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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학교폭력 사건 만큼 선생님을 당황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선생님 중 학폭 업무를 담당해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이 더 클 것이다. 학폭법(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2004년 제정됐고, 현재의 형태로 2012년 개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개선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법률이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학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민원’일 정도로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그리고 해당 학부모들까지 조사와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애초부터 일반 형사법과 달리 훨씬 포괄적인 차원으로 학교폭력이 규정돼 있다 보니 사소하게 볼 수 있는 일들도 학폭으로 다뤄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피해와 가해가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고, 사안의 조사 역시 전문적인 조사기법을 배워본 적 없는 학폭 담당교사가 하다 보니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학폭위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 전문위원이 포함된다고 하지만 선생님과 학부모들로 구성되다 보니 학폭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을 가장 힘 빠지게 하는 것은 학폭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행정력이 소모되는 상황인데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서로 감정이 격해져 학교에 항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해맑게 같이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엇을 위해 학폭을 하나 자괴감마저 든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사건을 조사하고, 처벌하고, 화해까지 시켜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재심과 민원, 행정심판과 소송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학폭 업무를 피하려고 휴직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폭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학폭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는 것이다. 가장 많은 민원이 발생하는 부분도 초동 조치에 관한 문제 제기다. 피해 입은 학생의 안정과 보호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 흥분해 있는 가해 학생을 진정시키는 과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폭 사건의 경우 선생님이 직접 목격하지 않는 한 주변 아이들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최대한 많은 목격자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술이 엇갈리고, 왜곡될 가능성도 크다. 지난 호에서 다뤘던 내용처럼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유의하며 연락을 해야 한다. 학폭법의 개정에 따라 학폭위를 교육청으로 이관한다고 한다. 분명 반길 만한 좋은 소식이지만 현장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선다. 학폭위를 단위 학교에서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순히 학폭위가 교육청으로 이관된다고 해서 학폭 사건이 극적으로 줄어들거나 업무가 경감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육청 학폭위에서 심의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 서류를 준비하는 데 업무가 가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번 개정 과정에 반드시 학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개진돼야 한다. 애초에 교육이라는 따뜻한 대상을 법률의 차가운 언어로 재단하는 학폭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현실을 반영한 정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현장에서 보면 가슴 아파… 수익 때문에 병원학교 안 해 정부가 손실 메꿔줘야 가능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하루 종일 휠체어에 누운 채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른도 힘든데, 아이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중도‧중복, 중증장애 학생들은 의식이 없다시피 하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으니 선생님들도 늘 노심초사죠. 이 아이들이 쾌적한 병실에 누워 치료와 교육을 동시에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생각합니다. 병원학교 설립,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중도‧중복장애, 중증장애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케어하는 특수학교 교원들이 생각하는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오재용 부천상록학교 교장은 “병원학교에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을 하지 않는 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한 채 학교에 방치된 학생들의 건강권과 교육권을 결코 지켜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원학교 설립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수익성 때문입니다. 병실 하나가 빠지면 그만큼 병상가동률이 떨어지고 수익에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거죠. 이들이 자체적인 의지로 병원학교를 운영하기 어려운 만큼 손실을 정부가 메꿔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지역별 대형병원마다 설립될 수 있도록 병원학교를 운영하는 곳에는 기관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등 유인책을 세밀하게 마련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특수학교에 공중보건의사 순회 배치를 늘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오 교장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중증장애 학생들의 의료권 침해가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경련이나 경기가 오면 하루에도 몇 번 씩 119를 부르는 일도 다반사인데다 수업과 동시에 중증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의 업무 과중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는 “조치가 잘못될 경우 기도가 막히거나 청색증이 오는 등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과잉 혹은 소극 대처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학부모들의 민원 반복으로 교사들의 교육활동이 나날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통학차량에 대한 개선도 제안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을 태우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탑승하는 아이들은 두 시간 까지도 통학차량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시간 탑승에 토하거나 바지에 실수하는 아이들도 생기고 이동 중에 경기가 발생할 경우 119호출, 산소 공급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버스노선을 두고 학부모들 간의 갈등도 많이 생긴다고. 그는 “통학버스와 장애인 전용 택시를 늘려 지역별로 3~4명씩 소수의 아이들을 묶어 차량 탑승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게 현장 교원들의 주문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부처 간 벽을 허물고 보다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 더불어 병원학교 확충과 예산확보를 위한 국회 차원의 입법 활동도 보다 활발히 전개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중도‧중복, 중증장애 아이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무너집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건강권과 교육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들…. 장애 아동들과 학부모들은 자신의 권리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것 아닌가요.”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국공립유치원의 민간위탁 등의 내용을 담은 ‘유아교육법 개정안’이 결국 철회됐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전문성 훼손을 우려하는 교총과 교육계의 요구를 전격 수용한 것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교원단체, 학부모, 임용준비생과 가진 긴급간담회와 입법예고 기간에 접수된 많은 우려와 의견을 반영해 더 깊은 논의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철회 이유를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달 15일 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 위탁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박 의원이 7일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교원단체, 학부모, 임용준비생 등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개진됐다. 