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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인간의 삶에서 화장실은 실내의 방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인식밖에 있었다. 어려서 추억을 더듬어 보면 학교에서 벌의 하나로 화장실 청소를 시키거나 하는 정도로 싫어하는 곳 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화장실을 통해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는「화장실 교육」이 초,중학교의 교육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변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매너 등을 전문가로부터 배우고, 청소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토야마현에 있는 나메리카와시립 서부초등학교는 2004년도부터 학급 활동 시간 등을 활용해, 「화장실 체험 교실」을 수시로 실시해 왔다. 현재의 6학년은 4학년 때부터 참가하는 셈이다. 1년째는 「이런 화장실이 생기면 좋겠다」라는 테마로, 아동이 이상적인 색채를 서로 이야기했다. 작년 화장실을 개수할 때에는 벽에 붙이는 타일 그림이 실제로 활용되었다. 또, 화장실내의 냄새나 밝기 등도 조사했다. 금년 7월에는 화장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매너나 효과적인 청소법 등을 실습했다. 강사로 각지에서 화장실의 디자인을 다루고 있는 설계사무소의 건축사가 초대되었다. 화장실을 쾌적한 공간으로 하기 위한 개수에 스스로 참가하여 아이들은 「더럽히면 스스로 닦는다」등의 매너가 몸에 베었다고 한다. 담당 교사인 하시바는「화장실은 모두 사용하는 장소라고 하는 인식이 매너의 향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청소를 하는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길러졌다」라고 이야기한다. 오카야마시에서는 2년전부터 교육위원회가 시내의 초,중학교 각각 1교를 모델교로 지정하여,「청결함」, 「편리한 사용」등을 키워드로 화장실 정비를 진행시켜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 중 시립코죠중학교는 재해시 등에 지역의 고령자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하여, 화장실은 누구라도 사용하기 쉬운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했다. 이것을 계기로 왜 이러한 디자인이 화장실에 필요한가를 전교 집회에서 생각하기도 했다. 이 학습에는 도쿄에 있는 화장실 기기 생산 담당자들로 구성한 「학교의 화장실 연구회」가 협력했다. 동시 교육위원회의 이타노씨는 「화장실을 통해 개호 받는 측, 개호하는 측 등, 여러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도쿄의 오타구립 쿠하라초등학교에서는 금년 6월에 화장실 생산업체의 사원을 불러 1회 화장실 사용으로 13리터의 물을 사용하는 것도 알게 되어 절수의 중요함이나 환경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이러한 「화장실 교육」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학교의 화장실이 노후되어 각지에서 개수가 시작되었던 적이 있다. 개수를 계기로 어떤 화장실로 만들고 싶은가를 아이들이 생각하게 하는 등, 친밀한 교재로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치바 대학 공학부 조교수 야나기사와씨(교육 시설 계획)는 「화장실은 단지 일을 보는 공간만이 아니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친구나 지역의 사람들과 교류가 깊어지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배려, 유니버설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화장실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요즈음 우리 교육계는 여러 가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립형 사립학교, 방과 후 학교, 교원평가 등 산적한 문제로 교육부와 교사, 학부모, 교원단체들간에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우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교사와 학부모간의 진지한 상호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불신과 갈등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개월 된 큰 아들 윤민, 학교(?)를 보내야 하나? 올해 큰 아들 윤민이가 드디어 학교, 아니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했다. 이제 30개월이 갓 넘은 아이를 남의 손에 보내려 하니 온 식구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또래의 아이들 속에서 잘 적응 여부의 문제에서부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아빠의 엄마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보 도대체 아이를 어디 어린이집에 보내야 될 지 모르겠어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집에서 가까운 곳 보내자구!” “집에서만 가깝다고 아이에게 좋을 까요…” “그러면….” “같이 한 번 몇 군데 둘러봐요. 시설이나 선생님, 그리고 식단 좀 보고 결정해요.” “몇 군데?” 아내는 아이를 어디를 보낼까 내심 오랫동안 고민해 왔었다. 물론 아내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몇 달 전부터 자꾸만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께서도 집에서 이제까지 손수 키웠는데, 낯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자못 걱정이 되시는지 자나께나 손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적응할 거에요.” “그래도 저 어린 것을 한 나절이나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구나, 너희들은 모두 내 손으로 학교 들어갈 때까지 키워서 그런지 몰라도…” 둘째까지 있는 마당에 두 아이를 모두 어머니께서 보신다는 것이 무리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내심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면서도 두 아이를 감내하시기가 벅찬신지 딱 잘라 보내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학부모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저런 고민끝에 아내와 나는 윤민이를 집에서 약간 떨어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세 군데 정도의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해 보고, 주변 시설을 둘러보면서 윤민이가 가서 작 적응하겠다 싶은 어린이집을 결정하게 되었다. ‘정말로 학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게 되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교무실을 드나드는 학부모님들을 보면서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작 입장이 바뀌고 보니 정말로 어렵고도 힘든 부분이 바로 아이의 선생님을 대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를 이번에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는데, 아직 너무 어리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너무 걱정마세요. 여기에는 대부분 윤민이와 비슷한 연령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어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차츰 잘 적응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우리 부부의 아이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염려는 당연한 것이지만, 일단 믿고 맡겨 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선생님들이 아이 본인과 우리 선생님들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했다. 교육도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우리 부부는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서야 윤민이가 갈 곳을 정할 수 있었다. 일단은 주변 환경과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우선 좋은 점으로 판단되었다. 물론 정작 본인의 생각은 물을 수 없었기에 혹시나 다음에 원망의 소리나 듣지 않을까라는 부부의 기우를 뒤로한 채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전날밤 우리 부부는 내내 아이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아이가 입고 갈 옷이며 가방이며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 보았다. 물론 가져갈 것도 거의 없었지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걱정스러운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여보 윤민이가 잘 할까?” “선생님이 믿어 보라고 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믿어보자구.” “그래도 저 어린 것이 밥이나 제대로 먹을 지….” 이래저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윤민이는 그저 새끈새끈 숨소리를 내어가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첫날 아침 우리 부부는 윤민이를 어머니께 맡겨 놓고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없다. 개학을 했는지라, 학교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고 아이들이라 열심히 가르치라고 하시면서 우리 부부를 안심시켜 주셨다. 학교로 향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윤민이가 잘해야 될텐데라는 생각으로….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우리 부부는 서로 전화로 아이의 안부를 확인하기에 바빴다. 윤민이는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놀고 먹고 잘 지냈다는 선생님의 확인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서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윤민이가 벌써 어린이집에 간 지 몇 주일이 지났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친구 아야!, 선생님 아야!” 하면서 친구와 다투거나 선생님께 혼난 일들을 “아야”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한편으로 아이의 표현에 웃음을 던지면서도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대로 윤민이는 어린이집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물론 어린이집 선생님이 윤민이에 대한 좋지 못한 버릇이나 습관 등에 대해 지적해 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정작 내 자식 하나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많은 아이들 앞에, 그것도 다 자란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 떳떳하게 설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정말로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우리 윤민이를 보면서 자꾸만 되뇌어졌다.
