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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전교조 교사들이 학원비리 척결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 및 시위를 벌이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서울의 S여고 학부모들이 학교 전교조 교사들의 수업거부로 학습권과 교육권을 침해당했다며 시위ㆍ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들에게 각 30만~1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헌법에서 규정한 학습권 보장은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자 대전제이며, 자녀에 대한 교육권은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불가침의 인권으로서 자녀의 보호와 인격발현을 위해 부여되는 것이다"고 판시했다. 이에 반해 교원의 수업권은 교원의 지위에서 생기는 일차적인 교육상의 직무권한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학생의 학습권은 교원의 수업권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교원의 수업권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수업거부행위의 위법성은 행위의 목적이 정당했다는 이유로 조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까지 허용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학습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 학생들 스스로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 수업을 못했을 경우 원칙적으로 교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학습권은 집단적 기본권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개인적 기본권이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교원의 수업거부행위가 정당화된다고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피고들의 위법한 수업거부 및 수업방해 행위로 인해 당시 대학진학을 앞둔 원고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못해 수학권이 침해되고 그 부모들의 교육권 또한 침해돼 정신적 고통을 입은 만큼, 위자료를 지급하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수긍이 간다"고 판결했다. 서울의 S고교 3학년생의 학부모들은 이 학교 전교조 교사들이 2001년 4월~5월 23일동안 학교측의 인사부당함을 주장하며 부패재단 퇴진운동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자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들의 교육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산림청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학교 숲 조성 지원을 위한 2008년도 시범학교 공모를 통해 모두 86개교가 지원대상 학교로 선정됐다고 1일 밝혔다. 이번 학교 숲 시범학교 사업공모에는 지난 6월까지 모두 402개교가 응모했으며, 선정된 학교는 2008년부터 연간 1천만원씩 3년간 모두 3천여만원의 학교 숲 조성사업비와 민간 전문가들로부터 학교 숲 조성 및 관리 기술을 지원받게 된다. 학교 숲 시범학교 조성사업은 학교운동장, 학교담장 공간 등을 활용해 숲을 만들어 숲이 부족한 도심지역에 도시 숲을 제공하며 아이들에게는 자연학습과 인성개발 현장으로 활용하고 지역주민들에게는 녹색쉼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숲 시범학교 조성사업은 산림청 외에 (사)생명의 숲, 유한킴벌리 등 민.관 공동사업으로 추진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학교 숲 조성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단순한 조경공사 개념을 탈피해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 모두 설계에서부터 숲의 운영과 관리까지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며 "시민단체와 정부, 기업 등이 함께 추진하는 파트너십 운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공모 결과와 학교 숲 조성에 관한 각종 자료는 '학교 숲 운동 홈페이지(www.schoolforest.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위) - 대형마트에 설치된 불우학생 돕기용 포인트 적립기 대형마트(천안이마트, 아산이마트, 서산롯데마트)들이영수증 적립포인트를 이용한 불우학생 돕기 및 소외계층 지원 사업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업에 동참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쇼핑을 마친 교육가족은 물건값을 계산한 후, 계산대 앞에 설치된 무인적립기에 각 지역 교육청을 선택 후 영수증 바코드를 갖다대거나, 고객만족센터에 가서 적립하면 된다. 포인트는 영수금액의 0.5%가 적립되며 개인카드 포인트와는 별개로 운영된다. 단 적립금은 분기 내 적립만 유효하다. 예를 들면 1~3월 영수증은 3월말까지만 사용 가능하다. 이렇게 모아진 포인트는 각 지역 교육청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되어 불우학생 돕기 및 소외계층 사업에 쓰여진다.
-부석지구 3개 초교, 끼&꿈 주말캠프 운영 - 부석초등학교(학교장 채규웅)는 9월 29일(토) 13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영어교실, 독서논술, 과학놀이, 수학놀이등 4개 교실을 부석초등학교가 주축이 되어 부석, 강당, 가사초등학교에서 참가인원 총 159명(전체인원대비 90%)이 참여한 가운데 신나고 재미있는 주말학교가 운영되어졌다고 밝혔다. 이날 처음 실시된 부석지구 3개 학교 주말캠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방과후학교 권역형 인재육성 프로그램’ 운영비로 5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부석초등학교 안명옥 선생님 주관하에 3개교의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시행하였는데 9월29일부터 11월 3일까지 매주 토요일 3시간씩 운영될 예정이며 매주 마다 학생들은 자기 학교에서 참여하지만 지도교사들은 로테이션으로 각 학교를 순회하며 다른 학교학생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다양한 교내 주말캠프를 통하여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잠재된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1학기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련되어진 주말캠프는 영어교실 “Tomorrow's Super Star! ”, 과학놀이 “움직여라. 뚝딱 ”, 수학놀이 “ 신나는 수학세상 ”, 독서논술교실 “요리조리 생각속으로 ” 등의 주제로 진행되는데 교과서를 탈피하여 재미있고 신나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지식과 생활, 지식과 환경과의 관련성 등에 관하여 관심을 갖도록 하여 도농간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관학교인 부석초 채규웅 교장은 “개인시간을 가져야할 주말에도 교육기반 여건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하여 다양하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들과 적극적인 지원을 함께 해주신 지자체 관계자들이 있어 주말캠프의 성공을 예감한다”면서 지도교사들을 격려하였다.
-교과서서 뛰쳐나온 수궁가 '얼쑤'- "별주부가 (토끼) 화상을 받아들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놈의 화상을 어디다 넣어야 물이 한 점도 안 묻을지 생각다 못하여 목을 길게 빼고 목덜미 속에다 화상을 턱 집어넣고 목을 탁 움추렸것다." 인천시 부평구 동수로 677 인천부일여자중학교(교장 서판권) 운동장에 둘러앉은 1천여명의 학생들이 판소리 '수궁가'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대중가요나 서양음악에 익숙해져 있던 학생들이 수궁가 중에서 창극 '뺑파전'공연에우리 소리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은 부일여중이 '제1회 국어 축제의 날'을 맞아 마련한 행사로. 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적벽가 이수자인 정준태 대표와 전국 고수대회 명고수 대상을 수상한 고정훈 고수, 남도민요 경창대회 수상자인 유희경 단원, 전국 판소리 대회 대상을 수상한 윤석영 단원 등 쟁쟁한 기능을 보유한 광대놀음 '연희단' 장인들이 출연해 우리의 소리를 선보였다. 이 학교는 올해 학교 특색사업으로 매달 '교과의 달'을 지정, 각 교과에 맞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판소리와 창극에 앞서 1부 행사에서는 예선을 통해 선발된 학생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도전 골든벨!' 형식의 독서 퀴즈대회가 열렸으며 국어시간에 학생들이 만든 창의적인 수업자료를 전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홍은총(3년) 학생은 "국어시간에 고전소설로 배웠던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고 애절할 줄 몰랐다"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판권 교장은 "학생들이 책에서 배운 고전을 눈과 귀로 직접 체험토록 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흥미를 증진시키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즐겁고 신나는 수업시간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들어 교육부 장관의 재임 기간은 평균 8.2개월로 1년을 채우지 못했고 차관은 재임 기간이 평균 12.8개월로 기록됐다. 교육부 국과장급 인사들은 절반 가량이 1년을 넘기지 못했다. 1일 국회 교육위 최순영(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재임기간은 윤덕홍 전장관 10개월, 안병영 전장관 12개월, 이기준 전장관 6일, 김진표 전장관 18개월, 김병준 전장관 1개월 등이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지난해 9월 20일 취임한뒤 재임 기간이 현재까지 12개월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기준 전장관은 6일간 재임, 역대 최단명 교육부 장관으로 기록돼 있다. 이기준 전 장관을 제외한다 해도 참여정부 장관 재임 기간은 10.2개월 정도다. 교육부 차관은 참여정부 들어 현재까지 모두 5명으로 가장 짧게 재임한 차관은 45일을 채 넘기지 못했고 재임기간이 가장 긴 경우는 18개월이다. 국장급 인사 37명의 재임 기간은 평균 13.8개월로 나타났다. 국장급 인사 중 가장 짧은 경우가 24일을 넘지 못했고 재임 기간 6개월 이내가 5.41%, 6개월~12개월이 37.84%로 1년을 넘지 못한 경우가 43% 가량에 달했다. 12개월~18개월이 37.84%, 18개월~24개월 18.92%로 파악됐다. 과장급 인사 100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5.1개월이다. 과장급의 경우 가장 짧은 경우가 4개월을 넘지 못했고 6개월 이내가 21%, 6개월~12개월 29%로 1년을 넘지 못한 경우는 50%에 이르렀다. 최 의원은 "교육부 장차관은 물론 국과장급 인사들도 재임기간이 1년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잦은 인사 이동으로 교육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에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 전원이 현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실시하는 대학이 있다. 이는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몸에 익힌 기술을 발휘하는 것으로, 사회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내 체육관에서 쓰쿠바 학원대학 2학년 이이무라씨(19)는 "처음에는 장애자들을 지원하려고 생각했지만, 함께 즐겼습니다"라고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자원봉사 단체인「쓰쿠바 벽 없애기 학습회」가 2개월에 한 번씩 열고 있는 활동이다. 지난 달 일요일에 장애자와 정상인이 플라잉 디스크를 사용하고, 숫자 판넬에 맞추는 게임을 맨투맨으로 체험했다. 참가자 8명 가운데, 이이무라씨 등 학생 2명은「사회력 강화 실습」이라고 불리는 필수 과목으로 참가했다. 정기적으로 학습회에 나와 참가하고 리포트를 써 교수로부터 평가도 받게 된다. 학습회의 대표, 츠쿠바시의 주부 키타무라씨(35)는「큰 이벤트로 일손 부족때, 대학생이 와 줄 수 있는 것은 매우 든든하다」라고 참가를 환영한다. 츠쿠바 학원대는 학생 전원이 시내의 NPO 단체등의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2년 전부터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1학년 때는 이벤트의 체험, 2학년은 30시간 이상의 중장기적인 참가, 3학년은 임하고 싶은 활동을 스스로 계획해 NPO 등과 교섭하여 스스로 실시한다. 작년은 시내를 중심으로, 장애자나 고령자와의 교류 활동이나, 숲 만들기, 쓰레기 줍기의 환경 자원봉사, 상가의 활성화 활동 등, 49단체에 학생이 참가하게 되었다. 사회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힘을「사회력」이라고 이름 붙여 그 육성을 제안하고 있는 사람은, 카도와키 학장(66)으로, 쓰쿠바대 명예교수 교육사회 학자로, 시민 단체끼리나 행정과의 제휴를 도모하는 NPO「츠쿠바 시민활동 추진 기구」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쓰쿠바 학원대는 예전의 단기 대학을 4년제의 여자대로 전환한 후, 2년전에 공학화했던 바로 직후로, 1~3학년 합해도 학생수는 535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기 때문에 더욱 , 타 대학이 할 수 없는 것을, 지역의 발전에 공헌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시민 단체와 학생과의 연락을 원활히 하기 위해, 대학에는 촉탁 스탭을 3명, 코디네이터로서 배치하고, 학생이 수행할 수 있는 활동의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수락 단체의 합동 설명회를 열거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 스탭도 25명 있다. 이들은 학생에 대한 의식 조사를 담당해, 학생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키도록 하고 있다. 「대학이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학생과 수락 단체를 잘 조화시킬 수 있다」라고 코디네이터의 한 명, 타케다 나오키씨(38)는 이야기 한다. 「처음은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있는 느낌이었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 임할 수 있어 달성감이 있다」라고 학생 스탭인 3학년, 요시자와씨(21)가 만족해 한다. 대학이 작년, 수락 단체 49단체에게 물은 설문조사에서,「학생의 참가가 단체에 도움이 되었는지 」라고 하는 물음의 평균치가 5 단계에서 4·1로 나왔다.「시민으로부터 환영을 받기에 학습 의욕도 높아진다」라며, 대학과 하나가 된 지역 공헌이 작은 대학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라고 카도와키 학장은 이야기 했다.