엄미선 국공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은 “기존 위탁운영 어린이집의 문제점과 현장 만족도가 낮은 상황”이라며 “유치원은 사실상 의무교육인 명실상부한 학교이며 국가와 지자체가 운용을 책임지고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덕성여대‧성신여대‧한국교원대 임용준비생들은 “시험을 통해 국공립 유치원에서 체계적이고 전문성 있는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면서 “위탁기관 유치원 교사 선발 시 교원 간 경쟁과 국공립유치원 질 저하, 국공립유치원 간 교사의 신분에 혼동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구종 강릉원주대 교수는 “국‧공립과 사립으로 대립하는 시각보다 유아교육 전체로 봤을 때 어떤 안이 유아교육의 앞날에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박 의원은 간담회 이후 철회 입장을 내고 “국공립유치원의 학급당 유아 수 과밀 문제 해소 및 학부모들이 필요한 맞춤형 돌봄 확대 등 양적 확충 뿐 아니라 질적 차원에서도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총과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 등 교육계는 10일 환영 논평을 내고 “유아교육의 공공성‧전문성을 지켜달라는 유아교육계와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정부와 국회는 무엇보다 공립 단설유치원 설립 확대와 이를 위한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논평을 통해 “이번 논란을 통해 국민과 학부모, 교육계는 민간 위탁 방식이라는 ‘무늬만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 원아 수용률 40% 도달 목표는 정상적인 국‧공립 유치원 신‧증설 확대 정책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립유치원 교사 고용 승계와 관련해 “국‧공립 신규 교사 임용에 있어 ‘공개 전형’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총 등은 ‘학교’로서 유치원을 명확히 인식시키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에서 ‘유치원’ 명칭을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데에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경북도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지난 6일 영주 한국국제조리고등학교 특설무대에서 경북도와 영주시가 후원한 ‘2019 한국사찰음식전’을 열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웰빙 사찰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마련되었다. 행사에는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경북도지사, 영주시장, 사찰음식의 대가인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스님, 해외 최정상 미슐랭 셰프들과 외신기자 등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준비된 메뉴는 장뇌삼・수삼 튀김, 마 연근 초절임, 죽순구이, 표고 엿장 조림, 올방개묵과 도토리묵을 곁드린 샐러드, 발우상 등이다. 영주 출생의 정관스님이 영주시의 향토 식자재인 ‘풍기 인삼’을 활용한 만찬이 미슐랭 셰프들을 비롯한 외신 기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정관스님은 넷플릭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시즌3’에 출현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5년 뉴욕타임스에 ‘정관 스님, 철학적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정관스님은 "한국사찰음식전을 통해 자연의 에너지를 담아 현대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사찰음식을 통해 치유하고 싶다"고 말하며 "사찰음식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양념을 줄여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발우공양을 통해 식재료와 음식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국제조리고 학생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건강식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의 전통을 세계화할 수 있는 글로벌 마인드를 높이는데 큰 의의가 있었고, 미슐랭셰프의 특강을 통해 셰프로서의 자질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국제조리고 김일동 교장은 "우리 학교를 한국 웰빙 음식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특화된 조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임종식 교육감은 “경북 특성화고에서 조리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담대한 포부와 비전을 갖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품는 조리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서울효제초 세미나실에서 열린 ‘2019 학업중단예방 담당자 역량강화 연수’ 참석자들이 지은희 자양고 교사의 대안교실 운영사례 발표를 듣고 있다.
경북 영천시 신녕초등학교(교장 박상호)는 6월 5일 오후 1시 30분부터 영천 소방서(책임자 김선자)의 협조로 본교 교직원을 대상으로심폐소생술과 하임리히법 교육을 실시하였다.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폐소생술 교육은심폐소생술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방법을 익혀 실전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요령을 침착하게 실습해봄으로써, 교직원들에게 심폐소생술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신녕초등학교는 매년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심폐소생술의 대응요령과 방법을 실습해봄으로써 응급상황 시 학교 구성원의 건강 및 안전 확보를 위한 심폐소생술 수행 능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주 이안초등학교(교장 김봉수)에서는 6월 10일(월) 이안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드론동아리 학생들이 드론을 날려보는 첫 비행을 시작했다. 본교 드론 동아리는 상주장학회 예산을 보조받아 방과후에 학생들이 자율적인 활동으로 운영된다. 이번 행사는 드론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드론의 구조를 먼저 학습하고 직접 조립을 해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자신의 드론을 직접 조립해본 학생들은 e학습터를 통해 드론의 기본 조종방법에 대해 충분히 학습을 한 후 운동장에서 드론을 비행시켜 보았다. 학생들은 처음 드론을 비행시켰지만 충분한 학습덕분에 능숙하게 드론을 비행시킬 수 있었다. 앞으로 드론동아리는 드론을 활용한 코딩교육, 카메라 사진촬영, 드론 스포츠 활동 등 학생들의 자율적인 계획에 의해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운영될 예정이다. 이안초등학교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이○○ 교사는 "개정교육과정에서 코딩교육이 도입되었지만 학생들의 흥미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드론 동아리 활동으로 코딩 교육의 흥미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큰 기대가 된다"고 말하였다.
앞으로는 대기오염 중 미세먼지 뿐 아니라 오존에 대해서도 대응 매뉴얼이 마련된다. 또 대기오염 업무 담당 교직원을 지정하도록 세부 행동요령을 작성해야 한다. 11일 국무회의는 이같은 내용의 학교보건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가결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19일 시행 예정인 개정 학교보건법에 따라 대기오염 대응 매뉴얼에 포함돼야 하는 구체적 내용과 배포방법, 학교장이 수립해야 하는 세부 행동요령을 규정하기 위해 이뤄졌다. 기존에 있던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은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세 가지 대기오염 물질 중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에 대한 대응만 담고 있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작성하게 되는 대기오염 대응 매뉴얼에는 오존이 추가된다. 오존이 높을 경우 기도와 폐가 손상될 수 있고, 눈과 코 등을 자극한다. 미세먼지와는 다르게 마스크로 차단하기 어려워실외활동 자제 등의 대응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학교장은 세부 행동요령에 대기오염 대응 업무를 관리하는 교직원의 지정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해 사실상 대기오염 업무를 전담하는 교직원을 둬야 하게 됐다. 기존에 미세먼지 대응을 담당하던 교원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오존 업무와 시행령에서 정하는 세부사항이 추가되면서 다시 한 번 업무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정안에는 보건실의 설치기준에 시설과 기구에 더해 '용품'이 추가돼 보건실에 위생용품 등을 비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국무회의에서는 이외에도 전국기능경시대회 또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입상하고 실기교사 교직과목 4학점 이상 이수한 경우 실기교사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하는 교원자격검정령 개정안과직업교육훈련 관련 실태조사 관한 세부 내용을 규정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시행령 개정안 등이 통과됐다.