출근을 하자마자 달력을 보니 어느새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69일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고3 학생들에겐 12년 동안 쌓은 형설의 공을 테스트 받아야하는 막중한 시험이다. 어찌 보면 인생이 송두리째 걸린 시험이기도 하다. 도시 아이들이야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공부할 곳도 갈 곳도 많지만 우리 시골아이들은 오로지 학교밖에 없다. 학교 선생님밖에 믿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여건이 되는 학생들은 방과후 단과학원에서 영어, 수학 위주의 과외 수업을 받지만 이것조차 안 되는 저소득층의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노동으로 소일하는 편이다. 특히 서산·태안 지역은 생강과 감천배, 육쪽마늘의 주산지이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 지역이라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집안 일 돕기를 더 바라는 분이 많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지역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대도시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 이렇듯 교육 여건이 열악한 시골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주어진 여건 하에서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들의 신망과 격려를 받을 수 있고,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자꾸만 도시로 떠나는 우수한 인재들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내외적으로 실정이 이렇다보니 이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인 교육, 학력 향상, 진로 지도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본교의 처지는 실로 눈물겹다. 이것이 대부분 현재 시골에 소재한 인문계 고등학교들의 비슷한 처지이다. 따라서 밤이 늦도록 비좁은 교실에서 자기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입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겐 숙명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에 맞서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초순이 되면 고3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초조해지기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다. 2학기 수시 준비 지도하랴, 자포자기해 가는 학생 다독이랴, 신경질적으로 변한 아이 달래랴, 1학기 수시에 합격한 학생 단속하랴 도통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리포터 또한 이렇게 분주하고도 고단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다섯 번이나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이 마치 꿈결처럼 멀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기도 하다. '스톡데일'이란 미국 장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불행하게도 월남전에서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8년 동안 수십 가지에 달하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그때마다 스톡데일은 한 명의 부하라도 더 살려서 고향에 돌려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종국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스톡데일의 강한 믿음과 신념,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나는 고3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이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시키는 한편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곤 한다. 그러나 살벌한 입시가 닥칠 때마다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며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현재로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될 수 있으면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즐겁게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따라 도서관 앞의 민들레꽃이 유난히 붉다. 그러나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비견하랴. 지금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내리기에 여념이 없을 산적 영호, 갱스터 현우, 지각대장 건수, 놀래미 기명이, 꽃미남 명진이 그리고 달팽이, 남생이, 엥꼬, 쭈글이...... 녀석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기가 태어난 강을 기억하는 연어처럼 아이들도 지금쯤 고3의 힘든 경험을 잊고 부디 학교를 그리워하길..... 소망해 본다.
요즈음 교육계 안팎에서는「교장공모제」를 둘러싼 찬반공방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아니 찬반공방이라기 보다는 교육혁신위와 정부당국이 각계각층의 반대의사를 무시하고 이를 연내에 시범학교지정 운영을 시작으로 기필코 강행하려는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어 이에 반발하는 각 교원단체등의 저지운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그 강도가 더욱 높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교직을 떠나 있는 필자도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여기저기 기회 있을 때마다 반대의사를 표명하곤 하는 중이다. 그런데「교장공모제」를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여 반대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그 주장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아 거의 이구동성에 가까운 내용인걸 보면 아마도 그 주장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고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 내용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일이 밝히는 일은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거꾸로, 혁신위와 정부당국이「교장공모제」를 뜬금없이 들고 나와 이토록 교직사회 뿐 아니라 일반사회 까지 벌집을 쑤시듯이 소란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차분히 짚어 보면서 이문제가 왜 합당치 않은 것인지를 따지고 싶다. 교육혁신위와 정부당국은 현행 교장승진제도가 문제투성이로서 이대로 교장 임용제도를 계속해나가면 한마디로 교육은 실패할 뿐이기 때문에 「교장공모제」가 아니면 교육의 미래와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행 교장 승진 임용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조속히 그리고 과감히 개선 보완하는 일이 논의되고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중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장임용제도중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현행제도가 있다. 바로「교장공모제」의 와중에 묻혀 그 개념조차도 희석된 가운데 그러나 지금도 소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교장초빙제」이다. 일부 해당학교의 교장과 학운위원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교원이건 학부모이건 교육정책 당국이건 일선학교이건 관심의 테두리밖에 밀려나 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온갖 오류와 부당성과 비리등이 알려지지 않는 채 그 독성이 날로 퍼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만약 혁신위나 당국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현행 교장 승진 임용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며「교장공모제」의 당위성을 논할 때 당연히 대두되었어야 할 현행「교장초빙제」에 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교장초빙제」는 그 이름이 허울 좋을 뿐 당초 탄생부터가 편법이었다. 언제였던가 교장임기제가 시행되고 보니 남보다 일찍 40-50대에 교장 승진이 된 사람이 임기(중임포함8년)를 모두 마치고서도 교원정년(62세)은 아직도 멀었을때 당연히 평교사로 돌아가야 하고 그게 싫으면 명예퇴직을 하도록 하는 권고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욕심은 그리 쉽게 교장직을 물러나지 않으려 하니 자연히「교장초빙제」라는 돌파구를 찾게 되고 또 실제로 그들에게 안식처 역할을 「교장초빙제」가 충실히 해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모든 초빙교장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이점 오해 없기 바란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이 허황된 소리가 아니란 걸 밝히기 위해서 필자는 정식으로 교육당국에 다음 자료를 요청하는 바 이다. 「교장초빙제」가 처음 시행된 이후 현재(2006.9.1)까지 ▶초빙교장으로 임용되었던 사람들의 명단 ▶초빙교장으로 임용당시의 잔여교장임기 / 잔여정년연수 ▶초빙교장 임기를 마친후의 근무년수 / 근무직위 ▶초빙교장으로 근무한 학교에서의 특기할 만한 경영실적 물론 위자료는 인사상의 대외비임으로 모두 필자에게 제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당국에서 이 통계자료를 검토해본다면 「교장초빙제」가 왜 태생부터 편법이었으며, 문제점이 들어났다면 왜 표면화 되고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 까지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명백히 따져보기 바라며, 만약에 아무리 분석을 해보아도 필자의 주장은 교육당국을 묘욕하기 위한 헛소리임이 들어난다면 필자는 어떤 책임추궁도 달게 받을 용의가 있다. 해마다 학기말(2월말과 8월말)이 되면 교장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년이 아직 남아 있는 교장들이 예외 없이 기웃거리는 학교가 있으니, 규모가 작고 그 학교 교장이 퇴임하거나 전근되는 학교로서 우선 그 학교 교장과 학운위원에게 접근하여 먼저 「초빙교장제」시행학교 지정을 상부로부터 받아내도록 회유한다. 지정을 받고 안받고는 당해학교의 필요에 의해서 교장의 권한으로 학운위 심의를 거쳐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거꾸로 초빙교장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욕구에 따라 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현 교장이 지정신청을 하게 되는 웃지 못할 형국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다음 수순으로 학운위로부터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시도 교육청에 초빙교장으로 추천이 되고 시도교육청에서는 별다른 심사없이 초빙교장으로 임용되도록함으로서 마침내 이 교장은 무난히 원하던 학교에 초빙교장으로부임한다. 부임해서는 물론 다른 교장보다 그 이름부터 다른 「초빙」교장으로서 훌륭한 경영능력을 발휘해서 낙후되어 있던 그 학교를 눈부시게 발전 시켜 놓은 후 영광스러운 퇴임을 하거나 그래도 정년이 남았으면...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서라도 교장을 놓지는 않겠지요.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운영되는 제도가 어느 부분에서 어떤 형태로 비리 발생의 소지가 있다는 건가? 우선 대상이 될 만한 학교를 물색하여 그 학교 교장과 학운위원으로부터 지정학교 신청을 해줄 것을 부탁해야한다. 이와 같은 중요한 일들이 간단히 전화로만 가능할까? 더구나 이때 그 학교가 교장초빙의 필요가 없어 거절한다면? 초빙교장학교로 지정이 되고 나면 이제 공모에 의해서 희망자의 신청을 받아 학운위가 추천 심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복수로 신청된 대상자들 중에서 추천의 영예를 얻으려면 희망자가 가만히 앉아있어도 당선이 될까? 더구나 학부모 위원이나 지역위원의 대부분은 「교장초빙제」자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초빙교장이 된 뒤에도 교장은 학운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고 만약 눈치만 살핀다면 학교경영에 자기의 소신을 살리기는 어려울 게 뻔하다. 대략 이런정도의 관점을 가지고 「교장초빙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끝으로 또 한가지 교육당국에 질의하겠다. 위와 같이 운영되고 있는 현행「교장초빙제」를 앞으로 검토 없이 계속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교장공모제」가 완전 정착되면 자동적으로 폐기 될 것으로 보고 그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그런데 만약 시행하려고 하는「교장공모제」가 거센 반대에 부딛쳐 무산되고 만다면 현행 일반 교장임용제와「교장초빙제」는 아무런 손질없이 무한정 지속해 나갈 것인가? 혁신위와 정부당국이 교장승진임용제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지지도 받지 못하는 「교장공모제」를 내세우기에 앞서 원점으로 돌아가 「교장초빙제」를 포함한 현행 교장 임용승진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을 토대로 백년대계를 세우기 바란다.