“언제고 여러분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그 풍경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리로 지나가게 되거든 제발 부탁이니 서두르지 말고 바로 그 별 밑에서 조금 기다려보기 바란다! 그때 만약 어떤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온다면, 만약 그가 웃는다면, 만약 그 아이의 머리칼이 금발이라면, 만약 묻는 말에 그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곧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거든 제발 부탁이니 나를 이토록 슬퍼하게 버려두지 말고 그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해주기를….”(어린 왕자의 마지막 대목) 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어린 왕자들 인터넷에서 ‘어린 왕자’를 검색해 본다. 당장 우리 사회 곳곳의 어린 왕자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같은 이름의 영화와 펜션, 극단, 카페, 치과, 캠프 등등. 심지어 연인들이 함께 끼는 커플 반지까지 각 분야에 무수히 핀 어린 왕자들. 어린 왕자는 어느새 우리 일상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사라지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늘 함께 하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바로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 작가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의 작품. 20세기가 낳은 최대의 고전으로서 전세계 160여 개국에서 번역돼 1억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이를테면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다수 언어인 영어와 독일어, 아랍어, 인도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번역본이 이 시간에도 계속 팔리고 있다. 여기에 소수 민족 언어인 필리핀 섬의 타갈로그어, 쿠라사오의 파리아멘토어, 페로에섬의 패뢰스크어, 옛 유고슬라비아 땅의 시페테르어, 이탈리아 땅의 프리울랑어, 스페인 땅의 아라곤어, 스위스 땅의 쉬르실방어, 에콰도르의 치쿠아어, 여기에 인도의 수많은 토착어들인 테루구어, 마라티어, 펜자비어, 타물어, 말라야람어 등, 최근에는 남부 아프리카의 쇼사어 번역까지 나왔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진작부터 번역본이 나왔다. 대략 지금까지 200군데가 넘는 출판사들에서 중복 출판하여 어느 출판사의 번역본이 정확하고 문학성이 높은지 따지기 곤란할 정도다. 이 글에서는 최근에 나온 문학동네 출판사의 번역본을 기본서로 삼는다. 옮긴이는 미려한 우리말 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원로 불문학자 고려대 김화영 교수다. 어린 왕자의 줄거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동화라고 종종 불린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종잡을 수 없도록 다양하고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함축적인 텍스트다.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도 있지만 절대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상징적인 언어 예술이다. 세계 곳곳에서 어린 왕자가 끊임없이 읽히는 지금, 어린 왕자는 이제 뛰어난 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넘어서서 전세계 독자들의 귀중한 보물이 된 것이다. 어린 왕자가 환갑을 맞이했다고? 지난해 프랑스 전역은 어린 왕자 출간 60주년 행사들로 떠들썩했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올해는 어린 왕자가 ‘환갑(還甲)’ 되는 해다. 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어,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 서로 다른 탄성이 나올 수 있지만 결국은 그 우수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이전에 이미 세상에 나왔다. 정확히 말해서 어린 왕자는 1943년 3월 뉴욕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다. 3년 전에 발간된 영어판 제목은 ‘The Little Prince.’ 하지만 미국 출판사와 원래 계약 출판사인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 사이의 저작권 협의가 쉽지 않았던 데다가 전시 중에 종이품귀 현상까지 겹쳐서 결국 프랑스에서는 1946년 4월에야 어린 왕자가 서점에 배포되었다. 결국 어린 왕자는 1946년 아니 1943년, 그것도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뉴욕에서 먼저 발표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작가 생텍쥐페리가 프랑스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린 왕자를 발표한 장소는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뉴욕이요, 사용한 언어 또한 영어였던 것이다. 처음 나온 프랑스어 판본과 다시 3년 뒤 프랑스에서 나온 판본(물론 프랑스어)은 내용과 장정 등이 약간씩 다르다. 물론 영어본 또한 이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린 왕자는 무엇이 정본인지, 그리고 환갑을 지났는지, 아직 지나지 못했는지 다시 따져보아야 하리라. 어린 왕자는 어린이 그림책? 어린 왕자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들이 가득하다. 이는 어린 왕자의 다양한 행동과 풍요로운 모습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읽다 보면, 글에서 글로 이어지며 그림이 덧붙는 책이라기보다는 그림에서 그림으로 이어지며 글이 뒷받침해주는 책이라는 점이다. 즉, 어린 왕자의 삽화들은 보조적인 장식이 아니라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결정적인 척추와 동력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린이 그림책일까? 일단 어린 왕자 집필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말을 따져보면 명백히 어린이용 동화다. 어린 왕자는 1942년 미국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주문 생산된 작품이다.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가 그때 미국에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그의 출판사, 에이전트, 번역자가 강권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그에게 있어서 어린 왕자는 그림과 함께 일종의 기분 전환과 자신의 생각을 숨겨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발산의 기회였다. (올리비에 다게의 말, 28쪽, 어린 왕자를 찾아서) 이 어린 녀석 말예요. 이 아이의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요? 어린이용 책으로 말입니다. 1942년 크리스마스이전에 책을 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생텍쥐페리의 말, 32쪽, 어린 왕자를 찾아서) 무엇보다도 어린 왕자의 맨 앞에 붙은 헌사(獻辭)는 가장 손쉽게 들 수 있는 근거다. 헌정 대상은 ‘레옹 베르트에게’라고 밝혀져 있는데, 그는 생텍쥐페리보다 실제로 20살 이상이나 연상이었다. 생텍쥐페리는 계속 말한다. “책을 어떤 어른에게 바치게 된 것을 어린이들이 용서해주었으면 한다.”(5쪽) 이어서 생텍쥐페리는 레옹 베르트가 현재 “춥고 배고픈 처지에 놓여 있다”며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고 밝힌다. 한마디로 어린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어른에게 바치는 책이 바로 어린 왕자다. 결국 이 책은 어린이는 판매 대상이지만 헌정 대상으로 볼 때 어린이가 독자라고 보기 어렵지 않냐는 의문에 이른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의미 담아 실제로 어린 왕자는 대단히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대목들을 많이 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이에 걸맞은 동화와 그림 같지만 사실은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에게 읽게해 보아도 대체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수준에서는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식의 반응이 많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읽어도 제대로 쉽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이 책이다. 어린 왕자가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난 대목만 해도 그러하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묘사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몹시 불행하게 느껴졌다. 그의 꽃은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고 늘 그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정원 한 곳에만 똑같은 꽃이 오천 송이나 피어 있는 게 아닌가! ‘내 꽃이 이걸 보면 무척 속상할 거야…’, ‘아마 기침을마구 해대며 창피한 꼴을 면하려고 죽는 시늉을 할지도 몰라. 그럼 나는 그를 간호해주는 척해야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게 죄책감을 주려고 정말로 죽어버릴지도몰라…’(95쪽) 어린 왕자가 단지 동화라면 이러한 대목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을 몹시 불행하게 느끼는 어린 왕자는 보아뱀에게 먹힌 코끼리를 단박에 알아보는 통찰력 빛나는 작품 초반의 모습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단지 자신의 꽃이 예전에 한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깨닫게 되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그 때문에 자신을 몹시 불행하다고 느낀다니? 다시 말해, 눈에 안 보이는 ‘본질’을 통찰하는 현자가 눈에 보이는 ‘사실’이 다르다고 불행하다고 느낀다니? 그리고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진 꽃은 겨우 평범한 장미꽃이군. 그리고 기껏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화 산 세 개 그중 하나는 영영 꺼져버렸는지도 모른데, 그 정도 가지고는 대단한 왕자가 되긴 틀렸어…’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95 ~96쪽) 한술 더 떠서 어린 왕자는 화가 났는데도 곧바로 이렇게 말하며 걱정한다. 자신의 꽃이 “이걸 보면 무척 속상할 거야”, “창피한 꼴을 면하려고 죽는 시늉을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자신은 “간호해주는 척 해야 하겠지” 심지어 자신의 꽃이 자신에게 “죄책감을 주려고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목은 사뭇 강박적인 심리의 일단까지 비쳐진다. 어린 왕자를 번역하고 함께 해설판 어린 왕자를 찾아서를 펴낸 김화영 교수는 이 대목을 생텍쥐페리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 연관시키며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어린 왕자가 다른 장미꽃들을 만나게 되는 장면(제20장)은 생텍쥐페리가 결혼한 뒤 많은 다른 여성들과 지속한 애정관계들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저명한 작가요 비행사인 생텍쥐페리의 곁에는 아내 콘수엘로 못지않게 오랜 동안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인 르네 드 소신느, 파리 문단과 재계에 영향력이 큰 넬리 드 보귀에, 미국의 여기자 실비아해밀턴 등 내밀한 친분관계인 여성들이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수많은 여성 애독자와 추종자들이 화려한 꽃밭을 이루곤 했다. (48쪽, 어린 왕자를 찾아서) 그의 부인 콘수엘로 역시 작가였다. 그녀는 중남미의 유명한 문인의 미망인으로서 생텍쥐페리와 결혼하였는데 콘수엘로가 쓴 책 중에 장미의 기억은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꽃인 ‘장미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어린 왕자의 꽃은 아무래도 작가와 작가 부인의 관계, 나아가 작가의 여성 편력이라는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따져야 더 공감이 간다. 어린 왕자의 슬픔과 ‘한(恨)’ 번역은 반역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원래의 뜻을 고스란히 전해주기란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는 작업이 바로 번역이다. 하지만 번역이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낮춰 보거나 멀리 할 수는 없다. 번역이 없다면 서로 간의 문화가 오고가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160여 개 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번역의 의의와 역할을 충분히 깨닫게 해 준다. 번역한 글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는 물론 해당 외국어들을 능통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잘 알 것이다. 거꾸로 말해 일반인들은 각 나라 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오는 의미와 정서의 차이를 쉽게 간파하기 어렵다. 더구나 어린 왕자 자체가 이미 판본이 다양하여 의미가 미묘하게 다를 듯싶으니 각 나라 번역본의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음미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영어본을 택할지 프랑스어본을 택할지도 선뜻 결정하기 힘들다. 어느 판본이든지 어린 왕자를 필자 스스로 직접 번역한다면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서라는 ‘한(恨)’을 꼭 담아 보고 싶다. 어린 왕자를 읽다보면 잔잔하게 깔려오는 슬픔, 삶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서 오는 애잔한 슬픔, 통곡할 정도의 처절한 슬픔은 아니지만 우리들 가슴에 시나브로 스며오는 인간 존재의 아득한 숙명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여기서 어린 왕자의 마지막 삽화를 떠올려보자. 아주 완만하게 둥근 줄 두 개가 살짝 포개지며 사막의 무한 수평선을 그리고, 다시 그 위로 별 하나가 외롭게 떠 있는 풍경. 지상과 천상의 중간에 아무런 존재도 없는 허적(虛寂).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는 세계. 이는 바로 전의 삽화에서 어린 왕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뒷모습이 정지 상태로 나온 장면과 어울려 세계의 한계 속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존재의 비극적 숙명을 암시하는 어린 왕자의 최고 삽화다. 나는 두 개의 선과 하나의 별이라는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무한한 정서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삽화를 그려보곤 한다. 아, 절대 고독과 인간 숙명의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방랑하고 모색하는 존재, 작가 생텍쥐페리 아니 우리들 모두의 상징이 바로 어린 왕자가 아닐까. 어리고 순수하며 본질적이며 천상적인 존재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약하면서도 강하고, 사라지면서도 영원한 인간 존재 공통의 바람이 아닐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최근에 나온 사막별 여행자(무사 앗사리드, 신선영 옮김, 문학의숲)을 적극 권한다. 별과 모래뿐인 사막의 소년, 투아레그족 출신인 저자가 소년 시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우연히 읽고 자신과 같은 어린 왕자들이 아직 사막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생텍쥐페리를 만나러 프랑스에 가는 실화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리고 변화한 그가 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도 그만이다. 저자 소개 허병두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교육부 독서교육발전자문위원회, 〈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MBC TV ‘느낌표!’ 선정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청소년의 바람직한 독서 문화 조성을 위한 모임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로 활동 중이다. 너희가 책이다-청소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열린 교육과 학교도서관, 허병두의 즐거운 글쓰기 교실 1, 2, 신문활용교육이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냈으며 독서문화상, 간행물윤리상, 전국신지식인상 등을 받았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 기원전 31년에 벌어진 악티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휘하의 군대를 격파하다.” 물론 뒤집은 이야기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은 악티움해전에서는 물론 이어 벌어진 육전에서도 참패했다. 그리하여 승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첫 황제가 되었고 더불어 공화국 로마는 ‘제국 로마’로 변신했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우연론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역사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파스칼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사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 이후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줄곧 시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말하자면 여성미의 척도인 코 높이가 알맞지 않아 클레오파트라가 그처럼 절세미인이 아니었을 경우 안토니우스는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악티움해전은 없었을 것이고, 더불어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로마제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다. 근대의 사가와 역사철학자들 대부분은 “러·일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역사 필연론과 함께 우연론을 배격하지만, 사람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코 가설 같은 우연론의 매력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의 정복자로 입신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 세력가가 득세하고 원로원의 권위가 흔들리는 등 정치적, 사회적으로 공화국 로마가 위기에 처했을 때 원로원을 누르고 폼페이우스 등과 함께 이른바 ‘삼두(三頭)정치’를 폈다. 이후 그는 결국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정적들을 제거하고 원로원까지 손에 넣어 사실상 군주로 군림했지만 브루투스·카시우스·키케로 등의 공화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주지하듯이 카이사르 암살사건은 셰익스피어의 팬을 통해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살아남았다. 고결한 도덕성을 자랑하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은 카이사르의 부장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등을 제거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장례식 날 안토니우스는 유혈이 낭자한 카이사르의 옷을 흔들며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내는 추도사를 하고 카이사르의-양자 옥타비아누스는 뒤이어 돈을 풀어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브루투스 일당을 타도한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공화국 말기의 로마를 통치했다. 바로 제2회 삼두정치다. 