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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5.9 선택의 날이 코앞에 다가 왔다. 앞으로 5년 간 대한민국호를 이끌 선장을 선택하는 막중한 투표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완벽한 후보자가 부재한 현실에서 우리는 차선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제 제19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 중 선택에 앞서 각 후보들의 공약, 정책, 철학, 가치 등을 종합해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 제19대 대선은 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도 엄중하고 중차대한 선거다. 각 후보들은 그 동안 6차례의 후보 토론회, 선거 공보, 선거 벽보, 공약집 등을 통해서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선택을 호소했다. 지금도 전국을 훑으면서 대규모 유세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을 ‘교육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은 입으로는 교육대통령을 호소하지만, 진정성 있는 교육대통령감은 없다는 자조적 체념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후보들이 그럴듯한 교육공약과 정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교육에 대한 종합적 비전 제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분석에서다. 이제 후보별 공약과 정책에서 우열과 옥석을 가리고 교육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특히 교육대통령 선출은 50만 교원들의 선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한 번 뽑아 놓고 5년 간 후회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미더운 교육 대통령으로 5년 동안 가슴 뿌듯한 도의와 공감을 하는 교육 대통령 선택에 성찰과 숙고를 해야 한다.특히 누란의 위기라고 걱정하고 있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혁신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산적한 교육현안을 해결하고 제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교육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온 국민의 소망이지만, 정작 그 선택도 교원을 포함한 국민들의 몫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이번 대선 후보들이 내건 교육공약과 정책을 대별해 국민들의 요구사항과 결부하면, 고교 체제, 진학계열과 직업계열의 복선형 체제로 개편, 범정부적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교육부 역할 강화, 학제 개편 및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원지위법’ 개정, 교육감 직선제 폐지 및 대안 모색, 교원 차등성과급제 폐지 및 대안 마련 등이다.특히, 국민들은 몇몇 후보들이 공약한 새 정부 출범 후 교육정책을 종합 기획하고 실천해야 할 컨트롤타워인 교육부가 폐지 내지는 축소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교육 개선이 아니 개악의 우려 때문이다.모름지기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그 핵심이 교육부다. 물론 그간 교육부가 행정 지시 중심 의 공문 남발 등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 비난을 받아온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해법이 교육부 폐지라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교육부 폐지는 국가가 유·초·중등교육을 포기할 우려가 있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교육도 포기하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혹자는 교육부 폐지 후 국가교육개혁위원회, 미래교육위원회 등을 설치해 교육 업무 관장을 주장하지만, 이 역시 교육부를 존치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심의, 자문 기구 역할을 부여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 위원제인 국가교육개혁위원회, 미래교육위원회 등은 최종 의사결정에 일정한 제한이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또한 대통령이 교육 공약을 챙기거나, 시도교육청에 위임해 교육부를 약화시키는 것도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도교육청에 맡겨서 수행해야 할 일이 있고, 국가 차원과 단위에서 교육부가 관장할 역할이 따로 있다.결국 교육부 기능 축소나 개편,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새로운 기구 구성보다는 교육부를 고유의 교육 업무의 명확한 관장으로 역할 제고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입 수능 평가 개선, 교육 및 복지 양극화 해소, 외고·자사고·국제고 문제, 책임학년제 실시 등 교실혁명, 아동수당 도입과 교육 희망 사다리제 등 후보들이 공약한 교육 공약과 정책을 심독 분석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차분히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 철학과 가치 등을 분석해 소중한 한 표 행사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교육대통령, 바로 국민이 우리가 선택하는 소중한 정치 행위다. 그리고 그것은 참정권의 기본이며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의 출발점이다.
여행은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집에 돌아가 지나 온 여행지를 되새기면서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작년 4월 일본 중북부 지방에 있는 토야마현의 알펜루트를 방문하면서 다른 방향에서 이곳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없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안고 살았다. 이번 여행이 바로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나가노현 모토야마역에서 출발하여 쿠로베댐까지의 여행은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행길이었다. 일본 동해안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지세이다. 동해 바다의 수증기를 품은 공기를 북서풍이 일본으로 몰고와 산지가 많은 일본의 북동부에 쏟아놓기 때문이다. 일본 황금 연휴 기간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에 아침 나가노에서 오미야까지 한 시간 거리는 좌석을 잡지 못해 서서 가는 여행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돈이 있다고 해도 이 시간 표를 얻지 못하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삶은 어딘가에 가려면 다양한 티켓이 많이 필요하다. 세상을 마치고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지식을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지식은 객관적인 지식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천하만민이 다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꼭 객관적이 아니어도 믿는 사람에게는 큰 효능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진리를 절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상에 전수되고 있다. 오늘은 일본 헌법을 제정한 기념일로 70주년이 지났다. 아직도 일본 헌법은 전쟁 반대와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수상은 2020년도에는 자위대의 지위와 활동이 명기된 헌법이 작동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본 TV프로그램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 문제를 다루는 방송들이 많다. 소위 일본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다. 이를 지켜보는 일본인들은 지금 한국은 곧 전쟁상태로 들어가는 것처럼 위협적인 상황으로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일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많이 활용한다. 이러한 여파는 곧 일본인들의 한국 나들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한국 방문객이 꽤나 줄고 있다는 한국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양국간에 언론 보도가 상대국에 대한 문제를 과대 포장한 보도를 해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중지돼야 한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어쩔 수 없이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지기에 편견이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바라본 일본에 대한 시각은 후쿠시마의 쓰나미와 지진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과잉 해석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한국 관광객은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 동북지방의 여행을 금기시 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숙박이 만실이어서 가까운 요네자와역 부근에서 1박을 하고 후쿠시마로 이동했다. 일반적으로 왜 위험한 지진, 방사선이 많은 지역에 가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발전소가 위치한 일부 지역에서 일정 거리를 제외하고는 일본인들의 일상은 크게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후쿠시마 현청이 위치한 후쿠시마역에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2020년에는 후쿠시마에서 야구와 소프트경기가 개최된다는 현수막도 눈에 들어 오고 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후쿠시마상공회의소와 각 음식점이 제공하는 특별할인 쿠폰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후쿠시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제공할 것이다. 현지인이 아니라면 여행지에서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이같은 현지 관광안내소가 제공하는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여행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음식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점심시간에는 한국돈으로 1만8000원 하는 음식을 1만원에 제공하고 있다. 일본에 와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관광객의 인상을 좌우하는 교통수단인 택시 운전사들의 겉모습이다. 속은 알 수없으니까. 친절함은 빼놓을 수 없다. 조그만 짐이 있어서 운전수가 직접 내려와 짐을 들어서 트렁크에 싣는 친절함에 비해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무거운 짐을 실을 때까지 기댜리는 한국 택시 운전수의 모습은 너무나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친절은 말로 하는 친절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한 도시가 가져야 할 경쟁력이다.
“카네이션의 경우 학생 대표가 주는 것은 허용되지만 학생 개인이 주는 것은 안 됩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선사하는 행위에 대한 청탁금지법에 위반여부 문의가 잇따르자 관련 공식입장을 재차 내놨다. 권익위는 “학생대표 등이 스승의 날에 담임교사 등 학생의 평가·지도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교사에게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카네이션, 꽃은 수수 시기와 장소, 수수경위, 금품 등의 내용이나 가액 등에 비춰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애초 이마저도 금지하려 했으나 한국교총 등 교육계가 스승존경의 상징인 카네이션 한 송이, 감사의 손 편지 정도는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촉구한 끝에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교총은 지난해 11월 ‘카네이션 전달 청탁금지법 위반 유권해석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데 이어, 권익위 및 교육부를 방문해 건의서를 제출해 제한적 용인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스승의 날 당일에는 이 문제 외에도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어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것이 학교현장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담임이나 교과 교사는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만 방과후학교 강사, 어린이집 보육교사 등은 해당되지 않아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다. 이에 대해 권익위 측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식 답변 외의 사례는 되도록 지양하는 쪽으로 학교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학교평가는 평가단이 현장방문을 하지 않는다. 학교자체 평가로 변경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필자도 여러번 지적했었다. 이렇듯 문제가 있다보니 결국 자체평가라는 제도로 변화가 된 것이다. 자체평가라고 해서 학교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가영역이나 지표등은 대체로 정해진 틀에 맞게 해야 한다. 사전에 교육청에서 내려보내기 때문이다. 학교입장에서는 편한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런데 올해 평가 지표 중에 자체 평가단 구성에서 지역사회인사와 학생을 꼭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여기서 학생의 참여는 학교교육의 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니 맞다는 생각은 들지만 지역사회인사는 좀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교사, 학부모등 교육이 주체가 들어가는 것 역시 맞지만 지역사회 인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포함하면 되지만 여기에 또 한가지 단서조항이 있다. 해당학교의 학부모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해당학교와 직접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학부모는 위원은 쉽게 참여할 학부모를 구할 수 있지만 학부모가 아닌 지역인사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한 학교의 실정을 잘 모르니 어쩌면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역으로 생각하면 아주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제 어떻게 지역사회 인사를 구할 것인가 고민을 해볼 차례이다. 누구로 해야 할지 쉽지 않다. 학부들에게 연락해 다른 학교 학부모회 임원들을 섭외할 수도 있다. 그나마 학교는 다르지만 학교실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학교 학부모를 위원으로 하는 것은 그 학교와의 비교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하다. 좀 더 쉬운 방향으로 찾아보면 졸업생의 학부모를 찾는 것이다. 여러가지 검토를 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 학부모 역시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어쩌면 많은 학교에서 이 방안을 활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생각이 거의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문제, 굳이 이렇게 까지 해서 지역사회 인사를 넣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지역사회 인사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 학생을 못 믿겠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자체평가를 하도록 했다면 당연히 전권을 학교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필요한 평가방법이나 지침을 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위원회구성까지 못박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소한 것 같지만 학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심각할 수 밖에 없다. 