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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선생님, 무슨 책 읽어요?”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반에서 아침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이 종종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망설이곤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과 내가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재미이다. ‘무슨 책 읽어요.’ ‘추천해주세요.’ 하고 물을 땐 ‘무슨 책이 재미있어요?’ 하는 물음과 같다. 그런데 그 재미가 문제다. 내가 느끼는 재미와 아이들이 느끼는 재미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겁지도 않고 의미성도 있는 책을 권하며 ‘이 책 되게 재미있다. 한 번 읽어 봐.’ 하면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책을 들고 간다. 며칠 전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가 물어 보았다. 3월부터 시작한 독서를 마무리할 즈음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얼마나 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1학기 동안 열심히 책 읽느라 애썼다. 이번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에겐 상품과 상장을 줄까 한다. 누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아?” “민정이요.” “아니에요. 혜영이가 젤 많이 읽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볼래.”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을 들어 보라 했더니 여섯 명 정도 손을 든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라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이 손을 든 모습을 보고 한 녀석이 “만화책은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 “만화책은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인터넷 소설류의 연애 소설도 안 돼. 혹 그런 사람 있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 전 있는데요. 그럼 안 되나요?” “그건 제욀 시켜야겠다. 안 읽는 것보단 낫지만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은 재미없어서 못 보게 돼. 아침 독서의 취지에도 안 맞고. 그럼 다시 한 번 손들어 봐.” 이번엔 두 명 정도가 손을 든다. 다섯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보라 했더니 12명이나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성공적이다. 사실 2학년에 올라와서 1학년 1년 동안 2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 손들어보라 할 때 2명밖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올 1학기 동안 아이들의 독서 성적은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책과 함께 한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예쁘기 그지없다. 처음 책 읽자고 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도 많았는데 믿고 따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데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아침에 책 한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가 책을 펴들고 읽는 것과 아이들이 책을 원할 때 이런 저런 책을 권하여 준 것, 즉 책을 읽을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것밖에 없다. 그렇게 멍석을 깔아주니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재미나게 논다. 물론 멍석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몇 몇 아이들이 있을 땐 그때그때 잡아주었지만.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소홀히 해지려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서 손을 놓아버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아이들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힘을 주는 게 책을 빌리러 오는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니까 너무 좋아요’ 하며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한 권, 두 권 읽어가고 책 목록에 기록할 때마다 아이들 못지않게 나의 마음도 기쁜 물결이 인다. 책은 음식물과 같다. 책을 한 권 더 읽는다고 인생이 금방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 지식이 빠른 시간에 많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씹고 씹다보면 입안에 단물이 나듯 언젠간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도 단물이 날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장면을 읽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지금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엄마가 됐을 때 자신의 아이들에게 책의 맛을 이야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 책은 씹을수록 맛난 음식이니까.
지난 5월 31일에 있었던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51.3%였다. 간신히 50%를 넘어선 투표율로만 보면 국민들의 관심도 낮아 보이고, 투표를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에서도 무관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을 살펴봐야 한다. 1회에 68.4%였던 투표율이 2회에는 52.7%로 급격히 감소했고, 2002년에 치러졌던 3회에는 급기야 48.9%까지 떨어졌다. 더구나 이번 5.31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떨어지는 지방선거인데다 여론조사 결과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확산 중이었고, 투표일이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 직전이라 악재가 겹쳐 있었다. 그래서 투표율 부진을 우려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율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동원했었다. 선거홍보 사상 처음으로 광고주를 숨겨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한 뒤 후속편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관심도를 더 높이는 티저광고를 도입했고, 탤런트 김주혁과 문근영ㆍ가수 장나라와 비ㆍ축구대표팀 코치 홍명보씨를 홍보대사로 임명해 선거일인 '뷰티플 데이'를 홍보했다. 선거연령이 낮아진 점을 고려해 각종 선거정보를 모아놓은 정치포털사이트를 운영하며 네티즌들의 투표참여를 유도했고, 우리 지역 후보자ㆍ투표소 찾기, 최고모범유권자 찾기, 5.31 지방선거에 대한 퀴즈대잔치 등의 이벤트를 실시했으며, 투표 당일에는 장애인과 노인의 투표를 도와줄 투표안내 도우미를 투표소마다 2명씩 배치하며 투표율 높이기에 고심했었다. "치열했던 선거운동은 오늘로써 막을 내리고 유권자의 선택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투표소는 대부분 여러분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투표하는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등산도 낚시도 여행도 좋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투표부터 마치고 합시다. 투표로써 이 나라의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분명히 보여줍시다." 5.31 지방선거 하루 전인 30일에는 손지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 국민들에게 '투표참여 호소문'까지 발표했었다. 그 결과 전체유권자수 3706만4282명 중 1900만91명이 투표에 참여해 3회보다 2.4%가 높은 51.3%를 기록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방선거 이벤트 결과를 발표했다. 각 시ㆍ도의 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별로 최고령자, 최연소자, 최다가족, 평균연령 최고령가족, 평균연령 최연소가족에게 상품권 20만원, 10만원 상당의 상패, 장나라와 비의 싸인이 들어있는 CD를 부상으로 줬다. 특히 교사들은 한결같이 투표에 참가해야 하는 줄 알고, 또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나도 이번 지방선거에 어머님과 아이들까지 3대가 같이 투표에 참여했었는데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니라 알 먹고 꿩 먹는 일이 생겼다. 우리 가족이 청주시 상당구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최다가족상을 받았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한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당장 7월 26일에 서울 '성북구을'과 '송파구갑', 경기 '부천시소사구', 경남 '마산시갑'에서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가 실시된다. 7월 31일에는 울산과 제주를 제외한 14개 시·도에서 교육위원선거를, 대전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는 교육감선거가 실시된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나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귄리주장보다 의무이행이 앞서야 하고, 민주시민이라면 당연히 본인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더구나 선관위의 푸짐한 상품까지 기다리고 있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미래의 주인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가 참정권이고, 민주주의는 일반국민에게 평등하게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야 한다. 선거에는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얼마나 큰 모순인가를 깨닫게 해야 한다.
선생님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방학이라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으로 인해 정상출근을 하시니 방학 느낌이 없으시죠. 저도 오늘 방학 첫날이지만 평소와 같이 아침 7시 출근을 했습니다. 한 학생이 다정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네요. 교무실에 들어오니 한 선생님께서 역시 평소와 같이 출근을 했네요. 오늘이 꼭 신학기 시작하는 날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방학 중 연수를 비롯하여 보충수업을 할 수 없는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업을 하시는 13명의 외부강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일일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첫 발령을 받으신 선생님께서 부푼 꿈을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 일찍 출근하시는 것처럼 외부강사 선생님께서 7시 15분부터 속속 들어오네요.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니까 미리 오셔서 자리 확인, 시간표 확인, 교재준비 등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존의 우리 선생님들은 시간 맞춰 출근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지만. 저는 오늘 아침 고흥식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책 속의 ‘행복’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2페이지 되는 짧은 글이었지만 가슴에 와 닿네요. 서두에 ‘사람은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 ‘당신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 안에 있다.’ ‘참다운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는 ‘행복을 위해서는 입을 열라’. ‘귀를 열라’.‘함께 계획을 세우라’,‘가장 올바른 생활은 가장 행복한 생활이다’라는 구절마다 심금을 울립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서 한 학기 동안 과연 참 행복자인지를 이분의 글에 비추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 때보다 지금이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다운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행복이 삶의 결과가 아니고 삶의 과정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방학이지만 교무실에 앉아 선생님들을 대하는 것과 교실을 둘러보는 자체가 행복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여행을 하며 휴가를 즐기는 것보다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있다는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실을 둘러보니 방학을 앞둔 시점보다 더 조용하고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날씨가 선선한 탓인지 몰라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마음가짐이 새로워진 것 같아 흐뭇합니다. 외부강사 선생님들의 수업모습을 보니 신학기 때 긴장하며 수업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학생들의 보충수업 희망에 따라 방학을 반납하고 수업에 임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아마 이분들이야말로 참다운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수업하는 그 교실에, 교재 연구하는 교무실에 바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 같네요. 참된 행복은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돈, 건강, 지위가 아니고 바로 현재 어떻게 사느냐의 삶의 모습이며, 삶의 과정입니다. 지금 내가 학생들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며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학생을 위해 사는 분이 바로 참된 행복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방학 중 학교에 나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기에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학 중 학교생활에서 보람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방학 중에는 학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쉽고,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도 소홀히 하며 학생들과 함께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고흥식의 ‘행복을 위해서는 입을 열라’. ‘귀를 열라’. ‘함께 계획을 세우라’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학생들과 대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학생도 선생님도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갈등과 고민을 들어주는 열린 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귀를 닫아버려 학생들의 인격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귀를 열어 진지하게 들어주므로 선생님, 학생 모두 행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면 학생들은 보람을 느끼고 함께 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며 선생님들도 작은 보람과 함께 행복수치가 올라갈 것 같네요. 날씨가 덥고 많은 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질텐데 불쾌지수보다 행복지수가 높아졌으면 합니다.