중국인 도행지 교장선생님 일화가 한 잡지 최근호에 실려 있어 전하고자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시며 이것저것을 보고계셨는데, 학교의 후미진 곳에서 어느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더랍니다. 그것도 돌로 머리를 찍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순간 당황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꾹 참고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가해자인 학생에게 조용히 “교장실로 따라오너라.”하셨습니다. 교장실에 도착하고 보니 가해학생은 먼저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이후에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큰 소리로 야단치거나, 아니면 가볍게 손찌검을 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교장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세개 꺼내더랍니다. “자, 이것은 너에게 주는 첫 번째 상이다. 내가 너에게 교장실로 따라 오라고 했을때 야단맞을줄 알면서도 먼저 와서 기다렸다. 그것에 대한 칭찬의 선물이다. 받아라.” 사탕을 엉겁결에 받아든 아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몇 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움츠러들었었거든요. 그 다음에 교장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또 사탕을 하나 꺼냅니다. “이것은 너에게 주는 두 번째 상이다. 내가 너에게 그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을때 너는 즉시 행동을 멈췄다. 그것은 내 말을 존중하고 따랐다는 증거다. 자, 받아라.” 아이는 놀라다 못해서 눈이 커다랗게 변합니다. “자, 마지막 세 번째 상으로 줄 사탕이다. 내가 교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네가 그 아이를 때린것은 그 아이가 여학생을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비록 폭력을 사용한 것이 바람직하지는 못해도 정의감에 불타 행동했기 때문에 정의의 사나이로서 행동한 것에 대한 상이다.” 그러자 가해학생은 참았던 눈물을 펑펑 터뜨립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요즈음 체벌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많은 일은 아니겠지만 언론의 특성상 침소봉대하여 사건을 다루는 성향 때문에 극히 일부의 일이 자극적으로 터져 나오곤 합니다. 학생이 지각했다고 교사가 이백대를 때렸느니, 남자 초등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하였느니 하여 학부모, 교사들의 한숨 소리가 천고마비의 계절처럼 더 높아져만 갑니다. 만일 위 도행지 교장선생님같이 하지 않고, “야, 이놈의 자식들아. 왠 싸움질이야. 당장 교장실로 따라와.”하며 인정사정없이 야단을 쳤더라면 가해학생은 맞는 순간 만큼은 승복을 했을런지 몰라도 진정한 마음속은 인정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제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진 않지만 요즈음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들의 태도가 예전에 비하여 고분고분하지 않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남 얘기하듯 입바른 소리만 한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인격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으니 학교에 와서 끊임없이 배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을 사람되게 가르치고, 행동할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 선생님들입니다. 그 소중한 일에 푸념만 한다고 나아질 것은 없을 겁니다. 완벽한 聖人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꽃으로라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하던데 거창한 그러한 말은 몰라도 자꾸 가르치고 타이르다 보면 잠깐의 삐딱한 마음에서 착한 사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조각가가 재료가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서 작품 만드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재료의 특성에 맞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듬고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힘내십시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수능원서 접수 마감일 아침부터 연구부장과 3학년 부장선생님의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각반 담임선생님의 철저한 점검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없애기 위하여 접수 전에 최종 확인 작업을 하는 연구부장의 얼굴이 진지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였다. 올해 졸업한 한 제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심 반가움에 전화를 받자마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래, 대학생활은 잘 하고 있니?" "선생님, 저 학교 휴학하고 재수하고 있어요." "재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니? 그 과는 네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니?" "그런데 반 학기 다녀보니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다시 수능시험을 보려고요. 수능원서 마감 날짜가 언제까지 알려주세요." 학교를 잘 다니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원서마감일인 오늘 전화를 하여 원서 마감 날짜가 언제인지 물어보는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을 잃었다. "OO아, 그런데 어떻게 하니? 오늘이 원서마감인데…." "네? 정말이에요?" 녀석은 믿어지지가 않는 듯 계속해서 물었다. 그리고 원서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제자에게 그 방법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못할 녀석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녀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부장에게 그 방법을 물어 보았다. 지금이라도 학교에 오면 원서를 쓸 수 있다는 연구부장의 말을 듣고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다급한 듯 신호음이 한번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어떻게 되었어요? 원서 쓸 수 있어요?" "그래, 지금 학교에 나올 수 있니?" 그런데 녀석은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재차 물어 보았다. "지금 학교에 나올 수 있니? OO야." "선생님, 그게∼, 말입니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내년에 원서 쓰겠습니다. 그리고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녀석은 이곳에 있지도 않았으며 원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담임이었던 내가 원서를 써 줄 수도 있었지만 원서에 부착해야 할 사진(2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전화를 하고 난 뒤, 일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녀석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들을 대학에 합격시켜 졸업만 시키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했던 자신의 안일함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사실 고3 담임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점도 많지만 대학과 학과 적성이 맞지 않아 대학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제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는 속상하기도 하다. 마치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양 아이들에게 힘주어 이야기했던 지난날의 나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는 아이들에게 대학에 입학을 하기만 하면 그 고민은 행복으로 바뀔 것이라고 위안을 했던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이론이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안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을 위선으로 받아들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한지 한 학기가 지난 지금 나름대로 대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학과 학과 적성이 맞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일까? 매년 수능원서 접수 때가 되면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해 다시 수능시험을 보겠다며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면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학과를 선택하는데 있어 아이들의 적성을 고려한 입시지도가 이루어져 아이들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방황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 후,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든 선생님들의 바램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내일은 졸업한 모든 아이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 "얘들아, 보고 싶구나."
