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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강원도교육청은 평창고, 영월 옥동중, 철원 내대초교 등 3개교의 초빙교장을 공모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실시되는 초빙교장 공모는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운영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도내 3개교를 비롯해 전국 51개교에 대해 교장자격증이 없는 교사나 외부전문가를 초빙해 학교를 운영토록 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응모자격은 만 58세 이하의 초.중등 교장 자격증을 소지한 교육공무원만 지원할 수 있으며 다음달 5일까지 해당 학교에 '교장초빙 공모제 희망서'를 제출하면 된다. 초빙교장은 각 학교운영위원회의 1차 심사와 도교육청의 2차 심의를 통해 최종 선정되며 9월 1일자로 임용된다. 강원도교육청은 임용된 초빙교장에게 교사 50%를 초빙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행.재정적 지원과 학교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할 예정이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는 올 9월부터 51개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내년 3월과 9월까지 3단계에 걸쳐 모두 150개교로 시범학교를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보 ▲정책홍보관리실장 鄭永宣(퇴직) ▲교육인적자원연수원장 金王福(") ▲정책홍보관리실장 朴景載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柳宣圭 ▲대학지원국장 黃寅哲 ▲재정기획관 邊昌律 ▲경기도 부교육감 金華鎭 ▲교육인적자원연수원장 任承彬 ▲교육인적자원부(국가균형발전위원회) 禹承求 ▲대구광역시 부교육감 尹龍植 ▲강원대학교 사무국장 李相範 ▲제주대학교 사무국장 李鍾奉 ▲교육인적자원부(바른역사정립기획단) 李起龍 ▲평가지원과장 金圭泰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행정본부장 李宗南 ▲금오공과대학교 총무과장 金翼秀 ▲대학구조개혁팀장 任昶彬 ▲감사총괄담당관 李成熙 ▲민원조사담당관 全喜斗 ▲기획감사담당관 河守鎬 ▲법무규제개혁팀장 承隆培 ▲정책상황팀장 孔炳永 ▲교육단체지원과장 朴杓鎭 ▲교원평가추진팀장 朴柱澔 ▲교육복지정책과장 尹仁載 ▲정책조정과장 林俊熙 ▲사립대학지원과장 丁炳杰 ▲울산국립대건설추진단 韓承一 ▲지식정보기반과장 柳正燮 ▲국제교육협력과장 徐裕美 ▲NURI 추진팀장 丘然熙 ▲국제교육진흥원 李桂英 ▲교육인적자원부 吳碩煥 崔仁燁 柳雄相 崔銀姬 ▲제주도교육청 金錫均 ▲경북대학교 金炳圭 ▲서울대학교 趙泳畿 ▲전남대학교 행정관리단장 邊光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李萬熙 ▲강릉대학교 朴容範 ▲강원대학교 李鍾哲 ▲경북대학교 孫大植 ▲군산대학교 朴商俊 ▲목포대학교 金三銓 ▲부경대학교 權鶴滿 ▲부산대학교 李啓周 ▲전북대학교 金大圭 ▲감사관실 金大成 ▲정책홍보관리실 李皇源 ▲대학지원국 金煥植 ▲인적자원정책국 廉基成 蔡在恩 ▲군산대학교 柳殷鍾 ▲부산대학교 姜大洋 ▲대구교육대학교 총무과장 權 正榮 ▲원주대학 총무과장 金徹雲 ▲부산광역시교육청 崔成有 ◇4급 승진 ▲경북대학교 朱達植 ▲목포대학교 田在善 ▲부산대학교 李相哲 ▲전남대학교 李龍彩 ▲목포대학교 趙廷綱 ▲제주대학교 高祺澤 ▲한국해양대학교 趙光晧 李午 宰 ▲감사관실 金應澈
교육인적자원부는 29일 주5일 수업제에 대비하고 사회변화상을 반영한 새로운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내년 2월 개정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정시안에 대해 3천700여개 일선 학교의 현장 적합성 검토를 거쳐 보완작업 중이다. 교육부는 또 재정경제부 등 33개 기관이 참여하는 '교육과정발전협의회'를 개최, 각 부처가 제출한 의견을 교육과정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특히 한부모 가정, 입양자녀 가장 등 다양한 가족모습을 소개하고 사회 약자 및 소수자의 관점을 고려한 내용이 교육과정에 반영되고 저학년부터 점진적인 인권교육도 도입된다. 또 우리 조상의 이름으로 명명된 행성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서울시 교육위원회 교육위원의 연봉이 5천40만 원으로 결정됐다. 서울시의회는 29일 열린 제30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서울시 교육위원회 교육위원의 의정활동비 등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심의, 교육위원의 연봉을 이같이 정했다. 교육위원의 연봉은 종전에는 2천460만원이었으나 지방의원이 유급화되면서 교육위원의 급여 역시 지방의원 보수를 준용토록 한 지방교육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이같이 인상됐다. 시교육위는 당초 서울시의원과 똑같은 수준인 연봉 6천804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연간 회기일수와 선출 방식 등의 차이를 들어 5천40만원으로 낮춰 결정했다. 이는 연간 의정활동비 1천800만원에 매달 월정수당을 270만원으로 정한데 따른 액수다. 교육위원의 회기일수가 60일로 지방의원(120일)의 절반에 불과하고 주민 직선이 아닌 학교운영위원회에 의한 간선으로 뽑히기 때문에 서울시 의원의 연봉과 차등을 뒀다고 시의회 관계자가 밝혔다. 시의회 관계자는 "상임위에서는 월정수당을 297만 원으로 하는 안건이 상정됐으나 부두완 의원 등이 270만 원으로 줄이는 안건을 수정 발의해 최종 가결됐다"고 말했다. 시의회는 이날 또 겨울철에 눈이 내릴 경우 시민들이 자기 집 앞 눈을 치우도록 하는 '서울시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건물 소유자가 실제 거주하는 건물의 경우 소유자-점유자-관리자 순으로, 소유자가 거주하지 않는 경우 점유자-관리자-소유자 순으로 제설 책임을 지게 된다. 제설 범위는 보도의 경우 건축물의 대지에 접한 구간 전체를, 이면도로나 보행자 전용도로의 경우 건축물 출입구나 대지경계선에서부터 1m까지로 정해졌다. 눈이 낮에 내리다 그치면 그친 때부터 4시간 이내, 밤에 왔을 때는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치워야 한다. 다만 하루 적설량이 10㎝를 넘을 때는 그친 때부터 24시간 이내로 완화된다. 시장이 갖고 있는 버스 차고지 이적지의 도시계획시설 해제 권한을 구청장에게 위임하기로 해 논란을 빚었던 안건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사활을 걸고 통과시키려던 사학법 재개정안과 로스쿨법이 결국 9월 정기국회로 함께 넘어갈 전망이다. 개방이사 추천 주체를 학교운영위원회(또는 대학평의원회)로 명시한 조항에 ‘등’자 하나를 넣어 추천주체를 넓히자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여당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사학법 재개정과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의 일괄 타결을 주장해 온 한나라당은 여당이 추진한 로스쿨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 인해 사실상 2008년 3월 개교는 불가능하게 됐다. 