그러나 권력, 특히 최고 권력은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임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두 번째 삼두정치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북아프리카의 통치자 레피두스가 탈락한 후 서부지역 통치자 옥타비아누스와 동부지역 통치자 안토니우스는 결국 세계국가 로마의 주인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라고 해서 오랫동안 최고 권력을 공유하도록 역사가 허용할 리 없었고, 더불어 로마는 귀족공화국일 뿐이었지만 공화국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아래에서 그 추이를 간략히 살펴보자. 카이사르의 사후 안토니우스 유혹 영역을 크게 넓힌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점령한 후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지원했고, 세기적 사랑을 자랑한 두 사람 사이에서 케사리온이 태어났다(카이사르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후 카이사르를 따라 로마에 갔다가 카이사르가 살해된 후 황망히 귀국해야 했던 클레오파트라는 새로운 실력자 안토니우스를 제2의 기회로 삼기로 작정했다. 당시 28세(혹은 29세)였던 그녀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갖가지 선물을 챙겨 소아시아의 타르수스로 마중을 갔고 그는 그녀에게 넋을 빼앗겼다(그가 이집트에서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녀가 14살 때였다).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원정을 위해 결국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로마로 로마를 공격하는’ 책략을 펼 수 있게 되었다. 안토니우스의 아내 풀비아는 원로원에서 남편을 비방하는 연설을 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살해되어 머리만 로마로 보내져 효수된 키케로(그는 로마를 대표한 철학자요, 연설가였다)의 늘어진 혀에 바늘을 꼽기까지 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이집트에서 로마로 일시 귀환한 안토니우스는 풀비아가 죽자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와 결혼하는 등 한동안 옥타비아누스와의 결속을 자랑했다. 뛰어난 미인으로 소문난 새 아내 옥타비아로부터 두 딸을 얻었지만 이미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안토니우스가 점차 강화되어 가는 옥타비아누스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파르티아원정을 단행하면서 양인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와의 재회를 즐기며 옥타비아누스와 자웅을 겨루기로 작정한 안토니우스는 임신한 아내 옥타비아에게 장문의 이혼편지를 보낸 후 클레오파트라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그처럼 다시 동방행을 단행하자 로마에서의 그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고 일부 지지자들은 그와 동행하지 않고 잔류했다. 옥타비아누스로서는 호기를 맞이했지만 공화국 로마의 운명은 반대로 풍전등화 같은 처지가 되었다. 로마를 이용한 로마 공격에 실패해 기원전 31년 9월 레바논 앞 바다 악티움해. 옥타비아누스 휘하 함대와 안토니우스 - 클레오파트라 연합함대는 악티움해를 붉게 물들이면서 격돌했다. 500척의 함선과 7만 여의 보병을 동원한 안토니우스는 악티움해에 진을 쳤다. 이오니아해로부터 내려온 옥타비아누스의 400척 함선과 8만 보병은 안토니우스군과 이집트군의 연합을 막으려 했다. 일부 동맹세력의 이탈과 보급품의 부족을 느낀 안토니우스가 먼저 공격했다. 육전에서의 세(勢) 불리를 의식했든 봉쇄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든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조언을 쫓아 해전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던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함대는 암브라시아만 밖으로 나와 서진하고 클레오파트라의 소형함대가 뒤를 따랐다. 곧 격전이 벌어졌고, 양측의 소형 함선들은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갤리선들을 빼내 전장을 벗어날 때까지 서로 상대 함선의 측면을 공격하려 애썼다. 결국 크게 패한 안토니우스 또한 몇 척의 함선을 거느리고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랐다. 뒤에 남은 안토니우스의 함선들은 항복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 -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은 뒤이어 벌어진 육전에서도 대패한 후 해전 일주일 후에 투항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따르면 옥타비아누스의 전령이 알렉산드리아의 궁전에 도착했을 때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죽어 황금침대에 누워 있었다. 갖은 기교를 동원해 승자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했지만 실패하자 옥타비아누스에게 안토니우스와 함께 묻어달라는 편지를 쓴 후 자신이 죽은 줄로 오인하고 자살한 안토니우스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이집트 왕실의 상징인 코브라에 물려서 말이다. 39세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묻혔고 더불어 로마공화국도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클레오파트라. 그리스어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신’을 뜻한다든가. ‘나일강의 악녀’로도 불리는 클레오파트라 7세는 여신 비너스와 더불어 흔히 서양의 여성미를 상징한다. 하지만 주화나 부조에 남아있는 클레오파트라는 미인이기보다는 매력적 여인으로 보이게 한다. 그녀는 육감적 입과 의지적인 턱, 부드러운 눈매, 넓은 이마, 매부리코를 가졌으며 역시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줄이 많은 현악기 음색을 가졌다. 로마를 대리석의 도시로 만든 황제 안토니우스를 꺾은 옥타비아누스는 결국 1인 지배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사실상 로마를 통치해온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자)’란 칭호를 바쳤고 군대는 임페라토르(imperator, 군사령관 - 황제 emperor의 어원)란 칭호를 바쳤다. 그는 황제(아우구스투스)가 되었고 공화국 로마는 제국 로마로 바뀌었다. 원로원은 존속했으나 제위를 장식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러나 황제로 군림하기보다 공화주의자로 자처했다. 그는 ‘존엄한 황제고 신 같은 카이사르의 아들’이란 칭호보다 ‘제1시민(프린켑스)’이란 칭호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제1시민으로 자처했다고 해서 그의 지배체제를 ‘원수정’으로 부르거나 원로원에 지난날 권력의 일부를 부여했다고 해서 ‘양두(兩頭)체제’로 불리기도 한다. 일체의 허식을 피한 그는 검소하게 생활한 반면 흉년에는 황실금고를 열어 굶주리는 빈민에게 식량을 나누어주었고 매년 수회에 걸쳐 유희(서커스)를 베풀었다. 그렇다고 아우구스투스가 절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랜 전통의 공화제를 경시하다 결국 공화주의자들에게 살해된 카이사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공화주의자로 행세했지만 실제로는 행정, 군사, 재정 등 모든 면에서 전권을 행사했다. 그는 상비군제도의 도입 이외에도 세제를 개혁하고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스페인, 프랑스, 북아프리카 등지에 50여 개의 속주를 두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징세청부제를 폐지하는 등 속주통치체제도 정비하여 제국이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튼튼히 닦았다. 그는 “벽돌의 도시 로마를 대리석의 도시 로마로 만들었다”고 자부했고 40여 년에 걸친 그의 치세 중에 제국은 번영의 기틀을 다졌다. 500년 제국역사의 단단한 기틀 마련 하지만 제국 초에는 네로와 같은 용렬한 황제들로 인해 국기가 적잖이 흔들렸다. 3대 황제 칼리굴라는 연회에 초대된 신하의 아내들과 성적 유희를 즐겼는가 하면 말(馬)에게 집정관직을 수여했고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황후의 치맛바람을 벗어나지 못하다 결국 네 번째 황후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로는 모후와 의붓동생을 죽이는 것도 부족해 로마시를 불태우고 기독교도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기초를 튼튼히 놓았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팍스 로마나’의 번영기를 포함한 500년 역사를 자랑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운위(云謂)하는 자들이 전술했듯이 그녀의 뛰어난 미모가 악티움해전을 낳았고, 그로 인해 세계국가 로마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뀌고 세계도 더불어 제국적 질서로 바뀐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좀 높거나 낮아 절색이 아니었을 경우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옥타비아누스와 대결하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고 악티움해전도, 아우구스투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제국으로의 변신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을까? 사실 로마공화국은 300여명의 종신 귀족 원로원 의원들이 거의 전권을 행사한 귀족공화국이었을 뿐이고 또 제국으로 변신하지 않았어도 동일하게 최강의 국가로 군림하면서 주변 민족과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거나 지배했을 것이다. 아니 세불양립(勢不兩立)이 역사의 이치이니 클레오파트라가 없었어도 또 다른 악티움해전은 있었을 것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 코’ 운운하는 것은 우연이 역사를 지배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역사의식의 발로이다. 우연론은 역사적 방법론을 파산으로 이끌 뿐이라는 데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다. 짧고 함축적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잘 표현한 시라는 느낌이 든다. 의사소통의 부재, 고독과 소외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그 섬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섬을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섬의 존재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관계 맺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세상을 연결하는 꼬마 소녀 이렇듯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닐진대, 나와 전혀 다른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서로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청각장애인일 경우 과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다. 〈비욘드 사일런스〉는 제목 그대로 ‘침묵을 넘어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영화다. 독일 남부지방의 작은 마을.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딸 라라(실비 테스튀)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바깥 세계와 부모 사이의 다리가 된다. 가족 중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라라는 부모에게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수업도중에도 은행에 대출협상을 하러 부모님과 함께 가야 하고 학교에서 들은 지시사항들을 일일이 전달해야 했지만, 불평 없이 모든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던 착하고 귀여운 꼬마 소녀였다. 소리를 듣지도 말할 수도 없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 마틴(마티아스 하비흐)은 영리하고 착한 딸과 보내는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는 종종 라라와 소리 알아맞추기 게임을 하곤 했다. “해가 뜰 때는 어떤 소리가 나지?” “눈이 땅에 닿을 때는 어떤 소리를 내지?” 일반인들에겐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일인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이 마틴에겐 타인의 손을 의지해야만 겨우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는 일상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소리를 딸을 통해 느끼고 싶어 한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수화를 배워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는 라라. 그녀의 부모님은 라라가 태어남으로 인해, 그동안 캄캄한 암흑이었던 세상의 소리와 연결될 수 있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족과 자아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 여덟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은 라라. 그날 라라는 유명한 클라리넷 연주자이며 아름다운 고모 클라리사로부터 클라리넷을 선물 받는다. 그날부터 라라에게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소리의 세계가 열리고, 연주에 소질을 보인 그녀는 자라면서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마틴은 딸이 클라리넷에 점점 빠져드는 것을 싫어한다. 클라리넷 연주는 마틴의 누이동생 클라리사가 즐기던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였던 마틴은 누이동생의 연주를 보고 경탄하는 식구들과 손님들에 의해 심한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동생 클라리사의 그늘에 가려 고립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라라가 자신과는 단절된 바깥세계로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라라와 클라리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점점 외로움을 느낀다. 십년 후 라라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라라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클라리사는 그녀를 베를린의 음악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가족의 사랑사이에서 고민하던 라라는 결국 베를린으로 향한다. 청각장애인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불편한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착한 딸이었지만, 한편으론 그것은 다른 세상과 교류가 차단된 고립된 환경이었고 고집스런 아버지의 집착은 라라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 그러기에 라라는 자신 앞에 주어진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마틴은 라라가 아버지 대신 고모를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친밀했던 딸과 아버지와의 골은 이제 지울 수 없을 만큼 깊어지게 된다. 음악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고모 부부와 함께 지내는 베를린 생활. 자신의 고향과는 전혀 다른 대도시에서의 일상이 펼쳐지는 그 곳에서 라라는 매일매일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되며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던 중 남자 친구 톰을 만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라라의 마음 한 구석을 붙잡는다. 짧았던 사랑을 남기고 톰이 유학을 떠나려고 할 때 라라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외골수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그녀를 우울하게 한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라라는 아버지와 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심한 간섭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한다. 결국 베를린에서 음악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음악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온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다 〈비욘드 사일런스〉, 이 영화의 제목처럼 아버지와 딸이 ‘침묵을 넘어’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관객인 우리들은 소리 없는 청각장애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관계 맺기와 가족의 의미, 자아 찾기라는 인생의 본질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마지막에 아버지와 딸의 화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라라가 연주하는 음악이다. 딸이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어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몰래 딸의 학교로 찾아간다. 텅 빈 강의실, 홀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라라를 뒤쪽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버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딸과 눈을 마주친다. 청각장애인으로 고통스런 시절을 보냈던 마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았던 아버지는 라라의 음악을 마음으로 듣게 되면서 비로소 딸의 세계를, 다른 세상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고개를 갸우뚱 할 사람들이 혹시 있다면, 딸과 아버지가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 영화의 백미인 마지막 연주 장면을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언어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클라리넷 연주와 진심으로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배우들의 표정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잊히지 않는다. “저를 잃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를 사랑했고 언제나 ‘아버지의 소리’로 남을 거예요. 침묵 너머 영원히….” 라라의 이 대사는 감독이 담아내고자 했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소리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버지와 일반인인 딸이 둘 사이에 놓인 침묵을 넘어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음악이라는 매개체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힘들지만 소중한 가능성에 대해 감독은 ‘그렇다’고 말한다. 실제 청각장애인의 감동적인 연기 사람들은 매일매일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럼에도 서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고 외로워하며 때때로 상처를 입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언어가 진정한 관계 맺기에 있어 과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기에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가진 것만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때때로 표현이 어눌한 사람들이나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답답해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소리로 들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마음일 것이다. 침묵 가운데서도 상대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눈빛을 읽을 수 있는 그런 마음…. 비욘드 사일런스는 촘촘하게 잘 짜인 한 편의 성장 영화이며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따뜻한 영화이자, 아름다운 음악 영화이다. 장애인 가족을 다루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인위적인 윤리나 감동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밝고 따스하다. 어린 라라가 갓 태어난 동생 귀에 대고 클라리넷을 불어 청각장애가 아님을 확인하고 환호한다거나, 어머니를 위해 TV 영화를 수화로 통역해주는 장면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렇듯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이 정점을 향해 섬세하게 쌓아올려진 결과 영화의 마지막은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참, 라라의 부모로 출연한 두 배우는 실제로 청각장애인이다. 그들로부터 진심어린 연기를 뽑아낸 감독의 이해심과 연출력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기도 한 이 영화는 1997년 제10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정보* 제 목 : 비욘드 사일런스(Jenseits Der Stille / Beyond Silence, 독일) 감 독 : 까롤리네 링크 출 연 : 실비 테스튀, 엠마누엘 라부아, 마티아스 하비흐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제작연도 : 1996년
