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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 바야흐로 '공부'를 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평생학습 시대를 살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독서력은 떨어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풍조 또한예전과 다르다. 공부를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전 세대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병적인 집착을 보일 정도로 교육열이 높다. 그것은 절망을 이기는 수단일 수도 있고, 신분 상승의 기회로 작용하는 유일한 통로가 교육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습관이 머리를 이긴다 이 책의 내용을 단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SQ (Study Quotient)= IQ(Intelligence Quotient)+ EQ (Emotional Quotient) + α 공부지능 SQ (Study Quotient)는 저자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즉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인들을 합한 것이다. 공부지능의 가장 중요한 것은 IQ다. IQ가 높다고 무조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며IQ가 나빠도 공부를 잘할 수 있지만, IQ가 높을수록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암기력, 어휘력, 연산력, 공간지각력, 논리력, 추론력이 필요하고 처리속도도 빨라야 하는데, 이는 다 IQ와 관련이 있는 능력들이다. 전체 공부지능 중 IQ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70퍼센트일 정도로 IQ는 중요하다. (25쪽) 공부의 시작은 암기력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책이다. 우수한 성취를 보이는 학생들의 특징은 바로 암기력이라는 것. 한 때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암기력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필자는 학교 현장에서 날마다 경험하며 살고 있다. 시를 잘 외우는 아이가 수학도 잘한다. 수학 암산을 잘 하는 아이가 탐구수학 문제도 잘한다. 외우는 능력은 곧 처리속도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최첨단의 컴퓨터이다. 자주 반복해서 외우면 뇌는 그 정보가 중요하다고 인식해서 장기기억에 보관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이 많아야 꺼내 쓸 수 있으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그 정보량이 많다. 요즈음 필자는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한 편 동시 외우기, 공부 시작 전 동화 한 권 낭독하기를 하며 암기력이 일취월장한 1학년 아이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아이들도 놀라고 나도 놀라는 중이다. 시 외우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동화 책 한 권 낭독하는 시간이 3월 초에 비해 1/10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사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혼자서 실실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받아쓰기로 긴 문장을 쓰면서 띄어 쓰기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 수확하는 쏠쏠한 열매 앞에 동장군도 무섭지 않다. IQ와 더불어 공부지능을 이끄는 또 다른 요소는 EQ다. 이것은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처리하는 능력이다. 하기 싫어도 참고, 화가 나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배려하는 것 모두 EQ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자아를 잃지 않는 능력도 EQ에 의해 좌우된다. 공부지능에서 EQ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30퍼센트에 행당한다. (25쪽) 타고 난 지능은 좋은데 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의 특징을 보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공감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낮아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한다. 모두 EQ가 낮은 증거다. 친구들의 성취를 축하해 주지도 못하고 시샘하고 질투한다. 심지어 친구들을 따돌리거나 학교폭력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문제도 EQ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IQ와 EQ 외에 공부지능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집중력'과 '창의력'이다. IQ와 EQ가 공부지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면집중력과 창의력은 공부지능을 더욱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부가적인 요소다. (26쪽) 필자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 중에는 집중력이 매우 높은 학생이 있다. 공부하는 동안 해찰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경우를 볼 수조차 없는 학생이다. 5분 집중하기 어려은 1학년의 특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진지해서 놀랍다. 경청하는 자세부터 질문하기, 메모하기도 고학년 못지 않다. 그림을 그리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말도 하지 않고 몰입하며 스케치 부터 색칠에 이르기 까지 그 완성도가 높음에 매번 놀라곤 한다. 심지어 자기 책 만들기 작품이 80쪽을 넘겨서 금성초의 대표작이 되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100인의 작가 키우기' 공모전에 출품될 정도다. 집중력이 높으니 창의력도 높다. 그 학생의 특징은 암기왕에 연습의 대가여서 우람한 나무로 자랄 것임을 예견하며 청출어람의 기쁨을 안겨준다. 능력별로 정점을 찍는 시기가 다르다 2014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린 적이 있다. 각 능력별로 정점을 찍는 시기를 조사한 것인데,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내용들이 제법 많았다. 공부지능 측면에서 IQ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외국어 학습은 7~8세, 뇌 인지능력은 18세에 정점을 찍고, EQ와 관련된 타인의 감정이해력은 40~50대, 갈등해소력은 60세 이후에 최고치에 달한다. 공부지능 중 창의력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과학적 대발견은 40세가 정점이다. (69쪽) 특히 인지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때 가장 활발하게 발달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가정교육과 유치원, 초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부지능 개발의 적기는 초등학교 6년이라고 보면 된다. 조금 더 넓게 잡으면 3~4세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도 포함되지만, 적기를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이라 본다면 초등학교 6년이라 할 수 있다. (71쪽) 저자의 말대로라면 초등학교 교육이 한 사람의 공부 인생에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100퍼센트 맞는 말이다. 학교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형편이었음에도 5,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의 격려와 다독임 덕분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이어진 주경야독의 터널을 힘들어하면서도 빠져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초등학교 6년의 학교 교육 덕분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교육은 어린 나무를 심어 뿌리를 내려서 제대로 뻗을 수 있게 하는 최적의 시기라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초등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며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결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이 책은'교육의 수준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오래된 금언은 진리임을 생각하게 한다. 공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이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오늘날 학교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서 만나는 그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교과서가 아닌 인생을, 삶을 가르쳐준 단 한 사람의 스승만 만나도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으니! 사랑으로 가르쳤는지, 정성을 다해 격려했는지, 정의를 몸으로 보여주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심리학과 뇌 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연구자료 외에도 저자가 직접 가르치고 경험한 사례들을 빼곡히 담고 있어서 신뢰감을 준다. 이론서가 주는 헛헛함과 경험서가 주는 학문의 얕음을 모두 보충해준다. 충분히 검중된 이론을 바탕으로 가르침을 실천한 연구소의 다양한 사례들은 학교 현장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적용하기 쉽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최대의 장점이다. 혼수용품에 넣어야 할 책 이 책은 교육심리학서로도 매우 우수하다. 육아지침서로도 충분하다 . 예비신부에게도,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진 초보 엄마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유대인들이 교육에 성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혼하기 전부터 육아서를 읽고 교육을 준비한다고 한다. 아기를 갖기 전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먼저 결혼하기 전에 준비하고, 자식을 갖기 전에 준비하고, 낳기 전에 준비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만드는 오랜 시간을 결혼과 교육에 투자하는 그들의 지혜 덕분에 육아에서도, 교육에서도 성공하는 것이리라. 준비 없이 결혼하지 않고 준비 없이 아기를 낳지 않으며 공부하지 않고는 어버이가 될 생각조차 품지 않는 유대인의 오래된 지혜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자녀 교육에올인하는 대한민국 열혈 학부모들이 좋아할 책 공부지능 개발의 4단계 '발견-반복-강화-실현 : 공부의욕 스위치를 켜주라! 이 책에는 다양한 팁들이 실려 있다. 각 장마다공부지능을 이루는IQ, EQ,α를 강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신선한 것들도 있어 주목을 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팁, 자녀의 모습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깊고 넓은 안목을 갖게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지면 상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없으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2017년에 읽은 교육용 책 중에서 최상위에 두고 싶다. 결혼한 딸의 태교용 책으로도 좋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 겨울방학 권장도서로 적극 추천할 생각이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교장 선생님(최종호) 께 말씀드렸더니 성탄절 선물로 선생님들께 안겨주신다고 흔쾌히 약속하셨다. 학교장이 책을 즐겨 읽고 좋아하는 모습은 필자가 뽑는 최고의 관리자이기도 하다. 책은 교육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관리자는 고집불통이거나 편협하거나 독단적임을 경험으로 배웠다. 집단사고조차 되지 않아서 권위적이거나 권한을 남용하거나 함부로 휘두르기까지 한다. 통찰력의 시작이 지적인 능력이고 그 능력을 채우는 데는 책보다 나은 선택이 없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관리자나 리더를 만나는 조직은 출발부터 불행하다. 그래서 인문학의 시작이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사고력과 정의로운 판단력, 청렴함의 씨앗은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오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 무명교사로 살기 지금 우리 1학년 9명 아이들의 공부지능은 쑥쑥 자라는 중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 이상은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의 놀라운 모습에서 우리 교육의 아름다운 미래를 확신하는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명교사로 살기를 참 잘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교실에서 마지막까지 시간을 아끼며 아이들의 웃음 속에공부지능으로 똘똘 뭉쳐진 제자들을 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시와 동화책을 읽어주는 순간에 빛나는 초롱한 눈동자를 보는 기쁨을 교직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릴 수 있는 천운에 눈물나게 감사하는 중이다.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제자들로 자라기를 빌며 어린 나무의 밑둥을 다져주는 이 일에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교실에서 누리는 아름다운 기쁨에 감사하는 중이다. 더구나 인문영재반 5, 6학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을 조금만 쉬운 언어로 가르쳐주면 신기해하며 알아듣는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E형 인간'을 읽고 쉽게 설명해 주었는데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까지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식의 구조를 학문적으로 설명한 브루너의 선견지명에 다시금 탄복한다. 아무리 어려운 개념도 학생의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 된다는 그의 이론을 적용하며 나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한다. 오히려 순수하기 때문에, 스펀지 같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받아들이는 속도와 깊이가 깊어서 쪼그만 1학년 아이들에게서 맹자의 삼락을 찾는 이 기쁨을 누가 알랴! 내일이나 모레쯤 우리 반 1학년 아이들에게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설명해 줄 생각이다. 그들의 뇌세포는 필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용어의 선택만 쉽게 풀이해주면 다 알아듣는다. 요즈음 우리 반 아이들의 구호가 바뀌었다. 공감력이 높은 "E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지난번 『E형 인간』 책을 읽고 설명을 해주었더니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며, 밥을 먹을 때에도 필자가 "1학년"하면 아이들은 "E형 인간"을 외치며 수저를 드는 풍경이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다음 번 구호는 아마도 "공부지능"이 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 이 책은 우리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들여다보며 반성할 대목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결과에 집착하는 조급증을 반성케 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도꼭 필요한책이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좋아하게, 효율적으로 성취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부모나 선생님의 공통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알고 실천에 옮기는 비율이 5퍼센트라고 한다. 좋은 책, 새로운 정보를 읽지 않으면 그 5퍼센트마저 건질 수 없다. 아니 마이너스 쪽으로 퇴보하여 내리막길을 내닫는 데는 가속도가 붙어 제어할 수도 없는 게 인생의 진리이다. 인간은 평생 공부지능을 가꾸고 사랑해야 할 운명이 아닐까.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 ' 마거릿 대처 수상이 한 말이다. 책 읽는 습관, 공부지능을 살리는 습관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 삶의 질을 바꾸고도 남는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는최고의 무기는 공부지능이니 아날로그적 독서에 좋은 책이다. 다시 한 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교육부가 시범운영을 거쳐 2022년까지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대학입시도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등을 거치며 진로에 대한 방향을 설정한 후, 고교에 입학해 흥미나 적성에 따라 문·이과 구분 없이 수업을 듣게 함으로써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형 창의 인재 양성을 위해 더 이상 획일화된 학년제, 단위제 교육과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이다. 또한 대입경쟁에 매몰된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고 공교육 정상화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다. 하지만 문제는 2022년까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만큼 준비가 가능하냐는 점이다. 실제로 고교학점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일부 학교는 교사수급이나 교육활동 공간 등 인프라 문제로 고충이 컸다고 한다. 또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의 쏠림현상과 내신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일반 교육과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나타났다.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교과 공동교육과정’을 시범 운영한 한 교육청이 교사수급 문제와 학생 이동, 번잡한 행정 업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유념해야 할 사례다. 고교학점제는 내신평가, 대학입시, 특목고 및 자사고 존폐, 도농격차 등과 맞물려 교육체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농 간 교육격차로 인해 대도시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교육판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을 두고 대통령 공약임을 내세워 임기 내에 가시적인 실적을 내야한다는 조급함은 금물이다. 그럴 경우 기대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현장에 더 큰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는 맘이 편치 못하다. ‘11월의 괴담’이라 할 만큼 교사들을 긴장시키고 스트레스를 주는 ‘교원평가제’ 때문이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일단 취지는 좋다. 학생들의 학습욕구와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교사들부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취지’가 애초의 설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교원평가는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사기만 떨어뜨리고 있다. 욕설·인신공격 난무하는 교원평가 이번 11월에 실시된 교원평가도 여지없이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됐다. 소위 자유서술식 평가 항목인 주관식 평가에 악플 수준의 욕설이 난무한 것이다. 물론 교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거나 수업의 개선점을 적은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익명’을 악용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적은 경우도 많다. 한 언론 기사에 공개된 "이 ○○○은 그냥 (학교에서) 나가야 함", "성형 너무 티가 나서 거슬려요" 등등은 인신공격에 가깝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늦게나마 파악하고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금칙어’로 설정해 결과지에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욕설 중간에 띄어쓰기를 하거나 기호를 삽입해 이를 피한다. 결국 교육부의 조치도 탁상행정에 불과한 것이다. 교원평가는 ‘평가를 통한 전문성 향상’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기능을 못하고 있다. 특히 교원평가에서 평균 2.5점 이하 점수를 받은 교사들에게 강제되는 ‘능력향상연수’는 치명적일 정도로 해당 교사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왜냐하면 이 연수는 교육자로서 절차탁마했던 소중한 정체성을 뒤흔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고통과 자괴감으로 30년 넘는 교단생활을 접은 교사도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학생지도부 소속 교사들의 품귀 현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벌점을 주거나 야단을 치는 교사들은 높은 점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실력보다는 재미있는 교사, 엄격하게 지도하기보다는 느슨하게 지도하는 교사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사정이 이러한데 과연 누가 이 ‘악역’을 도맡아 ‘능력향상연수’까지 받는 고통의 기관차를 타겠는가. 교단 황폐화, 더는 외면 말라 많은 선진국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는 수업 개선을 위한 참고사항이다. 대체로 수업을 참관한 뒤 해당 교사와 면담을 하고 교사의 지도방식에 대해 건의하는 정도다.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교원평가가 교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교원평가가 도입된 이래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고 있으며 여기서 초래되는 폐단으로 교단은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교육당국은 교원평가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의견에 귀를 막고 있다. 참여율만 높이기 위해 급급할 뿐이다. 