또 교육부에 복수차관을 두는 인적자원개발기본법도 9월로 미뤄지게 됐다. 6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사학법 재개정 논의보다는 감사원이 발표한 사학특감 결과를 놓고 설전만을 거듭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 논의를 봉쇄하려는 ‘정치적 기획감사’라고 비난했고, 여당은 사학비리를 보다 강도 높게 근절해야 한다며 사학법 고수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나라당은 “2000여 사학을 감사한 결과 검찰에 고발된 사학은 22개로 전체의 1%에 불과하다”며 “어느 조직에도 있을 1%의 문제를 전체 사학의 비리로 비화시켜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3월부터 시작된 감사의 발표시기에 대해서도 “감사원 감사는 보통 현지실사 등을 거쳐 6개월 정도 뒤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이번에는 감사위원회의 의결도 거치지 사학법 재개정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서둘러 중간발표를 했다”며 “감사원은 여당의 총대를 메고 있느냐”고 비난했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감사 대상 124개 사학의 73%인 90개 사학에서 교비횡령, 리베이트 수수, 교직원 채용비리 등 250여건의 문제가 적발됐고 이 중 범죄혐의가 있는 7개 대학, 15개 중고교, 4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며 “이처럼 심각한 사학비리를 놓고 1% 밖에 안 되다느니, 청와대를 감사하면 더 심할 것이라느니 하는 발언은 심각한 진실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여당은 “사학비리의 몸통인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이를 축소하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우리 반 승현이와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인터넷 매체에 올렸다가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엄청난 댓글에 쏟아지던 비난과 격려, 누리꾼들끼리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오히려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3월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 아이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으로 병원에 가기도 하고 두드러기까지 발병한 요즈음이다. 적지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체벌을 범죄시 했던 나의 교육관을 송두리째 뿌리뽑게 만든 그 아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내 생애의 아이'임에 분명하다. 4권의 교단일기를 쓰며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일상을 참 감사하게 살아왔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거라는 자부심으로 아이들만을 보고 살아온 내 삶속에서 교실을 빼놓으면 남는 게 별로 없을만큼. 나를 거쳐간 어떤 아이들에 비해 유별난 아이를 만나 날마다 홍역을 치르는 일상을 보낸지 벌써 4개월째이다. 아직도 그 아이는 뛰고 달리고 친구를 때리며 소리지르고 울며 안하무인이다. 칭찬 스티커를 사용하며 달래기도 하고 좋은 말로 꾸지람도 해보지만 순간에 그치고 다시 반복하는 아이. 일분만 교실을 비워도 금세 난리를 피워서 친구들과 싸우고 때리던 모습은 조금 나아진 요즈음이다. 아무리 1학년이라고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달라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다반사이니, 제대로 수업을 진행시키는 것조차 힘들다. 특히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몇분도 그리지 못하고 색칠을 엉망으로 하거나 하기 싫어서 짜증을 부리며 옆 친구들을 괴롭히곤 한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점심을 먹는 시간까지도 속을 썩인다. 1시간이 다 되도록 식판을 비우지 못하고 물컵만 괴롭히며 음식투정이다. 그렇다고 그 아이만 봐주면 다른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니 날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점심 시간마저도 밥맛을 잃을 정도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칭찬과 꾸중, 벌주기와 격려하기를 반복하던 일상이 바뀐 것은 녀석이 수학 책을 밟으며 내게 반항하는 순간 나도 지지 않고 책을 찢어버린 일이 발생한 후부터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인 녀석은 깊이 생각하거나 문장을 차분히 읽지 않고 대충 흘린다. 늘 먼저 시작하고 틀려서 고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틀리거나 고치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그 아이의 글자를 지도하기 위해 우리 반에서는 국어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글씨를 예쁘게 쓰면 200점을 주고 있다. 보너스로 100점을 더 주는 것이니 그 시간만이라도 글씨를 더 잘 써보려고 지우개를 자주 쓰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찢은 일이 생긴 후부터 녀석은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것 같다. 좋은 말로 타이르던 선생님이 아니란 걸 안 모양이다. 내게 친절하기도 하고 곁에 다가오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침에 등교하고서도 아침독서를 하고 있으면 얼른 들어오지 않고 쭈뼛거리며 망설이던 오늘 아침의 모습. 다른 때 같으면 등교하면 온 교실을 시끄럽게 하는 아이라서 조용히 독서를 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난폭한 행동이 줄어든 오늘 모습을 보니 선생님에게 대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그 아이와 나 사이에도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기를 빌어보는 밤이다. 나는 이제 그 아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나를 성숙시키려 한다. 그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제자이기때문이다. 끝없이 인내하며 긴호흡으로 한발 늦춰서 그에게 다가서리라.