반드시 포함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학교에 일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한국교총은 2일 대선 기간 중 마지막으로 열리는 ‘교육분야 TV토론’을 앞두고 교총이 전국 50만 교육자의 마음을 담아 제시한 핵심 교육공약 요구과제를 후보자 공약과 새정부 교육정책에 반영·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산적한 교육현안을 해결하고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교육대통령이 선출되기를 강력히 기대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교총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어 '제19대 대선 교육공약 요구과제'를 발표하고 각 후보자와 정당에 전달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고교 체제, 진학계열과 직업계열의 복선형 체제로 개편 △범정부적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교육부 역할 강화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원지위법’ 조속 개정 △교육감직선제 폐지 및 새로운 대안 모색 △교원 차등성과급제 폐지 및 대안 마련 등이다. 교총은 지금까지 각 후보자들이 제시한 교육 공약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많은 교육공약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교육에 대한 종합적 비전 제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분석에서다. 특히, 새정부 출범 후 교육정책을 종합 기획하고 실천해야 할 컨트롤타워인 교육부가 폐지내지는 축소될 기로에 서 있는 데 대한 불안감을 나타냈다. 국가가 유·초·중등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현재 교육은 물론 미래 교육도 포기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공약을 챙기겠다면서 교육부를 약화시키는 것은 스스로 모순이며, 현실적으로도 그 역할을 시·도교육청에 맡겨서는 공정하고 조화로운 국가단위의 교육을 펼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5월 가정의 달.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이 지나쳐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경우, 주고받는 사람 모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9월 청탁금지법 시행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청탁금지법과 관련하여 도교육청 공문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따른 해석도 제각각이다. 학교 차원에서 중간고사 기간을 활용하여 교직원 대상 청탁금지법 연수가 있었다. 기존 위반 사례를 바탕으로 자칫 교사가 범하기 쉬운 내용의 사전 연수이기도 했다. 연수가 끝난 뒤, 많은 교사의 질문 중의 하나가 스승의 날 학생들이 주는 카네이션 꽃이 청탁금지법에 해당하는가였다. 학생 대표(학생회장, 학급반장 등)가 교사에게 주는 꽃은 청탁금지법과 무관하나, 학생 개개인이 교사에게 주는 꽃은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는 국가권익위원회의 애매모호(曖昧模糊)한 해석이 교사의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눈에 보이는 위반 사례보다 암암리에 행해지는 금품 수수 내지 선물 공세가 더 큰 문제라고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 주고 안 받는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15일), 스승을 공경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잘못된 관행으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스승의 날이 부정 청탁으로 얼룩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청탁금지법이 빠른 시일 내 정착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관리 감독으로 부정 청탁 그 자체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사와 학생 나아가 학부모 모두가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부정 청탁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문득 연수를 마치고 나온 최 선생이 지나가면서 한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부정청탁 근절은 마음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입니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련과 방황을 계속하면서도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는지요.”우광훈 대구들안길초 교사가 최근 자전적인 소설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으로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허리를 다쳐 실직한 뒤 뽑기왕을 꿈꾸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웃픈’ 뽑기 역정을 함께하는 중학생 딸의 이야기다. 가족문제와 노인과 같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뽑기 기계, 힙합, 일본만화 ‘원피스’와 같은 대중문화를 유쾌하게 그렸다.우 교사는 실제 2013년 신경뿌리 손상이라는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학교를 휴직했다. 30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집에서 맨몸운동을 하며 따분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인형뽑기 기계에서 딸과 함께 ‘원피스’ 피겨를 뽑게 된다. 그렇게 우 교사는 인형뽑기에 빠져들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는 기계의 특성을 연구하고 ‘원정’을 다니며 뽑고 또 뽑으며 열광했다.그는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은 그 사람이 ‘아프다’는 방증”이라며 “육체가 고통스러우니 정신적으로도 위축되고 괴로웠는데, 뽑기에 몰두하면 그 순간만큼은 나의 아픔, 슬픔, 절망, 좌절을 잊게 됐다”고 밝혔다. 뽑기가 그에게는 위로가 됐으며 순간의 재미가 켜켜이 쌓이면 행복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뽑기는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도구였을 뿐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말한다.“‘뽑기왕’을 꿈꿨던 소설 속 주인공도 자신이 현명한 길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방황을 끝내고 자기만의 원피스(보물)를 찾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아마도 주인공은 앞으로도 계속 실수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나의 원피스일까 반문하고 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요.”우 교사는 소설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이야기한다. 아빠를 이해하고 옆에서 알뜰살뜰 챙기는 딸과 달리 소설 속 엄마는 아빠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대한다. 그는 “사람마다 사랑법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엄마는 아빠가 스스로 아픔을 딛고 당당하게 일어설 때까지 거리를 두고 지켜봐 주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1997년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한 우 교사는 1999년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로 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지만 2008년 이후 절필을 생각했다. 독자와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뽑기를 만난 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복직 후 틈틈이 쓰기 시작해 1년 만에 소설이 나왔다”고 밝혔다.최근 뽑기 열풍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자신이 빠져들었던 것처럼 학생들이 뽑기에 열광하는 것이 이해되면서도 솔직히 아이들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방법을 모르면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취미죠. 하지만 제가 아플 때 뽑기의 짜릿함에 중독됐던 것처럼 학생들도 학업스트레스를 마땅히 풀 곳이 없기 때문에 뽑기나 동전노래방을 찾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건전한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부산지역 초등학교에서 내년부터 객관식(선택형) 시험평가가 전면 폐지된다. 즉 사지선다형 시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부산시교육감은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큰 시대에 맞춰 인재를 양성해 나가기 위해 2018학년부터 부산지역 모든 초등학교에서 객관식 평가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주입식, 암기식, 정답 고르기식 교육으로는 변화무쌍한 복합융합사회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없고, 생각하는 힘과 문제 해결 능력의 힘을 키우는 교육을 위해 초등 시험에서 객관식 문제를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순수한 교육의 뜻이라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경기도교육감처럼 ‘9시 등교’나 ‘야자폐지’등 진보교육감들의 선심성이나 이벤트식 교육정책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를 위해 뭔가 전국 이슈를 만들기 위해 또 아이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다.그간 우리 교육은 민선교육감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교육혁신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진 수많은 실험정책들은 모두 교육현장에 혼란만 남기고 말았다는 것이 교육현장의 반응이다. 한마디로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교육의 효과나 결과는 생각보다 수많은 시간과 이내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래서 교육감 집권기간에 그 성과를 낸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많은 교육감들은 새로운 정책에 목을 매고 있다. 그것도 순수한 교육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교육정책이다 보니 교육현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교육감이 바뀌면 바로 사라지는 정책들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급조된 정책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그러므로 교육정책 또한 백년지대계답게 깊은 고민과 다년간의 연구 끝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선심성 정책으론 우리 교육의 미래가 없다. 교육 전무가도 아닌 교육감들의 성급한 교육정책들로 인해 오히려 우리 교육이 왜곡되고 역행되지 않을까 더 걱정이 되는 것이다.
부산과역시교육청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창의융복합형 인재와 미래핵심역량을 갖춘 인재로 기르기 위해 2018학년도부터 초등학교의 객관식 평가를 전면 폐지하고 주관식 서술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우선 교육계와 일선 교육 현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 동안의 우리 교육과 학교 평가 방식이 정답 맞히기에 치중돼 있는 상황인지라 선택형 객관식을 폐지하는 실험도 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일선 교육 현장의 전반적 분위기도 초등학교 교육 평가 방식 전환이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육평가는 1990년대 중·후반 수행 평가가 도입된 이후 학생들의 성취도를 다양하게 평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점수 성적 평가, 평어 평가(수우미양가) 등은 사라진 것이 학교 현장의 평가 형태다.하지만, 부산교육청의 이번 초등학교 교육평가 방식 대전환은 신중하게 시행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객관식 찍기 시험으론 스티브 잡스같은 인재 못키운다"는 취지지만,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의 네 영역인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 중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은 교육평가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객관식 평가와 문제를 무조건 없애는 건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외국에서도 객관식 평가를 완전히 배제한 국가는 많지 않다.주관식에 약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잃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실제로 주관식 평가문제로만 출제하면 백지로 시험지를 내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경우의 수가 우리 학교의 현실이라는 우려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교육 평가에 우려가 크다.모름지기 교육평가는 객관식, 단답형, 서술형 등 주객관식 문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제4차 산업혁명기의 창의적 사고력,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편식을 해선 사고력을 다양하게 기를 수 없다.도농 학교별로 학급당 학생수도 천차만별인데, 객관식 문제가 아예 폐지되면 학생 교육 평가를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어렵고, 나아가 주관식 서술형 문제를 평가하는 채점 기준을 확보하는 문제도 있다.우리가 부산교육청의 객관식 평가 문제 배제에 대해서 숙고해야 할 점은 이와 같은 초등학교 평가 방식의 급격한 전환이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공교육의 위기를 초래하고 또 다른 사교육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객관식 문제 출제와 평가 배제가 창의적 교육을 위해서 좋은 방안인 것 같긴 한데 새로운 상황에 맞는 사교육을 초래의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다.수년 전 논술이 교육과 학교에서 도입돼 학교에서 큰 혼란이 야기될 때, 논술학원이 큰 성황을 이룬 현실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학생들이 논술학원에서 찍어준 예상 주관식 ‘모델(model)답안’을 외워서 적어내는 ‘학원식 논술’ 열풍이 불었었다.요즘 초등학생들은 논술이나 독서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교육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교육 의존도가 더욱 늘어날 우려가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평가와 성적이 관심이 높기 때문에 객관식 배제 주관식 중심 평가로 평가 방식이 전환되면 그에 따라 학원, 교습소, 개인지도 등 맞춤형 사교육으로 방향을 틀게 될 것이다.부산교육청은 그동안 교사들에게 서술·논술형 문제 제공, 서술식 평가연수를 위한 전문가 양성, 학교의 수행평가 비중 상향 조절 등을 진행해 왔다. 추후에는 공청회 등 여론 수렴과 학부모 연수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이번에 발표된 부산교육청의 초등학교 객관식 평가 배제는 총론적으로 취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평가는 초등학교에만 한정된 교육활동이 아니다. 이후 단계인 중·고·대학과 밀접하게 연계된 중요한 교육과정의 단계다.아울러 객관식 평가가 무조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도 합리적이지 않다. 객관식 평가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전통적 평가 방식이다. 나름대로 강점도 있는 평가 방식이다. 주관식 평가만이 제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창의적 사고력,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력을 겸비한 융복합 인재를 기를 수 있다는 논리도 완벽한 논리는 아니다.결국 부산교육청은 이번 초등학교 객관식 평가 배제 정책을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원과 학부모 연수, 매뉴얼 제작, 초·중·고·대학의 학제 관계 고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평가 방식, 사교육 증대 우려 등 종합적인 분석 후에 최종 확정해야 할 것이다. 시기를 정해 놓고 졸속으로 결정하면 교육공동체 동의도 어렵고 여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도 고려하기 바란다.