올해 초등학교에서 소프트웨어교육(SW교육)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교육부가 예비 초등교원의 지도 역량 강화에 나선다. 교육부는 12일 2019년 교원양성대학 소프트웨어교육 강화 지원(SWEET) 2차연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소프트웨어교육 지원 사업은 교원 양성 과정에서 예비교원의 지도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올해 국립 초등교원 양성기관 12개교에 총 24억여 원을 지원한다. 지난해 사업 실적과 올해 사업 계획 등을 평가해 대학별로 많게는 2억 6000만 원에서 적게는 1억 40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이번 사업은 공동참여 과제와 대학별 과제로 나눠 진행된다. 공동참여 과제는 예비교원의 소프트웨어교육 역량의 향상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문항을 개발하는 것이다. 개발된 지표·문항은 사업 성과를 평가하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대학별 과제는 소프트웨어교육 과정 개선에 관한 내용이다. 전체 재학생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교육을 강화하고 심화전공을 내실화하는 한편, 소프트웨어 융합교육 기반을 조성하는 과제가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차연도 사업의 성과도 발표했다. 우선 소프트웨어 필수 이수 학점을 확대한 대학이 늘었다. 제주대는 3학점에서 7학점까지 필수 이수 학점을 늘렸고, 진주교대도 2학점에서 6학점으로, 한국교원대는 7학점으로 확대했다. 과목도 개편했다. 모든 대학에서 기존 컴퓨터 활용법 중심으로 진행했던 과목을 프로그래밍 등 소프트웨어 과목으로 개편했고, 심화전공 과정에도 반영했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융합 과목도 대학별로 평균 12개를 개발, 적용했다. 2차연도 사업 평가는 핵심성과지표와 자율성과지표로 나눠 실시할 계획이다. 대학별 특성과 여건 등을 고려해 사업을 평가하겠다는 이야기다. 임창빈 교육부 평생미래교육국장은 “소프트웨어교육의 현장 안착과 활성화는 담당 교원의 역량에 좌우된다”며 “2차연도에는 초등 예비교원의 실제적인 소프트웨어교육 지도 역량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선생님, 전 댄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뭘 해도 될 것 같구나.” 헉 힙합이라니! 서로 놀랐다. 힙합학원에서 마주치게 된 우리는, 40 중반이 된 학교 선생님을 힙합학원에서 마주칠 줄 몰랐던 아이는 나의 존재에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렇게 우린 ‘춤 학원’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는 댄스 가수가 되길 꿈꾸며 실용음악학원과 힙합학원을 다니는 중이었고, 난 ‘신명 나는’ 운동을 찾다가 요가가 아닌 힙합학원 문을 두드린 차에 조우하게 된 터였으니 서로 놀랄 만도 했다. 수업시간 맨 앞에 앉아 가끔은 꼬박꼬박 졸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수업 듣기에 열심을 내던 학생이었다. 말갛고 정갈한 표정으로 수업도 듣고 대답도 하던 학생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배틀’을 하며 춤을 추는 모습에선 전의(戰意)와 자신감과 끼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그렇게 춤을 추는 아이의 사진도 찍고 학교에서 춤 이야기도 하며 우린 우리만의 학교 밖 이야기로 공감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든 선생이 춤바람(?)이 나서 그것도 힙합을 배운다는 소문에 학교축제 담당 선생님의 제안이 들어왔다. 축제 때 무대에 오르시라! 몸치인 나는 극구 사양했다. 대신 학생과 한 조로 오르는 걸 허락해 주면 하겠다고 반격(?)을 하자 담당 선생님은 반색이었다. 우영이를 호출해 도움을 요청했다. “큰일 났다, 우영아. 힙합 배우는 거 알고는 날더러 어울마당 때 춤을 추라는데. 난 네가 안 한다고 하면 안 한다고 버틸거다. 네 생각은 어떠냐?” “오! 그래요? 선생님! 왜 안 해요? 해야죠!” “그럼 네가 몸치인 이 쌤한테 춤 연습도 시키고 의상도 준비하고 음악도 준비해야 한다. 괜찮겠니?” “당연하죠.” 그렇게 해서 시작된 춤 연습. 아이와 대략 한 달간 춤 연습을 하면서 나는 사소한 동작 하나도 맘에 들지 않으면 맘에 들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 우영이의 성실함을 보게 되었다. 몸치인 내게 순서를 익혀주기 위해 어찌나 열심히 반복 학습을 시키던지. 사소한 손동작 하나까지. 그렇게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학교 안 빈교실을 전전하기도 하고 늦도록 땀을 함께 흘리며 휴일엔 학교 밖 연습실에서도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평소엔 하지 않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선생님, 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댄스가수가. 물론 되면 좋지만 가수를 꿈꾸는 사람은 너무 많거든요. 전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아이의 고민은 참으로 절절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공존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을 지도해 왔지만 꿈과 이상을 좇으면서도 현실에 두 발을 탄탄하게 딛고 있는 모습이 미더웠다. 그러면서 그 꿈을 이루려 하는 아이의 노력은 눈물이 날 정도로 혹독했다. 곁에서 근 한달 간 아이를 지켜보며 자신 있게 충고할 수 있었다.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나중에 네가 꼭 가수가 되지 않아도 댄스학원을 차려도 되겠고, 가수나 댄서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춤으로 그 분야로 진출하려는 아이들을 위한 기획사를 차려도 되겠다. 