작년 학년초 어느 날, 학교 교사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간이다. 이따금씩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말소리와 아동들의 대답소리가 새어 나올 뿐이다. 그런데 한적한 모퉁이에서 혼자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인기척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활짝 웃는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지요?”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교감이라는 것을 아는 걸 보면 꽤 눈썰미가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3학년 동준(가명)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 우량아 콘테스트에 나가면 입상이라도 할 것 같은 오동통한 체격이다. 믿음직스럽고 마음씨 좋은 인상이다. 순한 티가 묻어있다. 하얀 피부에 까까머리였다. “그래, 그런데 왜 교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밖에 있니?” “공부하기 싫어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공부하기 재미없어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교감 선생님 이름도 알아요. 이학구지요?” “와, 독똑하구나! 너처럼 내 이름을 아는 학생이 별로 없는데. 넌 대단하구나.” 내 칭찬에 동준이는 씨익 웃는다. 손을 잡고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준이는 학습부적응아로 특수학급을 오가며 기초학습 훈련을 받고 있다.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서 딴전을 부릴 때가 많다고 했다. 교실 이동 중에 혼자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부임인사를 했었는데 담임도 아닌 교감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첫 통성명을 할 때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겨우 성씨만 생각나곤 하는 내게 비하면 얼마나 우수한 능력인가! 그 날부터 동준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11월 학교 강당에서는 ‘현악4중주’ 실내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던 동준이가 연주회 리플릿을 들고 내게 왔다. “교감 선생님, 여기 학교 주소가요 잘못 나왔어요. ‘김제시’인데 ‘완주군’이라고 돼있어요.” 대단한 발견이었다. 오류를 찾아낸 것도, ‘완주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신통했다. 그리고 내게 가져와서 확인하는 것도 꽤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응, 그렇구나. 잘못 썼구나. 야, 동준이 대단한데!” 동준이는 자랑스러운 듯 만면에 웃음을 띠고 싱글벙글 웃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자신감을 키워주는 대단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하고 자기의 관심사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4학년 2학기, 그 때에 비하면 키도 마음도 무척 커버렸다. 수업 시간 중에 혼자 밖에서 노는 일이 없어졌다한다. 학습 부적응 태도는 많이 개선되었고 학급에서 맡은 우유박스 나르기 일인일책 업무도 꾸준히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왔다. 키도 크지만 체격도 또래들보다는 훨씬 컸다. 반갑게 맞으면서 “야, 동준이 많이 컸구나. 씨름 선수 되겠는데?” “선생님, 저 전주로 전학 갈 거예요.” “왜?” “씨름 배우러요.” 아마도 뭔가 소질을 찾아서 그 기능을 길러 줄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부모님께서 하셨던 것 같다. 타고난 우수한 체격과 체력을 바탕으로 전주시내 씨름을 육성하는 학교에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자녀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계발할 필요성을 잘 알고 계시는 부모님인 것 같다. 비록 학습력이 부족하고 또래들과 어울림이 좀 서툴지만 분명 동준이가 잘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 능력을 찾으려는 부모의 열린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1년 전만 해도 천방지축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었는데, 규칙이나 질서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떼쟁이 동준이었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달라져 있을 모습을 생각하고 항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개성과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부단한 교육과 학습을 제공하여 그 방면에 제 1인자가 될 수 있게 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 교육부에서 교장 공모제와 관련된 시범학교 실시 운영을 공고했다. 교육 경력이 아직 일천한 교사로서 자못 이런 교육부의 정책이 과연 교육적인지 묻고 싶다. 너무나 일사천리로 많은 교육정책들이 쏟아져 나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교육현장이 교육부 교육정책의 시험장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올바른 교육개혁을 염두하고 벌이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일선 학교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교장 공모제와 관련된 일련의 교육부의 정책들은 과연 그 정책이 교육적인지의 여부부터 다시 한 번 점검 해볼 필요가 있으리라는 판단이 든다. 일선 학교 현장의 수많은 선생님들은 교사 승진제도의 폐해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교사가 아닌 수많은 외부인들이 일정 기간 학교 운영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그야말로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 번 교장 해 볼까! “해도 해도 너무하네. 이거 교사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막말로 외부 용역을 불러다 학교를 맡기겠다는 거 아니야!” “이 참에 나도 한 번 교장 한 번 해볼까. 정말로 이거 일선 학교 현장의 여론은 무시한 채 너무 막나가는 것 같아.” “우리 교사들도 대부분 학교개혁, 특히 승진제도에 대해 많은 폐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식으로 학교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죠. 특히 일정기간 아무런 책임도 없이 왔다가 가는 식의 마치 교장 자리를 전리품 인 냥 취급하려는 정치 상황이 벌어질 것인 뻔한데….” “하지만 분명 승진을 두고 이제까지 정말로 교육적으로 봐서 자격 없는 교장들이 나온 것도 사실 아니야. 우리끼리 막말로 저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교장이 되었을까 라고 할 정도의 인품을 지닌 이들도 있었잖아. 분명 새로운 승진제도나 인사 관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맞아, 평교사 때는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리저리 딴 점수로 관리자가 되면 정말로 가관 노릇을 하려고 들지.”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승진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 있고 유능한 교사들이 제대로 검증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의 대부분 승진 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현행 교육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교장 공모제가 가지는 문제를 대부분 걱정하는 눈치였다. 특히 정치적으로 혹은 책임성 없는 몇 년간의 교장 자리 메우기가 자칫 교육을 황폐화 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발언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교장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상징성 수십 년간 평교사로서 아이들과 열심히 살다보면 30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교장이라는 관리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조건이 생긴다. 물론 교감이라는 중간 관리자를 거쳐야 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긴 시간 동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저 묵묵하게 아이들과의 자리를 지켜 나간다. 기껏해야 그 중에서 일부만이 관리자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장이라는 자리가 원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수많은 교사들의 인사 적체가 생겨나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인사비리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의 평교사들이 그저 30년간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리고 노력도 없이 교장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장은 학교 경영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그만큼 교육적인 안목과 전문성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교과 지도와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 전반에 걸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선생님들을 적절하게 지도감독 할 수 있는 명분이 서는 자리이다. 이런 전문성과 능력을 갖추어야만 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문외한인 다양한 인사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교육을 단지 권력과 자본의 단순한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말로 유능한 교장의 위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기에 이제까지 대다수 학교의 교장들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적당하게 술수를 부려서 교장이 되어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는 자리로 비쳐진 모양이다. 