“장영길 ! 이리 나왔!” 선생님은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면서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영길이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눈이 둥그레 가지고 엉거주춤 일어섭니다. “빨리 나와 ! 이게 뭐야 ?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거야. 이거 .... 이게 뭐냔 말 야. 이 따위로 하니까 군내 경시 대회에서 75점을 맞아서 우리 학교의 점수를 까먹 더니 다시 본 시험지에서 요 모양이란 말이냐? 딴 사람은 몰라도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게 아니냐? 그런데 75점이 뭐냐? 엉 이게 뭐냔 말이야?” 선생님은 붉으락푸르락 하시면서 영길이가 앞으로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미 손에는 넓이가 10cm, 길이가 90cm 쯤이나 되는 무서운 매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무서운 매를 들어서 사정없이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무서운 분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교살에서 잠을 자면서 집에도 못 가는 생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무서운 매를 때리시면 반드시 왜 맞았으며,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를 일러주시기 때문에 매를 맞을 때보다 나중에 꾸중을 들을 때 더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자기 잘 못을 뉘우치는 눈물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도 매를 맞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우리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시고 계시는 분입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잠을 자면서 하루 15시간 이상을 매달려 우리를 가르치시느라고, 코피를 쏟으시면서도 밤을 새워 시험지를 만들어서 우리 공부를 시키십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 매를 맞는 것쯤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우리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 때였으니까요. 만약에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도 없었던 시절에 더구나 시골 면 소재지에서 4km 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50명중 겨우 5,6 명이 중학교에 제대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공민학교라는 중학과정을 가르치는 무허가 학교에 가야 하는 그런 시절이기 때문에 6학년이 되면 요즘 고등학교 3학년과 똑같았습니다.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은 집에서 과외를 받았지만, 우리 같은 농촌 구석에 있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시험지를 몇 장씩 풀면서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응용문제를 풀어서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를 해야 하니까, 노는 시간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무렵에 6학년 담임을 하시는 분들은 젊고 튼튼한 사람이 아니면 견딜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 8시간은 보통이고 밤이 되도록 수업을 하는데 중, 고등학교처럼 교대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온 종일 혼자서 연속으로 7, 8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반은 그것도 모자라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까지 교실에서 공부하고 11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깨워서 아침운동은 30분 동안 시킨 다음에 아침 공부를 한 시간 마치고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도시락을 두 개 싸 가지고 학교에 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자는 시간 5시간과 집에 다녀오는 시간 2시간해서 7시간과 잠시잠시 쉬는 시간 한 시간 정도를 뺀 나머지 16시간을 모두 선생님과 함께 교실에서 책과 시름을 하는 공부를 하고, 문제지를 풀고 외우는데 정신을 쏟아야만 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급에서 5,6명은 날마다 보는 시험지의 점수가 평균 95점 이상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 중학교에 갈 아이들도 거의 평균 80점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만약 못 미치면 모자란 점수대로 1점에 한 대씩 매를 맞기로 약속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여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에 군내 경시대회가 열렸습니다. 각 반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 두 명씩을 추천하여 군내 20여개 학교의 대표들이 한 곳에 모여 시험을 봐서 우수 학교를 표창하는 2학기 경시 대회에 우리 반에서는 영길이와 경규가 참가를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아주 조금 차이로 2등을 한 것입니다. 한 두 문제만 더 맞혔어도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만 영길이가 수학에서 겨우 75점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90점만 맞았다면 1등을 한 읍내 학교보다 앞설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2등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수고했다고 격려를 했지만, 영길에게는 매우 꾸지람을 하였습니다. “뭐야, 이렇게 쉬운 문제수학에서 처음 5번까지는 가장 쉬운 문제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3문제를 틀렸음들을 틀렸으니, 이것은 네가 문제를 잘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 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군에서 본 시험지를 가지고 우리 반 전체 아이들이 시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대표하여 출전을 했던 장영길이가 오늘 시험지에서도 또 75점을 맞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본 순간에 “장영길, 이 녀석이 경시 대회에서 시험을 잘 못 봤다고 꾸중을 했더니 일부러 틀린 거지. 다른 아이들은 이 시험지가 처음이지만 영길이는 벌써 두 번째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신 선생님은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옴것을 느낄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장영길이가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 !” 하고 호령을 하시더니, 매를 들어서 영길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아마도 열 대를 때린 것 같았습니다. 널찍한 매가 엉덩이에 떨어지는 순간 울려 퍼지는 무서운 소리는 교실을 쩌렁쩌렁 울려 우리들은 기가 죽어 고개를 들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매를 맞고 있는 영길이 보다 더 움찔움찔 놀라는 아이들도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일어 서 !” 열대를 때린 선생님은 영길이를 일어 세우시더니, “이게 뭐냔 말이야. 이게 ? 그래 또 75점을 맞아? 네가 그것 밖에 안 되니?” 선생님은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 영길이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서 있습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너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었기에 군 대회에 가서 망치고 와서 또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너무 어이없고 내가 지금까지 잘했던 네가 이렇게 엉터리없는 짓을 하는데 대해 화가 났었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여기 꿇어앉아 있거라. 이 시간 공부가 끝나고 이야기하자.” 하시고서는 영길이를 들여보내고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영길이는 그렇게 맞고 혼이 났는데도, 공부 시간 내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꿋꿋하게 공부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저렇게 맞았는데 아프지도 않나?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이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을 하며 힐끔힐끔 영길이의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엄살을 부리고 엉엉 울거나 지금까지도 훌쩍거리고 있을 것인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영길이를 보면서 ‘정말 지독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영길이는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냥 꿇어앉아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공부 시간이 끝나고 화장실에를 다녀오라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이걸 보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저 영길이를 좀 부축해 줘라. 다리에 피가 안 돌아 좀 힘들 거다. 교실만 나가면 괜찮을 것이니 붙잡아 주어라.” 하셨습니다. 앞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영길이를 부축하여 나갔다. 몇 걸음을 걷던 영길이는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혼자 걸었다. 정말 몇 걸음 걷는 사이에 다리가 괜찮아진 것인가 봅니다. “야 ! 엉덩이 괜찮냐?” 선생님이 안 보이는 다음 교실 복도쯤에 가서 철이가 물었습니다. “아프긴 해도 괜찮아. 소리만 요란하지 별로야.” 영길이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곧은 자세로 걸어 나갔습니다. “와 ! 우리 선생님 지독하다. 그걸로 10대를 때리시다니......” “그 까짓게 별거냐? 지금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우리하고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자면 책을 읽으시더라.” “뭐 ? 그게 정말이냐? 난 자라는 말만 들으면 그냥 잠이 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 영길이는 “너희들이 자는 지 살피신 다음에 일기를 쓰시고 나서 책을 읽으시다가 주무신단 다. 그러고서도 하루도 우리보다 늦게 일어나신 거 봤니? 그런 분이야.” 지독히 매를 맞은 영길이는 아주 선생님의 자랑을 하려고만 덤볐습니다. “야 ! 영길이 넌 그렇게 맞고도 선생님 편이니?” 말썽꾸러기 규철이가 비꼬듯 말합니다. 그러자 영길이는 “그래, 난 선생님이 내가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 밉지 않아. 왜 미울 수 있니 ? 나를 잘 되라고 가르치려고 그러시는 것인데 뭘....” 하자, 다른 아이들은 더 이상 무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를 맞은 영길이가 도리어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이 밉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상하다고 말을 하니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바라본 들판은 벌써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은 들판에 보리 이삭이 저렇게 익기도 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자기 시작한지 한 달쯤 되어서 농번기라고 모내기철에 잠시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기간에도 우리는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제 학교 공부를 시작한지 백일하고도 20일이 넘었고, 이제 마지막 한 달쯤이 지나면 중학교 시험을 보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날마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11월이 되니까 날씨가 추워서 교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까운 마을의 아이들 몇 명은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가기로 하고 먼 아이들은 학교 사택에서 방을 빌어 여자들은 작은 방에서 남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잡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날마다 보는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가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 버린 것입니다. 잠시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되는가 싶었는데 “어서 들어와라. 얼른 끝내고 가야지?” 하시는 말씀이 들려 와서 우리들은 바삐 교실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지금껏 공부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이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 주시면서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고 집에 가야할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 얼른 가서 저녁을 먹고 오너라. 나머지 아이들은 저녁 먹고 저기 숙직실에 주전 자에 물 끓여 놓았으니 먹도록 하고...” 하시고는 무척 피곤해 하시면서 잠시 자리에 앉으시더니 “영길아, 이리로 와.” 하시면서 영길이를 데리고 숙직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영길이가 울고 나올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시험지를 받아든 영길이는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자기 시험지를 보니까 자기는 75점이 아니라 95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시험이어서 선생님이 일일이 채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단 저 분단이 바꾸어서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가끔은 내 시험지를 네가 채점하고, 시험지는 내가하는 경우가 생겨서 눈짓을 하여서 서로 적당히 비슷하기만 하면 동그라미를 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이걸 눈치 채신 선생님은 분단끼리 바꾸어서 앞뒤로 한두 번 바꾸게 만들어서 누가 누구 것을 채점하는지 일일이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채점을 잘 못하여서 맞는 것을 틀리게, 또는 틀린 것을 맞다고 하는 경우가 생겨서 채점을 한 사람의 이름을 시험지의 윗칸에 적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길이가 채점을 한 경식이의 시험지가 75점인데 그만 선생님이 이걸 잘 못 보시고 영길이가 75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영길이는 자기가 75점을 맞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번 실수 때문에 선생님께 매를 맞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 않고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시고서는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매질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영길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였지만, 영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잘 못해서 2등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자신의 실수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면서 “내가 너무 감정을 앞세워서 잘 못 본 게 죄이구나.” 하셨습니다.