뭘 해도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나중에라도 ‘방송인’으로 수명이 길게 활동하려면 공부도 좀 틈틈이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늦도록 연습하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뭐라 뭐라 종알거렸고, 그때마다 힘들어하고 고민이 한가득인 아이에게 길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충고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어디 어디 오디션이 있는데 학교에서의 학사일정과 맞지 않아 학교에서는 출석을 강력히 권고했지만 고3 때 담임교사와 나만 네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격려했던 일도 있었다. 학교축제는 그다음 해에도 있었고, 아이의 춤을 사진으로 담아 CD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디든 오디션을 볼 때 자료로 제출할 데가 있으면 하라는 의미로 건낸 선물이기도 했다. 이 아이가 어딜 가도 제 몫을 하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며 본 아이는 땀의 가치를 아는 아이였다. 연습실 마루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땀. 하루에 옷을 두 번씩 갈아입으며 춤을 추고 또 추던 열정. 그렇게 춤을 사랑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10대에는 누구나 불안하고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아이보다 인생을 조금 먼저 조금 더 살아온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그렇게 그해 초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학교축제 때 무대에 올라 선생은 맘껏 망가지고, 제자는 화려하게 비상을 시작하였다. 그 이후엔 ‘JYP 오디션’에서 전국 1등을 하고 2PM 그룹의 멤버가 되고, 그렇게 아이는 빛나는 ‘스타’가 되었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었던 선생님이란 우영이의 기억 탓에 늘 잊히지 않는 선생님으로 남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라면서 방송에 나가서도 이야기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TV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우리 결혼 했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에 출연(?)하는 재미있는 경험도 했다. 2006년 우영이가 고2 때, 학교 밖에서 ‘춤바람(?)’으로 맺은 우리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 참으로 그 인연이 감사할 뿐이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크든 작든 선물이 도착했고 해가 바뀔 때면 새해 인사도 날아들었다. 해외 공연이다 뭐다 또 솔로 활동이 아니라 팀이 움직이는데도 마음 씀이 참 다감하고 고마운 아이였다. 작년엔 부산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다고 제일 좋은 자리 선생님께서 필요하신 만큼 티켓을 보내드린다고 내가 필요하다는 만큼 입장표를 선물로 안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인연은 지금도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믿는다. 끝까지 믿어주는 교사와 그 교사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학생의 감사와 사랑이 맺은 결실은 아마도 ‘네버 앤딩 스토리’가 될 것이다. “선생님, 전 댄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뭘 해도 될 것 같구나.”
영주 이산초(교장 우동하)는 1학년 학생들의 입학 100일을 맞아 학교 적응을 축하하는 입학 100일 기념 잔치를 마련하였다. 제법 어엿한 초등학생이 된 14명의 1학년 학생들을 축하하며 케이크와 백설기 등의 떡, 음료를 담은 백일상을 전달했다. 1학년 학생들은 잔치에 참석하여 100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를 축하하고, 앞으로도 서로 배려하며 건강하게 자라는 마음을 가지는 격려하는 기회가 되었다. 우동하 교장은 1학년 학생들을 축하해주며 “아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한 것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덕담을 전했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은 2019년 6월 11일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김대중홀에서 승진(선택) 가산점에 관한 현장교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초중고 교사와 교장, 교감 그리고 담당장학사가 현행 교원승진가산점 중 선택가산점을 그대로 유지 또는 폐지하는 것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정책기획관실 서동연 장학관은 현장교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자 이러한 자리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설명했고 유재 장학사는 설문조사결과를 표와 그래프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초중등과 특수가 항목별로 상이한 차이가 있었지만 부장과 담임 경력을 좀 더 확대하여 반영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폐지 시 대안은 무엇이며 비교과 교사는 승진과 성과급에서도 배제를 당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러한 점도 고려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 승진가산점을 부여하자는 기타의견도 있었다. 현장교사들은 승진가산점은 없어지고 업무만 남아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승진가산점을 폐지하면 해당업무도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T/F팀을 꾸려서 예측가능하고 공정하며 현장교사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경기교육을 사랑하고 학생중심 현장중심의 경기교육을 위해서도합리적인 기준을조속히 마련하길 기대한다.