아동은 국가의 미래이다. 아동의 교육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동은 어머니인 여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 중요하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국가가 부모에게 국가를 위해 키워줄 것을 당부하느라 돈도 주고, 태어날 때 주치의도 제공하고, 보모까지 나와 새내기 부모가 갓난쟁이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고,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다. 사실 여성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조차도 중산층의 가정에서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일보다 가정을 택하는 일이 많다. 내가 가본 유치원에서는 엄마들이 직장이 없는 전업주부가 많았으며 아이들도 두 명 , 혹은 세 명으로 자녀의 수가 내 생각보다 많아서 나는 내 동료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보통 자녀가 두 명이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세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꽤 많았다. 내가 본 미국의 유치원은 1세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2세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1세 교육은 두 가지로 행해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전업주부인 엄마가 1세 자녀를 유치원에 데리고 와서 새내기 엄마가 어떻게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지를 유아교육 trainer가 교육하는 즉 부모연수이며,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1세 걸음마기 영아를 교육하며 돌보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이러한 1세아 교육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프랑스의 유치원 교사는 대학원 수준의 전문가 훈련을 받는다. 엄마처럼 푸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2세의 경우도 글자와 수에 관심두게 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 속의 벌레를 이용한 글자와 수교육, 미술, 음악 및 체육 활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아주 이상하다. 초등학교는 유치원보다 높고,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높고, 고등학교는 대학교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가르칠 수 있다는 의식이 있는 듯이 보인다. 자리가 높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보는 아주 이상한 의식이 선진국이 되는 길을 꽉꽉 틀어막고 있다. 루앙대학의 김박사님에 의하면 프랑스는 교사들을 유치원 professor, 초등 professor, 중등 professor, 대학 professor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각각의 영역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각 분야의 대가를 키운다. 아이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 어떻게 아이만 똑 떨어트려 교육할 수 있는 것인가? 영유아교육의 중요한 부분은 부모교육이다. 즉 성인교육이다. 교육프로그램에는 아이는 전혀 다루지 않고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머니가 바로 서야 집안이 바로 되고, 아이가 바로 된다는 이론이다. 저소득층 가족일수록 세상에 대한 자신감은 없고, 비정상적, 비생산적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하루벌이에 파김치가 되었더라도 세상살이에 융통성있는 어머니부터 대상으로 삼아 교육자가 교재, 교구를 가지고 찾아가서 자녀를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번은 어머니가 자녀가 되고, 한번은 역할을 바꾸어 어머니가 교사가 된다. 이렇게 훈련된 어머니가 자녀를 가르치게 한다. 엄마의 유식함에 아이는 엄마를 달리보게 되고, 아이를 가르치는 동안 엄마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비록 아빠가 술을 먹고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자신감이 있는 엄마는 대항할 힘을 얻는다. 마주하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제압을 하게 된다. 자신감이 생기면 달라질 것이다. 밝아진 엄마로 인해 가정이 환해지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바꾸어 놓았던 운동이 ‘지탁연’이었다. 지역사회 탁아소 연합회. 1988년 여름에 나는 그 사무실에 가보았다. 사실 나도 내 출세를 하겠다고 아이를 버려두고 세상 밖으로 돌아다녀 내 아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하고 후회를 하는 날들이 있다. 똑똑한 체 하며 세상의 흐름을 비웃다가 더 클 수 있는 아이의 앞날을 막지는 않았는지 미안함으로 가슴이 저미는 날들이 있다. 사회에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을지라도 내 아이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지 않았는지, 나 자신 집안일보다는 바깥일에 더 적성이 맞다고 할지라도 내 아이의 입장에 서면 집에서 아이들만 바라보는 엄마가 더 부러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도 능력을 펼 수 있고, 아이도 엄마, 아빠의 향기를 맡으며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동과 그 가족에서 생각해보면 유치원이니 어린이집이니 하는 명칭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에 맞는 유아시설’이 필요할 것이다. 저출산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공들여 키운 세월이 더 많은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도 중요하다.
2학년 O반 5교시 영어시간. 오랜만에 교실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로 활기가 넘친다. 사실 지난주까지 교실은 몇 명의 아이들이 강원도 도민체전 강릉시 대표로 참가한 탓에 썰렁하기까지 했다. 며칠만에 나타난 아이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며칠 동안의 수업결손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자칫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조금은 마음을 추슬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훈화라도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도민 체전에 참가한 아이들 중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유난히 학급에서 몸집이 큰 탓일까. 씨름 선수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녀석이었다. 하여 모교의 명예를 높였기에 기특하기도 하였다. 우선 은메달을 딴 것에 축하를 해주고 난 뒤 손을 든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래,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니?” “선생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무슨 시간을 말이니?” “제가 저희 반 아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이야기인데 그러니?” “사실 이번 도민체전에 다녀오고 난 뒤 느낀 바가 있습니다. 그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난 뒤 다소 의구심이 생겼다. 평소 교실 뒤에 앉아 자주 졸던 녀석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녀석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이야기를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워낙 덩치가 큰 녀석이라 교단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하물며 녀석은 마치 전쟁에서이기고 돌아온 개선 장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교탁 앞에 선 녀석은 헛기침을 몇 번하고 난 뒤, 시합에서 은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였다. 어찌나 이야기를 잘 하던지 마치 시합을 직접 보는 것과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매 시합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가 진지해지기까지 했다. 녀석은 10분에 걸쳐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힘들지 않는 일이 없는 것 같더라.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공부만큼 쉬운 것은 정말이지 없다는 것을 이번 시합을 통해 알게 되었어. 그러니 우리 공부 열심히 하자.” 그 아이의 말이 끝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교실은 숙연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부에 별 관심이 없던 녀석의 입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말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그 녀석의 말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무조건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어떤 계기(동기유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녀석이 아이들 앞에서 한 약속을 잘 지킬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녀석이 도민체전에서 은메달보다 더 값진 것을 얻어 왔다는 사실에 후한 점수를 주고싶은 마음뿐이다.