교총과 교육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6 교섭협의 조인식’을 갖고 교권침해 행위의 법령 상 명문화 및 처벌 강화 등 총 76개항에 대해 합의했다. 최근 3년 간 교권침해 사건이 1만 3천여 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교총 회장단이 최우선 과제로 요구한 결과다. 이로써 교권침해 학생에 대한 강제전학, 학부모 과태료 부과 등을 담은 ‘교원지위법’ 처리가 탄력을 받게 됐다. 현장 갈등과 위화감만 조성해 폐지 여론이 들끓는 성과급 제도에 대해서도 새 방안을 찾기로 했다. 8월 퇴직자 성과급 지급방안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성과급 문제는 2차례 교섭소위와 8차례 실무협의 과정에서 교총이 격론을 벌일 만큼 전면 개선을 요구했다. 이밖에 교(원)감 ‘직책수행경비’ 신설과 보직교사수당 인상, 1급 정교사 자격연수 대체방안 마련, 퇴직준비 연가 사용 활성화를 위한 ‘예규’ 개정, 사립교원 간 인사교류 활성화 등 현장 밀착과제들이 다수 포함됐다. 타 공무원과의 역차별 해소를 위해 간병휴직 요건 대상자도 조부모, 손자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 내용에는 교총 신임 회장단이 전국 학교를 세바퀴 반 돌며 ‘손톱으로 바위에 글을 새기는 심정’으로 수렴한 현장의 목소리가 대부분 포함됐다. 따라서 합의 이후 교육부의 실행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부 차원에서는 먼저 소관 훈령․예규를 바로 손질하고, 시도교육청과는 조속한 의견조율을 통해 합의내용이 바로 체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과급, 처우 개선, 교권 강화 등은 타 부처와 국회를 어떤 식으로든 설득해내야 한다. 그저 타 부처 소관 사항이라는 이유로, 또 예산 문제라는 핑계로 자칫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50만 교원과의 약속을 깨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부는 정치적 상황에 좌고우면(左顧右眄) 말고, 오로지 학교 현장만을 바라보며 합의사항을 과감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작약이 피고 수국이 피면 어느덧 오월이다. 꽃의 향연으로 시작하는 오월은 유난히 마음이 먼저 들뜬다. 영산홍처럼 붉은 날짜들이 많아서인지 모른다.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 그리고 나머지 날짜를 학교장 재량휴업일로 정해 9일간 단기 방학에 들어가는 학교도 많다. 게다가 9일이 대통령선거일이니 8일도 재량휴업을 한다면, 4월 29일(토)부터 5월 9일(화)까지 무려 11일간의 휴업일이 생긴다. 가정의 달을 위한 배려 학생에 대한 수업을 고려한다면 파행이겠지만 어차피 5월 한 달은 이래저래 학교 행사와 맞물려 교실에서 차분한 수업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휴업일로 쉬면 맞벌이 부모 등 여건이 맞지 않는 환경의 아이는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8일 만큼은 재량휴업일로 정하지 말기를 권고한 상태다. 여하튼 특별휴가를 열흘 정도 누린다는 것은 학생이나 교사에게 재충전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즐거운 샛바람이 불어오는 5월. 아이들이 무절제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부모와 함께 교사는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가정에서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학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주변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도록 관리해줘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 시기를 가정의 달로 정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어서다. 어린이날에 즈음해서는 11개 항으로 돼 있는 ‘어린이 헌장’을 교사가 먼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헌장을 읽다 보면 눈물 글썽임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과연 어린이 헌장에 맞게 아이들을 대했던가’ 하는 반성의 시간도 될 수 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는 교사가 감사의 카네이션 만들기 또는 편지쓰기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처럼 소중한 일은 없다. 편지를 쓰더라도 진심을 담아 쓰도록 지도하고, 결손가정의 아이가 있다면 마음 다치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체력도 교사의 몫 학교마다 다르지만 5월에 체육대회를 하는 학교가 많다. 교사는 이날만큼은 아이들이 마음껏 공을 차고 달리고 응원하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일절 생수 한 병도 받을 수 없다.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그을리고 목이 말라서 수돗물을 들이켜는데 그 광경을 우두커니 지켜보기에는 참 딱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지원하는 학생활동비가 있으니 그 예산으로 생수 한 병과 빵 하나씩은 사줄 수 있다. 아니면 까짓것 교사가 호주머니를 털어 시원한 ‘사이다’ 한 병씩 나눠주면 얼마나 행복하랴. 5월에는 체격검사와 체력측정(PAPS)이 있다. 몇몇 학생은 별로 반기지 않지만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담임이 잘 설명해줘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학급별로 이동하는 측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잘 인솔해야 한다. 아울러 호흡곤란과 같은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운동과 아이의 컨디션, 건강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공부도 등한시할 수 없어 수업공개를 하는 달도 5월이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실내외 청소를 깨끗이 하고 평소 수업하는 모습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청소 말고도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교사의 애정이 드러나는 수업이다. 평소대로 수업한다고 정말 밋밋하게 수업을 한다면 부모는 금방 눈치를 채고 학생이 왜 엎드려 자는지 이유도 알 것이다. 이러한 상황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초록의 축제가 펼쳐지는 5월에는 각종 교내 경시대회와 대외 경시대회들이 진행된다. 예전 같으면 여러 협회와 단체에서 백일장 대회를 개최했겠지만, 요즘에는 고등학교 학생생활기록부에 그 내용을 기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행사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학생이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진로를 정한 경우라면 대회에 관한 각종 정보를 챙겨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엽서시 문학공모’와 같은 커뮤니티는 연간 청소년대회 일정이 망라돼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발명경진대회, 수학경시대회, 각종 UCC 공모전 등이 수시로 있기 때문에 학교로 오는 공문을 잘 챙기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아울러 대학에서 고등학생을 위한 논술모의고사가 시작되는 시점도 5월이다. 2018년도 논술을 시행하는 대학은 31개교이므로 본인이 원하는 대학의 일정을 찾아 준비해야 한다. 2018학년도 수시 비중이 2017학년도의 69.9%에서 73.7%로 많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교과 성적과 교내수상에 욕심을 내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1차 지필고사가 끝났겠지만, 고사를 시작하는 학교도 있다. 황금연휴에 아이들이 생채기 날 정도로 뛰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부를 등한시하지 않도록 채근하는 것도 교사가 챙겨야 할 부분이다. 요즘은 가족과의 체험학습이 늘어 자칫 학업에서 손을 떼고 놀러 다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체험활동은 교육과 안전이 최우선 5월의 학사일정을 보면 대부분 학교가 현장체험과 학급별 테마체험을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안전이다. 운전기사의 안전운전, 학생들의 질서 지키기 등 기본 안전수칙을 숙지하도록 하고 교사는 항상 학생과 함께 있어야 한다. 아울러 탐방하는 곳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고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체험활동이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식의 놀이문화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교육적 목표를 설정하고 다녀와서는 교사끼리 모여 평가회를 해야 한다. 진로직업인 초청 체험활동을 하는 경우라면 학생들의 호응도를 파악해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자신의 꿈을 이룬 극적인 인생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직업인이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말주변이 없는 분이나 시의원, 시장 등 정치적 속내를 가지고 자신을 홍보하려는 이가 있다면 엄정하게 차단해야 한다. 5월 중순에 있는 안전대피훈련 중심의 재난대응훈련은 대통령 선거로 하반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5월의 정점은 스승의 날 이렇듯 5월은 무슨 행사가 이리 많은지, 가정폭력 예방의 날이 있고, 성폭력 연수가 있으며, 생명존중 자살예방교육이 있다. 이런 교육도 자주 하다 보면 지루해지게 되는데 현대사회의 역기능이라 생각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학생들에게는 위기에 대한 대응방법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생명의 전화는 전국공통 1588-9191, 폭력 사건은 학교 전담 경찰관의 번호를 알려주면 된다. 쑥스럽지만 5월의 정점은 스승의 날에 있다. 예전 같으면 옛날 선생님께 애틋한 손편지도 보냈었는데 지금은 언감생심, 감사는커녕 학생들은 저희끼리 떠들기에 신 난다. 커피 한 잔도 받으면 고발당하는 나라. 스승이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말이 참 역설적이다. 사실 뇌물 챙기는 것은 일부 정치인인데, 뭔가 누명을 잘못 뒤집어쓴 기분이다. 아무튼 스승의 날에는 학생 대표들이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 정도는 달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전체 방송을 통해 스승의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사 스스로도 스승의 자격이 있는지 성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5·18 기념일은 잊지 말아야 할 날이다. 어떻게 진행됐고 지금은 어떻게 끝났는지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도 중요한 민주시민교육이다. 만약 특별교육이 불편하다면 당시를 다룬 영화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편이지 않을까. 계절의 여왕, 5월을 준비하면서 초록초록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교 1학년 담임입니다. 학기초 상담 시간에 형이 중학생 때 자살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저로서는 위로 말고는 뭘 더 어찌해 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더군요.” “중3 담임인데요, 우리 반 아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란에 ‘살기 싫다. 내가 살면 짐이 되는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써 놓았네요. 담임이 어찌 대처해야 할까요?” 저경력 담임교사들이 털어놓는 학급 운영의 어려움 중 일부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2003년부터 현재까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도 높다. 통계청 자료로는 청소년 10만 명당 자살률은 13명으로 집계된다. 청소년들의 자살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이 작용한다. 청소년기는 신체·인지·정서적인 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혼란을 경험하는 시기다. 여기에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학생 각자의 재능과 적성을 무시하고 이른바 명문대와 대기업을 향한 줄서기를 시키는 풍토가 우리 청소년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출산율 저하는 가족 구성원 수의 감소를 초래해, 가족 내에서의 사회적 관계 경험이나 실생활에서의 배려·공감·위로의 과정이 과거와 비교하면 현저히 줄었다. 우울증 대처법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일반적으로 청소년의 자살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우울증을 들기도 한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자살 시도로, 우울증 환자의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는 실제로 시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미와 관심의 상실이다. 외국의 경우 우울증의 증상이 대개 의욕 저하와 우울감으로 나타나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 환자들은 주로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불안감, 어깨 결림, 근육통 등으로 나타나서 우울증을 의심하거나 진단하기 어려운 상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즉,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우울증 증세를 철저히 숨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유달리 우리나라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지 못하고 심각한 다른 질환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에야 자신의 기분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진단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더 그렇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청소년의 우울증이 대부분 ‘가면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의 우울증은 그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몸 안에 내재된 채로 병증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치료를 요할 정도의 우울증은 아동기보다는 청소년기에 많이 나타나는데, 유병률이 5% 정도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우울을 가면 뒤에 꼭꼭 숨기고, 가정·학교에서 친구·교사·가족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꽂으면서 자신의 우울과 화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학교폭력이나 게임·약물 등 중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거나, 끝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행동의 메커니즘을 한마디로 정리해, ‘자신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자신을 향하면 우울증이 되고, 외부로 향하면 학교폭력이 된다’고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청소년들과 부대끼고 생활하며 관찰한 결과 이 가설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 교사들에게 유용한 자살·우울증 대처법은 학생들의 마음 상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전문의의 진료, 전문가의 상담과 더불어 가족·교사의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하는 ‘상처 찾아주기’는 문제의 절반 이상을 해결해 주는 소중한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또 연구에 의하면, 신체적 활동과 운동이 우울증 증상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걷기, 달리기, 농구, 축구 등 학생이 즐기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할 만한 신체적 운동도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학교폭력 피해자 대응 최근 들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청소년 자살 요인은 학교폭력이다. 