이제라도 교육당국은 기억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교원평가로는 교사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그런 교사의 고통은 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11월의 괴담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한국교육신문 윤문영 기자]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이하 시도교육감협)가 학칙에 상벌, 두발복장, 휴대폰 사용 등의 내용을 담도록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의 삭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일선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충돌되는 법적 근거를 제거하려는 시도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도교육감협은 지난달 30일 전북교육청에서 가진 정기총회에서 학칙 기재사항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 중 제7항의 삭제를 안건으로 협의할 예정이었다. 제7항에는 ‘학생 포상·징계, 두발·복장 등 용모,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사용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은 해당 조항이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 4에서 명시한 학생의 인권보장과 어긋난다고 제안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총회에서는 여러 긴급사안이 올라와 해당안건이 논의되지 못했다. 시도교육감협 관계자는 "당초 안건으로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특성화고 현장 실습, 초등교실 어린이집 설치 등 긴급 안건들이 올라와 미뤄졌다"며 "실무협의회에서 부분합의 의견으로 총회에 올라온 안건들은 다음 총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총회는 2018년 1월 11일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도교육감협의 이같은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일선 현장은 사실상 학생지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서울 A고 김 모 교사는 "용모나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을 학칙으로 정하는 것은 학생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의 교육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학칙마저 사실상 없애겠다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데 학교 현장을 너무 모르고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서울 B중 이 모 교사도 "학칙마저 없애면 생활지도 자체를 못하는 것"이라며 "기본이 무너진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면 결국 교사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할텐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이번 협의는 학생인권조례 반발의 가장 큰 빌미인 상위법과의 충돌 근거를 없애려는 의도로 지적되고 있다. 두발 규제 등은 학생인권조례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상위법인 시행령에서는 학교장이 이같은 사항을 반영한 학칙 개정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울, 전북 등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교육부가 상위법 위반 등을 들어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또 경남, 강원, 충북 등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도하는 지역에서도 여전히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시도교육감협의 논의는 단위학교의 자율적 운영 자체를 가로막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은 "시도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칙 사항을 제한하려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해 학교 실정에 맞는 학칙을 제정해 운영하라는 당초 법의 취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행령에서는 학교장이 학칙을 제·개정할 때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시도의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칙 등 학교 규정을 정하도록 한 것과도 배치된다는 비판이다. 서울, 전북 등의 조례에는 두발, 용모 등에 대해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타인의 인권 침해시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서울의 경우, 학생의 의사에 반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되지만 복장에 대해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 학생의 휴대폰을 비롯해 전자기기의 소지나 사용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되지만 교육활동과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학칙으로 전자기기 사용과 소지의 시간, 장소를 규제할 수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시도교육감협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교육자치의 최종 목표는 교육부에서 교육청으로, 교육청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권한 배분을 통해 학교 자치와 학교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기 C고 교사는 "학교자치를 목표로 하면서 학칙을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도교육감협은 이날 총회결과 5급 공무원에 대한 성과급적 연봉제를 제외하기 위해 지방공무원 보수규정 개정을 행정안전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이 추천하는 교육공무직원도 정부 포상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정부포상업무지침의 개정도 제안하기로 했다.
지난 9월 13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1300회를 맞은 때만 해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수는 35명이었다. 두 달 넘게 지난 지금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33명으로 줄었다. 11월 1일과 11일 두 분 할머니가 세상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7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해 2월 24일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귀향’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존자는 45명이었다. 358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던 영화 ‘귀향’ 이후 1년 9개월 남짓 지나는 사이 10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많은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렇게 일본군 만행의 확실한 증거라 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속속 세상을 뜨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지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는 유의미한 영화로 다가온다. 9월 21일 개봉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데, 흥행 성공까지 했다. 손익분기점인 180만 명을 훌쩍 넘겨 327만 1862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것.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은 여느 상업영화들의 그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 ‘귀향’이 그랬듯 일본군 만행과 함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각인시키거나 되돌아보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어서다. 사실상 한국형 블록버스터 ‘남한산성’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스맨: 골든서클’, 뜻밖의 대박을 일군 ‘범죄도시’ 등 추석대목 영화대전에서 거둔 성적이라 각별해 보이기도 한다.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에는 또 다른 긍정적 의미가 있다. 추동력 확보가 그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이 앞으로도 위안부 소재의 상업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침 김해숙⋅김희애를 주연으로 한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 제작이나 ‘군함도’ 제작사 외유내강의 ‘환향’ 기획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 캔 스피크’의 시나리오는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공모전’ 당선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2007년 미하원에서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사죄결의안’을 모티브 삼은 영화이기도 하다.영화의 시작은 단순하고 유쾌하다. 일삼아 민원을 넣는 나옥분(나문희) 할머니와 명진구청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티격태격하고 있어서다. 그 틈틈이 “하여튼 이 나라 공무원놈들…”이라커니 “공무원 신조 나대지 말자”나 “할머니 없으면 구청 직원들 할 일도 없어요” 같은 대사를 날리며 은근히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따위를 까발리기도 한다.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두 캐릭터의 충돌은,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낸다. 그 끈이 영어다. 영화시작 40분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영어 가르치기와 배우기가 시작된다. 다름 아닌 “아버지가 술 드시고 실수하신” 덕에 세상과 만난 고딩 남동생을 옥분이 돌봐주는 걸 보고 내린 결정이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미국에 사는 남동생과 말하기 위해서이지만, 알고보니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옥분은 자살하려던 자신을 구해준 친구 정심(손숙)과 다르게 나라에 등록하지 않고 과거도 숨긴 채 살아왔다. 남동생이 모르는 사람이라며 잡아뗀 것도 누나가 위안부였기 때문이다. 그 점은 어머니 산소에 찾아가 “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 한마디만 하지 왜 그러고 갔어”하며 우는 옥분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니까 옥분은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위안부 할머니인 것이다. 할머니가 시장통에서 오지랖 떠는 것도 외로워서다. 미하원 청문회에서의 영어로 하는 증언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아이 캔 스피크’(증언하겠습니다)는, 그러나 민재가 청문회 현장에 나타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끝까지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영화는 “도대체 돈을 얼마나 요구하는거냐?” 따위 일본측 매도와 남매 상봉, 그리고 청문회 참가자들이 옥분에게 미안하다며 악수하는 장면 등 여러 곳에서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구청 직원과 시장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웃의 격려와 성원도 훈훈하게 다가온다. 여느 위안부 소재 영화같지 않은 모습인데, ‘아이 캔 스피크’의 수확이라 할만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튼실한 시나리오에 그것을 극적으로 잘 버무린 연출이다. 우회적 화법으로 정곡을 찌르면서도 따뜻한 시선이라 할까,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를 단순히 피해 할머니들만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공감케하는 영화이다. 327만 1862명에 그친 관객 수가 오히려 아쉽게 생각될 정도이다. 만 76세 노배우 나문희 연기는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과 별도로 옥분 대사에 표준어가 섞여 100% 매끄럽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밀봉하지 않은 봉투에 현금(달러)을 넣어 문틈에 끼워 놓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구청 동료 아영(정연주)의 고백도 사족으로 보인다.
올해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부임 첫 날부터 지인들의 방문이 거의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인품이 훌륭하신 분이란 것은 예전에 임시 교사로 같이 근무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면모를 확인하니 더욱더 감동이 밀려왔고 절로 존경의 마음까지 생겼다. 오랜 교직생활을 하면서 훌륭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고 헤어졌지만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은 거의 최상급에 가까울 정도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학생들에게는 늘 자애로운 분이다. 어느 날인가는 어디서 피자 냄새가 진동해서 출처를 알아보니 교장실이다. 교무부장이라 업무상 자주 뵙는데 그 날은 방송반 아이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피자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그 뿐이 아니다. 전교어린이회에서 결정된 모든 안건은 가급적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업무 수첩에 일일이 깨알같이 적고 곧바로 시행하신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축구골대 네트를 고쳐주세요. 연못에 물고기를 다양하게 넣어주세요. 정문이 위험하니 차량 출입을 통제해주세요.” 등 모두 아이들의 복지와 정서 그리고 안전에 연결된 현실적인 문제다. 며칠 전, 첫 눈이 왔다. 교정에도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다. 교장 선생님은 손수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이 등교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눈을 깔끔하게 치우셨다. 아이들과의 아침 맞이는 교장 선생님이 담당하신다. 새롭게 변한 학교 분위기가 처음에는 구성원들에게 어색했지만 이제는 점차 익숙해졌다. 관리자의 작은 배려와 봉사의 리더십이 학교 현장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교직 생활을 한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교직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되어 있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교직은 매우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다. 몇 해 전, 어느 교수님께서 쓰신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라는 책을 읽어보니 교사들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동료 교사와의 관계 그리고 관리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보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러기에 동료 교사나 관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작은 친절과 관심에 민감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힘이 생기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수 있다. 늘 존중과 배려로 교육 공동체를 대하는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떤 교장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마치고 다시 한 번 글쓰기로 정리를 하도록 지도하신다. 이 글도 인성교육 소감으로 원우진 학생이 쓴 글이다. 지난 번 수요일에 전남 생명과학고에서 김광섭 선생님의 진로ㆍ인성교육 수업을 들으러 갔다. 김광섭 선생님께서는 일본으로 강연도 다니시고 책도 내신 의외로 대단하신 분이었다. 심지어 책은 1년에 한 권씩 내는 걸 목표로 계속 1년 마다 책을 출판하신다고 들었다. 김광섭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로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로는 하루에 단어를 100개를 외우면 다음 날이면 40개 밖에 기억에 남지 않지만, 하루에 단어를 10개씩 외우면 4일이나 걸린다고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우라고 하셨고,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하셨다. 그 말의 의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하고의 문제는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꾹 참고 자리에 오래 앉아 있고, 또한 집중을 잘하느냐를 말씀하신 것 같다. 그리고 진로 인성교육인 만큼 진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그 중에서는 진빵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반죽일 때는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한 번 찐빵이 되버리면 다시 반죽으로 되돌아 올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진로는 후회없이 정말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 특기와 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김광섭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기본적인 공부가 돼야한다는 걸 느꼈고, 또 김광섭 선생님의 경험이나 또는 사연 같은 것을 듣고 성공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에서도 그랬듯이, 특정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가 가장 어렵고 혹독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 시대마다 교육의 위기가 거론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 학교 교육도 여전히 위기상황으로 회자되고 있다. 교육의 변화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실제로 우리 교육계 내외에서는 1990년을 전후하여 공교육에 대한 문제와 비판이 제기되다가, 90년대 말부터 공교육에 대한 우려와 자성이 본격화되면서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교실붕괴)’, ‘교육은 없다’, ‘학교붕괴’ 등과 같은 과격한 표현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는 왕따, 학교폭력, 기초학력 저하, 교실붕괴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로는 첫째 수업이 재미없고, 둘째 지나치게 엄격하고 획일적인 틀 속에 학생들을 가두고 있으며, 셋째 성적으로 줄을 세워 차별하고, 넷째 가르치는 것에 속도감도 없고 참신함이 없으며, 다섯째 시대낙후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을 강요하고, 여섯째 배울 의욕이 없는 아이들조차 학교가 무리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인 것 등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변화에 둔감하다. 즉, 포스트모던한 청소년 세대들을 여전히 상당 부분, 근대적인 공교육 체제와 방식으로 지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에 들어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문화는 자신들의 자율적인 주권을 강도 높게 표출하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시키면서 변화무쌍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다양한 삶의 양식들은 그들의 복장·노래·언어·태도 등을 통해 자유롭게 분출되고 있다. 교사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태들이 상당 부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세상은 계속 변화하여 포스트모던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데, 학교와 학부모는 여전히 모더니즘적인 사유의 틀로 포스트모던한 청소년들의 행태를 판단하려고 드니 상호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행동하려 하지 않는 청소년 이처럼 오늘날 청소년들의 가치관은 근대 사회의 청소년들의 가치관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것과 관련해 공교육을 반성해볼 하나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요즘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청소년들은 ‘재미’라고 하는 것에 크나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근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재미’라고 하는 것에 크나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출세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싫어도 노동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 소년들은 ‘재미’가 있는 것에는 철저하게 몰두하지만, 반면에 ‘재미’라고 하는 요소가 결여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철저하게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근대사회와 포스트모던 사회의 청소년들 간의 차이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무시한 채, 오늘날의 공교육은 여전히 입시위주의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지식주입 교육에 의존하는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자유분방한 학생들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학교 교육에 등을 돌리게 되고, 결국 이것이 학교붕괴 등과 같은 공교육의 위기로 연결된다. 시대착오적 교육방법에서 벗어나자 이렇게 보면, 우리의 공교육 현장은 교육시설, 교육내용과 방법, 교사의 학생지도방식 등에 있어서 상당 부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근대적 교육방식에 머물러 있어 그러한 교육체제에 코드가 맞지 않는 청소년들이 학교 교육에 등을 돌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현장은 지능정보화 사회에 맞지 않는 근대적인 입시방식과, 그에 따른 교육방식이 여전히 주종을 이루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빠져들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의 교육은 유비쿼터스·빅 데이터·클라우드·웹 플렛폼을 활용한 교육방법으로 시대변화에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서가는 청소년들의 코드에 맞추어야만 공교육이 활력을 찾을 것이다. 