학교가 아이들과 교사들만의 전유 공간이라는 인식이 사라져감에 따라 학부형의 참여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특히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학부형들이 학교에 직접적으로 참석해 학교 운영이나 학생들의 복리를 위해 여러 가지 의사소통의 길을 마련해 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 학교의 현 주소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교와 같은 시골의 조그만한 학교에는 아직도 학부형들의 발걸음이 그렇게 쉽지 않은 듯하다. 마치 자식을 둔 것이 당신들의 죄라도 되는양 부끄럽게 생각하고 담임이나 여타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 같다. 첫 발령지에서 첫 담임이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담임을 맡고서 유독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들이 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와 병원을 오고간 적도 있고, 피해자 학부형들에게 머리 숙여가며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도 수 차례 있었다. 여하튼 그 시절 이런 저런 일들로 힘든 1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선생님 저 ○○ 엄마예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 드려 죄송해요." "아닙니다. 어머니,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시고." 며칠 전 한 아이의 학부형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재 맡고 있는 아이의 학부형도 아니고 또한 벌써 6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것도 학생도 아닌 학부형한테 전화를 받고 보니 약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전화 좀 드리고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별 말씀 다 하십니다. 그래 ○○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첫 담임을 맡았을 때 ○○는 학급 반장을 맡았었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멋 내기 좋아하고,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일명 농땡이 아이들 중에서 짱 역할을 하는 아이였다. 공부만 안 했지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그런 아이로 기억되는 아이였다. 2, 3학년 때는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 있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었다. 다만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바로 자원해 간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이놈이 군대 갔다 오더니 정신을 차렸는지, 공부를 하겠다고 하네요. 그것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겠다고 해서, 이렇게 염치없이 전화 드렸습니다." "○○이가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기본기가 되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아마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은 좀 의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저는 ○○이가 군인이나 태권도 사범이 되겠다고 종종 이야기하던 게 기억이 나는데…." "예, 저도 ○○이가 태권도 사범이나 했으면 했는데, 이놈이 글쎄 자기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같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당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나 행동에 자기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꼭 국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군대 제대할 무렵부터 계속 하고 있어요." "이거 제가 아이에게 혹시나 좋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진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가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또한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도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가 종종 선생님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군에 있으면서 선생님 한 번 찾아간다고도 했는데, 모르겠어요. 참 선생님, ○○이가 몇 달 전부터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는데, 없는 형편에 아이 뒷받침하기도 그렇고, 군대까지 갔다 온 놈이 공부한다고 하니 모습이 좋지 못하고 해서 선생님에게 의논드리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들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의 의지라고 봅니다. 벌써 몇 달 동안 공부한 것으로 봐서는 제대로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믿어 보세요. ○○이 잘 할 겁니다." 이렇게 약 1시간 가량을 통화했다.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아이의 진로에 대해 섣부른 판단으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한 아이의 장래가 달려 있는, 그것도 내가 현재 맡고 있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그 아이와 부모에 대해 지나친 참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그 아이가 학교 다닐 때 교사로서 내가 최선을 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책감도 든다. 군대까지 갔다 온 ○○이가 이제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다만 곁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 선생님이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내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우며 좋은 결말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선생님, 오늘은 놀토이라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새벽 일찍 바깥바람을 쐬니 신선한 공기가 참 좋네요.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게 오래도록 마시고 싶었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맛보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아침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매일 아침 7시쯤이면 키가 작은 중년의 아줌마가 우유배달을 위해 교무실에 들어오는데 지나가면서 얼마나 깍듯이 인사를 하는지 저는 정말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아줌마를 볼 때면 저가 오히려 먼저 우리 선생님을 맞이하는 것 이상으로 반갑게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합니다. 아침을 여는 아줌마의 인사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제는 1학년 다니다 미국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복학을 하려는 학생 한 명과 어머님이 저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먼저 학생이 나를 알아보고는 웃으며 인사하더니 뒤에 따라오는 어머니도 똑같이 웃으면서 인사하더군요. 그 딸과 그 어머니는 얼굴생김도,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복사판이었습니다. ‘어디서 공부했나?’ ‘미국에서 했습니다.’ ‘영어 잘 하겠네, 열심히 해라’하니까 학생도 그 어머니도 격려가 되었는지 만족하는 듯이 웃으며 ‘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좋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사를 웃으며 잘 하니 저도 기분이 좋아 학생에게 덕담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이 만족으로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웃음은 남을 기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며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를 향해 좋은 덕담을 하게 만들고 그것이 인사한 사람에게는 힘이 되어 열심히 할 것이니, 웃음은 진정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인사는 기쁨의 원천이구나, 인사는 용기를 샘솟게 하는 샘물이구나, 인사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구나, 인사는 하면 할수록 마음을 순하게 만들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어떤 때는 한 선생님께서 감독을 하시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인사를 하네요. 또 어떤 선생님은 청소를 하다가 역시 웃으며 인사를 하네요. 또 어떤 선생님은 저가 퇴근하면서 늦게까지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저녁식사는 했느냐?, 식사를 거르면 안 된다’고 하니 현관까지 나와 웃으며 '잘 가세요'하고 인사하네요. 또 지난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운영위원 한 분께서 골마루에서 만나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오르네요. 우리학교 학생들도 반갑게 다가와 인사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면 학교에서 살맛이 납니다. 골마루를 지나갈 때도, 운동장 트랙을 돌 때도, 출퇴근할 때도, 운동장 트랙을 돌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저도 선생님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면 저도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마음이 편하니까, 선생님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니까,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생활하는 것을 보니까 자동 웃음을 머금으면서 인사를 하게 되더군요. 억지로 무표정하게 하는 인사보다 웃으며 하는 인사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네요. 하지만 아직도 인사를 외면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히 아침 출근을 할 때 학생들이 빤히 쳐다보면서 무표정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학생들은 인사의 중요성을 모르고 인사의 체험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어서 이들도 인사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가장 기본 중의 하나인 인사가 체질화되도록 교육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우리들의 바쁜 업무 때문에 외면할 때가 있음도 보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먼저 다가가 인사하며 어떻게 오셨는지?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안내하는 배려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을 보는 중에 어느분이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디가나 친절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로선 관공서를 방문할 때 친절 서비스 정신이 실종된 것을 경험한다면 황당하리만큼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민원인들이 북적대고 업무에 쫓겨 인사할 겨를조차 없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한가한 아침 일찍 찾아간 손님을 애써 외면하는 공무원 자세야말로 아직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끼게 한다. 아침 일찍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업무를 지켜봐도 몇 안 되는 숫자의 손님(민원인)방문에 인사조차 할 수 없다면 뭔가 공무원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글이 가슴에 와 닿네요. ‘아침 일찍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업무를 보면서 손님(민원인)방문에 인사조차 할 수 없다면 뭔가 공무원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지적을 똑같이 우리 선생님들이 받지 않도록 우리 모두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안내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학교의 교화인 백합처럼 향기를 발하며, 우리학교의 교목인 태산목의 새하얀 꽃처럼 아름다움을 뽐내셔야죠.