갈수록 학교폭력이 흉포화, 저연령화, 음습화하면서 아이들의 정신력만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필자가 상담한 사례를 예로 들면, 고교 2학년 여학생이 학급 아이들로부터 따돌림과 사이버 괴롭힘을 받아 서너 번의 하혈 증세를 겪었고 쇼크로 인해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로 여러 번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상황을 잘 모르는 전입생이 이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려 하자 이마저도 교류를 끊도록 종용해 크나큰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 여학생 역시 수차례 자살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어른들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아이들은 자기 친구들이 자기를 버리면 온 우주가 자기를 버리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기를 괴롭히고 따돌려도 부모나 교사에게 말하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가 계속되면서 자그마한 학교폭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 역할은 가족이 일차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교사가 그 역할을 해주거나, 학급 친구들이 유사한 역할을 하도록 훈련하고 분위기를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 학생을 비난하고 외면하더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너는 좋은 친구야!’, ‘너의 행동은 옳았어’ ‘널 사랑해’라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토닥여 준다면, 그 학생은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청소년 자살의 특징, 구조신호 또한 자살을 시도하려는 청소년의 사전 행동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살 전에 자신의 의도를 직·간접적으로 친구나 가족 등에게 알리는 경우가 많다. 우연히 이런 행동을 발견했을 때, 이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어른들의 자살이 삶의 포기라면, 청소년들의 자살에서는 자신을 가족·친구가 구조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이들의 구조신호를 알아차리고 손을 잡아준다면 자살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자살과 관련해 전설 같이 내려오는 실화가 있다. 미국에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초임 경찰관이 강물에 뛰어든 자살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하였다. 자살 시도자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경찰관들은 구명동의를 던져주고 그것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자살 시도자는 ‘나는 죽으려는 사람이니 안 잡겠다’고 버텼다. 경찰 근무 첫날 당황한 경관은 사고자의 반항을 접하고 나서,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그를 겨누고선, ‘구명동의를 잡아라. 안 잡으면 쏜다’고 외치고 말았다. 이미 죽으려는 사람에게 또 죽이겠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이며 황당한 망발인가? 경찰관의 경고를 들은 자살 시도자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은 죽어야 한다’면서 안 잡고 버티던 구명동의를 결국 잡고야 말았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자살 시도자는 죽으려 하는 의지도 있지만, 마음속의 다른 편 한구석에는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죽고자 하는 마음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넘어섰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북돋아 주고 용기를 심어주고 그의 어깨를 쓰다듬고 보듬어 준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삶의 의지가 자살 의지를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활용해야 하는 내·외부 네트워크 맨 앞의 사례처럼 담당 학급 학생이 직·간접적으로 자살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상담내용은 모두 비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자살과 관련된 경우는 예외다. 이런 경우 담임교사는 그 말이 90% 이상 농담이나 과장이 섞였더라도 절대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또 절대로 혼자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학교 상담교사나 상담사에게 통보한 후 상담을 거쳐 교감·교장에게 보고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보호자와의 상담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담교사-보건교사-생활지도부 교사-교감 등 내부 네트워크와 Wee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정신건강증진센터-병·의원 등 외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아이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살펴줘야 한다. 필자는 이 경우에 Wee센터 담당자와 통화해 학생의 상황을 설명하고 긴급 상담을 의뢰하고 2~3일 안에 상담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학생은 주저했지만, 부모님과 협의해 반드시 Wee센터 상담에 참가하도록 했다. 추후 이 학생은 자신을 귀찮게 한 상대방 학생이 겁을 먹게 하려고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교사는 이럴 때 조금 불편할지언정 반드시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동·청소년 자살 및 정신건강에 관한 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가정과 학교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만하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학생 정신건강을 위한 교사 상담전화’ 스쿨라인(1577-7018)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자살사고 이후의 사후중재프로그램 ‘희망의 토닥임’도 운영하고 있으므로 자살 사안 발생 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른 지역도 각 시·도의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노이로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이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표현인 스트레스(stress)가 오래가면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 심리적 증상인 신경증(Neurosis)의 독일어 표현인 ‘노이로제(Neurose)’를 당시에 그렇게 많이 사용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의 입에서 ‘노이로제’라는 말이고 쉽게 튀어나오던 시절이었다. 정치 분야에서 큼직큼직한 사건이 요즘만큼이나 자주 언론에 등장했던 것이 1970년대를 ‘노이로제 시대’로 만든 배경의 하나였던 것 같고, 죄 없고 뒷배경 없는 국민들의 ‘노이로제’가 모여서 충돌하고 폭발하는 장이 교육이었다. 정치적 불안의 시대 ‘노이로제 시대’의 출발은 1972년 10월 유신의 선포였다. 1971년 8월, 분단 후 최초로 남과 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렸고, 이듬해인 1972년 7월 4일에는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2년 8월 미군의 베트남 철수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감을 증식시켰고,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17일에 유신을 발표했다. 대통령 간선제와 중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유신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 이어 12월 27일에 박정희는 체육관 선거를 통해 제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3년도 평화롭지는 않았다. 8월 8일에는 김대중이 납치됐다가 풀려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해 12월에는 에너지 파동으로 TV 아침 방송이 일체 중단됐다. 1973년에는 소설가 펄 벅, 화가 피카소, 그리고 영화배우 이소룡 등 시대를 상징하던 문화 예술인들이 세상과 이별했다. 1974년의 시작을 알린 것은 긴급조치였다. 1월 8일에 발표된 긴급조치 1호는 헌법에 대한 반대, 부정, 비방을 일절 금지했다. 4월 3일에 공포된 4호는 학교 내외의 모든 집회, 시위, 농성 등을 금지하는 동시에 이를 위반한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후 사임을 한 것이 이해 8월 9일이었으며, 바로 일주일 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북한은 이해 9월 16일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다(1994년 6월 탈퇴). 광복 30주년이 되는 1975년도 암울했다. 4월 30일에 월맹군이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써 베트남 전쟁이 종결됐고, 대한민국이 제출한 UN 가입안은 8월 6일에 부결됐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대처한다는 명분에 따라 학도호국단이 9월 2일에, 민방위대가 9월 22일에 창설돼 병영사회로 한발 한발 진입했다. 1976년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 해였다. IT 분야에서는 획기적인 해였다. 4월 1일에는 애플이 창립됐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봇 애니메이션 태권V가 개봉된 것도 이해 7월 24일이었다. 중국에서는 타이완의 지도자 장제스가 전년 4월에 사망한 데 이어 대륙의 지도자 마오쩌둥이 9월 9일에 사망했다. 8월 18일에 벌어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남북,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타임스나 뉴스위크 같은 외국 잡지는 검열을 통해 여러 페이지가 검은 매직으로 읽을 수 없게 덧칠해진 상태에서 배포됐으며 시내 곳곳에서는 경찰들이 시민들의 가방을 뒤지고 긴 머리와 짧은 치마를 단속했다. 승공과 애국 교육 새교육도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지 못했다. 10월 유신이 선포된 직후에 발간된 1973년 신년호에는 “10월 유신의 대과업이 전 국민의 가슴 속에 메아리치는 시기를 맞아 600만의 학생들을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한국인으로 키우는 보람을 영원히 간직하자”는 신년사가 실렸다. “우리의 주체성을 확립 강조하는 한국적 교육(박일경 명지대 헌법학 교수)”이 돼야 한다거나 “국가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 또한 국민교육헌장의 이념 구현(정세문 음악교육자)”이어야 한다는 등의 애국적 주장도 지면 다수를 점령했다. 신년호의 특집은 1972년에 이어 또 ‘새마을 교육의 실적과 전망’이었고, ‘한국적 민주주의 우리 땅에 뿌리박자’와 같은 구호가 큰 글씨로 잡지의 이곳저곳에 마치 깃발처럼 나부꼈다. ‘새마을 교육 대상 입선작’이 실리고, 소개된 교육자료는 ‘10월 유신을 위한 사회과 교사용 지침’이었다. 편집자의 말대로 1972년을 ‘새마을의 해’라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고, 새교육은 제호일 뿐 내용은 새마을교육으로 변하고 있었다. 1973년은 ‘유신의 해’였다. 2월호의 권두언에서 김성식 충남도교육감은 ‘유신 정신 구현을 위한 학교교육의 혁신’ 방안을 제시했고, 김은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교육자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살리는 결단을 요구했다. 그는 심지어 “정열적인 조국애와 민족애가 새로운 윤리의 척도”가 돼야 하고 교육내용과 제도도 이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육과정 개정(2월 공포) 직후 간행된 3월호 특집 ‘새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방향’에서는 심지어 산수과의 경우에도 ‘한국적 산수교육’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됐다(이정실 서울시립농대 교수). 1974년 8월 15일에 있었던 대통령 저격미수(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으로 교육은 반공을 넘어 승공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었다. 1974년 10월호는 ‘승공교육의 강화’ 특집으로 꾸며졌다. 승공교육의 강화 구현 방안, 승공교육 자료 개발 계획 시안, 승공교육 학습지도안 등이 실렸다. 해외 교포에 의한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인해 ‘교포교육 강화를 위한 교육자 앙케트’가 시행됐고, 김인회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교육경쟁은 제3의 전쟁임을 명심”하고 교포교육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초등학교 교사 정춘모는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미술교육”의 필요성을 외쳤다. 산수(수학)조차 한국적이어야 하고, 미술교육도 민족주체성을 지향해야 하는 슬픈 시대였다. 주체성을 강조한 나머지 한국적 물리학이나 한국적 과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용기 있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다. 이런 어둡고 침울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는 없었다. 새교육 1975년 4월호에 인용된 한 보고서의 내용으로는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2/3가 ‘노이로제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담자 차경수 교수는 원인을 부모가 주도하는 입시 경쟁이 청소년들의 심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국가가 강요하는 애국 활동과 애국 교육도 청소년들에게 이중의 부담이 됐을 것이다. 1970년대 ‘노이로제 시대’의 교육을 상징하는 현상 중 하나는 재수생 문제, 특히 대입 재수생 문제였다. 재수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용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 알려진 인물 중에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등의 과학자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문학가도 재수를 통해 자기의 꿈을 실현했으며, 이순신 또한 4수 끝에 무과에 합격했다. 문제는 재수생의 규모와 사회적 비용이었다. 4월호의 대담을 보면 1975학년도 대학 입시의 경우 입학 정원이 5만 7000명인데 재수생이 무려 16만 5000명에 달했다. 1975년 입시에서 예비고사에 응시한 학생이 22만 명이었고, 이 중 11만 명이 합격했다. 예비고사 합격자 중 5만 7000명만이 본고사에 합격했고, 나머지 5만 3000명은 불합격해 재수의 길을 가게 됐다. 예비고사 불합격자 11만 명 중 6만여 명이 재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1975년 한 해에 재수생 11만 3000명 발생한 셈이었다. 재수생 중 74%, 거의 4명 중 3명이 낙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을 비롯한 유명대학의 재수생 합격률이 입학생의 40% 전후를 차지한다는 것이 재수를 부추기는 배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류대학이 문제였고, 재수생 프리미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환경과 교육적 여건 속에서 국가와 부모를 만족하게 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노이로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인 시대였다. 당시 통계에 의하면 가계비의 50% 이상이 교육비로 지출되고 있었으니 이 또한 정상은 아니었으며, 재수생들에 의한 풍기문란도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다. 대담자 이상갑 여의도고 교사의 표현대로 “비생산적인 교육, 비생산적인 지식은 오히려 무식보다 해롭다”는 격언이 실감 나는 시절이었다. 1970년대 중반의 ‘노이로제 시대’가 탄생시킨 ‘노이로제 교육’은 사회적 낭비이며 비극이었다. “사모아에는 학교는 없으나 훌륭한 교육은 있다”는 마거릿 미드의 표현이 그리운 시대였다.