그래야 흥미를 느낄 것이 아닌가? 이처럼 시대변화에 걸맞은 획기적인 교육제도와 방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공교육은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총장은 지난 11월 9일 한국교총 70주년 교육대토론회 기조강연에서 ▲교원전문성 향상 ▲교권확립 ▲공공선 실현에 앞장서는 교원단체 ▲존경과 신뢰받는 교사상 정립 등을 교총의 미래비전으로 제시했다. 성 총장은 이날 “교총은 우리나라 교육역사를 써내려간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육 발전에 긍정적 인 영향을 끼쳤다”며 지난 70년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교총은 이제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체성 확립과 발전적인 미래상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대한민국이 교육입국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교총이 앞장 서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한국교총 70주년 성찰과 미래 대한민국 교육 30년의 길’을 주제로 한 성 총장 의 기조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구국의 등불로 밝힌 한국교총 70년 한 나라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재를 길러내 한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는 과업은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완성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말이다. 모름지기 교육이란 그 어떤 요인보다도 교육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근대교육의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육의 씨앗을 뿌리고 구국의 등불 역할을 해온 교원들 의 헌신적인 자세와 노력으로 국가재건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1947년에 창립된 한국교총은 광복 이후 정부수립보다 앞서 창립되었으며 우리나라 교육역사를 써내려간 우리나라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육발전에 이바지했다. 한국교총은 설립 이후 전문직주의를 표방하며 교직의 전문성 신장, 교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 복지 후생 확충뿐만 아니라 교권 신장 및 윤리 확립을 비롯한 교육 여건 개선 등을 위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한국교총은 설립 이후 일관성 있게 전문직주의를 표방하며 교직의 전문성 신장, 교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 복지 후생 확충뿐만 아니라 교권 신장 및 윤리 확립을 비롯한 교육제도 쇄신, 교육 여건 개선 등을 위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또한 연구활동과 국제 교류 강화를 통한 교직의 위상 제고 등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 현장연구 대회, 원격교육연수원 설립, 교육세 도입을 통한 안정적 교육재정확보 기반 마련, 유·초·중등 단일호봉제 도입, 사립학교연금제도 신설, 교원윤리강령 제정, 단체교섭·협의 확보 등이 있다. 그러나 일부 국민에게는 교육권보다 ‘자기들의 이익 관철’이라는 모습으로 비춰져 낮은 신뢰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나 편협한 주장 등으로 보여져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1999년 7월 교원노조 결성권이 합법화됨에 따라 한국교총은 유일한 합법적 교원단체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게 되고, 복수 교원단체 시대를 맞았다. 교원단체의 복수화로 단체별 성격과 역할이 다른 계층·단체 사이에 활동이 전개됨으로써 교육현안에 따라 혼란과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한국교총의 정치적·사회적 입지 또한 좁아졌다. 하지만 한국교총은 조직 강화와 다양한 회세 확장 활동 등을 벌이며 조직을 안정화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으며, 교육 본연의 활동을 강화하여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10여 년 간 회원 수가 증가했으며, 사회적 영향력이 되었다. 한국교총은 여전히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원정책과 한국 교육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뿌리조직인 12,000여 개의 학교분회와 190여 개의 시·군·구 교총, 17개 시·도 교총을 아우르는 중앙단체로서 교원이 전문직에 부합하는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중앙정부와 매년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 교육을 위한 자치 고민해야 그러나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이에 따라 전교조가 공식적인 법적 기구로 보호받는 상황이 되면서 건국 이래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단일한 교원단체로서 누려왔던 한국교총의 위상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법과 제도에 비추어 한국교총도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무를 가지게 됐다. 한국교총은 전교조와 그 탄생에서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구성원이 다 같은 교원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범위에서 협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 탄생의 차이라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협치와 더불어 한국교총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도 숙고할 시점이다. 새로운 시대적 변화는 교육자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교육감은 주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따라 선출하게 됐다. 하지만 교육감직선제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교육감직선제를 시행하면서도 교육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감직선제는 나름 타당성을 가지지만 지방자치 단체장 특히 광역단체장 선거에 매몰된 지방자치 선거에서 교육감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가진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진행되어 왔다. 이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여 교육감 후보와 광역단체장 후보가 정책적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총도 이러한 일에 방관자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야 할 것이다. 공공선에 근거한 교원단체 활동 패러다임 정립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한국 교육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선(善)의지의 부족과 배타적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의 발로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선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배타적 개인주의나 집단적 이기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모두가 다함께 발전 하는 선한 공동체주의를 배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경쟁이 인간의 ‘선의지’를 침해하고 있다. 또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 이었던 역동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상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기초하여 인성을 회복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배려심과 이타심(altruism)을 복원시켜야 한다. 수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인류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을 복원하는 선의지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선의지의 확립은 대학에서의 교육보다는 유아교육, 초·중·고 교육에서의 인성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초·중등 교육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인성과 품성의 기본이 형성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주체인 일선학교 선생님들의 교육관, 교육방법, 역량, 자질 등이 중요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고귀한 선의지를 확립하고 선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최일선 첨병이다. 앞으로 한국교총의 활동 또한 무엇보다도 이러한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 문제에 관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1991년에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으로 제정하고 2015년에는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으로 확대, 강화하는 등 교권보호를 위한 한국교총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여러가지 교육 현안 과제들이나 쟁점들을 둘러싸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요구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의 질 향상(Quality School)을 통한 우수 인재양성이라는 공공선 실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학교교육의 질을 거양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 개선과 교원의 전문적 자질 향상, 그리고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에 보다 무게중심을 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총은 이익단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그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 수준을 넘어서서 공공선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학생·학부모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을 때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교육입국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교직의 전문직 주의의 확립과 교권 보호 아울러 교원의 전문성 향상과 교권보호는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이다. 아시다시피 교직은 전문직이다. 전문직에게 부합하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교직의 성격을 규정짓는 본질적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1차적인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떠한 교육관련 구호도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교원의 전문성과 자질은 질 높은 교육의 전제이자, 존경과 신뢰, 교권 존중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총의 활동 또한 교원들이 이러한 본질적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무엇보다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러한 전문직으로서의 교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원들의 실제 학교교육에 있어 높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학생들의 잠재력 개발과 소질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지 겸허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며, 모범적인 선생님이 되도록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 교원들이 스스로 큰 책임의식을 느끼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먼저 가져야만 전문성 또한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여교사에 대한 성희롱 발생, 폭력 행사 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아니한다’는 선생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으로 상징되 는 말을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인 관계마저 무너져버린 현실을 목도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다원화되고 개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일부 버릇없고 기본적 소양이 되지 않은 학생들에 의해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단순히 넘어갈 수는 없다. 실제 교육현장의 교권 추락은 심각하다. 최근 3년 간 교육부에 접수된 폭행, 폭언·욕설, 성희롱, 수업방해,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건은 1만 2천여 건이 훌쩍 넘어선다. 교권의 추락은 교원이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학교 교육력을 저하시키므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 피해는 교원뿐만 아니라 결국 학생들과 우리 사회에 되돌아온다. 교권 수호 대책이 필요하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길 수 있는,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간 교육 당국이 이를 위해 수없이 많은 정책을 제시했으나 교권은 계속 추락해 왔다. 공교육 회생은 교사와 학생 간 신뢰가 회복되고 교권이 확립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교권이 무너진 교육현장에는 교육이 존재할 수 없다. 교원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교단의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상황에 대하여 학생의 학 습권과 교수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교권이 바로 설 때 비로소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교권 확립을 위한 이면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교권침해 사례에서 교원들을 보호해 주고 이를 격려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총이 이들의 법적 보호를 위해 교권 옹호 기금을 마련하여 소송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교권 옹호를 위한 법률구조 서비스의 선진화라 할 수 있다. 교권 확립을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서 교원들이 편안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교원의 안정적 업무 수행을 위한 물적 기초가 마련돼야 한다. 교총의 노력으로 1972년에 대한교원공제회법이 제정된 것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더 나아가 1973년에는 사학교원연금법의 제정을 실현하는 데에도 교총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이는 오늘날과 같은 고령화 사회가 현실화된 시점에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선구적인 일이다. 교직사회의 안정에는 사학교원연금법이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둘째, 학교에서 오늘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교원 개인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교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려한 끝에 ‘학교안전사고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교원이 안전하게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법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돼야 한다. 존경받고 신뢰받는 새로운 교사상 확립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등 국내외 교육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변화된 기대와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학생, 학부모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학교 밖 더 큰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봉사하며 교육활동의 폭 또한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와 가정, 교원과 학생, 학부모가 함께 협력하는 교육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현장과 교육 주체 사이의 원활한 소통 속에 신뢰는 자연스럽게 뿌리내린다. 이제는 교원 스스로도 새 로운 교원상을 정립하고, 교육과 교직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교권과 교육 발전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도덕과 공동체의식, 세계시민의식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될 때 자연스럽게 교원의 자긍심은 세워지고 교권을 보호하겠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문화형성이 가능하다. 이런 문화는 한 두 사람 교원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한국교총이 교육 구성원과 구성원을 연결하고 큰 흐름으로 이어가는 조력자가 돼 야 한다. 이런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교원단체의 활동이 절실하다.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라면 ‘무너진 학급’을 한 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학급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담임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악화되어 서로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고학년 교실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에게 ‘판단 기준’과 ‘비교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반과의 비교를 넘어 우리 반에 대한 실망이 반복되고 담임교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 학급 붕괴로 이어진다. 붕괴의 조짐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간 신뢰관계에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미국 범죄학자 조지 켈링(George Kelling)과 정치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이 명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은 학급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급 내 작은 문제를 교사가 해결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학생들은 허용치가 어디까지인지 두고 보자는 듯 점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깨진 유리창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순간, 담임교사의 권위가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주위에서 목격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무너진 학급’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1 _ 우리 선생님이 이상해요 다른 교사에게는 깍듯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 담임교사만 보면 얼굴을 구기며 돌아섰다.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묻자, “선생님이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친구관계나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담임교사에게 가면, 무조건 종이에 써오라고 지도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종이에 열심히 써 가봤자 그 어떤 공감도, 해결책도 얻을 수 없다. 이 종이는 학부모 상담용 종이이며, 그대로 학부모에게 공개되어 아이들은 더 이상 종이에 그 어떤 것도 적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종이는 마치 치부책 같았고, 담임교사는 종이를 손에 쥐고 아이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2 _ 적의 적은 나의 아군 소통의 부재로 담임교사와 아이들 간 신뢰관계가 깨진 상황 속에서 담임교사가 적이 되고 악의 축이 되어버리자, 담임교사와 반대편에 선 아이들이 힘과 권력을 얻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해당 아이들은 보통 학급에서는 혼나야 마땅한 행동 들을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예를 들어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욕설을 하며 나가버려도, 다른 아이들은 ‘아, 담임이 또 ○○○를 열 받게 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 담임교사는 나가버린 아이를 잡으러 갈 수도, 남아있는 아이들을 지도할 수도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3 _ 수업도 못하는 선생님 수업시간, 담임교사는 혼자 교과서 내용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너나할것없이 일어나 공을 던지고 놀거나 춤을 추며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담임교사에 대한 측은한 마음으로 얌전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던 여학생들이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전혀 안 들려서 수업을 할 수가 없고, 이제는 학급 관리를 안하시는 선생님이 미워질 지경이다”라고 표현하며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2학기 중반 무렵, 8명의 여학생이 급식을 먹은 후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남학생들과의 소통 부재로 힘들어하던 담임교사는 결국 여학생들과의 관계마저도 틀어져 버렸다. #4 _ 무너진 권위, 무너진 결속력 한 번 무너진 학급이 담임 교체 없이 정상 궤도로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담임교사가 권위를 잃은 순간, 학급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하지 않 았고 아이들 또한 담임교사를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다툼은 아주 집요하고 길게 이어졌다. 결국 이 다툼은 학급 내부 분열과 극심한 왕따라는 커다란 문제가 되어 돌아왔다. 