교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한 번 울리고 두 번 울리고 아니 아홉 번 열 번을 울려도 받는 사람이 없다.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받는 사람’이 없다. 누구의 귀에도 벨소리가 들리질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큼지막한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꽂고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저마다 인터넷에 몰입해 있으니 무슨 소리가 들리겠는가. 그래, 그렇잖아도 할 일 많은 학교 교감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본연의 임무 말고 한 가지 일이 더 늘고 말았다. 전화 당번 노릇이 그것이다. 인터넷의 발달,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빠름과 편함, 유용함에 우리 모두가 탄복하고 있지 않은가.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뒤져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자료를 검색하는데 바쁜 선생님들의 노고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이며, 순간순간의 뉴스를 신속하게 검색해 보는 것도 가르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터이다. 머리도 식힐 겸 수업이 없는 시간에 사이버 바둑을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컴퓨터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하루 동안의 피로가 풀려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학교는 선생님들에게 더 편하게 컴퓨터를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까지라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지척에서 쉼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아니면 들려도 못 들은 채 하면서 까지 매달리는 우리 선생님들의 인터넷에의 몰두 내지는 탐닉현상이 가져온 부정적 교단문화가 이제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컴퓨터와 마주하느라 동료 간의 대화가 사라져버린 교무실, 거기다가 개인주의 만연으로 남의 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게 좋고 그저 자기업무와 수업만 잘하면 되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보니 상호 간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고립이 더욱 심화되어 학교가 하나의 작은 섬이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말로는 직장동료라고 하면서도 개인적 대화 한번을 차분히 못 나누고,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공식적인 교무회의 석상에서 겨우 얼굴 한번 스치고 마는,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업무적인 대화, 의례적 인사나 주고받지 가슴을 열고 대화해 볼 기회조차 사라져 가는, 심지어 학교규모가 크고 교직원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까지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교의 선생님 한분이 도로상에서 접촉사고가 나서 상대방과 잘잘못을 놓고 언성을 높이다 멱살잡이 일보 직전에 보험사의 중재로 겨우 어떻게 합의를 보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차량이 자신의 뒤를 따라 학교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어서 아직도 해결 안 된 무엇이 있나했더니, 알고 보니 그 상대방이 바로 자기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학교 수학 여행단이 제주도로 출발한다고 해서 수업이 빈 시간을 이용하여 큰 맘 먹고 공항까지 배웅을 갔던 모 선생님, 대합실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동료교사 한분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너려는데 마침 그 옆에 처음 보는 여성분이 함께 계시면서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아, 사모님이신가보다 생각하고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입니다.”했더니 동료교사는 박장대소를 하고 그 여성분은 기절초풍을 했더라고 한다. 그 여성분은 바로 자기 학교 소속 선생님이셨는데 그걸 모르고 사모님이라 했으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백 날 천 날 먹으면 무엇 할 것인가. 대화가 없다면,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가 전제된 관계의 다리를 놓지 않는다면 그 무슨 인간애, 동료애가 싹틀 것인가. 결국 서로 간의 관계가 모래알 같다 보면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사라지게 되고, 덩달아 직무만족감 또한 현저히 떨어지게 되며 학교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방관자적 분위기가 팽배해져 학교 조직의 건강성이 심대한 위협을 받기에 이르는 것이다. 입 달린 사람은 모두가 교육혁신을 이야기 하고, 당국에서도 혁신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일선학교를 채근해가며 별별 정책들을 내놓곤 하는데, 차제에 모든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 제안 하나 하고 싶다. 혁신은 거창하고 관념적인 구호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위에 계시는 몇 사람의 욕심 속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우리 선생님들이 몸소 부딪치고 느끼는 일선 현장에서,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문제 가운데서 실천 가능한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당장, 하루 중 점심시간만이라도 컴퓨터를 끄고 서로 간에 대화를 좀 하자고. 그래서 동료간에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나아지면 생각까지도 공유하고, 좀더 깊어지면 개인사적 기쁨과 슬픔도 함께함으로써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는 진정한 교육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30년 만에 초등학교 제자 7명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중고교 시절에 가끔 보았던 제자도 있고, 어쩌다가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기특한(?) 제자도 있었지만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완전히 변해버린 어른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제자도 있었다. 교직 3년차에 처음으로 담임했던 6학년 제자들이어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 항상 잔상으로 그려지던 제자들이다. 벌써 40을 넘은지도 삼사년이 지났을 나이들이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느 정도 안정을 확립했을 나이도 되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제자들도 많겠지만……. ‘스승의 날’ 무렵이었다. 가끔씩 소식 전하는 제자의 전화를 받았다.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머지않아 친구들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했다.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했다. 객지에서 고향의 동창생들과 만나서 온갖 푸념도 해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별별 얘기들을 다 한다고 했다. 즐거워하기도 하고 안타가워하기도 하며 그리워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이 펼쳐진다고 했다. 으레 선생님얘기는 단골 메뉴라고도 했다. 4시간 동안의 식사와 대화시간이 오히려 짧았다. 당시의 어린 시절의 얘기와 살아온 얘기, 나의 지나온 세월의 이력, 지금의 모습 등 할말이 태산보다 많았다. 아직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어린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부끄럽고 자신감이 위축되고 떨리기도 한단다. 많이 늙으셨을 줄 알았는데 너무 젊단다. 그땐 정말 미남이었는데 지금도 거의 그 모습 그대로란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어서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재미있었단다. 글짓기를 잘한다고 작가가 되라고 했단다. 수학문제를 잘 푼다고 잘못하는 다른 친구들 도우라고 해서 수학이 제일 좋았단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 못할 형편이었는데 장학생으로 선발해 줘 진학할 수 있어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됐단다. 글자를 잘 쓴다고 칠판에 자습문제를 제시하게 했단다. 너무 말이 없다고 자신감을 키워주겠다고 부반장을 시켜주고 인사말을 하라했는데 못했단다. 봉사활동 가서 혼났던 일, 신혼이었던 선생님 댁에 3일이 멀다하고 놀러 다녀서 얼마나 귀찮았느냐고, 그 땐 몰랐는데 자라면서 후회했단다. 냇가에 가서 다슬기를 잡아 선생님 댁에서 삶아서 다 같이 먹던 일, 반 대항 이어달리기나 각종 시합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 했단다. 나는 그때의 우리 반 애들에 대해 아직까지 적어도 이름정도는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자신만만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해 낼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어쩔 수 없는 나의 기억력의 한계에 놀랐다. 어떻게 이름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네가 아주 모범생이었는가 보다 그래서 잘 기억 못하나 보다고 얼버무려 버렸다. 미안한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도 못한 체 어정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곱고 수학도 잘했으며, 부모는 학교 근처에서 가게를 하였다니 여러 면에서 특징이 있는데 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내 기억의 세계가 원망스러웠다. 과연 50 명 전원을 만난다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나 얼굴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감이 추락하는 실망을 갖게 되었다. 우린 헤어지기 싫었다. 선생님께서 사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서 자리를 옮겼다. 결국 찻값까지도 내가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았지만……. 