독재정권 때 시작된 관행을 계속함). 사립초도 온갖 공문·보고서는 일반 공립학교와 똑같이 하고 있고 수시로 있는 지도장학·학사운영 규제, 시의원·교육의원 요구자료 제출, 학교발전기금 모금상황·사용내용 등을 분기별로 샅샅이 살핀다든지 하여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와 똑같이 감독하면서 거기에 정기감사도 시행하여 옥죄고 있다. 사립초는 법인에 회계사 자격자의 감사가 있어 감사를 받는데 이를 믿지 못한다. 학교운영이 어려워 사립학교 학부형도 교육세를 내고 있으니 조금 지원을 요청하면 사립초는 자율학교로 건학이념과 특수성에 맞게 교육하라고 자립형을 내세워 기각하면서 규제만 하니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21세기는 다양한 방면의 인재가 요청되는 시기이며 세계의 모든 국가 교육정책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나라도 자립형 사립고를 국책사업으로 점차 확산하려 하고 있다. 이제는 고형화되고 있는 교육의 틀을 과감히 깨고 개개 사람에게 맞추는 교육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미래지향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이다. 모든 학생들을 다같이 하향 평준화 시켜 보통 국민만을 양산하는 현 교육 규제를 과감히 떨쳐 버릴 때이다. 이런 일은 앞장 설 수 있는 교육기관이 현 초·중·고교에서는 자율형 운영을 권장 받고 있는 사립초가 앞장서서 건학이념에 맞는 학교발전을 이룩할 때이다. 사립초에서 수학시키려는 학생을 학교의 특성에 맞게 선발해야 하고 설립목적에 따라 종교중심교육·예능중심교육·인성발달 중심교육·영재교육 등 차별화되고 내실 있는 교육과정 구축, 투명하고 신뢰받는 학교상, 수요자중심의 교육활동 전개, 꾸준한 교수-학습 방법 개선, 학교경영자의 투철하고 확고한 교육철학과 교육관, 전 교직원이 합심하여 명문사립으로의 도약을 이룩하는 굳은 의지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은희(미 토마스 제퍼슨 초등학교 교사) 미국은 우리 나라처럼 임용고시를 통해 일괄적으로 교사를 뽑아 발령을 내지 않고, 일반 대기업 사원 채용처럼 인터뷰를 거쳐서 뽑게 된다. 그래서 교직과목 수업을 듣다 보면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인터뷰 당일날 옷차림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교수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필자도 신문에 난 ‘교사채용박람회(Teacher’s Job Fair)’ 광고를 보고 인터뷰에 임했다. 박람회 장소에 가면 각 학교들이 부스를 마련해 놓고 학교 이름을 멋있게 장식해서 붙여 놓은 후 인터뷰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교장과 비서(미국 학교에서는 사무적인 일들을 보조하는 비서가 따로 있다)가 앉아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러면 예비 교사들은 자신이 근무하고 싶은 학교에 가서 인터뷰를 한 후 교장이 채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교장도 자신이 맘에 드는 교사를 뽑을 수 있고 교사도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에 가게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학군이 좋은 학교는 교사가 몰리게 되고, 반대로 그렇지 않는 학교는 인터뷰를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골치를 앓을 때도 있다. 새 학년이 시작하기 직전인 6월에 대부분 박람회를 하게 되는데(미국 학교들은 8월 20일경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박람회 기회를 놓친 교사들은 교육청(School Board Office)에 이력서와 신청서(application)를 작성해서 제출해 놓으면 서류 심사를 거친 후 교사가 부족한 학교로부터 인터뷰 제안을 통해 교사가 되는 방법도 있다. 교직과목 이수 전에 자격시험 거쳐야 인터뷰를 해서 교사를 뽑는다고 해서 무조건 아무나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는 교대를 졸업하거나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나면, 무시험 전형으로 자격증이 주어지지만, 미국에서는 시험을 치뤄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자격증을 소지할 수 없다. 물론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나서 자격증 없이 교사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월급이 자격증 소지 교사의 절반 수준이고, 만약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신청서를 냈을 때는 여지없이 그만둬야 하는 실정이어서 자격증 없이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사자격증 취득시험을 통과하려고 한다. 미국 교육법에는 지원자 중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로 교직을 충당한 다음에 교사가 부족할 경우에만, 자격증은 없지만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교직과목을 이수한 사람에 한해서 채용을 하게 되어 있다. 단 채용된 후에는 일반 4년제 졸업생들은 의무적으로 교직과목을 이수하도록 한다. 또한 대학 내에서 아무나 교직과목을 이수할 수는 없다. 