이와 같이 교사의 권위 상실은 결국 학급 내 아이들 간의 결속력조차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같은 학년에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면, 동학년 교사들은 함께 긴장하게 되고 학년부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 경우 학년부장의 권한으로 어디까지 개입을 할 수 있을까? 만약 해당 학급 담임교사가 도움을 거부하면 학년부장이나 동학년 교사들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무너져가는 학급에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학년 내 교환수업 실시, 상담수업 실시 등 다양한 방법이 거론됐다. 그러나 초등교육현장에서 갑작스레 실시하는 과목별 교환수업은 명분이 부족하고, 해당 학급 학생들에게 아무리 상담수업을 여러 차례 실시해도 담임교사가 함께 바뀌지 않는 이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학급 붕괴를 다룬 신문 기사나 그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학급이 무너지는 원인을 체벌 금지, 학생인권의 지나친 존중, 그리고 교권이 추락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급 붕괴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개인의 소서사(小敍事)를 중시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주 인공이 되라고 부추기는데, 교사들은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들과 마주하게 되어 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지 않고 소통해야 하는데 평균 23.41명의 아이들과 빠짐없이 하루에 한마디라도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에서 ‘주인공 대접’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십 대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벌써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세상살이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도 ‘상대가 끝까지 자신의 의견만을 고수할 때 느끼는 답답함’인데, 이 경우에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일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저마다 엇비슷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난 후에 느끼는 답답함이니까 말이다. 이 상황의 주인공을 학생과 교사로 설정하여 유추해보면 어떻게 될까? 서로가 엇 비슷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는 있을까? 수업은 학생과의 대화가 아니다 사실 ‘교사인 나’는 거의 학생과 대화하지 않는다.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서 지각이나 결석을 챙기고, 바뀐 시간표를 알려주고, 학교생활의 소소한 상황들 을 얘기하는 것, 종례 시간에 교실에서 가정통신문을 배부하고 다음 날 챙겨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청소와 하교를 지도한다. 이런 일을 하는 교사가 틈틈이 학생과 나누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교과시간에 수업을 하는 것? 이것도 대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언제 학생과 대화를 하는 걸까? 매년 신학기 초에 상담주간을 실시한다. 하지만 소수의 학교를 제외하면 이것도 허울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은 저마다 학원으로 바삐 가야 하고, 교사들은 수업에 우선순위가 밀린 갖가지 업무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상담’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수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상담할 시간을 마련하는 몇몇 학교가 있어서 단 10분이라도 전체 학급 학생들과 개별상담을 실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교사인 나’는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가정환경 언저리와 공부 현황, 꿈, 진로 등에 관해 묻고 답을 듣는 정도인데 이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 담임과 학생으로 만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난 시점에서 서로 마주하고 나누는 질문과 답변일 뿐이다. 조·종례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엎드려있는 아이를 보면 나는 늘 “어디 아프니?”라고 묻지만 이것이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함께 하고 있지만 스스로 ‘교사인 나’를 찾아오는 아이를 제외하고 나면 내가 대화를 나누는 아이는 결단코 많지 않다. 대화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른인 ‘나’는 누구와 대화를 할까? 친구나 맘이 맞는 동료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때로는 영화를 함께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그 소소한 일과 속에서 서로가 느낀 마음 단편들을 펼쳐놓으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이런 것들이 대화가 아닐까? 마음을 나누는 직장상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떠 한 직장상사와는 대화가 잘 안 되는 걸까? 이사를 해야 해서 하루 연가를 쓰겠다는 교사에게 방학 때 이사하지 왜 학기 중에 이사를 하냐며 교장의 구두결재 먼저 받아오라는 교감과 나는 대화하지 않는다. 같은 질병이라 해도 석 달 전에 제출한 대학병원의 진단서로는 안 되니 진단서를 다시 제출해야 수능 감독을 면할 수 있다는 직장상사와도 나는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 만약 그가 “지병이고 장시간 서 있는 것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행정상 최근 일자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이사라는 게 선생님이 편한 시점에 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학기 중에 연가를 신청하는 선생님 마음도 불편하겠네요”라고 말문을 여는 직장상사라면 나는 그와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대화라는 것은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가 마음을 꺼내놓으면 상대가 그 마음을 도닥여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해지는데 교사는 ‘대화’보다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더 능숙한 것 같다. 교사는 학생이 무지의 상태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태도는 대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교사는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는 교사가 가진 정답을 얘기한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에게 왜 그랬는지를 묻기보다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우선 논한다. 교사만 그 아이와 대화했을 뿐 아이는 대화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무단으로 결석한 아이가 10일 만에 학교에 나타났을 때 ‘교사인 나’는 그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게 안전하다는 것, 앞으로 있을 학교의 다양한 행사들, 반 친구들이 너의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것,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게 세상 인데 검정고시를 치면 세상 사람들이 왜곡된 시선으로 너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 하루를 너 스스로 계획하며 공부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것, 네가 학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해 너의 부모님이 느끼는 힘겨움, 공부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친구들과 지내면서 대인관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데 학교를 오지 않으면 대인관계 능력을 기를 수 없다는 것 등등을 이야기했다. 30여 분 동안 이어진 대화 동안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겠어?”에 대한 “예”가 전부였다. 나를 비롯해 주변에 있던 어느 교사도 그 아이에게 학교에 오지 않는 시간 동안 어떤 것이 행복했는지 묻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지내는 동안 무엇이 아쉽고 힘들었는지, 외롭지는 않았는지, 그 아쉬움과 어려움은 어 떻게 달래고 지내왔는지, 긴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왔는지, 지금 아이의 생각은 어떤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사만 그 아이와 대화했을 뿐 아이는 교사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그 아이와 ‘대화’했고 ‘상담’했다 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교사인 나’는 그 아이가 학교에 와서 반가웠고, 안심했고, 진심으로 그 아이가 학교로 다시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교사인 나’와의 대화 동안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자신이 느꼈던 마음 단 한 조각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이러니 내가 선생님하고는 대화를 안 하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상처로 남은 대화 내 기억 속에 상처로 남은 상황은 또 있다. 아침 등교 시간에 화장한 여학생을 불러 세웠다. “너 화장했지?” “안 했는데요.” “안 하긴 뭘 안 해? 비비크림이랑 다 발랐는데! 화장한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까지 하니.” 이 대화는 교사의 지시에 불응해 벌점 5점을 받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분노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늦잠을 자다 화들짝 놀라 깨어 세수도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온 월요일 아침의 학교 교문이었다. 전날 밤에 숙제를 펼쳐놓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커녕 세수도 못하고 황급히 달려온 탓에 전날에 했던 화장기가 얼굴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입술에 틴트를 바른 여학생을 불러 세워 왜 틴트를 발랐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끝까지 안 발랐다고 우겼다. “왜 발라놓고 안 발랐다고 해?” “진짜 안 발랐는데요.” “계속 우기네. 이게 안 바른 입술이야?” “진짜 오늘 안 발랐어요. 휴지로 닦아보세요.” “(틴트가 묻어나오지 않자)지금껏 한 번도 안 발랐어?” “지난 토요일에 친구 따라 ○○가서 테스터 발랐어요.” “발랐잖아. 다음부턴 벌점 준다!” 틴트를 발랐다는 오해를 받은 학생과 교사가 나눈 대화의 시작은 입술을 뜯는 버릇으로 인해서 입술에 핏기가 점점이 드러난 것을 교사가 오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일방적으로 학생의 주장을 부정했고, 자신의 판 단이 틀렸음이 드러난 상황에 직면해서도 물귀신처럼 벌점만 운운할 뿐 오해한 상황에 대한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아이가 강력하게 부정할 때, 그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거나 자신이 그렇게 믿는 이유에 대한 상황설명이라도 주고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도 아프지 않게 대화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동물이다. 하지만 십 대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감정만의 동물이다. 어른도 욱하는 감정을 삭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십 대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른도 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십 대는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교사인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데 홀로 무수히 많은 질풍노도의 십 대들 속에 존재한다. 그 십 대들은 마치 쓰나미처럼 엄청난 파도로 소리치며 달려오는데, 난 작은 보드 위에 올라 위험스레 파도를 넘으려는 서퍼와 같다. ‘교사인 나’는 넘어져 파도 속으로 잠겨도 다시 뚫고 일어서서 다시 파도를 넘고 싶다. 십 대들의 격한 감정을 타고 유유히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 지치지 않고, 쓰러져버리지 않고, 마음 다치지 않고서 그들 속에서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 마음은 나 혼자만의 갈망일까? 그들도 마음 다치지 않고서, 지치지 않고서, 쓰러져버리기 전에 ‘교사인 나’와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을까?
2017 학교 풍경 ➊ 틈틈이 정감 있게 마주하기 어스름한 석양을 받고 한 교사가 한 학생과 복도에서 운동장 쪽을 보면서 뭔가 소곤거리고 있다.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부장교사를 하다가 올해 다시 1학년 담임을 맡은 A 선생님이다. 그리고 학생은 바로 그 학급의 B라는 것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벌써 몇 번째 목격하는 장면이다. 담임교사와 학생 사이에 오고간 말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장면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환경이 어렵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그 교사의 진정성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B를 대하는 교사의 따뜻한 교육적 태도에 감동하게 된다. 지각이 잦으면 숫자로 누계하여 선도위원회에 회부해 버리고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대화나 정성으로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방법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에서 보면 A 교사의 교육활동은 요새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미납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아이에게 정신적·물질적 힘을 주던 동료, 1·2·3등급 숫자가 아닌 척도로 공부의 의미와 인간의 삶 등을 소재 삼아 학생들과 대화하던 선배교사, 찾아온 학생들이 예뻐서 교무실에 옹기종기 앉혀 놓고 셀카가 없어도 훈훈한 사제의 냄새로 울고 웃던 장면을 연출하던 학년부 선생님들 등 예전에는 이런 장면들이 흔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그 관계형성의 매개에 SNS가 주요 수단이 되었다. 편리한 소통 도구라고는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는 불편한 도구로 느껴질 때도 많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학교 문화가 웬 말이냐 하겠지만 그래도 교육이 학생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교사와 학생은 마주 보고 대화하는 아날로그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대화의 단절, 형식만 앞세우는 소통, 나와 타인 간 관계 맺기의 불편함 등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되었다.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소통이라는 단어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어휘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SNS의 장점을 들어가면서 굳이 얼굴 맞대고 얘기 안해도 관계는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 다. 접근이 용이하고, 하고 싶은 말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학교 내의 문제로 적용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적어도 학교 에서는 정서적 교류나 따뜻한 보살핌 등 실제적 감각을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등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관계형성의 문제점이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 단절이나 피상적 관계 맺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와 교사 간의 관계형성은 또 어떤가? 전자문서 결재 시스템의 등장으로 결재자와 기안자는 대면 없이도 일을 해결하는 시대이다. 규모가 좀 큰 학교는 같은 학교 교직원인데도 연중 몇 번 인사도 못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시스템이 바꿔 놓은 풍경이라고 합리화하 기에는 좀 간지럽다. 교사끼리도 내적 관계형성이 되어 있어야 무엇이든지 서로 배우고 나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문’에 입각한 ‘공문 처리’의 과정 속에서 기계의 부속품 한 조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사회는 협업의 시대라고 한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너만 특별한 아이가 아니고, 모든 구성원이 소중하다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바로 2017 학교 풍경을 보자. 공동체를 지향하고, 같은 학교 구성 원끼리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교직원 협의회 시간을 이용해 그런 문화를 바꿔 보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보고 듣는다. 그런 자리 역시 삼삼오오 원래 친밀감 있는 교사들 끼리만 모이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욕심이었구나 하는 자괴감만 남을 때도 있다. 또 하나 동일교과 교사끼리 서로 배우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교사들도 성장하 자는 취지와 이 활동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학교 내 전문적학습공동체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이 활동 역시 한계는 있다. 특히 수업나눔활동은 동료끼리 수업을 서로 보면서 같이 성장하 자고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활동 역시 내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면 그 부작용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다. “나는 그 학급의 수업이 유독 힘들어. 이유는 이것이야.” 이 대화 한 마디가 동료의 수업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방법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업의 기술을 탓하기에 앞서 근무하는 학교의 환경이나 수업하는 학급의 제반 환경을 바탕으로 한 내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서로의 불편함만 남게 된다. 그래서 관계형성을 위한 교사간 대화는 중요하다. 2017 학교 풍경 ➋ 수업에서 대화로 관계 맺기 “깔깔깔, 호호호.” 평소에 다소 무기력하고 반응이 없던 한 학급에서 수업 중 나오는 반응이다. 한 학기에 교과서 내용을 사회문제와 연결해 4개의 주제로 토론하고 논술로 쓰는 시간이었다. “우리 사회는 대화의 단절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특히 성인과 청소년들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두 세대의 언어불통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이 시간에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조어를 조사해 보고, 그 신조어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토론해 보자”고 했다. 일단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근래에 이런 활기찬 분위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찾아낸 신조어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 중 ‘김치녀’와 ‘한남충’은 남녀학생들 간의 불꽃 대결을 만들었다. 그러나 ‘급식충’과 ‘틀딱, 꼰대, 아재,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등의 신조어 부분에서는 교사인 내가 학생들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청소년이 어른을 바라보는 시선,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성찰 등 이 수업에서 얻은 수확은 생각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인터넷 신조어가 언어를 파괴한다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사회의 부정적 현상을 고찰할 수 있고, 그것을 계기로 문제를 공론화시켜 문제해결을 하면 좋다는 학생의 발표도 있었다. 주제가 특별해 가능한 수업이었지만 너와 나의 생각, 기성인과 청소년의 사고 등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낯설게 하는 존재인가를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바뀌는 수업문화 이제 고등학교도 수업이 많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수능이라는 괴물이 살아 있지만 오지선다형의 국·영·수 실력 쌓기보다 ‘미래 역량’을 키워 성장시키는 교육이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바꾸고, 평가를 다양하게 해서 아이 들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자는 의식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지식만 전달하고, 빨강펜으로 정답과 오답을 구별하는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성장하는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모든 학교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사제 간 만남이 있는 시간이면서 아이들 학교생활의 8할 이상을 차지 하는 수업이야말로 어찌 보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형성을 좌우하는 시간인 것이다.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좋을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의 적이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게 좋다’는 온정주의도 조직 발전에 도움만 주지 않는다. 학교 구성원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타인과의 관계형성을 위해 먼저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교사이게 하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나를 늘 돌아보게 하는 사람, 서슴없이 거친 언어로 발언하지만 내게 힘을 주는 사람 등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남의 베풂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학교 문화가 필요하다. 