"즐거운 상상력과 웃음이 가득한 학교 만들어요" 실제 학교에서도 ‘별난 교사’로 주목받아 1969년 교직 생활을 시작한 최 교장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후 교육적이고 유머러스한 여러 편의 동화를 써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별난 국민학교〉는 당시 1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1992년엔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서 조사·발표한 ‘어린이가 좋아하는 작가’에 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 교장은 명랑소설 이외에도 많은 동화를 발표했으며 ‘한국동화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도 초등 6학년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청국장’을 포함한 단편소설집 〈탈주범과 이발사〉를 출간했다. 동시로 등단한 최 교장이 명랑소설을 쓰게 된 것은 일기지도 시 일기장에 덧붙여준 글들을 출판사 관계자가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이자 교육관입니다.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또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을 정도로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일기장에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죠. 당시에는 재밌게 써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당시 최 교장의 명랑소설은 재밌기도 했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실적인 묘사와 교육현장에 대한 풍자로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교장의 대표작 〈별난 국민학교〉를 보면 당시 신설학교였던 ‘별난 국민학교’에 문교부장관이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별난 국민학교장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고 교감과 둘이서 장관을 맞이한다. 최 교장은 “당시 학교는 상당히 권위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에 바라는 것들을 소설 내용에 포함시키곤 했었습니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최 교장은 실제로도 ‘별난 선생님’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수업 중 책상을 모두 교실 뒤로 밀어 놓고 아이들은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누워서 이야기를 하거나, 만화책을 보고 심지어 낮잠을 자기도 했다. 또 시장(市場)에 대한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을 시장에 풀어 놓기(?)도 했다. 그런 일들 때문에 당시 학교에선 ‘골치 아픈 교사’였다고. 최 교장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자유로운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답답한 교실에서 모두에게 똑같은 교육을 한다면 의미가 없어요. 자기만의 즐거운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직접 그린 만화로 학교 꾸며 최 교장의 이러한 교육관은 학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월초 교내 곳곳에는 최 교장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이용한 게시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교장실 문손잡이에도 최 교장이 직접 만든 명함이 붙어 있다. 권위주의적인 것을 거부하는 최 교장의 교장실에는 명패도 없다. “하루 종일 교장실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누구든지 한번은 웃고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신월초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월요일 아침 방송훈화 시간이다. 최 교장은 직접 그린 만화를 이용해 훈화시간을 갖는다. 시간은 3분을 넘지 않는다. 아이들이 지루해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전래동화를 각색하거나 전화예절, 식탁에서의 예절 등이다. 최 교장이 그린 만화와 원고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며 인근 학교에서 다운받아 사용하기도 한다. 최 교장이 직접 만드는 학교 신문 ‘신월소식’도 인기다. 그는 교장실 컴퓨터 앞에 ‘신월소식 편집국’ 간판을 붙이고 격주로 발행하고 있다. 특히 ‘모두 모두, 칭찬해주세요’ 코너가 인기다. 신월초 학생들은 길에서 작은 휴지를 줍거나, 10원짜리 동전이라도 발견하면 바로 교장실로 갖고 온다. 교장 선생님이 만드는 신문을 통해 칭찬받기 위해서다. 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6학년 2학기와 5학년 1학기에 한 시간씩 수업을 한다. 6학년 학생들과는 작가로서 교과서에 실린 ‘청국장’에 대한 수업을 진행한다.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이다. 5학년 수업은 최 교장의 또 다른 장기를 살린 ‘축구 교실’이다. 소설 〈축구 국민학교〉를 쓸 정도로 축구에 대한 사랑이 깊은 최 교장은 20대부터 축구를 꾸준히 해왔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업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지 졸업한 아이들도 종종 학교홈페이지에 ‘교장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독서 효과 높이는 ‘윤독’ 시간 적극 활용 최 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윤독(輪讀)’ 시간이다. 한 교실 전체가 같은 책을 읽는다. “독서가 중요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금세 잊어버린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윤독을 하면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독서를 싫어해도 같은 반 친구가 읽는 책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돼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장점은 덤입니다.” 신월초에는 한 반의 인원이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같은 책이 담긴 윤독 바구니가 30개가 넘는다. 그는 아이들의 독서를 위해 지난 해 어린이날에는 소장했던 800여권의 책을 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최 교장은 내년에 등단 30주년 기념 동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로 등단했지만 아직 변변한 동시집이 없습니다. 학교생활의 재밌었던 경험을 동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명랑소설도 다시 한 번 써 봐야 할 것 같아요.”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긴다는 최 교장은 우리나라 교육이 ‘즐겁게 꿈꾸는 교육’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보고 시끄럽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즐겁게 이야기하는 중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후배 교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부터 여인들은 입고 쓰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의 여인들은 더욱 그렇다. 여름이면 꾸밈이 극대화된다. 요즘 거리에는 치장을 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 여인이나 남성이나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하여 남에게 멋지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다. 고려시대부터 유행한 전통 노리개 우리 전통 장신구에는 비녀나 뒤꽂이와 같은 머리 꾸밈장식부터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몸에 바로 착용하거나 노리개와 같이 옷과 함께 꾸며 자신의 마음과 멋을 표현한 것 등이 있다. 많은 장신구 중 우리나라 옛 여인들의 저고리 앞섬 위 치장치레인 노리개는 그 여인의 마음과 멋을 나타낸다. 노리개는 매듭을 이용하여 다양한 멋을 발휘하였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유교적인 사회에서 여인들이 앞섶에 매달려 있는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심심하거나 따분한 마음을 달래는 놀이기구 역할도 있었으리라. 경기가요에는 노리개를 읊은 가사가 있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여인이 절절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인이 먼저 “한양 낭군님 날 다려가오. 나는 죽네, 나는 죽네, 임자로 하여 나는 죽네”하며 눈물겨워 하면, 남자는 “네 무엇을 달라느냐. 네 소원을 다 일러라. 노리개치레를 하여 주랴. 은조로통 금조로통 산호가지 밀화불수(蜜花佛手) 밀화장도 곁칼이며 삼천주(三千珠) 바둑실을 남산 더미만큼 하여나 주랴”하면, 다시 여인은 “나는 싫소, 나는 싫소, 아무 것도 나는 싫소. 금의옥식도 나는 싫소”하고 애절해 하는 정경이 경기민요 ‘방물가(方物歌)’ 가사에 나와 있다. 자기가 짓밟은 여인의 순정을 하찮게 여기며 돈이나 패물로 자신의 행동을 덮으려는 사내들에게 노리개치레는 집치레, 세간치레, 의복치레와 함께 여인들을 유혹할 수 있는 엄청나게 매혹적인 재물이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여인들의 웃옷에 단추를 비롯하여 금은보옥의 패물들을 장식하는 유습이 고려의 옛 무덤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노리개는 이미 고려시대에도 유행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삼작노리개를 비롯한 격식을 차린 조선의 노리개 양식은 고려시대 유물에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이는 아마도 다른 문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 송, 원, 명의 중국 장신구 양식이 오랜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쳐 오는 동안 우리 민족 정서 속에서 점진적으로 정리 순화되어 한국 삼작노리개 양식이 자리 잡혀 온 것이라 생각된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귀족이건 서민이건 기녀이건 숙녀이건 그 집안 지체에 따라 또는 처소와 예법에 따라 노리개를 가슴에 달고 다소곳이 기품을 가누곤 했다. ‘미인도(신윤복 作)’의 여인도 삼작노리개를 살포시 매만지고 있다. 한국 여인들이 마음처럼 착하고 담담한 표현을 노리개로 표현했다. 노리개는 단순한 것 같아도 그리 간단한 것만도 아니다. 행복 염원하는 여인들의 마음 담아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겉고름,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는 여성 장신구의 일종을 말하는 것이나, 어원의 느낌으로는 놀이처럼 만질 수 있는 기구로 여겨진다. 특히 손동작이 어색할 때 살짝 팔을 올려 가만히 노리개를 만지는 여인의 하얀 손을 보면 그 어떤 모습보다도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몸에 차는 패물류(佩物類)는 원래 칼, 숫돌과 같이 실제 필요한 물건을 허리에 찼던 북방 유목민의 습속이었는데, 이후 허리띠에 온갖 장식적인 요패(腰佩)를 단 형태로 발전하였다. 노리개는 화려하고 섬세하여 한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한층 강조해 준다. 노리개는 모양과 형태가 다양하여 궁중에서는 물론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자들이 널리 즐겨 찼다. 그중 대삼작은 국가의 궁중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에 패용하였고, 단작은 평상시에 달았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시대 귀부인들이 허리띠에 금탁(金鐸), 금향낭(錦香囊)을 찼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 후기에는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자 허리띠에만 차던 것을 옷고름에도 찼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옷고름에 달았다. 국가의 궁중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달았고, 간단한 것은 일상 시에도 달았는데 양반계급에서는 집안에 전래(傳來)하는 노리개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기도 하였다. 지난 2월 왜장을 죽이는 데 공을 세워 논개와 더불어 임진왜란 때 ‘2대 의기(義妓)’로 꼽히는 평양 기생 계월향(桂月香·?~1592)의 초상화를 고미술품수집가 안병례(46) 씨가 조선일보에 공개했다. 공개한 이 그림은 가로 70㎝, 세로 105㎝ 정도로 일본 교토에서 최근 입수됐는데, 한지에 그린 채색화다. 옥비녀를 한 계월향은 반달 같은 눈매에 이중으로 된 옅은 눈썹, 도톰하면서도 오뚝한 코 등 전형적인 조선 미인이다. 그림에는 ‘1815년 그린 것으로, 그를 기리는 사당(장향각·藏香閣)에 걸고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다. 저고리 길이가 짧고 소매폭도 좁은 등 몸에 착 달라붙는 상의로 당대의 패션 감각을 반영한 ‘섹시한’ 느낌을 주면서도, 손을 ‘X자로 곱게 교차한 뒤 가슴에 찬 노리개에는 ‘재계(齋戒 -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라고 적어 그를 현창(顯彰)한다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노리개는 외형상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하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부귀다남, 불로장생, 백사여의(百事如意) 등의 길상적인 의미나 행복을 염원하는 여인들의 마음을 담기도 하고, 나약하지만 속 깊이 나라를 염려하는 충정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다양한 크기, 재료 등으로 독창성 뽐내 노리개는 삼작(三作), 단작(單作)으로 구분되고 띠돈[帶金], 끈목[多繪], 패물, 매듭, 술 등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삼작(三作)노리개는 3개의 노리개를 한 벌로 꾸민 것으로 대삼작(大三作), 중삼작(中三作), 소삼작(小三作)으로 구분한다. 대삼작노리개는 가장 호화롭고 큰 것으로 주로 궁중에서 사용했고, 중삼작노리개는 궁중과 상류계급에서, 소삼작노리개는 젊은 부녀자나 어린이들이 사용했다. 띠돈은 가장 위에 있는 고리로서 노리개를 고름에 걸게 만든 것인데, 재료에 따라 순금 또는 도금으로 만든 금삼작, 순은 또는 여기에 칠보장식을 수놓은 은삼작, 백옥을 비롯한 옥 종류로 만든 깔끔한 옥삼작, 주먹만한 밀화덩이나 산호가지 그리고 청강석이나 옥나비 중 세 가지를 곁들인 호사스러운 대삼작, 청강석 산호 밀화로 만든 불수촌이나 산호가지, 밀화덩이, 옥나비의 콤비로 된 중삼작, 비취, 자만옥, 백옥, 산호, 청강석, 밀화를 재료로 나비, 호도, 동자, 가지, 호로병, 박쥐, 투호 등을 주로 만든 약식의 소삼작 등으로 이루어진다. 모양은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화형(花形), 나비형, 사엽형(四葉形) 등과 화문(花文), 쌍희자문(雙喜字文), 용문, 불로초문 등의 길상무늬를 사용한다. 끈목은 동다회(圓多繪)를 주로 쓰는데, 띠돈과 패물, 술을 연결하며 매듭을 맺는다. 또 노리개의 주제에 따라서 박쥐삼작, 불수삼작, 동자(童子)삼작, 장도(粧刀)삼작으로 부르고, 삼작노리개가 세 가지 종류의 주제를 콤비로 해서 표현했을 경우는 동자, 바늘집-방아다리, 은삼작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단작노리개는 삼작노리개 중의 한 개를 따로 달거나, 처음부터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노리개이다. 그리고 소삼작노리개는 예장이 아닌 경우에도 달 수 있고 평상복에 쉽게 장식할 수 있는 단식노리개들, 즉 옥장도, 은장도, 또는 향낭 같은 것도 있는데 요즘 브로치나 양장의 액세서리 같은 가벼운 단장에 애용하던 것이다. 노리개의 색조는 삼색(三色)부터 12색까지 사용하였다. 삼작노리개는 홍색, 남색, 황색의 3색을 기본으로 썼고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 등을 쓰기도 하였다. 노리개의 위쪽에 다양한 매듭이 있는 부분은 짧은 저고리의 길이와 비례하고, 길게 드리운 술 부분은 긴 치마의 길이와 같은 비례로 하여 만들었다. 노리개의 색조는 주로 매듭노리개에서 다양한 색상을 볼 수 있다. 매듭노리개의 매듭은 명주실을 꼬고 합사(合絲)하여,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친 다음,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늘어뜨려 각종 모양으로 맺는 공예기법이다. 노리개의 긴 삼색줄은 짧은 저고리에 긴 치마를 상징한 것이라 한다. 같은 모양으로 엮은 매듭에 색상과 형태가 다른 보석 세 개를 청, 홍, 황의 세 줄에 꿴 대삼작노리개는 대례복에 찼다. 같은 모양이면서도 크기가 비교적 작은 것은 소삼작이라 부르며 소례복에 사용하였다. 노리개를 만든 옛 장인들은 크기, 개수, 모양을 자유자재로 구상하고 만들면서 어떤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인지를 찾고 또 찾아 노리개에서 극치미를 맛보았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재료는 재료대로 모양은 모양대로 크기는 크기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모양을 다섯 요소를 채워가며 독창적으로 만들어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었으니 노리개를 만드는 장인은 화려하고 섬세한 손재간을 한껏 뽐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 장소, 직위에 맞는 노리개 착용 노리개는 거기에 달리는 패물의 종류나 규모에 따라 예복용과 평복용으로 구분되고, 크기나 모양에 따라 어른용과 어린이용으로 나누어 사용되었다. 대례복에 차는 대삼작노리개에는 손바닥 크기가 넘는 산호가지와 백옥나비 위에 진주, 청강석(靑剛石), 산호 등의 구슬을 배열하여 금속 세공을 한 나비 한 쌍, 주먹만한 밀화불수(蜜花佛手)를 달아서 진귀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궁중에서는 철에 따라 5월 단오절부터는 백옥, 비취로 된 외줄노리개를 달고, 8월 추석부터는 삼작노리개를 달았다고 한다. 가례, 탄일 등 특별한 축의일에는 왕비를 비롯하여 귀부인들까지 삼작노리개를 달았으며, 평상시에도 왕비가 대비전에 문후를 드릴 때는 금박 스란치마에 당의(唐衣)를 입고 삼작노리개를 달았다고 한다. 또 왕비만이 달 수 있었다는 삼천주(三千珠)노리개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상징하는 것으로 큰 진주를 3개씩 꿰었다고 한다. 소삼작이나 외줄 노리개는 소녀용으로 분홍, 연두, 노랑색으로 하거나 색동으로 만들었다. 도리매듭, 국화매듭, 가지방석매듭 등을 맺고 봉술, 딸기술을 쌍으로 늘였으며, 패물로는 동자(童子), 탑, 가지, 도끼, 방울, 나비, 주머니, 오리, 호리병, 고추 모양의 금속 세공품에 금을 올리거나 칠보를 올려 작은 은고리에 끼었다. 민간에서는 주로 은삼작을 달았는데, 혼례 때 사용한 후 백지에 싸고, 비단보에 싸서 보물상자에 간직해 두었다가 친척의 혼례 때나 꺼내 썼다고 한다. 방아다리, 장도(粧刀), 투호(投壺), 박쥐, 나비, 호리병 등의 모양을 은으로 세공하여 달았다. 뜨거운 속내 감추는 은근한 아름다움 우리나라 여인들의 가슴에 달린 노리개들은 경우와 처소에 따라 하나의 예장구실을 했지만 그 노리개들의 격조나 취미를 살펴보면 그 집안의 가도나 그 여인의 교양이 드러나 보였다. 마치 요새 저고리 적삼에 다는 브로치의 선택이 그 여인의 인품을 드러내는 경우와 다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상류면 상류대로 화사한 노리개를 자랑삼기도 했고, 서민은 서민대로 수수한 은삼작에 아롱지는 칠보무늬로 조촐한 아취를 표현해서 여인 풍정을 돋보이게 했다. 말하자면 조선의 노리개는 무슨 권위나 호사에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주제가 통일되어 있고 화사하고 뽐내는 듯해도 한국의 어진 어머니들처럼 은근하면서도 포근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여인들이 자신을 꾸미는 일은 거의 본능적이다. 현대 여인들은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장신구를 개발하여 많이 그리고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 옛 여인들이 뜨거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앞자락에 간접적으로 표현한 노리개의 아름다움은 기지와 재치를 가진 한국 여인의 은근한 아름다움이다.