고등학교에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지 벌써 3년째 접어들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은 학습자 중심을 기본으로 한 수준별·선택형 교육과정에 있다. 고등학교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과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1(10학년)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을, 고2와 고3은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도교육청별, 학교별 선택 교과를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수준별·선택형 중심의 교육과정, 그리고 학생들의 선택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는 것과 학생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점이 이전의 교육과정과 다른 부분이다. 피상적으로만 판단한다면 7차 교육과정은 이전 교육과정에 비해 상당히 학생 중심으로 편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이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교육과정상의 과목 시수와 편성을 따져보면 금방 드러난다. 우선 기존 예체능 과목 시수가 이전 교육과정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체육은 1학년에서 4단위, 음악과 미술은 각각 2단위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선택 중심으로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 음악과 미술, 체육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마치면 2, 3학년에서는 거의 교육과정에 편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명색이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하지만 수능을 앞두고 있는 2, 3학년에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을 편성하는 것은 사실상 학생들 수능 점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극히 현실적인 발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 편성이 특정 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에 묵시적으로 확대, 실시되고 있다. 또한 각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들은 학부모나 학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수능에 무게중심을 두게 된다. 물론 학생들의 선택 과목에 대한 기본적인 선호 조사는 무시되거나 실시되지 않는 경우가 예사이다. 그렇다 보니, 교사 수급과 학생들의 전인 교육에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다. 본교에서는 1학년에서 체육을 매주 2시간씩 하고, 이후 2, 3학년에는 체육 과목이 아예 빠져 있다. 1학년 두 반을 일주일에 각각 2시간씩 4시간을 수업하고 나면 체육 선생님 수업은 끝난다. 법정 시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할 수 없이 체육 선생님이 음악이나 미술 과목, 그리고 여타 과목을 맡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물론 선생님들끼리 서로 모자라는 과목 시수나 넘치는 시수를 보충해 주기 위해 학교를 이동해 수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학교간에 서로 조건이 맞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극히 드문 경우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대부분 농·어촌 학교에 만연되어 있고, 도시 인문계 고등학교 역시 두말할 필요 없다. 이런 문제점이 이미 학생들 피부에도 와 닿는지, 본교 일부 2, 3학년 학생들은 “선생님 우린 왜 체육 시간이 없어요! 열심히 운동도 하고 뛰어다녀야 공부도 잘 되는데, 체육 시간이 없으니 공부할 맛도 안나요!”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또 “선생님 우리도 노래도 부르고 조각이나 판화 같은 것도 좀 해요. 맨 날 비디오나 영화 보려니 짜증나고 지겨워요” 하는 불만들이 여기 저기서 흘러나온다. 당연히 미술 시간이나 음악 시간에 부득이하게 체육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하니, 자연히 그 수업은 말 그대로 자유방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다른 수업 시간에 체육 활동을 대신해 달라고 교무실에 와서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들의 요구에 못 이긴 일부 선생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수업을 할애해 학생들이 뛰어 다니는 모습을 운동장 한 구석에 서서 우두커니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이상적인 교육 과정의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애당초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전에 교과 편성과 교사 수급 문제를 고려해 넣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수능과 주요 과목에만 집중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노래 부르며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차단되어 버린 교육과정을 누가 과연 학습자 중심의 이상적인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잔인한 5월이 지나갔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여 교사와 학생이 모두 떠나 학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스승과 교직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보자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경찰의 날’에 경찰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을 생각하듯이 ‘스승의 날’에도 교사들에 대해 일년에 한번쯤만이라도 왜곡된 시각이 아닌 호의적인 관심을 가져보는 날 정도로만 생각해도 족하겠다는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촌지 문제가 사라지기는커녕 언론에서는 오히려 이날이 마치 ‘선물이나 촌지 따위를 주고받는 날이었음’으로 더 왜곡되게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함으로써 교직사회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5월이면 때 맞춰 붕괴된 공교육, 촌지나 바라고 성추행이나 일삼는 교사 등 해묵은 이야기를 들춰내 교직에 대한 질타를 빼놓지 않을 터였는데 스스로 학교 문까지 닫았으니 ‘오죽했으면 학교 문을 닫겠느냐’는 교육현실에 대한 암울함까지 비춰져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날로 두고두고 기록될 것이다. 유네스코가 1994년 ‘세계 스승의 날’로 선포한 10월 5일을 현재 100여 개국이 기념하고 있건만 스승의 날에 정작 사제가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해 놓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이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안을 국회에 제출한데 이어 서울시교육청이 스승의 날 변경에 관한 TF팀을 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스승의 날을 교원단체나 정부, 국회도 아닌 교육청에서 빗나간 세태에 동조하는 것이 어이없고 주제 넘는 얘기일뿐더러 그 논의 자체가 불쾌하다. 터놓고 얘기해 보자. 기원을 따져보면 스승의 날은 스승들이 “나를 기념하라!” 하며 만든 게 아니다. 뜻있는 몇몇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소박하게 시작한 날이건만 오늘날 많은 교사들이 이 날에는 오히려 즐거움보다는 착잡함과 압박감을 느끼며 현실의 아픔으로 무겁게 침묵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니 이런 스승의 날이라면 날짜나 명칭을 변경하기보다는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제간의 정을 주고받으며 스승의 은혜를 기리자는 데 날짜와 명칭을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차피 본질이 변질된 기념일을 겨울방학인 12월 말이나 2월 종업식 전으로 바꾼다고 해서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불신감이 사라질 리도 없을뿐더러 여론 또한 말이 많을 것이 뻔하다. 더구나 ‘교사의 날’이 ‘스승의 날’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면 편향된 시각에 의하여 좋은 교사, 훌륭한 스승은 잘 알려지지 않고 일부의 문제 교사만 부각되어 교직사회 전체를 왜곡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일부 정치권이나 여론에 의하여 스승을 낯 뜨겁게 하고 욕보이는 날이 되었다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칭을 바꾸는 것도, 날짜를 옮기는 것도 다 부질없다. 생각을 바꾸면 간단하다. 스승의 날이 없어진다고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있다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이런 일로 맞대응하는 것도 지쳤다. 더 이상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 요즘 신문지상을 가장 어지럽히는 인물이 전 청와대부속실장 장학로씨이다. 난 그 기사를 읽으면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한가지의 일이 있다. 소위 말해 떡값이라는 말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몰라도 장학로씨에게는 30,000,000원이 떡값이란다. 