학생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을 선물해 주는 학생이 있는 만큼 자괴감을 주는 학생도 있는 법이다. 어떤 식의 관계이든 우선 서로를 알아가는 ‘관심의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사라지는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제 고등학교도 학생들과 학교에서 마주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교사가 역동적인 교육적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기 위한 만남이 필요하다. 그것도 정서와 배려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맺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맥락이 있는 생활지도나 질문이 있는 수업, 철학이 있는 학급경영 등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발전적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눈을 마주하고 나누는 서로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전달은 안된다? 학년 말은 교사들에게 무척 힘든 시기이다. 특히 몇 해 전 6학년 담임을 맡아 운영할 때 이 시기를 무척 힘들게 보냈다. 교실에서 친구들 사이에 서로 놀리고 툭툭 치는 일부 아이들의 행동이 반복되었다. 따로 불러 주의도 주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반복되는 문제행동에 녹다운되고 말았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전달되지 않았고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나 혼자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교사로서 무척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모두 소통 부족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유투버들의 은어를 이해하는 것만이 소통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새롭게 창조되는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단절을 만든다. 또한 소통은 대화 당사자 간의 공감과 이해의 과정인데 문제해결에 교사의 입장만을 너무 앞세워 일방적인 지시를 했던 것이 학생의 반항심만 불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의 문제는 어디에 서 일어나며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의 문제 원인 먼저 양 주체 간 소통의 불협화음은 각자 경험한 문화의 차이에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관료적인 문화 속에서 주어진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기성세대와 스마트폰 속의 유투버들과 소통하며 그들만의 창조된 언어를 사용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이전 세대들에게는 ‘요즘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고 심지어 이기적이다’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 둘째로 교사는 교사양성과정에서 학생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다. 수업내용과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생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이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양성과정에서 이에 대한 내용은 매우 미약하다. 교사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온 방식대로 학생들과 만날 뿐이다. 셋째로 학교에서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철저히 지식위주의 교과 내용을 습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교사의 재량을 많이 강화했다고 하지만 진도 나가기 급급한 현실 속에서 학생과의 소통은 요원하기만 하다. 소통의 바람직한 자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정치에서도 큰 이슈가 될 만큼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은 환영받지만 위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은 저항을 받는다. 교실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과거와 같이 교사의 말을 수용하기만 했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 간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 소통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물론 소통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모두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만을 한정해 살펴본다. 먼저 교사는 학생의 관심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끼리 스마트폰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선생님이라면 이 순간 어떻게 행동 해야 할까? 그냥 이야기하든 말든 내버려 둘 것인가, 교실에서 스마트폰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학교 밖에서 하라고 할 것인가.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감이 매우 중요하며 공감을 위한 기술로써 ‘타인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먼저 판단하지 말고 학생이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 보자. 학생의 관심사를 존중하고 이해할 때 소통은 시작될 수 있다. 둘째, 의사소통의 내용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긍정적 대화와 부정적 대화의 비율은 5:1 정도 라고 한다. 소통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화날 때는 침묵하고 기쁠때 더 많이 말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지시보다는 질문을 통해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꼭 해야 하는 부정적 말이라면 사람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도록 한다. 셋째, 학생들과 따로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학교 사정상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수업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 방식을 다변화하고 분위기를 허용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전달식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며 토의·토론형 수업, 놀이형 수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어떤 말을 꺼내도 안전한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일과 중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소통을 늘려보자. 중·고등학교에 비해 초등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다. 특히 담임교사라면 훨씬 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수업시간만으로 학생과 소통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 외 다양한 시간을 활용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얼마 전 SNS에서 유명했던 미국의 한 선생님처럼 학생들과 아침시간에 인사를 해볼 수 있다. 힙합뮤지션이 하는 거창한 인사가 아니더라도 등교 시 하이파이브, 악수 인사로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인사한다면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가 그 전과 달라질 것 이다. 점심시간에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선생님과 대화하며 밥을 먹는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선생님은 모든 학생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다섯째, 소통이 가능한 환경적 요건을 조성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학생과 교사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시간에 쫓기고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수업과 학생 지도 본연의 일 외의 업무로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학생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소통을 위해서는 학생 또한 여유가 필요하다. 엄청난 학습부담 속에서 친구와 경쟁하지 않도록 교사는 학급의 문화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흔히 교사의 전문성을 수업 위주로 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라면 교과 전문성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급운영의 전문성이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성공하는 학급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며 그 싹은 바로 소통 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말의 양을 늘린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의 작은 노력이 우리 교실을 건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몇몇 지인들과 가을 나들이로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에 다녀왔다. 건봉사는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이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그 위치가 남 한임에도 ‘금강산 건봉사’로 불려 왔다. 세월에 순종하고, 역사에 시달려, 흥했던 옛 모습은 간데없는 한적한 고찰이지만, 무심 한 듯 단풍이 붉었다. 건봉사에 가닿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것 못지않게 유익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번 나들이에서 교육과 관련한 화두(話頭) 하나를 얻은 것이다. 일행 중 한 분이신 한국 상담대학원대학교 이혜성 총장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며칠 동안 내 마음에 감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상담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갔던 이 총장은 가르치는 실천 경험을 얻기 위해 미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한 학급이 15명 내외여서 개별화 지도가 가능했다. 학생들의 개성과 적성을 다양하 게 존중하고 길러주려는 미국 교육의 풍토를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학생 하나를 주목하게 되었다. 학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좋은 활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수학 과목이 부진했다. 역사나 과학 과목을 배울 때는 평소 자기가 관심 가지고 관찰하거나 수집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수업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학생이다. 그런데 유독 수학 과목이 뒤떨어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 교 사는 이 아이에게 특별히 개인 지도를 해주고 싶었다. 젊은 교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이었다. 아이의 엄마를 학교로 오게 하여 이 문제를 상담했다. 이 교사의 설명과 의욕을 듣고 엄마는 선생님의 관심과 정성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총장은 아주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의 말은 이러했다. “현재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에 비교적 재미있고 활발하게 적응하고 있고, 수학 과목이 부족하지만 그 걸 특별히 스트레스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과목들도 많이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의 수학 개별 지도가 아이에게 심리·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그것이 좀 염려가 됩니다.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염려가 있어요. 선생님의 개별 지도를 받게 되면 우리 아이가 그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이제는 ‘아, 내 수학 실력이 남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구나. 그래서 선생님까지 걱정 을 하시는구나. 내가 문제로구나’ 하고 생각할까 봐 염려됩니다. 이를테면 ‘불필요한 열등감’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이 교사는 학부모 엄마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말을 이어 갔다. “또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것이 있어요. 선생님 지도 자체가 아이에게 ‘아!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대우와 관심으로 지도를 받는구나. 나는 다른 아이와 다르다’ 하고 생각하게 될까 봐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개별 지도를 받아서 수학 실력이 좋아지면 아이가 ‘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나는 남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이다’ 하고 생각할까 봐 염려가 됩니다. 말하자면 ‘불필요한 우월감’ 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이 교사는 이때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발달과 교육에 대해서 큰 지혜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상담 심리학자로서 한국청소년상담원 원장을 하면서도 우리 청소년들의 힘겨운 공부 과업과 청소년기의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해소하고 도와주어야 할지에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한국 청소년들이 세계 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하게 청소년기를 보내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이야기 를 들으면서 자녀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혁명에 가까운 의식 개혁’이 정말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각자의 이기심이 만들어 내는 ‘필요 =의 충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아를 인식하는 심리의 차원’에서 보면 질적으로는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유로 말하면 열등감과 우월감은 한 나무에서 벋어난 서로 다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타자(남들 : others)에 비추어 보아 내가 나를 어떠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두 감정이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해서 못난 점이 많다고 ‘나’를 느끼면 열등감이고, 남들에 비해서 잘난 점이 많다고 ‘나’를 느끼면 우월감이다. 우리의 일상적 언어 사용을 보면 ‘열등감’ 이나 ‘우월감’ 모두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어느 정도 들어 있다. “김 선생은 열등 감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면 이미 그 말은 김 선생의 성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된다. ‘우월감’도 마찬가지다. “박사장, 그 사람은 우월감이 좀 있지”라고 말하면 은연중에 우쭐대고 교만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그 말은 박 사장의 인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그 자체로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불필요한 열등감’과 ‘불필요한 우월감’에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교육이라고 노력하 는 것 중에 우리는 좋은 의도로 시도하지만 그것이 종국에는 안 가져도 좋을 열등감을 생기게 하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우월감을 만들어 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아 이의 성적을 높여 보겠다고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특별지도나 과외지도가 그럴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아 속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은 자리바꿈을 빈번하 게 경험한다. 우월감이 추락하면 열등감으로 변환된다. 내가 잘난 척했던 것들을 어느 순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래서 오히려 못난이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면, 우월감만큼 열등감이 생겨난다. 비유 컨대 잘난 척하던 건달 골목대장이 더 센 상대를 만나 무참히 깨졌을 때, 열패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 할 것이다. 열등감이 왜곡되면 우월감이 될 수도 있다. 열등감을 무리하게 숨기려 들면, 그것 을 숨기기 위해서 위장된 우월감을 드러내 는 심리적 기제를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이는 가짜 우월감이다. 그런 만큼 급조한 우월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우월감은 스스로를 서서히 망가뜨리지만 주변의 사람들도 망가뜨려서 위험하다. 군대나 직장 에서 이런 상사를 만나면 아랫사람들은 참으로 힘든 생활을 한다. 학력 결핍이 있는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지도를 계획하는 것, 그 것도 아주 선의의 지도를 시도하는 것은 필 요한 일이다. 이는 학력을 살피는 차원이다. 그러나 그 필요가 아이의 총체적인 발달과 성장에 어떤 그늘을 드리울지를 살펴 서 결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일이다. 이는 인간 발달 전체를 살피는 차원이다. 어떤 필요가 더 중요한 필요인가. 어떤 필요와 또 다른 어떤 필요 사이에 ‘학생’을 중심에 놓고 교사는 오래 고민하고 대화해 야 한다. 부모 또한 다르지 않다. 필요와 필요 사이에 ‘자녀’를 중심에 놓고 부모는 오래 살피고 대화해야 한다. 교육의 행로는 이렇듯 오래 사람을 소중하게 살피며 가야 하는 길이다. 자녀의 학업성적을 높이겠다고 온갖 투입을 마다하지 않는 세태이다. 사교육은 자녀의 학업성적을 높여주는 해결사 역할 을 자임한다. 학부모들은 다투어 사교육에 학력 높이기를 의탁한다. 그러나 필요하다 고 해서 모두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불필요한 요소가 그 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필요함의 불필요함’을 각성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불필요는 과잉에서 나온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남아돌면 그것이 좋은 작용을 하기는 어렵다. 과잉은 정신의 타락을 가져오기에 딱 좋다. 아, 참 그날 이혜성 총장의 이야기 중에는 이런 잠언도 들 어 있었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마음과 정신의 준비가 안 된 자식에게 많 은 재산을 그대로 넘겨주는 것은 마약을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많은 잉여(剩餘)를 소유하려고 철학 없는 경쟁을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이 점에 대한 통찰과 숙고 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전래동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옛이야기 속에는 늘 동물이 나온다. 아예 ‘우화’의 형식으로 동물 자체가 주인공이 돼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설·민담·전래동화 등 옛이야기에는 교훈과 미담의 동물이 아니라 매우 상징적으로 동물들이 배치 되고 있어 사람의 심리가 동물들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좋은 모티브가 된다. 동물에게 투영된 ‘낯섦’과 ‘공포’의 심리 일반적으로 동양의 전래동화에는 호랑이와 여우 등이 많이 나오고, 서양의 경우엔 늑대와 개 등이 많이 나온다. 물론 소나 새, 물고기 등의 등장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 서양의 경우는 암소가 많이 나오고, 새 역시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조금 더 자주 확인된다. 그러나 물고기는 우리나라의 ‘잉어공주’, ‘용궁공주’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확인되는 듯하다. 사실 전래동화 등 옛이야기 속의 여러 소재들, 이야깃거리들은 동양과 서양을 일괄적으로 묶어 분석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비교 문화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문화적 풍토가 다르고 실제 자연환경에서도 분명한 다름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분석의 잣대로 전래동화 전체를 바라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공통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낯선 것’, ‘두려운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보통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말처럼 ‘낯설다’와 ‘두려움’은 분명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프로이트도 이 문제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그의 두려운 낯섦 (uncanny)이라는 논문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잠깐 들여다보자. ‘두려운 낯섦’이라는 감정은 공포감의 한 특이한 변종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어떤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불안감을 주고,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모든 ‘새로운 것’ 즉, 낯선 것이 모두 공포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분명히 익숙한 것인데 그 안에서 어떤 낯섦이 도출될 때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쥐 이야기’가 이에 합당한 이야기다. 아이들에게는 ‘사람으로 변한 쥐’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한데 그 중심 내용을 대강 추려보면 이렇다. 어느 양반집에 시집을 간 며느리는 우연히 아궁이에서 밥을 하다 쥐 한 마리를 만난다. 