바닷가의 거대한 모래언덕 사구(砂丘) 거대한 모래언덕, 황량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 올라서면 바람에 날린 모래가 한치 앞을 보지 못하게 눈을 때리고, 묵직한 신발은 모래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 그냥 걷기도 힘이 든다. ‘이런 곳에 생명이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지만, 봄이 찾아오면 다양한 식물들이 싹을 틔워 초록의 세상을 만든다. 이때부터 모래언덕은 바다와 더욱 진한 앙상블을 이루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생명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사구는 해안이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해 운반·퇴적되어 이루어진 모래 언덕을 말한다. 만들어진 곳에 따라 해안가의 모래에 의한 해안사구, 사막과 황무지 같이 건조한 내륙에서 만들어지는 내륙사구, 거대한 호숫가의 호반사구, 강가의 모래에 의한 하반사구가 있다. 이들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여러 모양과 크기를 보이고, 어떤 경우에는 서서히 이동하기도 한다. 이 중 우리나라에는 강가의 모래에 의한 하반사구와 강 또는 육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와 쌓인 모래언덕인 해안사구가 나타난다. 하반사구는 낙동강에 주로 분포하고, 해안사구는 모래 해수욕장에서 나타나는데, 대부분이 파괴되고 크게 알려진 주요 사구에는 신두리, 학암포, 구례포, 만리포, 연포, 몽산포, 청포대, 마검포, 삼봉, 기지포 등이 있다. 또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제주도의 중문해수욕장이나 동해안의 경포해수욕장, 포항의 형산강, 송정해수욕장 등이 있다. 해안사구는 바닷물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해류에 의해 사빈(해수욕장)으로 운반된 모래가 계속적인 파랑에 의해 밀려 올려지고, 밀려온 모래는 바람에 의해 낮은 언덕 모양으로 쌓여 사구를 만든다. 이런 사구는 주변의 지형, 모래 공급량 및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해안사구는 육지와 바다 사이의 퇴적물을 조절하여 해안을 보호하고, 해안과 내륙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 이런 완충 지역의 지형과 식생은 특이한데, 모래언덕의 바람자국은 사막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을 나타낸다. 또 이곳에는 독특한 식생이 발달하여 여러 종류의 사초류가 번성하고, 모래지치나 해당화의 군락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폭풍과 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경지를 보호하고, 지하수를 품었다가 뿜어 올려 해안가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며, 사구에 의한 반달형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만들어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 최대 규모로 학술적 가치 높아 모래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제주도의 중문해수욕장이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모래를 싣고 와 만든 것이 중문의 모래언덕이다. 계속된 모래언덕의 파괴로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고개를 뒤로 활짝 제쳐야 보일 만큼 높다. 남해안과 동해안의 사구는 파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끊임없는 파랑에 의해 모래가 공급되고 모래의 쌓임에 의해 아름다운 해빈과 사구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서해안의 모래언덕은 파도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바람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우리나라 해안사구의 전형적인 모습은 약 1만 5천 년 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두리사구에서 찾을 수 있다. 태안반도 북서부의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사구는 해변을 따라 길이 3.4㎞, 너비 0.5~1.3㎞이다. 사구의 모습이 그런대로 보존된 북쪽의 일부 지역이 2001년 11월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이곳은 신두리 해안의 만입부에 있는 사빈의 배후에 분포하는데, 인접 해역은 모래로 구성되어 있다. 물이 빠지면 넓은 모래갯벌과 해빈이 드러나는데, 해빈의 길이는 3㎞, 폭은 200m이다. 겨울철에 강한 북서풍이 불어오고 이 북서풍에 의해 모래가 갯벌과 해변에서 육지로 이동되어 사구를 더욱 살찌게 한다. 이런 지형적인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구를 만들 수 있었다.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로서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전사구, 초승달 모양의 사구인 바르한, 사구습지 등 다양한 지형들이 발달되어, 이를 통해 사구의 형성과정과 과거의 환경을 밝힐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의 사구와 마찬가지로 신두리사구도 개발로 인하여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역에도 펜션이 위치하고 차량과 오프로드용으로 이용되는 도로가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출입하면서 계속적인 파괴를 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신두리 앞바다와 맞닿는 남쪽 의항리에 방조제를 쌓았는데, 초봄을 제외하고는 모래바람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북서풍이 의항방조제에 막히면서 만리포로 방향을 틀어 모래가 만리포 백사장 뒤쪽 제방 위까지 날아와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의 식물 볼 수 있어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신두리사구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가장 번성을 이루는 식물에는 통보리사초, 갯보리, 해당화, 띠, 모래지치, 산조풀, 순비기나무 등이고, 그 외에도 갯쇠보리, 수송나물, 갯메꽃, 달맞이꽃, 갯방풍, 개사철쑥, 서양민들레, 수크령, 눈갯버들, 땅비수리, 등갈퀴나물, 쌀새, 갯완두, 포아풀, 떡쑥 등이 자라고 있다. 사구 내에도 비가 오면 습지가 만들어지는데, 이곳에는 개여뀌, 솔방울고랭이, 쉽사리, 털부처꽃, 물억새 등이 자란다. 방조제 건설로 모래 공급이 잘 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사구는 스스로 모래를 간직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자신의 넓은 가슴을 아무런 요구 없이 뿌리를 서로 뭉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내주었다. 모래언덕의 모래를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식물에는 해당화, 순비기나무 같은 관목과 통보리사초, 갯보리, 갯쇠보리, 수송나물, 갯메꽃, 모래지치 등의 초본이 있다. 특히 순비기나무는 해수욕장의 모래를 길게 뻗은 여러 가닥의 뿌리로 단단하게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꽃은 여름에 자주색으로 핀다. 중요한 해변 식물인 순비기나무는 모래 해변뿐만 아니라 자갈이나 몽돌 해변에서도 잘 자란다. 사구의 상단부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그 주변에는 아카시나무와 버드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사구 식물이 번성을 누리면서 표범장지뱀, 맹꽁이, 쇠똥구리, 아무르산개구리, 참개구리, 무자치와 여러 종류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특히 참새목의 종다리가 모래언덕에서 가장 활기차게 생활하고, 그 외에도 사구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 가을이면 식물들이 생기를 잃어버려 황색의 벌판으로 변하는데, 이는 모래가 섞인 겨울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이곳 식물들의 생존 방법이다. 넓은 사구의 절반이 사람들이 만든 도로에 의해 나누어지고, 계속적으로 세워지는 건물은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훼손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구 부분에도 도로가 닦여 있어 도로를 이용한 탐방은 가능하다. 해수욕장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 검문소를 지나 한 발자국만 들어가면 더 넓은 모래언덕을 만나게 된다. 모래언덕 사이를 천천히 걸어 끝까지 가게 되면 약 2시간이 걸리고, 돌아올 때는 해수욕장을 이용하여 걸으면 된다. 사구의 모래는 물기가 거의 없어 걷기가 힘이 들지만 해빈(海濱)의 모래는 물기를 촉촉이 머금고 있어 차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철 이른 해수욕 시즌에 철없는 사람들이 해빈 위를 자동차로 질주하기도 한다. 그들의 광란의 질주는 모래만 눈에 보이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유일한 사구습지로 다양한 생물 서식 사구습지는 사구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습지를 지칭하는 말이나, 항상 물이 고여 있어 호수의 형태를 보이는 곳은 단 하나 두웅습지 뿐이다. 두웅습지는 일반 습지와는 달리 호수의 밑바닥이 모래로 이루어져 있고, 바닷가임에도 바닷물이 침투되지 않는 특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이곳에 모래언덕이 만들어지고 육지에서 바다로 흘려가던 빗물은 웅덩이에 모이기 시작한다. 이때는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섞여 일종의 석호를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모래가 쌓여 사구의 넓이는 더욱 넓어지고 웅덩이에는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수가 두웅습지이다. 이곳에는 환경부 보호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고, 그 주변에는 사구식물인 갯메꽃, 순비기나무 등 12종의 식물이 분포하여 보전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래서 사구습지로는 처음으로 이곳 일대 65,000㎡를 2002년에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에는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호)와 물속의 폭군곤충인 물장군, 이끼도롱뇽 등이 발견되어 그 값어치를 더하고 있다. 이끼도롱뇽은 2003년 대전 장태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학계에 신종으로 보고된 희귀종이고, 물장군은 멸종 위기에 놓인 종이다. 두웅습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게 한 금개구리의 등은 밝은 녹색이고, 등의 옆줄에 있는 융기선은 연한 갈색이며, 배는 누런빛을 가진 붉은색으로 보인다. 암수 모두에게 울음주머니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양서류 중에서 맹꽁이와 함께 유일하게 법으로 보호받는 특산 희귀종이다. 두웅습지가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사구습지의 대명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는 민물새우, 도롱뇽, 맹꽁이, 금개구리, 붕어, 가물치가 살고 있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도 호수를 찾고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 습지의 불청객인 붉은귀거북과 황소개구리가 이곳에서 다량 번식되고 있다. 이들을 철저하게 방제하고 있지만, 그들의 숫자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희귀종인 맹꽁이와 금개구리의 산란 장소이기 때문이다. 두웅습지는 주변에 농경지가 적어 사람의 간섭은 적게 받으나 외래종의 침입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계속적으로 관리인이 황소개구리와 붉은귀거북을 포획하고 있으나 최상의 포식자를 이룬 이들이 쉽게 근절될지는 의문이다. 습지를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도는데 10분이 걸리는데, 습지의 중간에는 수련이 자라고, 그 주변에는 달뿌리풀과 부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수련 주위에서 놀고 있는 금개구리를 만난다면 더욱 호수는 황금색으로 빛날 것이다. 신두리 주변의 문화와 이야기 신두리를 품고 있는 태안반도는 태안군, 서산시, 예산군, 당진군에 속하며, 만과 반도가 많아 해안선이 복잡하고 몽산포, 연포, 만리포, 천리포 같은 해수욕장이 구석구석에 분포한다. 이곳은 리아스식 해안뿐만 아니라 해안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1978년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기에 모두를 통틀어 태안반도라고 부른다. 태안반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곳이 안면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섬의 일부를 절단하였으나 지금은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의 자랑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단일 소나무숲으로 세계 최대인 자연휴양림을 가지고 있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쭉쭉 자라 모양이 좋기에 특별히 안면송이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궁중의 궁재나 배를 건조할 때 이용하였다. 또 안면도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매화마름도 자라고 있다. 소나무로 이루어진 자연휴양림이 자연미를 가졌다면, ‘천리포수목원’은 인공미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故 민병갈(1979년 귀화한 Carl Ferris Miller) 수목원장이 개인 기금을 조성하여 세웠다. 천리포수목원은 7개 지역으로 나눈 다음 세계 각 지역의 토질, 기후, 기존 식물상 등에 따라 종류별로 적절히 배치하여 관리되고 있다. 신두리사구 가까이에는 이름이 특이한 해수욕장이 있는데,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 등이다. 이 중 만리포가 가장 크지만, 실제 크기는 2.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해빈들이 순서대로 모여 있기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예전에는 버려진 땅으로 여긴 해빈과 사구!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에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모래언덕은 필요 없는 땅이었다. 그렇지만 모래언덕은 해안과 내륙 생태계를 이어주는 완충 역할을 하면서 폭풍과 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마음의 안식과 휴양은 어떤 보약보다도 몸을 편안하고 튼튼하게 한다. 넓은 반달형의 해빈과 사구, 갈매기 나는 석양의 모습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편안을 주기에 태안팔경 중 하나로 친다. 특히 사구 깊숙이 숨겨진 두웅습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삭막한 세상에도 희망의 옹달샘이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Q1. 특별활동 각 영역별 활동은 순서대로 모두 지도해야 하나요? A1. 교육과정에 제시된 각 영역의 활동 내용(5개 영역, 25개 활동)은 ‘예시적 기준’입니다. 따라서 단위학교는 지역 및 학교 실정을 고려해 각 영역별 이수시간(단위)을 배당하고, 지도내용을 재량으로 선정하여 편성함으로써 당해학교의 창의적인 특별활동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합니다. 다만 학교는 특별활동의 각 영역이 균형 있게 운영되도록 노력하고 각 학교별로 특색 있는 중점영역을 설정·육성함으로써 학교의 전통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Q2. 특별활동 시간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만 운영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2. 특별활동의 시간 운영은 고정된 시간표에 의한 획일적이고 경직화된 운영이 아니라, 활동영역·활동주제·활동내용·운영방식 등에 따라 학교실정을 고려해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매주 지정된 요일과 시간을 정해 실시하는 정일제, 격주로 시간을 연속해 운영하는 격주제, 4주 이상의 시간을 모아 하루에 실시하는 전일제, 특정 계절에 연속 실시하는 집중이수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Q3. 특별활동 시간을 분할하거나 통합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A3. 특별활동 시간 운영에 있어 1시간(초등 40분, 중등 45분, 고등 50분)을 단위로 획일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20분, 30분 등으로 나눠 분할하거나 80분, 100분 등으로 통합하여 운영(block scheduling)하는 방안도 허용됩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통합하거나 분할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의 분할·통합은 활동 주제에 따라 결정돼야 하며, 특별활동의 연간 누적시수가 준수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 창의성 계발을 위한 교수·학습방법을 논하시오. 논점 구성방안 본 문제의 중요 논점은 창의성 계발을 위한 교수·학습방법인데 논리적인 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관련 논점을 언급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본론에 창의성의 특성을 논하고 창의성 계발방법을 논해 주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창의성 계발을 저해하는 요인을 제시하고, 창의성 계발방법을 논해주는 것이 설득력 있는 답안이 될 것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전자의 논점(창의성의 특성 + 창의성 계발방법)에 따라 논리를 전개할 때와 후자의 논점(창의성 계발 저해요인 + 창의성 계발방법)으로 논리를 전개할 때 서론의 문제제기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에 따라 답안을 작성할 때는 서론에서 창의성의 개념과 시대상황에 비추어 창의성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고, 본론에서는 창의성의 특성이 무엇이고, 이를 계발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이라는 방식으로 답안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 후자에 따라 답안을 작성할 때는 서론에서 ‘창의성의 개념과 특성 그리고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로 시작한 후 본론에서는 학교현장에서 창의성 계발 수업이 잘 되지 못하는 원인, 이에 대한 방안으로서의 창의성 계발 방안이 제시되면 설득력 있는 답안이 될 것이다. 논술의 목적은 설득과 공감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논리전개, 표현된 내용, 표현방식 등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예시답안 1. 서론 21세기는 창의성의 시대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최첨단의 기술을 생산·가공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창의적인 인간’이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경쟁력 있는 지식과 문화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고, 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국가의 인적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식의 산실인 학교는 산업화시대에 적합한 획일적인 교육방법에서 학생들의 다양성과 개성이 발현될 수 있는 교수·방법으로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2. 본론 창의성이란 지적·정의적 특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써 ‘무엇인가 특이하고 새로우며 독특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특성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문제들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 어떤 문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빠르고 거침없이 내어놓는 유창성, 어떤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생각을 해내는 능력인 융통성(유연성)은 물론 어떤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사에 자발적이고 독창적이며 항상 주변의 것에 관심과 의문을 가지는 호기심과 끈질기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착성이 있다. 이러한 학생들이 개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이러한 학생들을 발굴해 내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먼저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관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지능의 다원성이론에 따라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줌은 물론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분위기를 조장함으로써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표현하도록 한다. 또 프로젝트 학습이나 웹기반 학습전략을 통해 스스로 선택한 학습 과제와 방법에 따라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고 이 과정에서 자발성과 집착력이 배양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창의성 계발 발문과 기법을 통해 창의성을 함양한다. 교사는 다양한 사고를 유도하는 확산적 발문을 하고, 허용적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대답과 표현들을 수용하고 적절한 칭찬을 해 줌으로써 유연한 사고를 갖도록 한다. 동시에 수업 중 브레인스토밍기법 등 창의성 신장기법이나 탐구학습 및 문제해결학습법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끝으로 교사 스스로가 창의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 교사의 창의적 행동 속에서 학생들은 창의적 행동을 습관화하기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늘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수업에서도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도서관이나 지역사회의 문화 시설 등에서 폭넓은 학습경험을 갖도록 해야 한다. 3. 결론 21세기는 세계화, 정보화, 다양화 사회로 창의적인 지식을 얼마나 재생산해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한 능력이다. 