01일곱 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일곱 시간’이나 공연을 하다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 관심을 두고 특별히 예술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그렇게 긴 연극이 있단 말이야? 어떤 건지 한번 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호사가적 관심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곱 시간’에만 집중하는 관심은 대중적인 관심(popular issue)에 머문다. 나도 저 공연을 보고, 누구에겐가 ‘일곱 시간 공연을 보았노라’고 말하고 싶은, 일종의 ‘지적인 허영심’ 같은 것에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이 공연을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무대에 올리는 작품을 확인하는 순간, ‘아! 인내심이 필요하겠구나. 짜릿한 재미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지. 지루해서 졸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작품은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관람을 권유해 봤다. 재미없으면 책임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한 관심을 갖고 응하는 사람은 그 분야 전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일곱 시간짜리 연극 관람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우리라. 난해한 내용에 일곱 시간이나 인질처럼 붙잡혀 있어야 한다. 비싼 관람료를 내고서 말이다.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도 흥미를 못 느낄 수 있다. 아, 그 원작이란 것이 얼마나 길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난해했던가. 그래서 끝내 다 읽지 못했던 책이 아니었던가. 선뜻 관람 동기를 가지는 사람들도, 이 작품에 대한 어떤 지적 결핍감을 채워보자는 욕구가 작용했을 수 있다. 그것도 불편함을 수반하는 관람이 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만만치 않은 고전이다. 고전에 대한 저 유명한 고전적 정의, ‘자신은 읽지 않으면서 후배나 제자들에게는 읽으라고 강조하는 책’이라는 말을 절절히 공감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이수 차원에서 반강제적으로 읽었다. 이 독서는 실패였다. 길고 지루하고 난해한 책이었다. 이 실패는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기숙사에 러시아 문학에 해박한 수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내 기를 죽였다. 명색이 문학 전공자인 나는 열패감을 면할 수 없었다. 스스로 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깟 소설책 한 권을 제대로 못 읽어내고서 포기한단 말인가. 이 책은 나의 이후 독서를 가로막고 서 있는 장벽 같았다. 그 선배가 졸업한 뒤, 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결연한 오기로 재대결한다. ‘오기(傲氣)의 독서’란 이때 내가 만든 말이다. 책이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 이것이 문제다. 끝까지 무조건 읽자. 모르는 것도 안다고 최면을 걸면서 읽자. 모르면 찾아보면서 읽자. 그러니 속도에 연연하지 말자. 읽는다는 사실 자체에 자존감을 가지자. 여기서 무너지면 다른 독서로도 전진할 수 없다. 내 지식의 교두보를 이 책으로 확보하자. 두 번째 독서는 힘들었지만 성공했다. 세 번째 독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다시 읽었다. 세 번째 독서는 두 번째 독서의 성공을 다시 확인시킨다. 일곱 시간짜리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고 나왔다. 나에게는 대만족이었다. 작품을 해석하는 통로 하나를 새로 발견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또한 젊은 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오기의 독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02오기(傲氣)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니 두 가지의 뜻풀이가 있다. 하나는 ‘힘이 달리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설명돼 있고, 다른 하나는 ‘잘난 체하며 상대를 업신여기는 기세’라고 되어 있다. 두 가지 풀이 모두 그리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오기의 독서’를 좋은 의미로 제안하려 한다. ‘오기의 독서’가 좋은 의미가 되려면 물론 ‘오기’도 긍정의 지향을 띄어야 한다. 말이란 원래의 정해진 뜻이 사전에 있기는 하지만, 그 뜻 안에 절대적으로 가둬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사,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실에서 만들어진 말 중에는 정해진 사전의 뜻을 살짝 넘어서는 것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변화가 요란한 인간 감정을 구체적인 생활 맥락에서 담아낼 때는 그 말이 꼭 국어사전에 규정한 뜻으로만 쓰이라는 법은 없다. 오기가 항상 부정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 마땅히 오기를 부려봄 직한 구체적 삶의 상황이 왜 없겠는가 하는 데에 생각이 이르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으려는데 책이 너무 딱딱하고 두껍고 난해해서, 그래서 힘이 달려서, 몇 번이고 중간에 포기한 책이 있다면, 다소 우격다짐의 방식이 되더라도, 기어이 그 책을 독파하라는 것이다. ‘책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오기)’으로 그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걸 ‘오기의 독서’라고 이름을 붙여본 것이다. 좀 어렵고 지루해서 약간 기가 눌려 있는 책이 있다고 하자. 더구나 잘난 척하는 친구들은 그 책을 모두 읽었는데, 나만 읽지 못해서 살짝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다고 하자. 일단 그 책을 업신여기는 마음 자세로 책 읽기를 공략해 보자. 잘난 체하는 친구들을 내 마음 안에서 다소 오만하게 무시해 가며, 기필코 그 책을 정복하려 해 보자. 그걸 ‘오기의 독서’라고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오기의 독서에는 얼마간의 지적 허영심이 개입해도 무방하다. 아니 그런 정신이 좀 권장될 필요도 있다. ‘지적 허영심’을 굳이 나쁘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지식이나 예술에 어떤 동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초기의 기제로서 ‘지적 허영심’은 그 나름의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오기라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발동되는 하나의 코드일 수 있다. 그리고 자존심의 상당 부분은 자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심리 기제이고, 그 안에 약간의 허영심 같은 것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 없이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자아의 발달 경지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입지에서 보면 ‘오기’는 성취동기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오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한순간에 걷어내어 버리게 한다. 그 순간이 바로 자아를 새롭게 설정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오기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오기는 충동과는 구별돼야 한다. 충동으로 작동하는 오기는 무모함으로 추락한다. 독서에 ‘오기’를 적용하면 그 ‘오기’는 일정한 지속을 거느린다. 그래서 ‘오기’와 결합할 수 있는 말로 최적의 말이 바로 ‘독서’이다. 오기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 그것은 이미 ‘강력한 계획(plan)’이 되는 것이다. 오기를 일정하게 유지해 밀고 나가면 그것은 이미 ‘유효한 전략(strategy)’이 되는 것이다. 03자신의 정신적 생애를 독서로 실천해 나가려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늘 반성적으로 돌아본다면 그는 실력자다. 독서를 통해 부단한 자기 도야를 한다면 그는 성숙한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소망만으로 그런 경지를 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이런 독서는 반드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해야 한다. 내면으로부터의 정신적 오기가 강하게 추동해 올리는 그런 독서여야 한다. 이것이 ‘오기의 독서’다. 나를 열패감에 빠지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나를 좌절하게 하고, 나의 지적 정체(正體)에 대해서 회의할 때, 나의 독서 도전을 열어주는 교두보(橋頭堡)와도 같은 독서가 있어야 한다. 진격의 독서를 위해서 교두보 독서는 절대적이다. 모든 독서가 ‘오기의 독서’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생애에서 한 번의 ‘오기의 독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 생애 독서의 첫 지평을 열어주는 독서가 되기 때문이다. 단 한 권 ‘오기의 독서’는 그와 대등한 백 권의 책을 스스로 불러온다.
증권부 기자로 일하다 보니 거의 온종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거래창을 띄워놓는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주식 종목별 차트 안에는 인간의 일곱 욕망과 수만 가지의 고민이 한꺼번에 투사된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는 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아무리 똑똑한 사람 1만 명이 있어도 그들이 ‘군중’으로 모이는 순간 지성은 사라지고 만다는 말 등등을 똑똑히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 거래의 현장이다. 차트의 움직임은 경이로울 정도로 예측불가다. 단 한 순간도 쉽게 가는 법이 없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종목의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도 누군가는 ‘사자’를 외치지만 누군가는 ‘팔자’를 외치며 물량을 집어 던진다. 하긴 그렇게 같은 상황을 보고도 생각이 다르니 거래(去來)가 가능한 것일 테다. 중요한 것은, 내 눈앞의 거래에만 시선이 팔려 있으면 시장 전체의 흐름을 놓친다는 점이다. 2011년 ‘지금, 경계선에서’라는 명저를 내놓은 작가 레베카 코스타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문명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꼬집는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에 대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보면 비극’이라고 통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태를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보면 작은 움직임에도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바로 그런 맹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휴대폰을 끄고 명상을 해보기도 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 이제 스포트라이트를 2017년 대한민국으로 맞춰 보자.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언론은 연일 떠들어 댄다. 사실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얼굴들이 구태의연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다들 모두가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목이 쉴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유권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어째 날이 갈수록 기술은 발전하는데 살기는 더 피곤해진다. 우리는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으로 온 세상의 정보를 흡수하며 똑똑하게 살아가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뱉어놓은 고대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없던 위기도 만들어내는 인간 이런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지금이 인류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위기인 걸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이 불행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는 것은 아닐까? 무릇 인간의 환희는 위기의 끝, 슬픔의 뒤안길에서 시작된다. 슬픔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우리는 종종 평화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권태에 빠진 인간들은 없던 위기라도 만들어내 스스로를 드라마적 상황 속으로 밀어 넣은 뒤 자신을 구출하는 데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과 역사의 흐름을 균형 있게 살펴보면, 우리의 이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위기, 부조리, 고난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 평화의 반대급부로 존재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국정농단 파문 등은 분명 국가적 이슈요 ‘큰일’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오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임이 틀림없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안들이 한 나라의 운명과 국격 그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안인가 하면 거기서부터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사건들로 인해 국가의 명운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지금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를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결이 잔잔하면 물고기 한 마리도 파도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그 작은 파도를 ‘쓰나미’로 오해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한국인들에게 국난극복의 DNA가 있다지만, 사실은 국난 ‘초래’의 DNA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며 씁쓸해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얘길 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주길 당부했다. 100년 후 오늘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위기다운 위기, 난세다운 난세가 찾아들지 않자 한국인은 스스로를 핀치로 몰아넣으며 드라마를 써내려가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우리의 여유(?)가 무색하게도 나라 밖의 상황은 격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 뒤의 한국인들이 2017년의 역사를 기술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지 상상해 보면 가끔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우리는 천 년 뒤의 한국인들이 반추할 때 별다른 ‘에지’가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커다란 위기나 드라마가 오기 전의, 발단-전개-절정-결말 중에서 ‘전개’ 정도의 어중간한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타국의 물리적 침략을 받거나 길을 가다 총에 맞아 죽을 가능성은 낮지만, 대신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시대적 위기라고 떠들고 있는 대다수 문제에 대해 후대는 ‘저런 걸로 심각한 고민을 한 배부른 세대도 있었군’이라고 한심해 할지도 모른다. 난세에서 영웅이 난다지만, 영웅이 없어진 우리 시대의 모습은 지금이 난세가 결코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아주 괴롭게 살고 있는, 사상 최고로 기묘한 아이러니의 후예들인 것이다.