교직과목을 이수하기 전에 반드시 청각 테스트 및 기타 교사로서 필요한 테스트들을 통과한 후(이 부분은 한국과 같다), 프랙시스(PRAXIS)라고 불리는 시험 중 읽기, 쓰기, 수학(PPST:READING, PPST:WRITING, PPST:MATH) 시험을 통과해야만 교직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 이 시험들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수학에 관한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인데 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쓰기, 읽기, 셈하기 능력을 지닌 사람에 한해서만 교직과목을 이수하도록 함으로써 미연에 교사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다. [PAGE BREAK]PRAXIS(Professional Assessments for Begining Teachers)는 교육행정가, 중등교육자 등을 막론하고 교직에 관련된 모든 자격증에 관련된 시험을 일컫는 말이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기초 시험을 통과한 후, 교직과목을 이수한 다음 세 가지 시험을 더 통과해야 한다. 세 가지 시험은 초등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교수법 및 평가 등 교육학에 관한 시험, 교육심리 및 교수법의 적용에 관한 시험을 말하는데, 교육학에 관한 시험(Elementary Education:Curriculum, Instruction, and Assessment)은 2시간에 걸쳐 110개의 객관식 문제가 주어진다. 초등 교육과정에 대한 시험(Elem Ed:Content Area Exercises)은 4개의 주관식 문제를 주어 한 문제 당 30분 안에 교육학 지식을 어떻게 현장에 적용해 낼 것인지를 답하는 문제들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법의 적용 및 실제에 관한 시험(Principles of Learning and Teaching:K-6)은 45개의 객관식과 6개의 주관식 문제로 전문직으로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윤리 및 지식, 학생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도 방법, 교육 매체 이용방법, 교육 자료, 교육환경 등 보다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질문들을 답하는 시험이다. 이 모든 시험들을 각 주마다 제시하는 일정 점수를 넘긴 후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로 신청서와 함께 보내면 교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각 주마다 요구하는 점수가 각각 다르고, 한 주에서 받은 자격증은 다른 주로 가면 인정하지 않아 만약 다른 주로 이주할 경우에는 그 주에서 지정한 대학에서 몇 과목을 이수해야만 그 주의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교사가 되니 어찌 보면 우리 나라보다 훨씬 복잡하고 교사들이 더 전문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봉급은 주(州)마다 천차만별 하지만 여기서 우리 나라 교육의 장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은 각 주(州)마다 월급이 틀리고 한 주 안에서도 각 시, 지역구마다 월급이 다르다. 각 지역에서 거둬지는 세금에 따라 예산이 책정되므로 교육에 투자하는 교육비도 다르게 되어서 30분이나 1시간 정도 운전하고 가면 교사 월급이 연 2∼3만 달러 차이가 나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지역에서는 벌써 올해의 목표를 100% 교사자격증을 갖춘 교사로 고용하기로 세웠다. 하지만 결국은 바로 옆에 있는 시에서 전근하는 교사들이 생겨나게 되고 급료 차이가 나는 만큼 자격증이 있는 교사들은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당연히 옮겨간다.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결국 어떤 지역은 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지역구에서 올해 연 5000달러의 인상폭이 있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급료가 동결된 지역구는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45%에 머문 반면,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자격증 소지 교사는 95%를 넘어섰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위한 자격증 소지자만 해서 65%에 육박했다.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고,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가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한국 사람들 못지 않게 좋은 선생님, 좋은 학교를 찾아서 이사하는 맹모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교육예산은 5∼10%가 정부예산(Federal Funds), 44∼55%는 각 주의 소비세, 소득세, 물품세, 담배 소비세, 부가가치세 등 주예산(State Funds)으로 충당되며, 나머지 40∼50%가 각 지역의 재산세로 구성되기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이다. 