다시 전망 좋은 찻집에서 초등 6학년 시절로 되돌아갔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철모르는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써의 보람이 바로 이런 거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맑고 밝은 미소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만큼 그들도 많은 시련을 겪었을 텐데 본시 착하고 순하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시골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생하면서 낮엔 일하고 밤엔 서울모고등학교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땄단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고객에 대한 친절과 신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과 상사들에게 신임을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영업에 성공할 수 있어 지금은 나름대로 여유 있게 산다고도 했다. 콧등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 별로 잘 가르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려 노력은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들 하나하나에 지극한 관심과 배려를 주지 못했다. 엄격한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잘 놀아주지 못했고, 모범적인 행동만을 주문했었고, 점수를 더 올리라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했었다. 입을 모아 노래한번 불러보지 않았고, 어울려 술래잡기 한 번 못해준 멋대가리 없는 평범하지도 못한 교사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스승이라는 정신적 은사로 생각해 주기 보다는 그냥 우연히 만나 1년 동안 같은 교실에서 머물렀던 선생님이었던 것만으로 기억해도 과분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 안아 주세요.”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내게 안기는 하나하나의 제자들의 등을 다독거릴 때 나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두워서 눈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무척 다행이었을까. 거의 9시간의 만남이 이렇게 끝났다. 교사의 보람은 바로 이런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격스런 체험을 한 하루였다. ‘진심으로 고맙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할 나를 고마운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오산지역 결식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7월 9일(일) 09:40 바로 '운산-어울림 식사 나눔터' 가 소자복지관 경로 식당(장소 성호초교 앞)에서 개소식을 갖고 관내 노인을 처음으로 맞이하여 매주 일요일 점심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나눔터는 경기교육자원봉사협의회 산하 초등교사 봉사단(어울림 단장 정진남. 운산초 교사)과 운산초등학교(교장 이의창) 산하 학부모 8개 단체(대표 조용한 학교운영위원장), 소자복지관(관장 김동승 목사)이 힘을 합쳐 열었는데 개소식에는 이기하 오산시장, 경자협 이중섭 회장, 화성교육청 박호순 학무과장 등 내빈 10여명과 이 지역 노인 70여 분이 참석하여 개소를 축하하였다. 매주 일요일, 운산초·운암중 학생 6명과 지도교사 2명, 운산초 학부모 4,5명이 사랑의 음식 나누기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식자재비 등 월 150만원 내외의 운영비는 운산초 희망 학부모들이 1만원 1구좌 온라인으로 회비를 모으게 된다. 봉사활동 참가자에게는 오산자원봉사센터에서 봉사확인서가 발급이 되고 지도교사와 학부모에게는 봉사 마일리지 통장이 발급된다. 그리고 운영비 납부자에게는 기부금 납입 증명서가 발부된다. 그 동안 오산지역에서는 평일에는 결식 노인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단체가 5개 정도 있어 급식을 해결할 수 있었으나 일요일에는 별다른 방안이 없었는데 '운산-어울림 식사 나눔터'가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다. 경자협 이중섭 회장은 축사에서 "작년 도지정 봉사시범학교인 운산초교의 봉사 활동의 결실이 이렇게 나타나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노인들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노인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익히는 소중한 교육적인 행사"라고 말했다. 운영경비를 지원하는 운산초 8개 학부모 단체는 운영위원회, 자모회, 수영부, 체육진흥회, 컵스카우트, 걸 스카우트, 봉사단, 녹색어머니회 등인데 홍혜빈 자모회장은 "이번 7월의 식사 제공을 위해 113명의 회원이 자진 회비를 납부하였다"며 "회원들의 자동이체 납부로 안정적인 운영기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해 계속 사업임을 강조하였다. 계단의 봉사안내 유인물을 살펴보니 7월 9일부터 11월 26일까지의 봉사자 배정표가 붙어 있는데 학생, 학부모, 지도교사의 명단과 협조 단체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이의창 운산초교 교장은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의 두툼한 손을 보니 마디마디 갈라지고 상처투성이다. 고생한 아버지의 손, 우리 가족을 위한 어버지의 손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신발, 흙투성이의 신발을 보도 있자니 신발 사달라고 조르며 때 쓰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아프게 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버진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궁금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점차 무너져 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비쳐진 아버지의 모습은 아팠다. 자랑스런 아버지, 훌륭한 아버지,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 보다는 희생하는 아버지, 아파도 아파하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 자식을 말없이 지켜보고 웃음을 짓거나 눈물짓는 아버지, 아이들에게 비쳐진 요즘 아버지의 모습이다. 삶의 환경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아이들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달리 보이겠지만 부유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아버진 아파하는,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새벽잠을 포기하시고 출근을 준비한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거칠어가는 손을, 지쳐 쓰러져 주무시는 아버지를 그땐 왜 몰랐을까?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는 나의 아버질 사랑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보다 약한 아버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어머니 뒤에 서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그래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없으면 가족들이 굶어 죽기라도 할까봐 모든 걸 무릎 쓰고 아무리 힘겨운 것도 참고 이겨내시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며 ‘아버지의 사랑이 조금은 부끄럽고 부족하더라도 자신에게는 큰 사랑’이라고 말한다. 왜, 요즘 아이들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게 보일까? 오직 가족을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만 비칠까? 못 배우고, 못 배워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 하지만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여 살리기 위해 늘 노심초사하는 아버지가 아이들이 점차 철이 들어가면서 이해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런 모습이 보민이라는 아이의 글에서 잘 나타났다. “철없던 시절에는 간섭하시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헌데 이젠…, 아버지가 가엾습니다. 아버진 힘들다고 투정부리지도 못합니다.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실 수 없습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왜 혼자 힘들어하시는지… 조금만 돌아보면 가족이 옆에 서있는데….”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도 그랬다. 나도 한 아버지의 지식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늙으신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여우면서도 화가 났었다. 철이 없을 땐 부모는 무조건 자식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왜 자신의 인생을 좀 더 그럴듯하게 살지 않고 저렇게 자식들에게 매여 사실까 하며 답답해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쓴 글을 읽는 내내 이제 근력도 없고, 작은 미풍에도 아파 병원 신세를 지는 부모님의 얼굴이 맴돌았던 이유가. 그런 한 편으론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쁘게 다가왔다. 항상 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작은 샘물 같은 사랑을 졸졸졸 흐르게 하는 아이들이 기특해지기도 했다. 사랑은 흐르는 시냇물과 같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처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떤 환경에도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 시냇물을 목마를 때마다 떠 마시면서도 간혹 시냇물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자신이 그 시냇물이 되었을 때에야 어릴 때 마셨던 그 물이 자신을 사랑하던 뜨거운 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눈물 한 줌, 한숨 한 줌을 빈 하늘에 뿌리며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을 그리워한다. 아버지. 갈수록 힘들어지는 아버지의 역할.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 새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고 남몰래 소주 한 잔에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는 우리 시대의 남자, 아버지.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아버지들이 많지만 아이들의 글을 통해 아버지란 존재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무관심하고 혼자만 소외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아니 자식들은 아버지란 존재를 연민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이라는 시선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왜 그럴까? 술 냄새에 찌든 아버지를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왜 그럴까? 힘없이 걷고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리게 아파온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진영이라는 아이가 쓴 글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잘났든 못났든 딸들에게 아버진 여전히 든든한 기둥이고, 사랑하는 마음이란 걸.