떡값이라는 본래의 말의 뜻대로 라면, 떡을 사먹은 값인데 아마도 사람의 평생에 30,000,000원 어치의 떡을 먹고사는 사람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본래의 뜻이 아닌 떡값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지만 그 떡값(인사치레로 주는 돈)이 30,000,000 원쯤은 괜찮다는 논리는 너무하지 않는가 싶다. 30,000,000원은 요즘 공무원의 봉급으로 치면 적어도 30년 이상은 봉직한 한심한(이렇게 한번의 인사 치레에 드는 비용을 일년 내내 고생해도 마련하지 못하는 나 같은 못난) 월급장이에게 주어지는 년 봉 보다 더 많은 돈이다. 그런데, 이 정도는 떡값이라고 해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같은 서민은 억울해서 살맛이 나겠는가 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장관급은 몇억 정도는 떡값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고, 시장군수(구청장) 정도라면 아마도 10,000,000 원 정도는 떡값으로 인정을 해주어야 하며, 면(동)장이라면 몇 백 만원을, 이런 식으로 계급에 따라서 기준을 정해서 부정한 돈을 받아도 괜찮은 급수라도 정하자는 말인지 아니면 지금도 그런 기준이 있다는 말인지 ? 그렇다면 해마다 [사정이다][윗물 맑기다] 하면서 떠든 것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 연말만 되면 피라미라고 칭하는 하급 공무원 몇 사람의 비리를 대서특필하여서 사회의 공적으로 몰아 부친 것은 쑈였단 말인가 ? 3월 학기초만 되면 학부형의 촌지(기껏해야 몇 만원 : 어딘가 물 좋은 곳에서는 몇 십 만원도 있다지만)가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 것은 장학로씨의 떡값에 비한다면 과연 그렇게 지탄을 받을만한 일이었을까 ? 아무리 법이 높은 분들에게만은 관대하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은 것은 엄연히 범법이면 범법이지 어떻게 떡값은 괜찮고, 관행이니까 괜찮다고 해서 보아준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범법이 되는 것일까 ?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부정한 짓을 해온 사람들은 정말로 생산현장이나, 일선 현업 부서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이렇게 특정계층,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게 우리 나라의 병(한국병)이 아니었을까 ? 우리가 지금 보아온 5,6공의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의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 특히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강탈했던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부정과 부패의 모습을 역력히 보았고, 요즘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처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귀 영화를 한꺼번에 모두 다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욕심이 재앙을 불러오고야 만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싶다. 인간의 욕심이 한이 없고 끝이 없다고 하지만, 그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바로 그 욕심에 말려 드디어는 폐가망신의 길을 가고 마는 요즘의 여러 사람의 모습을 되새겨 볼만하지 않을까 ? 그런 면에서 우리는 고위직이니까 어느 정도의 부정은 인정하려는 [떡값]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한번 생각 해보고 서민들의 기를 죽이는 수 천 만원이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인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9.11.19.04:45'] 위의 글은 이미10여 년 전에 써서 인터넷 동아일보에 기고를 했던 글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기준이 정해진 모양이다. 교사들은 10만원이면 해임의 기준이 된단다. 그것도 기업에서 돈을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아서 차 떼기를 했던 당의 의원님께서 발의를 해서 이루어진 일이란다. 참으로 지나가던 개가 웃다못해 미쳐버릴 일이다. 자기들은 차 떼기를 해도 [당의 헌금]이라고 우기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을 치던 사람들이 교사라는 약하디 약한 집단, 콩나물처럼 햇빛이 비치면 푸르러지고 말고, 햇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이리 굽어지고, 저리 굽어지는 연하고 물렁한 집단을 짓이기려고 덤비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어느 집단에서는 교감을 없애고, 교장 공모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전문직이라는 교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인가? 의사도 공모를 통해 모집하여 병원장을 시킬 수 있는가? 변호사를 공모할 수 있으며, 외부 인사를 모셔다가 변호사 회장을 시킬 수 있는가? 엄연히 전문직이라고 국가에서 직렬상 분류를 해놓은 전문인 집단이다. 그렇다면 전문직이라는 말은 왜 하나? 월급을 계산 할 때는 인원이 많고 전문직이니까 안 된다고 하면서, 쥐꼬리만큼 올리고는 하였었다. 30년 봉직한 교사가 겨우 승진한 것이 교감이라는 자리이다. 그러나 교감은 직무수당이란 것이 교사와 별반 다름이 없고 소위 판공비라는 것도 없다. 일반직의 경우 적어도 15년 내외를 근무하여 과장 정도로 승급을 하면 직책에 따라 판공비가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교직에서는 30년 동안 근무하여도 교감 승진이란 기회도 없애고, 마지막 승진의 자리인 교장이 되는 것도 외부인사를 공모하여서 그 자리를 채우고 점점 줄여서 그 기회마저 줄이고 없애려고 한다면 교사란 젊은 시절에 약 20여 년쯤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떠나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갈 희망도 없고 승진의 기회도 없는 교직에서 머무르면서, 늙은 교사는 무능하고 쓸데없는 인간 취급을 받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더럽고 치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이 들면 스스로 물러나라는 말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교직에 찬물을 끼얹고 교직을 깔아뭉개면서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공교육을 살리는 길이 지금 그들이 하는 짓거리로 된다는 말인가? 결코 촌지를 받는 교사를 옹호하고 감싸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현직에 근무하면서도 자신 있게 촌지를 요구하여 말썽을 부리는 교사가 있다면, 다른 교사까지 싸잡아 욕 먹이지 말고 그 교사를 고발하여 내 쫓도록 공개하라고 주장하였었다. 그렇지만, 10만원 이상 촌지를 받으면 해임 사유가 된다고 하면, 모든 공무원들에게 그런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꼭 교사에게만 이런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국가청렴위원회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교사들이 10만원이상 받으면 해임 기준이 된다면, 당연히 다른 공무원들도 그렇게 적용을 하여서 모든 공무원은 10만원 이상의 촌지나 대가성의 돈을 받은 경우 해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를 청렴하게 만드는 일이요.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은 일이다, 특히 이번에 이런 안건을 제출했던 국회의원나리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만들어서 들이대야 한다. 자기들은 정치자금법에 5만원이상 기부행위도 범법으로 했다면 정치인은 5만원이상만 받아도 불법이며 범법행위로 처벌을 받아야한다. 그렇게 해야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소릴 안 듣게 될 것이다. 공천 헌금으로 몇 억 원을 받아도 정치자금이니, 당 헌금이니 해서 아무리 많이 받아도 괜찮고, 교사만 안 된다는 것은 엄연히 차별이며 교직에 근무하는 40만 교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치사한 양반들이 자기들이 지역구나 어디든지 5만원이상을 내면 정치 자금법인가 하는 것에 걸리게 만들어서, 단 돈 5만원도 내 놓으려하지 않으면서, 받을 때는 차 떼기를 하자는 사람들에게 먼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그들의 부정부패부터 막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국민들의 말없는 다수가 과연 정치인들과 교사 중에 어느 집단이 촌지 문제에 있어서 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를 한 번 조사라도 해봤으면 싶다. 과연 모든 교사들이 촌지에 자유스럽지 못해서 그렇게 언론의 집단포화를 맞아야 하고, 다른 공무원이나 언론 종사자들은 깨끗하여서 문제가 없기에, 국회의원 나리께서 친히 교사들만을 걱정하시게 만들었을까? 교총은 당연코 앞장을 서서 이것을 따지고 분명히 항의하며 모든 공무원이 아닌 교사만을 부패집단으로 모는 행위에 대해서 집단 소송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명색 우리 교육자의 대표라고 하여 국회에 진출해 있는 전임 회장 출신 이군현의원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의지나 뜻을 밝히고, 단연코 앞장을 서서 또 다른 입법으로 교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입법으로 교직 전체를 부패집단으로 모는 행위에 대한 대체 입법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당장 앞장을 서지 않으면 그의 직능대표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불신임이라도 표해야 한다.