아무리 우리 나라 교육조건이 열악하다고는 하지만 교사의 질이나 교육 조건이 미국보다는 평등하며 월등하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물론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세금을 많이 거둬들인 주는 거의 완벽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부시행정부가 상당히 골치를 썩고 있는 부분이 바로 교사의 질과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PAGE BREAK] 발령 2년 뒤 평가 통과해야 ‘진짜’ 교사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시험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2년 뒤에 있을 교사평가(Interstate New Teacher Assessment and Support Consortium)에서 합격을 해야만 교사로서 인정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 평가에서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하면 교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래서 새내기 교사들에게는 이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대신 교사의 전문성을 높여주는데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대신 이 평가는 교사 일생에 단 한 번이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성년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처음 교사가 되고 나면 1년 동안은 수습 기간으로 일정 기간 연수를 받은 지도교사(Mentor)가 새내기 교사를 도와준다. 그리고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을 포함하여, 다른 학교의 교장이나 경력이 있는 교사 등 3인으로 구성된 지도팀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 1년 동안은 수업을 수시로 관찰하고 새내기 교사와 수업에 관해 회의를 하는 등 적어도 1년에 4번 이상의 지도를 받게 된다. 1년의 지도 기간이 끝나게 되면 2년째 되는 해에는 평가를 받게 된다. 다시 3인으로 구성된 팀이 짜여지는데, 이 팀에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배제된다. 그리고 1년 동안의 평가를 바탕으로 2년을 다 보내고 난 후에 평가서가 작성된다. 평가되는 항목은 총 10개이다. 즉 교사가 적절한 교수매체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으며 수업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교실환경은 긍정적인 학습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적절한지 ■주어진 수업시간에 이동하는 시간이나 수업 준비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학습에 투자된 시간이 최대화되는지 ■학생들의 행동지도는 잘 되고 있으며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서 적절한 행동지도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맞게 지도하고 있는지 ■학생들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하는지 ■적절한 평가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며 피드백이 제때에 잘 주어지는지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주변 동료교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고 있는지 ■학교의 의사결정사항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지역사회, 학부모, 그리고 동료교사와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 평가를 받게 된다. 최소 4년 지나야 종신재직권 취득 이 평가를 통과하고 나면 이제 교사들은 종신재직권(Tenure)을 얻기 위해 준비한다. 종신 재직권이 없는 교사들은 매년 새로운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 9개월 단위로 매년 새로 계약을 해야 하는데 종신재직권이 없는 교사들은 수습교사로서 일한다고(Probationary Teaching Period)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행정가와 지역사회에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2년에서 4년이 지나고 교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종신재직권이 주어지는데 한 번 받게 되면 평생 동안 유효하게 된다. 종신재직권을 받은 교사는 한 번 사인된 계약서로 평생 동안 근무하게 된다. 종신재직권은 월급을 적게 주고 경험이 적은 교사들을 고용할 수 있는 병폐에서 교사들을 보호하며, 안정된 직업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으며, 종신재직권을 받은 후에야 교사들은 해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안정된 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종신재직권을 얻는 과정에서 새내기 교사의 40% 이상이 교직을 떠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바로 전문성을 갖춘 교사-이 충족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김삼웅(성균관대 겸임교수) 히틀러의 제3제국 수립 나치(NAZIS)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을 통칭한다. 나치즘은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화된 반(反)유대주의, 백색인종 지상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및 반사회주의와 반민주주의를 기초로 해 발생하여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독일 제3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나치즘의 중심이론은 독일민족 지상주의와 인종론이었다. 