물론 그런 면도 부인할 수 없다. 학교 현장에 있다 보면 정말로 능력 미달의 교장도 분명 있다. 정작 학교 현장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학교의 문을 열어 교장을 교육과는 문외한인 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선 학교 현장을 알고 못하고를 떠나서 정작 학교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사들의 교과 지도와 생활 지도 등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는 도저히 교장으로서의 위상이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 적합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물론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답보상태에 있다. 초빙 교장제도 실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닌 듯하다. 우선 학교 교장자리가 관리직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겨내야 한다. 교사에서 교감이나 교장으로 가면 학생들과는 거의 무관한 일반 행정직으로 분류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우선 이런 부분들이 제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교장과 교감도 일정 부분 수업을 병행하면서 교장이나 교감의 이름보다는 수석교사나 관리교사로 그 명칭의 교체를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극단적으로 나아간다면 대학처럼 보직제가 될 수 있겠지만, 보직제를 하기에는 학교의 규모나 교사의 수 등의 문제에서 관리의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따라서 가장 근접한 제도는 수석교사나 관리교사로 그 명칭을 바꾸고, 일정 부분 학생지도와 수업에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이 점차 학교현장에서 적용된다면 차후에 순환 보직제도 적용 가능할 것이다.
어느 새 가을이다. 가을이 성큼성큼 걸어와 문 앞에 서서 인사를 한다. 하복을 입은 아이들은 춥다며 동복 언제 입냐며 아우성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까지 윙윙 돌려대던 때가 며칠 전인데 이젠 창문을 꼭꼭 닫곤 열지를 않는다. 요즘 들어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사란 무엇인가?’ 하는 자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집단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온통 난도질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교사들은 그저 땡감 씹는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교원평가와 관련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은 ‘평가’란 피상적인 말에 현혹되어 평가를 거부하는 교사집단을 매도하고 있다. 평가의 기준도 모호하고, 평가의 내용도 모호한 상태에서 교원평가를 받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는 언론들의 보도를 보고 있자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혹자들은 ‘자신 있으면 왜 평가를 못 받아?’ 하고 묻곤 한다. 그런데 그 혹자들이 생각하는 평가는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의 단순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준을 모래알처럼 제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인성’에 대해 이야길 하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들 지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식’에 대해 이야길 한다. 그런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살펴가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부대끼며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다. 탑을 쌓듯 쌓아가다 보면 흠이 생기기도 하고, 간혹 한쪽 귀퉁이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흠을 메우고 쓰러진 귀퉁이를 다시 세워가며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이다. 이 교육은 비단 학교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교육 하면 학교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어쩌다 흠집 나는 일이 발생하면 벌 떼처럼 일어나 개미처럼 물어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육현장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그런 것처럼 싸잡아 비난의 고조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실제로 교육현장에 있으면 말없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용돈을 주기도 하고, 혼자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를 남몰래 주기도 하는 선생님을 볼 수 있다. 헌데 우리 사회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사마귀처럼 어쩌다 터지는 일부 교사의 잘못된 행태를 전부인양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과급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요즘 한 교원단체에서 성과급 반납 투쟁을 하고 있다. 수백억 원의 성과급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각 교육청에선 받지 않겠다며 실랑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과급 반납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럼 성과급이란 게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성과급에 대해, 작업의 성과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고 적혀 있다. 말 그대로 성과급이란 어떤 일에 대한 성과의 결과물에 대한 임금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성과물이란 물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성지도가 그 성과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도 성과로 측정할 수 없다. 그런대도 교육부는 억지를 쓰다시피 성과급이란 명목의 돈을 줌으로써 교직을 혼란으로 몰아놓고 있다. 또 객관적 기준 없는 성과급 배분도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알 터인데도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한 예로, 대부분의 학교에선 성과급을 줄 때 호봉 순으로 순을 매기어 등급을 준다. 그리곤 일부 학교에선 똑같이 배분하기도 한다. 말이 성과급이지 한 마디로 성과와는 상관없이 성과급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떤 교육행위를 성과물로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것으로 환산하여 그 결과를 매긴다면 주관적 잣대가 개입하기 마련이고, 이는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는 많은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일도 그렇겠지만 교육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없이 성급한 결과만을 얻고자 한다면 꼭 부작용이 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교원평가를 강행하고, 성과급제를 밀어붙이는 것이 자신들의 행정적 성과를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가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기다리며 좀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지혜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선생님, 오늘 아침은 9월 셋째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기분이 좀 상쾌하지 않습니까? 저는 걱정했던 태풍 ‘산산’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 출근하는데 지장이 없는데다 국제유가 하락세로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도 5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반가운 아침 뉴스로 인해 마음이 가볍습니다. 저는 어제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일행 9명과 함께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아는 분의 어린 딸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어 때를 놓치기 전에 병문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아산병원을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밤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빨리 다녀온 셈입니다. 그 이유는 운전하신 분께서 운전을 잘 하시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묻고 물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힘들었지만 중요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여행을 할 때 길을 잘 모를 때 묻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도를 보든지 나름대로 짐작만 하고서 찾아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대부분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 않습니까? 찾는 속도도 느리지 않습니까? 헛수고만 합니다. 고생만 합니다. 시간만 낭비합니다. 그렇지만 조그만 자신을 수그리고 물어보면 쉽게 찾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당히 속도가 빠릅니다. 고생도 덜 합니다. 어제 일행 중 한 분은 서울을 올라가면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가기 위해 어느 도로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수시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더군요. 