오늘 저녁 '야자'시간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내일은 놀토인데다가 스위스와의 경기 자체가 승패를 떠나 신나는 볼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녁시간도 좀 즐거워리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1학년 '야자'감독을 하시는 네 분 선생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서 너무나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학생들로부터, 학부모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낭패를 당하고 봉변을 당하다니! 오늘 기간제 음악선생님께서 수행평가를 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점수를 공개했는데 나중에 보니 채점시에 한 학생의 결시로 인해 점수를 잘못 기재한 것을 알고는 다시 수정해서 불러줬더니 처음보다 점수가 낮은 학생 5,6명이 와서 교무실 골마루에서 선생님에게 찾아와 눈을 부릅뜨고 팔짱을 끼고서는 내 점수가 적게 나왔는데 왜 그런지 증거를 대라, 평가기준이 뭐냐고 따지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평가기준이 있다. 내가 성악전공자다. 정확하게 채점했으니 그리 알고 돌아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더랍니다. 심지어는 나도 선생님만큼 평가할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개는 나보다 더 노래를 못 불렀는데 왜 나보다 점수가 높느냐?고 따지더랍니다. 착하고 순진한 선생님은 학생들의 항변에 꼼짝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떨기만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옆에 지켜보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할 수 없이 수행평가는 선생님의 고유영역이다. 정확하게 채점했다고 하니 그리 이해하고 가도록 했답니다. 이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그 선생님에게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재시험을 치게 해서 평가기준을 설명한 뒤에 노래를 부르게 해서 일일이 녹음하고 조목조목마다 너는 이 부분에서 이러하니까 몇 점, 이 부분은 이러하니까 몇 점, 이런 식으로 해서 불평이 없도록 하라고 일러주곤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 한 선생님은 몇 주 전에 야자시간에 수업에 사용할 실험도구를 준비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지구과학실로 갔더니 저학력 학생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엉겁결에 문을 열고 들어가 수업하는 걸 보고 너희들 수업 마칠 때까지 내가 밖에서 기다릴까, 아래층에 빈 교실이 있으니 그리고 옮길까? 하니 삐딱하게 앉아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학생이 때를 만났다는 듯이 선생님에게 달려들더라는 것입니다. 열을 내가면서 따발총 쏘듯이 무엇,무엇라고 하면서 쉴 새도 없이 선생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퍼붓더라는 것입니다. 왜 수업시간에 방해를 놓느냐는 것이죠. 옆에 있는 학생들도 미안해 어쩔 줄 모르고 수업하시던 선생님도 어쩔 줄 모르고 지구과학선생님은 당황해서 내가 잘못했다 너희들 수업 마칠 때까지 내가 밖에서 기다릴까 아래층에 빈 교실이 있으니 그리고 옮길래? 라고 화를 내지 않고 저자세로 말하고는 나오니까 자기들이 아래층으로 옮기더라는 것입니다. 장소도 사전에 자기에게 말하지도 않고 과학부장에게만 허락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 중인데 이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고 들어가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낭패를 당하고 봉변을 당하게 되었더라는 겁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으면 그냥 살짝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두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고 봉변을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정말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요즘 학생들이 이 정도로 선생님도 모르고, 윗사람도 모릅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을 알기로 우습게 압니다. 한 선생님께서 자기반 학생이 집에 일이 있어 조퇴를 하려고 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담임 누구라고 하니까 대뜸 하시는 말씀이 ‘뭐요, 빨리 말하소. 바쁘요.’ ‘애가 집에 일이 있어 조퇴를 하려고 하는데 보내도 되겠습니까?’ 하니 ‘집에 보내소.’라고 하더랍니다. 이렇게 담임을 황당하게 만들고 무안을 주더랍니다. 선생님은 수모를 당한 느낌이라 불쾌하더라고 하네요. 또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게 ‘다른 선생님들은 매일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지도를 하는데 왜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답니다. ‘나는 내 당번 때가 되면 10시까지 남아서 지도한다. 나도 부장되면 매일 남아서 지도할 거다’라고 이야기를 해줬다고 하네요. 또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게 ‘선생님, 왜 경비아저씨를 세워 단속을 합니까?’ 선생님은 ‘이 지역은 우범지역이니까 경비아저씨가 지켜야 불량배들을 막을 수 있지.’라고 이야기를 해주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학생들은 시시콜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선생님에게 달려들고 항의하고 따지고 얼굴을 붉히고 무례한 행동을 하고 난폭해집니다. 학부모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때에 수난의 시대를 잘 헤쳐 나가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음악, 지구과학 두 선생님처럼 본의 아니지만 사소한 실수로 인해 공격을 당하고 봉변을 당하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 선생님들은 말과 행동, 업무처리까지 꼼꼼하게 빈틈없이 처리하고 행동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도에 지나칠 정도로 얼빠진 행동을 하더라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설득하며 교육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악선생님, 지구과학선생님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되면 자칫 잘못하면 학생에게 감정적으로 구타를 할 수 있고, 폭언과 폭행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죽이고 행동을 자제하며 차분하게 논리적인 말로 학생들을 감화시키고 감동시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선생님들 힘듭니다. 힘 잃지 마시고 용기 가지셔야 합니다.
예전과 시대가 달라져 논밭이 중요한 시대는 가고 머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갈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바로 지식 정보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날이 갈수록 교육의 중요성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면 학부보는 학교교육과 교사를 신뢰하는 정도가 낮아지고 교사들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접은 채 원망스러운 현실에 염증을 느껴 교단을 떠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학생은 학교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될 수 없으며 교사는 시간을 채우는데 급급한 원맨쇼를 하기 싶다. 또, 아이들은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등 점점 생활은 황폐화의 길을 가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요즈음은 월드컵 열기로 온 세상이 떠들썩 하다. 이 화려한 싸움에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고 유소년 스포츠를 통하여 축구를 즐긴 학생들이 유명한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열광의 이면에 있는 체육교육을 뻬고는 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화려한 골 장면만 보지 말고 체육교육이 어떤 수준에 있는가를 눈여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믿고 뜨거운 열정과 인간관계를 성숙시키는 과목은 역시 체육과목이 아닐런지? 고대 역사 이래 여러 교과목들이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만들어지고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체육만은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아이들은 뜨거운 태양아래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 힘들면 그만 두자고 하면 선생님도 이에 못이겨 그만 두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 아닐런지. 이제 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웰빙 바람이 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아무리 증대되어도 기본적인 학교 체육의 바탕이 없이는 다 헛수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일본 초등 학생의 체육 실기의 충실을 도모하기 위해, 사가미하라시 교육위원회는 수업의 진행 방법이나 해설을 정리한 교사용 지도서를 작성해, 시내 65개 모든 초등학교에 배부하였다. 초등학교에서는 체육 실기 교과서가 없어서 작년 봄에는 초등 학생 전용의 체육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시가 독자적으로 교과서와 지도서를 작성하는 예는 드물다. 새롭게 작성된 지도서는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용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실천편, 이론편 등 3부 구성으로 편집되어 있다. 실천편에서는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구체적인 실기를 이미지 하기 쉽게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등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연습 방법이나 지원 방법 등을 나타낸 학습 자료도 게재되고 있다. 지식 교육 편중이 되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기초가 되는 체력의 저하, 인간 관계의 희박화 등은 오늘날 일본의 교육 현장이 안고 있는 큰 과제이다.시 교육위원회는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하여 체력 만들기나 배려의 마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체육을 통하여 완수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체육 교과서와 지도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땀난다고 그늘진 곳에서 쉬고 있을 때 일본 아이들은 뜨거운 태양아래 구슬 땀을 흘린다. 이러한 모습은 학교 정규수업이 끝난 일본 학교의 현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제 각 지역에서,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미래를 짊어질 수 있도록 성장하고 있는가를 유심히 지켜 볼 일이다.