여기에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과 유대민족의 열등성이 대비되었다. 게르만 민족은 인류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배할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가장 열등하고 해악적인 인종은 유대 종족으로, 그들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악성은 개선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유대종족은 항상 주위 환경을 부패시키거나 또는 해악을 만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우수한 민족은 그들의 열악성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또는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념적·정치적 배경에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오랜 음모 끝에 마침내 독일공화국 총리에 지명되었다. 권력을 장악하게 된 히틀러는 의회 방화사건을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반대당을 탄압하면서 총선거를 통해 만든 전권수임법으로 강력한 1인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는 복수정당제를 폐지하여 일당독재를 확립하고 히틀러 유겐트, 나치부인단 등 전국민을 대중조직으로 묶었다. 여기에 반항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강제수용소에 감금하거나 처형하였다. 게르만 민족지상주의를 제창하면서 유대인의 공민권, 나중에는 영업권마저 박탈하고 이들을 강제수용소에 수감하였다가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치독일에는 300개가 넘는 강제수용소와 그 지소가 있었다. 확인된 것만 해도 3만35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정치범으로 처형되고, 600만 명의 유대인과 수십만 명의 집시, 독일 각지의 병원에서 이송되어 온 10만 명 이상 환자, 330만 명의 소련인 포로, 유럽 피점령 지역의 주민 수백만 명이 살해되었다.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1944년 11월까지 9413명의 장교와 병사가 처형되었다. 민간인의 경우 적어도 40만 명의 독일인이 나치정권 12년 동안 ‘합법적’으로 살해되었다. 사형 이외에 같은 기간에 22만50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자유로운 예술과 학문, 언론이 소멸되고 사회 전체가 병영국가, 감옥과 학살장으로 전락하였다. ‘대독일’ 건설의 명분으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이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 나중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전부를 병합하였다. 이어서 폴란드를 침입하는 등 게르만 민족에 의한 동유럽 정복을 꾀하여 광적인 학살극을 자행하면서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류를 전화(戰禍)에 몰아넣었다. 히틀러는 나치체제의 버팀목으로 친위대(SS)를 조직하고, 비밀경찰을 강화하여 각계 각층의 모든 국민을 감시토록 거미줄처럼 엮었다. 뿌리깊은 증오의 대상이 된 유대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까지 닥치는 대로 강제수용소에 수감하여 혹독한 고문과 살육을 저질렀다. 교회, 군대, 학교, 노동조합을 나치 조직으로 획일화시키고 일반 국민도 히틀러 신봉자로 만들었다. [PAGE BREAK]히틀러의 광적인 독재와 이웃 나라 침략을 비판해 온 학생, 지식인과 종교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운동이 전개되고 학생들과 종교지도자 등 각계에서 히틀러 제거운동이 계획되었다. 그러나 암살계획이 폭로되면서 수많은 학생지도자와 기독교인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처형당하였다. 나치에 저항하는 많은 지식인이 해외로 탈출하거나 망명하였다. “레지스탕스 정신은 반항적 기질과 이상주의의 혼합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반파시스트 지하운동에 가담한 남녀들은 모멸적 권위에 대항하여 자존을 지키고, 공포와 폭력에 항거하여 양심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싸웠다. 특히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레지스탕스는 정치에 도덕적 차원을 부여해 주는 체험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승산 없는 전투를 위해 자기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희생토록 유도하였다. 그들의 이상으로부터 공동의 노력이 우러나왔으며, ‘경쟁심, 치졸함, 모략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하고 우애 있게 단결된 협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 (『지식인과 저항』, 제임스 D, 윈킨스) 망명길 오른 일급 지식인들 히틀러의 파시스트 독재가 심화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국외로 탈출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우리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말 것이다”라는 칼 츠마이어의 말대로 국외로 망명한 지식인들은 국외 반나치 운동의 중심이 되고 국제적인 연대를 형성하였다. 