배가 고파 보이는 그 쥐가 가여웠던 며느리는 매일 조금씩 밥을 주게 되는데, 어느 날 보니 쥐가 며느리 자신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결국 누가 진짜냐 가짜냐 논란이 벌어지고 억울하게도 진짜 며느리가 쫓겨나게 된다. 그 후 며 느리는 간난신고를 겪다가 노파로 변한 고양이를 만난다. 결국 그 고양이의 도움으로 가짜를 몰아내고 진짜 자기의 자리를 찾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옹고집전’이라는 고소설에도 있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온 이야기로는 ‘밥알’ 대신 며느리의 손톱과 발톱을 먹고 변신한 쥐 이야기 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 놀랍게도 인도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주인이 집을 떠나고 없을 때를 틈타 그 주인으로 변신한 쥐가 주인 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때도 역시 고양이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분명히 익숙하고, 친숙한 것인데 묘하게 낯 설고 그래서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두려운 낯섦’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옛이야기들 속에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는 ‘두려운 낯섦’의 장치들이 매우 많이 나온다.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동물은 대체로 쥐·구렁이·뱀·두꺼비 등 조금은 ‘징그럽다, 꺼림칙하다, 무섭다’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동물들이 많다. 한국 전래동화 중 매우 유명한 ‘구렁덩덩 신선비’를 하나 더 살펴보자. 아이들에게는 보통 ‘구렁이가 된 선비’, ‘구렁이 신랑’, ‘뱀에게 시집간 딸’ 등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일종의 이물교혼 즉, 다른 ‘종’과의 혼인담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마치 서양의 신화 ‘에로스와 프시케’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잃어버린 신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자식도 없이 가난하게 살던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에게 태기가 있고 곧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구렁이였다. 이 할머니의 옆집에는 부자 대감이 살고 있었는데 대감에게는 딸이 셋이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낳은 것을 알고 세 딸이 구경을 왔는데 첫째와 둘째는 구렁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쳤지만 셋째 딸만은 피하지 않고 “할머니 구렁덩덩 신선비가 참 예쁘게도 생겼다”고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 이 구렁이는 대감 집 셋째 딸과 결혼을 시켜 달라 조르게 되고, 결국 할머니는 부자 대감을 찾아 혼담을 넣는다. 물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첫째, 둘째 딸들은 모두 징그럽다며 거절을 하고 셋째만이 허락을 한다. 첫날밤에 이르러 구렁이가 목욕을 하자 갑자기 너무도 잘생긴 선비로 변했다. 그는 벗은 허물을 새색시에게 주며 “이 허물을 잘 보관해 주시오”라고 말하며 허물이 잘못되면 돌아올 수 없으니 꼭 잘 보관해 달라는 당부를 거듭한다. 그 후 신랑은 서울로 떠나고 새색시는 결국 언니들의 설득에 못 이겨 허물을 보여주게 된다. 이일로 인해 색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그 길이 너무도 힘들고 고된 노동과 고난의 길이 되고 만다. 그 후 신랑을 찾아 몇 가지의 시험을 거쳐 다시 잘살게 된다. ‘징그러운’ 동물들을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막 결혼한 여인 또는 이제 결혼을 앞둔 처녀라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프로이트의 제자이면서 분석심리학을 정립한 융은 이 동화 속의 ‘징그러운’ 존재들을 인간의 내면 그림자 즉, 감추고 싶은 부분, 부정적인 부분, 극복해야 할 부분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정신분석의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 동물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뱀·구렁이·두꺼비·물고기 등은 남성의 상징으로서 대부분 결혼을 앞둔 신부가 이들 ‘징그러운’ 동물을 외면하게 되지만 이후 첫날밤을 치르며 그 동물의 ‘사람으로 서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 거의 클리셰(Cliché )처럼 등장한다. 이것은 결혼을 앞둔 여주인공이 처음 느끼게 되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 결혼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장치로서 처음엔 ‘두렵고 낯선’ 존재였던 ‘상대’가 동물처럼 느껴졌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후 결혼의 의식을 치르고 드디어 한걸음 성장한 여주인공에게 보여지는 ‘동물’은 더 이상 ‘징그러운’ 상대가 아닌 한 명의 남성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시간엔 우리나라 동화에 많이 등장하는 호랑이 이야기와 서양의 동화에 등장하는 소와 한국의 동화에 등장하는 소가 어떤 의미와 상징을 가지는지 한번 살펴보자. 또한, ‘용궁공주’의 이야기를 통해 씨족사회의 공포를 이겨내는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재벌’, ‘화병’, ‘왕따’, ‘이지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 단어들이 그대로 영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따돌림’을 의미하는 ‘왕따’는 ‘wangtta’로, ‘이지메’는 ‘izime’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왕따’, ‘이지메’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따돌림’, ‘집단 따돌림’과 어떻게 다를까? 무엇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따돌림은 따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을까? 한국의 ‘왕따’와 일본의 ‘이지메’는 그 색깔과 수위와 강도가 ‘따돌림’과는 다르다. 괴롭힘의 강도, 가해자의 참여 범위, 피해자의 고통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 으로 나타나는 ‘따돌림’으로 분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왕따의 늪 지독한 왕따에 한 번 걸려든 학생은 그 생을 살기 싫을 만큼 고통의 정도가 심하다. 그래서 자살 시도도 하게 된다. 몇 년 전 필자가 상담했던 고3 여학생은 같은 반 학생 전체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공부를 비교적 잘 하는 데다 행동이 다른 학생과 달리 독특하여 학기 초부터 따돌림이 시작되었고, 여름방학을 지나 2학기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다 9월 에 지방에서 전학을 온 전입생과 친하게 지내려 했으나 왕따 주동자들은 그 전입생에게 마저 압력을 행사하며, 같이 놀지 못하도록 조종했다. 결국 그 여학생은 1년 내내 혼자 급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시도를 두 번씩이나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몸과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망가져 하혈을 몇 번씩 경험했고, 두통과 속쓰림으로 보건실·병원 신세를 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갑자기 정신을 잃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두어 번 있었다. 2011년 말 대구에서 자살한 권 모 군을 상기시킬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여학생은 성향상 친구를 사귈 때 ‘무리 지어 노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관계 지향적 성향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학급의 여학생 인원이 15명쯤 된다고 할 때, 6~7명씩 두 그룹 정도가 형성되고 나면 자연스레 한 명이 남는 구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한 명을 그냥 ‘특별한 학생’, ‘독특한 아이’, ‘이상한 애’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아예 학급 친구들과의 접촉을 인위적으로 차단시키고 괴롭히는 ‘배타적인 심리’가 작용하면서 필연적으로 왕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급 인원 구성과 여학생의 특성이 결합하여 따돌림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반 ‘왕따’를 찾아내는 방법 따돌림이란 학교 또는 학급 등 집단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반복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심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많은 교사가 우리 반에는 (집단)따돌림 현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담임교사가 모르는 일이 바로 나의 학급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반 ‘왕따’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실제로 학급 담임교사가 집단 따돌림 학생을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학급 담임교사는 몇몇 학생의 면담과 수업 혹은 조·종례시간에 이루어지는 관찰만으로 학생들의 교우 관계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급에서 하루 종일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교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가 많다. 다음은 필자의 생활부장 시절의 경험담이다. 덩치가 작은 한 학생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믿을 만한 제보가 들어왔다. 담임교사에게 넌지시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본인도 나름 그 사안에 대해 알아보았으나 ‘절대 괴롭힘은 없었다’면서 그런 상황을 의심하는 필자에게 항의하듯 대응해왔다.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친구 몇몇을 불러 조사해 본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필자가 멀쩡한 반을 이상한 학급으로 몰았다는 식으로 넋두리를 들었다. 그런데 진실은 오래가지 않아 밝혀졌다. 담임교사가 불러서 조사했던 바로 그 아이들이 피해자를 괴롭히고 따돌린 가해자였던 것이다. 이래서 학교폭력 연수 시에 피해학생의 친구를 불러 조사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왕따의 4층 구조 만약 우리 교실에 따돌림이 발생했다면 담임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베테랑 교사라도 이러한 사안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피해학생의 심리적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왕따의 4층 구조(표 1 참조)에 비추어 학급 내 힘의 역학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 그리고 2층의 가해자나 가해행동의 주동이 되는 학생을 찾아내야 한다. 학급 내 모든 학생으로부터 진술서(사실확인서)를 받아 사안 조사를 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 다른 학급 학생의 진술서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생활교육부·상담실·위클래스·교감 등 학교 내의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사실 파악에 힘써야 한다. 또한 학교 밖의 스쿨폴리스·위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시도정신보건센터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다음은 사안 처리 과정에서 꼭 챙겨봐야 할 내용이다. • 피해학생에 대한 지도는 지속적으로 하며 기록 유지 • 피해학생 입장에 서서 지도·지원하고 전문기관 안내 • 유관기관 프로그램 활용 시 가해학생 지도 과정 및 결과 확인 • 궁극적으로 피해자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상담 및 교육적 지원 • 처벌 지향적 조사보다 문제해결에 초점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친구관계가 세상의 전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피해자의 생각을 이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주저하거나 거부해도 끝까지 설득하여 일정 정도의 조치를 해야만 이 힘든 술래잡기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가해자에게 적정한 조치나 교육 없이 몇 마디의 충고·훈계·야단으로 마무리된다면, 2층의 가해자들은 ‘1층 피해 자가 별것도 아닌 일로 담임교사에게 일렀다’는 구실로 피해자를 더욱 심하게 괴롭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피해학생은 입과 마음의 문을 영원히 닫아걸지도 모를 일이다. 왕따의 4층 구조 표1 왕따를 둘러싼 집단 속에서는, 왕따의 중심이 되는 학생이 있고, 동시에 그 외측에는 반드시 왕따에 가담하는 동조집단이 있어,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고립되어 있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학생이 보면, 주변에서 놀려대는 사람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도 ‘괴롭히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1층 : 피해자(왕따를 당하고 있다) 2층 : 가해자(괴롭히고 있다) 3층 : 주변에서 놀려대고 있는 자 → 왕따를 조장·촉진하는 작용 4층 : 보고 못 본 척하는 자 → 결과적으로 왕따를 지지하고 있는 작용 이 외에, 왕따를 말리려고 들어가는 ‘중재자’가 나타난다. 이 층은 ‘보고 못 본 척을 하는 자’의 층에서 적극적 방향으로 분화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폭력을 부정하고,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이 왕따에 대한 비판층을 어떻게 키워 나갈 것인가가 왕따 방지 지도의 과제이다. - 문제행동 대응 메뉴얼(2008, 서울특별시교육청) 왕따의 4층 구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집단은 ‘왕따를 말리려고 들어가는 중재자’이다. 이 층은 4층의 ‘보고 못 본 척을 하는 자’의 층에서 적극적 방향으로 분화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폭력을 부정하고,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이른바 ‘나쁜 편’이 아닌 ‘좋은 편’이다. 이 왕따에 대한 비판층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가르치며, 어떻게 용기를 북돋을지가 왕따 방지 지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2층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치와 교육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체험하는 스마트폰 앱 등장 최근에는 사이버폭력·사이버따돌림 문제가 심각하다. 이른바 ‘저격’이란 10대 용어가 있다. 페이스북·카카오톡·인스타그램 등의 SNS상에서 한 학생을 표적 삼아 조롱하는 글을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댓글을 다는 식으로 비난을 쏟아붓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그 대상이 본인인지도 모른 채 ‘좋아요’를 눌렀다가 수십 명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돼지 같은 ✽’, ‘걸레’, ‘ㅁㅊㄴ’ 등으로 ‘저격’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찌어찌하여 교사가 적발해 사안 조사하려 해도, 그네들은 ‘ㅁㅊㄴ’이 의미하는 바는 ‘crazy girl’이 아니라 ‘맞췄니?’, ‘마침내’라고 둘러대면서 진실을 조롱하고 사안 조사를 피해 나간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한 아이를 조롱하고 비웃는 상황이며, 당하는 아이는 마치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주먹으로 신체폭행을 당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저격’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격’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학생들도 언젠가는 자기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역시 이러한 사이버괴롭힘, 사이버따돌림은 그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우울감에 빠져 일부 학생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한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는 사이버폭력을 체험할 수 있는 휴대폰 앱, ‘사이버 폭력 백신’을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이 앱은 실제 학생들이 겪었던 사이버폭력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폭력의 실체를 단 몇 분 만이라도 경험해 보고 그 심각성을 일깨우고자 제작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사이버폭력의 피해자가 됩니다’라는 안내를 시작으로 가입자의 이름을 입력한 후 시작 버튼을 누르면 아이들의 사이버 공격이 융단폭격으로 진행된다. 당사자는 ‘어···’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해당 SNS에 들어가야 하고 그들의 욕설을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한다. 3~4분의 체험이지만 끔찍한 사이버폭력의 실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교사와 학부모 들이 체험해 보시기를 권장한다. 따돌림과 사이버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자존감이 약한 학생들이다. 발달단계의 특성상 청소년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며 자존감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되어 인정사정없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따돌림이나 사이버폭력 피해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이를 터놓고 상담하거나 의논할 상대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학기 초부터 평상시에 담임교사가 학급 분위기를 ‘정의’에 가깝도록, 그리고 힘듦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 상담과 신고가 이루어지도록 부드러운 학급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자존감’과 ‘소속감’은 따돌림 방지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건전한 정신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교사와 학부모는 교육과 양육의 과정에서 이것들의 함양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면 낮은 수준의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수학적인 공식을 이해하고 인지하는 데는 구체물 활용이 매우 유용하다. 구체적 현상을 파악하는 능력이 충분한 6학년 학생들은 이를 활용한 관계적 사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6학년 단계에서의 구체물 활용은 학생들에게 흥미를 제공하며, 조작적 활동은 손지식(Hand knowledge)을 기호지식(Symbolic knowledge)화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따라서 본 수업에서는 조작적 자료를 통해 원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원칙 발견의 성취를 느끼도록 강조하고자 했다. 정사각형 넓이에서 원의 넓이 유추하기 좋은 학습 자료는 학생들에게 재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표현된 호기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표현된 호기심은 ‘질문’이 된다. 스스로에게 혹은 친구에게 던지는 궁금증이야말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학생은 ‘수학은 계산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과목 중 수학은 가장 부담스러우며, 재미없는 과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학은 그저 문제를 많이 풀고 공식만 달달 외우면 된다’는 생각에서 ‘수학에 흥미 붙이기, 수학과 친해지기’를 목표로 설정하고, 손으로 만지며 머리로 생각하는 체험과정을 구안·제공한다면 학생들은 수학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업에서는 정사각형 넓이에서 원의 넓이를 유추하고, 원을 자른 모양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어보는 활동을 통해 원의 넓이는 직사각형의 넓이로 바꾸어 계산할 수 있음을 인지시키고자 한다. 또한 수학적 기호와 식의 사용법을 익혀 향후 전개될 수학적 문제해결과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은 ‘원을 사각형으로 바꾸면 구할 수 있다’는 공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활용한 학습 자료이다. ●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환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활동 자료 - 원 모양과 같은 넓이의 직사각형 사이에 푸른 잉크액을 넣어 만들 수 있다. 원 모양의 잉크가 흘러내려 직사각형으로 바뀐다. 이 장면에서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할 수 있다. - 같은 방법으로 원 모양과 같은 넓이의 직각삼각형 사이에 푸른 잉크액을 넣어 만들 수 있다. 여기서는 원을 직각삼각형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할 수 있다. ●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환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활동 자료 - 같은 넓이의 원과 직사각형 사이에 홈을 만들어 학생들이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 작은 구슬을 넣어 흔들며 이동하도록 하면 원이 직사각형으로 바뀌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 원의 넓이 구하기 ➊ ● 원의 넓이 구하기 ➋ 넓이 구하는 연산을 생략하고 본질적 탐구에 초점 ‘우리는 왜 수학을 공부하는가?’, ‘원에 대해 꼭 공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6학년 학생들에게 던졌다. 이 물음에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매우 궁금했다. 그저 답을 구해야 맞았다는 것이고 내가 원의 넓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까? 원주율이 얼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만족할까? 조금 더 고급스런 수업의 결과물을 얻고 싶었다. ‘원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는 수학 에세이를 쓰면 어떨까? 어쩌면 성취기준에 도달시키는 것에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런 내용이 수학적 사고력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수학을 좋아하려면 수학이 쉬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스스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보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려하고 그 해결 과정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하고 쉬운 것에만 머무른다면 수학적 산출물이란 결국 문제의 답에 머무를 것이다. 