이러한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교육환경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분위기 조성,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창의성 계발 기법, 창의적 모델 제시 등을 활용해야 한다. 수준 높은 창의성 교육으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발굴을 위해 교사의 연구와 자기개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보충자료 1. 창의성의 개념 및 중요성 가. 개념 창의성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나 참신한 통찰들을 산출하는 능력, 독창적으로 고정된 인습을 깨뜨리는 것, 자연스러운 변화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는 어떤 비범하고 진기한 것을 내어 놓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창의성 교육의 중요성 창의적인 사람은 발명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창안하여 사회에 기여한다는 직접적이고 생산적인 면도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비정형적으로 변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며,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2. 창의력의 구성 요소 창의성의 구성요소에는 유창성, 유연성, 독특성 등이 있다. 유창성은 어떤 문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빠르고 거침없이 내어놓는 능력을 말한다. 융통성(유연성)은 어떤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생각을 해내는 능력을 말하며, 독창성(독특성)은 어떤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3. 창의적 사고의 성향 창의력 사고의 성향은 인간의 내적 특성으로서의 창의적 사고기능이 최종적인 인간의 성취를 위해 작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태도이다. 가. 자발성은 문제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산출하려는 성향이나 태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때 창의적 사고가 이루어진다. 나. 독자성은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구애받지 않으려는 성향이나 태도이다. 다. 집착성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다. 라. 호기심은 항상 생동감 있게 주변의 사물에 대해 의문을 갖고 끊임없는 질문을 제기하려는 성향이다. 마. 정직성은 자신이 관찰한 것과 생각한 것을 꾸밈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4. 창의성 교육을 위한 학교교육의 방향 가.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 - 창의성은 아인슈타인이나 피카소와 같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다. 창의성은 훈련이나 학습에 의해 개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융통성 있는 사고와 독창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나. 창의성 개발에 적절한 분위기의 조성 -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 유머가 풍부하고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 서로 토론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의적인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다. 교사가 창의적인 모델이 되라 - 창의적인 교사의 행동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은 보다 쉽게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일상적인 일에서도 교사가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줘라. 라. 개인차를 고려한 개성화 교육의 강화 - 어떤 아이가 잘하는 능력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능력을 잘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 방면에서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특성화 교육이 필요하다. 마. 확산적 사고력 교육의 강화 - 학교의 수업방식이나 교육방침이 어떤 하나의 정답을 알아맞히는 식의 수렴적인 교육보다는 여러 가능한 정답을 얼마든지 만들어 내는 확산적인 사고력 교육이 필요하다. 바. 높은 정서지능을 기를 수 있는 교육 -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강한 의지력과 지구력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높은 정서지능을 갖추어야 한다. 5. 창의력 신장 교육의 이해 가. 학교교육에서 창의력 교육의 필요성 미래는 다양하고 다원화된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이므로 정보를 창출하거나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창의적 능력을 가진 인간을 요구한다. 창의력은 심리적 안정감의 환경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서 개발될 수 있다. 물론 개인별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서 꾸준히 노력하여 어린이들의 무한한 창의력 신장을 지도해야 할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학교에서의 창의력 개발 방안 학교에서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의지와 철학이 중요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학습여건이 미비하고 아동의 수가 많은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보다 효과적인 창의력 신장 교육을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분위기가 중요하다. -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를 북돋아 주는 교사의 노력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시간을 부여하는 배려, 어린이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 자세, 그리고 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학습주제 선정 및 편성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 어린이의 기(氣)를 살려야 한다. - 어린이들의 기를 살린다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비판도 만만치가 않다. 너무 질서가 없고, 자기주장만 하고,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며, 교사의 말에 순응하지 않는 요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을 자주 듣는다. 이 같은 어린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육현장은 어린이들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키워 나가게 하며 바른 인성교육과 창의력 교육을 조화롭게 지도해야 할 것이다. 6. 창의력 신장을 위한 지도방안 창의력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힘은 교육을 통해서만 신장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창의력 신장을 위한 지도방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가. 문제의식을 길러 주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저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것 중에서 훌륭한 창조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나.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충분한 지식이 머리에 들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새로운 것들을 탐구하여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자꾸 만들어냄으로써 보통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엉뚱한 생각을 해내는 사람, 즉 생각해 내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다.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한다. 고정관념에서 생각하면 편하고 위험도 적지만 도약이나 발전 그리고 자유분방한 아이디어를 따를 수 없다. 학생들은 호기심이 강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강하다. 따라서 고정관념이나 생각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꺾지 않으면 창의성을 기를 수 없다.
전문직 준비를 위한 마음가짐 교육경력 15년! 누가 보더라도 외형적인 조건만으로는 충분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경력이다. 흔히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하는데 ‘내가 과연 전문가로서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들에 대한 회의와 반성과 뭔가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일을 찾고 싶어졌다. 유년시절 철없이 뛰놀던 개구쟁이, 코흘리개 녀석들도 이제 의젓한 사회의 중견 간부로서 각자의 역할과 일에 대한 열성을 쏟아 붓고 있고, 제법 생각이 열린 고교 동창들은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의 영달이 한동안 뇌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번뇌를 지속하게 하였다. 어떤 분야에서 15년의 경력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계에도 정말 훌륭한 선배님, 동료, 후배들이 많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몇 년간 시·도 및 지역교육청의 업무를 도와주면서 만난 장학사, 선배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전문직 준비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엄청난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정확히 2006년도 전문직 합격자 발표한 지 한 달 후였다. 전문직 시험 준비 계획 합격자 선배님을 만나 뵙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계획만 세웠다. 다음 날도 연월 단위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은 교육학을 12월까지 집중적으로 보고 12월 겨울방학부터 논술, 기획 분야 기초다지기를 하기로 하고 일과 계획은 학교와 집(독서실)으로 나누어서 세웠다. 그리고 교육학 책은 예전 대학원 석사 때 보던 교육학개론과 방송통신대 교재를 참고하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빨리 전체를 독파하고 싶은 유혹 때문에 잘 정리된 임용고사 준비용 교육학 책을 주문해서 다시 보았다. 여기서 느낀 것은 교육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어있으면 일단 전체를 빨리 한번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걸리는 시간도 체크하고 어느 부분이 이해가 잘 되고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한 사람은 천천히 교육학 각론부터 읽으면서 이해를 해나가는 것이 가장 정석의 방법이겠다. 필자는 12월까지 교육학을 완전 독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문직 출제경향을 분석했다. 분석해 본 결과 교육학에 대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정형화 된 문제가 아니라 아주 난해하면서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철저히 이해 위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 시간계획은 주중에 학교 근무하고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 집중하기가 어려워 주말을 집중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분야별 공부 방법 공부 방법은 각자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기의 스타일을 찾아서 끝까지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필자가 공부한 경험을 소개한다. 가. 전반적인 내용 - 시간 활용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본인의 몫에 달렸다. 일단은 생활을 단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공·사적으로 교육청일 돕는 시간, 개인적 일을 거의 대부분을 줄여 시간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퇴근 후에는 핸드폰을 거의 꺼놓고 나중에 확인만 하고 중요한 일은 연락해서 처리하는 등 시간을 확보하도록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 : 공부하면서 요약 정리한 내용을 포스트잇에 기록하여 주로 식탁 모서리, 욕실 거울에 붙이고 밥 먹으면서 보고, 칫솔질(1회 3분씩 1일 2회, 10일이면 60분)할 때 한 번씩 보는 습관을 길렀다. 출근하면서 차안에서 : 핸드폰에 MP3 교육학강의를 다운받아 들었다. 시험이 임박한 4 ~ 5월부터는 포스트잇에 논술, 기획 1문제씩 요점정리해서 운전대에 붙여 틈틈이 정리했다. 출근해서 수업 전까지 : 2006년에는 학급담임이라 일찍 출근해서 약 1시간 동안 교육학 및 사자성어, 교육법 등을 읽었다. 떠드는 애들은 운동장으로 보내고 조용한 애들은 함께 독서했다. 2007년에는 교과전담이라 공부할 장소가 없어서 학부모상담실 구석에 앉아서 약 1시간 정도 정리했다. 쉬는 시간 : 담임을 맡았을 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교육법, 사자성어를 펼쳐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교과전담은 시간과 장소가 부족해 장애인 화장실을 찾았다. 여기서 7 ~ 8분 정도 보는 재미가 짭짤했다. 주로 공부한 내용 정리한 수첩과 노트, 메모 중심으로 복습 또 복습했다. 오후 시간 : 지난해에는 교실에 혼자 있어 여건은 좋았는데 학급 일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 때문에 시간내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학년 분위기가 너무 좋아 동료교사들이 학년 일을 많이 도와줘 스트레스는 없었다. 또 학년 회식, 집들이, 기타 협의회 시간들도 가능한 모두 참석하여 낙오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분위기가 좋으니 공부도 잘되는 것 같았다. 퇴근 후 :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퇴근 후의 시간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퇴근하자마자 간단하게 먹을 것을 좀 챙겨먹고 잠시 소화시키면서 신문이나 정리한 노트를 좀 보다가 8시까지 잠을 잤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피곤한 육신을 침대에 좀 맡기고 8시 30분경에 책상 앞에 앉았다. 약 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나면 머리가 좀 맑아지는 듯했다. 나중에 12시쯤 지나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한숨 들이쉬면 졸음도 없어지고 정신이 더 맑아져 집중하기에 좋았다. 12시가 넘어가면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침대에 누워서 그날 공부한 내용 다시 한 번 읊조리며 잠을 청한다. 나중에는 3 ~ 4시까지도 견딜 수 있었다. 대신 다음날 점심 식사 후 약 10 ~ 20분 정도 눈을 붙이면 컨디션이 조절되었다. 주로 교육학을 정독하면서 이해 위주로 진행했고 나중에는 문제집으로 되풀이하면서 반복했다. 끝까지 자만하지 않고 원칙에 충실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교육학에 자신이 좀 생겼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고득점을 해야 겨우 합격할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교육학을 샅샅이 뒤졌다.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시험문제가 출제가 될 만한 내용이다. 이렇게 난해한 부분은 좀 더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시험 출제는 바로 이런 부분을 출제하기 때문이다. 건강관리 : 공부하면서 특별히 건강관리에 대해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마지막에 정말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해서 몇 자 적어본다. 시험을 5일 앞두고 주말에 갑자기 몸살기운과 함께 심한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갔다. 뚜렷한 병세는 없이 일시적인 긴장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2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누워서 쉬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출근길에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기운이 없어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시험 준비하면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시험 한 달 전부터는 철저히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평상시의 생활을 시험을 보는 오전9시 ~ 12시 정도에 최상의 컨디션과 두뇌회전이 될 수 있도록 몸 상태를 맞춰 줄 필요가 있겠다. 시험 준비 Tip : 기획과 논술에 사용할 펜도 미리 구입하여 그걸로 충분히 연습하고 연습종이도 미리 만들어서 실전대비용으로 써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간조절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논술, 기획 시험은 정말 마지막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촉박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절대 필요 없다. 시간 조절이 꼭 필요하고 연습해둬야 한다. 교육학 문제는 단답형 주관식부터 훑어보고 객관식도 모르는 것은 일단 뛰어넘고 확실하게 아는 것부터 챙겨야 된다. 결국 나중에는 보기 5개 중 2개를 가지고 순간의 판단력으로 답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도 교육학은 비교적 시간배분이 안정적이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문제를 정확하게 읽고 해석해야 한다. 적어도 2 ~ 3번은 읽어보고 답을 골라야 한다. 문제 속에 함정이 분명히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1교시가 끝나면 마음의 준비를 차분하게 하고 논술 시험은 점수배점이 큰 문제부터 논술한다. 먼저 문제를 충분히 읽고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개요를 작성한다. 5 ~ 10분 이상 지체되면 안 된다. 개요가 작성되었으면 곧바로 쭉쭉 써내려가야 한다. 이제는 펜과 손가락의 움직임에 운명을 맡기고 과감하게 써내려간다. 글씨는 힘 있고 깨끗하면 금상첨화다. 좋은 펜을 골라야 한다. 기획 시험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충분히 분석한 후 창의적인 작은 주제 4~5개 정도의 개요를 신속하게 작성해야 한다. 그런 후에 개요에 맞는 내용을 중심으로 논리적, 일관성 있게 기술하면서 전체적인 틀에 맞춰나가야 한다. 세부적인 것들은 내용보다 형식이고 배점이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계획에 치중해서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획과 논술은 정말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조절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나. 분야별 시험 준비 경기도 출제 경향 :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교육학은 그야말로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교육학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떨어뜨려야 할 문제를 만들까’라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교육학 문제를 풀고 나서 가장 먼저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한 수험생도 힘들고 어렵지만 문제를 출제한 출제자도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문제를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출문제를 분석해보면 어떤 정형화된 출제경향은 없다. 굳이 언급한다면 현장에서 교육, 수업, 생활지도 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교육학은 철저한 이해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다음으로 논술, 기획, 면접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기출문제를 열심히 분석해보고 경향을 추정해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그래도 시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경기교육의 큰 흐름과 맥락, 강조점, 철학, 당위성 등을 평소에 눈여겨 살펴봐 둬야 한다. 한마디로 정형화된 출제경향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그런 걸 믿었다간 낭패 볼 수가 있다. 철저히 자기가 준비해가면서 경향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점에 오르면 맞출 수는 없지만 흐름이나 강조점, 분위기, 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바로 출제경향이다. 교육학 : 먼저 교육학을 2회 정도 독파하였다. 중간에 다른 책도 사서 부분적으로 참고했다. 가능한 최신 교재를 보는 것이 좋겠다. 최소한 저자가 다른 2권의 교육학 종합책을 엇갈리게 봐야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각 분야별로 유명한 저자의 개론서를 바탕으로 먼저 이해하고 정리된 종합서를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육학은 철저한 이해를 중심으로 집중하고 반복해서 저절로 머릿속에 외워지도록 공부하는 것이 좋다. 무의미하게 그냥 외우는 것보다는 먼저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되어 응용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면 어느 정도 교육학이 정리되었는지 스스로 체크해보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한 번 이론서를 훑어보고 그 문제만 나중에 다시 한 번 풀어보는 것이 좋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다. 방학 동안 한국교육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전문직 특강은 전반적으로 정리하기에 아주 좋은 강의였다. 그때쯤이면 교육학이 어느 정도 수준에 있고 이것을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하거나 잘 외워지지 않는 부분은 쪽지나 수첩에 메모해서 틈틈이 눈으로 읽혀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교직실무 : 실무는 필자에게 무척 어려운 분야였다. 