나치 선전상 괴펠스가 “나는 그들을 지구의 끝까지 쫓아가 근절시키고야 말 것이다”라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망명가들은 게슈타포의 마수를 피해가면서 나치 패망 때까지 개인적으로 또는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히틀러와 싸웠다. 1933년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지식인들의 국외 망명은 학자, 언론인 1300여 명, 문학, 예술가 800여 명으로 2000여 명이 연구실과 서재, 교회를 뒤로 하고 국외로 빠져나갔다. 프라하, 취리히, 암스테르담, 스톡홀름, 파리, 런던, 뉴욕, 멕시코, 모스크바 등 세계 각지가 망명지로 선택되었다. 망명자들의 성향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4그룹으로 나눠진다. ①그룹은 자유주의자들로서 프랑스, 영국, 스위스, 미국, 남미에 망명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전후 서독으로 귀환하였다. ②그룹은 사회주의 계열로서 모스크바에 망명하고 전후 동독으로 귀환하였다. ③그룹은 유대계 출신으로 전후 이스라엘에 정주하고 ④그룹은 국내에 잔류하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여 이른바 ‘국내 망명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양심과 지성에 충실하고자 국외 망명길에 나선 이들은 가난과 질병, 굴욕과 소외감을 감수하면서 반나치 투쟁에 온몸을 던졌다. 가장 참혹한 경우는 ‘국내 망명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비밀경찰의 감시와 이웃의 밀고, 강제수용소, 집필금지 등 극한 상황이 주어졌다. 붙잡히면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저항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스위스로 망명한 슈테판 게오르게는 임종에 앞서 “나치 독일에는 나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근대 독일시의 성좌라 불리는 슈테판의 임종 소식에 나치 선전상 괴펠스가 국장(國葬)을 제의했지만 측근들은 끝내 거절했다. 슈테판의 사례에서 망명가들의 의지를 살필 수 있다. 대부분이 일급 지식인들인 이들의 망명으로 나치 독일의 학문세계는 황폐화되었다. 학자적 양심을 가진 교수들의 다수가 대학에서 추방되거나 망명객이 되고, 당대의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15명의 시인, 작가 중 11명이 국외 망명길을 떠났다. 남아 있던 4명 중 1명도 강제수용소에 수감됨으로써 독일문학계는 황폐화되었다. 정치학계의 경우 중진 학자 18명이 망명하여 나치독일의 정치학계는 종전을 맞을 때까지 그야말로 황무지 상태였다. 대표적인 국외 망명가 중에는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탈출하여 영국에 이어 미국으로 망명한 F. 노이만, 망명지 브라질에서 자살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빈 상징파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 아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교수직에서 추방되어 망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 등이 독일의 일급 지식인들이었다. 프로이트, 훗셀, M 셀러, 아인슈타인, E 블로흐, K 레비트,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포이, 히방거, E 윙거, L 렌, H 아렌트 등 독일의 세계적인 학자들이 고국을 떠나 망명객이 되었다. 지식인뿐만이 아니었다. 히틀러의 암살 사건으로 가족과 함께 체포돼 악명높은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된 반나치 활동의 중심인물 육군대장 G 할터와 같은 무반(武班)도 나치독일의 고국을 떠났다. [PAGE BREAK]이들과는 달리 저명한 철학자로서 나치에 협력한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기회주의 지식인도 적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치 당원이었던 하이데거는 프라이르그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나치 계획을 실현시키고자 학생들을 동원했다.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그 대학생들을 이끌고 투표장에 나가 “독일민족이 하나가 되고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위하여 총통에게 투표할 것”을 역설했다. 그는 히틀러의 학살정책에 대해 비판은커녕 일체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하는 어용지식인이었다. 하이데거는 당정책에 대한 이견과 바덴주 문부성과의 불화관계로 취임 1년여 만인 1934년 2월 총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하지만 수많은 지식인이 망명하고 국내 반나치 전선에서 싸울 때 ‘소극적’ 이나마 히틀러를 지지하고 ‘침묵’함으로써 지식인의 역할을 외면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전후 독일사회에서 크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물샐 틈 없는 정보정치와 폭압 통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나치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멈춰지지 않았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3년 동안에 확인된 것만도 5425건의 정치적 재판, 즉 반나치 활동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2만883명의 피고에 대해서 연 3만979년에 이르는 징역 내지 금고형이 선고되었다. 