‘동양의 페스탈로치’ 꿈 안고 경성임시교원양성소 입학 벽촌에서 풀죽 나눠 먹으며 식민지 조선 현실에 눈 떠 제자 조판출과 교육노동자조합 결성 시도…감옥살이도 억압과 차별의 장벽 넘어 민중의 고통 헤아린 교육자 1931년 8월 9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사건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교육노동자를 망라, 횡단조합 결성음모-곤명보 교장과 경사생 주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터져 나온 이 사건은 식민지 조선에서 학생이 아니라 교육자 중심으로 최초의 ‘교육노동자조합’ 결성이 시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주모자가 경상남도 곤명공립보통학교의 일본인 교장이라는 것, 그리고 함께 결성을 주도한 사람 중에는 그 교장의 조선인 제자로 당시 경성사범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일본인 교장의 이름은 죠코 요네타로(上甲米太郞). 당시 28세였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인물의 면모에 대해 ‘동아일보’는 같은 특집기사 안에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했다. “조선교육노동자조합의 중심인물 죠코는… 일찍부터 공산주의에 공명한 바가 있어 항상 농촌문제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또 그가 받는 월급 120원 중 그의 생활비로 20원쯤 쓰고는 전부 그 학교 학생들 중 빈곤한 아이들의 점심과 학용품 등으로 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몇 줄의 기사만으로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그의 이력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그는 1902년 일본 에히메현에서 농민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새로운 농업경영을 시도하다 실패한 그의 아버지는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식민지 조선으로 건너 왔지만, 중학교 수학 때문에 한동안 일본에 남게 된 죠코는 외가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도가 됐다. 1920년 죠코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조선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동양의 페스탈로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경성고등보통학교부설임시교원양성소(후에 설립되는 경성사범학교의 전신)에 입학했다. 단기간의 양성을 마친 후 1922년에 그는 경상남도의 함안공립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한다. 함안공보에서 그는 상급생 학급의 담임을 맡아 조선인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곧 자기 학생들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데 경남 최고의 성적을 거뒀을 정도로 입시지도에 유능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때 그의 지도로 경성사범학교에 진학하게 된 제자가 바로 31년에 그와 함께 검거된 조판출(趙判出)이었다. 1925년에는 합천군의 야로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한다. 야로면은 당시로는 군청에서 24km나 떨어진 곳으로 의사도 없는 무의촌이었고 우편은 이틀에 한 번 오는 그야말로 벽촌이었다. 보통학교도 4년제에 불과했다. 일본인 교사라면 근무를 기피하는 이 학교에서 죠코는 조금씩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눈뜨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일기 안에 ‘풀죽’을 처음 먹었을 때의 놀라움을 썼다. 당시 조선의 농민들이 매년 춘궁기를 살아남기 위해 끼니를 때우던 풀죽을 나눠 먹으며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농촌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등 기독교사회주의자가 쓴 책들을 구입해 읽게 된다. 이 무렵 조선에 대한 그의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보여주는 예로 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그가 혼사 문제로 잠시 고향을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인데 흥미롭게도 그는 조선 한복을 입고 있다. 조선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이 엉뚱한 복장에는 아마도 반쯤은 젊은이다운 객기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조선옷을 입은 채로 일본으로 귀향하면서 그는 예기치 않은 불쾌한 경험을 한다. 단지 조선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게 무려 열 차례나 넘는 불심검문을 당했던 것이다. 지배자인 일본인으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민족 차별 경험을 현실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맛본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27년에는 다시 사천군의 곤명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는데 이 무렵엔 그의 독서 경험도 한층 확장돼 점차 진보적인 사상을 섭취하게 됐으며 개인적인 독서의 범위를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기 시작한다. 1930년 9월 일본에서 좌파지식인들에 의해 신흥교육연구소가 창설됐고 그 기관지로 ‘신흥교육’이 창간됐다. 이 소식을 들은 죠코는 곧바로 정기구독자로 등록하는 동시에 직접 글을 써서 익명으로 투고하기도 했다. ‘조선의 한 교원으로부터’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돈벌이에 골몰하고 일본제국주의자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조선 내의 일본인 교사들에게는 페스탈로치의 사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조선 농촌에서 8년간 생활하면서 절감했던 것은 조선의 민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보통학교 교사의 약 삼분의 일을 일본인 교사들이 점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조선인 교사에게 지급되는 봉급에 더해 식민지근무수당이라 할 수 있는 ‘가봉’(加俸)과 ‘사택료’(舍宅料) 등이 추가로 지급되고 있었다. 그런 경제적 이득에만 관심을 갖는 일본인 교사들을 경원시하며 변혁을 꿈꾸는 그의 결단을 엿볼 수 있는 기고문이었다. 마침내 그는 ‘신흥교육 독서회’를 만들고 그것을 발판 삼아 교원조합 결성을 구상하는 단계로까지 나가게 되는데,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만 일경의 감시망에 포착되고 만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 이후 조선인 학생들의 동향을 극도로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던 일경은 경성사범학교 기숙사의 한 조선인 학생 사물함에서 수상한 편지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제자 조판출과 그의 스승 죠코 간에 오고 간 몇 통의 서신이었다. 이를 빌미로 일경은 1930년 12월 5일, 죠코 등 관련 인물을 일제히 검거했고 심지어 ‘신흥교육’의 발행자겸편집인 야마시타 도쿠지(山下德治)까지 도쿄에서 체포해 경성으로 연행했다. 8개월 간에 걸쳐 비밀리에 진행된 혹독한 심문과 수사 끝에 이 사건은 ‘교육노동자조합준비회사건’이라는 엄청난 시국사건으로 포장돼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2년에 걸쳐 진행된 세 차례의 재판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었고 결국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 안에서도 그는 자신의 유창한 조선어 능력으로 조선 혁명가들과 ‘통방’하면서 더욱 성숙해졌다고 한다. 출소 후에는 일경의 감시 하에서 불안한 생활이 계속됐고 결국 1941년에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1945년 후에도 그는 사회주의 운동 전력 탓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재일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선택해 진보적인 문화운동, 지역사회운동을 펼치며 일관된 삶을 살아갔다. 1968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유명한 ‘김희로(金嬉老) 사건’(김희로라는 재일조선인이 시즈오카에서 빚 독촉을 하는 야쿠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는 인질극을 벌이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항의했던 사건) 재판에는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87년 3월 21일 영면한다. 