지난해 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 사이에 벌어진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우리 교육계는 교육제도와 틀, 교육내용과 방법 등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기존 학교교육의 빠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학교교육의 혁신을 강제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학교가 외부의 변화에 대해 더디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학교 ‘밖’에서는 그것을 깨우치고픈 욕심과 조급증에서 교육의 변화와 혁신안을 만들고 학교에 강제하고픈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위기의식과 조급증은 학교구성원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교육개혁의 과정에서 소외시킬 수 있다. 그럴 경우에 학교개혁과 변화는 오히려 어려워지고 교육의 위기는 심화될 수 있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정치가나 기업가, 교육운동가들은 교육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교육문제는 결코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교육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개혁에 대한 역사적 연구들은 교육의 혁신과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발전 속도에 비해 매우 더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앨빈 토플러가 지적한 사회 각 부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속도의 지체를 떠올리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앨빈 토플러는 기업의 변화 속도와 비교해 너무나 느린 교육의 변화 속도를 지적하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교육의 변화 속도는 교육의 본래적 속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개혁과 변화는 ‘이상향’을 향해 ‘땜질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이상향을 향한 학교교육의 변화는 더디게 이뤄지는가? 한 세기의 미국 교육개혁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하나는 외부나 위에서 강제하는 교육개혁 추진과정은 교사들을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학교 교육개혁에서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을 외부에서 강제하는 사람들은 교육의 변화가 교실의 변화에서 이뤄지고, 그것은 이 일에 헌신하는 교사들의 열정과 경험 그리고 소망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버린다. 다른 하나는 교사들이 교육개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교사들은 교육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교육개혁 방안들이 학생들을 지적·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경우 외부로부터 불어오는 개혁의 소용돌이에 대해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고 자위하면서 대응한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뤄진 교육개혁 연구들은 교육자들의 반성적인 노력이 학교교육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도 체험적으로 이를 확인하고 있다. 분명 학교장과 교사가 학교교육을 혁신하면서 교육의 위기에 대응하는 주체다. 교육위기에 대응하는 교육개혁은 학교에서 실천되고, 교육의 위기는 학교현장에서 극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개혁 운동가나 정치가들은 학교가 변화하고 혁신하는 데 있어서 속도가 더디더라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학교 없는 교육개혁은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개혁과 혁신을 실천하는 주체는 학교장과 교사를 비롯한 교육자들이다. 교육자들이 자발적으로 학교혁신에 나서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학교장과 교사가 없는 학교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 정부로부터 지지를 받는 탁월한 역량을 가진 교원들의 존재와 열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육공약 중에서 향후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공약은 교육정책 결정권을 갖는 교육 지배구조에 관한 공약이다. 일부 후보 진영에서는 정책결정권을 갖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하면서도 국민적 합의와 많은 논의가 필요한 학제를 비롯한 중요한 교육공약도 함께 발표해 국가교육위원회의 정책결정권을 부정하는 상호 모순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 일관성 결여, 정책 독점, 갈등 심화 등의 많은 문제가 이런 대선 공약 개발 절차와 적용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교육공약은 졸속 교육공약 개발과 이를 그대로 국정 지표에 반영하는 행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일 것 같다. 교육부의 상급기관 행세하는 청와대 중앙정부 조직과 관련해 가장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교육부 폐지 여부, 권한 축소, 그리고 합의제 기구 신설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청와대의 존재다. 잦은 정책변경과 같은 문제의 뿌리는 실질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체와 조직은 뒤에 숨어 있으면서 책임만 교육부가 지도록 한 구조에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못한 것은 장관이나 관료의 탓이라기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탓이다.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장관 임면권을 가진 대통령이 자기 생각을 관철하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장관은 대통령의 아바타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교육부장관은 유독 자주 바뀌었는데,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책임지는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않았을 때 예고도 없이 장관을 바꾼 일도 빈번했다. 대통령 참모기구인 청와대는 교육부의 상급기관처럼 행동한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초기에 청와대가 교육 정책안을 교육부에 전달하면서 “교육분야 국정과제는 대통령이 자구까지 검토한 것이니 수정의견을 내지 말고 그대로 집행하라. 장관이 새로 임명됐다고 해 교육부 차원에서 새 정책을 추가하지 말고 국정과제 완수에 총력을 집중하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는 집권당과 대통령이 자신들의 의지를 밀고 가기 위해 청와대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을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일관성·연속성·안정성 확보의 실패 등의 문제를 완화하고자 한다면 교육부보다 오히려 장관 임면권 행사 방식, 장관 임기 실질적 보장, 교육부와 청와대의 관계 재정립 등이 더 중요한 쟁점이 돼야 할 것이다. 독립적 국가기구 필요 만일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진다면 그 역할, 조직, 구성 등이 어찌 돼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법적 지위는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별개의 국가기구로 하는 것이 독립성 유지를 위해 바람직하다. 단, 그 의결 범위를 설립 초기에는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한 과제와 사회적 조정이 필요한 의제로 국한해 교육부와의 업무 중복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의 중·장기계획 수립 권한, 일부 의결권 등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기더라도 교육부의 위상은 부(部)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교육 발전, 타 부처와의 조율, 그리고 체계적인 집행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위원회 구성은 협치의 관점에서 다양한 집단에 전문가 추천권을 주되 정쟁의 장이 되지 않도록 위원이 갖춰야 할 엄격한 전문성의 기준을 법에 명기해야 한다. 교육문제 중에는 다양한 부처와 함께 힘을 모아야 해결 가능한 문제가 많으므로, 관련 부처 장관을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해 관련 의제를 다룰 때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의결권에 관해서는 필요시에는 위원회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 결정 과정, 결정 과정 참여자, 결정 방법 등을 정하는 역할을 하도록 기능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 또 분과위원회 위원도 관련 사안에 대해 의결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사무처에는 교육부 직원을 파견하되, 필요시 유관부처 직원도 파견할 수 있도록 열어둘 필요가 있다. 타 기관과의 관계에서는 위원회의 의결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방교육자치 구조 개편도 고려해야 지방교육자치단체의 지배구조 개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관계는 교육자치가 확대되도록 법령과 제도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대의 주장도 있다. 장관과 교육감 양자 사이의 사무배분, 자치사무의 모호성, 장관의 부령 제정에 의한 지방교육행정 개입, 장관의 포괄적 권한 행사 등의 사안에 대해 국가교육위원회 차원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장관과 교육감의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위원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국민의 교육권 보장, 헌법상 규정된 교육 이념 또는 교육의 기본 원리에 부합하는 권한 행사의 범위 명시화와 교육관계 법·제도 개선 등이 필요할 것이다. 지방자치법에 있는 분쟁조정위원회를 위원회 내에 둘 필요도 있다. 대선 초기에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던 대선 주자가 당 후보가 되고 승산이 커지면 슬그머니 이 주장을 거둬들이거나 약화하는 경향을 보이듯이 지방교육자치단체의 권한 강화에 대해서도 유사한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지방교육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까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 부작용은 무엇이며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응책은 무엇이고, 이 대응책 마련이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신설된다면 이런 논의를 진행할 적합한 기관이 될 것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주요 정당의 후보가 확정돼 경쟁적으로 대한민국호를 어떤 비전과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밝히고, 집권 구상을 담은 공약을 알린다. 매스컴은 연일 여론조사 결과와 후보 동정을 보도한다. 5년마다 이뤄지는 주기적인 일들이지만 이번 대선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 이유는 이번 대선이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탄핵을 야기한 국정 운영의 숨겨진 난맥상과 그로 인한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고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느냐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시기가 약 7개월 정도 앞당겨졌기 때문에 각 정당 후보의 선출이 짧은 기간 동안 이뤄졌다. 이에 후보들은 장시간에 걸친 공약의 학습과 내부 검토 및 검증이라는 준비 과정을 철저히 거치지 않고 그때그때 이슈 선점을 위한 공약들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슈 선점을 위한 그들의 입장 표명과 언명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이런 시점에서 대선의 교육정치학적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학술적 탐구 영역의 확대뿐 아니라 미래의 교육대통령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의의 국민이 참여하는 여러 선거 가운데서도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이 보통·평등·직접·비밀 등 자유선거의 4대 원칙에 의해 주어진 임기에서 국정을 운영할,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의 지위를 겸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적 절차라는 것이다. 그 중요성은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 이외에 전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된 정권의 파국에 대한 반대급부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은 분열된 상태이므로 대통령 선거를 통해 결과에 승복하고 정치적으로 국민통합에 이르는 선거의 본래 기능을 과연 이뤄낼 수 있느냐다. 그러나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사진을 밝히면서도 후보마다 다양하게 해석하는 ‘적폐청산’이라는 과거의 유령에 사로잡혀 네거티브 선거의 이전투구와 구태의연한 프레임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탄핵사태를 둘러싼 분노와 상처를 어루만지고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통합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통령 선거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런 국민적 공감은 이번 대선에서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이자 모든 후보가 견지해야 할 공통분모다. 진정으로 이에 대한 실현 가능한 청사진을 밝히는 후보가 어떤 후보인지를 판가름하는 대통령 선거가 돼야 할 것이다. 실현 가능성도 논리적 체계성도 부족한 교육공약 대통령 선거의 과정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현상이다.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학은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교육정치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개념의 의미를 보다 필요충분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의 내포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를 동시에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학적 의미를 이 두 가지로 파악해보기로 한다.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학에 담긴 내포적 의미는 단순히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적 현상을 가치 중립적 과학으로 탐구하는 것 이상의 교육적 함의를 가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의 교육공약을 단순히 정치공학적으로 혹은 기술적 합리성에 근거해 분석·예측하는 경험과학적 접근에 더해 공약이 교육의 이상과 목표 실현에 얼마나 바람직한 가치를 포함하고 가치 실현을 위한 논리적 체계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규범과학적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담겨있는 교육정치학의 내포적 의미는 교육공약에 반영된 목표의 구체성과 측정 가능성, 실천 수단을 통한 실현 가능성과 시간 계획성, 그리고 정책 효과의 대응성과 효과성 등을 꼼꼼하게 경험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공약의 가치가 국가 전체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담아내기 위한 논리적 체계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규범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자사고·특목고 폐지, 대입제도 단순화, 학제 개편, 교육부 폐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대학 서열화 완화를 위한 국립대 선발제도 개선, 고교 무상교육 등 난무하는 대선 공약을 낱낱이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는 일이야말로 교육정치학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4월 19일에 한국정책학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원으로 주최한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정책공약 평가 대토론회’에서 분석해보니 대부분 공약이 경험과학적 기준과 규범과학적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자별로 편차는 있지만 공약의 실행 수단이 불분명하거나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시돼 있지 않고, 심지어 구호성 껍데기 공약일 뿐 알맹이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철학과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해 결여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학적 탐구의 외연적 의미는 선거 과정의 교육적 지향성과 그것의 탐구 범위를 설정·부여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정치학적 접근은 단지 교육공약의 체계성과 실현 가능성을 논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선 교육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의 거시적인 프로세스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범위는 대통령 후보의 교육관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로부터 교육공약의 맥락적 해석, 대통령 후보를 돕는 교육정치세력의 구성과 그들의 이념과 가치 지향성에 대한 파악, 그리고 그것이 후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정권의 교육정책 장면으로 연결·전환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관찰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특히, 교육공약은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교육학적 상상력의 발휘를 통해 교육발전의 지속가능성이 요구되는 후보자의 교육관과 철학을 살펴보고, 공약에 담겨있는 계획의 정책화와 추진을 통해 바람직한 교육의 결과에 이를 수 있는지 국가와 교육시스템의 맥락 속에서 체계적으로 규명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 담긴 교육정치학의 외연적 의미를 파악해보면 우선 후보자들이 과연 교육학적 상상력이 있는지, 교육발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후보자의 교육관이 무엇인지 교육철학은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공교육 강화가 답이라고 한목소리를 높이면서 대입제도라는 독립변수 내지는 맥락변수에 대해서는 현재의 틀을 유지한 채 부분적인 개선을 취하고 있다. 