1936년에는 1만1687명의 공산당원과 1374명의 사회민주당원이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고, 1937년에는 공산당원 8068명, 사회민주당원 733명이 체포되었다. 나치체제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집단인 수많은 카톨릭과 기독교인이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지거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유대인 과학자로서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은 A 아인슈타인은 전후에 나치 시대 저항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겼다. “나치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나는 자유의 애호자로서 자유의 옹호를 먼저 대학에 기대하였다. 대학은 언제나 진리에의 헌신을 스스로 자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학은 곧 침묵하였다. 그래서 나는 신문의 위대한 편집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불같은 사설들은 지나간 날에 그들의 자유에의 정열을 힘차게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대학처럼 침묵하였다. 오직 교회만이 진리를 탄압하는 히틀러의 싸움터에 결연히 일어섰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교회에 대하여 큰 애착과 찬미를 느낀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지적· 도덕적 자유의 옹호에 용기와 끈기로 싸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므로 내가 과거에 멸시하던 존재를 지금은 솔직히 찬미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다.” 반나치 운동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토마스 만, 본 회퍼, 브레히트의 저항과 수난의 역정을 살펴서 당시 독일지식인들의 고난상을 돌이켜본다. 토마스 만의 저항과 고난 토마스 만(1875~1955)은 형 하인리히 만과 장남 클라우스 만도 모두 작가인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부덴브로크가(家)의 사람들」, 「마의 산」 등 명작으로 널리 알려지고, 1929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일찍부터 나치의 대두를 위험시하고 ‘이성의 호소’ 등 정치적 강연과 평론을 통해 독일시민들에게 위기를 호소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 국외강연 여행길에서 그대로 망명객이 되어 스위스에 머물렀다. 1936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국적을 얻고 반나치 투쟁의 작품을 발표하자 히틀러 정부는 독일국적과 국내재산을 몰수하고 본 대학 철학과에서 받은 명예박사 칭호까지 박탈해 버렸다. 만은 여기에 대항하여 반파시즘 기관지 「척도(尺度)와 가치」를 발행하고, 1939년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초빙교수로 초청받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0년부터 1945년 5월까지 BBC방송을 통해 독일국민에게 히틀러 타도를 호소하는 반나치 정기방송을 계속하는 집념을 보였다. [PAGE BREAK]본 대학이 박사학위를 취소하자 이 대학에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나는 순교자이기보다는 오히려 대변자이기를 원한다”면서 정신적인 망명 독일의 대변자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1934년 미국을 처음 방문하여 이듬해 하버드 대학이 아인슈타인과 함께 박사학위를 수여하여 조국이 빼앗은 학위를 미국에서 되찾았다. 이때 루즈벨트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망명생활중에도 작품활동을 계속하여 「바이마르의 롯데」, 「요셉과 그의 형제들」, 「독일과 독일인」, 「파우스트 박사」 등 대작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히 「파우스트 박사」는 예술성으로나 사상적으로 나치를 증오하고 히틀러 정권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집필한 명작으로 꼽힌다. 나치스 패망 후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하면서 1955년 8월 12일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죽기 전 분단된 조국에 대해 “나에게는 동서독 간의 분계선이 없다. 내가 찾은 것은 서독도 아니고 동독도 아니다. 오직 독일 땅, 한 덩어리의 독일 땅이 나에게는 있을 뿐이다”라고 절규했다. 본 회퍼의 저항과 고난 디트리히 본 회퍼(1906~1945)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히틀러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신학자이다. “만일 미친 사람이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나 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동차에 뛰어올라 미친 사람으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하지 않겠는가?” 