이렇게 요약해 본 그의 삶과 이력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가 투옥될 당시인 1931년에 조선의 공립보통학교에는 2600여 명의 일본인 교사, 6500여 명의 조선인 교사들이 있었으나 죠코처럼 교사운동을 시도하는 경우는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죠코와 같은 일본인 교사에 의한 저항운동은 돌출적인 예외 혹은 해프닝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또 그의 시도가 발각된 경과에서도 드러나듯이 죠코나 제자는 결국 재판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는 그 편지들을 부주의하게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자신이 꿈꾸는 것이 식민지배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반역죄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할 만큼 순진하고 무모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주도면밀한 조직적인 혁명가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식민지 조선의 교육과 사회운동에 실질적으로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으며, 그만큼 그의 시도는 고립적이고 단발적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결국 재판에 회부된 인물이 모두 다섯 명에 지나지 않았고 사건의 내용도 조합 결성에까지 이른 것이 아니라 결성 모의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오히려 일경이 사건을 사실 이상으로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고 과대 포장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죠코 요네타로의 존재는 그리 가볍게 치지도외(置之度外)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식민 지배자인 일본과 피지배자인 조선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억압과 차별의 장벽을 넘어 이쪽으로 건너오려 했던 한 인물의 ‘비범함’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인의 편에 서고자 했던 소수의 선인 혹은 친구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예컨대 박열 재판의 변호인으로도 유명한 인도주의적인 일본 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나, 혹은 조선의 민예가 지닌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광화문의 파괴를 막았던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기억할 만한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죠코는 조선인의 좋은 친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지’가 되고자 꿈꾸었다. 대체 이토록 래디컬한 조코의 ‘변신’은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 것일까. 필자는 그가 읽었던 책과 글, 그로 인해 형성된 관념과 이념, 사상에 주목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순수한 성품의 한 젊은 교사의 사람됨에 눈길이 간다. 식민지 조선 경제가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던 무렵에 그는 경상남도의 벽촌에서 조선 농민의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의 일본사 수업에서 그는 일본 중세 646년에 일어난 이른바 ‘다이카의 개신(大化の改新)’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당시의 개혁으로 일본의 많은 황족과 호족들의 사유지가 폐지됐다는 그의 설명이 끝나자, 소작농의 자제 하나가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지금 조선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겠지요?” 무심코 흘려버릴 수도 있는 어린 학생의 이 단순한 질문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죠코의 마음 속에 오래 남았다. 그는 그 질문을 식민지 지주제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 민중의 신음과 추궁으로 받아들였다. 학생의 질문 하나에서 민중의 고통과 그것을 낳은 억압된 세계를 느끼는 섬세한 감수성, 출신 민족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흐림 없는 눈이야 말로 애초에 기독교적인 막연한 사랑에서 출발해 ‘페스탈로치’ 같은 교사가 되기를 꿈꾸던 순진한 한 젊은이가 식민지 현실의 거대한 억압과 차별의 장벽에 부딪히면서도 낙담해 주저앉거나 되돌아서지 않고 앞으로 나가도록 만든 힘의 원천일 것이다. 그 모든 차별의 극복과 연대의 획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90년 전에 이 땅에 존재했던 한 일본인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성철 서울교대 교수
수원 원천초등학교(교장 김성신)는 5월 23일 등교시간을 이용하여 ‘안전한 스쿨존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이번 캠페인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합하여 실시했다. 수원 남부 경찰서와 산남지구대 경찰관, 원천초 교사, 학부모 폴리스와 컵스카우트 대원 등 100여 명이 합심하여 학생들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통학로를 확보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안전한 스쿨존 만들기 캠페인에 참석한 6학년 학생은 “선생님, 부모님, 경찰관과 함께 한 안전 캠페인이어서 보람이 있었다”며 “앞으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좌우를 꼭 살피고 건널 것이다. 나 뿐 아니라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서 주위를 살펴보겠다”라고 말했다. 김성신 교장은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어린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교육을 실시한 것이 의미 있었다.”며 “앞으로도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게 등․하교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원천초등학교 ‘안전한 스쿨존 만들기 캠페인’ 운영은 학생, 교사, 학부모와 지역 사회 모두의 관심이 바탕이 되어 안전하고 행복한 통학로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 선고는 토네이도처럼 솟구쳐 나의 모든 삶을 집어삼키고 파괴해 버렸다. 2012년 3월, 18학급 규모의 신설 학교로 발령을 받고 1학년 대표에 정보과학부장 보직을 받았다. 생소한 정보과학부장 업무, 10여년 만에 담임하는 1학년이 새 학기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근원을 알 수 없는 긍정 마인드와 아직은 식지 않은 열정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새 학기가 바쁘게 시작되고 있었다. 학급 아이들과 업무에 적응하며 지낸지 한 달도 채 지내지 않은 어느 날,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소리 없이 휘몰아친 병마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휴직을 하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하루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건너고 또 건넜다. 그 해 5월, 나는 아들의 살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을지,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병원 창문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만큼이나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6개월 동안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패혈증과 쇼크로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나는 버텨냈다. 일상을 되찾기 위한 지독한 몸부림이었다. 1년의 병 휴직이 끝나갈 무렵, 학교로 돌아가야 할지 퇴직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집에만 있으니 온 신경이 내 몸에 집중이 되었고 아픔이 느껴졌다. 더 무기력해졌다. 