그냥 책을 통해 이해하는 것하고 막상 문제를 풀기 위해 알아야하는 것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합격한 선배님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2월에 한국교육신문사의 실무 강의를 들었다. 그동안 고민했던 부분이 너무도 시원하게 풀렸다. 전직 교장선생님이 사례별로 조목조목 풀어주는데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말끔히 해결되었다. 사실 교직실무는 현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교직생활을 하면서 꼭 알아둬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반드시 문제를 직접 풀어보면서 이해하고 또 이론 및 사례를 찾아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강의시간 후에 반드시 확인하고 모르는 것은 과감하게 질문해서 답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직실무는 얼마든지 응용해서 출제할 수 있으니 반드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호봉, 경력, 휴직 등의 계산문제는 더욱 그렇다. 교육법 : 교육법도 중요한 분야라서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자주 법이 개정되고 입법 예고되어 시의적절하게 공식적인 사이트를 찾아서 체크해줘야 한다. 시중에 교육법만 잘 정리된 책도 있긴 한데 임용준비하고는 차원이 다르니 유의해서 전문직으로서 알아야 할 법을 실무중심으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자성어 : 사자성어는 꼭 한 문제씩 출제되는데 일부러 외면하고 피할 필요는 없다. 틈틈이 봐두면 도움이 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교육과 사람 등에 관련되는 사자성어를 추출해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어설프게 알면 오히려 헷갈려서 놓칠 수가 있다. 사자성어 1문제도 1점이다. 서류점수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큰 점수인 셈이다. 시사·상식 : 상식공부는 별도로 하기가 좀 그렇다. 그래서 필자도 평소에 신문에서 교육관련 기사나 신용어 위주로 읽고 메모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막판에 FTA 관련 용어를 전부 외웠지만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 있는 최신 시사용어 책을 한권 사서 본다고 했지만 제대로 보질 못했다. 마지막에 불안하니 그냥 중요한 것들만 좀 읽었다. 평소에 시사적인 용어에 좀 더 신경써보자. 논술 : 논술은 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중에 백지에 써 보려니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했다. 더군다나 예상문제도 전혀 모르고 예상문제를 만드는 것도 안 되고 막연하게 어떤 분야에 대해서만 읽어보고 기술해보니 전혀 현실적으로 도움도 안 됐다. 도대체 예상문제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논술체계나 나름대로 잡아보고 임용준비 논술, 신문에 나오는 대입논술 등의 자료를 참고로 생각을 정리해서 써보는 걸로 만족했다. 논술 준비는 일단 도교육청에서 발간하는 장학자료, 경기교육, 도교육청홈페이지 홍보자료, 공문 등을 주로 참고하고 교육부에서 발간하는 교육마당, 한국교육신문사의 새교육, 한국교육신문 등에서 추출하여 블로그에 담아두고 출력해서 읽어보았다. 논술은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그에 맞는 이론적 배경지식, 근거가 될 만한 자료 등을 활용하기 위해 평소에 교육과 관련되는 글들을 자주 읽어 보고 주윗분들과 토론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의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더 명백하게 정리하고 또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연습을 한 것은 거의 4월이 넘어서서 주말에 겨우 1편 정도 시작한 것 같다. 5월 서류접수 이후에 평일에도 1편씩 써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끝까지 완성은 못하고 개요나 대충의 내용만 적어보고 마지막 2주 정도 제대로 시간을 재어가면서 연습했다. 누가 첨삭지도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해서 몇 가지는 워드로 써서 선배 장학사님께 이메일로 부탁드리고 팩스로 넣고 찾아뵈었다. 장학사가 되기 위해서는 장학사들을 만나 조언을 듣고 지도를 받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컨설팅을 받고 나니 조금 마음이 안도되었다. 기획 : 기획은 그야말로 장학사의 능력을 판가름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전문직을 준비하면서 앞서 나가신 선배 장학사의 지도 조언을 받는 게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학교에서 연구, 교무부장을 하면서 직접 학교교육계획을 수립해보는 경험,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을 나름대로 재분석, 구성하여 편집해보는 경험, 교육청에 일을 도와줄 때 직접 담당 장학사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재구성해보는 경험 등이 중요하다. 기획은 1월부터 쏟아지는 신년도 공문들 중에 참고할 만한 주제들을 뽑아서 처음에는 읽어보고 나중에는 직접 요약·재구성하다보면 나름대로 체제가 잡히고 안목이 생긴다. 필자도 처음에는 공문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어떻게 이렇게 잘 기획할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계속 연구하다 보니 도에서 내려오는 공문도 허점이 보이고 다시 재구성해야 할 부분들이 보였다. 지역교육청에서 나름대로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또 문제는 시간이 제한되어 창의적인 내용으로 기획해야 하는데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해결방법은 평소에 꾸준히 읽어보고 다르게 해석해보고 비판해보는 방법밖엔 없다. 먼저 큰 주제를 보고 주제에 맞은 4 ~ 5개 정도의 세부적인 실천계획을 창의적, 구체적, 논리적으로 뼈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부수적인 배경, 근거, 목적, 예산, 홍보, 평가, 일반화, 행정사항 등이 필요한 것이다. 면접 : 면접은 다음날 별도로 보기 때문에 조금 마음을 놓을 수는 있지만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특히 교육학을 공부할 때도 면접거리가 될 만한 주제는 반드시 메모지에 기록해뒀다가 틈틈이 꺼내서 보는 습관, 논술, 기획을 공부할 때도 면접으로 묻는다면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해야지 하고 상상을 해보는 이미지 메이킹 작업 등, 결국 면접은 별도로 준비하는 것보다는 ‘교육학·논술·기획·면접’이 모두 한 흐름 속에서 이해, 집중, 반복, 암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면접은 당일의 컨디션이나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 전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편안한 마음으로 충분히 잠자고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서 마치 기분 좋은 옛 친구를 만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면접에 임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요령은 일반적으로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핵심적인 답변을 자신감 있게 논리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가능한 결론부터 짧게 대답하는 훈련을 하면 좋겠다.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면접하려면 아무리 장황하게 논리적으로 많이 아는 것처럼 설명해도 핵심적인 요점을 간단히 말하는 것보다 고득점을 하기가 어렵다. 면접관의 시선을 정면으로 보는 것보다는 넥타이부분 정도에 시선을 두고 자신감 있는 듯 편안하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요령이 필요하겠다. 면접 준비는 마지막에 스터디를 하면 좋다고 하는데 필자는 끝까지 혼자 했다. 전문직으로서의 각오 평소에 교육청 일과 관련되어서 일하다가 정말 교육청과 학교가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학교를 지원해주기 위해 교육청과 장학사가 존재하는데 현실은 아주 다른 것 같았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겠지만, 장학사들이 노력하는 만큼 학교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또 개인적인 생각은 교육전문직은 학교, 학생, 교사를 위해 최대한 지원, 봉사하고 학교교육의 질, 교사의 전문성, 학생들의 학습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경력교사들이 승진의 개념으로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한 후 교감, 교장의 승진대열에 합류할 수 있어서 오로지 시험에만 몰두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문직은 정말 묵묵히 아무런 대가 없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현장의 수많은 교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해 교육의 원동력에 힘을 실어주고, 학교와 학생, 교사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무한한 봉사의 기쁨을 누리려는 각오로서 시험공부에 임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결정한 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21세기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 국제화 사회라는 문명사적 대전환점을 맞이하면서 교육의 경쟁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교육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가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높은 도덕성과 창의력을 갖춘 21세기형 인재 양성이야말로 국가 발전의 핵심전략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가 교육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각종 교육개혁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저마다 교육개혁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듯이, 우리도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개혁의 틀을 짜고 실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 교육은 획일적 평등주의, 국가의 지나친 통제와 간섭, 사교육비 부담 증대, 빈약한 교육현장의 자율권, 낡은 교육이념 등으로 인하여 전문화, 자율화, 다양화, 개방화 교육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와 사회, 학부모, 교원이 21세기형 인재양성을 위해 희망과 신뢰가 넘치는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쟁’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교육의 시스템 개선을 위한 방안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여기서의 ‘경쟁’은 인류와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생산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교육에서는 이것이 교육적 경쟁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경쟁이 학교와 학교, 교원과 교원, 지역과 지역 사이에 살아 있게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학교교육의 질은 높아질 것이고 국민들의 신뢰도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학교의 경쟁이 생산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의 자율적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교직원 인사와 재정(수입과 지출)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이에 따른 책임도 함께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 관한 제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를 통해 교육 수요자들이 학교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학교 정보의 공개는 학업성취도 등의 교육성과, 특성화된 교육과정 운영과 교육활동, 효율적인 교육환경과 여건 조성,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교육서비스, 우수한 교수진 및 지원인력의 확보, 지역사회와의 대외관계 등에서 근본적인 개선과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원의 경쟁이 교원의 전문성 향상과 학교교육력 신장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평가, 승진, 보수 등과의 연계시스템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원의 수업지도, 생활지도, 상담 및 인성지도, 진로 및 진학지도, 학급관리, 업무수행능력, 조직공헌도, 학부모 상담능력 등의 영역에서 전문성의 신장과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경쟁이 바람직하다. 교원들이 이런 경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시행할 수 있으려면 사기 앙양책과 더불어 인사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교육정책의 실패가 야기한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교원들의 책임인 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우수한 교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과 부족한 교사에 대한 연수 지원 등의 인사행정이 뒷받침되어야만 교원의 생산적인 경쟁이 정착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과 지역의 경쟁은 생활을 중심으로 한 교육자치 시스템의 실현을 전제하고 있다. 현행 ‘교육부-시·도교육청-지역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교육행정체제는 과도한 중앙집중적 관료제를 필연으로 수반하고 있다. 특히 각종 교육관련 정책의 생산과 집행, 교육예산의 배분 등에 있어서 막강한 힘이 교육부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에 지역사회의 교육적 요구 수용이 유연하지 못하고, 지방행정자치의 책임감이 약해지며, 지역적 특성에 맞는 교육실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지역간 교육에 대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교육의 책임을 국가와 광역 단위에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 단위로 확대시킴으로써 전반적인 교육력 향상을 기대할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각 교육행정 단계별 역할의 재정립 혹은 통폐합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교육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시스템의 개선책은 이 밖에도 다양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새롭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국가발전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소명을 교육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면서도 이웃과 환경에 대한 따뜻한 온정을 지니고 있는 바람직한 인간을 위한 교육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명제이다. 이러한 기저를 토대로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국민의 교육권 중에서 학습자의 학습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고, 교육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교육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구현하는 동시에, 교육수요자의 학교(교육) 선택권을 확대함으로써 교육의 성과를 높이고 책임 있는 교육을 실현한다는 방향을 견지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학교 간, 교원 간, 지역 간 선의의 교육적 경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교육의 책무성을 다하게 되고,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며 우리의 자녀들은 이웃과 국가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의식, 애국심, 인류애 등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 야구 원년부터 활약하여, 프로 야구 초창기 아주 잘 나갔던 선수 중에 OB 베어스의 신경식 선수가 있다. 188㎝의 큰 키에 시원한 장타를 날리고, 학 다리처럼 긴 다리를 벋어 1루 수비를 멋있게 해내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인상적이다. OB 베어스 팬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던 선수였다. 그가 선수로 한창 기량을 발휘하던 무렵, 어느 자리에서인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신경식은 어려서부터 야구에 재능을 발휘하여 초·중학교시절부터 야구 선수로 뽑혀 활약을 하였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에서는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 이런저런 고생을 하던 그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닭을 길러 계란을 모으면, 그걸 장날에는 머리에 이고 가서, 장에 내어 팔아 가계를 꾸렸단다. 운동하는 아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사뭇 안타깝고 아쉬웠을 것이다. 그 살림에 고기를 사 먹이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단다. 장에 내다 팔아야 하므로 계란조차도 제대로 마음 놓고 먹일 형편이 아니었다. 또한 형편이 괜찮다고 한들, 이미 검약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어머니로서는 아끼고 절제하는 가르침을 강조하였단다. 신경식 선수가 소년 야구선수로서 지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면, 어머니는 계란을 담거나 나르다가 실수로 종종 깨뜨리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이쿠 내가 한눈을 팔다가 이 아까운 것을 또 깨어 버렸구나” 하고서는 깨진 계란들을 얼른 수습을 하시고는, 그걸로 계란찜을 해내거나, 계란탕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먹도록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꼭 있었단다. “양계장에 모아 놓은 계란은 장에 갖다 팔아야 하는 것이니 절대로 손댈 수 없고, 이건 어차피 내다 팔 수 없게 된 계란이니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계란이 깨어진 것은 안 된 일이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잘 된 일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된 신경식선수의 고백은 어머니의 숨은 마음을 헤아리는 데로 이어진다. 어머님은 실수로 계란을 깨트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깨뜨린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짐짓 실수인 척하시면서 사실은 알고서 깨뜨린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의 실수인가 보다 했지만, 나이 들어서 그 시절의 정황을 되짚어 보고, 어머니의 성품과 사랑을 다시 반추해 보니 어머니의 행동과 말씀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깊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했다. 가난한 살림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어머니는 운동하는 아들을 제대로 먹이고 싶은 마음과 절약의 현실을 아들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이런 행동과 이런 언어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정작으로 그의 어머니가 아들 신경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수로 깨뜨렸다는 둥, 깨어진 것이니까 너를 먹도록 허락해 준다는 둥 하는 말들은 어머니가 짐짓 아닌 척 하며, 그저 표면으로 내세우는 말들이다. 어려운 살림의 현실 속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은 소중하게 안으로 안으로 숨어서 쉽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낸 말들은 안으로 숨어 있는 소중한 마음들을 보호하고 간직하기 위한 장치들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마침내 읽어낸 아들의 추억담을 들으면서 우리는 작고 아름다운 감동을 경험한다. 그러하니 말이 주는 감동이란 말 자체에 있지 아니하고, 마음과 말의 조화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사적(修辭的) 감동이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은 그 화려함이나 당당한 표출만으로 얻어지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진정한 마음을 꼭꼭 숨기어 보전하는 데서 감동이 긴 여운을 가지고 생겨난다. 이런 감동은 다시 다른 말로 드러내어 응답하는 것도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대의 소중하고 깊은 마음의 배려를 받았을 때, 그것을 뒤늦게 감동과 더불어 발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말을 하지 그랬어. 나는 전혀 몰랐잖아!” 어딘가 즉흥적이고 호들갑을 떠는 방식으로 호응한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어딘가 상투적이고 공허한 반응임을 느낀다. 배려는 배려로 이어짐이 좋다. 이쪽 또한 드러내지 않는 말로써 내 소중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차분한 자세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사람살이가 남들과 어우러져 되는 것이니, 모두 말로써 이루어진다. 말을 해야 서로 뜻을 헤아려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은 하라고 있는 것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도, 말 안하면 손해라는 의식이 담긴 말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뜻이 높아도 말로 드러내지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목에 핏대 세워 하는 말도 알아듣기 힘든데, 드러내지 않는 말을 무슨 재주로 이해하란 말인가. 얼핏 그렇게도 생각된다. 