본 회퍼가 독재에 저항하는 지식인의 행동원리를 제시한 말이다. 베를린 대학 신학부에서 수학하고 당시 교수들로부터 ‘천재적 신학청년’의 평가를 들었던 본 회퍼는 히틀러가 집권한 다음날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서 히틀러는 국민을 잘못된 길로 오도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원리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적 지도자를 우상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권력의 광신자가 된 히틀러는 교회까지도 나치체제에 편입시키려 들었다. 육군 군목 출신의 루드비히 뮐러를 통해 제3제국의 감독이 지배하는 하나의 제국교회를 시도한 것이다. 나치는 이를 위해 ‘신앙운동 독일기독교인’을 결성하여 복음주의교회를 파괴하고자 하였다. 독일의 기독교는 뮐러의 수중에 들어가고 “국가사회주의 정신이 곧 교회의 정신이며 국가사회주의라는 의지를 교회의 의지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정부의 교회일체화’ 공작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본 회퍼를 비롯한 독일교회에서는 히틀러의 광적인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다. 저항의 중심에 선 본 회퍼는 고백교회에 속한 목사로서 반나치 투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저항운동 틈틈이 저술활동도 계속하였다. 「기독교 윤리」는 이렇게 하여 집필한 저서이다. 본 회퍼는 ‘미친 운전사’를 차에서 끌어내리고자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하였다가 1943년 4월 5일 게슈타포(비밀경찰)에게 체포되고 베를린에 있는 터겔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2년여 동안 각처의 강제수용소를 전전하는 옥중생활을 하다가 나치가 패망하기 직전 1945년 4월 9일 베를린의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게슈타포 장관의 직접명령으로 39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PAGE BREAK] 브레히트의 저항과 고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뮌헨 대학 시절부터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은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뮌헨과 베를린을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모든 문학장르에 걸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여 독일의 당대 최고 작가로 문명을 떨쳤다. 1933년 부인, 아들과 함께 체코의 프라하로 피난, 이때부터 12개국이 넘는 나라를 떠도는 15년간의 망명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치는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시작으로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자유주의적인 문인, 지식인, 언론인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켜서 많은 문인, 학자를 체포했다. 브레히트는 히틀러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시 「죽은 병사의 전설」을 발표하여 나치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브레히트가 망명한 후 나치 당국은 그의 모든 책을 공개리에 소각했다. 나치의 분서광란은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 히틀러가 집권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일간지 나치타우스가베가 1933년 4월 26일 분서대상의 서적 목록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서적의 ‘불온성’을 가늠하는 명단이 나돌았다. 이 해 5월 10일 전국의 대학도시에서 브레히트의 작품을 포함하여 수많은 저명 작가와 학자들의 저서가 소각되었다. 1935년 망명지 파리에서 ‘진실을 쓸 때의 다섯 가지 어려움’을 발표, 이 글이 ‘응급조치를 위한 실천지침’이란 위장된 제목으로 독일에 반입되어 유포되면서 나치 당국은 브레히트의 국적을 박탈했다. 미국에서 나치 패망 때까지 저항하다가 1948년 10월 서독으로 귀국하려고 하였으나 연합군 당국이 미군 점령지 독일에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동베를린으로 가게 되었다. 15년에 걸친 기나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극단 베를린 앙상블을 창단하고 동베를린에 전용극장을 마련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1956년 8월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다. 건강이 점차 나빠져 죽음을 예감하기 시작한 그는 “내가 죽거든 사체는 전시하지 말고 장례식에서는 조사가 없기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브레히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동독 당국은 장례식을 호화롭게 거행했으며 독재자 울브리히트도 참석하여 거창한 조사(弔辭)를 읽었다. 동서독의 출판인들은 분단시절부터 브레히트의 전집을 준비하여 통일 후 30여 권이 넘는 전집을 공동 출판하여 그의 문학적·정신사적 업적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