가족의 만류에도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항암에 잃어버린 머리카락 대신 가발을 써야 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항암 치료와 약물 부작용으로 신체 기능은 건강하던 때의 60%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부족한 40%는 교장, 교감 선생님,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응원으로 채워졌다. 나의 두 번째 교직생활의 시작이었다. 선생님들의 배려로 과학, 도덕 교과 전담과 아주 작은 업무 하나를 맡았다. 업무는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가벼워서 학교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수업이 전부였다. 내게 수업은 병상에서 매일 매일 그리워하던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즐거운 수업,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매일 매일 교재 연구를 하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였다. 매 시간 수업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제작하였고, 아이들이 좀 더 움직일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하였다. 특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겨워하고 싫어하는 도덕 수업에는 더욱 신경을 썼다. 수업이 끝난 후에 가슴을 묵직하게 하는 뭔가를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도덕 이야기 활용을 통한 따뜻한 도덕 수업이란 연구 주제를 정하여 실천하였다. 그렇게 준비한 도덕 시간에 아이들은 웃고 울고 떠들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좋은 수업 기술도 ‘교사의 준비’를 앞설 수는 없다. ‘수업 흐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학습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떤 발문을 할 것인가?’ ‘어떤 예화 자료가 더 효과적일까?’등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져가며 수업을 준비하였다. 준비된 수업에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들은 내 수업을 좋아하였고 기다리는 듯 했다. 어느 날 5학년 교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 반에 평소 까칠하고 예민하기로 유명한 한 남자 아이가 나의 얼굴을 보자 순간적으로 "선생님, 기다렸어요!" 하고 외쳤다. 너무나 의외의 반응에 주변에서 깜짝 놀란 얼굴로 그 아이를 쳐다보자 그 아이는 민망했던지 수줍은 얼굴 표정을 지으며 실수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듬해 6학년 과학 교과를 전담하였다. 그 해 졸업하는 학생이 직접 제작해서 보내준 동영상은 감동 그 자체였다. 두 번째 교직 생활은 행복했고 정신적으로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행복한 마음을 맘껏 드러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전담 교사의 업무가 비교적 과중한 경우가 많은데, 건강상의 이유로 전담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업무를 맡은 나는 늘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건강을 잃기 전 나의 학교 생활이 그러했듯, 나의 동료 선생님들은 업무에 허덕이고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생활 지도에 온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수업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해 보였다. 수업 준비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즐거울 수 없다.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라는 선생님들이 많은 것은 그 이유일 것이다. 선생님들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초등교사 ‘○○스쿨’ 홈페이지에 매 차시 만든 자료를 공유해 보기로 하였다. 처음 업로드한 자료에 대한 반응은 뜻밖의 것이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선생님들이 ‘건강하세요. 복 받으세요. 행복합니다.’ 등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선생님들의 덕담에 더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매 차시 수업 자료를 공유하게 되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의 수업 자료를 활용해 주셨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아이들이 과학, 도덕 수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글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어떤 선생님은 쪽지로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묻기도 하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발령받고 처음으로 도덕 수업이 재미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도 남기셨다.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선생님도 계셨고, 책 한 권을 꼭 보내드리고 싶다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분도 계셨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을 얻으며 약 700여건의 자료를 공유하였다. 작년에는 2학년을 담임했다. 복직 후 처음 맡은 담임이었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걱정도 앞섰지만 담임을 맡아서 ‘우리 아이들’과 학급 운영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즐거운 배움이 일어나는 교실’을 위해 놀이 중심의 학급 경영, 활동 중심의 수업을 구성하였다. 학급 클래스팅을 운영하면서 교실의 매일 매일 모습을 학부모님과 공유하였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반장 선거 모습 등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수업 일기 쓰듯 클래스팅에 업로드하였다. 학급 클래스팅 운영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학부모는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아이들과 대화가 늘었다고 좋아하셨고, 우리 아이가 어디에 앉는지, 짝꿍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면서 클래스팅을 적극 활용하셨다. 아이들은 내일 학교에서 어떤 재미있는 활동을 할지 궁금해 했다. 담임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한 해였다. 2012년 5월. 그 해에는 벚꽃 눈이 흩날리는 것을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올해 5월에도 우아하게 은빛 날개 펼치는 벚꽃들의 향연을 감상했다. 오늘 아침도 늘 그렇듯 교실 창문 너머 아이들의 왁자지껄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나의 두 번째 교직 생활은 지금‘행복’진행형이다. 모든 선생님이 온전히 수업에 전념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나는 수업을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 2019 교단수기 공모 은상 수상자 수상 소감-동료 배려로 얻은 행복… 온 마음 다해 감사 교단 수기를 써놓고도 선뜻 응모하지 못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공모전에 글을 보낸 후에도 한참 동안 후회하였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망한 나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에 오는 길이 천근만근이라는 선생님들, 매년 2월 말이면 개학이 두려워 잠을 설친다며 이른바 ‘신학기 증후군’을 겪는 선생님들 앞에서 혼자 행복한 교사인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이 든다. 학교와 동료 교사의 배려로 얻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의 동료 선생님들도 업무에서 벗어나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서툴지만 글 안에 담고 싶었다. 이 글을 통해 나의 두 번째 교직 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격려를 주신 동료 선생님들께 온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더불어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들의 2019학년도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를응원해 본다.