7월 12일(화요일). 일주일 중에 유일하게 우리 학급의 시간표 위에는 내 과목인 영어가 없는 날이 오늘이다. 방학(7월 15일)을 며칠 앞두고 오늘 중으로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기에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 일에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업과 업무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했다. 그래서 일까? 아침에 실장으로부터 우리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출석했다는 보고를 받고 난 뒤 우리 반에 대해 오후 내내 잊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워낙 바쁜 나머지 출근을 하자마자 습관처럼 되어버린 교실 출석확인도 오늘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오후 7교시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인기척을 해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업무를 보고 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책상 위에 커피 한잔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우리 반 여학생 두 명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평소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했다. "이 녀석들이 왔으면 인기척이라도 해야지? 그래 무슨 일로 왔니? 선생님이 지금 바쁘니 급한 일이 아니면 다음에 와서 이야기하도록 해라."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다그치듯 요구를 하는 내 표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듯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 왔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선생님, 오늘 교실에 한번도 안 오셨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찾아 왔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어요. 저희들이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어디 편찮으세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그리고 바빠서 그랬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늘 교실로 찾아와 출석을 점검하며 청소상태, 복장 및 용모 등으로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던 담임이 오늘은 나타나지 않자 아이들 나름대로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우리 반 수업이 없어 아이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담임으로부터 매일 듣는 잔소리를 하루 정도 안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즐거울 텐데. 내가 보고 싶다며 교무실로 찾아 온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업무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선생님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보고 싶어 왔다."라는 그 아이의 말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닌 듯 했다. 생활을 하는 와중에 내 속을 썩이던 아이들이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 또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담임인 내가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는가 보다. 내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아이들과의 짧은 이별을 나누어야 할 여름방학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모름지기 아이들은 많이 변하리라 본다. 따라서 개학이 되면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성숙해서 내 앞에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내 마음속의 아이들은 늘 한결같이 마음 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쪼록 우리 아이들 모두가 탈선하지 않고 건강하게 이 여름방학을 나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큰 학교란 전남의 실정에서 보면 학급수가 15학급이 넘거나 학생수 300명이 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6학급이하 100명 이하면 작은 학교에 해당된다. 그런데 큰 학교에 이웃해 있는 작은 학교의 학생수가 점차 감소되어 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유는 작은 학교의 학생들이 서류상으로만 주소지를 옮겨 큰 학교로 자꾸 전학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에는 학부모님들의 선입관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대부분 큰 학교의 시설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또 큰 학교의 선생님들이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큰 학교 주변에는 학원이나 대형 문구점 서점 등 학생 편의시설이 밀집 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은 많은 아이들 속에서 배워야 더 많이 배우고 또 아이들끼리 놀며 부딪치며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또 졸업 후에도 동창이나 친구도 큰 학교 졸업생이 더 많다는 거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시설 면에서는 큰 학교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다수에게 혜택을 주기위해 큰 학교에 대한 투자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질이 큰 학교가 더 낫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사는 순환근무제에 의해 한 학교에 4년 이상 머물 수 없기 때문에 큰 학교 교사가 작은 학교로 작은 학교 교사가 큰 학교로 끊임없이 이동되기 때문이다. 또, 40명에 육박하는 과밀 학급에서 1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일제히 통제하며 지도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아이가 다소 내성적이며 소극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과밀학급에서 학생들에게 골고루 교사의 손길이 미치기는 어렵다. 교사의 열정과 노력 나름이겠지만 특별보충이 필요한 한두 명을 제외하고 한아이 한 아이에게 개별지도 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 학급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아이는 왕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왕따란 적극적 왕따가 아니라 소극적 왕따로서 표 나지 않게 소외되는 경우로 교사와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은 소인수 학급에서 교사의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 속에 공부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작은 학교의 학생들이 자꾸만 큰 학교로 전학가게 되면 작은 학교는 더욱 작아지고 나중에는 폐교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다. 실거주하는 학생이 모두 제 학구에 위치한 학교에 다닌다면 폐교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련만 현실은 그렇게지 못하다. 지금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육성이라는 말로 전국의 많은 학교를 폐교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치 작은 학교를 폐교하고 큰 학교와 통합시키는 것이 적정규모 학교 육성인 것 같다. 그리고 어느덧 교육학자들의 입으로도 효율적인 학교를 이야기한다.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교사나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인 학교는 없어져야 마땅한 시대가 온 것이다. 무엇이 효율적인 것인가. 작은 학교에 근무하며 변화에도 민감하지 못한 나는 자못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충청북도교육청(교육감:이기용)은 7월 14일 오후4시 청주시 무심천변 학생회관 옆에 4층 건물을 신축해 충북교육박물관을 개관하여 여름방학에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교육박물관 사료를 수집하여 제1전시실에는 충북교육의 장, 배움의 탑, 교육의 뿌리, 추억의 교실이 있다. 선생님 몰래 도시락을 먹고 벌 받던 모습, 조개탄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먹던 추억을 회상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요즘아이들은 옛날을 생각할 수 있고 어른들은 과거 어린시절 학교생활을 회상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곳으로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제2전시실에는 충북의 인물, e-book과의 만남, 충북교육의 발자취, 그날의 함성, 공자 왈 맹자 왈, 영상관, 정겨운 우리 동요, 충북교육백과, 그때 그 시절, 겨레의 빛, 기증 및 유품전시 코너, 소리와의 만남 코너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기획전시실이 마련되어 개관기념 기획전으로 고구려 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3층 제2전시관의 '그때 그 시절'코너에는 옛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직접 쓰던 자전거, 교복, 등이 전시되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어린이 안전체험관'이 설치되어 원아와 초등학생들의 안전교육장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15일 방학식을 갖고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학교가 많은데 부모님들과 함께 관람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매월 4째 주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국경일은 휴관을 한다고 하니 참고해서 방문해야 할 것이다.
조용하던 급식소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6학년 아이들이 급식소에 들어오는 시간이면 늘 있는 일이다. 살아가노라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 일인데 전교생이 200여명이내인 작은 학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급식시간의 여유를 빼앗기는 순간이다. 그날따라 식사를 하고 있던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의 인상이 더 찌푸려졌다. 전국이 장마 권에 들은 후 며칠째 푹푹 찌는 날씨가 불쾌지수를 높인 탓도 있다. 하지만 1학기 종업식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급식소가 밥을 먹는 장소인지 장난을 치는 장소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짜증나게 했다. 나도 몇 번 주의를 줬고, 담임선생님이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마음속으로 ‘몇 놈 때려, 말아’를 고민했다. 꼭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를 실험하는 것 같았다. 도가 지나치는 행동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6학년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지금 여기에 너희들만 있어. 다른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할 것 아냐. 밥 먹기 싫은 놈들은 당장 나가.” 갑자기 내 눈치를 보며 조용해졌다. 모처럼만에 밥맛이 나는 듯 점심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나 교직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일부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쪽으로 잔머리를 굴린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체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다. TV에서 봤다며 교직원들이 때리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그런 얘기를 교직원들 앞에서 은근슬쩍 흘리며 ‘때려보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며칠 전에도 공을 차고 있는 6학년 아이들에게 교실로 들어가라는 방송을 했다. 제멋대로해도 된다는 게 습관화된 아이들이 순순히 말을 들을 리 없다. 잘못된 습관일수록 빨리 고쳐줘야 했고, 여러 번 반복된 일이라 뒤늦게까지 공을 찬 아이들의 목덜미를 한대씩 때렸다. 나쁜 것일수록 빨리 전달된다. 순진한 다른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걱정하고 있는 교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반성할 일이 참 많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내가 모르게 바로 보건실로 달려갔다. 보건선생님에게 맞아서 아프다는 하소연을 하며 다음에 또 때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요로운 세상이라 아이들의 발육상태가 좋다. 여자 아이들 중에도 몇 명은 연약한 담임(여자)선생님보다 힘이 세다. 몇몇 아이들은 힘을 어른들에게 반항하는데 이용한다. 어떤 날은 다 큰 남여아이들이 앞으로는 서로 안볼 것 마냥 머리채를 잡고 대판 싸우며 난장판을 벌인다. 착한 담임선생님 속 터지게 해놓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붙어 다니며 깔깔거린다. 도대체 속이 있는 아이들인가 의문이 가지만 저런 게 아이들 세상이라고 무던히 이해를 한다.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역행하는 게 바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권리 찾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할 일은 하지 않고 누릴 것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면 불행한 사회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담임의 양해를 얻어 학생의 본분인 공부는 하지 않으려 하고, 줍는 것은 싫어하면서 쓰레기는 아무 곳에나 버리고, 어른들의 얘기 끝에 말대꾸를 하고, 주의 주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고 웃으면서 건방을 떨고, 서로 남 탓이라고 상대방을 원망하며 짜증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생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권리 주장보다 의무이행이 앞서야함을 얘기하며 아이들의 생활도 일부 제한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여자아이 한명은 눈이 충혈 될 정도로 내 얘기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뜻도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휩쓸리기도 하는 게 집단생활이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의의 피해자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제 곧 즐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6학년 아이들이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돌아보면서 자숙하고 반성하는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육체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면서 미래를 향해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2학기에는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때려, 말아’로 고민하는 일이 없었으면 더 좋겠다.