이른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는 수학이 어려워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기도 전에 문제해결과정의 반복을 통한 답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6학년 1학기 5단원 원의 넓이를 구하는 학습 과정에서는 소수의 곱셈 연산 과정을 과감하게 수업에서 생략하고 ‘원’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PART VIEW] ▶탐구 활동 ❶ 원의 넓이를 내접하는 사각형과 외접하는 사각형으로 예측해보는 활동을 했다. 학생들은 지름이 10cm인 원은 내접하는 넓이가 50㎠인 정사각형보다 크고, 외접하는 넓이가 100㎠인 정사각형보다 작다는 것을 유추해냈다. 물론 학생들이 제시한 값은 조금씩 달랐다.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단위 넓이가 제시된 투명필름에 인쇄된 원의 넓이 를 구해보도록 했다. 학생들은 각자, 혹은 모둠별로 구해보더니 76㎠, 77㎠, 78㎠ 정도에 서 결과값을 제시했다. 이때, 원의 넓이를 정확하게 구할 수 있는지 질문했더니 학생들은 ‘원의 넓이를 정확하게 구하려면 직사각형으로 변환시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한 학생은 ‘원을 두드려서 네모처럼 만든다면 구하기 쉽겠다’는 말을 했다. 이런 말들이 오고 가면서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환시킨다면 정확하게 넓이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즈음, 학생들에게 ‘조각판’을 제공하여 증명해보도록 했다. ‘원의 넓이는 이렇게 구하는 거 야’라고 던져주기보다는 사고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고 싶었다. 원을 직사 각형으로 바꿀 수 있다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직관적 사고의 틀을 제공한 셈이다. ▶탐구 활동 ❷ 이번에는 구슬판과 조각판을 활용하여 원을 직사각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했다. 학생들은 원 안의 구슬을 굴려 ‘원을 직사각형으로 바꾸는 활동’을 했다. 또한 1/16짜리 조각을 끼워서 원이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변화됨을 직접 경험해보도록 했다. 그리고 16개의 원 조각으로 직사각형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학생들은 직사각형 안에 16개의 조각이 모두 들어가지 않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직사각형을 만 들 수 있을까? 학생들 스스로 ‘직사각형으로 바꾸려면 그 조각을 더 잘라야 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했다. 학생들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후, 교사는 영상 자료를 통해 원을 아 주 가늘게 잘라서 직사각형으로 변화됨을 설명하며 마무리했다. ▶탐구 활동 ❸ 원의 넓이는 ‘반지름×반지름×3.14’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직사각형을 굴려서 원주의 반과 같음’을 인식하도록 했다. 그리고 반지름이 5cm인 원의 넓이는 한 변이 5cm인 정사각형 넓이의 약 3배 정도가 된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탐구 활동 ❹ 원의 넓이에 대한 탐구 활동 마무리로 ‘원에 대한 에세이’를 써보도록 했다. 지금까지 했던 내용을 모아서 ‘원’에 대한 글을 써 보도록 했더니 학생들은 막막한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다지 많지 않은 글들만 제시했다. 그래서 모둠별로 서로 바꾸어 읽어보고, 자기 생각을 더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5분도 안 돼서 끝날 ‘원의 넓이 구하는 공식’을 탐구 활동, 에세이 작성 등 3차시에 걸쳐 운영한 이유는 학습 활동에 대한 정리를 통해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 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학원에서 원의 넓이 구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직접 하나씩 증명해보니 왜 그런 공식이 나왔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고를 촉 진시켜 자기 생각을 보다 정교화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수업의 실제 ● 단원명 : 6학년 1학기 5단원 원의 넓이 ● 학습주제 : 원의 넓이 구하는 방법 알기 ● 학습목표 : 원의 넓이 어림한 뒤 원을 직사각형으로 바꾸어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다. 지름에 따른 원의 넓이 추론할 수 있다. ● 교수-학습자료 : 생각나무, 포스트잇, 원의 넓이 학습자료 4종(□○▱▦) ● 교수-학습지도안 ▶ 수업활동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의도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수자의 교수 활동과 학습자의 학습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들어서는 수업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다양해져 좋은 수업을 이루려는 교사들의 도전과 실패가 더욱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성찰협력수업연구회에서는 성찰과 협력이 넘치는 배움 학교를 운영하며 수업의 전개과정을 규모있게 성찰하고 교사의 수업전문성을 보다 협력적으로 신장시키고자 성찰협력형 수업연구(lesson study) 방법을 구안하여 적용하고 있다. 성찰협력형 수업연구모형은 수업계획 및 실행, 수업성찰 및 분석, 수업코칭 및 협력, 수업재구성 및 반영의 순환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정민수, 2015). 그림에서 수업이란 넓은 의미의 교육과정으로 한 차시 수업을 의미하기보다 교과별 또는 단원별 핵심 성취기준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생태계를 의미한다. 즉, 수업연구가 교사의 수업전문성 향상에 있음을 고려할 때 단순히 한 차시 분량의 수업을 분석한다기보다 학습자 중심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배움에 중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의 실생활과 연계되는 좋은 수업나눔으로 수업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교수자와 학습자가 참여하고 성찰과 협력이 넘치는 배움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한다. 성찰협력형 수업연구의 단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업계획 및 실행의 단계는 수업을 전개하는 교사의 수업준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의미를 두었으며 교수-학습과정안의 틀에 얽매이기보다 수업계획의 개방성에 중점을 두었다. 둘째, 수업성찰 및 분석의 단계는 수업을 교사의 가르침과 학생의 배움으로 나누어 성찰해보고 수업자가 의도한 대로 수업이 전개되었는지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셋째, 수업코칭 및 협력의 단계는 수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동료교사의 수업코칭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수업의 의미있는 지점들을 보다 협력적으로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넷째, 수업재구성 및 반영의 단계는 협력적 수업코칭을 통해 새롭게 인지한 수업의 특질을 교사 스스로 정리하고 교과 및 단원의 성취기준에 보다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다음 차시 수업을 재구성하여 반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성찰협력학교의 실천 방안 성찰협력학교의 운영은 교실수업개선 선도학교(전주문학초등학교)와 전북 성찰협력 수업 연구회의 협력활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1. 성찰협력학교의 연구단계 및 실행모형 [PART VIEW] 가. 수업계획 및 실행단계 (1주차 팀장협의) 먼저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을 구체화하기 위해 수업계획 및 실행단계를 가졌다. 성찰협력학교는 지역 배움 학교 간 연합 모임으로 각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하되 성찰협력학교만 의 일반적인 성찰협력수업 연구모형을 완성하기 위해 수차례의 사전협의과정을 거쳤다. 수업계획 및 실행단계는 연구에 참여하는 성찰협력수업 연구회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나. 수업성찰 및 분석단계 (2주차 학교공동체별 협의) 다음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을 각 협력학교에 적용하기 위해 학교공동체별 협의를 진행 했다. 학교공동체별 협의는 수업성찰 및 분석단계로 각 학교에서 실천할 성찰협력수업 의 형태를 논의하고 학교 및 교실의 상황을 분석하여 적용 가능한 성찰협력의 모형을 먼 저 구상하고 완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단계에서는 학교의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되 전체 성찰협력수업의 취지와 의미를 담아가도록 격려했다. 다. 수업코칭 및 협력단계 (3주차 수업공동체별 발표) 다음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은 수업코칭 및 협력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서로의 생각 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수업을 코칭하고 협력하는 단계이다. 누가 누구를 코칭하기보다 자신의 수업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나누며 수업을 계획해봄으로써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해보는 협력의 시간이다. 또한 수업공동체별로 세운 수업계획과 실행의 모습을 함께 발표해봄으로써 수업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라. 수업재구성 및 반영단계 (4주차 개인-공동체 수업공개 및 협의) 마지막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은 수업재구성 및 반영단계이다. 성찰협력수업의 완성은 마이크로티칭(micro-teaching)-시범수업-수업재구성 연수 등 다양한 수업공개 및 수업열기와 나눔을 통해 실현하도록 했다. 특히 전북 성찰협력수업 연구회에서는 지역교사들과의 수업나눔을 위해 수업열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업공동체에서 나눈 수업자료를 재구성해봄으로써 성찰협력수업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성찰협력수업의 운영 중점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연구와 관련된 구체적인 운영 중점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찰협력과정의 순환 모형은 크게 수업형성, 수업반영, 수업관찰, 수업성장의 4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정민수, 2017) 2 . 먼저 성찰협력과정의 수업형성 단계는 교사의 수업계획 및 실행이 수업성숙도 검사를 통해 수업성찰 및 분석으로 이어지도록 수업대화 의 문을 여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교사들의 일상적인 삶은 수업계획과 수업실행의 연속선 상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연적으로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교실수업에서 변화 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교단 교사에게 이미 고착화되어 버린 잘못된 수업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사로서의 자기 모습 과 조우(encounter)하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수업에 임하 는 자신의 모습에 직면(confrontation)해야 하며 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자신의 수업 위치를 점검해야 한다. 수업성숙도 검사는 교사가 직면해야 할 수업위치를 다섯 가지 핵 심척도로 보여줌으로써 교사로 하여금 자신의 수업강점과 수업약점을 성찰하도록 도와 준다. 또한 수업성숙도 검사에서 드러난 자신의 수업능력과 수업실행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동료교사의 수업분석을 보다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데 기여한다. 즉, 수업형성 단 계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성숙도 검사는 교사의 수업계획 및 실행에 의해 드러나는 교사의 수업위치 및 수업상태를 보다 풍성하고 효과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성찰협력과정의 수업반영 단계는 교사의 수업성찰 및 분석이 수업성숙도 반영 을 통해 동료교사의 수업코칭 및 협력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좋은 수업의 방향을 찾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분석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수업의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을 찾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함이다. 교사들의 수업개선에 대한 노력은 자기장학의 형태부터 수업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다만 수업개선에 정작 중요한 교사의 수업위치나 수업상태를 섣불리 진단하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객관적인 표준화점수로 나타나는 수업성숙 도 검사결과를 수업개선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동료교사의 수업코칭 및 협력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교사의 수업성숙도 검사에서 다섯 가지 핵심 척도들은 수업능력지수와 수업실행지수로 나뉘어 표시된다. 이를 통해 수업코칭을 하는 동료교사들은 교사가 어느 정도의 능력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실행하고 있는지 측정하고 가늠하는 데 도움을 얻는다. 즉, 수업성숙도 검사결과의 반영은 좋은 수업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교사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업코칭하여 수업개선을 하도록 협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셋째, 성찰협력과정의 수업관찰 단계는 동료교사의 수업코칭 및 협력이 수업성숙도 재 검사를 통해 교사의 수업재구성 및 반영으로 이어지도록 수업개선을 현실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동료교사에 의해 실시되는 수업코칭 및 협력활동이 효과적으로 전개되려면 수업성찰 및 분석에 의해 재조명된 수업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업의 의미 있는 변 화는 결국 수업재구성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이 활발한 수업으로 반영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료교사의 수업코칭과 협력에 의해 수업은 보다 정선되어가 며 이는 교사의 수업성공률에서 자신감으로 표출되어진다. 다만 교사가 보여주는 수업자 신감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수업상황을 통해 어 떻게 드러나는지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만일 교사의 수업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수업성숙도 검사를 다시 한번 받아보도록 권유한다면 처음 받았던 검사결과와 비교하여 수업성숙의 변화 추이를 보다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업성숙도 재검사 결과 는 교사 스스로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며 또 다른 동료교사를 도와줄 사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찰협력과정의 수업성장 단계는 수업재구성 및 반영 후 수업연구의 연 속선상에서 수업계획 및 실행 또는 수업성찰 및 분석의 과정을 다시 밟아 수업성장을 모 색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교사가 수업을 재구성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목적은 교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수업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교사 자신의 수업성 장을 위함이다. 수업성장은 단기일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수업성찰 및 분석, 수업코칭 및 협력, 수업재구성 및 반영의 지속적인 반복에 의해 성숙한 수업을 이룰 수 있다. 만일 한 교과의 성취기준에 대한 수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업계획 및 실행부터 수업재구성 및 반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반복하며 수업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 즉, 성찰협력과정에 의한 수업성장은 수업형성, 수업반영, 수업관찰 단계의 반 복에 의해 이루어지며 교사 스스로 수업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가능 하다. 이때 수업성숙도 검사는 각 단계별로 교사가 수업을 성찰하고 동료교사와 상호 협 력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며 수업의 강점을 강화시키고 약점을 보완하는 윤활제 역할을 하게 된다. 성찰협력과정의 순환 모형은 교사의 의미 있는 수업형성을 돕고 수업성숙도 검사를 통해 교사의 강점을 강화시키고 약점을 보완하여 실제적인 개선사항을 수업에 반영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또한 수업개선에 대한 동료교사의 코칭 및 협력활동으로 교사의 내면과 이면, 수업의 깊이와 넓이를 관찰하고 구체적인 수업재구성 및 반영을 통해 궁극적 으로 교사의 수업성장을 모색하는 데 집중화되어 있다. 이와 같이 수업성숙도 검사를 활 용한 성찰협력형 수업연구의 틀로 수업형성, 수업반영, 수업관찰, 수업성장의 단계로 전 개되는 성찰협력과정의 순환 모형을 적용하고 있다. 성찰협력수업의 실천연구자료 성찰협력학교의 실천 연구의 예시자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 수석교사의 수업열기 시범수업 지역 교사들의 수업을 통한 수석교사들의 수업열기로 시범수업을 전개하여 주제가 있는 수업나눔(배움중심, 하브루타, 독서토론 등)을 갖는다. 2. 멘토-멘티 성찰협력수업의 실천 멘토(수석교사)와 멘티(저경력교사) 결연을 맺어 성찰협력형 수업연구를 실행하고 있 다. 올해는 각 수석교사들이 2명 이상의 멘티교사들을 만나 멘토-멘티 성찰협력수업을 함께 실현해가고 있다. 특히 멘토-멘티 성찰협력수업에서는 기존의 수업컨설팅 형태에 공동 수업과정안을 모색하여 함께 수업을 공개하는 새로운 성찰협력수업의 형태를 도전 하고 있다. 이런 멘토-멘티 성찰협력수업의 실천을 통해 멘티교사들의 수업성장을 더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데 그 장점이 있다. 3. 학년공동체 성찰협력수업의 실천 학년공동체별 성찰협력수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학년 교사들과의 사전 협의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유· 초등의 경우 한 담임교사가 거의 모든 교과를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는 수업부담이 심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학년 중심의 수업협의문화를 조성한다면 수업의 계획단계부터 수업실천단계에 이르기까지 상호 협력적인 수업문화가 조성되어 수업준비의 부담이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찰협력수업의 일반화 수업도시락 엠디랑(http://www.mdrang.net) 사이 트 운영을 통해 성찰협력학교의 일반화 자료를 일반 교사들과 함께 나누려 한다. 특히 엠디랑 교육포털을 통해 성찰협력수업의 실행연구 과정을 통해 얻은 성찰적 지식을 함께 공유하여 초등교사들의 수업전문 성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기대효과 성찰협력학교 운영을 통한 실행연구의 설계로 우수 수업네트워크가 구축되어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다. (1) 교실수업개선을 위해 성찰협력수업 실행연구 모형 및 우수 교수-학습자료가 개발되어 온· 오프라인으로 교실현장에 보급될 것이다. (2) 팀별 성찰협력과정의 공동협의를 통한 우수 교수-학습과정안이 고안되고 내실 있는 협력수업이 실시될 것이다. (3) 성찰협력수업에 대한 마이크로티칭 시범수업이 실시되어 수업분석을 통한 실행연구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다. (4) 수석교사와 저경력(예비)교사 간 일대일 멘토-멘티 결연이 맺어져 학급운영과 수업멘토링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5) 초등교사 커뮤니티 운영을 통해 성찰협력수업을 통한 실행연구 네트워크가 구축 되어 오프라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다양한 수업 아이디어가 공유될 것이다. (6) 성찰협력과정의 5단계(동기유발 → 주제제시 → 내용성찰 → 상호협력 → 배움공유) 수업실행이 이루어져 성찰협력수업의 새로운 수업모델이 완성될 것이다.