그러나 말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말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말아 버린다면, 그 얼마나 삭막한 사람살이가 될까. 드러내는 말,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말의 세계가 얼마나 오묘한지를 모른다면, 그 또한 사람살이의 진면목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전하고 알아차리는 일은 여간 섬세하고 그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종 드러낸 말의 저 깊은 심층을 소리도 없이 모양도 없이 흘러간다. 다만 은은한 향기를 스칠 듯 말 듯 오래 마음의 자취에 남긴다. 그러니 드러내지 않은 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본 연후에 그 사람의 말을 보면 드러내지 아니하는 말이 보인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통한 것이어서 깊고 소중한 뜻일수록 쉽사리 말의 굴레에 갇히지 아니한다. 오히려 드러내는 말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서 있거나 숨으려 드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에서 일찍이 ‘관음(觀音)’이란 것이 있었다. 글자 뜻 그대로는 ‘소리를 본다’는 뜻이니, 소리는 듣는 것인 줄만 알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생소한 개념이다. 불가의 관음법문은 즉각적인 깨달음과 영원한 해탈을 보장하는 일종의 명상법이라고 하는데, 현대적 개념으로 말하면 높고 고매한 경지의 의사전달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관음(觀音)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빛과 소리의 진동을 명상하는 방법이라 한다. 그런데 이 내면의 빛과 소리는 육체의 눈과 귀로는 들을 수 없으며, 언어와 두뇌를 초월한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지혜의 눈을 열게 됨으로써 이 내면의 빛과 소리를 즉시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드러내지 않는 말’로 가장 소중한 의사전달을 부지불식간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는 분명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다 본 뒤에 얻을 수 있는 현자의 지혜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 ‘지혜’란 것이 위대하고 고상한 철인(哲人)에게서만 찾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정성으로 아끼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찾은 자의 행복이다. 진정한 우정의 친구가 보내주는 마음의 배려 또한 그 대부분은 ‘드러내지 않았던 말’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이 또한 그것을 발견한 자의 기쁨이다. 요컨대 상대의 ‘드러내지 않았던 말’이 지닌 소중한 메시지를 마침내 알아차리고야 마는 우리들 자신의 내적 성숙이 중요한 것이다. 나 같은 세속의 사람들에게 ‘관음(觀音)’의 경험이 달리 있겠는가. 상대가 나를 진정으로 위하여 ‘드러내지 않았던 말’, 그 말의 틈새에 숨어 있었던 간절함의 의미를 내가 마침내 발견하여 떨리는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이 곧 ‘관음(觀音)의 경지’ 아니겠는가. 소중하기 그지없는 말은 밖으로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말의 본성인 동시에 마음의 본성인지 모른다. 극진한 사랑의 감정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젊은 영혼들의 고백들이 왜 존재하겠는가. 김소월의 시 ‘초혼(招魂)’에서 우리는 그런 말의 모습과 마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끝내 하지 못하였던 말에 가장 깊은 영혼의 목소리가 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말이 존재하는 궁극의 자리는 과연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드러내지 않은 말,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말,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숨은 신(神)이 거하는 곳이 아닐는지.
이 연구는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으로 인해 학교현장에서 교육 실천의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학교현장에서 교육 실천에 대한 근본 가정을 공유하는 공동체 접근을 통해 자율적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관련 문헌 분석을 통한 이론적 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교육행정의 원활한 기능이 전제조건 돼야 교육행정기관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정의하고 제도적·행정적 장치를 부가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행정이 의도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정부, 교육청, 학교단위에서 교육행정의 목적과 수단이 채택되고, 이것을 교사가 잘 이해하고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교실 수업과 학습자에게 효과를 거둘 때 비로소 교육행정이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각급 수준의 정부와 학교현장의 관계를 동반자이자 협력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대체로 교육행정가는 교육행정의 의도가 실제 학교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교육정책과 교육 규제로 인해 교육행정 기능과 공적 권력은 계속 확대된 반면, 학교현장의 실천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해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이 서로 다른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교육행정은 교육의 실제를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교육행정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교육의 실제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현장의 자율적인 역량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실천은 불완전성, 모호성, 애매성, 오류가능성, 모순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교육행정은 교육 주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 생성된다. 그러므로 교육행정은 불완전하고 오류와 모순적인 성격을 띠며, 구성과 해체라는 끊임없는 변증의 과정을 거친다. 이 점에서 교육행정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므로 항상 확실성과 정확성을 의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더욱이 교육행정이 다루는 교육 실제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비추어 볼 때, 교육행정이론과 정책이 최종적 처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탐색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육행정의 불확실성 문제는 규제나 통제가 아니라 탐색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한 탐색은 학교를 인식하는 관점의 변화가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의 불일치한 관계를 해소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려면, 교육행정 이론이나 원리를 적용한 규범적 처방에 앞서 학교현장에 대한 실제적인 탐구로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교육체제에 내재된 신념, 가정, 의도로부터 교육의 진짜 문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의 복잡성, 불확실성, 모호성, 특수성, 가치 갈등적 속성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교육행정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의 밀접한 협력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교육행정 본래의 교육활동 지원·조성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관료적 교육행정, 현장의 요구 수용 못해 교육행정에서 불확실성이란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원리로서 교육행정 현상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교육행정이 객관주의적·관료적 접근에 의존할 때 학교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지금까지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에서는 교육 실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중앙집권적 관료조직, 교육행정의 표준화, 교육결과의 평가와 책무성은 공통적으로 교육행정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관료적 접근은 교육 전반에 걸쳐 획일주의를 초래함으로써,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가치 갈등적인 교육 실제에 대응하지 못한다. 관료적 교육행정은 학교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육행정의 통제·감독 기능을 확대시킴으로써 학교현장을 더욱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또한 외부로부터 학교에 부과된 교육 표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할 때 교사는 학급의 성취 수준이나 학생의 다양한 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학급이나 지역 요소를 평준화시킨다. 또한 주기적으로 교육청 평가, 학교평가, 교사평가를 통해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가를 확인하기 때문에 지역과 학교는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을 다루기보다는 측정할 수 있는 교육결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지침, 고부담 시험으로 인해 교사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며 관료적 책무성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관료적 책무성에 의존하는 교사는 주어진 규정·기준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책무만 달성하면 되며, 그것이 특정 학생, 특정 사례에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다.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이 불확실성에 대응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학교현장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행정에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료적 획일화·객관주의가 아닌 학교현장의 현재 역량에 기반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으로 인해 학교현장의 획일화가 초래되는 가운데, 학교단위에서는 자율성, 전문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역량과 조건을 개발하고 있다. 학교단위 책임 경영제의 도입이 그 사례이다. 자율성·전문성 뒷받침돼야 다양성 수용 이 연구에서는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외적으로 주어지기보다는 교사의 반성적 실천 과정으로부터 획득될 수 있을 때 진정성을 지닌다고 분석되었다. 더 나아가 학교단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현실적 조건으로서 교사의 참여와 권력 공유, 전문적 동료 관계의 교직문화를 수반한다. 또한 학교현장은 교육 평등과 수월성의 조화, 교육 선택 기회의 확대를 통해 다양성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 다양성의 추구는 학교단위의 자율성·전문성으로 뒷받침되어야만 시장 기제의 비교육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을 교사의 개인적인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를 통해 지원해야 하며, 이것이 교육행정의 가장 핵심적인 과업이 되어야 함을 주장할 수 있다. 교육체제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은 학교현장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 스스로의 노력을 격려하지 못한다. 학교 공동체 접근에서는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공유된 의미·가치·목적에 관심을 갖는 교육행정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내야 한다. 학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육행정은 학교 내재적 과업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문화적 과정에 참여하면서 교육을 질적으로 우수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는 학교현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과업이며, 학교의 외적 요소보다 학교의 내적 요소에 치중한다. 개별 학교 상황에서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교사 그리고 교육행정가가 협동적으로 교육의 목적과 가능성을 찾아가며 서로를 지원하는 교육행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 의식은 학교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 정부의 획일적 규제와 관료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서 실천에 옮기는 교육행정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다. 공동체의식은 학교 변화의 강력한 동인 교사들은 자율적 실천을 위해 엄밀한 조직 구조보다는 느슨한 결합을 선호하는 한편, 교육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호작용의 필요성도 동시에 인식한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자율적·전문적 규범을 따를 때 전문적 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다. 학교단위의 전문적 공동체가 관료제보다 교육의 불확실성을 다루기에 더 적합하다. 불확실성 시대에 미래를 보는 직관적 판단보다는, 전문가들의 협의를 통해 조직 차원의 통찰력에 근거한 행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적 공동체는 전문적으로 실천하는 개인들에게 의존하며 교사 개인의 역할과 요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행정가가 학교문화를 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갈등과 의견 차이를 토론하고 합의함으로써 전문적 자율성·개인적 성장 욕구 그리고 공유된 정체성을 함께 유지해 나간다. 전문적 공동체로서 학교의 근본 가치를 공유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차이와 다양성을 수용하고 자율적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한다. 가치와 목적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자율적 실천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 전문적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공유된 가치에 근거하여 교육의 불확실성을 적절히 다룸으로써 교사 각자의 자율적인 실천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교육행정이 교육 실제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학교문화에 주목함으로써, 관료적 획일성이 아닌 전문적 공동체의 자율성 확보를 통해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 전문적 공동체에서 자율성을 실천하는 전문가의 행동 규범은 더 이상 과학적 객관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회적 실천은 공동체 안에서 합의된 규범과의 일관성(coherence)을 찾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학교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일관성의 기준이 중요하다. 자율적 실천의 일관성 기준이란 객관성과 주관성, 즉 실증적인 사실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포괄하여 행동이나 선택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에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지평의 융합은 일관성 기준을 적용한 결과로 획득될 수 있다. 전문적 공동체에서 일관성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전문적 규범에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전문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전문적 규범을 합의하고, 합의된 규범에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학교현장에 기반한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장·단기적 교육정책, 관련되는 교육정책, 교육정책 방향과 구체적 지침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학교현장의 교육 주체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셋째, 학습공동체로서 학습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전문적 공동체를 통한 자율적 실천은 학교에 변화를 부과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학습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학습공동체로서 공동의 학습 경험을 통해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공동체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교사의 전문성 개발 경험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집단적 학습 활동과 학교현장 수업과의 적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교육행정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의 공동체적 노력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공동체의 이상을 책임있는 실천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공동체성이 학교 정책, 구조, 문화, 과정에 모두 구체화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전문적 공동체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교육행정 지원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에 비추어, 정부 수준의 교육정책으로 학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단위와 교사의 자율적인 실천을 지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관료제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여 학교 단위에 권위와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문적 공동체 접근은 실력있는 교사들의 헌신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사 전문성 개발에 학교현장의 역할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관료적 표준이 아닌 공동체의 전문 규범을 개발하고 합의할 수 있는 교육행정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학교의 근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다원성을 포용하는 전문적 공동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학교 내부에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전문적 공동체의 사례로서, 학교 안에서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하우스 플랜(House Plan)’, 교사들의 다양한 연구모임 등을 적극 활용해볼만 하다. 셋째, 학교 공동체 접근은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공유하는 협력적 교육행정 설계를 필요로 한다. 교육행정기관과 학교현장 사이에 전통적인 규제와 통제 관계보다는 협력과 지원의 관계를 형성하려면, 학교현장의 실제로부터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현장을 연구하는 교육행정가의 역할과 역량을 통해 학교현장 중심의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넷째, 단위학교를 비롯한 교육체제 전반에서 전문적 공동체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일관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교사 준비 및 사회화 과정, 교사 직무 기준, 학교 협의 기구, 정부의 교육정책과 기준 등이 전문적 공동체에 적합한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높은 성취를 목표로 하는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교도 높은 성취 기준을 개발하고, 성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험을 치르고 평가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관료적 접근의 대안으로 전문적 공동체를 제안하였지만 새로운 대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학교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과 관료적 통제의 강화는 학교현장에서 자율성의 영역을 더욱 줄어들게 만들고 문화적 지도력을 제한한다. 이러한 자율성의 쇠퇴에 대한 대안이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사고의 전환임과 동시에 실천을 수반한다. 지금까지 학교현장에서 구성원들이 진정한 공동체성을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느린 속도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해 나갈 전망이다. 학생들을 흥미로운 배움의 과정으로 이끌어서 개별 학습자, 교사, 교육행정가 모두에게 학교교육을 의미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데에 전문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의의가 있다. 학교 공동체의 이상은 그에 적합한 공동체적 접근으로 실천하여야 한다. 단위 학교에서 다양한 공동체 실천 방안을 찾아낼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보하되, 교육행정 차원에서 학교 안팎의 공동체 문화를 지원·조성하는 핵심 기능을 수행할 것을 기대한다.