그래서 밀리지 않고 지름길로 잘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언제나 자신을 수그릴 줄 아는 겸허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르면 자꾸 물어야 합니다. 알 때까지 물어야 합니다. 찾아갈 때까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겸허한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저도 학생시절을 되돌아보면 몰라도 알고 싶어도 묻지를 못했습니다. 그것도 몰라 하면서 핀잔줄까봐, 내 실력이 폭로될까봐, 자존심 때문에, 교만함 때문에, 부끄러워 질문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자존심 때문에 잘 묻지 않았습니다. 그 때 조금만 겸허한 자세로 임했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더 많은 것을, 잘 모르는 것을 빨리 배우고 깨닫게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몰라 묻지 않으면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그걸 학생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용기 없는 학생들에게 모르면 물어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든지 학생들에게든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런 대로 많이 묻는 편입니다. 그래서 교무실에서, 골마루에서 언제 어디서든 질문하고 답변하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직 묻는 학생들보다 묻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음을 보게 됩니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물어야 합니다. 모르면 자꾸 물어야 합니다. 귀찮아해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겸손하게 찾아와 묻는 것을 귀찮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큰마음 먹고 질문하는데 질문에 성실하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 때부터 질문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묻는 학생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길을 잘 아는 분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듯이 잘 알아야 물으면 잘 대답할 것 아닙니까? 어제 일행 중 한 분은 아산병원이 보이지 않고 이 주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묻기로 했지만 차만 다니는 거리라 할 수 없이 개인 택시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연세 많으신 택시 기사님은 경고등을 넣고 갓길로 차를 서행하면서 친철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아산병원이 눈앞에 보였지만 워낙 길이 복잡해 자세한 안내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 때 그 기사님께서는 어디로 들어가서 좌회전해서 얼마쯤 가다가 다시 우회전해서 가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고맙습니까? 얼마나 친절합니까? 저도 절을 꾸벅했습니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가르쳐 주는지 머리에 계속 떠오릅니다. 이 때 이 기사님께서 바쁘다고 하면서 지나가도 될 것 아닙니까? 얼마나 싫겠습니까? 차가 가는데 묻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피하지 않고 상세하게 안내하시는 그 기사님의 정신을 우리 선생님들도 배웠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기사님은 서울 지리를 잘 아시는 분이라 친절하게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자기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기사님이 지리를 잘 알듯이 내용을 잘 알아야 친절하게 대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병원 주변에 가서도 입구를 찾지 못해 또 길을 물었습니다. 길을 잘 아시는 분은 셋째 신호등 지나서 우회전 하라고 가르쳐 주더군요. 그러니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잘 알아야 구체적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 대충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알아듣기 쉽도록 자신 있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배움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주의 생활이 보람되었으면 합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법안 마련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학교촌지근절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법안은 촌지를 준 학부모와 받은 교사에게 오고간 금품(현금, 유가증권, 숙박. 회원. 입장권)이나 향응(음식. 골프 접대, 교통. 숙박 편의)의 5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똑같이 물도록 규정했으며, 다만 촌지 제공․수수 학부모와 교사가 자진 신고할 경우 처벌을 면하도록 했다. 제정안은 또 16개 시도교육청에 ‘학교촌지근절대책위’를 설치해 촌지 수수행위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 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을 전담토록 했다고 한다. 이제 촌지는 범법행위로 각 시도에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 전담함으로써 교사 전체가 촌지를 상습적으로 받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제자들에게 나아가 전 사회에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촌지 이야기만 나오면 먼 옛날 새내기 교사 때 겪었던 가장 멋지고 값진 촌지가 생각난다. 이제는 머나먼 동화 속에 나오는 촌지 이야기이다. 30여 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는 새마을 운동과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서정쇄신으로 군대식의 학교 운영이었다. 교감선생님들도 학급을 맡아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의 업무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교감 선생님이 맡은 반을 다른 반과 합반을 하여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 학급을 경험도 없는 새내기 교사인 내가 맡았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는지는 요즈음과 같은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장난을 즐겨하고 활동량이 많은 3학년 학생 87명이 좁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공부시간도 시간이지만 쉬는 시간의 생활지도는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녀석들은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다보니 연신 사고가 나고 다치고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월요일부터 소리 지르다 보면 금요일쯤이면 목이 쉬어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5월 어느 날 오후, 글씨를 읽지 못하여 나머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 교장실에 결재를 맡으로 간 사이에 장난을 치다가 유리창을 깨고 말았다. 그것 아니라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해가 모자랄 판인데, 또 유리창까지 깨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의자 위에 올려 세우고 긴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렸다. 화가 조금은 풀렸다. "오늘은 나머지 공부 그만하고 집으로 간다. 책보를 잘 챙기도록 해. 그리고 오늘 배운 것 집에서 써 가지고 와. 알았어?" "……." 대답이 없다. "빨리 집으로 가!" 교실 밖을 나갈 때 보니 종아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미안했다. 화가 나기는 하였지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교실 모퉁이를 돌아가는 녀석을 다시 불러서 교실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누런 찌그러진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담고 종아리를 담그게 하였다.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녀석은 의아한 듯 놀란 눈으로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해서 너를 심하게 때렸구나!" "선생님, 괜찮아요. 나 별로 아~안 아팠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앞으로 좀 더 우리 열심히 잘 해 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교실에 웬 거지가 들어와 있었다. "웬 일로 교실에 들어 오셨지요?" "아~, 저 철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철이 아버지는 남루한 옷에 동냥자루를 등에 매고 있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 "선생님, 절 받으셔유~." 다짜고짜로 교실 바닥에 큰 절을 넙죽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겁결에 엎드려서 같이 절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마음씨도 착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잘 가르쳐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 막걸리 한잔 사 드리려고 왔구먼유~. 저는 아랫동네 동냥을 하러 갔다가 오는 길이여유~." 선생님 생각을 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학교 옆 동네 막걸리 집으로 갔다. 그날의 막걸리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떠한 음식보다도 가장 값진 선물이며 촌지였다. 나는 학교와 교사의 촌지 문제가 매스컴에 보도될 때마다, 항상 새내기 교사 때의 촌지가 생각이 난다.