포항시 북부 해수욕장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 풋풋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확 뚫린 해변도로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환호해맞이 공원'이 나타나고 거기에서 해양과학고등학교로 가는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폐교된 대양초등학교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건물이 바로 포항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예술문화 체험장이다. 리포터가 체험학습장을 방문(7.15)하였을 때 창포중학교 학생들이 전일제 클럽활동을 그곳에서 하고 있었는데, 담당 교사들과 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살리는데 좋은 체험 학습장이라 했다. 현관 복도와 강사 대기실 벽면에는'푸른 꿈을 가꾸어 가는 포항 예술문화 체험장'이라는 제하에 체험학교 운영에 관한 내용을 보니 도예 반 ․ 댄스 스포츠반 ․ 종이공예반 ․ 회화체험반 4개 반이 편성 운용되고 있고 학습 내용도 잘 알 수 있었다. 강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도예반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학생들이 즐겁고 신나게 자신의 도자기를 빚고 있었다. 제도와 성형, 건조, 장식, 초벌구이, 유약시유, 재벌구이 과정을 거쳐 직접 학생들이 도자기를 제작하여 구워내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의 일부가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고 있으니 정말 학생들의 솜씨일까 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도자기의 모양과 문양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댄스스포츠반에 들어가 보았다. 여학생들이 무용실 플로어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즐겁게 댄스 동작을 배우고 있었다. 기본 동작 및 진행방향,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댄스 스포츠를 배우는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하고 밝게 보였다. 잠시 댄스 스포츠 강사 윤성애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 "선생님 댄스 스포츠를 하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요?" "먼저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고요, 학생들의 성격도 밝아지고, 또 성장기 학생들의 자세가 바르게 될 뿐만 아니라 키가 성장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또 친구간의 인간관계가 아주 돈독해 진다"고 말했다. 댄스스포츠반은 경상북도에서 처음으로 실시하고 있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교과 중심의 딱딱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푸른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지척의 거리에 우리나라 굴지의 산업시설인 포스코의 건물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학생들이 색다른 학습 경험을 얻어 가고 있는 체험 학습장을 보니 리포터의 마음 또한 아주 즐거워 졌다. 전국적으로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폐교되거나 통폐합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자주 접하면서 몹시 가슴이 아팠는데 이렇게 폐교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문화 체험 학습장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음을 보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폐교를 활용한 예술문화 학습 체험장!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학습 체험 장이 되고, 강사들에게는 취업의 장이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폐교 활용 방안. 평생 교육 ․ 다양한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폐교가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변신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를 더욱 확대 적용하기 위해 당국의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이 가일층 되었으면 한다.
교장선생님이라면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조금은 점잖은 분이라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비교적 존경을 받는 자리에 근무를 하는 분이고, 특별히 욕을 먹을 짓을 하는 일도 별로 없는 분들이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엄격하신 분이고, 존경받는 위치에 서 계신다고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변하여 비록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점잖은 직업이고 점잖은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임을 하자마자 이제 할 일이 없으니까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 중에 상당수가 야간 당직을 서는 경비업체에 고용이 되어서 야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야근이라면 범죄예방이나 여러 가지 힘들어서 해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요즘 대부분의 경비업체에서는 정년 퇴임을 한 분들을 주로 뽑아 쓰고 있다. 이런 곳이 아닌 전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신 분들이 가끔 눈에 뜨인다. 부동산 중계업을 하는 분들도 그렇고, 택시 기사로 취업을 하신 분들도 가끔은 눈에 띈다. 오늘 여기 소개할 분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을 하자마자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이발소를 차린 분이다. 이미 퇴임을 목전에 둔 겨울 방학 동안에 이발학원에 등록을 하여서 공부를 시작하였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서 퇴임을 한 뒤로 두 달만에 자격증을 따냈고, 곧장 이발소를 차렸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어서 처음 3개월 동안은 이발사를 한 분 두고 운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배운 것만으로 모자란 부분을 스스로 익히고 실제로 경험하면서 배웠단다. 이렇게 해서 퇴임 6개월만에 정식으로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이발소의 사장님이 되셨단다. 이름하여 '모범이발관'. 요즘 흔히 말하는 퇴폐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옛날 식의 이발관이란다. 요즘 이발관에 간다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정도로 이발소가 아닌 이상한 곳이 되어 버린 이발관을 순수함을 지키는 그런 이발관으로 만들어서 운영하겠다는 의지라고 하였다. "처음엔 좀 쑥스럽고 그랬지.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런 부끄럼도 쑥스럼도 없어졌어. 내가 뭐 남을 속이고, 남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봉사하고 봉사한 만큼만 받아서 생활에 보탬이 되면 좋고 아직은 그냥 소일거리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별로 걱정도 없고 얼마나 속이 편한지 몰라." 이렇게 말하면서 지난달에는 이발을 하던 분이 나가고 혼자서 시작을 하여서 처음으로 결산을 해보니까, 운영비가 빠듯하더라고 운영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래도 걱정은 없단다. 전기세 몇 푼, 가계세와 수도세 조금 내면 되는데 그까짓 거야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점점 알려져서 중년들은 우리 이발소를 일부러 찾아오고 있어. 요즘 이발관에 가기가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여기 오면 나하고 얘기하면서 부끄러운 일없이 이발만 하고 가니까 깨끗하고 기분이 좋다고들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단골도 생겼어"하고 말을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게된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다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재를 기르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많으며, 그 동안 쌓은 경륜을 살려서 좀 더 유익한 곳에서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단순 노동에 해당하는 가위질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태백이 현실이고, 45정이 보통이며, 56도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갈수록 노령화되어 가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노령 인구의 활용이 대단한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다. 노령 인구의 활용을 하되 가장 효율적이고, 경력이나 개인이 가진 기능이나 능력을 살려서 나라에 유익한 노동력이 되도록 하는 것만이 이 나라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발사가 된 교장선생님의 경우는 국가가 가장 잘 못된 인력관리를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다.