수원 원천초등학교에서는 6월 10~11일 이틀간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작가를 직접 만나 책에 대한 흥미와 책을 읽는 시야를 넓히고 행복한 독서를 생활화하기 위해 이번 강연은 3, 4학년은 ‘글자동물원, 고양이와 통한 날’의 저자인 이안 작가, 5, 6학년은 ‘푸른사자 와니니, 장수만세’등으로 알려진 이현 작가와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행사 담당자는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학생들에게 좋은 호응과 만족을 얻었다”며 “학생들은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워가는 즐거움을 느꼈고, 교내 책 읽는 문화 형성과 학생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오늘 참여한 한 학생은 “작가를 실제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작가의 사인을 책에 받으며 작가의 꿈을 더욱 키우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다양한 시를 보니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수원 원천초는 6월 10일(월)부터 6월 14일(금)까지 독서페스티벌 주간을 운영하며 다양한 독서행사를 운영한다. 특히 1, 2학년 학생들은 전문 동화구연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동화책을 감상하며 동화책의 재미에 빠져보는 시간을 갖는다. 원천초는 수석교사의 ‘그림책을 활용한 독서토론 수업’을 비롯하여 독서 어울림 프로젝트(온 책 읽기), 북적북적 도서관 행사, 그림책 읽어주는 어머니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서교육을 하고 있다. 원천초 김성신 교장은 “우리 원천초 학생들이 작가와의 만남이나 동화구연과 같은 행사를 통해 책에 대한 즐거움을 발견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영천시 신녕초등학교(교장 박상호) 4학년 학생들이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제7회 통일교육주간 평화·통일교육 인증샷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평화·통일교육주간에 진행된 본 이벤트는 평화·통일교육 수업 인증샷을 찍어 통일교육원 누리집에 게시하면 50개 학급이 선정되는 방식이다. 평소 ‘너나들이 통일 꽃이 피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통일교육주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작년 판문점 회담 시 남북 정상회담 악수를 재현한 사진을 게시하여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동아리 지도교사인 4학년 김영일 교사는 “평소 통일 동아리 운영을 통해 학생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교과와 창체 시간에 남북한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다양한 Echo(울림)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조사한 것을 발표해봄으로써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자라고 있어요. 이벤트 응모를 통해 간식도 먹고 엽서 및 백두대간 배지도 받고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수원 곡정초등학교(교장 김석진)는 2019년 4월 15일부터 19일까지 학교 안전교육 주간인 우리는 안전 지킴이! 안전한 학교 함께 만들어요를 운영하였다. 곡정초등학교에서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며 안전 의식을 생활화하고, 안전에 대한 학생들 간에 의견 교류를 통하여 민주시민 의식이 함양되도록 매해 4월 16일이 포함되는 주간을 안전교육주간으로 계획하였다. 이에 경기도교육청 나.침.반(나를 지키고/ 침착하게 대처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5분 안전교육) 자료를 집중 활용하는 '아침을 여는 안전 교실'과 학교 안전에 대해 고민해보고 학생들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학교 안전 4행시' 참여를 통하여 학생들은 안전생활 의식을 고취하였고, 학부모와 교직원은 학생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학교 주변 안전점검 및 안전문제 진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을 여는 안전 교실'에서는 오전 9시 등교 후 1교시 시작 전까지 학년 수준에 맞는 3~4월 나.침.반 자료를 활용하여 학교생활안전, 교통안전, 실종 및 유괴예방, 식중독 예방, 재난안전에 대한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학습하였으며, 학급 상황에 맞게 책 만들기, 역할극, 토의 등 다양한 활동으로 수업 시간과 연계하여 안전교육 내용을 내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안전 4행시'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안전학교/ 안전생활/ 안전교육을 주제로 하는 4행시 짓기를 통해 안전한 학교란 무엇인지 생각을 나누고 학생, 학부모, 교사가 오가며 의견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였다. 학교안전주간에 참여한 한 학생은 “나.침.반의 의미처럼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다양한 사고에 대비하여 나를 지키고 침착하게 대처하기 위해 평상시에 안전 수칙을 꼭 익히고 반복하여 알아두어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학교로 ‘서로 사랑하고 돕는 학교’, ‘왕따 등 학교폭력이 없는 학교’,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학교’, ‘낯선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학교’ 등을 꼽으며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겪는 두려움과 걱정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마음껏 표현했다. 이에 곡정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하여 학교의 안전사고 예방 및 안전 교육에 꾸준히 힘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경산자인학교(교장 조정순) 전공과 학생은 6월 3일(월), 대경대학교 모델패션 아트스쿨과로 산학 연계 대학 학과 체험을 다녀왔다. 이번 산학 연계 대학 학과 체험학습은 전공과 학생이 다양한 진로체험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잠재 능력을 계발하여, 미래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진로설계를 하고자 실시되었다. 전공과 학생 21명을 대상으로 지도교사 4명과 운전원과 통학안전도우미 총 2명의 인솔자가 안전하고 유익한 진로직업 체험학습이 되도록 지도하였다. 이번 체험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모델 지망 학생들이 하는 메이크업, 런웨이 워킹을 직접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고 바른 자세, 건강한 체형 유지 및 직업생활에서 필요한 화장, 옷차림 등 개인의 외모를 아름답게 관리하는 기술을 익히는 방법을 배웠다. 전공과 1학년 황태웅 학생은“모델들이 하는 런웨이 워킹, 메이크업을 직접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모델과 관련된 직종에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9년 5월 16일 서령고 동아리 화수분(회장 오윤운)회원들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써달라며 12만 원을 기탁했다. 이날 기부한 금액은 지난 5월 16일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판매부스를 설치하고 위안부 의식 팔찌를 팔아서 준비한 돈으로, 화수분 회원들은 성금 기부와 함께 일본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고 위안부에 대한 정보를 적은 안내판을 직접 제작하여 피켓시위도 벌였다. 희움(Heeum)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사)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윤리적 소비 브랜드이다. 희움의 제품은 모두 할머니들의 압화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전문 디자이너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제작되고 있다. 이번 기부 활동을 주도한 화수분회장 오윤운 군은 “예상외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주어 감사를 드리며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다음에는 공정무역을 위한 행사를 계획 중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활동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