교장선출 보직제 도입을 하겠다고 계속 강조하면서 전교조에서 펼치는 논리중의 한가지, '선출된 대학총장이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수로 돌아오는 것처럼 초,중,고에서도 교장을 교사들이 선출하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 시스템이 교장선출보직제이다.'라는 것이다. 대학교수와 교사를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수와 교사는 하는일이나 위치 등이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교장선출보직제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며칠전 대학교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학총장이 다시 교수로 돌아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대학교수나 선생님들이나 학생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우대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교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대학총장에 출마할 의사가 있는 교수가 있다면 그 교수는 여러가지로 다른 교수들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강의를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총장이 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예를 들면 교수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종 경조사에 남들보다 더 참가하고 부조금도 남들보다 더 내고, 그래야 됩니다. 사실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지도 잘한다고 그 교수가 총장되는 것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나중에 총장선거에 출마해도 당선되지 않습니다. 학생들 잘 지도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총장이 될 듯한 교수와 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나중에 보직이라도 하나 맡을 수 있으니까요. 대학교수들 사이에서 소위 '파벌'이 생기게 됩니다. 저는 이런것이 싫어서 아이들 잘 가르치고 가급적 교수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그런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학총장을 뽑는데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교장을 교사들의 투표로 뽑는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공모교장을 뽑는다면 그야말로 문제점 투성이가 될 것이다. 문제가 나타나서 검증이 된 것을 추진하고자 하는 전교조와 교육혁신위원회, 그리고 교육부의 행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결국은 교단을 갈등과 반목의 장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윤정일 교수(사진)가 23일 제38대 교육학회장에 선출됐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이다. 윤 차기회장은 서울대 사범대학장, 서울사대 부설 교육행정연수원장,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했다. 한편 한국교육학회는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입각으로 공석이 된 37대 회장의 잔여임기(12월 31일까지) 김재복 부회장이 회장권한대행을 맡기로 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국 교원들에게 추선 이전에 2차로 차등성과급을 지급키로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6일 당초 계획대로 올해 성과급 예산 4천898억원 가운데 1차 지급분(71%) 3천478억원에 이어 2차 지급분(29%) 1천420억원을 추석 이전에 지급토록 시도교육청에 지시했다. 교육부는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성과급 총액 가운데 20%를 상위 30% A등급, 중간 30~70%는 B등급, 하위 30%는 C등급 등 3개 등급으로 나눠주도록 했다. 이 경우 A등급은 41만4천670원, B등급은 38만4천650원, C등급은 36만2천60원을 받는다. 1,2차 지급분을 합하면 두차례 모두 A등급을 받은 교원과 두차례 모두 C 등급을 받은 교원은 연간 성과급에서 18만3천원 차이가 난다. 성과급은 시도교육감이나 교육장, 단위 학교장이 보직여부, 수업시간, 포상실적, 근속연수 등을 따져 지급방법을 결정한다. 이와 관련, 전교조는 "차등 성과급은 결국 교원들 사이의 비교육적 경쟁을 유발하게 된다"며 "교육부가 차등성과급 지급을 다시 강행할 경우 1차 성과급 반납투쟁 때 모은 금액과 합쳐 다시 반납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이에 앞서 8만여명의 교사들로부터 성과급 754억원여원을 반납받아 각 지부별 계좌에 모아놓고 있으며 집행부는 11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각 시도를 돌며 29일까지 '전국 순회 대장정'을 진행 중이다.
학교.학급.학생당 경비로 산출, 일괄 지급되던 학교운영지원비가 내년도부터 차등 지원된다. 충북도교육청은 학교운동부 육성 등 학교운영에 따른 어려움을 해소하고, 외부재원 유치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내년부터 학교운영 기본경비 지원 방식을 변경해 시행키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학교 운동부를 육성하는 학교 가운데 학교회계에서 500만원 이상 운동부에 지원한 학교는 도교육청이 지원액의 30%를 지원하고 학력제고 추진을 위해 학교운영 기본경비의 16.5% 이상을 전기요금으로 지출하는 31개 고교에도 학교별로 1천만원씩을 지원키로 했다. 이와 함께 기업체나 동문회 등 외부로부터 재원을 유치하여 학교 교육활동에 투자한 학교에 대해서는 유치액의 20%를 성과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도교육청은 앞으로 학교간 실정을 고려해 학교운영 기본경비를 합리적으로 배분, 학교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재정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부산지역 초등학생의 74%는 게임을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초등학생의 15%, 중학생의 66%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사단법인 부산교육연구소(소장 이일권)가 지난 6월12일부터 10일간 부산시내 초.중학생 1천294명(초등 787명, 중학 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실태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TV시청 시간은 1시간 48분으로, 컴퓨터 사용 시간 1시간10분보다 다소 긴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목적으로는 '게임'이 74.8%로 가장 높았고 '인터넷 정보 검색'이 56.3%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중학생의 경우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1시간 42분, 컴퓨터 사용시간은 1시간 27분으로 조사됐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목적으로는 게임(67.7%), 음악듣기(62%), 인터넷 정보검색(56.4%), 인터넷 카페방문(44.6%), 채팅(35.7%) 순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소유에 대한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경우 14.9%가, 중학생의 경우 66.1%가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요금은 초등학생이 월 평균 2만8천292원, 중학생은 3만2천937원으로 조사됐다. 학원수강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경우 1곳 이상 수강이 90.2%, 3곳 이상은 28.1%인 것으로 나타났고 중학생의 경우 1곳 이상 77.2%, 3곳 이상은 8.9%인 것으로 집계됐다. 토요 휴업일에 대한 생활실태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22.7%가 돌봐줄 어른이 없이 토요 휴업일을 지내고, 중학생은 32.5%가 혼자 토요일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점 가을은 윤곽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흐린 가을하늘에서 점점 청명한 가을하늘로 바뀝니다. 햇살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습니다. 그저 견디기 좋을 만큼 비쳐줍니다. 학생들은 시험 준비에 바쁘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을 찾습니다. 삼삼오오 나무 아래 모입니다. 생각을 합니다. 다소곳이 웃음꽃을 피웁니다. 노래를 합니다. 낭만이 넘칩니다. 오늘 같은 초가을은 삶이 소극적이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표정이 어둡지 않습니다. 생각 없는 사람에서 생각 있는 사람으로 바꿔줍니다. 선생님들께서는 틈틈이 오늘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 오늘이 참 좋은 하루였다고 기억되는 날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의 습관들을 읽어보고 자신을 점검해 봅니다. 과연 나의 생각없는 지수는 얼마일까? 1에서 10으로 가정했을 때 2 내지 3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지만 그 기준에 의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생각지수 2내지 3에서 10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렵니다. 그러면 생각없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있는 사람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한번 읽어보시고 ‘생각없음 지수’가 높으신지 아니면 ‘생각있음 지수’가 높으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도 '생각없음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 보고 7가지의 생각있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쳤으면 합니다. “① 항상 과거에 산다 ②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한다 ③ 보편적인 법칙에서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④ 편안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항상 바쁘다 ⑤ 절대로 주변을 정리하지 않는다 ⑥ 가능한 한 미루고 또 미룬다 ⑦ 매우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저 자신을 7가지 습관에 맞추어 생각해보니 너무 흡사합니다. 그야말로 생각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꼭 나 같은 사람을 두고 교훈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없음 지수가 너무 높습니다. 