교육도 사람의 일이라 혹여나 아이들에게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미운 마음이 아이와 교사인 나에게 모두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돌려 먹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유발케 하는 아이들이 가끔은 나에게 어려운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 제발 싸움 좀 말려 주세요! 우연히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평소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아이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싸움에 교사가 자꾸만 끼이는 것도 어찌 보면 그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에 참견이나 간섭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한지 싸움을 알리러 온 아이의 표정이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다. “선생님, ○○이와 ○○가 싸움이 붙었어요. 선생님이 좀 말려 주세요.” “다 큰 놈들이 무슨 싸움이야. 너희들이 좀 말리지….” “그래 무엇 때문에 싸움이 난거니?” “저도 모르겠어요. ○○이가 ○○의 뺨을 순간적으로 때렸나 봐요.” “아니 뺨을 때렸어! 그렇게 학교 폭력의 심각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건만….” 아이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다툼의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 친구를 주변 친구들이 애써 말리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 다 큰 놈들이 무슨 싸움이야. 너희들이 무슨 싸움꾼이야!” 아이들의 나의 호통 소리에 놀랐는지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두 아이는 여전히 화가 풀이지 않았는지 씩씩 거리고 있었다. 학교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싸움 소식이 일파만파로 학교 내에서 퍼져 나갔고, 평소에 학교규칙을 어겨 벌을 받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던 지라 이내 폭력과 관련된 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뺨을 때린 아이가 평소에 자기반 아이들을 간혹 괴롭히고 여타 아이들로부터 많은 불만을 가지게 했던지라 급기야는 이번 사건으로 학교 폭력 심의회에 올려 지게 된 것이었다. “그 아이 평소에 행실이 너무 나빠 여러 아이들로부터 많은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다고 하던데….” “수업시간에도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 선생님들을 당혹케 하기도 하지요.” “여하튼 폭력은 용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의 수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에 자신들의 귀한 자식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교사들이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 아이는 이런 상태로는 우리 학교에 적을 두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학을 권유하거나 아니면 그 극단적인 처벌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처벌이 해결의 대상이 될 순 없다고 봅니다. 결국 그 아이가 그 나이에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은 학교 말고는 없다고 봅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아인 도를 넘어서는 것 같아요.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 아이인데…. 학교 규정대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 아이의 처벌을 언급하면서 전학이나 자퇴의 방법을 거론하였다. 더 이상 반대 의견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견을 내는 것을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그 아이가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교육은 좋고 아름다운 것만 감싸 안는 것은 아닌데! “교육은 진정 아름답고 행복하고 좋은 것만 감싸 안아야 하는 것은 아닌데, 정말로 우리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야.” “하지만 일부 극소수의 아이들로 대다수의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도 무조건 교육적인 잣대로 봐야 하는 건지….” 대부분 현장의 선생님들도 이런 부분들에 많은 고심들을 한다. 정작 어떤 아이든 학교를 떠나보내게 하고픈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외적 변수들이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상처와 시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문득 뺨을 때렸다는 그 아이를 수업 시간에 유심히 바라보았다. 평소에 조금 행동이나 말이 과정 되어서 그렇지 심성은 그리 나쁜 아이가 아니다 싶었는데, 정작 일을 당하고 나니 애잔한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학기 초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바동대는 모습에 칭찬도 해줘 가며 이제까지 시간이 흘러왔는데,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보내야 하니 그 아이를 눈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정작 교육은 뭔가! 아름다운 좋은 것만 감싸 안는 것이 아니거늘. 하지만 우리 교육 현실은 그런 지고지순의 명제조차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현실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발버둥 치는 나의 모습이 때론 묘한 역설적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늘은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라 마음이 가볍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화창한 날씨면 금상첨화이겠는데 그렇지 못해도 어린애처럼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방학을 해도 인문계 고등학교라 학생들이 평소와 같이 아침 8시부터 보충수업을 시작하니 크게 달라지는 게 없겠지만 그래도 밤늦게까지 야자도 하지 않고 수업이 없으면 집에 가서 그 동안 ‘해야 할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저는 오늘 아침 이번 한 학기 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서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잘 했는지? 아니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혼돈하면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아니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면서 엉뚱한 일에만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건강에 비상이 걸린 저로서는 무엇보다 우선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아침 일찍 오고, 저녁 늦게 가고 하니 평소에 운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해가 있을 때 퇴근해 산보도 하고 , 책도 읽고, 명상도 해야 하는데 현재의 위치에서 학교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해 안타까울 뿐이죠. 그렇지만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겠죠. 그래서 능력의 한계가 오지만 인내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부 선생님들은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우선시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하는데 몇 분 젊은 선생님들께서는 보충수업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외부 강사님께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정 연수를 받는다든지, 건강관리가 특별히 필요하다든지, 임신을 했다든지 하면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보충수업을 할 수 있는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들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학생들의 배움을 외면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학생수준을 잘 모르는 외부 강사 선생님께서 방학 동안에만 수업하시는 것 하고 지금까지 수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일관성 있게 수업하는 것 하고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겠습니까? 그런데도 해야 할 일은 멀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수업을 포기하고 학생들을 멀리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하게 됩니다. 사명의식을 갖고 조금 손해보면서 선생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개인의 일보다 우선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도 방학이다 하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되 해야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놀고 싶다고 실컷 놀기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든지, 잠자고 싶다고 해서 잠만 자고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지 않는다든지 돈을 아껴야 하는데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흥청망청 돈을 쓴다든지 하는 무절제한 행동과 정상을 벗어나는 생활을 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혼돈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여름방학 동안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구분하여 무엇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몇 번이고 생각하며 실천에 옮겨 성공적인 방학이 되도록 이끌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존 맥스웰, 짐 도넌은 ‘ '해야 할 일'과 '원하는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 '해야 할 일'을 먼저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생활의 지혜입니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방학을 맞이하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매 맞는 장면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연구실로 돌아 온 나는 기간제 교사인 새내기 박 선생님한테 매 맞는 장면의 동영상을 빨리 보여 달라고 하니 “선생님, 그것 보지 마세요.” 한다. “왜 그러지?” 하니까 “그것 보면 대단히 기분이 나빠요.” 한다. 더욱 궁금하여 “그래. 더 궁금해지는군, 빨리 보여줘.” 하는 순간에 벌써 화면에 체벌하는 장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면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매를 맞는 사람보다도 매 맞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더 공포심을 가지듯, 그야말로 이제 겨우 유치원 생활을 벗어난 아이들을 교단으로 불러내 뺨을 때리고 책을 던지는 모습이 보인다. 같은 교육자의 입장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내가 체벌을 한 당사자인 양 수치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들의 각종 비행으로 국민들의 눈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얼마나 언론의 매를 맞아야 할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체벌 하면 먼저 '회초리'를 떠올리듯 물리적 수단으로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써 교육 효과를 얻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물리적 수단'은 통상 회초리 같은 도구나 체벌을 가하는 교사의 신체의 일부를 의미하지만 반드시 직접적 접촉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걸음이나 손들고 있기 등 당사자간 직접적 접촉 없이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혹은 언어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도 체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두 분 계신다. 한 분은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6학년 선생님이시다. 2학년 때 선생님은 새내기 선생님으로 키도 작으시고 마음씨가 참 좋은 분이라고 기억을 한다. 감기로 결석을 하여 숙제를 6학년 누나가 그림 그리기와 글씨 쓰기를 대신 해 준 것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숙제검사를 맡을 때 나는 누나가 해 준 것을 알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며 책상위에 펼쳐 놓았는데, 오히려 여러 친구들 앞에서 결석을 하였는데도 숙제를 잘 해왔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그 때 칭찬의 위력은 너무나 위대하고 감격스러워서 지금껏 잊어지지 않는다. 