왜 하브루타 수업인가? 요즈음 흔히 하는 말이 ‘학습자 배움 중심 수업’이다. 학습자 배움 중심 수업을 말한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듀이의 경험학습에서 시작하여, 부르너의 지식 구조에 의한 단계적 학습이론 그리고 완전학습이론이 나온 이래로 구성주의 학습이론과 협동학습 이론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학습이론이 등장하면서 교실 수업에 대한 변화 추구는 다양한 방법으로 많이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수업의 변화가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등장한 하브루타 수업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하브루타 수업이론은 별다른 것이 아니고 일종의 토론학습이다. 토론도 다중토론이 아니라 짝토론 학습이다. 그래서 필자도 수원의 화홍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하브루타 수업모형을 적용해 보았다. 하브루타 수업은 2015학년도에서부터 시작했는데 2년째에 접어들면서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지만, 보완할 점은 있다. 일단 작년부터 시작 한 하브루타 수업에서 어떤 효과를 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하브루타 수업의 기본 이해 하브루타 수업은 유대인들의 가정교육에서 시작했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쓰던 방법이며, 학교에서는 랍비가 학생들을 지도할 때 쓰던 방법이다. 유대인들은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 먼저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토라와 탈무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에 대해 질문하게 하고, 질문에 충실히 답해 준다. 자녀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거나 하찮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고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훌륭한 조상인가를 이야기해주며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모세·솔로몬과 다윗의 훌륭함을 전해주면서 너희 조상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너도 훌륭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옛 성현을 예를 들거나 훌륭한 조상님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고, 현재 조부모의 좋은 점을 소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자녀교육을 할 때 조상의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조상의 좋은 점, 훌륭한 점을 부각시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녀나 학생의 자존감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브루타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왜?’라는 질문을 일상적으로 하게 한다는 점이다. ‘왜?’ 라는 질문과 더불어 서 ‘어떻게?’를 강조하는 하브루타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준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수업 방식의 가장 좋은 점은 학습자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옆 친구와 협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상호질문을 통해 배운 것을 확인하는 교사의 질문이 있는데 이것을 ‘쉬우르’라고 한다. 쉬우르는 교사와 학생의 토론인 것이다. 쉬우르 시간에는 학생들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고 적절히 설명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안되면 학생들은 그 시간에 뭘 배웠는지 정리가 안되어 학습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적절히 설명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업방법과 평가방법 1. 수업 방법에 대한 안내 하브루타 수업을 하기 위해 3월 초, 학생들에게 수업방법은 하브루타식 수업임을 예고하고, 동영상을 통해 인지와 메타인지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하브루타 수업이 어떤 것인지 학습장면의 동영상을 직접 보여주고 그 의미를 이해하게 했다. ▲동영상은 EBS에서 방영한 유대인의 하브루타 학습장면(6분 정도 소요) 2. 평가방법에 대한 안내 평가방법은 인지적 평가와 정의적 평가를 함께 실시한다는 것을 예고하면서, 인지적 평가는 객관식 지필고사와 서술형 및 논술형 시험을 실시함을 안내했다. [PART VIEW] 하브루타 수업의 적용 1. 수업의 전개 수업은 교과서의 진도와 맞춰 진행했다.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단원에서 핵심되는 부분을 설명해 주고, 그 범위에 대해 옆 친구와 짝토론으로 학습하도록 했다. 우선 수업에서의 기본을 지키고 전시학습내용을 환기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때에도 쉬우르 형태로 진행된다. 교사와 학생간 질의응답식으로 전시학습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학습을 환기시킨 후 학습목표와 교육약속을 제시한다. 학습목표 ◦ 헌법의 기본원리 개념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 ◦ 헌법의 기본원리 중요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 교육약속 ◦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한다. ◦ 개별화된 학습기회를 보장한다. ◦ 학생 스스로 배움을 터득하도록 유도한다. ◦ 수업에서의 정의적 목표와 기능적 목표도 정한다. 신뢰하기, 경청하기, 주목하기, 격려하기, 도전장려, 존중하기, 협동하기, 공감소통, 나눔활동 등이다. 도입은 10분 정도에서 마무리한다. ◦ 전시학습내용을 확인한다. 손을 들어서 대답을 유도한다. 대답한 학생은 명렬표에 체크해 둔다. ◦ 학습동기를 유발한다. ◦ 오늘의 학습목표를 안내한다. ◦ 본시 학습의 주요 내용을 안내한다. ◦ ppt 자료로 수업 안내 및 수업 분위기 띄우기 전개는 25분 정도 한다. 본시 1단계 ◦ 오늘의 수업 절차 안내 : 하브루타 수업 ◦ 하브루타 활동 실시(5분). 이때 시간을 안배하기 위해 타이머 사용 ◦ 학급의 옆 짝과 학습과제에 대해 상호질의 응답하기(또는 모둠 형태 학습) ◦ 학생들의 활동을 순회하며 질문에 응답해 주거나 소극적 참여 학생 격려 본시 2단계 ◦ 교사와 학생의 쉬우르 활동 시간 ◦ 발표를 희망하는 학생 3명을 신청 받은 후 5분 정도 발표 ◦ 무작위로 2명을 추첨하여 질문(회전 추첨판 사용) ◦ 발표 내용을 들어본 후 미흡하면 추가 설명(형성평가 대체) ◦ 희망 학생에게 발표를 시키거나 무작위로 학생을 선택하여 학습 정도 확인 정리는 5분 정도 한다. ◦ 학습내용 정리 ◦ 정의적 능력 평가의 설문 실시 ◦ 발문-대답의 형식으로 이끌어가며 진행 마지막으로 오늘 수업을 격려하는 간단한 이벤트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차시 예고를 하고 수업을 마무리한다. 5분 정도 소요된다. 2. 학습 자료 소개 가. 학습 자료 설명 다음의 법과 정치 하브루타 학습지는 학생이 실제로 하브루타 학습을 한 후 기록한 내 용을 스캔한 것이다. 학습지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는 학습 내용을 정리하는 칸이 있고 그 다음은 오늘 학습 내용 중 궁금한 것, 친구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는 칸이 있다. 그리고 맨 밑에는 오늘 배운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기록하게 하는 칸이 있다. 이렇게 주로 자신의 학습 내용을 정리하게 함으로써 서술의 수행평가가 자연스럽 게 이루어지게 된다. 본 학습지는 학기 말 수행평가에 반영하게 된다. 나. 학교 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 사항 기록 예시 하브루타 수업의 결과와 발전 방안 1. 하브루타 수업의 결과 위와 같이 하브루타 학습 모형에 의한 수업을 2015년부터 전개해 오고 있는데, 그 과정을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학생들의 토론 자세가 매우 활발하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교사의 가르침에 수동적으로 학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하브루타 학습과정에서 짝토론 시간을 부여하여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토론하는 시간을 부여한 결과, 많은 학생이 짝토론을 통해 자신이 학습한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하는 시간을 갖고 교과의 배운 내용을 더 잘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둘째, 하브루타 학습을 통한 질문하기와 학습지 쓰기 활동을 통하여 서술형 평가를 적절히 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칸 채우기식 학습이 아닌 학습자 자신이 배운 내용을 스스로 정리함으로써 배운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평가로 반영했더니 기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학생 중에서는 학습지 폴더를 관리하지 못하고 분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충실히 기록 보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셋째, 무작위 추첨을 통해 발표하게 했더니 학생들은 누가 해당될지 몰라 긴장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브루타 토론 후에 무작위로 발표를 시킴으로써 그 날 학습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 발표하지 않은 학생들도 스스로 자신이 발표자라고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무작위 추첨 발표가 갖는 효과가 우수함을 알 수 있었다. 2. 하브루타 수업의 발전 방안 하브루타 수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교과 시간에도 비슷한 하브루타 수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다행인 것은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요즈음 점차적으로 다른 교과에서도 하브루타 수업을 진행하는 추세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물론 직원회의 시간에 필자가 하브루타 수업의 원리에 대해 발표하고 하브루타 수업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브루타 수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학생에 대한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일이 가정과 학교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친구와 토론하고 발표하는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야 더욱 적극적인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하브루타 학습에서 이루어진 내용을 적절히 피드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개의 학생이 학생들에게만 맡기면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에 대해 의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므로 쉬우르 시간을 통한 적절한 정리 확인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끝으로, 협력학습의 중요성을 알게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친구와 묻고 토론하는 공부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도서관에서 서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처럼 토론하는 문화가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시작하는 글 좋은 수업은 무엇일까? 교실 속 주인공은 학생인데 왜 교사가 주인공이 되어 교단 앞에 서서 학생들의 몰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학교업무와 생활지도, 입시를 위한 방대한 양의 지식 전달과 평가로 교육현장의 교사들은 매일을 100m 달리기 선수가 되어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우리 교사들에게 교육현장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여유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교사들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 있어도 수업이 잘 되는 날에는, 학생들이 궁금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하는 날에는, 모든 힘들고 피곤함이 다 사라지는 것은 좋은 수업에 대한 갈증이 늘 잠재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현장은 바쁘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팩트(사실)만 주입시키려 하였고 결과만 평가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점점 많아지는 정보의 시대에 팩트만 주입시키는 우리의 교육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과학교과의 경우 아침에 눈을 뜨면서 수많은 이론과 정보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 교사들보다 더 많은 백과사전과 실시간 위성 정보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인터넷 매체를 통한 정보의 양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많을 것으로 본다. 넘쳐나는 새로운 정보와 이론을 언제까지나 획일적인 강의로 교실 앞 칠판 앞에서 가르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지식전달식 수업이 더욱 더 진행되고 학생들은 열심히 필기하여 정보를 받아 내려하는 수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신있게 표출하며 친구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수업시간을 구성해야 함을 절실히 느껴본다. 더 이상 칠판 앞에서 프리젠테 이션을 하며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현상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해결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교사가 되고자 함을 거듭 다짐해 본다. 플립러닝 학생참여형 과학수업 설계 교육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학교 여건에 맞는 교육과정 및 교육내용 재구성을 통한 학습이 학생들의 완전학습을 위한 기반이라고 본다. 2017년에도 경기교육은 교육과정 정상화 방안으로 교육과정 재구성, 배움중심수업화, 성장 중심 평가를 통한 학생중심 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추구하고 있다. ‘2009 개정 과학과 교육과정’의 ‘과학’은 과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하는 수준 높은 창의성과 인성을 골고루 갖춘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인성은 단순히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며 살자는 윤리적 기초 인성의 수준을 넘어 비판적이면서도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태도,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정직성, 자연의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자의 성실성, 동료를 배려 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과학자의 협동 정신 등 과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수준 높은 인성을 의미한다. 2018년부터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창의적 사고 과정을 통한 역량중심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 과목인 통합과학 과목이 신설된다.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도 수업 혁신이 진행됐고 기존의 수업모형 외에도 다양한 학생중심 수업모형이 제시됐다. 특히 플립러닝(거꾸로 교실), 질문이 있는 수업(하브루타 수업), 비주얼싱킹, 토의토론 수업 및 융합수업이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물론 가장 좋은 수업은 교과와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수업이다. 이에 2014년부터 현재까지 플립러닝을 통한 과학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며 보람을 가진 과학 수업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PART VIEW] 1. 과학 수업 관계 맺기 학년 초 첫 단추가 1년의 수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교과서를 맞이한 학생들은 아직 교과 내용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교과서 교육과정만 장황히 설명하고 수업을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을 열고 수업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교사 소개 후 학생들에게 명함을 작성하도록 한다. 이름, 장래 희망, 온라인 소통을 위 한 이메일 등의 정보는 수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진행하는 것이 좋다. 작성된 명함으로 짝과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앞뒤의 학생들과도 인사나누기를 하면 경직된 분위기가 다소 자연스럽게 된다. 제출된 명함은 하나로 묶어 미니 출석부로 사용한다. 참여형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모둠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다. 특히 과학교과는 실험실 수업이 있으므로 학년 초 모둠을 잘 구성해야 한다. 한 모둠은 4~5명이 적정하다. 이보다 많으면 무임승차 학생이 생기므로 되도록 적을수록 좋다. 모둠은 수행 평가 등으로 인해 한 학기를 진행하고 다음 학기에는 다시 구성하는 것이 좋다. 모둠원에게는 역할을 주는 것이 좋다. 보통 4명이 한 모둠인 경우는 이끎이, 칭찬이, 기록이, 지킴이의 역 할을 주는데 본인은 리더, 작가, 디자이너, 아나운서로 구성했더니 고등학생의 경우 자신의 진로와 연관된 역할을 하려고 역할에 대한 적극성을 보였다. 2. 플립러닝 과학수업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은 혼합 학습의 한 형태로 교실수업에서 학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수업방식을 지칭한다. 교과 교사가 10분 내외의 동영상 수업을 온라인상에 탑재하고, 학생들이 가정에서 이 내용을 학습을 하고 교실에서는 개별화 수업, 프로젝트 중심 학습을 통해 학습자 중심 활동 시간을 다양하게 운영하는 수업 방식이다. 과학수업이론을 수업시간에 주입식으로 가르치느라 창의적 문제해결, 학생들 질문에 대한 답변, 수업밀착형 평가가 어려웠던 교육현장에 매우 긍정적 효과를 주고 있다. 즉, 가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수업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사-학생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협력학습으로 학생들 간 경청과 토의능력, 협업능력이 좋아지며, 교사가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학생들의 서로 다른 학습속도에 맞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여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들이 없게 되며 학생 개개인의 정의적능력 평가가 가능 해진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질문 있는 수업시간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가. 플립러닝 과학수업 설계 및 흐름도 플립러닝 학습을 위해서는 학습 설계도가 정확히 구성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가정에서 학습하기 좋은 동영상 녹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체계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수업설계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과학수업에 적용된 학습자료 개발 절차를 도식화하여 제시해본다. 나. 수업 동영상 만들기 다. 플립러닝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사례(고1 과학) 3. 플립영상 가정학습 후 교실 속에서 질문 있는 수업하기 발명가 에드윈 랜드는 딸의 사진을 찍어 주던 중 어린 딸이 ‘왜 사진을 보려면 기다려야 하느냐?’ 는 질문에 아이디어를 얻어 최초의 폴라로이드카메라를 발명했다. 에드윈 랜드는 딸의 질문에 자극을 받아 이상적이지 못한 현실에 대해 ‘왜 이럴 수밖에 없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면서 세계관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글 대표는 구글이 질문으로 굴러가는 기업이라고 표현할 정도이고, 아인슈타인부터 스티브잡스까지 뛰어난 인재들은 질문하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좋은 질문 하나는 여러가지 답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수십년간의 연구를 일으키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만들고 고질적인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질문은 문제해결을 위한 확산적 사고를 하도록 하기에 매우 좋은 수업 방법이다 4. 과학 독서수업으로로 수업밀착형 평가하기 입시준비를 위한 사교육에 의존율이 높은 요즈음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과정보다는 정답위주로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과학시간에 독서교육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차원을 넘어 창의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 있다. 생각하는 힘과 표현의 힘을 기르고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가. 수업 적용 나. 수업 밀착형 평가 과정평가로 한 줄 쓰기 2회, 도서 완독 후 핵심 질문 2개 만들기 및 도서 내용 중 핵심 내용 정리하고 과학이론에 대한 나의 생각 적기 1회 ⇨ 총 3회의 평가점수를 수합하여 평가 다.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과학도서 불가능은 없다’를 읽고 생각카드 운동화 그림으로 과학의 발전이 마치 운동화 같이 언제나 연구하며 앞을 향해 달려야함을 표현하였고 책 내용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내용 재구성으로 플립영상을 잘 구성함. 마치며 기존의 강의식 수업을 플립러닝 수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사고 전환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교육내용 재구성부터 동영상 녹화, 탑재 및 학생들과의 피드백에 이르기까지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소요되어 바쁜 교육현장에서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언제든 질문에 답해주는 교사,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까지 따라오면서 질문하는 학생들이 언제나 곁에 있는 교사,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과학 이해도가 낮아 뒤쳐져 힘들어하는 학생들 곁으로 가는 교사, 학생들의 창의력이 나날이 향상되도록 힘을 주는 교사, 학생들의 진로를 열어주는 교사를 원한다면 플립러닝 학습을 적극 권하고 싶다. 플립러닝은 수업 모형이 아니기에 이론적으로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규칙은 없다. 학교급과 학생들의 성취도에 따라 스스로 학습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완전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시작 단계에서는 매일매일의 수업을 플립러닝으로 하려는 욕심을 접고 점점 더 확장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도입하기를 권장한다. 2차시분을 한 개의 동영상으로 녹취하고 수업을 전개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시작 단계에서는 학생들과의 충분한 래포가 형성되어야 하며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기에 ‘왜 플립러닝 학습이 필요한가?’ 에 대한 인지가 된 후에 진행되어야 함을 제언하고자 한다. 플립러닝은 결코 동영상 강의가 아니라 가정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가지고 이해력과 탐구력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며 교실에서는 획일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눈을 맞추고 개별학습을 위해 교사가 조력자가 되어 수업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한 학습 과정이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과학교과에 플립러닝을 적용한 결과 다음과 같은 면이 가장 좋았고 보람을 느끼게 했다. ▶ 학생들과 학습 및 인성 소통의 기회를 주었다. ▶ 과학 이해력이 낮은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 성취도가 증가했다. ▶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없어졌다. 많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발표할 수 있게 됐다. ▶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질문을 들으며 학생들의 의사소통역량 및 창의적 역량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실험활동 및 보고서 작성까지 한 시간 내에 수행가능하게 됐다. ▶ 교사 입장에서 동영상 녹화의 실수를 없애기 위해 교재연구를 어느 때 보다 많이 하게 됐다. ▶ 시험 전 가정에서 자기주도 복습을 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 학생들이 뽑은 플립러닝의 장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