생각있음 지수가 너무 낮습니다. ① 항상 과거에 산다. 그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과거를 잘 돌아봅니다. 과거에는 어떠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과거에는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는 즐거웠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는 친구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는 생활이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에는 그런대로 건강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등등으로 언제나 과거를 떠올리며 과거와 비교하며 현재를 비관하며 불행해 하며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곤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언제나 남는 것은 슬픔뿐이고 안타까움뿐이고 미련뿐이고 불행뿐이고 좌절뿐이고 낙심뿐입니다. 그런데도 과거에만 매달려 과거타령을 합니다. 전에는 어쨌는데 전에 살던 곳은 어떠했는데 전에는 좋았었는데 전에는 건강했었는데 전에는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하지 못해 과거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과거만 뒤돌아봅니다. 이러한 것들이 아무 유익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지나온 과거를 떨쳐버리며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렵니다. 미래를 꿈꾸렵니다. 미래를 바라보렵니다. 그러면서 현재를 즐기렵니다. 행복해 하렵니다. 생활의 여유를 찾으렵니다.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하며 웃으며 살렵니다. ②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생각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하는데 저가 꼭 그러했습니다. 저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하지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아예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고 싶은 일만 하지 하기 싫으면 아무리 해야 할 일이라도 하지 않습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의 버릇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잘할 수 없어도 해야 할 일이면 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면 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렵니다. 잘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이면 더 열심히 하렵니다. ③ 보편적인 법칙에서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보편적인 법칙에서 나만은 예외이다’라고 하는 생각도 하지 않으렵니다. 내만 특별대우 받으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도 버리렵니다. 내가 뭐 잘났다고 나만은 제외합니까? 예외라고 하면서 규칙을 위반합니까? 누구나 지켜야 규칙이고 법칙이라면 무조건 따라야지요. 만약 학생들 밖에 나갈 때 실내화 신고 나가지 말라고 해놓고 나만 신고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④ 편안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항상 바쁘다. 편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항상 바쁘지는 않지만 편해지려고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더 편해질 수 있나를 늘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편해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남에게 불편을 줘서야 되겠습니까?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 규칙을 위반해서야 되겠습니까? 편해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해서야 되겠습니까? 편함이 목적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힘들다고 편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기피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편하지 않더라도 보람된 일이라면 하렵니다. ⑤ 절대로 주변을 정리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저는 남들이 볼 때 게으른 사람 편에 속합니다. 주변정리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주변이 깨끗하지 못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순된 생활을 해오고 있지 않나 하면서 반성하기도 합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게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함으로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으렵니다. ⑥ 가능한 한 미루고 또 미룬다. 저는 정말 무슨 일이든 할 일을 가능한 한 미루고 또 미루고 하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이 차야 합니다. 막바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실수가 많습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습니다. 어떤 때는 해야 할 때 바로 할 때가 있기도 하는데 그 때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부담이 적습니다. 실수도 적습니다.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담 없이, 가볍게, 실수도 적게, 시행착오도 줄이면서 즉각 그 때 그 때 하려고 해 보렵니다. ⑦ 매우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저는 이 부분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생각이 많습니다. 생각을 많이 합니다. 출퇴근하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운동장을 돌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연속극을 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뉴스를 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책을 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업무를 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을 지켜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들을 지켜보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은 힘주어서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하는 일들이 매우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으시다면 이제부터라도 아무리 바빠도 여유를 찾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게 좋습니다. 바빠 생각할 여유가 없으시면 식사를 하면서 생각도 해보시든지, 교실에 들어가며 나오면서 생각해 보시든지 무엇을 틈나는 대로 생각하며 살아 생각없음 지수가 높기보다 생각있음 지수가 높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위의 7가지 생각없는 사람들의 습관처럼 살지 말고 생각있는 사람들의 습관으로 바뀔 수 있도록 깨우쳐 주었으면 합니다. 생각있는 사람들의 습관이란 ① 항상 미래에 산다 ②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일은 한다. ③ 보편적인 법칙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다 ④ 보람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항상 바쁘다 ⑤ 언제나 주변을 정리한다. ⑥ 해야 할 일은 즉각 한다. ⑦ 아무리 바빠도 생각할 여유를 갖는다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과학신문'을 만들었다. 평소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재미있는 그림과 곁들여 본인들이 직접 편집한 신문이다. 각종 신문이나 과학과 관련된 잡지들에서 오리거나 스크랩하여 붙이고 댓글을 달았다. 내용이 너무 딱딱해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교과목들에 이 방법을 적용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중학교의 경우 수행평가로 제시하면 좋겠다.
교정을 돌아다 보니 가을 냄새가 난다. 탐스런 밤톨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아니, 우리 학교에 언제부터 밤나무가 있었나?"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본다. 밤나무가 아니다. 칠엽수(일명 마로니에)이다. 어쩜 그렇게 토실토실한 알밤을 닮았는지? 색깔이나 모양이나 그 윤기까지 빼어 닮았다. 누구는 밤의 유사품 내지는 짝퉁이라고 하는데…. 유사품도 아니고 짝퉁도 아니다. 칠엽수 고유의 열매이다. 다만, 보는 사람을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보니 영어로는 ‘말밤(horse nut)’ 이라고 부르는데 열매에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먹지는 말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경지까지 나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칠엽수 열매를 보고 잠시 생각에 젖어 보았다.
독일의 초중등학교 교사 부족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이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독일 인문학자협회의 보고서를 인용, 부족한 교사의 숫자가 지난해 1만명에서 올해는 1만4천-1만6천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교사 부족 현상에 따라 올해 주당 수업 결손이 100만 시간에 달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인문학자협회는 지난 30년 이상 교사 공급에 문제가 발생해 왔으며 이는 독일 교육의 질에 지속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학, 물리, 라틴어, 종교 등 기초과목 교사의 부족 현상이 심각한 상태라고 이 보고서는 덧붙였다. 교사가 부족한 베를린의 각급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교사가 들어오지 않아 자습을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달 베를린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