최근에 교육부 일환으로 각급 학교 도서관 꾸미기가 한창이다. 기존에 있던 도서관을 최신식의 정보기기와 장서를 구비해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존의 있던 우리 초중고 학교의 도서관은 대부분이 책을 보관하는 장소이거나 혹은 학생들이 교과 공부를 하는 독서실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등학교로 올라 갈수록 도서관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대부분이 독서실 대용이거나 혹은 일명 특수반 아이들의 공부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올해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도서관을 새롭게 정비하게 되었다. 예전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의자와 책상, 그리고 철 지난 옛날 책들만이 먼지가 쌓인 채 꽂혀 있었다. 공간 리모델링에서부터 장서 구입, 그리고 정보 기기 구입까지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데 무려 몇 개월 시간이 소요되었다.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완성시킨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공간과 장서를 구입하고 나서 문제는 발생했다. 학교 도서관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사용 용도를 두고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도서관 담당자로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도서관은 당연히 우리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자 쉼터인데, 따로 도서관의 용도에 대해 회의를 하자고 하니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싶어 심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우리 도서관을 몇몇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뽑아 특수반 정독실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정독실 위주’의 공부 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적지 않이 혼란스러웠다. 또한 도서관 담당자로 몇 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우리 모두의 공간을 몇몇 아이들의 정독실 위주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의 학습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사유공간으로 집중한다면 과연 도서관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지 의문입니다.” “선생님의 의견도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학습 능력의 상승과 그에 동반한 일류 대학에의 진학입니다. 이것 이외에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학습 능력 신장과 일류 대학에의 진학’이라는 말에 그만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학생의 대학 진학입니다. 학부모들도 모두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같이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이 특히 중요합니다. 학생 모집을 위해서도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곳이 몇몇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특히 이번 사업의 취지는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인데, 단순히 입시 공부를 위한 장소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두고 선생님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만약에 아이들의 위한 공부방으로 도서관을 주로 사용한다면 여타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책을 보며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힘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자유로운 사색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토론과 독서도 그들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우리 아이들도 다 압니다. 대학진학을 빼고 뭐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물론 몇몇 아이들이 도서관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에 괴리감도 생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대학을 가느냐 가지 못하는 냐의 문제입니다.” “좋은 대학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도서관을 자유롭게 많은 아이들이 사용하면서 즐거워 하는 풍경을 창출해 내는 것이 다 바람직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즐거워 하는 풍경을 창출해 낸다는 말씀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서관은 노는 곳이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죠. 소설이나 만화 등을 보면 키득키득 노는 곳이라면 차라리 만화방이나 가는 것이 낫지 왜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정말로 도서관을 두고 이렇게 의견차가 심할 줄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음 도서관을 꾸미면서 정말로 우리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교장 선생님의 완고한 의견 때문에 더 이상의 토론은 진행되기 어려울 듯싶었다. 일단은 몇몇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정독실의 기능도 함께 병행하기로 했다. 도서관은 우리 시대 교육의 중요한 장소로 뜻매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현장, 특히 고등학교로 올라 올수록 그 기능과 쓰임에 있어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도서관은 우리의 모든 아이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지난 시절에 몇몇 아이들만이 사용하는 그런 특정 공간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대학입시에 얽매여 여전히 도서관을 아이들의 정독실, 혹은 독서실 공간으로만 보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때론 당혹감을 떨쳐버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학 입시도 중요하고, 아이들의 입시 공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도서관 담당자로서 학교내에서만이라도 도서관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쉴 수 있고, 마음껏 그들의 생각의 자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입시라는 ‘대의명분’에 걸려 용도 변경되고만 도서관을 보면서 내내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학교에서 4년째 근무하는 동안 어떨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느냐 하면 학부모들의 민원전화가 오거나 학부모들의 선생님들에 대한 요구사항이 들어왔을 때입니다. 학부모의 요구사항 중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황당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어떤 때는 ‘어느 선생님을 3학년 담임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을 담임시켜 주세요.’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은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선생님인데, 실업계에서 근무한 선생님인데 경험이 없는 선생님을 그 중요한 자연과반 수업을 하도록 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개 선생님 우리애 좀 가르치게 해 주세요'합니다. 이럴 때면 나름대로 해명하느라고 진땀을 뺍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자기애들 조금이라도 좋은 선생님 만나 잘 배워 좋은 사람 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만약 이런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고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냉정하게 반성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왜 학부모나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야 하느냐?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나 자신은 어떠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교수님이 쓴 '아빠, 공부 좀 하세요'란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빠, 미국 교수들은 비참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시카고) 대학 교수들이 불쌍해요. 한 권위 있는 교수가 최근 몇 년간 저서와 연구논문을 내지 못하자 학교에서는 몇 년을 기다리다 할 수 없이 3층 넓은 그 교수의 연구실을 1층 좁은 구석방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꼼짝 못하고 짐을 싸서 옮기더라는 것이다......" 옛날 저가 고등학교 다닐 때 화학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하시다가 학생들의 집중적인 질문에 견디다 못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그 선생님은 '나도 전공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화학지도에 대한 경험도 많고 바둑도 잘 둘 정도로 머리는 괜찮은 편이며 또 일어를 잘하니 일어판 전공서적을 좀 봐서 잘 가르치겠다'고 다짐을 하고 무사히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의 딸이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방학 중 집에 내려와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고1 학생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첫날 집에 와서 하는 말이 기억납니다. '수학을 가르치는데 갑자기 당황해져서 혼이 났어요. 수학, 영어 한 시간씩 가르치기 위해 오전 내내 공부를 하고 갔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경험부족 탓도 있겠지만 사전준비, 즉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애들에게 나섰기 때문이니까 몇 번이고 풀어보고 반복해서 준비해야 된다고 일러준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름 있는 대학에 다니고 고등학교 다닐 때 꽤나 공부를 잘했었는데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서는 준비 없이 학생들 앞에 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는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약한 자"라고 하면서 "진정한 무사는 3살짜리 어린애와 마주설 때도 몸조심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장 전공에 대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선생님이야말로 자기도 모르게 가장 수업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에서는 '가르친다'와 '배운다'를 다 하나의 동사인 '라마드'를 쓴다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르치는 선생님은 계속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자만이 가르칠 자격이 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미야모도 무사시와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느 대학 교수의 딸이 말한 것처럼 '아빠, 공부 좀 해요'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학생으로부터 '선생님, 공부 좀 하세요'라는 소리를 들어 낭패를 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가르치는 날이 끝날 때까지 그러해야 합니다. 저의 26년 수업경험에서 얻은 결론은 '경력이 쌓일수록 가르치기 어렵다'.'초임 때 가장 가르치기 쉬웠고 갈수록 어려웠다'였습니다. 현재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민주당 김효석 신임 원내대표는 29일 국회기자실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사학법 시행을 내년 3월로 연기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는 “사학법의 시행은 이해 당사자인 재단,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자발적인 동의가 필요하지 무조건 밀어붙여서는 혼란을 초래한다”며 “일단 내년 3월로 사학법 시행을 연기하고 9월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의 조정안을 포함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자”고 제안했다. 이어 “개정 사학법은 지난 6월 13일에야 시행령이 발표돼 사학재단도 학교도 학부모도 마찬가지로 준비할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태로 시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가 있고 사학법 자체에 독소조항도 많아 이런 부분을 걸러내야 한다”며 “당장 5당 원내대표 회의를 열어 부칙을 고쳐 시행시기를 내년 3월로 연기하는 일부터 하자”고 말했다.