대입제도의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공교육 강화를 위한 어떤 묘책도 소용없다. 자사고·특목고 폐지가 공교육 강화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공약이나 학제 개편 그리고 국·공립대 공동입학·공동학위제 도입은 국가의 교육통치 구도와 교육 시스템의 구조개혁에 관한 것으로 단순히 구조를 변경하는 일 이상의 혁명적인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 면에서 부족해 보인다. 후보가 자신을 돕는 교육정치 그룹과 상호작용을 하고 학습을 하면서 국가의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학습한 교육철학이 올바르고 정당하게 정립돼 있다면 아무리 대통령 선거가 정치적인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교육과 정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권자는 약속의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 확인해야 대통령 선거의 시작과 끝을 보면 준비하는 시점은 언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끝은 모든 후보에게 당선자 확정이라는 공식적인 결과 확인으로 같은 시점에 주어진다. 대통령 선거의 과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권력 욕구에 대한 자아도취적 이상에서 시작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합종연횡의 갈등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 결국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과 다름이 없다. 정치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권력 투쟁의 장이다. 인간의 신념과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지극히 당연한 일들이, 집단과 조직 장면에 이르면 이념과 관점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고 갈등의 단위도 커지게 된다. 이념이 정당의 정강정책으로 표현된다면 관점의 차이는 후보 간의 정치 프레임으로 나타난다. 이런 이념과 관점은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의 지배적인 아이디어로 저변에 흐르고 교육공약도 이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교육공약은 교육에 관한 정치적인 약속이지 절대 교육적인 약속이 될 수 없다. 교육공약은 교육에 대한 청사진을 통해 교육에 관련된 이해집단의 표심을 얻겠다는 득표를 위한 정치인의 약속이다. 유권자로서 국민이 할 일은 이 약속이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교육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확신을 얻어 투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공약에 대한 확인과 확신을 얻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교육정치학적 탐구이고, 마땅히 학문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 선거의 교육정치학적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제] 다음은 지능이론과 동기이론에 대한 설명이다. IQ(Intelligence Quotient)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지능이론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대안적 지능이론이 제안되고 있다. (1) 가드너(Gardner)의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이론과 심리측정적 지능을 3가지 관점에서 비교하고, (2) 다중지능이론을 바탕으로 제시문의 민수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3가지 제시하시오. 학습에서 실패를 자주 경험한 학생들은 귀인성향이 독특하고,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갖게 된다. (3) 와이너(Bernard Weiner)의 귀인이론에 근거해 학습에 성공한 학생과 실패한 학생의 귀인성향을 설명하고 학습동기 고양 방안을 논한 후, (4) 학습실패가 누적된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증진 방안을 논하시오. 【총 20점】 [ 제시문 ] (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인 가드너는 1983년에 출판한 저서 마음의 틀(Frames of Mind)에서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기존의 지능이론과는 달리 인간의 지능은 서로 독립적이며 다른 여러 종류의 능력으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중지능이론에서 지능이란 각 개인이 특정 분야의 개념과 기능을 어떻게 배우고, 활용하며, 발전시켜 나가는가 하는 특정 분야에서의 ‘문제해결능력’ 또는 ‘가치 있는 결과를 생산하는 능력’으로서 한 개인이 속한 문화권에서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분야의 재능을 말한다. 가드너는 인간의 지적 활동을 아홉 개의 분야로 나눠 각 분야에 대응하는 아홉 가지 지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아홉 가지 지능은 언어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공간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음악 지능, 개인 간 지능, 개인 내 지능, 자연주의적 지능, 실존 지능 등이다. (나) 민수는 성공적인 기업가를 꿈꾸는 중학생이다. 학교에서 실시한 지능검사에서 IQ가 100이라는 결과가 나온 후, 크게 낙담해 꿈을 포기하려 한다. (다) 귀인이론을 직접 교육에 적용한 사람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심리학 교수 와이너다. 귀인이론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교육을 환경에 의한 인간의 행동 변화로 보는 행동주의적 관점이 급속히 약화되고, 인지를 중심으로 인간행위를 설명하려는 시도로 등장했다. 인간 행동의 원인은 개인의 특성, 환경이 아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지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라) 학습된 무력감은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해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것을 말한다. 셀리그먼(Seligman)과 마이어(Maier)는 사전에 피할 수 없는 전기 충격을 받은 동물이 이후에 혐오 자극에 대한 회피 학습이 매우 어려움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들은 무기력을 초래하는 것은 사전에 전기 충격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며, 이 현상은 인간이나 심지어 바퀴벌레에 이르는 다른 종에서도 거듭 나타났다. [배점] •답안의 논리적 구성 및 표현 [총 5점]•논술의 내용 [총 15점]- 다중지능이론과 전통지능이론을 3가지 관점(변화 가능성, 지능영역, 측정 조건)에서 비교 [3점]- 다중지능이론에 근거해 제시문의 민수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 3가지 [4점]- 귀인이론에 근거해 성공적 학습자와 학습된 무력감을 가진 학생의 귀인성향, 그리고 학습동기 고양 방안 [4점]- 학습된 무력감을 가진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증진 방안 [4점] [모범답안] 1. 서론 사회가 변하면 교육도 변해야 한다. 산업사회는 소품종 대량생산을 요구했지만, 지식기반 사회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요구하므로 학생지도에 다중지능이론의 관점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지식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개개인의 잠재력과 적성 계발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사회가 요구하는 지능이론과 동기이론을 바탕으로 학생에게 학습의욕을 고취해야 한다. 2. 본론 1) 다중지능이론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IQ 중심 지능이론의 한계 3가지 [3점] 전통지능이론은 일반능력을 중시하지만, 가드너는 지능을 한 문화권 혹은 여러 문화권에서 가치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물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두 이론을 비교하면 첫째, 전통지능은 고정적이라고 보지만, 다중지능은 환경과 학습에 의해 증가할 수 있다고 본다.[PART VIEW] 둘째, 전통지능은 인지적 영역 중심의 일반능력을 중시하지만, 다중지능은 인지적 영역 외에도 대인관계, 자아성찰, 신체운동지능 등 정의적, 행동적 영역에도 지능이 존재한다고 한다. 셋째, 전통지능은 엄격히 통제된 실험실이나 엄격한 조건하에서 지능검사를 하지만, 다중지능은 지능이 사용되는 실제상황과 같은 적실성이 있는 평가환경에서 실시한다. 2) 다중지능이론에 근거해 민수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 3가지 [4점] 다중지능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독립적인 9개의 지능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람마다 특히 2~3개의 지능이 발달돼 있다. 또, 지능은 후천적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 그런데 성공적인 기업가를 꿈꾸는 중학생 민수는 IQ가 100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크게 낙담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려 한다. 따라서 다중지능이론의 관점에서 해 줄 조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발달시킬 수 있으므로 미리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성공적인 기업가를 꿈꿨기 때문에 기업가와 관련된 지능과 강점을 찾아 계발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일반지능보다 기업가와 관련된 ‘대인적 지능’이 더 중요함을 인식시키고, 대인 지능 계발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3) 귀인이론에 근거한 성공적 학습자와 학습된 무력감을 가진 학생의 귀인성향, 그리고 학습동기 방안 [4점] 와이너의 귀인이론에 의하면 행동의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변명·사고가 다음 행동의 동기에 큰 영향을 준다. 이런 결과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귀인이라고 하는데, 성취 장면에서의 귀인은 능력, 노력, 운, 과제 곤란도 등이 있다. 성공한 학습자는 내적, 불안정적, 통제 가능한 요인인 노력이나 인지전략에 원인을 돌리므로 학습동기가 높아진다. 그런데 학습된 무력감을 가진 학생들은 내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능력이나 외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과제 곤란도나 운 등에 귀인하므로 자기 책임하에 학습하지 못한다. 따라서 교사는 귀인프로그램에 따라 내적, 불안정적, 통제 가능한 요인인 노력이나 인지전략에 귀인하게 지도한다. 4) 학습된 무기력감을 가진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증진 방안 [4점] 학습된 무력감은 실패가 누적됨으로써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교사는 특정한 상황에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게 하고,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로 점진적으로 학습하게 해 성공경험을 하도록 한다. 둘째, 비슷한 특성을 가진 성공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셋째, 효과적인 학습전략(인지전략)을 제시해 학업성취를 높여주고 학습결과에 대한 교정적 피드백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높이도록 한다. 넷째, 학습 성공 시 초기에는 노력과 관련짓고, 후기에는 능력과 관련된 피드백을 제공해 자기효능감을 높인다. 3. 결론 동기는 자기주도적 학습의 원동력이다. 전통적 지능이론은 학생들의 학습가능성과 교사의 지도가능성을 약화할 수 있는 만큼 교사는 다중지능이론의 관점에서 학생들의 잠재력 계발을 돕고, 자기효능감을 높여 학습동기를 높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지능이론과 동기이론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참고자료] 1. 자기효능이론과 자기효능에 영향을 주는 요인 1) 자기효능이론 자기효능은 자기개념(Self-concept)과 구분된다. 자기개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판단이고, 자기효능은 구체적인 능력에 대한 신념을 의미한다. 장차 당면하게 될 과제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의미하는 자기효능은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사건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는 능력에 대한 자기지각이나 귀인과도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자기효능 수준이 높을수록 학습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 많이 노력하며, 지속성이 높고, 효과적인 학습전략을 사용하며, 스트레스와 불안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결국, 자기효능이 높을수록 성취도가 높다. 2) 자기효능에 영향을 주는 요인 ① 목표 : 학생이 학습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으면 자기효능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근접목표(달성하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리는 단기적 목표)가 원격목표(달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기적 목표)보다, 구체적 목표가 일반적 목표보다 자기효능을 높인다. 쉬운 목표는 학습 초기에 동기를 높이지만 학습 후기에는 어려운 목표가 동기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② 인지전략 : 자기 자신이 가진 인지전략이 학업성취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은 통제감과 자기효능을 높인다. 자신을 유능한 학생이라고 믿는 학생일수록 인지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③ 모델 :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모델에 대한 관찰은 자기효능을 높인다. 반면 그 모델이 실패하는 것을 관찰하면 자기효능이 낮아진다. ④ 피드백 : 성공을 노력과 관련지어 주는 피드백은 자기효능을 (특히 학습 초기에) 높인다. 학습 후기 단계에서 성공했을 경우 능력에 대한 피드백이 자기효능을 증가시킨다. 학습 후기 단계에서 주어지는 노력 피드백은 자기효능을 손상할 수 있다. ⑤ 보상 : 보상이 현재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자기효능을 증진한다. 2. 학습된 무력감 자기효능이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인 데 비해, 무력감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학습된 무력감(無力感, learned helplessness)은 삶을 전혀 통제할 수 없고, 무엇을 하더라도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리킨다. 학습된 무력감은 개인이 특정 장면에서 학습한 비수반관계(非隨伴關係, 행동과 결과가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는 인식)를 통제할 수 있는 장면으로 일반화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학습된 무력감 이론은 행동과 결과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지각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분석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비수반적 강화로 인해 사건을 통제할 수 없다고 지각하면, 즉 실패를 통제할 수 없다고 지각할 경우 무력감이 형성된다. 학습된 무력감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수동성이다.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력감에는 동기결여 우울증 등이 뒤따른다. 학습된 무력감에 빠진 학생들은 부정적인 자기개념을 갖고 있고, 학습과제에 대해 노력을 하지 않으며, 실패의 원인을 능력 등의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귀인한다. 이들은 낮은 학업성적을 얻게 되고 학습부진의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