그 때의 칭찬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후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칭찬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 그 때 선생님이 숙제를 대신 해 주었다는 것을 모르고 칭찬을 하였으리라고 생각은 않는다. 항상 순둥이처럼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것을 알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하셨다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6학년 때 선생님은 엄격하시고 무서웠던 분이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으로 매달 시험을 보아 우열반 편성을 하였었다. 선생님은 붓글씨를 잘 쓰셨는데, 교실벽면에 큰 글씨로 ‘언행일치, 실천궁행’이라는 표어를 붙여 놓고 철저하게 실천하기를 강요 하셨다. 선생님 스스로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실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다 보니 스파르타식으로 규율과 규칙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는 엄청난 꾸지람과 매를 맞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지휘봉 겸 회초리가 머리위로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하여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였는지 지금 생각을 하여도 등에 땀이 흐른다. 선생님의 발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기도 하고,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심하게 맞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매가 무서워서 공부시간은 쥐 죽은 듯 조용하여야만 하였고,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숙제도 꼬박꼬박 열심히 하였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입시가 다가올수록 선생님은 더욱 열성적으로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하시게 되어 회초리의 강도도 더 늘어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도 선생님만 나타났다고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리는 부동자세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20여년이 지난 후 반창회를 하자며 연락이 왔다. 반창회를 하면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도 찾아뵙는다며 꼭 함께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어릴 때 의욕에 넘쳐 열심히 가르치시던 엄격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건강은 어떠신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였다. 같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엄하고 무서웠던 선생님을 만나면 주눅이 들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하고, 어렸을 때의 그 느낌을 씻어버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같은 교육자로 당연히 찾아뵙고 선생님의 교육경륜과 교육업무와 관련된 지도조언을 받고 싶기도 하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도 학생들과 생활한지도 30여 년이 지났다. 해마다 학생을 맡게 되면 우리 반 학생들을 1년 동안에 어떠한 학생으로 지도를 할 것인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희망에 부풀어 학급경영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학생을 대할 때는 내 자식과 같이 잘 했을 때는 칭찬으로 잘못했을 때는 꾸지람과 체벌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열린 교육은 교육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교사 주도의 수업에서 학생주도의 학습으로 일방적인 강의식 위주에서 다양한 학습형태로 창의적인 학습활동과 학생주도의 학습으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변화이다. 종전에는 교과서와 선생님의 말씀이 법전이며 성전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ICT활용 교육으로 기성세대와는 달리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신성시 하거나 절대시 하지 않으며,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의견과 주장을 내 세우면서 학생지도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이제 그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계셔도 장난을 치고, 감정을 감추지 않고 똑바로 선생님 눈을 쳐다보며 의사 표현을 당당히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준비하지 않은 수업시간은 학습지도가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생활지도 또한 다양한 사회변화에 따른 문제행동,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성폭력, 반항적인 언어와 행동, 학부모님들의 자기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해가 다르게 학생 가르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제 변화하는 사회에 선생님들도 학생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알맞은 다양한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또한 체벌보다는 칭찬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는 칭찬의 위력을 내가 실제로 체험을 하였고 학생지도에서 칭찬의 효과를 톡톡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칭찬은 체벌보다 지속성이 오래가며 바람직한 행동의 개선이 된다는 점을 교육학자들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아 실감나게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칭찬은 잠자고 있는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자씨는 아프리카 기아지대를 탐방하고 돌아와서 저술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그의 수상집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잘 타나내는 것이리라.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 모두 다시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는 31일 실시되는 교육위원선거가 과열경쟁으로 인해 혼탁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와 비전교조의 세력다툼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 사립과 비사립간의 대결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선거운동초기에 과열, 혼탁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위원선거에서 과열경쟁으로 인한 우려는 이번 선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매번 선거때마다 뒤풀이 되어왔던 현상이다. 후보자들의 과열경쟁, 비방등이 원인이 되어 고소, 고발등의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 결과에 따라 중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후보직을 사퇴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렇게 다른 선거에 비해 유독 교육위원 선거에서 과열경쟁으로 인한 혼탁선거운동이 많은 것은 선거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구조적인 문제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교육위원선거가 학교운영위원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는 간접투표형식이다 보니 학연, 지연등의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후보가 학교운영위원을 자기 사람으로 진출시키느냐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 교원들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엉뚱한 인사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교육자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위원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세가지 뿐이다. 후보자의 선거공보물, 언론등에서 주최하는 토론회 참가, 합동연설회가 전부이다. 이 방법외에는 유권자를 만나거나 전화, 문자메시지, 메일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엄격한 선거법이 결국은 후보자들로 하여금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을 엄격히 지킨다고보면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선거법이라는 지적이다. 선거법 자체가 이렇게 엄격함에 따라 해당 유권자들의 알 권리도 침해될 수 있다. 후보자를 정확히 알고 투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거공보물만을 참고로 하여 투표를 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그동안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후보가 교육을 위해 일할 후보자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후보자들은 이미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깊숙히 관여를 할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간에 인맥을 총동원하고 자기 사람을 운영위원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당,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일선학교의 운영위원회가 자칫 변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순수함을 잃고 운영위원회가 정치판으로 변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직선에 의한 선출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선거법 자체만이라도 손질되어야 한다.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요즈음 같은 정보화시대에 인터넷활용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활용등은 도리어 적극권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위원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교육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과열, 혼탁선거를 없애기 위해서는 교육위원 출마자들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도적인 보완도 중요하다고 본다. 즉 의식변화와 함께 선거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것이 과열, 혼탁선거를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야마가타현교육위원회가 현내 중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 실태 조사에서, 약 90% 정도의 교사가 업무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일시적인 일의 집중, 보호자나 지역사회에의 대응 등으로 현장 교사가 골치를 앓고 있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교육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교사의 근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 교육위원회가 민간 조사회사에 위탁해 조사한 것이다. 조사방법으로 그룹 인터뷰, 업무 상황의 현지 조사, 앙케이트 조사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정리된 보고서를 현 교육위원회가 공표하였다. 보고서에 의하면, 앙케이트 조사는 363명으로부터 회답을 얻은 것으로,「부담을 느끼고 있다」라고 대답한 것은 「매우」, 「조금」, 「가끔」을 합하여 약 90% 정도이다. 그 원인으로서는 「한 시기에 일이 집중되고 있다」와 「본래 가정이나 지역에서 실시해야 하는 것을 학교가 담당하고 있다」는 항목 등이 거론되고 있다. 평균 근로 시간은 평상일에 11.3 시간이며, 학교 행사 등이 있는 날에는 12.9시간이었다. 근무시간외의 일하는 시간은 평상일에 약 39%가 1-4시간으로 대답하였으며, 바쁜 날에는 약 64%가 2-4시간 초과근무라고 회답했다. 교사의 1일 업무 내용을 파악하는 실지 조사에서도, 휴일 출근하는 시간의 평균이 6.9시간이라고 하는 결과가 나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룹 인터뷰에서는 학교 행사가 너무 많으며, 일시적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불만과 관련하여 「교장, 교감이「어떤 학교로 하고 만들고 싶다」라고 할 생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뭐든지 실행하여 바쁘게 시키고 있다」라고하여 학교 관리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많았다. 또 「클럽활동 부서에 따라서는 보호자로부터 더 연습해 주었으면 하면 요망을 받는다」와 「마을이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도록 부탁받는 경우 거절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간다」 등 지역사회나 보호자로부터 과다하게 요망을 받아 일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하여 현교육위원회는 「종래부터 지적되고 있었던 것들이 숫자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하면서, 향후 네 개의 모델교를 정하여 시험적인 대응책이나, 여름방학중 관리직 연수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