성과상여금을 조속히 지급하라는 교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급 일정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일 시도 인사담당 장학관 회의를 통해 “20일 경 성과금 지급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차등 지급 폭을 결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올 3월 교육부 교육단체지원과장으로 부임해 성과금 업무를 담당해 오던 한승일 과장이 7월 1일자로 울산국립대추진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돼 성과금 지급에 변수가 생겼다. 성과금 차등 지급을 두고 교총과 전교조는 매년 교육부와 갈등을 빚어 왔으나 올해는 그 양상이 더 치열한 상황이다. 교총은 차등 지급 폭을 최소화해서 조속히 지급하라는 공문을 교육부에 발송했고, 전교조는 차등지급 반대 및 반납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과에 따른 차등 지급 폭을 소폭 확대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말 ‘에두르다’는 ‘에워서 둘러막다’는 뜻을 지닌 동사다. “경찰이 집을 에두르고 범인에게 자수하기를 권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예배당을 에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 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족 매달려서….” 채만식 역시 소설 ‘탁류’에서 백마강을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주위를 둘러막는다는 뜻 외에도 ‘에두르다’는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다’는 뜻도 있다. 같은 뜻으로 ‘에둘러대다, 에둘러치다’ 등으로 쓸 수도 있다. “기분 상하지 않을 테니 에두를 것 없이 바로 말해라.” “그가 말을 에둘러 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언젠가부터 ‘에두르다’라는 표현 대신 ‘돌아가다, 돌려서 말하다’라는 말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물론 뜻은 더 분명하게 와 닿곤 하지만, 에두르다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애틋함이나 애잔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에둘러서 말하는 사람을 답답하다고 다들 싫어하는 듯하다. 하지만 에둘러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내 말에 혹시 상처를 받을까 조심스러워서 망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라지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에둘러 타이르거나 한 번 더 고민해 에둘러 얘기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교장 인사제도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시끄럽다. 이 제도는 승진규정으로 제정(1964.7.8)된 후 2005년 7월까지 28회 개정돼 다듬어져온 것이다.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원 인사제도를 송두리째 바꾸려 하면서 교원들의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교장 승진을 희망하지 않는 중장년 교사들도 교장 공모제 방안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젊은 교사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결국 이 대안이 시행된다면, 그 피해의 강도는 정년단축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마디로 학교는 ‘쑥대밭’이 되고, 교육은 고사하고 말 것이란다. 학교 최고 책임자로써 교장은 교원 및 교육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물론 다양한 교육경험과 확고한 교육관 등 전문성이 생명이다. 경영 마인드만 넘치는 CEO가 교장직을 잘 수행할 것이란 생각은 단견이다. 사회가 전문화되면 될수록 전문성이 강조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이 경시된 채 교장 자격증 없이 학교가 운영되는 외국 사례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국 제도의 도입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문화와 관념이 다른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여 실패한 행정사례는 수없이 많다. 미국은 선진국이지만 주마다 지방교육자치에 따라 교육이 다르다. 주에 따라 교사 자격증이 없는 곳도 있다. 이런 주에서는 공모 교사의 자질을 알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사평가를 실시하고, 보수와 계약을 갱신한다. 준 학사, 학사, 석사, 박사에 따라 봉급체계도 다양하다. 그런데 경제적 효율성과 합리주의 행태가 일반화된 미국이 최근 교장의 자격요건을 교육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한국은 교육투자는 인색한 채 오히려 외국에서 버리는 후진적 제도를 뒤따라 가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장 자격증 없는 제도가 교육법(현재 초중등교육법) 별표의 ‘학식·덕망’ 조항과 교육부훈령인 ‘교장자격증부관설정규정’ 등에 남아 있다. 이것이 전직 교육부장관과 관료 등이 교장 자격증 없이 교장을 할 수 있는 뿌리가 된 것이다. 사회가 전문화되기 전, 학식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용된 허술한 교장자격제도였던 것이다. 이런 제도의 도입 배경이나 실상과 전말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당국은 전문성 부족 문제는 접어두고 실적만 내세운 채, 교장 공모제를 계속 호도하고 있다. 교육과 교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 이 제도의 폐지가 급선무였지만, 오늘날까지 관료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장 자격증 없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나라 학교는 더욱 무주공산이 될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교장 공모 때마다 인기영합주의가 치열해지고 패거리문화 확산, 인맥 따라 문전성시를 이루는 교직사회의 부정적 행태가 정치권 뺨치게 될 것이다. 학교는 교장의 명령이 서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조직이 되고 교사들은 수수방관할 것이다. 누가 학교 일을 하려고 할 것인가. 현행 교감처럼 장래가 확실하지 않은 부교장도 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중등 교원도 대학 교수처럼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만 하고, 학교 일은 사무국에 완전 일임하는 대안까지 확실히 마련한다면 모를까. 교원 정년단축의 피해는 30년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교장 공모제가 도입될 경우 피해는 그 제도를 중단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제 ‘교육개혁’을 명분삼은 더 이상의 파워게임은 중단하기 바란다. 잘못된 문제 인식과 처방으로 교육정책이 더 이상 표류하지 않기를 바란다.
‘EBS 방학생활’ 여름호가 출간됐다. 방학생활 교재에 담긴 내용은 17일(월)부터 8월 27일까지 6주 동안 EBS TV를 통해서도 방송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로 주 2회씩, 총 12강씩 진행되며 1·3·5학년은 월요일과 화요일, 2·4·6학년은 수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방송된다. 이번 방학에는 정규방송 외에도 위성채널 EBS 플러스2에서 주말과 평일에 본방송과 재방송을 편성해 아이들이 꼼꼼하게 방송을 챙겨볼 수 있도록 했다. 세부 강의내용과 방송시간은 하단의 표를 참조하면 된다. 특히 EBS 홈페이지(www.ebs.co.kr)에 접속하면 ‘VOD 보기’를 통해 다시 방송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혼자서 공부할 수도 있다. ‘몸 속 탐험’, ‘소금의 비밀’, ‘사춘기’ 등 아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내용을 다룬 강의는 물론 ‘쉽게 만드는 장난감’, ‘로봇아 놀자’, ‘내가 만든 보온병’, ‘민화 그리기’, ‘옷감 염색하기’ 등 방송을 보면서 직접 해볼 수 있는 탐구학습도 다양하다. 수족관, 애니메이션박물관, 경찰서를 비롯해 갯벌이나 늪지대 등 생생한 체험학습의 기회도 마련돼 있다. 교재에는 TV로 방송되는 프로그램과 별도로 특집과 부록이 수록돼 있다. ‘여름방학, 이렇게 보낼래요’ 특집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 파워포인트 활용하기, 책을 읽고 독서감상화를 그리거나 감상문 쓰기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TV강의를 들은 후에는 소감문을 짤막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송학습 기록장’ 코너도 부록으로 실려 있으며, 이외에도 ‘지금부터 시작하자! 논술’과 ‘이야기로 풀어보는 수학’도 수록돼 있다. 방학생활 교재는 가까운 서점이나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제작진은 “특히 1,2학년의 교재내용을 강화해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체험학습 위주로 꾸몄다”면서 “TV강의와 교재를 꾸준히 챙기다 보면 저절로 알찬 방학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